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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사진 올릴 때마다 340만원 버는 여성…그의 비결

    SNS사진 올릴 때마다 340만원 버는 여성…그의 비결

    뉴질랜드 시골내기 출신으로 호주에서 활동하는 로산나 아클(28)은 소셜미디어(SNS)의 스타다. 팔로워가 300만 명을 훌쩍 넘긴다. 로산나가 금발을 찰랑거리면서 내뿜는 고혹적 매력 앞에 사람들은 찬사와 환호를 내놓기 바쁘다. 당연히 인기와 수입은 정비례한다. 그는 그의 SNS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을 올릴 때마다 평균 3000달러(약 340만원)씩을 번다. 9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호주 골드코스트불레틴을 인용해 로산나가 어떻게 팔로워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었는지, 막대한 수입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비결을 공개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떻게 팔로잉을 늘리는지 몰랐고, 그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해 꾸준히 찍고 SNS에 올렸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로산나는 호주로 건너온 뒤 운좋게 호주의 한 TV 리얼리티 쇼프로그램에 출연해 뉴질랜드 출신으로서 호주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여성으로서 삶을 덤덤히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리고, 거기에서 SNS 스타로 대성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SNS에서의 성공은 호주 골드 코스트에서 내집을 장만한다는 오랜 꿈을 이루게 해줬다"면서 "또한 원할 때면 언제든 뉴질랜드 집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여유로움까지 안겨줬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몇 가지 성공 비결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고급 디지털 카메라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찍은 사진을 SNS에 적절한 시간에 맞춤형으로 올릴 수 있는 와이파이 비용의 투자도 필요하다. 특히 그는 사진을 올리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후 6시 30분~오후 9시, 혹은 아침 이른 시간이 팔로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시간대라는 것이다. 또한 팔로워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팔로워들이 자주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것은 사진의 현재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그곳에 있음을 바로바로 응답해줄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로산나는 팔로워들이야말로 현재 그의 막대한 수입의 배경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얼마를 벌 수 있느냐는 팔로워들에게 달려 있다"고 감사함을 나타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대중음악 ●봄에 내리는 젠틀레인-피크닉 재즈 인 스프링 서덕원(드럼), 송지훈(피아노), 김호철(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재즈 트리오의 공연. 2004년 데뷔한 젠틀레인은 서정적이고 편안한 선율로 재즈는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일본 재즈 디바 그레이스 마야와 함께 로맨틱 피크닉 무대를 꾸린다. 15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3만 3000~5만 5000원. (02)337-3103.●김완선 콘서트 ‘오늘밤’, ‘리듬 속의 그 춤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원조 댄싱 퀸 김완선이 데뷔 30주년을 맞아 준비한 단독 공연이다. 김완선의 단독 공연은 1990년 이후 무려 27년 만이다. 콘서트에 맞춰 신곡 ‘잇츠 유’(It’s You)을 포함해 그간의 히트곡들로 꽉 채운 기념 앨범도 발표한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9만 9000~11만 원. (070)7740-5344. 연극·뮤지컬●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의 대표 레퍼토리 작품으로 사뮈엘 베케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 시골길 나무 아래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연 기간에 2층 갤러리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에서 의상과 소품, 임영웅 연출의 연출 노트 등 관련 기록물을 무료로 전시한다. 5월 7일까지.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 3만원. (02)334-5915. ●뮤지컬 ‘판’ 19세기 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양반가 자제인 ‘달수’가 염정소설과 정치 풍자에 능한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신인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선보이는 작품으로, CJ문화재단 첫 제작지원 창작뮤지컬이다.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CJ아지트 대학로. 3만~5만원. (02)3454-1401. 전시●‘이야기 있는/없는 그림’ 서사구조를 만들어 연출하고, 그 감정 상태를 화면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세 작가의 그룹전. 권순영은 상징이 부유하는 정물을, 우정수는 시공간을 박제하는 바로크 시대의 꽃을, 전현선(작품)은 격자무늬에 감정 없는 사물을 담은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인다.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옥인동 갤러리 룩스. ●오정미 초대전 ‘화훼본색-오해된 시선’이라는 주제로 화사한 꽃의 형상을 빌려 길게 과장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비틀어 놓음으로써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해 받아들이는 사회현상을 짚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 갤러리 아띠. (02)3445-6182. 클래식·무용●세종 파이프오르간 시리즈 Ⅹ 세종문화회관이 해마다 열고 있는 ‘악기의 제왕’ 파이프오르간 공연이다. 올해 10번째 공연은 핀란드 오르가니스트 칼레비 키비니에미가 장식한다. 시벨리우스의 ‘축제풍 안단테’, 리스트의 ‘연습곡’,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등을 연주한다. 15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9만원. (02)399-1624. ●련, 다시 피는 꽃 삼국시대 설화 ‘도미부인’과 제주 서사무가 ‘이공본풀이’를 조합해 창작한 전통 무용극. 가상의 조선 왕실을 배경으로 무희 ‘서련’의 사랑과 시련, 역경 속에서 자신의 뜻을 지켜 나가는 절개를 표현한다. 제례 의식 때 공연된 의식 무용인 ‘일무’와 나라의 태평성대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한 춤 ‘태평무’ 등 한국 전통춤의 진수를 담았다. 10월 29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극장. 4만~6만원. (02)751-1500.
  • 한국 근현대 조각 주역 4인, 동지애로 꽃피운 예술혼

    한국 근현대 조각 주역 4인, 동지애로 꽃피운 예술혼

    1940년대 후반부터 성북구 거주 사제·선후배 인연… 창작에 몰두 조각·드로잉·영상 자료 함께 전시 ‘송영수 아틀리에’ 29일 처음 공개근현대기,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서울 성북동에 둥지를 틀고 왕래하며 예술적 인연을 이어 간 경우가 많았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우두 김광균, 운보 김기창, 수화 김환기, 근원 김용준, 만해 한용운, 이산 김광섭 등. 성북동은 종로통에서 멀지 않은 데다 너른 바위가 있고 시내가 흘러 시골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자연 속에서 편안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추상조각 선구자… 수채화도 그려 한국 근현대 조각사를 이끌어 온 조각가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최만린 4인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에 걸쳐 성북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 작가는 타계할 때까지 각자의 삶의 터전이자 예술 터전인 성북동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나갔다. 작가 최만린은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북구 정릉동 아틀리에에 거주하며 한국 현대 조각의 정체성을 이어 가고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봄 기획전 ‘성북의 조각가들’은 스승과 제자로, 선배와 후배로, 또는 예술적 교감을 나눈 동지로 한 시대를 공유했던 이들 4인의 작품세계와 인연을 조명하고 있다. 네 작가의 조각과 드로잉 54점과 사진, 영상 자료들이 전시된다. 김종영(1915~1982)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이자 1세대 조각가인 동시에 평생을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였다. 그는 1948년부터 삼선동에 거주했다가 피난 후 삼선동 언덕 위에 양옥집을 지어 이사했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그곳에서 작업했다. 나무와 돌의 물성을 드러내는 추상 작업을 주로 제작했으며, 당시 아틀리에 풍경을 드로잉과 스케치로 남겨 놓았다. 김종영의 많은 제자들이 스승을 따라 성북동에 예술적 둥지를 틀었다. 자연의 정수를 추상화한 김종영의 조각 외에 집에서 내려다본 서정적인 분위기의 수채화 ‘마을 풍경’이 눈길을 잡아끈다.●철조조각 개척… 재료 나무·석고로 확장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서 김종영의 가르침을 받은 송영수(1930~1970)는 스승을 따라왔다. 한국 철조(용접)조각의 선구자로 철판과 동판, 스테인리스를 용접하거나 나무, 석고, 테라코타 등 다양한 재료로 추상적인 경향의 작품세계를 확장시켰던 그는 1965년 성북동에 집을 직접 지어 마당에서 작업했다. 작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까지도 당시 제작했던 조각 작품들이 집안 곳곳과 마당에 보존돼 있다. 역시 김종영의 제자이자 송영수의 2년 후배인 최만린(82)은 삼선교 전셋집 시절을 거쳐 1965년 정릉동에 집을 짓고, 이후 근처 집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는 집 옆에 마련한 작은 아틀리에에서 생명의 근원적 형태를 형상화한 추상조각을 제작하며 추상조각의 맥을 이어 가고 있다.●구상·추상 접점 한국 리얼리즘 조각 선도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을 선도했던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해방 이후 월남해 가족과 함께 성북동에 정착했다가 1948년 일본으로 유학했다. 1959년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 언덕에 직접 지은 집과 아틀리에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의 접점에서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한 그는 1973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자취가 남은 아틀리에는 유족이 기증해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있다. 권진규가 동선동 작업실을 찾아온 최만린에게 선물한 소녀 두상 조각 1점도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최만린에게 준 소녀 두상은 최초 공개 최만린 작가는 “전쟁 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예술을 한다는 동지애 때문이었는지 서로 아끼고 격려했다”면서 “세월이 흐른 뒤 이렇게 전시를 해 놓고 보니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8일까지.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29일과 5월 13일에 성북 지역에 위치한 조각가 아틀리에 및 미술관을 탐방하는 ‘예술을 담은 집’도 진행된다. 송영수 작가의 아틀리에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뱀/고영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뱀/고영민

