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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꽂이]

    ●산나리(박선미 글·이혜란 그림, 보리 펴냄) 세상에 태어나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핏덩어리들’이 묻힌 곳에 그득한 빨갛고 고운 산나리꽃. 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열 살 소녀 야야의 눈높이에 맞춰 가볍게 풀어냈다. 마음 따뜻한 그림체만큼 정겨운 우리네 옛말이 가득하다.8000원.●도시의 레오 시골의 레오(장 필립 아루 비뇨 지음·정혜용 옮김·전주영 그림, 창비 펴냄) 부모의 이혼, 바닥을 기는 성적, 자라지 않는 키. 파리에 사는 레오는 많은 상처를 안고 할머니가 사는 시골로 내려온다. 열두 살 소년의 좌충우돌 성장기.1999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8500원.●여름이의 개울 관찰 일기(신동경 글·김재환 그림, 천둥거인 펴냄) 언뜻 지저분해 보이는 도시 하천에 이렇게 많은 새들이 살고 있었다니!저자들이 2년간 의정부 부용천을 제집 드나들듯 찾아 다닌 결과물. 흰목물떼새, 꺅도요, 흰점박이 등이 상세한 설명과 그림으로 소개돼 있다.1만2000원.●노란 샌들 한짝(캐런 린 윌리엄스 외 글·둑 체이카 그림·이현정 옮김, 맑은가람 펴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도시인 페샤와르 난민촌에 사는 리나와 페로자. 구호단체에서 나온 헌옷 무더기 속에서 노란 샌들 한 짝씩을 찾아낸 두 소녀. 신발 한 켤레를 번갈아 신으며 쌓아가는 우정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9000원.●나무는 알고 있지(정하섭 글·한성옥 그림, 보림 펴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나무가 이기적인 인간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무의 삶을 파스텔톤 색감의 따뜻한 그림과 서정적인 글로 풀어냈다.9800원.●우산을 잃어버린 아이(고정욱 글·김주임 그림, 에코북스 펴냄) ‘잃어버린 우산’을 부른 대학가요제 가수 우순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동화. 장애아로 태어난 아들 병수를 13년간 키우다 2년전 하늘나라로 보내기까지 그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겼다. 역시 장애인인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책.8500원.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4)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4)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

    노고단에서 성삼재∼고리봉∼만복대로 내려선 지리산 서쪽 능선은 정령치 가기 전 왼쪽으로 가지를 치며 구례를 향해 급선회한다. 백두대간과 작별한 이 산마루는 다름재를 떠나 견두산(774.7m)을 세우게 되는데,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산수유마을 ‘현천’이 그 산 아래 꽃잎처럼 포개져 있다. 현천의 늦가을은 색 붉은 풍경화다. 돌담 옆 나무마다 잘 익은 산수유열매와 주황색 단감이 촘촘하다. 구례군 자료에는 “마을 뒷산인 견두산이 현(玄)자 형으로 되어 있고 뒷내에는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같이 빨래를 하고 선비가 고기를 낚는 어옹수조(魚翁水釣)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형용하여 현천이라 하였다.”고 서술돼 있다. 꽃이 피는 3월을 제외하곤 대체로 조용한 현천엔 민박 간판을 내건 집도,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도 없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지 굴뚝마다 장작 타는 냄새만 송글송글 푸근하다. 최영남(72세) 할머니와 아들 형욱만(48세)씨는 약초 캐는 일을 한다. 족히 30년도 넘는 경력이다.“겨우사리, 더덕, 산도라지, 산수유, 머루, 석장포 등 산에서 나는 건 다 채취하지요.” 약초와 더불어 생활한 덕인지 욱만씨는 슬하에 무려 5남매나 두었다. 요즘의 중년치고는 시골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자녀수다.“예전에는 겁나게 많았지요.100여 호는 됐응께.” 최영남 할머니의 말에 아들 욱만씨도 다시 한마디 거둔다.“면소재지에 장이 설 때 이곳 현천마을 사람들이 안 나가면 장사를 못할 정도”였다고. 지금이야 절반도 안되는 가구가 남았을 뿐이지만 예전 이 마을의 번성함은 길 건너 지리산 온천지구와 견줄 바가 못 되었나 보다. 돌담길을 따라 나서니 마을 골목 반사경 옆에 나란히 선 다섯 분의 할아버지가 보인다. 이 동네 남자 어르신 중에서 가장 연장자는 최석만(80세)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최기태 할아버지다. 그러고 보니 현천은 ‘화순 최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주민의 60%가 같은 성씨라고. 이들은 “견두산은 원래 호두산이었소.‘호랑이 머리’란 뜻이지. 저 견두산에 서면 남원시가 잘 보이는데, 거기서 1년에 한 번씩은 꼭 호환을 당한기라. 그렇게 호랑이헌티 잡혀 먹히니 결국 산 이름을 개견(犬)자로 바꿨고 그 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었다허요.”라고 말한다. 이 마을 역시 1948년도에 일어난 여수·순천사건에선 자유롭지 못하다.100여호에 달하던 민가가 그 사건으로 거의 다 전소됐다. 당시 40여명의 무고한 젊은이들이 죽었다. 아직도 군인과 빨치산이라면 신경이 곤두서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조심스럽다. 당시 살벌한 이념 대립의 아픈 기억은 노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강한 두려움으로 각인된 모양이다 “그렇게 집들이 모두 타고 겨우 두세 채 남았어요. 요즘의 집들은 이듬해(1949년) 봄에 지었으니 50년이 조금 넘은 셈이지.1979년에 78호쯤 되었고 그 후에 도시로 나간 사람이 많아요.” 단순히 소일거리가 없어 농사를 짓는다고 너스레지만 이들에게 농사는 결국 ‘죽으나 사나 꼼짝없이 해야 할 일’이자 ‘못 걸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할 인생의 몫’이기도 하다.“할 수 없어 한다.”는 현천마을의 ‘독수리 5형제’ 할아버지들은 70이 넘고 80이 되도록 여전히 농사일로 정신없다. 다섯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살 위로 산수유 빛을 닮은 붉은 석양이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교통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로 들어선다.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현천은 구례읍내로 들어서기 전에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 부부 교사의 미인계

