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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열차 승차권 19~20일 예매

    코레일은 설 열차승차권을 오는 19~20일 이틀간 홈페이지(www.letskorail.com)와 지정된 역 창구, 승차권 판매 대리점에서 예매한다고 12일 밝혔다. 19일은 경부·경전·충북·동해선, 20일에는 호남·전라·장항·중앙선 등의 승차권을 예매한다. 레츠코레일 홈페이지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정된 역과 승차권 판매 대리점에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예매 가능하다. 예매 후 남은 승차권은 21일 오전 10시부터 판매한다. 1회에 최대 6매, 1인당 최대 12매로 예매가 제한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사가현 여행, 직행버스로 편리하고 똑똑하게 즐긴다

    사가현 여행, 직행버스로 편리하고 똑똑하게 즐긴다

    일본 규슈 지방에 위치한 사가현은 관광과 힐링을 모두 만족시키는 여행지로 최근 국내 여행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가현은 우레시노 온천, 다케오 온천, 후루유 온천 등 겨울 온천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일본 3대 소고기인 사가규, 오징어 활어회, 단맛이 일품인 일본주 등 가지각색의 산해진미(珍味)를 즐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곳은 규슈 올레의 한 코스인 가라쓰 코스다. 일본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관광할 수 있는 코스이며, 동시에 미네랄 온천을 체험하고 오징어 등 먹거리가 풍부한 관광코스로 유명하다. 가라쓰 올레 코스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짐에 따라 이 지역을 더욱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교통편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교통편은 기간 한정으로 운영되는 ‘가라쓰역~나고야 성터 직행버스’와 ‘하카타항~나고야 성터 직행버스’다. 일본 해안가와 나고야성 주변 관광을 계획한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가라쓰역~나고야 성터 직행버스는 2월 28일까지 매주 주말 운영된다. 금액은 성인 500엔, 어린이 250엔이며, 승차권은 진제이 관광 안내소 및 가라쓰역 종합 관광 안내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또다른 교통편인 하카타항(하카타역)~나고야 성터 직행버스는 오는 3월 28일까지 금/토/일/월에 가라쓰시에 숙박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운행된다. 가라쓰 올레 코스 스타트 지점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으며, 요금은 편도 기준 1만원이다. 탑승을 원하는 이들은 이용하기 4일 전까지 가라쓰 직행버스 예약센터(070-7844-0888)에 전화하여 예약하면 된다. 관계자는 “가라쓰 직행 버스를 이용하면 가라쓰 올레 코스의 천혜의 자연은 물론 임진왜란 출병기지로 잘 알려진 나고야 성터 등 역사적인 관광지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가현은 티웨이항공 직항 이용 시 1시간 20분, 부산항 출발 여객선 이용 시 4시간이면 도착할 정도로 한반도와 가깝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교통편을 마련해 관광객들이 사가현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가현은 24시간 무료 다국어 콜센터와 관광 애플리케이션 ‘DONGSAN SHITATO’를 운영해 관광객들이 사가현을 더욱 알차고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근로자 지위 확인

    판례의 재구성 36회에서는 ‘위장 도급계약’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산업계의 노동자 파견과 사내 도급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의 ‘2010다106436, 2011다96922’ 판결을 소개한다. 판례의 의미와 해설을 노동법 분야의 권위자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듣는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파견 노동자와 KTX 여승무원들의 희비가 엇갈린 2건의 판결을 통해 노동자 파견과 사내 도급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했다. 대법원은 ▲도급인(원청)과 수급인(하청) 소속 노동자의 지휘·명령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와 도급인 소속 노동자의 공동 작업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의 노동 관리 권한 행사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와 도급인 소속 노동자의 업무 구별 여부 등 기준을 제시하며 두 사건을 달리 판단했다. 현대자동차 안산공장 협력업체 김모(42)씨 등은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상고심에서 승소 판결한 원심을 인정받았다. 자동차 생산 공장의 전체 공정에서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용이 전반적으로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현대차가 근로자의 업무 수행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 근로자들이 현대차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는지, 협력업체가 근무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근로자의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협력업체가 독립적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바탕으로 근로 관계의 실질을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2년을 초과 근무한 4명의 경우 현대차와 협력업체가 사실상 ‘위장 도급’ 계약을 맺은 것이라는 해고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현대차 소속 노동자들과 함께 거의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현대차의 필요에 따라 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대차의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반복했다. 즉, 네 가지 기준에 따라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업무 연관성 등이 인정되고 하청 노동자의 노동 관리를 원청이 직접 했다면 이는 사내 도급이 아닌 파견에 해당하며,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는 옛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에 따라 원청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반면 KTX 여승무원 파견 사건은 현대차 사건과는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권모(35)씨 등 KTX 여승무원 115명이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코레일과의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했고, 한국철도유통에 대한 코레일의 열차 내 서비스 위탁은 위장 도급이었다는 여승무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 업무와 철도유통 소속 KTX 여승무원 업무가 구분됐고, 철도유통이 직접 승무원을 관리하고 인사권을 행사했다”며 “코레일과 여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나아가 근로자 파견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긴 했지만 코레일이 승무 분야 업무를 안전 부분과 승객서비스 부분으로 나눠 안전 부분은 열차팀장에게 맡기고 객실 온도 조절, 승객 인사, 안내방송, 승차권 확인 등 안전과 직결되지 않은 서비스 부분을 따로 떼어내 여승무원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은 열차팀장이 여승무원의 업무 수행을 확인하게 돼 있던 규정에 대해서는 “업무상 감독이라기보다는 위탁협약의 당사자가 보유한 권리의 행사”라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원청 소속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고,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 소속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명절 전후 2주… ‘상품권 할인’ 인터넷 사기 21% 급증