    뱀/고영민 보이는 것이 짧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길다 뱀은 배로 기며 나아가는데, 움직임이 매끄럽고 깜짝 놀랄 만큼 재바르다. 영산홍 필 무렵 풀 무성한 시골 마당에 봄의 전령처럼 뱀이 나타났다. 나는 이 구불구불한 영혼을 반겼다. 반가움과 서글픔이 반반 섞인 연민으로 이 손님을 대한 것은 저나 나나 다 외로운 생명인 까닭이다. 뱀은 기독교 설화에서 인류에게 원죄를 지우고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원인을 만든 볼썽사나운 악의 존재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뱀을 싫어하고 기피한다. 시인은 원죄로 낙인찍힌 채 따돌림을 당해온 뱀을 달리 본다. 남들이 다 보는 ‘길다’는 특징 말고 또 다른 측면을 보는 것이다. 시인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측면을 분별하며 그것의 기묘한 비대칭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보이는 것이 짧으면 보이지 않는 것은 길다. 그게 어디 뱀뿐이겠는가! 조금 드러났다고 그 뒤에 숨은 더 큰 죄악의 몸통이 다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은 1975년 월간문학에 시 ‘심야’로 등단했습니다. 시 쓰는 일과 평론을 겸하고 있으며 최근 ‘사랑에 대하여’ ‘가만히 혼자 있고 싶은 오후’ 등을 펴냈습니다.
  • [주말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40분) 매화 향 가득한 섬진강 꽃길이 펼쳐지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인 하동은 매년 봄이면 매화와 벚꽃으로 꽃 잔치가 열린다. 특히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는 19번 국도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평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따뜻하고 정겨운 이야기가 넘치는 길 위에서 만난 하동 행복버스 72시간을 따라가 봤다. 300개가 넘는 마을을 이어 주며 시골 어르신들의 발이 돼 주는 하동 행복버스는 주민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자 사랑방 역할을 도맡고 있다. 또한 관광객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주민들에게는 삶을 이어 주는 소중한 존재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주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의 일부분이 되는 시골 버스 안에 담긴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MBC 토요일 밤 10시) 형섭(김창완)은 성준(이태환)에게 현우(김재원)를 따라 떠나라고 말하고, 가족들은 집에 쳐들어온 사채업자들을 보고 성훈(이승준)이 사채까지 썼음을 알게 된다. 한편 동희(김은빈)는 미주(이슬비) 방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보게 된다. ■K팝스타 6 더 라스트 찬스(SBS 일요일 밤 9시 15분) 최종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경연이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생방송으로 펼쳐진다. 지난주 세미 파이널을 통해 확정된 동갑내기 듀오 보이프렌드(김종섭, 박현진)와 3인조 걸그룹 퀸즈(크리샤츄, 김소희, 김혜림)가 최종 우승자가 되기 위한 대결을 펼친다.
  • 중국 농장서 도주한 타조, 쫓기다가 그만…

    중국 농장서 도주한 타조, 쫓기다가 그만…

    타조 농장서 탈출한 타조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중국 광동성 샨웨이의 한 시골 도로에서 농장서 도주한 타조와의 추격전이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2m에 달하는 타조가 긴 다리를 이용해 샨웨이의 도로를 따라 도망치고 농장 일꾼들은 오토바이를 타며 타조를 뒤쫓았다. 앞서던 타조가 잡힐세라 도로를 가로질러 들판으로 점프한 순간 발을 헛디뎌 땅에 고꾸라졌다. 결국 타조는 생포돼 농장으로 돌아갔다. 타조는 다 자란 수컷이 키 2.5m, 몸무게 155kg 정도며 평균 시속 65km로 달릴 수 있다. 보통 5~50마리가 무리 지어 살며 위험에 처한 경우 발차기를 하는 습성이 있다.(참고: 다음 백과사전) 사진·영상= People‘s Daily, China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씨줄날줄] 경부선이 바꾼 조치원의 모습/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부선이 바꾼 조치원의 모습/서동철 논설위원

    충남도청이 있던 공주에는 경부선 철도에 얽힌 속설이 있다. 유생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철도는 대전으로 갔고, 그 결과 도시 발전이 뒤진 것은 물론 도청소재지 지위마저 빼앗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부선 부설의 역사를 보면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발간된 ‘철도도시 조치원의 역사와 장시’를 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국립민속박물관은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집중 탐구하는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을 2007년부터 펼치고 있다. 지난해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다양한 현지 학술 조사를 벌였고 ‘철도도시 조치원?’도 그 보고서의 하나다. 70가구 남짓한 시골마을이 철도 부설로 어떻게 상업 중심지로 떠올랐는지 흥미진진한 역사를 담았다. 인류학자 오석민과 이도정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부선 철도는 1901년 8월 20일 서울 영등포에서 남쪽으로, 같은 해 9월 21일 부산 초량에서 북쪽으로 부설을 시작했다.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어 1905년 1월 1일 정식 개통됐다. 철도 부설을 위한 답사는 1892년 8월 시작했는데 이후 다양한 노선이 제시됐다. 애초에는 충주-안동-의성-경주-울산, 충주-문경-상주-대구-밀양, 청주-영동-금산-성주-현풍-창원-김해를 각각 경유하는 동·중·서로(東·中·西路) 3개 안이 있었다. 첫 번째 답사에서 부산-부산진-삼랑진-밀양-대구-상주-문의-청주-서울 노선이 제안됐다. 1894-1895년 두 번째 답사에서는 앞의 제안을 따르되 급경사 산악지대인 상주-청주 구간 대신 추풍령을 넘는 노선이 도출됐다. 1898년 세번째 답사에서 수원-진위-둔포-전의-공주-은진-진산-금산-영동-대구를 경유하는 노선이 나온다. 일본인들은 토지가 비옥하고 인구가 조밀한 이 ‘조선의 보고(寶庫)’로 철도가 지나면 경제적 이익이 매우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1900년 실측 결과 천안-조치원-부강-신탄진-회덕-대전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최종 결정된다. 공주를 포함한 경제 거점을 이으려 했지만, 지형이 험한 데다 우회 거리도 길었기 때문이다. 조치원은 일거에 국내는 물론 해외 물산의 집산지로 부상한다. 1920년대 조치원에서 충주를 잇는 충북선이 개통되면서 교통의 거점으로 위상은 더욱 강화됐다. 지역 발전에 미친 철도의 위력을 확인하자 공주 사람들도 유치에 적극 나섰다. 공주에서는 1926년 조치원-공주-청양-부여-보령 노선으로 경부선과 장항선에 잇자는 모임이 열렸다. 공주시민회는 1932년에도 조치원에서 공주를 거쳐 장항선 판교역을 연결하는 조판철도 부설운동을 펼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이호철이 ‘盧 힘드니 덮자’고 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민정수석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돈(아들 건호씨의 장인)인 배병렬씨의 음주 교통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6일 제기됐다. 이날 문화일보는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A 전 행정관의 인터뷰를 인용해 “당시 이호철 민정1비서관이 ‘덮자’고 했고, 청와대 내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이 비서관이 ‘노무현 대통령이 힘들어지니 이번만 덮고 가자’고 설득했다고 들었다”고 보도했다. A씨는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 사돈 배씨 음주 사고의 전모를 민정수석실이 사고 당일 파악했다”며 “사안의 심각성으로 비춰 볼 때 배씨 음주 사고 내용이 즉각 문 수석에게 보고됐고 문 수석이 99% 알았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A씨는 이후 민정수석실의 후속 조치와 관련해 “오모 행정관이 피해자 임모씨를 두 번이나 만나 무마하고 회유를 시도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이날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사돈의 사고라 하더라도 시골에서 일어난 사람이 다치지 않은 사고였고 당사자 간 합의로 끝났다는데, 거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2003년 당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지금 처음 문제 제기되는 게 아니라 2006년에 이미 다뤄졌던 사안”이라며 “그게 윗선까지 보고되지 않고 동향 파악하는 정도로 넘어갔다가 2006년에 그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엄정하게 원칙대로 처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도 “문화일보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 관련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文 “盧대통령 사돈 사고, 합의로 끝나…사고 당시 사실 알지 못해”

