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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54년 첫 출전…86년이후“단골손님”/월드컵 66년 발자취

    ◎줄리메 주도로 30년 우루과이서 첫 개최/브라질 펠레 앞세워 4회우승 “최다기록”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스포츠의 최고제전으로 꼽히는 월드컵축구의 탄생은 6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4년 프랑스 파리에서 벨기에·스페인 등 6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설립을 위해 첫 모임을 가졌다. 여기서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올림픽이 더이상 축구의 진수를 보여줄 수 없다며 4년마다 프로축구 국가대항전을 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을 내걸고 내륙국가들끼리 주동이 된 FIFA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2차대전이 끝난뒤 46년 가입)의 따돌림속에서 대회탄생은 20여년동안 산고가 거듭됐다. 우여곡절끝에 제1회 월드컵대회는 30년 7월13일 우루과이에서 개막됐다. 오늘날 지구촌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월드컵의 태동이다. 갖은 난관을 축구에 대한 정열가 추진력으로 극복,월드컵창설의 산파역을 톡톡히 해낸 인물은 프랑스의 줄 리메 FIFA 초대회장이다. FIFA가 우승컵을 「줄 리메컵」으로 이름지은 것도 이같은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초창기대회는 재정 및 교통상의 이유 등으로 단촐하게 치러졌으나 갈수록 인기를 거듭하면서 지역예선전이 도입됐고 FIFA회원국도 현재 1백92개국이나 된다. 또 1·2차세계대전 등의 변고를 겪으면서도 94년 미국대회까지 15번이 치러졌다. 각본없는 드라마인 월드컵은 대회때마다 갖가지 이변과 파란,명승부가 이어져 수많은 화제를 쏟아냈다. 70년 맥시코월드컵 북중미예선 2차전이 벌어진 69년 7월. 홈팀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에 3­0으로 승리한뒤 홈관중이 온두라스응원단을 집단 폭행한 것이 알려지자 온두라스국민들이 자국 엘살바도르인에게 무차별 린치를 가해 수십명이 숨졌다. 이어 멕시코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도 유혈참극이 빚어져 국교단절과 함께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최악의 사고를 낳았다. 82년 스페인대회때는 브라질이 이탈리아와의 결승리그에서 2­3으로 패하자 비탄에 잠긴 브라질축구팬 32명이 자살,세계에 충격을 줬다. 66년 잉글랜드대회에서는 개막 8일전 줄 리메컵이 증발하는 대회사상 최대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했다. 또 나라이름조차 생소한 북한이 잉글랜드대회에서 34·38년 두차례 우승한 「거함」 이탈리아를 1­0으로 격침시킨 것이 월드컵에서의 일대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우승은 개인기의 브라질이 통산 4차례,조직력의 독일과 수비력의 이탈리아가 각각 3차례씩 차지했다. 특히 브라질은 스웨덴(58년) 칠레(62년) 멕시코(70년) 대회 등 3회 우승,줄 리메컵을 영구 보관하고 있다. 브라질 3회 우승의 주역 「축구황제」 펠레,74년 서독대회의 프란츠 베켄바워(독일)와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82년 스페인대회의 이탈리아 「축구영웅」 파울로 로시,86년 멕시코와 90년 이탈리아대회의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디에고 마라도나,90년 미국대회에서 브라질의 로마리우와 이탈리아의 바조 등 대회마다 불세출의 스타가 등장,팬들의 우상이 돼왔다. 한국이 처음으로 본선무대를 밟은 것은 6·25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54년의 스위스대회. 미공군 수송기에 몸을 싣고 64시간의 지루한 비행끝에 경기전날 밤 취리히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은 도착 10여시간만에 헝가리와의 월드컵데뷔전에 나서야했다. 당시 유럽최고의 축구스타로 군림하던 투스카스가 이끈 헝가리와의 경기결과는 0­9. 닷새뒤 터키와의 2차전도 0­7. 16실점에 무득점,참혹한 패배였다. 이후 32년만인 86년 멕시코 월드컵은 한국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다. 신동 마라도나가 이끄는 우승팀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에서 1­3으로 졌으나 박창선이 월드컵출전사상 한국의 첫 득점을 뽑았다. 불가리아와의 2차전은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김종부가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로 첫 승점을 기록했다. 이어 82년 스페인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와의 3차전에서 최순호·허정무가 득점하며 아깝게 2­3으로 지고 말았다. 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는 졸전끝에 벨기에전 0­2,스페인전 1­3,우루과이전 0­1로 져 한국축구에 의구심을 전져줬다. 그러나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한국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강호 스페인(2­2) 볼리비아(0­0)와 무승부를 이룬뒤 세계 최강 독일에 2­3으로 분패해 세계를 놀라게했다.
  • 월드컵 마지막까지 최선을(사설)

    온 국민의 시선이 6월1일 스위스의 취리히로 집중되고 있다.국제축구연맹(FIFA)의 21명 집행위원은 이날 취리히 본부에서 세계축구의 제전,1백91개 회원국이 참가할 2002년 월드컵의 한국개최여부를 최종결정한다. 올림픽과 함께 4년 터울로 열리는 세계 양대 스포츠제전,월드컵대회 유치를 놓고 우리는 일본과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벌여왔다.특히 88 서울올림픽을 결정한 15년전의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후보지 나고야로 우리에게 패한 바 있는 일본은 그때의 설욕이라도 하려는 듯 이번 월드컵 유치에 총력전을 펴고 나섰다.이 때문에 유치경쟁은 방대한 규모의 경제적 이해는 차치하고 양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FIFA 지도부의 극단적 편향성,그리고 일본에 비해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점등 여러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우리는 결승점을 앞두고 일본을 앞지르는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지 않은가. 또한 유치경쟁의 승패와 관계없이그동안 우리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민족의 저력,끈질긴 추진력을 세계에 과시한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바덴바덴때와도 달리 우리 국민은 이번에 나이와 직업,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차이등을 모두 털어버리고 하나의 염원 아래 뭉쳐 한 목소리를 내는 귀중한 체험을 했다.어느 국민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던 한민족의 이 강렬한 염원표출이 각 대륙을 대표하는 집행위원 한사람 한사람을 감동시켜 한국지지표가 늘어났던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최종투표직전에 있을 유치설명회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마무리작업이다.그리고 어떠한 결과도 흔쾌히 수용,성숙한 선진시민의식을 다시한번 내외에 과시하는 일이다.최선을 다한 만큼 승리에 자만하지 않을 겸손,기대밖 결과에도 좌절하지 않을 여유를 모두 준비하고 6월1일을 맞자.
  • 올림픽 축구(외언내언)

