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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임용예정자도 직무 중 사망 땐 ‘공무원 예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정식 임용되기 전인 ‘공무원 시보임용예정자’도 업무 중 사망했다면 공무원과 동일한 예우를 받게 된다. 최근 충남 아산소방서에서 실무수습을 받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소방교육생들에게 공무원 예우를 해주려고 제도를 개선했는데, 이를 일반직 공무원에게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이 담긴 ‘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24일 입법예고한다. 그간 공무원 임용예정자는 현행 법령상 공무원이 아니어서 순직 인정 등 공무원 예우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충남 아산에서 소방교육생 2명이 유기견 구조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현행 법령으로는 공무원 예우를 받지 못한다. 그러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일 국무회의에서 “현직 소방관과 똑같이 공무를 수행하다가 참변을 당했기에 사후 예우를 공무원과 같이 해드리는 것이 옳다”며 법령 정비를 지시했다. 이에 소방청은 ‘임용예정자가 실무수습 중 소방공무원과 동일 또는 유사한 직무수행 중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일의 전날을 임용 일자로 한다’는 내용의 소방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지난달 13일 입법예고했다. 또 이 규정 시행일을 ‘3월 1일 이후’라고 부칙에 명시했다. 지난 3월 숨진 문새미·김은영 소방교육생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이 개정안은 차관회의까지 통과했고 이르면 다음주에 열리는 국무회의 안건에 상정된다. 한편 인사처는 공무원 재직 중에 입은 부상과 퇴직 뒤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퇴직 이후 사망한 공무원도 특별승진임용 등 추서가 가능하게 했다. 지금까지는 공적이 아무리 뚜렷해도 퇴직한 뒤 사망했다면 특별승진임용을 할 수 없었다. 또 육아휴직 사용을 활성화하고자 부부 모두가 첫째 자녀에 대해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승진 소요 최저 연수에 포함되는 경력 인정 범위를 기존 1년에서 육아휴직 기간 전체(3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고졸 취업자, 일하면서 대학 가기 편해진다

    고졸 취업자, 일하면서 대학 가기 편해진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 뒤 재직 중에 대학에 진학한 직원이 있는데, 업무 역량은 대졸 신입사원 이상이라는 것이 회사 내·외부 공통 의견입니다.”23일 교육부 주최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선 취업-후 학습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구조적 문제 해소를 위한 기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개인컴퓨터(PC) 모니터 등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대우루컴스의 허성철 상무는 “고졸 취업자들도 대학에 진학할 경우 충분히 대졸자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준동 대한상의 부회장, 대우루컴즈·우원엠앤에이 등 중소기업 관계자 등이 참여해 ‘선 취업 후 학습’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노동시장에서 대졸 이상 인력은 남아돌고, 고졸 인력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 취업, 후 학습’ 활성화가 답이 될 수 있다는 공통 인식에 따른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대졸자는 75만명이 초과 공급되고, 고졸자는 113만명의 초과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고졸 취업자들에게 느끼는 현실적 인식과 한계 등에 대한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허 상무는 “고졸 신입사원들은 상대적으로 대졸자보다 먼저 취업하지만 할 수 있는 직무나 연봉 등에서 대졸 신입사원과 비교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고졸 신입사원이 회사 재직 중 대학에 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만 마련된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업무에 능숙한 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일학습병행제는 고용부가 고졸 취업자들이 재직 중에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우루컴스는 2010년 초부터 재직 중 대학 등 외부 교육을 이수할 경우 인사 평가에 가점을 주는 ‘포인트 제도’로 승진 인사를 운영하고 있다. 고졸 신입사원들의 대학 입학을 장려해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인재들이 더 나은 조건을 좇아 대기업 등으로 이탈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막기 힘들다는 것은 한계다. 허 상무는 “고졸 취업시장에서도 회사가 원하는 인재들은 공기업이나 대기업 계열사 등을 선호하고, 우리 중소기업이 ‘선 취업, 후 학습’ 활성화에 적극 참여해 인재를 키워도 이들이 대기업 등으로 이직한다고 하면 붙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선 취업, 후 학습 활성화는 교육계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닌, 범사회적으로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고용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합동으로 다음달 말까지 세부 내용이 담긴 ‘선 취업-후 학습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BBK 파헤친 검찰의 ‘창’ vs BBK 막아낸 변호인단 ‘방패’

