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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농촌의 세계화 이젠 도시가 배워야/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지방시대] 농촌의 세계화 이젠 도시가 배워야/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잘되어야 중소기업이나 서민이 뭔가 먹을 것이 생기며,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서 나라를 잘 이끌어야 국가가 제대로 될 것이며, 수도권이 잘살아야 지방도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1000명을 고용하는 하나의 기업보다 10명을 고용하는 100개의 기업을 만들어야 하고, 농촌이 잘되어야 도시가 사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이런 이야기가 가장 리얼하게 벌어지는 현장이 오늘날 농촌이다. 지난 수십년간 농촌은 도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쳤다. 농사를 지어 도시 사람들을 먹여왔고, 자식들을 낳고 키워서 도시에서 일할 사람들을 공급해 왔다. 나아가 그 자식들이 대기업에 입사하고, 교사나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땅 팔고 소 팔아서 가르쳐 왔다. 그렇게 해온 결과 남은 것이 무엇인가. 빈집과 병 들고 늙은 몸뚱이뿐이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직장을 가지고 집 사고 애 키우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도시에 나간 자식들 덕에 호강을 한다고 생각하는 시골 노인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돈 많이 번 자식은 처갓집 자식이고, 공부 잘한 자식은 나라님 자식이고, 못난 자식이 내 자식이라는 넋두리를 쏟아내는 노인들을 자주 만난다. 시골에는 자식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넘어 이제는 포기와 연민으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노인들에게 새 삶을 산다면 예전처럼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면서 살겠느냐고 물어보면 같은 대답을 한다. 다시 산다 해도 여전히 애를 낳고 키우며 고생해도 그 재미로 살아야지 뭐, 다른 재미가 있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어 사는 자식 세대들의 삶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요즘은 아무도 자녀를 일곱 여덟 낳지도 않을뿐더러 자식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이도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식을 둘도 안 낳고 있고, 심지어는 결혼조차 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시골에 사는 또 다른 부류는 귀향한 젊은이들이다. 잘나가는 자식들은 직장 잡고 돈 벌어서 도시를 떠나지 않지만, 도시에서 부적응한 자식들은 다시 시골로 귀향해 이제 농촌을 지킨다. 이들이 찾아온 농촌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농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소값이나 쌀값이 국내시장의 영향력이 아니라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세계화의 파도에 휩쓸린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현장이다. 도시인의 입맛이 다이어트나 건강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고서는 농사짓기 힘들다는 것을 치열하게 배워나가고 있다. 또한 물 다르고 풍습이 다른 외국 처녀들을 데려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키워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는 현장이 농촌이다. 이제 농촌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 공급하며 살아가는지를,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과 어떻게 한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지를 도시는 농촌에서 배워야 한다. 도시에서는 외국인들이 격리되어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시골에서는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이웃으로 살고 있다. 농촌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최근 외국인에 대한 이중국적 허용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보다는 농촌의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일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되묻고 싶다.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 [대한민국 극&극] 최대 지역구 서울 강남甲 vs 최소 지역구 경북 영천

    [대한민국 극&극] 최대 지역구 서울 강남甲 vs 최소 지역구 경북 영천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다. 남의 지역구를 부러워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 만나는 유권자가 여남은 명도 안 될 때, 시골 지역구 의원은 도시 의원이 부럽다. 그러나 15층짜리 거대한 아파트를 대하는 도시 의원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 동(棟) 한 동이 100가구, 200가구가 넘는, 그야말로 ‘표밭’이지만 도대체 ‘표심(標心)’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한 도시지역 의원은 29일 “농촌이나 산골은 좀 고생스럽더라도 찾아가기만 하면 유권자도 만나고 생색도 나지 않느냐.”고 말했다. 도시에서는 굳게 닫힌 아파트 철문을 열기 위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특별한 주문이라도 외워야 할 판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그것이 노하우이고 당선의 열쇠”라고 말했다. 그래서 ‘철문 속의 표심’을 읽기 위해 편법에 불법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유권자 정보를 수집해 나이, 직업, 본적, 학력, 가족사항, 정치성향, 종교부터 활동모임 내역까지 세세하게 적은 리스트를 쥐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그러나 ‘몸으로 뛰어야만 하는’ 산간지역 의원에게는 모든 것이 ‘배부른 투정’일 뿐이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솔직히 말해 선거운동 기간 지역구를 한 바퀴도 못 돌고 끝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동 트고 해질 때까지 100가구를 찾아가기가 어려운 날도 있다고 한다.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간 유권자를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도시에서야 ‘스펙’과 ‘경력’만으로 버티는 의원들이 많지 않으냐. 시골에서는 ‘발바닥’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는 의원도 있다. 저마다 다른, 그들의 ‘고충’을 들여다본다. ■ 서울 강남甲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은 역시 도시 지역이다. 서울 강남갑이 24만 3349명으로 가장 많다. 부산 해운대·기장갑이 23만 2983명으로 두번째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미세한 지역구 조정이 있기 전까지는 해운대·기장갑이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유권자 밀도가 높은 도시지역이다 보니 두 지역의 공통점도 많지만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한 차이점도 있다. ●의정보고서 한번에 3000만~4000만원 공통점이라면 우편요금 부담이 벅차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많으니 가구 수도 많고 그만큼 의정보고서 발송비가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이종구(강남갑) 의원은 11만 7864가구인 지역구에 의정보고서 한 차례 보내는 데 3000만~4000만원이 든다. 그러니 다른 지역구에서 1년에 2, 3차례 의정보고서를 발송하는 것과는 달리 1년에 한 차례만 발송하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이 의원 쪽 관계자는 29일 “국고에서 일정 부분 보조되는 부분도 있지만 의정보고서 비용이 항상 빠듯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서병수(해운대·기장갑) 의원도 “10만 가구가 넘다 보니 1년에 한 차례 이상 의정보고서 보내기는 정말 힘들다.”고 밝혔다. ●사람은 많지만 사람구경 하기는 힘든 곳 두 지역 모두 사람은 많지만 아이러니하게 선거 유세 때 모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파트 밀집지역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강남갑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대규모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이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 때도 주말이면 주택가를 돌며 유세 행군을 벌였지만 ‘아파트 숲’에 싸인 동네에서 주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저 아파트 안에서 ‘내 유세를 듣고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연설한다.”고 털어놨다. 유세 거점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도 유세를 듣는 청중은 20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총선에서 선거를 도운 한 관계자는 “유동 인구는 많지만 이 의원의 유세에 관심없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서 의원 역시 아파트 밀집 지역인 해운대구의 미니 신도시인 센텀시티에서 유세할 당시를 회고하며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 지은 아파트라 주차장이 모두 지하에 있다.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지하에서 바로 아파트로 올라가 버리니 참 막막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서 의원의 지역구는 아파트 밀집지역과 일반 주택지역이 혼재돼 유세 때는 평균적으로 200여명의 청중이 꾸준히 나온다는 전언이다. ●강남갑… ‘강남시민’의 자부심 두 지역의 차이점도 있다. 강남갑에는 중산층과 상류층이 많이 모여 있다 보니 유권자의 수준도 두드러진다. 학력과 소득, 문화 수준은 물론 주민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지방의 국회의원들이 지역 행사에 가면 ‘금배지’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남갑은 예외다. 유권자들 상당수가 국회의원에 ‘꿀리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갖추고 있다. 그러니 국회의원에게 딱히 민원을 제기할 것도 많지 않다. 다만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아파트와 주택이 즐비하다 보니 종합부동산세나 재건축 사업 등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다. 그래도 국회의원이라면 수도 없이 밀려드는 경조사 참석 요청은 드문 편이다. 이 의원 쪽은 “참석해 달라고 하면 가겠지만 요청이 없으니 굳이 찾아 가기도 머쓱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기장갑… 지역구 안의 양극화 골치 해운대·기장갑은 특이한 지역구 중 하나다. 같은 지역구 안에서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확연히 구별된다. 센텀시티와 신시가지가 들어선 좌동·우동·중동은 아파트 가격도 서울 못지않다. 서 의원 쪽의 한 관계자는 “센텀시티 아파트값은 서울 서초동 못지않다.”고 전했다. 이곳은 벡스코가 위치한 곳으로 문화·체육 시설에 대한 요구가 많고 해운대가 관광특구여서 전시와 컨벤션 시설 확충에 대한 수요도 많다. 반면 재송·반송·반여동은 수해민이나 철거민이 모여들면서 정착한, 정책이주지역이 많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다. 당연히 도로와 주차장, 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이 열악해 서 의원이 항상 관심을 두는 지역이다. 그는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곳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지역구 사무실도 이곳에 둬 낙후된 동네 사정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관심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마땅한 사무실을 찾지 못했다. 워낙 개발이 더딘 곳이라 규모가 작더라도 쓸만한 사무실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지역에 석대·반송·안평역 등 부산지하철 3호선이 2010년 개통되는 등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경북 영천 전국에서 유권자가 가장 적은 지역구는 경북 영천이다. 유권자가 8만 5759명에 그친다. 서울 강남갑과 비교하면 3분의1에 불과하다. 사람이 적다고 지역구 면적이 좁은 건 아니다. 1000만명 이상이 모여 사는 서울 면적의 1.5배나 된다. ●한 집 사이 30분 걸리기도 면적은 넓은데 유권자가 적다 보니 유권자 접촉에 들어가는 품이 만만치 않다고 이 지역 출신인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이 29일 귀띔했다. 국회 의정 활동을 위해 거처로 잡은 경기 고양시 집에서 출발해 영천에 도착, 지역구를 돌아보자면 분 단위로 촉박하게 일정을 잡아도 1박2일이 기본이다. 정 의원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집을 직접 찾아 다니기도 한다.”면서 “한 집 들렀다가 옆집으로 이동하는 데만 30분씩 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다가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기도 했다. ‘영천지역 단일요금제’가 광활한 지역구 탐방에서 얻은 정 의원의 아이디어 작품이다. 당초 거리별로 버스 요금을 내야 했는데, 지난해 12월부터 단일요금제를 시행하면서 주민 부담을 덜어주게 됐다. ●55세 국회의원은 ‘청년뻘’ 영천에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주민은 주로 노년층이다. 40~50대가 각 읍·면·동의 청년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올해 55세인 정 의원은 ‘팔팔한’ 청년에 속한다. 그래서 정 의원은 ‘어르신’인 주민들에게 ‘정 의원님’이 아니라 ‘정 의원’으로 불린다. 정 의원은 “모두 옆집 살림을 훤히 알 정도로 인맥이 좁은 곳이라 국회의원이랍시고 존칭을 받는 게 더 어색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더 열심히 챙겨야 할 대소사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문중’ 챙기기다. ‘영일 정씨’ 문중을 비롯해 영천을 본관으로 하는 문중의 종친회에는 빠짐없이 찾아가 인사해야 한다. 대부분 혈연 관계로 엮여 있어 지역 주민들의 관혼상제도 빠뜨릴 수 없다. 다들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기면 “누구는 챙기고 누구는 빼먹었다.”며 서운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대신 정 의원은 식사 대접과 화환 제공은 금물이라는 철칙을 갖고 있다. 주민들이 워낙 서로 잘 알다보니 유난히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하는 정치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난처한 민원에 미안함 느끼기도 여의도 국회에 특별한 의정 활동이 없으면 꼬박꼬박 영천을 찾는 정 의원에게 지역 의정보고회는 굵직한 정치포럼의 토론 때 보다 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이다. 지역 주민 대부분이 전문 정치인에 버금갈 정도로 정 의원의 의정활동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설과 추석을 앞두고 의정보고회를 열면 보통 200~300명씩 모인다. 표정들도 진지하다. 주민들의 집을 찾아가 보면 의정보고서를 순서대로 차곡차곡 모아 둔 곳이 제법 많다. 주민들의 민원도 많은 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주민들은 곧바로 의원실에 전화를 건다. 한 주민은 최근 “아들이 실직했는데 정 의원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이니 주택공사나 토지공사에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정 의원으로서는 난처한 일이다. 그는 “주민들과 그만큼 가깝게 소통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털어놨다. 인구가 적어 좋은 점도 있다. 정 의원의 보좌관들은 우표값이 덜 드는 점을 꼽는다. 의정보고서를 발간하면, 이를 모든 가구에 한 부씩 발송해야 한다. 가구수가 적다 보니 한 부에 310원 정도 들어가는 우표값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우표값을 아낀 만큼 주민을 위해 더 유용한 곳에 쓸 수 있다는 게 정 의원 쪽의 설명이다. ●유권자 유출로 심각한 고민 최대 고민은 유권자들이 자꾸만 도회지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주민 수가 적고 고령화 되다 보니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문화 생활을 누릴 공간이 전무하다. 신작 영화 한 편 보려고 극장을 찾아가자면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1시간이나 이동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아예 대구로 생활 터전을 옮겨 떠나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 의원은 이를 막기 위해 영천에 일반 및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대구와 영천을 잇는 대구선 복선 전철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민원은 발생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지하철 역이나 경전철을 서로 자기 지역과 아파트 단지에 가깝게 설치하려고 민원을 제기한다. 하지만 영천 주민은 정반대다. “왜 우리 과수원에 전철이 지나가게 하느냐.”, “왜 우리 문중 산사에 철도를 설치하느냐.”라는 읍소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우리말 여행] ‘에’와 ‘에서’

