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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 화두 경제민주화] “노사관계 악화 경쟁력 위축 우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경제민주화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통합민주당뿐 아니라 박 전 위원장도 핵심 과제로 경제민주화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경제민주화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자칫 재벌 개혁과 동일시되면 기업 경쟁력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경제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경제민주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경연은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유관 기관으로 사실상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다. ●“인기영합 정치행보 지양해야” 최병일 한경연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경제민주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그러나 “일부 언론이 한경연과 재계가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오보를 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그대로 인용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1차 토론회에서 나온 ‘헌법 119조 2항은 해석상 혼란만 가중시키기 때문에 삭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대해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김종인 전 의원이 “전경련은 자숙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맞대응을 한 셈이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정치권에 날을 세웠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은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으려는 욕심에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인기영합적 행보를 지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재계 “구체안 나오면 입장 표명할 것” 재계에서는 아직까지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근혜 전 위원장의 ‘스탠스’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재계 역시 헌법적 가치로서의 경제민주화를 높게 평가한다.”면서 “박 전 위원장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더욱 적합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만들고 있는 만큼 구체안이 나오면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민주 대선주자들 “내가 박근혜 이길 적임자”… 더 빨라진 발걸음

    민주 대선주자들 “내가 박근혜 이길 적임자”… 더 빨라진 발걸음

    문재인·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 그리고 정세균·김영환·조경태 의원 등 민주통합당 대선주자들은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각각 “내가 박근혜에 맞설 적임자”라며 본격적인 후보 따내기 경쟁에 들어갔다. 주자들은 우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행보가 오는 8월 25일 시작돼 9월 23일 끝날 당내 경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부 주자 측은 “안 원장이 이달 말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9월쯤 대선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2단계 정치 참여론에 주목하며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기류다. 지난 6일 리얼미터 등 각종 대선주자 다자간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안 원장이 야권 주자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 안 원장이 15.0%로, 15.8%의 문재인 고문에게 뒤진 것이 예외일 뿐이다. 당시 조사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은 43.3%로 여야 주자 중 부동의 1위였다.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는 3, 4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김 전 지사가 8일 대선출마를 선언, 출마선언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김 전 지사는 지난 2일과 지난달 14일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만 손 고문을 앞섰을 뿐이다. 안 원장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연히 민주당 경선이 끝날 경우 안 원장과의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안 원장이 지지율 추이를 보며 민주당 경선 전후 민주당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래서 안 원장과 파트너십 확보 경쟁도 예상된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이날 비전 제시 경쟁을 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계보의 당내 모임 민주평화국민연대 초청 간담회에서 “저는 대통령이 되면 5년 내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며 부패 척결 의지를 천명했다. 특권, 반칙, 부패를 청산하는 ‘문재인의 역사’를 반드시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문 고문은 “지난 5년 새누리당 집권세력은 특권, 반칙, 부패의 총체적 집합체였다.”고 박근혜 전 위원장을 겨낭한 뒤 “새누리당 집권세력이 이러한 참담한 5년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고 있다. 당 이름 바꾸고 후보 바꿔서 심판을 피해가려는 또 다른 반칙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자신하면서 “다만 전제가 있다. 김대중 세력, 노무현 세력, 김근태 세력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이날 “개발독재시대의 시혜적 복지가 아닌 국민기본권으로서의 복지를 실현해 나가겠다.”며 청년, 보육, 노인, 주거 등 분야별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한국사회복지회관 회의실에서 개최한 ‘저녁이 있는 삶’ 3차 정책발표회를 통해 “복지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고 저녁이 있는 삶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손 고문은 복지분야 대표 정책으로 부모와 정부가 함께 저축해 청년들에게 목돈을 안겨주는 청춘연금과 ‘맘(MOM) 편한 세상’ 보육정책, 그리고 어르신 주치의 제도 도입과 공정한 전·월세 제도 등을 내놓았다. 청춘연금은 부모와 정부가 함께 저축해 성인이 될 때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금이다. 손 고문은 다음 주 교육을 주제로 4차 공약 발표회를 한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이날 남북분단의 상징지역인 경기도 파주 임진각과 도라산역을 찾았다. 지난 8일 출마 선언 뒤부터 시작한 희망대장정의 일환이다. 그는 이어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과 북이 협력해 북방경제시대를 열어야 하고, 남북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구상도 밝혔다. 김 전 지사는 조만간 유류비·통신비·주거비·교육비·의료비 절감을 핵심으로 하는 5대 생활물가 안정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행보를 한다. 또 학비걱정 없는 나라, 사회적 자원과 일자리 창출 연계, 노후 보장, 새로운 분권 시대, 한반도 경제공동체 등을 뼈대로 하는 7대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들도 발표한다. 이춘규 선임기자·이현정기자 taein@seoul.co.kr
  • 김두관 주요 정책공약

    김두관 주요 정책공약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8일 대선출마를 공식화하며 ‘평등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웠다. 김 전 지사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2012년의 시대정신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해 평등국가를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논어의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백성들은 가난한 것에 노하기보다는 불공정에 화낸다)이라는 구절과도 맥이 닿아 있다. 김 전 지사는 ‘평등’을 근간으로 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중요 의제로 설정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매월 실질 생계비를 50만원씩 줄이겠다고 밝힌 뒤 음성과 문자 무료화 등 통신비 절감, 정유사 원가검증제도 및 주택수당 도입,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정했다. 이 외에도 지방의 국공립대학부터 반값 등록금 실현, 직업교육형 고등교육 전면 무상화, 사회균형선발 30%까지 의무화, 공공부문의 채용에 지역인재 할당제 도입을 공약했다. 노인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기초노령연금 임기 내 2배 인상, 틀니 건강보험에서 전액 지원을 내걸었다. 육아 문제에 대해서는 급여를 통상임금의 40%에서 50%로 확대, 아빠들의 육아휴직 실질화, 직장보육시설을 300인 이하인 경우에도 설치하도록 했다. 김 전 지사는 현재 8대2인 중앙과 지방의 재정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6대4로 개선함으로써 지방분권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경제 공동체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는 제2, 제3의 개성공단 설립, 남과 북의 지하자원 공동개발, 취임 원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남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평등 실현으로 경제·국가운영 근본 바꿔야”

    “평등 실현으로 경제·국가운영 근본 바꿔야”

