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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름 무더위 「명작소설」로 식히자”

    ◎살림·창비등서 국내외 단편선 잇단 출간 긴 방학과 휴가의 계절 여름을 맞아 국내외 대표적 단편을 망라한 호흡 긴 선집이 나왔다.살림출판사의 「이문열 세계명작산책」1차분 5권과 창작과비평사의 「한국현대대표소설선」 1차분 6권.이 선집들은 각자 독특한 개성과 선정의 엄밀성을 내세워 안방에서 독서삼매경으로 무더위를 식히려는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문열…」의 특징은 주제별 편제라는 점.작품들을 국가별,작가별로 묶는 것이 아니라 같은 주제를 가진 것들을 한권에 10편씩 묶었다.1권부터 5권까지의 주제는 차례로 「사랑의 여러 빛깔」「죽음의 미학」「성장과 눈뜸」「환상과 기상」「삶의 어두운 진상」 등.따라서 같은 체홉의 작품이라도 사랑의 화신 올렌카의 이야기인 「귀여운 여인」은 1권에,시골처녀 나자의 눈뜸의 과정을 그린 「약혼녀」는 3권에,악에 사로잡혀 몰락하는 팁킨 일가 이야기인 「골짜기」는 5권에 수록됐다.작가 이문열씨가 수록작품을 직접 선정하고 매편 해설도 붙였다. 주관성이 강하고 재미있는 「이문열…」에비해 「…소설선」은 문학사적 가치를 앞세운 책.지난 1910∼50년대의 희귀단편이 다수 포함됐다.태화산인의 「우의」,양건식의 「귀거래」,현상윤의 「핍박」,염상섭의 「남충서」,송영의 「월파선생」등이 현대본으로 첫 출간되는 셈.40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김사량의 「빛속에서」도 제대로 번역,수록했다. 「이문열…」은 12권,「…소설선」은 9권으로 각각 완간된다.〈손정숙 기자〉
  • 「보」 세계 카라지치 대통령 사임/강경파 플라브지치 권력 승계

    【사라예보 A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가 자체 선포한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대통령직에서 무조건 사임하고 강경파인 빌야나 플라브지치 부통령(여)이 승계했다고 칼 빌트 유엔 보스니아 평화특사가 지난달 30일 밝혔다. 빌트 특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이 카라지치에서 플라브지치 여사로 교체됐다는 세르비아계 정부의 공식 문서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 문서는 카라지치에 의해 서명,봉인됐으며 오늘(30일)부터 법적효력이 발생한다』 말했다. ◎카라지치는 누구/「보」 내전 주도… 인종청소로 유명한 국제전범 서방세계의 압력으로 자신이 창설한 스르프스카공화국 대통령직을 사임한 라도반 카라지치(52)는 사라예보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이자 시인.지난 44년 옛유고의 북부 몬테네그로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청소년기에는 사라예보에 이주하면서 「시골뜨기」로 놀림받는 등 비교적 순탄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소문도 있다. 그래서인지 의사인 그의 전공은 「우울증」이며 이후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민주당 당수로 선출된뒤 자신의 국가를 창설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지난 92년1월 스스로 스르프스카공화국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92년4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의 세르비아인들을 모아 회교계 보스니아 정부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주도하면서 각종 테러는 물론 야만적인 인종청소를 지행해와 유엔으로부터 지난해말 국제전범으로 기소됐었다.
  • 성장 잠재력(변화하는 동유럽:2)

    ◎“자본주의 전환” 최우선 목표/유럽문화권 뿌리­외교·내정 서구화 박차/한국,EU시장 진출 전초기지 활용 최적 대우자동차가 체코의 대표적인 항공기엔진·트럭 제조업체인 AVIA사를 인수한지 얼마되지 않아 한 노조 간부가 정길수 사장을 찾았다.그는 노조간부답지 않게 『근로자들의 숫자가 쓸데없이 너무 많으니 정리를 하라』고 충고를 해 정사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근로의 기회를 균등히 제공해주는 강제할당고용은 사회주의의 잔재이다.공산주의 붕괴이후 자본주의로 이행과정에도 그같은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체코의 실업률은 2.9%로 선진국에 비해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낮다.고용이 포화상태지만 기술을 갖춘 근로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능력있는 기술자들은 모두 서방사회로 빠져 나갔다.때문에 고급인력을 찾기란 쉽지 않다. 루마니아 대우자동차 근로자들의 한달 평균 임금은 1백50달러(12만원)∼2백달러(16만원)이지만 그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골 별장에 휴양을 떠난다.AVIA사의 근로시간은 상오 6시부터 하오 2시까지이고 근무를 끝내고는 가족들과 함께 여가를 보낸다. AVIA사는 얼마전 임원승진을 시켜려 한적이 있다.그러나 부장급들은 골치아픈 임원승진을 하느니 차라리 현직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고급인력 확보와 함께 인식 차이 극복이 동구의 과제로 꼽힌다. 비합리적인 시설투자도 고쳐야할 문제점이다.기존의 공장들은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비효율적으로 지어진 것이어서 유지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하지만 이런 점만 고쳐나가면 동구는 투자 최적지로 꼽힌다.동구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평균임금은 1백30달러∼3백달러.약 20만원도 안되는 저렴한 임금수준이다. 동구의 자본주의 체제전환은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이미 헝가리와 체코는 선진국 경제협력체인 OECD에 가입했다.체코와 폴랜드·헝가리는 동구권이 아니라 중구국가로 불린다.동구국가에 비해 서구사회에 가깝고 어느정도 자본도 갖고 있다. 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는 중구국가들에 비해 조건을 열악하다.하지만 이들도 서방의 유로­아틀랜틱 국가에 편입되는 것을 외교와 내정의 최우선목표로 정하고 있다.백낙환 루마니아대사는 『중동구 국가들의 서구체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대단하다』며 『그런 노력에 의심할 여지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중구·동구국가들은 과거 유럽문화권에 속했던 나라들이다.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중에 있지만 일단 가속도가 붙으면 엄청난 속도로 자본주의와 서방 자유사회에 편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구의 진출은 동구시장만이 아니라 유럽연합(EU)시장을 겨냥하고 있다.즉 중기적으로는 동구 시장이 대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통합유럽의 회원국이 될 동구국가를 바탕으로 유럽전체 시장의 전초기지로 활용할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의 블록화는 이같은 전초기지의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세계무역시장이 자유화되더라도 블럭내에서의 자유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하지만 블럭외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심한 장벽이 생겨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프라하(체코)=박정현 특파원〉
  • 초등학교 현장실습 교실서 대체 일쑤

    ◎「책가방 없는 날」 겉돈다/박물관 등 견학 “시끄럽다” 홀대/안전사고 우려 학교서도 기피/“부모 지방출장 동행 등 고려했으면…” 초등학교의 「책가방 없는 날」이 겉치레에 그치고 있다.등산·자연관찰·박물관견학 등 현장학습을 시키도록 돼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교내 자율학습으로 대체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용한다. 지난 94년부터 시범실시된 「책가방 없는 날」은 올초 모든 학교로 확대돼 매월 한 차례씩 실시되다 이달부터 두 차례로 늘었다. 학교측은 어디로 가야 할지 고심한다.정부의 지침이나 관련안내서는 전혀 없다.교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학생은 「그저 그런」 프로그램에 흥미를 못 느낀다.박물관 등에서는 시끄럽다고 홀대받기 일쑤다. 서울 강북의 S초등학교는 지난 3월에는 「학년초의 과도한 학사일정」,4월에는 「소풍」,5월에는 「어린이날행사」 등을 이유로 책가방 없는 날을 걸렀다. 서울 강남의 S초등학교도 3월을 같은 이유로 건너뛴 뒤 4월에는 예정일에 비가 오자 교실자율학습으로 대체했다. 서울 강북의 C초등학교는 5월 시내 한 박물관에 갔지만 경비원과 안내인이 『학생이 너무 많고 소란스럽게 군다』며 귀찮아해 관람도 하는둥 마는둥 돌아왔다. 어린이에게 전문가가 나와 상세히 설명해주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같은 선진국수준의 배려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교통편 때문에 학교버스를 갖춘 일부 사립학교 등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바깥으로 나가기도 어렵다.지하철·버스 등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고 관광버스를 빌리자니 경제적 어려움이 따른다. 서울 월촌초등학교 고은경 교사(36·여)는 『학생의 안전사고발생시 교사의 책임부분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안전보장보험가입을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특한 아이디어로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학교도 있다. 94년부터 시범실시를 해온 서울 중원초등학교는 지난 3월부터 학생의 선택폭을 넓혔다.가족여행이나 아버지의 지방출장 때 3∼4일범위 안에서 동행토록 한 뒤 감상문 등을 내도록 하고 있다.시골에서 할아버지·할머니와 모내기를 하고 오는 등 효과가 크다. 김태수교장(57)은 『한정된 견학장소와 시간적 제약,예기치 않은 위험 등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했다』며 『학부모로부터 감사편지가 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김태균·김상연·정승민 기자〉
  • 조선족의 술과 마작(압록강 2천리:32)