    ‘시골에 산다.’, ‘시골에서 산다.’ 같은 의미지만 조금 다른 어감을 준다. 조사 ‘에’와 ‘에서’가 하는 기능의 차이 때문이다. ‘에’나 ‘에서’는 모두 앞말이 장소를 가리키는 부사어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에서’는 여기에 더해 어떤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시골에서 산다’에서는 ‘행동’ ‘행위’의 의미가 드러나 보인다.
  • [5080]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한가지

    [5080]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한가지

    꿈이 없으면 인생은 황폐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중·노년층에게도 꿈이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꿈을 품고 있어야 부푼 가슴으로 여생을 윤택하게 보낼 수 있다. 젊은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그래도 못다 이룬 꿈은 누구에게든 남아 있다. 그렇다고 거창한 꿈도 아니고 금전에 관한 것도 역시 아니다. 작고 소박한 소시민적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봤다. ●“나만의 다락방에서 세계문학전집 읽는 꿈”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사는 김연미(52·여)씨는 여유가 없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미래에 이루고 싶은 작지만 ‘소박한 꿈’을 한 가지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꿈을 ‘나만의 다락방을 마련해 고풍스러운 책장을 들여다 놓고 세계문학전집을 꽂아 둔 다음 혼자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아늑한 다락방에서 남편, 딸과 함께 그동안 먹어 보지 못했던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도 했다. 김씨는 “나이를 먹으니까 생활에 묻혀서 여유를 즐기고 싶어도 선뜻 해보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꼭 남은 삶 속에서 생각의 여유를 즐기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의 이상제(56)씨는 여행을 무척 좋아해 목표도 그쪽으로 잡았다. 특히 등산을 좋아해 국내에 안 가본 산과 사찰이 없을 정도다. 현재 교장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연수 중인 이씨는 “바쁜 일정에 여유가 없어 당분간은 여행을 못 가지만, 퇴직 후에는 전 세계 명소를 가능하면 많이 섭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유럽 지역을 여행하는 게 꿈이라는 이씨는 “알프스 산맥이 펼쳐진 스위스와 피오르드 해안이 절경을 이루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를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찍기도 좋아한다는 그는 “세계 명소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싶은 꿈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만난 김정숙(65·여)씨의 꿈은 너무나 평범하다. 자식을 둔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 역시 노총각 아들이 장가를 가서 손자를 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현재 김씨 아들의 나이는 38살. 모 대학 교양수업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21살 되던 때부터 대학동기와 6년을 사귀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애인이 변심해 결국 혼자가 됐다. 김씨는 일찍 들어오는 아들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김씨는 “생전에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먼저 죽을 것 같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른여덟 아들 장가 가서 손자 안는 꿈” 경기도 안산의 최정규(58)씨는 귀농이 꿈이다. 간판업을 하는 최씨는 도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며 “어서 시골로 내려가 과일도 재배하고 강아지도 기르면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는 도시에서 살면서 삭막한 인심 때문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바쁜 생활에 여유가 없고 경기침체까지 겹쳐 도시 생활은 죽은 삶”이라면서 “척박한 도시에서 벗어나 남은 삶은 농촌에서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이종철(63)씨는 다소 엉뚱한 꿈을 갖고 있다. 바로 ‘군대’다. 그는 군대에 대한 아스라한 감정을 품고 산다.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이씨는 가난했던 시절,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러다보니 학교는 고사하고 군대도 가지 못했다. 요즘이야 군대를 기피하는 게 문제지만, 당시만 해도 군대를 가지 못하는 사람은 남자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평생 농부로 살아 병역관련 서류를 작성할 일이 없었다고 해도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움츠러들었다. 이씨는 “아들만큼은 반드시 직업 군인을 시키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딸도 가능하면 여군을 시키겠다는 말도 안되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이씨는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어렸을 때 사고로 눈을 다친 아들은 병역 면제 대상이었다. 딸을 군대에 보내는 것도 물론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가는 군대를 왜 우리 가족만 대를 이어 가지 못하는 건가.’라는 탄식 아닌 탄식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씨를 위로해 준 건 최근 해병대에 간 조카 아들이다. 첫 정기휴가를 나와서 해병대식 까까머리에 제복을 입고 조카가 큰집에 인사를 온 날, 이씨의 가슴은 뭉클했다. 그는 “비록 조카이지만 대리만족이 됐다.”면서 “늠름한 모습에 절로 뿌듯해지더라.”고 좋아했다. ●“과일 키우고 강아지 기르는 전원생활의 꿈” 인천의 송향자(52·여)씨는 ‘향기로운’ 소망을 갖고 있다. 공무원인 남편이 은퇴하면 함께 시골에 내려가 꽃 농사를 짓는 것이 꿈이다. 송씨가 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료하던 차에 문화센터 꽃꽂이 수업을 들었다. 여느 여성처럼 꽃을 좋아하긴 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던 터라 취미생활로 배우다 꽃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송씨는 요즘 영흥도에 사 놓은 조그마한 텃밭에 채소를 심어 주말농장을 꾸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꽃 농사를 짓고 싶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꽃 농사를 지어 꽃을 주위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기 위해 대학에서 운영하는 사회교육원의 관련 수업도 봐 뒀다. 송씨는 “꽃으로 심리 치료도 한다던데 그 분야를 배워 보고 싶다.”면서 “언젠간 그 꿈을 꼭 이루겠다.”고 말했다. ●“몇년 후 내 이름 쓰여진 시집 내는 꿈” 경남 마산의 안정선(59·여)씨는 여고 시절 동네에서 알아주던 ‘문학소녀’였다.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안씨의 마음을 끈 것은 ‘시’였다. 20대 때까지는 가끔 습작으로 시를 짓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도 틈틈이 시를 읽었다. 그는 “남편과 싸울 때도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안씨는 첫째 딸이 결혼한 해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유명한 시인을 사사했다.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또래 주부들이 그룹으로 모여서 했기 때문에 더욱 몰입됐다. 제시어를 주고 시를 쓰는 수업은 안씨가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시와 함께 살고 싶던 문학소녀 안씨의 마지막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등단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집을 낼 생각이다. 안씨는 “시를 같이 배우는 주부들끼리 습작 시집을 내고 그 몇 년 후엔 진짜 내 이름을 박은 시집을 낼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영준 이민영기자 apple@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대통령 WSJ 기고문에 네티즌 “생색내지 마” 성인오락실은 경찰 비리창고 박진영 ‘이혼’ 홈피에 밝힌 이유 은행 대출금리의 두얼굴 1캐럿 다이아 소유 검찰총장은 애처가?
  • [어린이 책꽂이]