    명절 전후 2주… ‘상품권 할인’ 인터넷 사기 21% 급증

    기업 회계 담당자인 A씨는 지난 9일 추석 선물로 거래처에 보낼 상품권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려다 77만원이 넘는 회사 돈을 사기당했다. A씨는 상품권 구매를 위해 네이버에서 ‘상품권’을 검색했고 티켓라인 사이트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10만원권 주유상품권 8장을 구매했다. 그는 ‘오후 2시 이전에 결제를 하면 당일 배송된다’는 문구를 믿고 기다렸지만 상품권은 이틀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사이트에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자 혹시 사기가 아닐까 의심됐던 A씨는 지난 11일 티켓라인 사이트의 피해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A씨에 따르면 사이트는 지난 15일까지 버젓이 열려 있었고 그사이 피해자는 계속 늘었다. 16일까지 인터넷 사기 피해 정보 공유 사이트인 ‘더치트’와 A씨가 개설한 티켓라인 사기 피해자 모임 카페에 올라온 피해 사례만 수십여건이다. 카페에는 2000만원을 결제했다는 회원도 있었다. A씨처럼 회사 선물용으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했다 낭패를 본 기업 관계자가 많아 전체 피해액은 수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명절 연휴 전후엔 A씨와 같은 사기 피해자가 늘어난다. 지난해 추석 전후 2주간 경찰청 사이버 범죄 신고 시스템에 접수된 인터넷 사기 피해 건수는 하루 평균 6.3건으로 지난해 일평균보다 21.3% 높았다. 경찰청은 다음달 5일까지 20일간 인터넷 사기, 문자 결제 사기 등을 집중 단속한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의 단속 대상은 상품권, 공연 티켓, 승차권 등을 싸게 팔겠다고 유혹한 뒤 돈을 가로채는 인터넷 사기와 택배 배송 조회, 추석 인사, 선물 확인 등을 사칭한 전자금융거래 사기(스미싱) 범죄다. 경찰은 특히 카드 결제나 결제대금 예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계좌 이체만 고집하는 판매자를 주의하라고 권고했다. 인터넷 거래를 할 땐 사이버 범죄 예방 정보 애플리케이션 ‘사이버캅’이나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 더치트 등에서 상대방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추석 물량 증가로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배송 일정 확인하세요’, ‘선물세트 주소지로 보냈습니다’, ‘명절 상품권 보내 드렸습니다’ 등 내용에 ‘http“//go9.**/x7*’과 같은 인터넷주소가 붙은 문자는 스미싱으로 의심해야 한다. 지인 이름으로 온 문자라도 인터넷주소가 붙어 있으면 클릭하지 않는 게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추석 열차표 부당거래 땐 과태료 최고 1000만원

    추석 연휴기간 열차승차권을 부당거래하다 적발되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8일 코레일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시행된 개정 철도사업법에서는 승차권을 부정 판매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때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에 카페·블로그 운영자·회원 등이 법규를 위반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승차권 부당거래 행위 및 이를 알선(방조)하는 카페와 블로그 운영자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에 신고할 방침이다. 또 정당하지 않은 승차권(캡처 이미지, 사진 등)을 구매해 열차를 이용하다가 적발되면 운임과 최대 10배 이내의 부가운임을 물어야 하는 등 추가 피해를 당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고향 가는 열차표’ 예매 첫날

    ‘고향 가는 열차표’ 예매 첫날

    추석 열차표 예매가 시작된 1일 서울역에 표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날은 경부선과 경전선, 충북선, 경북선 등의 예매가 진행됐으며 2일에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중앙선 등의 승차권을 살 수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추석 열차 승차권 새달 1~2일 예매

    코레일은 올 추석 열차승차권을 다음달 1~2일 인터넷과 지정 역 창구·승차권 대리점에서 예매한다고 24일 밝혔다. 예매 대상은 다음달 25일부터 29일까지 운행하는 열차 승차권이다. 9월 1일에는 경부·경전·충북·경북·경의·동해남부선, 2일엔 호남·전라·장항·중앙·태백·영동·경춘선 승차권을 각각 판매한다. 인터넷(www.letskorail.com)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정된 역과 승차권 판매 대리점에서는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구입할 수 있다. KTX와 새마을·무궁화호 등의 일반열차, O·V·S·DMZ 트레인 등 관광전용열차 좌석 지정 승차권이 해당된다. 추석 승차권은 불법 유통 및 부당 확보 방지를 위해 1회 최대 6장, 1인당 최대 12장까지 예매 가능하다. 예약 승차권은 3일 오전 10시부터 6일 밤 12시까지 결제해야 하며 결제하지 않은 승차권은 자동 취소된다. 이 기간 서울(용산)~수원(광명), 부산~삼랑진, 목포~나주, 진주~마산 등 단거리 구간은 예매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스마트폰 앱인 ‘코레일 톡’과 자동발매기에서는 추석 열차 승차권을 구입할 수 없다. 예매 후 남은 승차권(KTX·새마을호·무궁화호 입석 포함)은 3일 오전 10시부터 판매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를 달리는 럭셔리 열차②로보스 레일 Rovos Rail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를 달리는 럭셔리 열차②로보스 레일 Rovos Rail

