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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살인질주범 가톨릭에 귀의(조약돌)

    ◎손자잃은 할머니 인도에 장기기증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훔친 차로 질주,2명을 죽이고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던 사형수 김용제씨(22)가 그의 범행으로 손자(윤신재·당시6세)를 잃은 할머니 서윤범씨(59)의 인도로 카톨릭에 귀의,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했다. 김씨는 지난 19일하오 경기도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에서 김수환추기경이 주례한 미사를 통해 영세와 견진성사를 받고 카톨릭신자로 다시 태어났는데 이 자리엔 서할머니도 참석,김씨에게 묵주를 선물하며 함께 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손자를 죽인 가해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승화시킨 서할머니는 지난해 11월말부터 구치소의 김씨를 방문,시력이 나쁜 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겨울엔 솜이불도 넣어주며 신앙을 가질것을 권했다.또한 재판부에 편지를 보내 피해자 가족인 자신이 김씨를 용서하고 있으니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는 탄원도 했다.
  • 광복절음악제/「한국교향곡」 선보인다/파작곡가 펜데레츠키 악보 완성

    ◎14∼15일 KBS교향악단서 초연/연주시간 40분… “세계사속 8·15의미 담아” 올해 광복절기념음악제에서 초연될 크리스토프 펜데레츠키(60)의 「한국교향곡」이 마침내 완성됐다. 이곡을 위촉한 문화부는 펜데레츠키로부터 지난달 10일 전체의 3분의2에 해당하는 48쪽의 악보를 전달받은데 이어 나머지부분도 이미 탈고,10일까지 우송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연주시간 약40분으로 단악장형식으로된 「한국교향곡」총보의 앞부분은 초연을 맡을 KBS교향악단측에 도착 즉시 넘겨져 연주가능한 악기별 악보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펜데레츠키는 폴란드출신으로 20세기 후반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곡가. 그에게 교향곡이 위촉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문화부는 당시 한반도를 분단시킨 양대원인제공자의 하나인 소련이 붕괴된 상황에서 올해가 그 어느해보다도 통일여건을 성숙시킬 수 있는 해로 보고 의미있는 8·15경축음악제를 열기로 했다. 이에따라 펜데레츠키를 비롯,국내작곡가인 강석희(서울대교수)와 이상규씨(한양대교수·국악작곡)등 3명에게 각각 관현악곡을 위촉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특히 문화적사대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질수도 있음을 의식하면서도 외국작곡가인 펜데레츠키에게 교향곡을 위촉한 것은 8·15를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해석해 보자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즉 8·15가 좁게는 우리민족의 해방과 분단을 뜻하지만 넓게는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제국주의의 몰락과 새로운 전체주의의 등장을 뜻한다는 것이다.그러니 8·15로 야기된 또 하나의 체제가 붕괴된 상황에 우리 나름대로 의미부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에따라 펜데레츠키에게 곡을 위촉하면서도 『한반도 자체가 주제가 되기보다는 세계사와 유기적 결합체로서의 한반도가 작품속에 담겨지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작곡자로 펜데레츠키가 선정된것은 그가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작곡가라는 점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가 작용됐다. 그의 조국 폴란드는 지난 세기까지 이웃 열강의 숱한 침략을 받았을뿐 아니라 20세기들어서는 나치독일과 스탈린주의 소련의 압제를 받는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걸어왔다. 이러한 정치적 수난의 복판에서 펜데레츠키는 분노를 음악을 통해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히로시마의 희생자에 바치는 애가」와 19 70년의 폴란드노동자폭동을 기념하는 「눈물의 골짜기」,폴란드저항의 상징이었던 위친스키추기경을 추념하는 「신의 어린양」,나치치하에서 이웃을 대신해 수용소에서 죽은 한신부를 추념하는 「기억하라」등이 그 대표작이다. 펜데레츠키는 작품을 위촉받자마자 한국을 방문,한국의 역사를 비롯해 작품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한국적 소재」들을 수집해 갔다. 그때문인지 이작품의 서주부분은 산사의 새벽에 울리는 범종과 법고를 상징하듯 팀파니와 비올라만의 긴울림과 휴지가 두번 반복되는것으로 시작된다. 이작품의 정식명칭은 지금까지는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5번」이다.그러나 펜데레츠키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이곡에도 한국과 관련된 적절한 부제가 악보의 나머지부분과 함께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92광복절경축음악제는 오는 8월14일과15일 이틀 동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펜데레츠키는 이때 한국을 방문,KBS교향악단을 지휘해 자신의 교향곡을 세계 초연하게 되며 강석희와 이상규의 신작도 KBS교향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이 각각 초연한다. 펜데레츠키에게는 미화 6만달러(약4천8백만원)정도의 작곡료가 지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질좋은 전남쌀 예약주문 받습니다”/이효계지사 나서

    ◎오늘 서울서 1천여명 초청 모임/이미 14만섬 접수… 총60만섬 목표 『가을햅쌀 예약을 받습니다』 전남도는 지난2월 국내에선 처음으로 「가을쌀 예약판매제」를 도입,지금까지 14만석의 예약주문을 받은데 이어 29일 하오6시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각계인사 1천여명을 초청,가을쌀 예약판매 설명회를 갖는다. 「농어민에겐 희망을,도시인에겐 건강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날 행사는 금호 해태제과 동원산업등이 후원을 맡아 참석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호소하는 자리.전남도립국악원의 민속공연과 함께 쌀막걸리 떡등을 대접하면서 전남쌀의 우수성을 전국에 널리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가을에 가정배달 전남도는 이효계지사를 비롯한 도·농협간부등이 대거 참석,온국민이 단순한 쌀 판촉행사를 넘어 농산물수입개방에 맞서는 농민을 북돋우고 애향심을 고취하는 「농어민을 사랑하는 큰모임」으로 행사를 승화시켜보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있다. 쌀 예약판매제는 추수기인 10월말까지 전남도청과 도내 시·군청등 관공서와 전남농협 각 지부에서 전국의 우편·전화 쌀주문을 받은 뒤 11월부터 농협슈퍼마켓을 통해 고품질·저공해쌀을 가정으로 직접 배달한 뒤 시중가격을 받는 제도. 전남도는 올 예약판매 목표를 도내 쌀생산량의 10%인 60만석으로 잡고 있다.
  • 만국우편연합 94총회 서울서/체신부,「21차 UPU」로고 확정

