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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스승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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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들 나서 「좌경의 환상」 부숴야(학원폭력:하)

    ◎방관적 자세는 「체제부정」 돕는 꼴/입시부정의 재단비리 척결,빌미주지 말도록/공산권 연수등 「현장교육」 바람직 교육의 「3요소」는 학교·스승·학생이라 할 수 있다. 이 3자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교육이 영글고 학원의 안정을 되찾게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학원문제는 이를 중심으로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게 많은 교육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학원폭력이나 교권침해 등 우리 대학의 문제도 모두 여기에서 파생되고 있다. 교육정책의 부재,즉 정부의 안일한 학원대책이 오늘의 사태를 야기시켰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학원문제는 어디까지나 대학인 스스로가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5일 전국대학 총학장들이 긴급 간담회를 갖고 『학원의 안정 및 교권수호에 교수들이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이날 회의에서 총학장들이 지적한 대로 학원의 문제는 일부 과격학생들의 극렬성에 기인하는 것과 함께 재단의 비리,입시부조리,부정편·입학,교수임용과 관련해 얼키고 설킨 학내 비리가 빌미를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게 일반론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되는 그 어떤 빌미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총학장들이 『학교행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학교행정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전혀 관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한 모든 사항은 학교측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접한 교육부도 『학원 안에서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각종 불법폭력행위와 반민주적인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학원을 이념투쟁과 정치투쟁의 소굴로 만드는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더 이상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관대하게 대할 수 없다』면서 『단호히 대처해나가겠다』는 원칙론만 밝혔을 뿐이다. 운동권문제와 관련 총학장들은 운동권의 집결체라 할 수 있는 「전대협」에 대해 『이미 학생자치기구로서의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라고 분석하고 『재야와의 연계를 끊이지 않고서는 학원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해 이 단체의 해체를 강력히 건의하고 있다. 교수폭행·기물파괴·수업방해·총장실점거 등을 예사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학생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이들은 총학생회와 각종 서클·학보사 등을 거의 모두 장악하고 있으며 보직교수들마저 되도록이면 이들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학원의 실정이다. 기성세대는 모두 부패하고 타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이들을 순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전국 총학장들은 말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공산권 국가조차 구시대의 유물로 여기고 있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더 이상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89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공산권 국가 연수에 이들을 보내 상당한 이념교육의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학부모와 정치인을 비롯한 기성세대도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아낌없는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학교관계자들은 주문하고 있다. 최근 학원분쟁의 핵심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등록금 인상문제는 등록금책정이 대학자율에 맡겨진 뒤 걸핏하면 학생들의 인상반대투쟁을 부르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학관계자들은 『신입생들이 입학하기 전 4년 동안 계약을 맺는 「등록금예고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하고 있으며 교육부도 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정입학과 교수채용 등과 관련한 사학의 재단비리는 대부분 열악한 재정으로 빚어지고 있다. 전국 1백35개 대학총학장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와 관련,『일부 대학에서 학기초마다 악순환을 계속 불러 일으키고 있는 등록금인상 반대투쟁은 대학재정과 경영이 확고해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들이 안고 있는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각 대학은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학교발전위원회」 등을 구성해 동문들을 상대로 직접 모금에 나서거나 학교채를 발행해 기금을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사학에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대신 감사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사학의 부정입학사실 등을 알고서도 교육계에 미치는 파문 등을 우려해 형식적인 감사에 그치거나 덮어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학원폭력예방과 근절대책은 학교당국과 교수·학생 등 3자가 합심해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나라를 테러한 이 패륜/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공멸한다(사설)

