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골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새 출발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가전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22
  • 94세에 프랑스 시골 시장 재선 도전, “젊은이들은 차례 기둘려”

    94세에 프랑스 시골 시장 재선 도전, “젊은이들은 차례 기둘려”

    “죽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랍니다.” 올해 94세의 안드레 트리가노 할아버지는 이미 공직에 몸 담은 시간만 50년이 다 됐다. 프랑스 피레네 산맥 자락에 1만 6000명이 사는 파미어스 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그는 지난 3월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에 따른 봉쇄령 탓에 3개월 가까이 미뤄진 오는 28일(이하 현지시간) 2차 투표에서 연임을 노리고 있다고 영국 BBC가 20일 전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무사히 마치면 101세가 된다고 방송은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어르신들이 작은 시골 마을 시장에 취임하는 일이 아주 드물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선거에도 보르도 근처의 한 마을에서 98세 어르신이 도전한단다. 하지만 트리가노만큼 다채로운 경력을 갖춘 이는 찾기 쉽지 않다고 방송은 전했다. 1925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나치 독일의 점령을 경험했다. 알제리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었던 부모는 한 건물에 살던 경찰관으로부터 게슈타포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찾아올테니 빨리 피신하라는 조언을 듣고 급히 피했다. 가족은 아리에게 산악 지대에 숨어 지냈다. 어린 트리가노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했다. 그는 서류를 위조해 연합군의 보병이나 항공기가 격추된 공군 장교들이 스페인으로 달아날 수 있게 도왔다. 세 차례나 체포됐지만 운좋게도 목숨을 부지했다. 종전 후 남부에 남아 캠핑 비즈니스로 돈을 모았다. 아버지와 형 질베르트가 전쟁 전에 했던 텐트 제조 일과 관련된 일거리를 찾았다. 막 사업을 시작한 클럽 메드에 텐트를 공급하고 재정을 돕거나 경영을 떠맡았다. 미군이 남기고 간 10인용 텐트를 값싸게 사들여 마요르카, 코르푸나 튀니지 뎨르바 등의 휴양지에 설치하는 사업으로 수완을 발휘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가 일년에 3개월씩 휴가를 지내는 것을 권장하면서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1970년대 ‘캠핑 하면 트리가노’란 슬로건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큰 재미를 봤다. 목돈을 쥔 그는 시트로엥, 캐딜락, 트라이엄프, 롤스로이스, 엑스칼리버 등 120대의 빈티지 승용차로 콜렉션을 구성했다. 차츰 정치에 눈을 돌려 아리에게 지역에서 가장 큰 파미어스 시장으로 25년을 일했다. 그 전에 마제레스란 더 작은 마을의 시장도 24년이나 지내면서 동시에 파리 시의회 의원을 겸직했다. 여느 사람이라면 은퇴를 수십 번 했을 나이인데 그는 왜 또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욕심을 부릴까? 끝내지 않은 일들이 많다고 했다. 파미어스 마을의 중심을 혁신해 우주항공 산업의 부품을 공급하느라 초과 근무를 일삼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매일 밤 이 마을을 바꿀 아이디어 수십 가지를 생각하며 잠들고 아침에 깨어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적지 않은 나이는 공격 포인트가 된다. 마릴린 두삿은 20명의 직원을 데리고 제빵점을 운영하는데 트리가노의 적수 중 한 명이다. 그녀는 과거에 트리가노가 한 일은 많지만 점점 더 고집쟁이 어르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진행됐을 때 “내가 똑똑한 것 같으냐? 내 말이 이치에 맞는 것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젊은 후보들은 차례를 기다리면 된다고 기염을 토했다. 할아버지는 “10층짜리 건물을 짓는다면 5층 다음부터는 설계를 바꾸지 않는다. 그렇게 설계를 바꾸는 건 말이 안된다”며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어 윙크를 하며 자신이 시장부터 지방의회와 국회의원까지 19차례 선거를 치러 딱 한 번 낙선했을 뿐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소음공해 소송서 ‘아침마다 울 권리’ 쟁취한 佛 수탉, 8개월 만에 세상 떠나

    소음공해 소송서 ‘아침마다 울 권리’ 쟁취한 佛 수탉, 8개월 만에 세상 떠나

    아침마다 당당히 울 권리를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수탉 모리스가 세상을 떠났다. 모리스의 주인 코린 페소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남서부 휴양섬 올레롱에 있는 자택에서 한 라디오 방송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달 초 그(모리스)가 닭들 사이에서 흔한 호흡기병인 코린자 때문에 만 6세의 나이로 숨졌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페소는 당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사람들이 충분히 걱정하고 있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부고 소식을 지금까지 미뤄왔다고 밝혔다. 이날 페소는 “우리는 모리스가 닭장에서 죽어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했다”면서도 “모리스는 집 마당에 잘 묻어줬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또 “코로나19가 수탉보다 중요하다”면서도 주민들이 모리스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새로운 수탉을 사들이게 된 사연도 공개했다. 페소에 따르면, 새로 온 수탉 역시 아침마다 울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수탉은 우리에게 모리스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모리스는 시골 사람들의 자랑이자 상징이며 영웅이었다고 말했다.모리스가 생전 소송에 휘말린 것은 몇 년 전 은퇴한 노부부가 근처 별장을 얻어 이사오면서부터였다. 이들 부부는 모리스가 아침 6시 30분만 되면 큰 소리로 울면서 소음 공해를 일으킨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네 살이었던 모리스가 안 됐다며 세계 곳곳에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졌고, 온라인에서는 모리스를 구하자는 청원에 14만 명이 서명했다. 모리스의 변호인은 “공해가 인정되려면 소음의 정도가 지나치거나 영구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모리스는 두 경우 모두 해당하지 않았다”며 “그는 시골 마을의 자연 속에서 그저 자신답게 행동한 것”이라고 변론했다. 결국 재판부는 모리스의 날개(?)를 들어줬다. 지난해 9월 로슈포르 지방법원은 모리스에게 “수탉으로서 시골에서 울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이웃집 노부부에게 정신적 피해 배상금으로 1000유로(약 130만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모리스는 승소 소식에도 우쭐거리지 않고 승리의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 겸손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35년간 같은 마을에서 살아온 페소 역시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모든 이에게 승리다. 그들에게 선례가 되길 바란다”며 판결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었다. 사진=AFP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교묘한 편견 옥죄어 와도, 여성은 이제 지지 않는다

