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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에 독립영화 전용관 들어선다

    광주에 호남지역 최초로 독립영화전용관이 들어선다. 29일 광주시에 따르면 ‘영화진흥위원회’의 ‘2017 독립영화전용관 설립지원 사업’ 공모에서 공동 응모한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최종 선정됐다. 시는 동구 서석동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 G-시네마 상영관을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발권시스템 등 전용관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구축하고 내년 초에 정식 개관한다. ‘G 시네마’는 3D 디지털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첨단영상극장이다. 총 105석 규모의 극장으로 3D 첨단영상, 디지털애니메이션, 다양성영화 등 상업영화에서부터 독립영화까지 모두 상영할 수 있는 첨단영상시설을 갖췄다. 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영화진흥위로부터 1년간 운영비 1억1900여만원을 지원받아 ‘G 시네마’를 운영할 계획이다. 운영비는 향후 5년간 전용관 운영 성과에 따라 추가로 지원된다. 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단순히 영화만 상영하는 수동적인 운영에서 벗어나 영화와 연계한 인문학 강좌, 학생 영화교육, 지역 동호회와 함께 하는 상영회 개최 등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영화관을 운영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지역 영화인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으로 지역 영상문화 발전이 기대된다”며 “영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독립영화는 기존 상업자본과 대규모 배급망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제작 의도에 충실한 영화로, 대표작으로 시골농부와 소가 30년 이상 동거동락하는 이야기를 다룬 ‘워낭소리’ 등이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30초도 안돼 매진, 음성군 공연의 흥행비결은

    30초도 안돼 매진, 음성군 공연의 흥행비결은

    충북 음성군이 눈을 의심할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 최고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29일 군에 따르면 다음달 14일 오후 7시30분 음성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유키구라모토의 송년콘서트’를 갖는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군 단위 지역에서 공연을 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콘서트 입장료다. 티켓의 가격이 고작 R석 2만원, S석 1만 5000원이다. 유키구라모토가 다음달 2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갖는 콘서트 티켓 가격은 R석이 12만원, S석이 9만원, A석이 6만원이다. 군의 티켓 가격을 접한 누리꾼들은 “EBS급 섭외력이다. 지자체에서 문화예산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차비에 숙박비 합쳐도 보통 콘서트 좋은 좌석보다 저렴하다”는 등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티켓 예매로 이어져 군이 29일 유키구라모토 콘서트 온라인 예매를 시작하자 30초도 안돼 모두 동이났다. 군이 이런 가격으로 슈퍼스타들의 공연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 장사익, 조수미, 김범수 등을 초청해 다른 지역의 3분1 수준만 받고 콘서트를 가졌다.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공연을 즐길수 있다는 흔치않은 매력 때문에 600석인 음성문화예술회관은 대부분 만석을 이뤘다. 다른 지역에서 원정관람을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 관람객의 20%정도가 타 지역민들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파격적인 공연의 비결은 군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군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대부분의 콘서트들은 섭외비 등 공연 전체비용과 공연장 객석수를 따져 이익이 남도록 티켓 가격이 결정된다. 비싼 스타일수록 관객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군은 공연에 필요한 전체비용을 군비로 지불한 뒤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티켓 가격을 정한다. 군은 손해를 감수하며 “어느 정도의 가격이면 군민들이 공연을 보러올까”만 고민한다. 이 때문에 시골 노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조수미는 5만원(R석), 그렇지 않은 유키구라모토는 2만원(R석))으로 가격을 결정했다. 또한 군은 다양하고 수준높은 공연을 유치하기 위해 음성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연 2008년부터 공연기획 전문가를 직원으로 채용해 섭외업무 등을 맡기고 있다. 박지연 군 공연기획담당은 “무대도 좁고 객석도 적어 공연 유치에 어려움이 있지만 직원들이 발품을 팔고, 군이 공연을 기획하는 취지를 잘 설명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저렴한 공연이 인터넷 등에서 화제가 되면서 군을 홍보하는 효과도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더 많은 군민들이 공연을 즐길수 있도록 일부 공연들은 현장판매도 겸하고 있다”며 “지금 가격도 비싸다는 의견이 있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음성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소방차 출동했더니 탱크에 물이 없어…우왕좌왕 하다 피해 커져

    소방차 출동했더니 탱크에 물이 없어…우왕좌왕 하다 피해 커져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출동했는데 물이 없어서 제때 불을 끄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충북 영동에 있는 한 의용소방대가 탱크에 물을 채우지 않은 소방차를 몰고 화재 현장에 출동, 불을 끄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불길이 커졌다. 지난 25일 오전 8시 23분쯤 영동군 추풍령면의 한 정미소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충북도소방본부 상황실에 들어왔다. 이는 곧바로 영동소방서와 관할 의용소방대원에게 전달됐고, 5분 뒤 가장 먼저 의용소방대가 소방차(펌프차)를 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소방대는 화재 현장과 불과 300m 남짓한 거리에 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의 탱크에는 물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소방호스를 뽑아들었지만, 방화수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거세지는 불길 앞에서 아무런 대응도 못했다. 이들이 허둥대는 사이 불은 더욱 거세졌고, 8분 뒤인 8시 35분 인접한 황간119안전센터의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건물과 기계설비 등이 시뻘건 불기둥에 휩싸인 상태였다. 불은 신고된 지 47분 만에 진화됐지만, 정미소 건물(295㎡)과 도정기계, 벼 2t 등이 모두 탄 뒤였다. 소방당국은 피해 규모를 5000만원으로 추산했다. 현장을 목격한 주민 A씨는 “조금만 더 일찍 진화 작업에 나섰어도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연합뉴스를 통해 밝혔다. 물 없는 소방차를 끌고 출동한 사람들은 정식 소방관이 아니다. 소방관서가 없는 시골에 조직된 의용소방대원이다. 이들은 화재 현장에 출동할 때 약간의 수당을 받지만, 평소 생업에 종사하는 일종의 자원봉사자다. 영동소방서 관할에는 13개 의용소방대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5곳은 소방대원이 배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끼리 운영하는 ‘전담 의용소방대’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도 소방대원 없는 전담 의용소방대다. 소방장비 관리 규칙상 이런 곳은 의용소방대장 책임 아래 장비 상태와 출동 태세 등을 매일 점검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소방대는 가장 기본이 되는 물 관리조차 엉망으로 한 셈이다. 영동소방서는 뒤늦게 진상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소방서 관계자는 “당시 2000ℓ짜리 물탱크가 완전히 빈 상태는 아니었지만, 물이 가득 채워지지 않은 원인 등을 조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사는 이뤄지지만, 이들이 정식 소방관이 아니다 보니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철저하게 조사한 뒤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다만 자원봉사자 성격의 민간인 신분이어서 문책 등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초기 대응에는 실패했지만, 곧바로 물을 싣고 와 주변 주택 등에 불길이 번지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며 “초기 대응 실패 뒤 대처가 적정했는지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진 딛고… 韓·中 함께 꿈꾸는 비상