    19일밤 96애틀랜타올림픽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카자흐스탄전을 TV로 지켜보던 우리국민들은 경기초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기가 시작된지 불과 2분만에 선제골을 내주었기 때문.사우디아라비아와의 1차전에서 1―1로 비겨 실망했었던 사람들은 선제골을 뺏기는 순간 TV를 꺼버리거나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저력은 후반전에 되살아 났다.측면돌파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가더니 14분 이기형이 오른발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고 경기종료 2분을 남기고는 우성용이 역전골을 성공시켰다.B조에 속해있는 한국은 이로써 1승1무 승점4를 기록,4강문턱에 다가섰다.이제 중국의 만리장성만 넘으면 조1위나 2위로 준결승전에 오르게 된다. 고공축구를 구사하는 중국도 만만한 팀은 아니다.선수들의 평균신장이 1m80㎝가 넘고 전적은 한국과 같이 1승1무이지만 골득실차에서는 +2로 +1인 한국에 앞서 있다. 그러나 우리선수들이 제실력만 발휘한다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중국선수들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우리선수들에게 당한 악몽을 떨칠수 없을 것이다. 그해 2월1일 한국은 중국과의 예선 마지막경기에서 경기개시 휘슬이 울리자마자 노도와 같이 돌진,불과 9분만에 3골을 따내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과시했고 이날의 승리로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권을 거머 쥐었다. 이번 예선전에서도 4년전의 상황이 재현될 것으로 믿고 싶다.앞으로의 문제는 중국과의 대전이 아니라 일본과의 일전이다.A조에 속해 있는 일본팀의 전력은 예상보다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조가 달라 일본과 만나는 경기가 준결승일지 결승전일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일본과 맞붙게 되기를 바란다.일본의 전력이 종전보다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선수들이 불꽃투혼으로 밀어붙이부치면 충분히 무너뜨릴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일본을 통쾌하게 물리쳐 애틀랜타올림픽 본선티켓을 확보하고 그 여세를 몰아 2002년 월드컵축구도 유치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우리 젊은이들의 선전을 당부한다.〈황석현 논설위원〉
  • 황영조 「히로시마 영웅」 됐다/2시간11분13초

    ◎92년 올림픽 이어 마라톤 제패/한국,금메달 7개 추가… 31개로 2위 행진 【히로시마=특별취재단】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24·코오롱)가 다시 감격적인 월계관을 썼다.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일째인 9일 히로시마광역공원의 빅아치를 출발,평화기념공원까지의 42.195㎞ 코스는 황영조의 마라톤황제 등극을 축하하는 영광의 꽃길이었다. 2시간11분13초.황영조가 일본의 하야타 도시유키(2시간11분57초)를 따돌리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결승테이프를 끊는 순간 결승점을 지키고 섰던 선수단 임원들과 원정응원단,수많은 재일동포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로써 한국은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사상 처음 2연패를 달성하며 통산 4차례 우승을 이뤘고 황영조는 91년 유니버시아드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포함,참가한 국제종합대회를 모두 휩쓴 선수가 됐다. 김재룡(28·한전)은 2시간13분12초로 동메달을 추가했다. 여자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일본 실업팀에서 활약중인 중국의 종환디가 2시간29분32초로 우승했고 한국의 정영임(코오롱)은 2시간38분43초로 4위에 랭크됐다. 한국선수단은 이날도 힘찬 금메달 레이스를 펼쳤다. 한국은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과 볼링 남자 5인조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태권도에서는 웰터급 정광채(22·한국체대)와 헤비급 김제경(24·상무)이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태권도에 4체급이 출전,모두 금메달을 따내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또 남자양궁 개인전에서도 박경모(19·인천제철)와 정재헌(20·대구중구청)이 금·은메달을 획득,세계최강임을 재확인했다. 레슬링 자유형에서는 남자 선수단 주장 김태우(32·주택공사)가 100㎏급에서 우승,대회 2연패의 영예를 누렸다. 한국선수단은 이날 마라톤을 합쳐 금메달 7개를 보태 모두 금메달 31개로 6개의 금메달을 추가한 일본을 3개차로 제치고 2위를 굳게 지켰다. ◎김 대통령,축하전화 김영삼대통령은 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제12회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우승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 장하다. 황영조 선수(사설)

    얼마나 장하고 통쾌한 일인가.황영조선수가 두손을 번쩍들고 테이프를 끊는순간 결승점인 히로시마평화공원을 가득 메운 수만명의 관중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고 이 자랑스런 모습을 지켜본 우리국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9일 펼쳐진 제12회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황영조는 아시아정상에 오르면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함께 출전한 김재룡도 동메달을 따냈다.이로써 한국남자마라톤은 90년 북경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대회를 2연패했으며 황영조는 올림픽,유니버시아드,아시아경기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황영조의 금메달은 그만의 영광이 아니다.우리국민 모두의 것이며 우리민족의 저력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우리사회는 최근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불미스런 사건들로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모든 면에서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국민정서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마라톤의 승리는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는 값진 교훈이되어야 한다.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라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며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밝은 앞날을 비쳐주는 조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또 일본땅에서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은 재일동포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였을뿐 아니라 베르린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 한 손기정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뛴것을 통한스럽게 여겨온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황선수는 이날 바르셀로나올림픽때의 감격을 그대로 재현했다.일본선수와 종반까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다가 막바지에 저력을 발휘,우승한 것이다. 금메달은 모두가 값진 것이지만 마라톤은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이기에 그 금메달은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다.이 경기는 자만이나 방심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또 조그마한 실수도 용서받지 못한다.끊임없는 노력,엄격한 자기통제,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페이스 조절,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내는 불같은 투지가 일치되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황영조는 이 모든것을 해냈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다. 그 승리의 뒤안길에는 동료선수의 숨은 공도 있었다.무리한 페이스인줄 잘 알면서도 일본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앞서 달리다 뒤로 처진 김재룡의 희생정신이 승리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봄직하다.현실에 대한 불만보다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마라톤승리의 교훈이 우리사회 전체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국민모두가 자긍심을 갖고 확인된 저력을 고양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돌 미공화총무/“UR 연내비준 반대”

    ◎“부작용 숙고… 내년처리” 주장/11월 중간선거 앞둔 정치적 고려인듯 【워싱턴 AP 연합】 봅 돌 미상원 공화당 원내총무가 가트(관세무역일반협정) 회원국이 타결한 새 국제무역협정에 대한 미의회 비준을 내년까지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돌 총무는 자신도 1백23개 가트 회원국이 서명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약을 지지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돼 비준을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돌 총무는 지난 29일자 「위치타 이글」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결승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중요한 무역법안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기만 할 수없다』고 주장하고 『이 중요문제를 내년에 다뤄서는 안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상원에서는 공화당이 소수당이지만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60명의 찬성표가 필요한데 민주당 의석은 56석에 불과하며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UR협상안에 우려를 나타냈었다. UR협상안 발효를 위해서는 내년6월말까지 각국의 비준을 받아야하지만 클린턴행정부 관리들은 비준이 연기될 경우 다른 나라에서 UR 반대론자들의 입장을 강화시켜 줄것이라는 이유에서 올해 처리를 주장해 왔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정치기반이 된 미경제계는 대체로 우루과이 라운드 안을 지지하는 입장이나 공화당 일부 진영에서는 의회의 조기 비준이 오는 11월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클린턴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하고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 월드컵 축구/한국,16강 쾌속항진/홍명보·서정원 연속골

