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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홧병(외언내언)

    우리에게는 「홧병」이라는 병이 있다.대대로 내려온 문전옥답을 아들이 미두로 날리자 늙은 아버지가 홧병으로 몸져눕기도 했고,징용끌려간 아들의 소식이 끊긴 이후 「가슴에 화가 든」 어머니는 마침내 그 홧병으로 돌아가 시기도 한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다 이긴줄 알았던 선거에서 상대후보의 흑색선전에 걸려 떨어진 국회의원 출마자에게서도,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에 실패한 중년가장에게서도 이 병은 나타날 수 있다.어쨌든 우리에게는 「화병」이 낯설지 않은데 이 병이 한국인에게만 있는 특이한,새로운 정신병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한다. 명예스러울 것은 없으나 듣기에 신기하기는 하다.그러나 이것이 한국인에게만 있는 정신병성이라는 이론에는 납득이 잘 안된다.화가 쌓이면 가슴에 불을 붓는 것같은 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공통으로 지닌 증상이 아닐까? 지역이나 기후에 따른 풍토병은 아닐 것같은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증상이 한이 되게 하는 이행과정은 풍토병처럼 독특한 것이 아닌가 싶다.스트레스를 「적절히 해결하는」대신 안으로 쌓아두다가 승화시키는 처리는 분명 우리의 독특함이다.그런 뜻에서 홧병을 여성적 질환으로 특정짓는 일은 유의의한 것같다.이시영박사의 말처럼 시앗을 보거나 시집살이 같은 갈등이 홧병을 만들므로 이 병은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는 것이긴 하다.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증상이,체념의 과정을 거쳐 한으로 승화되는 경우가 남성에게서는 많지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병이 우리의 정신의학자에 의해 정신질환의 하나로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국제적 관심을 모은 연구결과일 것이다.그래서 병의 이름도 우리 말대로 음역해서 「Hwapyung」이라고 한다니 국력의 신장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정신의학자들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로 생각된다.다만 우리의 「화병」은 「홧병」이라야 실감이 나는데 「화병」이라고 하니까 별로 그 병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송정숙 본사고문〉
  • ’96 상반기 국산신기술 68건 선정 발표/과기처­산업기술진흥협

    과학기술처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30일 96년 상반기 국산신기술인정 예정기술 68개를 선정 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신기술은 신청이 들어온 1백93건중 기술성·경제성·제품특성·품질관리체계 등을 중심으로 3차에 걸친 심사를 벌인 결과 선정된 것이다. 분야별로는 전기전자분야가 LG반도체(주)의 「초고속 디바이스 탑재를 위한 초박형 BLP 패키지」등 23건으로 가장 많고 기계분야가 유일정공(주)의 「액상 글로 방전을 이용한 용액중 미량 중금속 검출기술」등 15건,화학·생물분야가 한솔화학(주)의 「승화 열전사방식 컬러기록 매체 제조기술」등 11건이다.
  • 노인·장애인 서럽지 않게(사설)

    노인과 장애인같은 소외계층을 보살피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오는 98년부터는 70세 이상 노인들의 보청기와 틀니에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장애인의 휠체어나 「흰지팡이」 보청기등의 보장구는 바로 내년이면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그러기 위해 정부는 2조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잘 살되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절대가난을 면하는 것이 목표였던 시대와는 이제 달라진 것이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는 한단계 승화된 삶의 질을 누릴 권리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것이 정부의 과제이기도 하다.이미 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정부는 그 일을 착수해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게 아무리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결실되기는 어렵다.그러므로 2조에 이르는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하기로한 이 복지정책에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크다. 특히 우리에게는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면서도 그 혜택에서 소외된 세대가 있다.정책이 실시되기 이전의 세대들이다.이미노년으로 접어들어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이 세대들은 그러나 오늘의 번영을 몸소 이룩해온 세대들이다.가난을 벗기 위해 온갖 시련을 극복해온 세대가 국가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그에 대한 배려가 노인복지정책 의지에 수렴된 것은 잘된 일이다. 또한 한국형 노인복지정책의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면도 눈에 띈다.한방의료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노인성 질환을 위해서 효율적이고 우리 체질에도 맞는다.그것을 위해 보건소를 1차의료기관으로 육성하는 계획은 좋은 발상이다.그리고 노인 시설에 대해 낯가림이 심하고 경로사상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에게는 노인을 노인시설에 보내는 일에 여전히 편견이 심하다.재가노인보호시설의 정책적인 개발은 그런 우리 특성에 맞는 방법이다.이런 계획들이 차질없이 실시되기를 기대한다.
  • “군권 찬탈 시나리오 없었다”/「12·12 」3차공판

