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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혜옥 전교조위원장 교사직 상실

    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9일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벌여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장혜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원영만 전 위원장에게는 벌금 300만원, 조희주 전 부위원장에게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도 확정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공직에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에 따라 장 위원장과 원 전 위원장, 조 전 부위원장 모두 교사직을 잃게 됐다.장 위원장은 17대 총선에서 원씨 등과 민노당 지지를 호소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2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지난 8월 “시국선언은 민노당을 지지할 목적으로 선거법 위반”이라며 사건을 돌려보냈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작통권 환수 전·현직 갈등 확산

    작통권 환수 전·현직 갈등 확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보수-혁신 갈등이 전·현직 마찰로 확산되고 있다. 전직 관료들이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 현직 공무원은 이를 반박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 등 전직 경찰총수 26명은 11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촉구했다. 전직 총수들은 ‘비상시국선언’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초래할 작통권 단독행사 논의를 중단하고 ‘대한민국 무장해제’를 기도하는 김정일과 공조할 게 아니라 한·미공조와 국제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면서 일방적 대북지원 방식을 ‘전략적 상호주의’로 전환해 대북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와 공동 대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택순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그분(전직 경찰총수)들이 나름대로 그런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면서도 “총수가 의견을 밝힐 때는 깊은 배려와 치밀한 사고가 따라야만 하며 전략적 분석이나 심층 검토 없이 보도와 일반적 발표 내용에 근거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다른 경찰 간부는 “전직 경찰총수가 군사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날 전직 고위 외교관 160명이 작통권 환수 중단을 촉구한 전날 성명에 대한 논평에서 “전시 작통권 환수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정부는 앞으로도 우리 국방력을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한 토대 아래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공로명·이정빈씨와 올 6월까지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장을 지낸 장선섭씨 등 전직 고위 외교관 160명은 전날 성명에서 작통권 단독행사는 국민의 여론수렴과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며, 독자적 국방계획이 완전히 준비돼 이행되는 단계에 실행해야 한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참여정부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조영길씨가 작통권 조기환수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국회에 출석해 “조 전 장관이 2010년이 작통권 환수의 적기라고 보고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국민의사를 수용해야 하고 전직 관료들도 국민의사를 수용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전직 관료들의 말에 대응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들과 대결하는 구도를 펴지 말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현 김태균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늬들 마음을…/황진선 논설위원

    ‘얇은 사(紗)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선생의 시 ‘승무’의 첫 연이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승무를 재구성한 민족어의 보석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교 시절엔 선생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靑鹿派) 시인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대학 입학 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시를 접하곤 선생의 현실 인식을 느끼게 되었다. 시에서 제자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절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늬’라는 표현에는 친근함, 애틋함, 미안함이 섞여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19는 1960년 4월11일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도화선이 됐다.4월18일에는 고려대생들이 중구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했다가 학교로 돌아오다 임화수가 거느린 100여명의 깡패에게 쇠망치 등으로 얻어맞아 수십명이 쓰러졌다. 다음날인 4월19일에는 서울대 문리대생을 비롯해 서울시내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위에 합류해 유혈사태가 벌어졌다.4월25일에는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인 각 대학교수 258명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에 나섰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날인 26일 3·15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하야했다.‘피의 화요일’이 일주일만에 ‘승리의 화요일’로 바뀐 것이다. 당시 고려대 교수였던 선생의 마음이 담긴 ‘늬들 마음을’은 4·19 보름 뒤인 5월3일 ‘고대신문’ 1면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 선생은 “무지한 깡패 떼에게 정치를 맡겨놓고 현실에 눈감은 학문”을 하던 자신을 반성하고 “그날 너희들이 갑자기 이뻐 죽겠던 것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선생은 그 보다 두달 전인 1960년 3월에는 ‘지조론’을 발표해, 친일파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이 과거를 뉘우치지 않고 시대 상황에 따라 변절을 일삼는 자유당 말기의 세태를 비판했다. 그 ‘늬들 마음을’이라는 시비가 고려대 문과대학 창립 60주년을 맞아 오는 29일 문과대 뒤편에 세워진다고 한다.48세로 요절한 선생이 스승도 없고, 지조도 없는 요즘 세태를 다시 보면 뭐라 하실까.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전교조위원장 교사직 상실위기

    전교조위원장 교사직 상실위기

    17대 총선 당시 대통령 탄핵반대 시국선언을 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한 혐의로 기소된 장혜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벌금 100만원이, 원영만 전 위원장에게는 벌금 30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조희주 전 부위원장과 유승준 전 서울지부장, 이병덕 전 강원지부장에게는 각각 벌금 100만원,80만원,70만원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구욱서)는 장씨 등 전교조 교사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은 교사이자 공무원으로서 정치활동을 금하고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선거에 임박해 특정 정당 및 정치세력을 지지ㆍ반대하는 선언을 한 점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 266조 1항에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될 경우 공직에 취임되거나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으며 현재 교육부의 유권해석은 재직자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된다는 입장이어서 벌금형이 확정되면 교사직을 상실할 수도 있어 위원장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측은 선고 직후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내주 한·미FTA 반대집회 초긴장