    ◎스페인과 극적 무승부 【댈러스=특별취재반】 한국축구가 사상 첫 16강을 향해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은 18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미국 댈러스 코튼볼구장에서 벌어진 제15회 월드컵축구대회 첫날 스페인과의 C조예선 1차전에서 종료 6분전까지 0­2로 뒤진 절망적 상황에서 홍명보 서정원이 연속골을 터뜨려 2­2의 극적인 무승부를 연출했다. 한국이 월드컵대회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지난 86년 멕시코대회 불가리아전(1­1)에 이어 두번째이다. 이로써 한국은 승점 1을 기록,16강진출의 탄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국은 오는 24일 상오 8시30분부터 보스턴 폭스보로구장에서 가질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 이기면 사실상 16강진출을 확정짓게 된다. 이날 한국은 초반부터 정면대결을 벌여 전반을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득점없이 비긴뒤 후반 6분과 11분 스페인의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잇따라 골을 내줘 패배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39분 홍명보가 이영진이 밀어준 프리킥을 그대로 차넣어 추격의 불을 댕긴뒤 종료 1분을 남기고 교체멤버로 투입된 서정원이 골에어리어 오른쪽에서 호쾌한 오른발슛을 성공시켜 교민 응원단과 TV중계를 지켜보던 전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한편 같은 조의 지난 대회 우승팀 독일은 시카고 솔저필드구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개막전에서 후반 16분 클린스만이 결승골을 뽑아 1­0 승리를 거두고 2연패와 통산 4번째 우승을 향해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C조예선 한국 2(0­0)2 스페인 (2­2) 독일 1(0­0)0 볼리비아 (1­0)
  • “D­1” 민주총무 경선 양측 전략

    ◎범주류 표단속 분주/김대식/정인망식 각개격파/신기하 수성과 설욕의 한판승부가 될 민주당 원내총무 경선이 27일로 바짝 다가왔다.하루 남은 결승점을 앞두고 막판 스퍼트에 나선 김대식현총무와 도전자인 신기하의원의 각축전이 숨가쁘다. 한때 범주류(김대식)와 비주류(신기하)의 대결구도처럼 비쳐지던 선거양상은 지연·학연등과 맞물리면서 시간이 갈수록 혼미해 지고 있다. 두사람 모두 승리를 장담하고는 있으나 결과는 전혀 예측불허라는 것이 당내의 중론.특히 지난해 첫 경선이후 거의 1년동안 절치부심해온 신의원의 저인망식 득표운동이 막판에 이르러 성과를 보이고 있어 성급한 전망을 불허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파에 따른 수적 우위와 원만한 국회운영등을 바탕으로 연임을 자신하던 김총무측도 다급해 하는 눈치다.선거 때면 흔히 보아오던 계파보스들의 주판알 튕기는 모습이 이번 경선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자 발걸음이 자연 빨라졌다. 상무대사건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한달이상 계속된 여야협상에 아까운 시간을 다 쓴 김총무측은허겁지겁 계파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며 표단속에 나서고 있다.김원기최고위원을 등에 업고 동교동계와 북아현동쪽(이대표계)에 지원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당소속의원 96명 가운데 65명 가량이 이 3대 집안 식구들이므로 이들 표만 지키면 당선은 확실하다는 계산이다. 반면 계파간 대결구도를 희석시키는데 나름대로 성공한 신의원측은 연고를 내세워 각개격파에 부심하고 있다.29명에 이르는 광주일고·전남대 동문및 광주·전남출신의원들의 지지를 자신하면서 김총무의 지역기반인 전북출신 의원들을 골프회동등을 통해 집중공략 중이다.오탄의원 같은 이는 전북출신이면서도 신의원측의 이같은 집요한 공세에 이미 지지를 약속했다. 『3선인데도 이번마저 총무를 하지 못한다면 15대총선도 기약할 수 없다』는 읍소도 많은 의원들의 동정을 얻고 있다.비주류와 마찬가지로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돼온 초선·전국구의원들의 동병상련도 신의원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보인다. 두 진영은 서로 아전인수식 판세분석을 바탕으로 55표이상의 확보를 공언하고 있다.과반수인 49표 보다는 대략 6∼8표 정도는 더 얻지 않겠느냐는 것이다.그러나 이들의 애타는 심정과는 달리 대다수 유권자들은 선거막판에 이르러서까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다만 당내 최대모임인 내외문제연구회(이사장 허경만) 소속의원 27명이 25일 오찬을 함께 한 것과 비주류에 총무직을 내주게 되면 당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는 범주류측의 위기감이 선거 당일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관심거리다.
  • “역시 쇼트트랙” 휴일새벽의 환호/채지훈·전이경선수 가족표정

    ◎할아버지 등 17명 “2관왕” 밤샘응원/전 선수집/“지구력 뛰어나 금메달 딸줄 믿었다”/채 선수집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에 막판 금메달 2개를 안겨준 쇼트트랙의 채지훈·전리경 선수가족들은 27일 새벽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아들·딸의 이름을 외치며 감격에 겨워 했다. 또 이날 휴일의 단잠을 설쳐가며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선수들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자 『역시 쇼트트랙 밖에 없구나』라며 밤샘 피로도 잊은 듯 즐거워 했다. ○…극적인 막판 스퍼트로 금메달을 거머쥔 아들 채지훈군(20)을 밤새 마음을 졸이며 응원하던 아버지 채수민씨(53·무역업·서울 종로구 청운동 벽산빌라 5동502호)는 딸 지나양(18)과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채씨는 『지난 23일 1천m에서 2위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으나 이번에 금메달을 따내 한없이 기쁘다』면서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아들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채씨는 『지난해 10월 왼쪽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훈련도중 으스러져 올림픽참가조차 불투명했었는데 금메달까지 따게돼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현지에 가 있는 아내가 열심히 응원했고 아들이 평소 체력과 지구력이 뛰어나 어느 정도 우승을 예상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지난 23일 쇼트트랙 여자 3천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데 이어 여자 1천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2관왕이 된 전이경양(18) 가족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었다. 아버지 전우성씨(48·서울 종로구 평창동 금강빌라)와 시골에서 올라온 전양의 할아버지 전창구씨(72) 등 가족과 친인척 17명은 밤새 응원하다 전양이 맨먼저 결승점을 통과하자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어머니 최복자씨(45)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기를 빌었지만 2관왕에 오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성원해 주신 국민과,딸에게 스케이트 날을 사주는 등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김기훈 선수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씨는 『딸이 8강전에서 캐나다 대글선수의 반칙으로 넘어져 탈락하는 줄만 알았다』며 『다행히 대글선수의 반칙이 인정돼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면서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 “한밤 승전보”… 온국민 환호성/월드컵 진출 확정되던날

