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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동생이 폭약 구입 부탁/순천 승용차폭발/친구,경찰에서 진술

    【순천=남기창 기자】 승용차 폭파살해사건을 수사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10일 숨진 이인자씨의 시동생 이모씨(42)가 친구 김모씨(41)에게 다이너마이트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는 진술을 확보,폭약구입 여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지난해 11월 친구 이씨로부터 『멧돼지를 잡으려 하니 다이너마이트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요구한 폭약을 구해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이에 따라 이씨가 폭약을 구입했었는지 여부와 그사용목적에 대해 집중추궁하고 있다.
  • 주변인물 탐문수사/승용차 폭발사건

    【순천=남기창 기자】 승용차 폭발물 살해사건을 수사중인 검찰과 경찰은 수년전부터 숨진 이인자씨(45)의 남편 이정우씨(52)와 시동생 이모씨(42)가 두사람 명의로 상속된 미도장여관 등의 재산관계로 심한 불화를 빚어 왔다는 주민들의 말에 따라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4일째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검경은 사건직후부터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하다 8일밤 귀가시킨 이씨의 시동생 등 주변 인물에 대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 여교사가 「시댁식구 4대」 봉양/아신효행상 받은 유필남씨

    ◎치매앓는 시조모 병수발 등 솔선수범/“시부모·친부모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자식된 도리에 시부모와 친부모가 따로 있을 수 있습니까』 부모를 해치는 패륜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16년동안 시조모와 시부모·시동생가족 등 4대에 걸친 시댁식구 11명을 부양해온 40대 국민교 여교사의 미담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구황금국민교 유필남 교사(42·여·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796의6)는 지난 79년 4형제중 맏아들로 같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손태식씨(47·성서공고교사)와 결혼하면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시부모봉양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신혼의 단꿈도 잠깐,결혼 3년만에 남편이 구미로 발령받는 등 근무지를 옮겨다니는 바람에 10여년동안 주말부부생활을 하며 힘겨운 살림을 혼자 도맡아왔다. 그러나 시할머니(92)와 시아버지(71)·시어머니(67)·시동생들을 친가족처럼 여기며 한마디 군소리 없이 뒷바라지를 했고 노환으로 쓰러진 시삼촌(84년 사망)의 병간호도 마다 않고 3년동안 집에서 모시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결혼해 분가한 시동생(35)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가족 4명도 불러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부교사의 박봉으로 대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기가 어려워 제철에 맞는 옷 한벌 해입지 못하고 살아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같은 생활을 한 보람이 있어 결혼생활 4년만에 단칸 전셋방생활을 청산하고 23평 아파트로 옮겼고 다시 4년후에는 어른들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아담한 단독주택을 마련하게 됐다. 검소한 생활속에서도 퇴근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난 6년동안 노인성치매와 폐질환을 앓아온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목욕·대소변수발을 했고 특히 최근 두달남짓은 병원에서 밤샘간호를 했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해도 힘든 40대주부로서 어머니와 맏며느리의 역할까지 1인4역의 「고단한 삶」을 16년동안 부족함 없이 해온 유교사는 『솔직히 가끔씩 힘에 부칠 때가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유교사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실(15·중학2)·연옥(13·중학1)양등 두 딸을 떠올리며 『내가 아니면 시댁어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아이들이 보고배울 수 있는 어머니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다.친정어머니와 주위사람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묵묵히 효행의 길을 걸어온 유교사의 생활이 같은 학교 교사들의 입을 통해 알려져 그는 18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 주관하는 아산효행대상 시상식에서 효친부문대상을 수상했다.
  • 여권신장 부작용(연변 조선족 1백년:6)

    ◎여성 거의가 사회 참여… 시부모 모시기 기피 중국 조선족의 여성 활동은 눈부시다.사회적 정치적 활동과 아울러 경제적 면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확고하다.1990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조선족 남녀의 연간 수입 비례는 1백대92.68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거의 남녀가 동위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위상의 변천을 생각할때 거의 한국과 유사하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한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광복을 맞이하기까지는 유교의 엄숙한 부덕의 덕목을 지켜야 할 여필종부의 사회 의식이 자리한 것은 한국과 다를바 없다.그러나 광복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남녀동등권이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교육을 통해 여성 자각 의식을 고취시켰다.그렇지만 문제는 여성들의 자각 속도에 비해 남성들의 의식 변화는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그러므로 남녀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일종의 사회병리가 쌓여갔다. ○현모양처 사상 사라져 예컨대 여성의 사회 참여로 발생된 가정의 빈 공간을 채울 대역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 남성이 이 자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1966년부터 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기간은 물리적으로 여성 권위 회복의 운동이 일어났던 때다.이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가정도 우정도 혁명에 우선될수 없다는 사상으로 계몽되었다.바꾸어 말하면 혁명을 위해서는 이것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문화대혁명의 10년간 지극히 가정적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던 조선족 여성들은 상당한 변모를 하면서 억세어졌다.공자의 유교사상과 전통적 여성의 현모양처 사상이 정면으로 부정 당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0년만에 붕괴되고,서서히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이 여성 권리에 대한 재고의 기간으로 간주된다.단순히 여성이 가정으로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신체적 생리적으로 남성과 다른 조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게끔 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확립된다. 그러면조선족 여성 문제와 관련되는 고부간의 갈등은 연변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연변에서 불리는 다음 민요 한수가 며느리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시아버지, 고추 후추보다 더 매운 시어머니, 외나무 다리보다 더 어려운 시형, 배두잎보다 더 푸른 맏동서, 종콩알보다 더 발가진 시동생, 올빼미 눈보다 더 밝은 시누이 눈, 참대보다 더 곧은 남편…」 며느리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임을 이 민요는 보인다.마지막 보루인 남편마저 여기서는 「융통성 없는 인간」으로 비치고 있다.한국의 전통적 며느리와 진배없다.그러면 조선족 여성사에 표출된 고부간의 갈등은 어떤 것일까.이명숙·최복순 두 분의 논문 「고부 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고찰」이 이 문제를 잘 해명하고 있다. 고부간의 관계란 준혈연 관계다.갈등이 생기면 모자나 모녀간에는 잘 풀어지지만 고부간에는 겉으로는 풀어질지언정 심리적으로는 앙금으로 남는다.그래서 요즘 미혼녀들 사이에 유행하는 속어가 있다.『동무의 집에 염소와 투레기가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만일 있다면 『다른 물건은 다 가져도 염소와 투레기는 못 가지겠다』는 말이다.염소는 시아버지를 말하고 투레기란 시어머니를 말한다.경제적으로 어쩔수 없이 아들에게 얹혀사는 노부부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 ○「시부모 유무」 결혼조건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극에 달하면 정면으로 며느리에게 항거한다.「내가 있으면 네가 없다」는 식이다.이 말은 죽냐 사냐 결판을 내자는 뜻이다.재미있는 것은 현행법 규정이다.「너도 있고 나도 있어야지,그 누구도 집밖에 쫓겨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길이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는 「총리」가 있다.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총리였다.며느리가 들어오자 총리를 놓고 갈등이 심화된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시어머니는 총리를 쥐고 있기엔 불안하다.만일 며느리에게 양도하면 냉전은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전이 지속된다.연변에는 이러한 문제로 가정이 불안한 상태가 전체의 반이나 된다. ○절반이상이 가정 불화며느리는 남편을 「우리」라고 호칭하고 시어머니를 「그」라고 호칭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이처럼 호칭 상으로도 시어머니는 소외를 당하고 있다.또 며느리를 맞기 전에는 무엇이나 어머니와 먼저 의논하더니 며느리가 들어오자 자기 마누라와 먼저 상의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통고한다.이런 환경에서 남편의 중재적 역할은 매우 절실하다.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공히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정치·사회·문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 증식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므로 노부모는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넘겨 줄 유산도 없고,노후를 자식에게 기댈수 밖에 없다.한편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되도록 호소하는 길 뿐이다. 사회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핵가족의 확산이라는 반대급부를 초래했다.현재 핵가족의 수는 날로 확대해 가는 실정이다.1990년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핵가족이 68%이고,농촌에서는 66.28%임은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가정도 사실은 부모를 모신다는 효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젊은 부부가 함께 뛰자니 집안을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고민이 이곳 연변에서도 가속으로 추격해 오고 있음을 볼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 형수­시동생 교사­10대 애정행각/불륜의 성애영화 “봇물”