    부부 교사의 미인계

    외딴 여인숙의 한적한 방. 어느날 대낮에 남녀가 투숙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 숨가쁜 소리가 들리고 이어 방문을 때려 부수는 소리와 함께「카메라」의「플래시」가 터졌다. 간통하던 여자는 침입자의 아내. 간부는 침입자와 여자의 학교시절 동창. 그런데 3자가 모두 학교「선생님」이었다는 기묘한「드라머」의「치사한 내막」-. 제1막- “그립다” 편지로 꾀어내…현장에 사진사도 동원 -윤(尹)선생님, 그간 안녕. 7년전의 연정이 되살아 납니다. 교정에서 하루 멀다하고 얼굴을 맞대던 시절의 옛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중략(中略)) 긴 방학이 갑갑하지 않아요? 혹시 출장이라도… 기회를 얻으실 수 없는지…. 언제 어느때고 연락만 주신다면 보고싶은 얼굴, 달려 가겠어요. 순(順)이 씀-. 지난해 12월 28일. 경남 거제(巨濟)군 延草(연초)면 모 국민학교교사 윤모씨(31)는 그의 학교시절 애인이었던 고성(固城)군 고성읍 K중학교사 양학순(梁學順·30)여인으로부터 이런 기막힌 편지를 받았다. 윤교사는 1주일도 못되어 양여인에게 전보를 날렸다. 『-내일 9일 낮11시 마산XX다방 상봉요』 지난 1월9일, 그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재회했다. 1시간쯤 지난날의 추억이며, 세상 돌아가는 일등 잡담이 오갔다. 어느정도 회포를 푼 다음, 그들은 함께 일어섰다. 아주 자연스럽게 남녀의 발걸음은 마산(馬山)시내 서성동 분수대앞 K여인숙 12호실로 향했다. 2홉들이 소주1병과 오징어를 사다가 권커니 잣거니하며… 「회포」는 다음 단계로 무르익어 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양여인이 덥다며 내의까지 벗었고, 이에 질세라 윤교사도「넥타이」를 풀어 제쳤다. 『선생님. 두 아이를 거느린 과부가 됐어요. 어떻게 힘이 되어 주세요…』 양여인이 엎어지듯 윤교사의 가슴에 기댔다. 옷들이 벗겨지고, 숨가쁜 포옹, 격렬한 애무가 이어졌다. 벗은 양여인의 자태는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윤교사는 서두르며 끌어안았다. 그 순간 밑에 있던 양여인이 부자연스럽게『캑!캑!』두번 기침소리를 냈다. 기침소리를 신호로 방문이 벌컥 열리며 사내가 뛰어들었다. 사내는 불문곡직 여자위에 엎어진 윤교사를 두들겨 팼다. 이윽고 대기해 있던 사진사 김삼부씨(29·마산시 서성동84·D사진기사)가 들이닥쳐 이 기괴한, 벌거벗은 현장을「카메라」에 담았다. 제2막-교무주임도 같은 수법 3백만원짜리 각서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내의 기세에 윤교사는「팬츠」만 겨우 걸치고 꿇어 엎드려 싹싹 빌었다. 침입한 사내는 양여인의 남편 윤문석(尹汶錫·32·고성읍K중학교사). 30분동안의 3자회담끝에 윤교사가「2백만원 지불」의 각서를 쓰고 난경을 모면했다. 이상은 양·윤 부부교사의 간통조작극 제1막이었다. 제2막은 지난 2월19일 하오 1시, 같은 여인숙의 바로 옆방에서 개막됐다. 이번 대상은 양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무주임 이(李·34)모씨. 제1막의「드라머」와 별다른 차이없이 옷을 벗고, 끌어안고, 덮치고,「카메라」가「짤까닥」거렸다. 이번에는 액수가 커서「3백만원」의 현금보관증과 2월말까지 지불을 약속하는 지불각서, 그리고 윤씨가 이씨의 주머니를 뒤져 현금 2천5백원, 주민등록증, 공무원증등을 탈취했다. 모두 5백만원이 굴러 들어오게된 부부교사는 그 현금수납자로서 양여인의 오빠 양학율(梁學律·50·거제군 동부면 타포리)에게 사건의 마무리를 의뢰했다. 양은 1차 범행에 걸려든 윤교사를 찾아 지난 1월 3차에 걸쳐 15만5천원을 뜯어내 10만원은 동생부부에게 보내고 5만5천원은 자기가 가로챘다. 10만원을 받은 윤은 모두 이를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되자 2차범행의 이교무주임에게 우선 1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번 각서내용을 완전히 번복, 지불을 거절했고, 배신행위(?)에 화가난 윤은 이씨를 걸어 간통죄로 고성경찰서에 고소했다. 윤의 조작극이 들통난 것은 이때. 간통쌍벌죄로 고소한 윤이 무슨 까닭인지『아내는 풀어달라』고 경찰에 호소한 것.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남녀를 모두 풀어주고, 이교사만 따로 불러 진상을 조사한 결과 양·윤의 조작극임이 밝혀져 지난 20일 두 부부교사를 공갈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양여인의 오빠 양학율도 같은 혐의로 수배하기에 이른 것. 남편은 의처증 변태, 매일같이 팬티 검사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은 그 원인으로 윤의 (1) 심한 의처증 (2) 가정불화 (3) 변태성욕 이라고 판단했다. 윤은 아내 양여인의「팬티」검사를 하루도 빠뜨린 일이 없다는 것이며, 양여인은 또 가끔 바람 잘 피우기로 소문났었고, 특히 양여인이 반질반질한, 뱀껍질같은 윤기나는 피부의 소유자로서「섹스」에 강했다는 것. 윤이 여관 옆방에서 자기의 아내가 1시간이상 걸려 정사에 들어가기까지 지리한 시간 참을성있게 기다린 것은「변태성욕자」가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또한 윤은 이 지방에서 난폭하고 난잡한 여성관계로 소문이 나있다고. 마산(馬山)시내 자산동 C모양(29) 창원(昌源)군 L국민학교 C모교사(30)등과 오랫동안 교제를 해왔고, 심한 낭비벽으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여인은 이미 정력이 강하기로 평판이 나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조사에서 남편 윤이 이혼하겠느냐, 간통을 하겠느냐고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에 한 짓이라고 실토. 이들 부부는 문란한 성생활과 무절제한 낭비로 현재도 수십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 두 부부의 수입을 합해 월수 7만원정도 된다는 얘기이고 보면 시골 읍생활수준으론 얼마만큼 심한 낭비생활을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경찰은 말한다. [선데이서울 71년 3월 7일호 제4권 9호 통권 제 126호]
  • [Let’s Go] 충북 괴산 노거수 (老巨樹)

    [Let’s Go] 충북 괴산 노거수 (老巨樹)

    예전에 살았던 시골마을 기억하십니까. 마을어귀나 뒤편 어딘가 커다란 나무 한 그루쯤은 있게 마련이었지요. 때론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또 때로는 들일에 지친 심신을 편히 누일 수 있는 쉼터로 한 몫 톡톡히 했습니다. 주변 나무들은 진작부터 붉은 물감을 칠한 듯 한데, 노거수들은 이제야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있지요. 차마 어린 나무들에 비해 일찍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겝니다. 충북 괴산군은 내 나라 안에서 유난히 노거수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특히 느티나무가 많습니다. 그래서 느티나무를 뜻하는 ‘괴´(槐, 회화나무 괴자지만 느티나무란 의미로도 쓰임)자를 써 괴산(槐山)이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추의 서정 가득한 괴산 시골마을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겨우살이 준비에 한창인 마을을 넉넉한 자세로 품고 있는 노거수들이 함께하며 운치를 더해주었습니다. # 어머니 나무 ‘하괴목´ 아버지 나무 ‘상괴목´ 괴산군 관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모두 일곱 그루. 그 중 노거수는 오가리 느티나무와 읍내리 은행나무 등 네 그루다. 가장 먼저 노거수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박달산 자락의 장연면 오가리. 우령, 오가, 신촌, 거문 등 네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산 좋고 물 맑고 땅이 좋으니, 곡식이 잘 되고, 그만큼 인정마저 좋아 마을 이름도 오가(五佳)라고 지었단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지붕 낮은 ‘마을이발관’에서는 남정네들이,‘고향식당’ 앞 마루에서는 아낙네들이 모여 저마다 신변잡기를 풀어내고 있다. 마을 뒷골목, 어린아이 무릎에도 못미치는 높이의 담장 너머로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는 언제, 누가 따먹으려는 것일까. 오가리의 자랑거리는 단연 우령마을 느티나무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정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해서 삼괴정(三槐亭)이라 불린다. 이 중 상괴목과 하괴목 두 그루가 천연기념물 제382호로 지정돼 있다. 수령은 800년 정도. 인물로만 보자면 상괴목이 앞선다. 높이 25m, 가지 길이 26m, 가슴 높이의 둘레는 8m쯤 된다. 몸체 일부에 시멘트를 덧대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생육상태가 좋은 편. 하괴목은 키가 19m, 가지 길이 22m, 가슴 높이 둘레가 9.4m로 다소 작고 펑퍼짐하다. 동쪽으로 난 가지가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우령마을 주민들은 하괴목을 더 신령스럽게 여긴다. “하괴목을 어머니 나무, 상괴목을 아버지 나무라고 불러요. 어머니 나무인 하괴목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자정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지요.” 고령숙(68) 이장의 설명이다. 삼괴정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요즘엔 찾는 사람들도 제법 늘었단다. # 1000년 전 성주(城主)의 선물, 은행나무 오가리 뒷자락의 솔치재를 넘어 청안면 읍내리 청안초등학교로 향했다.1000년을 살아 온 은행나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운동장 한가운데 덩그렇게 서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165호. 높이 17m에 가슴높이 둘레 7m가 넘는 이 살아 있는 화석을 아이들은 다소 어려워하는 듯 했다. 나무 주위를 돌며 노는 아이들도,76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 졸업생 누구도 그 흔한 애칭 하나 붙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천년 노거수가 까탈스럽거나 붙임성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만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은영(6학년)양은 “고려 성종 때 이 고을 성주가 백성들을 위해 동헌 뒤편에 ‘청당’이란 연못을 파, 그 주변에 많은 나무를 심었대요. 그 중 남은 하나가 이 은행나무고, 선정을 베푼 성주를 기리기 위해 고을 백성들이 자자손손 정성껏 가꿔 왔다고 해요.”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아이들이 떠난 빈 운동장 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아마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면, 은행나무가 해질녘 만들어 놓은 땅거미의 크기만큼 이 나무를 그리워하게 될 게다. 청안초등학교와 담장 하나 사이로 수령 960년쯤 되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그 동안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아온 겐가. 느티나무 둘레의 절반 넘어 시멘트가 덧대어져 있고, 속은 텅비었다. 몸통 둘레 6.5m에 가지 길이 12m. 쭉 뻗어 있어야 할 나뭇가지가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냘픈 몰골이다. 청안면사무소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가지가 잘리고, 몸통 내부는 파헤쳐져 불태워지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채 5분의1도 남지 않은 몸에서 나온 가지는 빈약하나마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노거수들이 흩뿌려 놓기 시작한 낙엽을 밟다보면 이들이 인간보다 훨씬 처세에 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여름 무더위와 싸워가며 치열하게 키운 잎들을 아낌없이 버리니 말이다. 노거수와 달리 자신을 비우는 시기를 놓쳐 애써 쌓아올린 존경을 잃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글 사진 괴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 나들목→19번 국도 문경방향→방곡삼거리→517번 지방도 쌍곡방향→추점삼거리 우회전→오가리→청안면, 또는 중부고속도로→증평 나들목→510번 지방도 괴산·증평방향→연탄사거리→청주·증평방향 우회전→초중사거리→36번 국도 충주·괴산방향→540번 지방도→592번 지방도→청안초등학교→오가리. # 가볼 만한 곳 연풍면 적석리 입석마을과 청천면 삼송리에는 각각 천연기념물 제383호, 제290호로 지정된 ‘왕소나무’가 있다. 청천면 송면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가다 보면 길가 한편에서 연리지(連理枝) 소나무와 만난다. 연리지는 두 그루의 나무가 마주 보며 자라다 중간 가지를 통해 연결된 특이한 형태의 나무. 예전엔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을 뜻했지만, 요즘엔 남녀간 애정을 상징하는 사랑나무로 불린다. 괴산군청 산림관광과 043)830-3228, 고령숙 우령마을 이장 832-1525.
  • [그의 삶 그의 꿈] 전통음식 외교사절로 부활한 대장금