    ◎TV 지켜보며 “한국축구 화이팅”/“최고의 드라마”… 탄식·환호 90분/아파트·주택가 불야성… 밤잠 설쳐 환호와 탄식이 수없이 모자이크를 이루다가 끝내 온나라를 환호성의 도가니로 몰고간 하룻밤이었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남북대결 못지 않게 일본과 이라크의 일전 소식에도 일희일비해가며 게임종료 휘슬과 거의 동시에 월드컵축구본선 3회연속 진출의 쾌감을 만끽한 날이었다. 한국이 북한을 3­0으로 완파하고 이라크가 일본과 게임종료 수십초전에 2­2로 극적으로 비겨 자력반·타력반으로 우리나라의 월드컵축구 본선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각 가정이나 야근 직장·포장마차 등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와 중동 카타르의 도하에서 날아온 낭보에 화답했다. 29일 자정무렵이었다. TV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거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한국 축구가 기사회생,결국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움켜지자 껑충껑충 뛰며 환호하기도 하고 월드컵본선에의 그 멀고도 험한 길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과 북한의 예선 마지막대결.후반 들자마자 고정운의 선제골에 이어 8분 황선홍의 두번째 골이 터지자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일본과 이라크의 대결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TV자막에 이라크가 1대1로 동점을 이룬 것이 나타나자 한국과 일본이 똑같이 승점6을 이루나 골득실에서 앞서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세 한국이 3대0으로 앞서 승리를 굳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라크에 2대1로 앞서면서 시민들은 예선탈락의 깊은 좌절감에 빠져 들었다.이때부터 일부 시민들은 일본 NHK TV 위성방송으로 채널을 돌려 이라크가 한골을 더 만회해주길 고대했다. 드디어 NHK TV 자막이 후반 45분10초를 알리는 순간 이라크가 코너킥을 얻어내고 자막시간으로 45분18초,천금의 동점골이 일본 네트를 갈랐다. 그리고는 온 나라에 함성이 메아리쳤다. 본선진출이 확정되자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를 보며 열차를 기다리던 김정렬씨(40·회사원)는 『내 생애에서 본 축구경기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고 기뻐했다. 또 야근을 하고 있던김상수씨(33)는 『일본과의 대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졸전을 벌여 며칠동안 속이 상했는데 이 기적같은 일에 체증이 말끔히 가셨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 주공아파트 어느층에서는 후세인(이라크대통령)고맙다』는 외침까지 들려와 시민들의 감격을 대변했다.
  • 한국축구 월드컵 본선 진출/북한에 3­0승

    ◎이라크와 비긴 일에 골득실 앞서/이라크,종료직전 극적 동점골 【도하=이보상특파원】 한국이 월드컵축구대회 3회연속 본선진출의 위업을 이뤘다. 한국축구대표팀은 28일밤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있는 알아할리구장에서 벌어진 94년 미국월드컵축구대회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3­0으로 이겼다. 한국팀은 이로써 6개팀이 풀리그를 벌여 2개팀을 본선에 보내는 이번 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아시아지역 2위로 월드컵본선에 나가게 됐다. 이날까지의 경기결과 사우디는 2승3무 승점 7로 1위였고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2승2무1패 승점 6이었으나 골득실차에서 한국에 뒤져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이라크는 1승3무1패 승점 5로 4위에 머물고 이란은 2승3패 승점 4로 5위,북한은 1승4패 승점 2로 최하위가 됐다. 일본에 통한의 1패를 안고도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골득실차로 본선진출권을 따낸 한국은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지난 86년 멕시코대회와 90년 이탈리아대회에 이어 3회 연속이자 통산 4차례 월드컵축구 본선에 오르는 행운을 안았다. 이날 같은 시간에 일제히 벌어진 마지막 경기에서 사우디는 이란에게 4­2로 이겼고 일본은 이라크와 2­2로 비겼다. 한국은 이날 시종 우세한 경기를 벌이면서도 전반전은 0­0으로 마쳐 안타까움을 주었으나 후반들어 잇따라 3골을 터뜨려 통쾌한 일전을 보여줬고 일본은 경기종료 직전까지 2­1로 앞서다 마지막 순간 이라크에 동점골을 허용,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김 대통령 축전 김영삼대통령은 29일 새벽 3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축구국가대표팀에게 축전을 보내 선전을 치하했다. 김대통령은 축전에서 『94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강호들을 물리치고 본선 3연속 진출의 위업을 이룬 우리 선수단의 쾌거를 온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면서 『그동안 선수단및 관계자 여러분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해 치하를 드린다』고 말했다.
  • 미완성 통일(통독 3년… 장벽은 아직도:1)

    ◎한직장 동료라도 동독출신 임금 낮아/“97년엔 똑같은 부자” 애초의 꿈 요원/보폭 다른 「2인3각」… 목표 잃고 방황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지 3일로 3년.그동안 독일 정부와 국민들은 독일재건을 위해 막대한 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왔다.그러나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동서독의 「이질감」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고 있다.생활·문화수준의 격차도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통일의 환희」가 사그라들면서 독일 국민들은 「보이지않는 장벽」속에서 극심한 통일 후유증을 겪고있는 것이다.이른바 「미완성의 통일」로 불리는 독일통일의 현주소를 4차례에 걸쳐 조명해 본다. 베를린에선 지금 1백개 가까운 대형건설공사가 진행중이다.이로인해 베를린은 하루가 다르게 새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정부이전에 대비,새 정부청사 건설을 지휘하고 있는 오펜씨는 현재 베를린에서 추진중인 공사들을 완공하기 위해선 모래·석회등 2천만t의 건자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이처럼 부족한 건자재를 공급하기 위해선 10t짜리 대형트럭 2백만대가베를린시내를 질주해야 할 판이다.그러나 이처럼 뜨거운 개발열기에도 불구하고 동베를린주민들은 심한 무기력감과 불안감에 빠져있다.동베를린주민들만 그런게 아니다.거의 모든 구동독인들도 마찬가지이다.통일당시 동독인의 3분의2가 97년까지는 서독생활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했었다.지금은 단지 8%만이 그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대부분은 2천년 전에는 서독생활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다.기업도산의 증가와 이에따른 실업에의 공포,범죄증가등 사회불안은 동독에서의 출산율을 통일전에 비해 70%나 격감시켰으며 결혼하는 젊은이들의 숫자도 절반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동독인들을 진짜 괴롭게 하는 것은 서독인들은 1등국민이고 자신들은 2등국민이라는 열등감이다.같은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동독출신이란 이유로 서독출신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감수해야만 한다는게 동독인들의 희망을 빼앗는다.통일은 동독인들이 꿈꿨던 자유와 함께 구서독에의 예속이란 원치 않은 결과도함께 가져왔다.구서독인들에게 지배를 받는다는 열등감,『동독인들은 「의존의 문화」에 젖어 있다』는 서독인들의 멸시에 동독인들은 기운을 잃고 있다. 이에 대해 쿠르트 비덴코프 작센주총리는 『구동독지역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다. 진짜 어려운 것은 구동독국민들의 마음에 구서독의 문화를 심는 것이다』고 말한다.그는 독일이 외형적 통일을 이룬지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원인을 문화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그의 말처럼 독일국민들은 지금 너나할것없이 구동서독간의 문화차이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 정도는 구동독인들에게 더욱 심하다.「문화전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 충격에서 구동독인들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 있다.서독의 문화를 동독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이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전혀 모른다.그러나 이를 피할 길은 없다.『서독의 문화를 받아들일 능력도 없고 또 그럴 관심도 없다』는 서독인들의 멸시를 받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서독의 문화에 적응하는 길밖엔 없다. 실제로 구동서독 국민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넘기 어려운 벽이 남아있는 것은 이같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동서독분단을 상징하던 베를린장벽은 이제 기념을 위해 베를린 중심부에 남겨놓은 1㎞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사라졌다.그러나 아직도 독일국민들의 머리속,그들의 가슴속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91년6월20일 통일독일의 수도로 공식 결정했으면서도 실제 수도의 기능을 아직도 본으로부터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베를린의 어정쩡한 상황은 바로 통일후 3년이 지난 오늘의 독일상황을 상징해준다.통일은 외형적으론 3년전에 이뤄졌지만 동서독인들을 하나로 합치는 내적 통일과정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내적 통일이 끝나기 전에는 독일통일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90년10월3일을 기해 동서독은 사라졌고 그 빈 자리를 통일독일이 차지했다.그로부터 3년.기세좋게 출발점을 떠난 통일독일은 지금 결승점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다. 오늘의 통일독일은 마치 운동회 때의 「2인3각」경주같은 모습이다.나름대로는 결승점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뒤뚱거리고 절름거리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한다. 결승점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선 발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구동독과 구서독은 발을 맞추기는 커녕 넘어지는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반목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 경마장난동 엄히 다스려야(사설)