    교묘한 편견 옥죄어 와도, 여성은 이제 지지 않는다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들 가족·친척·시가 속 미묘한 갈등에도 스스로 삶 선물하려 가시밭길 선택 ‘달려라 아비’를 쓴 김애란 작가는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에서 힌트를 얻자면, 강화길의 소설은 막힌 혈을 뚫는 바늘 같은 존재다. 그의 여성 서사는 일방향적이지 않고 다층적이며, 그의 소설 속 여성은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적이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는 바늘 같은 정확함이 주는 위로의 장이다.‘화이트 호스’ 속 여성 인물들은 더이상 모르고 당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해 한결 넓어진 이들의 시야에는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뿐 아니라 소문과 험담, 부당한 인식과 관습 등이 포착된다. 그 교묘한 실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부터 소설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지만,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알기 전엔 약자였으되 알고 나서는 더이상 약자가 아닌 여성이 벌이는 자기 주도적인 행동들. 여기서부터가 강화길 소설이 주는 숨막히는 서스펜스다. ‘화이트 호스’의 포문을 여는 ‘음복’은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다. ‘나’는 새댁으로서 처음 참석한 시가 제사에서 무례한 언사를 쏘아붙이는 시고모와 맞닥뜨린다. “아기 말이야, 아기. 안 낳아?”(12쪽)라며 대뜸 쏘아붙이는 어느 집안에나 있는 악역 같은 사람. 그러나 자신의 친정에서 벌어지는 외삼촌과 엄마 사이, 미묘한 갈등 관계 등을 떠올리던 ‘나’는 거듭되는 고모의 공격에도 속 편한 자신의 남편 정우가 이 집의 진정한 악역임을 깨닫게 된다. ‘가원佳圓’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느닷없이 사라진 할머니를 찾기 위해 살아생전 할아버지의 기억을 소환하는 ‘나’. 무능력하지만 사람 좋았던 할아버지와 생활력 좋지만 그악스러웠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대를 건너뛸 것도 없이 흔한 우리네 엄마·아빠 서사다. 악역을 자처한 할머니 또는 엄마 때문에 우리의 오늘이 있음을 이제는 알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73쪽) 이어지는 소설 ‘손’이 만드는 풍경은 그로테스크하지만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남편의 해외 파견으로 딸 하나 데리고 시어머니가 있는 시골 마을에 전근 온 초등학교 교사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딸을 수성하려고 한다. 시어머니와 마을 이장과 ‘연자네’라 불리는 아주머니 사이의 미묘한 삼각관계, 이들의 손자들을 둘러싸고 재생산되는 권력관계를 감지한 ‘나’는 편집증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그의 행동이 과한가 싶으면서도 이해되는 까닭은 비슷한 위험에 우리 모두가 노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와 ‘오물자의 출현’, ‘화이트 호스’에서 느끼는 감정도 매한가지다. 책의 끝을 장식하는 작품 ‘카밀라’에 나오는 언설처럼 “삶이란, 누군가에게 선물받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244쪽)다. 그런 점에서 ‘화이트 호스’는 삶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분투하는 여자들의 얘기다. 그렇다면 삶을 선물받은 ‘음복’ 속 남편 같은 이의 삶은 행복한가. 기꺼이 내가 만드는 가시밭길을 택하겠다는 여자들을 보면서 책 제목 ‘화이트 호스’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금천 한내천 둔치 테마풍경길 조성