    ◎「어린연인」이어 외화 「위험한 질주」「데미지」 대기/우리정서와 거리감… 전통윤리 파괴 등 악영향 우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불륜,10대 여고생과 의붓아버지 그리고 스승과의 삼각관계,형수와 시동생간의 비정상적 애정놀음,심지어 시체를 능욕하는 변태성욕에 이르기까지 금단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가 봇물을 이루고 있어 영화계 전반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이미 두차례에 걸친 공륜 수입심의에서 부결된 영화 「데미지」가 지난달 28일 1년여만에 재심의에서 전격 통과됨에 따라 관심을 끌게된 이들 「성파탄영화」는 12월 24일경 개봉될 「데미지」외에도 현재 상영중인 「어린 연인」「나이트 가드」,19일 개봉될 「위험한 질주」등 4∼5편.특히 이 영화들은 충격적인 성애장면도 문제지만 기존 윤리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부정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악영향이 우려된다. 줄리에트 비노시 주연의 「데미지」는 아들의 연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파멸해가는 예비 시아버지의 비극을 그린 에로티시즘 영화.『패륜적 소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긴 하지만 「중요장면 7군데 삭제」라는 조건으로 작품성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굳이 반사회적인 영화를 상영할 당위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데미지」의 루이말 감독은 이 작품의 한국상영을 위해 지난해 8월 직접 내한,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수 필름의 「어린 연인」 역시 지극히 위험하고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17세 여고생(우희진)과 남자교사(이경영)의 눈먼 사랑,여기에 영혼이 병든 의붓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이라는 인화성 강한 이야기까지 여과없이 덧칠된다.『10대여,위선의 가면을 벗고 너의 사랑에 당당하라』고 부추기는 것같은 이 영화는 한 사춘기 소녀의 통과의례로 보기엔 지나치게 광기어린 성숙의 아픔을 묘사하고 있어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최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고교교사」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만큼 일본 특유의 음습하고 왜곡된 성문화가 곳곳에서 느껴져 개운찮은 뒷맛을남긴다. 지난 88년「정복자 펠레」이후 오랜만에 선보인 덴마크영화「나이트 가드」는 병원 영안실을 배경으로 한 컬트호러 영화.94년 카느영화제 프랑스비평가협회 초청작품인 이 영화는 시체를 능욕하는 변태성욕자를 쫓는 사건을 다룬 것으로 선정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시체실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법대생과 담당형사가 벌이는 숨막히는 대결이 잠시 눈길을 끌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나 히치콕류의 드릴과는 거리가 있는 거친 영화다. 이밖에 「위험한 질주」는 형수와 시동생 그리고 시동생 친구가 번갈아 가며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미국영화로 우리 정서로는 납득하기 어렵다.X세대 영화를 표방했던 「헤더스」나 「트루 로맨스」에서와는 또다르게 전개되는 대책없는 본능적 삶이 전망부재의 요즘 젊은이들을 나쁜 방향으로 자극할까 우려된다. 최근 금기시됐던 영화들이 속속 수입되거나 제작되는 것은 웬만한 성묘사에는 미동도 하지않게된 관객들의 충격영상에 대한 수요와 영화관계자들의 상업적 의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스크린은 언제나 압박받는 것의 분출구 역할을 해왔다.하지만 스크린속의 성묘사가 최근들어 갈데까지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것은 영화의 사회심리적 기능과는 별개로 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일이란 지적이 높다.
  • 추모인지 행락인지/박찬구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제39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순국선열과 전몰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추모객들의 수가 크게 준데다 일부 가족단위 참배객들은 마치 피서를 하러 온 듯 묘역 주변에서 웃고 떠들어 보는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립묘지 관리사무소측은 이날 30여만명의 추모객들이 국립묘지를 찾았다고 밝혔다.이는 지난해 하룻동안 39만1천여명이 몰려든데 비해 25%쯤이 줄어든 것이다. 물론 관리사무소측은 이번 현충일의 경우 연휴기간과 겹쳐 지난 4일과 5일 각각 3만여명과 6만4천여명이 미리 참배를 다녀 간 것으로 집계돼 추모객의 행렬이 분산된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비가내려 추모객 숫자가 크게 줄었었다는 점을 감안할때 갈수록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는 후손들의 정성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큰 아들 내외는 연휴라서 손자들과 함께 강원도에 놀러갔습니다』 8·15광복 직후 고향인 평북 정주에서 함께 남하했다가 52년인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시동생의 묘를 찾은 김옥순할머니(68)는 갈수록 자녀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해마다 현충일과 한식·추석등 세차례씩 시동생의 묘를 찾아왔지만 연휴가 겹칠 때는 어김없이 아들 내외가 빠진다는 한숨섞인 푸념이 결코 김할머니 개인의 고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들어 씁쓸했다. 또 이날 국립묘지를 찾은 일부 가족들은 묘지 잔디밭에 천막을 치고 낮잠을 자는가하면 심지어 제단을 베고 누워 일행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식찌꺼기와 쓰레기더미들을 보면서 국립묘지 입구에 나부끼고 있는 각종 플래카드들이 어쩐지 서글픔을 더해 주었다. 더욱이 북한의 핵사찰거부로 국제적으로 대북한 제재 위기가 점증하는 시기에 맞는 헌충일에 국내에서는 헌충일이 낀 이번 연휴가 행락에 너무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기우일까.
  • 재키,케네디묘옆에 묻힐듯/“아메리카연인” 죽어서도 화제