    [그의 삶 그의 꿈] 전통음식 외교사절로 부활한 대장금

    고궁으로 초대받은 유엔 외교사절단 삼계선, 오절판, 더덕찹쌀구이, 해물잡채, 연저육찜, 월과채, 잣국수, 행적, 전복수삼냉채, 어채, 궁중떡볶이, 감로빈, 보슬단자, 포도화채, 당근정과……. 이름만 들어도 용포 입고 수라상 앞에 앉은 기분이다. 이 한국 전통음식들이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를 보름 동안 점령했다. 자신들의 음식문화에 저마다 길들여진 세계인들에게 한국 음식의 진정한 맛과 멋을 보여 주었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에서 ‘제4회 한국 음식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난 7월 16일부터 27일까지 약 2주일 동안 세계 각국의 유엔 대사들과 외교사절들 외에도 많은 뉴요커들이 한국 음식의 맛과 멋을 감상했다. 음식도 어엿한 한 나라의 문화. 이런 점에서 이번 행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궁에의 초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의 궁중 요리들이 하루 20여 가지씩, 행사 기간 동안 200여 가지가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처음엔 200명 내외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한국 음식의 맛과 멋에 매혹된 외국인들이 행사 끝무렵엔 500명을 훌쩍 넘었다. 음식을 맛본 그들이 원더풀과 환타스틱을 연발했다.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전통 요리를 꼭 다시 맛보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엔의 현 사무총장은 한국인 반기문. 그 분이 수장으로 있는 유엔 본부에서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인에게 소개한 8인의 요리사를 이끈 이가 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윤숙자. 생에 기록될 만한 보람된 행사를 치루고 미국에서 막 돌아온 분을 만났다. 안내를 받고 들어서니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환하게 웃으신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만으로 선생의 이미지를 빌리자면 청경채 같다. 입고 있는 하얀 한복이 참 잘 어울린다. 문학소녀에서 전통음식의 세계로 “외국이었기 때문에 우수한 식품 재료를 지속적으로 구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뉴욕 한국문화원의 도움으로 행사를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뉴욕 한국문화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그리고 조리했던 유엔 본부 식당의 조리실은 양식 위주의 용기들이어서 높이가 다 높아 고생했어요. 느낀 보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소감을 묻자, 상큼한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물었다. 이것저것, 두서 없이. “고향이 개성입니다. 어머니는 교사셨는데, 원칙을 강조하는 엄격한 분이셨고, 요리를 아주 잘 하셨어요. 다들 그랬겠지만, 저도 소녀 시절엔 문학소녀였지요.” “문학 뿐만 아니라 요리도 사실은 감수성의 결정체가 아니던가요? 제가 보기엔 요리 실력도 유전적으로 물려받으신 것 아닌가요?”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요리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조리학과가 춘천에 있는 한 대학에 생겼는데,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전통요리의 대가셨던 고 왕준연 선생님께도 배웠죠.” 떡ㆍ부엌살림박물관 “이곳 8층까지 올라오기 전에 아랫층에 <떡박물관>과 <부엌살림박물관>이 있어서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고향이 시골인데, 눈에 익은 것들이 많아서 잠시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갔다 왔습니다.” “머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을 것들을 모아 놓았는데,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져요.” “현실의 부엌 풍경과는 많이 다르던데요?” “부엌도 삶의 공간이니 삶의 변화, 생활의 변화가 부엌에도 오는 건 당연하겠죠. 끊임없이 ‘편리’를 추구하지만 그 ‘편리’가 좋기만 한 건가는 모두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해요.” 말씀 대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라질 지도 모를 것들. 저 달그락거리고 낡아 있는 삶의 뿌리들. 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먹거리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인의 먹거리로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만든 이의 철학과 정성과 마음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선생은 농림부에서 위촉한 한국농식품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음식을 세계에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었다. “음식은 길들여지지 않으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아요. 이런 점에서 지난 유엔본부 행사와 같이 외국인들에게 지속적인 ‘우리 음식 맛보이기’도 중요하고, 우수한 조리인을 양성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지역, 문화적인 특성에 따른 세계인의 입맛 연구도 뒤따라야 하겠구요. 조리법의 표준화를 이루어내는 일도 과제의 하나예요. 음식 이름은 같은데 집집마다 맛이 다르면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선생은 조리법 책자의 올바른 해외 번역 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음식 전도사로서의 소명감이 느껴진다. “우리 민족의 좋은 덕목 중의 하나인 은근과 끈기도 음식 문화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해요. 발효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음식들은 기본 재료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거든요. 오래 기다릴수록 맛의 깊이가 더해지죠. 선조들의 지혜는 시간과 속도의 시대인 현대에도 배울 점이 많아요.” “옛날보다 오래 살지만 그에 비례해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비만과 같은 성인병은 특히 심각한데, 저는 ‘식食이 곧 약藥’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좋은 음식은 건강을 담보하는 가장 큰 도우미이자 보증수표가 아닌가 하거든요.” 맛깔스러운 말씀들을 듣지 않고 받아먹은 듯한 느낌.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다. 포만감이 주는 행복을 느낀다. 선생의 말씀대로 음식은 과학이며 철학이며 만병통치약이다. 나설 때 손에 들려주신 떡 상자를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몰래 열어본다. 너무 예뻐서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을 것 같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음식은 눈맛이기도 한 거로구나. 다시 떠올리는 선생의 모습이 다시 그렇다. 글 최준 시인, 사진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제공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전북 임실 옥정호

    전북 임실 옥정호

    갖가지 색으로 가을이 익어갑니다. 퇴락해가는 계절의 끝자락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요. 그런가하면 수채화처럼 담담하고 차분하게 가을을 이야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물안개지요. 낮과 밤의 기온차가 극심한 이맘때 물안개도 절정을 이룹니다. 단풍들의 현란한 색깔에 멀미가 난다면 한번쯤 물안개 피는 호숫가를 찾는 것은 어떨까요. 도시생활에 찌든 손 내밀어 호수의 촉촉한 뺨을 어루만져 보세요. 손가락을 타고 온 몸으로 자연이 퍼져감을 느끼실 겁니다. 내 몸의 수분이 물안개와 어우러지려는 게지요. 전북 임실의 옥정호는 자연이 선물한 수채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침 햇살이 물안개와 자리바꿈할 때 쯤 옥정호는 믿기 힘든 또다른 광경을 선사합니다. 호수 가득 파란 하늘이 담기는 장관을 펼쳐 보입니다. #자연이 선물한 수채화 물안개는 물과 대기의 온도차이에 의해 생긴다. 물 위의 따뜻하고 습도높은 공기가 찬 공기와 만나면서 미세한 물방울로 응결된다. 이 물방울들이 빛에 산란되면서 하얀 구름처럼 보이는 것.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 아침이 물안개를 만나기 좋은 때다. 전날 가을비가 흩뿌리고, 다음 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면 십중팔구 물안개가 벌이는 풍경의 축제와 만날 수 있다. 운암호, 섬진호, 갈담저수지 등으로도 불리는 옥정호는 섬진강 최상류의 호수다. 전북 임실군과 정읍시 등에 넓게 걸쳐져 있다. 면적은 26㎢ 남짓. 여느 대형 호수들처럼 넓게 펼쳐져 있지 않고, 물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구비구비를 에둘러 돌아간다. 옥정호가 지닌 매력의 절반은 물안개의 몫.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물길 위로 물안개가 차분히 내려 앉은 모습은 어디서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경치좋은 곳이면 흔히 갖다 붙이는 ‘선경(仙境)’이란 단어가 상투성의 나락에서 벗어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옥정호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국사봉. 특히 동 트기 전에 올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운암대교를 지나 5㎞남짓 구불구불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운암면 입안리에서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과 만난다. 표지판이 없는데다 물안개에 가려져 자칫 그냥 지나기 십상.200m 아래 있는 국사봉 휴게소를 표지판 삼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새벽 6시. 등산로 초입의 주차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전국 각 지의 번호판을 단 차들로 가득차 있다. 첫번째 전망 포인트는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에서 잰 걸음으로 15분 거리다. 된비알을 쉽게 오르도록 조성해 놓은 230여개의 나무계단 끝에 송신탑이 있고, 여기서 5분 정도 더 오르면 목재로 조성된 전망대가 나온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답게 새벽을 기다리는 서너명의 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어디서 밀려왔는지 새하얀 운무가 호수를 장악하고 있다. 산허리 골골마다 하얀 솜이 감싸안은 듯한 모습.1000m 이상의 고산준봉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내친 김에 국사봉 정상까지 올랐다. 해발 475m.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30분 거리다. 정상에 서자 구름바다위로 방울토마토를 닮은 빠알간 해가 솟아 올랐다. 구름 아래서 주인의 아침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구름위로는 철새 서너마리가 헤엄치듯 날아간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서울에서 295㎞를 달려온 노고에 대해 넘치도록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물안개와 함께 한 호반도로 옥정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중 하나가 호반도로. 가을바람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물안개를 보는 맛이 여간 각별하지 않다. 물안개는 아침햇살이 호수 전체에 퍼지는 오전 9시쯤이면 대부분 자취를 감춘다. 따라서 국사봉에서 장엄한 일출을 감상하고 난 다음, 곧바로 내려와 호반도로 드라이브에 나서길 권한다. 운암대교를 기준으로 강진면을 지나 태인 방향으로 가다 산내삼거리에서 산외 방향으로, 종산삼거리에서 운암 방향으로 가면 다시 운암교에 닿는다. 쉬엄쉬엄 달리면 2시간 가량 걸린다. 특히 범어리 들어가는 강변길은 반드시 가봐야 할 곳.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고 험한 길이지만 옥정호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명경지수 같은 수면 위로 수암리와 발아산 등 시골마을이 겹쳐지며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때마침 제철을 맞은 구절초와 함께 사진을 찍어 놓으면 그대로 그림엽서가 된다. 호반도로에서 운암대교를 지나면 덕치면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길(27번 국도)과 호수를 끼고 도는 섬진댐 길(30번 국도)로 나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섬진강변길을 따라 덕치면 회문산 자락의 장산마을, 더 멀리 천담마을과 구담마을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물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전 10시. 구름에 가려졌던 옥정호 전경을 조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국사봉에 올랐다. 붕어 모양의 섬(외안날)을 가운데 두고 호수의 물길과 주변 산자락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파란 하늘과 채 걷히지 앉은 구름들이 그대로 호수에 담긴 모습이다. 아침 풍경이 담백한 수채화였다면, 이번엔 진한 색감의 유화와 마주하는 듯하다. 옥정호에서는 가을이 참 멋진 계절이다. 글 사진 임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전주나들목→17번국도 남원방향→21번국도 구이방향→광곡터널→신덕방향 우회전→749번 지방도→순창·구이·운암방향 우회전→30번국도 임실·운암방향→운암마을→순창·마암방면 우회전→새터삼거리→국사봉 전망대, 또는 호남고속도로→태인나들목→30번국도 임실·강진 방향→칠보읍내→27번국도→운암대교→운암삼거리 우회전→749번 지방도로→국사봉 전망대. # 가볼 만한 곳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지척이다. 관촌면 덕천리 임실 치즈마을(www.appenzell.co.kr)에서는 모차렐라 치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063)644-2008. # 잠잘 곳 운암대교 주변에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아침 일찍 국사봉에 오르려면 국사봉 산장에 묵는 것이 좋다.643-4912. # 먹거리 운암대교 오른쪽 전망 좋은 곳에 양식당들이 몰려 있다. 범어리 들어가는 길의 강나루식당은 붕어찜(1만원,2인 이상)으로 유명한 곳.221-6274. 산외한우마을에서는 질좋은 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임실군청(www.imsil.go.kr) 문화관광과 640-2641.
  • [업계소식-CF]대하사극 연상케하는 ‘김치냉장고’편