    지난 일요일 과천 경마장에서 벌어진 관중들의 난동사건은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 싶어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이날 사고는 우승후보로 예상되던 2번말이 출발직후 착지불량으로 중심을 잃어 기수가 떨어졌고 기수없는 말이 2위로 골인했으나 실격선언됨으로써 일어났다. 이 말에 돈을 건 3천여명의 관중들은 성적을 그대로 인정해줄 것과 「기수의 낙마는 조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마사회사무실의 유리창과 기물을 때려부수고 관람석에 불을 지르는등 4시간동안이나 난동을 부렸다.흥분한 관중들의 난동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민주시민 의식은 도대체 어디로 실종했는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중심리에 촉발돼 이성을 잃은 관람객들이 공공건물의 시설을 파괴하고 방화를 서슴지않는 난동은 폭도들의 짓거리나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은 법과 질서를 지키고 남의 의견도 존중하며 부당하게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될때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시정토록 노력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이다.자기주장이 수용되지 않는다 해서 폭력으로 이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기수없이 경주마만 결승점에 들어온 경우 마사회의 경마규칙에는 분명히 실격이라고 규정해놓고 있다.마권을 산 경마장의 모든 관중들은 경기규칙을 인정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경기규칙을 무시하며 성적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은 상식을 벗어난 억지이다.물론 사고 말에 적지않은 돈을 건 관람객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규칙은 엄연히 규칙이다. 또 기수의 낙마를 마사회의 「승부조작」이라고 단정한 관람객들의 주장은 아직은 아무런 구체적 확증이 없는,그야말로 일방적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도 잘못된 일이다.승부조작 여부는 경찰에서 관련자를 소환,조사에 착수했으므로 그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그 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경마장 난동이 민주시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집단폭력이란 점에서우려하고 있다.가뜩이나 우리사회는 집단이기주의 풍조로 해서 큰 홍역과 갈등을 치르고 있는 요즈음이다. 다중의 힘을 빌려 공공시설물을 파괴하고 방화하는 집단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할 수 없으며 이 사회에 발 붙이게 해서는 안된다.이번 난동의 주모자는 철저히 색출하여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경마장이 사행성도박의 장소가 아니라 국민의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
  • 경마장 관중 3천여명 난동/과천/우승예상마 기수 낙마가 발단

    ◎”성적 인정” 요구 집기등 불태워/20여명 부상… 경찰,승부조작 여부 수사 【과천=박상렬·조덕현기자】 26일 하오 5시45분쯤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162 과천경마장에서 관중 3천여명이 기수없이 결승점을 2위로 통과한 경주마의 성적을 인정해 달라며 4시간여동안 난동을 벌이다 이날 하오 10시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을 투자한 일부 관중들이 승부조작이라며 본부석이 있는 주관람대 안 20여곳에 불을 지르고 마권 판매대로 몰려가 마권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집기류를 부수는등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날 사고는 마지막 경기인 제12 경주가 시작된 하오5시40분쯤 우승후보였던 2번말 캐비(뉴질랜드 거세마·6살)가 출발과 동시에 착지불량으로 발을 헛디디면서 기수 박태종씨(28)가 낙마한채 질주,2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일어났다. 마사회측은 경기가 끝난뒤 한국마사회법과 경기시행규칙 55조를 근거로 『기수 낙마후 결승점을 통과한 경주마의 골인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으나 관중들은 기수가 없어도 말이 골인점을 통과한 이상 성적을 인정,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 충돌이 빚어졌다. 흥분한 관중들은 하오 6시30분쯤 주관람대 안쪽의 의자등을 부수고 신문지·쓰레기·파라솔등을 모아 주관람대 플라스틱의자에 불을 지르기도 했으며 난동을 제지하던 마사회 비서실장 신정돈씨(43)등 마사회 직원등 20여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건발생 2시간뒤인 하오 7시30분쯤 기동대 5개 중대 6백여명을 현장에 투입,관중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난동에 적극 가담한 안재춘씨(29·서울 중구 신당동 432의2012)등 4명을 연행하는 한편,폐쇄회로 TV에 녹화된 필름을 정밀분석,주동자를 가리기로 했다. 경찰은 또 기수가 고의적으로 말에서 떨어져 승부를 조작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
  • 실내 가족놀이/「공자왈 맹자왈 게임」 어떨까요

    ◎숫자세기 7의 배수 “공자”·5의 배수 “맹자” 외쳐야 일가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설날연휴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몇가지 건전한 놀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스톱 등의 화투놀이나 TV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처럼의 만남을 의미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격의없는 친밀감이 새롭게 돋아나고 한 동아리라는 훈훈한 일체감이 고양된다.연휴기간중 가족끼리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소개한다. ◇거꾸로 대답하기=모임의 긴장을 푸른 간단한 게임으로 진행자가 예들들어 「딩동댕」이라고 말하면 지적받은 사람은 거꾸로 「댕동딩」이라고 대답한다.짧은 단어부터 시작해 「새해는 계유년」등 어려운 단어로 넘어간다. ◇공자왈 맹자왈=원형으로 둘러앉은 다음 진행자가 먼저 일부터 백까지 리듬에 맞추어 부른다.이중 7의 배수가 있거나 7이란 숫자가 들어간 번호에는 「공자」하고 외치게 한다.예를들면 「이십육 공자 이십팔」이 된다.틀리거나 리듬을 깨는 사람이 있으면 맨뒤로 보내거나 탈락시킬 수 있다.이어 5의 배수에 「맹자」를 추가,「삼 사 맹자 육 공자 팔」등으로 진행한다. ◇새해 포부말하기=빙둘러 앉아 어느 한사람부터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야 겠다」라는 포부를 말하면 그다음 사람은 여기에 자신의 포부를 붙여 「새해에는 일찍 일어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말해 차례가 거듭될수록 문장이 길어지게 한다.중간 내용을 빼먹거나 더듬은 사람에게 벌칙을 준다. ◇떡은 어디에=가족을 반으로 나눠 대장을 뽑은 뒤 대장끼리 등을 맞대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다.이긴 편이 모여 그중 한명만 떡을 입에 넣고 나머지는 다같이 먹는 시늉을 하면 진편이 진짜로 떡을 먹는 사람을 골라내는 게임이다.바로 맞히면 바꿔서 하고 틀리면 진 편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는 등의 벌칙을 가한다. ◇친적 이어가기=친척관계를 이해시키고 그 명칭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놀이로 큰종이에 친척관계 도표를 만들어 처음에는 도표를 통해 아이들을 공부시킨다.아이들에게「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사이는」「엄마의 여동생의 딸은」등으로 질문을 한다음 말잇기게임에 들어간다.「엄마 남편,아빠」「아빠 여동생,고모」「고모 아들,사촌」등이다. ◎개량 윷놀이/「자유걸」·뒷도」 등 다양한 변칙 특징 우리 민족 전래의 윷놀이를 더욱 재미있게 개량한 「민주 윷놀이」가 새로 나왔다. 철도청 공무원인 유근표씨가 개발한 이 민주윷놀이는 재래의 단순한 방식과 달리 놀이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자유걸」 「유배지」 「뒷도」등 다양한 변칙규정을 가미한 것이 특징.또 말이 움직이는 말판의 모든 위치에 고유 우리말 명칭을 달아놓은 점도 뜻깊다. 놀이방법은 윷 네가락중 하나에 표시를 한 다음,이 윷가락만 젖혀지고 나머지가 엎어지면 「뒷도」 그 반대면 「자유걸」로 한다.「자유걸」은 3칸씩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걸」과 똑같으나 전후좌우 어디로건 갈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멈춰있는 것이 유리하면 그자리에 서 있어도 된다.「뒷도」가 나오면 무조건 진행했던 방향의 한 칸 뒤로 물러나야 한다. 이밖에 말이 5번이나 8번에 있을때 모나 윷이 나오면 「유배지」로 가야되며 다음 순서에 「도」를 던져야 빠져나올 수 있다.결승점인 29번에 도착한 말 역시 「도」가 아니면 날수 없으며 16번과 25번 두곳에 진출하면 죽는 함정을 만들어 놓아 재미를 돋우었다.
  • 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요지