    ◎연길시 술소비 인구 40배 넘는 상해 맞먹어/소문난 술실력에 간부 접대자리 단골동행/아낙네도 마작판에 끼어들어… 사회문제화/승진·사업위해 술판 벌인후 「접대 마작」은 관행 중국의 술은 곡주다.배갈 1㎏을 생산하는데 드는 곡물은 2.5㎏이라고 한다.한 해에 중국에서 생산하는 배갈은 6백51만t이고 보면 1천6백27만5천t의 쌀을 술로 빚어 마신 셈이다.그러한 수치의 식량은 북경인 1천1백만명이 3년을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다.현재 중국의 배갈공장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국내 무역부가 어림하는 숫자는 4만개소에 이르고 있다. 중국 13억 인구에서 12억을 차지하는 한족의 술 소비량이 물론 가장 많다.그러나 인구를 대비한 술 소비량을 따진다면 조선족이 단연 으뜸이다.4천명을 대상으로 한 음주량 조사에서 알코올에 의존해 살거나 중독된 사람이 한족은 1천명 가운데 28명인데 비해 조선족은 71명으로 나타났다.인구 30만의 연길시의 술 소비량이 1천3백만 인구를 가진 상해의 술 소비량과 맞먹는다니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옛날부터 조상들이 술을 즐겨 마셨는지는 몰라도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 선조들은 술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을 것이다.슬퍼도 술,기뻐도 술,만나면 상봉술이요,헤어지면 이별주를 마셨다.타향살이 설움과 외로움을 술로 달랬던 이주민 1세들에게 몸에 배었던 술버릇이 유전된 것일까.어떻든 조선족들은 탁배기(막걸리) 민족으로 일컬을 만큼 중국에서 소문난 술꾼이 되었다. 압록강유역을 답사하는 동안 시골집에서 민박하는 경우가 많았다.가끔은 주인집 부자와 술자리를 같이 하게되었다.아들녀석은 낯선 손님 앞이라 처음에는 머리를 뒤로 돌려 술을 마시는등 제법 체면을 차렸다.그러나 웬걸,술이 몇 순배를 돌면서 거나해진 아들녀석은 사뭇 달라져 아버지를 채근했다. 『아버지,쫄 냅소.고애(고양이)죽 먹는 것 마냥 쫄짝거리니 어디 술맛이 남둥』이라는 말로 민족의 예의를 저버렸다.버릇없는 후레아들 거동에 아버지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배갈공장 4만곳넘어 길림성에서 어미지향(어미지향)으로 이름난 양수진에서는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접대하는데 진저리를 쳤다.향·진의 간부들은 현이나 시,성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시찰나오는 사람들 누구 하나 푸대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일단 기분을 잡치게 되면 반드시 불이익이 오기 때문에 웃어른들을 위해 술판을 벌여야 했다. 술판이 벌어지면 술 잘 마시는 사람이 뽑혀 향·진의 간부들을 따라나섰다.그러한 술자리의 동반역은 으레 조선족이 차지했다.한국의 기업들이 술 접대에 필요한 간부를 두어 이른바 「술상무」로 부린다는 이야기가 떠 올랐다.요령조선문보 보도에 의하면 어느 향에서는 하루 13개조의 검사조가 상급기관에서 내려와 향 관내 8개의 식당에 술상을 차려놓고 접대를 했다는 것이다.차까지 대기시켜 놓고 여기저기 술판을 돌다보면 향의 간부 몇은 나가떨어지게 마련이었다. 요령성 관전현에 도착했을 때 현기관의 초대를 받았다.단동시에서 국장 어른이 관전현에 시찰을 오시는데 함께 식사나 하자는 것이었다.그런데 하오5시에 오기로 한 국장이 그날따라 버스가 늦어진 통에 밤 9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나는 시장기에 피로가 겹쳐 견딜수가 없었지만 현 간부들의 체면을 보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그러나 현의 간부들에게는 상급 시간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모처럼의 호기였는지도 모른다. 관전현 어느 한 조선족 향 간부는 단동시 국장을 기다리는 동안 내 표정이 언짢아 보였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귀엣말 비슷한 것이었는데,그 처지에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를 이해 좀 하시라요.전들 한 뉘를 시골향에서 썩으라는 법 있습네까.도시로 나가자면 상급 어른들을 잘 동반해야디요.일은 대충하더라도 상급자 비위는 맞춰야 합네다.술 대접을 하더라도 강권하지 말고 마작을 놀 때면 슬쩍 져주어 어른께서 돈을 먹게 해주는 것이디요.돈을 그냥 갖다주는 것 보다 마작에서 져주면 더 환심을 산다 이겁네다』 ○알코올 중독자 많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술에 절기는 마찬가지다.생사가판의 칼자루를 쥐고있는 성과시 간부,심지어는 진의 간부들까지 치다꺼리를 해야되기 때문이다.요령성 안산시 구보구 송삼대자에서 공장을 꾸리는 황태성씨(47)는 아침에 집을 나가면 점심시간부터 밤늦게까지 식당과 가라오케에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다. 『내 몸은 알코올에 젖어 아마 죽어도 썩지 않을 겁네다.그러니 어찌 합네까.기업의 목을 쥔 수십개 기관이 쉬파리처럼 뜯어 먹으려고 달려드는데….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곯아 떨어지디요.아내가 생과부 된지는 진작 오래되었지 뭡네까』 요즘의 대접은 술판에서만 끝나지 않았다.카라오케가 지벽한 향진에도 생겨냐 가라오케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한바탕 춤을 추어야 직성이 풀렸다.그렇다고 가라오케의 여흥으로 접대가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고,여관으로 돌아오면 마작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다.중국 사람들은 마작놀이를 「장성 쌓기」라 했는데,중국의 기관 간부 열의 아홉은 그야말로 꾼이다.각급 기관이나 당사에는 마작을 필수로 갖출 정도이니 더 할말이 없다. 지난해 어느 신문이 보도한 기사를 보면 중국의 마작인구를 2억으로 추산했다.그 통계가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나 마작이 정부 간부나 개인들에게 속속 보급된 것은 사실이다.조선족들도예외가 아니어서 가을 타작이 끝나면 마작과 술판을 벌이기 일쑤이다.남정네 뿐 아니라 요령성 철령현 한 조선족 마을에서는 여자들까지도 마작판을 벌여 신문이 사회문제로 떠들썩하게 다룬 일이 있다. 그 문제의 기사는 요령조선문보의「시야비야」란에 실렸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무순시 교외 한 조선족 마을에 들렀다가 매일 30패 이상이 마작이라는 도깨비 놀음에 정신을 잃고만 사실을 목격했다.중년의 부인들이 마작판을 벌인 집에서는 어린학생 둘이서 손에 돈을 쥐고 엄마의 출납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주인집 아들은 책상을 마작꾼들에게 빼앗기고 방바닥에 넓죽 엎드려 숙제를 하는 꼴이란 목불인견이었다』고 적었다. ○마작인구 2억명 추정 그 다음 내용은 점입가경이다.부인들이 마작을 하고 있는동안 돼지우리에서 돼지들이 꽥꽥거리며 그야말로 돼지 목따는 소리를 질러댔다.그러자 주인 여자는 숙제하는 딸 아이에게 『너 돼지 물 좀 줘라』고 소리를 질렀다.『숙제도 다 못했는데…』라는 어린 딸아이의 대구에 주인 여자는 또 볼멘 소리를질러댔다. 『이년,무슨 주둥이질이야!』라고」.이쯤되면 조선족 사회의 마작바람도 보통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령조선문보가 적시한 조선족 마을에 있는 소학교를 찾아갔다.4∼6학년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마작 놀줄을 아는 학생은 손을 들라 했더니 65% 정도가 손을 올렸다. 그중 한 학생은 『얘들도 다 놀줄 아는데 손을 안듭니다』라고 큰 소리로 고자질 했다.
  • 유치위 구성 산파 이민섭 전 문체부장관

    ◎“먼저 출발한 선수와 동시골인한 기분”/국민·정부 하나 돼 뛴 덕분 2002년 월드컵 공동유치가 결정된데 대해 문민정부 초대문체부장관을 지낸 이민섭 전 의원의 감회는 남다르다.그는 94년 3월 정식 발족한 월드컵유치위원회 구성에 산파역을 했다. 그는 93년 3월 당시 관계부처 간부들이 『이미 일본으로 내정됐는데…』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때 『노력도 안해보고 무슨 소리냐』며 김영삼 대통령에게 유치위 구성을 적극 건의,승낙을 받아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일부 언론이 『정치인 출신 장관이 인기를 위해 무모한 일을 벌였다』고 비난,곤혹스러웠던 기억도 떠올렸다. 이전장관은 그러나 김대통령의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에 힘입어 유치위 구성에 적극 나섰고 영국대사를 하다 귀국해 쉬고 있던 이홍구명예위원장을 설득,초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전장관은 그러나 『50m 앞에서 달리던 선수와 동시에 골인한』 엄청난 승리의 공을 문민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체육외교의 힘으로 돌렸다.〈박찬구 기자〉
  • 부녀자 히로뽕 먹여 11명 인신매매/4명구속

    서울지검 강력부(서영제 부장검사)는 25일 생활정보지에 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고생 등을 꾀어 히로뽕을 투약,성폭행한뒤 시골 다방 등에 팔아넘긴 박종식씨(40·노동) 등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간음유인)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이같은 수법으로 부녀자 11명을 유인,충남 논산과 강경 등지의 다방에 팔아넘긴 혐의를 포착,수사중이다.〈박은호 기자〉
  • 스승의 사랑을 반추하며/이명수 충남도청 정책실장(공직자의 소리)