    ◎“생전에 알링턴묘지 희망 했었다”/“첫시댁” 보스턴시 조기게양 애도 지난 19일 타계한 재클린 오나시스 여사의 유해는 첫 남편인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묻혀있는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그녀의 대변인인 낸시 터커맨 여사가 20일 밝혔다. 터커맨 여사는 이날 이같이 밝히면서 장례식은 오는 23일 뉴욕 맨해턴의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성당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한 가운데 엄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클린 여사는 지난 53년 미래의 대통령과 결혼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지난 63년 댈라스에서 암살된 후 30년만에 사후 재결합하게 된다. 재클린 타계후 4송이의 붉은 카네이션이 고 케네디 대통령 묘비에 놓여졌는데 지난 63년 조산후 사망한 아들 패트릭과 앞서 56년 사산한 딸이 아버지 곁에 묻혀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그레그 스미스 대변인은 생전의 재클린 여사도 그곳에 묻힐 것을 시사했다고 말하고 재클린여사 가족들과 수차례 협의를 가진 바 있다면서 가족들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묘지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편 고 케네디 대통령의 출신지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는 재클린여사의 죽음을 맞아 반기를 게양하는등 애도를 표시했다.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도서관도 조기를 게양하고 당분간 모든 공식행사를 중지키로 결정했다. 케네디 대통령 일가를 낳은 보스턴과 매사추세츠주에는 재클린여사의 시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원의원으로 있으며 조카인 조셉 케네디2세가 보스턴지구의 연방하원의원으로 있다. 재클린여사는 로드아일랜드주 사우샘프턴 출신으로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결혼후에는 주로 뉴욕에서 살았으나 보스턴시는 항상 그녀를 그곳 출신으로 간주해왔다. 재클린 여사의 두번째 남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조국 그리스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죽음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나시스 재단의 한 대변인은 20일 『우리는 전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들은 재클린 여사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녀가 사랑보다는 돈과 권위를위해 오나시스와 결혼했었음을 「시사」했다. 재클린 여사가 오나시스와 결혼할 당시 그리스는 군부독재하에 있었으며 오나시스는 군사 정권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나시스는 그리스에서 아직도 인기가 있으나 재클린여사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 거의 연애결혼… 신랑집서 예식(“살양말 신어보는게 꿈”:하)