    檢 ‘특수통’ 신봉수·송경호 나서 강훈 변호사가 MB 방어전 치러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주어진 110억원대 뇌물과 350억원대 횡령 혐의를 놓고 ‘창’과 ‘방패’가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여러 방면에서 이 전 대통령을 압박해 온 검찰과 그에 맞서 이 전 대통령을 지켜 온 변호인단은 23일 첫 공판기일을 시작으로 기나긴 싸움에 돌입한다. 이 전 대통령을 저격하는 ‘창’으로 서울중앙지검 신봉수(48·연수원 29기) 첨단범죄수사1부장과 송경호(48·29기) 특수2부장, 그리고 서울동부지검에서 파견된 노만석(47·29기) 부장 등이 나섰다. BBK 주가조작 특검팀에 파견된 경력이 있는 신 부장검사는 이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DAS)를 실소유했는지 여부를 수사해 왔다. 대검 연구관,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수원지검 특수부장 등을 거친 ‘특수통’ 송 부장검사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등으로부터 110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정황을 파고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유지를 위한) 별도로 이름 붙인 팀을 구성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편에선 강훈(64·14기)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의 ‘방패’로서 방어전을 치렀다. 서울고법 판사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강 변호사는 2007년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및 BBK 수사부터 이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 왔다. 이외에 박명환(48·32기), 피영현(48·33기), 김병철(43·39기) 등도 함께 이 전 대통령의 변호를 이끌어 간다. 박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부터 1년간 대통령 국민소통비서관을 지낸 적이 있다. ‘심판’으로서 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내릴 정계선(49·27기)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장은 부패전담부 첫 여성 재판장으로 임명돼 화제가 됐다. 공직비리 및 뇌물 사건 등을 다루는 서울중앙지법 부패전담부는 고등법원 부장으로 향하는 ‘승진코스’로 불려 왔다. 정 부장판사는 울산 계모 사건에서 상해치사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6·13지방선거 광명시장] 이효선 자유한국당 후보 “광명시 묵은 적폐 청산하고 인구50만 명품도시로 만들겠다”

    [6·13지방선거 광명시장] 이효선 자유한국당 후보 “광명시 묵은 적폐 청산하고 인구50만 명품도시로 만들겠다”

    이효선 자유한국당 광명시장 후보는 민선4기 광명시장을 지낸 토박이다. 경기도당 일자리창출위원장과 광명시 갑 당협위원장, 경기도의회에서 남북교류특위위원장을 지냈다. 이 후보는 가장 핵심정책으로 “500여만평 보금자리주택단지를 다시 개발 추진하고 광명시청부지를 매각해 이곳에 대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현 시청을 경륜장 뒤 보금자리터로 옮기고 기아자동차를 이전시켜 그 자리에 판교테크노밸리처럼 첨단벤처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8년간 광명시의 적폐를 청산하고 인구50만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이 후보와의 일문일답. ⇒ 왜 광명시장이 되려고 하나. —지난 8년간 광명시정을 지켜보면서 예산집행이 잘못되고 도시성장이 멈춘것 같아 시장도전에 나섰다. 대표적인 게 광명동굴사업이다. 동굴사업은 그리 빨리 추진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다. 여기에 공식적으로 870억원이 투입됐다. 직간접적으로 총 1900억원 가량 들어갔다. 가슴이 아프다. 이 자금을 다른 사업에 사용했다면 우리 광명시가 완전 탈바꿈됐을 거다. 보금자리주택은 양기대 전 시장이 시장되자마자 시흥시와 합동으로 연기해서 아직도 525만평이 개발이 안되고 있다. 지난 8년간 성장이 멈춘 광명을 다시 발전시켜 50만 명품도시로 만들겠다. ⇒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은. —공무원 인사개혁을 즉시 단행하겠다. 그다음 뉴타운과 재건축사업을 추진하겠다. 이 중에서도 뉴타운사업은 무엇보다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 핵심정책 톱3를 든다면. —500여만평의 보금자리주택단지를 다시 개발 추진해야 한다. 광명시청 부지를 매각해서 이 자리에 대기업을 유치하겠다. 새로운 시청은 경륜장 뒤 보금자리터로 이전 건립하겠다. 기아자동차를 이전시켜 그자리에 판교테크노밸리 같은 첨단벤처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 ⇒광명뉴타운 곳곳에서 주민집단반발이 거세다. 광명뉴타운 특위결과보고서 본회의 상정도 부결됐다. 향후 대책은. —간단하다. 뉴타운 조합이 설립된 곳은 가능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 반면 뉴타운구역에서 제외된 곳은 주차장과 도로를 먼저 조성하겠다. 시가 미흡한 부분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법과 원칙에 맞게 시행정을 올바르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 아파트단지 관련 비리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를 감시할 ‘아파트관리클린감사제’가 광명시엔 없다. —우선 민원이 발생하면 해결해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아파트비리 문제는 시가 먼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법적으로 고소고발해 해결할 일이다. ⇒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준비 중인 대북 시책이 있나. —특별히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할 게 없다고 본다. 현재 남북관계는 지난달 정상회담을 했지만 7·4공동성명에서 한발짝도 나아간 게 없다. 향후 남북간계 진전 결과를 보고 할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양기대 전 시장이 추진한 유라시아대륙철도를 기초단체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다. 156조원이 들어간다는데 말이다.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때 남북교류를 광역단체 차원에서 시도한 경우는 있다. ⇒ 정치입문 계기는. —광명토박이로서 예전 아주 낙후됐던 광명이었다. 48세때 처음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52세에 광명시장이 됐다. 누구 의지하지 않고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광명이 왜 발전되지 못했는지 이번 지방선거에 뛰어들어 광명시를 발전시키고자 나섰다. ⇒ 가장 중시하는 정치행정 철학은. —법과 원칙이 살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정치는 지역에서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 해야 한다. 권력과 백을 동원해서 하면 안된다. 예전 시장재직 시 인사원칙은 공평하다고 평가받았다. 편중인사나 특정인 위주 인사로 다른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면 안된다. 지금 보면 광명시 행정직이 기술직국장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행정직이 도시국장으로 간다거나 특정인만 고속승진하는 인사는 안된다. 또 너무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선 안된다. 어려운 시민들을 도와줘야 한다. 보편적복지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교육부문에 집중하고 싶다. 4기시장때 전국 최초로 대입설명회를 도입하고 장학금을 많이 유치했다. 못사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줬다. ⇒ 시장에 나서는 각오 한마디 해달라 . —믿어주고 밀어주면 모든 걸 다바치겠다. 앞으로 시장이 된다면 시민들이 눈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명품도시 광명을 4년간 만들겠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류지영 기자의 호모퍼블리쿠스] 재난 안전 공든 탑 반드시 지키길