    어처구니가 없다. 분노가 끓어오른다. 망연자실한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밀가루·달걀이 범벅된 얼굴은 오늘의 이 나라 일그러진 모습이다. 이것이 수출 10위권,국제 신인도 19위 나라의 자화상이란 말인가. 국무총리가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가 당했다. 어찌하여 나라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싶어 침통해지는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못된 버릇 조장한 결과 오냐 오냐 조동으로 키운 손자,할아비 수염을 뽑는다고 했다. 버릇을 제대로 못 가르친 앙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손자」들은 할아비의 수염만 뽑는 것이 아니다. 망건도 망가뜨리고 얼굴도 할퀸다. 그도 모자라 넘어뜨려서 올라탄다. 못되게 구는 버릇을 진작에 바로잡아놓지 못한 결과가 그것이다. 학장·총장실을 점거하고 스승의 머리를 깎고 멱살잡이하며 폭언을 했을 때,그때 단단히 혼을 냈어야 한다. 그렇건만 자기에게 떨어진 불똥이 아니라선지 유야무야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러면서 「일리」가 있는 양 옹호론을 펴는 부류도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만능방패인 「민주화」를 내세우는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은 그 못된 버릇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못된 버릇은 상습화하고 면역을 심어 나왔다. 그 잘못된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잘못된 죽음까지를 잘못된 죽음이라 가르치지 못했다. 입으로만 건성으로 그러지 말라면서 그들의 잘못된 죽음을 영웅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길의 선택을 미화하고 나섰다. 그들이 못된 어리광 부리는 「손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였다. 도대체 「민주화」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었던가. 인성이 마모되고 규범과 예절을 어겨도 괜찮은 것이었던가. 그렇게 해서 「쟁취」한 민주화로써 과연 무엇을 기대하려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른들은 지금도 「백병원」과 「명동성당」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수염 뽑히는 할아비들은 하나같이 어른 노릇 못한 점에 대해 자책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양식들은 많았고 그를 부추기는 잘못된 어른들의 행태 또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양심들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들을 다부지게 야단치는 일에만은 선뜻 앞서려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치는 흑백논리의 악의에 찬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질타할 줄 아는 어른으로 그런 점에서 최근의 김동길 교수나 김지하 시인,박홍 총장 등의 준절한 타이름과 꾸짖음은 모든 어른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그들의 질타에 대해 재야나 운동권은 「배신자」로 낙인 찍었지만 그것은 「민주화」를 내세우면서도 얼마나 비민주적인 생리를 지녔는가를 말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어떤 현실적 이익에 좌우되어 한 언행은 아니지 않았던가. 그같은 영혼의 소리를 「배신」으로 몰아붙이는 독선에 대한 질타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바로잡힌다. 그렇게 나무랄 줄 아는 「양식의 용기」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인식도 바로잡혀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권위주의 시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한 행사에까지도 조금만 과격하면 곧장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러나 공권력의 위축은 남용되고 오용되는 행사 못지않게 우려해야 할 대목이다. 선진 제국에서의 가혹하고 냉엄한 공권력 행사의 사례를 우리도 알고 있지 아니한가. 잘못된 버릇을 바로잡는 첨병인 공권력에 대해 그것이 신중하고 올바른 행사일 때 국민적인 뒷받침을 해야 마땅하다. 공권력과 대등하게 「대치」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녕 질서를 해치는 존재가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성회복에 지혜 모을 때 일언이폐지하여 한 나라의 재상이 학원 안에서 학생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한 일은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정 총리는 총리로서보다도 먼저 교육자적인 양심으로 못 다한 강의를 보충하기 위하여 예전에 하던 대로 대중교통수단으로 학교에 가서 강의를 했다. 이런 스승에게 제자들은 폭행으로 보답한 셈이다. 위아래도 없고 법도 없고 예절도 없고 우악스런 폭력만이 있는 사회라 함을 내외에 과시한 꼴이 되지 않았는가.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제아무리 잘 살게 되고,또 그들 과격학생들이 주장하는 「민주화사회」가 된다고 해도 우리의 심성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우리의 도덕률이 이렇게 와해되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불행해질 수밖에는 없다.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겸손을 잃고 나만 주장하면서 편을 가르고 내 뜻에 거슬리면 행패와 폭력으로 나온다 할 때 이 세상의 선의와 미덕이 어디에 발붙일 수 있다고 하겠는가. 이번의 정 총리에 대한 폭행사건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심각한 시각에서 출발하는 대응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타난 현실에의 대응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근원적인 병리가 무엇이며 어디에 연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통찰도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이와 유사한 혹은 그보다 더 흉악한 사단도 배제할 수 없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행복의 기준을 지나치게 물질 쪽으로 설정한 나머지 인성을 잃어온 데 대한 성찰을 하면서 그 회복운동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배우고 배우지 못하고 또는 가지고 가지지 못하고에 관계없이 오늘의 우리는 자족과 겸허를 잃고 욕망과 오만에 차 있다. 배타와 아집에 차 있다. 정 총리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읽는다.