    ◎차규헌·장세동씨 등 공소사실 부인/“정 총장 연행 불가피” 강변/검찰/4차 공판땐 비상계엄 확대 등 신문 12·12 및 5·18 사건의 3차 공판이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25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검찰은 2차 공판까지 이미 신문을 끝낸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피고인을 뺀 나머지 거규헌 박준병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신윤희 박종규 피고인의 순으로 검찰의 직접신문을 했다. 장세동 피고인은 당시 육군본부측이 9공수 여단을 동원하려는 사실을 파악한 상태에서,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로부터 전화가 오자 『육본측이 병력을 동원하지 말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느냐는 신문에 『우리도 (병력동원을) 안 할테니 9공수여단 등의 이동을 막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준병 피고인도 『정승화 총장 연행사실을 안 직후 황영시 1군단장은 예하 30사단과 2기갑여단에, 노태우 9사단장은 예하 1개 연대에 병력을 출동하도록 지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솔,육본측의 병력동원을 막는 한편 신군부측은 병력을 동원했음을 시인했다. 장피고인은 그러나 『당시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소재가 불분명했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무모한 지휘를 자행하는 등 지휘명령 계통이 공백상태였다』며 병력동원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폈다. 허화평 피고인 등 이른바 「보안사 3인방」도 『정총장이 10·26사건에 깊숙히 연루된 혐의가 있어 연행이 불가피했으며,군권을 찬탈하기 위한 시나리오는 없었다』며 공소사실 부인 했다. 차규헌 피고인도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2차례나 거부한 것이 아니냐』는 신문에 『최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이 배석해야 재가하겠다고 해,그런 줄만 알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날 12·12사건에 대한 검찰신문을 모두 마무리,오는 4월1일 4차 공판부터는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국회해산 과정,5·18 내란 혐의 등을 심리할 방침이다.〈황진선 기자〉
  • 「12·12」 3차공판­쟁점과 전망

    ◎“「12·12」는 쿠데타” 다각적 입증/검찰측­세차례 공판통해 「의도된 계획」 확인/전씨측­“정 총장 연행 정당한 수사행위” 강변 12·12 사건과 관련,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25일 3차 공판으로 마무리됐다.공판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비춰 1단계 고비를 지난 셈이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비롯한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예상대로 검찰과 피고인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때문에 공판일정도 재판부의 당초 예정보다 2주가 늦어졌다. 세차례의 공판을 통해 12·12 사건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쾌하게 규명됐다.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사전 계획과 집결경위,정총장 연행,신군부의 병력동원,육본의 대응,최규하 대통령의 재가과정,신군부의 무력진압,군 인사의 논공행상 등이다. 검찰의 논지는 이렇다.『12·12 사건은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신군부측 장성들이 경복궁의 30경비단에 모이면서 구체화됐다.정총장의 연행사실을 알면서도 육본의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진압군을 무력으로 제압했다.최대통령에게 사후에 강압적으로 재가를 받았다.변명의 여지 없는 군사 반란』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도 12·12 사건이 10여일 전에 치밀히 계획된 쿠데타였음이 최근 공개됐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공판에서 역사적 사실의 실체규명에 대체로 성공,주도권을 잡은 판세이다. 그러나 쟁점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반격 강도는 의외로 거셌다.두차례에 걸친 변호인단의 기습적인 의견서 배포,전씨 진술에 맞춘 피고인들의 「입맞추기」가 단적인 예이다. 이들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치밀하고 의도된 쿠데타」라는 점은 한결 같이 부인했다. 정총장의 연행은 합수부의 정당한 수사과정이고,병력동원은 육본의 진압에 맞선 것이라고 주장했다.최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합법적이라고 우겼다. 이양우 변호사는 ▲정총장연행의 합법성 ▲경복궁 모임의 순수성 ▲진압군의 선제발포 등 3가지 쟁점을 부각시킨 점을 성공작으로 꼽았다. 물론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다음달 1일에 5·17사건,즉 80년 비상계염의 전국확대 등에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을 시작으로 5·17 및 5·18 사건의 공판이 순차적으로 열린다. 재판부가 『효율적 재판을 위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5·18사건이 사실 규명 측면에서 12·12사건보다 훨씬 난해한 점 등은 재판일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과 증인신문 일정 등을 감안하면 1심 선고는 잘해야 8월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검찰 「군사반란」 입증에 역점/오늘 「12·12」 3차공판

    ◎장세동 등 9명 대상 60∼70개 신문항목 준비/경복궁 모임·정총장 연행경위 등 중점 추궁 12·12사건 피고인 13명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25일의 3차공판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지난 11일과 18일 1·2차공판에서 검찰은 전두환·노태우·황영시·유학성피고인 등 4명에 대한 직접신문을 마쳤다. 2차공판에서 재판의 핵심인 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직접신문을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낸 탓인지 3차공판을 앞두고는 비교적 여유를 보인다. 직접신문대상은 차규헌(당시 수도군단장)·박준병(20사단장)·최세창(3공수여단장)·장세동(30경비단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이학봉(보안사 대공과장)·박종규(3공수여단 15대대장)·신윤희(수경사 헌병단 부단장)피고인등 9명이다. 검찰은 이들의 답변이 「반란의 수괴」이던 전피고인과 노태우 피고인의 진술수준을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12·12의 총론에 대해서는 대체로 훑었다는 판단이다. 결국 3차공판은 각론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검찰은 이 9명도 12·12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므로 각자 역할을 철저히 따져 12·12가 군사반란이라는 사실을 규명할 방침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문항목이 전피고인에 대해서는 2백90여개,노피고인은 1백50여개이던 것과는 달리 이들에 대해서는 각 60∼70개의 핵심적인 내용만으로 압축했다. 이른바 「보안사3인방」인 이학봉·허삼수·허화평 피고인에 대해서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사전계획에 따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경위 등을 집중신문한다. 장세동피고인에 대해서는 청와대 경호를 맡은 30경비단을 반란지휘부의 장소로 제공한 경위를 추궁한다.정총장의 연행상황을 「경복궁모임」 참석자에게 수시로 보고한 것도 신문대상이다. 박준병피고인에 대해서는 「경복궁모임」 참석 및 20사단 병력의 이동상황을 추궁한다. 하지만 일반의 관심이 이들의 진술내용보다는 법정태도에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전씨의 진술에 맞춘 「줄서기」·「충성경쟁」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 것이냐가 대상이다.특히 「5공문제」로 세번째 구속된 장세동피고인의 「소신발언」이 주목된다.
  • “12·12때 육본지휘부·통신망 「수경사이동」 노 국방이 승인”