    ◎남북이 화해·협력의 새시대 열어/미완의 광복 조국통일로 완성을 오늘 우리는 새로운 감격과 희망속에서 광복 47주년과 건국 44주년을 맞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지난 47년의 세월은 민주·번영이 넘치는 한민족의 통일조국을 실현해 나가는 위대한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6·29선언」으로 오랜 권위주의 통치를 청산하고 자유의 활력에 넘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냉전의 벽을 헐고 인류화합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하는 데도 우리가 앞장섰습니다.북방정책은 한국인의 활동무대를 전세계로 확장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민주화를 이루면서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을 2배로 늘린것도 우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과학기술로 만든 인공위성 「우리별1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한국인의 활동무대는 이제 5대양 6대주를 넘어 우주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4년전 저는 이 자리에서 번영된 통일조국을이룩하는 것만이 미완의 광복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금세기안에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다시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줄기찬 노력으로 분단의 장벽이 헐리고 통일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세기적인 국제질서의 대변혁과 우리의 통일외교는 겨레의 재결합을 막아온 모든 외적 장애를 제거했습니다.통일은 이제 우리 겨레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2월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이 발효되어 대결과 불신으로 이어져온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의 새길로 들어섰습니다.남북이 서로 합의한 일들을 성실히 이행하여 돕고 도움을 받는 경험을 축적해 갈때 상호간의 불신은 해소될 것 입니다. 광복 마흔일곱돌은 해방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우리 민족을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남과 북은 새로운 주역들이 서로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개방하고 왕래를 촉진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는 오늘날,폐쇄와 대결을 고수하면 세계사의 진운에서 낙오할 뿐입니다.이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겨레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핵개발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북한이 진정 공존공영을 바란다면 핵문제도 서로 지혜를 모아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과 북이 이번 광복절에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의 상호방문을 실현키로 해놓고 북측이 당치도 않은 조건과 구실을 붙여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입니다.이산가족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남과 북이 함께 민족앞에 지고 있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입니다. 남과 북은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 사업을 정례화하고 특정지역을 가족상봉 장소로 개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설악산과 금강산을 함께 개방하는 것도 이를 위한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당면 현안의 해결과 함께 경제협력도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남과 북이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천하는 것은 민족 모두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다지는일입니다. 구체적인 경제협력이 조속히 실천에 옮겨지기 위하여 본격적인 조사작업이 착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4년동안 우리는 민주화와 국제화,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선진국 진입의 준비를 갖추어 왔습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이에따른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지만 올들어 안정기반이 확고해 지고 경쟁력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세기안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와 1만5천달러 목표를 차례로 달성하여 겨레 모두가 풍요를 누리는 선진국의 꿈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세대동안 이룬 눈부신 발전은 『우리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속에서 남보다 많은 땀을 흘렸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비관주의,냉소주의는 가장 경계해야할 우리의 적입니다. 긍지와 자신감을 갖지 못한 민족이 위대한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그 많은 선수들,특히 마라톤의 황영조선수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불굴의 투지를 발휘한 한국인의 표상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통일과 선진국으로 가는 마라톤의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가파른 오르막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힘들고 지쳐 때로 멈추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새로운 힘과 용기로 「통일」과 「선진국」에 이르는 종착점까지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확인한 우리 국민의 엄청난 저력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힘껏 발휘되어 나라 전체가 한 단계 더 높은 발전을 이루도록 합시다.
  • “마라톤 코리아”… 「몬주익신화」창조/월계관을 조국에 바친 황영조