    ●장난꾸러기 숫자(안네 살렘 글·키아라 카레르 그림, 류재화 옮김, 토마토하우스 펴냄) 둥둥 오리를 보면 생각나는 숫자는?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이 숫자는 뭘까? 미끄럼틀이 됐다가 목마도 되고 선풍기도 되는 숫자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장난꾸러기. 영유아들에게 1부터 10까지 수 개념을 재미있게 터득시킬 수 있는 책. ‘장난꾸러기 알파벳’도 함께 나와 있다. 9500원.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케이트 디카밀로 글·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 우아한 도자기 토끼 인형 에드워드. 주인 애빌린이 베푸는 사랑을 당연하다는 듯 거만하게 받고만 산다. 어느날 사고로 애빌린의 손을 떠나 거친 세상 속으로 던져진다. 늙은 어부 내외, 방랑자, 어린 고아 남매 등 다양한 인생살이를 경험하면서 오만했던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타인을 진정으로 감싸안는 사랑을 배우게 된다.1만 1000원. ●나는 걷기대장 쫑이(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달리 펴냄) 산책을 좋아하는 꼬마 소녀 쫑이. 걷다 보니 맛있는 문어빵 가게도 나오고, 조용한 숲도 나오고, 예쁜 꽃밭도 나오고. 그런데 꿈이라도 꾼 걸가? 문어빵 가게 아저씨 얼굴이 문어로 보이고, 숲속의 나무들이 춤을 추고, 고래 대신 올챙이가 바다에서 춤을 추네. 호기심 왕성, 상상력 풍부한 쫑이에게 똑같은 나날은 없다. 8500원. ●왕따 선생님 구출 작전(김하늬 글·허구 그림, 채우리 펴냄) 4학년 원두는 출산 휴가를 떠난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새로 온 선생님이 ‘왕따’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어른 세계에도 왕따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원두는 선생님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사실 원두도 한때 왕따였다. 선생님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매만지게 된 원두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던 친구 명국이까지 보듬으며 한뼘 더 자라게 된다. 8500원. ●할머니, 어디 가요? 쑥 뜯으러 간다!(조혜란 글·그림, 보리 펴냄)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는 쑥, 쌉쌀한 엄나무 순, 고불고불 고사리. 세 가지 봄나물에 얽힌 손녀 옥이와 할머니의 향긋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 옥이 예쁜 옥이, 쫀득쫀득 쑥개떡 향긋한 쑥개떡 해 주려고 쑥 뜯으러 간다!” 할머니 광주리에는 봄나물도 한가득, 손녀 사랑도 한가득이다. 정겨운 농촌, 인심 후한 시골 장터 풍경 등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 1만 1000원.
  • 충남 방과 후 영어학교 큰 성과

    충남 방과 후 영어학교 큰 성과

    “‘방과후 영어’ 때문에 시골 학교로 전학왔어요.” 충남도가 도내 초등학교에서 무료로 실시 중인 ‘방과후 영어학교’가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2007년 도에서 기획, 일선 시·군과 교육청을 통해 관련 예산을 지원하면서 국내 최초로 도입됐다. ●읍·면지역 학원 원어민 교사 거의 없어충남도는 지난해 12월 도내 372개 읍·면 초등학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른 학교에서 금산군 군북초 14명 등 11개 시골 학교로 모두 60명의 학생이 전학온 것으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도 교육협력계 김성호 담당 직원은 “주로 읍지역 학생이 인근 면지역 시골 학교로 전학이나 이사를 왔다.”면서 “특정 방과후 영어학교의 원어민 교사에 대해 ‘(영어를) 잘 가르친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학교를 옮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면지역 시골 학교는 전교생이 30명 이하인 학교가 많아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교육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보통 읍지역에 학원이 있기는 하지만 원어민 영어교사가 있는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에는 학원이 아예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있다 하더라도 학원비가 비싸 학부모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 도가 읍·면 초등학교에 방과후 영어학교를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북초 이상돈(57) 교장은 “남아공 출신 원어민 영어교사가 잘 가르친다는 소문에 금산읍내에서 많이 전학을 왔고, 대전에서도 2~3명이 왔다.”면서 “별도로 영어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좋은 성과를 나타내 학생들이 무척 만족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어권 7개국 한정 강사자격 엄격 도는 첫해 30명을 배치한 원어민 교사를 지난해 100명으로 늘렸고, 올해는 171명으로 확대한다. 모두 읍·면 초등학교에 배치된다. 원어민 교사는 주당 22시간 영어를 가르친다. 한주에 학생당 2시간 이상 영어를 배우고 있다. 원어민 교사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원어민 교사 선발대상 국가는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 7개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자격은 학사학위 이상자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총각에서 은퇴 교육자까지 다양하게 선발되고 있다. 김 담당직원은 “원어민 영어교사 1인당 연간 5000만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다.”면서 “테솔(전문 영어교사 과정) 이수자와 재계약자는 연봉이 높다.”고 설명했다. 원어민 교사는 5단계로 분류돼 210만원에서 많게는 260만원까지 월급이 지급되고 있다. 집도 구해준다. 매년 8, 12월 2차례 성과평가를 통해 재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중국 건국 60년과 북한의 변화