    서울 금천구가 한내천 둔치를 활용한 테마풍경길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 한내천은 안양천 중 금천구를 지나가는 구간을 말한다. 구는 2023년까지 한내천 전 구간 7.6㎞에 시골풍경길, 도시풍경길, 생태체험길 등 3가지 테마를 가진 풍경길을 조성한다. 지난해 독산보도교 주변 유채꽃길 등 시골풍경길을 만들었다. 또한 한내천의 유명 명소 십리벚꽃길과 연계해 광명대교~철산대교 구간에 수국정원, 나비정원, 건강공원을 포함한 도시풍경길도 조성한다. 생태체험길은 치유의 숲과 생태탐방로를 갖춘 공간으로 2023년까지 조성한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여름은 왔다. 6월 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베를리너들은 성급히 옷을 벗고 공원에 드러누웠다. 꽁꽁 싸맸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널고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멍든 몸을 뜨거운 햇살에 지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었다.7월의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닌, 5월부터(!) 공원에서 저러고들 있으니 계절의 경계가 무색했다. 절로 눈길이 갔지만 동네이웃처럼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루는 나도 비키니를 챙겨 입고 태닝족에 합류했다. 반듯이 누워 배와 등을 태웠다. 두 시간 남짓 누워 있었는데 벌겋게 살이 익었다. 베를린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느낌이다.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체가 여름에 활기를 띤다. 오전 5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밝고(서머타임 때문에), 해는 밤 9시가 넘어야 진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하늘은 그제서야 짙은 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석양의 끝을 지운다. 유럽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놀라던 초여름의 늦은 일몰, 잊고 있던 유럽의 긴 해가 매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둘 늘어난다. 늦은 밤에 보는 오픈에어 시네마도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베를린에 있는 35곳의 야외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이다. 야외 영화관은 여름 한철 반짝 문을 열고 9월 초면 문을 닫는다. 오픈에어 시네마가 문을 닫는 건 베를린의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다.●‘한여름 밤의 꿈’ 같은 오픈에어 시네마 지난해 여름엔 거의 매주 야외 영화관에 갔다. 이 좋은 걸 베를린 다닌 지 12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처음 해봤다. 야외 영화관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큰 공원 안에 있기도 하고 슈프레 강변의 바 안에 있기도 하고 클럽 옆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의 마리아난 플라츠에 있는 프라이루프트 키노다. 영화관 뒤로는 1800년대에 지어진 멋진 문화공간이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시골 숲속이나 인적 드문 공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연적이고 평온한 바람이 분다. 오픈에어 시네마의 자리는 일찍 온 순서대로 앉는다. 맨 앞자리 몇 줄은 천으로 된 비치의자를 놓을 수 있다. 자리를 사수하려면 한 시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줄을 서 있다가 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치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영화관 안에는 생맥주와 팝콘, 커리 부어스트(소시지) 등을 먹을 수 있는 야외 매점도 (당연히) 있다. 매점의 불빛이 서커스장 조명처럼 발랄하다. 야외 영화는 보통 밤 9시가 넘어야 시작한다. 싱그러운 나무의 냄새를 맡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여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계절엔 아예 즐길 수 없으니까. 커다란 스크린이 야외에 있으니 코로나19의 일상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앉는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정을 하겠지만, 춤도 출 수 없고 디제이도 없이 문을 여는 베를린의 클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를린에서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독일에선 극장뿐 아니라 TV에서 보여 주는 모든 해외 영화에 더빙이 돼 있다. 자막이 익숙한 우리에겐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오디오 북을 듣고 자는 독일인들에게 더빙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문화다. 더빙 문화의 역사도 길어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는 보통 정해져 있는 성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루스 윌리스는 30년 넘게 한 목소리다.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는 원어에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를 두 시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편의점 ‘슈페티’ 앞에서 맥주 한 잔 베를린의 여름이 뜨거워지는 건 슈페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로 알 수 있다. 슈페티는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곳. 동네마다 있고 대부분 24시간 문을 연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는 달리 간단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 담배류, 술을 주로 판다. 종류마다 다 있는 건 역시 맥주. 밤 10시면 슈퍼마켓까지 다 닫는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밤마다 슈페티 앞으로 모이는 건 당연하다. 술을 사서 가게 앞 인도나 벤치,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신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슈페티 앞에는 늘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여름엔 그 열기의 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가게 앞의 긴 테이블과 의자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짜릿하게 전해진달까. “여긴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고 쳐다보면 힙한 바가 아니라 슈페티 앞일 때도 많다. 베를린의 슈페티는 술 취한 아저씨나 돈 없는 어린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힙스터들,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 클럽 가기 전에 취하러 온 젊은 애들, 집 앞에 한 잔 하려고 나온 동네 주민까지 한데 어울려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여름엔 펍보다 붐비는 ‘가맥집’이다.그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바 순위가 있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유명한 슈페티 명소가 있을 정도다. 미테의 로젠탈러플라츠 역 바로 앞 슈페티가 그렇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다국적 만남의 장소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슈페티답지 않게 안에 어엿한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서울의 ‘편맥’처럼 베를린에는 ‘슈맥’이 있다. 슈페티 앞에 사람이 꽉 차 있는 밤을 만나면 베를린의 여름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히피들의 은신처, 크룽커크라니히 옥상 바 날이 좋으면 더 각광받는 곳, 바로 루프톱 바다. 베를린에도 내로라하는 야외 옥상 바가 많다. 대부분은 호텔 꼭대기에 있다. 25아워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몽키바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베를린 동물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다. 베를린을 놀러 오는 여행자들의 인기 리스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미테의 아마노 호텔 꼭대기에도,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부티크 호텔, 소호에도 루프톱 바가 있다. 모두 세련되고 힙한 분위기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호텔 바를 가지는 않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호텔 바보다는 오래돼 보여도 자연적이고 자유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옥상 바가 한 군데 있다. 히피들의 아지트처럼 대접받는 크룽커크라니히 바다. 노이쾰른의 쇼핑몰 꼭대기에 숨어 있는 이곳에는 삐걱대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제멋대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유일하게 이들이 신경을 쓰는 건 아름다운 노을. 그것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쳐다본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또한 최고다. 시야를 막는 고층빌딩 하나 없이 고만고만하게 낮고 많은 지붕 너머로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내다보인다. 이 낮은 지평선 도시와 석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노이쾰른의 아카덴 쇼핑몰 꼭대기로, 한 번에 찾기는 힘든 길을 헤매면서 올라간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관광객의 레이더에서는 여전히 조금 벗어나 있다. ●야외 사우나서 꿈꾸는 ‘이열치열’ 베를린의 여름이 매일 뜨겁고 쨍쨍한 것만은 아니다. 30도까지 치솟다가도 갑자기 13도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7월 말이어도 조용히 가죽재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전기장판만큼은 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으스스한 날엔 목욕가운을 챙겨 바발리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스파 단지처럼 넓은 정원과 실내외 수영장, 마사지실,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가 13개나 있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밴드를 차고 들어가고, 나올 때 쓴 비용을 결제한다. 바발리 안에서는 모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고이 가운을 걸어두고 알몸으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 남자 여자가 ‘깨벗고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독일의 사우나는 혼욕 문화다. 안에 들어가면 계단식 나무의자에 줄줄이 발가벗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매 시간마다 열리는 사우나 프로그램에 맞춰 온 사람들이다. 처음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쳐다보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척도 한다. 하지만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똑같이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체형 없이,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어깨,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바발리의 사우나에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필링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팬티만 걸친 전문 마스터가 들어와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커다란 부채질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뒤쪽 끝까지 골고루 뜨거운 바람을 보내 주는 것이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강하고 경건하게 부채질을 하는 마스터의 몸놀림 또한 이곳 사우나의 관전 포인트다.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2층 벽난로 앞에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바발리는 베를린에서 단연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재 사우나는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야외 수영장에서 나체로 수영하고 정원에 누워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바발리는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후 뻥 뚫린 샤워실에서 샤워하며 이열치열 여름을 나고 싶다. ●공원처럼 산책하는 베를린만의 ‘묘지피서 ’ 베를린에서 공원만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묘지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가 있다. 제각각 다른 크기의 비석과 그 앞에 놓인 꽃들,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평화롭다. 대부분 숲처럼 나무가 많아서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묘지인 걸 안 적도 많다.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면 음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햇볕 좋은 여름이라면? 18세기의 멋진 비석도 구경하고 책 읽고 빈둥거리기 좋다. 베를린 사람들은 묘지에서도 공원처럼 산책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놓고 놀게 한다. 누군가의 묘지가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있다면 추모하는 일도 서글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와 마음을 나누다 갈 듯하다.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그 묘지 안에는 장례식을 치르던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카페로 오픈을 했다. 카페 스트라우스. 내부는 아치형의 천장이 그대로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례식 홀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로 돼 있는 지붕과 빈티지한 카키색의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그 안으로 따사롭게 들어오던 햇살에 낮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죽음이 거쳐 갔고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어느 해 8월, 이 묘지 교회의 작은 정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오전 내내 책을 읽던 아침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여름엔 남자친구와 함께 노트북을 싸 들고 자주 묘지로 갔다. 프란즐러베르크의 오래된 묘지 안에 있는 라이제파크에 가기 위해서다. 검은 비석과 잡풀, 큰 나무들이 울창한 묘지 안쪽으로 죽 걸어 들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볼륨을 줄인’,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나즈막한 목소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이제파크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공원에는 짧은 풀들이 잔디처럼 자라 있고 그 뒤로 무릎까지 오는 잡풀이, 그 뒤로 중간 키의 나무들이, 그 뒤로 가장 큰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풀숲이 무성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인기척이 느껴진다. 풀밭에 누워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살갗이 타 들어갈 것처럼 덥다가도 이 공원 나무 아래에만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없는 베를린에서 호수로 피신을 못 갈 땐 이 공원이 제일 만만하면서도 은밀한 피서지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에 포함된 5G 통신망… 수혜주는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에 포함된 5G 통신망… 수혜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끄는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1조 달러(1215조원)의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인프라 투자에는 전통적인 도로·철도·교량 정비뿐만 아니라 5세대(5G) 이동통신과 시골지역의 광대역 무선망 확충도 포함돼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18일 백악관에서 무선 통신망과 관련한 회의가 예정돼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5G 통신망을 포함한 인프라 투자가 의회에서 통과되면 미국 이동통신 회사들에는 의미있는 영향이 예상된다고 경제 전문매체 배런이 분석했다. 미국은 5G 통신망 확충과 기술 개발이 선진국 가운데 비교적 늦은 편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 지역에 무선통신망을 까는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엔 매력적이지 않아 정부가 나선 것이다. 특히 경제가 온라인에 집중되면서 더 많은 미국인이 초고속망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결정자들의 목표가 되었고, 통신회사들은 통신료 낮추기에 들어갔다. 미국 금융회사 웰스파고의 제니퍼 프리츠슈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디지털 투자의 긴급성이 훨씬 커졌다”며 “농촌 디지털 기회 기금(RDOF)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RDOF는 연방통신위원회가 10년 동안 무선망 서비스가 되지 않는 농촌과 산간 등의 오지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다.5G 통신망 확충 소식에 버라이존과 AT&T 통신기업들도 이날 주가가 올랐다. 프리츠슈는 무선기지국 건설과 네트워크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기업들을 당장의 수혜주로 꼽았다. 반면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5년 동안 5000억 달러를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초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의 초안이 트럼프 정부안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인프라에 더 많은 투자를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그러나 인프라 투자가 경제 활력에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백악관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믹 멀바니는 “인프라 투자는 재원이 실제로 투입되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려 경기 부양을 위해 사용되기에는 정말 정말 어려운 도구”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월드피플+] 10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 270만…69살 시골 할머니의 인생역전

    [월드피플+] 10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 270만…69살 시골 할머니의 인생역전

