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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5단체 ‘시국선언’ 안팎

    경제5단체가 이례적으로 ‘시국선언’이란 형태로 한 목소리를 낸데는 지금과 같은 불안한 사회·경제상황에서 ‘강력한 구조조정과경제회생’이 요원할지 모른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보인다. ◆직접적인 배경은=최근 한전에 이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연대파업에 나서겠다고 결의하는 등 노동계 움직임이 심상찮게돌아가면서 다급해진 경총 등 경제5단체가 이를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집단의 불법 집단행동이 제동없이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눈치보기나 근시안적 인기영합주의에 기울어 있는 정부및 정치권 등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된다. 회장단이 “정부는 밀면 밀린다”“국가 제기능이 위태로워질 것”등 일부 강경한 문구를 사용하며 정부와 대통령,정치권에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시국선언의 핵심은=경제5단체들은 정부가 사용자측에 비해 노동계에 우호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점에 불만을 가져왔다. 이번 시국선언내용 가운데 노동관계법 개정논의를 중단할 것을정식으로 촉구한 것은 이같은 경제5단체들의 속내의 일단을 읽게 한다. 사용자측보다 노동계 쪽으로 기울면 더 이상 강도높은 구조조정은 할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실제 경제5단체는 그동안 주당 44시간으로 돼 있는 법정 근로시간을40시간으로 단축하는 노동법 개정안에 정부측이 수용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노동법에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정부측이 노조측의 반발을 염려,묵인함으로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불만 중 하나다. 따라서 이번 시국안은 노동계의 요구를 최대한 억제하고,사용자측이구조조정때 정리해고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려는목적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경제5단체, 노동계 집단행동 자제 촉구

    경제5단체가 정부는 물론 정치권,노동계에 경제회생에 적극 동참할것을 촉구하고 나섰다.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관계법 개정논의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노동계는 집단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용성(朴容晟)·김효성(金孝成) 대한상공회의소,김각중(金珏中)·손병두(孫炳斗) 전국경제인연합회,김재철(金在哲)·조건호(趙健鎬)한국무역협회,김영수(金榮洙)·이중구(李重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김창성(金昌星)·조남홍(趙南弘)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부회장은 5일 낮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오찬회동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현 시국에 대한 경제계 선언’을 발표했다. 경제5단체의 회장과 부회장이 모두 모여 일종의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주병철기자 bcjoo@
  • 주한미군문제 각계인사 200인 시국선언문

    종교계,여성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들은 2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한미군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인사 200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역사적 과오와 범죄에 대한 미국의 공개 사과,미군의 양민학살 진상 규명 및 피해배상,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개정,매향리 사격장 즉각 폐쇄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 정부는 점차 높아가는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헤아려 국민들의 투쟁에 함께 하기를 촉구하며,정상회담 이전에 주한미군관련 당면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시국선언문 서명에는 한완상(韓完相) 전통일부총리,강만길(姜萬吉) 고려대명예교수,김승훈(金勝勳)신부,지은희(池銀姬) 여성단체연합 대표,오충일(吳忠一)목사 등이 참여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특별기고] ‘민들레’들의 눈물과 손수건

    신록의 5월이 가고 녹음 짙은 6월이다.그런데 해마다 오가는 5월과 6월이왜 아직도 우리에게는 계절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찾아오는지…. 5월 하면 61년 5·16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 5월 민주항쟁이 떠오른다.한국 현대사에서 5월은 우리에게 두 번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안겨준 달이다. 그리고 6월은 50년 6·25전쟁의 비극과 87년 ‘6월항쟁’의 환희를 교차시킴으로써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현재 우리는 6월항쟁 12주년을 맞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시국선언과 기념식, 시민달리기 대회, 민주대합창 1999 등 갖가지 행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념행사의 규모만큼이라도 우리가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젊음을 불사른 사람에 대해 기억하고 위로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유가족들은 의문사 진상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을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6개월 이상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투쟁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 ‘민들레-한많은 어버이의 삶’이최근 한 독립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돼 필자는 이 영상물을 지난 8일 민언련회원들과 함께 명동성당 구내 땅바닥에 앉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없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이후,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음을 되찾을 수 없게 된 열사들의 어버이와 유족들이그 ‘잿빛 삶’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노숙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 찾아가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손수건을 꺼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비로소이 땅에 진정한 민주의 꽃이 활짝 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메마른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잇달아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과 스캔들의 바닥에는 일부 상류계층의 개인주의와 출세주의가 깔려 있다. 최근 국민들의 여론을 들끓게 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아직도 ‘공안사건’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참으로개탄스러운 점은 그러한 ‘공작’이나 ‘탄압’을 마치 큰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고위 공직자들의사고방식이다. 설사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우리 사회는 해고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아닌가? 이 ‘공안 공작’ 의혹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이 국정조사권 발동에 동의한것은 환영할 일이다.그런데 국정조사가 착수되기도 전에 언론들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래서는 정말 안된다.여야 모두가 작은 절차로 티격태격하기에 앞서,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저울질하기 앞서,이번에야말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한번 제대로 밝혀보자는 대승적인 합의부터 하라. 적당한 폭로와 적당한 은폐,또는 흥정,혹은 당리당략으로 국정조사가 요식행위로 끝난다면 국민들의 정치불신,국회불신은 회복불능에 빠질 것이다. 6월항쟁 12주년,지금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 때문이거나 IMF 때문이거나 간에 고통의 눈물에 젖은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손수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사회의 온갖 음습한 모순과 비리구조에 대한 진실한 원인규명과처방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成 裕 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제2공화국과 張勉]18-봇물터진 통일론(下)