    ◎윤성민 당시 육차마장,전·노씨 「지휘체계 붕괴」 주장 반박 증언 12·12사건 당시 군의 명령체계는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비롯,윤성민 육군 참모차장 등 육군본부 지휘관들 사이에 일사불란하게 유지됐었다.윤성민씨가 지난 19일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증언한 내용이다. 이는 12·12 사건의 반란 여부 등을 둘러싼 검찰과 피고인의 법정 공방을 가름하는 결정적 증언이다. 전두환 피고인은 지난 18일 공판에서 『12·12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자,수경사에 있던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등이 장태완사령관과 함께 「경복궁 모임」을 분쇄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 부근에 대한 포격을 명령했다』며 『포격을 명령한 장사령관이 바로 반란군』이라고 주장했었다. 노태우 피고인도 지난 11일 공판에서 『당시 군의 공식 지휘체계가 무너졌었다』고 진술했었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전화에서 『당시 전·노씨 등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인 신군부측이 병력을 동원,육본을 점거하려 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당시 육본 벙커(B2)에 있던 노국방장관에게 이 사실을 전화로 보고했다』며 『반란군의 무력점거에 대비,노장관에게 전화로 「통신축」을 23명의 장교와 함께 군사력이 있는 수경사로 옮기겠다고 건의,승낙받았다』고 밝혔다. 윤씨는 『검찰의 수사가 재개되기 전 전 전 대통령도 참석한 5공 각료들의 친목회인 「무궁화회」 모임에서 검찰에 소환되면 당시 지휘체계 유지상황 등에 대해 역사적 사실의 진술이 불가피하다고 얘기했다』며 『전 전 대통령도 양해했었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또 『5공 때 국방장관을 지내,법정 증언에 인간적인 고뇌가 있으나 역사적 진실의 규명을 위해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했다.〈박선화 기자〉
  • “대통령재가 관계없이 정승화 총장 연행하라”

    ◎전씨,“허삼수에 지시” 진술/「12·12」 군사반란 혐의 시인/12·12­5·18 2차공판 12·12 사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은 최규하 대통령의 사전 재가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두환 피고인은 18일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에서 『79년 12월12일 당시 허삼수 우경윤 등에게 재가에 관계없이 하오 7시가 되면 정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당시 합수부장으로 6시30분쯤 총리 공관으로 최대통령에게 가면서 7시쯤 재가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히고 『최대통령도 여러 경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전피고인은 『12월6일 정총장을 연행할 것을 결심한 뒤 7일 노태우피고인을 만나 연행 및 수습 방안 등을 설명하고,같은 날 허삼수 등에게도 계획을 설명했다』고 진술,12·12사건이 자신의 주도 아래 신군부의 사전모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일부 시인했다. 전피고인은 12월 7일 황영시,9일 최세창·박준병,10일 박희도,11일 거규헌,12일 유학성피고인 등을 만나 12·12 계획의 일부를 설명하고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상오 10시부터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된 공판에는 전피고인을 비롯,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거규헌 박준병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박종규 신윤희 피고인 등 12·12 관련자 13명이 출정했다. 전피고인은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병력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거하고,장태완 수경사 사령관 등 육군 정식 지휘계통의 핵심 지휘관들을 체포함으로써 정식 지휘계통을 와해시키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그 때 상황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건 사실』이라고 말해 12·12 군사반란 혐의를 인정했다. 전피고인은 그러나 『10·26사건에 깊숙히 연루됐던 정총장에 대한 연행은 합수부의 합법적이고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재가과정에서 강압은 없었으며,최대통령도 노재현 국방장관이 오면 재가하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신문에앞서 전피고인측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는 「변호인단의 기본입장」과 「쟁점 정리를 위한 석명 요청」을 통해 『검찰의 공소 사실대로 전피고인이 위법한 내란에 의해 집권했다면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무효이므로,대통령으로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며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 가운데 하나는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판은 유학성 황영시 피고인에 이어 전피고인에 대한 직접 신문을 끝으로 하오 6시50분쯤 끝났다.3차 공판은 오는 3월25일 상오 10시에 열린다.〈황진선 기자〉
  • 「12·12」 2차 공판­법정 이모저모

    ◎전씨 변명·부인으로 일관/국회증언까지 번복… 자신행위 정당화/당당한 자세 답변… 뉘우침 안보여/“당시 정부 실권 없어” 오만한 진술 쿠데타 세력들에 대한 법의 신문은 준엄했다.그러나 쿠데타의 주역은 여전히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18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재판장 김영일 형사수석부장판사)에서 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 피고인은 국회에서의 증언까지 번복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전 피고인은 『12·12는 정승화 총장의 연행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군 내부의 소장파 움직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89년 12월31일 국회 5공청문회에서 전 피고인 자신이 12·12는 정총장의 연행과 군의 개혁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음을 지적했다. 전피고인은 『당시는 남이 써 준 것을 읽었을 뿐이고,이를 검토할 시간도 소명자료도 부족했다』며 『국민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당시 국회 증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이 법정에서의 증언도 번복하겠습니까』라는 검찰의 반문이 날카로웠다. 전 피고인은 여러차례 증언을 번복했다.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을 둘러싼 정승화 총장과의 갈등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검찰이 지난 12월3일 전 피고인이 안양교도소에서 『이후락을 둘러싼 정총장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진술한 조서를 증거로 들이댔다. 그러자 전 피고인은 『단식 중이라 기력도 없고 피곤해서 수사검사를 빨리 돌려보내려고 말한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그 날이 구속 첫 날이었음을 상기시켰고,전 피고인은 『이후락은 잘 아는 사이이고,당시 답변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겼다. 게다가 총장 연행과 관련한 재가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반드시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안 할 수가 없다』『아는 사람끼리 저녁먹기 위해 (전방 부대 지휘관들이)서울에 오는 것은 출·퇴근과 같은 것이지,계엄하에서의 수소지역 이탈은 아니다』『당시 정부는 과도 정부로 실권이 없었다』는 등 군의 규율과 국헌에 대한 전씨의 오만했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진술로 일관했다. 전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를 필요에 따라서는 구국의 결단처럼 강변하고,때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얼버무리면서 궁색하게 검찰의 추궁을 피하려 했다.〈박상렬 기자〉
  • 「12·12」 2차 공판­새로 밝혀진 사실