    지진 딛고… 韓·中 함께 꿈꾸는 비상

    책 3000권·탁구대 등 제공 북춤·탈춤 등 문화교류 공연도 “한·중 관계 복원 디딤돌 되길”히말라야 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옥룡설산은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들의 영산이다. 27일 옥룡설산이 고즈넉이 내려보는 윈난성 리장의 진산(山)초등학교에선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나시족, 바이족, 회족, 푸미족, 타이족 등 5개 소수민족 어린이 230여명은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새 책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 했다. 이날 축제는 주중 한국문화원과 대한항공이 주최한 ‘꿈의 도서실’ 개관식 일환으로 열렸다. 운동장에서는 한국 다식 만들기 행사가 열렸고, 탁구 경기도 펼쳐졌다. 지난 10월31일 한·중 양국이 관계 개선을 합의한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서 열린 양국 정부 부문 간 문화교류 행사다. 한국 측은 이날 어린이들에게 동화책, 과학책, 한국어 교본 등 3000여권과 탁구대 등 체육시설을 기증했다. 진산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새 책 3000권은 큰 의미가 있다. 1996년 2월 리장에는 강도 7.0의 대지진이 발생해 309명 사망하고 1만 7000여명이 다쳤다. 진앙의 중심지였던 진산초등학교도 완파됐고, 어린이들의 희생도 컸다. 이후 학교는 재건됐지만, 책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 학교를 졸업한 교장 허청창(38) 선생님은 “학교 90년 역사상 외국과 교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돼 뜻 깊다”고 말했다. 나시족인 허 교장은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자라온 우리 학교 아이들은 1학년 1학기 1개월만 지나면 모두 친한 친구가 된다”면서 “오늘의 추억이 한국에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주중 한국문화원과 리장시문화국이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소개하는 ‘헬로시티-리장’ 문화교류 공연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리장 시민 600여명이 참가한 행사에서는 리장을 대표하는 북춤과 나시족의 민속무용, 한국의 봉산탈춤과 진도 북춤 등이 어우러졌다. 지진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작은 초등학교와 한국 기업이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양국 관계가 새 출발 하는 시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이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리장 고성과 옥룡설산엔 한국인의 발길이 끊겼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소도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었는지 여실히 증명하는 도시가 바로 리장이다. 대한항공 채종훈 중국지역본부장은 “리장에 오는 유일한 하늘길이었던 인천~쿤밍 노선은 사드 때문에 적자만 쌓였고 리장에 전세기를 언제 다시 띄울지도 막막했는데, 이젠 희망이 보이고 있다”면서 “이번 교류가 한·중 관계 재정립의 튼튼한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리장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할머니 대신 손수레 끌어준 경찰관

    할머니 대신 손수레 끌어준 경찰관

    시골 길. 할머니의 수레를 대신 끌어준 경찰관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전남 구례경찰서 산동파출소의 한영현(55) 경위다. 한 경위는 지난달 26일 구례 산동면으로 순찰을 나갔다가 길에 떨어진 토란대를 줍는 할머니를 만났다. 순찰차에서 내린 한 경위는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토란대가 담긴 수레를 밀던 할머니는 오르막길에서 토란대가 우르르 쏟아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씩 주워담고 있던 것. 이에 한 경위는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으신 채 길에 떨어진 토란대를 줍고 계셨다”며 “저의 할머니 같다는 생각에 길에 떨어진 토란대를 담아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어어 한 경위는 “경사도 심한 곳이고 해서 사고 예방차원에서 할머니 댁까지 수레를 끌고 함께 간 것뿐”이라며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고 한 행동은 아니다. 본연의 일을 한 것일 뿐이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 경위의 말처럼 별일 아닐 수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수 있다. 하지만 팍팍한 일상 속 누구나 쉽게 외면하고,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도움을 손길을 당연한 일이자 직업적 소명으로 여기는 경찰관의 모습은 추운 겨울, 따뜻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도 강사로 부른 옥천 시골 이장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골 마을 강단에 선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이장들이 초청한 것으로 이시종 충북지사도 부름을 받았다. 동이면 이장협의회는 올해 4·5회 ‘좋은 이장학교’ 강사로 이 지사와 박 시장을 초청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지사는 27일 ‘내년에도 웃으며 이장합시다’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박시장은 다음달 2일 ‘마을 공동체의 중요성과 리더의 역할’에 대해 얘기할 참이다. ‘좋은 이장학교’는 지난해 시작돼 그 해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등이 강사로 나섰다. 인구 3000여명의 면지역 이장 교육 강사진으로는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다. 학교 운영비는 대청댐 수몰지역 주민지원사업비로 충당한다. 협의회 이장 20여명이 강사를 선정하고 초청하는 방식은 ‘불도저식’이다. 이장들이 모여 듣고 싶은 강연 주제를 논의하면서 강사 후보를 추천한다. 일단 후보가 결정되면 인맥을 총동원해 관철될 때까지 설득하거나 일방적(?)으로 통지해 발을 못 빼게 한다. 이번에도 이 지사의 경우 옥천군청을 통해 초청을 요청했고, 박 시장은 과거 시민단체 활동시절 인연을 맺은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에게 가교 역할을 맡겼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넉 달 전 강의 요청을 받았지만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늦어졌다”며 “과거 박 시장과 인연이 있었던 데다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는 이장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이 된 뒤 규모가 가장 작은 강연이지만 우리나라 인구 1000만 수도의 리더와 시골 농촌 리더가 만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요즘 이장은 행정기관의 잔심부름에 그치지 않고 행정의 최일선 조직으로서 능력이나 리더십이 마을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공부’하기 위해 ‘좋은 이장학교’를 만들었고, 좀더 고급(?) 강의를 듣고 싶은 욕심이 유명 강사 초청으로 이어졌다. 박효서(51) 동이면 이장협의회장은 “이장들 리더십 개발을 위해 마련한 강좌지만 걸출한 강사진을 보고 찾아오는 일반 수강자도 적잖다”면서 “내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강사로 모시자는 농반진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장들의 참여열기가 뜨겁다”고 웃었다.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전철 객차에 나타난 뱀 맨손으로 잡은 남성