    [정종욱 월드포커스] 중국 건국 60년과 북한의 변화

    기차 한 대가 힘차게 베이징 역으로 들어오더니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멈춰 섰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평생 처음 도시 구경에 나선 시골 사람들처럼 모두들 들떠 있었다. 옷차림도 촌사람들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맨 먼저 내렸고 주더(朱德)와 류사오치(劉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가 그 뒤를 따랐다.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렇게 베이징에 입성했다. 1949년 3월25일이었다. 만 60년 전 오늘의 일이다. 중국이 걸어온 지난 60년의 역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마오의 권력의지와 과욕 때문에 국내 정치는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소련과 전면전쟁 일보 전까지 가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결국 마오가 죽고 덩샤오핑(鄧小平)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덩은 집단의 울타리 속에 강제 수용되어 있던 개인을 해방시켰고 국가 권력을 시장에 대폭 넘겨주었다. 바다에 몸을 던지듯(下海·하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도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엄청난 대박이었다. 그게 지난 60년 중국이 걸어온 역사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물이 빠지면 돌이 드러난다(水落石出·수락석출)는 말처럼 풀어가야 할 엄청난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이 이 도전들을 과연 풀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풀어갈지를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이다. 핵문제 해결만 해도 그렇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중국이 제시하는 해법에는 언제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이 꼬리표가 바로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이 믿는 피난처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현실로 나타난다 해도 중국이 이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지난 60년 동안 중국이 쌓아온 모든 게 일시에 무너져 내린다. 북한에 관한 골치 아픈 문제는 그냥 내버려 둔다(求同存異·구동존이)는 입장을 중국이 그토록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입장은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것은 우리도 반대한다. 핵 문제 해결과 전쟁 중에서 하나를 택할 경우 우리의 선택은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이런 우리의 약점을 악용한다 해도 우리에겐 대안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1년 전에 한·중 정상이 합의한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북한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변화는 김정일 후기 체제의 등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관심은 이것이 북한 내부에서 통제 불능의 정치 불안으로 이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 후기 체제가 보다 개혁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핵이나 미사일을 앞세운 강성대국과 같은 시대착오적 통치 이념을 고집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한반도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금년은 중국이 북한과 수교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국은 금년을 우호의 해로 지정하고 많은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김영일 북한 총리의 중국 방문이 있었고, 10월쯤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도 예상된다. 우리의 바람은 30년 전 중국에서 마오의 시대가 끝나고 덩샤오핑의 시대가 개막되었던 것처럼, 북한에서도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금년의 북·중 우호의 해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종욱 전 서울대 교수·외교안보 수석
  •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시각장애인들은 올록볼록한 6개의 점을 사용해 읽고 씁니다. 그들은 매끈한 종이 위에 잉크로 쓴 글자를 묵자(墨字)라고 부릅니다. 맹인들에겐 이 묵자야말로 침묵하는 글자, 보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점자에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맹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종이 위에 솟은 점들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손때와 땀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개의 점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들의 열손가락을 따라가 봤습니다. ‘도도도독’ ‘탁탁탁’ ‘톡, 톡’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3학년1반 교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다. 오전 10시10분, 2교시 영어수업이 한창이다. 오늘은 음식 이름을 영어로 적고 발음해 보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검은 점판과 뾰족한 점필을 꺼내 알파벳을 찍기 시작했다. 시선은 책상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점판에 종이를 끼운 다음 아이들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점을 찍어 나간다. 읽을 때는 종이를 뒤집어 볼록하게 튀어나온 점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더듬어 읽는다. 최성문 교사가 “로스트 비프. r, o, a…f. ‘구운 쇠고기’라고 한글 뜻도 써보세요.”라고 말한다. 빠른 속도로 점필을 놀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윤이(9)는 머뭇거리기 일쑤다. 지윤이가 “f가 몇 번이었지?”라고 혼잣말을 하자, 옆에 있던 준성(8)이가 냉큼 “1, 2, 4!”라고 알려준다. 6점의 위치번호를 가르쳐 준 것. 지윤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프레시 피시(fresh fish)’에서도 알파벳을 까먹은 지윤이는 “h는 몇 번이야.”라고 묻는다. 준성이는 “1, 2, 5”라고 소리쳐 답해 준다. ●머리 희끗한 60대 정용설씨 주경야독 7살 때 뇌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지윤이는 맹학교에 1년 늦게 입학했다. 다른 아이보다 점자를 늦게 익힌 탓에 실력이 반 친구들에 비해 처지는 편이다. 지윤이는 “점자를 처음 배울 때는 ‘아야어여’ 모음이 어려웠어요. 시험을 많이 보면서 괜찮아졌는데 영어 점자는 또 다르니까 헷갈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60대 노인과 30대 남성이 더듬더듬 점자책을 읽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 시력을 잃은 중도실명자들을 위한 직업재활학급이다. 점자는 물론 침구, 안마 등의 과목을 2년간 이수한 뒤 직업안마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서민택(36)씨와 정용설(60)씨는 이달 초 한빛맹학교에 입학했다. 2005년 각막혼탁 판정을 받고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서씨는 “5년 전부터 혼자 책을 보면서 점자를 조금씩 배웠어요. 손끝의 감각을 익혀 보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네요.”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서씨의 꿈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정안인(正眼人·비시각장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굳이 점자를 익히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은 없어요. 하지만 맹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점자와 안마업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용설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체력검사를 하는데 100m 달리기 결승지점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단다. 그 후로 시력이 차츰 나빠져 중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점자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던 정씨는 나이가 들자 공부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2007년 성북복지관에서 처음 점자를 접하게 됐다. 정씨는 “점자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긴 한데 나같이 손에 감각 없는 늙은이한테는 어려워. 젊은 애들이 한 달 걸려 읽을 책을 우리는 석 달 동안 읽어야 해.”라고 말했다. 푸념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뭉툭하게 닳아버린 몽당연필 같은 손가락 끝으로 일본어 교과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묵자도서 워드파일 입력후 점자로 번역 지윤이와 정용설씨가 보는 점자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국점자도서관을 찾아가 궁금증을 풀었다. 1969년 세워진 도서관은 점자도서를 제작하고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달 30~40권의 책이 제작에 들어간다. 첫 단계는 4층 자료입력실에서 이뤄진다. 입력봉사자들이 묵자도서의 내용을 일일이 키보드로 쳐서 워드파일로 저장한다. 보통 한 명이 한 권을 입력하는 데 1~6개월이 걸린다. 입력된 파일은 점역 소프트웨어를 통해 1초 만에 점자로 번역된다. 점역교정사가 점자 맞춤법에 맞게 교정을 보고 나면 제판 단계로 넘어간다. 1층 인쇄실에서 알루미늄 판에 기계로 점자를 새긴다. 판 사이에 종이를 끼운 뒤 롤러로 밀어 요철을 만든다. 그 종이를 모아서 제본하면 한 권의 점자책이 완성된다. 한 권을 만드는 데 최소 4~6개월이 걸린다. 지난해 8월 출간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올 2월에 완성됐다.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11월에 출간됐지만 현재 자료 입력 중이다. 6~7월은 돼야 점자책으로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6개월 늦게 신간을 받아보는 셈이다. ●박경리의 ‘토지’ 무려 99권 차지수 정보서비스 팀장은 “일반 묵자책 1권이 점자책 3~4권으로 불어난다.”고 말했다.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풀어쓰기 때문에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많지 않다. 일반도서 30쪽 분량이 점자도서 150쪽에 육박한다.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은 10권이지만 점자책으로는 총 60권 분량이다. 총 21권인 박경리의 ‘토지’는 무려 99권에 달한다. 따라서 점자책이 부피가 크고 무거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가볍다. 가벼운 백상지를 쓰기 때문에 책 한 권이 120g에 불과하다. 점자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도 쓰인다. 한빛맹학교 3층에 있는 관악합주실은 매주 수·금요일이면 아름다운 악기소리로 가득 찬다. 40명의 시각장애인 학생단원으로 구성된 ‘한빛 브라스앙상블’의 연습날이기 때문이다. 김용복 감독의 지휘로 단원들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OST 음반을 연주했다. 팀파니, 큰북 등으로 구성된 타악기 파트와 트럼펫, 트럼본, 튜바 등의 관악기 파트가 감미롭고 조화로운 연주를 보여 줬다. 멜로디를 담당하는 ‘퍼스트 트럼펫’ 노종훈(18)군의 연주는 단연 돋보였다. 노군은 맨 앞줄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며 악기를 불었다. 트럼펫 소리는 청아했다. 중1 때 음악을 시작한 노군은 트럼펫에 흥미와 소질을 보이면서 올해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 진학했다. 고3 때 점자 악보를 접하면서 그의 연주가 확 달라졌다. 이전에는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음을 무작정 외워야 했다. 그러나 5선보와 음표 등을 6점으로 표기한 점자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악보에 적힌 표현기법을 고스란히 살려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노군은 “소리에 깊이가 묻어나기 시작했어요. 악보에 드러난 작곡가의 의도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악보 읽는 게 서툰 그는 매주 3시간 음악점자 수업을 듣는다. 노군은 “음악교사가 되어 시각장애인은 물론 정안인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악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빛맹학교에서 음악이론 강의를 맡은 이명신(40) 강사는 “악보는 음악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도구입니다. 글을 모르고 문학에 대해 말할 수 없듯이 악보를 모르면 음악을 안다고 하기 어렵지요. 특히 맹인 음악가에게 점자악보는 자신의 음악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길이 돼줍니다.”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루이 브라유, 세계 최초 6점체계 창안… 송암 박두성,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반포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1824년 세계 최초로 6점 체계의 점자를 만들어 보급한 ‘점자의 아버지’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1926년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은 ‘맹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린다. 루이 브라유는 1809년 프랑스 파리 인근의 시골마을 쿠브레에서 태어났다. 브라유는 세 살 때 마구 제작자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송곳으로 왼쪽 눈을 찔렸다. 이 사고로 오른쪽 눈도 감염돼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파리왕립맹학교에 들어간 브라유는 12살 때 바르비에 장교가 군사용으로 고안한 12개의 점자를 접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송곳을 이용해 6개 점자를 창안했다. 6점 체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한번에 모든 점의 위치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브라유는 직접 만든 점자가 채택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43세 때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인 브라유(braille)는 ‘점자’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 맹인들에게 빛을 가져다 준 송암 박두성은 188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에 들어가 시각장애인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일본어 점자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두성은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0년 점자 연구에 착수했다. 1926년 조선어 점자연구회를 조직하고 ‘훈맹정음’을 창안, 반포했다. 박두성은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가 ‘맹인의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한결같이 맹인교육에 헌신했던 박두성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올해로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는 1월4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송암이 훈맹정음을 반포한 11월4일은 ‘점자의 날’로 기려지고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토속어를 되살리자” 美인디언 운동 확산