    ◎교직을 천직으로 지키신 그 모습 영원히 못잊어 선생님. 얼마전 전화로 들려주셨던 선생님의 인자하신 목소리는 아직 귓가에 남아있지만 뵙지못한 빈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색바랜 앨범속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가끔씩 확인하지먀ㄴ 그래도 두터운 사랑의 손길을 직접 느끼고 싶습니다.더욱이 마음마저 푸르게 물드는 신록의 계절을 맞아 왠지 모를 그리움이 자꾸 돋아나면서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게 스며듭니다.인생은 생명으로 시작하여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습니다만 저의 그리움은 이미 만남과 이별의 순간으로 가득한 시간의 역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 곳에서 과거로 가는 열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차창가에 어떤 풍경들이 몰려올까요.이 세상 어느 하늘 밑에 살아도 그리우면 언제든 한 걸음에 달려가는 것,우선 고향과 모교의 모습이 선연히 비쳐집니다.선생님의 가이없는 사랑속에 올망졸망한 친구들의 동심과 천진함이 배어나고 철따라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던 학교길과 운동장….그것들은 과연 어떤영상으로 차창가를 스치고 지나갈까요.분명한 것은 어린날 기억의 저편에서 돋아나는 향수와 정겨움들이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퇴색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선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그 숱한 직업중에서 선생님께선 아무런 망설임과 주저없이 처음부터 교직을 「천직」으로 택했다고 하셨지요.껑충한 키로 교단에 서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근엄과 경의로움 바로 그것이었지요.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대해 주셨지만,선생님으로서의 곧은 몸가짐은 늘 지키려 하셨지요.시골학교라서 학업성적이 떨어진다고 사택옆의 방을 얻어서 밤늦게까지 저희들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은 그 때 밤하늘에 뿌려졌던 별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감사함 그자체입니다. 선생님. 이제 푸르른 여름의 문턱에서 선생님께서 뿌리신 배움의 씨앗이 중년이 되어 시원한 포플러 그늘아래서 잠시 머물게 된 역,그 시간의 역에서 선생님의 가이없는 사랑을 반추해봅니다.새로운 출발의 기적소리가 울리면,저희는 다시 새로운 시간의 열차를 타야겠지요.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방향과 목표를 향해서요. 끝없이 불러보고 싶은 선생님. 아름다운 여생,진정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시길 마음다해 비옵니다. 제자 드림
  • 한국토지공사 이효계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21세기엔 국민기업으로 발돋움”/택지·공장용지 올 73만평 공급… 서비스 개선/쓰레기 관로수송·에코폴리스 건설…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역점/중·러·베트남·인도 연결 아시아 공단벨트 구축 이효계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대형 국영기업체의 최고 경영인이라기 보다는 시골 학교의 인자한 교장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나직한 목소리에 간간이 엷은 미소를 띠우고 회사를 차근차근 소개하는 그의 말투에는 신뢰가 느껴진다.그러나 『토지공사가 개발이익을 너무 많이 남겨 「땅투기공사」라는 비난도 받고 있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만 펄쩍 뛰었다.너무 억울하고 섭섭하다는 표정이 완연하다. 이사장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목청을 높여 『그건 정말 우리 토지공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강조했다.『예전에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지금이 어느 때 입니까.지난해 초 부임 이후 직원들의 자세를 검증해 봤는 데 부정의 소지가 없을 뿐더러 이제는 잘못을 저지르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땅투기 말도 안돼…” 그는 토지공사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문화재개발과 휴식공원조성 등 각종 좋은 사업도 벌이는 데 이것은 묻히고 땅문제와 관련한 헛소문만 부풀려져 떠도는 것이 못내 불만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땅을 처음 사들일 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지만 이를 이용 가능토록 부가가치를 높여 개발하면 그 만큼 값이 비싸진다』며 『처음의 땅값과 개발후 땅값을 단순 비교해 투기라고 몰아붙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올해의 사업계획부터 듣고 싶은 데요. 『올해는 4조원을 들여 4백50만평의 주택용지와 2백50만평의 공장용지 등 모두 7백30만평의 토지를 공급할 계획입니다.주택용지는 계속사업지구에 2백40만평,신규사업지구에는 공동주택지를 우선적으로 공급합니다.공업단지는 2백86만평 규모의 오창과학단지와 1백5만평 규모의 전주과학단지를 본격 착수하고 18개 사업지구에 땅을 공급하게 됩니다.올해에는 해외공단개발사업도 본격화할 생각입니다.우선 베트남 하노이공단은 빠르면 6월에 착공할 예정입니다.러시아 나홋카공단도 늦어도 연말에는 착공될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발도 중요하지만 공급이 더 큰 과제입니다.부동산경기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지킬 것입니다』 ­올해초에 이름을 한국토지공사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업의 이름은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이름을 바꾼데는 두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첫째는 이름과 업무의 연관성 때문입니다.창립 당시인 지난 75년에는 「토지금고」였습이다.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부동산에 묻힌 자금을 산업자금화하는 토지은행 기능이 주업무였기 때문이지요.79년부터는 「한국토지개발공사」로 바뀌었습니다.토지개발 기능이 추가됐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현재는 토지관리·지가조사·도시계획·지리정보시스템·지역경제연구·기술개발 등 토지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개명이 필요했습니다.두번째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연유합니다.국민 대다수가 「땅」하면 「투기」와 「개발」을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그래서 제2의 창업 정신으로 과감히이름을 바꾸었지요』 ­그렇다면 제2의 창업에 걸맞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있을 텐데요. ○고객지원센터 설립 『물론입니다.우선 고객제일의 경영체질을 위해 사업시행자 보다는 고객을 중심으로 제도와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고객지원센터를 세워 용지보상·판매·세무·컨설팅·건축인허가 등 부동산관련 정보를 서비스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것이 바로 그런 차원이지요.우리가 만든 제품에 정성과 혼이 담긴 품질위주의 완벽시공도 전략의 하나입니다.해외사업을 다변화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한 기업문화를 재창조하는 일도 새 경영목표에 포함시켰습니다』 ­일반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토공이 지역사회 발전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들었습니다. 『우리 공사는 20년 이상 택지와 공단을 개발하면서 여의도 면적의 1백배인 9천1백만평을 공급했습니다.택지는 지역간 균형개발을 위해 가격차별제와 지방업체 및 주민에게 분양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특히 주택업자에게는공동택지의 70%가 넘는 1천만평을 조성원가로 공급해 무주택 서민의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공단도 상대적으로 지역개발이 뒤진 서부권에 군장·대불·광주첨단 등에 총 공단개발 면적의 절반을 공급했습니다.이곳에는 7천3백여개의 공장이 입주할 수 있고 입주가 끝나면 연간 44조3천억원의 생산창출과 50만명이 넘는 고용증대 효과도 기대됩니다.신도시 건설과 관련해서는 분당선·일산선·도로·교량·하수처리장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을 위해 개발이익 중 3조4천억원을 지원했습니다.분당 중앙공원을 비롯해 일산호수공원 등도 개발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판매기법의 다양화 ­공사가 새로운 개발전략으로 추진하는 환경친화적·인간지향적 개발의 개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주택보급률이 80%를 넘었고 정부가 추진 중인 2백85만호 주택건설사업이 완료되면 95%에 이를 전망입니다.이제부터는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동시에 주거의 질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도 추구해야 합니다.토공에서는 「클린그린타운」 조성을 위해 용인수지 2지구에 국내 처음으로 최첨단 쓰레기 수거시스템인 관로수송방식을 도입합니다.이 방식은 환경선진국인 스웨덴·일본·미국 등에서 시행중입니다.또 자연을 그대로 살려 도심에서도 물고기가 사는 맑은 시내물을 볼 수 있게 환경친화도시(에코폴리스)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지난 92년부터 지속된 부동산시장의 침체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경영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데요.특별한 타개책이라도 있는지요. 『지난해는 전국적인 투자설명회와 「D­120일 작전」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부동산시장 침체를 극복했습니다.3∼4년간 팔리지 않은 충무 도남,논산 강산 등의 택지는 20∼30%까지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백화점식 가격할인제도 해봤습니다.덕분에 7백31만평,3조7천억원의 매각실적을 올렸지요.올해도 「D­300일 작전」을 세워 시행중입니다.앞으로도 특정 상품에 대해서는 한시적 가격할인제를 확대하는 등 판매기법을 다양화 하겠습니다. ­해외공단 개발사업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민간기업에 비해 공기업의 해외진출 실적은 미미한 실정입니다.중국·러시아·베트남 등지를 돌아보면서 토지공사의 해외진출이 늦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경쟁국인 대만·홍콩·일본 등은 벌써부터 해외로 진출해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우리 공사의 해외사업은 국토의 확장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이미 착수한 중국의 천진·심양공단,베트남 하노이·호치민공단,러시아의 나홋카 공단,진출을 검토중인 인도·미얀마·중국연길 등 해외공단과 국내의 인천연수·아산·군장·목포대불·포철연관·동해북평 등을 지도를 펴고 이어보면 거대한 동북아 연안공단벨트를 형성하게 됩니다.공기업의 공신력과 경험·기술을 최대한 활용,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부응하는 해외공단개발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안심하고 생산활동에 전념토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토지전문기관으로 통일이후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통일에 대비해 북한에 대한 토지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 문제는 정부와 긴밀한 협조로 국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습니다.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사회주의권에서의 개발사업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참여의 기회가 닿는다면 북한지역의 토지개발사업에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이사장은 숭실대 법학과(63년)와 서울대 행정대학원(68년)을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주립대(70년)를 수료했다.대학재학 중이던 61년 고시행정과(13회)에 합격했고 내무부에 몸담아 전주시장·부산부시장·광주시장·전남도지사·국무총리비서실장·내무부차관 등을 역임한 행정통이다.〈육철수 기자〉 ◎토공의 장기 사업전략/물류·관광단지 등 특화사업 강화/동구·중남미·아주 등 개발거점 다변화/문화사업 지원 등 공공역할 비중 높여 한국토지공사가 올해부터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방향과 전략을 설정,21세기 미래지향적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땅값 안정국면에서 수익성은 떨어지고 그동안 독점적인 사업영역도 지방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도전받는 위기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전략수정으로 보인다. 토공은 21세기에는 「세계로 웅비하는 최고 토지전문국민기업」을 목표로 잡았다.이를 위해 경영다각화·경쟁력강화·경영효율화·경영내실화 등 4가지 부문별로 기본전략을 수립했다. 경영다각화를 위해서는 주택과 공장용지 공급 일변도에서 벗어나 복합·과학·물류·관광단지와 역세권개발사업 등 해당지역의 여건에 맞는 지역특화사업 추진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또 21세기 고도정보화사회에 대비,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를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인천신공항배후단지 건설 등 특정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할 뜻을 갖고 있다. 해외사업을 통한 국제화 추진도 경영다각화의 한 방편이다.해외사업은 특히 현재 동남아·동북아 위주에서 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지역으로 개발거점을 다변화할 계획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기능과 역할의 차별화·고유화를 이루고 택지 및 공단개발사업의 안정적 추진기반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또 경영효율화를 위해 연구개발의 전문화를 통해 고유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며 내실을 다지기 위해 사업방식개선,품질향상,대외 이미지 개선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토지공사는 그러나 실질적 주인인 국민의 친화적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사업상 전략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최근들어 문화사업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토공 관계자들은 『사실 토공만큼 공기업의 실상이 잘못 알려진 곳도 없다』고 푸념한다.우리의 부동산시장이 그간 부의 축적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땅을 다루는 것 자체만으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토지수용이라는 비자발적인 토지의 양도과정도 이미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토공 관계자들은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높은 공공성 때문에 재투자를 위한 최소한의 영리만을 취한다』며 21세기를 향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토공에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기대하고 있다.
  • 항암 된장(외언내언)