    전철 객차에 나타난 뱀 맨손으로 잡은 남성

    만약 출근길 전철 객차 안에서 뱀이 나타난다면? 23일(현지시간) 영국 더 선은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전철 객차에서 뱀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남성의 영상을 소개했다. 자바 섬 보고르에서 자카르타로 가는 전철 안. 뱀은 사람들이 붐비는 통근 전철 선반에서 나타났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뱀의 출현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했으며 기관사는 전철을 망가라이 역에서 비상정지시켰다. 출동한 철도 경비원도 독사일 지 모를 무서움에 뱀을 함부로 잡지 못한다. 이때 갑자기 배낭을 맨 한 남성이 나서 뱀의 꼬리를 잡아 바닥에 머리를 내동댕이쳐 죽게 만든 뒤, 객차 문밖으로 내던졌다.JKT INFO(@jktinfo)님의 공유 게시물님, 2017 11월 21 오전 1:53 PST전철 운행 업체 KCI는 “뱀이 승객의 가방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면서 “뱀이 어떤 종류와 맹독사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으며 승객의 부상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승객들을 놀라게 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시골 지역에서는 대중교통 이용 시 사람들이 가축이나 애완 동물을 함께 데리고 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도심 대중교통에서는 동물과 함께 탑승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진·영상= JKTINFO INSTAGRAM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길섶에서] 두껍바위/서동철 논설위원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시골 군(郡)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얼마 전부터 받아 보고 있다. 그 고장과 관련된 문화행사에 갔다가 지역 신문 기자와 우연히 명함을 주고받은 직후부터 신문이 배달되고 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신문대금을 내라는 지로용지가 붙어서 오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계속 봐야 할지 고민도 없지 않았다. 얼마 전 이 신문을 넘겨 보다 ‘두껍바위’라는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갔다. 마을의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기로 한 날 큰비가 내렸고, 약속을 지키려 불어난 냇물을 건너던 처녀가 급류에 떠내려가자 총각은 두꺼비 모양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그런데 그 두껍바위가 사라졌다가 30년 만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였다. 경지정리를 하면서 간 데를 알 수 없던 두껍바위를 도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전설은 면지(面誌)에도 담겼다고 한다. 마을에는 소중한 문화유산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주요 기사로 썼다. 인간의 일이 아닌 것 같은 흉포한 뉴스만 넘치는 요즈음이다. 소박하지만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사들을 더 볼 수 있다면 신문값을 내도 될 것 같다. dcsuh@seoul.co.kr
  • 이름이 ‘즈푸바오’인 中 50대男, SNS 스타 된 사연

    이름이 ‘즈푸바오’인 中 50대男, SNS 스타 된 사연

    “마윈 덕분에 출세해서 방송에도 출연하고, 비행기도 탔으니, 꼭 한 번 만나 감사 인사 전하고 싶어요” 산동의 한 50대 농부는 이름이 ‘즈푸바오(支付宝)’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알리바바의 결제 시스템 ‘즈푸바오’와 발음은 물론 한자까지 똑같다. 평범한 시골 농부였던 즈푸바오씨가 한순간 ‘왕홍’(网红·SNS 스타)이 된 사연을 매일인물(每日人物)이 20일 소개했다. 그는 1962년 산동성 이난(沂南)현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에서는 4명 중 한 명이 ‘즈’(支)씨 성(姓)을 가질 만큼 흔한 성이다. 그의 형은 ‘즈푸순’(支付顺), 남동생은 ‘즈푸파’(支付发), 여동생은 ‘즈푸화’(支付花)다. 한평생 ‘즈푸바오’로 불리며 살아온 그가 ‘왕홍’이 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누군가 그의 신분증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폭주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중국의 최고 오락 프로그램인 ‘텐텐샹샹’(天天向上)에서 출연 요청을 받아 난생 처음 비행기도 타고, 방송 출연도 했다. 이후 TV, 신문 등에서 그를 찾는 경우가 늘면서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그가 운영하는 상점 이름도 ‘즈푸바오 상점’으로 바꿨다. 그는 “상점 이름을 바꾼 뒤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러 타지에서 가게를 방문해 그와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그는 한번 꼭 마윈 회장을 만나고 싶다고 전한다. 왜냐하면 그의 신분증을 보는 사람마다 “마윈을 본 적 있느냐?”고 묻기 때문이다. 마 회장을 직접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 회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시골의 평범한 농민으로 살아갔을 테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이름 덕분에 인생이 바뀔 만큼 유명해졌으니, 꼭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公슐랭 가이드] 나홀로족 홀리는 ‘집밥 한·일전’