    “2012년 대통령 선거는 ‘국민 아래 김두관’과 ‘국민 위의 박근혜’의 대결이다.” 민주통합당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8일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정조준했다. 1988년 경남 남해 이장, 1995년 남해 군수로 정계에 본격 입문한 지 17년 만에 대선 무대의 도전자가 되는 드라마틱한 인생 주인공이 됐다. 김 전 지사는 이날 평등을 국정 키워드로 내세워 “올해 시대정신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해 평등국가를 여는 것”이라며 “평등국가의 실현을 통해 경제 체질과 국가운영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출마 연설에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21차례, ‘서민’이 14차례, ‘재벌’이 10차례 등장했다. 대선 슬로건 역시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를 향하여’를 제시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평등이 기본 원리로 작동하는 사회”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추동하는 힘은 평등과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12월 대선 구도에 대해 “대한민국을 크게 바꾸자는 세력과 이대로 좋다는 세력 간의 대결이며, 재벌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세력과 재벌의 부당한 횡포를 막아내야 한다는 세력 간의 대결”로 규정하며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해 대한민국이 특권·재벌공화국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전 지사는 출정식에서 대규모 지지세를 과시했다. 원혜영, 김재윤, 안민석, 김영록, 문병호 의원 등 의원 멘토단 7명과 천정배 전 의원 등 원외 15명, 생활정치포럼·자치분권연대 등 외곽 조직 및 팬클럽인 ‘피어라 들꽃’ 인사와 지역 주민 등 6000여명이 ‘김두관’을 연호했다. 그는 출마 선언 후 곧바로 22일까지 보름 동안 전국을 도는 ‘김두관의 시민대장정’에 올랐다. 그의 삶은 좌절과 패배의 가시밭길이었다. 마늘 농사를 짓는 빈농의 아들로 남해종합고를 다니다 1977년 국민대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고는 2년 뒤에 경북전문대에 입학했다. 25세 때인 1986년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간사로 활동하다 직선제 개헌투쟁 청주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농민운동가로 30세에 마을 이장이 된 후 최연소인 36세로 남해 군수에 당선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참여정부 첫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된 지 7개월 만에 한총련의 미군부대 기습시위 사건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3·17·18대 총선에서 3전 전패했고 2002년, 2006년 경남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뒤 2010년 6월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로 경남지사가 됐다. 6전 5패의 선거 전적은 거꾸로 그를 ‘오뚝이’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정계에서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 전 지사는 당내에서는 탈친노(친노무현) 행보로 ‘친노 적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대조적인 발걸음을 하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출사표를 던지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나는 친노에서 육두품이고 친노 그룹의 지분은 1%에 불과하다.”고 말했었다. 자신의 자서전 ‘아래에서부터’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주군과 참모의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라고 기술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안 원장이 50%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한 민주당 주요 후보들의 지지가 오르지 않을 것이며 어떤 형태로든 (안 원장이) 정리되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1987년 체제 출범 후 25년이 지난 만큼 개헌이 필요하다.”며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를 개혁하기 위해 대선에서 승리하면 개헌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해남 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 민주, 재벌개혁·부자증세 ‘칼’ 뽑다

    야권이 대선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다. 민주통합당은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종걸 최고위원과 유승희 의원을 공동대표로 하는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을 가졌다. 포럼에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심상정·노회찬·박원석 의원도 참석해 범야권 대선 공약 정책임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손학규 상임고문도 참석해 힘을 실었다. 행사에는 20여명의 의원과 각계 인사 등 100여명이 자리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이노근 의원이 참석했다. 포럼에 가입한 의원 수는 34명이다. 경제민주화포럼은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22개 단체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은 “군부 독재를 몰아내니 재벌독재가 웬 말이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다.”면서 “경제민주화 실현을 대선 공약으로 만들어 다음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을 지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란 특강을 통해 “‘자연산’ 경제민주화와 ‘성형’ 경제민주화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그 사람의 삶과 철학, 정치적 행위와 미래 비전에 일관되게 경제민주화가 녹아 있는 게 ‘자연산’이고,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민심을 사기 위해 갖다 붙인 건 ‘성형’ 경제민주화”라며 새누리당을 겨냥했다. 유 교수는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위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을 영입한 데 대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일관된 입장을 보여 준 김 전 위원에게 새누리당이 자리를 내준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민주당이 왜 경제민주화를 선점하지 못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두 대선 주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문 고문은 “재벌에 무소불위의 시장권력을 주는 ‘줄·푸·세’ 공약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적으로, 지금도 ‘줄푸세’를 고수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줄푸세를 내세웠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판했다. 손 고문은 “경제민주화는 시대적인 흐름이며 대기업이 골목까지 파고들어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하면 안 된다.”면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소득 상위 1% 과세를 강화하는 ‘한국형 버핏세’인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38%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3억원에서 1억 5000만원 초과로 확대해 기존 상위 0.16%(3만 1000명)에 불과했던 과세 대상자를 0.73%(13만 9000명)로 늘리는 법안이다. 이 의원은 “사회양극화 해소와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원래 취지를 살려 1% 부자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면서 “제대로 된 부자증세를 통해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법안이 통과되면 세수가 6359억원에서 1조 150억원으로 두 배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새누리 ‘경제민주화’ 대선공약 예고

    새누리당이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공약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선 과정에서 미리 공약을 기획하는 기구가 꾸려지는 것은 처음이다. 특히 당내 ‘경제통’ 의원들이 주로 기획단에 참여할 전망이어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실천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4일 첫 회의를 갖고 공식 활동을 시작할 대선공약기획단은 대선을 치르기 위한 시대정신 등 기본적인 정책 어젠다를 설정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진영 정책위의장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18대 대선 정책의 큰 틀을 정리하고 아울러 대선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 및 분야별 대선 정책이슈 개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면서 “정책이슈 개발을 마친 뒤 후속조치로 2012년 대선공약개발단을 즉각적으로 발동해 세부 대선 공약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획단은 진 정책위의장이 단장을 맡아 총괄하고 재선의 유일호 의원이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또 초선의 길정우, 김현숙, 류성걸, 민현주, 이종훈, 전하진 의원이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 이들 대부분이 경제분야 전문가들이어서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무엇보다 경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경제성장, 재정뿐 아니라 사회·노동분야 전문가들이 두루 포진해 있어 경제민주화 실현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유 의원과 김 의원은 모두 한국조세연구원 출신으로 재정정책 전문이다. 유 의원은 조세연구원장을 지냈고 김 의원은 배지를 달기 전까지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 연구활동을 이어 왔다. 류 의원은 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2차관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출신인 이 의원은 특히 노동 분야 전문가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싱크탱크격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도 교육·노동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박 전 위원장의 자문역할을 했다.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였던 민 의원은 특히 여성의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적 시각을 가져 보육, 교육 문제까지 폭넓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문학·무용·연극… 이 시대 원로와 ‘행복한 만남’

    문학·무용·연극… 이 시대 원로와 ‘행복한 만남’