    ◎재봉틀이 호화혼수… 폐백풍습은 사라져/신혼여행 안가고 바로 시댁에 살림 차려/여성 흰색블라우스·주름치마·중국제허리띠 유행 내가 북한을 떠나 오면서 챙긴 짐속에는 91년 회상유치원 교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어 입은 까만색 양장이 한벌 있다. 내 월급의 4배가 넘는 4백원이란 거금을 주고 감을 떠다 지어 입은 것으로 최근까지도 고상한 멋이 있다하여 유행하던 옷이다.겨울마다 즐겨 입어 애착이 갔지만 중국에서 우리를 도와준 김선생집에 두고 왔다.서울에 가져왔어도 입기에는 좀 어색하겠지만 언젠가 찾아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양선 긴치마 인기 북한여성들 사이에도 옷과 머리의 유행이 있다.내가 살던 함흥에서는 겨울철엔 까만색 한복과 양장이 인기였다.양장치마로는 주름치마를 많이 입는다.요즘에는 흰색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고 그위에 중국제 허리띠를 매는 바람이 처녀들 사이에 한바탕 불고 있다. 허리띠는 천으로 만들어져 입으면 주름이 생기기때문에 집에서 고무줄을 넣어 사용한다.값은 한개 35원으로 큰 맘 먹지 않으면 사기 힘들다. 「헛가다」라고 서양식 추세(유행)를 좇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남자는 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여자는 평양처녀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긴치마를 입는다. 처녀들의 머리모양은 나처럼 생머리로 길러 묶거나 머리띠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처녀 「헛가다」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는 등 별스럽게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여성들이 여름에 살양말(스타킹)을 신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임수경언니가 평양을 다녀간 이후부터였는데 그때 우리 친구들은 모여서 『더워 죽갔는데 양말은 무슨 양말』이냐며 비아냥 거렸었다. 우리는 임수경언니를 두고 『남조선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저리 키 크고 얼굴도 좋고 지식도 높나』하면서 남한사회 현실에 대해 그동안 들어온 것이 거짓이 아닌가 하고 수근대기도 했다. 어쨌든 그후 한 켤레 20∼40원하는 중국제 살양말을 멋내기 좋아하는 처녀언니들은 몇달치 월급에서 뗀 돈으로 사 신었는데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북한에서는 중매결혼은 거의 없고 연애결혼이 대부분이다.여자나이 21세가되면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한다.여자나이 22세이면 금값,23세 은값,24세는 동값 처녀로 부른다.25세가 넘어가면 늙은처녀로 분류돼 중매가 오가도 신랑쪽에서 『그만 두자』하는게 보통이다.남자는 25∼27세에 결혼한다. 처녀들 사이에서는 「군당지도원」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는다.군당지도원이란 군대를 갔다 왔는가,당원인가,지식이 있는가,도덕적으로 깨끗한가,돈이 있는가를 뜻하는 말이다.전문학교나 대학을 나오면 「지식이 있다」고 본다. 북한에도 사람사는 사회인만큼 고부간 갈등도 있고 올케·시누이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다.이 때문에 생긴 은어가 「벼룩이 닷되」,「염소」등이다. 「벼룩이 닷되」라는 말은 시누이 한명을 뜻하는데 『그집에 벼룩이 닷되 있는가?』고 물어 『10되 있소』하면 시누이가 두명 있다는 뜻이 된다. 「염소」는 시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다.처녀들은 신랑이 「군당지도원」이면서 집안에 「벼룩이 닷되」와 「염소」가 없는 곳으로 시집가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한다.남자들이 원하는 배우자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판매원,접대원,유치원이나 탁아소·교양원등 자격증을 가진 생활력 있는 여성이다. ○25살 넘으면 노처녀 대체로 결혼식날 신부집은 울고 신랑집은 웃는다.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잔칫상을 받고 부모와 사진을 찍은뒤 신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는 형식으로 치러진다.신부는 친정을 떠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딸을 보내는 친정엄마도 운다.북한에서는 신부가 울어야 교양이 있다고 한다. 2년전만 해도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갈때는 승용차를 타고 갔으나 지금은 차도 없고 기름도 부족해 가까운 처갓집은 걸어서,먼 곳은 화물차를 타고 가 데려온다.오는 길에 김일성 동상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한 절차에 속한다. 신랑집에 도착하면 문앞에서 기다리던 시부모에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친지들과 함께 차려진 상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전에는 동네사람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으나 2∼3년전 김정일로부터 결혼식을 검소하게 하라는 방침이 내려지면서 친지들만 상에 앉는다.폐백은 드리지 않는다. 결혼식장 분위기는 상당히흥겹다.녹음기에서 보천보 전자악단의 「도시 처녀 시집와요」「축복하라」「축배를 들자」등의 경음악이 흘러 나오면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도 추고 돌아가며 노래도 부른다.신랑신부가 결혼식날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결혼잔치를 다룬 영화 「나의 사랑,나의 행복」과 「반갑습니다」「통일무지개」등이다. 신혼여행은 가지 않고 바로 시댁에 신방을 차린다.주택사정이 나빠 신혼부부들은 집이 나올때까지 시부모,시동생들과 한집에서 산다. 집이 좁아 결혼하자마자 별거하는 신혼부부도 있다.나와 함께 회상유치원에서 교양원으로 근무하던 김정애언니는 지난 3월초 보위부에 근무하는 청년과 결혼했으나 남편과 떨어져 살고있다.토요일 저녁에만 동흥산구역에 있는 시댁으로 가야 하는 주말부부다.신랑이 맏아들이지만 방 두칸 집에 시부모,먼저 결혼한 둘째 내외,시누이 3명이 모여 살기때문이다. 시내에서 50리 되는 길을 걸어서 다니느라 무척 힘들지만 시동생부부를 나가라 할 수 없어 집이 배당될 때까지는 참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화물차 타고시가로 우리는 지난해까지 아파트에서 살다가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윗방,아랫방,부엌,세면실로 된 집이었는데 겨울에는 탄을 때도 윗방까지 온기가 안가 다섯식구 모두 아랫방에서 줄줄이 누워 잤다. 혼수로는 사발,그릇,수저10벌정도와 양동이등을 사가고 시아버지에게는 양복감을,시어머니에게는 양장감이나 스웨터를 사간다.시동생들에게는 양말이나 스프링(런닝셔츠) 학생셔츠를 준다.일반인들에게 가장 고급스런 혼수는 마선(재봉틀)인데 국산은 없고 3천원짜리 중국제가 장마당에서 판매된다.워낙 비싸 마련해가는 사람이 드물다.냉동고(냉장고)나 세탁기등 가전품도 마찬가지다. ○남존여비사상 강해 신랑이 신부에게 해주는 것은 삐아스라고 부르는 분크림(파운데이션)과 입술연지 눈썹연필등 화장품과 머리수건,봄·가을용 양장감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 아들을 볼때까지 자식을 줄줄이 낳는 사람도 있다.그래서 둘째딸은 개딸이라 부르기도 한다.늙은이(북한서는 보통 노인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아들부부에게 계속 출산을 요구하는반면 요즘 젊은부부들은 둘만 낳고 말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고 금줄은 달지 않는다. 「남존여비」사상도 강하다.서울에 와서 새세대 남자들이 설거지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북한의 남자들은 자기 양말짝 하나도 빨지 않는다. 하지만 집안의 경제권한은 일정치 않다.여자가 세면 여자가 갖고 남자가 세면 남자가 돈관리를 한다. 이혼하는 부부도 종종 있다.배우자가 「바람재」(바람둥이)이거나 성격문제,고부갈등 등이 이혼사유가 된다.예전에는 재판을 걸면 대부분 이혼이 성립됐지만 최근에는 당에서 『웬만하면 마음을 맞춰서 계속 살라』고 권하기도 한다.
  • 고속도분리대 받아 승용차탄 2명 사망

    【진천=김동진기자】 27일 하오1시쯤 충북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서울기점 90㎞지점)에서 청주를 떠나 서울로 가던 서울1부 2299호 프라이드승용차(운전자 문혜리·여·30·서울 종로구 옥인동 군인아파트 나동 403호)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문씨의 아들 김용완(7)·용균(4)형제가 그자리에서 숨지고 문씨와 시동생 김학수씨(30·서울 송파구 삼전동 68의12),김씨의 부인 권월매씨(30)등 일가족 4명은 각각 중경상을 입고 청주시내 리라병원등에 입원,치료중이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3대 동거… 민경천씨 가정(훈훈한 우리가정:2)