    [公슐랭 가이드] 나홀로족 홀리는 ‘집밥 한·일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탄생한 세종시 주변에도 요즘에는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예전처럼 황량한 느낌만이 전부는 아니다. 정부세종청사 주변에는 세종호수공원과 잘 정비된 자전거길이 바쁜 출근길을 재촉하는 공무원들을 반긴다. 하지만 아직은 2% 부족하다. 곳곳을 둘러보면 여전히 고층 건물을 쌓아올리고 있는 대형 크레인들이 가을 냄새를 풍기는 단풍나무들과 공존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소박하고 담백한 집밥을 찾게 된다. ‘나홀로 공무원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박리 ‘콩대박’… 직접 콩 키워 손수 빚은 두부에 구수한 된장찌개 ‘콩서방·콩각시 정식’ 정부세종청사에서 20여분 정도 차를 타고 금강을 건너가면 바로 금남면 대박리가 나온다.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이 드는 곳. 특히 담백하고 건강한 집밥이 생각나면 자주 찾게 되는 맛집이 바로 금남면 대박리에 위치한 ‘콩대박’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농촌진흥청과 세종시 농업기술센터가 특별히 지정한 농가 맛집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직접 재배한 국내산 콩으로 만든 된장찌개와 다양한 콩 요리를 맛볼 수 있어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대표 메뉴는 두 가지다. 콩서방 밥상은 1만 5000원, 콩각시 밥상은 2만 5000원으로 집밥 메뉴답게 이름도 콩서방, 콩각시로 붙였다. 순두부, 콩전, 콩고기, 두부 등 콩요리와 수육, 고등어무조림, 샐러드, 참외·고추·마늘 장아찌, 샐러드, 표고버섯강정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후식인 오미자차와 주전부리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건강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매력 만점인 곳이다. 이 식당의 트레이드마크는 직접 재배한 국내산 콩으로 아침에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전 예약은 필수.# 아름동 日 가정식‘키햐아’… 입에서 살살 녹는 연어 샐러드· 비법간장으로 맛 낸 돈부리 정부세종청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인 세종시 아름동에 자리잡고 있는 맛집으로 일본식 집밥이 생각난다면 반드시 찾게 되는 곳이다. 심플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일본 가정식 전문점 ‘키햐아’. 입안에서 살살 녹는 연어샐러드를 먹다 보면 탄산이 식도를 넘어갈 때 간질거림을 긁어 주는 소리를 뜻하는 ‘키햐아’를 떠올리게 된다. 순간, 누구나 시원한 생맥주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곳. 별도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식사시간에 항상 대기가 있지만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이 식당의 대표 인기메뉴는 두툼하면서도 신선한 생연어와 케이퍼, 양파 등 각종 채소와 크랜베리, 어니언·오리엔탈 드레싱으로 맛을 살린 연어샐러드다. 가격은 1만 6000원. ‘키햐아’만의 비법간장으로 맛을 낸 규동, 가츠동, 에비동 등 돈부리도 유명하다.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숙주 등 갖은 야채와 신선한 해산물로 요리한 매콤하고 얼큰한 나가사키 우동과 사이드로 곁들여 나오는 다코야키, 아게다시 등 다양한 일본식 요리도 맛볼 수 있다.임형진 명예기자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실 홍보팀장)
  • [백승종의 역사 산책] 백인걸, 기회주의자를 몰아내다

    [백승종의 역사 산책] 백인걸, 기회주의자를 몰아내다

    1545년(명종 즉위) 가을, 외척 윤원형이 대비의 ‘밀지’(密旨)를 얻어 사림을 해치려 하였다. 그때 백인걸(白仁傑)이 언관으로 있었다. 그는 밀지의 그릇됨을 홀로 아뢰다 옥에 갇혔다. 동료 유희춘이 탄복하였다지만, 백인걸은 겨우 죽음을 면해 먼 시골로 유배되었다.곤궁하고 불우하던 시절, 백인걸은 날마다 ‘태극도설’과 ‘사서’ 등을 읽었다. 스승 조광조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세월이 20년가량 이어졌다(송시열, ‘송자대전’, 제21권). 선조가 등극하자 드디어 백인걸이 다시 기용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그는 조정에 웅크리고 있던 기회주의자들을 적발해, 그들의 관직을 거두게 하였다. 광평군 김명윤(金明胤)도 소위 청산 대상이었다. 김명윤은 본래 ‘현량과’를 통해 조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 기민하게 노선을 바꾸었다. 김명윤은 다시 과거에 응시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의 변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이이,‘석담일기’, 상권). 김명윤의 변모에는 끝이 없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권세가에 붙어, 반대파인 윤임과 봉성군 이완에게 역모죄를 씌웠다. 김명윤의 무고로 인해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윤원형 등 외척세력이 권세를 잃었다. 그러자 김명윤은 또다시 입장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경연에 나아가 사화의 희생자들을 편들었다. “을사년에 처벌된 선비들 가운데 억울한 사람들이 많사오니, 전하께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어디 그뿐인가. 청명(淸名)이 높은 남명 조식 등이 발탁되자, 김명윤은 청류(淸流)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였다. “이 선비들을 언관으로 삼아 임금님을 측근에서 모시게 해야 마땅합니다.” 변화무쌍한 김명윤은 항상 ‘농단’(?斷)을 꾀하였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놓치지 않고자 가면을 썼다. 그러나 진즉부터 백인걸은 그의 잔꾀를 알고 있었다. 이야기는 1544년 인종의 즉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인종에게 기대를 거는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을 대신하여 언관들은 기묘사화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의 상소문에는, “기묘의 선비는 모두 정직합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었다. 지평(정5품) 백인걸은 이 표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기묘년의 선비들 가운데 현명한 분들이 많았으나, 어찌 모든 이가 정직하다고 말하겠소. 현량과가 혁파된 뒤 과거시험장을 기웃거린 사람도 있었잖소. 과연 이런 사람을 정직하다고 말하겠소.” 백인걸은 김명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훗날 백인걸은 김명윤의 면전에서, “그대는 천만 번씩이나 변신하는 사람이오!”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 소식을 듣고 식자들이 통쾌해하였다. ‘석담일기’에 그 전말이 나온다. 역사기록은 무거운 것이다. 이익만 좇아 함부로 굴다가는 후세의 비웃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최근 잇따라 폭로되고 있는 역대 정권의 비리 사건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친다. 백인걸은 참찬(정2품)을 끝으로 조정을 떠났다. 향년 83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계 성혼 및 율곡 이이와 함께 학문을 닦았다. 성혼과 이이는 청년시절 그의 문생이었다. 백인걸은 이이와 성혼이 김명윤 같은 썩은 선비를 대신하여 나라의 믿음직한 동량이기를 바랐다(‘우계연보’와 ‘송자대전’).
  • [그 책속 이미지] 땔감이 된 나무들… 마음을 녹이네