    “카쿠!(Kaku)”, “무카!(Mooka)”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한 시골 고등학교. 주문을 외우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교실 밖으로 새어나온다. 이곳은 바로 미 인디언 종족 코만치족의 국어시간이다. 이들은 사멸 위기의 ‘코만치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카쿠’는 외할머니를, ‘무카’는 나무를 뜻한다.미국 인디언들이 토속어를 되살리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말판 옵서버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러한 운동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어(死語)를 되살리는 모습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나 있는 일로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디언들의 언어 살리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와이오밍 주의 인디언 종족 아라파호족은 자신들의 토속어를 정규과목으로 지정해 배우고 있다. 코만치족은 토속어 사전을 제작하고 민요를 음반으로 제작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하지만 인디언 자체가 소수인 상황에서 언어 살리기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한 것이 현실이다. 코만치 언어문화보존위원회 로널드 레드 엘크 대표는 “언어는 우리에게 정체성의 문제이며 전통 문화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면서 “코만치어가 없다면 코만치족도 없다.”고 말했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16년간 문맹 퇴치 美모텐슨 ‘파키스탄 민권운동상’

    “남자 아이 한 명을 가르치면 한 ‘사람’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만 여자 아이 한 명 가르치면 한 ‘공동체’를 가르치는 것이 된다.” 미국의 인도주의자 그레그 모텐슨(51)은 이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았다고 했다. 교육받은 여성이 많을수록 영아 사망률이 크게 감소하고 급격한 인구 증가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팔을 걷어 붙였다. 무려 16년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맹률 퇴치에 앞장섰고 이제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모텐슨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파키스탄 최고 권위의 민권운동상인 시타라-에-파키스탄(파키스탄의 별)상을 수상하게 됐다. 아시아넷은 22일 “모텐슨이 지난 16년 동안 시골 소녀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교육에 헌신한 공로로 파키스탄 최고 권위의 민권운동상인 시타라 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상을 받은 외국인은 지금까지 모두 3명뿐이다. 모텐슨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시골 구석구석에 78개 학교를 세웠다. 교육의 기회가 전무했던 2만 2000여명의 여자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그의 명성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농촌지역의 살아 있는 영웅이 됐다. 미국인임에도 불구, 부족장 등 현지인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도 얻었다. “무지는 곧 증오를 조장한다. 교육을 통해 여성의 문맹을 퇴치하는 것이 바로 평화의 중심 통로다.”는 그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그는 1996년 파키스탄에서 8일간 무장 괴한들에 납치됐다 살아나기도 했다. 친(親) 이슬람적 행보에 미 중앙정보국(CIA)의 수사를 받았으며 무슬림 어린이들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같은 미국인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도 그의 철학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모텐슨은 수상에 대해 “보잘것없는 일에 비해 너무나 큰 영광”이라면서도 “이런 명예는 어려움에도 불구, 교육을 통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교사 및 학생 그리고 선량한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비영리 단체인 중앙아시아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며 29개국에서 출판된 국제적 베스트 셀러 ‘세 잔의 차(Three Cups of Tea)’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길섶에서] 난/조명환 논설위원

    어릴 때 시골집 앞마당에는 자생 난초가 수두룩했다. 맨드라미 칸나 작약 등과 함께 난초도 꾸밈없이 섞여 있었다. 속잎이 잘 돋아나 미끈했다. 집 뒤에 대밭이 무성해서 어른들이 마실이라도 간 밤이면 바람에 댓잎 서걱이는 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멀리 갈 것도 없이 화단 난초에 실례를 한 기억도 있다. 서양 난은 너무 까다롭다. 온도며 습도, 햇빛까지 맞춰야 하니 까탈스럽다고나 할까. 어느 것 하나 조금만 모자라거나 넘쳐도 금세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이상 조짐이 보인다. 난이 잘 자랄 정도면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보면 될까. 어릴 때부터 난을 가까이 해온 한 친구는 아파트에 ‘난원’을 만들었다. 겨울철이면 온도를 맞추려고 온풍기도 가동한다. 얼마 전 다른 친구가 양란을 생일선물로 보내 왔다. 보내준 정성을 생각해 한번 키워 보기로 했다. 광화문 네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창가에 두고 물 주는 것부터 열심히 챙기고 있다. 벌써 이상하다. 친구 생각이 부족한 탓인가. 조명환 논설위원 river@seoul.co.kr
  • 연기파 되고 싶어? 스릴러 제작사에 연락해~

    연기파 되고 싶어? 스릴러 제작사에 연락해~

    ‘스타가 되고 싶어? 개그맨 한민관에게 연락해! 연기파가 되고 싶어? 스릴러 제작사에 연락해!’ 스릴러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 받으며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배우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주목 받았던 배우들을 꼽는다면 박희순과 하정우를 빼놓을 수 없다. 박희순은 2007년 개봉한 영화 ‘세븐데이즈’에서 비리 형사 성열 역을 맡아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2008년 각종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하정우는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희대의 살인마 연기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등극했다. 이들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쌓아온 연기 내공을 스릴러에 한껏 쏟아 그들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올해도 문성근이 스릴러 영화 ‘실종’의 연쇄살인마로 변신해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 한다.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가족’ ‘남극일기’ ‘귀여워’ 등 많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은 박희순은 유괴된 딸을 찾아 나선 변호사 지연(김윤진)의 7일간 사투를 다룬 스릴러 영화 ‘세븐데이즈’에서 지연을 도와주는 형사 성열 역으로 대중에게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뿐만 아니라 청룡영화제,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입증 받았다. 이후 한국 영화계가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지난 2월 개봉한 ‘작전’을 비롯, ‘십억’ ‘우리 집에 왜 왔니’ 등 다수의 영화에 캐스팅돼 열연 중인 박희순은 스릴러 ‘세븐데이즈’를 통해 자신의 숨은 진가를 발휘해 관객에게 인정받은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또 2008년 5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스릴러 ‘추격자’는 김윤석과 하정우를 단번에 톱배우의 대열에 합류시켰다. 특히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 ‘두번째 사랑’ 등 영화와 ‘프라하의 연인’ ‘히트’ 등 드라마에서 보여준 다양한 캐릭터를 넘어 ‘추격자’에서 지영민 역을 맡아 섬뜩한 표정과 눈빛으로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연쇄살인마 연기를 해내며 연기파 배우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영화 ‘국가대표’ ‘러브픽션’ ‘보트’에 연이어 출연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정우 역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 작품은 스릴러물인 ‘추격자’였던 것. 박희순, 하정우와 같이 스릴러를 통해 좀더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올해의 배우를 꼽으라면 지난해부터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문성근을 들 수 있다. ‘실종’에서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촌부지만 내면에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뿜어져 나오는 연쇄살인마 판곤으로 분했다. 지성파 배우로 인정 받고 있는 문성근은 특유의 냉정하고 정돈된 말투와 반듯한 이미지로 어떤 배역을 맡아도 지적인 엘리트 느낌이 강했으나 이번 영화 ‘실종’에서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의 본능을 지닌 절대 악인 연쇄살인마 판곤으로 변신,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시영, ‘초딩시절’ 생활기록부 공개

    이시영, ‘초딩시절’ 생활기록부 공개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탤런트 이시영이 “어린 시절 맨발로 뛰어다니며 개구리, 메뚜기를 잡아먹고 다녔다.”고 깜짝 고백했다. 이시영은 17일 방송되는 KBS 2TV ‘상상플러스’녹화에 참여해 “9살 때까지 충청도 청원에서 자랐다.”고 밝히며 못말리는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공개했다. “시골 마을에 살다보니 신발을 신고 다닌 기억이 없다.”는 이시영은 “밥 대신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작은 뱀까지 잡았다.”고 말해 출연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이시영은 “딱 세 가지 동작이면 뱀 한 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 있었다.”고 비법을 전해 출연자들을 놀라게 했다. 함께 출연했던 김서형 역시 “강원도 출신”이라고 고백하며 “어렸을 때 메뚜기를 잡아먹는 건 다반사였고 서리를 하다가 도망간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시영의 거침없는 입담은 17일 오후 11시 5분 방송되는 KBS 2TV ‘상상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 = 그룹에이트)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입학사정관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하) 혼돈에 빠진 고교현장

