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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카 어디서나 5분 내 이용” 서울시 대여소 2배로 늘린다

    “나눔카 어디서나 5분 내 이용” 서울시 대여소 2배로 늘린다

    주택가에서 시간 단위로 대여 가능한 공유자동차 ‘나눔카’ 이용이 훨씬 편리해질 전망이다. 2018년까지 서울시내 대여소가 두 배 이상 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어디서나 5분 내 이용’을 목표로 2018년까지 현재 나눔카 대여소를 1262곳에서 24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나눔카는 차량을 빌려 쓰고 이용 시간과 거리만큼 비용을 내는 일종의 진보된 렌터카다. 자동차를 시민들이 공유한다는 뜻에서 ‘나눔카’라고 이름 붙였다. 차량이 없어도 불편 없는 서울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시작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나눔카 서비스 회사에 회원 가입을 한 뒤 인터넷(모바일)으로 차량을 예약하고 지정된 대여소에서 차를 빌리면 된다. 영업시간과 영업지점이 정해져 있는 렌터카와 달리, 필요한 시간에 언제든지 가까운 대여소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비용도 30분에 3300원으로 저렴하다. 시 관계자는 “나 홀로 승용차를 줄일 수 있는 나눔카는 에너지 절약과 대기 환경 개선, 시내 차량 진입 감소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먼저 시영 주차장과 공영 주차장 등에도 나눔카 대여소를 만든다. 현재 시영 주차장 143곳 중 60%, 자치구 공영 주차장과 주민센터 주차장 1214곳 중 22%에 나눔카 대여소가 있다. 또 올해부터 나눔카를 업무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법인회원 가입 절차를 간소화할 계획이다. 나눔카 차량의 전기차 비율도 늘린다. 아울러 이용자가 나눔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차량 정보를 예약 단계부터 제공하고 모든 나눔카에 후방카메라를 장착할 예정이다. 반납 지연 시엔 예약 연장 가능 여부 정보를 제공하고, 예약된 시간보다 빠른 반납에는 요금을 환급하는 서비스도 시작한다. 불편사항으로 지적돼 온 점은 개선에 나선다. 2013년 2월 492대로 서비스를 시작한 나눔카는 지난해 말 기준 2913대가 운영되고 있다. 누적 이용자만 220만명에 하루평균 4200명이 이용한다. 신용목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지난 3년이 나눔카의 양적 확대 기간이었다면 2기 사업을 통해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필사적인 몸짓…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들

    필사적인 몸짓…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들

    자동차 트렁크 아랫부분에 밧줄로 묶인 채 누워있는 남성, 자동차 내부 대시보드에서 끌려 나오는 남성. 사진만 보면 스토리를 전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밀입국자들의 기상천외한 밀입국 시도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스페인의 국경 경찰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밀입국자들의 위험천만한 모습을 공개했다. 밀입국자들이 유럽으로 들어오기 위해 ‘사용’하는 관문은 다름 아닌 모로코다.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모로코는 스페인과 지리적·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로코의 아프리카 난민은 대부분 스페인의 북아프리카 영토인 세우타 세관을 통해 유럽으로 불법입국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이런 밀입국자들이 자동차를 이용해 스페인령으로 들어오려다 적발된 사례들을 담고 있다. 가장 먼저 설명했던 자동차 뒷 범퍼에 들어간 남성은 기니 출신의 29살 청년으로 알려졌다. 이 청년은 모로코에 있는 스페인령의 항구도시 멜리야에서 붙잡혔는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 멜리야로 들어가는 자동차 뒷 범퍼에 몸을 묶고 그 위를 자동차 차체로 감싸고 들어오다 결국 꼬리를 붙잡혔다. 지난해 8월 말 경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남성의 사진도 다시 올라왔다. 이 남성은 세우타 세관을 통과하는 자동차의 엔진 옆에 간신히 몸을 넣고 다리를 구부린 채 숨어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또 다른 남성은 승용차 뒷좌석 등받이 뒤에 몸을 숨겼지만 경찰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이들 모두 발견 당시 산소부족 증상을 보여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코트디부아르의 8세 소년이 여행가방 안에 숨어 세우타를 통과하려다 엑스레이 판독기에 적발되기도 했다. 기상천외한 밀입국시도가 번번히 실패하는 것은 스페인 경찰의 소리 탐지기 때문이다. 현지 경찰은 심장박동소리 탐지기구를 이용해 밀입국자를 단속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내에서 운전자가 모두 내린 뒤에도 소리가 감지되면 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가 있다고 판단, 현장에서 정밀 조사에 들어간다. 한편 AP통신은 지난해 보도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스페인으로 밀입국 하려는 아프리카인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하며, 2014년에만 약 5000명이 밀입국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6시간 걸려 원단 2억원어치 트럭에 실었더니… 北 “놓고 가라”

    6시간 걸려 원단 2억원어치 트럭에 실었더니… 北 “놓고 가라”