    ●로보스 레일Rovos Rail 럭셔리 기차 여행의 황금시대 열두 칸 기차에 승객은 스물여덟 명뿐 블루 트레인에 이어 이번에는 2박 3일간 로보스 열차를 타고 프리토리아에서 남아프리카의 서부, 인도양에 접한 도시 더반으로 달린다. 더반에 살면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변호사 간디가 요하네스버그로 가기 위해 일등석 기차에 탔다가 단지 유색인이란 이유로 쫓겨나면서 정치적 각성을 했다는 일화를 가진 바로 그 구간이다. 내가 탄 로보스 열차의 객차 수는 열두 개인데 승객은 전부 스물여덟 명이다. 지난번에 탄 블루 트레인의 승객이 전부 70명이란 말에 깜짝 놀랐는데 로보스 승객 수는 훨씬 더 적은 셈이다. 열차의 호사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수는 적지만 국적은 다양하다. 남아프리카, 독일, 스위스, 벨기에, 캐나다, 미국 그리고 한국까지 7개국 사람이 모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실 나는 처음 내가 원한 날짜에 로보스를 예약할 수 없었다. 그때는 예약이 꽉 찼다는 말을 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기차의 그 많은 좌석 중에 내 자리 하나가 없다는 게 의아했다. 그런데 오늘 승객 수를 보니 그 상황이 이해된다. 무엇보다 내가 착각한 건 승객들이 좌석이 아닌 ‘캐빈’에 머무른다는 사실이다. 프리토리아역에서 출발하는 블루 트레인과 다르게 로보스는 약 24만 평방미터(7만3,000평 정도) 규모의 로보스 기차역을 따로 운영한다. 덕분에 무심코 프리토리아 기차역으로 간 나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4km 정도 떨어진 캐피털 파크의 로보스 기차역으로 가는 소동을 치렀다. 서둘러 찾아간 로보스역사 라운지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승객이건 직원이건 너무 한가로워 보여 늦을까 허둥지둥 대던 모습이 머쓱했다. 로보스는 안전하고 편안한 자기만의 기차역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에 로보스 박물관도 있다. 승객들은 열차에 오르기 전 라운지에서 샴페인 리셉션을 즐기고, 아프리카에 관한 사진집을 들쳐보고, 박물관을 둘러본다. 라운지를 둘러보다 보니 키가 훤칠한 중년 남자가 눈에 띈다. “저 분이 로보스 레일의 창립자 ‘로한 보스’씨입니다. 오늘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하기 위해 오셨어요.” 나와 눈이 마주친 로보스 직원이 친절히 설명해 준다. 로한 보스는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할 때 종종 기차역에 나와 손님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이런 오너가 또 있을까? excursion 특별했던 로보스 사파리 기차 여행 중에 사파리를 간다는 점은 블루 트레인과 다른 로보스의 특징이다. 프리토리아-더반 구간에서는 둘째 날 이른 아침과 오후에 걸쳐 두 번 사파리를 간다. 스피온콥 리저브Spionkop Reserve와 나미티 게임 리저브Namiti Game Reserve를 둘러본 로보스의 사파리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전부 6시간 넘게 진행된다. 이날 나는 운이 좋았다. 스피온콥 리저브에서는 4,500만 평방미터(1,350만평) 넓이의 리저브 안에 단 한 마리밖에 없다는 치타를 보았고 8,000m2(2,450만평) 넓이의 나미티에서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코뿔소를 보았다. 사파리 외에도 로보스의 익스커션은 더 있다. 첫째 날에는, 라이온스 리버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아드모어 세라믹 갤러리Ardmore Ceramic Gallery와 1962년 8월5일 넬슨 만델라가 체포된 장소 인근에 세운 기념관Nelson Mandela Capture Site을 방문했다. 세라믹 갤러리에선 줄루족의 민속, 동물과 자연 환경이 투영된 작품들을 보았고, 넬슨 만델라 기념관에서는 6m에서 9.5m에 달하는 철제빔 50개로 만든 만델라의 얼굴과 만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만델라 조형물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만델라의 얼굴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흔히 기념관이 있는 곳을 만델라가 체포된 곳으로 여기기 쉬운데 만델라가 운전수로 위장했다가 경찰에 의해 체포된 장소는 조형물 부근 도로다. 빈티지 열차에 담은 아프리카 대모험의 로망 2014년 로보스 레일은 25주년을 맞았다. 로보스의 애칭이자 슬로건은 ‘더 프라이드 오브 아프리카The Pride of Africa’다. 로보스의 자부심이 이 한마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보스는 지금보다 심플하지만 더 우아했던 과거를 그린다. 로보스 역시 블루 트레인과 마찬가지로 비싸다. 하지만 로보스에서 제공하는 와인은 남아프리카에서 최고로 꼽히는 와인들이다. 5성급 호텔 음식과 와인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요금은 비싼 게 아닌지도 모른다. 로보스를 타고 달리는 2박 3일은 온갖 와인을 시음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승객들은 정장을 하고 한 시간, 또는 두 시간에 걸쳐 디너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다. 사실 나는 처음 메뉴판을 받아 보고 당황했다. 메뉴를 읽을 수가 없었다. 낯선 단어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둘째 날 저녁 애피타이저 메뉴는 이렇다. “Seared loin of springbok with a port and black cherry demi-glace set on stir-fried vegetable and a creamy parmesan and sage polenta.” “센 불에 재빨리 구어낸 후 포르투갈 산 와인과 블랙 체리 데미 글라스 소스를 뿌린 남아프리카산 영양의 허릿살에 볶은 야채, 그리고 크리미한 파마산 치즈와 세이지라는 허브를 섞어 만든 폴렌타(옥수수 가루로 만든 음식)를 곁들임.” 이번엔 메인 메뉴다. “A special duo of Rovos cheeses locally made from goats milk and infused with peppadew and biltong, served with fresh grapes, pears, apples, figs and melba toast.” “산양 우유로 만든 특별한 로보스 치즈 두 조각에 스위트 페퍼와 육포를 가미하고, 신선한 포도, 배, 사과, 무화과와 바삭하게 구운 얇은 토스트를 곁들임.” 호화열차 다이닝 카에서 공부하듯 사전을 찾았고, 맛을 최대한 천천히 음미했다. 하나하나 알아 가는 과정은 번거롭지 않았다. 오히려 다이닝의 즐거움은 배가됐다. 사실, 내가 위의 메뉴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승차권 요금에 모든 식사, 음료, 좋은 와인과 주류, 기차에서 내려 즐기는 익스커션, 룸서비스, 세탁 서비스를 포함시킨다는 건 우리가 제일 먼저 내린 결정이에요. 이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로보스의 어느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일단 로보스에 승차만 한다면 남은 일은 모든 서비스를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즐기는 일뿐이다. 이런 서비스는 블루 트레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보스에도 블루 트레인과 마찬가지로 드레스 코드가 있다. “낮에는 캐주얼 스마트, 하지만 디너 때는 ‘아프리카의 프라이드’에 걸맞게 슈트와 타이를 하는 게 예의입니다.” 블루 트레인 때와 다르게 어느 새 슈트를 입고, 보타이를 하고 식사를 하는 게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여행은 이렇듯 인생학교가 될 수 있다. 여행 중 시도하는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유익하다. 1박 2일 상품만 운영하는 블루 트레인과 다르게 로보스는 9일짜리 헌팅 사파리와 나미비아 사파리, 골프 사파리 등 2박 3일에서 14박 15일까지 8가지 다양한 여정을 선보인다. 프리토리아-케이프타운 구간도 1박 2일의 블루 트레인과 다르게 로보스는 2박3일 여정이다. 기간이 가장 긴 상품은 케냐를 지나 탄자니아 다르에 살람Dar es Salaam까지 가는 15일짜리 여정이다. 로보스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프리카 대모험의 로망을 우아한 빈티지 열차에 담았다. 전혀 다른 삶을 엿보는 사교장 로보스에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위트별 승객 명단을 모두에게 나눠준 점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건 승객간 사교의 출발점인데 로보스는 승객 명단을 제공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셈이다. 로보스 역시 워낙 고가의 열차이기에 블루 트레인처럼 중년, 노년의 승객이 많다. 60대 초반의 마르셀은 스위스 루체른에서 왔다. 아니, 케이프타운에서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집이 루체른과 케이프타운 두 곳에 있어 스위스가 여름일 때는 루체른에서, 겨울일 때는 케이프타운에서 지내는 식인데 요즘은 케이프타운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에서 일했던 그는 마흔아홉살 때 은퇴했다고 했다. ‘쉰아홉이 아니고요?’ 그에게 되물었다. “은행에 다니면서 돈은 많지만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나는 일만 하다가 돈 쓸 시간도 없이 죽고 싶진 않아요. 인생을 즐기며 살 거라고 진작 결심했죠. 내가 아주 일찍 은퇴한 이유에요.” 아내 카타리나와 함께 여행 중인 마르셀은 로보스에 ‘여덟 번째’ 타는 거라고 했다. 그는 기차 여행을 즐기는데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호화열차는 거의 다 타 본 듯하다. 마르셀의 노년은 세상 사람 모두가 꿈꾸는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마르셀과 얘기를 마치고, 전망차로 갔다. 로보스의 마지막 칸은 오픈 데크open deck의 전망차다. 말 그대로 바람과 공기를 차단하는 유리창이 없는 탁 트인 전망대다. 바람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 블루 트레인과 로보스를 비교할 때 로보스의 장점은 캐빈의 냉난방을 전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27일 오전 11시 로보스 열차에 올라 이틀 밤을 기차에서 보내고, 드라켄즈버그 산을 넘어, 29일 아침 해발 1,903m의 하이델베르크를 지나 오후 4시30분 더반역에 도착했다. 더반, 인도양이 저 앞이다. 69819번. 로보스 레일에서 준 ‘럭셔리 기차 여행의 황금시대’란 제목의 탑승 증명서의 내 이름 옆에 쓰인 일련번호다. 고상한 느림을 추구하다 로보스에는 풀맨 스위트Pullman Suites, 딜럭스 스위트Deluxe Suites, 로열 스위트Royal Suites 등 세 가지 스위트가 있다. 내 방은 딜럭스 스위트. 세 가지 캐빈 중 중간 등급이다. 그런데도 요금은 장장 R2만2,900(2인 기준, 1인 요금). 하지만 나처럼 혼자 스위트를 쓰면 요금의 50%가 추가되어 USD3,000 정도다. 각 슬리퍼 캐리지의 길이는 22m, 무게는 11톤으로 ‘경쟁자’보다 25% 무겁다. 수납공간은 아주 넓다. 골프 클럽 세트와 다섯 개의 큰 슈트케이스를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수납장도 욕실도 경쟁자보다 25% 넓다. 로열 스위트에는 욕조도 있다. 블루 트레인에서 가능했던 와이파이가 로보스에선 불가하다. 라디오도 TV도 로보스에선 찾아볼 수 없다. 로보스는 승객들에게 “핸드폰, 노트북 등은 라운지나 다이닝 카 같은 퍼블릭 에어리어가 아닌 자기 캐빈 안에서 사용해 달라”고 요청한다. 로보스는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잘 때 간혹 기차가 멈춘다. 로보스의 최고 속도는 겨우 60km, 하지만 속도를 못내는 게 아니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다. 블루 트레인과 로보스의 성향은 이렇게 다르다. 로보스는 1989년 최초로 운항을 시작해 10년 후인 1999년에는 프리토리아의 캐피털 파크에 본사 역사를 지었고, 2002년에는 ‘에어 사파리’란 이름으로 기차여행에 항공기를 추가했으며, 2011년에는 캐피털 파크에 로보스 레일 박물관을 완공하기까지 26년이 넘는 세월의 부침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로보스 레일 서울총대리점 02-3455-8034 www.rovos.kr 에필로그epilogue 블루 트레인과 로보스 레일. 두 호화열차 안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단순한 기차 여행이 아니다. 특급호텔 수준의 객실과 요리, 개별화된 버틀러 서비스와 숨 막히는 바깥 풍경을 보여 주는 호화열차 여행이었다. 지도는 필요 없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인데 캐빈의 통창이 남아프리카 대륙의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보여 주었다. 한가롭게 달리는 기차에서 바람을 맞고, 코치 침대에 기대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화려한 식사를 즐기고, 라운지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엿봤다. 새하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세 개의 나이프와 세 개의 포크, 슈트를 입고 보타이를 하고 즐기던 다이닝은 가장 선명히 각인된 시간이다. 혼자라서 좀 심심했지만 혼자라서 편안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평온했던 시간, 그 시간이 좀 더 지속되기를 바랐다. 블루 트레인과 로보스 레일에서 많이 누렸고 많이 배웠다. 기차에서 내리고 시간이 흘러도 아프리카 어딘가를 달리고 있던 그 순간의 기억은 바랠 것 같지 않다. 얼마나 달렸을까. 석양마저 지고 밤이 왔다. 어느새 별들이 하나둘 제 빛을 드러낸다. 전망차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별들을 우러러본다.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하다. 이 순간의 환희와 충만감은 생의 고비마다 다시 나를 위로할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남아프리카항공 www.flysaa.com, 로보스 레일 www.rovos.com, 블루 트레인 www.bluetrain.co.za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씨줄날줄] 티셔츠 자판기/박홍환 논설위원