    ‘중립화 통일론’이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장면(張勉)정부는서둘러 불끄기에 나선다.1960년 11월2일 장면총리는 담화를 발표해 오스트리아식의 중립화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장총리는 그 이유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지정학적 차이점을 제시했다.‘소련·중공과 인접한 한국이 전략적인 가치가 훨씬 높다’는 점을 비롯 ▲침략을 당하면 오스트리아는 즉각 지원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지원군이 바다 건너 있다 ▲중립국이 되기 전 오스트리아는 단일정부를 유지했지만 한국은 남북으로 갈려 전쟁까지 치렀다는 사실 들을 지적했다.따라서 “유엔 감시하남북총선거가 현정부의 유일한 통일방안”이라고 장총리는 거듭 강조했다. 같은 날 민의원도 ‘대한민국 헌법 절차에 따라 유엔 감시하에 인구비례로자유선거를 실시하는’통일방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해 이를 제15차 유엔총회에 전달키로 했다.‘대한민국 헌법 절차를 따른다’는 전제조건을 단 민의원 결의는 장면정부의 통일정책보다 더욱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장면정부를 긴장케 한 요인은 혁신계도,중립화 통일론도 아니었다.4월혁명의 주역인 학생세력이 통일논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학생들은 4월혁명으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지자 이에 만족하고 ‘혁명과업 수행’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맡기는 듯했다.이들은 학교로 돌아가 학도호국단 대신 학생회를 구성하고 어용교수 퇴진과 재단 민주화를 요구하는 등 학원민주화운동에 나섰다.또 공명선거·농촌계몽·국산품애용 같은 국민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논쟁이 확산되자 학원가는 그 흡인력에 급속히 빨려들어갔다.각대학에는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가 들어섰고 크고작은 토론회·강연회가 잇따랐다. 11월18일 서울대에서 300여 학생이 참여해 ‘서울대 민족통일연맹(民統)’을 결성했다.이들은 ▲통일에 관한 국민의식을 높이고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며 ▲통일방안을 정부·사회에 제시해 여론을 조성하겠다고 공표했다.아울러 ‘북한 학도’들에게는 “4·19로 이승만정권을 타도했듯이 김일성(金日成)정권을 타도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이들의 통일론은 한마디로 ‘기성 정치인은 믿지 못하니 남북의 학생들이 직접 나서자’는 것이었다. 61년 들어 정부의 ‘유엔 주도하 통일’방안에 충격을 주는 사태가 발생했다.4월12일 제15차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서 한국문제 토의에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자는 안이 나왔다.당시 중립국이던 인도네시아가 제출한 ‘동시초청안’이 높은 지지를 받자 미국대사 스티븐슨은 ‘북한이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수락할 경우에만 초청한다’는 수정안을 냈다.‘스티븐슨 안’은 59대 14로 통과된다. 그동안 유엔이 통한(統韓)문제를 토의하면서 늘 남한 대표만을 초청해 왔기때문에 조건부라 해도 북한이 함께 초청받은 사실은 국내에 큰 영향을 미쳤다.‘스티븐슨 안’자체를 반대하던 장면정부는 막상 수정안이 통과되자 다음날 환영 성명을 발표한다. 장면총리는 “공산측이 기왕의 파괴적 태도를 청산하고 이 획기적인 결의의모든 조건을 성실히 충족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북한이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을 받아들여 그 임무수행을가능케 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는 달리 사회 분위기는 “스티븐슨 안은 미국이 북한과 타협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고 보수계 신문들은 “정치인들이 충격을 받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남한 사회는 이제 통일논쟁으로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혁신계와 급진 학생세력이 ‘어떻게든 통일만은 이루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격적으로나온 반면 장면정부는 기존 원칙만을 고수하며 소극적·방어적으로 대응할수밖에 없었다.북한은 북한대로 혁신계·학생세력을 부추기는 제안을 끊임없이 해댔다.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도 한국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변해갔다. 그 달구어진 용광로의 문을 열어제끼려고 한 세력은 학생들이었다.‘중립화’니 ‘남북교류’니 논쟁 차원에 머물던 통일문제에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4·19 1주년 기념일을 맞아 민통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통일을 기피하고 민족통일세력을 탄압하는 현정권은 피를 보기 전에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어 5월3일 남북문화교류의 전제로서 남북학생 모임을 갖자고 북한 학생들에게 제의했다. 이틀뒤 전국 18개 대학과 경북고 대표가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민통학련)’결성준비대회를 열고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열겠다고 발표했다.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즉각 이를 환영했으나 집권 민주당과 신민당(민주당 구파)등 기성 정치권은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 대변인인 정헌주(鄭憲柱)국무원 사무처장은 ”학생들의 주장은 정부 방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면서 “순진한 학생들이 공산당의 흉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고 단호한입장을 밝혔다. 5월13일 민통학련은 ‘남북학생회담 및 통일축제’개최 원칙을 공개했고 정부는 이에 대해 “학생들이 판문점에 가면 전원 체포하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3일후부터 통일논의는 쿠데타군의 총검에 눌려 전면중단된다. ‘가자 북으로,오라 남으로’를 외치던 학생이건,‘중립화’를 꼭 이뤄야 하느냐 아니냐로 다투던 혁신계건 그 운명은 장면정부와 다르지 않았다.박정희(朴正熙)시대에 ‘통일지상주의자’들은 자유당정권 때보다도 훨씬 가혹한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분단의 역사에서 통일은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임에 틀림없다.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제2공화국에서 통일논의가 최고의 이슈로 떠오른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체제간 경쟁이 엄존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에만 치우친 통일론,자파(自派)의 세력 확장에 급급해 중구난방 식으로 쏟아부은 통일론은 급기야 스스로가 발디딘 토대마저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이용원기자 ywyi@
  • 부패방지법 제대로 만들자(사설)