    승용차에 실린 짐만 겨우 허용… 일부, 억지로 반출하다 압류도 “11일 오후 5시쯤에 개성공단관리위원회 4층 회의실에 각 업체 책임자들이 다 모였어요. 공단관리위원회 사람 말이 ‘북측이 우리에게 개인 짐만 싸서 빨리 나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탄식을 뱉을 시간도 없었어요. 어쨌든 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니까 바로 공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승용차는 내려가도 짐을 실은 트럭은 모조리 막혔어요. 10일 저녁부터 1박 2일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입니다.” 12일 한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법인장은 지난 10일 오후 3시 회사 대표로부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11일 오후 10시 40분 맨몸으로 입경할 때까지 시시각각 벌어진 상황들을 전하며 거의 몸서리를 쳤다. 이곳에 있었던 속옷업체 A법인장과 쇼핑백 제조업체 B법인장의 시각을 통해 긴박했던 1박 2일을 재구성했다. 두 사람은 자칫 회사에 화가 미칠 수 있다며 끝까지 익명을 요구했다. 【10일 오후 3시 A법인장】 수화기 너머로 회사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쪽(한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으니 내려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북측 근로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비상계획을 짰다. 12일까지 이틀 동안 남측에서 트럭을 갖고 와 속옷 완제품들을 실어가고 이날 오후 5시에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오후 5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공장 책임자들은 서둘러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화가 왔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15층 위원회 건물의 4층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정부가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한답니다. 내일부터 업체당 물건을 실을 트럭은 1대만, 서울에서 들어오는 인원도 1명만 허용합니다.” 정부의 공식 통보를 듣고 공장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국 직원끼리 밤새워 짐을 싸는 작업을 했다. 【11일 오전 10시 B법인장】 설 연휴 때문에 지난 6일 개성공단에서 나왔는데 본사에서 11일 오전 10시에 물건을 실으러 트럭과 함께 공단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공단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20분이었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고 짐을 5t 트럭에 싣도록 한 뒤 오후 2시에 나올 계획이었다. 이후 북한 근로자들이 짐을 실으면 트럭은 12일에 입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비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북한 근로자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나와 다른 한국 직원 둘이서만 15만장의 쇼핑백 재료인 종이 원단을 실어야 했다. 오후 4시 30분 트럭에 드디어 짐을 모두 실었다. 그래도 공장에 남은 종이 원단이 30만장이었다. 얼추 4억원어치다. 【11일 오후 5시 A법인장】 이날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전날과 같은 시간에 “긴급”이라며 회의를 소집했다. 매일 트럭 1대씩 출입을 허용하겠다던 공단관리위원회에서 갑자기 12일에는 출입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앞서 밝힌 터여서 뭔가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북측이 개성공단 자산을 몰수했다. 제품이나 원자재는 나갈 수 없다. 앞으로 30분 후인 오후 5시 30분까지 개인 짐만 챙겨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실 내부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자칫 북에 억류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11일 오후 5시 30분 B법인장】 회의 후 공장에 돌아오니 북측이 통보한 시점까지 단 20분 정도가 남았다. 미리 제품을 실어 놓은 트럭과 함께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세관에서 “트럭은 짐을 모두 빼야 통과할 수 있다. 도로 가서 짐을 풀라”고 했다. 황당했다. 승용차는 통과했지만 트럭은 속절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일부 업체들은 억지로 제품이나 원자재를 들고 나오려다 북한 세관에서 압류당하기도 했다. 다시 출입국사무소로 갔다. 이곳에서 3시간 이상 공단의 다른 기업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사히 돌아가 식구들 얼굴이나 볼 수 있을지 적이 걱정이 됐다. 【11일 오후 10시 20분 A법인장】 공단의 체류 인원이 모두 모이자 차량 247대에 나눠 타고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출발했다. 북측 차량이 맨 앞과 맨 뒤에 섰다.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실제 차량과 인원이 서류상에 적힌 것과 맞는지 꼼꼼히 대조했다. 이후 세관에서 차를 다시 한 대씩 확인했다. 수백번을 드나들었던 곳인데 곳곳마다 북측 군인들이 많았고 통제가 심했다. 북한 세관 직원이 “다시 볼 수 있갔지요”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심상찮다”→“가동 중단” 밤새 짐싸 → 北 “짐 내려”→ 몸만 나와