    된장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향수와도 같은 그리움의 상징이다.된장맛에서 풍겨나는 소재는 어머니·고향·토속성·순박함 등이다.그래서 한국인들은 누구나 된장국·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는지.몇십년전만해도 추운 겨울밤 화롯불위에 된장 뚝배기를 올려놓고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낙네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전경이었다.사그러져가는 화롯불을 다독거리는 여인의 정성속에서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끓는다.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된장은 한국이 단연 종주국이다.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에 『고구려사람은 장을 잘 담근다』라 했고 신당서에는 『발해의 서울 메주는 유명하다』고 기록했다.조선시대에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시골사는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좋은 장이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증보산림경제)고 했다.그러기에 장독대는 신성한 장소였고 장 담글때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고려의 막장(말장)은 1천2백년전 일본에 전해져 「미소」라고 불리워지는데 「미소」는 말장의 일본식 발음이다.된장이나 청국장은 맛을 낼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장의 재료인 콩에는 단백질 38%,지방 18%가 함유돼 있다.「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을 원료로 하여 실박테리아로 발효시켜 만든 된장은 신비한 항암효과가 있다는게 정설이었다. 그 항암억제효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식품개발연구원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된장 추출물은 간암세포 실험에서 93.3%의 억제율을 보였고 청국장추출물은 위암세포 실험에서 95.7%의 억제효과를 보였다는 것,또한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막는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 우리식탁의 기초식품이 이렇게 강력하고 신비한 항암효과를 가졌다니 반가운 일이다.고구려시대부터 장을 담가 먹는 선조들의 실용적 예지가 놀랍다.그런 된장도 이제는 신세대주부들에 의해 외면당해 장 담그는 일이 사라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지난번 간장파동이후 그래도 메주찾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반영환 논설고문〉
  • 신한국당 선정 「8도 맏며느리」 경북 정순덕씨

    ◎역경속 8남매 집안 일궈온 “억척” 경북 안동 풍산읍 죽전리에 사는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 정순덕씨(42)가 낯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한복차림에 고무신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도 같이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씨는 연신 흙때가 묻은 손마디를 만지작거렸다. 3년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신 시할아버지,올들어 밭은 기침소리가 부쩍 잦아진 시아버지(80),8년전 경운기사고로 목뼈를 다친 뒤 후유증에 시달리는 남편(50). 그래도 굴레 같은 삶의 테두리를 억세게 헤쳐왔다고들 주위에서는 말한다.지금껏 싫은 소리 한번 내뱉은 적도 없는 억척며느리로 소문날 정도다. 오히려 대소사가 잦은 시골 집안에서도 옆길로 새지 않고 꿋꿋하게 자란 3남매가 대견스럽기만 하다. 부산에서 일자리를 얻은 큰딸(21)이 첫 월급으로 선물한 내의는 이태가 넘도록 옷장 깊숙이 간직해뒀다.『행여 닳을까봐서』란다. 지난 3월 건국대 경제학과에 거뜬히 입학한 둘째아들과 고교 2년생인 막내아들이 얼마전 『어버이날에 시아버지 모시고 온천이나 다녀오라』며 코묻은 돈을 내밀 때도 싫진 않았다. 얼마전부터 후유증이 조금씩 호전돼 함께 상경한 남편 박대우씨는 『모두 아내 잘 만난 덕』이라며 「팔불출」이 되길 마다하지 않는 눈치다. 정씨의 사연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신한국당의 팔도맏며느리 가운데 경북지역 효부로 뽑힌 것이다.시·도지부의 추천을 받은 5백30여명 가운데 실사작업을 거쳐 선정된 8명의 맏며느리는 7일 전국위원회에서 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상패를 수여받았다.
  • 악화되는 식량난(북녘국경지대 지금은…:5)

    ◎춘궁기 북한주민 국경넘어와 양식구걸/“새땅찾기” 개간사업에 야산은 온통 “민둥산”/북친척방문 조선족 자기먹을 양식 따로 휴대/원자재 바닥나 공장기계 멈추고 상점 진열대는 텅비어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 요령성 란동시 세관 옆의 허름한 버스정류장.60년대 한국의 시골버스를 연상케 하는 2대의 버스가 북한으로 가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그 버스는 보통의 버스가 아니었다.절반으로 나누어 뒷부분은 짐을 싣도록 개조된 「절반의 버스」였다. 그 절반의 버스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징표다.북한에서 필요한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보다 많이 싣고 가기 위해 버스를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날도 짐칸은 양식이나 식용유 등을 넣은 상자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가득찼다. 버스는 보통 하루에 1∼2회씩 「양식」과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는 조선족을 태우고 국경을 넘는다.북한으로 막 떠나려는 버스에는 10여명의 북한 방문객이 타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버스정류장은 이들을 환송하는 조선족으로어수선했다. 아내를 환송하기 위해 나왔다는 조선족 황모씨(43)는 『중국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조선족이 북한에 갖고 가는 양식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조선족은 양식이든,생활필수품이든 자신이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만난 조선족 최모씨(53)는 『옥수수·감자를 먹을 정도면 잘 먹는 축에 든다』며 『많은 북한주민은 풀뿌리나 칡뿌리 등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선족은 이 때문에 북한의 친척을 방문할 때 자기가 먹을 양식과 친척에게 줄 양식을 갖고 가는 것이 상례화돼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함경북도 무산군 노덕리와 강폭이 1백m쯤 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중국 길림성 화용시 덕화진 남평촌.2백∼3백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농촌마을이다.서정적인 농촌풍경이 한가롭지만 이곳 주민은 커다란 걱정거리가 생겼다.중국인 양모씨(58·여)는 『춘궁기를 맞아 끼니거리가 없는 북한의 무산군 주민이 하루가 멀다 하고국경을 넘어와 밥을 얻어먹거나 양식을 구걸해가는 통에 안줄 수 없어 고민』이라며 그들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함경북도 회령의 상황도 암담하다고 한다.최근 회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2)는 『회령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죽음의 도시」 같았다』고 말했다.『식량난에다 원자재마저 부족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거리의 상점에는 진열된 물건도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회령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안내원에게 친척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그러나 안내원이 『친척이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며 친척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렇지만 거듭 간청해 돌아오기 전날에야 겨우 친척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준비해간 건면(밀가루국수) 50근과 사탕·과자 등을 내놓았다.친척은 『7개월동안 양식을 배급받지 못했다며 우리 두 식구가 반년은 먹을 수 있다』고 즐거워했다고 한다.왜 만나려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친척은 『대접할 음식이 없어 초청을 못했다』고 말해 그는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길가에 20대청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안내원에게 『왜 저러냐』고 묻자 『간질병이 도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그러나 나중에 한 주민에게 묻자 『못먹어서 그렇디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숭선진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6·여)는 『북한은 식량절약을 위해 「하루 한끼 먹기운동」 「새 땅 찾기운동」등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새 땅 찾기운동은 야산에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것. 북한은 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뙈기전을 허용하고 있다.뙈기전은 주민이 아침저녁으로 짬을 내 야산을 개간해 만든 조그마한 땅이다.그는 『뙈기전에서 생산한 양식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이 뙈기전 개간에 온통 신경을 쓴다』고 설명한다. 뙈기전과 산에 밭을 만드는 국가적 개간사업으로 북한의 야산은 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지난해 일어난 대홍수 원인중의 하나도 개간사업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은 식량난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의 전쟁준비설을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고구려의 도읍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만난 조선족 강모씨(46)는 『북한은 식량난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쟁을 벌이려 한다」고 선전하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중국 길림성 집안에서=김규환·김명환 기자〉
  • 미 국무부 「타운 미팅」/본사특파원 인디애나주립대 참관기

    ◎정부·지방주민 신뢰 쌓는다/납세자 만나 정책 설명… 민의 반영/정치인·기업인 등 대거 몰려 성황 연방정부의 대외정책이 더 이상 워싱턴만의 것은 아니다.미국무부가 세계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전국의 납세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정부의 대외정책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키 위해 마련하고 있는 「타운미팅」의 현장은 지방민들의 상대적 소외감 해소는 물론 정부와 지방주민 간에 이해와 협조를 주고받는 신뢰의 한마당이기도 했다. 24일 인디애나주의 주도 인디애나폴리스 북서부의 인디애나주립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한 유니버시티 플레이스 강당은 연방정부 대외정책 입안가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려는 정치인·기업인·학자등이 몰려 4백여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다. 올들어 9번째로 열린 이날 타운미팅의 주제는 「세계 경쟁력」.동아시아와의 활발한 교역으로 자동차부품 및 철강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인디애나주민들의 관심에 맞춰 정해졌고 강사 및 연제도 그에 맞춰 ▲국제무대에서 미국 리더십의 유지(그레그 존스톤 자원기획정책실장) ▲미국과 태평양연안국과의 관계전망(앨런 롬버그 정책기획실 부실장) ▲시장개방 및 번영의 증진(샤운 도넬리 경제기업문제담당 부차관보) ▲러시아와 구소련 신흥독립국(도널드 그로스 무기통제 및 비무장국 선임정책고문) 등으로 선정됐다. 첫연사로 강단에 선 존스톤 실장은 알제리대사를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먼저 국무부 대외정책 전반을 설명하면서 미국 지도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현재 1.2% 밖에 안되는 국무부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북한과 핵합의에서 한국·일본등 동맹국에 비해 미국의 엄청나게 적은 비용부담,유엔등 국제기구에의 분담금 연체등을 지도력 손상의 실례로 들었다. 20여년간 동아시아문제만을 다뤄온 롬버그 부실장은 중국·일본·한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태평양연안국들과 미국과의 미래 관계에 관해 설명했다. 또한 경제통인 도넬리 부차관보는 지난 3년간 미국의 수출증가 이유를 분석하면서 지난해 25.6%의 수출증가를 기록,1백16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린 인디애나주의 업적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특히 중소기업의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구체적 방법 제시로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한편 참석자들의 질문은 다양하면서도 광범위하게 계속됐다.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연체하고 있는 분담금에 대한 해결방안을 묻는가 하면 미국의 대외원조가 지나치게 이스라엘과 이집트 두국가에만 집중되고 있는 이유도 물었다.또한 냉전종식 이후 유엔의 운명에 대한 것과 CIA의 역할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동아시아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의 외국기업에 대한 장려정책이 등소평사후에도 계속될 것인가,홍콩이 접수된 후에도 자유항구 자유경제 지역으로 남을수 있을 것인가등 중국 관련이 많았다.동북아에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 이유,한국군의 방위능력,미·일안보체제 등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날 타운미팅은 상오 8시부터 하오 4시까지 하루종일 계속됐으며 참석자들은 『언론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른 내용은 없으나 그래도 직접 보고 얘기를 들으니까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게 됐다』(데이비드 빌러·58·홍콩상대 무역업자),『시골에 산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모임에 와보니 우리도 세계무대의 한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됐다』(래리 이그래함·45·컨설팅업),『지나친 정부정책의 선전장 같다』(쳉 프랭크씨·30·금융업)는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인디애나폴리스=나윤도 특파원〉
  • “미인은 사람들이 만나고자 한다”(박갑천 칼럼)