    [그 책속 이미지] 땔감이 된 나무들… 마음을 녹이네

    노르웨이의 나무/라르스 뮈팅 지음/노승영 옮김/열린책들/280쪽/1만 5800원세상의 어지러움과 상관없이 늘 보람과 기쁨을 주고 따뜻한 기운을 보장하는 것. 주변에 이런 게 뭐가 있을까 찾자 하면 쉽사리 답을 내기 힘들다. 하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바로 장작을 패고 쌓아 놓고 한기가 스며드는 겨울이면 불 곁에서 쉬는 것이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땔감으로 어떻게 다른지, 장작을 쪼갤 때 모탕(나무를 자를 때 받쳐 놓는 나무토막)의 높이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 장작을 쌓는 방식에 따른 장단점은 뭔지 등 책은 그야말로 땔감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그러나 이 정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과거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책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30만부 넘게 팔리며 유럽 전역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다. 노르웨이 남부 시골에서 직접 키운 자작나무로 장작을 쪼개는 소농 아르네 피엘드의 말을 들어 보자. “이 일에는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반복적이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죠. 하루하루의 삶에서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 마음을 어지럽히고 기분을 울적하게 합니다. 하지만 모탕 옆에 서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안 듭니다. 장작을 팰 때는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이보다 즐거운 것은 없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개냥’ 윤은혜 변천사, ‘베이비복스’부터 ‘고은찬’까지

    ‘개냥’ 윤은혜 변천사, ‘베이비복스’부터 ‘고은찬’까지

    ‘개냥’으로 돌아온 윤은혜에 대한 관심이 종일 뜨거운 가운데, 윤은혜의 데뷔부터 현재까지 변천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16일 전날 방송된 tvN ‘대화가 필요한 개냥’에는 가수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윤은혜(34)가 등장해 큰 관심을 받았다. 윤은혜는 지난 2013년 KBS2 드라마 ‘미래의 선택’을 마지막으로 좀처럼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후 2015년 중국 동방TV ‘여신의 패션’에 출연했지만 ‘의상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국내 예능 프로그램으로 복귀하자, 과거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의 모습이 관심을 받고 있다. 윤은혜는 지난 1997년 결성된 5인조 여성 그룹 베이비복스로 데뷔했다. 윤은혜는 팀 결성 2년 뒤인 1999년 합류했다. 베이비복스는 ‘Get Up’, ‘Killer’, ‘Missing You’, ‘배신’, ‘인형’, ‘우연’, ‘나 어떡해’ 등 곡들을 히트시키며, 1990년대~200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그룹으로 우뚝 섰다. 이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던 베이비복스는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됐다. 당시 중국 베이징에는 베이비복스의 이름을 딴 학교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팀에서 막내였던 윤은혜는 예능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당시 SBS 대표 예능이었던 ‘X맨 일요일이 좋다’에서 가수 터보 멤버 김종국과 ‘커플 장사 만만세’로 자주 팀을 이루며 러브라인을 형성했다. 또 수중 고싸움에서 강호동을 밀어내는 괴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천하장사’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06년에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궁’을 통해 연기자로서 변신을 시도했다. 드라마 초반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여고생 ‘신채경’ 역을 맡아 원작 캐릭터와 달리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또 다른 재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달아 KBS2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에 캐스팅, 의상 디자이너 역을 맡은 윤은혜는 화려한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매회 주목을 받았다. 극 중 시골 포도 농장에 내려가면서부터는 형형색색의 ‘몸빼바지’ 패션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중 2007년 최고의 화제작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을 만나면서 윤은혜는 ‘고은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긴 머리로 여성스러움을 뽐냈던 그는 숏커트의 남장여자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특히 상대 배우 공유와의 찰떡같은 연기 호흡으로 많은 여성 시청자의 부러움을 샀다. 이후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 ‘내게 거짓말을 해봐’, ‘보고 싶다’, ‘미래의 선택’ 등에 출연했다.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에서는 배우 박한별, 차예련, 유인나와 함께 주연을 맡기도 했다. 한편 윤은혜는 복귀 소식을 전하면서 “베이비복스 해체되고 나서 나에게 ‘잘한다’고 해준 게 예능이었다”며 “SBS ‘X맨’ 이후 12년 만에 예능에 출연하는데, 떨려서 잠이 안 왔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벵골보리수 이야기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벵골보리수 이야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더욱 멋진 곳으로 만들어 주는 나무가 있다. 기이하게 생긴 벵골보리수라는 그 나무는 오래된 유적지에 고색창연한 빛깔을 더해 준다. ‘반얀트리’라고도 불리는 그 나무는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지역과 대만에 이르기까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곳에 무성하게 자란다. 인도 콜카타에는 ‘그레이트 반얀트리’가 자라는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숲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그것이 한 그루의 나무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그 나무를 ‘룽수’(榕樹)라고 부른다. 인도의 반얀트리에 비하면 좀 작지만 한 그루가 숲을 이루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그런 룽수를 ‘독목성림’(獨木成林) 혹은 ‘독수성림’(獨樹成林)이라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룬다”라는 뜻이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의 중심 도시인 푸저우(福州)도 ‘룽수의 도시(榕城)’로 불릴 정도이며, 광시좡족자치구를 비롯해 구이저우성 동남부에 이르기까지 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 어디에나 커다란 룽수가 자란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대만 거리에서도 긴 수염을 땅바닥에 늘어뜨린 룽수가 곳곳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열대 지역 사람들에게 룽수는 고향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룽수는 어느 정도 자라면 가지에서 수염처럼 가느다란 뿌리가 생겨나 땅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이를 가리켜 ‘기근’(氣根)이라 하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공기를 품고 있는 뿌리’ 정도가 되겠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뿌리가 내려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해 ‘나무폭포’라고도 불린다. 그렇게 땅바닥을 향해 내려온 수염들이 땅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큰 나무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작은 줄기들이 된다. 그렇게 수백 년 자라다 보면 한 그루의 나무가 거대한 숲이 되는 것이다. 더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을 하다 힘이 들면 그 나무 아래 큰 그늘로 들어가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힌다. 노인들은 아이들에게 조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됐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어른들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들은 세상과 인간의 시작에 관한 신화, 민족 이주의 역사를 들으며 가물가물 잠이 든다. 그들의 신화 속에서는 달 속에 계수나무가 아닌 룽수가 서 있다. 그런 따뜻한 기억들이 아이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은 성장해서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고향을 잊지 않게 해 주는 힘이 된다. 아무리 경제개발이 중요하다고 해도 고향 마을 물가에 서 있는 오래된 룽수만은 베어내지 못하게 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되기도 한다. 룽수는 뽕나무과에 속해 나무의 질이 무르다. 단단하지 못해 건축 자재로 쓰이지 못한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면 룽수는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나무가 아니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 낸 무성한 잎과 가지 사이로 수많은 새들과 벌들이 날아온다. 새와 벌들이 깃들여 사는 그 나무는 그들의 집이 되고, 룽수 열매를 먹으며 그곳에 깃들인 새와 벌들은 인간을 위해 수많은 날갯짓을 하며 꽃가루를 옮겨 준다. 베어내어 목재로 팔 수 있는 단단한 나무들만이 쓸모 있는 나무는 아니다. 한 몸에서 수천 개의 뿌리가 나오고 다시 그것을 줄기로 삼아 거대하게 자라난 나무가 만들어 내는 큰 숲은 어머니 품처럼 사람들을 보듬어 준다. 그런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람은 물론이고 새와 벌까지 모두 품어 주는 그 나무는 그래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나무가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만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중국 남부 지역 시골 마을 물가의 커다란 룽수들이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도시에도 그런 ‘쓸모없듯 쓸모 있는’ 나무들이 많아진다면, 단언컨대 우리의 어두운 얼굴은 초록색 반얀트리처럼 빛나리라.
  • [고진하의 시골살이]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