    “심상찮다”→“가동 중단” 밤새 짐싸 → 北 “짐 내려”→ 몸만 나와

    6시간 실은 원단, 北 “내려놔라” 일부는 억지로 반출하다 압류 “11일 오후 5시쯤에 개성공단관리위원회 4층 회의실에 각 업체 책임자들이 다 모였어요. 공단관리위원회 사람 말이 ‘북측이 우리에게 개인 짐만 싸서 빨리 나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탄식을 뱉을 시간도 없었어요. 어쨌든 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니까 바로 공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승용차는 내려가도 짐을 실은 트럭은 모조리 막혔어요. 10일 저녁부터 1박 2일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입니다.” 12일 한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법인장은 지난 10일 오후 3시 회사 대표로부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11일 오후 10시 40분 맨몸으로 입경할 때까지 시시각각 벌어진 상황들을 전하며 거의 몸서리를 쳤다. 이곳에 있었던 속옷업체 A법인장과 쇼핑백 제조업체 B법인장의 시각을 통해 긴박했던 1박 2일을 재구성했다. 두 사람은 자칫 회사에 화가 미칠 수 있다며 끝까지 익명을 요구했다. 【10일 오후 3시 A법인장】 수화기 너머로 회사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쪽(한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으니 내려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북측 근로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비상계획을 짰다. 12일까지 이틀 동안 남측에서 트럭을 갖고 와 속옷 완제품들을 실어가고 이날 오후 5시에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오후 5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공장 책임자들은 서둘러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화가 왔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15층 위원회 건물의 4층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정부가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한답니다. 내일부터 업체당 물건을 실을 트럭은 1대만, 서울에서 들어오는 인원도 1명만 허용합니다.” 정부의 공식 통보를 듣고 공장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국 직원끼리 밤새워 짐을 싸는 작업을 했다. 【11일 오전 10시 B법인장】 설 연휴 때문에 지난 6일 개성공단에서 나왔는데 본사에서 11일 오전 10시에 물건을 실으러 트럭과 함께 공단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공단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20분이었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고 짐을 5t 트럭에 싣도록 한 뒤 오후 2시에 나올 계획이었다. 이후 북한 근로자들이 짐을 실으면 트럭은 12일에 입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비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북한 근로자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나와 다른 한국 직원 둘이서만 15만장(약 2억원 상당)의 쇼핑백 재료인 종이 원단을 실어야 했다. 오후 4시 30분 트럭에 드디어 짐을 모두 실었다. 그래도 공장에 남은 종이 원단이 30만장이었다. 얼추 4억원어치다. 【11일 오후 5시 A법인장】 이날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전날과 같은 시간에 “긴급”이라며 회의를 소집했다. 매일 트럭 1대씩 출입을 허용하겠다던 공단관리위원회에서 갑자기 12일에는 출입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앞서 밝힌 터여서 뭔가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북측이 개성공단 자산을 몰수했다. 제품이나 원자재는 나갈 수 없다. 앞으로 30분 후인 오후 5시 30분까지 개인 짐만 챙겨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실 내부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자칫 북에 억류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11일 오후 5시 30분 B법인장】 회의 후 공장에 돌아오니 북측이 통보한 시점까지 단 20분 정도가 남았다. 미리 제품을 실어 놓은 트럭과 함께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세관에서 “트럭은 짐을 모두 빼야 통과할 수 있다. 도로 가서 짐을 풀라”고 했다. 황당했다. 승용차는 통과했지만 트럭은 속절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일부 업체들은 억지로 제품이나 원자재를 들고 나오려다 북한 세관에서 압류당하기도 했다. 다시 출입국사무소로 갔다. 이곳에서 3시간 이상 공단의 다른 기업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사히 돌아가 식구들 얼굴이나 볼 수 있을지 적이 걱정이 됐다. 【11일 오후 10시 20분 A법인장】 공단의 체류 인원이 모두 모이자 차량 247대에 나눠 타고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출발했다. 북측 차량이 맨 앞과 맨 뒤에 섰다.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실제 차량과 인원이 서류상에 적힌 것과 맞는지 꼼꼼히 대조했다. 이후 세관에서 차를 다시 한 대씩 확인했다. 수백번을 드나들었던 곳인데 곳곳마다 북측 군인들이 많았고 통제가 심했다. 북한 세관 직원이 “다시 볼 수 있갔지요”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5·18 취재기 영화로 제작된다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5·18 취재기 영화로 제작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씨의 취재기가 영화로 제작된다. 12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독일에서 숨을 거둔 힌츠페터 씨의 5·18 당시 행적과 그를 도운 택시기사의 경험담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Taxi Driver)’의 제작이 진행 중이다. 현재 감독 및 배우 등 협의를 거치고 있다. 영화는 1980년 5월 당시 외국인 기자를 손님으로 태우고 우연히 광주에 간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평범한 소시민인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 5·18의 진실을 알리고자 힌츠페터 씨를 적극적으로 돕는 인물로 그려진다. 힌츠페터 씨는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긴 공로로 지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을 당시“1980년 5월 광주까지 나를 태워주고 안내해 준 용감한 택시기사 김사복 씨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바 있다.제작사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김사복으로 알려진 택시운전사를 수소문했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다.독일 차인 오펠사의 택시 승용차를 몰고 서울에서 광주로 달려간 운전기사는 학살의 현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검문을 벌이던 계엄군을 따돌리고 10롤의 필름이 무사히 광주를 벗어날 때까지 주요 고비마다 힌터페츠 씨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지난 5일 독일 현지에서 진행된 고인의 장례식에서 5·18 재단 및 광주시 관계자에게 제작 협조를 요청했고, 재단과 시는 영화 제작을 도울 방침이다.힌츠페터 씨는 5·18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일본특파원으로 광주 상황을 현장에서 취재해 가장 먼저 세계에 알렸다.그가 목숨을 걸고 광주 현장을 기록한 영상 자료는 군부독재의 폭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율차 시험운행 접수 시작… 운전자 등 2명 이상 타야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자율주행자동차 도로 시험운행 허가요건이 확정되고 접수가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자율차 운행 세부 허가절차, 허가요건, 운행구역 및 안전운행요건을 정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자율차 안전운행요건 및 시험 운행규정 제정안을 11일 고시하고 12일부터 시험운행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시험 운행에 나오는 자율차는 사전에 충분히 시험시설 등에서 사전시험 주행을 거치고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해킹 대비책을 세우고 시험운행 중에는 운전자를 포함, 최소 2명 이상 탑승해야 한다. 운전자 외 탑승자는 주변 교통상황 주시, 자율주행시스템 정상작동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자율주행 중 운전자가 수동으로 조작하면 자율주행 기능이 해제되고, 고장·경고·전방 충돌방지·속도제한·운행기록 장치 등을 달아 사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자율주행차라는 표지도 붙여야 한다. 자율주행 시험운행 신청이 접수되면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해당 차량이 허가 요건에 적합한지 20일 안에 확인해 허가증을 발부하고, 지자체는 번호판을 발급하게 된다. 국토부는 지난해 8월 입법예고했던 상황 중 차종을 승용차로 한정하고 사전에 5000㎞ 이상 주행한 차로 한정했던 규정이 자율적인 기술개발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 규정에서는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시험운행 신청은 ‘현대차 제네시스 00대’와 같이 차량 단위로 받고 국토부가 정한 시험운행 구간 중 원하는 구간, 해당 차량을 운전할 운전자 명단을 첨부해야 한다. 시험운행 구간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신갈분기점, 영동고속도로 신갈분기점∼호법분기점 등 41㎞와 일반국도 5개 구간(수원~평택, 수원~용인, 용인~안성, 고양~파주, 광주~성남) 320㎞로 지난해 10월 지정했다. 국토부는 시험운행에 차질이 없도록 시험운행 구간의 정밀 도로지도를 만들고 도로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첫 자율주행 시험운행에 제네시스 승용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이렇게 해서라도”…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들