    벤딩머신(자동판매기)의 천국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자판기를 통해 살 수 있다. 음료 및 커피 자판기는 기본이고 라면 자판기, 속옷 자판기, 우산 자판기까지 없는 게 없다. 오죽하면 자판기에서 전철표를 끊어 자판기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한 뒤 자판기처럼 일하고, 점심은 라면 자판기와 커피 자판기로 해결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기원전 215년 무렵 고대 이집트 신전의 성수(聖水)샘 앞에 새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경화(硬貨), 즉 금속 동전을 넣으면 성수(聖水)가 흘러나오도록 고안된 장비다. 동전의 무게에 의해 평형추의 균형이 깨져 성수가 나오는 밸브가 열리고, 일정 시간 후 평형추가 균형을 되찾으면 밸브가 닫히는 원리였다고 한다. 이는 인류 최초의 자판기로 기록돼 있다. 자판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리고, 무엇보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새로운 유통혁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무인판매 시스템이라 노동력이 필요 없고, 현금 판매로 자금 회전이 빠른 데다 자투리 면적을 이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다조의 효자기계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로서도 간편하게 자기 주변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폭발적인 히트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승차권 자판기, 담배 자판기, 커피 자판기, 음료 자판기 순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 자판기 옆에는 관리자 또는 동전 교환원이 앉아 있었다니 자판기답지 않은 자판기였던 셈이다. 지금은 커피 자판기만 해도 이른바 ‘다방식 커피’뿐 아니라 최고급 원두커피까지 소비자들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 한층 세분화됐다. 최근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티셔츠 자판기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독일 베를린 시내 광장에 ‘티셔츠 한 장, 단돈 2유로(약 2400원)’라는 문구가 적힌 자판기가 설치되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지만 자판기에 돈을 넣고 사이즈를 고르려 하자 모니터에서 충격적인 영상이 흘러나온다.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마니샤를 포함해 현지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값싼 티셔츠를 만들며 받는 돈이 시간당 13센트(약 140원)에 불과하고 하루 16시간 이상 일한다는 내용이다. 영상은 이어 “아직도 2유로짜리 티셔츠를 사고 싶은가요?”란 자막을 내보내고, 실제 구매할 건지 아니면 2유로를 기부할 건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싼값에 물건을 구입하길 원하지만 그 가격을 맞추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제3세계 노동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티셔츠 자판기 이벤트의 메시지다. 자판기의 홍수, 무감각한 소비의 이면에 또 어떤 비극적인 현실이 숨겨져 있을지 오싹할 따름이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하는 소비를 시작하자.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김민석 특파원 신두팔촉 르포] ‘生死의 찰나’ 껴안은 노부부, 죽음으로 품속 손녀 지켰다