    ◎우편올림픽 별명… 171국대표 참석/종합전시장서 세계우표전도 열려 오는 94년 서울에서 열릴 제21차 만국우편연합(UPU)총회와 총회기간중에 열리는 세계우표전시회 「필라코리아 94」의 로고가 확정됐다.「우편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UPU총회는 국가간의 우편물자유교환보장과 우편의 국제협력증진을 위해 5년마다 열리는 것으로 체신부는 서울총회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대외홍보를 위해 로고를 제정,25일 공개했다. 서울총회는 94년 8월22일부터 9월14일까지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려 세계1백71개 UPU회원국 2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특히 94년은 우리나라 우정창시 1백10주년과 서울정도 6백주년이 되는 해여서 그 의미가 더욱 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총회 로고는 동양철학에서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기초로 비둘기와 편지를 형상화했는데 전체적인 원형은 지구를,태극의 청·홍색은 하늘·낮·남성과 땅·밤·여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의 조화를,편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는 인류를 가깝게 맺어주는 우편을 통한 평화를나타낸다.체신부에 따르면 모던아트연구소장 이근문씨가 제작한 이 로고는 지난 14∼15일 스위스 베른에서 송언종체신장관 사회로 열린 세계우정최고책임자회의때도 소개돼 「UPU의 이상을 동양적인 심오함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란 찬사를 받았다.한편 UPU서울총회의 문화행사로 94년 8월16일부터 10일간 열리는 「필라코리아(PHILAKOREA)94」세계우표전시회의 로고도 총회로고를 바탕으로 제작,확정됐다.
  • “농촌 일손돕기” 흐응 뜨겁다/전국 「지원센터」마다 동참행렬

    ◎보름만에 9만4천여명 참여/성금도 4억7천5백만원 접수/농기계 2백55대 지원/농림수산부 집계 우리 모두의 고향 농어촌을 돕자. 최근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정부가 서울신문사와 함께 펼치고 있는 농어촌일손돕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각계 각층의 관심과참여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전국 각 시·도·군·읍·면등에 설치된 「일손지원센터」에는 연일 공무원과 군장병을 비롯해 중고대학생,사회단체직원 그리고 예비군등의 노력봉사지원희망이 쇄도하고 있으며 서울신물사를 찾아 농기계구입 성금을 기탁하는 사람들도 줄을 잇고 있다. 또한 이번 농어촌 일손돕기운동은 종전처럼 모내기와 벼베기에만 그치지 않고 밭작물심기와 거두기,과일따기 등 논밭 농사일 모두를 지원하고 있어 농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모내기와 밭작물거두기 일손돕기는 주말과 일요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매일 활발히 추진되고 있어 대부분지역에서 당초 계획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김포군청직원 1백50여명은 월요일인 25일 상오부터 가랑비를맞으며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 서암5리 조건연씨(48)의 논 4천5배여평에서 모내기를 했으며 농촌경제연구원 직원 1백20여명도 이날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삼회1리 조봉탄씨(45)의 논 2천평에서 모내기일손을 도왔다. 김포군청 농산계직원 이민호씨(35)는 『농민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공무원으로서 행정지원도 중요하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농민을 돕고있다는데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군청직원들의 도움으로 모내기를 끝낸 조씨는 『농촌에 농사일은 널려 있으나 노동력이 없는 노인가정과 부녀자가 대부분인 농가가 많아 일손이 크게 달리는 형편』이라면서 『올해 펼치는 전국민적인 농촌일손돕기 캠페인으로 많은 농가가 모내기는 물론 각종 농작물의 파종을 적기에 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곡창지대인 전남북지역에서도 인근 군장병을 비롯,중·고교·대학생들도 1주일째 모내기·논고르기 작업은 물론 농기계수리·모판떼어주기·새참나르기 등 부족한 농촌일손을 돕고 있다. 모내기를 나온 박삼수상병(22)은 『군인의 신분으로 군무도중요하지만 일선에서 이렇게 부족한 농촌일손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더 할 수 없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충북도의 경우는 도내의 학생·공무원·군장병뿐 아니라 서울 등 타시도에서의 인력지원이 몰려들고 있다. 25일에는 공군사관학교생도 50여명이 청원군 문의면 일대에서 농촌일손을 도왔고 휴일인 지난 24일에는 충남 대전공대생 29명이 보은군 일대에서 모내기를 했다. 강현욱농림수산부장관은 이날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운학리에서 군장병들이 중장비를 동원하여 마을앞 하천 개·보수를 하는 현장과 용인읍의 농기계 순회수리 봉사현장에 나가 군장병들과 농기계수리 봉사반원들을 격려했다. 강장관은 이 자리에서 『농촌일손돕기운동이야말로 당면한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전국민이 농촌의 실상을 이해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만큼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승화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25일 현재 농촌일손돕기에 참여한 인원은 총 9만4천3백70명으로 공무원이 2만1천3백63명,군인 3만9천7백84명,학생 7천7백60명,예비군 1천6백55명,기타 2만3천7백98명이었다. 농기계보내기 성금은 4억7천5백만원이 접수됐고 이앙기등 농기계 2백55대(4억3천6백만원상당)가 지원됐으며 2만1천5백35대의 각종 농기계를 수리했다.
  • 외언내언

    바래놓은 옥양목처럼 청초하고 가녀리던 아름다운 여인,재일교포 작가 이양지씨가 타계했다.이런 부음은 우리를 너무 애석하게 한다.결이 좋은 한국여성을 일본식으로 정제해놓은 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던 작가.그는 겨우 37살의 나이에 떠나버렸다.왜 그리 서둘러 가버렸을까.◆그가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아쿠다가와상」을 탈만큼 이루어놓은 명성이 아깝다는 뜻만이 아니다.그는 부모가 귀화한 재일한국인이었다.그는 고깔에 가사를 입고 살풀이를 청승스럽도록 출줄 알았고,가야금에 심취하여 정성을 다해 배웠다.오랜 방황끝에 찾아낸 모국의 정체성을 자신의 체질안에 정착시키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끝날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그런 그가 애증이 넝쿨식물처럼 휘감겨 안온한 평화를 누릴수 있기까지 모국을 다 사귀지 못하고 떠난 것같아 애석한 것이다.감추고 싶은 이름인「조센징」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준 일본의 역사교사와의 만남이나,일본국적을 갖고있다는 가책과 동포사회에서의 외면을 괴로워하다가 자살한 한국인 선배에 대한 기억들이,그의 예술로 순화하여 성숙하게 승화하는 경지를 우리는 좀더 보고 싶었는데.◆한국어는 그에게 모국어였고 나면서부터 어머니에게서 듣고 자란 일본어는 그의 모어였다.한국어의 바다에서 헤매는 조난자처럼 보낸 한국유학을 통해 고국을 체험한 그는 『수없이 유학을 단념하고 다시는 모국에 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고도 고백했었다.재일동포가 갖는 그 모순과 갈등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천착하고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 『유희』다.◆고국을 향해『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용기와 삶에 대한 자세』를 터득하고서야 일본의 「후지산」과 진정한 화해를 할수 있었다는 그의 세계를 좀더 알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 일이 가슴아프다.그렇기는 하지만 갈수 밖에 없는 길,평안히 잠드시기를.
  •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때이다(사설)