    “이렇게 해서라도”…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들

    자동차 트렁크 아랫부분에 밧줄로 묶인 채 누워있는 남성, 자동차 내부 대시보드에서 끌려 나오는 남성. 사진만 보면 스토리를 전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밀입국자들의 기상천외한 밀입국 시도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스페인의 국경 경찰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밀입국자들의 위험천만한 모습을 공개했다. 밀입국자들이 유럽으로 들어오기 위해 ‘사용’하는 관문은 다름 아닌 모로코다.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모로코는 스페인과 지리적·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로코의 아프리카 난민은 대부분 스페인의 북아프리카 영토인 세우타 세관을 통해 유럽으로 불법입국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이런 밀입국자들이 자동차를 이용해 스페인령으로 들어오려다 적발된 사례들을 담고 있다. 가장 먼저 설명했던 자동차 뒷 범퍼에 들어간 남성은 기니 출신의 29살 청년으로 알려졌다. 이 청년은 모로코에 있는 스페인령의 항구도시 멜리야에서 붙잡혔는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 멜리야로 들어가는 자동차 뒷 범퍼에 몸을 묶고 그 위를 자동차 차체로 감싸고 들어오다 결국 꼬리를 붙잡혔다. 지난해 8월 말 경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남성의 사진도 다시 올라왔다. 이 남성은 세우타 세관을 통과하는 자동차의 엔진 옆에 간신히 몸을 넣고 다리를 구부린 채 숨어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또 다른 남성은 승용차 뒷좌석 등받이 뒤에 몸을 숨겼지만 경찰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이들 모두 발견 당시 산소부족 증상을 보여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코트디부아르의 8세 소년이 여행가방 안에 숨어 세우타를 통과하려다 엑스레이 판독기에 적발되기도 했다. 기상천외한 밀입국시도가 번번히 실패하는 것은 스페인 경찰의 소리 탐지기 때문이다. 현지 경찰은 심장박동소리 탐지기구를 이용해 밀입국자를 단속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내에서 운전자가 모두 내린 뒤에도 소리가 감지되면 자동차로 ‘변신’한 밀입국자가 있다고 판단, 현장에서 정밀 조사에 들어간다. 한편 AP통신은 지난해 보도에서 “더 남은 삶을 위해 스페인으로 밀입국 하려는 아프리카인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하며, 2014년에만 약 5000명이 밀입국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난폭운전도 처벌한다 오늘부터 최고 1년형