    文 “盧대통령 사돈 사고, 합의로 끝나…사고 당시 사실 알지 못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6일 “대통령 사돈의 사고더라도 시골에서 일어나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당사자 간 합의로 끝났다는데, 거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2003년 사고 당시에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이날 전남 광양의 광양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돈의 음주 교통사고 논란과 관련해 이같이 말한 뒤 “2006년에 그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엄정하게 원칙대로 처리된 것”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는 “기본적으로 지금 처음 문제 제기되는 게 아니라 2006년에 이미 다뤄졌던 문제”라며 “대변인의 정리된 발표나 당시의 언론보도를 봐주시면 경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광양제철소를 방문한 데 대해선 문 후보는 “광양제철소 제1고로는 세계에서 용량이 가장 크고 효율성도 가장 높은 세계 최고의 용광로로,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온 제철소이자 광양경제를 뒷받침하는 기둥이고 전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아주 크다”며 “우리 경제가 경제위기를 극복해내려면 제조 강국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단순히 제조업에 더 역점을 둬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4차 산업혁명의 혁신과 결합한다면 제조업이 다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면서 대한민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

    “칠십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전라도의 시골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데가 많았다.(중략) 상차림에도 격식이 있어서 칠첩반상이 기본이었다. 밥과 국에 김치 한두 가지, 찌개나 찜이 나오고 첩에 들지 않는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등이 있고 숙채, 생채, 조림, 구이, 전유어, 회, 마른반찬의 일곱 가지가 칠첩이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입담이 센 작가 중의 하나로, 흔히 ‘황구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황석영(74)의 산문집, ‘황석영의 밥도둑’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전라도 음식을 소개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거의 벚꽃보다 더 화려하게 입담이 만개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온다. TV를 틀면 채널마다 맛집, 음식 프로그램이 넘치는 이 즈음 누구나 자기네 맛이 정통이라고 부르는 우리네 음식의 원형은 어떨까? 음식 문화는 결코 먹거리만 따로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역사와 지리, 풍속과 기질 등이 어우러져야 나오는 하나의 창작물이다. 바로 정통 남도 먹거리 문화의 원형과 뿌리를 다른 민속자료들과 더불어 제대로 살필 수 있는 곳이 있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이다. 전남대학교에서 영산강으로 가는 길에 중외공원이 있고, 이 주변에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 광주시립미술관과 더불어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 있다. 우선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은 자리 잡음이 처음부터 넉넉하고, 전시품 하나하나는 가볍지 않고 성실하다. 남도 문화의 중심축인 광주에 터를 닦은 박물관이다 보니, 한눈에 보아도 녹록치 않은 관록과 만만치 않는 단단함을 지닌 숨겨진 고수의 풍내를 던진다. 사실 박물관 방문은 그리 마음 자연히 끌리는 방문지는 아니다. 종종 헛걸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더더구나 소장품이나 전시품이 박물관의 기본도 되지 않는 졸렬함을 드러낼 때는 입에서 쓴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로 이런 의구심을 한 번에 던져 버릴 수 있는 곳이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다.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은 1963년 5월에 광주공원 내 도립광주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이 시기에 수많은 매장문화재의 임시 보관처로 지정이 되어 지역 출토 매장문화재를 관리하였으니 박물관 시작부터 기본기가 탄탄하였다. 이후 1964년 4월에 광주시립박물관으로 개칭이 되었고, 1978년 10월에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하던 유물을 인계하였다.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라는 이름은 1987년 11월 기존의 광주시립박물관을 흡수통합하면서 부르게 되었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로 건축 연면적이 2119평(상설전시실 768평, 기획전시실 311평)에 달하는 규모있는 박물관이다. 전시품은 주로 전라남도 민속문화와 관련된 자료들로 실물자료와 복제자료, 전시자료만 1만 2000 여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박물관이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은 현재 1층 전시관, 2층 전시관, 야외 전시관으로 나누어 많은 남도의 유물과 민속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우선 1층 전시관에는 남도 문화의 전반적인 삶의 기반을 볼 수 있는 촌락, 주생활, 식생활, 의생활, 농업, 수렵, 강천어업, 민속공예 등의 실물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좀더 실제 모습에 가깝게 전시하기 위해 실물, 모형, 마네킹, 미니어쳐, 디오라마 등 다양한 전시기법을 이용하여 방문객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특히 1층에는 남도 먹거리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모형으로 제작되어 있어 관람객의 가장 많은 인기를 끈다. 광주 애저찜, 송정 떡갈비, 흑산도 홍어회 등 광주 향토 음식을 포함하여 각종 젓갈류, 김치, 탕, 생선, 나물, 국, 술, 떡, 차 등의 다양한 먹거리들이 전시되어 있어 남도 음식문화의 본류를 알게 한다. 2층의 경우 한 사람의 일생을 중심 주제로 하여 민속놀이, 세시풍속, 민간신앙 등을 전시하여 남도의 민속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출생, 성장, 교육, 과거, 혼례, 세시풍속, 민간신앙, 남도음악, 상, 장례문화, 사회문화 등이 관람 동선 방향에 따라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8대의 비디오테크를 설치하여 9개의 테마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디스크에 수록된 테마는 진도씻김굿, 생촌당산제, 대포리갯제, 강강술래, 영광농악, 고싸움놀이, 함평농요, 혼례, 상례 등이다 이외에도 야외전시실에는 물레방앗간, 연자방앗간, 태실을 비롯한 갖가지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드넓은 잔디 위에서 편안한 관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광주를 방문한다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이 전라도 여행 중이라면 꼭! 2. 누구와 함께? -가족 3. 가는 방법은? -시내버스 : 송정29, 문흥48, 상무63/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 (용봉동) 4. 감탄하는 점은? -민속박물관으로는 첫손 꼽히는 풍부한 자료와 전시품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비엔날레만큼 유명해져도 될 만한 정도의 수준. 6. 꼭 봐야할 전시품은? -정지(鄭池·1347~1391) 장군의 철편 갑옷, 민속놀이 기구들, 음식 모형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국밥 ‘나주식당’(224-6943), ‘영미오리탕’(527-0248), ‘송정 떡갈비 1호점’(944-1439), ‘양동통닭’(364-5410), 애호박찌개 ‘명화식육식당’(943-7760), 김치찌개 ‘강진식육식당’(526-6733)/ 지역번호 (062)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gjfm.gwangju.go.kr/main.do?site=gjf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광주 국립박물관, 시립민술관, 비엔날레 전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민속이라는 명칭은 결코 촌스러움이 아니라 예스런 전통을 뜻한다. 우리 민족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길섶에서] 트라우마/최용규 논설위원

    중국과 수교한 이듬해 상하이 공항은 우리네 시골 공항. 방풍림에 갇힌 편도 2차선 공항고속도로(?)를 한 30분쯤 달렸을까. 붉고 노란 간판 속에 숨어 있는 호텔 식당 문에 들어서자마자 질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익숙하지 않은 음과 멜로디를 타고 콧속에 빨려드는 그놈의 향(香). 속은 뒤집히고 머릿속은 하얗고, ‘멘붕’이다. 큼직한 요리 접시에 생선이며 뭐며 수없이 올라왔지만 숟가락 드는 게 겁이 났다. 난징은 어땠나. 흰죽을 안주 삼아 백주로 허기를 달래고, 중?일 합작 구이린(桂林)의 호텔의 아무 맛 없는 질긴 비프스테이크는 2차 멘붕을 일으켰다. 우럭이 풀어진 미역국, 칼국수, 탕수육…. 거부감 없는 메뉴다. 무엇이든 OK. 헌데 이게 웬일. 최종 결정된 메뉴는 인도 음식 카레다. (좋아서라기보다 올라오면 먹는) 국산 카레와 다르겠지…. 걱정이 없는 게 아니지만 창신동 골목시장 안 인도음식점은 이런 기우를 한 방에 날려 보냈다. 이상야릇한 향도, 속을 뒤집는 향신료 맛도 느끼질 못하겠다. 맛있다.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 때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은 경험이라는 걸 봄날 알았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新전원일기] 연잎과 메기의 콜라보…농업도 어업도 브라보