    내주 한·미FTA 반대집회 초긴장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 기간 중 FTA 반대 열기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농민단체와 노동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FTA 반대세력들은 오는 12일 10만명이 운집하는 총궐기대회를 서울 도심에서 열 계획이다. 경찰은 행사장 주변 경비와 집회·시위 대비에 전국적으로 가능한 최대 규모의 인력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산발적 집회로 시작, 한곳에 결집 계획 ‘한·미 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10일 오전 ‘본협상 저지를 위한 대표자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한다.12일 오후에는 10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화문 일대에서 ‘한·미 FTA 저지 국민 총궐기의 날’ 행사를 갖는다. 경찰이 청와대 근처에서의 집회를 불허했지만 범국본은 이날 청와대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예고했던 FTA 반대 인간 띠잇기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본협상이 열리는 신라호텔이 환경정화 캠페인 등을 이유로 먼저 집회신고를 해 호텔 앞에서의 시위는 힘들게 됐지만, 범국본을 비롯한 다른 단체들은 주변 건물을 중심으로 중소규모 집회 신고를 냈다. 서울시의 불허로 시청 앞 서울광장 집회가 불가능해지자 마찬가지로 시청 근처 건물 4곳에 집회 신고를 했다. 이 때문에 12일 집회는 도심 수십 곳에서 산발적으로 시작돼 한 곳에 결집하는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1차 협상 때처럼 평화시위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폭력시위 변질 우려 등은 경찰의 기우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국 100여개 경찰중대 지원 7일 오후 한국 단체들과 연합해 FTA 저지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미국 노동계 인사들이 입국하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경찰 비상체제가 가동됐다. 경찰은 가능한 한 최대 규모의 인원을 전국에서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일선서 경비과 관계자는 “일단 전국에서 100여개 중대 정도가 지원을 올 것으로 보인다. 간부까지 포함해 정보과나 경비과 소속이 아니더라도 과거 경비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모두 FTA 경비에 동원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 일선서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경 중대를 3∼5개씩 맡을 준비를 하라는 방침이 하달되기도 했다. 이에 수용공간이 부족한 경찰서 정보과 직원들은 체육관이나 강당이 있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공간을 빌려달라고 ‘읍소’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경찰의 세부적인 경비 계획은 범국본 등이 본격 행동에 돌입하기 직전인 9일 오후나 되어야 확정될 전망이다. 경비 활동은 경찰이 입수한 정보 상황을 토대로 하지만 아직도 12일 집회에 대한 뚜렷한 윤곽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서 정보과 관계자는 “이럴 것이라는 설만 많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주최측이 일부러 정보를 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회 규모나 동선 등이 파악되지 않아 경력 규모나 배치 장소 등도 확정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택순 경찰청장의 갑작스러운 ‘평화시위 양해각서(MOU)’ 제안도 이처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대비만 하고 있지 구체적으로 나온 계획이 없다.”면서 “앞으로 한두 차례의 대책회의를 더 거친 뒤 최종 경비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김준석기자 wisepen@seoul.co.kr
  • [사설] 재임용 탈락교수 복직 길 넓혀야

    교육부 소청심사특별위원회에서 재임용거부처분 취소 결정을 받은 동의대 교수 3명이 학교측으로부터 복직통보를 받아 오는 9월 2학기부터 다시 강단에 선다. 재임용거부처분 취소 결정을 받은 국공립대 교수 5명이 복직된 적은 있으나 사립대 교수들은 처음일 정도로 해직교수의 강단 복귀는 어렵다. 이를 계기로 부당하게 해직된 사립대 교수들에게도 복직의 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1975년 이후 소명절차 없이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 490여명을 구제하기 위한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지난 2005년 제정됐다. 지금까지 309명이 소청을 제기해 123명이 종결처분을 받았다.54명이 재임용거부처분 취소 결정을 받았으며 29명이 각하,33명이 기각,7명이 취하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취소결정이 복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교원 채용은 학교 고유권한이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이를 근거로 소청심사특위의 결정은 재임용절차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라며 교원 채용은 별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수들은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들은 입시부정폭로, 시국선언참여 등 학원민주화에 나섰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학교측으로선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 껄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동의대 교수들이 17년,19년만에 복직될 정도로 해직교수들은 오랫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교수들에게 다시 법원을 통해 구제받으라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 특별법 정신을 살려 취소결정이 복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 그때 그함성… 5·18 18일 26돌

    5·18민주화운동 26돌인 18일 광주에서는 기념식과 추도제 등 5월 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18일 오전 10시 북구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는 유족과 정부 주요인사, 여야 대표 등 정치인,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개회식과 묵념, 헌화·분향,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 기념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에서는 추모제와 함께 대동굿 형식의 전야제가 열리는 등 추모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5·18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전통제례에 이어 추모사, 추모시 낭송, 추모 노래제창, 헌화·분양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전야제는 이날 오후 6∼11시까지 금남로 일대에서 ‘2006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주제로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시민군들은 5·18의 진행상황에 따라 각본대로 시국선언문 발표, 연좌·연와시위, 투석전을 꾸몄으며 계엄군의 발포에 결사항쟁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풍물패와 일본의 진보적 음악활동 그룹인 ‘우타고에’의 공연 등이 곁들여져 고조된 추모 분위기는 초·중·고생 100여명의 혼불모심,2006광주 5월선언, 시민들의 광주출정가 제창 등으로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이념 뛰어넘은 ‘사제의 만남’