    [업계소식-CF]대하사극 연상케하는 ‘김치냉장고’편

    브라운관에 드라마, CF 등 사극열풍이 부는 최근의 여세를 몰아 하이마트가 ‘김치냉장고´편을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해의 ‘김치냉장고´편과 ‘컴퓨터´편에 이은 하이마트의 세 번째 사극 CF로, 대하사극에 견줄만한 화려한 영상미와 스케일이 돋보인다. 남원의 광한루에서 촬영된 이 CF는 길게 가지가 늘어진 수목들과 연못 등이 어우러져 한 편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왕과 왕비의 행렬을 그대로 재현해 마치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엄숙한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빠른 박자의 ‘시골영감´ 배경음악은 광고에 색다른 분위기를 안겨준다.
  • [깔깔깔]

    ●보험 바닷가 리조트에 놀러온 한 꼬마가 엄마에게 물었다. 꼬마:“엄마, 바다에서 수영해도 돼요?” 엄마:“물이 너무 깊어서 수영하면 안돼.” 꼬마:“아빠는 저기서 수영하고 있잖아요?” 엄마:“아빠는 보험을 들었잖니.”●서울 구경 시골에서 서울 구경을 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초미니 스커트 차림의 처녀를 보고는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할머니가 놀라면서 한마디 했다. “나 같으면 저런 꼴 하고는 밖에 나오지 않겠구먼….”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임자가 저 정도면 나 역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만 있겠구먼….”
  • 여대생 하숙방에「마리화나」연기

    여대생 하숙방에「마리화나」연기

    『「히피」족의 선약(仙藥)』으로 불리는 환각제「마리화나」가 우리나라 대학가에도 상륙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2, 3년전 주한미군들을 통해 흘러나와 접대부와 일부 연예인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애용되던「마리화나」가 이제는 서울시내 곳곳의「고·고·룸」, 대학 기숙사 가의 다방, 하숙집, 심지어는 여대생에서 까지 애용되는「쇼킹」한 현실로 발전했다. 사생(舍生)들엔 공공연한 비밀「해피·스모크·파티」도 열어 여자대학이 있는 서울시내 S동 뒷골목에 자리잡은 어느 하숙집. 개학이 가까와 다시 서울로 올라온 3명의 여대생들이 하숙집에서의 상봉을 기념하기 위해「해피·스모크·파티」를 마련했다. 잠옷바람의 아가씨 3명은 밤 10시께 한방에 모여 그 중 한 아가씨가 마련해 온 아리랑 담뱃갑을 반가운듯 바라본다. 포장은 담뱃갑이지만 속에 든 것은「마리화나」로 불리는 우리나라산 대마(大麻). 20개비들이 한갑에 8백원을 주고 산 것이다. 한 개비씩 빼어물고 성냥을 그어대는 솜씨가 제법 익숙하다. 알고보면 여대 3학년인 이 아가씨들은 6개월전부터「마리화나」를 피워온 상습 흡연자들. 비단 이 하숙집에만「해피·스모커」가 있는 것은 아니다. S동일대의 하숙집들은 물론 시내 곳곳의 대학가주변 하숙집은 대학생「해피·스모커」들에 의해 곧잘「마리화나·하우스」로 변한다. 보다 대담해진 상습흡연자들은 대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명동의 S다방, C「살롱」, 곳곳의「고고·룸」등에서도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듯「마리화나」를 피운다. 모 여대 기숙사에서「해피·스모크·파티」가 이따금 열린다는 것은 기숙사 생활을 해본 여대생들 사이에선 거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다. 최근 발표된「갤럽」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대학생들은 10명에 4명꼴로「마리화나」를 피운다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처럼 심하거나 상습흡연자가 많은 것은 아니나『대학졸업전에 한번쯤 경험삼아』(S여대 K양의 말) 피우는「아마추어」흡연자의 수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갤럽」조사를 보면 67년 전미국대학생의 5%에 불과하던「마리화나」흡연자가 69년엔 22%로, 70년말에는 42%로 늘어났다. 이중 28%가 상습흡연자이며, 17%가 주 1회정도 피우는「세미·프로」들. 또 美국방성조사결과로는 주월 미군의 약 30%가「마리화나」상습흡연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처음피우면 어지러우나 자제잃고 환각의 세계로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의 김유후(金有厚)검사 말을 따르면 주한미군의 약15~20%정도가「마리화나」를 피우고 그 중 몇 %가 상습흡연자인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시중에서 압수되는「해피·스모크」의 수량으로 미루어『호기심과 충동의 한계를 넘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미국서는「마리화나」로, 우리나라에선「해피·스모크」로 불리는 이 선약(?)의 정체란 알고보면 간단하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대마)잎을 따서 말려 담배처럼 포장한 것. 학명으론「칸나리스·사티바·L」이라고 불리며, 의학용어론「델타·9·1·트랜스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속칭 THC)로 불리는 환각제다. 처음「마리화나」를 피우면 약간의 두통과 어지러움증을 느끼나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나면 환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온몸이 나른해지며 대신「섹스」욕구가 강해지고 자제력이 없어져 자칫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 이런 까닭에 국제협약상「마리화나」는 마약으로 취급받고 있으나 마약지정 여부는 각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도산 대마만 마약으로 지정되고 한국산 대마는 습관성의 약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환각작용은 국산이나 인도산이나 거의 비슷하다는 얘기. 마약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습관성의약품관리법 5조와 39조를 보면『흡연, 또는 흡연의 목적으로 소지, 매매, 수수하는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30만원이하의 벌금』을 묻도록 되어 있다. 거의 국산, 한갑에 천원쯤 “아리랑 피우자”로 통하고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마리화나」는「멕시코」산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순수한 국산만이 시중에 나돈다. 한국산 대마잎은 비밀리에 월남「타이」등 동남아에 수출까지 되고 있는 실정. 흔히 시중에 나도는 것은 거의 아리랑담뱃갑에 들어 있어 흡연자들은『아리랑 피우러 가자』하면「해피·스모크」인줄 알 정도다. 20개비 한갑에 도매 5백원에서 산매값 최고 1천원까지. 물론「해피·스모크」의 제조, 판매망은 마약조직과 똑같은 점조직. 단골손님이 아니면 사기도 어렵다. 이들은 일선 판매망을 통해 주로 미군기지촌 주변에서 판매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최근엔 대학가에까지 판매조직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 「마리화나 」보다 환각효력이 강력한 LSD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아직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비싼 값 때문. 미국서는 한알에 50「센트」인 LSD가「오끼나와」에선 5달러,「도꾜」에선 8달러, 우리나라선 10달러(약3천2백원)를 홋가한다. 이런 이유때문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가난한 호주머니사정으론 감히 엄두도 못내고 일부 주한 미군사이에서만 애용될 뿐이다. 한때의 호기심, 단순한 흥미만으로「마리화나」를 피워보아도 좋은 것일까? 미국마약국의「시드니·코헨」박사가 AMA(미국의학협회)에 보고한 연구논문을 보면「마리화나」는 중독성은 없으나 습관성이 있으며, 심한 경우 뇌신경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돼있다. 또「캘리포니아」의대「리즈·존즈」박사의 임상치료 보고를 보면「마리화나」흡연자는 보다 강한 환각을 원해 LSD로 옮겨가며 병원서 치료를 받아도 환각제를 끊는대신 음주벽이 생긴다고 한다. 한때의 호기심으로 피워보기엔 너무도 무서운 결과에 빠진다는 것. [선데이서울 71년 2월 28일호 제4권 8호 통권 제 125호]
  • 부위별로 다른 기미의 원인들