    지금 우리사회는 정확히 지적컨대 결코 가볍잖은 몸살을 앓고 있음이 분명하다.연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빚어지는 정치권 동향들이 너무 때이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들도 있고 언제나 걱정되는바 사회질서와 기강이 해이해지고 있다는 지적들도 많다.이때냐 저때냐 하며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경제국면 역시 아직 신통치 못하다. 우선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정계동향만 해도 그러하다.집권 민자당이 이미 대통령후보를 선임한 단계이고 여타 정당들도 조만간 대선체제로 들어설 채비에 있다.그래 얼핏보면 이들 정치권 동향이 너무들 성급하고 북새통을 이루며 사회·경제등 다른 분야에 주름살을 만들어 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만하다.그러나 그것은 단견이다. 대통령선거란 이미 예정돼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중의 하나이다.따라서 이단계에서 그러한 정치행태들을 걱정하기 보다 오히려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잘 소화해서 사회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더 소중한 것이다.다시 말해 선거등과 관련된 일체의 정치권동향과 국민들의 기대 관심을 보다 전향적으로 전개시켜 정치의 민주화,사회의 발전과 개선,경제의 국면전환 등의 동기요인으로 승화시킨다는 적극적 사고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문제는 일견 「몸살」들처럼 보이는 사회현상들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자세,특히 지식층과 공직자들의 자세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노태우대통령이 어제 지적한바,정치변화의 어떠한 장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비상한 각오로 당면 국정과제를 더욱 활력있게 추진하여 확실한 성과가 나타나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한 대목에 모든 사람이 귀기울여 현실타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줄로 안다.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회전반의 기강 특히 공직사회의 기강이다.왜 그런가.갈길은 멀고 결코 순탄치 않은데 시간은 촉박하다.무언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같지만 그 실체는 아직 눈에 잡히지 않는다.정치적 변환기에 공직자들의 무사안일·비리·책임회피·무소신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이때문이다.대통령이 지적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회기강이 해이하고 공직자들의 기강이 흐트러지면 국가사회유지의 근본이 되는 공권력의 서릿발이 무디어지게 마련이다.온갖 부조리와 비리,범죄와 폭력은 바로 이것을 틈탄다.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을 이루는 건강한 시민들과 책임있는 공직자들이 해야할 일은 따라서 공권력을 수호하고 그 위에서 사회건전기풍이 진작되도록 힘을 기울이는 일이다. 정치적인 변화기나 선거철을 틈탄 불법 무질서와 폭력 집단시위등은 공직기강과 건전기풍이 전제되는한 발붙일 자리가 없다.대통령이 지적한바 「비상한 각오」는 공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바로 이 시기에 모든 건강한 국민들이 가져야할 처방이라 할 것이다.
  • 「농어촌 돕기」참여를 호소하며…/김한곤 농림수산부 차관(특별기고)

    ◎우리의 정성이 농민의 시름 덥니다 지난 62년부터 시작하여 6차례에 걸친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이제 우리나라는 중진국수준을 넘어서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특히 농림수산분야는 그동안 농어촌종합대책과 농어가부채경감대책등을 착실하게 추진함으로써 60년대의 어려웠던 식량부족시대의 대명사였던 「보릿고개」를 떨쳐버리고 80년대부터는 주곡이 남는 시대 속에서 어려운 나라들을 도우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도·농간의 소득격차와 함께 농어촌의 생활환경과 의료,교육등 문화복지시설이 도시에 비하여 낙후되었기 때문에 농어민들은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개방화와 국제화의 추세속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진행되고 있기때문에 어떤형태로든 일정수준의 교역자유화를 피할수 없는 대세 속에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입장이다. 이와같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때에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따른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농촌의 50세 이상 인구가 지난 80년 전체농민의 20%에서 91년에는 39%를 차지해 농촌인력이 점점 노령화·부녀화해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유휴농지가 90년에 4만정보였던 것이 91년에는 6만7천정보로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국제적인 개방화 물결에 대처하기 위하여 농수산업의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올해부터 10년간 42조원을 투입하는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이 대책의 주요내용은 농어촌을 선도할 젊은 정예인력을 확대육성하고,경지정리와 수리시설등 농업생산기반 정비와 기계화의 추진,그리고 기술혁신등 농어민의 소득증대사업과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사업등을 추진함으로써 농어촌을 살기좋은 복지농어촌으로 건설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시책은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중·장기계획이므로 단기적으로 농어민의 피부에 와 닿는 효과를 얻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한다. 또한 농업은 계절성이 있기 때문에 농번기에는 「고양이 손도 아쉽다」는 속담이 말해 주듯이 봄철에는 모내기·보리베기·과수관리등 농작업이 겹치고,가을철에는 벼베기와 각종 밭작물 수확등의 일이 같은 시기에 몰리기 때문에 농번기에는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특히 기계화가 저조한 산간오지의 농가는 평야지보다 소득이 낮기 때문에 높은 노임을 주고 일손을 얻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일손을 쓸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도시지역에서 일손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영농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같이 절대부족한 농어촌 일손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은 기계화추진과 부족한 일손을 돕는 일이다.그러나 논농사의 기계화율은 84% 수준에 불과하여 이를 완전기계화하려면 96년에 가서야 가능하며 밭농사의 경우에는 20%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의 추진성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이처럼 상당한 기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을 메우기 위하여 「농어촌 일손돕기」와 「농어촌 농기계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농기계를 생산하는 농기계회사와 농협,그리고 농기구협동조합이 주축이 된 농기계수리반이 전국의 마을을 순회하면서 고장난 농기계를무료로 고쳐주어 농번기 영농에 지장이 없도록 농어민을 지원하고 있다. 이 운동이 시작된 후 농림수산부에서는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석포3리에서 논 2천평에 모내기를 해 주었는데,이 지역은 처음으로 일손돕기 지원을 받았다며 대단히 기뻐했다.또 지난 16일에는 충남 천안군 입장면 가산2리 최양규씨의 포도밭 5천평에서 방위병 10명이 일손지원을 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농림수산부와 천안군에 알려오는등 이 운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벌이고 있는 「농촌일손돕기」와 「농기계보내기 운동」은 우리 농어촌을 내손으로 가꾼다는 내고향살리기 운동인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농어촌은 우리 삶의 뿌리이자 고향이며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보전하는 터전이다.또한 우리 농어촌은 대대손손 이어갈 영원한 생활의 기반이다.이렇게 소중한 우리고장을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땀흘려 묵묵히 지키는 농어민들을 돕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우리 농어민을 돕겠는가.국민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작은 정성이라도 우리 농어민에게는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국민 모두 「농어촌 일손돕기」와 「내 고향 농기계보내기 운동」에 참여하기를 부탁드린다.
  • 노태우대통령 전당대회 치사(요지)