    “아이고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정정하세요. 제 동창이래도 믿겠습니다.”“이 사람아, 나 아직 끄떡없다네.” 9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 휘문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휘문인 큰잔치’를 찾은 70대 제자는 아흔을 바라보는 스승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스승은 진보좌파의 원로 경제학자인 김윤환(85) 고려대 명예교수, 제자는 보수우파의 리더 중 한명인 민병돈(71)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현재 경실련과 민주노동당 고문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1952년부터 2년 동안 휘문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고려대 교수로 옮긴 뒤에는 서슬 퍼런 유신치하에서 진보 경제학계를 이끌었다. 반면 민 전 교장은 89년 노태우 정권 초기 육사 교장으로 재직하다 노 정권의 북방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군을 떠난 뒤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통에 본교를 부산으로 옮긴 휘문학교는 서울 광화문 내수동의 한 건물에 임시 학교를 열었다. 김 교수는 민 전 교장의 고1 때 담임으로 일반 사회(정치)와 독일어를 가르쳤다. 민 교수가 옛날 일화를 떠올렸다.“어느날 헌법 수업을 하는데 자네가 당당하게 손을 들고 ‘우리나라 정치환경이 헌법처럼 제대로 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어왔었지. 나는 그때 ‘헌법은 이상이지 꼭 그대로 실행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주면서 자네가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네.” 두 사람의 인연은 학교를 떠나서도 가끔씩 이어졌다. 가장 극적인 만남은 신군부가 집권하던 80년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134명의 지식인이 서명한 시국선언에 동참해 고려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당시 국보위 대령이던 민 전 교장은 스승을 찾아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논의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4년 동안 교직을 떠나게 된다. 민 전 교장은 “영관 장교의 신분으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고 돌아봤다. 이념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우리 나이엔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지.”라고 호탕하게 웃었고 민 전 교장은 “이념과 상관없이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내게 훌륭한 가르침으로 각인된 분이기 때문에 존경할 뿐”이라고 말했다.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사학법시행령 개정委 ‘반쪽구성’

    개정 사립학교법 국무회의 의결을 하루 앞둔 26일 시행령 개정 작업을 맡을 ‘사립학교법 시행령개정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정부는 27일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개정 사학법을 상정, 의결한 뒤 30일 공포할 예정이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이에 대해 28일 개정 사학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고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개정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첫 회의를 열고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위원회에는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천받은 인사 12명으로 구성됐다.종교계 인사로는 김완두 중앙승가대 교수를 비롯해 원불교 배은종 교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 총무목사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사학법에 반대하는 천주교 및 개신교, 사학단체들은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인사말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종교계의 건학 이념을 살리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회의에서 개정 법률에서 위임된 대통령령 규정 사항을 검토, 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모아 대통령령 개정 사항과 교육부장관 및 정관이 정할 사항 등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사학 단체들이 문제삼고 있는 개방이사의 추천·선임방법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집중 검토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와는 별도로 김광조 차관보를 상황실장으로 하는 ‘사립학교법 시행 대책상황실’을 설치, 운영에 들어갔다. 상황실은 초중등반과 전문대학반, 대학반, 홍보반 등 4개반과 1개 행정팀으로 구성, 개정 사학법 시행 과정에서 신입생 배정 거부 등 일선 학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게 된다. 김 부총리는 이날 낮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통합, 감리교단, 성공회, 복음교단 등 교계 원로인사들을 만나 개정 사학법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한편 진보적 개신교 성직자 180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성공회주교관 회의실에서 ‘현 시국에 대한 2005 기독교성직자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기독교사학이 ‘건학이념 훼손’,‘사유재산 탈취’ 등 문제제기와 ‘학교 폐쇄’를 언급하고 나서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비판했다.김재천 이효용기자 patrick@seoul.co.kr
  • 손지열 선관위원후보자 청문회

    손지열 선관위원후보자 청문회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1일 중앙선관위원에 내정된 손지열 대법관을 상대로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열어 직무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했다. 내년 5월 말 지자체 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화두로 올랐다. 여야는 각자의 입맛에 맞게 선관위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사례를 들어 추궁했다.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은 “선관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행위를 못하게 돼 있는데 최근 김헌무 중앙선관위원이 (야당쪽)시국선언에 동참했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임명권자에게 해촉을 요청하겠느냐.”고 따져물었다. 반면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을 엄중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김무성 의원도 “임좌순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4·30재·보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것은 문제”라고 거들었다. 이에 손 후보자는 “퇴직 후 본인 의사에 따라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가타부타하기 어렵지만 고위직을 지낸 분은 가능하면 직접 안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직을 걸고서라도 선관위의 중립성,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비슷한 선거사범도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잘 되면 80만원 벌금이고, 속된 말로 악질을 만나면 ‘배지’를 떼는 것처럼 선거사범의 양형이 통일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손 후보자는 “판사들이 열심히 토론하고 논의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절대적인 통일은 어려운 것이고, 현재 그렇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보수단체 “千법무 사퇴” 시위 잇따라