    ◎군권장악 이튿날 「6인위」서 군인사/한달전부터 군수뇌부 물갈이 은밀 논의/“「연행」 재가 안하면 혼란” 최 대통령 압박 12·12사건의 2차 공판에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쏟아졌다. 12·12 거사일 결정은 79년 11월 말부터 황영시·유학성·노태우피고인 등이 연행 불가피성을 거론하자,전두환피고인이 12월6일 혼자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전피고인은 『80년 3월3일을 대통령 취임일로 잡고 월남전에서도 4월4일을 작전일로 잡은 것처럼,두 숫자가 모이는 12월12일이 좋아서 정했다』고 말했다.전피고인은 거사일을 이처럼 정한 뒤 12월7일 노피고인과 합의하고 경복궁 참석자들에게 전파했다. 또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한 사람은 황피고인 것으로 드러났다.황피고인은 79년 11월24일 육본에서 열린 계엄확대 회의에 참석한 후 귀대하면서 전피고인을 만나 『정총장의 10·26 사태 이후 언동이나 미심쩍은 행적으로 보아 조사할 필요성이 있지 않느냐』며 항의조로 제안했다.전피고인은 이에 『적당한 시기에 정총장을 수사하겠다』고 응답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집단면담을 통해 재가를 받아내자고 주도한 사람도 황피고인이었다.12일 하오 7시쯤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받아내지 못하자,황피고인은 30경비단 모임에서 『함께 대통령을 면담해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자』고 부추겼다. 이들의 최대통령 집단 면담시 발언내용도 새롭다.유피고인이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돼 전쟁이 초래된다』는 위기론을 들먹이자,최대통령은 『그래요? 조용한데 무슨 불상사요.잠잠하기만 한데』라며 재가를 거부했다. 최대통령이 정총장 연행 재가문서의 서명날인란 옆에 『05:10 AM』이라고 재가시간을 표기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최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이 불법이라고 생각했으나 국방장관의 정식 결재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사후결재했다』며 『이 점을 기록하기 위해 결재시간을 적었다』고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술회했다. 10·26 직후 수사과정에서 청와대 김계원 비서실장 방 금고에서 발견된 9억원의 추후 사용처도 밝혀졌다.전피고인은 『이 돈을 박근혜씨에게 건넸으나 6억원을 제외한 3억원을 보내와 1억원은 수사비로 쓰고 나머지 2억원은 정총장에게 건넸다』고 말했다.전피고인은 『정총장에게 건넨 2억원의 행방은 모른다』며 『노국방장관에게도 5천만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전피고인 등 6인위원회가 군 고위인사를 단행한 것도 새로 밝혀진 사실이다.이희성피고인은 13일 상오 2시30분쯤 보안사령관실을 방문,전·유피고인에게 「누구 승인을 받고 계엄상황에서 위수지역을 이탈했느냐」고 꾸짖었다.이에 전피고인이 「육참총장 이희성」이라고 적힌 쪽지를 보여주었으며,유피고인은 이피고인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 『이 난국을 수습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으니 총장을 맡아달라』고 회유했다.이피고인은 이 날 노국방장관으로부터 육참총장겸 계엄사령관 임명 사실을 통보받았다.이에 앞선 11월30일 김윤호 광주보병학교장은 전피고인을 보안사에서 만나 『참모총장 황영시,참모차장 전두환』등의 인사안을 개진한 점도 검찰 신문에서 드러났다.〈박홍기 기자〉
  • 오늘 전·노씨 2차공판/「12·12­5·18」관련

    ◎검찰 12명 직접신문 12·12 및 5·18사건의 2차 공판이 18일 상오 10시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이 날 공판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씨 등 12·12사건 관련 피고인 13명이 출정한다. 검찰은 지난 11일의 1차공판 때 직접신문을 마친 노피고인을 뺀 나머지 12명의 피고인을 직접신문한다.전두환피고인은 유학성·황영시피고인에 이어 세번째로 신문을 받는다. 검찰은 유·황피고인에게 각각 1백 문항,전피고인에게는 3백 문항을 신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한 경위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여부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예정이다. 한편 재판부는 1차공판 때와 같은 법정소란을 막기 위해 법정내 방청석을 감시하는 폐쇄회로 TV 2대를 설치,운용키로 했다.
  • 「12·12」 「5·18」 오늘 2차공판 전망