    부위별로 다른 기미의 원인들

    한방의 관점으로 보면 흔히 피부는 오장육부의 거울이라고 한다.오장육부의 이상이 내부 기혈의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하고 노폐물을 만들어 그것이 위로 올라와 피부의 각종 이상질환을 만들어 낸다.여드름을 예로 들어 폐에 열이 많으면 이마에,위장 경락이 막혀 있으면 볼에,자궁이나 신장이 약하면 턱과 입주변,간에 열이 많으면 코에 여드름이 많이 나는 것과 같이 기미 또한 한의학적으로 보면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그 원인이 제각각으로 나타난다. ●첫째로,눈 밑과 눈 주위에 기미가 유독 많은 분들 요즘 시기에 수험생이나 직장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눈과 눈 주위의 기미는 대체로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어 간 기능이 떨어지면 기가 울체되고 그 기운이 얼굴 부위로 올라가 정상적으로 피부에 영양분 공급이 안 되어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분들은 대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우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또한 소변이 잦고 가끔 명치 부분에 통증이 있을 때도 있다. ●둘째로,광대뼈 주위에 기미가 자꾸 생긴다면 산후에,위장장애가 있을때,비만 환자 등에게서 이런 증상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체적인 원인은 음식조절을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셋째로,콧등에 자꾸 기미가 생긴다면 콧등에 기미가 자꾸 생기면 비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소화 장애,변비,설사,속쓰림,트림,더부룩한 증상 등이 많은 사람에게 생긴다 할 수 있다.기름진 음식,맵고 뜨거운 것을 과식하면 비위에 습열이 많아지는데 이것이 얼굴 부위로 올라오는 것.대체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코에 먼저 생기기 시작하여 입으로 번지는 특징을 보인다. ●넷째로 양 뺨에 기미가 생긴다면 양 뺨에 기미가 생기는 것은 그리 흔하지는 않다.대개 바람,온도,습도 등에 피부가 적응을 못할시 생긴다. 이러한 기미에 대하여 한방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각각의 증상에 따른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한방 요법의 치료와 봉침시술을 병행함으로써 기미를 제거할 수 있다.또한 요즘은 한방 피부관리의 방법을 병행하면서 그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거울을 보면 눈가 혹은 광대뼈 부위에 거뭇거뭇하게 끼어있는 기미를 가끔 볼 수가 있다.시골에 내려가면 자외선 등에 노출이 많이 되어 어머니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는 기미도 있겠지만,그러한 것이 아닌 실내에서의 생활에서도 기미가 많이 보인다면 내부 장기의 이상을 생각해봐야 한다. ■도움말 : 명옥헌 한의원 김진형 원장
  • 30년전 구상 실천에 옮기는 고승길 교수