    우리가 지금 쓰는 말 가운데는 새로운 뜻이 덧붙으면서 조상이 쓰던 말뜻은 희미해진 것들이 있다.이를테면 「발명」같은 말.조상들은 『잘못이 없음을 변명하여 밝히다』라는 뜻으로 썼다.「방송」도 그렇다.본디는 『죄인을 풀어주다』라는 뜻이었다. 관광도 그런 말에 끼일 만하다.「역경」(상경·관)에「관국지광」이라는 말이 나오고 『다른 나라의 광화(빛나는 문물제도)를 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긴 하다.한데 우리의 경우는 그보다는 『과거를 보러가다』라는 뜻으로 썼다.시골 사는 사람으로서 과거보러 서울 간다는 것은 유람(관광)하는 것과 같아서였을까. 사람에게는 자기가 모르는 곳을 동경하는 마음이 본능으로 깔려 있다 한다.보지 못한 자연경관과 낯선 문물에 취해보고자 하는 마음.그 마음은 마침내 지구촌에 머무르지 않고 달(월)관광·우주관광까지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그래서 앞으로의 최대산업을 관광이라 단언하는 견해도 있다.그런 흐름인 듯도 하다. 조화옹의 절묘한 작품만이 관광대상으로 되는 건 아니다.사람이 이룩해놓은 자국도 그에 못잖은 터.마병 같건만 빛나는 문화유적들이 그것이다.그를 두고 관광을 역사와 조상 팔아먹는 사업이라고도 하지 않던가.또 이 돈벌이같이 희한한 것도 없다.원자재가 드는가,애면글면 물건을 만드는가,날라다주느라 꽁지가 빠지는가.제발로 들어와서 깨진 이징가미에 감탄하며 돈을 내는 것이니 봉이 김선달의 강물 팔아먹기보다도 식은 죽 먹기.더구나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보면 화수분 바로 그것이다. 비록 천혜의 자원은 모자라다 해도 이 「사람이 만든 자원」만은 더 많이 개발하면서 계속 쌓아나가야 한다.한번 와보고선 열번 스무번 오고 싶어지는 나라로 만들자는 뜻이다.『미인은 비록 문밖에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만나고자 한다』(묵자 공맹편)고 했다.『복숭아나무·오얏나무는 아무말 하지 않아도 (꽃과 열매로 해서)그 밑으로 길이 절로 난다』(사기 이장군 열전)고도 했다.그 미인을 간직하여 「미소의 전쟁」을 벌여야 하고 그 꽃과 열매를 간직하여 「굴뚝 없는 전략산업」일 수 있게 해야겠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다녀간 관광객은 3백80만명이고 그들이 떨어뜨린 돈은 56억달러라 한다. 관광객으로는 6천58만명의 프랑스가 으뜸이지만 벌어들인 돈은 미국의 5백83억7천만달러가 첫째.우리의 10배도 넘는다.「한국 방문의 해」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관광입국에 힘과 슬기를 모아나가야겠다.〈칼럼니스트〉
  • 소설가 박완서(이세기의 인물탐구:95)

    ◎결혼 20년만에 작가의 꿈 실현한 “독종”/신랄한 비판의식으로 사회각층의 모순 파혜쳐/인간심리 선·악의 양면성 자연스런 문체로 추적/「한말씀만…」은 통곡없이 읽을수 없는 「발작적 설움」의 기록 박완서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미화의 욕구」를 극복하면서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하는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 증언」 때문일 것이다.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병의 물을 거꾸로 쏟아붓듯이」 생동감 넘치게 흘러내리는 문체는 오늘의 세태풍속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말 뒤에 숨겨진 섬광 같은 비판」으로 「인간심리의 악마적인 양면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일에 능란하다. 평론가 정호웅은 이를 「천의무봉의 문체」로 표현하고 『방법론이나 지적인 장난 없이 글을 글답게 써내려가는 자연스러움이 일품』이라고 말한다.내용도 마찬가지다.그의 가차없는 비판정신은 「현모양처로서 충분히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여성에게 일상의 안일을 뒤흔들어놓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그 자신은 「삶의 진실을 희생시킴으로써 소설의 진실을 건져올리고 있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지난 8년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과 파란을 겪은 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슬픔이 발효되고 아픔이 승화된 체관의 경지에서 「언어의 사제,진실의 사제」다운 여유를 치렁치렁하게 펼치는 것이 눈에 띈다.『도대체 소설이 이렇게 진실해도 좋은가』라는 평론가 김윤식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자기미화의 욕구 극복 이 두 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 「한 개인의 삶의 역사」이자 「20세기 한국의 생활풍속사」이며 식민지지배와 태평양전쟁,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수난과 격동의 세월을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작가의 유년의 기억을 쓴 1부작 「그 많던 싱아…」는 「고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세상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고통에는 어떤 종류의 삶이 생성되는가를 생생하게 되살린 반면 성장의 나날을 그린 2부작 「그 산이 정말…」은 참혹한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속에서 「고귀한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 인간이 어떻게 몸부림쳐왔는가」에 대한 눈물겨운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는 지금은 휴전선 이북인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그늘진 평평한 골짜기에 초롱초롱한 은방울꽃이 눈부시게 쫙 깔린」 평화로운 시골에서 태어났다.세살때 부친을 잃었으나 조부모를 비롯,숙부·숙모·사촌들이 한솥밥을 먹는 대가족 사이에서 아버지가 그리워 청승을 떤 적도 없고 각박함도 모른 채 「태평스럽고 구김살 없는」 유년기를 보냈고 여덟살되던 해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서울에 정착했다.그러나 서대문밖 현저동꼭대기 「공동수도언저리에 물통행렬이 끝도 없이 줄서 있는」 빈민촌에 살면서 문안의 학군인 매동국민학교에 입학했고 「진짜 주소와 학교에서 선생님이 물을 때 대답해야 할 사직동의 가짜주소를 반복연습」하는 「조마조마하고 헷갈리고 주눅들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던 해 6·25를 만나 「미래의 희망」이던 오빠마저 죽자 학업을 중단한 채 미8군 PX에 취직,그 자신이 법이 되고 질서가 되어 세상의 힘과 부딪쳐야 하는 황막한 「한발의 시기」에도 그는 「걸신들린 듯」 세계명작에 탐닉하면서 그때 이미 「소설가가 되리라는 찬란한 예감」과 함께 20년후의 데뷔소설인 「나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바로 성장기에서 53년,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호영진과 결혼」한 내용이다. 그가 변치 않는 것은 언제나 조용한 목소리,조용한 몸짓.일상적인 레가토와 모데라토를 지키면서 어디서나 도무지 불규칙과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점이다.그러나 그의 목소리속에 깃든 격렬한 웅변과 감연한 비판정신은 입가의 미소로도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오히려 일찍이 범상치 않아 어떤 상례에 얽매어 자신의 가치관을 팽개쳐버릴 만큼 안이한 일면은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기에나 남들 보기에 팔자좋다고 일컬어질 만큼 평탄하게」 사는 중에도 간혹 「인간 같지 않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이하의 수모를 받을 때는 『너를 내 작품속에 넣어 네가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리라』라고 앙칼진 독기를 품고 있었고 막상 소설가가 되자 「역사의 한줄기가 내 개인사를 어떻게 할퀴고 지나갔는가」를 꿰뚫어가면서 「사람은 결국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사람은 존엄하다는 것」과 사회각층의 모순을 작품 곳곳에 비정하리만큼 냉정하게 파헤쳐놓고 있다. ○빈민촌 불루한 어린시절 백낙청도 「휘청거리는 오후」등 박완서의 일련의 작품에 대해 「명백하고 신랄한 사회비판의 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다.이남호·이동하는 「정확하고 세세한 기록은 그 자체로 진실의 힘을 갖는다」고 전제한 데 비해 간혹의 평자는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이기주의자」 「결혼한 스무해동안 작가가 될 야심을 은근히 불태운,매섭고 냉혹하게 삶을 움켜쥐려」한 「말못할 독종」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렇다.그가 뭇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작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두배 세배로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 머언 기억속에서 곱씹고 있던 그의 과거를 「탁월한 기억력과 용기 있는 솔직함」으로 기록한 것만 봐도 그의 작가의식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은 그가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던 지난 88년,폐암을 앓던 남편을 잃었고 다시 몇달만에 「딸을 넷씩이나 낳고 마지막으로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아들」마저 잃게 했으며 그는 절망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왜 하필 나인가」,「지옥」을 안겨준 신에게 「한말씀만 해보시라」고 애걸복걸 매달린 「참척의 일기」는 통곡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발작적인 설움」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저의 개인적 불행을 매스컴에서 너무 강조할 때는 인간의 고통도 상품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는 그는 엄청난 타격을 딛고 일어선 지금도 문득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원한대로 『외롭다』고 대답을 해주긴 하지만 속으로는 「너는 외롭지 않은가,외롭지 않다면 바보」라고 끝내 얄팍하고 야비한 인심에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10여년전부터 살고 있는 방이동 대림아파트에서 그는 탤런트 김혜자를 풍기는 상큼하고 상냥한 미소를 되찾아 아침에 눈뜨면 『내게 글쓰는 일이 없었으면 어땠을까』,글쓰고 싶은 감동이 시들지 않는 것이 행복하며 「내안에서 생기와 기쁨이 무수한 입자처럼 들고나는 걸」 실감하고 재확인하고 있다. ○창작욕 시들지 않아 다행하게도 네딸이 모두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손주들이 그의 「낙」이 되어 「가족」의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는 잡념없이 요즘은 결혼후의 이야기와 작가생활에서 체험한 제3작 집필을 앞두고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은 「먼산」처럼 흘러가버렸으나 유년의 골짜기에 피어 있던 「싱아」와 「그 산」을 되살려낸 그는 이제로부터는 「죽을 때까지의 현역」의 자리에 우뚝 선 채 더 멀리 더 높이,그리고 작열하는 창작욕과 기억의 힘을 창천의 끝까지 날리고 싶어한다. 「그 산이 정말…」의 마지막 부분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성장도 하고 싶었다」고.바로 그는 이를 실천한 선택된 작가의 한 사람인 것이다. □연보 ▲1931년 경기도 개풍출생 ▲1950년 숙명여고졸업및 서울대 국문과입학,6·25로 학업중단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나목」 당선 ▲1975년 「문학사상」에 「도시의 흉년」 연재시작 ▲1976년 첫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일지사) 출간 작품집 「휘청거리는 오후(전2권)」 중편집 「창밖은 봄」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혼자부르는 합창」(77년),창작집 「배반의 여름」 장편 「목마른 계절(원제 한발기)」 수필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78년),「도시의 흉년(전2권)」 장편 「욕망의 응달」 창작동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79년),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80년),단편집 「엄마의 말뚝」 장편 「오만과 몽상」 수필집 「살아 있는 날의 소망」(82년),장편 「그해 겨울은 따뜻했내」(83년),장편 「서 있는 여자」(85년),수필집 「서 있는 여자의 갈등」 창작집 「꽃을 찾아서」(86년),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89년),장편 「미망(전3권)」 수필집 「나는 왜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90년),창작집 「저문날의 삽화」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91년),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92년),「La piquet de ma me're(엄마의 말뚝)」불역(93년),「한말씀만 하소서」(94년),「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95년)등 장단편 30여권 수상 한국문학작가상(80년) 이상문학상(81년) 대한민국문학상(90년) 이산문학상(91년) 중앙문화대상 및 현대문학상(93년) 동인문학상(94년) 한무숙문학상(95년)
  • 4·11총선 화제의 인물들