    [류지영 기자의 호모퍼블리쿠스] 재난 안전 공든 탑 반드시 지키길

    기자가 출입하는 행정안전부의 요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차기 대선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부겸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마하느냐 여부다. 6·13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가 단행할 개각 때 ‘의원 겸임 장관’인 그가 장관직을 내려놓고 전당대회에 나갈 것이라는 설이 퍼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장관 취임 직후부터 문재인 정부의 화두인 지방분권을 완성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전국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고 현장 수습에 매진하는 등 모범을 보여 온 터라 부처 직원들은 그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직원들에게 “당 대표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래 정치 상황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만큼 급변하다 보니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공무원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이번 개각 때 김 장관의 뒤를 이어 행안부를 맡고 싶다”고 자천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공직사회에서는 조만간 있을 개각을 계기로 행안부가 어렵게 다져 온 ‘재난·안전 중시 문화’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행안부는 지난해 7월 행정자치부와 국민안전처(현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자부가 안전처를 인수합병(M&A)했다. 이 때문에 행안부 출범 당시만 해도 기존 안전처 직원들의 우려가 컸다. 조직이나 인원이 훨씬 큰 행자부에 견줘 ‘서자’ 취급을 받고, 조직 내 인재들이 힘들고 보상 없는 재난안전 업무를 피해 행정자치 분야로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장관이 오면서 이런 걱정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 기존 행자부 직원들의 반발에도 재난안전 분야 직원들의 승진 인사를 우대했다. 행안부 핵심 보직이자 ‘차관 후보 1순위’로 불리는 기획조정실장도 안전처 출신 김희겸 재난관리실장에게 맡겼다. 한 기업이 다른 회사를 M&A한 뒤 새로 출범하는 기업의 핵심 보직을 피인수 업체 출신에게 맡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정자치 관련 직원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김 장관은 “고생한 (안전처) 직원들을 우리가 안 챙기면 앞으로 누가 챙기겠노”라며 이들을 달랬다. 여기에 그는 행안부 공무원이 국장급 이상 고위직이 되려면 안전분야 업무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이른바 ‘안전 스펙 인사관리 방안’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격무이면서도 언제 재난이 발생할지 몰라 늘 긴장해야 하는 재난 관련 업무를 행안부 전 직원이 경험하게 해 기존 두 부처를 ‘화학적’으로 결합하겠다는 취지다. 이 조직들의 빠른 융합이 결국 국민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이런 시도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 장관이 당대표에 나설지 여부는 본인이 숙고해 판단할 일이다. 다만 김 장관이 떠나도 행안부의 ‘재난안전 중시 문화’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뒤로 우리 국민은 ‘나라다운 나라’를 원하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안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행안부 수장 자리는 그저 정치인 스펙 한 줄을 채우려고 오는 자리가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superryu@seoul.co.kr
  • [강북구청장 후보] “법적 선거비 절반 아껴 국가에 반납…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 운영 꿈”

    [강북구청장 후보] “법적 선거비 절반 아껴 국가에 반납…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 운영 꿈”

    “반값 선거를 해서 세금을 더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채수창 바른미래당 예비후보가 먼저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22일 채 후보에 따르면 구청장 후보들은 법적 선거비용을 1억 7500만원까지 쓸 수 있다. 이 가운데 8750만원만 사용해 세금을 아끼겠다는 거다. 선거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데 후보자가 돈을 아껴쓰는 만큼 세금 투입을 안 해도 된다. “돈 안 드는 선거를 하려고 합니다. 나랏돈이라고 보존되는 금액을 다 쓰는 것은 또 다른 세금 낭비 아닙니까. 최대한 아껴서 반값 선거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나라에 반납하는 거죠. 세금을 더 좋은 곳에 쓰도록 하는 게 공직을 오래한 사람의 자세라고 봅니다. 경찰 조직에 32년간 있으면서 청렴하고 소신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강북구를 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채 후보는 2010년 7월 강북경찰서장 시절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파면된 그는 2012년 2월 복직했으나 한동안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화순경찰서장, 112 종합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일선 경찰서장이 상급 지휘라인인 경찰청장에게 전면적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라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검거 실적주의가 있었습니다. 구속을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가 승진의 기준이 된 것이죠. 담당 지역이 아닌 청량리, 영등포 등으로 수배자를 잡으러 다니고 분위기가 요란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전국이 실적주의 광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고,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입니다. 저는 조용하고 무난하게 승진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강북구를 만들겠습니다.” 자연스레 ‘새로운 강북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금해졌다. 채 후보는 북한산의 관광자원화를 첫 번째 공약으로 꺼냈다. “북한산을 관광자원화해서 산에서 돈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역사문화관광도시라는 구의 현재 타이틀을 산악관광도시로 바꾸겠습니다.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와 함께 세계 산악구조대회 경진대회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채 후보는 강북구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을 만나 보면 삶 자체가 나아진 게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나서겠습니다. 부지런하게 발로 뛰어 주민들을 만나겠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약자 구호, 교세 취약지 출신… 교황, 추기경 14명 임명