    난폭운전도 처벌한다 오늘부터 최고 1년형

    12일부터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동안은 ‘보복운전’이 아닌 단순 난폭운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청은 난폭운전 처벌 조항이 신설된 개정 도로교통법을 시행한다고 11일 밝혔다. 9개의 난폭운전 행위 중 2개 이상을 연달아 하거나 1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다른 운전자에게 위협을 가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9개 위반 행위는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횡단·유턴·후진 금지 위반 ▲진로 변경 방법 위반 ▲급제동 ▲앞지르기 방법 위반 ▲안전거리 미확보 ▲소음 발생 등이다. 난폭운전자는 형사처벌과 함께 벌점 40점을 받는다. 구속되면 면허가 취소되고 불구속 입건되면 40일 이상 면허가 정지된다. 특별 교통안전교육도 6시간을 받아야 한다. 견인차의 무법 운행을 막기 위해 ▲고속도로 ▲자동차 전용도로 ▲중앙분리대가 있는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고의로 역주행하는 운전자에 대해서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 처벌을 한다. 기존에는 7만원의 범칙금만 부과됐다.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자동차의 출동 때 양보, 일시 정지 등을 하지 않은 운전자의 범칙금(승용차 기준)은 4만원에서 6만원으로, 과태료는 5만원에서 7만원으로 올랐다. 경찰은 오는 15일부터 다음달까지 난폭·보복운전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한 명의 위대한 축구인이 세상을 떠났다. 故정병탁 감독이 지난 10일 향년 74세의 나이로 하늘로 간 것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수도 있지만 고인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던 故정병탁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고인이 걸어온 발자취가 곧 한국 축구의 발자취였다. ‘축구판 실미도 부대’ 양지에 간 정병탁정병탁은 1942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빠른 발을 앞세워 축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축구 명문인 배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1학년인 1964년부터는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이후 정병탁은 한국 축구의 역사와 같이 하기 시작했다. 군팀이 상한가를 쳤던 1960년대 해병대에 입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정병탁은 대표팀에서도 주축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을 비롯한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자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축구팀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축구판 실미도 부대’였다. 정권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나선 창단한 이 팀은 강제로 각 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이들을 뽑아 들였다. 국가대표팀도 아닌 곳에서 강제로 선수를 빼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중앙정보부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팀 이름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 슬로건에서 ‘양지’를 따 왔다. 물론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정병탁도 해병대에서 양지로 옮겨야 했다. 정병탁을 비롯해 김호, 김정남, 조정수, 서윤찬, 허윤정, 김삼락, 이회택, 임국찬, 이세연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렇게 양지라는 한 팀에 모였다. 쌀 한 가마니에 40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매달 2만 5000원이라는 엄청난 급여가 제공됐고 선수단 전원이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서울시 이문동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천연 잔디 구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양지축구단 활동을 군 복무로 인정, 병역 혜택까지 부여했다. 식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랐다. 심지어 서독과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을 도는 105일의 유럽 전지훈련도 떠났다. 물론 이 대단한 팀의 중심에는 정병탁이 있었다. 메르데카컵을 품은 청룡팀의 주장 정병탁은 소속팀 양지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1970년에 출범한 국가대표 1진 청룡의 주장까지도 맡고 있었다. 당시 대표팀은 1진 청룡과 2진 백호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는데 청룡에 직면한 과제는 바로 메르데카컵 우승이었다. 지금은 그 권위가 떨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최고의 대회였다. 1970년 당시 한국의 청룡을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등 만만치 않은 상대 12개 나라가 치르는 이 대회에는 전국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1차전 태국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한국은 두 번째 홍콩과의 경기에서도 비기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3차전 인도와의 경기 역시 흐름이 좋지 않았다. 먼저 두 골이나 내주며 끌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청룡의 주장인 정병탁이 나섰다. 한 골을 따라간 한국은 후반 25분 정병탁의 크로스를 박이천이 동점골로 기록했고 10분 뒤에 마침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정병탁이 왼쪽 구석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회택이 헤딩골로 연결, 극적인 3-2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정병탁은 이날만 두 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결승 상대는 버마였는데 버마는 예선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한 강호였다. 한국으로서는 메르데카컵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공동 우승을 한 적은 있어도 단독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은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3만 5000여 명이 들어찬 가운데 버마와의 결승전이 시작되자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0-0의 균형이 이어지던 전반 33분 마침내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이 정병탁의 발을 통해 시작됐다. 박이천에게서 패스를 이어받은 정병탁이 이 공을 완벽하게 이회택에게 넘겨줬고 이회택이 날린 슈팅이 버마 골문을 가른 것이었다. 후반 막판 정병탁은 중앙선을 돌파하면서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 슈팅으로 버마 골망을 한 번 더 출렁였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정병탁은 이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12번이나 메르데카컵에 나서고도 1960년 말레이시아와 공동 우승, 1965년 중국과 자유 중국과 공동 우승, 1968년 버마와 공동 우승을 차지한 게 전부였던 한국의 첫 단독 우승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대표팀 은퇴 발표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열리는 순간 ‘청룡’의 주장 정병탁이 말레이시아 라만 수상으로부터 메르데카컵을 건네받더니 번쩍 들어올렸다. 한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메르데카컵을 단독으로 품는 순간이었다. 귀국 길에도 수많은 환영 인파가 몰릴 만큼 국민들의 성원 또한 대단했다. 팀의 주장 정병탁은 모든 국민이 바랐던 메르데카컵을 들고 당당히 귀국했다. 지금이야 메르데카컵 우승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메르데카컵 우승은 아시아 정복을 뜻할 만큼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으니 국민들의 함성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세 개나 기록한 주장 정병탁의 인기 역시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소속팀이었던 양지는 김형욱이 1970년 실각하면서 입지가 줄어 들었고 결국 흐지부지 흩어졌다. 정병탁도 양지를 떠나 신탁은행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무려 8년 동안 대표팀 생활을 했고 메르데카컵에만 6번을 출전했던 이 대단한 선수의 미래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해외 원정 경기만 18번을 치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은 정병탁은 한국 축구를 계속 짊어지고 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이 한국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이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아무리 선수 생명이 짧았던 1970년대라고 하더라도 2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의 대표팀 은퇴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메르데카컵을 들고 금의환향하던 정병탁에게 대표팀 은퇴를 번복해달라고 매달렸다. 고별전 보기 위해 모여든 1만여 팬들그래도 정병탁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대표팀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병탁은 이렇게 답했다.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습니다. 또한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병탁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없었다. 김용식이 43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당시 청룡팀 트레이너를 맡은 우상권 또한 36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8세의 창창한 선수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대표팀을 떠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추측이었지만 정병탁이 한창의 나이에 대표팀을 박차고 나온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청룡팀이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도 해주지 않았던 데 따른 불만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병탁은 메르데카컵에서 단독 우승을 차지하고 1970년 8월 19일 귀국한 뒤 닷새만을 쉬고 또 다시 청룡팀 합숙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다 양지 시절 받던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표 선수 생활이 끝나면 미래에 대해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았고 가정 생활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상황상 애국심만을 강요하며 나머지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에 정병탁이 반기를 든 것이었다. 정병탁은 그렇게 28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고 주장 완장을 김정남에게 넘겼다. 그가 애국심이 없어 대표선수 자격을 일찌감치 반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병탁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양지에 묶여 있고 청룡에 묶인 채 모든 걸 포기해야 했었다. 그는 A매치 통산 39경기 출전에 11골의 기록을 남겼다. 1970년 9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간의 평가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비공식 경기에 모인 관중수만 해도 무려 1만여 명이 훌쩍 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청룡팀을 떠나는 정병탁이 마지막으로 청룡의 유니폼을 입고 고별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정병탁 보러 가자.” 사람들은 청룡팀의 최초 주장인 정병탁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비공식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운동장으로 몰렸다. 이 정도로 정병탁은 현역 생활 내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정병탁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 신탁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오랜 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이 이어지자 정병탁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어갔다. 지도자가 돼 돌아온 정병탁의 성공시대그런 정병탁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건 1984년이었다. 모교인 연세대 축구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냈다. 부임 후 5개월 만에 치른 제29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 상대인 중앙대의 수장이 바로 김기복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40대 초반인 정병탁 감독과 김기복 감독은 양지와 청룡에서 3년 가까이 활약했던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정병탁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는 중앙대를 가볍게 2-0으로 제압하고 무려 36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대학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정병탁 감독은 5개월 만에 지도자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잊혀졌던 정병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도 연세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김봉길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1984년 첫 우승을 경험한 정병탁 감독은 곧바로 고교 최대어인 부평고 김봉길 잡기에 나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던 김봉길은 사실 고려대행이 점쳐지고 있었다. 부평고 고명수 코치와 고려대 남대식 코치의 사이가 돈독해 김봉길은 당연히 고려대행이 점쳐졌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이 나섰다. 사실상 김봉길의 고려대행이 유력한 상황에서 정병탁 감독이 김봉길과 그의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김봉길과 그의 부모 역시 고려대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정병탁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해 김봉길은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연세대 훈련이 저녁 6시에 끝나면 저녁 8시쯤 감독님께서 꼭 저희 집 앞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무려 한 달 동안 정병탁 감독은 매일 저녁 김봉길의 집 앞으로 가 그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선수층이 두터운 고려대보다는 아들이 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연세대를 선택해 달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김봉길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결국 연세대를 선택했고 연세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병탁 감독은 아주대 행이 유력했던 거제고의 최청일 또한 이런 식으로 설득해 연세대로 데려올 수 있었다. 김봉길은 정병탁 감독을 이렇게 기억했다. “옷도 잘 입는 멋쟁이셨고 굉장히 화끈하면서 남자다우셨어요. 한 번은 우리가 우승을 한 뒤 뒷풀이를 한다고 선수단 전체를 나이트클럽을 데려가기도 하셨죠.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마음껏 놀아라’ 이 말에 다들 반했다니까요. 감독님 모시고 나이트클럽에 갔던 건 참 독특한 추억이죠.”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전남과의 만남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서 지도 능력을 인정받고 이듬해에는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까지도 겸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의 지도자 인생도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이때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개인적인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강릉을 떠나 서울로 오던 정병탁 감독의 승용차가 마주오던 고속버스와 정면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병탁 감독은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을 차린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 생활을 위해 이른 나이에 대표팀까지 포기해야 했던 정병탁 감독에게는 아내의 죽음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곧바로 일어섰다. 그를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고 일어난 정병탁 감독은 1989년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1학년생 김도훈과 강철 등을 앞세워 이뤄낸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나 서울 대신고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강철을 대학 진학 후 정병탁 감독이 수비수로 전환시킨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도 정병탁 감독이 없었더라면 강철이라는 훌륭한 수비수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철 스스로도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다. 결승에서는 프로선수 네 명이 포함된 포철 아마팀을 4-1로 꺾는 등 7경기에서 20득점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강으로 이끈 정병탁 감독은 1992년 연세대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숱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해냈다. 그가 다시 돌아온 건 1994년이었다. 당시 전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 제8구단 창단을 앞두고 초대 사령탑으로 정병탁 감독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팀 지휘봉을 잡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고내에는 차경복 전 경희대 감독과 정태훈 한양공고 감독, 남대식 고려대 감독, 서현옥 중앙대 감독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남 진도 출신 허정무 감독이 가장 강력한 경쟁 후보였고 연고는 없지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이회택 전 포철 감독 또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긴 토론이 이어진 후 최종 선택은 정병탁 감독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포철 감독으로 부임하고 있어 빼오는 게 무리가 있었고 나머지 후보군 중에는 정병탁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청룡의 초대 주장이던 그가 이번에는 전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길조를 상징하는 용을 의인화한 전남의 마스코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팀 이름은 전남드래곤즈로 명명됐다. 전남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병탁 감독은 박경훈 코치와 여범규 코치를 선임한 뒤 곧바로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래프트를 통해 대졸 신인 9명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훗날 전남의 상징이 된 김도근(한양대)도 포함돼 있었다. 이뿐 아니라 실업팀에서 뛰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전남의 전설적인 존재인 노상래와 김태영 등도 이때 정병탁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었고 기존 프로팀에서 활약하던 김봉길(유공)과 박창현(포철) 등도 데려왔다. 정병탁 감독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노상래와 김태영, 김도근 등 ‘전남맨’들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광양전용구장이 광양시민뿐 아니라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까지 몰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정병탁 감독 때문이었다.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에 내려와 프로팀 감독이 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남은 1995년 5월 7일 역사적인 K리그 데뷔전에서 전북을 상대로 김봉길의 두 골과 노상래의 한 골을 앞세워 3-1 승리를 따내는 등 신생팀답지 않은 선전을 이어나갔고 결국 8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엄청난 성과는 아니었지만 현재 전남의 토대를 만든 건 정병탁 감독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병탁 감독은 1996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며 이 자리를 허정무 감독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정병탁 감독은 이해 마라도나가 소속된 보카주니어스의 방한 경기 때 잠시나마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뒤 주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다. 이후 정병탁 감독은 과거 양지팀 시절 동료들과 서울시 실버축구단에 속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도 했고 경기도 고양시에 ‘정병탁 어린이축구교실’을 창단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축구계 주류 무대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저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정병탁 감독이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이자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정상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전남의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이 날 때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故정병탁 감독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고인이 한국 축구를 위해 보여줬던 헌신을 잊지 않겠다. 이제는 故정병탁 감독이 먼저 하늘로 보낸 사모님과 행복하셨으면 한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故정병탁 감독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왜 시댁 안 가” 연휴 다음날 아내 식당에 돌진한 남편