    ◎부천소사 김문수/재야 출신… 국민회의 대변인 눌러 호남 출신 인구가 30%를 넘어 「수도권의 호남」으로 불리는 부천 소사구에서 국민회의 최장수 대변인 박지원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신한국당 김문수 당선자(45)는 아직도 얼떨떨한 모습이다. 역대 선거에서 야당이 부천의 전지역을 휩쓸어온데다 박후보의 지명도가 워낙 높아 선거운동 기간동안 악전고투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낡은 정치행태를 척결하고,정의와 도덕에 의한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유권자들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선의 원동력으로 자연인 김씨의 따뜻하고 겸손한 인간미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94년 민자당에 재야영입 첫 케이스로 들어온 김당선자는 노동운동 경력 때문에 한때 지역에서 「빨갱이」라는 극언까지 떠돌았으나 그의 인간미는 투쟁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으며 민중당 노동위원장,노동인권회관 소장 등을 지냈다. ◎청양·홍성 이완구 당선자/자민련 텃밭에 「신한국 깃발」 꽂아 자민련이 「싹쓸이」한 대전·충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의 깃발을 꽂은 이완구 당선자(45)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지역주민의 승리』라고 했다. 충남지방경찰청장에 재직하다 선거를 불가 1년남짓 앞두고 지구당 위원장으로 정치에 뛰어든 신출내기 정치인이 2선 의원에 막강한 자민련의 바람을 탄 사무총장 조부영후보를 6천여의 압도적인 표차로 잠재웠다. 『주민의 대변자로 통일과 농촌지역발전에 힘쓰겠다』는 이당선자는 지구당을 맡으면서 맨발로 표밭을 다졌다.특유의 부지런함과 뚝심으로 하루 4∼5곳씩 마을을 돌며 주민들과 일일이 만나 얼굴 알리기에 주력했다. 『어느 가난한 시골여인이 손을 잡고 선거비용으로 써달라고 2만원을 호주머니에 찔러줄 때 승리를 예감했다』했다는 그는 『공약으로 내놓은 30만 신도시건설을 이루지 못할 때는 의원직 사퇴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했다. 홍성군 장곡면이 고향인 이당선자는 성균관대 재학때 행정고시에 합격,경찰에 투신해 홍성경찰서장과 충남·북 지방 경찰청장을 지냈다.〈홍성=이천렬 기자〉 ◎관악갑 이상현 당선자/3수 끝 중진 한광옥씨에 쓴잔 안겨 『지역정서를 극복하고 인물 위주로 선택한 유권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서울 관악 갑에서 「3수」 끝에 국민회의의 중진 한광옥후보를 물리치고 국회 입성에 성공한 신한국당 이상현 당선자(51·관악 갑)는 12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특정정당 후보보다는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정서변화가 승리의 원천이었다』고 자평했다.『개혁시대에 맞는 참신한 인물론도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3∼14 총선에 출마했다가 한광옥의원에게 거푸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이번에는 4천여표 차이로 여유있게 승리했지만 개표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사회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정치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왔다. 지난 10여년 동안 장학사업을 펴고 주부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밑바닥 인심」을 얻는데 애썼다.〈김환용기자〉 ◎성북갑 유재건 당선자/골목 유세로 3선 이철씨에 낙승 서울 성북 갑에서 민주당의 대표주자인 3선의 이철후보에게 고배를 안긴 국민회의 유재건 당선자(59)도 4·11 총선 스타의 한 사람이다.4천5백여표 차이의 낙승이었다. 「인간적 신뢰감」을 부각시킨게 주효했다는 자체 평가이다.「새로운 인물의 새로운 정치」를 호소했던 그는 『정직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특별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주민들의 바람은 민원이나 숙원사업의 해결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오히려 제가 놀랐고,많이 배웠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방송 심야토론의 진행자로 낯이 익다. 골목 골목을 누비며 주민의 애환과 바람을 듣는데 주력했다.개인유세장은 항상 대화와 토론의 광장이었다. 『투표일을 한 달 가량 남겨두고 이철후보측이 지역주민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고 확신하면서 낙승을 예감했습니다』 부인 이성수(52)와 사이에 2남1녀.〈김경운 기자〉 ◎김천 임인배 당선자/검찰 주사 출신… 전 법무장관꺾어 검찰 주사(7급)출신의 신한국당 임인배 당선자(41)는 경북 김천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무소속의 정해창후보를 꺾었다. 4천7백여표차로 여유있게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쥔 임 당선자는 영남대 법대를 졸업했고 82년 공채시험을 거쳐 9급 수사관으로 검찰에 첫발을 내디뎠다가 지난해 6월 정치를 꿈꾸며 공직을 떠났다.검찰총수를 거쳐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정후보와는 86년 대검차장으로 있을때 대검에서 1년간 함께 근무했다. 임 당선자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김천고 학생회장때부터 품어 왔던 정치의 꿈을 일궈왔다.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구두가게종업원,신문배달등을 했던 그는 87년 고향에 덕천장학 법인을 만들어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민심을 사왔다. 김천시 농소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나 김천고·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에서 「한국 중소도시의 발전방안」이라는 논문의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김천=한찬규 기자〉 ◎강동갑 황학수 당선자/화려한 경력의 「2선」 제치고 금배지 서민들을항상 생각해 달라며 내민 시장 아주머니의 거친 손을 끝내 잊지 않을 것입니다. 경기고교와 서울대 출신에 2선의 현역의원인 최돈웅 후보를 물리치고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황학수 당선자(48·자민련)의 당선소감은 남달랐다. 힘겹게 싸워야 했던 경쟁자와는 살아온 역정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강릉에서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채 신문배달을 하며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대신했다.강릉 명륜고교를 마쳤지만 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방송통신대학으로 대학과정을 대신했다. 그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를 졸업했고 강릉대 최고경영자 과정,고려대 고위정책과정 등을 수료했다. 정치와의 인연은 13대 총선에서 당시 최각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기획실장을 맡으면서 맺어졌다.그후 10년동안 도지사 비서실장을 맡을 정도로 최각규씨의 분신으로 살아왔고 이번 선거에서 덕을 보았다는 분석이다.〈강릉=조한종 기자〉 ◎서대문갑 이성헌 낙선자/「포스트 DJ」 김상현씨에 “매운맛” 서울 서대문 갑은 국민회의 김상현후보의 아성이다.그에 맞선 신한국당 이성헌후보의 경우 당선보다는 어느 정도 선전하느냐가 관심사였다. 김후보는 「포스트 DJ」로 불리는 야권의 거물인 반면 이후보는 처음으로 출마한 「새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투표가 끝나자마자 방송사가 이 곳을 경합지역으로 분류하자,개표장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개표과정에서도 1백∼3백표 가량의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몇 차례 뒤집어진 적도 있다. 손에 땀을 쥐는 각축전이 새벽까지 펼쳐진 끝에 김후보는 5백91표의 근소한 차로 승리했다.이후보로서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한 셈이다.개표가 끝난 뒤에도 누가 승리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김후보는 거물답지 않게 『흑색선전의 귀재』라며 이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혼쭐이 난 것이다. 이후보는 『안정을 바라는 40∼50대와 젊은 층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은 것 같다』며 데뷔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전남 영광 출신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거친 김영삼 대통령의측근이다.〈박용현 기자〉 ◎강서갑 박계동 낙선자/비자금 폭로 주역… 조직력에 무릎 지난 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할 때만 해도 당선은 따논 당상처럼 여겨졌었다.「전직 대통령 2명 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했다.서울 강서 갑의 당선자로는 누구나 민주당의 박계동의원을 꼽았다.그러나 3천3백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당선자는 국민회의 신기남후보.TV 토론 사회자로 한 때 활약한 변호사 출신이다.조직력을 앞세운 신한국당 유광사후보의 도전도 거셌다. 여기에다 『재선되면 여당 간다』는 마타도어에 시달렸다.장학노 전 청와대 1부속실장의 축재사건이 정국을 강타했을 때 『10배의 위력을 가진 폭로를 준비 중』이라고 공언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재야 출신으로 「도덕성」을 무기로 14대 4년 동안의 의정활동도 수준급이었다.새 시대 정치인으로 인정받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상위에 랭크됐다.하지만 재선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4년을 절치부심해야하는 처지가 됐다.〈주병철 기자〉
  • 궤양성 대장염/이종철 삼성의료원 소화기내과과장(전문의 건강칼럼)