    [고진하의 시골살이]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

    달력과 시간의 굴레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자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등 존재의 대극(對極)과 마주치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이것을 깨달은 성인은 대극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예술을 제시했다.붓다의 제자 중 비파 타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이가 있었다. 어느 날 비파를 조율하고 있는 악사에게 스승 붓다가 물었다. “줄이 느슨하면 어떻더냐” “소리가 나지 않지요.”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더냐“ “줄이 끊어졌습니다.” “줄을 좀 늦추고 조음(調音)이 알맞으면 어떻더냐” “여러 소리가 고르고 아름다웠습니다.” 붓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를 배우는 것도 이와 같아서 마음가짐이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그렇다. 우리는 삶의 균형을 잘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끝없는 변화의 연속이기 때문에 삶의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한무릎공부로 간단히 되는 일이 아니다. 악사가 현악기 앞에 앉으면 먼저 줄을 고르듯 바다 물결처럼 천변만화하는 우리 삶에도 균형을 잡기 위한 조율이 끊임없이 요청된다. 나는 젊은 시절을 바닷가에서 살았다. 똑같은 바다지만 바다 빛깔은 늘 달랐다. 어느 날 나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됐다. 바다의 빛깔은 하늘의 변화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하늘이 투명한 쪽빛이면 바다도 쪽빛으로 변하고,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있으면 바다도 불투명의 잿빛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기가 누리는 행복이 지속하기를 바라지만, 행복의 빛깔이 온종일 지속될 수는 없다. 연인들의 사랑이 아무리 지극하다 해도 연인을 위한 사랑 노래를 온종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에는 불행이 끼어들게 마련이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어느 순간 미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 몸의 근육에도 긴장과 이완이 필요하듯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때때로 끼어드는 불행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연인들의 사랑이 갓 뜯어 낸 푸성귀처럼 신선도를 지니려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줄에 묶어 놓은 두 마리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온종일 싸움이 그치지 않더라. 연인들도 그렇다. 죽으면 죽었지 헤어지고 못 산다는 어제의 연인들이 함께 못 살겠다고 오늘 갈라지는 것은 사랑에도 균형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무뎌진 낫을 갈다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에도 나는 농사일로 분주한 아버지를 도우려 소꼴을 베러 가곤 했는데, 소꼴을 베러 가려면 먼저 낫을 갈아야 했다. 날이 많이 무뎌진 낫은 먼저 거청숫돌로 갈고 나서 다시 고운 숫돌로 갈아 날을 곱게 세웠다. 그렇게 낫을 갈고 있으면 아버지는 언제나 잔소리를 하셨다. 너무 날카롭게 갈면 금세 무디어지니 적당히 갈아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그런 잔소리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소중한 지혜였다. 어디 숫돌에다 낫 가는 일뿐일까. 노자도 ‘도덕경’에서 말했다. 금화가 집안에 그득하면 그것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어렵고, 부와 명예로 교만하면 스스로 몰락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고. 이런 지혜를 터득한 중국의 여곤(呂坤)이란 이는 ‘아름다움’조차 멀리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음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과식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여인은 사내들로 하여금 미색에 빠지게 만들며, 아름다운 물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탐욕에 사로잡히게 하고, 아름다운 일이나 아름다운 경치는 그것에 연연하게 만들어 끝내는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곤은 자기 집에 ‘원미헌’(遠美軒)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집’이란 뜻. 그렇다면 여곤은 아름다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경사가 존재의 균형을 잃고 불행을 불러올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름다움마저 경계하며 자기 삶을 조율할 줄 아는 여곤이란 이의 균형의 예술이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 ‘무서운 10대’ 6명이 술 취한 동창생 성폭행

    광주고법 전주1형사부는 술에 취한 동창생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A(17·무직)군 등 청소년 6명을 전주지법 소년부로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전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만취한 동창생 B양을 번갈아가며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벌주 게임으로 B양을 술에 취하게 한 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소년법 제2조에서 정한 소년으로서 보호처분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어 소년부에 송치했다”고 판시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송영길 “이명박 해외계좌서 리베이트 단서…앞으로 밝혀질 것”

    송영길 “이명박 해외계좌서 리베이트 단서…앞으로 밝혀질 것”