    “왜 시댁 안 가” 연휴 다음날 아내 식당에 돌진한 남편

    “왜 시댁 안 가” 연휴 다음날 아내 식당에 돌진한 남편 설에 부모를 찾아가지 않은 아내에게 화가 난 남편이 만취해 무면허 상태로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차를 몰고 돌진했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11일 무면허로 술에 취해 승용차로 자신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을 들이받은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A(50)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9시 15분쯤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차량을 돌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고로 식당 유리창 등 집기가 부서졌지만 음식점 내부에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084%였으며 운전면허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설에 시댁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전날 부인과 말다툼을 하다 출동한 경찰에 불려가 조사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부싸움을 하다 경찰 조사까지 받은 A씨가 홧김에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앞차 급제동에 모의 권총 등 들이댄 20대

    고속도로에서 앞서 달리던 차량이 급제동 하자 운전자에게 모의 총기를 겨눈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군산경찰서는 10일 나모(29)씨를 특수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모형 총기류를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지난 7일 오후 2시 30분쯤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전북 부안나들목 부근에서 앞서가던 이모(50)씨의 차량이 급제동하자 M16 모의 총기와 45구경 모의 권총으로 위협한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나씨는 차량 정체로 서행하는 것도 못마땅하던 찰나에 앞 차량이 급제동하자 화가 치밀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에 조수석에 뒀던 M16 모형 총기로 이씨를 겨누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후사경을 통해 이를 본 이씨가 잔뜩 겁을 먹고 서행을 하자 나씨는 이씨 차량의 오른편으로 차선을 변경해 45구경 모형 권총을 이씨에게 겨눴다. 이씨는 총구가 자신의 머리를 향하자 창문도 내리지 못한 채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서해안고속도로 순찰대는 부안나들목에서 25㎞가량 떨어진 동군산나들목 부근에서 나씨의 승용차를 순찰차로 에워 싸 검거했다. 나씨는 범행 8분여 만에 덜미를 잡혔다. 나씨는 “앞에 가던 차가 급제동해 화가 치밀어 평소 차 안에 뒀던 모의 총기로 운전자를 위협했다”고 진술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조은비 새누리 최연소 예비후보, 노동법 관련해 묻자…