    보수단체 “千법무 사퇴” 시위 잇따라

    보수 단체들이 18일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과 검찰총장의 사퇴 파문과 관련해 보수연합체를 구성하고 천정배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일제히 강도높은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자유주의연대 등 8개 보수 단체는 이날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뉴라이트네트워크’ 창립 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야기된 혼란이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이번 혼란에 책임있는 천 장관도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제2 시국선언 애국시민 모임’도 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인사 약 1만명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을 통해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비판했다. 선언문에서 “친북ㆍ좌익교수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좌파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건국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국기를 흔들고 있다.”면서 “한·미동맹이 파국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임에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강영훈·이회창·현승종 전 국무총리 등 전직 각료 76명과 전직 국회의원 205명 등 9500여명이 참가했다. 보수 단체인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도 교보빌딩 앞에서 천 장관 사퇴 촉구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가졌다. 시민회의는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줘야 할 법무부장관이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와 관련해 월권적인 지휘권 행사로 오히려 이를 앞장서서 훼손했다.”면서 “검찰총장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해 천 장관이 더 이상 그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자유청년연대도 이날 오후 7시 ‘북한민주화 촉구 호국영령 추모 촛불행사’를 가졌으며 국민행동본부도 서울역 광장에서 대정부 비난집회를 열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정치플러스] 전직3부요인등 18일 시국선언

    전직 3부 요인과 전직 장관 등 각계 인사들은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권 파동 등 최근 일련의 사태와 관련,18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제2 시국선언’을 갖는다. 김수한·김재순·박관용·장경순·정래혁·채문식 전 국회의장과 이일규 전 대법원장, 강영훈·남덕우·노재봉·신현확·이영덕·정원식·현승종·황인성 전 국무총리 등 전직 3부 요인 외에 전직 장관 76명, 전 국회의원 205명, 예비역 장성 642명, 전직 대사 48명 등 각계 인사 9590명이 선언에 참여했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 [빌딩X파일] 종로 한국기독교회관

    [빌딩X파일] 종로 한국기독교회관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은 그 명성이 명동성당에 뒤지지 않는다.70년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타올랐던 곳이다. 기독교회관의 주소는 종로구 연지동 136의 46이다. 종로 5가 사거리에서 대학로 방향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대지면적 620평에 지하 1층 지상 10층 연면적 2만 6000여평에 달한다.1967년 10월에 착공,69년 11월에 완공된 뒤 70년 1월에 문을 열었다. 원래 뉴욕 선교본부 소유의 땅에 연세대와 세브란스 병원, 한국기독학생총연맹 등의 출연금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기독교장로회가 1대 주주이고, 기독교회관 관리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회관은 준공 당시만 하더라도 삼일빌딩, 조흥은행 본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고층 빌딩이었다. 기독교회관에서 처음으로 민중의 ‘복음’이 울려퍼진 것은 73년.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는 목요기도회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이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으로 박형규, 권호경 목사 등이 구속되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도회도 여기서 계속됐다. 80년대 이후에도 기독교회관에서는 민주와 통일을 외치는 각종 시국선언과 시위가 이어졌다.80년대 후반부터 각종 시민사회단체까지 기독교회관에 둥지를 틀었다.90년대 후반 많은 단체들이 근처 새 건물인 기독교연합회관 등으로 이사를 갔지만 이곳은 여전히 ‘민주 성소’로 남아 있다. 현재는 알로에업체, 법무사·세무사 사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등 기독교단체들도 많이 입주해 있다.1층에는 기독교서회와 꽃집, 사진관, 매점 등이 들어서 있다. 임대료도 평당 보증금 연 60만원에 월세 5만 5000원 정도로 주변 빌딩에 비해 싼 편이다. 중앙냉난방 시설을 갖추는 등 리모델링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은 2층 대예배실이다. 평소 시민사회단체의 시국선언이나 심포지엄 장소로 애용되는 대예배실은 주말이면 결혼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된다. 요금이 9만 9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대예배실 옆에는 각종 모임과 회식을 할 수 있는 서울웨딩부페도 자리잡고 있다.1인당 2만원대 뷔페를 300여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4500원짜리 한식 뷔페를 내놓는 평일 낮 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대동아 공영권’ 반박할 논리 있는가