    일선 고교 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201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확대되면서부터다. 일선 교사들은 대체로 교과 성적만이 아니라 잠재력·소질·창의성으로 신입생을 뽑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말만 넘치고 구체적인 게 하나도 없다.”며 사정의 기준 제시와 속도조절을 당부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은 16일 “좋은 단어는 다 갖다 붙이지만 정작 뭘 기준으로 어떻게 뽑겠다는 건지는 하나도 공개된 게 없다.”면서 “제대로 된 입학사정관제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지난해 합격한 학생들의 자료와 기준만이라도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B고교 3학년 김모(48) 교사는 “입시의 가장 큰 흐름은 수능 강화인데 그러면 고교 교육이 거기에 맞춰 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면서 “한편으로는 점수 경쟁을 심화시키는 입시안을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론에 가까운 입시안을 내놓으면 우리로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 J여고 3학년 담임 김모(51) 교사도 “수능 점수제로 교실이 1점 더 따기 위해 살벌한데 아이들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무슨 수로 키우란 말이냐.”고 했다. 대구 동신고 진학담당 교사는 “시골 애들로서는 수능을 잘 봐 대학에 가는 것인데 토익 토플 점수를 요구하면 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예산을 배정한 뒤 해야 한다.”며 “이런 상태로는 학원으로 가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일선 학교에서 준비할 시간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고교간 상호불신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서울 G고등학교 성모(39) 교사는 “대학들이 외곽 지역 고교의 내신을 불신하는데 비교과 영역을 아무리 충실히 평가해도 대학에서 우리를 믿어 주느냐.”면서 “대학은 고교의 평가내용을 믿고 고교도 대학이 취지대로 사정관제를 진행할 거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외고 3학년 강모(39) 교사는 “현행 학교장 추천은 특별한 내용이나 형식이 없다.”며 “사정관제에 적합하도록 학생의 장점, 성장배경, 학업태도, 봉사활동 등이 추천내용에 들어가야 할 텐데 교장이 이를 알기는 힘든 만큼 담임 및 일반교사들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규 박성국기자 nada@seoul.co.kr
  • [열린세상]‘마지막 자막’ 보기/최창일 시인

    [열린세상]‘마지막 자막’ 보기/최창일 시인

    1970년대만 해도 시골길은 포장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비 온 뒤에 마을 황톳길은 무릎까지 빠질 만큼 질척거렸다. 당시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비 온 뒤 비포장 길은 사람들의 걸음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비를 피해 가려고 종종걸음을 해야 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만은 예외였다. 교장 선생님은 지역의 큰어른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여름 소낙비가 와도 뛰는 법이 없다. “어! 비가 많이 온다. 어! 비가 많이 온다.” 하면서도 천천히 걸었다. 모두가 뛴 걸음으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도 교장 선생님은 평상시 걸음으로 빗속을 걸어가셨다. 마을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의 점잖은 걸음걸이를 곧잘 흉내내며 기품 있는 어른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다. 느림의 미학에 관한 책들이 독자의 관심 속에 자리잡는 요즘이지만 필자가 중학교 시절일 때 일로중학 교장 선생님은 느림의 미학을 실천했다. 하지만 이런 느림의 미학에 대한 관심을 영화관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관객은 마음이 무척 바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오면서 조명이 켜지면, 관객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나 극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출입구를 향하여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영화의 엔딩크레디트는 계속 올라간다. 엔딩크레디트는 영화의 후일담이나 반전, 예고편이나 NG 장면 따위를 넣어 영화의 재미와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한다. 영화를 만드느라 수고한 사람들, 제작에 협조한 기관들도 소개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냉담하다. 만든 사람과 제작과정의 에피소드는 관심 밖이다. 물론 엔딩크레디트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보고 안 보고는 각자의 취향이다. 하지만 수십억 또는 백억대를 투자하여 만든 영화가 감동으로 다가왔다면 마지막 제작과정의 에피소드나 주제 음악의 묘미를 즐기는 것도 영화 관람의 포인트 중 하나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지 않으면 관람료가 아까운 작품이 많다. 청룽이 나오는 영화는 엔딩크레디트를 보아야 본전을 뽑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화가 끝나고서 작품의 주요 소재를 보여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해리 포터’의 마니아층이 두터운 때문인지 영화가 끝나고도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는 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어느 시인은 ‘태백산맥’의 마지막 자막을 본 뒤로는 자막 보기 마니아가 되었다고 한다. 이념관계를 다룬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면은 죽은 자를 위하여 굿을 하여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촬영의 중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엔딩크레디트의 마지막 자막은 보는 이들의 머리끝을 쭈뼛하게 하는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이 굿은 산자를 위한 굿이다.”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는 것쯤으로 위로를 받고 일어서는 관객들에게 극적 반전을 맛보게 한다. 루어낚시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자막도 큰 감동을 준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와 관계자는 영화를 만들며 한 그루의 나무와 풀도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막의 힘은 자연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어떠한 설득보다 호소력 크게 다가선다. 이미 오래된 영화로 내용은 가물가물할지라도 마지막 한 줄의 강렬한 자막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요즘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았다면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광고 문구도 있다. 느림의 미학이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제작방식이 달라지면 되지 않을까. 마지막 자막이 영화 도입부로 오는 방법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시작이 루즈해질 수 있다는 염려도 있겠지만 감독의 번뜩이는 센스가, 이끌어주는 힘이 된다면 어려운 과제도 아니다. 최창일 시인
  • [엄마와 읽는 동화] 새싹 같은 기쁨이 뾰족뾰족/송재찬

