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권력의 자기기만
‘내 사랑 내 귀에 속삭였네/ [사랑은 나의 권력]/ 나는 내 사랑의 귀에 속삭이네/ [내 권력이 약해지지 않도록]’.최근 문예지를 보다 눈에 띈 정현종시인의 시구절이다. 사랑은 나의 권력,내 권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이 구절은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떠올리게 했다.권력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의 일상과 몸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를 간취한 아름다운 구절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둘만 모여도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고 여기에는권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동물의 왕국’에서도 약육강식의 권력 메커니즘은 마찬가지다.그렇다면 그 권력을 어떻게 유통시키고 관리하느냐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리라.
체납·외상·연체·접대 따위로 얼룩졌던 모지구당 위원장이나,개인 용도로 공관을 사들이고 공공기물을 사용했던 모 도지사,모피코트를 둘러싼 고관부인에 대한 기사는 정치권을 둘러싼 권력 남용의 깃털에 지나지 않음을 누가모르겠는가.최근 문단을 둘러싼 비판과 반성,그 이면에 자리한 냉소와 풍문의 말끝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려왔던 말이 권력이었다.대학사회의 임용 비리에서도 누구의 권력이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가가 관건이라고 했다.
“안면이 창녀를 만든다”는 어느 소설가의 일갈처럼,밥그릇과 안면에 좌우되는 편의와 요령,편법과 변칙으로 유통되는 권력의 현주소를 들먹이는 건새삼스럽다.권력의 더욱 볼썽사나운 모습은,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면서 스스로가 권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자기기만과 이등품 스스로가 일등품으로 행사하는 자기기만에 있다.자신의 위반은 운용의 묘(妙)고 타인의위반은 권력 남용이라는 생각,자신의 주장은 비판이고 타인의 주장은 폭력이라는 생각,자신이 얻은 것은 실력이고 타인이 얻은 것은 탐욕이고 수혜라는생각들이 권력을 더욱 요령부득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권력에 대한 집착은 자기 결핍과 비례한다.자기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지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행사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소외시키는 또다른 결핍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우리가 권력이라는 힘으로 타인을 지배하기 전에 자기 시선과 목소리부터 웅숭깊게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사랑이 그렇듯,권력은 내게서도 완성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끝별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