    사회 각계 원로 103명이 19일 부정부패 추방과 부패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 일소’‘성역 없는 수사’등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한 사정이 벌어지지만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다스리는 법들이 현재도 없는 것은 아니다. 형법의 공무원 범죄에 관한 처벌조항,특정범죄가중 처벌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고려와 뿌리 깊은 온정주의,그리고 구조화된 부정부패 앞에서는 그런 법들도 무력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한 사정의 기준이 모호해서 편파사정이니 표적사정이니하며 사정당국에 대한 불신을 불러 오기도 했다. 법과 제도에 근거한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몰이식 일과성 사정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부패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화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실제로 참여연대는 96년부터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을 벌여왔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을 토대로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내놓았다. 이 법안은 돈세탁 금지와 내부고발자 보호,그리고 사정활동이 정치적 ‘외풍’을 타지 않게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별도로 설치해 특별검사가 조사를 하도록 하는등 선진국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의원들의 이해에 관련이 크기 때문인지 아직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회의는 집권을 하고나자 특별검사제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특별검사제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무부와 검찰이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검사제 도입은 국민회의의 선거 공약사항일뿐 아니라 부패방지법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처벌하는 법률이 있는데도 굳이 부패방지법을 따로 제정하자는 것은 기존 검찰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소·고발자가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는 제도가 현행 형사소송법에 있지만 공무원의 직권남용등에만 한정된다. 따라서 부정방지법에는 특별검사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부패방지법 제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회원국의 의무사항이며 내년부터는 ‘반부패라운드’가 시작된다. 모처럼 만드는데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바란다.
  • 명동성당/80년대 이후 농성史

    ◎양심세력의 피난처서 집단이기주의場 변질/군사독재시절­6·29선언후 반정부시위 메카로/문민정부 이후­이익집단 갈등으로 성당과 반목 서울 명동성당은 80년대 이후 각종 농성과 집회의 ‘상징’처럼 알려져 왔다.초기에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양심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됐으나 성역을 역으로 이용하는 농성자들이 늘어나면서 집단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명동성당이 농성장소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6·29선언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명동성당에서는 1주일이 멀다하고 농성과 집회,시위가 끊이질 않았다.70년대 군사독재시절 시국선언이나 성명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애용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시대에 따라 농성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명동성당의 대응도 바뀌었다. 盧泰愚정권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91년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때에는 한 달 이상 집회와 농성이 이어졌지만 성당은 이들을 감싸고 사제단 성명 등을 통해 두둔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92년 金泳三정부가 들어서면서 집단 이해관계에 얽힌 대규모 농성이 잦아졌다. 94년 6월과 95년 5월의 서울 지하철 노조 농성과 한국통신 노조 농성이 대표적이다.3개월 동안 계속된 지하철 노조 농성 때에는 성당 본래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무질서와 혼란이 심해 사제단과 사목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철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농성은 87년 6·10항쟁 이후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명동성당은 이번에 농성자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실정법 위반자에 대해서는 보호할 수 없으며 국민의 정부를 신뢰한다”고 천명했다.성당이 더 이상 집단이기주의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6·10 항쟁 11돌 기념행사 잇따라