  • 심성의 황폐화에 대한 성찰(사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코흘리개 2세들에게 친절하게 구는 어른을 경계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친절이라는 양의 가죽이 벗겨지면서 금방 늑대로 변하는 사례들을 경험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행위를 진솔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삭막하고 슬픈 일이다. 이같은 현안은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 가고 있는 심성의 황폐화에 기인한다.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버이의 가슴에 왕못을 박는 유괴­살인도 서슴치 않는 부류들이 늘어간다. 더구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태연해 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것은 심성이 정·부정의 기준을 잃은 채 산성화해 버렸음을 말해 준다. 사람들은 화약고라도 달고 다니는 양 즉발적이고 과격해졌다. 툭 하면 욕설이 나오고 멱살잡이 판을 벌이기 일쑤이다. 지그시 참고 견뎌보는 미덕을 잃었다. 그래서 택시기사와 승객이 싸우고 대학의 대자보에는 『○○○ 패죽이자』와 같은섬뜩한 글귀가 나붙기도 한다. 까딱하면 벌이는 정치인들의 난장판이나 극한대결도 그것이고 공중전화 오래 건다고 금방 칼로 찔러 죽여 버리는 사건도 그것이다. 위아래도 없고 예절도 없다. 그래서 용돈 안 준 아버지를 타살하고 스승의 머리도 깎는다. 그렇게 정은 메말라 가고 버릇은 못되게 되어간다. 나만 소중하고 내 목소리만 높이고들 있는 것이다. 명지대생 치사사건도 그와 같은 황폐화한 심성들이 저지른 일로 보아 틀림이 없다. 과격해진 심성들이 이성을 팽개친 채 화염병을 날리고 각목을 휘두른다. 이에 대응하는 전경들이라 해서 하나같이 군자일 수는 없다. 어느 순간 황폐화한 심성이 고개를 버쩍 든다. 그래서 결코 적일 수 없는 젊은이끼리 적의를 품는 공방전을 벌인 결과가 그것이다. 잇따르는 분신·투신자살도 이런 심성에서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격해진 단기가 앞뒤 못 헤아린 채 막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았으면 멱살잡이로까지 발전 안 했을 일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조금만 참고 생각한다면 그 길이 최선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건만 이 불행한 사단은 계속 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황폐화한 심성의 저변이 넓어져 있다는 뜻이다. 결코 정상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근자의 대규모 시위사태에 대해 소외계층의 불만 표출이라고 표현한 외지도 있었다. 우리의 심성이 이렇게 황폐화한 이유 가운데 그 현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것이다. 경제의 성장과정에서 불균형이 심화해 나온 것이 사실이고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가진자들의 부도덕성은 증오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해서 소외계층의 심성이 뒤틀려 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가세하는 것이 권위주의시대의 억압에서 풀려난 울분들의 동시적 표출이다. 더구나 이 표출은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도 미처 민주의식을 체득하지 못한 채로의 각양각생의 무질서한 것들이다. 「공안통치」에 화살들을 쏘고 있지만 사실은 권위주의 시대 같은 공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스스로 절제하는 도덕성도 잃고 있고 공권력이 제대로 억제하지도 못한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울분까지가 거칠 것 없이 표출되는 현상이 오늘의 심성황폐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성의 황폐화는 우리 모두의 삶을 괴롭고 절망스럽게 할 뿐이다. 또 항심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이 불행을 되풀이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도 재벌도 교육도 가정도…,우리 모두가 올바른 마음자리 되찾는 길을 생각하면서 그 길로의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이념맹신의 학생운동 대전환 할때”

    ◎「분신배후」 규탄… 서강대 박홍 총장/“교육자는 지식 전수보다 「인간사랑」 가르쳐야/생명존중의 바탕서만 민주발전 기대” 사제이자 대학총장인 서강대 박홍 총장이 「생명선언」을 하고 나섰다. 지난달 26일 명지대 강경대군의 상해치사사건 이후 줄곧 대학총장 모임 등을 주선하며 사태의 수습책을 모색해온 박 총장이 마침내 한마디 하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박 총장의 선언은 『강군의 죽음을 호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수강거부 등 「따돌림」을 당한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사표를 제출한 날 발표돼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박 총장은 서강대에서 「전민련」회원 김기설씨의 분신자살사건이 터지자 기자들을 만나 『최근 잇따르고 있는 분신의 배후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고 선언,파문을 던져 주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운동을 벌여나갈 때이며 이 바탕 위에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박 총장을 만나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명지대 강경대군의 상해치사사건이후 잇따르고 있는 젊은이들의 분신과 자해행위를 어떻게 보는지요. 