    지난 한 주 ‘한승조 파문’이 한국을 급습했다. 한승조 파문은 단지 군사독재에 찌든 노학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아니다. 한국 극우의 심중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어진 지만원-조갑제의 글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씨가 야만적 자본의 논리인 ‘약육강식’을 내세웠다면, 조씨는 이념의 극한대립을 강조하는 ‘반공주의’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 때문에 일부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는 “70대 정치학자치고 순진했다.”는 말이 나온다. 내놓고 말 못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적 우익의 실상을 ‘단 한번에 화끈하게’ 드러냈다는 뜻이다. 보수진영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한승조를 공동대표로 ‘모셨던’ 자유시민연대는 “우리도 분노한다.”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나선 ‘교과서포럼’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우리와 한승조-조갑제식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비교되는 것 자체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노무현정부=좌파’라는 도식을 내세운 보수언론들은 사실전달에 충실한, 간략한 기사만 내보냈다. 물론 비판사설도 실었다. 그러나 이는 ‘원로들의 시국선언’이나 ‘뉴라이트 운동’,‘자유주의 세력 결집’이란 타이틀로 극우세력의 반동적 태도까지도 비중있게 다루던 모습과 다르다. 지만원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보수언론을 지명하면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는 것에 실망했다.”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평소 지씨 같은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승조 파문이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결론으로만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한승조의 발언 내용에 앞서 ‘수준과 형식’을 문제삼았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걸려 있는 현실에서 일본 극우 매체에, 수준 이하의 표현까지 써가며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말 소신이었다면 먼저 한국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했어야 했다.”면서 동시에 “우리 역시 분노하기보다 그런 식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MBC 100분토론에서 공창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같은 케이스라는 것이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이 교수의 정치적 위치는 비판하면서도 논리에 대해서는 “일점일획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 우익의 주장은 결국 대동아공영권의 논리, 아시아해방전쟁의 논리의 변형인데 우리가 이것을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반박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대동아공영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논리를 우리가 생산해냈느냐.”는 반문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학술의 장에 던져” 대논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현재 상황을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한국의 우익 자체가 당황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적인 물량주의로만 따진다면 한승조식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만 말하기 어렵다.”면서 “우리와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타이완 등은 실제 그런 논리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이 문제가 지나친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내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승조식 주장에 당연히 동의할 수 없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논리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덜 됐다는 문제도 다뤄져야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인 것으로 단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 아시아 민족주의 논의와 연계해서 접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한승조 파문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에 먹혔다면 1917년에 조선은 독립했을 것”이라거나 “반공블록 때문에 독일에서도 나치전범 처리와 홀로코스트 문제가 흐지부지될 뻔했다.”면서 한승조-조갑제류의 주장을 “학문적·논리적 엄밀성이 전혀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임 교수는 너무 흥분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미 일본 우익 가운데 한승조류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많다.”면서 “그런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을 놓고 한국이 결집하고 그 핑계로 일본 우익이 다시 결집하는 악순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화 혹은 발전모델을 우선가치로 삼는 ‘역사주의의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언젠가는 제기될 문제였다는 점에는 공감을 나타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교수로 NGO 활동가로 되돌아 온 김성훈 前농림부장관

    교수로 NGO 활동가로 되돌아 온 김성훈 前농림부장관

    김성훈(65) 전 농림부 장관을 문득 떠올리게 됐다. 쌀시장 개방 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분야의 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넣어 만남을 청한 건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6년전 장관과 기자로 처음 만나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그는 다변(多辯)의 재담가였다.‘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많겠다.’는 요량이 더 컸던 듯하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그와 세 시간여를 마주 앉았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몰랐던 사실…‘농민가’를 쓰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얼른 “예일대 교수지요.”란 대답이 나온다.(그는 중앙대 교수다.) ‘어, 그랬나….’ 순간 얼떨떨했다. 그러자 “예전에 하던 일, 그대로 하니 예일대 교수지요.”란 풀이를 붙인다. 어색하기 십상인 6년의 시차를 그는 이렇게 쉽게 뛰어넘는다.DJ(김대중) 정부의 첫 농림부 장관(1998년 3월∼2000년 8월)으로 30개월을 장수한 뒤 원래 자리인 중앙대 교수로,NGO 활동가로 되돌아왔다는 얘기다. 이전과 차이라면 직함이 더 많아지고 더 바빠졌다고 한다. 경실련·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 NGO의 대표자리만 네 개이고, 여기에 고문이나 이사직함까지 더하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는 지금껏 우리 농촌·농업문제의 이론가이면서 행동가로 진력해 왔다.1990년대 초반 UR협상 반대논리를 줄기차게 제기하며 정부를 맹렬히 공박하는 바람에 ‘신운동권 교수’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로가 학창시절(서울대 농경제학과 58학번)부터 본격화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서울 농대의 전통적 이념서클로 유명한 ‘한얼’을 조직한 이가 바로 그였다. “일화 좀 들려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뜸을 들이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80년대 시위건, 집회건 모였다 하면 불렀던 ‘농민가’다.“다른 동기와 함께 작사했지요. 원래는 한얼에서 분화한 농사단(農士團)의 단가로 만들어 불렀던 노랩니다.2절 첫 가사가 ‘붉은 태양 솟아오르는∼’인데, 언제부턴가 ‘밝은 태양∼’으로 바뀌더군요.” 그랬나…. 고개를 끄덕이며 보니 그는 새삼 감회어린 표정이 되어갔다. ●허문도와의 인연 신군부 ‘3허(許)’씨 중 한 사람인 허문도(57학번) 전 통일원장관과는 학창시절 친구라는 얘기도 뜻밖이었다.“농대 도서관 책의 절반은 허문도가, 절반은 내가 읽었지요. 조용하고 그다지 말이 없었는데, 주로 역사와 철학쪽 책을 탐독한 걸로 기억됩니다.” 김 전 장관은 그로부터 20여년 뒤 전두환 정권의 실세로 부상한 그와 다시 만나게 된다.“80년 5·18 사건 이후 어느날 요정으로 부르더군요.‘청운의 꿈을 같이 실현하자.’고 합디다.” 김 전 장관은 “악어의 눈물이라도 좋으니 5·18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뿌리쳤다고 한다. 그즈음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겪게 된다. 허씨가 자기 몰래 이름을 올렸던 국보위 농업분야 전문위원직을 끝내 마다한 데다,‘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서명한 일이 빌미가 됐다.“신병처리가 어떻게 될지 몹시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풀려나더군요. 아마 허문도가 힘을 썼던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내던진 장관직 그는 장관직을 물러날 때 남다른 과정을 거쳤다. 떼를 쓰다시피 물러나겠다고 매달렸다. 김종필 총리와 이한동 총리에게 한번씩 사표를 제출했지만 “DJ가 아직은 생각없는 것 같다.”는 이유로 반려됐다고 한다.2000년 총선을 앞두고 축협통합 문제와 구제역, 동해안 산불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을 때다.“동가식 서가숙하며 뛰어다니는데 이빨이 몹시 아프더라고요. 그냥 진통제로 버티며 지냈는데 어느날 앞니 5개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4개가 더 빠지더군요.” 병원에서 찍은 이빨 사진까지 들고 가 “밥도 못 먹을 지경인데,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 총리에게 호소하기도 했지만 “난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만 들었다.‘DJP 연합’이 재개되고 농림부장관직이 자민련 몫으로 조정된 뒤에야 ‘가까스로’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 설치는 실정(失政) 쌀 시장 개방 협상으로 화제를 돌리자 김 전 장관의 얼굴빛이 달라진다. 웃음이 사라지고 표정과 목소리에 노기(怒氣)까지 서렸다. 그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는 바람에 계속 잘못돼 가고 있다.”고 단호하게 비판했다.“외교력과 협상력의 부재로 중국에 지나치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농민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국가이익을 챙기는 시나리오와 국내 농업대책 마련이 동시에 필요한데,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통상교섭본부 내에 농업 전문가가 없는 현실도 문제지요. 장관이 바뀔 때마다 통상문제와 관련한 멤버가 교체됐는데 이래서야 협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가 몸담은 DJ 정부에 대해서도 톤을 높였다.“그때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한 것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건 실정이에요. 미국 무역대표부(USTR)처럼 힘이 막강하면 몰라도, 우리처럼 수세적 협상을 해야 하는 나라는 한 곳에 권한을 모아주는 것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세화 협상에 대해선 결연한 태도다.“지금 그걸 왜 합니까.DDA 협상에서 농산물 관세 한도설정 등 세부원칙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관세화 협상을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지난해 멕시코 칸쿤 WTO 각료회의에서 자결한 이경해씨와의 인연을 어디선가 들었다. 자결하기 하루 전날 유언을 남겼는데 김 전 장관에게 “둘째딸을 맡긴다. 결혼식을 잘 치러줄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가을 치러질 결혼식에 김 전 장관이 주례로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쌀 시장 개방 협상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김 전 장관의 애정 어린 당부와 비판을 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저녁에 (서울 서초동)정토회관에서 강연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일어서는 그의 표정은 만날 때와 달리 어두워져 있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反환경 정책 난무”