    [新전원일기] 연잎과 메기의 콜라보…농업도 어업도 브라보

    손바닥과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가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투박하고 거친 손이다. 정완희(66) 대표와 악수를 하는 순간 그의 노동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언가를 손에서 놓지 않은 손, 끊임없이 움직여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셀 수 없이 한 손. 그의 손이 그랬다. 지금의 ‘느랑골 연잎메기교육농장’을 일군 삶의 흔적이었다.“우리 남편은 손재주를 타고 났어요. 뭐든지 보기만 하면 척척 만들어 내요” 따끈한 연잎차를 건네며 아내 김홍분(61)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느랑골 농장은 구석구석 정 대표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무를 직접 자르고 깎아 만든 농장 팻말부터 입구에서 체험장까지 길목에 늘어선 장승들이며 농장 한가운데 놓인 정자, 그네, 토담집, 체험장 등 농장의 모든 것은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그가 만든 작품들을 보며 감탄의 찬사를 쏟아내자 그는 구수한 사투리로 말문을 열었다. “워낙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께 이렇게 됐네유. 별거 없어유.” 겸손의 말이다. 그렇지 않다. 온 정성과 땀을 쏟아내 그가 만들어낸 느랑골은 아이들에겐 최고로 손꼽히는 체험교육농장이다. 아이들은 연잎과 메기를 직접 만지고, 보고, 먹으며 다양한 체험을 한다. 그야말로 신나는 놀이동산인 셈이다. # 8000평 농장서 메기와 연이 함께 어울리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터를 잡고 있는 느랑골은 연과 메기를 동시에 기르는 농업과 어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곳으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는 교육농장이다. 농장 규모는 총 8000평. 그중에서 연이 2000평, 1500평 정도의 메기양식장에는 10만여 마리의 메기가 있다. 정 대표가 메기 양식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8년째. 타지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귀촌하면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양어장이 농사보다 수입이 더 좋다는 친구의 조언으로 메기를 알아보게 됐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는데 농사짓는 친구 녀석이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1년 동안 12마지기에 농사를 지었는데 800만원 벌었다는 거예요. 거기서 또 이것저것 빼고 나니까 400만원밖에 안 남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농사보다도 양어장이 훨씬 낫다고 추천을 해주더라고요.” 정 대표가 귀촌을 준비하기 위해 쏟아부은 시간은 자그마치 꼬박 4년. 그 긴 시간 동안 메기 양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다니며 묻고 배웠다. 처음에는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조차 몰라 헤매기가 부지기수였고 농촌 한가운데에서 어업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발 한발 다져나갔다. 그 결과 지금은 메기 판매로만 연 매출 80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농장이 됐다. 가공과 체험교육농장까지 포함하면 연 1억원이 넘는다. 처음에 땅을 직접 파서 메기 양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연 농사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도 오로지 메기 양식 하나만 생각했던 그가 어떻게 연 농사까지 겸하게 된 걸까. “메기를 기르면 부산물이 나와요. 배설물, 몸에 있는 점액질, 사료 먹다 남은 것들이 부패하면서 가스를 발생시켜요. 그 가스가 메기한테는 치명적이거든요. 그래서 물을 정화하는 방법이 약품을 사용하거나 물을 교환하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해요. 하지만 식물을 활용해 정화를 시키면 비용도 절약되고 자연 그대로 건강하게 메기를 키울 수가 있어요.” 정 대표는 메기가 사는 물을 자연 그대로의 방법으로 정화시키는 방법을 찾다가 연 농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우리 일행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의 농장은 산을 끼고 있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다. 봄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살갗을 스치는 기분이 싱그러웠다. 농촌에 살아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와 햇살 때문이 아닐까. 거기에 몸이 고되더라도 넉넉한 마음까지 곁들인다면, 그것이 바로 건강해지는 지름길이리라. 메기가 있는 노지 양식장에는 여러 대의 수차가 힘차게 돌아가며 녀석들에게 산소를 열심히 공급해 주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연밭에서 정화되어서 나오는 물이에요. 정말 깨끗하죠?” 그는 다소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메기가 사는 물을 펌프질해서 연밭으로 올려주면 연이 그 발효된 부산물을 먹어요. 아주 좋은 식사죠. 자연 그대로의 비료잖아요. 따로 거름을 줄 필요가 전혀 없어요. 연밭에서 정화된 깨끗한 물을 다시 메기가 사는 곳으로 흘려보내줘요. 서로 도와주는 거죠. 이렇게 24시간 돌아갑니다.” 그야말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자연순환 농법이다. 메기는 양식하기가 그다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과 햇빛 등의 자연조건만 잘 맞춰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자연은 사람만 건들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어요. 사람들이 자꾸 인위적인 것을 해서 탈이 나는 거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활용하면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정 대표의 자연주의 철학이다. 그는 어떤 농사에도 절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선택한 자연순환 농법이 이제는 정 대표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바뀐 셈이다.# 맑은 공기, 맑은 웃음, 맑은 정성이 있는 체험농장 “거기 느랑골 농장이죠? 아이들이 가면 뭘 할 수 있나요?” 매년 봄이 되면 수시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다. 그럴 때마다 정 대표 부부는 자랑스레 설명한단다. “메기를 맨손으로도 잡고, 통발로 미꾸라지도 잡고, 연잎밥도 싸고, 대나무로 낚시도 하고, 메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그릴 수 있고 연잎으로 수제비누도 만든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체험교실을 예약한다. 어디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고구마, 감자 캐기가 아닌 느랑골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3년째 체험·교육농장을 운영하면서 정 대표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찰 때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하지만 아내 김씨에게는 쉽지만은 않다. 청소부터 아이들 간식까지 준비해야 하고, 음식을 찾는 사람들까지 담당하려면 할 일이 많다. “체험교실 일은 남편보다는 거의 제 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좀 힘들긴 해요(웃음). 그래도 맑고 좋은 공기 마시며 사는 덕에 감기약하고 소화제를 달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는 뚝 끊었어요.”# 왕대추·야콘·초석정… 끊임없이 가꾸는 부창부수 지금은 아내 김씨가 도리어 팔 걷고 나섰다. ‘왕 대추’는 3000평에 500그루나 심었고, 야콘과 고구마, 초석정, 감자, 오미자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작물을 늘려나간다. “시골 일이라는 게 줄어들 수가 없어요. 사람 욕심처럼 자꾸 커져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래요. 힘들어서 접고 싶다가도 가만 보면 내가 또 늘리고 있어요. 아침에 눈 떠서 집 밖을 나가면 깜깜해질 때까지 방에 못 들어간다니까요. 사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다 돈이 되거든요(웃음).”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남편이나 끊임없이 작물을 심고 가꾸는 아내나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체험장 옆에 있는 닭장에서는 토종닭들과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 놀고 있었다. 산짐승이 내려와 닭들을 물어가는 통에 지킴이로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가끔 귀한 손님이 오시면 토종닭을 잡기도 해요. 어디 한 마리 잡을까요?” 우리 일행이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정 대표는 당장이라도 닭장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그의 아내는 정 대표가 소나무와 대나무, 백토로 손수 만든 토담집으로 안내했다.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느랑골 식당은 어느 곳 하나 정 대표의 정성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테이블 하나까지 소나무를 직접 자르고 매만져 땀으로 가꾼 공간이었다. 아내는 맛집 농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건강한 맛을 선사하고, 정 대표는 메기 박물관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농장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앞으로 농촌이 살아남으려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돼요. 생산에서만 멈춰서는 안 됩니다. 2차 가공도 하고 3차 산업에도 도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농민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에요. 지원 시스템이 좀 더 많아져야 해요.” 그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차별화된 농장으로,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농장으로, 농촌의 맛과 재미를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유쾌한 체험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 길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한마디 구수하게 말을 건넸다. “힘들다고 그만두면 어쩔 꺼유. 뭐 할 꺼유. 열심히 해야쥬.” 그의 정겨운 대답에 절로 고개가 끄떡였다. 이보다 더 확고한 대답이 있을까. 그날이 오면, 자연의 바람과 햇빛에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도 꽃처럼 화사한 봄의 미소가 번지리라. 부부는 그날을 향해 오늘도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린다글쓴이 방송작가 한정원 ‘6시 내고향’, ‘생방송 투데이’, ‘주주클럽’, ‘TV내무반 신고합니다’, ‘기분 좋은 날’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 참여. ‘지식인의 서재’, ‘CEO의 서재’, ‘명사들의 문장강화’, ‘명인명촌’ 등 출간.
  • 벤처 신화로 꽃길… ‘또 철수’ 오명 딛고… 다시 安風