    ◎원래 「백인종병」… 최근들어 동양인환자 급증/혈편·미열증상 수년동안 재발·회복 되풀이 필자의 환자중 수년전부터 주기적인 검사와 투약을 받고 있는 45세된 중견 공무원이 있다.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혈변의 양이 많아 입원 치료도 받았다.내성적 성격의 환자는 필자의 외래를 찾기 2년전부터 가끔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고 한다.처음엔 치질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출혈을 반복하다 보니 불안한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직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여 장내에 다발성 궤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조직검사상 궤양성 대장염으로 판명되었다. 또다른 환자로 자영업을 하는 50세된 남자환자가 있다.시골에 사시다 서울로 이사온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수년전부터 「이질배」를 앓고 있다며 치료를 요구했다.호소하는 사연인즉 가끔 아랫배가 살살 아프며 곱이 섞인 변과 함께 피가 나온다고 한다.환자는 그런 증상이 있을적마다 약국을 찾아 이질약을 사먹었으며 처음에는 병이 잘 나았다고 한다.최근에는 증상이 빈번히 나타나며 약도 잘 듣지않아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역시 대장 X­선 조영술과 직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여 궤양성 대장염으로 진단하였다. 궤양성 대장염은 원래 백인종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이나 수년전부터 동양인에게서도 환자 발생이 급증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벌써 서양인들과 비슷할 정도로 발생하고 있다.궤양성 대장염의 원인은 아직도 정확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다.추정되는 원인으로는 ①유전적인 요인 ②기생충이나 세균 등에 의한 감염 ③음식물 특히 우유 등에 의한 알레르기 ④인체의 면역기전의 이상 ⑤정서적 불안이나 긴장 등과 같은 스트레스를 들수 있다. 궤양성 대장염은 전형적인 임상 증상과 특징적인 검사 소견으로 진단한다. 임상증상은 복통을 수반한 점액성 혈변 등이 뚜렷한 이유없이 나타났다가 저절로 낫는 과정을 수년에 걸쳐 반복하는게 특징이다.이외에 염증의 정도가 심하면 전신증상으로 미열 전신불쾌감 관절통 체중감소 등이 올 수 있으며 만성적으로 지속될 경우 영양과 대사의 이상이나 빈혈이 동반될 수 있다.환자의 대부분은 증상이 경미하나 약 15%에서는 전신증상이 나타나는 등 심한 과정을 겪게 된다. 궤양성 대장염의 치료는 약물요법과 수술요법이 있는데 환자에 따라 병의 정도가 다양하므로 필히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또한 만성적으로 재발과 회복이 반복되는 환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성격과 정서적 이상이 동반되므로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과 치료를 요하기도 한다.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우유제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기 바라며 특히 재발의 주된 요인인 정서적 불안감은 환자 스스로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겠다.
  • 농어촌 특별전형(심층취재)

    ◎두메교에 희소식… 대학진학 부푼꿈/“해방후 정부의 농어촌 복지정책중 최고”/고·연대 각각 85명 입학… 인기학과 비율 높아/“어려운 형편에 농사지어도 신바람 납니다”/「불리한 자녀교육 환경에 불만」 이젠 씻은듯이 사라져 올 대학입시에서 처음 시행된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이 농어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학교교육문제가 최대의 걱정거리였던 농어촌 주민들은 이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자녀들을 서울 등 대도시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돼 있다.또한 시골학교 학생들도 희망에 넘쳐 있고 예전과 달리 학교마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새롭게 자리잡고 있다.대학 특별전형제 시행 이후 변화된 농촌마을과 농촌고교를 현장 르포했다.또 학생이 가장 많이 입학한 고려대·연세대를 찾아봤고 특별전형을 정부에 건의했던 교수의 글을 실어 심층으로 엮었다.〈편집자주〉 ▷농촌마을르포◁ 30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 경남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 도화마을에 올들어 자랑거리 하나가 생겼다. 이 마을 조쌍시(51·농업)씨의 둘째딸 희선양(19)이 올해 농·어촌 특례입학 전형을 통해 서울의 이화여대 환경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이다. 마을이장 박찬현(48)씨는 『우리 마을에서 이화여대에 들어간 것은 조양이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양은 함안여중을 2등으로 입학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그러나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도회지의 고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집에서 4㎞쯤 떨어진 가야읍의 남·여공학인 함안종합고교를 다녔다.졸업성적은 2백74명가운데 3등으로 내신성적 1등급에 수능시험에서 1백40점을 받았다. 조양의 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워 딸을 시골 고교에 보낼때 매우 가슴이 아팠지만 명문여대에 진학해 마을 사람들이 한턱사라고 말할때는 공부시킨 보람을 느낀다』며 기뻐했다. 식목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지난 6일 시골집에 잠시 다니러 왔다는 조양은 『모의고사 평균점수보다 수능점수를 낮게 받아 안타까웠지만 특례제도 덕분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안종고에서는 또 김형곤군(19)이 역시 특례입학으로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김군의 마을은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3㎞쯤을 더 들어가야 하는 가야읍 끝동네 혈골리 산실마을이다.11가구가 손바닥만한 논 농사를 짓고 사는 산골이다. 전교 1등으로 졸업한 김군은 1·2학년까지 6㎞의 등교길을 자전거로 통학했고 3학년때는 학교기숙사에서 지냈다.김군의 합격은 어려운 여건속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동네사람들은 물론 여기저기 이웃 마을에까지 자랑거리로 이야기되고 있다. 큰아들은 마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에 다닌다는 김군의 아버지 도개(54)씨는 『형편이 어려워 도회지로 보내지 못한 형곤이가 더 좋은 대학에 들어 가주니 가슴속에 맺었던 미안함이 씻어졌다』면서 『시골에서도 공부만 열심히하면 특례입학제도로 좋은 대학에 갈수 있다니 농사지어도 신바람이 난다』고 말했다.〈함안=강원식 기자〉 ▷학교 분위기◁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벌교고교에는 새학기가 되면서 면학열풍이 불고 있다. 교실에서는 쉬는시간인데도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자리 잡았고 많은 학생들이 밤늦도록 공부를 한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인문계 고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했던 학생들이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제」가 실시되면서 마음을 다잡고 나선 것이다. 올해로 8회째 졸업생을 배출한 벌교고교에서 지금까지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23명.전체 5학급 1백92명가운데 12%에 불과했다.서울의 대학에는 겨우 1명이 있을까 말까했다. 그러나 특별전형이 도입되면서 형편이 달라졌다.예년의 3배가 훨씬 넘는 75명이나 대거 대학에 합격했다.특히 7명이 고려대를 포함해 성균관대 등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전문대학 진학생까지 포함하면 전체학생의 65%가량이 대학에 진학했다. 올해 특별전형 혜택으로 대학에 합격한 학생은 7명에 불과했지만 재학생들이 꿈에 부풀어 있다. 이 학교 김윤옥(64)교장은 『대학 특례제는 해방이후 정부가 농·어촌 복지정책으로 실시한 정책가운데 가장 실효성있고 강력한 것』이라면서 『이제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농촌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도시의 훌륭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있다』고 설명했다. 시골의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학교 사정도 열악하다.교장·교감을 제외한 학과 선생님이 31명에 불과하다.학년별 과목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국어·영어·수학과목의 경우 담당교사는 각각 5명이다.도시이면 즐비한 학원도 찾아 볼 수 없다.뒤처진 과목을 보충할 방법이 이곳 학생들에게 원천봉쇄되어 있다. 3학년 입시주임인 정상철 교사(38·영어)는 『특별전형제도가 시골학생들의 학습의욕을 얼마만큼 되살려 놓았는 지는 직접 이곳에 와서 눈으로 확인해보기 전에는 잘 모를 것』이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뒤늦게나마 향학열에 젖어 있는 제자들을 보면 콧등이 시큰해진다』고 밝혔다.〈벌교=남기창 기자〉 ▷대학현장◁ 올 대학입시에서 연세대에는 85명의 농·어촌 학생들이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공대 20명,인문학부 12명,상경계열 11명,의대 10명,법대 8명 등으로 인기학과의 입학비율이 높았다. 건축공학과의 강성실군(18·경북 거창고 졸)은 『처음에는 대학강의를 제대로 소화할 수있을지 우려했으나 전혀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며 『더 많은 농어촌 학생들에게 대학의 문이 넓혀지길 바란다』면서 『농어촌 학생들의 형편을 고려,장학금이나 기숙사 배정에서 우선권을 주어 특별전형 본뜻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학관리처 황규복 차장(57)은 『교육여건이 불리한 농어촌 학생들에게 대학진학 기회를 줌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지역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는게 이 제도의 취지』라며 『학교장이 지원학과를 분산시켜 추천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특례 입학생들이 활기차게 대학생활을 하기는 올해 연세대와 같이 85명의 농어촌 학생들이 입학한 고려대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과 오혜난양(19·경남 합천 삼가고 졸)도 『한달남짓 생활해보니 작은 우물에서 큰 바깥세상으로 나왔다는 느낌과 함께 도시출신 학생들만큼은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붙는다』고 말했다.오양은 『과제와 학습량이 많아 다소 힘은 들지만 다른 학생들도 어려움은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영어교육과의 이남숙양(19·충북 영동 영동고 졸)은 『영어회화등에서 도시학생과 격차가 나는 것같고 대학생활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면서도 『후회없는 학창생활을 할 수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어교육과 김충배 교수(55)는 『농어촌 고교의 교육여건이 대도시만 못해 충분한 수능성적을 못냈지만 자질이 모두 우수한 만큼 학교측이 조금만 배려한다면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김태균·박용현 기자〉 ◎전문가가 본 특별전형의 과제/입학정원의 3∼5%로 확대 바람직/이농현상 줄고 「살기좋은 농촌」에 보냄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전남의 해남 고등학교에서는 지금까지 서울이나 광주에 있는 우수대학에 한 명의 졸업생도 입학을 못시켰다.그러나 올해 실시된 농어촌학생 특별전형제도 덕분에 서울의 연대·고대·이화여대를 비롯,전남외대 등에 무려 16명의 졸업생이 합격했고 해남군의 교사 학생들이 플랭카드를 걸고 큰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올해 처음 실시한 농어촌학생 특별전형에 따라 농어촌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입학한 학생수는 약 8천3백명으로 농어촌고등학교 졸업생의 6.9%에 해당된다.올해 특례입학을 실시한 대학은 2백65개 대학이며 실시하지 않은 대학은 서울대학교를 위시한 50개 대학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농어촌 이촌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큰 고통을 격고 있다.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은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더 이상 공동화 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서울대 농생대에서 농촌정예인력의 마지막 보루라고 볼 수 있는 30∼40대의 농어민후계자들을 대상으로 최고 경영자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의 농촌생활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한결 같이 자녀교육문제에 대한 아내들의 불만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서울대 농업대 최상호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영농의 고된육체운동」 25.0%,「영농의 수지악화」 21.9%보다도 「자녀교육 불리」 31.4%가 더 큰 농촌생활의 불만요인으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나라 농촌이 새로이 출발한 WTO체제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인력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러한 젊은 인력을 농촌에 머물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그들의 자녀 교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한편 대학측의 입장에서 보아도 대학의 도시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좋지만 자연환경에서 순박하게 자란 그리고 잠재성이 많은 농어촌학교 출신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결코 손해가 될 것이 없다. 올해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은 각 대학의 입학정원의 2%였는데 올해의 파급효과에서 볼때 3∼5%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올해 농어촌학생 특별전형을 실시하지 않은 50개 대학도 내년도에는 이 제도를 채택하기를 바랄뿐이며 이 제도보다 내실있는 정책을 위해서는 전남대학교에서와 같이 대학의 일반전형시기와 특별전형시기를 따로하고 농어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농어촌고등학교 졸업생에게는 약간의 가산점을 주는 것이 바람직 하다.〈최민호 서울대 농업생명 과학대 교수〉
  • 전남 무안 달산리 돌장승(한국인의 얼굴:68)