    [김민석 특파원 신두팔촉 르포] ‘生死의 찰나’ 껴안은 노부부, 죽음으로 품속 손녀 지켰다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56분(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동북쪽의 산간 마을 바데 가운. 러치미 어짜리아(32·여)는 시부모와 두 딸의 이른 점심준비를 막 끝냈다. 문가에 앉아 있는 작은딸(2)의 입에 밥 한술을 떠먹인 뒤 집 앞에 있는 마을 공동수도에서 시부모에게 드릴 물을 떴다. 집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러치미는 황급히 작은딸을 안아 올리며 “어머니, 아버지 빨리 나오세요!”라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순간, 시부모와 큰딸 어니샤 어짜리아(3)는 시야에서 사라졌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러치미는 미친 듯 잔해를 파헤쳤다. 땅은 아직도 꿈틀대고 있었지만, 소리를 지르며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이 무너졌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못 나왔어요!” 동네 사내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 마을은 어짜리아 집성촌이라 다들 자기 가족이 매몰된 것처럼 맨손으로 돌덩어리를 파헤쳤다. 그러기를 3시간여.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람 형체가 드러났다. 생명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웃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시신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부둥켜안은 시신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큰딸 어니샤가 이마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온몸으로 버틴 덕에 간신히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은 시각, 한 달에 1만 루피(약 10만 5500원)를 벌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 카트만두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던 수다르선 어짜리아(35)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아내에게 비보를 전해들었다. 대지진이 강타한 뒤 시외버스터미널은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수다르선도 ‘엑소더스’ 행렬에 합류했다. 힌두교에서는 큰아들이 직접 시신에 불을 붙여야 부모가 편안하게 다음 생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귀성길은 전쟁이었다. 100루피였던 승차권은 200루피로 올랐다. 몇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버스에 매달릴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수다르선은 버스에 매달려 4시간을 달렸고, 바데 가운까지 차를 얻어 타고 때로는 산길을 걸어서 2시간을 이동했다. 수다르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취재진은 지난 2일 그의 귀성 행로를 그대로 따라갔다. 카트만두를 떠나 신두팔촉 지역의 관문인 시파갓 마을을 지나 멜람치까지 약 65㎞의 굽은 길과 그 뒤 약 40㎞의 산길로 이동했다. 포장은 돼 있었지만 곳곳이 낙석의 폭격을 맞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멜람치부터는 산을 우회하는 길이 아예 유실됐다. 동행한 선교사는 “산을 넘어가는 길은 비가 쏟아지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산길을 넘어가는 내내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취재진 차량에 앞서 가다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취재진 일행도 뒤따르던 차에서 내려 트럭을 밀어 올려야 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가파른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깎고 그 위에 매달리듯 얹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흙으로 지은 집들은 모래 놀이를 하다 부순 ‘두꺼비집’처럼 파헤쳐져 있었다. 카트만두를 떠난 지 8시간여 만에 수다르선의 고향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한 남성이 차를 막아 세웠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던 그는 “부녀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먼지를 피우지 말라”면서 제지했다. 차를 막아 선 남성은 러치미의 남동생 크리스나 시그델(30). 그 역시 카트만두의 한 호텔에서 주방일을 하다 한걸음에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그가 안고 있는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어니샤였다. 이마에 상처가 있었다. 시그델은 “사고 당시 혀를 잘려 앞으로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문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산간부락인 터라 아이의 혀는 동네 할머니가 검은 실로 아무렇게나 꿰매 놓은 상태였다. 얼마나 놀라고 아팠던 것일까. 누군가 안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끊임없이 소리 내 울었고 안겨 있어도 칭얼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수돗가가 나왔다. 흰 천을 머리와 하반신에 두른 남성 2명이 물병을 들고 나왔다. 수다르선과 그의 동생 라전(31)이었다. 수다르선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부모님 시신이 수습돼 뒤뜰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며 나직하게 말했다. 대지진 다음날 아침, 두 아들은 대나무를 꺾어 부모 시신을 옮길 들것을 만들었다. 수다르선이 속한 계층(체트리)은 장례에 여성이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계층에 속한 남성들이 시신을 메고 2~3시간을 걸어서 인드라와티강까지 내려가 화장을 하고 재를 뿌렸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수다르선 형제는 힌두교식 상을 치르고 있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13일 동안 장례를 지내는데 머리를 밀고 정수리 쪽에 꽁지를 남기게 돼 있다. 자르거나 깁지 않은 흰 천만을 상복 삼아 몸에 두를 수 있다. 매일 한 번씩 강가에서 목욕재계하고 노란 염료와 참깨, 볏단을 섞어 올리며 제사를 모신다고 현지 주민이 설명했다. 하루에 한 번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소금과 기름, 계란, 고기, 생선 등은 먹을 수 없다.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시그델이 취재차량을 막은 이유도 누나 러치미가 하루에 한 번 먹는 식사이자 중요한 의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례 기간 타인과 접촉을 자제해야 하는 수다르선은 기자의 질문에 눈만 껌뻑거렸다. “부모님이 어니샤를 구한 것도, 부모님이 숨진 것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뿐”이라고 매제인 시그델이 설명했다. 각국에서 온 구조대들은 바데 가운을 포함한 신두팔촉 지역으로 활동거점을 옮긴 지 하루 만인 2일 “더이상 구조 수요가 없다”고 평가했다. 도로 유실 등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탓이다. 이후 일부 구조대만 신두팔촉에 남아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지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왔지만 감당해야 할 무게는 평등하지 않았다. 바데 가운을 비롯한 수백 개의 신두팔촉 산간 부락은 온전히 자신들의 손으로 사람을 구하고, 시신을 수습해 강가에서 떠나보냈다. 시그델은 “이 마을을 세울 때처럼 다시 일으키는 것도 어차피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덜컹거리는 도로를 타고 마을을 나왔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큰길에 접어들었을 때 빗방울이 떨어졌다. 바데 가운이 자리잡은 산 위로 천둥번개가 떨어졌다. 시커먼 산에 점점이 박힌 불빛이 번개 빛에 눌려 깜빡거렸다. shiho@seoul.co.kr
  • 코레일의 꼼수… 발권 쉬운데 환불 어려운 열차표