    ◎“힘있는 정부·책임있는 정치 구현”/“뼈깎는 반성으로 국민신뢰 회복” 나는 경선으로 우리당의 후보를 뽑는 것이 6·29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 믿고,공정한 경선이 이루어지도록 당총재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러나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국민이 우리당에 기대하던 자유경선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한데 대해 나는 겨레와 역사앞에 깊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당직자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뼈를 깎는 자기 반성위에 굳게 결속하여 우리당이 해야할 일을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겨레와 역사를 책임진 국민의 정당인 우리당의 전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어질 수 없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로부터 때로 우유부단하다는 지적까지 받으면서도 우리국민의 민주역량을 믿었기에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며 사회 각분야의 자율화를 신장시켜 왔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세계는 실로 혁명적인 격변을 거듭했습니다. 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해 세계를 바꾼 이 변혁을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여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기안에 7천만이 한나라에 사는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경제는 민주화와 개방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난 4년동안 연평균 9%이상의 높은 성장을 계속해왔습니다. 잘 사는 농어촌을 위한 구조개선사업에도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모두 42조원이 투입될 것입니다. 부동산투기를 근원부터 제압하고,2백만호 주택건설을 과감히 추진하여 땅값과 집값을 잡은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정부는 그 동안 내수 경기를 진정시키면서 노사관계의 안정과 임금의 합리적 조정으로 우리 경제사회의 안정기반을 구축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와함께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경제활동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제조업 경쟁력 강화대책」과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나는 남은 임기동안 경제선진화의 기반을 다지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7천만 겨레가 자유와 민주를 누리는 통일된 나라,아무도 우리를 넘볼 수 없는 힘있고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고 인류문화의 창달을 이끄는 나라…이것이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2년전 구국의 일념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던 열정과 결의로 이러한 시대적 소망을 반드시 완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이땅에 통일된 선진국의 꿈을 현실로 이끌어갈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당의 자랑스러운 대통령후보를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당의 대통령후보를 당선시켜 민족사의 영광을 실현하려는 2백만 당원동지의 한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 「6시간 축제」 민자전당대회 이모저모