『이는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선동하는 음흉한 세력들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들은 정의와 진리에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귀한 생명을 거슬리도록 유혹하고 그런 행위를 좋은 것처럼 거짓으로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이 세력들이 죽음을 영웅시하고 부추길 때 나타나는 결과인 것이지요』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이란 어떤 것인가요. ○「죽음 묵인 세력」 통칭 『생명을 파괴해서라도 목적을 정당화하겠다는 사고 속에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선동하고 묵인해 주며 영웅시하는 사회의 세력들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힘을 더 발휘합니다』 ­그런 세력에 대한 대응책은 없을까요.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생명을 아끼는 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생명을 이용하거나 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이 행위가 나쁜 것임을 폭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국민을 억누르려는 정치에서 국민을아끼고 그 뜻에 따르는 「생명정치」를 해야합니다. 교육자들 또한 전문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기술교육에서 탈피,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하는 사랑의 교육을 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들과 많은 대화 등을 통해 신뢰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 진정한 생명을 위한 운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학생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좀 짚어주시지요.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은 불의에 항거하고 부정을 고발하여 민주화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상적·방법적·윤리적으로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사상적인 면에서는 퇴물이 되어가는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과 그 아류의 사상 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소위 이념의 광신화에서 탈퇴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방법에 있어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면서도 비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실행되지 못한다면 운동 그 자체가 국민들의 지지를 더 이상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윤리적인 면에서도 옳고 그름의 판단에서 잘못 했을 때에는죄의식을 갖고 반성하며 행동에 대한 지성적인 판단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최근 대학교수들의 성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대안 없는 성명은 잘못 『교사로서 시대의 스승으로서 옳음을 주장하고 그름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수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현정권의 퇴진 등을 내세워 문제의 파악에만 치중하고 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대학생과 전경이 서로 적으로 간주하는 이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대화로 모든 문제 풀려 『이를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다고 모든 사람들은 인정하려 듭니다. 그러나 화염병·돌·최루탄을 서로 사용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운다고 생각해봅시다. 시대가 낳은 아픔을 내 스스로 이겨나가기 위해 변화시켜야 합니다』 ­총장께서는 학내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히 학생들과 충돌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생과 총장은 한배를 탄 식구입니다. 학교는 인간성숙의 광장이며 교실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문제를 파악하고 인정하고 그 다음 이해하고 상호협력하면 안 풀리는 문제가 없습니다. 즉 마음의 대화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이지요』
  • 사제윤리는 유물일 수 없다/장석영 사회부장(데스크시각)

    『지금 우리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지고,교육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권을 확립하고 존중하는 일은 비단 교육계만의 일이 아니고 국가 전체의 일인 것입니다』 ○교권 없이는 교육 없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를 폭행하고 갖은 폭언과 위협으로 교수에게 사표를 쓰게 하는가 하면 총장의 얼굴사진을 학교건물 계단에 붙이고 「총장얼굴 밟기운동」을 벌이는 등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은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자 이를 힐책하는 독자들의 전화가 데스크로 빗발치고 있다. 『사제간의 윤리가 붕괴되는 오늘의 현상을 제발 언론에서 막아주셔야겠습니다. 