    “反환경 정책 난무”

    “현재 대한민국은 반환경정책이 난무하는 ‘환경비상시국’이다. 적극적인 개선책 마련을 촉구한다.” 시민·환경단체들이 정부의 환경정책 부재를 꼬집으며 비상시국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규모 택지개발, 골프장 건설 완화 발표 등 현정부의 환경정책은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정부의 환경정책 부재를 비상시국으로 간주하고 향후 전면적이고 집중적인 대응에 나설 태세다. 특히 환경운동연합은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주민피해 사례를 알리고 무분별한 골프장 건설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노(NO)골프 선언’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마구잡이식 개발정책으로 환경파괴가 자행되는 등 최악의 위기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정부의 신개발주의에 맞서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들은 10일 YMCA강당에서 환경비상시국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신개발주의 공동대응 대표자회의 열어 비상시국회의 김혜애 사무국장은 “전국에서 참가단체들의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공동대표 선출 등을 통해 반환경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기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은 최근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대규모 택지개발, 신도시개발 계획 등 환경파괴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경기경실련, 경기환경운동연합, 한국YMCA경기도협의회, 녹색자치경기연대 등 단체들은 “각종 개발정책으로 수도권이 회색도시화되고 생태계가 유린되고 있다.”면서 “정부는 반환경적인 수도권 개발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정부는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서 “시대에 따른 정책을 펴기보다는 관행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전국적인 환경비상시국회의 개최에 보조를 맞춰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지속적인 기구로 ‘경기환경보전공동행동’을 결성하기로 했다. 경기도 전역의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집행부와 공동대표단을 구성,12일 대표자 회의에 이어 도청에서 결성 기자회견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경기YMCA협의회 박은호 사무국장은 “지역단체들의 연대체 결성을 계기로 도내에 집중되는 각종 개발정책에 대한 견제·감시 역할이 충실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골프장건설로 경기부양 失 많아” 시민·환경단체들이 분개하는 데는 정부의 골프장 추가 건설 완화정책 발표와 맞물린다. 정부는 지난 9월 전국 230개 골프장에 대한 추가 건설을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골프장 건설을 통해 27조원의 부대효과와 4만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환경단체들은 “전국의 골프장만도 181개나 된다.”면서 “여기에 공사 중이거나 허가된 골프장까지 합치면 280여곳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을 ‘골프왕국’으로 만들려는 처사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골프장 건설로 경기부양책과 일자리 창출 등을 내놓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방적이고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이 이쯤되자 정치권도 방안 찾기에 나섰다. 안민석(열린우리당)·이재오(한나라당)·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 등은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참여정부의 골프진흥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환경운동연합 “골프장은 푸른 사막” 골프장 추가 건설 저지를 위해 발벗고 나선 곳은 환경운동연합이다. 이 단체 역시 환경파괴 정책에 대한 시국선언과 함께 ‘전국 골프장 난립현장 조사보고’를 통해 골프장 건설이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들은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노골프 선언식’을 가졌다. 선언식에는 환경운동연합 서주원 사무총장과 김광철 환경교사모임 회장, 김성원 여주전교조 지회장을 비롯, 전국 환경교사 20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골프장은 교과서에도 주변 생태계 훼손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푸른 사막’이라고 표현돼 있다.”면서 “정부가 전국을 사막화시키는 골프장 건설 규제완화 방침을 밝힌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참석 교사들은 “미래세대에게 황폐한 푸른 사막이 아니라 울창한 푸른 숲을 물려주고 싶다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측은 노골프 선언을 전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고 지속적인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서울광장]대통령의 ‘정치적 침묵’/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대통령의 ‘정치적 침묵’/이목희 논설위원