    ◎“법정승부 분수령” 공방 치열할듯/검찰­“전씨 꼼짝못할 새 증거 있다”/변호인­“공소사실 구체성 상실 집중 부각” 18일 열리는 12·12 및 5·18 사건 2차 공판은 검찰과 변호인간의 법정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유학성·황영시피고인 등 신군부 세력 원로급에 대한 직접 신문에 이어 실권자였던 전두환피고인을 상대로 군사반란의 전모를 추궁한다.전피고인에 대한 문항만도 3백개.사건의 성격이 분명히 가려질 수밖에 없다.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뒤로 미룬 것은 전씨를 먼저 신문할 경우,나머지 피고인들이 입을 맞출 가능성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지난 11일 첫 공판 때와 같은 전략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이같은 검찰의 전략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져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다. 기선을 제압한다는 측면에서 전씨를 첫 신문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이번 공판에서 피고인측의 범죄사실에 대해 『매우 강도 높고 집요한 신문을 펼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전씨를 꼼짝 못하게 할카드가 있다』고도 흘려 주목된다.신문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직접 신문만 진행되기 때문에 주도권은 당연히 검찰이 잡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변호인단은 첫 공판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사실이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피고인들의 입을 통해 집중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이양우 변호사의 『개별 재판에 대해서는 성과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은 변호인단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재판의 전체적인 흐름,즉 12·12 및 5·18 사건의 당위성을 주장,이를 역사의 기록에 최대한 남기겠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가장 큰 관심은 전씨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언될 12·12 사건의 경위이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계획과 시행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과정에서의 강제성 여부 ▲이른바 「경복궁 모임」 성사 경위 등은 전피고인만이 전모을 아는 사안이다.인사 문제를 둘러싼 정총장과의 갈등,원로장성 그룹을 제거하기 위한 소장파의 사전 모의 과정도 쟁점 사항이다. 검찰의 창과 피고인의 방패가 맞부딪치는 양상이다.물론 팽팽하다.그러나 12·12 사실 관계 규명에서는 검찰이 유리하다.재판부가 법률논쟁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주력해 줄 것을 양측에 당부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공방으로 2차 공판에서도 전피고인 등 피고인 13명에 대한 직접신문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25일의 3차 공판에서나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 공판에선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의 옥중서신 교환설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12·12 당시의 정국 상황,군부내 노·소장간 암투 등의 비사를 전피고인들이 밝힐 지도 관심거리다.
  • 두 전대통령 역사의 심판대 함께서다/“정총장 연행 전씨와 합의”

    ◎「12·12·「5·18」 첫 공판/노씨,“조사 마친뒤 시키려 했다”/“쿠데타”·“정치재판” 검찰·변호인 공방 헌정 사상 최초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란히 섰다.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전·노피고인을 비롯,황영시 유학성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차규헌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 8명,최세창 박준병 장세동 신윤희 박종규씨 등 12·12 관련자 5명,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씨 등 5·18관련자 3명 등 모두 16명의 피고인이 출정했다. 노피고인은 하오 3시15분부터 진행된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12·12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계획을 협의한 사실이 있다』며 『정총장이 많은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마친 뒤 용퇴하도록 설득할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 등을 체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에는 『자세한 계획은모르고 체포된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답변하는 등 대부분의 신문에 대해 12·12 사건의 정당성을 내세우거나 군권찬탈의도를 부인했다. 전·노씨 등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하오 3시가 넘을 때까지 모두진술을 통해 『검찰이 5공화국과 5공화국 헌법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그 연장선상에 있는 6공화국은 물론 현 정권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다. 전상석·한영석 변호사 등은 ▲5·18특별법의위헌성 ▲기소유예 및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한 사건의 재수사의 부당성 ▲공소사실의 추상성 ▲정총장 연행의 정당성 및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통한 지휘계통의 준수 등을 주장하며 이 사건의 재수사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찰은 상오 모든진술에서 『12·12 및 5·18사건에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뒤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이 재판을 통해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고 후손들에게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이어 기소요지 낭독을 통해 『전·노씨 등 신군부가 군권을 찬탈하기 위해 대통령의재가없이 정승화 육군총장을 연행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짓밝아 권력을 창출하는 등 쿠데타를 자행햇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노씨에 대한 신문만 마친뒤 하오 6시10분즘 공판을 마쳤다. 2차 재판은 18일 상오 10시에 열린다.
  • “5공 부정땐 국가정통성 부정”/변호인 모두진술 요지

    ◎5·18특별법 법원 재판권 뺏은 위헌법률/정승화씨 체포 대통령 사전승인 필요없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12·12 및 5·18사건 관련 피고인의 전상석 변호사가 11일 공판에서 변호인단 대표로 낭독한 모두진술을 요약한다. 1,5공화국의 정통성 5공화국 헌법은 80년 10월27일 국민투표로 개정됐고 현행 헌법은 5공화국 헌법에 기초한 것이다.5공화국 헌법이 부정되면 현행 헌법의 실제 효력이 부정됨은 물론 대한민국의 연속성,정통성마저 부정된다.또 5공화국이 부인되면 대한민국의 외교적·국제적 지위는 물론 모든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지위가 부정된다. 2,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하여 5·18 특별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3권분립 제도에 반하여 법원의 재판권마저 찬탈한 위헌법률이다.또 5·18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9분의 4의 소수 의견이 9분의 5의 다수 의견을 제압한 것으로,역리가 순리를 제압한 것이다. 3,12·12 군사반란에 대하여 (가)정승화의 체포는 10·26사건의 수사책임을 맡은 합수부의 정당한 업무 집행이며 병력출동은 정승화계열 군부의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정승화는 10·26 사건 방조죄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재심에 의해 그 유죄판결의 기판력이 배제되지 않는 이상 누구도 확정된 유죄판결과 배치되는 사실관계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은 확립된 법리이다. (다)수사권의 행사는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의 사전승인이 필요없을 뿐 아니라 실정 법규상 사전결재 의무를 규정한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합수부의 병력출동은 정승화 계열 군부가 국방장관의 소재불명 등 사유로 군의 지휘공백이 초래된 상황에서 불법적 병력동원을 했으므로 이를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4,내란죄에 대하여 (가)5·17 전국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국보위 설치는 최규하대통령 정부에 의해 행해진 정당한 국법집행 행위이며 계엄군의 출동은 군의 정상적인 작전임무였다. (나)검찰은 5공화국의 헌법개정을 내란행위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에 의해 확정된 것이다.검찰은 국민 전체를 내란의 공범자로 보고 헌법개정 권력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국민의사를 임의로 폐기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다)검찰은 발포명령자가 없다고 하면서 자위권 발동지시가 사실상 발포명령이고 자위권 발동지시를 한 계엄사령과 배후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있었으므로 전두환보안사령관을 발포명령 책임자라고 주장한다.범죄의 성립에는 고의·과실 등 주관적 구성요건과 실행행위에 해당하는 객관적 구성요건이 있어야 한다.
  • 「12·12」「5·18」 공판­이모저모