    ◎“힘모아 대선승리” 다짐과 환호와…/“후보선출” 선언에 전원 기립축하/수락연설 도중 16차례 박수받아/노 대통령,“당대회 용광로삼아 무쇠결속 이루자” 14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민자당의 제2차전당대회가 19일 상오 전체대의원 6천8백82명중 6천7백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려 시종 차분한 분위기속에 6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후보 선출 행사.이종찬후보의 경선거부로 사실상 단독후보가 된 김영삼후보가 유효표 66.3%의 높은 지지율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의장 만장일치 선출 ▷대의원입장◁ 이날 대회는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이 김대표와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및 당3역등 지도부와 함께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이날 대회장에는 「6·29는 민주마당,5·19는 화합마당」 「뜻모아 후보선출 힘모아 정권창출」등의 대형 현수막이 나붙어 분위기를 진작. 이날 공식행사는 상오10시 사회자의 성원보고로부터 투표직전까지 1시간동안 당기입장,당약사 보고,의장단선출,총재·최고위원선출,총재치사순으로 예정된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 ▷의장단선출◁ 김종필최고위원의 개회선언에 이어 임시의장으로 선임된 정석모의원은 곧바로 전당대회의장단 구성안건을 상정,대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속에 박준규국회의장을 전당대회의장으로,구용상 전남 화순지구당위원장과 김장숙전국구의원을 부의장으로 하는 의장단을 선출. 박의장은 인사말에서 『2백만 당원들이 마시는 우물속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며 경선을 거부한 이후보 지지대의원들의 돌출행동을 사전 경계하며 김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유도. 대의원들은 또 노총재를 비롯,김대표와 김·박최고위원등 현수뇌부의 재선출을 결의. ▷총재연설◁ 노대통령은 총재연설을 통해 『후보의 자유경선은 당원동지 모두의 뜻이며 국민의 바람』이라고 강조하고 『바로 이것이 6·29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 믿고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 노대통령은 그러나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했다』고 이후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뒤 『지금 이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데 없다』며 참된 경선이 되지못한 아쉬움을 표시. ○“경선거부 납득못해” 노대통령은 또 『부동산투기를 제거하고 2백만호 주택건설을 과감히 추진,땅값과 집값을 잡은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번 대회를 거대한 용광로로 삼아 우리 동지들은 무쇠와 같은 결속을 이뤄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역설,장내는 우렁찬 박수. ▷투표진행◁ 상오11시쯤 이원경선관위원장의 투표개시선언과 함께 시작된 6천7백13명의 참석대의원들의 투표권행사는 점심시간과 겹쳐 하오1시 이후까지 진행. 노태우총재는 이선관위원장과 이춘구사무총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김영삼후보·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과 함께 제1기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 이에 앞서 이선관위원장은 후보자등록결과보고와 함께 후보자 약력 및 투표절차 등을 소개. 이선관위원장은 먼저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9선의 관록 ▲3선개헌반대투쟁 및 야당총재4선▲집권당 대표 경력등 화려한 김후보의 정치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나 경선거부를 선언한 이후보에 대해선 『이후보 약력이 아직까지 선관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배포된 유인물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고 약력소개를 생략. 한편 이날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6천6백60명이 투표에 참가,99.2%의 높은 투표참가율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53명은 일괄적으로 기권처리. 한편 이후보 선거대책본부인사들은 이날 상오 대회장부근 탄천주차장에서 이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비롯한 홍보유인물을 나눠줘 눈길. ▷김후보선출선언◁ 이날 하오 1시5분쯤부터 20개 투표함을 모두 개봉하고 개표에 들어간 당선관위는 개표시작 1시간 45분만인 2시50분쯤 작업을 모두 완료.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53명이 기권,6천6백60명이 참가한 이날 투표결과는 김후보 4천4백18표,이후보 2천2백14표,무효 28표로 공식집계. 이어 이원경선관위원장으로부터 선거개표결과를 서면으로 보고받은 박준규의장이 하오3시15분 『김영삼후보가 민자당의 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발표했고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전원이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당선을 축하. ○일부선 “이종찬” 연호 노총재와 김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자 풍선5백여개를 엮어만든 대형 당기 2개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노총재와 김후보의 대형초상화를 병풍처럼 펼쳐 분위기를 한껏 고조. 김후보가 이어 수락연설을 하는동안 대의원들은 「대선승리」등을 강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16차례의 힘찬 박수로화답하며 「김영삼」을 연호했으나 일부 대의원들은 간간이 「이종찬」을 연호하기도. ▷후보수락연설◁ 개표결과가 공식발표된뒤 김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여러분께서 저를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해 주신데 대해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일성. 김후보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를 의식,『이 뜻깊은 자리에 우리당의 몇몇 동지가 함께 자리하지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우리모두 겸허한 자기반성으로 당의 단결과 화합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나가야 할것』이라고 강조. 김후보는 또 『이번 대선은 21세기 길목에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규정짓고 『통일을 앞당기고 민주화를 완성시키며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하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날 것』이라고 그 중요성을 거듭 역설. ▷노대통령 축하연설◁ 노대통령은 개표가 끝난 이날 하오 3시15분쯤 다시 대회장에 입장,김후보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김후보의 손을 들어주AU 단상앞으로 나가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인사. 이순간 여성당원 2명이 노대통령과 김후보에게 축하꽃다발을 각각 증정. 노대통령은 김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난뒤 짤막한 축하인사말을 통해 『2년전 김후보의 구국적 결단이 있었기에 민자당이 창당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당운영에서도 김후보는 3당통합정신을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다』면서 『기필코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당원의 기대에 보답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나는 당헌 제23조에 의거 대표최고위원에 김영삼최고위원을 지명한다』고 선언. ▷이후보측반응◁ 이날 대회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로 비교적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이후보측 인사들의 참석여부가 주된 관심으로 부각. 이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채문식고문과 윤길중고문을 포함,박철언·김용환·장경우·오유방·김현욱·조영장의원과 박범진·박명환·박주천당선자등 대책위원들은 불참. 그러나 이후보의 경선거부에 반대한 이한동·박준병의원을 비롯,심명보선거대책본부장과 김중위·최재욱·강우혁·이진우의원 및 양창식·남재두·구천서당선자 등은 참석해 한표를 행사. ▷식전행사◁ 공식 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열린 식전행사는 연예인 박상규씨의 사회로 상오9시부터 50분간 진행. 식전행사에서는 풍물패의 풍물놀이에 이어 가수 조영남·주현미씨가 「우리는」「짝사랑」등을 열창,흥을 돋우었으며 민자당의 여성당원으로 구성된 21세기 합창단이 「선구자」를 합창. 이어 북방외교,보통사람의 시대,지방자치제 실시,3당합당등을 내용으로한 「6공화국이걸어온 길」을 멀티비전을 통해 상영.
  • “이 후보 해당행위 단호조치”

    ◎청와대 대책회의… 모든절차 당헌따라 처리/내일 전당대회 예정대로 개최/노 대통령,유감 표시… “국민 신뢰회복에 최선” 노태우대통령은 17일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선 이종찬후보가 경선거부를 공식선언함에 따라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민자당 중요당직자회의를 긴급소집,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전당대회를 불과 이틀 남겨 놓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하고 당의 명예를 훼손시킨 이후보의 행위는 명백한 해당행위』라고 규정,『이같은 행위는 당헌당규에 따라 단호히 조치되어야 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1시간30여분동안 진행된 회의는 또 이후보의 경선포기가 있더라도 당헌과 당규에 따른 모든 절차와 과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19일의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기로 결의했다. 회의내용을 발표한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은 「단호한 조치」의 내용과 관련,『구체적인 얘기는 없었지만 이후보의 해당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당직자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면서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새로운 각오 아래 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한덩어리가 되어 전당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국민여망에 부응하는 후속조처들을 조속히 취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나는 민자당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는 것이 6·29민주화정신을 한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고 믿고 이를 추진하여 왔으나 이러한 나의 노력에 차질이 생겼다』고 유감을 표시하고 『이점 민자당총재로서 국민과 역사앞에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대변인은 노대통령이 언급한 「국민여망에 부응하는 후속조처」에 대해 『정책개발과 함께 고칠 것은 고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회의에는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박준규국회의장·이춘구사무총장등 당3역,박희태대변인·이원경선관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청와대에서 정해창비서실장·이현우경호실장·최영철정치특보·김중권정무·안교덕민정·김학준공보수석비서관이 배석했다.
  • 청와대심야 대책회의 이모저모