    코레일의 꼼수… 발권 쉬운데 환불 어려운 열차표

    최근 서울에서 대전으로 직장을 옮긴 권모씨는 서울~대전 간 KTX를 이용하면서 코레일의 승차권 취소·반환 규정에 분통을 터트렸다. 인터넷과 모바일 예매앱인 ‘코레일 톡’을 활용하면서 예약과 발권은 편리해졌지만 이미 열차가 떠난 뒤에는 소비자가 직접 역으로 가야 환불을 받을 수 있는 등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얼마 전 권씨는 사정이 생겨 모바일로 예약한 열차표를 반환하려는데 출발 시간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취소가 되지 않고, 반환하려면 역으로 직접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사무실에서 택시를 타고 대전역에 가려면 빨라야 20분, 택시비만 왕복 1만 6000원 정도 든다. 대전~서울 간 KTX 요금은 2만 3700원으로 열차가 출발한 경우 돌려받을 수 있는 최대 환불금은 85% 정도다. 하지만 열차가 서울에 도착하면 운임을 돌려받을 수 없다. 권씨는 “일부 암표상이나 여행사 등의 열차표 독점을 막고, 취소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모든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면서 출발 후 환불만 역에서 하도록 한 것은 ‘꼼수’ 아니냐”고 반문했다. 열차 승차권 취소 및 반환에 대한 이용객 불편과 민원이 끊이질 않지만 코레일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규정이 모호할 뿐 아니라 열차 출발 전과 출발 후 수수료 산정 방식도 복잡하다. 열차 출발 전에는 인터넷으로도 취소와 반환이 가능하지만 일단 열차가 출발하면 달라진다. 인터넷으로 취소는 가능하지만 반환이 안 된다. 취소는 열차 도착 후라도 15% 수수료가 부과되지만, 반환은 출발 후 시간에 따라 수수료 체계가 다르다. 또 예약, 결제 후 발권을 하지 않은 사람은 취소할 수 있지만, 일단 발권을 받은 사람은 취소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고속버스와 항공기는 환불 체계가 간단하다. 고속버스는 출발 전 10%, 출발 후 20%(주말과 휴일, 명절은 50%)의 환불 수수료를 부과한다. 국내선 항공기는 탑승 전 취소 시 1000원, 비행기가 이륙한 뒤에는 환불 수수료(1000원)와 취소 위약금(8000원)을 더한 9000원을 부과한다. 코레일 여객본부 관계자는 “개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모바일 체계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 섣불리 손을 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해 코레일 국감에서는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미승차 반환 수수료가 223억여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연평균 100만장, 5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수륙양용버스 국내 첫선 “좌석버스보다 좀 큰 형태” 실제로 보니 ‘대박’

    수륙양용버스 국내 첫선 “좌석버스보다 좀 큰 형태” 실제로 보니 ‘대박’

    수륙양용버스 국내 첫선 수륙양용버스 국내 첫선 “좌석버스보다 좀 큰 형태” 실제로 보니 ‘대박’ 국내 최초의 수륙양용버스가 21일 경인아라뱃길에서 첫선을 보였다. 사업자인 아쿠아관광코리아는 이날 인천시 서구 정서진 경인아라뱃길 여객터미널에서 수륙양용버스 시승식을 열었다. 사업자가 10억을 들여 직접 제작한 수륙양용버스는 높이 3.7m, 길이 12.6m, 폭 2.49m 크기로 무게는 12t이다. 일반 좌석버스보다 조금 큰 형태이다. 이날 버스는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을 출발, 북인천 지하차도까지 육로로 왕복운행했다. 이어 여객터미널 전용 선착장 주변 아라뱃길을 순회하며 총 50여분간 운행됐다. 육로에서 승차감은 일반 좌석 버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뱃길에서 승차감은 10t 규모의 일반 여객선보다 편안한 느낌으로 무엇보다 진동과 소음이 비교적 적었다. 특히 육로에서 뱃길로 진입할 때 승차감은 거부감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 버스는 260마력의 대형버스 엔진 1개와 같은 마력의 선박엔진 2개 등 3개의 엔진을 장착, 육로에서 최고속도를 시속 140㎞까지 낼 수 있으며 뱃길에서는 10노트(약 18.5㎞)까지 낼 수 있다. 이날 시승식에서 버스는 육·해로 평소 운행속도인 60∼70㎞와 5∼6노트의 속도로 운행됐다. 승객 안전을 위한 장치도 갖췄다. 비상시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수 있도록 내부에 6개의 망치가 비치돼 있고, 각 좌석에 구명조끼도 마련돼 있다. 또 일반 선박이 해로에서 기울어 전복되는 것을 막는 ‘기울기 복원장치’와 내부로 유입되는 물을 배출하는 자동 펌프도 6개 갖췄다. 이 버스의 정원은 39명이다. 항해사, 운전사, 관광가이드 등을 제외하면 30∼3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아쿠아관광코리아는 오는 5월 15일부터 수륙양용버스 2대를 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버스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운임은 성인 3만원, 청소년 2만 5000원, 12세 이하 미취학 아동 2만원으로 책정됐다. 승차권은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에서 구매하면 된다. 정규 운행 코스는 아라뱃길 여객터미널∼국립생물자원관∼시천나루∼매화동산∼아라마루∼아라폭포∼계양역 구간을 50분간 왕복하는 육로와 아라뱃길 여객터미널 전용 선착장에서 서해 갑문 등 아라뱃길을 15분간 왕복하는 해로로 구성됐다. 아쿠아관광코리아는 하루 평균 400여명의 관광객이 수륙양용버스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8월께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내년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26인승 수륙양용버스 3대를 도입할 방침이다. 장호덕 아쿠아관광코리아 회장은 “수륙양용버스는 이미 세계 유명도시에서 인기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며 “세계에서 3번째, 국내 최초로 제작한 버스인 만큼 이용객들의 호응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유괴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소녀