    30년전 구상 실천에 옮기는 고승길 교수

    대학로에 연극박물관이 들어선다.100여개의 극장이 난립해 있지만 번듯한 자료실 하나 없는 연극의 메카였다. 이 구상은 중앙대 연극학과 고승길(64) 교수의 머릿속에 30여년 전부터 들어 있던 것.5년 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149평 부지에 2층짜리 건물을 산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움튼 곳이다.25억원의 사비를 털었다. 첫삽은 내년 2월에 뜬다.9월이면 ‘동양연극박물관’이라는 현판이 대학로에 내걸린다. 지상 5층, 지하 2층짜리 문화공간이다.“제 개인 연구실과 50평짜리 아파트를 팔 예정입니다. 가족들 반대요? 나보다도 집사람이 빨리 지어야 된다고 난리예요.” 40여년간 아시아 연극을 공부해온 고 교수. 새 박물관에 동양연극을 제대로 알릴 자료를 비축하고 활용·교육하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대학로에는 공연 행위만 있지 연구나 정보를 비축하려는 노력이 없어요. 돈 들여 국제적 규모의 연극제를 열어도 기본 정보가 없어 낭비가 많습니다. 요즘 한류라고도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주도를 못하고 있는 건 아시아 문화에 무지해서지요.” 한국 연극은 실크로드 때부터 동양 연극과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다. 고구려의 아크로바틱과 인형극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 그런 맥락에서 그는 지금처럼 더이상 서양 연극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동양연극박물관’에는 지난 40년간 고 교수가 모아온 귀중한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일본, 중국, 터키, 이란, 인도, 태국, 티베트 등 아시아 전역을 돌며 구해온 ‘보물’들이다. 일본만 150여번 오갔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시골 노인의 보따리까지 뒤졌다. 한·중 수교 전에 서적이나 자료를 들여올 때는 공항에서 번번이 ‘불온문서 의혹’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모은 3만권의 서적과 1만여점의 논문, 포스터와 프로그램, 비디오 테이프,CD,DVD 4000여점 등이 모두 새 박물관에 소장된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해방 이전의 희곡을 비롯해 각종 가면과 인형극, 그림자연극 인형 500점도 함께 전시된다. 대학에 남길까도 했지만 국내 대학 박물관 중 변변히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없어 포기했다. “일본 와세다대 연극박물관도 유명하지만 자국 것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서양, 중국 자료입니다. 동양 전체 연극을 주제로 아우르는 박물관은 최초가 아닐까요.” ‘동양연극박물관’은 극장 2개와 스튜디오, 전시실 2개, 자료보관실과 연구실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극장 이름도 정했다.‘미마지’.“미마지는 백제 시대 612년에 기악무(伎樂舞·불교적 교훈이 담긴 산대가면극 같은 것)라는 걸 일본에 전해준 한국 최초의 배우예요. 우리는 늘 뭐 한다 하면 그리스 얘기를 하길래 기분 나빠서 미마지로 정했지요.”(웃음)‘미마지’는 대학로 연극쟁이들에게 싼 임대료로 내놓을 생각이다. 문제는 지원이다. 모두 1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갈 공사지만 고 교수는 개인돈 25억원 외에 외부의 도움은 구하지 않은 상태.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박물관 일대의 문화지구 지정이다. 현재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주변에는 게릴라 극장과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동숭무대와 현재 공사 중인 선돌극장 등 5개의 소극장이 들어서 있지만 문화지구에서 벗어나 있다. 용적률 혜택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런 주변머리가 없어요. 만들고 나면 이 사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겠죠. 제가 중앙대에서 35년을 가르친 사람인데 제자들만 해도 유명한 탤런트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저는 평소에 신세 안 지는 사람으로 되어 있어서….”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KBS1 밤 10시) 2005년 12월 발코니 확장 공사가 합법화됨에 따라 발코니를 확장하여 섀시를 시공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그런데 건설사와 시행사들의 시공불량, 강매, 폭리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들이 많다는데…. 또 가입은 쉽지만 해지는 어려운 인터넷, 케이블 TV, 위성방송의 갈등 현장을 고발한다.   ●주말의 명화 ‘몽정기’(MBC 밤 1시) 용천 중학교 2학년 6반의 담임을 맡고 있는 노총각 공병철. 비록 지저분하고 고지식한 성격 탓에 ‘더티 테리우스’로 불리지만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생이다. 그런데 최근, 동현을 비롯한 반 아이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알고 보니 남자라면 한번씩 겪는 몽정기에 접어든 것.   ●다큐10-이집트 발굴 비사(EBS 밤 9시50분) 고대 이집트 로제타 스톤의 발견과 이집트의 신성문자 ‘히에로글리프’ 해독을 둘러싼 이야기들.1798년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듬해 이집트 로제타에서 이상한 비석을 발견한다. 고대 이집트 신성문자와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로 각각 같은 내용을 적어놓은 비석이었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밤 7시20분) 승미와 경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옥신각신하던 영림은 결국 폭발한 채 그만하라고 말하고 눈물을 떨군다. 근석은 승미에게 영림을 내버려 두라고 말하지만, 승미는 영림이 분명히 배신당한 것이라며 경표에게서 위자료라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은애는 경표에게 접촉사고 이외의 사건에 대해 묻는데….   ●라이프 n 조이(YTN 밤 8시35분) 은빛으로 물든 산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푸근한 인심 가득한 시골장에서 정을 담아 오는 곳, 그리움 가득한 강원도 정선으로 안내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에 서린 전설로 그리움이 더욱 깊어만 가는 곳, 마음까지 훈훈한 우리네 정이 가득 담겨 있는 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난다.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KBS2 밤 11시15분) 이모 손에 자란 은주는 외롭지 않으려 상혁과의 결혼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결혼 전 은주밖에 모르던 남편은 처이모의 친구인 민정을 알게 되자 변해간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것도 은주에겐 큰 충격인데, 남편은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나가 있겠다고 한다.
  •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평화시장을 오가는 언덕길은 가파랐다. 숨이 턱에 차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어머니가 만든 아동복 바지를 팔러다니던 시절.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는 데 감사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그 가난이 싫어 ‘본격적으로 옷장사를 할까.’마음먹기도 했다. 이대로 잘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도 같았다. 바느질한 천을 메고 청계천을 걸으며 청년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옷장사가 천직이 될 뻔한 청년이 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어렵고 고단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환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홀어머니와 세명의 동생 정동영 후보는 1953년 7월27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진철(1969년 타계)씨와 어머니 이형옥(2005년 타계)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 형만 넷이었다. 그러나 얼굴도 보지 못한 형들이다. 모두 정 후보가 나기도 전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누구에게나 가혹했던 시절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일 무렵. 고단한 병치레를 계속했던 아버지가 조용히 세상을 등졌다. 충격이었다. 우상으로 여겨왔던 아버지다. 아프고 또 아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정 후보는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을 그때로 꼽는다. 방황도 많이 했다. 뒤에 남겨진 건 홀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 그리고 가난이었다. 혹독한 현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에겐 무거운 짐이다. 계속 방황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부터 정 후보는 가장으로서 삶을 살았다. ●서울대 재학중 시위·투옥·징집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가난한 시골 청년은 굴곡많은 현대사와 마주보게 됐다.72학번 동기들의 징역형을 합하면 100년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다. 투옥과 수배가 반복됐다. 정 후보도 1973년 시위에 참가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최초의 유신반대 학생시위로 기록된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시위다. 당연한 듯 구치소에 구금됐다. 다음해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또다시 3개월간의 구치소 생활. 이번에는 출감하자마자 강제 징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의 어머니가 눈에 선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18년 기자 생활… 80년 광주 취재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정 후보는 문화방송(MBC)보도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1996년까지 18년을 기자로 지냈다. 아직 신참티가 남아 있던 1980년 5월 그는 광주 도청 앞에 서있었다. 봉쇄된 광주에서 흘러 나오는 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도보로 직접 광주 시내로 들어갔다. 눈으로 지켜본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총알이 빗발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취재를 해야만 했다. 목숨을 내놓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의 리포트는 보도되지 못했다. 당시 리포트는 올 5월 우연히 발견돼 27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1995년 정 후보는 정치인으로 변신을 결심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정 후보는 1996년 4월 전주 덕진구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2000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당 탈당 ‘배신자´ 비난 듣기도 그리고 그해 12월 김 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시 권력 최고실세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른바 ‘정풍운동’이다. 결국 10일 후 권력의 정점에 있던 권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한다. 정치인 ‘정동영’을 국민 뇌리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치 실험에 돌입했다.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모험이었다. 민주당 분당의 원흉으로 몰렸다. 그러나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을 다시 탈당했다. 비난이 쏟아졌다.‘배신자’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었다. 이제는 다시 민주당에 손 내미는 상황에 처했다. 아이러니다. 2002년 정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꼴찌를 밥먹듯했다.1승 15패. 참담했다. 고통이 극심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그러고는 승자 노무현 후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마치 자기 선거인 것처럼. 그런 정 후보가 이제 5년 만에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나선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선거다.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시대 과학자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평생 과학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병철·병길 같은 천문학자 집안 말고는, 중인 집안에서나 대대로 과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결혼도 자기들끼리 했고, 직장도 자기들끼리 소개하거나 물려주었다. 이남희 교수의 박사논문 ‘조선시대 잡과합격자연구’에 의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잡과 합격자는 역과 2976명, 의과 1548명, 음양과 865명, 율과 733명을 합하여 6122명이다. 산학(算學)은 정조가 즉위하던 1756년부터 주학(籌學)이라 하여 취재(取才) 형식으로 간단하게 뽑았는데 1627명 이상 선발하였다. 4대가 같은 잡과에서 합격한 세전성(世傳性)은 의과, 음양과, 역과, 율과 순으로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보고 들어야 대물림하기 쉬웠으니, 책에 없는 비법은 핏줄로만 상속되었다. 세전성을 거꾸로 설명하면, 역과 출신은 다른 잡학도 연구하여 전공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역관 김지남이다. ●외교사 자료집 ‘통문관지´를 아들과 함께 편찬 김지남(金指南·1654∼1718) 은 호조 주사(籌士) 김여의와 전의감정(典醫監正) 이몽룡의 딸 사이에 태어나 역관이 되었다. 주학(籌學) 집안과 의학 집안이 만나 역학을 전공한 아들을 키운 것이다.18세에 급제하여 28세 되던 1682년에 일본에 다녀왔다.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가 장군직을 물려받자 축하사절로 파견되었는데,6개월 동안 1만 1000리 먼 길을 여행했으며, 사행일지인 ‘동사일록(東日錄)’을 기록했다. 그 해에 청나라까지 다녀왔으니, 지남(指南)이라는 이름 그대로 길에서 나그네로 한 해를 보냈다. 환갑이 넘도록 중국에 자주 드나들며 유창한 중국어로 외교상의 문제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하였다.1710년에 정재륜을 따라 북경에 갔을 때 우연히 심양의 장수 송주와 며칠 동안 이야기했는데, 우리 나라가 제후의 법도를 잘 지킨다는 사실을 많이 말했다. 나중에 송주가 재상이 되자 그러한 사실을 황제에게 직접 아뢰어, 황제가 조선에서 바칠 공물을 줄여 주었다. 국가 재정이 그만큼 절약된 셈이다. 김지남이 역관으로 활동하며 남긴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교사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통문관지’를 편찬한 사실이다. 이 책의 공동 편찬자인 아들 김경문은 서문에서 편찬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예부터 우리나라는 인접한 중국·요(遼)·연(燕)·여진·일본 등과 어려운 문제를 타결한 법례가 많았지만, 이를 수록한 문헌이 없다. 그래서 고증할 길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 영의정 최석정이 사역원 제조로 있을 때에 김지남이 전고(典故)에 밝다는 사실을 알고, 외교 고사를 수집 정리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이 책에는 사역원의 관제, 역과(譯科), 여로(旅路), 출장비부터 중국과 일본에 보내는 외교문서나 접대하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역관들이 알아야 할 모든 항목이 설명되어 있고, 대표적인 선배 역관들의 간단한 전기도 실려 있다.12권 6책의 방대한 분량인데, 후배 역관들이 비용을 갹출하여 출판하였다. 조선시대에 17회나 재판을 찍을 정도로 많이 읽히고 참고가 된 책이다. 김지남은 역관 박정시의 딸과 혼인하여 7남 3녀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아들 5형제가 모두 역과에 급제했다. 이창현이 편찬한 ‘성원록´에는 경문(慶門)·현문(顯門)·순문(舜門)·유문(裕門)·찬문(纘門)의 가계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대표적인 역관 집안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화약 만드는 법을 연구하고 책까지 쓰다 김지남은 한 사람의 역관으로 편하게 살지 않고, 중국어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정묘호란 뒤에 청나라와 싸우기 위해 화약이 많이 필요해지자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흑색화약의 원료인 유황과 염초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김양수 교수는 ‘조선후기 전문직 중인의 과학기술활동’이라는 논문에서 1635년에 이서(李曙)가 편찬한 ‘신전자취염초방(新傳煮取焰硝方)’의 염초 제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마 밑의 흙과 미리 준비해둔 재·오줌 등을 화합했는데, 뇨분 속에 있는 질산암모늄과 재 속에 있는 탄산칼륨을 반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려면 가마를 때기 위해 막대한 나무가 필요했다. 김지남이 개량한 제조법은 나무 대신에 일년생 잡초를 써서 비용이 줄어들고 품질은 더 좋아졌다. 1692년에 부사로 연행 길에 오른 민취도가 김지남에게 염초 제조법을 알아보라고 하자, 요양의 어느 시골집에 찾아들어가 사례금을 주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인이 죽어 비법을 익히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화약 만드는 것을 국법으로 엄하게 금했으므로, 목숨을 걸고 배워야 했다. 조선이 비록 항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가상 적국이기 때문이다.2년 동안 실험 끝에 성공했으며,1698년에 그 방법을 책으로 써서 출판한 것이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이다. 화약 만드는 여덟 가지 과정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요약하였다.“먼저 흙을 모으고(取土) 재를 받아서(取灰) 같은 부피의 비율로 섞는다(交合). 섞은 원료를 항아리 안에 펴고 물을 위에 부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篩水) 가마에 넣고 달인다(熬水). 이 물을 식혀서 모초(毛硝)를 얻고 이 모초를 물에 녹여 다시 달여서(再煉) 정제시킨다. 재련 후에도 완전히 정제되지 않았으면 또 한번 달인다(三煉). 이렇게 얻은 정초(精硝)를 버드나무 재, 유황가루와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넣고 찧는다(合製).” 이렇게 만든 화약은 땅 밑에 10년을 두어도 습기에 변질되지 않고, 흙과 재도 예전의 3분의1밖에 들지 않아 자주 국방과 국가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장인들이 읽기 쉽도록 한글로 언해하였다.1796년에도 다시 출판했으니, 오랫동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두산 기행일기 ‘북정록´ 남겨 김지남은 한국사에 여러 차례 이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에 역관으로 참여한 사실이다. 백두산은 지형이 험해 조선 쪽에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으며, 청나라에서는 황실의 근본이라고 해서 아무도 살지 못하게 했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이 결국 중원과 북경을 포기하고 몽골로 돌아간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이다. 피차간에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국경선이 엄격하게 없었다. 1692년에 청나라에서 백두산을 조사하며 조선 측에 길을 안내하라고 했는데, 길이 없다고 핑계를 대어 무마하였다.1710년에 우리 백성이 국경을 넘어가 살인하자 청나라에서 조사관이 나왔는데, 김지남이 추운 겨울날 길을 안내하지 않고 열흘이나 버텨 유야무야되었다. 그러나 1712년 2월24일에 청나라에서 자문(咨文)이 왔는데, 얼음이 녹으면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 국경을 조사할테니, 조선 측에서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은 수십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2월15일에 이미 북경을 떠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김지남을 수역(首譯)으로 임명하였다. 김지남은 아들 김경문을 데리고 갔다. 이들은 혜산을 출발하여 오시천, 서수라, 화덕, 지당을 거쳐 박봉곶에 도착하여 압록강 근원을 조사하였다. 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확인한 다음, 분수령에 내려와 정계비를 세웠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으므로 밀림과 벼랑, 강줄기 사이로 말 타고 갈 수 있게 길을 닦는 것만도 큰 일이었다. 천지 가까이 오자 목극등은 노인이라는 핑계를 대며 박권과 김지남을 떼어내려고 애썼다.5월6일에 백두산 등반 인원이 확정되었는데,59세 되던 김지남은 끝까지 우겨 따라가게 허락받고,55세 되던 박권은 결국 오르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책임자 양반은 빠지고 역관 김지남이 목극등과 대담하며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 백두산을 오가며 세 사람이 모두 기행일기를 썼는데, 김지남의 ‘북정록’이 박권의 ‘북정일기’나 김경남의 ‘백두산기’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훌륭하다. 박권의 기행문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던 것이다. 양반 관원은 중도에 포기했지만, 전문가는 끝까지 따라가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의 증인이 되었다. 비록 정계비를 세웠지만, 나라가 약해지면서 국경도 없어졌다. 조선통감부를 설치해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1909년에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겼다.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정계비마저 없앴다. 최근에 한국 연구자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4㎞ 떨어진 곳에 남아 있는 정계비의 받침돌을 발견하였다.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김지남같이 책임있는 전문지식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20대男이 13살 여친과 함께 자면 성폭행죄?