    벤처 신화로 꽃길… ‘또 철수’ 오명 딛고… 다시 安風

    국민의당 안철수(55) 전 대표의 대선 도전은 두 번째지만, 본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철수신드롬’에 힘입어 2012년 9월 19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그는 65일 만인 11월 23일 “정권 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미완의 정치실험’을 끝냈었다.‘2012년의 안철수’와 ‘2017년의 안철수’는 천양지차다.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그는 이제 39명 의원이 소속된 원내 3당의 후보가 됐다. 2012년의 그는 정치 경험이 전무했지만 지금은 재선의원으로 ‘여의도’를 알아가는 단계다. 또 4·13 총선(국민의당)은 물론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지방선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세 번의 전국단위 선거를 지휘했다. 그가 “압축을 넘어 농축 경험을 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정치에 입문하기 전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벤처 신화’, ‘1세대 정보기술(IT) 개발자’, ‘컴퓨터 의사’처럼 화려했다. 대중들은 그가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꽃길’만을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노력형’, ‘대기만성형’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수’가 보인 게 이름 철수의 ‘수’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어렸을 때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활자 중독이라고 할 만큼 독서를 좋아했고, 고교 2학년이 돼서 비로소 성적이 올랐다. 공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인연은 1988년 의대 박사 과정을 밟던 때 찾아왔다. PC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발견, ‘V1’이라는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그때부터 7년간 밤에는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의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다.결국 1995년 의대 교수직 사표를 내고 컴퓨터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컴퓨터를 하면서 느끼던 자부심과 성취감 등은 의학을 공부하면서는 느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안철수연구소 최고경영자(CEO)로서 헤쳐 나간 10년간의 세월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날이 돌아오는 게 무서웠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거쳤다. 안철수연구소는 이후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CEO 출신의 고집스러움이 이 시기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 안랩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학자의 길로 나선다. 2모작도 쉽지 않은 인생인데 3모작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은 후 2008년 귀국,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2011년 모교인 서울대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맡았다.터닝포인트가 찾아온 것은 2009년 6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다. 이후 법륜 스님,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는데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50% 가까운 지지율을 넘나들며 유력 후보로 부상한다. ‘안풍’(안철수 바람), ‘안철수 신드롬’의 서막이다. 하지만 지지율 5%였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조건도 없이 후보를 양보했다. 정치권에 넌덜머리가 났던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안풍은 더 거세졌다. 2012년 9월 19일 ‘새정치’를 기치로 걸고 대선에 출마했다.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로 직업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공익재단인 동그라미재단에 1500여억원을 기부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실패했고, 결국 후보직을 사퇴하며 물러났다.대중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졌지만,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재기했다. 기세를 몰아 독자 신당 창당을 목표로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히면서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합당했다. ‘또 철수(撤收)’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를 도왔던 많은 이들이 떠났다. 2015년 2·8 전당대회로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같은 해 12월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불과 3개월여 만에 치러진 4·13 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며 양당 체제를 깨고 제3당의 지위에 올랐다. 당 안팎의 연대론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강론’을 고수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측근 박선숙 사무총장이 연루된 총선 리베이트 의혹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1심에서 관련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기회를 얻었다. 문제는 지지율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번갈아 20% 안팎까지 치솟는 동안 안 후보는 좀처럼 10%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결국, 안철수의 시간은 온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라며 당 안팎의 동요를 막아냈다. 그의 말은 조금씩 현실이 됐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불러들여 경선의 판을 키웠고,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 그리고 안 지사를 지지했던 중도 또는 합리적 보수 성향의 표심을 흡수하면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주말엔 숲으로’ 주상욱 “욜로 라이프? 당연히 차예련과 떠나고 싶다”

    ‘주말엔 숲으로’ 주상욱 “욜로 라이프? 당연히 차예련과 떠나고 싶다”

    ‘주말엔 숲으로’ 주상욱이 예비신부 차예련을 언급했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OtvN 새 예능프로그램 ‘주말엔 숲으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방송인 김용만, 배우 주상욱, 하이라이트 손동운 그리고 이종형 PD가 함께 했다.주상욱은 ‘주말엔 숲으로’에 대해 “프로그램 콘셉트,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를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다 해당이 되는 것 같다. 가끔은 한번씩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주상욱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은 꼭 했다. 기회가 된다면 도시를 좀 벗어나서, 외국이든 시골이든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것. 언젠가는 한 번 해보고 싶다”라며 “가서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놀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3박4일동안 이렇게 많이 고생을 할 줄은 몰랐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차예련과 다음달 결혼을 앞둔 주상욱은 “마지막 싱글의 로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이미 1년 반 전부터 싱글인 적이 없어서 싱글 라이프의 로망은 생각 안해봤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어떻게 둘이 함께 로망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 둘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며 애정을 과시했다. 또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라이프를 추천하고 싶은 지인으로 “당연히 그녀와 떠날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비슷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어디론가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차예련을 꼽았다. 한편 ‘주말엔 숲으로’는 도시 생활에 지친 주상욱, 김용만, 손동운 세 남자가 자연으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신자연인 욜로족과 함께 생활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오는 5일 오후 8시 20분 O tvN, tvN 첫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재무의 오솔길] 줄탁

    [이재무의 오솔길] 줄탁

    모과나무 꽃 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옴질옴질거리는 것을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중략)/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만 한 몸을 내미는 꽃들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 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걸 바라본다 /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온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시, 도종환, ‘봄의 줄탁’, 부분)선종의 공안집 ‘벽암록’에는 ‘줄탁동기’라는 말이 나온다.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 속 병아리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부화를 돕기 위해 부리로써 알의 껍데기를 쪼아 주는 걸 일컫는 말이다. 즉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할 수 있다는 비유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줄탁동기’다. 그런데 이러한 ‘줄탁동기’가 닭과 병아리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생명 탄생의 조화이자 감응일까? 이를 좀더 확대시켜 생각을 진전시켜 본다면 우주 안에 편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방식과 형태만 다를 뿐 근원적 성질은 위와 같은 동일한 원리에 의해 생명을 탄생시키고 진화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오실 때 수목들은 기척을 미리 알아차려 비가 내리기 직전 가지마다 아주 극미한 물방울을 띄운다고 한다. 비가 내려 자신의 몸속으로 크게 낭비 없이 흡수될 수 있도록 미리 조처를 취하는 것이다. 이 또한 나무와 하늘과 땅의 ‘줄탁동기’라 이를 만하지 않겠는가. 멀리 남쪽으로부터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더디게”(이성부, 시, ‘봄’, 부분) 오는 봄이 비록 서너 살짜리 아이의 보폭일망정 꾸준하게 걸어온 탓으로 여기저기 만개한 봄이 존재의 징후를 낳고 있는 중이시다. 봄이 활짝 열린 징후는 여러 가지로 감지될 수 있는바 우선 조석으로 대하는 바람의 결이 다름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송아지에게 어미 소가 그러하듯이 바람은 부드러운 혀로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사물의 몸을 핥아 주고 어루만져 준다. 거기에 부쩍 늘어난 봄볕이 가지와 꽃에 플러그를 꽂거나 클릭할 때마다 깜짝깜짝 이파리가 돋고 꽃들이 피어난다. 우리 몸도 덩달아 새잎이 움트는지 까닭 없이 설레고 흥분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뜰에는 햇살이 고봉으로 쌓이고 들판은 초록이 불처럼 일어, 가랑비라도 가랑가랑 내리게 되면 기름을 만난 불이 그러하듯이 더욱 기세 좋게 활활 번지어 간다(겨우내 해져 군데군데 틈새가 보이는 대지를 초록은 꼼꼼하게 바느질하여 꿰매 놓는다). 또한 산 이곳저곳에 빨강 분홍 노랑 등속의 꽃불이 한 점 연기도 없이 타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봄날에는 가려움증 도진 밭이 하릴없이 풀풀 먼지를 날려 대기 일쑤다. 눈이 밝은 농부라면 그걸 알고 허청에서 잠자는 갈퀴를 깨어 들고 밭에 들어가 각질이 이는 땅의 신체 기관들을 고루고루 긁어 주어 가려움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줄 줄 안다. 이른바 지심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봄밭과 농부 사이를 ‘줄탁동기’라 일러 무방할 것이다. 이같이 봄이 무르익어서 가지 밖으로 이파리와 꽃들이 얼굴을 내밀어 올 때도 ‘줄탁동기’가 있다. 가지 안에서 바깥으로의 출가를 꿈꾸던 이파리나 꽃들이 자신들의 부리(촉)로 안에서 수피를 쪼아 대면 바깥에서도 어미 닭이 그러하듯이 햇살의 부리가 그곳을 쪼아 한 생명인 연초록과 꽃들이 태어나는 것을 돕는다. 그렇다. 무릇 목숨 찬 것들은 속속들이 서로 감지하는 예감이 있는 법이다. 사람도 원래는 그런 능력을 지니고 살았다. 가령 아이의 기척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채는 어미의 마음에서 혹은 연인들 간 심심상인으로 느끼는 교감과 공유의 경험에서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하고는 대부분 우리는 타고난 본래 감성을 잃고, 진화가 아닌 퇴화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어찌 애석지 않으랴.
  • 英 기득권층 키워낸 우익 경제 카르텔