    ◎“원숭이 닮은꼴”… 인간적 친근감/“아들 낳는다” 부녀자들 등쌀에 코 망가져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돌장승 한쌍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했다.법천사와 목우암으로 가는 갈림길에 한쌍이 마주섰다.오른쪽이 수장승이고 왼쪽이 암장승이다.새김솜씨가 무척 단순하나 다른 지역 돌장승에 비해 보다 분명히 사람모습으로 다가온 장승이기도 하다. 이 장승을 세우면서 법천사와 목우암,어느 절이 화주 노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다만 분명한 것은 절을 위해 세운 절장승이라는 점이다.이들 달산리 돌장승을 돌아보고 온 어떤 민속학자는 장승을 구경도 하지 않고 만든 무명의 시골석수 작품일 것이라고 했다.절의 주지는 마을석공을 불러 귀신을 닮은 사람모습의 장승을 본대로 일러주었다.그러면서 한쌍의 돌장승을 주문했다. 석수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귀신과 사람중에 아는 것은 사람뿐이었다.평생 구경도 못한 귀신을 애써 상상해보았지만 허사였다.막상 정을 들고 나서도 귀신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의 얼굴만이 머리속에 자꾸 맴돌았다.결국은 사람얼굴을 만들어냈다.그것도 무섭기는커녕 양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연민의 정이 가득한 얼굴로 절에 오는 사람을 맞고 보내고 있는 돌장승은 대웅전부처 못지않게 자비로웠다. 한쌍이 다 그렇지만 오른쪽 수장승은 더욱 선량한 눈매를 했다.석수는 눈을 크게 만들 심산으로 눈자위를 넓게 잡았다.그리고는 오목새김 선각으로 원형의 눈을 돌렸다.그런데 볕이 들면 눈 아래 오목새김 선각에 그늘이 져 눈을 슬쩍 내리깐 것처럼 보인다.또 둥근 눈자위는 눈두덩이 되어버렸고,눈 위쪽 오목새김 선각은 눈썹으로 변했다.그저 둥글게 오목새김한 눈망울이 명암에 따라 조화를 부렸다. 수장승 코는 길어 장비형이다.그러나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들의 속신은 장승의 코를 내버려두지 않았다.코가 많이 망가져 콧날이 없어졌지만 입가에 약간 머금은 웃음은 여전했다.그 입가 인중언저리가 많이 튀어나왔다.얼핏 원숭이입이 연상되었다.돌장승이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에서 원숭이 얼굴,후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도 바로 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장승을 맡은 석수는 주지스님이 요청한 귀신의 얼굴을 깡그리 저버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궁리 끝에 떠올린 것이 사람을 닮은 짐승,원숭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열두개의 띠를 가리는 십이지의 하나,원숭이얼굴 정도면 귀신과 흡사할 것이라고….원숭이는 비록 남방동물이었지만 십간과 십이지를 망라한 간지가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들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생김새는 어렴풋 짐작했을 터였다.그리고 15세기 조선시대에 실제 원숭이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17세기 화가 변상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군후도」에도 실물원숭이가 묘사되었다. 어떻든 달산리 돌장승은 원숭이가 연상되는 사람얼굴,보다 인간화한 장승이라 할 수 있다.〈황규호 기자〉
  • 소설가 이문구(작가를 찾아:4)

    ◎“사회밑바닥 경험이 내 문학의 바탕”/9살때 남로당출신 부친­형들 잇따라 피살/고아로 무작정 상경­행상·막노동 닥치는대로/김동리 선생이 「노가다판 문장」 인정해줘/중학때 떠난 고향 72년 「관촌수필」통해 귀향 「그녀는 별쭝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남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주고,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욕을 하려 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듯이 걸고 상스러웠다」(연작소설 「관촌수필」중 「녹수청산」에서) 작가 이문구(55)씨의 글은 누가 봐도 이문구답다.능수버들처럼 척척 늘어지고 휘감기는 문장,어지러울 정도로 넘쳐나는 토박이말과 사투리.마치 판소리 사설을 되살린 듯한 이문구 소설의 생명력은 무엇에서 나올까. 그 비밀을 찾아나선 날은 꽃샘추위로 바람이 거칠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3월 중순이었다.작가는 마침 고향인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 그의 「작업실」에 있었다.청라저수지를 낀 언덕배기 빨간 벽돌집에는 어엿한 당호는 커녕 문패조차 없었다.주인을 암시하는 건 「문학의 해」를 알리는 스티커뿐이었다. ○판소리 사설 문제 이씨는 『한달에 20일쯤은 작업실에 있어야 글을 좀 쓰게 된다』면서 『지난 겨울엔 거의 들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문학의 해」집행위원회 홍보·출판 분과위원장,계간 「한국소설」편집위원장 등 맡은 일이 많아 수시로 불려다니기 때문이라는 것.문단의 공식행사건,문인들이 초상을 치루는 사사로운 자리건 남들은 으레 그가 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본인도 즐겨 뒤치다꺼리를 맡는다. 그는 지난 89년 고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10년 넘게 앓던 위궤양에 간염까지 겹쳐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요양하러 혼자 내려온 지 3∼4년만에 건강을 완전 회복해 이제는 글쓸 때만 이곳에서 보낸다.그가 태어나고 「관촌수필」의 무대가 된 관촌(갈머리,지금의 보령시 대관동)마을하고는 산하나 너머 거리로,원래 일가붙이가 비우고 간 오두막을 친구들이 개조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귀향은 여느 사람들의 그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고향이라면 흔히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지만 이씨에게 고향이란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끔찍한 곳」에 불과하다. 이씨는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다.8순인 할아버지는 「조선조 마지막 유생」같은 분,아버지는 신식 지식인으로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고 있었다.그가 아홉살 때 「6·25」가 터지자 아버지는 예비검속돼 피살되고,형들도 「빨갱이 자식」이란 이유로 살해당한다.할아버지·어머니도 잇따라 세상을 떠나 이씨는 고아가 된다. ○서양식 작법 무시 중학을 마치고 농사를 짓던 이씨는 59년 무작정 상경한다.그는 당시를 『가족을 빼앗아간 저주스러운 땅에서,「빨갱이 자식」이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서울에서는 좌판·행상·막노동을 닥치는대로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비기질,농촌과 도시 밑바닥생활에서 얻은 경험,거기에 「6·25」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이후 이문구문학의 바탕이 된다.이씨가 문학에 뜻을 둔 계기도 독특하다.중학생 때 그는신문에서 희한한 기사를 발견한다.대구 시인 이모씨가 「6·25」때 부역한 것이 드러나 처형당하게 되자 문인들이 구명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그때는 빨갱이 자식으로서 언젠가 화를 입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면서 그 기사를 보자 「문학을 하면 쉽게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김동리 선생을 만난다.「노가다판 문장」을 쓰는 그를 동리는 『앞으로 한국문단에 아주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격찬했고,그의 습작을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다.예언대로 그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문체와 문학세계를 개척했다.67년에 발표한 두번째 작품 「백결」에서 이미 이문구다운 글이 등장한다. 그는 한동안 고향을 찾지 않는다.그러다 72년 「관촌수필」연작을 시작함으로써 스스로 고향을 되살린다.그때쯤에는 고향·고향사람에 대한 참혹한 기억을 잊은 것일까.아니면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이씨는 그때 사정을 자세히 밝히려 들지 않았다.다만 귀향후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땅에다 무엇을 심든지,아니면 가축을 길러도 다 잘된다』고 고향땅에서 받은 은혜를 강조했다. 그를 특징짓는 문체와 어휘 구사를 평단에서는 대부분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 같다」는 식으로 긍정한다.많은 문인들이 술자리에서는 『이문구처럼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는데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반면 「그의 문체가 산문의식을 약화시키고 주제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섬」 소재 작품 구상 작가는 그같은 비판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쓰는 문체가 대부분 일본식·서양식인 판에 우리 전통양식을 고수하는 작가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아울러 자신은 『기승전결이니,사건의 배경·인물을 정교하게 설정해야 하느니를 따지는 서양식 소설작법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섬과 섬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바닷가 마을에서 성장했지만 그동안 섬이야기는 한번도 쓰지 않았다.보령 앞바다에만 섬이 78개떠 있는데 이를 소재로 전혀 다루지 않은 것에 이씨는 『미안하고』『왠지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그래서 뜻맞는 고향사람들과 함께 섬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섬을 알게 된 다음 작품화할 생각을 갖고 있다. 또 90년대 농촌을 그리는 작품과,「매월당 김시습」이후 관심을 갖게 된 역사소설도 쓴다는 것이 그의 장기계획이다.〈이용원 기자〉 □약력 ▲1941년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마을(지금의 보령시 대관동)에서 태어남 ▲50년 「6·25」발발후 부친과 형들 피살,본인은 외가로 피해 모면 ▲조부는 51년,어머니는 56년 별세,고아됨 ▲중학 졸업후 농사짓다 59년 무작정 상경 ▲61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65년 단편 「다갈라 불망비」,66년 단편 「백결」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 ▲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발족 주도,실무간사 맡음 ▲77∼80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발안 쇠면마을)서 생활 ▲80년 콩트집 「누구는 누구만 못해서 못허나」판금당함,이어 문인으론 유일하게 정치활동규제자로 지정됨 ▲주요작 「장한몽」「해벽」「관촌수필」「우리 동네」「매월당 김시습」등 ▲「월간문학」·「한국문학」·한진출판사 편집장,실천문학사 발행인 등 역임 ▲78년 한국문학작가상 등 문학상 8가지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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