    ◎“입문 5년”… 풀코스 도전 4번만에 위업/어린시절 가난딛고 올 10분벽 깨며 각광 마지막 2㎞.몬주익비탈길을 오르며 황영조(22·코오롱)는 이를 악물었다. 집요하게 따라붙은 모리시타(일본)의 거친 숨소리가 지쳐있음을 감지케 해주었다. 『이제는 뛰쳐나갈 때다』 황영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엄청난 함성속에 황영조는 결승점에 들어섰다.그리곤 쓰러져 파열해버릴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울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기만 했던 고향앞바다와 함께 어머니의 영상이 떠올랐다. 하루 세끼를 옥수수와 감자,불어터진 국수가락으로 견뎌야했던 가족들을 위해 추운 겨울날에도 늙은 몸을 추스르며 물질(해녀)을 하던 어머니.심장이 시려오며 가슴이 메는듯해 일어설 수가 없었다. 황영조는 가슴으로 외쳤다. 『어머니,당신이 진짜 승리자입니다.당신께 이영광을 바칩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황영조는 공항에서 고향집으로 전화를 했다.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를 꼭한번 듣고싶어서였다. 『어머니는 네가 경기를 끝낼때까지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실것』이라는 누나의 말만을 전해들은 황영조는 가슴이 저렸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그는 『나는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르셀로나행 트랩을 올랐다.그리고 그는 정상에 올랐다. 황영조는 1970년 3월22일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의 가난한 어촌에서 황길수씨(50)와 이만자씨(53)의 2남2녀중 셋째(장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상때부터 고기잡이를 해온 어부였고 어머니는 물질하는 해녀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때문에 쌀밥을 구경하기 어려울정도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황영조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것은 국민학교 4학년때였다.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영향으로 씨름선수가 됐다.그리고 근덕중에 진학해서는 사이클선수가 됐다.가족들은 반대했지만 황영조가 고집을 부려 관철시켰다. 황영조의 운명을 바꿔놓은 육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강릉명륜고 1년때인 지난 87년.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강희창감독이 기숙사제공·학비전액면제라는 조건으로 육상부가입을 권유했고 사이클처럼 위험하지도 않다는 말에 그의어머니도 쾌히 승낙했다. 처음에는 5천m선수로 뛰었으나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1년만에 학교를 휴학하고 제주도 외삼촌집으로 내려가고 만다. 그러나 황영조는 그곳에서 힘든 밭일을 하면서 『마라톤에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한다.중학교때 삼척군 5㎞단축마라톤에서 우승한 경력이 결심을 도왔지만,오늘의 황영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m68㎝·56㎏의 다부진 체격,거친 파도를 이겨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지구력과 스피드,자맥질하는 어머니가 물려준 보통사람 두배의 폐활량등 황영조의 마라토너로서의 자질은 천부적이었다. 입문 5개월만인 88년 경부역전마라톤에서 최우수신인상을 차지했고 89년 경호역전마라톤에서 3개구간 우승을 휩쓸며 대회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어 고교1인자로 떠오른다.89년 전국체전에서는 10㎞단축마라톤마저 석권,한국마라톤의 「희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90년 정봉수감독(코오롱)의 끈질긴 설득으로 코오롱에 입단,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급상승,그해 경부역전대회에서 실업강호들을 제치고 MVP로 뽑혀 대성을 예고했다. 이어 91년 3월 연습삼아 출전한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2분35초의 호기록으로 일약 국내정상급 마라토너로 부상했다. 첫도전한 마라톤풀코스에서 자신도 놀란 성과를 올린 황영조는 이때부터 한국마라톤의 숙원인 「10분벽돌파」를 겨냥한다. 91년 7월 영국 셰필드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우승(2시간12분41초)에 이어 92년 2월,황영조는 일본 벳푸­오이타국제대회에서 마침내 10분벽을 깨뜨리며 2시간8분47초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의 쾌거를 예고한다. 이후 그는 매주 3백60㎞씩을 달렸다.쉬는 날을 빼면 하루 70㎞씩을 달린 셈이다.이러한 살인적 훈련이,난코스로 알려져 세계톱랭커들마저 머뭇거린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코스를 아무 거리낌없이 질주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마라톤풀코스 도전 4번만에 세계를 제패,한국마라톤의 숙원을 푼 황영조는 평소 세가지의 꿈을 키워왔다.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지난 88년 이후 4년간 요지부동인 세계최고기록(2시간6분50초)을 갈아치우며,세계적인 마라톤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꿈의 첫번째가 달성됐다.마라톤에 인생을 걸기로 한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의 영광을 뒤로 하고 두번째 꿈을 향해 내달을 것이다. 『도전앞에 불가능은 없습니다.반드시 세계최고기록을 바꿔 놓겠습니다』 황영조의 당찬 다짐이 또하나의 신화를 예고해 준다. ▷황영조 신상명세◁ ▲생년월일=1970년 3월22일 ▲본적및 현주소=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61 ▲체격=1m68㎝·56㎏ ▲소속=코오롱 ▲학력=삼척근덕중→강릉명륜고 ▲가족사항=황길수씨(50)의 2남2녀중 셋째(장남) ▲취미=음악감상 ▲별명=악바리 ▲주요입상경력=91유니버시아드대회 마라톤1위(2시간12분40초)92벳푸­오이타국제마라톤대회 2위(2시간8분57초)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일선생

    ◎독립군 양성… 청산리전투 대승 이끌어/31세에 만주로 망명… 한인자녀들 가르쳐/항일투쟁단체 규합,대한군정서 총재로/「김좌진전투부대」의 최고지도자… 흑하사변으로 동지 잃자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포 서일선생이 선정됐다.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서일선생은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청산리전투의 실질적 주도자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교육자·종교인·언론이기도한 선생은 1921년 소위 흑하사변으로 동지들을 잃자 자결로 민족에 사죄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백포의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청산리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서일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제를 깨부술 수 있는 것은 힘뿐이라고 믿었던 젊은 혁명가,그 힘은 강고한 정신력과 무장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서일선생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단에서 백묵가루를 마시던 약골의 선비 서일을 무장독립운동가로 변신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는 41세의 짧은 생애 강운데 나중 10년을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누볐다.그 마지막 10년동안 흘린 피와 땀과 사자후가 희미하게 역사에 남아 있다. 혁명가 서일선생에 대한 흔치않은 증언과 색깔 바랜 기록들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이름은 청산리전투와 함께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고향과 가족을 등진채 산악과 벌판에서 풍손로숙한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도 서일선생을 떠받들고 있을 것이다. 선생은 1881년(고종18년)2월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김희동 농가에서 태어났다.호는 백포. ○월북 경원서 출생 처음 이름은 기학이라 했지만 나중에 일로 바꿨다(대종교·보훈처 기록).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에 있던 성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이로부터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나중 그의 행적을 미루어 보아 식민지 젊은이들의 의와 기를 살리는데 앞장섰으리라생각될 뿐이다. 그러나 그의 20대는 날이 갈수록 어두운 색깔로 채색되어갔다.혈기왕성했던 스물다섯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겪었고 서른에는 망국의 경술국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와 망명지 만주등에는 사립학교 설립이 급증했다.이는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선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생역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에 틀림없다.그러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망명후 선생이 교육에 정신(대종교)과 힘(무장투쟁)을 융합시킨 사실이 그 증거이다. 31세때(1911년)선생은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의 어려움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통분해하며 당시 지사들이 많이 망명해있던 동만주 왕청현으로 떠났다.만주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 10년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승점이 설립한 대종교계통의 명동학교(왕청 덕원리소재)에서 물밀듯 이주해오는 한인자녀들을 가르치며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불붙여 주었다(이 명동학교를 서일선생이 설립했다는 설도 있지만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이듬해 10월 선생은 대종교에 귀의한다.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실행하는 대종교 정신은 벌판을 누비던 독립군들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주게된다.선생이 단순한 무장독립운동가가 아닌 교육자·종교인·언론인으로도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오는 열혈청년들이 줄을 이을 때 서일선생은 북간도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노리는 의병들과 규합,중광단을 조직했다.단장에 취임한 그는 무력항쟁의 기틀을 잡기위한 체제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대종교의 이념계승에도 몰두했다. ○대종교에 귀의 그는 대종교 입교후 포교에도 나서 3년동안 동만주 북만주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10여만의 교우를 얻어 「도력이 큰 도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서일선생은 교우들중 젊은 청년들은 독립군으로 편입시키고 일반교우에게는 군량 조달등 다른 직무를 부여했다. 독립군에 편성된 청년들의 강고한 정신무장을 위해 한배검에 귀의케한 탓으로 후일 그가 총재로 지휘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의 장병은 거의가 대종교인이었다.선생은 교도들을 중심으로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는데 신도 1만5천명을 모아놓고 「독립군 양성기금으로 1인1원씩 거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종교를 독립운동의 기지로 삼았음이 틀림없다.이 사이 선생은 「오대종지강연」「도해」「신화강의」「진이도설」「삼문일답」「회삼경」등 경전도 저술했다. 당시 선생은 중광단등을 통해 대일무장투쟁을 추구했으나 재정문제등 조직적 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 군사투쟁은 전개하지 못했다.이에 선생은 수많은 독립군및 운동단체 결집을 위해 1918년 김좌진 김동삼 신팔균 손일민 신채호등 39인 연서로 「무오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와함께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일민보」「신국보」등 신문을 발간,『일제와의 항쟁은 혈전을 벌이는 피의 전투 밖에 없다』는 논조를 내세웠다. 이듬해 1919년7월부터 청산리전투가 전개된 1920년10월까지 선생은 중광단을 확대·개편한 대한정의단→대한군정부→북로군정서등 독립군단을 이끌었다.정규병력 1천5백여명을 청산리전투주역인 사관으로 양성하고 러시아·체코군으로부터 3만여정의 무기도 확보했다. 이처럼 군정서가 힘을 갖추기 시작하자 일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주목했는데,그들은 「북간도지방의 항일단체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제정규군 3천3백여명이 사살 당하는 청산리전투를 짐승처럼 예감하고 있었다. ○일군 3천명 사살 『…군정서는 서대파구에 근거를 두고 서일이 통솔한 단체로서 대부분 단군교도(대종교)이다.…그들 행동은 극히 흉포하여 부단히 선내지에 대한 무력침습을 양언하고 있다.…총재는 서일,부총재 현천묵,사령관 김좌진,부사령관 김성,참모장 나중소등이다.…일단 유사시에는 명령일하 동원소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산리전투후 여러개의 독립군단들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영 밀산으로 이동한다.여기에서 북로군정서(서일)·대한독립단(홍범도)등 10개 부대는 전만주 3천5백 병력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고,선생이 총재로 추대되었다.부대편성을 마친 독립군단은 이듬해 정월 우수리강을 건너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련영토 안에 일본에 대적하는 독립군을 육성하면 양국간 우호관계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일공사 요시자와의 위협에 소련은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소위 「흑하사변」이라는 참변이 발발해 독립군은 힘을 잃었다.여기에 토비들의 습격까지 겹쳤다. 수많은 동포와 청년독립군들이 희생을 당했다.비분강개한 선생은 8월28일 마을 뒷산 산림 속에서 대종교의 폐기법으로 자결순국했다.41세 독립운동가가 남긴 유언은 처절하다.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차리라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역사적 평가/독립운동가·교육가로 큰 발자취/신재홍 국사편편찬위 부장 백포 서일선생은 그가 민족운동사에서 차지 하고 있는 위상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일찍이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몸소 이를 실천한 교육자이며 또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한 대종교의 간부일뿐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군 지도자였다. 그의 학력은 함북 경성군에 위치한 성일학교 사범과를 나온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민족혼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여 향리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10년 일제가 주권을 강탈하자 북만주로 망명하여 그곳에 명동 동일 학성 동신 동화 양성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인재 양성에 헌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강인한 민족혼의 배양에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를 위하여는 국조단군을 숭상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깨우치는데 있다 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귀의 하였다.대종교의 포교가 바로 민주운동이요 독립운동임을 믿어 교리연구과 포교에도 힘써 많은 저술을 남긴 민족종교의 지도자였다. 선생의 활동에서 특기할 것은 무엇보다 무장항일운동에 있었다.선생은 일제를 우리 국토에서 구축하고 주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일제와의 혈전에 있다하여 무장항일운동 단체인 중광단 대한정의단을 조직,활동하였고 1919년에는 여러 무장단체를규합하여 북로군정서를 설립하였다.이 단체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대종교 신자가 중심이 된 단체로서 재만 독립군중 최강의 부대였다.따라서 1920년 이 부대가 이룩한 청산리전투의 위업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이것은 선생이 배양한 투철한 민족혼과 강인한 항일의식이 그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교육가이며 민족종교가로서 또한 무장항일운동의 지도자로 선생이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수가 있다.
  • 김원탁,마라톤 금메달/2시간12분56초/이미옥은 여자부 3위