    ‘그것이 알고싶다’ 유괴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소녀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14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끔찍한 유괴사건을 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한 소녀의 미스터리한 과거를 추적해 본다. 2013년 이지나(가명, 당시 만 20세)씨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광경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7년 동안 애타게 찾던 동생 유나(가명, 당시 만 19세)를 마주한 곳은 뜻밖에도 한 병원의 중환자실 병동. 동생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언니는 급히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몸 전체가 새카맣고 뼈만 남았어요. 멍도 많았고, 상처도 많고, 뭔가 나쁜 일에 연루가 된 건 아닐까 걱정되었죠.” -언니 지나 씨 인터뷰 中 두 자매가 함께 했던 기억은 2006년에 멈춰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유나는 집을 나간 뒤 간간이 언니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로부터 7년 만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생은 19살 어린 나이에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은 새카만 잿빛이었고,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은 유나는 제작진에게 단서가 될 만한 글자를 적었다. ‘간석’, ‘은하수’ 그리고 ‘한 남자의 이름’. 암호와도 같은 이 단어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동생 유나가 어떤 범죄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두 얼굴의 소녀, 미스터리한 7년의 행적 제작진은 언니 지나에게 건네받은 동생의 소지품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유나의 지갑에서는 전국을 오갔던 버스 승차권과 수 십장에 명함이 발견됐다. 소녀는 왜 이렇게 많은 명함이 필요했던 것일까. 제작진은 이런 단서를 토대로 유나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중 지인들로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머리 깎아보니 얻어맞아서 찢어진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누구한테 구타를 당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차비 좀 부쳐달라고, 올 적에 빈털터리로 왔어요.” -유나의 지인 인터뷰 中 누군가에게서 도망쳤다는 목격담부터, 머리가 찢어진 걸 봤다는 소문까지 유나를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소지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됐다. 유난히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발견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단체복을 입고 있던 유나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7년의 시간, 과연 유나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1년 6개월 동안 사건을 추적한 제작진은 유나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친한 언니로 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유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에 연루됐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연루됐던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미스터리로 가득했던 한 소녀의 ‘7년’을 추적해 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14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끔찍한 유괴사건을 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한 소녀의 미스터리한 과거를 추적해 본다. 2013년 이지나(가명, 당시 만 20세)씨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광경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7년 동안 애타게 찾던 동생 유나(가명, 당시 만 19세)를 마주한 곳은 뜻밖에도 한 병원의 중환자실 병동. 동생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언니는 급히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몸 전체가 새카맣고 뼈만 남았어요. 멍도 많았고, 상처도 많고, 뭔가 나쁜 일에 연루가 된 건 아닐까 걱정되었죠.” -언니 지나 씨 인터뷰 中 두 자매가 함께 했던 기억은 2006년에 멈춰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유나는 집을 나간 뒤 간간이 언니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로부터 7년 만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생은 19살 어린 나이에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은 새카만 잿빛이었고,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은 유나는 제작진에게 단서가 될 만한 글자를 적었다. ‘간석’, ‘은하수’ 그리고 ‘한 남자의 이름’. 암호와도 같은 이 단어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동생 유나가 어떤 범죄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두 얼굴의 소녀, 미스터리한 7년의 행적 제작진은 언니 지나에게 건네받은 동생의 소지품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유나의 지갑에서는 전국을 오갔던 버스 승차권과 수 십장에 명함이 발견됐다. 소녀는 왜 이렇게 많은 명함이 필요했던 것일까. 제작진은 이런 단서를 토대로 유나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중 지인들로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머리 깎아보니 얻어맞아서 찢어진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누구한테 구타를 당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차비 좀 부쳐달라고, 올 적에 빈털터리로 왔어요.” -유나의 지인 인터뷰 中 누군가에게서 도망쳤다는 목격담부터, 머리가 찢어진 걸 봤다는 소문까지 유나를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소지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됐다. 유난히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발견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단체복을 입고 있던 유나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7년의 시간, 과연 유나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1년 6개월 동안 사건을 추적한 제작진은 유나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친한 언니로 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유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에 연루됐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연루됐던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미스터리로 가득했던 한 소녀의 ‘7년’을 추적해 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7년만에 잿빛으로 돌아온 여동생

    ‘그것이 알고싶다’ 7년만에 잿빛으로 돌아온 여동생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14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끔찍한 유괴사건을 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한 소녀의 미스터리한 과거를 추적해 본다. 2013년 이지나(가명, 당시 만 20세)씨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광경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7년 동안 애타게 찾던 동생 유나(가명, 당시 만 19세)를 마주한 곳은 뜻밖에도 한 병원의 중환자실 병동. 동생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언니는 급히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몸 전체가 새카맣고 뼈만 남았어요. 멍도 많았고, 상처도 많고, 뭔가 나쁜 일에 연루가 된 건 아닐까 걱정되었죠.” -언니 지나 씨 인터뷰 中 두 자매가 함께 했던 기억은 2006년에 멈춰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유나는 집을 나간 뒤 간간이 언니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로부터 7년 만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생은 19살 어린 나이에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은 새카만 잿빛이었고,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은 유나는 제작진에게 단서가 될 만한 글자를 적었다. ‘간석’, ‘은하수’ 그리고 ‘한 남자의 이름’. 암호와도 같은 이 단어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동생 유나가 어떤 범죄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두 얼굴의 소녀, 미스터리한 7년의 행적 제작진은 언니 지나에게 건네받은 동생의 소지품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유나의 지갑에서는 전국을 오갔던 버스 승차권과 수 십장에 명함이 발견됐다. 소녀는 왜 이렇게 많은 명함이 필요했던 것일까. 제작진은 이런 단서를 토대로 유나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중 지인들로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머리 깎아보니 얻어맞아서 찢어진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누구한테 구타를 당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차비 좀 부쳐달라고, 올 적에 빈털터리로 왔어요.” -유나의 지인 인터뷰 中 누군가에게서 도망쳤다는 목격담부터, 머리가 찢어진 걸 봤다는 소문까지 유나를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소지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됐다. 유난히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발견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단체복을 입고 있던 유나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7년의 시간, 과연 유나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1년 6개월 동안 사건을 추적한 제작진은 유나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친한 언니로 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유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에 연루됐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연루됐던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미스터리로 가득했던 한 소녀의 ‘7년’을 추적해 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유괴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소녀의 과거