    약자 구호, 교세 취약지 출신… 교황, 추기경 14명 임명

    프란치스코(82) 교황이 가톨릭 추기경회의에 평소 약자를 잘 보듬기로 정평이 난 인물들과 가톨릭 교세가 취약한 지역 출신의 고위 성직자들을 대거 선발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일요 주례 미사를 주재하면서 14명의 고위 성직자를 새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이들 신임 추기경은 다음달 29일 공식 취임한다. 신임 추기경들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거나 가톨릭교도가 소수인 곳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이 다수 포함됐다.폴란드 출신의 콘라드 크라제프스키(55) 신임 추기경의 경우 성베드로의 바실리카 부근에 샤워 시설을 설치한 것을 포함해 다수의 로마 노숙자 지원 활동을 감독하는 바티칸의 구호조직을 이끌어 왔다. 이라크 바그다드 대주교인 루이스 사코(70)는 2002년 이래 신변 위협 및 차별 속에서 3개의 이라크 교구를 이끌어 왔으며, 종종 이라크 내 거친 환경을 논의하기 위해 교황을 만났다. 가톨릭 교세가 약한 일본의 경우 오사카 대주교인 토마스 아퀴나스 만요(69)가 추기경으로 승진했다. 교황은 이날 새 추기경들에 대해 “지구 위의 모든 사람을 상대로 신의 자비로운 사랑을 계속해서 알리는 교회의 보편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13년 남미 출신으로는 최초로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 다섯 번째로 추기경 승진 인사를 했고, 매번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해 온 성직자들을 추기경으로 뽑았다. 그의 취임 이후 처음으로 추기경이 나온 곳만 라오스와 통가를 포함해 10개국이 넘는다. 교황은 2013년 취임 후 지금까지 전체 추기경 수(213명)의 3분의1에 가까운 59명을 임명했다. 이들 신임 추기경은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에서 투표권을 갖는다. 콘클라베에는 80세 이하 추기경만 참석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는 콘클라베 규모를 최대 120명으로 설정했지만, 이번 임명자까지 포함하면 상한선을 넘는 125명이 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라이프 톡톡] 공고 출신 9급, 3급까지 하이패스…도전하는 자, 관운도 따르리니…

    [라이프 톡톡] 공고 출신 9급, 3급까지 하이패스…도전하는 자, 관운도 따르리니…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승진이 빠른 보직을 위주로 거쳤고,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게 관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희망 되고 싶어 서한순(56) 인사혁신처 심사임용과장은 1981년 9급 공무원에 임용됐다. 당시 나이 만 18세. 고등학교 담임 교사의 권유로 공무원시험을 봤다. 마음은 고시를 보고 싶었다. 서 과장이 다녔던 기계공고는 특성화고라기보단, 당시만 해도 중학교 때 반에서 1~2등 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쳐 입학하는 ‘특목고’였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았다. 37년이 지난 지금 서 과장은 지난달 부이사관(3급)까지 승진했다. 지방직 9급 공무원 출신이 중앙 인사 핵심부처에 정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는 20일 “9급 지방직 공무원 출신으로서 고시 및 경력 출신들과 경쟁하는 데 여러모로 열악하겠지만 고위공무원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며 “부족하지만, 9급 출신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발자취가 되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여천군(현 여수시) 돌산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서 과장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두 차례 전입시험을 거쳤다. 1988년 장성군청에서 전남도청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와 1994년 전남도청에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로 옮길 때다. 첫 전입 시험에선 수석으로, 두 번째 시험에선 3등을 했다. 매 시험 경쟁률은 10대1을 넘었다. 서 과장은 “도청에 와서 일해 보니 지방 안이 아닌 국가 정책을 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퇴근하면 내무부 전입시험 공부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내무부 첫 근무지는 지방행정연수원(현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교육담당이었다. 이후 방재국, 자치제도과 등을 거쳐 2000년 초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자치행정과에 발령받았다. 이때 당시 최인기 장관의 눈에 띄어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수행비서는 관행적으로 행정고시 출신 초임 사무관들이 받는 보직이었다. 서 과장은 “당시 중앙부처 수행비서 출신 모임 회장을 맡았는데, 어느 부처에서도 협업을 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지방에서 중앙으로… 장관 수행비서로 발탁 이후 행자부 인사부서 4년 등을 거쳐 5급으로 승진했고, 서기관(4급) 승진 후 충북도로 부임해 ‘2014 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조직위원회’ 운영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2014년 말 인사혁신처에 합류하며 당시 최대 이슈였던 공무원연금개혁TF 팀장을 맡았다. 이후 노사협력담당관과 인사조직과장을 거쳐 현 심사임용과장에 올랐다. 서 과장은 “TF 근무 당시 끝없이 기나긴 동굴을 걷는 느낌이었지만, 사회적 대타협 등 개혁 타결이 된 이후 보람되고 배울 게 많았던 시기였다”며 “이후 사이가 안 좋아진 공무원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할 임무가 있었던 노사협력담당관을 지냈던 시점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야간대·석사·와세다大 박사과정 끝없는 배움 서 과장은 고졸로 입직했지만, 현재는 일본 와세다대 공공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상태다. 장성군청 근무 시절 호남대 야간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으로 졸업장을 받았고, 5급 승진 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이처럼 서 과장이 배움을 끊임없이 이어온 데에는 행정 분야 전문성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일본 유학 시절 취미로 즐겼던 테니스와 서예는 공직을 떠나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 고졸 출신, 자기개발·목표의식 남달라야 서 과장은 이제 막 입직한 9급 공무원 후배들에게 “고졸 출신은 목표를 달리 세워야 한다.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도 좋으니 자기개발 분야를 정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취미 생활도 꾸준히 가져 인맥을 키울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길러 나가는 게 알찬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5대 그룹 사실상 ‘젊은 총수’시대로