    英 기득권층 키워낸 우익 경제 카르텔

    기득권층/오언 존스 지음/조은혜 옮김/북인더갭/528쪽/1만 9500원포털사이트에서 ‘기득권층’을 검색하면 영어 ‘Establishment’가 가장 먼저 나온다. 영국에서 특히 잘 쓰인다는 영어 표현이다. 왕족, 귀족이 여전하고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합쳐 부르는 말) 출신들의 끈끈한 커넥션이 존재하는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듯하다. 새 책 ‘기득권층’은 이 같은 영국 내 기득권층의 세계를 들춰내고 있다. 목차를 보면 대략 짐작이 간다. 정치인 카르텔, 언론 귀족, 갑부와 세금 포탈범 등 대충 일별해도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거대한 철벽 안에 소수의 사람이 있고, 그 주변을 검·경과 언론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 말이다. 우리나라 신문 만평에서 흔히 봤던 장면이다. 한데 독특한 게 있다. 제1장에 나오는 ‘선동자들’이다. 이들이 누굴까. 영국 기득권층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짧은 시간에 확고히 뿌리내리려면 공신이 필요했을 터다. 저자는 이들이 ‘선동가들’(The Outriders)이라 불리는 우익 이론가들이라고 본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의 자유방임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싱크탱크는 부자 감세와 민영화 등을 주장했고, 거물 사업가들은 이들에게 돈을 기부하며 활동을 도왔다. 여기에 정치인과 언론도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업고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사상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기득권층 역시 구조화됐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책은 영국의 사례가 중심이다. 영국과 웨일스 땅의 3분의1 이상, 그리고 시골 땅의 50% 이상이 3만 6000여명의 귀족들 손에 있다. 성직자가 자동으로 입법기관에 들어가기도 한다. 영국 초등학교 4개 가운데 하나는 성공회에서 운영하고 성공회 주교는 당연직 상원의원이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유능한 ‘우리의 선동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장점이 많은 책이긴 하나 이 대목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를 보다 앞당길 수 있는 장면들이 몇 차례 있었다. 한데 선동가가 없어서, 이론가가 없어서 우리가 끝내야 할 순간에 끝내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 싶다. 영국이나 우리나 현 상황이 탐탁지 않은 건 비슷하다. 하지만 해소, 혹은 완화를 위한 지향점은 좀 달라야 하지 싶다. 예컨대 ‘기득권층’에 대한 개념과 범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오사회, 분노사회만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인류 구한 집요한 영웅들 ‘미생물 사냥꾼’

    인류 구한 집요한 영웅들 ‘미생물 사냥꾼’

    미생물 사냥꾼/폴 드 크루이프 지음/이미리나 옮김/반니/472쪽/2만원‘마법의 탄알’ 백신이 없었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인간이 백신을 맞게 된 건 불과 300여년 전이다. 동물과 인간을 전염병의 굴레에서 구원한 이들은 미생물이라는 미지의 신세계를 탐험했던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균 연구로 전염병 굴레 벗긴 13명 다뤄 손수 현미경을 만들어 처음 미생물을 목도한 안톤 반 레벤후크부터 자연발생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 라자로 스팔란치니, 탄저병·결핵·콜레라를 일으키는 원인균을 캐낸 로베르트 코흐, 탄저병과 닭 콜레라·공수병의 전염을 막는 백신을 만들어내 의사들의 오랜 싸움을 백지로 만들어 버린 파스퇴르, 실험을 위해 기니피그 수천 마리를 대량 학살한 에밀 루, 에밀 베링까지…. 초기 미생물학자 13명의 집요하고 지독한 실험정신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영웅담이자 미생물과학 발전의 연대기가 책으로 펴나왔다. 1926년 출간돼 전 세계 18개국 언어로 번역된 대중 과학도서의 스테디셀러 ‘미생물 사냥꾼’이다. ‘수많은 사이언스 키즈를 길러낸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것은 독자들이 이들의 실험실에 직접 들어가 현미경을 넘겨다보듯 생생하게 미생물과학사 절정의 순간들을 포착한 저자의 익살스럽고 열정적인 입담 때문이다. 미생물 사냥꾼들의 성취와 실패를 조명하며 과학과 과학자의 역할과 이상을 짚어내는 통찰도 의미 있지만 더욱 솔깃한 건 ‘뒷담화’다. 추앙받는 인물들의 추례한 면모도 발가벗기며 날카롭게 평가를 내리는 대목들은 소설을 읽는 듯 생동감 넘친다.●‘오만한 흥행사’ 파스퇴르·‘숭배 거부’ 코흐 대조 특히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와 독일의 시골 의사 로베르트 코흐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파스퇴르가 ‘현대의 기적을 행한 사람’으로 군중들에게 떠받들여진 대표적인 순간은 1881년 5월 31일 탄저균 백신 공개 실험으로 기록된다. 당시 파스퇴르는 이틀 뒤인 6월 2일 백신을 맞아 면역이 생긴 스물네 마리의 양들이 백신을 맞지 않아 탄저병에 집어삼켜진 다른 양들의 주검 사이를 뛰노는 불멸의 드라마를 지휘했다. 세계인들은 파스퇴르가 ‘인간이 진 모든 고통을 벗겨줄 메시아’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열정적인 만큼 그는 실수도 연발했다. 닭 콜레라 백신이 모든 종류의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일지 모른다고 자신의 은사인 뒤마 교수에게 편지를 썼던 것. 뒤마 교수는 이 편지를 과학협회 소식지에 발표하기까지 한다. 이는 파스퇴르의 업적에 ‘슬픈 기념비’로 남았지만 그는 자신의 오류를 철회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로 적도 많이 만들었다. 그의 모든 저술과 연설에는 ‘나는 이걸 찾아낼 정도로 똑똑한데 너희들은 이걸 믿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냐’는 말이 행간에 심겨져 있었다고. 이런 파스퇴르를 가리켜 저자는 ‘위대한 흥행사였고 가끔 작은 속임수를 쓸 때도 있었지만 엉터리 사기꾼은 아니었다’고 평한다. 반면 가난한 시골 의사로 진료 시간에 겨우 짬을 내어 실험을 하던 코흐는 파스퇴르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류를 구제한 인물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아내에게 스물여덟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현미경이었다. 그 현미경에서 발견한 막대균이 탄저병의 원인임을 알아챈 그는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첫 연구자다. 이는 파스퇴르보다 먼저 세운 공이기도 했다. 철저함과 완벽주의로 무장한 코흐는 인간과 동물을 죽이는 탄저병과 콜레라, 결핵의 원인 미생물을 밝혀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파스퇴르와 달리 자신이 자연에 대항해 싸우는 짜릿한 전투의 지휘관이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해 놓고서도 “내가 발견한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숭배자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연구에 골몰했다. 이런 그에 대해 저자는 ‘아직까지도 우리는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더 많은 실험실과 미생물 사냥꾼과 더 대우를 잘 받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발전을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로베르트 코흐와 같은 놀라운 연구자 몇 명을 더 우리에게 보내 주셔야 한다’고 일갈한다. ●순수하고 남모를 열정, 회의론 대신 낙관 선사 성격과 가치관은 천차만별이지만 미생물 사냥꾼들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모습은 특정 분야와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찬가’를 선사한다. 1892년 일흔 살 생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메달을 받으며 한 파스퇴르의 연설은 이를 압축한다. “아무 쓸모도 없는 회의론에 빠져서 여러분 자신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전 인류에게 닥친 슬픔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낙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배움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여러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의 발전과 복지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될 때까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홍준표 “문재인 10분 만에 제압할 자신있다”