도덕과 양심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사회에서 더 이상 이같은 비윤리적이고 반지성적인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기에 눈물로 호소합니다』 자신도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형이라고 밝힌 이 독자는 사건의 발단이나 경위가 어찌되었든간에 학생이 교수를 폭행하고 총장과 교수의 권위를 모독한 일을 보고는 충격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 캠퍼스에서 자기학교 학생에게 얻어 맞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학생들은 어제도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가지 일방적인 요구를 수없이 해대면서 이를 폭력과 강압으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이같은 작태는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스승과 제자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관계마저 짓밟는다면 우리 교수들이 앞장서서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제 기자가 만난 한 교수는 자조와 개탄으로 일관하다가 『어떤 경우라도 스승의 권위는 교수 스스로가 지켜나가야 한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 스승의 권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대학생들에 의한 교수폭행·사표강요와 같은 행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절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옛말에 「군사부일체」라고도 했고 「스승의 그림자는 석자 물러나서 밟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다. 이 말을 파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단정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시대와 사회가 달라짐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도 있지만 시대와 사회의 변천과 관련없이 영원히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 또한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명심해야 한다. ○납치·감금·폭행 예사로 교권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민주화의 거센 바람이 불면서부터였다. 대학 자체가 일부이긴 하지만 도덕성을 잃으면서 교권은 더욱 심하게 흔들린 것이 사실이다. 지난 88년 11월 대전 목원대에선 학생들이 학내문제로 이 대학 학장대리와 학생처장을 도서관으로 납치,감금하고는 삭발한 뒤 풀어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었다. 90년 2월 전주대학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민주총장 선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신임 총장의 멱살을 잡고 흔든 일도 있었다. 건국대에선 농과대학장이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농성을 만류하지 못한 것을 비관해 자살까지 했었다. 그리고는 이번에 또 그와 같은 반지성적 행위가 재현된 것이다. 어찌 대학인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면서 그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공동체여야 할 대학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이 한 번도 아니고 한 곳에서도 아니고 여러 번 여러 곳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과연 전통적 사제논리는 이제 정녕 고전이 되어버린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기자는 일련의 사건 가운데 부산대의 「총장사진 밟기운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사과문을 읽고 우리 대학사회의 위기가 목 전에 와 있음을 더욱 깊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사과문에서 학생들은 『저희들은 학교를 너무나 사랑합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번 사태는 학교당국·교수·학생 3자간의 오해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기성관제언론이 총장 사진만을 크게 보도해 학생들을 패륜아로 몰아간 것은 학생회를 와해하고자 하는 현 정권의 의도에 부합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학생들은 뉘우치기는커녕 항변을 위한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옛 성현의 말에 수악지심은 의지단이라고 했다. 잘못했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의의 핵심인 것이다.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핵가족시대에 자라났기 때문에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책임과 절제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눈치작전 속에 대학생이 된 그들이어서 의심도 많을 법하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비민주적이고 비윤리적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도덕교육에 힘모을 때 그들이 그렇게 되기에는 주지주의에 빠진 현대의 교육방식에도 큰 책임이 있다. 지식만 강조하는 교육. 일찍이 송대의 석학 사마광이 지적했듯이 경사는 만나기 쉬워도 인사는 만나기가 어렵다. 교과서로 지식만 가르쳤지 학생들에게 인격적 감화를 주는 도덕교육은 도외시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한 달여 뒤면 「스승의 날」이다. 그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자조와 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사제간의 윤리재건을 위해 우리모두 뜻과 힘을 모아야겠다.