    지난달 초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힌 후 나이 지긋한 분들과 모임을 가지면 대화주제가 거의 비슷했다.노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이전과 달랐다.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험담이 쏟아지곤 했다.어떤 이는 이런 말도 했다.“두고 보라.젊은이들만 촛불집회하는지 아느냐.우익이 열받으면 무섭다.” 광복 직후 극우집회,백색테러가 더 극렬했다는 사례까지 들었다. 보수 인사들의 반발은 계속 축적돼 오다가 국보법 논란으로 비등점을 맞은 듯했다.단순한 비난에 그치면 괜찮다.행동으로 가는 수순이 보였다.“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좌경화를 막아달라는 사람이 속속 늘고 있다.” 보수단체 관계자는 자발적 참여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 인사들의 주장은 정말 엄포만이 아니었다.지난달 9일 1400여명의 보수원로들의 시국선언이 나왔다.이달 4일에는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10만여명이 모인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가 열렸다.엊그제는 부산에서 3500여명이 모인 시위가 있었다.숫자에서 진보쪽 집회를 압도하고 있다. 서울시청앞 집회에 참석했던 한 선배를 만났다.행정부 고위관료를 지낸 이다.“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열 받아서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물대포를 뚫고 청와대로 가려고 방수옷까지 입고 나갔다.” 왜 이들은 이렇듯 흥분했을까.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상당수 핵심보수층은 이제 기득권자가 아니다.과거에는 권력과 돈과 명예를 누렸을지 몰라도 지금은 흘러간 물이다.예전과 비교해 처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다.이들을 자꾸 기득권층이라고 몰아붙이니 열받는 것이다. 현직에 있는 보수층은 참여정부가 하향평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오해건,사실이건 그렇게 느끼고 있다.국회의원,검사,외교관,의사,언론인,그리고 서울 강남 거주자 등을 만나면 그런 불만을 털어놓는 이가 꽤 된다. 개혁은 해야 한다고 본다.그러나 보수층의 반발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무것도 안 된다.국보법 문제를 보라.당초에는 야당도 전향적 개정을 다짐했었다.조용히 추진하면 최소한 대폭 개정은 쉽게 합의됐을 텐데,지금은 그마저도 불투명해졌다.정부·여당이 정권의 명운을 걸지 않는 한 국보법 폐지는 쉽지 않게 됐다. 사태 타개의 단추는 노 대통령에서부터 꿰어져야 한다.다행히 국보법 발언 이후 한달 이상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언급은 않고 있다.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노 대통령이 지난달 5일 MBC 대담에서 국보법 폐지 후의 대책,즉 형법 보완이나 대체입법을 강조하려 했는데 질문이 다른 분야로 넘어가면서 폐지에만 초점이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고 아쉬워했다.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인도·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국보법,과거사 문제는 국회에 맡기고,당분간 경제·외교·국방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만난 한 분은 “대통령이 정치 얘기를 않으니까,비판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의 독특한 강조어법이 반대파를 더욱 자극했던 셈이다.한껏 고조된 보수 인사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대통령의 정치적 침묵’이 응급약이다.마침 연말까지 해외순방 일정이 빡빡하다.대통령이 국내정치 현안을 잠시 접더라도 할 일이 많다.이왕 ‘분권정치’를 약속해놓은 터이니 국회관계는 총리에게 맡겨도 된다. 경제를 살리고,과거사도 털고,국보법을 손질하고….모두 해야 할 일들이다.어느 때,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를 짚어내는 것이 정부·여당에 주어진 책무다.시간을 갖고 개혁프로그램의 실현 수준과 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열린세상] 푸르른 가을, 그리운 공동체/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가을이다.하늘의 가을은 절실하게 푸르러서 순정한 무엇을 담고 있는 듯 더할 수 없이 맑다.한번 톡 쳐서 소리를 듣고 싶고,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지상의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의 지극한 공양을 받아온 감사함을 풍성한 수확으로 예비하고 있다.자연은 이처럼 장엄하고 정직하여 감동을 준다.이 푸른 가을날을 견딜 수 없어 시인은 노래하였던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서정주). 가을은 귀소의 계절이다.한가위가 휘영청 밝은 달과 함께 더도 덜도 없이 고향으로 이끄는 계절이다.고향! 그 얼마나 가슴 벅찬 설렘인가.우리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믿는 곳.고향에서 유년의 우리는 일진광풍을 일으켜서는 구름을 불러 타고 동에 번쩍,서에 번쩍 법석을 떠는 길동이었다.남학생은 총싸움,칼싸움으로 고향 율도국을 지키는 병사.여학생은 야무지게 치마를 부여잡고는 노래와 율동으로 고무줄을 출렁이는 요정이었다.생각만 해도 가슴을 치는 미열로 예쁜 흥분이 이는 곳.만남과 이별에 감격시대의 눈물도,아리랑 고개의 발병도 더이상 없는 시대에서 조우하는 이상한 두근거림.고향은 희·비극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아무리 과장해도 흉해지지 않는 시절과 언행들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을의 고향은 선생님과 부모님이 함께 한다.이제 와 보면 빛날 것도 어두울 것도 없고,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한숨 같은 추억은 왜 이리 그리운 건지.제자를 잘못케 한 선생이 더 나쁘다며 자신을 때리라고 선생님이 들려주신 회초리와 우리들의 통곡.추상 같은 벌 뒤에는 용서와 더 큰 자애가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거지에게도 쟁반이나 개다리소반에라도 밥과 국을 올려놓던 부모님들. 선생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으뜸이고 부모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던 시절.우리의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보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던 이상한 곳에서 전학온 아이도 곧 한 가족처럼 되게 하는 요술쟁이였다.그들은 서로서로의 학연·지연·혈연의 차이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했던 공동체의 전령사였다. 2004년 9월,이 가을에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우리 사회가 서로 신뢰하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하기 힘들 만큼 사분오열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정부시책을 둘러싼 전부 혹은 전무식의 찬성과 반대가 시국선언과 가두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찬성측과 반대측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수백수천의 경찰이 동원된다.국가보안법의 경우 국가의 기본이 뿌리 뽑히므로 손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인권유린,국가 억압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완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핏대를 올린다. 일제시대를 포함하는 역사청산도 박정희라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요설로 그 정신을 훼손해오다가 이제는 우리의 지난 과거 거의 모두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엄정해도 혼란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과거 묻기를 집중과 선택의 기준도 없이,태생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과 국회예산정책처장이라는,행정부와 입법부를 대표하는 책임있는 자리의 최고위 경제전문가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정치)와 시장경제체제(경제)라는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없다.’로 논쟁을 벌였다.이쯤 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공방인 것이다. 논쟁은 다양하고 치열해야 한다.성역과 금기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그러나 이런 백가쟁명 속에서도 우리사회 구성원의 공동체감 형성과 고양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쪽은 우선 정부와 여당이다.리더십의 부재는 네 탓이 아니고 내 탓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 진보원로 70명 국보법폐지 선언