    ◎전씨,노씨와 귀엣말… 제지 당하자 당황/보도진 사진 촬영 이례적 90초 허용/방청진 「암표」 1장에 50만원 웃돌아 두 전직 대통령을 함께 법정에 세운 「세기의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법원이나 구치소 주변은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법원주변◁ ○…정문 앞에는 6개 중대·7백20명의 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폈다.「5·18동지회」 등 5·18관련단체 회원 80여명은 이날 상오 광주에서 전세버스 2대를 타고 올라와 법원으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5월 민중항쟁 동지회」 김현장 회장(46)은 『전·노 두사람에게 5·18 유족들의 울분을 보여주기 위해 피켓과 현수막을 준비했는데,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이들은 전·노씨 등 피고인들을 태운 호송차가 도착하자 계란 등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상오 9시 방청권을 손에 쥔 사람들은 수고비를 톡톡이 받고 의뢰를 받은 심부름 센터 직원들이 대부분.방청권을 받기 위한 줄서기는 지난 9일 하오 시작돼 같은날 하오 8시 사실상 마감됐었다. 때문에 방청권의 「암표값」은 이틀 밤을 철야한 품값과 공판이 갖는 의미에 비춰 장당 50만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법정에서 전·노피고인에게 고함을 쳤던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는 전씨의 차남 재용씨(32)를 전치 3주의 진단서를 첨부,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전·노씨가 웃으며 악수를 하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치는 순간 옆 자리에 앉았던 재용씨가 목을 때렸으며,전·노씨의 측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고 주장. 강씨는 공판이 끝난뒤 목의 상처를 이유로 관악구 사당동 사당의원에 입원. ▷호송◁ ○…안양교도소 및 서울구치소·영등포구치소 등 3곳에 분산 수감돼 있던 두 전직 대통령 등 구속피고인 11명에 대한 법정호송이 상오 7시50분부터 경찰의 삼엄한 경비속에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구치감◁ ○…노피고인은 상오 9시22분 경기5더1062호 호송차량을 타고 법원 구치감 입구에 도착한 뒤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고 바로 구치감으로 들어갔다.그는 비자금 사건 등 계속된 재판으로 지친 탓인지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 ○…6분 뒤 경기6도1007호 차량을 타고 도착한 전피고인도 미소까지 띠고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입정하던 지난번 비자금 사건 재판 때와는 달리 긴장된 모습.그는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전·노피고인을 태운 호송차량은 시민들이 던진 계란 등의 얼룩이 앞유리창과 옆창문 등에 묻어 있었다. ▷법정◁ ○…서울지법 417호 법정으로 통하는 2층 검색대 앞에는 전·노씨의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원홍 전 문공장관,김진영 전 육참총장,이필섭 전 합참의장,최석립 전 경호실장,최웅 전 대만대사,김재명 전 지하철공사 사장 등 5∼6공 인사들도 대거 방청. 전씨가 백담사에 유배됐을 당시 백일기도를 도왔다는 성능스님은 『오랫동안 전 전 대통령을 뵙지 못해 나왔다』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날 피고인들이 모두피고인석에 서자 인정신문에 앞서 90초동안 피고인의 뒷모습과 재판부·검사석에 대한 보도진의 촬영을 허용.40초이던 전·노씨 비자금 사건 공판에 비해 촬영허용 시간이 곱절 이상 길어졌다. ○…검찰은 노씨에 대한 직접신문을 진행하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전씨가 귀엣말로 노씨와 수차례 속삭이자 강력히 제동.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 김상희 부장검사가 『전두환 피고인은 가만히 계십시오』라고 큰소리로 제지하자 전씨는 놀란 듯 검사석을 돌아본 뒤 서둘러 재판장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등 당황한 표정이 역력. ○…상오 재판이 끝나며 다소간의 소란이 빚어지자 김영일 부장판사는 하오 5시55분쯤 20분간 휴정을 선언하고 퇴정하면서 『누구도 법정안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다』며 『그런 사람은 법정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며,앞으로는 재판부가 퇴정한 이후의 법정소란 행위도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 ○…노씨는 비자금 사건 공판 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자기 변호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검찰신문에 대응해 눈길. 노씨는 정총장의 연행은 신군부측의 하극상에 의한 불법행위였다고 검찰이 추궁하자 『당시 신군부 장성 이외에 정식 지휘계통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만큼 불법적 요소는 없었다』고 강변. 특히 『합수부장은 범죄혐의가 있는 한 어느 누구라도 수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며 정총장을 연행한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 ▷연희·서교동◁ ○…두 전직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변은 비교적 한산.가족용 방청권 3장을 받은 재국씨 등 전씨의 세아들은 상오 8시25분쯤 어머니 이순자씨를 집에 남겨 둔채 법원으로 출발. 재국씨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변호인과 상의해서 나중에 말하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노씨의 장남인 재헌씨도 아침 일찍 서초동 법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교동 집 주변도 한적했다.최 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언론을 통해 오늘 공판이 열리는 사실은 아시겠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고 전언. ▷피해자 반응◁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70)과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65·재향군인회 회장)은 관련자들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부하들이 반란죄를 짓고 법정에 선 모습을 보니 다소 안타깝다』며 『그러나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다가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등 반란을 꾀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도 『반란사건을 진압하지 못한 지휘관으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다』며 『앞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며 『재판부는 여론과 국민감정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냉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 「12·12」 「5·18」 공판­쟁점과 전망