    “우리 두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해서 같이 잤는 데도 죄가 됩니까?” 중국 대륙에 한 20대 사내가 나이 어린 여자친구와 함께 잤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되는 통에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중국법원망(中國法院網)은 최근 20대의 한 사내가 나이어린 여자친구와 몇차례 동침을 했는데,그 여자친구의 부모가 공안(경찰)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고 보도했다. ‘화제의 인물’은 중국 남부 광시(광서)장족자치구 난닝(南寧)시 상린(上林)현에 살고 있는 저우차오(周超)씨.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의 농삿일을 돕고 있는 평범하고 순박한 시골고라리이다.이 평범하고 순박한 농투성이는 그러나 너무나 어린 애인을 둔 탓에 팔자에 없는 감옥살이 생활을 하게 됐다. 사건은 지금부터 1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지난해 10월 저우씨는 자신의 채마밭에서 일하다가.이곳에 놀러왔던 초등학교 6학생년생인 13살짜리 아리잠직한 소녀 장(張)모양을 만났다.첫눈에 ‘필’이 꽂힌 두 남녀는 곧바로 불꽃같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밀회를 즐긴 이들 두 남녀는.그해말 성인과 어린아이라는 나이와 정신적인 격차를 ‘극복’하고 ‘선’을 넘고 말았다.한번 무너진 ‘선’은 그 다음부터 더욱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그러던중 지난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저우씨는 또다시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장양을 데리고 집으로 와 함께 잤다.이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그녀의 부모가 득달같이 달려와 저우씨에게 “미성년자를 데리고 농락하면 어떡하느냐”며 “당장 고소하겠다.”고 그를 공안당국에 인계했다.공안당국은 고대 저우씨의 집으로 달려가 두 남녀를 불러 조사했다. 공안당국 조사 결과 저우씨는 지난해말부터 장양과 성관계를 맺어온 것은 사실이며,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한 일이지 강제에 의한 행위는 결코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안당국은 그러나 장양이 아직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미성년자인 만큼 이들 두 사람의 성관계는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저우씨를 기소하도록 검찰로 넘겼다. 상림현 인민법원은 공안당국의 조사결과 저우씨는 미성년자인 장양의 아버지로부터 만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에도 아랑 곳 없이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어온 점을 인정돼 강간죄가 성립한다며 장양이 미성년자이지만 스스로 원해서 관계를 맺은 만큼 강간죄가 없다는 저우씨측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인민법원은 이에 따라 저우씨에게 강간지를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나무도 우리들 인생에 큰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무도 우리들 인생에 큰 스승이 될 수 있다”

    설령 도회에서 자랐던들 나무에 얽힌 추억 한 둘 못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주린 배 속으로 허한 바람 일게 하던 들판의 미루나무든, 토담에 노구를 기댄 채 낱알을 툭툭 떨어뜨려 쌓던 밤나무든, 아니면 호랑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가시울 탱자나무든 나무는 모두에게 공유(共有)의 추억으로 남는다. 어느덧 문단의 중견이 된 작가 이순원이 장편 ‘나무’(문학에디션 뿔)를 출간했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가족·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이런 나무의 공유성에 눈길을 준다.‘열 두살의 네게는 무한한 질문의 나무, 스무 살의 그대에게는 엄마 몰래 숨겨놓고 싶은 비밀의 나무, 서른의 당신에게는 지혜로운 동반의 나무, 열매를 맺은 당신께는 나무 그 다음의 나무를 생각하는 나무’, 이런 식이다. 나무만큼 많은 사연을 간직한 물상도 흔치 않다. 뚜렷한 장소성 때문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들에게서 또 다른 아들로 나무는 사라지는 순간까지 수많은 사연들로 나이테를 만든다. 그 나무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여름 원두막이나 겨울 화롯가 정담처럼 따뜻하다. 작은나무와 할아버지나무는 조곤조곤 귀엣말을 나눈다.“나무는 백 년도 살고, 천 년도 사는 몸들이란다. 오래 살며 열매를 맺자면 우선 제 몸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겠지. 네 몸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꽃보다는 줄기와 잎에 더 힘을 써야 하는 게야.” 작가는 나무에서 이런 주제 스물 일곱개를 뽑아 옴니버스식으로 엮었다. 그 가운데 ‘봄을 여는 매화의 기상’ 편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그러면 지금 눈 속에 핀 저 꽃들에서 열매가 달리는 건가요?” “그렇지. 눈과 추위가 나무를 단련시키고, 꽃을 단련시키는 거지. 매화나무가 언제 내릴지 모를 눈과 추위가 두려워 제때 꽃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는 법이란다. 네 말대로 꽃샘을 피하려고 늦게 피어난 매화꽃엔 아무 열매도 안 열리지.” 작가는 나무를 통해 삶을 말한다. 때로는 지혜를, 때로는 용기와 참음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들려준다. 자칫 어른들에게는 밍밍한 얘기로 읽힐 수 있지만 곱씹을수록 ‘생각’의 뿌리를 넌출거리게 하는 글편들이다. 이 ‘나무’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술회한다. “내가 태어난 시골집에 있던 커다란 밤나무, 백 년 전쯤 할아버지가 심은 그 나무와 할아버지는 내게 나무도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큰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나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9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데스크시각] 공공기관 감사와 축구심판/임창용 공공정책부 차장