    “정치 보복? 4대강·국방 등 비리 밝혀 바로잡기 위함”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13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리베이트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송영길 의원은 “다스 문제, BBK 문제에,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비밀 해외계좌를 통해서 자금 운용한 것을 제가 일부 단서를 지금 찾고 있다. 어떤 형태로 리베이트를 받아서 그 돈을 해외에서 계좌에서 움직이는 단서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추적돼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각 사법당국들이 열심히 찾고 있다면서 “저도 국정감사 준비하면서 조사해봤다. 해외 계좌 관련해서 앞으로 밝혀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진행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적폐청산이 자신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송 의원은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저는 수용이 안 된다”고 어이없어했다. 송 의원은 “그런 분이 지난 정권 때 시골에 가서 살고 계시는 노무현 대통령을 잡아다가 구속을 시키려고 소환하고 TV에 생중계를 하고 온 망신을 주고서, 국정원 시켜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유언비어까지 날포하고, 결국 죽음에 몰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반박했다. 그는 “이것은 정치보복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20조가 넘는 자원을 다 낭비하고 4대강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국방 비리 등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문제”라면서 “국정원이나 기무사, 정보사, 이런 군과 정보기관을 사적인 정치도구로 악용한 것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해를 미치는 행위이며 일종의 반역행위이고 이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콜센터 상담원’을 향한 분풀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콜센터 상담원’을 향한 분풀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밤길 조심해라.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공포 영화 대사도, 무협 소설 속 대화도 아니다. 한 보험사 고객센터 상담원 이모(39)씨가 고객한테서 들은 폭언이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종종 수화기 너머 고객의 짜증을 듣거나 무차별적 언어폭력을 당한다. “상담원 주제에 어디 말대꾸를 해?”, “너 대학은 나왔냐?”, “아가리 닥쳐!” 등 그들이 듣는 언어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인격모독부터 욕설, 다그침, 기준을 벗어나는 억지 등 상담원을 울리는 진상고객들의 유형은 제각각이다. 상담원 이모씨는 “상담 중 죄송하다고 하면, 뭘 잘못했는지 말해보라고 다그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고객이 있다. 그런 고객의 전화를 받고 나면 긴장성 배탈이 난다”며 업무 고충을 털어놨다. 올 초 한 통신사 콜센터 현장 실습을 나간 한 여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의 부모는 콜센터 상담 업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야기해 죽음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어린 실습생의 죽음 후에야 상담원의 고충이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공개한 ‘콜센터 근무환경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근무자의 약 93.3%가 근무 도중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반말( 59.3%)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기 말만 하기(58.2%), 막무가내로 우기기(55.8%), 욕설 및 폭언(51.5%), 고성(38.6%), 비하 및 인격모독성 발언(38.5%), 말꼬리 잡기(32.6%), 협박(17.6%), 성희롱(16.4%)이 뒤를 이었다. 결국 콜센터도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전화 끊을 권리’를 내세운 것이다. 진상 고객 대응용 매뉴얼도 도입했다. 언어폭력을 하는 고객에게는 몇 차례 경고한 뒤, 그래도 폭언이 이어지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는다는 방침이다. 반응은 효과적이었다. 이른바 ‘끊을 권리’를 도입한 한 업체는 언어폭력이 60% 넘게 줄었다고 밝혔다. 상담원들이 변화를 피부로 느낄 정도라고 한다. 상담원 손모(34)씨는 “욕설자제 안내를 하면, 흥분한 고객들이 거친 표현을 줄이는 양상을 보인다”며 “이제 블랙컨슈머에게도 당당하게 응대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고객센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상담사의 불친절한 응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보험사 남모(41) 상담팀장은 “시골 노인께서 자동이체 변경 업무를 보는데, 바로 알아듣지 못한다며 한숨을 쉬거나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하는 상담원도 있다”며 “모든 문제를 한쪽 잘못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라며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객은 왕이다’는 이미 구시대적 표현이 되었다. 왜 그럴까. 이제 무조건 복종하는 신하와 제멋대로 폭언하는 왕은 없다. 그런 신하는 직원이 아니다. 그런 왕 또한 고객이 아니다. 수화기 뒤에 숨어 비인간적 언사를 행하는 것은 왕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시대인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게 어떨까.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헛헛하지만 따뜻한 이주 빈민들의 삶…

    헛헛하지만 따뜻한 이주 빈민들의 삶…

    내 마음의 낯섦/오르한 파무크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652쪽/1만 6800원오랜 시간 머물렀던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이웃, 새로운 일터, 넉넉지 않은 살림 형편, 늘 마음 한 편에 자리잡은 불안함…. 그럼에도 새롭게 둥지를 튼 보금자리의 온기를 뭉근하게 지킬 수 있는 건 가족과 연인의 사랑 덕분이다. 터키를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의 새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은 이렇듯 도시로 이주한 빈민의 생생한 삶을 터키의 현대사와 함께 풀어낸다.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작가가 그간의 작품에서 이스탄불을 중상류층의 공간으로 다뤄 왔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빈민들의 터전에 주목한 점이 사뭇 인상적이다. 1950~60년대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을 찾은 이민자들이 지은 ‘게제콘두’(무허가 집)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아파트로 변모하는지, 그 당시 빈민가의 삶이 어땠는지 등 작가의 꼼꼼한 취재 덕분에 방대한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하다.소설은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전통 음료인 ‘보자’를 파는 거리상인 메블루트와 그 가족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인 메블루트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놓여 있다. 시골을 떠나 이스탄불에 온 메블루트는 어느 날 사촌의 결혼식장에서 ‘라이하’라는 이름을 지닌 소녀와 눈을 마주친다. 메블루트는 사촌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자신이 첫눈에 반한 라이하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한밤중에 도망친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확인한 소녀의 얼굴은 그가 사랑에 빠진 미녀가 아니었다. 사실 메블루트가 반한 소녀는 라이하의 동생인 사미하. 사미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쉴레이만이 메블루트의 도피 계획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메블루트를 속인 것이다. 자신이 흠모했던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얼떨결에 결혼하게 된 메블루트가 당황하고 좌절할 것이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메블루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채 라이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삶을 꾸리게 된 자신을 행운아라고 여긴다.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도 매사 감사해할 줄 아는 메블루트의 삶을 보고 있자면 그의 삶 자체가 그가 길거리에서 파는 ‘단맛도 나고 신맛도 나는’ 보자와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1968년부터 2012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메블루트와 주변 인물의 삶의 여정을 좇다 보면 자본주의에 따른 이스탄불의 급격한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십년간 이 도시의 골목길을 닳도록 걸어다닌 메블루트는 “도시는 더이상 거대하고 친숙한 집이 아니라 더 많은 콘크리트와 거리, 마당, 벽, 인도, 상점들이 추가된 신이 없는 장소로 변해 버렸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안식처였던 도시가 옛 얼굴을 잃는 것을 볼 때마다 허무함을 느끼는 메블루트는 곧 작가를 대변한다. 국내에 소개된 파무크의 모든 작품을 번역한 이난아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교수에 따르면 “파무크의 작품 대부분에서 생태주의 관점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이스탄불의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점점 초록빛이 사라지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없이 차가운 도시의 풍경과는 다르게 매순간 자신이 머문 곳에서 자족할 줄 알며, 사랑을 잃지 않는 인간 군상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깨달음도 덧없어라… 죽은 영혼 달래 주던 야외 법당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깨달음도 덧없어라… 죽은 영혼 달래 주던 야외 법당