    ◎박길철,요트레이저급 2연패/유도·역도서도 금 셋 추가 북경대회 【북경=본사 합동취재단】 한국의 김원탁이 육상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월계관을 썼다. 김원탁은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9일째인 30일 북경올림픽센터를 출발,북경시내를 한바퀴 돌아 결승점으로 돌아오는 42.195㎞의 풀코스를 2시간12분56초로 주파하고 우승,한국 육상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한국은 남자 역도 90㎏급 경기에서 신예 김병찬이 합계 3백67.5㎏을 들어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백㎏급에서는 중량급 간판스타 황우원이 합계 3백55㎏으로 우승,대회 2연패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은 또 남자 요트레이저급에서 박길철이 전 레이스를 무벌점으로 우승,역시 2연패를 이룩했다. 한국은 마라톤·역도·요트 외에 유도 71㎏급 결승전에서 정훈이 북한 이창수와의 남북 대결에서 통쾌한 한판승을 거둬 금을 추가했다. 한국은 이밖에 여자 마라톤에서 이미옥이 2시간36분31초로 동메달을 추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기대했던 탁구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유남규·현정화 조가 중국의 웨칭광·등야핑 조에 1­2로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 소년기사 이창호 「스승의 기록」 넘었다

    ◎조훈현9단의 「31연승」 깨고 「32연승」 신기록/서봉수9단등 연파… 명인전 도전권 획득/기성ㆍ왕위전등서 연말께 「사제대결」 벌일듯 괴력의 천재소년기사 이창호4단(충암중 3년)이 스승인 조훈현9단의 기록을 또하나 갈아치웠다. 이4단은 6일 제21기 명인전에서 1승을 추가,32연승을 거두고 조9단이 12년동안 보유해온 연승기록을 깨뜨리며 무적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4단의 이번 쾌거는 지난 2월말부터 이어온 연승행진 개인기록을 한국기록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특히 세계챔피언인 스승의 기록을 깼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종전기록은 조9단이 지난78년 세운것이며 일본의 기록은 77년 임해봉9단이 세운 24연승이다. 더욱이 32번째의 승리는 제21기 명인전 도전자 결정전 3번기 제2국에서의 승리로 이것을 계기로 명인전의 도전자로 나서 스승과 또 한번의 타이틀전을 치르게 돼 의미가 깊다. 이4단은 도전자 결정전에서 황원준6단과 대결,백을 쥐고 2백56수만에 6집반을 이겨 가볍게 2승을 따내고 조명인과 맞붙게 됐다. 이4단의 32연승 가운데옥의 티라면 스승 조9단으로부터 얻어낸 승점이 없다는 점과 얼마전 후지쓰배에서 일본의 최강자 고바야시(소림광일)9단에게 아깝게 반집차로 패한 것이 연승기간중에 들어간다는 점. 그러나 이4단은 지난 10여년동안 조9단과 함께 한국바둑계를 양분해온 순국산파 승부사 서봉수9단에게 3번이나 이겼고 전 대왕 유창택3단에게 1승,제1회 동양증권배 국제기전 타이틀보유자 양재호6단에게 1승,떠오르는 별 정현산3단에게 4승을 거두어 한국최고의 기록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분석이다. 이4단은 이같은 연전연승으로 국내 각 기전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다. 이번의 명인전에서 도전자로 선발된 것을 비롯,제2기 동양증권배에서도 서9단과 타이틀전을 곧 벌이게 되며 기성전,왕위전,기왕전,대왕전,국수전 등에서도 무패의 기록으로 도전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바둑계는 올 연말쯤 이4단과 조9단이 6∼9개 기전에서 타이틀을 걸고 세계바둑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사제간의 대결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이4단은 최고위,신왕위,KBS바둑왕등 3관왕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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