    ◎李韓烈군 추모식·610인 시국선언문도 발표 지난 87년 직선제를 이끌어 낸 6·10 민주항쟁 11주년 기념행사들이 9일 잇따라 열렸다. 연세대 학생 200여명은 이날 하오 학교 민주광장에서 ‘李韓烈 11주기 추모식’을 갖고 6·10 항쟁의 정신을 기렸다.추모식에는 고 李韓烈군의 어머니 裵恩深씨(58)와 당시 학생회 간부 10여명이 참석,당시의 사회 상황과 6·10항쟁의 의미 등을 설명했다.학생들은 하오 7시부터는 ‘추모의 밤’행사도 열었다. 참여연대 전국연합 등 사회단체와 종교계 대표 20여명은 이날 서울 명당성당에서 ‘6·10항쟁 11주년에 즈음한 610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실제로는 814명이 서명한 선언문에서 이들은 “당면한 국가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히 밝히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라면서 ‘국가위기 진상규명 국민조사위원회’구성을 촉구했다. 이날 선언에는 金重培 참여연대 공동대표,崔永道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의장,權永吉 국민승리21 대표,崔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기념 행사는 10일에도 이어진다. 전국연합은 10일 하오 서울 종묘공원에서 지난 10년동안의 민주화 과정을 되돌아 본 뒤 IMF 극복과 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국민대회­민주에서 통일로’를 개최한다.서울 성공회 대강당에서는 하오 7시 金勝勳 신부와 孫鳳鎬 서울대 교수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10 항쟁 11주년 기념의 밤 행사가 열린다.오는 14일에는 연세대∼여의도 한강시민공원 구간에서 1천여명이 참가하는 시민달리기 행사가 펼쳐진다.
  • 명동성당옆 중국음식점 주인 祝振財씨의 감회

    ◎민주화 중심서 화해의 가치 배워/현대사 바꾼 시위현장 빠짐없이 지켜봐/시위대 투신·할복 등 가슴아픈 기억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위와 농성이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해와 용서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서울 명동성당 옆에서 30년째 중국음식점 ‘성화장’을 운영하고 있는 축진재씨(51).29일로 축성 100주년을 맞는 명동성당을 바라보는 축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화교인 축씨는 김수환 추기경이 30년전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으로 명동성당에 부임하던 그 해 중국음식점을 열었었다.성당에서 10m도 채 안떨어진 건물 2층의 음식점에서 축씨는 70년대 명동성당 시국선언 사건부터 최근 민주노총의 집회까지 현대사를 바꾼 시위 현장들을 빠짐 없이 지켜보았다. 87년 6·10항쟁 때는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시위대 10여명이 프락치를 찾는다며 셔터를 뜯고 들어오는 바람에 5층까지 피신했다가 겨우 오해가 풀려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회고했다.돌이나 최루탄에 유리창이 깨지고 시위가 며칠이고 계속돼 임시휴업을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그보다도 시위대의 투신이나 할복자살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28일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본 축씨는 “화해와 용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이 가르쳐 준 진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명동성당 100돌과 민권운동(사설)

    오는 29일은 명동성당 축성 100돌이 되고 金壽煥 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에 착좌(着座)한지 30년이 되는 날이다.한국 천주교회로서는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우리는 이 날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도 의미 깊은 날이라고 본다.명동성당과 金추기경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명동성당은 지난 한세기동안 영욕의 한국사를 함께 해 왔다.대한제국 말기 이곳에서 李在明 의사가 매국노 李完用에게 칼침을 놓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엔 천주교 신자였던 安重根 의사가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뮈텔 주교에게 항의했을 만큼 일제의 폭압에 침묵했다. 일제시대부터 비롯된, 세상과 무관하고 현실에서 고립된 천주교회의 모습은 70∼80년대 들어 크게 변모한다.이 시기 명동성당은 한국 민주화의 성지(聖地)로서 부도덕한 권력에 대항하는 구심점이 됐다. 지난 74년 민청학련 배후 조종혐의를 받았던 池學淳 주교가 이곳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당국에 연행됨으로써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돼 한국 민주화운동의 촉매가 됐다.또 76년 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재야인사들이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3·1 시국선언을 발표한 곳도 이곳이다.87년 6월 항쟁의 근거지 또한 명동성당이었다. 이처럼 명동성당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자,쫓기는 사람들의 피난처,억울한 이들의 대변자,거짓에 대한 고발자로서 민중과 함께 있어 왔다.암담한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자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명동성당은 충실히 해 온 것이다. 이런 명동성당의 모습은 金壽煥 추기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지난 68년 명동성당 축성 70주년이 되는 날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金추기경은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취임사를 했을만큼 교회쇄신과 현실참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金추기경은 69년 제3공화국 시절 朴正熙 대통령의 3선개헌 지지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현대사의 고비마다 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 명동성당과 金추기경의 역할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구제금융시대의 아픔을 껴안는 모습으로 명동성당은 다시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또 한국 천주교회의 평양교구장서리이자 황해도를 관할하는 서울대교구장으로서 金추기경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역할도 기대된다.
  • 李會昌씨 아들 병역관련/시국선언 육군중령 實刑