    홍준표 “문재인 10분 만에 제압할 자신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31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자유한국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됐다. 홍 후보는 선거인단 득표율에서 61.6%,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46.7%를 얻었다. 합산 지지율 54.15%로 다른 후보에 압승했다. 홍 지사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문재인 후보는 10분 이내에 제압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하 홍 후보 연설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제가 입당한 지 오늘로써 22년이 된다. 탄핵의 혼란 속에서 오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게 됐다. 가슴이 벅차고 먹먹하다. 그러나 정작 잠이 안 오고 답답했다. 오늘은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파면되고 구속된 날이다. 어떻게 보면 이중처벌이라는 느낌을 받는 그런 날이다. 이제 국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기대고 의지했던 담벼락은 무너졌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무너진 담벼락을 보고 한탄할 때가 아니다. 시간이 없다. 홍준표가 국민과 우리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든든하고 튼튼한 담벼락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 지금은 야권 주도로 민중혁명이 일어났다. 무정부 상태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정권 교체, 교체할 정부가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5월 9일에 신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유럽 좌파는 몰락했다. 남미 좌파도 몰락했다. 우리 주변을 싸고 있는 4강 지도자들이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모두 극우 국수주의자다. 이런 극우 국수주의자들 속에서 5월 9일에 유약한 좌파 정부가 탄생한다면 대한민국이 살아날 길이 막막하다. 이제는 강단과 결기를 갖춘 스트롱맨이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 홍준표는 여러분의 힘으로 5월 9일 당당한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 당당한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조속히 안정시키고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세 번째 대선 구도의 문제다. 이번 대선은 좌파에서 둘, 얼치기 좌파에서 한 명, 그리고 우파에서 홍준표가 나간다. 지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어제 여론조사를 보니 1천 명 여론조사 했는데 보수우파냐, 진보 좌파냐, 중도냐 이렇게 물었을 때 1천명 중 87명만 보수 우파라고 했다. 나머지는 중도나 진보좌파라고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우파들이 부끄럽죠? 탄핵됐다. 이제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구속되면서 탄핵이 끝났다. 탄핵의 원인이 됐던 바른정당 사람들, 이제 돌아와야 한다. 우리 문을 열어놓고 돌아오도록 기다리겠다. 기다려서 보수 대통합을 하겠다. 그렇게 해서 보수우파의 대통합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 네 번째 안보위기다. 20년간 외교로, 6자회담으로 북핵을 풀려고 하다가 북의 핵기술이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 대통령이 되면 조속히 미국과 핵무기 재배치 협상을 하겠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나토에서 하는, 나토는 독일, 이탈리아, 터키에 핵무기를 재배치했다. 핵무기 재배치를 미국과 바로 협상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북한의 20만에 이르는 특수 11군단에 대적하기 위해 해병특전사령부를 창설하겠다. 그래서 북한의 특수 11군단과 대적하는 특수부대를 우리 군에 두도록 하겠다. 그래서 튼튼한 안보 대통령이 되도록 할 것이다. 다섯 번째 기업 살리기에 최우선 과제를 두겠다. 헌법 111조 1항 보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질서다. 2항이 경제민주화다. 원칙적으로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질서를 추구해야 하는데 지금 정치판은 경제민주화가 대한민국 경제의 화두인 양 보충 조항이 주된 조항이 됐다. 국회에서 좌파들이 주동했다. 기업을 옥죄고 범죄시하는 것 안 하도록 하겠다. 기업을 풀어주겠다. 대한민국에서 마음 놓고 투자하고 수백 조 원에 이르는 사내유보금을 풀어서 대한민국 일자리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청년들이 마음 놓고 꿈과 희망을 펼치는 나라를 만들겠다. 서민경제를 살리겠다. 김영란법 때문에 식당들이 안된다. 꽃가게가 되지 않는다. 김영란법의 3·5·10 규정을 10·10·5로 바꾸겠다. 일식당에 가보니 종업원이 해고됐다. 3만원짜리를 할 수가 없다. 월세도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식사는 10만원, 선물도 10만원. 농수산물이 팔리지 않는다. 그리고 축의금은 거꾸로 5만원으로 내리겠다. 10만원으로 하니까 서민들이 10만원 내야 하는 줄 알고 마음의 부담이 너무 많다. 그래서 축의금은 5만원으로 내리겠다. 서민경제를 밑바닥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자리 대통령이 되고 서민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 여섯 번째. 최순실 사태 중에서 국민들이 가장 분노한 게 정유라 어린 친구가 잘못 말한 것이다. 돈도 실력이고 백도 실력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국민이 얼마나 분노하나. 아마 학부모들의 분노 근원은 여기 있다고 본다. 돈도 백도 통하지 않는 그런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 그래서 정의로운 대통령이 되겠다. 일곱 번째. 이제 당에 친박은 없다. 우리당에 이제 친박은 없다. 계파도 없다. 계파가 왜 없어졌느냐. 지금 여야 정당 사상 처음으로 계파 없이 독고다이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은 저밖에 없다. 한국 정당사에 자기 계파 없이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이 있는가. 홍준표가 처음이다. 홍준표가 후보가 됐는데 이 당에 무슨 계파가 있는가. 이제 계파가 없다. 모든 계파 없이 당이 하나가 돼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계파를 하고 경선하고 계파로 후보가 되고 계파를 갖고 청와대에 들어가니까 계파만 챙긴다. 역대 대통령이 다 망했다. 얼마나 불행했나. 한국 최초로 계파 없는 대통령 후보가 탄생한 당이다. 그래서 저는 계파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대통령이 돼보겠다. 우리 당원 여러분들의 대통령이 돼보겠다. 여덟 번째로 제 어머니는 무학, 학교를 가보지 않았다. 국졸도 아니고 무학이다. 제 어머니는 문맹이다. 한글을 못 읽었다. 아버지는 40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20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 무지렁이 출신이다. 홍준표는 부모로부터 유산 받은 게 단 1원도 없다. 저는 무지렁이 출신이다. 천민 출신이다. 그런데 그 무지렁이 출신이 우리 한국을 건국하고 산업화를 이루고 YS 민주화를 이룬 이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꿈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는 돈 있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 좇는 대통령도 안 되겠다. 꿈이 있는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 대한민국 서민들이 꿈을 꾸고 마음대로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돈을 좇는 대통령도 안되고 돈이 있는 대통령도 안되고 꿈이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러분에게 오늘 약속한다. 제 인생의 멘토는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세종대왕도 아니고 내 엄마다. 제 나이가 60이 넘어서까지 내 인생의 멘토는 내 엄마다. 이번에도 출마하기 전에 내가 묘소를 갔다. 가서 절하고 우리 엄마는 글을 몰라요. 대구에서 중학교 때 자취할 때 시골에서 올라오면 시내 나갔다가 글을 모르기 때문에 꼭 버스 번호를 알려줬다. 엄마 밖에 나가면 이 번호 타고 와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무지렁이처럼 살았어도 자식 사랑하고 남편 사랑하고 가족 사랑하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았다. 내 인생의 멘토가 내 엄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이 대통령이 돼서 내 엄마처럼 착한 사람들 잘살게 한번 해보자 그게 마지막 소원이다. 청년 신용한, 일자리 안상수, 핵무장 전도사 원유철, 보수 논객 김진, 불사조 이인제, 우리당의 큰 형님 김관용, 태극기 전사 김진태 이 모든 분들 모시고 힘을 합쳐서 5월 9일 강력한 우파 정부 수립을 해보겠다. 여러분이 걱정하는 문재인 후보는 10분 이내에 제압할 자신이 있다. 이제 우리 숨지 말자. 부끄러워하지 말자. 이 당은 홍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당이 됐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여태 나라를 건국하고 산업화를 이루고 또 YS를 통해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 이 나라를 선진강국으로 만들어갈 세력이 자유한국당이다. 이 당이 이 나라의 중심이 된다. 이 당이 이 나라의 대표로 이 나라 중심이 된다. 모두 함께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유스럽게 밖에 나가서 이제 5월 9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그런 우파 정권을 탄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감사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섬진강, 벚꽃 10리 봄가슴 두근대는 곳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섬진강, 벚꽃 10리 봄가슴 두근대는 곳