    ◎“자유경선중도좌절 국민에 죄송”/노 대통령/침통한 분위기속 제재방안 숙의/구체적 조치는 당대회후 취할듯 17일 하오 노태우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민자당의 중요 당직자회의는 시종 「가라앉고 숙연한 분위기」속에 이종찬후보의 경선거부선언에 따른 대책을 하오8시30분부터 10시까지 1시간30분동안 논의. 노대통령은 회의 모두에서 『자유경선에 차질이 생긴 점에 대해 국민앞에 얼굴을 들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느낀다』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 노대통령은 『우리 민주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공정무사한 자유경선을 치를 것을 국민앞에 약속했다』고 상기시키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유경선이 중도에 좌절하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고 유감을 표시. 회의에 배석한 김학준청와대대변인은 『참석자 모두가 노대통령의 이같이 겸허한 자기반성과 질책에 대해 송구스럽고 국민앞에 죄송스럽다는 표현을 했다』고 소개. ○…이날 회의는 이후보의 경선거부선언을 『명백한 해당행위』라고 규정하고 『이같은 행위는 당헌당규에 따라 단호히 조치되어야 할 것』이라고 결의,이후보에 대해 가까운 시일내에 강도높은 조치가 가해질 것임을 예고. 그러나 이후보에 대한 당차원의 조치는 파급의 정도를 최소화 한다는 점등을 고려해 19일 전당대회를 마친 이후가 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전망. 김대변인은 「단호한 조치」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고 해당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데 참석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고만 언급하고 『회의에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토론보다는 전반적인 대처방안에 대한 얘기가 오고갔다』고 부연. 김대변인은 『참석자들은 오늘 회의를 마무리지으며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새로운 계기로 삼아 당전체가 한덩어리가 되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 김대변인은 회의의 진행방식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노대통령이 심경을 말하고 지시하기도 했으며 참석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하고 합의점을 찾자고 권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소개. ○…회의에는 이후보의 명예대책위원장인 박태준최고위원도 참석해 주목됐는데 박최고위원은 노대통령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고 김대변인이 전언. 김대변인이 박최고위원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다시 제청되더라도 사양할 것이라는 설에 대해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고 전망. 김대표도 노대통령에게 송구스럽다는 뜻을 표하면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 자신이 경선의 당사자라는 점을 감안해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김대변인은 하오 10시쯤 회의가 끝난뒤 1시간여동안 회의내용을 4개항으로 요약한 발표문을 작성해 배포하고 출입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답변. ○…청와대측은 전날 하오 노대통령과 이후보와의 단독회동 분위기와는 달리 경선거부를 선언한데 대해 당혹해 하는 모습. 김중권정무수석은 향후대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며 『어제 청와대회동 당시와는 상황이 정반대로 뒤바뀐 것 같다』며 예상밖이라는 반응. 김수석은 『틀이 큰 정치는 아니다』라고 이후보의 경선거부를 함축적으로 평가하고 『집권당 경선이 갖는 의미를 잘 새겨서 좋은 결과를 맺도록 했으면 좋을텐데…』라고 아쉬움을 표시. 김대변인도 『노대통령은 어제 이후보와의 회동에서 이후보가 사실상 경선을 받아들이고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상황반전의 경위를 설명. □청와대 발표문 1·노태우대통령은 민자당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는것이 6·29민주화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높게승화시키는 일이라고 믿고 이를 추진하여 왔으나 이러한 노력에 차질이 생겼음을 통탄스럽게 여기며 이점 민자당의 총재로서 국민과 역사앞에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말함. 2·이날 회의는 전당대회를 불과 이틀 남겨놓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하고 당의 명예를 훼손시킨 이종찬후보의 행위는 명백한 해당행위이며 이같은 행위는 당헌당규에 따라 단호히 조치되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음. 3·회의는 어느 한 후보의 경선 포기가 있더라도 당헌과 당규에 따른 모든 절차와 과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를것이라고 결정. 4·이번 사태에 대하여 노대통령은 당직자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며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새로운 각오 아래,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한덩어리가 되어 전당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국민여망에 부응하는 후속조처들을 조속히 취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함.
  • 교육방송 임원 7명/파행운영 관련 사표

    교육방송의 김승화편성본부장,민상근제작본부장,강태길기술본부장을 비롯한 임원진 7명 전원이 지난 14일 최근 예산부족으로 인한 파행운영과 관련,사표를 제출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 「마약퇴치」 민간단체가 나섰다

    ◎약사회/“마약과의 전쟁” 선포… 운동본부 가동/시·군·구 2백43곳 일선조직/2만여 약국중심 홍보·상담/약물중독자 치료사업 착수 마약퇴치운동이 정부주도에서 민간차원의 국민운동으로 확산된다. 이는 과거 마약류 사용이 연예인·유흥업소종사자·폭력배등 일부에 국한됐으나 최근 청소년층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확산돼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4만여 회원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대한약사회(회장 권경곤)는 12일 서울 서초동 약사회관에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창립기념식을 갖고,앞으로 읍·면·이·동까지 전국 2만여개소에 개설된 개업약국을 주축으로 계몽·상담등 마약퇴치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권회장을 이사장으로 한 「운동본부」는 전국 15개 시·도에 지부를,시·군·구 2백43개소에 분회를 이미 설치했는데 앞으로 각분야 전문가들로 전문위원회와 후원조직체도 구성할 계획이다. 「운동본부」는 전국조직망을 중심으로 ▲마약류등 약물남용 방지를 위한 대국민 홍보·계몽활동 ▲조사연구및 교육사업 ▲마약류 남용관련 상담소 설치운영 ▲약물사용자의 치료·재활사업 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운동본부」는 우선 홍보·계몽활동의 기반조성을 위해 약사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포스터와 유인물 등의 홍보물을 제작,약국에 부착하는등 대국민 계몽에 주력하기로 했다. 운동본부는 이와함께 VTR와 슬라이드등 마약퇴치와 관련된 교육용 자료를 개발하고 약국을 통해 마약복용실태및 사용경험담 수집등 사회조사도 실시,홍보·계몽활동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운동본부」는 마약퇴치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승화시켜나가기 위해 보사부 산하 보건단체는 물론 각종 경제단체와 사회봉사단체에 까지 참여의 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대한약사회측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매년 7∼8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우선 약사회 예산으로 소요비용의 대부분을 충당하되 정부지원금과 협찬금도 받아 운동본부를 운영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강력한 마약사범단속을 실시한결과 지난해말까지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90년의 4천2백22명보다 줄어든 3천1백33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종전까지도 연예인·유흥업소종사자·조직폭력배등 특수직종에 한정됐던 마약류 사용이 운전사·근로자·농어민·회사원으로 확산되고,심지어 최근에는 건전계층인 가정주부·학생에까지 침투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공정경선 안되면 적절조치/노 대통령,두 후보에 강조