    ◎“할아버지­아이 모두 부엌일 도와요”/조그만 문제도 기도로 풀어… 웃음꽃 만발/어울려사는 삶속 사회생활 지혜 자연터득/“대가족제도는 미풍양속… 구심점인 주부역할 중요” 3대가 한울타리안에 모여 사는 주부 홍명진씨(45·전 동아방송 아나운서)가정을 취재하기위해 처음 연락하는 과정에서 홍씨는 혼자 결정 할 일이 아니고 『어른들께 여쭤봐야 한다』며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어른 모시고 사는 가정이 다 그렇지요 뭐』 대법관을 지낸 인텔리 시아버지 민문기씨(79)와 시어머니 양한주씨(69)·남편 민경천씨(48·조흥은행)와 자신,결혼하지않은 시누이 민영옥씨(40·대학강사),올해 대학입시를 치른 현정(19)·일홍(16)남매등 홍씨의 현재 가족은 모두 7명. 『몇년전까지만해도 시아버지의 부친인 노 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셨고 요즘은 주말에만 오는 시동생 내외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까지 함께 살았으며 독일 유학중인 또다른 시누이등 4대에 걸쳐 항상 10명도 넘는 대식구가 복닥거리며 살았어요.그러니 3대가 산다해도 지금은 너무 단촐한 셈이지요』 서울 방배동에 자리한 홍씨의 주택은 겉에서 보기와 달리 건평이 50평도 채 안되는 규모. 집안으로 들어서려니 「새터에 큰 돌 놓았다.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차고 넘쳐지이다.1975년 7월3일,민문기·양한주」라고 적힌 머릿돌이 손님을 정겹게 맞아준다.이어 거실로 들어가니 골동품 전시장에나 있어야 할 옛날의 다이얼식 전화기가 창문앞에 가지런히 놓인 20여 난 화분과 함께 정갈하고 검소한 이 가정의 분위기를 대번에 느끼도록 했다. 『현대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하지요.저는 이것이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 합니다.사람은 어릴때부터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어울려 살아야 어른이 돼서도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거던요』집안의 제일 어른인 민문기씨는 대가족 제도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미풍양속이며 이 제도가 계속 이어지려면 누가 누구를 모시는 차원이 아니라 그저 서로 어울려 사는 분위기가 돼야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홍명진씨 부부도 비슷한 생각으로 두사람은 노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 모두를 위해 대가족을 택했다고 밝힌다.『대식구가 어울려 살다보면 서로 부딪칠 기회도 많지만 아이들이 웃기고 노인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풀어질 기회도 많아요.또 외식을 한번 하려해도 노인들과 아이들의 식성이 달라 문제가 되지만 서로 양보하다보면 아이들이 사람사는 지혜를 따로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이 가정은 특히 황해도 신천이 고향으로 6·25때 내려와 정착을 했기때문에 친척이 별로 없어 가족간의 유대감이 더욱 각별하며 기독교 가정이라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다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 해결된다고 한다.가훈도 성경의 한 구절에서 정한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자」. 이 가정은 또 어른이나 아이나 『이래라,저래라』혹은 『왜 그렇게 하느냐』는등 서로 참견하지 않는 것이 생활원칙이다.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러울것 같지만 실제는 눈에 띄지않는 규율이 많아 구속받기를 싫어하는 세대인 현정이와 일홍이는 지금의 가족환경도 싫지는 않으나 『부부끼리만 살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편 시어머니의 건강이 좋질않아 자연히 부엌일은 며느리인 홍씨가 도맡고 있지만 할아버지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헌신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힘든줄을 모른다고 말하는 홍씨를 보고 있으면 전통가족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가정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 「5·16혁명」과 「5·16쿠데타」 사이는(박갑천 칼럼)

    친국하는 세조를 쳐다보며 박팽년은 입을 연다. 『나으리가 주신 녹은 하나도 먹지않고 창고에…』 『이놈,네가 충청관찰사로 있으면서 장계를 올릴 때는 칭신했거늘 이제 와서…』 『나는 칭신한 일이 없소』 그때 올린 장계를 찾아보니 「신」자가 아니라「거」자였다.그것도 우롱당한 셈인데 더구나 용상의 세조에게 「나으리」라 불렀으니 울화는 꼭두까지 치민다.그래서 화형이 가해진다.「나으리」라는 호칭은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수양대군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부름에는 그렇게 가치기준 평가의 빛깔이 서린다. 모국어랑을 담아 더 유명해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무대를 놓고 보자.그건 부제 그대로 「한 알자스 어린이의 이야기」이다.여기서의 「알자스」는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다.알자스 로렌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소유권분쟁이 있던 곳이므로 독일이름도 있다.엘자스 로트링겐이다.그러니까 반대되는 상황에서 독일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한 엘자스 어린이의 이야기」로 되었을 것이다.1940∼1944년까지도 독일령이었으니 프랑스령인 지금도 독일사람들은 엘자스 로트링겐이란 이름을 입에 올린다.그럴때 정신적으로는 「내것」이라는 뜻이 함축된다. 앞서 말한대로 상감(마마)과 수양대군의 차이가 엄청나듯이 단종과 노산군의 차이도 하늘과 땅이다.「수호지」에서 요부 반금련이 호랑이 때려잡은 시동생 무송을 유혹하려면서 하는 호칭도 그것이다.술을 권하면서 도련님 도련님하던 반금련이 어느 순간 「여보」라면서 아양을 떤다.그건 시동생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이젠 「설」로 쇠게 되어있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굳이 「구정」이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설로 인정 못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읽는 듯하다. 새로 개편되는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에서 일부 용어가 바뀔 것으로 전해진다.공청회를 거쳐서 최종 확정된다는 것이지만 예컨대 여순반란사건→여순사건,4·19의거→4·19혁명,5·18민주화운동→광주항쟁,5·16혁명→5·16쿠데타,12·12사태→12·12쿠데타…등이다.「여순반란사건」이란 표현에 대해서는 그쪽 지방 주민들이 나서서 개칭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역사는 「동학란」이라는 부름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전쟁)」으로 진전되어 온다.그 진전된 역사가 「혁명」을 「쿠데타」로 이름붙이고 있지않은가.충신과 역적 사이를 느끼게 한다.
  • 콩심은데 콩나고…/이이자(여성칼럼)