    70살을 바라보는 멕시코의 농촌 할머니 유튜버가 멕시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멕시코 미초아칸주의 한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 도냐 앙헬라(69). 할머니는 경제잡지 포브스가 최근 선정한 ‘멕시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여성’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평범한 시골 할머니가 일약 파워 여성으로 거듭나면서 인생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영상 공유서비스 유튜브 덕분이다. 할머니는 ‘내 오두막집에서 당신의 부엌으로’라는 이름을 단 유튜브 요리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지난해 8월 20일 첫 동영상을 올린 할머니는 아직 1년도 채 안된 ‘유튜버 초년생’이지만 구독자 수를 보면 초특급 파워 유튜버다. 할머니는 불과 10개월 만에 구독자 262만 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할머니 도냐 앙헬라의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포브스는 “농촌의 재료로 시골 요리법을 소개하는 게 주요했다”고 분석했다. 전통 방식으로 멕시코 시골밥상을 차려내는 게 폭발적인 인기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6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부엌에서 장작불을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낸다. 재료는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작물만 고집한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고 쉽게 요리법을 설명한다. 동영상이 대체로 짧고, 요리법이 간단한 것도 할머니가 유튜브에 올리는 동영상의 특징이다. 간단하면서도 촌스런(?) 낭만이 가득한 시골밥상 동영상에 네티즌들은 열광했다.할머니가 올린 칠면조요리, 치킨 바비큐, 치킨야채볶음, 멕시코식 킬리테(연할 때 먹을 수 있는 풀) 등은 조회 수 400만을 넘어선 할머니의 대표작들이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도 할머니는 활발하게 소통한다. 현지 언론은 “할머니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1달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할 정도로 소통에 타고나 재능을 갖고 있다”며 “결국 할머니의 가장 큰 장점은 부담을 주지 않는 소통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신인 감독 정진영 “발가벗겨진 기분… 조진웅 믿고 찍었죠”

    신인 감독 정진영 “발가벗겨진 기분… 조진웅 믿고 찍었죠”

    “이준익 감독님이 ‘개봉하면 떨릴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안 떨릴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미치겠어요. 패닉 상태예요. 잠도 안 오고, 멍해요. 허옇고.”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의 연산군부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지적인 MC까지. 1988년 데뷔 이래 연극과 브라운관,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볐던 베테랑 배우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나 싶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감독 정진영’(56)은 연신 머리를 긁었다. “(배우와는) 전혀 다르더라고요. 배우는 캐릭터와 연기를 평가 받지만, 감독은 직접 이야기를 쓰기도 해서요. 내가 다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은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20여년 전, 이창동 감독 ‘초록물고기’(1997)의 연출부 막내로 일하며 가졌던 영화 연출의 꿈을 그는 이제야 이뤘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마을, 초등학교 교사인 수혁(배수빈 분)네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죽으면서부터 시작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담당 형사 형구(조진웅 분)는 어느 날 아침, 화재 사고가 일어난 수혁네 집에서 깨어난다. 갑자기 사람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은 온데간데없다. 극 초반 벌어지는 수혁네 부부의 연극적인 어투와 느닷없는 죽음, 형구를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보여주듯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 불친절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구조에 재담 넘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전개하고 싶었다”는 게 정 감독의 설명이다. 다만, 영화는 구석구석 숨겨 놓은 복선들 속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우리는 타인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존재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주인공 형구 역에는 일찌감치 조진웅을 염두에 뒀다. 영화 속 조진웅의 안정적인 연기가 자칫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 쉬운 일들을 현실에 발 붙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진웅이는 ‘대장 김창수’(2017)를 찍으며 처음 만났어요. 워낙 바쁘고 톱 배우라 (영화를) 함께할 가능성은 작다고 봤는데, 초고를 쓰자마자 보냈더니 다음날 하겠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오랜 배우 경력 덕에 ‘감독 정진영’은 배우들의 감정선을 전적으로 믿는 편이다. “배우들은 감정을 가져오는 사람이잖아요. 감독과 약간 다른 감정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아예 틀린 감정을 가져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감독이 말하는 주황색 대신 연핑크색 감정을 가져올 수 있는데, 이 경우 주황으로 밀고 가면 그 감정 자체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극 중 형구가 ‘혼술’을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도 롱테이크로 한 번에 갔다. ‘담담하게 바라보되 반 발짝 떨어져서 따라오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이동샷도 자제하고, 자극적인 장면은 최대한 피했다. 정 감독에게 본인 영화의 장점을 어필해 달라고 했다. 거듭 난감해하던 그는 “같이 조그마한 배에 올라서, 파도를 넘는 항해를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라진 시간’은 ‘뉴 웨이브’ 영화가 아니고, 그저 ‘뉴’ 영화다. 신인 감독의 수줍은 초대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단돈 1유로에 주택 팝니다”…伊 시골 마을, 껌값에 집파는 이유

    “단돈 1유로에 주택 팝니다”…伊 시골 마을, 껌값에 집파는 이유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의 주택들이 단돈 1유로(약 1300원)에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되고있다. 최즌 미국 CNN 등 외신은 칼라브리아 주에 위치한 친퀘 프로디 시가 한적한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주택을 1유로에 매매 중이라고 보도했다. 인근에 깨끗한 강과 자동차로 15분 거리의 해변이 있는 이 지역은 마치 그림엽서에 등장할 것 같은 아름다운 언덕 마을이지만 지금은 껌값에 집 주인을 구하는 처지다. 마을 측이 이렇게 절실하게 새 입주자를 찾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면서 곳곳의 집들이 방치됐기 때문이다.이에 많은 집들이 폐가 상태가 됐고 이제는 마을의 존립조차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에 시 측이 나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새 입주민을 구하고 있는 것. 특히 이곳은 인구가 없는 탓인지 이탈리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도 받지않아 확진자가 현재까지는 0명이다. 마을의 시장인 미켈레 코니아는 "버려지고 방치된 지역을 재생하기 위해 이같은 정책을 내놓게 됐다"면서 "이 마을의 주택은 개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밝혔다. 물론 단돈 1유로만 내면 그대로 새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을 개축할 때 까지 매년 250유로(약 34만원)의 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만약 3년 내에 개축을 못하면 2만 유로(약 2700만원)의 벌금을 물게된다. 코니아 시장은 "만약 반응이 좋다면 수십 년간 비어있던 다른 집들도 모두 매물이 될 것"이라면서 "현재 12채의 집이 매물이며 향후 50여채의 빈집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노무현의 이웃 같은 퇴임 대통령 ‘부메랑’ 비극 지켜본 文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퇴임 이후, 세상과 거리 둘 것” 줄곧 강조 기존 매곡동엔 경호동 들어서기 어려워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부지 최종 낙점“고위공직자들이 퇴임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 유배 보내는 심정이기도 했다. 시골에 살 곳을 찾았다. 그래서 고른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양산 매곡이다.”(2011년 ‘문재인의 운명’ 중)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하고 계속 연관을 가진다든지 일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대통령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끝나고 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고요. 대통령 끝나고 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 이런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문 대통령이 최근 퇴임 후 머무를 사저 부지(2630.5㎡·795.6평)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그 배경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사저의 입지나 운영 방식은 퇴임 후 대통령이 현실 정치와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인이 ‘거리두기’를 희망하더라도 정치권과 지지자들이 ‘야인’이 된 대통령을 소환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퇴임 후 양산 매곡동 사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본래 살림집이 아닌 곳을 공들여 가꿨기에 풀 한 포기, 벽돌 한 장에도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집권 3년차 통상적 절차에 따라 올 초부터 사저와 ‘패키지’로 묶인 경호 부지 물색에 나서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매곡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에 경호동이 들어서기 어렵고 마을 입구에서 외길을 따라 2㎞ 넘게 더 들어가야 하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 경호처가 최종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이다. 평산마을은 행정구역상 경남이지만 울산과 인접했다. 사저가 들어설 부지와 경부고속도로는 2㎞가량, KTX 울산역과는 10여㎞ 떨어져 있어 매곡동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 봉하마을까지 차로 50여분 거리, 어머니 묘소와도 비교적 가깝다. 양산의 교통 요지에 들어선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열린 사저’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일대가 통도사 땅이고, 평산마을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시골길이 이어진 데다 언덕 지형인 탓에 개방형 건물을 짓기는 어렵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3주년 회견 때 퇴임 이후를 너무 상세하게 언급해 놀라기도 했지만, 대부분 초지일관 해왔던 말씀”이라며 “재임 기간 방전될 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퇴임 이후 현실 정치와 연을 끊고 잊혀진 사람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 사저’를 지향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애초 생각이 다르다는 얘기다.‘열린 사저’의 개념이 등장한 건 봉하마을이 처음이었다. 퇴임 대통령이 지방으로 간 것도 처음이다. 국가균형발전과 권력기관 개혁, 실질적 민주주의의 착근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경남 일대에서 살 곳을 찾았지만 2006년 3월쯤 권양숙 여사가 고향인 봉하행을 제안했다고 한다(‘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중). “대통령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민으로서, 은퇴한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고 회고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의식과 진보적 담론의 토론 공간으로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했고, 봉하를 생태마을로 꾸미는 한편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국민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웃 같은 퇴임 대통령의 모습을 사랑했고,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1만여명이 봉하를 찾았다. 결과론이지만 ‘부메랑’이 됐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봉하에 방문객들이 넘쳐나는 현상, 퇴임 이후 오히려 노 대통령 인기가 올라가는 일들은 하나같이 이명박 정권에게 정치적으로 해석됐다. 이후 시작될 불행한 사태의 전조였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엔딩 후에도 적지 않은 지지자들이 ‘순례’하듯 봉하를 찾고 있으며, 친노·친문 인사들뿐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주요 변곡점마다 들러 참배하고 권 여사를 만난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적 팬덤’을 지닌 데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뒤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코로나19의 성공적 대응에 따른 국격 제고 등 ‘레거시’(업적)를 쌓아 가고 있다는 점에서 본인 뜻대로 잊혀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실 정치와 연을 끊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결정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한 친문 인사는 “대통령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를 잘 알 것”이라며 “퇴임 이후 문재인의 상징성과 무게를 감안하면 이런저런 요구들이 많겠지만, 대통령의 생각이 단호해 기념관 건립 등 기본적 사업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스크린서도 빛난 ‘딕션 요정’ “열정의 불씨, 장르 안 가려요”