    조은비 새누리 최연소 예비후보, 노동법 관련해 묻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노동법 관련 질문을 받고 당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와 인터뷰를 가진 일요서울의 정대웅 기자는 지난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새누리당 최연소 얼짱 예비후보 조은비’라는 제목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조 예비후보는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예비후보 등록을 결심한 계기, 가장 시급한 청년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질문 하나하나에 차분히 대답을 이어가던 조 예비후보는 “지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법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황하더니 카메라 밖 누군가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 입장은 유보하라”는 말을 들은 조 예비후보는 “그 입장은 아직 예비후보이기 때문에 (답하기 어렵다)”라고 대답했다. 한편 올해로 25살인 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동국대학교 관광레져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플로리스트(꽃 장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SNS에 “저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치를 알게 됐다. 유세지원팀 막내로서 전국 유세 현장에서 뛰며, 밑에서부터 보고 배웠다”면서 “말하는 정치가 아니라 듣는 정치를 먼저 배웠고, 머리로 하는 정치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정치를 배웠다”는 글을 올리며 경기도 화성을 선거구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사진·영상=정대웅/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민원실 쑥대밭’…부산동래구청 승용차 돌진 블랙박스 영상☞ 여친과 결별 뒤 홧김에 편의점 턴 30대 남성
  •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어떤가 보니?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어떤가 보니?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어떤가 보니? 부산 서울 6시간 9일 오전부터 설을 쇠고 돌아오는 귀경 행렬이 고속도로로 몰리면서 정체가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각 도시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돌아오는 귀경길 소요시간은 오전 11시 승용차 출발 기준으로 대전 2시간 30분, 대구 4시간 55분, 부산 6시간, 울산 7시간, 광주 5시간 50분, 목포 6시간 40분, 강릉 3시간 50분이다. 같은 시간 고속도로 총 정체구간은 104.3㎞다.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향 목포나들목→일로나들목, 서산나들목→행담도휴게소, 일직분기점→금천나들목 등 총 37.8㎞에서는 차량들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방향도 선산나들목→상주터널남단, 연풍나들목→연풍터널남단, 충주휴게소→충주분기점 등 총 18.3㎞ 구간에서 정체가 빚어졌다.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기흥동탄나들목→기흥나들목 0.6㎞ 구간에서도 차량들이 서행했다.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여주나들목→여주휴게소 9.6㎞, 중부고속도로 하남방향 오창휴게소→진천나들목 13.5㎞ 구간에서도 정체가 발생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한 차량은 13만대 정도다. 자정까지 37만대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는 7만대가 빠져나갔으며, 자정까지 23만대가 더 나갈 것으로 보인다.이날 하루 전국 고속도로의 총 교통량은 439만대로 전날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공사 관계자는 “오전 8∼9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귀경길 정체는 오후 4∼5시쯤 절정에 이르겠다”며 “내일 오전 2∼3시가 돼야 정체가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오후 4~5시쯤 절정”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오후 4~5시쯤 절정”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오후 4~5시쯤 절정” 부산 서울 6시간 9일 오전부터 설을 쇠고 돌아오는 귀경 행렬이 고속도로로 몰리면서 정체가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각 도시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돌아오는 귀경길 소요시간은 오전 11시 승용차 출발 기준으로 대전 2시간 30분, 대구 4시간 55분, 부산 6시간, 울산 7시간, 광주 5시간 50분, 목포 6시간 40분, 강릉 3시간 50분이다. 같은 시간 고속도로 총 정체구간은 104.3㎞다.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향 목포나들목→일로나들목, 서산나들목→행담도휴게소, 일직분기점→금천나들목 등 총 37.8㎞에서는 차량들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방향도 선산나들목→상주터널남단, 연풍나들목→연풍터널남단, 충주휴게소→충주분기점 등 총 18.3㎞ 구간에서 정체가 빚어졌다.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기흥동탄나들목→기흥나들목 0.6㎞ 구간에서도 차량들이 서행했다.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여주나들목→여주휴게소 9.6㎞, 중부고속도로 하남방향 오창휴게소→진천나들목 13.5㎞ 구간에서도 정체가 발생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한 차량은 13만대 정도다. 자정까지 37만대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는 7만대가 빠져나갔으며, 자정까지 23만대가 더 나갈 것으로 보인다.이날 하루 전국 고속도로의 총 교통량은 439만대로 전날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공사 관계자는 “오전 8∼9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귀경길 정체는 오후 4∼5시쯤 절정에 이르겠다”며 “내일 오전 2∼3시가 돼야 정체가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살펴 보니?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살펴 보니?

    “부산→서울 6시간” 귀경길 정체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살펴 보니?부산 서울 6시간 9일 오전부터 설을 쇠고 돌아오는 귀경 행렬이 고속도로로 몰리면서 정체가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각 도시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돌아오는 귀경길 소요시간은 오전 11시 승용차 출발 기준으로 대전 2시간 30분, 대구 4시간 55분, 부산 6시간, 울산 7시간, 광주 5시간 50분, 목포 6시간 40분, 강릉 3시간 50분이다. 같은 시간 고속도로 총 정체구간은 104.3㎞다.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향 목포나들목→일로나들목, 서산나들목→행담도휴게소, 일직분기점→금천나들목 등 총 37.8㎞에서는 차량들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방향도 선산나들목→상주터널남단, 연풍나들목→연풍터널남단, 충주휴게소→충주분기점 등 총 18.3㎞ 구간에서 정체가 빚어졌다.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기흥동탄나들목→기흥나들목 0.6㎞ 구간에서도 차량들이 서행했다.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여주나들목→여주휴게소 9.6㎞, 중부고속도로 하남방향 오창휴게소→진천나들목 13.5㎞ 구간에서도 정체가 발생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한 차량은 13만대 정도다. 자정까지 37만대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는 7만대가 빠져나갔으며, 자정까지 23만대가 더 나갈 것으로 보인다.이날 하루 전국 고속도로의 총 교통량은 439만대로 전날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공사 관계자는 “오전 8∼9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귀경길 정체는 오후 4∼5시쯤 절정에 이르겠다”며 “내일 오전 2∼3시가 돼야 정체가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귀성전쟁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서울~부산 5시간 20분” 정체구간은 어디?

    귀성전쟁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서울~부산 5시간 20분” 정체구간은 어디?