    ◎군사법원,징역 1년 선고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31일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와 관련해 ‘시국 선언’을 한 孫大熙 육군 중령(41)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정치관여죄와 무단 이탈죄를 적용,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 명동성당 100돌/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명동성당이 올해로 100돌을 맞는다. 지난 1898년 5월29일 축성돼 교회로서의 기능을 시작한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요람. 그 역사만으로도 가톨릭의 한국전래와 뿌리 내리기가 설명된다. 명동은 원래 한국천주교가 출발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가톨릭 신자 이승훈은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에게 세례를 주고 이벽은 다시 김범우에게 세례를 준다.지금의 명동인 명예방 장예원 앞에 살았던 김범우는 자기집에서 신앙집회를 열었고 이승훈을 비롯,이벽·정약전·정약용 등 초기 신자들이 이곳에 모였다. 몇달후 이 집회는 형조에 의해 해산되고 김범우는 단양으로 귀양갔다가 죽지만 한국 천주교는 박해를 이겨내고 굳건한 뿌리를 내린다. 이렇게 자생적인 신앙공동체로 출발한 한국 천주교는 나중 파리외방전교회의 도움을 받아 종현이라 불리던 명동언덕에 1892년 교회를 세운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신부(한국명 고의선)가 당시 대한제국에 고용되어있던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틴의 도움을 받아 설계한 건물은 총건평 1천498㎡(약360평)에 길이 69m,너비 28m,지붕높이 23m,종탑높이 45m의 라틴십자가형신고딕 양식. 6년만에 준공식을 갖고 처음엔 종현성당으로 불렸으나 해방후 명동성당으로 이름이 바뀌고 사적 258호로 지정됐다. 명동성당 100돌이 뜻깊은 것은 그러나 교회적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성지일뿐만 아니라 한국민주화의 성지로서 우리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어 왔다. 1904년 가톨릭청년들은 이곳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항의하는 모임을 가졌고 1909년 매국노 이완용은 벨기에 국왕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오다 이곳에서 이재명 의사의 칼침을 맞았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물론 최근까지도 명동성당은 공권력도 침범하기를 삼갔던 성역으로 학생시위의 종착점이자 농성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등 재야인사들이 지난 76년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3·1시국선언을 발표한 곳도 명동성당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빛과 소금 역할을해온 명동성당의 100돌을 마음 깊이 축하한다.
  • 겉으론 차분… ‘인사태풍’에 촉각/김대중시대­관가 표정