    진보원로 70명 국보법폐지 선언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측 원로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각계 진보원로 70여명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성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원로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국가보안법 폐지반대’를 선언한 보수원로 1400여명은 지난 15일 ‘시국선언 9·9모임’을 결성하고 전국 대도시를 순회하며 시국강연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 진보원로의 선언에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전 민변 회장 이돈명 변호사,전 교육부총리 한완상 한성대 총장,전 감사원장 한승헌 변호사,참여연대 공동대표 최영도 변호사,이영희 한양대 대우교수,함세웅 신부,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형규 목사,전 해인사 주지 염공 스님,김중배 전 문화방송 사장,소설가 최일남씨,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작”이라면서 “국제인권조약에도 위배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할 어떤 명분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영희 교수는 보수원로의 시국선언에 대해 “개인적 영달과 축재,권력을 위해 국민의 자유와 창조력을 묶었던 세력이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원로’라고 나와 국가보안법을 유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함세웅 신부는 “일부에서는 국론 분열을 염려하지만 56년간 시행된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국민이 안다면 폐지하자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백 소장은 “나이들면 다 원로냐.”며 보수원로들을 비난했다.반면 보수원로들은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모임을 갖고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순회 시국강연회를 갖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또 ‘9·9모임’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조직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설] 지금 사회원로가 해야 할 일

    어느 시대건 사회 갈등이 깊어지면 국가원로를 찾게 된다.최근 국가보안법 개폐,과거사 규명 문제가 이념 논쟁으로 번지면서 나라가 시끄럽다.성향은 다르지만 사회원로급 인사들이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그러나 사회원로로 지칭되려면 살아온 전력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원로로 모실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착잡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사회원로는 국가사회를 통합하고,발전시키는 길을 제시해야 어른으로 공경받을 수 있다.지난 9일 보수성향 원로 1400여명의 시국선언은 적절치 못한 면이 있었다.국보법 폐지 반대를 넘어 6·15남북공동선언 파기까지 주장한 것은 지나쳤다.지금까지의 남북관계 개선을 없던 일로 하고 냉전 대치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무리가 있었다.이 보수 원로들은 엊그제 운영위원회를 만드는 등 상설조직을 갖춰 가고 있다.전국 시·도를 돌면서 시국강연회를 갖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접점을 찾아주는 것이 정치권과 국회에 주어진 과제다.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도리어 갈등을 부채질하고 세확산에 골몰하고 있다.여기에 원로들이 의견을 표명하는 정도를 넘어 정치적 세몰이에 가세한다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스럽다.어제는 진보 성향의 원로들이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보수 원로들에 맞선 영입 대결이라든지,투쟁·시위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보법을 둘러싼 찬반 양론은 대체로 표명됐다.그 문제로 더이상 사회를 두동강 내서는 안 된다.국보법이란 명칭이 사라지면 마치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원로들은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줘야지,잘못된 과거를 옹호하려 해서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없다.무한투쟁에 나서고,세몰이에 열중하는 정치권을 점잖게 꾸짖어 국회에서 대화로 타협점을 찾아나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원로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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