    스크린서도 빛난 ‘딕션 요정’ “열정의 불씨, 장르 안 가려요”

    “큰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는 게 어색해요. 브라운관에 나오는 건 조금씩 익숙해졌는데 극장에서 보는 건 꿈인가 생시인가….” 지난 4일에 열린 영화 ‘결백’의 언론배급시사회. 영화를 본 소감에 대한 배우 신혜선(31)의 답변이 그랬다. ‘아이가 다섯’(2016), ‘황금빛 내 인생’(2017~2018) 등 안방 극장에서는 시청률 30%를 상회하며 ‘시청률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영화로는 첫 주연이다. ●‘살인 혐의’ 치매 엄마의 결백 주장하는 변호사役 “부담도, 긴장도 많이 됐고요. 감독님과 주변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촬영했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혜선은 이제야 한 시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결백’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 정인(신혜선 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치매에 걸린 엄마 화자(배종옥 분)가 용의자로 지목되자 정인이 그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직접 변호를 맡는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2017)에서 영은수 검사로 열연했던 신혜선이 또 한 번 법조인 역할을 맡았다. “둘 다 악바리이긴 하지만, 깡시골에서 공부만 하던 정인에 비하면 은수는 병아리 같은 느낌이에요.” 박성현 감독이 일찌감치 그를 정인 역에 점찍은 것도 ‘비밀의 숲’ 공이 컸단다. ‘딕션 요정’이라는 별명처럼 신혜선은 ‘결백’에서도 똑 부러진 발음과 대사 전달력을 자랑한다. 결기 서린 눈빛만큼은 한층 강화됐다. 사건을 추적하던 정인은 대천시장 추인회(허준호 분)를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조직적 은폐와 마주하고, 추 시장과의 피할 수 없는 결전에 들어간다. ‘악역 전문’ 허준호를 맞이해 박 감독은 ‘날 선 느낌’을 주문했고, 신혜선은 영화 ‘미스 슬로운’(2019) 속 로비스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을 참고해 정인이라는 캐릭터를 빚어냈다. “악역을 연기하는 허준호 선배님한테서 비릿한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거기 대항해 많이 노려봤습니다(웃음).” ●드라마 이어 명확한 발음·대사 전달력으로 호평 ‘결백’을 이끄는 것은 치매 노인을 표현하기 위해 노역 분장도 마다하지 않은 배종옥과 신혜선의 ‘모녀 케미’다. 배종옥과는 차기작인 드라마 ‘철인왕후’에도 함께 캐스팅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자랑한다. 신혜선은 배종옥이 분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분장한 모습이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연기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대선배의 조언이었다. “유치장에서의 마지막 신을 연기할 때 선배님 눈을 쳐다봤는데, 그 순간 선배님한테서 ‘배종옥’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워져 있더라고요. 그런 선배님 노력 덕분에 호흡이 잘 맞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 누비는 신혜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아직 새내기여서요. 작품을 철저히 살피기보단 저에게 열정의 불씨를 던져주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거 같아요. 코미디는 언제나 좋고요. 공포물도 해보고 싶어요.” ‘딕션 요정’이 예의 그 딕션으로 똑 부러지게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링컨, 처칠, 이탄희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링컨, 처칠, 이탄희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이다. 링컨과 처칠도 우울증을 경험했다. 링컨은 걸음걸이에서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거나, 처칠은 ‘검정개’가 찾아오면 시골에서 쉬고 그림을 그리며 1년씩 회복을 기다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항우울제 개발은 우연히 시작됐다. 1950년대 항결핵제를 투여받은 결핵환자들의 기분이 호전되고 무기력하던 환자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한 내과 의사가 놓치지 않았다. 단가아민을 높이는 약물이 항우울 효과가 있었다. 곧이어 조현병 치료제(클로르프로마진)의 유도체는 조현병에는 효과가 없고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었다. 이 두 약물은 1980년대 중반까지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문제였다. 단가아민 약물은 발효식품을 먹으면 혈압이 높아졌다. 삼환계 항우울제는 효과는 좋았지만 입이 말라 갈라지고 어지럽고 졸렸다. 1970년대 우리나라 정신 치료의 선구자 조두영 교수가 쓴 글에는 한 환자가 ‘우울증에 무슨 약이 있을까 싶었는데 입이 이렇게 쫙 말라 갈라진 걸 보니 진짜 약을 주었다는 생각에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같으면 멱살을 잡힐 수 있는 약이었다. 1980년대 후반 ‘프로작’이라는 항우울제가 나오면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된다. 부작용(입마름, 변비, 졸음)이 거의 없이 우울증이 호전됐다. 미국과 유럽 정신의학계에서는 생물정신의학자들이 정신분석학자 자리를 급속히 대체했다. 뇌영상학의 발전으로 약뿐만 아니라 정신 치료가 만드는 뇌 변화가 확인되면서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통합적인 시각은 대세가 됐다. 세로토닌 외 다양한 수용체에 작용하는 항우울제가 개발됐지만 증상이 호전되는 데 적어도 1~3개월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내성과 금단이 없는 장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느렸다. 그러면서 마취제로 사용되고 마약으로도 통용되던 케타민은 글루타메이트를 급속히 높여 한 달이 아니라 하루 만에 효과가 있었고 의존증도 없었다. 이를 개량한 에스케타민 비강분무제 개발에 우리도 공동 연구에 참여해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마음의 병은 경증일 때는 정신 치료나 상담만으로 충분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를 함께 받아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국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축에 드는 덴마크는 인구 7명 가운데 한 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우울증 치료율은 여전히 여타 선진국의 절반 이하다. 코로나19가 주는 교훈 중 하나가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인의 공황장애를 드러내고 치료에 집중하겠다며 회복을 선택한 이탄희 의원처럼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
  • “5G 허위 과장 광고” 참여연대, 이통 3사 공정위 신고