    ◎경제부처­조직 개편설 맞물려 대폭 물갈이 걱정/군·검찰­가급적 말 아끼며 오해살 행동 등 자제/청와대­“영호남 갈등해소 계기”… 결과 긍정수용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당선자로 확정,50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관가는 앞날의 불투명성으로 술렁이고 있다.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19일 김후보의 당선을 ‘명예혁명’,‘잘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청와대 보좌진 등에게 선거결과의 긍정수용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여러분들 마음속으로 지지한 후보가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오늘부터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당부했다.김대통령은 “내가 당선되었을때 국정협조가 잘 안되었다”면서 “나와 당선자와 협력을 통해 우리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긴 역사로 볼때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잘된 일”이라면서 “암적인 영호남간의 갈등을 씻고 넘어가지 않으면 정치경제 등 모든 것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고 ‘국민화합’을 역설했다.특히 “김당선자와 나는 40년 가까이 정치를 함께 해왔다”며 ”40대 기수론이 나왔을때는 경쟁자였고 그후로 모진 정치적 탄압을 받던 시절에는 고락을 함께한 동지였다”고 김당선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사상 첫 정권교체에 겉으로는 차분한 모습이었으나 향후 공직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총리실 관계자들은 사상 첫 정권교체로 불어닥칠 ‘인사태풍’에 신경을 쓰면서도 김대중 당선자가 총리실 위상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만큼 총리실의 위상이 높아질 것을 기대.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정권교체에 따라 공직사회에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며 “특히 1급이상 고위공직자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전망하기도.다른 관계자는 “김당선자가 총리실의 위상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총리실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표시하면서 ‘실세 총리직’을 누가 맡을 지에 촉각. ○…안기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문민정부 들어 안기부는 탈정치를 추구해왔기 때문에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며 특이한 움직임도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동안 ‘색깔론’시비를 둘러싼 안기부와 국민회의간 갈등기류를 감안할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아닌듯 한 분위기. ○…노동부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첫 기자회견에서 내년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실업대책을 강조함에 따라 현재 마련중인 고용안정 종합대책을 면밀히 재검토하는 한편 노사관계에 비교적 전향적이었던 김대통령당선자가 노동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갈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무부는 김당선자가 공약에서 밝힌대로 ‘지방자치처’로의 전환을 추진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더욱이 조례제정권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할 경우 내무부의 기능과 내무관료의 신분에 어떤 변화가 올지 우려하는 모습. ○…군과 검찰 관계자들은 김대중후보의 당선을 ‘순리’로 받아들이면서도 가급적 말을 아끼며,자칫 엉뚱한 오해를 살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군과 검찰 내부에서는 조직의 특성상 과거에김대중 당선자에 대해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짙었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 수뇌부 가운데 상당수가 바뀌는 ‘대폭 물갈이’를 점치기도.그러나 화합과 안정이 강조된다면 급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대두. 국방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병역시비,현역중령의 시국선언,병무청 직원의 양심선언 등 정치적 사건들이 돌출했음에도 군이 나름대로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평가. 군 관계자들은 김당선자가 안정적인 국방비 확보,직업군인 복지문제 등을 대선 공약으로 밝힌데 대해 큰 기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50년만의 첫 정권교체가 군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촉각. 상당수 관계자들은 큰 폭의 수뇌부 교체를 점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김당선자가 집권 후 군의 정치적 중립과 수뇌부의 임기를 보장한다고 밝힌데 대해 기대를 표시. 군 고위관계자는 “19일 상오 김동진 국방부장관 주재로 열린 차관보간담회에서 김장관이 정권인수팀에 대한 원활한 협조를 당부했을 뿐 선거와 관련된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전하고 “군은 정치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국가방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 ○…검찰 관계자들은 지난 8월에 취임,임기를 1년8개월 가량 남겨 둔 김태정 검찰총장 등의 유임 여부를 포함, 수뇌부 인사 문제 등 검찰의 위상 변화 가능성에 대해 큰 관심. 김총장은 검찰의 중립을 위해 도입한 임기제 총장인데다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도중하차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특히 김당선자가 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을 중시. 검찰 관계자는 “야당이 집권했으므로 공안·특수분야 수사의 방향이나 사법처리 기준 등이 상당 부분 달라질 것으로 보이나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현 정부 초기와 같은 강력한 사정은 힘들 것”으로 점치기도. ○…경제부처 관리들도 최초의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의 파장을 놓고 술렁이는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재정경제원의 경우 해체론이 제기되는데다 유달리 경기고 출신과 영남인맥이 많아 긴장도가 다른 부처보다도 훨씬 높다.재경원 관리들이 보통 8시50분쯤 출근하던 것과 달리 19일은 8시30분 이전에 대부분 출근했다.삼삼오오 모여 선거결과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목격됐다.한 관계자는 “DJ에게 정책보고를 할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금융정책실 분위기는 냉랭하다.겉으로는 “공무원은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라며 반응을 자제했으나 “IMF 시대에 잘 할지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2급 이상 실·국장 가운데 호남출신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은 인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능력이 인사기준의 최우선이 돼야지만 출신지역 때문에 인사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반가움을 나타냈다. 며칠동안 1청사로 출근하며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했던 임창열 부총리도 과천청사로 나와 DJ에 대한 보고자료를 챙겼다.1급 이상들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눈에 띄었다. 특히 김대중 당선자가 재경원의 비대화를 지적하며 정부조직 개편을 주장한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당장 재경원의 해체 논의가 일것이고 실·국장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반면 과장급 이하 관료들은 경직화된 조직에 새바람이 일 것이고 인사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IMF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새당선자의 주변에 국내외 금융사정에 밝은 인사들이 없다는게 문제”라고 지적했으며 경제정책국 등 재무부 출신인사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몇몇 관계자들은 “차라리 쪼개지는게 낫다”고 말했다.
  • 특정후보 비방 유인물 발송/ROTC 출신 30대 구속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5일 예비역 장교 훈련단(ROTC) 25기 동기생들에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비방하는 우편물을 발송한 한국정보컨설팅 대표 김종대씨(33·서울 마포구 창전동)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김씨에게 ROTC 출신 장교들에게 특정후보를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의 유인물 1만부를 제작토록 의뢰,회원들에게 배포토록 지시한 김정식씨(49·ROTC10기·서울 송파구 잠실3동)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김종대씨는 지난 3일 손대희 육군 중령의 시국선언문과 이회창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손대희 대대장의 주장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유인물을 동기회원 60명에게 팩스로 보낸데 이어 지난 8일 서울에 사는 동기생 8천여명에게 이를 발송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3당 상호비방전 가열/한나라당 “호남서 ‘DJ시계’ 살포” 포문