  • 김영삼 민자최고위원 연설의 의미

    ◎「안정 바탕위의 개혁」 의지 표출/합당 당위성 설명,공감대 형성 역점/원칙론만 언급,구체정책 제시 미흡 민자당 김영삼최고위원의 26일 국회대표연설은 의도된 「미완성대표연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야당정치인에서 여당정치인으로 자리를 바꾼 뒤 처음 갖는 국회대표연설에서 YS(김최고위원)는 원고의 양과 비중의 대부분을 자신의 「정치적 변신」 해명,즉 합당 당위성 설명에 할애했다. 연설문의 뒷부분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는 정책방향이나 의지 등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녔다기 보다는 합당 당위성을 거증하기 위한 소품으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하다. 말하자면 YS의 이날 대표연설은 민자당최고위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설명에 주력하면서 최고위원으로서의 생각과 역할은 여백으로 남겨둔 것으로 해석해야 할 듯싶다. 김최고위원의 이날 대표연설이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합당으로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YS의 여권내 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대표연설에서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또하나는 민자당과 YS의 정책의지가 처음으로 공식화된다는 의미를 들 수 있다. 대표연설의 초점이 합당 당위성 설명에 모아짐으로 해서 이런 기대들은 상당부분 빗나간 셈이다. 정책노선과 관련해 김최고위원은 여러 군데서 개혁을 강조하고 있음이 눈에 뛴다.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비민주적 잔재들을 말끔히 씻어내면서 일련의 개혁조치들을 심도있게 부단히 실행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부분이라든지 국가보안법과 국가안전기획부법의 전향적 개정약속,남북군축협상 촉구,금융실명제의 차질없는 시행 및 세제개혁 추진 등이 이에 해당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동시에 노사관계를 언급하면서 사보다는 노의 인식전환을 우선해 촉구하고 있다. 교육문제와 관련해 『교육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바탕위에서 그 책임도 강조되도록 하겠다』는 부분과 『노사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사 어느쪽을 막론하고 공권력을 엄정히 집행함으로써 노사관계가 법질서의 테두리안에서 규범화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점은 YS가 여당정치인으로의 인식을 대전환한 결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정책의지면에서 YS의 대표연설은 종전 여당대표의 연설원고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개혁을 강조한 만큼 같은 비중으로 안정을 언급하고 있고 초미의 관심사인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군축협상촉구외에는 전향적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김최고위원과 민자당이 의도적으로 「미완성대표연설」을 내놓았다는 고려를 하더라도 이같은 전향적 정책의지 부재는 정책사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는 점과 더불어 대표연설에 알맹이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낳게하고 있다. YS는 여당의 최고위원으로서 국정전반을 총체적으로 짚고 넘어간 셈이다. 반면 개별 정책사안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아직 여권내에서 뚜렷한 위상이 결정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구 여권이 적극적으로 김최고위원의 위상을 정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YS 스스로도 위상의 조기정착에 급급해 하지 않은 복합요인에 의한 결과로 여겨진다. 연설문 작성위원들에 따르면 구 여야의원들이 고루 연설문작성에 참여한 탓도 있겠지만 청와대와의 수정작업은 한차례에 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와의 수정작업은 문구조정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정책사안에 대한 언급요구나 게재요구가 서로간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정책사안의 대표연설 언급은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아래서나 또는 연설자의 강력한 의지로 표명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연설의 알맹이라 할 수 있는 이같은 구체정책 사안에 관한 긴밀한 당정협조 또는 YS의 요구가 없었다는 점은 여권내 그의 위상에 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중」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자당의 대표연설이 정책비전 제시보다 합당 당위성 설명에 비중이 두어지지 않았느냐 하는 점은 대표연설후의 YS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YS는 국회대표 연설이 끝난 후 『소신을 갖고 했다』고 밝히고 『여러 가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합당이 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해 스스로 정계개편 해명에 초점을 맞췄음을 시사했다. 대표연설문 작성에 참여한 민정계의 최재욱의원도 『제일 앞부분에 합당에 대한 이유를설명했다』고 말하고 『창당정신인 민주ㆍ번영ㆍ통일순으로 풀어나갔다』고 밝혀 연설문의 구조가 합당 당위성 설명위주로 짜였음을 시인하고 있다. YS는 합당부분에 대해 『세계사의 조류속에서 우리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초미의 과제가 정국안정이며 정치안정을 통해서만 경제ㆍ사회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개혁과 혁신도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합당 당위성 설명은 사실은 지난 1월 청와대에서의 합당선언때부터 나왔고 국민들에게도 낯익은 단어의 배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자당이나 YS가 합당 당위성 설명에 주력한 것은 대국민 공감대 제고가 더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다음날 있을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대표연설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 YS로서는 발빠르게 여당정치인으로서의 「지향하는 바」를 설명하기 보다는 지나간 과정을 좀더 분명히 해명해두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유리하게 가꿀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이날의 대표연설로 여당정치인 YS의정책노선이나 여권내 