    무용으로 말하자면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몸으로 품고, 문학으로 보자면 시대의 사상과 고민을 글로 풀어낸 사람들, 바로 원로라 불리는 이들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원로를 다양한 양식으로 만나는 자리가 준비돼 있다. 한국작가회의와 다음세대재단은 6일부터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소리아카이브 기획특집 ‘내 문학의 기원’ 강연을 연다. ‘우리시대 작가들이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삶과 문학이야기’를 주제로, 대표 원로작가 5명이 연사로 참여해 대표 작품을 낭독하고 후배 작가와 좌담 등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다음세대재단이 운영하는 소리아카이브는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오디오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브(기록창고)로, 이번 기획은 작가의 생생한 육성으로 시대의 역사와 가치를 담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했다. 민영(78) 시인을 시작으로, 소설가 이호철(80)과 현기영(71), 신경림(76) 시인, 박범신(66) 소설가가 차례로 강단에 선다. 강연 내용은 소리아카이브에서 오디오 콘텐츠로 제공할 예정이다. 강연 참가는 소리아카이브 사이트(http://soriarchive.net)에서 신청할 수 있다. 무료. 정동극장은 한국의 근현대 예술사를 이끈 거장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거장의 정동나들이’를 7월 한달간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한다. 올해는 배우이자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로 활동한 최현(1929~2002)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최현 춤의 비상’을 주제로 잡았다. 최현은 마산고교에 재학하던 1951년 신경균 감독의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에 출연한 뒤 10여년간 영화 12편에 등장하고, 영화 ‘시집가는 날’의 신랑 미언 역으로 주가를 높였다.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뒤 1955년 최현무용연구소를 열어 김천흥, 한영숙, 김진옥, 장재봉에게 전통춤을 가르쳤다. 춤 100여편을 안무하고, 30여년간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제자를 양성했다. “최현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이 계산된 극장예술로 한국무용의 품격을 높이려는 연마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고 김영태 무용평론가)고 할 정도로 이 시대 춤의 바탕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 최현의 춤 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무료(사전예약). (02)751-1500. 연극에서도 원로의 시대정신을 엿보는 공연이 준비돼 있다. 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전하의 봄’이다. 신명순(70) 작가가 1962년에 발표한 ‘전하’를 젊은 작가 이해성이 현재의 관점에서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 ‘전하’는 세조와 신숙주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연습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세조와 사육신의 모습, 권력 찬탈의 역사적 사실과 역사 속 인물들의 내면, 이상과 현실의 갈등과 고뇌 등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극중극 형식의 작품이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김승철 연출은 50년이 넘도록 여전히 유효한 원작의 주제의식을,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로 풀어냈다. 3만원. 070-7869-2089.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선택! 역사를 갈랐다] (18)조선 정조의 두 재상 김종수·채제공 ‘살벌한 대립’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으로는 단연 정조가 으뜸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구축한 왕권을 이어받은 데 더해, 스스로도 끝없이 학문을 닦아 군사(君師)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또한 당시 조선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해결책을 강구했다. 정조 때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권을 상당 부분 폐지해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한 신해통공(辛亥通共·1791)은 미래지향적인 제도의 변화라는 점에서 역사전문용어로서 ‘개혁’으로 부를 만하다. 서얼과 노비를 대상으로 세습신분제의 완화를 시도한 점이나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한 점도,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지만 조선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쟁으로 갈래갈래 찢긴 정치지형을 국왕을 중심으로 대승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탕평책도 평가할 수 있다. 정조를 보좌한 대표적인 원로급 인물로는 김종수(1728~1799)와 채제공(1720~1799)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최고의 벼슬인 재상의 반열에 올라 정책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정조의 신임이 남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거의 사사건건 대립했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탕평책에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상대방을 제거하지 못해 안달했다. 김종수가 노론집안인 데 비해 채제공은 남인이었다. 또한 김종수가 사도세자를 죄인으로 간주한 벽파의 거두인 데 비해,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무고를 주장한 시파의 거두였다. 그런데도 이 둘이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정조가 즉위하기 전에 맺은 관계 덕분이었다. ●경제개혁·천주교 반대… 수구적 재상 김종수 먼저, 김종수는 왕세손의 학문을 담당한 시강원에 근무하면서 정조의 스승이라는 각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정조가 김종수를 크게 신임한 이유가 이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종수가 정조에게 설파한 군주론이 정조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통 주자학 신봉자인 김종수는 군주는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군주나 스승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둘을 겸함으로써 이른바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한 정조가 품었던 군주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면 김종수는 정조가 진정한 군사가 되도록 성심으로 돕고 그의 탕평책을 적극 지지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철저한 당론자(黨論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노론의 강경론자로서 소론과 남인을 역적이자 소인배의 무리로 간주해 공존하기조차 싫어했다. 그는 군자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나, 그에게 군자는 오직 노론뿐이었다. 따라서 그의 군자정치론은 사실상 노론의 전제를 뜻했다. 말로는 군사를 운운했으나, 그는 정조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탕평책을 불편해했다. 오히려 정파의 보스가 지방에 앉아 중앙의 정치에 대해 훈수하는 산림정치를 지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신해통공과 같은 경제개혁에도 극력 반대했으며, 서학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강경일변도였고, 신분제의 완화에도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정조의 조정에 출사한 이유는 권력욕 때문이었다. 어떤 변화에 대해 반대한다면 자기가 고수하려는 것들에 대한 분명한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김종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입으로는 군사와 군자를 말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노론의 권력 독점에 있었다. 국왕의 총애를 받아 중책을 담당한 일국의 재상으로서 국가의 현안이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었다. 보수란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절박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해 서서히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종수는 보수로서의 정치철학조차 갖고 있지 않은 수구였을 뿐이다. 혹자는 김종수를 보수파로 평가하지만, 솔직히 자격 미달의 보수였다. ●신분제 완화에 우호적… 정조의 돌격대장, 채제공 채제공이 정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사도세자를 극구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의 정치철학과 국가 현안에 대한 해결책이 정조와 매우 비슷한 덕분에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정통주자학에서 벗어나, 국왕의 절대권을 강조하면서 그 바탕으로서 충효를 강조했다. 이런 군주론은 군주의 특성을 최소화해 사대부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낮추려던 주자학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히려 천자로서 군주의 권력을 절대시한 동중서(董仲舒)의 군주론에 가까웠다. 사대부 문벌을 타파하고 왕의 권위를 높이려던 정조가 이런 채제공을 홀대할 리 없었다. 정책 차원에서도 채제공은 늘 정조의 편에 섰다. 군주를 중심으로 한 탕평책에 적극 동조한 것이나, 신해통공을 적극 추진한 것이나, 주자학과 충돌을 빚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일부 포용하려 한 점이나, 신분 차별의 완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다 그런 예이다. 특히 조선사회에서 거의 진리처럼 굳어져 있던 ‘왕안석=소인’이라는 인식에 맹종하기를 거부하고 왕안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서도 채제공과 정조는 생각이 비슷했다. 사실, 정조 집권 후반기에 추진한 몇몇 정책에서 정조의 오른팔로서 돌격대장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 바로 채제공이었다. 그렇다면 채제공은 진심으로 정조의 탕평책을 지지했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채제공이 재상이 된 후에 가장 먼저 제기한 문제가 벽파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사도세자를 죄인이라 한 벽파에 대해 공격 나팔을 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죄를 입어 부왕에게 ‘처형’된 것이라면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기에 국왕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사도세자가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라면, 당시 사도세자를 공격한 자들은 모조리 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문제이기에, 정조조차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덮고 벽파와 시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는 탕평책을 폈던 것이다. 정조를 보좌하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개혁’을 추진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에, 채제공이 온건파나 중도파까지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 버릴 사도세자 문제를 굳이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정조의 왕권을 보다 확실히 하고, 그럼으로써 정국을 주도해 개혁을 추진할 발판을 만들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채제공을 전격적으로 재상에 임명하면서 정조는 그 등용 이유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설명했는데, 채제공이 그것을 벽파세력에 대한 공격신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정조가 끝내 중립을 지킨 점을 고려할 때, 정조가 의도한 ‘이열치열’이 그런 노골적인 공격이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김종수와 마찬가지로 채제공 또한 벽파와는 한 조정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벽파를 역적으로 몰아붙였으며, 김종수 또한 채제공을 역적으로 불렀다. ●정조의 김종수·채제공 등용은 탕평책?이열치열? 이렇듯 태생적으로 물과 기름 관계인 노론과 남인 출신인 김종수와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는 입장에서도 철천지원수 관계인 벽파와 시파에 속했다. 그 계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그 둘은 그런 정치계보에 충실했다. 그렇다는 것은 김종수와 채제공 모두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견원지간인 두 사람을 재상으로 쓴 정조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인사정책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탕평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고, 그 둘의 적당한 대립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그 또한 다른 왕들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은 많으나 과단성이 부족했던 정조 자신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주자학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김종수와 채제공은 모두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둘은 모두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열심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제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조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과거사에서 비롯된 사도세자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치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정조 말년에 그 둘 모두 권력을 잃었고, 같은 해 같은 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을 마감했다. 죽어서도 둘 사이의 엎치락뒤치락은 끝나지 않았다.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 벽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미 죽은 채제공은 관작 추탈이라는 욕을 봤다. 그런데 7년 후 정순왕후의 대리청정이 끝나고 노론 시파가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이미 죽은 김종수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역적으로 몰려 역시 수모를 당했다. ●권력잡은 노론, 채제공 관작추탈… 죽어서도 혈투 김종수와 채제공이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대립하더라도 그것을 ‘시대정신’에 기초한 정책대결로 승화시키면서 정조를 보필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실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점적 권력 그 자체였다. 김종수와 채제공이 보여준 사례는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김종수의 처신은 일국의 정치를 책임질 재상이 보일 처신은 전혀 아니었다.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로서 그는 초지일관 ‘당권파’의 이해에 따라 행동했다. 무엇인가 개혁을 추진한 점에서 채제공이 김종수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200년 이상 이전투구로 벌어진 당쟁구도에 보다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 “애민·민생·통합의 대통령 될 것”… 세종대왕 동상앞 출정식