    “5G 허위 과장 광고” 참여연대, 이통 3사 공정위 신고

    참여연대가 이동통신 3사가 5G 기술 관련 허위·과장 광고를 일삼았다며 공정위에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신고를 접수했다. 참여연대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5G ‘전국 상용화’가 발표된 지 14개월이 지났음에도 광고에서 나온 삶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도 이통 3사는 소비자 불만을 쉬쉬하며 개별 보상으로 무마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본격 상용화에 들어간 5G 네트워크는 4세대(4G) LTE나 와이파이보다 높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그러나 전파의 도달거리가 짧고 장애물 통과율이 비교적 낮아 서비스 범위가 좁은 특징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파를 중개하는 기지국이 4G보다 더 많이 필요하지만, 올해 3월 기준 5G 기지국은 10만여곳으로 LTE 기지국 약 80만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참여연대는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의 무선통신서비스 시장조사기관인 오픈시그널이 올해 1∼4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이통 3사 이용자들의 평균 5G 접속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3.4시간가량(약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이통 3사는 5G 전파의 특성상 기지국 부족으로 인한 끊김 현상, 빠른 배터리 소진, 서비스 이용지역 제한 등의 불편을 상용화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통 3사는 전국에서 5G 서비스가 사용 가능하지 않음에도 서비스 지역과 기지국 설치 예상일 등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며 비무장지대 마을 사람들이나 시골 노인 등이 5G를 사용하는 광고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광고는 ‘최대 속도 2.7Gbps가 이론상 구현되는 최대 속도이며 실제 속도는 외부환경, 단말기 등의 영향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표기해야 하지만 일부 TV 광고에서 이 문구가 누락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참여연대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콘텐츠는 5G 서비스가 아닌 LTE, 와이파이, 심지어 3세대에서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5G 전용 콘텐츠로 홍보해 5G 휴대폰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를 했고 최근까지도 이 같은 홍보를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동통신사의 이런 행태는 부당한 광고 행위를 금지하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명백히 소비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공정위가 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며 “또한 소비자들이 기대한 내용과 실제 서비스 품질의 차이로 피해가 발생한 만큼 과징금 부과나 소비자 피해 보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문 대통령, 양산에 사저 부지 매입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문 대통령, 양산에 사저 부지 매입

    2년 뒤 자연인으로 돌아갈 듯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5월 퇴임과 함께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사저부지를 매입했다. 김해 봉하마을과 멀지 않은 곳이다. 문 대통령이 2년 뒤 실제 양산으로 내려가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지방에 사저를 둔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경호상 이유 양산 평산마을에 ‘퇴임 후 거처’ 김해 봉하마을과 50분 거리, 부·울·경 인접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양산 평산마을에서 지내기로 했다”면서 “경호처가 현재의 양산 매곡동 사저 인근에 경호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고 판단해 사저를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사들인 부지는 경남 양산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2630.5㎡(795.6평) 규모의 대지다. 등기부등본 등에 따르면 부지 매각은 지난 4월 29일 이뤄졌다. 경호처도 문 대통령을 경호할 시설 부지(1124㎡)를 매입했다. 노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양산 평산마을까지는 자가용으로 50여분 거리로 멀지 않다. 해당 지역은 행정구역상 경남이지만 울산, 부산과 모두 인접한 곳이다. 경부고속도로, KTX 울산역과도 가까워 교통도 비교적 편리하다. 국내 3대 사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영축산 통도사도 10여분 정도면 걸어 갈 수 있다. 마을에는 48가구, 주민 100여명이 살고 있다. 부지 매입 가격은 10억 6401만원이다. 이 비용은 문 대통령의 사비로 충당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 당시 예금만 총 16억 4900만원을 갖고 있어 부지 매입에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2층짜리 단독주택 포함… 사비로 마련靑 “전직 대통령 사저보다 규모 작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집값은 새 사저보다 매곡동 자택이 조금 더 높을 것”이라며 매곡동 자택을 처분하면 새 사저 건물 마련을 위한 비용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새 사저 건물 규모를 현재 경남 양산 매곡동 자택(111.15평·건물 3채)보다 크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기준으로 새 사저가 준비될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새 사저는 현재의 매곡동 사저보다 면적이 줄었으며 전직 대통령들 사저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다”고 강조했다. 양산시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김 여사, 대통령 경호처가 사들인 부지는 총 3860㎡ 규모이며 부지 내 2층짜리 단독주택을 포함한 총 매각 대금은 14억 7000여만원으로 알려졌다. 文 저서에 “세상과 거리두고 조용히 살고파”양산행에 “스스로 유배 보내는 심정으로”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거제 유세에서 “퇴임하면 제가 태어나고 지금도 제 집이 있는 경남으로 돌아오겠다”며 일찌감치 낙향할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08년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자 현재 매곡동 사저로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면서 “스스로를 유배 보내는 심정으로 시골에 살 곳을 찾았다”며 당시 양산을 새 거처로 택한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매곡동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멀지 않다. 문 대통령은 “봉하는 가끔 가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도 “공식 행사 수행이나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토록 자주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좋지 않은 모습 아마 없을 것” 경호상의 문제로 매곡동에서 직선거리로 10여㎞ 떨어진 평산마을로 옮겼으나 양산으로 향하겠다는 당초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후 김정숙 여사와 함께 사저에 머무르면서 조용히 ‘자연인’으로 생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봉하마을로 돌아왔던 노 전 대통령의 마음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은퇴 후에는 현실 정치와 확실하게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 후 계획에 대해 “저는 대통령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면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끝난 뒤 좋지 않은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카프카식 이별(김경미 지음, 문학판 펴냄) KBS 1FM 라디오 ‘김미숙의 가정음악’의 작가인 시인이 매일 오프닝 때 띄웠던 시편을 모았다. 고통의 시간에 대한 재현과 치유의 기록이자 지상의 존재자를 향한 지극한 슬픔, 앞으로 살날에 대한 실존적 의지를 담았다. 작품의 배경과 시작(詩作)의 마음을 담은 글을 함께 실어 이해를 돕는다. 280쪽. 1만 4000원.하틀랜드(세라 스마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 미국 시골의 백인 빈곤 여성의 삶을 조명한 저작. 미국 중서부의 캔자스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펠로 교수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그는 책을 통해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증언했다. 424쪽. 1만 8000원.미국 함정(프레데리크 피에루치·마티유 아롬 지음, 정혜연 옮김, 올림 펴냄) 타국의 개인과 기업을 공격하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을 해부했다. 거래에 달러가 사용되거나 미국 내 서버가 있는 이메일을 이용한 정황이 나타나면 해외부패방지법을 근거로 국적 불문 피의자를 구속한다. 이 법으로 2년의 수감, 3년의 보석을 겪은 프레데리크 피에루치는 이를 세계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약탈이라고 말한다. 424쪽. 1만 9800원.붓다 평전(백금남 지음, 무한 펴냄) ‘석가모니’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그린 평전. ‘관상’, ‘궁합’, ‘명당’ 등 역학 3부작을 펴냈던 소설가인 저자가 붓다의 모습을 찾아 대승·소승불교, 남방·북방불교 등의 원전과 경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불교는 천상이 아닌 진흙 바닥에 있는 종교다. 736쪽. 2만 7000원.스타인웨이 만들기(제임스 배런 지음, 이석호 옮김, 프란츠 펴냄) 명품 피아노로 불리는 스타인웨이의 제작 과정을 11개월 동안 관찰했다. 가구 제작자를 꿈꾸던 독일 청년이 미국으로 건너가 피아노 제작에 나선 사연, 30여년간 같은 일을 한 전임자의 일을 도제식으로 물려받아 수작업으로 만드는 공정 등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436쪽. 2만 2000원.신문기자(모치즈키 이소코 지음, 임경택 옮김, 동아시아 펴냄) 배우 심은경이 열연한 영화 ‘신문기자’의 실제 모델이 쓴 자전적 에세이. 도쿄신문 기자인 저자는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부터 가케학원 사학비리를 취재하며 아베 정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20년차 사회부 기자, 10년차 워킹맘으로서의 애환과 고뇌도 함께 담겼다. 236쪽. 1만 2500원.
  • [길섶에서] 만화 ‘짱뚱이’/박록삼 논설위원