위상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의 정치적 위상이나 정책의지 표시는 다음 대표연설로 미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최고위원 연설(요지) “각종 사회악에 강력대응… 법 질서 확립/토지공개념ㆍ실명제 등 차질없이 시행” 이제 세계는 새로워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물결은 개혁과 개방과 화해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며 그것은 한반도의 반쪽인 북한 사회에도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의 조류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달라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경제ㆍ사회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개혁과 혁신도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이루면서도 제각기 흩어져 힘을 분산시키고 있는 온건중도 민주세력의 대결집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지역분열에 따른 갈등,민주대 반민주라는 도식에서 비롯된 정치적 갈등을 과감히 해소하지 않는다면 경제ㆍ사회적 불안은 가속화되어 불행한 사태가 야기될 것이라는 깊은 우려를 금치 못했다. 나는 이같은 상황에서 정쟁과 대결의 정치를 극복하고 대화의 정치,동반의 정치를 위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정치구도를 단순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어둡고 파행적이었던 정치질서를 발전적으로 극복,청산하는 역사적 과업으로 이는 한국 정치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일대 혁신인 것이다. 이번 민주자유당의 창당에 대한 평가는 가까이는 92년의 총선을 통해 나타날 것이며 길게는 후일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의회민주주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에 의해 얽히고 설킨 정치현안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야당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결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특히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는 오랫동안 정치생활을 함께해온 동지로서 앞으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의 공동목표인 민주발전과 통일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다.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장기수와 시국관련 구속자 석방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가능한 한 그 폭을넓혀 나가도록 하겠으며 이 시대의 아픔이었던 광주문제도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될 수 있도록 하겠다.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은 시대상황에 맞게 전향적으로 고쳐 나갈 것이며 지방자치제도 차질없이 실시해 나가도록 하겠다. 또한 공무원사회의 자기혁신이야말로 국민과 정부사이의 신뢰를 이룩해주는 요체라는 점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은 확고히 보장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도덕적 무질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사회공동체의 기반마저 흔들려가고 있다. 특히 집단방화는 국민에 대한 테러행위라는 점에서 강력한 대응이 요구된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도덕과 윤리의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며 국민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공권력을 정상화하고 법질서를 확립하도록 할 것이다. 교육현장의 권위주의와 획일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운영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게 할 것이며 교사들이 학교운영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번 회기내에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켜스승으로서 존경과 충분한 대우를 받도록 하겠다. 앞으로는 기존정책의 문제점을 직시하여 이를 과감히 시정함으로써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고 활력을 찾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나가도록 하겠다. 우리당은 경제정책의 기조를 성장과 안정의 조화에 두고 다음과 같은 시책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첫째,물가안정 기반을 확립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각종 제도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토지공개념 관련시책이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할 것이며 92년까지 2백만호의 주택을 건설하여 주택가격의 안정과 국민주거환경의 획기적 개선을 도모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실명제도 차질없이 시행할 것이며 조세부담의 형평을 기하기 위한 세제개혁도 추진해 나갈 것이다. 둘째,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 셋째,산업평화의 정착이 경제난국의 극복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는 노사관계를 하루속히 안정시켜 나가도록 하겠다. 넷째,낙후부문에 대한 지원확대로 형평증진과 균형발전을 도모하도록 하겠으며 이를위해 이번 임시국회에서 농어촌발전 특별조치법과 농어촌공사 설립및 농지관리기금 설치법을 제정토록 하겠다. 또한 지하철 건설확장 등 대도시의 교통난을 해소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생산ㆍ투자 등 민간의 경제활동 영역에 있어서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배제하여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도록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 세계의 탈이념화,탈냉전화 조류에 맞춰 남북간의 상호교류와 경제협력은 물론 군축협상도 본격화해야 하며 앞으로 수년내에 남북평화공존의 시대가 도래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오는 3월 소련을 다시 방문하는 길에 북방외교의 영역을 더욱 넓혀 통일외교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
  • 교육과 사회불안의 함수관계/이종흥(아침세평)