    ◎경복궁 모임/“군권찬탈 모의” “동요 막기 회합”/정총장연행­“재가없어 불법”에 “사후재가 유효”/총장공관 발표­“신군부 선제공격”에 “우발적 충돌”/재판부 최전대통령에 증인출석 요구 가능성 12·12 및 5·18사건의 첫 공판의 양상은 예상한대로였다.검찰과 변호인간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모두 진술을 두차례 하고, 이종찬 수사본부부장은 별도 기자회견까지 가졌다/ 변호인단은 모두진술내용을 책자로 배포하는 동시에 번갈아가며 논쟁을 부추겼다. 검찰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12·12와 5·18을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규정,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6명을 단죄하려 한다. 반면 변호인단은 5공의 정통성 수호차원에서 특별법에 의한 재수사의 부당성을 집중부각하려 한다. 첫 재판에서도 양측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전 육참총장의 강제연행,총장공관에서의 선제발포,병력의 불법동원,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후재가 등이 그것이다. 검찰은 경복궁 모임이「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34명이 모여 군권찬탈을 모의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은 정 전 총장의 연행에 따른 군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경복궁에 모였다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정 전 총장의 강제연행이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 없이 이뤄진 불법행위라는 검찰의 신문에 대해,피고인들은 자유당시절 김창용특무대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군수사기관이 상관인 김창용 특별무대장을 연행한 사실을 들어 「재가없는 연행은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총장공관에서의 발포가 보안사 수사관 3명에 의한 선제공격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피고인들은 연행에 불응하는 데 대한 우발적 범행이었으며 사전지시는 없었다고 강변했다. 병력의 동원에 대해서는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 등이 명령계통을 어기며 탱크 등을 동원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최전대통령의 사전재가가 없는 정전총장의 연행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맞섰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재판부에 의해 가닥이잡히고 있다.김영일재판장이 『양측은 법리논쟁보다 사실규명에 주력해달라』고 따끔히 주의를 준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재판부는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본격적인 심리를 진행,범죄의 사실규명에 주력하겠다는 생각이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신문이 늦어이자 재판일정을 1주일씩 순연할 방침이다. 이날 마무리하지 못한 전 피고인 등에 대한 12·12사건신문을 오는 18일에 마치고, 25일에는 5·17사건, 4월1일과 8일 5·18사건을 집중 심리할 방침이다. 특히 앞으로 공판에서 양측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지면 쟁점의 명확한 규명을 위해 재판부가 최 전 대통령의 가능성도 있다.
  • 전·노씨 법정태도 비교

    ◎전씨­당위성 떳떳하게 주장… 휴정땐 웃음/노씨­“그런것 같다” 식 답변… 줄곧 고개숙여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1일 상오 법정에서 수의를 입고 살며시 손을 잡았다. 79년 12·12사건으로 군권을 찬탈한 전씨는 반란수괴 혐의로,노씨는 반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법정에 섰다. 16년전 머리를 맞대고 모의한 「거사」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는 두 피고인은 때로는 당당하고,때로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수감번호 3124를 단 전씨와 1042번의 노씨는 어깨를 펴고 비교적 여유있게 들어섰다. 검찰의 공소장 요지 낭독이 끝난 뒤 변호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자 두 피고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씨는 다리를 가끔 쭉 뻗는가 하면 팔짱을 끼고 몸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댄채 변호인들을 쳐다보기도 했다.12·12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들고 법정 정면에 있는 법원 마크를 응시하며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반면 노씨는 줄곧 약간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변호인의 주장을 들었다. 전씨의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는 「변호인단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1시간30분 동안이나 읽었으나,노씨의 변호인인 한영석변호사는 5분 정도 모두진술을 했다.두 피고인의 비중이 여실히 드러났다. 낮 12시 휴정되자 전씨는 웃음을 띠며 노씨를 비롯,옆에 있는 피고인 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조용히 안부를 묻거나 격려했다.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전씨는 답변중인 노씨에게 말을 건네다 김상희부장검사로부터 『가만히 있으십시요』라는 제재를 받는 등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노씨는 검찰의 신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관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10·26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노씨는 『모셔와 설득,알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전씨가 검찰의 조사에서 『수사를 위해 연행했다』고 진술한 것과 비교,이 사건의 주종 관계처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노씨는 『12·12사건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한 일』이라며 다른 피고인들이 지금껏 되풀이했던 12·12의 정당성을 소리 높이 진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전씨가 입정할때 대부분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노씨 입정때는 그러지 않았다.
  • 전·노씨 「12·12」 첫 공판 쟁점과 전망