    5대 그룹 사실상 ‘젊은 총수’시대로

    ‘젊은 총수’ 시대가 열리고 있다. LG그룹이 4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모두 사실상 3~4세 체제로 재편됐다. 회사를 직접 세우고 다진 창업 세대와 외연 확대를 이끈 2~3세 시대가 저물고 세대 교체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20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에서는 23년 만에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40) LG전자 B2B사업본부 사업부장(상무)이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이 1995년 회장에 취임한 지 23년 만이다.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구 상무가 ㈜LG의 등기이사로 내정되면 갓 40대에 접어든 총수가 탄생하게 된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은 3세대 경영인으로의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이래 그룹을 이끌어 온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공식적으로 삼성그룹 총수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해체 등 삼성그룹의 주요 의사 결정을 주도한 실질적 총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삼성그룹 총수(동일인)를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30여년 만에 삼성그룹 총수가 바뀌며 ‘이재용 시대’가 열렸음을 정부가 공인해 준 셈이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정몽구 회장이 공식적으로는 아직 경영을 총괄하고 있지만 외아들인 정의선(48) 부회장이 대외 활동을 전담하며 경영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엘리엇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거침없이 소신을 밝힌 것이다. 그동안 공식 석상에서 말을 아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정 부회장은 소비자가전전시회(CES), 뉴욕모터쇼 등 외부 행사에 활발히 참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SK는 최태원(58) 그룹 회장이 주요 그룹 중에서 가장 먼저 ‘젊은 총수’로 자리를 잡았다. 최 회장은 부친인 고 최종현 전 회장이 1998년 타계하자 38세의 나이에 SK㈜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20년간 그룹을 지휘해 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법정 구속으로 수감 중인 신동빈(63) 회장이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정거래법상 롯데 총수로 공식 인정을 받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원톱’ 체제를 공고히 하게 됐다. ‘젊은 리더’ 바람은 5대 그룹 외에도 재계 전반에 불고 있다.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양대 축인 정용진(50)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46) 신세계 총괄사장 역시 각각 1968년생, 1972년생이다. 이명희 회장이 건재하지만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이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경영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효성의 경우도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50) 회장이 지난해 초 회장직을 물려받으며 3세 경영으로 전환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5) 한화큐셀 전무는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인 태양광 사업을 총괄하며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현대가의 정지선(46)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30대에 총수에 올라 벌써 회장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큰아들 정기선(36) 부사장도 지난해 11월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까지 맡아 경영 전면에 서서히 나서고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구본무 회장이다.’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1] 글로벌 창업주… 매출 5배 껑충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2] 선구자… 2003년 지주사 전환 일찌감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3] 정도…“편법 1등은 싫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 드문 ‘현역병’ 출신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제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 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뒤에야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후 “1등을 해야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도 “편법은 싫다”고 단호히 주문했다. [4] 끈기…LCD·2차전지 1위 우뚝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액정화면(LCD) 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5] 눈물…외환위기 때 반도체 내줘 시련과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 반도체 빅딜을 사실상 막후에서 조정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쪽은 눈길도, 발길도 주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급한 자금을 일부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6] 몰입…조류도감 펴낸 새 전문가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냈을 정도로 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지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도 있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모든 사업장에 비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7] 마곡…4조 투자 융복합단지 꿈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였다.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다. 투자비만 4조원이다. “마곡에서 수만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40세 총수’ 승계 과도기에 계열사 CEO 6인 조력자로 LG ‘징검다리 승계론’ 일축 구 부회장 조만간 분가 관측LG가 새로운 ‘구광모 체제’를 안착시키기까지 주요 계열사의 전문 최고경영인(CEO)인 부회장 6인회가 떠받치며 조력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구광모 상무가 40대로 젊어 부회장이나 회장 직함을 바로 달기 부담스러워서다.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요 계열사를 이끌며 구광모 체제를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은 2~3년 안에 일부 사업을 떼어내 계열 분리를 하거나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IG, LS그룹 등 형제 및 형제 자손들이 계열분리를 해 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 온 구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해 왔다. 그러나 LG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또 구 회장의 6형제 증 넷째부터 막내인 태회·평회·두회 형제는 LS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 역시 조만간 분가해 별도 경영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때 묵시적으로 적용해 온 ‘70세 룰’도 구 상무의 향후 승진 시점과 맞물려 관심거리다.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 때 당시 50세인 장남 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올해 40세인 구 상무가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0년은 남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LG 새 사령탑은 불혹의 구광모… 재무·기획 강도 높은 경영수업 받아