    ‘바람에 날리는 꽃 이파리를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69)은 구례와 하동을 거슬러 물길 내려가는 섬진강 지천 벚꽃길을 두고 가슴 한가득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였다. 벚꽃은 어린 손녀의 손짓 눈짓으로 변해 일흔 가까운, 늙은 시인의 마음마저 흔든다. 매년 4월 초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6Km에 이르는 화개동천 십리벚꽃 길에는 50∼70년 수령의 벚나무 1200여 그루가 흰 벚꽃 터널을 만든다. 이 터널에 들어서는 누구나 자신의 나이를 착각한다. 20살이다. 그토록 곱고 앳되고 가슴 시릴 정도로 그리운 꽃이다. 섬진강 10리 펼쳐진 벚꽃들은 양 길옆에 고르게 퍼져 있어 어찌 보면 다분히 현학적이면서 인위적이다. 그러하기에 작은 섬진강 봄바람에도 꽃 이파리 우수수 힘없이 떨어지는 모습은 더더욱 애처롭고 가련하다. 비록 후덕한 종갓집 며느리의 푸근함은 없을지라도, 색 고운 연쪽 색 명주 저고리 입은 고운 새색시같이 환하다. 화개장터와 쌍계사에 이르는 벚꽃 10리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섬진강 19번 국도에 이르는 벚꽃 터널 길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1931년에 신작로로 만들어졌고, 이 시기에 화개면 주민들이 벚꽃 1200그루를 조성하였다. 남녀가 손을 맞잡는 것처럼 길 양 옆의 벚꽃 가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벚꽃 터널을 만들기에 흔히들 연인 관계를 이어준다고 해서 ‘혼례길’로도 불린다. 벚꽃 10리길의 중심에는 ‘화개장터’가 있다. 구례와 하동 사이에 있는 시골장터로 원래 5일장이 열리는 작은 읍내 장터였다. 예전부터 지리산 군락에서 채취한 각종 약재와 하동 녹차, 섬진강 제첩 및 벚굴 등이 주요 품목으로 그리 큰 장은 아니었다. 그러다 대다수 국민들의 귀에 익은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곡이 지역 화합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화개장터는 2011년부터 상설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는 40여 개의 상설점포가 운영중이다. 올 해도 역시 4월 1일부터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화개장터 인근 맥전길에서 열려 길거리 씨름대회, 읍면별 장기자랑, 하동녹차 및 농특산물 홍보관 운영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또한 화개장터 특산 은어회, 재첩국, 참게탕 등 향토음식도 맛볼 수 있다. 화개장터에서 벚꽃길을 따라 가노라면 쌍계사(雙溪寺)에 들릴 수 있다. 사실 하동 쌍계사는 ‘쌍계총림’을 내세울 만큼 이름난 사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큰 절이다. 관장하는 말사만 해도 43개 넘으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을 정도의 절이지만 늘상 벚꽃 10리길 코스에 이름이 파묻혀서 안타깝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가 개창한 오래된 절로서, 경내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를 비롯하여 보물 제380호의 쌍계사 부도, 보물 제500호의 대웅전 등의 지정문화재가 있어 자칫 지치기 쉬운 봄나들이 길에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더구나 쌍계사 경내에는 고려 시대 불상을 비롯하여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구층석탑 등이 있어 벚꽃 터널 길에 눈시린(?) 방문객들의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섬진강 벚꽃 10리길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당신의 인생에서 한 번은 가 봐도 좋을만한. 2. 누구와 함께? -연인, 부부 3. 가는 방법은? -자동차 네비게이션으로는 쌍계사 및 055-880-2955, 화개면 탑리 629 -화개 국도 19호선 -구례나 화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개장터로 가는 시외버스 탑승 4. 감탄하는 점은? -생각보다 훨씬 긴 벚꽃 터널이 섬진강변 국도 19호길에 열린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유명한 만큼 아름답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벚꽃 터널.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은어회로 유명한 ‘설송식당’(883-1866), 재첩국 ‘동백식당’(883-2439), 참게탕 ‘해성식당’(883-2140), 은어튀김 ‘버들횟집’(883-4366) /지역번호 (055)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tour.hadong.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구례 화엄사, 토지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벚꽃 터널의 아름다움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나 국도를 꽉 메운 자동차의 평균 속도는 5km 미만.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걸어가는 것이 제일 낫다. 사람 반, 벚꽃 반.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순댓국, 북방음식에서 국민메뉴로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순댓국, 북방음식에서 국민메뉴로

    순대는 평안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돼지 창자에 곡식, 채소 등을 넣어 말리거나 얼려서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인 순대는 찰밥에 숙주나 우거지 등 채소, 돼지고기와 선지 등을 고루 섞어 돼지창자에 밀어 넣은 다음 삶아서 만든다. 순댓국은 돼지 뼈를 푹 우려내어 육수를 만들어 뚝배기에 담고 순대, 머리고기, 내장 등을 고루 넣은 후 밥을 더해 끓여 먹는 음식이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 구하기 쉽지 않은 순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탕으로 개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순댓국에는 다진 양념장, 새우젓, 부추, 들깨, 파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으면 제격이다. 또 비슷한 음식으로 돼지 뼈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끓이는 돼지국밥이 있다. 6·25전쟁의 피란길에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부산, 대구, 밀양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순댓국은 이제 누구나 즐기는 서민 메뉴가 된 만큼 맛깔나게 잘하는 집들이 곳곳에 있어 맛집이 큰 의미가 없을 수 도 있으나 그래도 순댓국 하면 떠오르는 집들이 있어 몇 군데 소개한다. 서울 대림동 대림중학교 옆 골목에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이 있다. 1959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이다. 근처 처음 가게를 하던 곳이 예전 시흥의 과수원이 있던 삼거리 ‘원지목’이어서, 부르기 쉽게 ‘먼지막’으로 이름 지었다. 진한 육수에 직접 만든 순대, 머리고기, 내장을 푸짐하게 넣어주는 구수한 옛날식 순댓국이다. 착한 가격으로, 창업 이래 순댓국 가격변동 내용을 가게에 써서 붙여 놓고 있다. 신대방동 보라매역 인근에는 20년 이상 영업해 온 ‘서일순대국’이 있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는데, 지금은 확장해서 꽤 커졌다. 시래기, 당면 등을 넣어 만든 야채순대가 특색이다.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지만 잡내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강남 뱅뱅사거리 인근에 있는 ‘남순남순대국’은 20여년 전 ‘서초순대국’이란 상호로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큰 점포로 이전해 깔끔하게 단장했다. 진한 탕국에 당면을 넣은 쫄깃한 찹쌀순대와 돼지고기, 머리고기 등을 고루 넣어 준다. 중림동 약현성당 골목 입구에 있는 ‘황성집’은 아바이왕순대로 알려져 있으며 40년 넘는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돼지국밥집도 서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소문 충정로역 인근에 부산 출신 사장이 하는 ‘밀양돼지국밥’이 있다. 길에서는 잘 안 보이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쁜 노랑색 집이 나타난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는데, 지나는 기차소리도 들리고 테이블, 인테리어도 옛 멋이 나는 분위기다. 큰 뚝배기에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부추와 다진 양념을 얹어 주는데, 원조의 맛이라 한다. 필운동 서촌 초입에 있는 ‘송원가마솥 국밥집’은 잘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을 듬뿍 넣고 부추를 더해 국밥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소개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져 아쉬운 집이 더 생각난다. 을지로4가역 부근에 ‘전통아바이순대’라는 작은 집이 있었다. 순대, 고기, 밥을 푸짐하게 담아 토렴해서 내는데 시골장터를 떠올리게 했다.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해 언제나 긴 줄을 섰었는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가난했던 피란 시절 많은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던 순댓국과 돼지국밥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지금도 대표적인 서민 메뉴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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