    ‘그것이 알고싶다’ 유괴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소녀의 과거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충격’ ‘그것이 알고싶다’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 14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끔찍한 유괴사건을 당한 뒤 7년 만에 돌아온 한 소녀의 미스터리한 과거를 추적해 본다. 2013년 이지나(가명, 당시 만 20세)씨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광경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7년 동안 애타게 찾던 동생 유나(가명, 당시 만 19세)를 마주한 곳은 뜻밖에도 한 병원의 중환자실 병동. 동생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언니는 급히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몸 전체가 새카맣고 뼈만 남았어요. 멍도 많았고, 상처도 많고, 뭔가 나쁜 일에 연루가 된 건 아닐까 걱정되었죠.” -언니 지나 씨 인터뷰 中 두 자매가 함께 했던 기억은 2006년에 멈춰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유나는 집을 나간 뒤 간간이 언니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로부터 7년 만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생은 19살 어린 나이에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은 새카만 잿빛이었고,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은 유나는 제작진에게 단서가 될 만한 글자를 적었다. ‘간석’, ‘은하수’ 그리고 ‘한 남자의 이름’. 암호와도 같은 이 단어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동생 유나가 어떤 범죄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두 얼굴의 소녀, 미스터리한 7년의 행적 제작진은 언니 지나에게 건네받은 동생의 소지품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유나의 지갑에서는 전국을 오갔던 버스 승차권과 수 십장에 명함이 발견됐다. 소녀는 왜 이렇게 많은 명함이 필요했던 것일까. 제작진은 이런 단서를 토대로 유나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중 지인들로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머리 깎아보니 얻어맞아서 찢어진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누구한테 구타를 당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차비 좀 부쳐달라고, 올 적에 빈털터리로 왔어요.” -유나의 지인 인터뷰 中 누군가에게서 도망쳤다는 목격담부터, 머리가 찢어진 걸 봤다는 소문까지 유나를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소지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됐다. 유난히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발견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단체복을 입고 있던 유나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7년의 시간, 과연 유나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1년 6개월 동안 사건을 추적한 제작진은 유나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친한 언니로 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유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에 연루됐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연루됐던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미스터리로 가득했던 한 소녀의 ‘7년’을 추적해 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공공의 적 이제 그만/김경운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공공의 적 이제 그만/김경운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남긴 아쉬움 중에는 피의자 김기종씨의 돌출 행동이 과거에도 반복됐던 만큼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점도 있다. 앞서 김씨는 주한 일본 대사에게도 살의가 느껴지는 공격을 했고, 또 공공 장소에서 공무원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법정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노골적으로 공공을 위협했지만, 마땅한 제재를 피하면서 폭력성을 키워 갔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 주재 대사는 옛날로 치면 상대국의 사신이다. 역사 속에서 사신을 잘못 건드렸다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예가 적지 않다. 고려는 몽골 제국 사신을 살해했다가 30여년에 걸친 긴 국란에 말려들고, 현 우즈베키스탄 근처에서 번성하던 나이만족은 몽골 사신의 목을 베어 버리면서 문명의 흔적마저 사라진다. 김씨는 공공과 사신을 모두 우습게 여긴 꼴이다. 몇 해 전 겪은 일이다. 아직 지하철 승차권 판매대가 남아 있던 변두리 역에서 이른 저녁인데도 거나하게 취한 등산복 차림의 50대 남성이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멱살을 잡고 “공무원이 시민을 무시하네”라며 눈을 부라렸다. 판매대 안에서 밖으로 끌려 나온 젊은 직원은 쩔쩔매며 “거스름돈 드리지 않았느냐”고 항변했다. 이를 바로 옆에서 쭉 지켜봤던 기자는 술 취한 남성이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을 무심코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것을 안다. 고성과 막말이 쏟아지자 그 남성의 일행 10여명이 직원의 주변을 에워쌌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기자는 목격자로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남성과 일행들은 눈치를 살피면서 슬금슬금 도망갔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서슬 시퍼런 공권력을 경험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보통의 시민이 오히려 공권력을 하찮게 여기고 공공을 위협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동네 파출소는 더이상 경찰들이 야근하며 승진시험 준비나 하던 곳이 아니다. 밤마다 취객들이 책상을 부수고, 경찰관의 뺨을 때리며 “네 봉급 내가 주는 것 아냐”면서 행패를 부린다. 구청 민원실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아침마다 전화로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곤 전화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몸서리를 친다. 언젠가부터 공공은 보통 사람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그게 과연 바람직한가. 옛 로마 제국이 번영한 토대에는 개방성과 공공성이 있었다. 고대 국가답지 않게 개인의 종교 등을 인정하고 공공의 이익만 해치지 않으면 누구나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신흥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것은 로마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고, 기독교 지도자 예수는 로마와 다른 종교 때문이 아니라 황제를 위협하는 왕을 자칭했다고 유대인들이 모함한 탓에 가혹한 십자가형을 받은 것이다. 리퍼트 대사를 기습한 김씨는 정치적 신념에 찬 종북주의자가 아니라고 본다. 그럴 가치도 없다. 공공과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폭력성으로 날뛰었으니 따끔하게 혼나야 할 망나니일 뿐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오는 ‘종북숙주’라느니, ‘종북몰이’라는 잡담은 그만두는 게 옳다. kkwoon@seoul.co.kr
  • “이젠 고속버스 승차도 스마트하게…”

    “이젠 고속버스 승차도 스마트하게…”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열린 ‘고속버스 모바일 앱 E-pass’ 시연 행사에서 관계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승차권을 발권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뒤 고속버스에 설치된 단말기에 접촉하면 승차권 결제와 발권, 도착 시간 안내 등을 받을 수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대법 위장도급 판결] 업무상 지휘관계·원- 하청 공동작업 등 감안… 파견·도급 구체화

    [대법 위장도급 판결] 업무상 지휘관계·원- 하청 공동작업 등 감안… 파견·도급 구체화

    근로자 지위 확인을 둘러싼 대법원의 26일 판결은 ‘위장 도급’(불법 근로자 파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산업계의 노동자 파견과 사내 도급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과 현대자동차, 남해화학 파견 노동자들의 희비가 엇갈린 4건의 판결을 통해 노동자 파견과 사내 도급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했다. 대법원은 노동자 파견과 사내 도급의 구분 기준을 ▲도급인(원청)과 수급인(하청) 소속 노동자의 지휘·명령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와 도급인 소속 노동자의 공동 작업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의 노동 관리 권한 행사 여부 ▲수급인 소속 노동자와 도급인 소속 노동자의 업무 구별 여부 등으로 구체화했다. 즉, 네 가지 기준에 따라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업무 연관성 등이 인정되고 하청 노동자의 노동 관리를 원청이 직접 했다면 이는 사내 도급이 아닌 파견에 해당하고,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는 옛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에 따라 원청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남해화학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원청 소속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고,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 소속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KTX 여승무원 사건의 경우 앞서 서울고법 판결에서는 엇갈린 결과가 나왔었다. 대법원은 현대차 근로자 파견 사건에서는 “현대차가 근로자의 업무 수행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 근로자들이 현대차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는지, 협력업체가 근무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근로자의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협력업체가 독립적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바탕으로 근로 관계의 실질을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2년을 초과 근무한 4명의 경우 현대차와 협력업체가 사실상 ‘위장 도급’ 계약을 맺은 것이라는 해고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현대차 소속 노동자들과 함께 거의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현대차의 필요에 따라 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대차의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반복했다. 대법원은 남해화학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낸 파견 노동자 3명에게도 현대차 판결과 같은 이유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KTX 여승무원 파견 사건은 현대차 사건과는 달리 판단했다. 코레일과의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했고, 한국철도유통에 대한 코레일의 열차 내 서비스 위탁은 위장 도급이었다는 여승무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긴 했지만 코레일이 승무 분야 업무를 안전 부분과 승객서비스 부분으로 나눠 안전 부분은 열차팀장에게 맡기고 객실 온도 조절, 승객 인사, 안내방송, 승차권 확인 등 안전과 직결되지 않은 서비스 부분을 따로 떼어내 여승무원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은 열차팀장이 여승무원의 업무 수행을 확인하게 돼 있던 규정에 대해서는 “업무상 감독이라기보다는 위탁협약의 당사자가 보유한 권리의 행사”라고 해석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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