    ◎비방자제,정책대결주력/대선에 걸림돌 안되도록 노태우대통령은 27일 민자당의 차기대통령후보경선과 관련,『나는 이번 경선과정에서 엄정하고 공정한 관리자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그러나 경선과정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훼손하고 마치 당의 내분의 모습으로 비쳐짐으로써 경선이 대선의 걸림돌이 될 우려를 보이면 당총재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경선에 출마하는 김영삼·이종찬후보,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을 비롯한 당직자,당선거관리위원회의 이원경위원장등을 청와대로 초청,접견한 뒤 오찬을 함께 하며 이같이 말하고 『아직 염려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대의원 확보과정에서 비방과 인신공격행위로 인해 당내외 비판이 일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하고 김·이후보 진영의 자제를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경선과정이 세싸움보다는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토론의 장으로 승화되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더욱 높일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면서 『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앞으로개최될 개인연설회에서 경선의 취지가 잘 살려지도록 준비와 운영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공명정대한 경쟁과정을 거쳐 내려진 결정에 대해 후보는 물론 모든 당원이 승복하고 당원 모두는 우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후보는 이 자리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겠다』면서 『멋있는 경선을 원하는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후보는 『중립적 입장에 있는 인사의 중립자세가 견지되어야 한다』면서 『경선에서 활발한 정책토론의 장이 확대되도록 조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춘구사무총장은 선거운동방법과 관련한 보고를 통해 『합동연설회는 의무규정이 아니고 후보간 합의에 의해서 개최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전당대회에서의 정견발표는 모든 선거법에서 선거운동은 투표전일까지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몬트리올재즈발레단 공연을 보고/김경애 무용평론가

    ◎“춤보는 즐거움 안겨준 흥겨운 무대” 89년 처음으로 내한해 건강한 춤을 선사했던 몬트리올재즈발레단(4월24,25일 세종문화회관대극장)의 이번 공연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재즈춤을 보는 특유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재즈발레란 발레형식에 관능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재즈음악과 원시적인 춤이 결합된 형태인데 이 몬트리올 발레단은 여기에 현대무용의 다양한 형식이 보다 짙게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재즈가 갖는 대중성에 탐미적 요소들이 짙게 깔린 고급한 예술성을 창출해 보여준다.3년전 공연에 비해 미쪽 면에더 치중해 그때의 선정적인 흥분같은 것이 승화된 모습이었다.우리 관객들이 재즈춤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즉 록음악이나 팝의 시끄럽고 빠른 음악에 유흥적 가벼운 춤)때문에 이를 기대하고 온 관객은 오히려 실망을 하고 돌아설 정도로 격조가 높았다. 24일 공연은 소품 「102˚F」를 시작으로 「의자 빼앗기 놀이」(린 테일러 카베트 안무),「증오」(율리시즈 로브안무),「해후」(마르고 샤핀토 안무)가 올려졌다.25일까지 일곱작품이 매 작품마다 안무자가 다르다.많은 안무가를 확보해 다양한 작품유형으로 관객을 변화의 세계로 유도하는 전체적인 연출에서 완벽하게 예술감독제를 확립하고 있는 이 발레단의 경륜이나 규모를 알 수 있게 했다. 린 셰퍼드 등 14명의 무용수들은 하나하나를 주역감이라고 할 만큼 기량의 차가 없었다.특별한 무대장치없이,연습복에 상징물 정도만 바꾸는 의상으로 오직 춤동작으로만 무대를 압도한다.크고 활달한 동작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섬세한 정서를 끌어낸다. 「의자 빼앗기놀이」(78년작)는 어린이 놀이터를 소재로 해 친근한 생활공간을 느끼게 한 작품이며 애수가 있다.미국의 이름있는 흑인 무용가 율리시즈 도브가 안무한 「증오」(84년작)는 내면의 울분,절규를 정지와 율동을 교차시키는 특이한 안무기법으로 보여준다.원시적 흑인의 정서가,사슬을 연상하는 흰 밧줄이 교차해 걸려있는 단순한 무대장치 앞에서 일인무,이인무 또는 군무로 증폭된다. 「해후」(91년작)는 전작품 중 가장 현대적이라 할 만큼 세련도가 있었다.동작을 크고 강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템포감 있고 가볍게 처리한 포스트모던계열 춤들의 기법을 담고 있다.자연스럽고 별로 큰 힘을 들이지 않은 듯하면서도 「재즈 다운」흥분속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뜨거운 밤의 열기와 새벽의 청량감을 함께 느끼게 한 춤이었다.
  • 노 대통령­민자최고위원 잇단 회동의 함축