    LG 새 사령탑은 불혹의 구광모… 재무·기획 강도 높은 경영수업 받아

    아들 잃은 큰집에 2004년 입양 소탈하지만 준비 철저한 스타일 정효정씨와 결혼해 1남 1녀 둬 증여·상속세 1조원 육박할 듯LG그룹의 철저한 장자(長子) 승계 원칙은 이번에도 지켜졌다. 2대인 구자경 그룹 명예회장이 1995년 경영권을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넘길 당시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유통을 맡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이 물러난 것은 그래서다. 이에 따라 고(故)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40) 상무가 ‘포스트 구본무’ 체제를 이끌게 됐다. 미국 로체스터 공대 졸업 후 2006년 LG전자 재경 부문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이듬해 과장 승진 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약 1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LG전자 미국 뉴저지법인에 복귀해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2014년부터 LG㈜ 시너지팀, 경영전략팀에서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 하현회 부회장 아래서 경영 수업을 강도 높게 받았다. 재무, 글로벌사업, 기획은 물론 현장 실무까지 두루 경험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 상무의 행보는 크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 상무 승진 이후 올해 초 LG전자에서 디스플레이 핵심인 사이니지 담당 사업부를 이끌며 경영 전면에 본격 등장했다. 구 상무는 평소 직원식당에서 식사하고 야구 관람을 즐기는 등 소탈한 편이다. 그러나 일에서는 사전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실행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의 본질과 방향성을 깊게 고민하는 등 실무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짚어 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고인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2004년 들어가며 공식 후계자가 됐다. 미국 유학 중 만난 아내 정효정씨와 2009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정씨는 식품원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고인의 큰딸인 연경씨는 2006년 스탠퍼드대 출신 윤관씨와 결혼했다. 둘째딸인 연수씨는 학생으로 아직 미혼이다. LG는 지주사인 LG㈜의 최대주주가 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구 상무가 소유한 LG㈜ 지분은 6.24%로 고 구 회장(11.28%), 구 부회장(7.72%)에 이어 3대 주주다. 우호 지분으로 구 상무 어머니 김영식씨가 4.20%,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이 3.45%를 갖고 있어 이 지분을 상속받으면 LG㈜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다만 증여세와 상속세가 걸림돌이다. 이들 지분을 모두 넘겨받는다면 상속세만 1조원 가까이 내야 할 수도 있다. 몇 년에 나눠 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비롯해 자동차 전자장비, 인공지능(AI), 바이오 사업 등 미래 먹거리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구 상무의 어깨에 얹어진 과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구광모 체제’를 떠받치는 6인회..‘작은 아버지’ 구본준은 분가할 듯

    ‘구광모 체제’를 떠받치는 6인회..‘작은 아버지’ 구본준은 분가할 듯

    LG가 새로운 ‘구광모 체제’를 안착시키기까지 주요 계열사의 전문 최고경영인(CEO)인 부회장 6인방이 떠받치며 조력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하현회 LG㈜ 부회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유임되는 등 여전히 건재하다. 구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은 2~3년 안에 일부 사업을 떼어내 계열분리를 하거나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IG, LS그룹 등 형제 및 형제 자손들이 계열분리를 해 왔다.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온 구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LG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그룹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또 구 회장의 6형제 증 넷째부터 막내인 태회·평회·두회 형제는 LS 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 역시 조만간 독립해 별도 경영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때 묵시적으로 적용해온 ‘70세 룰’도 구 상무의 향후 승진 시점과 맞물려 관심거리다.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 때 당시 50세인 장남 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올해 40세인 구 상무가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0년은 남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장자승계원칙 이번에도” ‘포스트 구본무’ 구광모는 누구인가