    [엄마와 읽는 동화] 새싹 같은 기쁨이 뾰족뾰족/송재찬

    단비네는 서울 생활을 전부 정리하고 엄마, 아빠 고향인 산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가 다닌 초등학교야.” 엄마를 따라간 ‘돌마당 초등학교’는 나무가 많고 운동장이 넓었지만 단비는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서울 학교가 그리웠어요.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시무룩한 단비는 돌마당 초등학교 2학년 1반이 되었습니다. “엄마 우리 반은 모두 열두 명밖에 안돼. 내가 다니던 학교 한 분단밖에 안돼. 정말 시시해.” “열두 명? 단비는 정말 좋겠다. 나도 그런 학교 다녔음 좋겠다. 아빠랑 엄마가 다닐 때만 해도 서른 명쯤 되었는데. 단비야, 너무 속상해하지마. 엄마도 너처럼 2학년 때 이리로 이사 왔는데 여기서 아빠랑 만나 결혼도 했어. 너도 곧 여기가 좋아질 거야. 훌륭한 친구들도 만날 거고.” 단비는 속이 상해 울고 싶은데 엄마는 환한 얼굴입니다. 이사하길 너무 잘했다고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얼굴입니다. 단비는 그런 엄마 때문에 또 속이 상했어요. “좋긴 뭐가 좋아요. 너무 작아서 진짜 학교가 아니고 장난감 학교 같은데. 애들도 다 그래. 맘에 드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 “어쩜 엄마가 전학 왔을 때랑 똑같은 소릴 하니? 나도 너처럼 투덜거렸는데 김영철씨 만나고 나서 학교가 좋아졌어. 너도 곧 이 학교가 좋아질 거야.” 김영철씨란 단비 아빠입니다. “엄마, 엄마가 여기 이사올 때 2학년이었어? 아빠는?” “아빠도 2학년. 아빤 2학년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했어. 노래도 잘하고.” “그래서 아빠랑 결혼했어?” “2학년 땐 그 생각을 못했는데 그냥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결혼까지 하게 됐어.” 단비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네 반 남자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2학년 1반 열 두 명 중에 남자는 여섯 명입니다. “엄마, 우리 반에 있는 남자 아이들은 아빠처럼 멋진 아이가 하나도 없어.” “전학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런 소리를 해. 나도 아빠가 멋진 사람인 걸 한참 후에야 알았어.”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 아는 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럼. 어떤 사람이 훌륭한지 아닌지 알려면 1년도 걸리고 10년도 걸려. 너희 반에도 분명 훌륭한 친구가 있을 거야. 눈여겨서 잘 찾아 봐.” “열 두 명밖에 없는데 훌륭한 친구가 어디 있어. 이런 산골에 훌륭한 친구가 있을 리 없어.” 그래도 단비는 이튿날부터 자기네 반 친구들을 한 사람씩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훌륭한 친구는 눈에 띄지 않았어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도 없는 것 같았고 아빠처럼 키가 크고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도 없는 것 같았어요. 단비는 새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3월 중순이 지나자 차갑던 바람은 훈훈해졌습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봄이 더 일찍 오고 있다고 했어요. 단비네 반 아이들은 교재원으로 꽃씨를 뿌리러 갔습니다. 아이들은 몇 없는데 교재원의 꽃밭은 작은 운동장처럼 넓어요. “자 여기다가 여러분의 꽃밭을 만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여러 가지 꽃씨를 많이 준비했으니까 필요한 만큼 가져다 뿌리세요. 먼저 호미로 땅을 파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세요.”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 앞에는 여러 가지 꽃씨 바구니와 호미 같은 농기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이들 수만큼 꽃밭을 갈라 아이들 이름이 적힌 팻말까지 미리 꽂아 놓았습니다. “내 꽃밭은 여기!” “내 꽃밭은 여기다! 난 뒤쪽이니까 키 큰 해바라기 씨앗을 뿌릴 거야.” “내가 제일 앞쪽이네. 그럼 키 작은 채송화를 뿌려야지.” 아이들은 큰 선물이라도 받은 아이들처럼 환한 얼굴로 선생님이 준비해 놓은 호미를 가져다가 땅을 정성껏 팠습니다. 모두들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게 땅을 팠어요. 단비는 그런 아이들을 따라 호미를 들고 ‘김단비’라고 써 있는 꽃밭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호미를 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단비에게 파도쳐 온 것 같았어요. “단비야, 너 꽃밭 처음 가꾸지?” 단비 꽃밭 옆에서 땅을 파던 창섭이가 벙긋 웃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단비가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단비 꽃밭을 호미로 벅벅 긁었습니다. “이렇게 땅을 파 주어야 땅이 부드러워져서 식물이 잘 자라.” 창섭이는 마치 어른처럼 땅을 척척 팠습니다. 단비도 창섭이를 따라 같이 땅을 팠어요. “재미있다.” 단비와 창섭이는 단숨에 땅을 일구고 흙덩이까지 잘게 부순 다음 편편하게 골랐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단비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습니다. “단비야, 넌 여기다 무슨 씨앗 뿌릴 거야?” 창섭이는 마치 선생님처럼 물었습니다. “난 잘 몰라. 뭐, 뭐가 있는데?” 단비는 세상에 태어나 흙을 파고 꽃씨를 심는 게 처음입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꽃씨는 여러 가지인데 여기가 꽃밭 중간쯤이잖아. 그러니까 맨드라미하고 백일홍 심으면 어떨까? 백일홍은 여름부터 꽃을 볼 수 있고 맨드라미는 가을에 피는데 서리가 내릴 때까지 볼 수 있어. 우리 학교 맨드라미는 꽃이 크고 예뻐. 선생님이 준비한 꽃씨들은 다 여기서 거두어 들인 건데 작년에 정말 예뻤어. 난 여기다 봉숭아 심을 거야.” “봉숭아도 있어? 내가 봉숭아 심을게. 야호! 손톱에 물들여야겠다.” “그럴래? 그럼 내가 백일홍 심을게. 넌 처음이니까 봉숭아하고 맨드라미 심어.” 봉숭아라는 소리에 단비는 힘이 났어요. 시골 친척네서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아이들을 보고 부러워했었습니다. 단비는 더 열심히 땅을 팠어요. 교실에서는 말도 잘 안 하고 책도 더듬더듬 읽는 창섭이지만 꽃밭에 나오자 전혀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단비는 솔직히 창섭이가 좀 모자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창섭아, 넌 꽃 박사 같다. 꽃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 단비는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꽃 박사는 무슨. 우리 아빠가 꽃을 좋아해서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아는 편이야. 자 다 되었다. 선생님께 가서 꽃씨 받아 와.” “니 꽃밭은 아직 다 못 팠잖아.” “괜찮아. 혼자서도 금방 할 수 있어.” “아냐. 같이 하자. 땅도 같이 파고 씨앗도 같이 심고.” “그럴까?” 단비와 창섭이는 꽃밭을 같이 일구고 씨앗도 같이 뿌렸습니다. 단비 입가에 자꾸 웃음이 걸렸습니다. “다 끝낸 사람은 비닐하우스도 만들어 주세요!”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작은 이불만 한 비닐 한 장씩을 허리춤에서 쓱쓱 뽑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건 또 뭐니?” 비닐을 받고 나서 단비가 묻자 창섭이는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봄이지만 또 갑자기 기온이 내려갈지 모르고 쥐들이 돌아다니며 꽃씨를 파 먹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비닐로 덮어두는 거야. 식물들의 포근한 집이야.” 창섭이는 이번에도 단비 비닐하우스부터 만들어 주고 나서 자기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 되었어. 단비야, 이제부터 날마다 니 꽃밭을 들여다 봐. 꽃씨들도 주인이 관심을 가져주면 더 빨리, 더 튼튼하게 솟아나온대.” “알았어. 니 꽃밭도 날마다 들여다 봐 줄게.” 단비는 갑자기 시골 학교가 좋아졌어요. 집에 가서도 창섭이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았습니다. 그날 밤 단비는 여러 가지 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새 학교 새 교실 아이들 열 두 명이 모두 꽃밭에서 같이 놀았습니다. 서먹서먹하던 아이들과도 모두 신나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단비는 이튿날부터 날마다 꽃밭에 나가 작은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단비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등교하자마자 비닐하우스에 들러 싹이 텄는지 들여다보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꽃밭 출입을 하는 동안 단비는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꽃씨는 싹을 틔우지 않았습니다. 단비는 그만 시들해졌어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싹이 나오지 않자 비닐하우스에 가는 게 재미가 없어 졌어요. 발길을 뚝 끊고 말았습니다. 봄비가 이틀이나 내리고 개나리가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비가 그치자 봄바람은 더욱 훈훈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단비는 등교하자마자 교재원으로 발을 돌렸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누가 교재원에서 부르는 것 같았어요. 자기 비닐하우스가 가까워지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단비는 급하게 자기 이름이 붙은 비닐하우스 곁으로 가서 허리를 굽혔어요. “어머!” 빨간 기운이 도는 새싹과 연둣빛 작은 새싹이 힘차게 땅을 뚫고 올라 온 게 보였습니다. “났다, 났어! 새싹이 났어.” 단비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머리만 얌전히 내민 것도 있고 두 잎을 두 손처럼 벌린 새싹도 있습니다. ‘빨간 새싹은 맨드라미일까? 봉숭아일까?’ 난쟁이들이 쓰는 조그만 연필심 같은, 빨간 싹이 뾰족뾰족 귀엽습니다. 단비는 그처럼 아름답고 귀한 것을 처음 봅니다. 서울에서 보았던 어떤 장난감보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습니다. 창섭이 비닐하우스도 야단이 났습니다. 작고 귀여운 것들이 앞 다투며 흙을 뚫고 나왔습니다. “창섭아!” 단비는 교실로 냅다 뛰었습니다. 온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온몸에서 새싹 같은 기쁨이 뾰족뾰족 돋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의 말 해마다 봄이 오면 아이들과 꽃씨를 뿌린다. 아이들은 새싹을 보며 기쁨과 희망을 한꺼번에 찾아낸다. 공을 차는 아이, 책을 읽는 아이도 아름답지만 꽃을 가꾸는 아이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작년 가을 학교 꽃밭에서 거두어들인 꽃씨를 꺼내며 즐거웠던 새봄을 동화로 써 보았다.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 아동문학상, 소천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수상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 ‘돌아온 진돗개 백구’, ‘주인없는 구두 가게’, ‘노래하며 우는 새’, ‘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 ‘하얀 야생마’, ‘아버지가 숨어사는 푸른 기와집’, ‘나는 독수리 솔롱고스’, ‘비밀족보’, ‘우리 다시 만날 때’,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등의 작품집이 있음. ▲현재 서울신묵초등학교 교사
  • [특파원 칼럼]美의 좋은 교사 만들기/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美의 좋은 교사 만들기/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미 교육의 국제경쟁력 회복을 선언했다. ‘요람에서 직업을 가질 때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차고 ‘비싼’ 교육 개혁 청사진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교육개혁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통해 21세기를 다시 한번 미국의 세기로 만들기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다.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고 제2, 제3의 오바마를 가능케 하는 해답이자 미국인들에게 던지는 비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0일 워싱턴 시내 전미히스패닉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제시한 교육개혁 5개 방안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교사의 역할에 대한 대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미래는 선생님들에게 달려 있다.”고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피부색이나 부모의 경제력이 아니라 바로 학생들 앞에 서 있는 교사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교실에서 찾으라고 권했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고 싶으면 능력을 교육에 바치라고 호소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에게는 이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교사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대신 노력하지 않는 교사들은 과감히 교실에서 퇴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근속연수에 따라 연봉수준이 정해지고 정년이 보장됐던 교사들에게는 경제가 좋지 않아 불안하던 터에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교육개혁 연설을 들으면서 낯익은 얼굴이 겹쳐졌다. 워싱턴DC 교육감으로 워싱턴 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미셸 리이다. 지난해 11월 대선 직전 워싱턴 시내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리 교육감은 교사의 중요성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그는 코넬대 졸업 후 볼티모어의 초등학교에서 3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학업능력을 향상시키고, 배움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역할은 부모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영향을 미치는 교사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때문에 능력있고 노력하는 교사들에게는 이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교사노조의 반발로 성과급제 도입이 난관에 부딪혔지만 학생들을 위해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 교육감의 인생 목표는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비영리단체인 ‘미국을 위한 교육(Teach for America, TFA)’과의 만남을 통해 바뀌었다. TFA는 시골이나 도심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학교들에서 2년간 적은 보수를 받고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평화봉사단과 성격이 비슷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 및 봉사와 일맥상통한다. TFA는 현재 회장인 웬디 코프가 프린스턴 대학 4학년 때 졸업 논문에서 주장했던 아이디어를 주위 도움을 받아 1990년 500명의 교사 지원자들로 시작, 20년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2만명이 TFA 프로그램에 참여해 300만명 가까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들 가운데 3분의1가량이 학교에 남아 교육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또 다른 3분의1이 교육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경제사정 때문인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의 ‘부름’ 때문인지, 올해 TFA 지원자가 작년보다 42%나 늘었다고 한다.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며 교직에 경쟁과 보상논리를 도입하려는 리 교육감의 교육개혁을 미국 교육계가 주시하고 있다면, 세계는 오바마 대통령의 교육개혁이 성공할지 주목하고 있다. 교육개혁에 시동을 건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kmkim@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오후 11시10분) 강원도 철원군, 북한과 DMZ를 사이에 둔 그곳에 ‘허락받은 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바로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100일간 남북 군사 대치의 정점에 있는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GOP 부대’와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마을’의 일상을 생생하게 방송한다. ●KBS 스페셜(KBS1 오후 8시) 오로지 ‘참선(參禪)’을 위해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선승’이라 부른다. 승려이기 전에 평범한 한 인간이었던 그들. 무엇이 그들을 이곳, 백담사로 이끈 것일까? 약 1년간 백담사 기본선원에 머문 사미승들과 법랍 20년 이상의 무문관 중진스님들의 일상, 그리고 선(禪) 수행의 전 과정을 공개한다. ●싱싱 일요일(KBS2 오전 7시40분) 오늘의 1촌, 서천 마량리의 얕은 바닷물과 깨끗한 뻘에서 자란 주꾸미는 충청남도에서 최상품으로 친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주꾸미 축제를 앞두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1촌을 위해 ‘충청체신청 서천 우체국’이 달려간다. 1사1촌의 정이 넘쳐나는 현장이 ‘농촌사랑운동본부’에서 공개된다.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KBS2 오후 11시20분) 알고 보면 진지한 남자 김수로. 알고 보면 재미있는 남자 엄기준. 무대에 섰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배우 김수로, 엄기준. 묵은지같이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사랑 받는 두 배우가 연극무대에서 만났다. 김수로가 연극을 위해 와인으로 엄기준을 유혹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 된다.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아코디언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공연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는 한 아코디언 예술단. 평균 연령 일흔 살의 어르신들이 그 주인공이다. 술이 아닌 낭만에 취하기 위해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 연주단. 야무진 포부만큼이나 열정도 대단하다. 아코디언 연주단의 신명나는 음악이야기를 ‘찾아라 시니어스타!’에서 만나본다. ●희망풍경(EBS 오전 6시) 김천 시골마을의 어느 야산, 오늘도 어김없이 한 부부가 나타났다. 유난히 눈에 띄는 독특한 광경이 있었으니, 앞장서서 걷는 부인과 뒤따르는 남편을 이어주는 삽 한 자루. 앞뒤로 삽을 붙잡고 가는 그들은 바로 시각장애인 남편을 이끌며 칡을 캐러 산을 오른다는 김천의 소문난 잉꼬부부 이봉식, 조미주씨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전세계 14억명의 사람들이 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발한 기술을 이용해 부족한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곳도 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의 놀이시설을 이용해 펌프의 동력을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동력으로 펌프질을 해서 마을 주민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물을 사용할 수 있다.
  • 영화 ‘실종’ 문성근 “강호순과 상관없다”