    ◎“군사 반란”­“우발 사건” 법리공방 거셀듯/5백가지 직접신문 통해 「반격」 무력화­검찰측/재수사 모순 부각… 「정치재판」 유도 의지­피고측 12·12사건 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의 「법정 반격」은 어느 수준이나 될까. 11일 첫 공판의 관심은 전·노 두 피고인의 대응이다.특히 검찰 신문에 대한 반격의 수위가 주목거리다.앞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까지 증인으로 나오면 전직 대통령 세 명이 함께 법정에 서게 된다. 첫 공판에는 전·노씨를 비롯,유학성·장세동씨 등 모두 16명의 피고인이 출정한다.피고인의 입정과 인정신문,피고인의 모두진술,검찰의 직접신문 순으로 진행된다. 첫 공방은 피고인의 모두진술과 검찰의 직접신문을 통해 펼쳐진다. 핵심 쟁점은 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의 강압성,지휘계통의 문란,대통령의 사전 재가 여부이다.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검찰과 공무집행상의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인의 치열한 법리 싸움이 불을 튄다.양측의 입장이 사뭇다르기 때문이다.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비자금 사건과는 달리 변호인의 대 반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이에 대비해 피고인들의 자충수를 노리는 이이제이 전략이다.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하려는 것이다. 전씨는 3백가지,노씨는 2백가지의 신문을 통해 추궁할 계획이다.김상희 주임검사 등 수사검사 8명이 이를 위해 포진하고 있다. 직접신문을 통해 피고인·사안별로 차근차근 반격을 제압하려는 작전이다.특히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는 정총장의 연행은 정권찬탈의 사전음모라는 점을 부각시킬 방침이다. 이에 앞선 공소요지 낭독에서는 전·노씨 등의 범죄사실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수사 재기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기로 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모두진술과 직접신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정면으로 검찰에 맞설 것이다.일단 기소유예한 사안을 재수사하는 모순,상황 변화에 따른 수사의 부당성을 들어 정치재판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정총장의 연행은 불가피했고,또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지휘계통을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정총장연행시의 발포는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할 전망이다.변호인들간의 회동이 분주하고 피고인의 면회가 잦다는 점에서 「대 반격」의 의지가 엿보인다. 양측의 법리논쟁으로 첫 공판이 뜨거워지더라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법조계에서도 일단은 탐색전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 「12·12」「5·18」 오늘 첫 공판/전·노씨 등 16명 출정

    12·12 및 5·18사건의 역사적인 첫 공판이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린다. 이날 공판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나란히 법정에 선다. 유학성·황영시·이학봉·차규헌·허삼수·허화평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 6명과 박준병·최세창·장세동·신윤희·박종규씨 등 12·12 관련자 5명,정호용·이희성·주영복씨 등 5·18 관련자 3명을 포함,모두 16명의 구속 또는 불구속 피고인이 출정한다. 재판부는 피고인 입정 뒤 사진촬영,인정신문,검찰측 기소요지 낭독 등을 거친 뒤 정호용씨 등 5·18 관련자 3명을 퇴정시키고 12·12 관련 피고인만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검찰측의 직접신문을 마칠 예정이다. 검찰은 전·노 두피고인에 대해 각각 3백개와 2백개의 신문사항을 마련,▲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의 부당성 ▲경복궁 모임의 성격 등 쟁점별로 전담검사를 지정,피고인을 추궁키로 했다.
  • 이회창 의장 「광주 신역할론」 제창/망월동 등 방문 이모저모

    ◎5·18은 한국민주화 앞당긴 불씨/이젠 광주가 「탈지역」 출발점돼야/이례적 유족대표 안내받으며 묘역 참배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대위의장이 2일 「불모지」 광주에 안착했다.공항에서 망월동으로 직행,5·18묘역에 참배한 뒤 북갑지구당(위원장 정경주)개편대회에 들렀다.그는 골깊은 지역감정의 대안으로 광주의 「신역할론」을 제창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급」으로 망월동 영령에게 헌화,분향하기는 그가 처음이다.여고생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안타까운 한숨도 토했다.그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며 『유족이 바라는 후속조치가 마무리돼 광주만이 아닌 전국적 의미를 갖는 묘역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여당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청한 유족대표의 안내를 받았고 전남대 학생대표의 요구서한도 품속에 넣었다. 이어 중흥동 신한국회관에서 열린 지구당대회에서 이의장은 격려사를 통해 『5·18책임자들이 재판에 회부돼 처벌받는다고 해서 응어리진 아픔을 풀 수 있는가.반목과 갈등의 해결 없이 온전한 정치가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5·18을 4·19에 견주어 『민주화를 앞당긴 불씨로서 처절한 시민항쟁이며 문민정부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규정짓고 『광주의 아픔을 온 국민의 아픔으로 승화해 함께 치유해야 한다』며 국민화합을 역설했다. 이의장은 『정치인이 조장한 망국적 지역주의는 5·18정신에도 반한다』면서 『새정치의 출발점으로서 광주가 「광명과 동참」의 빛을 일으켜야 한다』며 탈지역주의의 신역할론을 부르짖었다.『산자들이 돌아가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용서와 화해를 실천할 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덧붙인 그는 『과거 청산의 공백을 건강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채워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스스로도 강조했지만 광주는 그에게 낯선 고장이 아니다.모친의 고향으로 초등학교를 이곳에서 나왔다.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반긴」 것은 쇠파이프를 들고 행사장주변 시청앞 네거리와 역전광장 사이 6차선도로를 점거한 4백여명의 대학생 시위대였다.매케한 최루가스도 함께였다. 그는 『옛 추억이 많이 서린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라면서도 『난생 처음 데모대의 환영을 받았다』고 만감어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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