    “장자승계원칙 이번에도” ‘포스트 구본무’ 구광모는 누구인가

    LG그룹의 철저한 장자 승계원칙은 ‘4세 경영’에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장자가 기업을 승계하고,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LG 오너 일가의 전통이 철저히 지켜졌다. 2대인 구자경 그룹 명예회장이 1995년 경영권을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넘길 당시,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유통을 맡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은 LG 그룹 및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구광모 상무로 이어지는 미래의 LG그룹은 LG전자가 올인하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비롯해 자동차 전자장비, 바이오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구 상무는 우선 계열사 전반적으로 사업 및 투자현황을 점검하고,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자장비 등 신사업을 챙기는 동시에새로운 투자 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등 그룹 전반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구 상무는 미국 로체스터 공대 졸업 후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해 2014년부터 LG㈜ 시너지팀, 경영전략팀에서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 하현회 부회장 아래 경영 수업을 강도높게 받았다. 이듬해 과장 승진 후 유학길에 올라 미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약 1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 ㈜LG 시너지팀 등 재무, 글로벌사업, 기획은 물론 현장 실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 상무 행보는 크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 상무 승진 이후 올해 초 LG전자에서 디스플레이 사업 핵심인 사이니지 사업 담당 ID사업부를 이끌며 경영 전면에 본격 등장했다. 지난 2월 네덜란드 암스레트담에서 열린 사이니지 전시회에 참석해 투명 OLED 사이니지 등 신제품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구 상무는 평소 직원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하고, 함께 야구 관람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이다. 그러나 일에서는 사전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실행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의 본질과 방향성을 깊게 고민하는 등 실무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짚어 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사실 그는 구 회장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구 회장의 양자로 2004년 들어가며 공식 후계자가 됐다. LG는 지주사인 LG㈜의 최대주주가 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구 상무가 소유한 LG㈜ 지분은 6.24%로 구 회장(11.28%), 구 부회장(7.72%)에 이어 3대 주주다. 여기에 우호 지분으로 구 상무 어머니 김영식씨가 LG㈜ 지분 4.20%,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이 3.45%를 갖고 있어, 이 지분을 상속받으면 LG㈜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다만 증여세와 상속세가 걸림돌이다. 규모가 30억원이 넘는 증여·상속세의 과세율은 50%에 이른다. 구 상무가 지분을 넘겨받는다면 상속세만 약 1조원을 내야 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지부 승계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 만큼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20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 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현재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LG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드문 현역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재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구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다. 입사 10년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는 데 이후 10년뒤 회정에 3세 경영을 시작한다.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LCD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현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라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만만찮은 시련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게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할 정도였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일부 유동성을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 등을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서운 집중을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한 전문가다. 실제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 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전 사업장에 사전 준비에 비상이었다고 한다.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다. 4조원을 투자해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마곡에서 수만 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노년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심의실 심의위원 최홍재△논설위원 박현갑 이종락 ■행정안전부 ◇국장급 전보 △국제행정협력관 임정택◇과장급 전보△자치행정과장 박연병△민간협력과장 장금용△공무원단체과장 이성규△지방규제혁신과장 천준호△지방자치인재개발원 기획협력과장 채경아△지방자치인재개발원 전문역량교육과장 정병욱△국가기록원 기록관리교육센터장 박성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 전보△규제개혁법무담당관 마재욱△평가심사과장 홍사찬 ■특허청 ◇고위공무원 승진△특허심판원 심판장 손용욱
  • ‘나의 아저씨’ 종영, 최고시청률 8.8% 기록 ‘인생 드라마의 탄생’

    ‘나의 아저씨’ 종영, 최고시청률 8.8% 기록 ‘인생 드라마의 탄생’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종영했다.지난 17일 방송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최종회는 케이블, 위성, IPTV 포함된 유료플랫폼 가구 시청률에서 평균 7.4%, 최고 8.8%를 나타내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으며, 케이블-종편 동시간대 정상을 차지했다. 이날 방송에서 지안(이지은 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동훈(이선균 분)과 윤희(이지아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청 등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유일한 가족이었던 봉애(손숙 분)의 죽음은 지안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겼다. 하지만 지안의 곁에는 든든한 후계동 어른들이 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내음이 가득한 곳에서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기꺼이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동훈, 그리고 지안은 각자의 행복을 향해 최선을 다해 걷고 있었다. 바야흐로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다)이라는 이름 같은 삶을 향해서.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 위에 뿌리내린 사람의 이야기로 ‘편안함에 이르는 삶의 방법’을 전한 ‘나의 아저씨’가 남긴 것들을 되짚어봤다. #1. 인생 캐릭터를 새로 쓴 배우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진심이 담긴 박해영 작가의 탄탄한 대본과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살린 리얼하면서도 감각적인 김원석 감독의 연출을 바탕으로, 배우들은 각각의 인물에 각자의 개성을 얹었다.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살아가는 박동훈을 연기한 이선균은 ‘시대에 필요한 좋은 어른’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이지은은 밝고 사랑스러운 그간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세상에 상처받아 경직된 인간’ 이지안 역을 섬세하게 소화해내며 완벽한 연기 변신을 했다. 또한, 누구보다 인간적인 맏형 박상훈으로 열연한 박호산은 묵직한 존재감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으며, 송새벽은 까칠하지만 속 깊은 막내 박기훈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스크린 아닌 브라운관에서도 믿고 보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2. ‘사람’을 이야기 한 인생 드라마의 탄생 세상을 견뎌내는 ‘사람’을 조망한 긴 호흡의 작품이었던 ‘나의 아저씨’는 우리가 실제로 겪어내는 고된 삶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내며 올 상반기 최고의 인생 드라마로 등극했다. 박해영 작가와 김원석 감독이 그려낸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우리네와 다르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승진과 실직, 파견직과 같은 현실 속 모두가 겪는 진짜 전쟁인 직장생활, 중년 캥거루와 별거, 외도의 가족 문제 등을 겪어내는 인간 군상들의 면면은 아프도록 스산하지만 뜨끈한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3. 편안함에 이르도록, 세상을 사는 법 9주의 여정동안 ‘나의 아저씨’가 보여준 것은 화려하고 멋진 저 높은 곳의 삶이 아니라 망가져도 괜찮은, 망가져도 행복한 삶, 누구에게나 고되기에 때로는 지옥 같은 세상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 하나만 곁에 있다면 그래도 버텨볼만한 세상이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편안함에 이르도록 살아가기 위해서 ‘나의 아저씨’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라고 봉애(손숙)가 남긴 마지막 말은 행복하게 세상을 사는 법, 그것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인연 속에서 서로를 향해 그저 온전한 한 명의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사진제공= 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년 전 부임 땐 전쟁 걱정했는데… 남·북·미 대화할 줄이야”