    60을 바라보는 지금 3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고보니 나의 할머니·어머니가 유독 생각나는 것은 나이 탓인가? 올 새해에도 내가 지어준 한복을 입고 한껏 멋내는 손자 손녀의 모습에서 아득한 세월을 거슬러서 나의 어린시절을 기억해낸다. 4남1녀의 형제중 맏며느리이셨던 어머님은 5대봉사를 하는 종가집 종부로서 위로는 시종조부,증조모,시조모,시조부,시부모님과 아래로는 시동생들과 동서들이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의 살림을 맡아하셨다.하루 일과가 끝난후 작은 어머님들과 설빔이나 추석빔을 만드시느라 늦은밤까지 바느질하셨던 기억이 난다.옷만드는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되려고 그랬는지 어린 나이에도 내옷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느라고 졸음 가득찬 눈을 비볐던 것과,예쁘게 염색된 명주 두루마기에 아양까지 써서 동네 제일의 멋쟁이였던 일들이 떠오른다. 언제나 명절이 되면 나를 자랑스럽고 으쓱하게 해주었던 한복이 사실은 할머니께서 시집오실 때 가져오셨다는 혼수가 내게 대물려졌던 것임을 철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더욱 그립게 해주었던 유품이 되었다.한복 만드는 일에 전념하느라고 주부로서의 역할이 미흡했던 때에 어머니께서는 여름철마다 모시옷을 손질하셔서 사위에게 주셨고 그 옷을 애용했던 남편도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모님의 옷 손질을 그리워하곤 한다. 콩심은데 콩이 난다고 하던가? 한복을 아끼고 가까이 하는 마음이 어릴적 가족과의 추억속에서 생겨나고 내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며 즐거웠던 기쁨이 이제는 손자 손녀들에게 옮겨가면서 옷짓는 일이 직업이 되도록 길러주신 분들이 생각되는 새해 아침이다.이미 출가하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아이가 한복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어 의논의 상대가 되어주고 며느리 또한 곁에서 일하는 우리 가족이다.먼 훗날 내가 그랬듯이 내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한복을 사랑하고 보존시키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이들의 맑은 눈빛속에 담아본다.
  • 5·18시민상 수상자 발표(단신패트롤)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회장 윤석봉)는 6일 제2회 5·18 시민상 수상자로 고 김종태씨(80년 사망 당시 22세)와 고 송광영씨(85년 〃27세),이소임씨(38·여)등 3명을 선정,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18일 상오 5·18 제12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서 있을 예정. 수상자로 선정된 김씨(58년생·부산출신)는 근로자로 생활하던 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정문앞에서 「노동3권보장」「광주학살원흉처단」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사망했다. 또 송씨(58년생·광주출신)는 서울 경신중을 졸업한후 검정고시를 거쳐 84년 경원대 법학과에 입학,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항의해 분신,같은해 10월 21일 사망했으며 이씨는 80년 5·18 당시 부상당해 정신장애와 반실불구로 12년간 병상생활을 해온 시동생 정방남씨(32,5·18부상자회원)를 간호해 왔다.
  • “사업비 마련” 형수살해/1년6개월만에 검거/공범 둘 해외도피

    서울경찰청은 11일 지난 90년 9월에 발생한 인천시 부평1동549 노숙자씨(당시 46세)살해사건의 주범으로 노씨의 시동생 홍덕일씨(46·부산시 동래구 연산9동 주공아파트 123동)와 장물아비 박영철씨(29·부산시 동래구 거제4동 815)등 3명을 검거,신병을 인천경찰청에 인계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숨진 노씨가 끼고 있던 시가 1천만원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경찰은 또 홍씨가 경영하던 무허가 자동차 매매업소에서 일하던 이재성(32·부산시 부산진구 양정3동 389),모병석씨(30·부산시 금정구 회동 209)등 2명도 노여인 살해사건에 가담했으며 이들은 범행후 인도네시아로 도피했음을 밝혀내고 이,모씨와 이들의 해외도피를 알선한 홍상표씨(38·부산시 부산진구 전포2동 876)등 3명을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에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는 무허가 자동차 매매업을 하다 사업자금이 부족하자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이씨와 모씨에게 『우리 형수가 돈이 많으니 함께 털자』고 제의,지난 90년 9월28일 상오 9시20분쯤 노씨가외출한 틈을 타 미리 복제한 출입문 열쇠를 이용해 노씨집에 함께 침입한 후 기다리고 있다가 이날 저녁 귀가한 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털어 달아난 혐의다.
  • 경관이 총 난사… 일가 4명 사망/의정부서