    귀성전쟁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서울~부산 5시간 20분” 정체구간은 어디? 귀성전쟁 시작, 고속도로 교통상황 설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7시가 넘어서면서 퇴근길 차량의 가세로 주요 고속도로 곳곳에서 차량이 정체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주요 도시까지 소요시간은 오후 8시 승용차 출발 기준으로 부산까지 5시간 20분, 대구 4시간 20분, 울산 5시간 19분, 광주 3시간 40분, 목포 4시간 20분, 대전 2시간, 강릉 2시간 30분 등이다.이날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경부선 부산 방향 경부선 입구→반포나들목, 북천안나들목→천안분기점 등 약 9.2㎞ 구간이 정체되는 것을 비롯해 총 54.5km 구간에서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방향도 해미나들목→홍성나들목, 대천나들목→춘장대나들목 총 32.3km 구간에서 차량이 30km 안팎의 속도를 보이며 답답한 흐름을 보였다.중부내륙고속도로 마산 방향은 낙동분기점→상주터널 북단 6.5km 등 총 24km 구간에서 차량이 20km 안팎의 속도를 내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은 퇴근 차량까지 몰려 동수원나들목→북수원나들목 6.5km, 북수원나들목→둔대분기점 8.8km 등 총 25.1km 구간 역시 차량이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도로공사는 오후 7시 30분까지 수도권을 빠져나간 차량을 33만대로 집계했다. 자정까지 42만대가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으로 진입한 차량은 32만대이며, 이날 중 모두 41만대가 들어올 것으로 도로공사는 전망했다.도로공사 관계자는 “오후에 출발하는 차량들이 많이 몰려 6∼7시 정체가 최대치였다가 풀리고 있다”면서 “자정 무렵부터 해소되겠다”고 말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경실 남편 법정구속, 택시 뒷자리로 갑자기 옮기더니 “호텔로 가달라” 헉

    이경실 남편 법정구속, 택시 뒷자리로 갑자기 옮기더니 “호텔로 가달라” 헉

    이경실 남편 법정구속, 택시 뒷자리로 갑자기 옮기더니 “호텔로 가달라” 헉이경실 남편 법정구속 지인의 부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개그우먼 이경실씨 남편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이광우 판사는 4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최모(58)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최씨는 판결 선고 직후 법정구속됐다. 그는 지난해 8월 지인과 그의 부인 A씨 등과 술을 마시고 A씨를 자신의 개인 운전사가 모는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는 도중 뒷좌석에 타고 있던 A씨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당시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최씨가 조수석에 탑승했다가 이후 A씨가 앉아 있던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점, 운전사에게 호텔로 목적지를 바꾸라고 지시한 점 등을 보면 판단력이 미약한 상태였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최씨는 사건이 불거지자 A씨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욕설하는가 하면 A씨 남편에게도 욕설과 함께 “자식을 생각하라”는 취지의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10여년간 알고 지낸 지인의 배우자를 심야에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추행해 죄질이 무거움에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귀성길 교통상황, 고속도로 가장 막히는 시간은 언젠가 보니? ‘주의 당부’

    귀성길 교통상황, 고속도로 가장 막히는 시간은 언젠가 보니? ‘주의 당부’

    귀성길 교통상황, 고속도로 가장 막히는 시간은 언젠가 보니? ‘주의 당부’ 귀성길 교통상황 설 연휴를 맞이하여 귀성길 교통상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일(금)부터 오는 10일(수)까지 엿새 동안 설 연휴 특별교통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정부합동 특별교통대책’을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국토부의 교통수요 조사 결과 엿새 동안 하루 평균 이동 인원은 608만명으로, 지난해 592만명보다 2.7% 증가하고 고속도로 교통량은 하루 평균 416만대로 10명당 8명꼴로 승용차를 이용할 것으로 조사됐다. 설 귀성길 교통상황이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7일 오전이다. 연휴 동안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은 운전자들의 졸음운전이 많은 밤 10시부터 오전 4시사이와 귀경길보다는 귀성길에 사고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연휴 교통사고는 차량 이동이 가장 많은 설 연휴 이틀 전이 12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는 평상시 교통사고 발생건수(111건)에 비해 16.2% 증가한 수치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속도로 교통상황, 평균 608만명 이동… “7일 오전 가장 혼잡” 왜?

    고속도로 교통상황, 평균 608만명 이동… “7일 오전 가장 혼잡” 왜?

    고속도로 교통상황, 평균 608만명 이동… “7일 오전 가장 혼잡” 왜? 고속도로 교통상황 설 연휴를 맞이하여 귀성길 교통상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일(금)부터 오는 10일(수)까지 엿새 동안 설 연휴 특별교통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정부합동 특별교통대책’을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국토부의 교통수요 조사 결과 엿새 동안 하루 평균 이동 인원은 608만명으로, 지난해 592만명보다 2.7% 증가하고 고속도로 교통량은 하루 평균 416만대로 10명당 8명꼴로 승용차를 이용할 것으로 조사됐다. 설 귀성길 교통상황이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7일 오전이다. 연휴 동안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은 운전자들의 졸음운전이 많은 밤 10시부터 오전 4시사이와 귀경길보다는 귀성길에 사고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연휴 교통사고는 차량 이동이 가장 많은 설 연휴 이틀 전이 12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는 평상시 교통사고 발생건수(111건)에 비해 16.2% 증가한 수치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귀성길 교통상황’ 하루 평균 608만명 이동… “언제 가장 막히나 보니?”

    ‘귀성길 교통상황’ 하루 평균 608만명 이동… “언제 가장 막히나 보니?”

    ‘귀성길 교통상황’ 하루 평균 608만명 이동… “언제 가장 막히나 보니?” 귀성길 교통상황 설 연휴를 맞이하여 귀성길 교통상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일(금)부터 오는 10일(수)까지 엿새 동안 설 연휴 특별교통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정부합동 특별교통대책’을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국토부의 교통수요 조사 결과 엿새 동안 하루 평균 이동 인원은 608만명으로, 지난해 592만명보다 2.7% 증가하고 고속도로 교통량은 하루 평균 416만대로 10명당 8명꼴로 승용차를 이용할 것으로 조사됐다. 설 귀성길 교통상황이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7일 오전이다. 연휴 동안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은 운전자들의 졸음운전이 많은 밤 10시부터 오전 4시사이와 귀경길보다는 귀성길에 사고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연휴 교통사고는 차량 이동이 가장 많은 설 연휴 이틀 전이 12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는 평상시 교통사고 발생건수(111건)에 비해 16.2% 증가한 수치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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