    충남 서산 개심사(開心寺)는 아름다운 것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절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절집이 일으키는 상승작용이 이런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심사는 이른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型) 사찰이다. 산 중턱 경사지에 큰법당을 비롯한 4개의 절집이 정사각형 마당을 감싸고 있다. 조선 후기를 특징짓는 가람 배치라 할 수 있다.개심사 사적기(事蹟記)에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개원사(開元寺)라 했다’고 적혀 있다. 진덕여왕 5년은 651년이고, 의자왕 14년은 654년이다. 게다가 불교사에 이름을 남긴 혜감국사(1249~1319)는 고려시대 고승(高僧)이다. 사적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창건 시기는 미궁에 빠져든다. 사적기는 양면 괘지에 만년필로 썼으니 근년에 옮겨 적고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고려 국가기관이 보수할 만큼 가치 있던 사찰 그런데 2004년 개심사 대웅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腹藏)에서 ‘1280년(고려 충렬왕 6년) 승재색(僧齋色)이 보수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발견됐다. 승재색은 불경 간행과 같은 불사(佛事)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국가기관이었다. 복장이란 불상의 내부에 모신 불경 같은 상징물을 이른다. 보수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면 불상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국가기관이 보수에 나섰다는 것은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개심사지만 그저 한적한 시골 사찰이 아니었음을 알려 준다.사적기는 이어 1350년(충정왕 2년) 처능대사가 대웅전과 기타 전당(殿堂) 그리고 요사(寮舍) 일체를 중건하고 개심사로 개칭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 내용은 그런대로 믿을 만하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큰법당인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오층짜리 석탑은 백제시대 석탑의 전형이지만, 개심사 것에서 백제 특유의 미감(美感)은 느껴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처능대사가 이 석탑도 세운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처능대사의 중창이란 몽골의 침입이나 왜구의 발호로 훼손되거나 폐허화했던 절의 면모를 일신한 불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1231년(고종 18년)부터 1259년(고종 46년)에 걸친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몽골 침입기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는 등 많은 사찰이 피해를 입었다.●고려 처능대사 개원사→개심사 개칭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세력을 키운 왜구가 한반도 전체를 위협했는데, 충청도 서해안 지역은 그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같은 서산의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역시 이 시기 왜구가 약탈해 일본에 가져간 것으로 부석사 측은 보고 있다. 일본 쓰시마의 한 절에서 도둑이 훔쳐 다시 들여온 부석사 관세음좌상은 지금 그 소유권을 놓고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개심사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잿더미가 되기도 했다. 1475년(조선 성종 6년) 충청도 병마절도사 김서형이 훈련을 한다며 군졸을 징발해 사냥을 하다 산불을 내는 바람에 금산(禁山)의 소나무는 물론 개심사까지 태운 것이다. 지금의 대웅전과 심검당은 이 때문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요사채인 심검당은 1962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1477년 세 번째로 중창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구부러진 나무를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기둥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한 심검당의 부엌은 후대에 이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스님의 생활공간에 이어 예배공간인 대웅전은 1484년 지었다. 지금 개심사는 중생의 극락왕생 소원을 들어주는 정토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각이 안양루(安養樓)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것도 그렇다. 안양이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절의 큰법당은 보통 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이라고 이름 짓는다. 그런데 개심사 큰법당은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곡절이 있을 듯싶다. 개심사 들머리의 돌계단을 기분 좋게 오르다 조금 숨이 찰 때쯤 오른쪽으로 안양루가 나타난다. 그 바깥에는 큰 글씨의 전서체로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라고 쓴 현판이 보인다. 해강 김규진(1868~1933)의 글씨라고 한다. 큼직큼직하면서 모나지 않은 해강의 글씨는 개심사의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충청남도 서쪽에 남북으로 자리잡은 산줄기가 가야산이다. 이 산 서쪽에는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불과 보원사 터, 산 동쪽에는 가야사 터가 있다. 둘 다 역사가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큰 절이었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해당한다. 개심사가 이고 있는 산봉우리는 별도로 상왕산이라고도 한다. 코끼리는 부처를 상징한다. 부처는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에서 멀지 않은 시사가야에서 1000명의 비구에게 설법을 했다. 시사가야가 가야산이다. 가야산은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부른다. 상두산은 상왕산과 같은 뜻이다. 그러니 가야산이 곧 상왕산이다. 이런 상징성을 부여한 산에 지은 절이니 초창 시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양란 거치면서 정토사찰로 성격 변화한 듯 그런데 서산 지역에 외적의 침입이 이어지면서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중생의 신앙 형태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깨달음보다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극락왕생과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는 기능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이것이 개심사가 정토사찰로 성격을 바꾼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큰법당의 이름은 대웅전을 유지해 상왕산의 상징성도 이어 갈 수 있었다. 개심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정토사찰의 성격을 더욱 강화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적기에는 1613년(광해군 5년) 대웅전 이후 각 전각과 요사를 중수하고 시왕전(十王殿)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왕전은 명부전의 다른 이름이다. 1941년 대웅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명에는 1644년(인조 22년) 중창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889년 작성된 개심사 중창 수리기에는 명부전을 1646년(인조 24년) 신축했다고 적혀 있다. 연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양란(兩亂)이 중수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안양루와 무량수각을 새로 지어 중정형 구조를 완성한 것도 이때일 것이다. 중정형 사찰에서 마당이 갖는 의미는 크다. 많은 신도가 참여한 가운데 법회를 열 수 있는 야외 법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야외 법회에 내걸 대형 불화(佛畵)도 필요해졌다. 괘불(掛佛)이다. 괘불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학계는 이 걸개그림의 발생을 임진왜란·병자호란과 직접 연결 짓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 좁은 법당에서는 고혼(孤魂)을 위로하는 법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넓은 마당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걸맞은 크기의 탱화도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개심사에 있는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은 1772년(영조 48년)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산회괘불탱 이전에도 이 절에는 당연히 다른 괘불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대웅보전 앞에는 깨져서 쓰지 못하는 옛 괘불대가 남아 있다. 동남쪽에 외따로 지어진 명부전 역시 양난의 비극이 낳은 법당일 것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의 권능을 빌어 죽은 이의 넋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가진 전각이다. 개심사가 가진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이런 사연도 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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