    부지런한 초여름 해보다 더 일찍 일어난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새벽녘부터 마루에 나와 낄낄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니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배꼽을 부여잡고 정신을 못 차린다. 그리고 만화책을 덮은 뒤 퍼붓는 질문 공세. “곤로가 뭐야?”, “라면에 왜 국수를 넣어 먹어?”, “옛날엔 바나나가 그렇게 비쌌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1960년대, 그것도 꽤 벽촌인 마을 일상을 담은 책이니 ‘산업화 세대 아빠’에게도 어렵다. 해질 무렵엔 얘들 엄마가 또 같은 만화책을 보면서 함참 웃어대다가도 잠시 뒤엔 눈물 찍어내느라 바쁘다. 그러다 모녀 간 궁금증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 피우기 바쁘다. 집안이 만화 ‘짱뚱이’에 푹 빠졌다. 짱뚱이 시리즈는 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법한 옛날 얘기이건만 흡입력이 높다. 마을 잔치마다 나타나는 일꾼이자 거지인 살강쇠 얘기, 몸이 아픈 동생을 귀찮아 하다가도 속깊은 정 드러내는 얘기, 키우던 개가 홀연히 사라져 안타까워하는 얘기, 아이 눈에 비친 시골장날 풍경은 정겨움 그 자체다. 세대 간 듬직한 다리가 놓인 듯하니 반갑고 기쁘다. 아이가 자꾸 물어오는 전라북도 사투리에 답하는 게 은근히 어렵다. youngtan@seoul.co.kr
  • “죄는 미워해도”…성폭행 목사 아내가 피해자 찾아가 합의 요구

    “죄는 미워해도”…성폭행 목사 아내가 피해자 찾아가 합의 요구

    불쑥 찾아와 차에 태워 합의서 요구현금 1000만원 봉투 건네며 회유도해당목사 신도 9명 성폭행 1심 8년刑여성 신도를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강간 등)로 실형을 선고받은 목사의 아내가 피해자를 찾아가 돈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성폭력 피해 신도 A씨는 3일 성폭력을 저지른 전북 지역 한 교회의 목사 아내가 전날 오후 4시 쯤 한 남성을 대동하고 거주지로 찾아와 합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목사의 아내는 사전 연락도 없이 A씨의 친구를 부추겨 강제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목사의 아내는 A씨를 보더니 다짜고짜 팔을 붙잡고 매달리며 “합의를 해달라”로 종용했다. 이에 A씨는 “몇 년 동안이나 속을 썩고 그 모진 수모를 겪었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용서를 할 수 있겠느냐.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어 “그 때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 교회를 나와 외진 시골 마을로 도망치듯 왔다”며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으려고까지 했는데 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목사 아내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합의를 해줘야 목사님이 빨리 나온다”며 떼를 썼다. A씨는 재차 거절했으나 목사의 아내는 “차를 마시자”며 A씨를 승용차에 태워 인근 지자체 청사로 향했다. A씨가 이유를 묻자 목사의 아내가 대동한 남성은 “합의서를 쓰려면 지자체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합의서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한 A씨의 인감증명서 등을 발급받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목사의 아내는 A씨에게 현금 1000만원이 든 노란 봉투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이마저도 거부하자 목사의 아내와 남성은 저녁식사 자리까지 따라오는 등 3시간이 넘도록 합의를 요구하다가 “내일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A씨는 “어떻게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사람을 갑자기 찾아와 몇 시간 동안이나 붙잡고 합의를 요구할 수 있느냐”며 “그때 일은 아마 죽기 전까지 끝없이 나를 괴롭힐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익산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성폭력 가해자 측이 피해자와 직접 만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는 피해자에게 굉장한 위협과 정신적 고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2차 피해”라며 “목사 측이 피해자와 직접 만날 수 없도록 경찰과 방법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목사는 교회와 자택, 별장, 승용차 등에서 여성 신도 9명을 상습 성폭행 또는 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이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항소심 첫 재판은 오는 5일 열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녹색이 돈이다

    [최만진의 도시탐구] 녹색이 돈이다

    루르 지방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에센, 뒤스부르크, 겔젠키르헨, 보훔 등의 도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역이다. 독일의 최대 광역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인구가 대략 500만명을 넘는다. 우리보다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은 독일에서 서울의 절반 정도가 한 지역에 모여 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곳을 ‘발룽스게비트’라 부르는데, 풍선처럼 팽팽하게 팽창해 있는 조밀 지역이라는 뜻이다. 루르 지방이 이처럼 과밀화된 이유는 한때 독일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공업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인 겔젠키르헨은 개발이 되기 전에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1850년대 탄광이 개발되고 철도가 건설되면서 공업 중추 도시로 급부상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인구 35만명에 육박하는 규모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1960년대가 되면서 100여년의 영광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산업과 에너지 구조가 바뀌면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컨베이어벨트와 철강 공장이 가동을 멈추게 됐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가 바닥을 치면서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났다. 남겨진 것은 산업시설 잔해, 오염된 물과 땅 그리고 척박한 경관이었다. 끝내는 유령처럼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폐쇄된 공장과 광산이 있던 도심에 명물 공원 하나가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얼핏 봐도 100미터가 넘어 보이는 긴 유리 정면을 가진 건물이다. 형태는 과거 공장의 긴 스팬을, 유리에 반사되는 햇빛은 옛 영광을 연상시킨다. 옥상에도 반사체 구조물이 설치돼 있는데 자세히 보면 대규모의 태양광 집열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습지와 연못이 조성돼 있어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곳은 ‘과학공원’으로 도시의 새로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과학공원은 시가 만든 자회사인데 수십 개의 태양광에너지 첨단기업과 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이들은 망해 가던 도시를 태양광 도시로 회생시키기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태양에너지와 관련된 연구, 개발, 생산, 설치 등의 일을 진행해 태양광을 공급하고 새로운 산업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는 물론이고 교육시설과 정보센터 등도 지어 산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고, 바닥을 쳤던 인구도 다시 회복해 25만명을 웃돌게 됐다. 또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오염된 땅과 물을 생태적으로 재생했으며, 친환경 주거단지를 개발해 정주성도 높였다. 이 결과 겔젠키르헨은 독일에서 가장 일하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히게 됐다. 정부는 최근 포스트 코로나의 경기 부양 일환으로 녹색이 돈이 되는 ‘그린뉴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이지만 매우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이것이 단지 기술 분야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삶의 전반을 포용하는 다각적이며 철학적인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안도현의 꽃차례] 새들의 안부를 묻는다