    “애민·민생·통합의 대통령 될 것”… 세종대왕 동상앞 출정식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둘러싼 야권 대선주자 간 혈투가 시작됐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민주당 대선 주자 ‘빅3’ 가운데 처음으로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애민·민생·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 선언을 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오는 17일, 정세균 상임고문은 24일, 김영환 의원은 7월 5일, 김두관 경남지사는 7월 중순쯤 출마를 공식화할 예정이어서 이달 말부터 야권의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손 고문은 출마선언식에서 “오늘 나는 역사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나의 삶과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내 인생의 가장 원대한 꿈에 도전하고자 한다.”며 “사회통합, 남북통합, 정치통합으로 ‘3통의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어 “내 혈관 속에는 민주·민생·통합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나는 늘 시대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아왔다.”면서 자신이 ‘3통의 대한민국’을 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완전고용 국가 실현과 진보적 성장을 통한 공동체 시장경제, 보편적 복지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연설은 30여분간 이어졌다. 이낙연·김동철·김우남·신학용·양승조·오제세·조정식·이찬열·이춘석·최원식 의원과 김영춘·서종표·송민순·이성남·전혜숙·홍재형 전 의원 등 손학규계 전·현 의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또 한명숙 전 대표와 문희상·이미경·원혜영·유인태·신장용·유대운 의원과 천정배 전 의원도 나와 손 상임고문을 축하했다. 손 고문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국가의 상으로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세종대왕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을 챙기는 데서 국정을 시작하고, 만 백성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서 국정을 마무리한 성군이셨다.”며 자신과 세종대왕을 연결 짓기도 했다. 출마선언식에는 손 고문이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만난 각계의 ‘보통사람’ 100여명이 초청돼 자리를 함께했다. 손 고문이 도지사로 있었던 경기도의 취업준비생, 태풍 ‘매미’ 수해복구 지원사업에 나갔다가 만난 이장, 민생투어 때 배를 태워준 선주, 40년간 자신의 머리를 깎아준 이발사, 충남에서 돼지를 키우는 축산인 등이 이 자리의 두 번째 주인공이었다. 손 지사는 이들과 자신의 인연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민생 밀착형’ 대선주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손 고문은 당초 다음 달 초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었지만 “빨리 나서는 게 좋다.”는 측근들의 조언에 출마 선언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라이벌인 문 상임고문은 네티즌들과 함께 출마선언문을 만들고 있고, 김 경남지사의 지지자들은 잇달아 출마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나와라, 김두관”을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한때 10% 후반대의 지지율을 달리다 몇 달째 3% 안팎에 머물러 있는 손 고문으로서는 그만큼 행보를 서둘러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손 고문은 대선출마 선언에 이어 곧바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경기 화성의 농촌을 찾는 것으로 민생 행보를 시작했다. 손 고문은 화성시 송림동 일대의 갈라진 논바닥을 둘러보고 “안타깝다. 우리 농업은 경제수단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정신이기도 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손 고문은 “서울에서 물이 마르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이런 농촌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땅도 타고 농민들 마음도 탄다. 앞으로 이런 현장을 자주 찾아 소외된 지역에도 국민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조정래 작가 “내년 5월까지 폐관… ‘강대국中’ 다룬 소설 쓸 것”

    조정래 작가 “내년 5월까지 폐관… ‘강대국中’ 다룬 소설 쓸 것”

    “늘 길게 써서 눈이 나빠지게 했는데 이번에는 발품을 팔게 해서 미안합니다.” 소설가 조정래(69)는 7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복원한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보성여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련된 버스에 합류해 이렇게 엄살을 부렸다. 똑바로 서 있어도 앞으로 기우는 오른쪽 어깨와 단발 길이의 곱슬머리에 활짝 웃으면 하회 양반탈 같은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장편 대하소설 ‘태백산맥’ 10권(1983~1989), ‘아리랑’ 12권(1990~1995), ‘한강’ 10권(2007)을 써낸 그는 이번 행사 참여가 올해 마지막 외출이라고 선언했다. 내년 5월까지는 “폐관”(두문불출한다는 뜻)하고 대하소설을 쓰겠다는 것이다. 2007년 1월 ‘아리랑’ 100쇄 출판 기념 인터뷰에서 “대하소설은 ‘한강’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조정래는 “3권짜리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최종적인 자료 점검을 마쳤다.”면서 “오늘의 중국이 강성해지면 21세기에 어떤 의미가 있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내년 5월 이후엔 독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오늘이 나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라면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 돌아와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조정래는 구상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차단한다. 태백산맥 1부를 쓰던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소설 쓸 때는 아무도 만나면 안 된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방해만 되니까. 머릿속에서 마구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데 다른 잡스러운 것이 들어오면 불같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집사람(김초혜 시인)하고 같이 밥 먹는 것도 스트레스다. 소설을 쓸 때는 신들린 무당처럼 돼 버린다.”고 했다. 유일하게 격주로 놀러 오는 손자들만 만난다고 하면서 또 하회 양반탈 표정을 짓는다. 소설 3권을 위해 막바지 자료 정리를 하던 중 보성여관 개관식 참석을 요청받았단다. “절대로 못 내려갈 형편인데 임권택(76) 감독님이 오신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임 감독은 소설 태백산맥을 원작으로 1994년에 영화 태백산맥을 찍었다.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에 가면 당시 영화 태백산맥의 시나리오가 2편이나 있다. 이날 보성여관 개관식에 참석한 임 감독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원래는 1992년에 태백산맥 1, 2부로 두 편을 찍으려고 했는데 정부에서 제작사에 ‘좌우 이념을 아직 객관적으로 바라볼 상황이 아니지 않으냐,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못 찍게 하겠다’고 압력을 가해 영화 촬영도 1년여 늦추고 2편으로 찍으려던 계획도 1편으로 줄여 얼른얼른 찍었다.”고 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800만 부가 팔렸고 영화화도 됐지만 조정래는 그 책 탓에 이적 혐의를 받고 1994년 4월부터 2005년 5월까지 11년 2개월 동안 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당시 김제 만경평야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에 관한 소설 ‘아리랑’을 3분의2 정도 끝낸 상태였는데 정신적 고통으로 소설을 쓰기가 어려웠다. 특히 자료 수집을 위해 하와이,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을 가야 했는데 출국금지가 돼 있어서 나갈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일에 대해 조정래는 “소설가는 있었던 일, 있는 일, 있을 수 있는 일을 쓰는 사람이다. 특히 있었던 역사의 사실을 쓸 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시대정신 앞에 냉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그는 국회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북 논란’을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그는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한 짓이다. 분단의 시간이 60년이면 이념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색깔론으로 1950년대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사회로 돌아가거나 고착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북쪽에 비해 인구는 2배 많고 국민총생산은 32배 높다. 복합효과로 따지면 남한은 북한의 100배다. 종북 논쟁 등이 지속되면 정치적으로 북한과 적대적 의존관계를 만들어 가려는 정치권의 야비한 술수에 놀아나는 것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유시민, 심상정이 이야기하듯이 종북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공당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고방식이 잘못됐으면 고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보성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4)송시열과 윤휴