    ◎“모양좋은 경선”으로 작품만들기/“과열경쟁은 정권재창출에 장애” 판단/세다툼보다 정책대결로 분위기 유도 민자당대통령후보 경선을 「모양좋게」이끌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23일 김영삼대표,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과 4자회동을 갖고 원만한 경선을 거듭 당부했다.다음주 중에는 경선에 나선 김대표와 이종찬의원을 함께 청와대로 부를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22일에는 박최고위원과 이한동의원을 각각 청와대로 초치,불출마결심에 대한 위로의 뜻을 표했다. 노대통령이 일련의 회동에서 경선의 공정관리를 넘어서는 정치적 언질을 했느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면담인사들의 언급을 종합할때 노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정권재창출이라고 관측된다. 이번 대권후보경선이 민주화완성의 의미도 있지만 그 보다는 12월 대통령선거 승리의 발판이 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정권재창출을 위해서 경선과정을 과열되지 않는 정책대결로 진행시켜야하며 당내 단합을 이루는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노대통령의 의지에 대해 김대표와 이종찬의원진영은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다만 구체적 방법을 둘러싸고는 이견도 없지 않다. 김대표 진영은 경선을 축제분위기속에서 치르려면 김대표가 사실상 추대되는 형식을 갖춰야한다고 주장한다.무리한 세싸움은 상호 인신공격등 과열을 불가피하게 하므로 그것을 피하기위해서는 자유경선의 정신이 다소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대표측은 평소 「대권승계론」을 주장해오던 김종필최고위원이 김대표 추대에 앞장서주길 기대하고 있다.23일 청와대 4자회동 자리에서도 김최고위원이 이러한 뜻을 피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게 김대표측 주장이다. 이에 비해 이종찬의원진영은 팽팽한 긴장속에 경선이 치러지는 것이 본선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있다. 박최고위원의 불출마를 둘러싼 「외압설」이 공공연히 나도는 가운데 다시 특정후보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경선의 참다운 의미가 퇴색한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박최고위원이 청와대를 방문했고그 자리에서 노대통령이 「조정자역할」이라는 언급을 했다는 발표만으로도 제2의 외압설이 나올정도로 민감한 상황이란게 이의원측의 주장이다. 이의원측은 노대통령이 보다 공정하고 중립적 자세를 보이고 경선에 나선 양진영의 균형이 이뤄질 때 국민관심도 높아지고 후보이미지도 제고된다고 보고 있다. 이의원측은 특히 언로의 확대를 중요이슈로 제기하고 있다. 박최고위원도 노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후보들의 정책개진기회가 보장되고 많은 대의원들이 그것을 들을수 있어야 한다』고 건의했다.이의원측이 요구해온 합동연설회도입및 개인연설회의 공영제운영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지다. 노대통령은 아직 어느 한 쪽편을 확실히 드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를 다녀온 박최고위원과 이한동의원이 이종찬의원지지태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제2의 외압설시비도 없어졌다. 앞으로도 노대통령은 비슷한 자세를 취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진 않지만 김대표가 우세한 분위기는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김대표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유도하면서도 이의원이 경선을 포기할 정도의 열세로 몰리게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변여지를 남겨 이번 전당대회가 적절한 긴장감은 있도록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최고위원의 역할이 관심의 대상이다.박최고위원의 가세로 이의원 진영이 김대표측과 버금가는 세를 갖게 된다면 노대통령은 박최고위원에게 「자제」를 당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세력분포로 볼 때 이의원진영의 급격한 세확대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따라서 노대통령이 후보조정 때처럼 노골적인 행동에 나서진 않으리란 분석이 우세하다. 대신 노대통령은 과열을 방지키 위한 몇가지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과도한 상호비방자제당부는 김대표측의 요구가 수용된 것이며 김대표와의 주례회동 잠정중지는 이의원측 희망이 반영된 것이다.
  • “후보경선 공정하게 관리/세싸움 보다 정책토론의 장으로 승화”

    ◎노 대통령,민자 세최고위원에 강조 노태우대통령은 23일 민자당의 차기대통령후보경선과 관련,『나는 엄정하고 공정한 관리자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후보들은 물론 모든 당원들은 경선과정을 통해 내려진 결정에 승복하고 당이 뽑은 대통령후보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과 회동,이같이 말하고 『3최고위원도 이번 경선을 계기로 당이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발휘하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그동안 2년6개월동안 계속되어 온 주례보고는 다른 후보자와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고 노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노대통령은 『경선과정이 세싸움이나 분열의 모습으로 비쳐져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후보들은 국정현안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밝히고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공명정대한 경쟁을 통해 당원의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선거운동이 계파간,후보간의 상호비방이나 내분양상으로 보여서는 안되고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토론의 장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부연 강조했다.
  • 「춘향가 네바탕전」 색다른 무대

    ◎판소리한마당 4류파 모인것은 처음/여류명창 5인,특색있는 목소리 선봬/24일 성창순 스타트,6월25일 오정숙·이일주 피날레 판소리 「춘향가」의 전래되는 4개 더늠이 차례로 불리는 무대가 마련되어 판소리애호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예음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 「판소리 춘향가 네바탕」전은 24일 성창순이 정철호의 북반주로 정응민제 춘향가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6월25일까지 1주일마다 금요일 하오8시에 예음홀에서 열린다. 이에따라 5월15일에는 최승희가 이성군의 북장단에 맞추어 정정렬제를 부르는데 이어 6월5일에는 안숙선이 김청만교수와 함께 김소희제를,6월25일에는 오정숙과 이일주가 역시 김청만의 북반주로 김연수제를 나누어 부른다. 지금까지 판소리완창 시리즈는 「춘향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심청가」등 전래되는 5바탕을 모두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춘향가 네바탕」전과 같이 판소리 한마당의 여러 유파를 한자리에 모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이번 무대는 특히 출연하는 명창들이 모두 전성기에 있는 여류만으로 되어있다는 점도 더욱 흥미를 끄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춘향가」는 동편제의 김세종바디와 송만갑바디,서편제의 정정렬바디와 김창환바디등 크게 4종류로 나누어진다. 이번 「네바탕」전에서는 전통적인 계보에 의존함은 물론 근래의 전수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된 유파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 이 각 유파는 보통 5시간에서 8시간이 걸리나 이번 「네바탕」전에서는 각 명창들이 특기로 쓰고 있는 대목을 중심으로 약 2시간정도로 줄여 부르게 된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성창순이 선보이게 될 흔히 「보성소리」라고 일컫는 정응민(1896∼1964)제는 박유전의 복잡한 부침새와 정교한 시김새를 김세종의 정대하고 기품있는 소리에 접목시켜 고도의 기교를 요하면서도 품위있게 승화된 소리라는 평판을 얻어왔다.성창순은 특히 병고에 시달리는 정응민의 병구완을 하며 소리를 익힌 그의 마지막 제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편제의 대표적인 소리인 정정렬(1876∼1938)제를 부를 최승희는 스승인 김여란이 이어받은 정정렬바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정정렬제 춘향가는 특히 변사또가 남원으로 부임하는 「신연맞이」대목이 다른 어느 유파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소희(1917∼)제는 정정렬바디를 바탕으로 정응민바디와 송만갑바디의 여러부분을 삽입하여 짠 것으로 서정적인 비가로 불리는 「옥중가」대목은 가히 특출한 것으로 손꼽힌다. 안숙선은 바로 지금도 김소희로부터 가르침을 계속 받고 있으며 당대 여류명창의 뒤를 이을 중견여창의 첫손에 꼽히는 소리꾼이다. 김연수(1907∼1974)제 춘향가는 정정렬의 제자인 그가 해방이후 역대 명창들의 더늠을 집대성하고 사설을 정리해 새롭게 완성한 유파로 제자인 오정숙에게 대물림되고 다시 그 뒤를 이일주가 잇고 있다. 오정숙은 14세때 김연수의 문하에 들어간뒤 지난 72년에는 8시간30분에 걸쳐 김연수제 춘향가의 전바탕을 부르는 기록을 남겼고 8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보유자로 지정받았으며 이일주는 그의 수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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