    [안도현의 꽃차례] 새들의 안부를 묻는다

    새소리가 아침저녁으로 귀에 들어온다. 수다스럽고 부지런한 참새들 덕분에 눈을 뜰 때도 있다. 시골에 살면서 누리는 특권이다. 새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카메라를 하나 새로 장만했으나 아직 새들을 모니터에 담아 보지 못했다. 귀에 새소리를 담는 일만 해도 설레고 벅찬 일이다. 요즘은 소쩍새 소리가 단연 압권이다. 소쩍소쩍, 하고 한 마리가 단아하게 우는 소리도 좋지만 소쩍소쩍 소쩍쩍쩍, 하고 두어 마리가 울림소리를 만들 때가 더 좋다. 그놈들 아마 서로 화답하며 연애 중일 거라고 혼자 생각한다.마당에 돌을 쌓아 놓았더니 꽁지깃이 날렵한 박새가 자주 놀러 온다. 박새는 머리 둘레가 까맣고 가슴이 하얀 새다. 굵은 돌 틈에 둥지를 지으려는지 자주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이 돌로 돌담을 쌓아야 하니 거기 집 지을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러면 내 말을 알아듣고는 통통 튀어 살구나무 가지 위로 포르르 날아간다. 참나무 우거진 앞산에는 매일 어치 두어 마리가 방문한다. 어치는 머리가 붉고 날개깃이 푸르며 꽁지는 까만 멋쟁이다. 1970년대 대중가요 ‘산까치야’에 등장하는 산까치가 바로 어치다. 한번은 먹이를 찾고 있던 어치가 갑자기 날아오르기에 숲을 바라보았더니 고라니 한 마리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고라니의 산책을 빨리 알아채고 어치가 다른 새들에게 경계령을 발동한 것이었다. 뒷산에서 뻐꾸기가 청명한 소리를 낼 때면 대체로 날이 맑다. 뻐꾸기는 바람이 불거나 흐린 날에는 잘 울지 않는 것 같다.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면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의탁해서 부화하는 그들의 뻔뻔한 습성도 눈감아 주고 싶어진다. 해가 질 무렵이면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초여름의 초록 사이로 들려온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울음소리를 땅에 흩뿌리는 모습도 본 적 있다. 검은등뻐꾸기가 만들어 내는 4음절의 규칙적인 울음소리를 두고 짓궂은 이들이 ‘홀딱벗고’로 흉내를 낸 까닭이 궁금해진다. 그 흉내가 민망해서 어떤 이들은 ‘쪽빡깨고’로 다르게 흉내를 내었을 것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꿩이 날아가는 일이나 연못에서 목욕하던 참새들이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찔레덩굴 속으로 스며드는 일, 그리고 까치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러 오는 일은 이제 늘 겪는 일상이 됐다. 연못에 풀어놓은 잉어를 수색하기 위해 강변에 살던 검은 오리 두 마리가 새벽에 찾아오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다. 창고를 짓고 대충 짐을 정리한 뒤에 한동안 문을 달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창고에 세워 둔 책꽂이 안쪽이 매우 안전한 곳인 줄 알고 딱새가 둥지를 짓고 거기에 알 네 개를 낳아 놓은 것이었다. 어설프게 창고 문을 달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는 딱새 둥지를 발견했다. 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알을 품으러 오던 딱새 어미들이 굳게 닫힌 문 주변에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얘들아, 내가 큰 죄를 졌다. 나는 알이 든 둥지를 창고 바깥 울타리 위로 옮겼다. 늦었지만 이것들의 어미가 와서 멀리서 바라보기라도 하라고. 또 있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 베란다 유리에 무언가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새였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왔는지 유리창에 새털이 몇 붙어 있었고, 새는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었다. 몸집이 손바닥보다 큰 새였는데 조류도감에서 본 개똥지빠귀가 아닌가 싶었다. 봄에는 굴뚝새가 유리창에 부딪쳐 까무러쳤다가 겨우 날아간 적도 있었다. 유리창이 허공인 줄 알고 날아가다가 그만 참변을 당한 새 앞에서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새가 다니는 길목에 집이라는 공간을 세운 내 잘못 때문이었다. 나는 뒷산에 새를 묻으며 또 자책했다. 이름을 붙이고 살면서도 죽은 새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하는 나는 몽매한 인간이었으므로. 내가 사는 골짜기의 제일 높은 허공에는 솔개로 추정되는 맹금류가 있다. 공중에 떠 있을 때는 얼마나 위엄이 당당한지 나는 한 마리 병아리가 돼 그를 올려다본다. 그의 이름이 솔개인지 말똥가리인지 매인지 조롱이인지도 모르면서. 이제부터라도 새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리는 만큼 새들의 이름과 거처와 안부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영동군 “유원대 학생 정원감축은 상생협약 위반” 강력 반발

    영동군 “유원대 학생 정원감축은 상생협약 위반” 강력 반발

    충북 영동군이 유원대학의 입학정원 감축 추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1일 군에 따르면 유원대가 영동군에 위치한 본교 입학정원을 140명 감축하고 아산캠퍼스 입학정원을 140명 늘리는 구조조정안을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에 제출했다. 이에 군은 군민 2만3774명의 반대서명을 받아 이날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전달했다. 군과 주민들은 대학주변 원룸가와 식당가 등에 감축 철회 현수막을 내걸고 학교 항의방문에도 나서고 있다. 군이 정원감축 저지에 나선 것은 지역 최대현안인 인구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게 불보듯 해서다. 더군다나 유원대는 2016년 교명을 영동대에서 유원대로 변경하면서 본교 학생수 2500명 이상 유지, 본교 학과의 아산캠퍼스 이전 금지, 주요 현안 발생시 사전조율 등의 내용이 담긴 상생협약까지 체결했다. 군 관계자는 “학교 계획대로 정원이 줄면 학생수가 2400명이 안돼 분명한 상생협약 위반”이라며 “군은 최근 5년간 통학버스 운영비와 기숙사건립 등 4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는데 이런 노력이 의미없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난해에는 포도의 고장 영동군의 지역특성화 학과인 와인식음료학과를 일방적으로 폐과했다”며 “호텔관광학과를 없앤 뒤 이와 유사한 호텔항공서비스학과를 아산캠퍼스에 신설하기도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유원대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 및 중소도시 소재 대학 대부분은 학생 재학률이 90%를 훌쩍 넘지만 유원대는 최근 5년간 평균 81%를 기록하며 전국 꼴찌수준이다. 이 때문에 시골에 위치한 본교 정원 감축과 신입생 모집이 수월한 아산캠퍼스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유원대 관계자는 “재학률이 낮으면 교육부 대학평가를 통해 정원 강제축소와 교직원 수 감축 등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며 “장학금을 주면 학생모집이 가능할 것 같아 군에 학생 50명의 장학금을 지원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본교 정원 축소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군은 과거에 얽매여 상생협약 위반을 강조하는데 군은 미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군과 학교가 조만간 만나 협상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했다. 유원대의 정원감축 계획은 대학교육협의회가 타당성을 검토해 오는 12일 승인여부가 결정된다. 군과 유원대의 충돌은 처음이 아니다. 1994년 설립된 영동대가 2016년 아산캠퍼스 설립에 이어 교명을 유원대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영동대 교명 변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돼 강력 반발했다. 영동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