    [선택! 역사를 갈랐다] (14)송시열과 윤휴

    1653년(효종 4년) 여름, 논산의 황산서원에서는 이 지역의 유력한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작지만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 소동이 일었다. 송시열(1607~1689)이 친구 윤선거(1610~1669)에게 윤휴(1617~1680)와 절교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비슷한 연배였던 세 사람은 젊었을 적부터 서로 교유하고 있었고, 윤선거와 윤휴는 특히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송시열의 주장은 주희와는 다르게 ‘중용’을 해석한 윤휴는 주자학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도적과 같은 존재, 곧 사문난적(斯文賊)이므로 그를 조선 사회에서 고립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의 사귐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 시기 조선 사상계의 지형이 어떠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시열, 윤선거에게 윤휴와 절교 요구 송시열이 이때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치고 배격한 것은 조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상으로서 주자학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주자학을 비판하고 그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주자학을 벗어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 송시열의 판단이었다. 이 무렵, 조선에는 윤휴의 ‘중용’ 해석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송시열이 이 사실을 알고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윤선거로 하여금 그와 절교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윤휴의 의식은 송시열과는 달랐다. 주희의 학문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굳이 그의 사유체계를 묵수(墨守·제 의견이나 생각, 또는 옛날 습관 따위를 굳게 지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주희의 경전 이해를 그대로 따르려 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중용’ ‘대학’ ‘효경’을 중시하여 자신의 시각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했다. 송시열이 특히 문제로 삼았던 책이 ‘중용’이었지만 윤휴는 이 책과 함께 다른 경전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자기 생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들 세 책에 대한 그의 이해와 해석에는 당대 조선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하던 새로운 내용이 실려 있었다. 주희의 해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공자의 사상, 유교의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 경전을 해석하는 윤휴의 생각이었다. 이와 같이 주자학의 이해를 둘러싸고 송시열과 윤휴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조선에서 이전에도 특정 사상의 수용과 이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17세기 중·후반 두 사람 사이에 생겼던 대립만큼 격렬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주자학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 차이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갈등은 단순히 주자학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 조선 사회의 현실 문제를 인식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그 대립의 강도는 엄청났다. ●임진난·병자호란·당쟁 등 조선 무너뜨려 17세기 중·후반의 조선 사회는 앞서 50~60여년간 겪은 여러 사태로 말미암아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1592년 일본 침략과 긴 시간의 전쟁, 광해군대와 인조대 여러 정치세력 간의 갈등, 1636년 청나라 침략과 패배와 같은 사건은 기존 조선 사회의 질서를 바탕부터 무너뜨렸다. 특히 청나라의 침략, 곧 병자호란은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타였다. 전쟁을 거치며 조선은 인적·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고, 외부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국방체제, 군사적 대응 능력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더군다나, 종래 오랑캐로 여기던 청나라에 굴복하여 군신의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사대해야 했다. 종래 유지되던 조선과 명의 관계 또한 끊어졌다. 기막히기 그지없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효종과 같은 국왕을 비롯한 많은 수의 위정자들은 분노와 치욕에 떨며 청나라에 복수하고 원수를 갚고자 했다. 최선의 방도는 청나라와 전면전을 벌여 군사적으로 응징하는 일, 곧 ‘북벌’이었다. 이리하여 북벌은 이 시기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중국까지 진출하며 명나라를 멸망시킨 위력을 가진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벌의 속도, 방법, 내용을 둘러싸고 분분하게 의견 대립이 일었고, 그 중심에 송시열과 윤휴가 서 있었다. ●극단적 주자학 vs 부국강병책 송시열의 극단적 주자학 강조는 국정 운영의 전반적인 기조를 강력한 도덕주의 위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송시열은 군주와 신료 등 국정을 이끄는 주체들은 주자학의 가르침에 따라 도덕주의를 실천하며, 강상(綱常) 윤리를 강화하여 사회 기강을 잡을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현재 상황에서 직접 군사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긴 시간 동안 실력을 쌓아 오랑캐의 국가로부터 당한 모욕을 갚을 것을 강조하였다. 현실적으로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굴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오랑캐를 능가하는 절대의 정신력을 배양하고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송시열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한다면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 유린당하는 ‘문명’을 조선이 지켜내고 궁극에는 청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윤휴 역시 조선에서 회복하고 실현해야 할 것은 강상과 윤리를 강화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 국정 운영의 방향을 송시열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윤휴는 조선에 필요한 것은 빠른 속도로 부국강병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청나라와는 직접적인 군사 대결을 통해 그 원수를 갚을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그는 종래와는 달리 국가 권력이 토지와 백성을 빠짐없이 파악하고, 양반들의 특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며, 군대 편제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수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한다면, 종래 조선의 제도와 체제는 매우 크게 변하게 되어 있었다. 윤휴의 북벌 주장은 실질적인 정책과 연관하여 추진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휴의 독자적인 경서 해석은 이러한 현실 대책을 밑받침하는 근거를 경전을 통해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입으로만 외친 북벌, 사대부가 지지 송시열과 윤휴의 생각은 북벌을 서로 강조하는 점에서는 외형상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방식에서 양자는 서로 달랐다. 송시열의 북벌 주장은 당장의 행동보다는 먼 미래의 결정타를 예비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윤휴의 움직임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행동주의적이었다. 송시열의 방법은 사상적으로는 매우 강경하되 실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의 변화를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윤휴의 방식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이끌어내며 기존 질서를 크게 뒤흔들 가능성이 컸다. 군사적 행동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생각은 강력한 국가권력에 기초하여 정치·사회 운영을 도모한다는 점을 필연적으로 드러내었다. 이처럼 송시열과 윤휴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두 사람이 주자학을 강조하고 또 주자와는 다른 해석을 하려는 데는 그만한 정치적 혹은 현실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학문적, 정치적 방향 설정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송시열과 윤휴의 선택을 좌우하게 한 요소는 일단 군사 강국 청과 군사 대결을 벌일 것인가, 그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판단이었다. 송시열은 사상적·문화적 방면으로의 체제 강화를 선택했다. 조선은 중국의 문명을 이어받은 ‘소 중화’의 국가이며, 이를 강력하게 실현하는 것을 통해 오랑캐의 강국 청나라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 위에서였다. 반면 윤휴의 경우, 청의 군사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조선은 대적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빠른 속도로 부국강병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시열과 윤휴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조선의 정치 사상계는 송시열을 지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고 나서 세워진 남인정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윤휴는 숙종 6년 정국 주도권이 서인으로 넘어가자 유배의 벌을 받았고 결국에는 사약을 받았다. 