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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우주선 「엔데버」가 잡은 「신비」(시그마)

    ◎“지구촌 기상이변을 쫓는다” 올 여름 지구촌 곳곳을 급습한 무더위와 태풍,허리케인등은 유난히도 사납고 거칠었다.이같이 유난스런 기상이변을 두고 세기말 현상의 하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이같은 기상이변의 원인규명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9월 7일 20억달러짜리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우주에 띄웠다.엔데버호가 맡은 특명의 이름은 「STS­69」.지휘관 데이빗 워커,조종사 케네스 코크렐을 비롯해 제임스 보스,제임스 뉴먼,마이클 게른하르트 등 5명의 승무원을 태운 엔데버호는 11일간 지구궤도를 돌며 지구를 괴롭히는 태풍의 기류를 관찰했다.궤도진입 이틀만에 태양관련 정보를 수집하려던 1천2백70㎏의 스파르탄 위성이 고장을 일으켜 다른 방향으로 헤매는 일도 있었다.그러나 엔데버호의 로봇팔이 이를 끌어올려 엔데버호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18일 NASA기지로 귀환했다. 이들은 북동 카리브해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마릴린」,일본을 물바다로 만든 태풍 「루이스」를 관찰하며 일일이 사진으로 남겼다.우리에겐 공포감을 주는 태풍도 우주선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속에서는 마냥 신비롭게만 보인다.
  • 국내 항공사 서비스 세계 몇등일까/홍콩지 세계 54개사 비교

    ◎안전·쾌적도 「싱가포르」 1위/아시아나 16위·대한항공 30위 국내 항공사의 여객 수송 실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으나 서비스 수준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안전도 및 스케줄 변경 등에 대한 서비스 수준이 중하위권 이하로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돼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권위있는 여행잡지 「비즈니스 트래블러」지가 최근 세계 유수의 54개 항공사를 선정,이용객들을 상대로 「안전도」「쾌적함」「정시성」「기내 음식」「승무원 서비스」「공항 서비스」 등 14개 항목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아시아나 항공과 대한항공은 종합 평점에서 각각 16위와 30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싱가포르항공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이어 에미레이트,스위스,미국의 케세이 퍼시픽,호주의 퀀타스 등의 순이었다. 서비스 유형 별로는 「비행의 쾌적함」은 대만의 에바,에미레이트,싱가포르,스위스 등이 앞서고 「비행기의 정시출발」은 스위스,싱가포르,독일의 루프트한자,호주의 퀀타스,일본의 전일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는 10위권에 진입한 항목이 한곳도 없어 대조를 보였다.특히 「스케줄 변경 등에 대한 서비스」와 「안전도」 항목에서는 평균 20∼30위권에 머물렀다.
  • 극동의 관문 하바로프스크(시베리아 대탐방:39)