    ◎국민회의 “시계 본적 없다” 역공작 반박 한나라당,국민회의,국민신당은 3일에도 상호 비방전을 계속했다.먼저 한나라당 김영순 부대변인이 이른바‘DJ시계’로 포문을 열었다.김부대변인은 성명에서 “국민회의가 김대중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면서 국민회의 마크와 김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를 공개했다.그는 “이같은 사실은 전남 순천의 한 시민이 우리당에 제보해옴으로써 밝혀졌다”면서 “국민회의는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불법·탈법 선거운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그러나 국민회의는 “그 시계를 아무도 본 적이 없다”면서 ‘역공작’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한나라당의 공격은 지난 1일 국민회의가 “한나라당이 당원용 명목으로 ‘이회창 만년필’을 돌리고 있다”는 공격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당시는 그러나 한나라당이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거쳐 당원용으로 제작한 ‘적법한’것으로 밝혀졌었다. 한나라당은 또 손대희중령의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국민신당을 겨냥,집중포화를 날렸다.맹형규 선대위대변인은 “이인제 후보는 신선한 군을 정치에 끌어들여 안보태세를 흐트리는 허위사실을 유포토록 거당적으로 나서서 조종하는 중대하고도 엄청난 반국가적 이적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이후보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맹대변인은 “이후보와 국민신당은 공동정범”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신당은 “이회창 후보가 병역문제라는 결정적 결함에 쫓긴 나머지 우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면서 “일선 지휘관이 특정당사주에 의해 움직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군과 지휘관의 의식과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맞받아쳤다.김충근 대변인은 “이회창 후보는 70만 군을 납득케 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있는 둘째아들을 조속히 귀국시켜 의혹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손 중령 정당관계자와 사전협의”

    ◎육군 시국선언 관련 중간수사결과 발표 5사단 소속 손대희 중령(40·학군19기)의 ‘시국선언’사건을 수사중인 육군은 2일 “손중령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 직전 국민신당 관계자와 만나 선언문 발표 시기와 거취문제 등을 상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육군이 손중령 진술 기록을 인용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손중령은 평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에 불만을 품어오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전곡 부근 음식점에서 국민회의 오길록 민원실장을 만나 발표 문제를 상의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오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없자 손중령은 지난달 30일 하오 다시 국민신당 서울 관악갑 지구당 위원장 이지문씨와 전화로 연락,부대 근처에서 만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하오 늦게 부대를 무단 이탈했다. 이어 1일 상오 0시30분쯤 이씨의 차량에 동승,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서울 호텔’에 도착한 손중령은 발표시기를 놓고 “정기외박때 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이씨의 제의로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키로 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손중령의 초안의 일부를 수정했으며,국민신당 안재휘 언론특보는 선언문 4장을 50부가량 복사해 돌아갔다. 육군은 조만간 이씨와 안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시국선언문 발표에 개입한 경위 등을 조사키로 했다.
  • 민심 끌어안기 ‘대안 제시’ 준비/2차TV토론 대책