윤휴의 방식을 지지하고 긍정한 것은 소수였다. 그의 유력한 지원자들, 혹은 그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도 그의 생각이 매우 위험하며 불원간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청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맞대결이 위험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정치 엘리트들은 알고 있었다. 윤휴의 선택과 판단은 정치적으로 보아 비토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숙종 6년, 윤휴를 처벌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조선에 매우 위험한 요소를 영원히 추방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송, 조선 후기 장악… 윤, 북학으로 수용 송시열의 승리, 윤휴의 패배는 조선의 정치사상계가 군사주의적 방향으로의 국정운영, 강력한 국가를 전망하는 흐름을 배제해 나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선의 정치사상계는 이후 우여 곡절을 겪지만, 송시열이 강조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자학의 영향력이 더 확대되었으며, 주자학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는 지속적으로 배격받았다. 그렇다고 하여 윤휴의 생각이 조선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8~19세기 서울·경기 지역의 남인들 가운데 일부는 윤휴의 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그들의 생각을 세우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경기도 지역의 천주교 수용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녹암 권철신과 같은 이는 윤휴의 ‘대학’ 이해를 적극적으로 추종했고, 다산 정약용 또한 윤휴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윤휴의 생각은 후학들의 새로운 사유 속에 스며들며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정호훈(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 [열린세상] 샌델 열풍/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샌델 열풍/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1만 4000여개의 좌석을 샌델 열풍으로 가득 메웠다. 대학에서 열린 강연의 규모로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샌델 교수는 2010년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정의라는 화두를 던졌다. 미국 교수이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더 유명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샌델 열풍이 식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샌델 교수를 통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목말라하는 가치를 함께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 주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올 4월에 출간된 신간의 제목이다. 신간의 부제인 ‘시장의 도덕적 한계’가 강연의 핵심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샌델 교수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시장사회(market society)의 원리로 과도하게 확산되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의료, 교육, 정책, 문화, 체육, 예술 그리고 가정과 일상생활에까지 시장가치가 비시장적 규범을 내몰고 훼손하는 것에 대하여 경종을 울린다. 특히 시장가치가 지나치게 확산됨으로써 인간사회가 추구해야 할 도덕과 건강한 시민성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금전적 인센티브와 같은 시장가치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회 제반 분야에서 단기간에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시장가치로 인하여 도덕과 시민성이 훼손되거나 왜곡된다면 결국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샌델 교수는 학생에게 책을 읽을 때 돈을 주는 경우를 예로 든다. 단기적으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생의 본분에 대한 인식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역의무 대신에 일정한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동일하다. 추가적으로 확보된 재원을 국방예산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병역의무라는 중요한 시민성이 훼손될 경우, 사회적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나친 포상금제도 확산으로 인한 시민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는 시장원리의 지나친 확산으로 인한 공공성, 시민성 훼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부는 공공부문의 개혁을 위하여 경쟁과 시장원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장원리가 여전히 유용한 수단 중 하나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자칫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도 아울러 경계해야 한다. 샌델 교수도 장밋빛 대안으로 인식되어 빠르게 확산되었던 미국의 교도소 민영화사업에 주목한다. 유럽의 철도 민영화사업이나 우정 민영화사업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경쟁을 통하여 기대했던 비용 절감이나 서비스 질 향상이 충분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KTX 민영화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주 부산에서도 강연 열풍이 있었다. 안철수 교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2004년도에 출간된 책 제목이다. 안 교수는 강연에서 정의, 복지, 평화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한 소통과 화합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안 교수 외에도 연말 대선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잠룡들은 샌델의 화두에 주목한다. 행복, 상생, 성장, 통일 등도 중요한 화두로 거론된다. 그들에게는 시대정신을 꿸 화두와 이를 구현할 청사진이 초미의 관심사다. 결국은 국민이 바라는 것을 시장과 정부 그리고 사회의 기능적 균형점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국민은 자신과 가치를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람에게 먼저 마음을 열지 모른다. 샌델 열풍이 부는 이유다. 막상 선거에서는 가치에 대한 공감만큼 이를 정책으로 실현해 낼 수 있는 현실적 정치력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안 교수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강연 열풍과 대선 열풍이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사설] 새누리 ‘흥행 성공’ 민주당 경선에서 배워라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당내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정몽준·이재오 의원 등 ‘비박(非朴) 주자’ 측은 어제 경선준비위 구성을 촉구했다. 이들이 완전국민경선제 채택을 겨냥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샅바 싸움’을 본격화한 형국이다. 우리는 완전국민경선제가 진선진미하다고 보진 않지만, 국민 참여 비율을 높이는 일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본다. 경선 룰 변경을 둘러싼 갈등은 대선 주자들의 서로 다른 셈법 탓이다. 박 전 위원장으로선 현재의 유리한 구도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심산일 게다. 반면 비박 주자들은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해야 박 전 위원장의 대세론을 흔들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정파 간 정략적 계산이 걸린 경선 룰 변경은 새누리당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당권을 장악한 박 전 위원장 측이 외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화된 현실에서 대세론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치명적 실패를 부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레이스에서 ‘이회창 대세론’에 취해 있다가 노무현 후보에게 역전당한 기억을 굳이 상기할 필요도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의 흥행몰이를 보라. 김한길·이해찬 후보 등의 상품성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각본과는 다른 치열한 경합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게 아닌가. 친박계가 대표와 원내내표·사무총장 등 당내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강창희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면 바야흐로 ‘친박 세상’이 도래할 참이다. 그런데도 현행 2대3대3대2(대의원:책임당원:일반 국민:여론조사)의 대선 후보 선출방식을 일점일획도 고치지 않으려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옹졸한 일이다. 정당정치가 불신받는 상황에서 당원 비율이 너무 높고, 왜곡 가능성이 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하는 것도 난센스다. 물론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도 상대 당 지지자의 역(逆)선택 교란이나 막대한 비용 등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제도의 장점을 취할 논의조차 봉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친박 진영이 경선준비위 구성에 응해 열린 자세로 경선 룰 개정 협의에 나서기를 바란다.
  • [서울광장] 희망이 보여야 한다/최용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희망이 보여야 한다/최용규 논설위원