    ◎만취 후 재판상대에… 도주했다 잡혀/서울 북부서 도봉파출소 김준영 순경 【의정부=임시취재반】 경찰관이 근무중 권총을 들고 외출해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재판상대방 일가족 4명에게 차례로 난사,살해한 뒤 달아났다가 4시간 만에 잡혔다. 26일 하오 8시30분쯤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406의12 청송식당(주인 김기환·57) 앞길에서 서울 북부경찰서 도봉파출소 소속 김준영 순경(27)이 평소 원한관계이던 이웃인 식당 주인 김씨의 둘째아들 성배씨(33·냉동기사)와 셋째아들 경배씨(31·독서실 경영) 등 일가족 4명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뒤 달아났다가 27일 상오 1시쯤 인천 월미도 부두에서 서울 기동대 소속 고진석 순경 등 4명의 동료경찰관에게 검거됐다. 김 순경은 이날 이 식당에 찾아가 셋째아들 경배씨가 식당 앞길에 있는 것을 보고 권총 1발을 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 뒤 총성을 듣고 식당 2층에서 달려나온 둘째아들 성배씨에게도 총을 겨누어 성배씨가 30m쯤 떨어진 금성세탁소로 도망쳐 들어가자 방안까지 쫓아들어가 권총2발을 쏴 살해했다. 김 순경은 이어 현장에서 1백50여 m 떨어진 태양슈퍼에 달려가 가게정리를 하던 식당주인 김씨 딸의 시동생인 박진호씨(30)와 박씨의 부인 이미경씨(27)를 향해 총을 쏴 숨지자 박씨의 형수 김현숙씨(28)에게도 총을 쏴 중상을 입혔다. 김 순경은 이날 하오 10시20분쯤 서울 신당동에 사는 서울시경 제1기동대 소속 고 순경으로부터 현금 2만원을 빌린 뒤 인천 쪽으로 달아났다. 식당주인 김씨의 딸 현옥씨(26)는 『김 순경이 술에 만취한 채 식당에 찾아와 식구들을 찾는 순간 식당에서 나오는 셋째오빠를 발견하자 곧바로 권총을 쏴 숨지게 한 뒤 잇따라 나머지 가족들에게 권총을 난사했다』고 말했다. □임시취재반 ◇사회부 황성기 박홍기 진경호 김재순 기자 ◇제2사회부 김동준 기자 ◇사진부 박영군 기자
  • 아프리카 여성들 지위향상 뒷걸음(세계의 사회면)

    ◎교육수준 낮고 관습·편견 탈피 못해/농사꾼 75%가 여성… 대출등도 제한 아프리카 여성들의 지위향상은 요원한 것일까. 아프리카 여성들은 오랜관습과 편견,그리고 낮은 교육수준 등으로 여전히 남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농촌지역 여성들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하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도시화·산업화로 남성들의 탈농촌 경향이 높아짐에 따라 농업에서 차지하는 여성들의 비중과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케냐에서는 농업인구의 75%를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땅을 개간하고 보다 많은 수확을 거두려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꿈은 온갖 편견과 불합리한 제도의 벽에 부딪쳐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아프리카 농부들은 학교가 늘어나면서 자녀들의 진학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그들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대륙을 휩쓸고 있는 악천후도 농사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악재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여성들의 지위는 오히려 약화되는 아이러니가 아프리카 농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깨어있는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여성들은 은행에서 대출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게 오늘의 실정이다. 세계은행도 이런 실정을 파악,아프리카국가들에게 차관을 제공할때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요리와 술제조에 필요한 땔감을 구하기 위해 여성들이 하루에 5시간이상 산과 들로 내몰리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실정법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영향을 미칠뿐이며 대부분은 재래의 관습법이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케냐의 법률은 일부다처제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으나 많은 남성들은 여전히 관습법의 비호아래 여러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다. 또한 스와질랜드의 유부녀들은 남아공의 광산촌에서 일하는 남편들로부터 허가증서를 받은 후에야 의사를 찾아 건강진단을 할 수 있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은 그들의 재산을 시동생에게 빼앗기는 일도 있다. 아프리카의 소녀들은 국민학교에는 소년들과 차별없이 함께 진학하지만 대부분 중도에서 공부를 그만두고 있다. 아프리카 여성들이 다른 대륙의 여성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은 그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져야 하며 불합리한 관습법의 지배에서 과감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한가위 맞는 두가족의 명과 암