    새해는 5공청산의 증언도 끝나고 해서 새로운 밝은 전망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새해초부터 어두운 소식을 연달아 접하고 보니 밝은 소망이 송두리째 지워진 느낌이다. 어두운 소식이란 평소에 잘 아는 교사 한분이 세모에 노상에서 10대들에게 각목과 칼로 폭행을 당해 입원치료중이라는 것이다. 중태이기는 하나 목숨만은 건졌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틀전에 파출부 아주머니가 퇴근길에 역시 10대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손에든 가방을 빼앗겨 몸져 누웠다는 전갈이다. ○악한이 날뛰는 세상 민생치안 부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보니 새삼 불안하고 격분하게 된다. 어쩌다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모양 이지경인가 싶어 울분과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악한의 10대들도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을 터인데 그 가정 그 부모들은 어떻게 했기에 거리의 악한으로 내던져 두고만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악한들이 마구 설쳐도 속수무책이 된 사회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참으로 암담하다. 정부는 10개 주요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민생치안이 첫째 순위에 들어 있지 않다. 경제도 중요하고 정치도 중요하지만 제일 다급한 것은 민생치안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바로 민생치안 빼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어쩌다가 사회가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였는지 정치와 정부의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수 있도록 하겠다던 정부는 거짓말만 한것 아닌가. 참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5공시대의 삼청교육이 잘못됐다고는 하지만 또다시 이해할 것만 같다. 민주화는 악한들이 판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국민의 생명권 옹호가 우선되지 않는대서야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면 오늘의 교육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교육하면 학교교육을 연상하겠지만 교육의 근본과 기초는 부모와 가정에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비행 청소년이 있다면 그만큼 잘못된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들이 배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문교정책 당국도 그 책임을 질 줄 알아야한다. 오늘의 민생불안 문제는 근원적으로 교육에 대한 부모 학교 사회 문교당국 전체가 책임의 소재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혁신운동을 전개하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결혼윤리와 성윤리의 확립없이 부모의 책임은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국민정신의 혁신 없이는 치안경찰의 노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교육열 1위라지만… 이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1위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교육적 결과는 어떠한가. 오늘 우리는 그 평가를 이미 하고 있는 바다. 교육의 병리현상을 진단하면서도 교육제도개혁 심의위원회가 내놓은 처방을 보면 교육의 병리치료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교조가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게 된 것도 오늘의 교육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교육의 본질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들이 알고 있는 교육은 개인의 영달과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인력양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안다. 인간의 인격적 완성이란 말뿐이지 교육 그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격의 완성이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것이다. 윤리적 가치판단과 행동적 결단에 책임이 수반되는 성숙한 인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책임질 줄을 알아야 재능의 개발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의 육성은 교육의 2차적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오늘의 교육은 본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2차적인 유용성에 국한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윤리의 교육도 개인의 야심과 내면적 가치를 전제로 한 국민윤리가 아니고 사회적 유용성만을 고려한 사회윤리가 되고 있어 그 자체안에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유용성에만 치중한 교육은 결과적으로 오늘과 같은 교육풍토를 낳고 말았다. 지식 전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이비 스승이 허다하고,자신들이 상실한 교육의 권위를 교권옹호 투쟁방법으로 나오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반사적으로 스승의 권위에 스스로 머리 숙이는 제자는 이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뿐이랴. 스승을 불신하고 감금과 구타까지도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민주화의 교육은 이래도 된다는 것일까. 대담한 정신과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본다. 교육자부터 인격적으로 스승다워야 하겠다. 직업인이기 전에 교육자라야 하겠다. 교단을 직장으로만 생각한다면 교단을 떠나야 마땅하다. 노동법도 교사를 직장인으로만 보호할 것이 아니고 교사다울 때만 보호가치가 있도록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본질을 벗어나고 잘못된 인격의 소유자들이 역사속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저질렀고 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최근에 일어난 국내외 사건에서 우리는 보아왔다. 인간이 양심과 윤리의 지배를 받지않을 때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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