    ‘섹시한’ 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안철수의 부산대 강연은 다소 싱거울 수 있다. 안 교수는 이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정의·평화라고 규정했다. 시대정신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시대과제라고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구애하는 쪽이나 비난하는 쪽이나 안 교수는 여전히 유력한 대권 주자다. 좋든 싫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임팩트는 다소 떨어진 것 같다. 안 교수가 시대과제로 규정한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권에 뜻을 둔 정치인치고 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박근혜·문재인·손학규가 지금 복지를 말하고 있다면,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를 부르짖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은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안철수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교수가 정의한 시대과제가 지금 우리 현실에 맞지 않거나 잘못 봤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승만 시절부터 쭉 들어왔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말하는 것과 변화를 이끌어낼 힘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건국 후 60여년이 지나도록 난다 긴다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 간명한 과제를 풀지 못했을까. 안 교수가 됐든 누가 됐든 우리 현대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명확하게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를 극복할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 오늘의 시대과제는 내일의 시대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다. 원수 대하듯 하는 동서(東西) 상쟁의 정치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상대가 잘되는 꼴을 죽어도 보지 못하는데 제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비전이라도 어떻게 뿌리를 내리겠는가. 이런 정치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그래서 새로운 정치구조를 창조하지 않고서는 복지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것들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사 정권을 잡는다 해도 성공한 정권이 될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성한 데가 없는 역대 정권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정책으로 다투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질곡의 굴레 속에서 안 교수가 믿음을 주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어떻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안교수가 제시한 시대과제는 집으로 비유하면 설계도와 같다. 어떤 집을 짓겠다는 것은 집에 대한 집 짓는 사람의 철학이다. 지난해 가을 상식과 비상식이란 잣대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집이 자신의 생각대로 될지, 즉 안철수식 정치의 요체가 실현될지 여부는 이제부터 본인 하기 나름이다. “정치는 싸움이고 나는 나이브하지 않다.”는 말이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증명된 바가 없지만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통의 방식도 이젠 바꿀 때가 됐다. 한때 신선해 보였던 강연정치도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실증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출마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떻게 지을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평가를 받아야 할 때가 됐다. 뜸도 적당히 들여야 한다. 너무 오래 두면 밥이 탄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젊은이, 은퇴를 앞둔 세대, 노인 또한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안 교수가 말하는 시대과제도 결국 불안을 제거하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것일 게다. 안정된 사회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선(善)이며, 이는 희망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다. 지금의 정치구조로는 사회적 합의는 요원하다. 정계구조의 재편이 필요한 까닭이다. 안 교수의 말대로 안 교수에 대한 지지는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답이 궁금하다. ykchoi@seoul.co.kr
  • 김두관, 서울서 특강 ‘여론살피기’

    김두관, 서울서 특강 ‘여론살피기’

    김두관 경남지사가 31일 오후 서울 용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2012년 시대정신과 정치적 리더십’을 주제로 공개강연을 하면서 대권 구상의 일단을 풀어놨다. 김 지사는 정의와 소통, 그리고 평등이 시대를 관통해야 할 정신이라고 제시했다. 서민과 통합, 경청, 혁신의 리더십도 강조했다. ●서민·통합·경청 리더십 강조 김 지사는 이날 산학연종합센터가 개설한 최고경영자 과정인 ‘산학정 정책과정’에서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대표, 고위공직자 등을 상대로 특강했다. 김 지사 측은 “매년 해 오던 특강으로, 지난해에는 ‘경남의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지만 대선의 해인 올해는 시대정신과 리더십 특강이라 정치문제도 언급했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것, 즉 정권을 창출하는 것보다 정권이 5년 동안 집권하면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권 잡기에만 급급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점이 대권고지임을 은근히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지사는 시대정신을 정의와 소통, 사회의 불균등 해소로 꼽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서민의 리더십, 연대와 동참의 리더십, 혁신의 리더십과 경청의 리더십을 꼽았다. 소통 부재 리더십 논란에 대한 답변으로 보인다. 오는 12일 저서 ‘아래로부터’ 출판 기념회를 갖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할 것으로 알려진 김 지사의 이날 서울 특강은 여론 살피기 성격도 있어 보인다. 김 지사는 이미 책 서문에서 “한국의 룰라(전 브라질 대통령)가 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권을 향한 강한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7월 중순 대선 출마 가능성 김 지사는 최근 상황이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가면서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통합당 대표 선출을 위한 순회경선에서 김 지사가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한길 후보가 태풍을 일으키며 이해찬 후보와 선두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김 지사의 대권후보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고 김두관 테마주들도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 지사는 7월 1일이면 지사 임기 중 절반이 끝나 지사직 중도 사퇴의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김 지사는 이런 일정들을 감안해 7월 중순 대선 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김 지사는 그 전에 민주도정협의회와 야권 지지단체 관계자들, 경남도민들에게 중도사퇴에 대한 양해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사설] ‘윤금순 결단’ 바로 국민이 바라는 진보다

    통합진보당 윤금순 비례대표 당선자가 한시적으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겠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모든 권한은 행사하지 않겠다고 어제 밝혔다. 비례대표 문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신의 사퇴를 보류한다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 일단 의원직은 유지하지만, 보좌관을 두지 않고 세비나 연금도 받지 않겠다는 특권 포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비대위로서는 비례대표 1번인 윤 당선자가 사퇴할 경우, 구당권파 후보가 의원직을 승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윤 당선자의 사퇴 여부에 따라 당의 진로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그의 사퇴는 그 자체로 중요 사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윤 당선자의 국회의원 기득권 포기 선언이라고 본다. 200개가 넘는 국회의원 특권 중에는 의원 본연의 업무 수행과는 본질적으로 상관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단 하루 국회의원을 해도 ‘월 120만원 종신연금’을 받는 데 대해 선뜻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 특권 포기 ‘결단’은 그동안 누구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좌파라고 해서 다 진보는 아니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일찍이 이렇게 지적했다. “1960년대 낡은 의식에 머물러 진보하지 않는 세력, 헌법적 가치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세계사의 흐름이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좌파 세력이 내건 ‘진보’는 ‘검은 백조’처럼 모순된 표현의 극치다.” 한사코 사퇴를 거부하는 이석기·김재연 당선자가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엄청난 부정경선을 치러놓고도 “어느 나라에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고 강변하는 이 당선자도 오늘부터 국회의원 신분이다.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라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펴는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걱정이 앞선다.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게 진보일진대 그 사전적인 뜻조차 모르는 그들은 이미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프리미엄’을 누리기 위해 진보를 참칭하는 ‘진보 위장세력’일 뿐이다. 이번 통진당 사태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통진당은 종북좌파 세력과 확실한 선을 긋기 바란다. 진보는 합리와 상식의 길을 가야 한다. 진보정치의 재구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안철수, 문재인 “공동정부” 발언 듣고 반응이...

    안철수, 문재인 “공동정부” 발언 듣고 반응이...

    문재인(왼쪽)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안철수 (오른쪽)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연합 공동정부 구성을 골자로 자신의 대권플랜 한자락을 제시, 파장이 일고 있다. 대권지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당원들을 무시했다는 ‘제2의 담합’ 논란까지 일고 있다. 문 고문은 1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원장과의 협력 방안에 대해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후보가 되고 정권을 장악하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연합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지난 1997년 대선에 앞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함께 이룬 DJP연합처럼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JP는 당시 수평적 정권 교체 이후 국무총리직을 맡아 국민의 정부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문 고문은 “앞으로 안 원장과의 단일화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텐데,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고문은 나아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제가 그런 시대정신 구현에 주역 역할을 하는 것이고, 국민들 평가가 그렇지 않다면 정권교체에 조연 역할을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혹은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조합까지도 각오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안 원장 측 한 인사는 “안 원장의 정치행보가 정해지지 않아 말씀드릴 게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문 고문의 개인적 생각일 뿐 안 원장과 교감을 나눈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사는 “문 고문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정치공학적인 접근만 하는 것 같다.”면서 “국민은 지금 문 고문이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찬반으로 엇갈렸다. 상당수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위협할 구상이라고 보면서, 실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너무 경솔하고 오만한 구상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일부는 “민주당 내에서 노력해 보지도 않고 안 원장에게 구걸하는 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담합에 문 고문이 관여했다는 논란에 이어 제2의 담합논란도 일 조짐이다. 당내 의견수렴도 없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를 지적하는 소리도 나왔고, 밀실 담합정치의 전형이란 소리도 있었다. 이춘규 선임기자·이범수기자 tae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지자체 협조 있었으면…”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지자체 협조 있었으면…”