    “2년 전 부임 땐 전쟁 걱정했는데… 남·북·미 대화할 줄이야”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신선대 부두 인근 해군 작전사령부에는 주한미해군사령부가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 주한미해군사는 원래 서울 용산기지에 있었지만 2016년 2월 19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 사령부 건물 앞에는 용산기지에서 함께 옮겨 온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한·미 해군이 동거하는 이 같은 ‘한 지붕 두 가족’의 기틀을 세운 인물은 주한미해군사 참모장인 행크 김(45·한국명 김승환) 미 해군 대령이다. 김 대령은 다음달 미 본토로 귀임한다.김 대령은 17일 “2016년 부임했을 때는 북한이 거의 매주 미사일을 쏘며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면서 “지금처럼 남·북·미가 평화를 거론하며 대화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고 부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뉴스는 온통 전쟁 위기로 채워졌고, 미국에 있는 부모님은 ‘전쟁 난다는데 가족들이라도 먼저 들여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매우 걱정했다”면서 “휴일도 반납한 채 비상근무의 연속이던 당시 상황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위기가 고조됐던 그때가 한·미 해군의 공조와 협력에는 더할 수 없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령부 동거’라는 전례 없는 환경은 ‘연합근무 체계’를 탄생시켜 정보, 작전 등 동일 임무를 수행하는 한·미 장병이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며 교류·협력 및 공조를 대폭 강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 대령은 “항모강습단 탑재 항공기의 공중 훈련을 위해 한국 측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통상 4개월 정도 소요됐는데 이런 과정이 2주일로 대폭 줄었다”면서 “주한미해군사가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합근무에 난색을 표명하는 간부들도 있었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달성하지 못한다’며 시작해 보자고 독려해 지금까지 왔다”며 “이제는 한·미 양측 모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해군사는 이 같은 한·미 동맹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국군의 날에는 부대 창설 60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 대령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이다. 한국인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꾸준히 우리말과 한글을 익혔고, 4명의 자녀에게 김치 맛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한국 부임을 자원했다. 지난해 대령으로 승진한 그는 미 해군에 복무하는 한국계 가운데는 최상급자 중 한 명이다. 귀임 후에는 곧바로 하버드대에서 1년간 공로연수를 받게 된다. 복무 성적이 뛰어나기 때문에 미 해군 내 최초의 한국계 장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인사]

    ■여성가족부◇승진 △권익증진국장 최창행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재정금융기후정책관 나주범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 김태주 ■파이낸셜뉴스 △경영지원실장(국장대우) 이두영 △오피니언부장 안삼수 △증권부장 윤경현 △건설부동산부장 전용기 △생활경제부장 김경수 △사회부장 박인옥 △디자인부장 정재선 △편집부장 김정순 △사진팀장 김범석 △산업부장 김용민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정훈식 △정보미디어부장 양형욱 △금융부장 김홍재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연구소장 박인철 ■전력거래소◇승진 △기획처 성과관리팀장 정언진 △전력계획처 장기수요전망팀장 김상일 △계통운영처 수급계획팀장 김태훈 △전력계획처 전원계획팀장 류성호 △중앙전력관제센터 수급운영팀장 정응수
  • ‘남자 수당’이 따로 있나요… 女보다 월급 33% 더 받아

    ‘남자 수당’이 따로 있나요… 女보다 월급 33% 더 받아

    입사 직후 격차 최대 이후 감소세 관리자 되면 다시 격차 벌어져 경력 인정도 여성이 20%P 적어 국내 100인 이상이 근로하는 기업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33% 정도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7만원 정도를 번다는 의미다.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임금 격차 실태와 정책 토론회’를 열고 근로자의 직급별·성별 임금 격차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인권위의 의뢰로 한국여성연구원이 진행한 이번 조사는 100인 이상 기업의 근속 1년 이상 정규직 남녀노동자 402명과 인사담당자 1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실태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남녀 간의 임금 격차는 약 33.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근로 조건에서 남성은 100만원, 여성은 66만 7000원을 벌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직급별·성별 간 임금 격차는 사원급이 24.4%(3750원)로 가장 컸다. 주임·대리급이 6.1%(1320원), 과장급이 2.6%(730원)로 직급이 올라가면서 한동안 성별 간 임금 격차가 줄었다. 하지만 차장급 5.8%(1480원), 부장급 9.7%(3690원)로 간부급 직책에서는 다시 격차가 벌어졌다. 이처럼 남녀 임금 격차는 직급 변화에 따라 알파벳 ‘U’자 형태를 보였다. 황성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이거나 승진해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입사 시점인 사원급으로 환원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입사 당시 임금 산정 차별 경험’은 남성노동자는 5% 정도에 그쳤지만 여성노동자는 21.5%에 달했다. 차별 내용으로는 입사 시 부서(업무) 배치, 입사 시 임금 산정, 급여, 승진·승급, 교육훈련, 인사고과 등으로 나타났다. 모든 항목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4.7배 이상 차별 경험률이 높았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경력을 덜 인정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직장 입사 전 일한 경험 있음’이라고 답한 비율은 남성 50.5%, 여성 52.5%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 직장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비율은 여성이 28%, 남성이 32.2%로 남성이 4.2% 포인트 높았고, 경력직 입사자 가운데 과거 경력을 인정받은 비율도 여성 45.7%, 남성 65.7%로 남성이 20.0% 포인트 더 높았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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