    전국이 한가위 명절분위기에 들뜨고 있다. 올해는 닷새동안의 황금연휴인데다 홍수가 들긴 했지만 풍년이 들어 추석기분이 한껏 높은 가운데 근반세기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할린 귀국교포들의 감회가 더 없이 깊은가 하면 65년만의 대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의 가슴은 아프기만 한다. 추석을 맞는 명과 암을 찾아봤다. ◎46년만에 가족과 명절잔치/사할린서 영주귀국한 밀양 정희찬옹/25살 일제때 징용… 7순 백발노인으로/조카ㆍ손자등 30명모여 웃음꽃 한마당 『사할린에 뜬 한가위달을 보면 어머니와 아내의 얼굴로만 보여 추석때마다 눈물이 났지』 2차대전 말기인 지난44년 일제의 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간뒤 46년만인 올해 영주 귀국한 정희찬할아버지(71ㆍ경남 밀양군 초동면 덕산리)는 추석을 사흘 앞둔 30일 반백년만에 다시 만난 아내 최분순할머니(70)에게 『고향의 추석이 진짜추석』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집에 사는 동생 희판씨(62)도 덩달아 『아이들이 언제 도착한다고 했느냐』고 몇번씩 부인에게 되묻다 『멀리서 오는 아이들의 요기거리를 준비하라』고 다시 재촉하는 등 온집안이 명절분위기에 넘쳤다. 4살박이이던 큰딸 종수씨(50)가 한창 재롱을 부리고 작은딸 옥이씨(46)가 아직 아내의 뱃속에 있을때 정씨는 탄광부로 사할린에 끌려갔다. 혼인한지 7년만이었다. 그로부터 한 많은 세월이 흐른뒤 지난 3월13일 남편을 다시 만날때의 기억을 최할머니는 『쇠약해 보이는데다 보청기까지 낀 백발의 남편이었지만 다시보는 순간 지나간 세월의 고통이 모두 잊혀지더라』고 회상했다. 정할아버지는 사할린생활 1년만에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소련 당국에 의해 귀국이 금지돼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최할머니에게도 해방은 엄청난 기다림의 시작을 의미했다. 시아버지(지난80년 사망)와 시어머니(지난85년 사망)를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 세명의 뒷바라지를 해야하는 육체적 고통은 소식조차 알수 없는 남편을 끝없이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지난83년 정할아버지의 사망신고까지 했다. 장손이면서도 아들이 없는 정할아버지의 대를 잇기위해 희판씨의 아들 종목씨(34)를 아들로 입적시키기도 했다. 어머니 조씨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이미죽은」 큰아들이 살아돌아오게 해달라며 매일밤 정화수를 떠놓고 큰며느리 최할머니와 함께 빌었다. 사할린에 발이 묶인 정할아버지는 5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쓸쓸히 지내다 어느날 하루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 고향집에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는 배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치고 또 부쳤다. 지난86년 마침내 소련땅에서 부친 편지 한통이 고향집에 날아들었고 최할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펑펑 울고말았다. 그뒤로 어렵게 어렵게 서신연락이 이어졌고 지난 겨울 소련당국에서 초청장이 있는 한국인의 귀국을 허용하자 정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귀국신청을 낸끝에 이번 추석을 고향에서 맞게됐다.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여 요즘에도 하오5시도 못돼 해가 지는 장송마을 정할아버지 집은 추석날이 되면 두형제의 8자녀와 손자 등 30여명이 북적이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이날하오 부산에서 올 아들과 창원에서 올 작은딸을 아침부터기다리던 정할아버지는 『좋은날일수록 더욱 죄스럽다』면서 낫을 들고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제사상도 못차리게 됐어요”/수해로 시름에 젖은 고양 최웅렬씨/물빠진 집 허물어져 학교강당서 생활/“노부모ㆍ자녀 추석선물은 꿈도 못꿔요” 경기도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 수재민 최웅렬씨(43)의 일곱가족에게는 올 추석처럼 괴로운 명절이 없다. 65년만의 대홍수로 한강둑이 무너지면서 보금자리인 집은 물론 삶의 터전인 논밭마저 모두 물에 잠긴 빈털털이가 돼 명절을 바로 쇨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노릇은 커녕 자식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가족들을 바라볼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때엔 풍성한 수확과 함께 노부모 최돌성(69)ㆍ박필순씨(65)에게는 속옷을 사드리고 어린아들 은철군(15ㆍ능곡중 2년)과 딸 은숙양(10ㆍ능곡국교 4년)에게도 예쁜 추석빔을 마련해주는 기쁨에 넘쳤었다. 딸 은숙양도 이같은 어른들의 아픔을 벌써 알아챘는지 추석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않고 오히려 가족들의 시름을 달래주려는 듯 재롱을 떨다가는 혼자 풀이 죽곤한다. 남들은 닷새씩이나 되는 추석연휴로 고향을 찾거나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등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지만 최씨의 가족들은 오히려 「이산가족」 신세이기까지 하다. 최씨와 동생 웅석씨(35)는 곧 닥쳐올 겨울동안 지낼 비닐하우스를 짓느라 마을앞 둑기슭에 2인용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이곳에서 3㎞쯤 떨어진 능곡국민학교의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새우잠을 자며 밤을 보내고 있다. 물에 잠겼던 집은 기둥이 뽑혀져나가고 벽도 헐어버려 도저히 살수가 없게 돼버린 때문이다. 부인 김정희씨(41)만 낮이면 집에 돌아와 남편 최씨의 일을 돕고 밤에는 노부모와 어린 남매들을 돌보기 위해 대피소로 돌아가고 있을 뿐 일곱식구가 함께 모인지는 벌써 보름이 지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지내고 싶지만 학교의 대피소가 좁은데다 텐트속에 놔둔 쌀 20㎏짜리 2부대,조그만 장롱 1개,밥솥 1개,그릇 3∼4개 등 남아있는 가재도구라도 지켜야 하기에 이같은 이산가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동생과 함께 자기 논 5마지기와 남의 논 18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지어왔다. 비록 지난해 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풍년인 셈이어서 한마지기에 8∼9가마는 능히 수확해내 1천2백만원의 수입을 올릴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었다. 이 돈으로 농촌출신이라는 이유로 이태껏 결혼을 못한 노총각인 동생 웅석씨를 올해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결혼시키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이웃 벽제에서 5대째 농사만 지어오다 27년전 이곳으로 옮겨 정착한 최씨로서는 이같은 소박한 꿈들이 모두 깨어진 마당에 가슴이 저며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이 일산신도시에 편입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더더욱 불안하다. 좌절을 이기고 내년에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그는 농사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토박이 농부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벽제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뵙고 선산의 묘소에 벌초도 해왔으나 올해는 그마저 못하게 됐다』는 최씨는 『조상님들도 후손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 외언내언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에는 호칭이상의 의미가 있다.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싸고 때로는 싸움도 벌어진다. ◆가령 「배비장전」에서의 애랑과 정비장을 보자. 이별하는 마당에서 갖은 아양으로 정비장을 우려먹는 애랑. 이빨까지 빼어 바칠 정도 아니던가. 처음에는 그 호칭이 「나으리」이다. 그 다음에는 「여보 나으리」. 그 다음에는 「여보 당신」이 된다. 「수호전」속의 요부 반금련도 그렇다. 호랑이 때려잡은 시동생 무송을 유혹하려면서 술자리를 마련,처음에는 법도대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여보 당신」해버린다. 호칭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우리와 중국의 경우를 보자. 지금의 중국이라는 표현은 몇해전까지의 중공을 가르킨다.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을 때는 상당부분 적의와 격하가 있었다. 그랬기에 가까워지면서 중국이라 부른다. 상대적으로 자유중국은 격하되어 버렸고. 대만정부라고들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전의 일본 신문을 보자니까일부 층에서 중국을 「지나」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강영선이란 화교가 멸칭이라며 울화를 터뜨리고 있었다. ◆이제 「강수석대표선생」과 「연총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강총리는 꼬박꼬박 연총리라 부르는데 「연수석대표선생」은 꼬박꼬박 강수석대표 혹은 강선생이라 부른다. 「두개의 조선」이 아니니까 「두개의 총리」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인 듯하다. 말하자면 이쪽의 정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호칭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속의 어떤 단체를 이끄는 「수석대표선생」을 대한다는 의도적 정치색을 짙게 풍긴다. 대단히 불쾌하게 하는 대목이다. ◆「연수석대표선생」의 기조연설을 들으면서 「남조선인민」들이 처음에는 갸우뚱했다가 나중에 웃어버린 일­. 「반괄호」 「쌍괄호」 「삼각」따위 문장부호까지 읽는 것 때문이었다. 융통성 없고 틀에 박힌 남행길이었음은 그것 하나로도 드러난다. 다음에 만나서도 또 「강수석대표선생」이라 부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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