    영화 ‘실종’ 문성근 “강호순과 상관없다”

     ”강호순과 영화 ‘실종’을 연관시키지 말아달라”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실종’의 감독 김성홍씨와 배우 문성근씨는 12일 작품과 강호순 사건과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기자 대상 시사회에서 “시나리오는 2년 전에 완성됐고 촬영이 끝난 다음에 강호순 사건이 터졌다.”고 밝혔다.  영화는 평범하게 보이는 시골마을 촌부인 ‘판곤’이 알고 보면 연쇄살인마라는 내용을 끔찍하게 그려낸다.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아 주위에서 효자 소리까지 듣던 인물의 내면엔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죽이는 ‘추악한 얼굴’이 숨어있다는 줄거리다.  지난 1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호순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다.  영화가 실제 사건과 비슷해 또다른 모방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 감독은 “모방 범죄란 영화속 캐릭터가 멋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판곤은 추악하고 비열한 캐릭터로 모방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고는 영화 ‘양들의 침묵’ 등 예를 들며 “살인마를 매력있게 미화한 영화들에 언제나 분노와 반감을 느꼈다.”며 “범죄자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멋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성근씨도 “영화 편집과정에서 강호순 사건이 일어나 범죄와는 상관없다.”며 “사이코 패스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뽑아서 인물을 창조해냈기 때문에 실제 사건과 어느 정도 닮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영화속의 역할에 대해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조금이라도 미화되는 일은 피해야한다고 감독과 약속했다.”고 전했다.  문씨 외에 추자현,전세홍 등이 출연하는 이번 영화는 오는 19일 개봉된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영상 / 인터넷서울신문 김상인VJ bowwow@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저소득 실업자 40만가구에 월83만원 온난화에 까치도 한국 뜨는구나 “민노총 무조건 남탓… 자기성찰 해야” [여의도 블로그]10년만에 부활한 ‘각하’ 美치과의사 패가망신 이끈 엉큼한 버릇 WBC 본선 1조 시계 ‘0’ 또 자살?…트로트가수 이창용 자택서 목매
  • [新 귀거래사] 진안 귀농센터 사무국장 최태영씨

    [新 귀거래사] 진안 귀농센터 사무국장 최태영씨

    산 좋고 물 좋은 전북 진안군이 ‘귀농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진안군이 귀농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도시민 유치정책 때문이다. 진안군이 추진하는 ‘사람 냄새 나는 마을 만들기’가 성공적 귀농정책으로 자리잡았다. 귀농·귀촌인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면서 상생·화합하는 프로그램, 농촌 빈집체험 등 전국 최초로 도입한 10여가지 시책은 귀농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안군 전체 귀농자의 40%가 지역 연고가 없는 사람인 점만 봐도 귀농인들의 호감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통 금융인 출신…99년 퇴직 후 귀농준비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진안군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최태영(59) 사무국장은 귀농의 모든 궁금증을 알려주는 ‘해결사’로 통한다. 최씨는 진안군과 전혀 연고가 없는 이방인. 그 역시 오랜 방황과 고민, 준비 끝에 진안군에 정착한 귀농인이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1969년 대구상고 졸업과 동시에 외환은행 을지로 지점에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퇴직할 때까지 30년 동안 외환은행 본사와 대구지점장, 외환카드 전산부장 등을 역임한 정통 금융인. 외환은행의 전산화를 이끈 주역이다. 1999년 퇴직과 함께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3년까지 명상수련 지도자를 하면서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희미한 답을 얻게 됐다. ‘깨달음’을 사회에 펼칠 곳은 시골이라는 점에 착안해 2004년부터 귀농준비에 돌입했다. 3년여 동안 텃밭을 가꾸며 흙과 친해지려 노력했고, 마음에 드는 제2의 고향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2007년 4월 진안군을 방문한 최씨는 군청 귀농 담당자와 만나 1시간여의 상담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귀농을 결심했다. 최씨가 진안 정착을 결심한 동기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진안군만 운영하는 ‘마을간사’ 제도. 마을간사는 군청에서 매월 100만원 정도를 받고 마을 사무, 회계, 홈페이지 관리 등 봉사업무를 맡아 하는 제도다. ●빈집 빌리고 재활용품으로 살림꾸려 정착비 최소화 그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안천면의 조그만 산간 마을 빈집을 공짜로 빌려 살림을 꾸렸다. 1년여 동안 마을간사를 하며 농촌생활을 익힌 그는 지난해 4월부터 군청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사무국장직을 맡게 됐다. 집도 성수면 도통리로 옮겼다. 15평 정도 되는 작은 통나무집에서 1년생 진돗개 ‘차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시골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은 중고품이나 남이 버린 폐품을 재활용해 정착비용을 최소화했다. 냉장고는 중고시장에서 3만원에 사왔고, 오디오는 15년 넘게 사용하던 것이다. ●“귀농 꿈 아냐…과거 경력·학식 등은 버려야” 최씨가 하는 일은 귀농·귀촌 희망자들에게 1차적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농사는 물론 정신적, 소프트웨어적 지원을 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동병상련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같이 1년여 동안 수천건의 귀농귀촌 상담을 해주고 귀농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귀농전문가가 됐다. “귀농 상담자는 전원생활 희망자, 열렬한 자연주의자, 도시생활 실패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농은 꿈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실생활이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골에 내려와 자신의 과거 경력과 학식을 앞세우는 ‘먹물티’를 벗지 못하면 ‘왕따’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그동안 상담을 통해 얻은 자료를 토대로 ‘시골살이 시작전 고려해야 할 10가지 원칙’을 마련해 귀농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면서 “현대에 살면서도 옛 사람이라 생각했고 도시에 살면서도 시골사람이라 생각했던 철학대로 살아가는 삶이 마냥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사진 진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최태영 사무국장의 귀농 팁 10가지 1. 배필을 찾듯 귀농지를 선정하라. 2. 당장 도시농업부터 시작하라. 3. 욕심은 금물, 작게 시작하라. 4. 불편함은 여유로 받아들여라. 5. 자녀교육을 진지하게 감안하라. 6. 이웃과의 함께하는 관계를 가져라. 7. 가족과 협의해 동의를 얻어라. 8. 처음엔 남의 땅과 집을 빌려 살아 보라. 9. 소득이 되는 소일거리 찾아라. 10. 도시의 생활기반을 완전히 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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