    ◎한나라당­정책제시 주력·타당공격 자제/국민회의­경제위기 집권당 책임론 역점/국민신당­병역면제 의혹 집중공략 채비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국민신당은 2일 전날밤 경제분야 합동TV토론에 대한 자체 평가·분석과 함께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아울러 이를 토대로 오는 7일 정치분야 2차 토론전략 준비에 만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이회창 후보가 상대적으로 잘했다는 자체평가를 내리면서도 아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처음부터 전략을 잘못 세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다음 정치분야 토론회 준비는 보다 완벽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팽배한 기류다. 최병렬 선대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책토론은 안하고 싸움만한 꼴”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국민들은 토론내용 자체에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최위원장은 이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고용불안에 대한 좋은 정책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3후보의 토론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맹형규 선대위대변인은 “국민들은 세 후보의 경제분야 식견을 듣고자 했으나 타당 후보들의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경제난 책임공방에 많은 실망을 느꼈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계속 이후보의 철학을 알라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민회의는 경제분야 토론이 평균점 이상이라는 평가다. 우선 경제위기에 따른 집권당 책임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자체분석이다.특히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 때리기에 앞장섬으로써 김후보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따라서 국민회의로선 7일 토론회까지 이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이를위해 경제 쟁점화의 불씨를 계속 살릴 예정이다. 7일 정치분야 토론회에서도 병역시비등 대 이회창 전선의 전면에는 가능한한 이인제 후보를 세우고 정치이슈에 경제쟁점을 적절히 가미해 토론의 기선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다만 상대후보들이 이른바 DJP합의사항인 내각제 약속을 집중 공격할 것으로 보고 방어논리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는 2차토론회의 주타킷도 이회창 후보로 설정했다.주제가 정치분야인 만큼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을 최대한 부각시킨다는 생각이다.이후보 사퇴를 촉구한 손대희 중령의 시국선언문 발표사건 등의 사례를 적절히 섞어 공략하고 둘째아들 수연씨의 키 조작의혹과 관련,미국유학중인 수연씨를 즉각 귀국시키지 않는 이유도 따지기로 했다. ‘국가부도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동책임론 추궁이 1차토론에서 미흡했다고 판단,김영삼 대통령과의 주례회동 및 당정협의 건수나 날짜 등을 적시해 조목조목 공박할 방침이다.또 김대중 후보 비자금의혹을 폭로하면서 이후보 진영이 어떻게 금융자료를 입수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부도덕한 대통령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 손 중령 양심선언 당과 무관/국민신당 밝혀

    국민신당 김충근 대변인은 양심선언을 한 손대희 중령사건을 국민신당이 관여했다는 국방부 발표와 관련,“손중령은 평소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해 불만을 품어 왔으며 시국선언도 스스로 결심했던 것”이라며 “우리당의 이지문 서울시의원과 손중령의 사전 상의는 군 선후배간의 개인적 차원의 일로서 당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이의원도 “손중령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무료변론을 약속했다거나 선언문 초안 일부를 내가 수정했다는 내용 등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면서 “손중령이 먼저 연락해왔고,나는 과거 나의 경험을 들려주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육군중령 시국선언 정치관여 혐의 구속/국방부 방침

    육군은 1일 정치적 견해를 담은 ‘시국선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제5사단 소속 손대희 중령(40·학군19기)을 이 날짜로 보직해임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이날 손중령의 신병을 확보,기자회견의 목적과 경위 등을 조사한 뒤 군형법의 정치관여,무단이탈 혐의 등으로 구속키로 했다. 손중령은 이날 상오 여의도 맨하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뿐 아니라 사돈의 팔촌까지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면서 “이후보가 국군통수권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대다수 군인들의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 “대선정국 걱정스럽다”/각계원로 시국선언

    ◎국정운영 비전가진 후보 뽑아야 강영훈 전 국무총리 등 각계 원로 20여명으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은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 시국에 대한 견해와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날 상오 11시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회견에서 원로들은 ‘대선 정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호소’라는 성명을 발표,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구체적인 자질에 대해 ▲국정운영의 비전과 실천방안을 뚜렷이 제시하고 ▲민주적 원칙과 절차를 존중하고 ▲국민과의 약속과 신의를 지키고 ▲음해성 중상모략이나 인신공격을 일삼지 않고 ▲지역감정이나 세대·계층간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건국이념에 대한 신념과 차기 정권의 역사적 과제를 인식하고 ▲법치국가를 이끌어야 하며 ▲정치적 노선이나 정책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당간 또는 정치인 간의 야합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말아야 하며 선거분위기를 혼탁하게 하는 비자금 의혹은 공정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최근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전반에 걸쳐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민·정부·기업 모두가 많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15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보며 앞날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외 상황과 관련,“경이적인 변혁이 예상되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아야 한다”며 “날로 가중되는 경제불황이나 북한에 대한 보도는 우리나라가 아직 불안하고 험난한 현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외국과의 통상마찰이나 4자회담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강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실현한 우리는 이제 또 다시 민족적 저력을 바탕으로 선진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번 대선에서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이를 위해선선거관련 당국자들이 공명정대한 대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언론은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책임과 역할을 해야하며 유권자들은 사사로운 유혹이나 연고·정실을 떠나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모임에는 강 전 총리를 비롯,현승종 전 총리,채문식 전 국회의장,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대표,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조완규 전 서울대총장,백낙환 인제대 총장,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전산초 연세대 명예교수,선우종원 변호사,정진경 목사,송남헌 독립운동가,이원범 3·1운동 기념사업회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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