    다 아는 얘기지만 스포츠에서 국가대표팀끼리 맞붙는 A매치의 주심은 제3국 국적의 심판이 맡는다. 시골에서 동네 대항 축구시합을 해도 여건만 되면 다른 동네 사람이 심판을 본다. 반칙행위를 공정하게 잡아내 벌칙을 주기 위해서다. 만일 경기에 나선 팀과 한 국적 또는 한 동네 사람이 심판을 본다면 상대편은 물론 관중도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공무원, 공기업 직원들의 비리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같은 스포츠게임의 불공정한 심판을 떠올리게 된다. 정부 부처의 감사관, 공기업 감사들이 이들 심판과 자꾸 오버랩되는 것이다. 감사관은 각 부처에 속해 있으면서 직원의 업무와 비리를 감시·감찰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려면 당연히 기관장이나 상관, 동료들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감사관도 조직의 구성원이자 일개 간부인 이상 조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일부 부처 감사관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있다. 한데 실행이 제대로 안된다. 외교통상부·보건복지부·건설교통부 등 감사관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있는 12개 부처 중 순수 민간인을 감사관으로 뽑아 쓰는 곳은 관세청 등 2곳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 출신이고, 그 중 상당수는 소속 부처 출신이다.‘무늬만’ 개방형인 셈이다. 해당 부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감사업무를 수행하려면 조직 내부와 업무를 꿰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댄다. 그러나 아무리 조직을 꿰고 있다 한들, 자신의 승진·인사의 숨통을 기관장·상관이 쥐고 있고, 십수년간 동고동락해온 동료·부하들이 눈에 걸리는데 그들의 비리를 소신껏 파헤쳐 낼 수 있겠는가. 적지 않은 부처들이 감사관을 공모할 때마다 ‘적임자가 없다.’며 2차,3차 재공모를 한다. 검사출신 변호사, 대기업 출신 감찰 전문가가 지원을 해도 마찬가지다. 모 부처의 한 간부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들어와 조직을 흔들어 놓을까 부담된다.”고 털어 놓았다. 진짜 속내는 바로 이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적임자는 ‘조직의 생리와 업무를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인물인 셈이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연일 도마에 오르지만 개선되지 않는 원인도 자체 감사시스템 부실에서 찾고 싶다. 부처 감사관과 달리 공기업 감사는 대부분 외부에서 수혈된다. 문제는 상당수 감사들이 정치판을 들락거리던 비전문가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자리 챙겨 주기 수혜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 때문에, 기관장은 물론 노조, 직원들에게 감사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 공기업 감사는 고장난 호루라기를 물고 있는 심판과도 같다. 비전문가, 정치권 낙하산이라는 실뭉치가 호루라기속을 꽉 채우고 있으니, 아무리 불어대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공무원과 공기업 혁신의 해답은 자체 감사시스템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감사관을 외부에서 뽑되, 진정 감사의 논리를 꿰뚫고 있는 소신파 ‘감사 전문가’를 발탁해야 한다. 부처 조직과 업무를 미주알고주알 꿰고 있어도 감사의 날을 세우지 못하면 감사관으로선 부적격자다. 공기업 감사에 정치권 출신의 비전문가를 앉히는 해묵은 악습의 고리도 끊어내야 한다. 정부가 공기업 혁신을 끊임없이 외쳐대면서도 낙하산 감사 인사의 고리를 끊지 않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공직사회에서 한쪽 팀과 공모한 심판이 뛰는 불공정한 게임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고장난 호루라기를 문 심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피해를 입는 상대편 팀은 다름 아닌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임창용 공공정책부 차장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외도의 두 갈래/우득정 논설위원

    토마스와 프란츠 사이를 줄다리기 하던 사비나는 어느 날 남몰래 떠난 파리에서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외도하는 남성에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신에게 탐닉했던 프란츠는 ‘이상형’ 추구형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지만 끝내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종말은 이국 땅에서의 비명횡사다. 자신이 탐닉했던 토마스는 매일 상대가 바뀐다. 그는 어쩌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상대방에게서 100만분의1의 차이를 확인하려 한다. 탄탈로스와도 같은 토마스의 갈증 역시 체코의 시골 밤길 산산조각난 트럭에서 마침표를 찍는다.(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십이 넘어서도 K는 우리의 우상이다. 술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자리를 파할 때까지 화려한 여성편력사(그의 표현은 인생역정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한때 놀았다던 친구들도 입을 떡 벌린 채 ‘형님’을 연발한다.K의 결론은 항상 이렇다.“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플라토닉 로맨티스트인 것 같아.”입술에 침조차 바르지 않은 그의 표정은 항상 진지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해외네티즌 “유튜브가 한국인 놀이터냐” 비판

    해외네티즌 “유튜브가 한국인 놀이터냐” 비판

    “유튜브가 한국인들 놀이터가 됐다.” vs “인터넷에 국적 제한이 있나?” 세계 최대의 UCC 사이트 유튜브(YouTube.com)에 한국 네티즌들이 올린 동영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한국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동영상’이 많아졌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 주말 국내 한 이동통신사 광고가 ‘많이 본 동영상’(Most viewed)에 등록되면서 더욱 불거졌다. 화제의 광고는 시골의 노부부가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통해 고장난 가전제품을 보여주는 내용과 아픈 딸과의 영상통화를 회사 상사에게 보여주고 일찍 퇴근하는 내용 등을 편집한 것. 광고 내용에 공감하며 즐거워하는 네티즌들도 많았지만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인들만의 유머”라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 ‘stayfly123’은 “정말 재미있는 거야? 어디가?”라며 의문을 표했고 ‘sontung007’은 “그럭저럭.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적었다. 또 ‘5c4v3ng3r’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한국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국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올리는 동영상도 국적 따라 눈치 봐야 하느냐?”며 맞섰다. 해외네티즌들의 이같은 비판은 이번 광고 동영상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유튜브에는 한국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이 여과 없이 등록돼 ‘검색만 방해하는 의미없는 동영상’이라는 비난이 이어져 왔다. 해당 방송을 좋아하는 일부 한국인들만을 위한 동영상이라는 지적. 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가 있던 지난 8월에는 피랍 관련 동영상마다 한글로 된 욕설과 악성 댓글들이 이어져 해외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도 해외 네티즌들은 “유튜브는 한국인들 싸움터가 아니다.”라며 불만을 드러냈었다. 한편 일본 네티즌들 역시 자국 방송을 그대로 올리거나 선정적인 동영상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외 네티즌들은 부적절한 일본 동영상에 대해 ‘jap Tube’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06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미라 2부작(KBS1 오후 7시10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장의회사 서멈. 이곳은 아주 특별한 장례방식으로 유명하다. 방부 처리 약품만 바뀌었을 뿐, 고대이집트 방식 그대로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주는 것. 서멈에 미라 장례식을 신청한 사람은 1500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미라가 되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위기탈출 넘버원(KBS2 오후 10시15분) ‘잠깐은 괜찮겠지.’,‘다른 사람들도 하는데….’라는 의식들이 큰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넘버원은 다섯 명의 MC들과 이기주의 퇴치 프로젝트에 나선다. 운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양심적인 갓길 주정차 사고의 원인을 알아보고 예방법을 공개한다. 또 비상용품을 훔쳐가는 불량 양심을 파헤쳐본다. ●영화특급 ‘소년, 천국에 가다’(SBS 밤 1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네모는 미혼모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다. 서울에서 내려 온 부자는 어린 아들 기철과 단 둘이 사는 미혼모이다. 미혼모가 운영하던 시계방 자리에 이사온 또 다른 미혼모이기도 하다.13살 네모는 부자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고 느낀다. 네모는 부자에게 청혼한다. ●EBS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싱어 송 라이터 에코 브릿지는 이미 다양한 활동으로 인정 받아온 실력파 뮤지션이다. 올해 발표한 데뷔 앨범 ‘Leaving The Past’에는 그의 다양한 음악적 경험들이 재즈, 록, 솔 등 여러 장르의 옷을 입은 채 담겨있다. 섬세한 감성과 편안한 멜로디의 에코 브릿지 음악을 만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미국 워싱턴 동포사회는 지난 주말 뒤늦은 한가위 행사를 치렀다. 동포들은 시골 냄새 나는 장터에서 향수를 달랬다. 한국에선 명절 분위기로 들썩였지만 해외에선 오히려 마음이 더욱 허전하다. 장터에는 진기한 물품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흥겨운 전통 가락을 즐기는 미국 시민들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사랑의 리퀘스트(KBS 1TV 오후 5시10분) 근육병 환아들의 보금자리 ‘잔디의 집’에 살고 있는 준수와 영수 형제는 모계유전질환인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팔과 다리, 점차 심장과 폐의 근육마저 소실시켜 버리는 무서운 병. 영수는 수술을 받지 못하면 장기 압박으로 생명이 위험한데…. 가수 이수영이 준수와 영수를 만나 힘이 되어 준다. ●조강지처클럽(SBS 오후 9시55분) 정나미와 통화를 하던 기적은 복수가 누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느냐고 따지자 어린이 환자라고 둘러댄다. 기적은 정나미를 만날 생각에 한번도 입지 않던 분홍셔츠를 꺼내 입는다. 원수는 화신이 계속 전화를 하는 바람에 머리가 돌 지경이라며 복수에게 화신을 말려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말 요리쇼(EBS 오후 9시30분) 속을 풀어줄 시원한 해장국물이 필요하다면? 한국말 요리쇼에서 쉽고도 간단한 콩나물 해장국을 소개한다. 수업에 참여한 이주여성은 베트남에서 온 결혼 5년차 도한나씨. 이미 한국요리책으로 공부하고 있는 덕분에 상식이 많이 쌓여 제작진을 여러 차례 놀라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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