    구한말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구국의 필봉을 휘둘렀던 영국인 배설이 8일로 서거 103주기를 맞는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당시 국내에서 발행 중이던 모든 신문 부수를 합친 부수보다 많은 발행 부수 1만 3000부를 자랑하던 당대 최고의 신문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비판한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한문과 영문 호외로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린 것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해 국민운동화한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선생은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을 펼치다 수감됐고, 옥고를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졌다. 그는 영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대한국인으로 죽었다. 선생의 뜻을 펼치는 배설기념사업회는 8일 서울 양화진 선생 묘역에서 103주년 추모기념식을 갖는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박유철 광복회장, 스콧 와이트먼 주한영국대사 등이 참석해 선생의 뜻을 기릴 예정이다. 7일 배설선생기념사업회 김재원(81) 회장을 만나 선생 사후 103년이 지난 오늘에 되새겨야 할 선생의 얼을 탐구해 봤다. →내일이면 서거 103주기를 맞는다. 배설 선생의 항일구국혼을 이 시대에 어떻게 승화시킬 생각인가. -100여년 전 선생이 생각하던 대한제국의 시대정신이 독립이었다면, 오늘의 시대정신은 대한민국이 선진 열강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이 같은 세계사적 비전을 가지고 국민의식을 한 단계 높이도록 역사문화정신 고취의 중심에 자리하는 사업회를 만들 생각이다. →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선생을 기리는 여러 가지 사업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새 사업 발굴과 기존 사업 추진에 대한 구상을 소개해달라. -창립 때부터 기념사업회를 이끌어 오던 고 진채호 초대회장에 이어 지난해 말 제2대 회장의 중책을 맡았지만 미진한 점이 많다. 기념관을 건립해 한국과 영국·일본 등지에 흩어진 선생 관련 자료와 기념품 등을 집대성하는 사업을 최우선으로 추진했지만, 아직 부지도 구하지 못한 상태이다. 선생이 묻힌 마포 양화진 묘역 일대나 면목동 용마산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관련기관과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또 대학생을 비롯한 각급 학교 학생들로 가칭 ‘배설봉사단’을 구성해 선생의 뜻을 우리 사회에 되새기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선생이 태어난 영국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영국 브리스틀대학 등과 정기적으로 친선우호 세미나를 개최하는 방법도 모색해 보겠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재원 마련과 관련 기관과의 협조가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하고 협의할 생각인가. -재원을 생각하면 머리가 띵하다. 회장직을 맡고 보니 사업회는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일단 사재를 털어 마포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지만, 사업회 유지비용과 추모식 행사자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 이번 추모식도 서울지방국가보훈청과 종교단체의 자금 지원으로 준비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기부금 모집 적격단체로 지정받아 앞으로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기부금은 어느 정도 모였나. -안타까운 일이다.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 푼도 모금하지 못했다. 대한독립운동사의 큰 스승인 선생을 기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쾌척할 독지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관련 기관의 협조가 있었으면 한다. 김 회장은 광주 태생으로 조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 창간멤버로 입사해 외신부 기자와 경영기획실 기획부장, 판매·광고국장으로 일했다. 일본경제신문 광고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매일경제 신문이사를 역임했다. 언론계 퇴직 이후 개인사업을 하다 진채호 초대회장과의 인연으로 2010년부터 부회장에 영입됐다. 지난해 말 사업회 성격상 언론인 출신이 적합하다는 이유로 회장에 추대됐다. 노주석기자 joo@seoul.co.kr
  • [Weekend inside] 270억원 작품 관리… 정부 미술은행 생긴다

    [Weekend inside] 270억원 작품 관리… 정부 미술은행 생긴다

    행정, 입법, 사법부에 흩어져 부실하게 관리돼온 각종 미술품들이 국가차원의 전문관리를 받게 된다. 오는 10월 현대미술관 소속인 미술은행을 확대, 개편한 정부 미술은행이 공식 출범한다. 기획재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 부처에 흩어져 있던 미술품의 작품성·보존 상태·가격을 심사해 올해 상반기까지 정부 미술품을 선정한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조달청이 정부 보유 미술품 관리 전산시스템(사이버갤러리)에서 추린 미술품 3390점을 다시 검토해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작품 3390점의 가격은 모두 270억여원으로 평가됐다. 2010년 말 총조사 결과 정부 소장 미술품은 외교통상부가 보유한 4445건(103억여원) 등 1만 6740건(554억여원)이지만, 기증품과 재외공관 미술품 등은 이번 정부 미술품 선정 심사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10월 물품관리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부처가 보유한 미술품은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물품’ 항목으로 단순 분류, 관리됐다. 그러다 보니 대전의 한 중학교 교장이 미술상과 짜고 그림을 구입한 것처럼 꾸며 학교운영비를 가로채는 등 미술품이 범죄의 재료가 되곤 했다. 고가의 미술품 관리가 비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정부 보유 미술품에는 김흥수 화백의 ‘유관순’이 6억원, 민광식 작가의 조각 ‘생명의 영속’이 4억 1000만원, 천경자 화백의 ‘공작과 여인’이 2억 6000만원 등 고가 작품이 즐비하다. 정부 미술품 선정 대상이 된 3390점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보유한 기관은 대법원(1035점·70억원)으로 교육과학기술부(486점·24억원), 문화체육관광부(398점·11억원), 지식경제부(357점·22억원), 대검찰청(356점·42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조달청 관계자는 “지방법원과 검찰청에 미술품이 많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대법원과 대검에 미술품이 많았다.”면서 “국립대를 관리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우정사업본부 등 산하기관 건물이 많은 지경부도 미술품을 많이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기관장 시절에 구매량이 급증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흥적으로 구매한 뒤 미술품을 기관장이나 임원 집무실에 배치해 대중과 격리시키기도 했다. 정부 미술품 선정이 마무리되면, 국가가 보유한 미술품이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부처별 칸막이 운영 탓에 미술품 전시와 활용이 미진하지만, 정부 미술품이 되면 정부 미술은행을 총괄하는 문화부로 관리가 일원화된다. 중앙관서의 장은 정부 미술은행으로부터 3년 단위로 무상임대해 정부 미술품을 사용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3년마다 관리실태 점검과 수복조치 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 미술은행은 또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과 함께 정부 미술품 합동전시, 문화 소외지역 기획전시, 해외전시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영국·프랑스·미국 등은 이미 정부 미술품 관리를 위한 전문기관을 두고 있다. 영국은 1898년 GAC를 설립해 정부 건물에 필요한 미술품 선정·구매·대여 업무를 전담시켰다. 프랑스 Fnac도 8만점의 정부 미술품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미국의 GSA는 지방청별로 미술품 관리자를 지정, 운영하고 있다. 하계훈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는 “국가 미술품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 시대정신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주는 산물”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국가 차원에서 보전할 작품과 전시용으로 활용할 작품을 선별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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