    ◎승무원들,중간역 「반짝 시장」서 돈벌이/차창밖엔 입영행렬… 징집제도 우리와 비슷/아루르주 경계 지나니 어느덧 극동지역에 밤 12시20분,치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를 탔다.노보시비르스크를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로시아호 8번」 특급열차였다.출발지만 다를 뿐 모스크바발 「로시아 2호」와 「로시아 8호」는 같은 특급열차로 하루씩 번갈아 동시베리아를 지나간다. 역에서는 군사도시답게 입영하는 젊은이 수십명이 열지어 기차에 오르고 있다.러시아는 우리같이 의무병제도다.현재 복무기간은 18개월인데 옐친정부는 이를 2년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입대연령은 만 18세.15세가 되면 주거지에 신고를 하고 17세때 1차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 직전 한번 더 신체검사를 받는다.징집면제제도도 있어 우리와 비슷한 면제대상기준이 마련돼 있다.부모 한쪽이 없거나 영세민,결혼해 자녀가 3명이상 혹은 어린 자녀가 있을 시,대학생 등은 입영이 면제된다. ○만 18세되면 군입대 간밤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이튿날아침 7시30분.체르니세프스키역에 도착했다.어느덧 평원이 사라지고 조그만 언덕·강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동시베리아·극동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인 「소프키」라고 부르는 낮은 산들이 나타나며 우리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실감시켜주고 있다.차창밖 산천이 우리나라와 흡사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기차는 북진을 계속,금광지대인 모고차를 지나 아무르주 경계를 향해 나간다.마침내 시베리아가 끝나고 극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도중 실카강변에 있는 스레친스크시는 19 15년 시베리아철도의 아무르선이 완공되기 전까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당시 모스크바에서 싣고 온 화물과 승객은 이곳에서 실카강의 증기선으로 갈아타고 아무르강을 따라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이후 아무르노선이 완공되며 중요성을 상실,지금은 인구 불과 1만명의 쇄락한 도시가 됐다.하지만 지금도 이 스레친스크에서 모고차까지의 치타 동북부지역일대는 유명한 금광지대이며 식품가공·가구 등 소규모 산업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모고차시는 아무르선 건설 때 만든 도시다.아무르철도는 이 부근에서 아무르강을 따라 거의 나란히 달려 하바로프스크까지 연결된다.한때 모고차시는 시베리아 「금광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금광이 많은 곳이다.모고차란 도시이름도 「황금의 바닥」이라는 뜻의 예벵키어다.하오6시20분 마침내 치타주의 마지막역인 말러 코발리역을 지났다.「작은 대장장이」란 뜻의 이름이다.이로써 시베리아와는 작별을 고했다. 북동진을 계속하던 열차는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에서 남쪽으로 급회전해 하바로프스크로 연결된다.특히 치타에서 모고차까지 구간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전철화된 곳이다.대시베리아철도중 하바로프스크에서 우수리스크까지는 유일하게 전철화가 안된 곳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우수리스크부터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최근 전철화가 끝났다.실개천·나무·작은 들판등 대자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식당음식 점점 비싸 식당칸의 음식값은 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비싸지더니 아무르주로 들어서며 똑같은 메뉴가 다시 10%이상비싸졌다.민망한 듯 식당칸 주인은 『중간도시에서 음식재료를 계속 사야 하는데 재료값이 동으로 갈수록 더 비싸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오지수당으로 임금이 높아지면서 물가도 따라 오른 것이다. 아무르주에 이르러 아무르강은 마침내 대하로 변하며 중·러국경을 이룬다.마찬가지로 하바로프스크부터 아래쪽 연해주 남쪽으로는 우수리강이 양국국경이다.아무르주의 첫번째 역은 예로페이 파블로비치.하바로프스크주를 정복해 건설한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스크장군의 이름을 딴 마을이다.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역은 북쪽 BAM철도의 수도로 불리는 튄다역으로 연결되는 교차역이다.그리고 튄다를 통해 야쿠츠공화국의 금광중심지인 알단지구로 연결된다.이 아무르∼야쿠츠철도는 1925∼37년에 건설됐다. 승객서비스에는 관심도 없던 우리 객실의 승무원 부부는 스코보로디노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본업」인 자기영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싣고온 콜라·맥주·치즈·버터 등 각종 물건 수십상자를 웃돈을받고 이곳 상인에게 넘기는 일이다.빈병도 모아 넘기는데 러시아인은 기차를 탔다 하면 내릴 때까지 보드카를 마셔대기 때문에 빈병수입 또한 만만치 않을 것같다. ○동해까지 2천8백㎞ 밤중에 지난 스바보드늬역은 1912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왕자의 이름을 딴 알렉세예프스크이던 것을 혁명 뒤 「자유」라는 뜻의 스바보드늬로 바꾼 곳.제야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블라고비센스크로 연결되며 한때 금광행정본부가 있던 곳이다.블라고비센스크는 아무르 제일의 도시로 중국과 국경인데다 항구도시란 이점으로 인해 활발한 국제무역도시가 됐다.겨울에 아무르강이 얼어붙으면 강을 걸어 양국 무역상이 오가는데 시베리아에서 제일 큰 중국시장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아무르강은 제야강과 합쳐진 지점에서 동해까지 거리가 2천8백24㎞,그 이전의 상류까지 합하면 4천4백㎞를 흐르는 장강이다. 국민학생 수십명이 식당칸으로 우르르 몰려간다.여름방학을 맞아 부리야트·치타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해안의 사나토리(휴양소)로 가는 학생들인데 각학교에서 우수학생을 선발해 1개월동안 휴양소로 보낸다고 한다.인솔교사는 1개월 경비가 1인당 1백만루블인데 특별히 주정부와 후원하는 보험회사에서 반반씩 부담한다고 설명한다.소련시절에는 청소년동맹이다 해서 방학이면 무조건 국가경비로 단체여행을 보냈는데 이제는 돈 있는 집 자녀가 아니면 이런 장기여행은 꿈꾸기 힘들다. 아무르주를 지나 하바로프스 크라이(대주)로 진입하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1시간이 더 추가돼 7시간으로 벌어진다.곧바로 「유태인이 살지 않는」 유태인자치주 예브레이로 들어섰다.이곳 역시 웃지 못할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 올 3백99명 방북/작년보다 7배 증가

    올들어 정부로부터 방북을 승인받아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통일원은 지난 15일까지 총 38건,4백9명의 방북을 승인해 이중 35건,3백99명이 성사됐다고 22일 밝혔다. 이같은 실적은 승인의 경우 지난해 전체실적인 7건,54명에 비해 인원수를 기준으로 7.5배가 증가한 것이며 성사된 것은 지난해 1건,12명에 비해 무려 33배가 늘어난 것이다. 방북자를 직업별로 보면 쌀수송선박 승무원이 3백14명으로 가장 많고 기업인 67명,기술자 13명,기타 5명 등이다. 북측의 남한 방문은 지난 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제3차 아시아 연대회의」와 관련해 1건이 승인됐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 이란 여객기 한때 피랍/남승무원이 범인… 투항뒤 망명 신청

    ◎탑승 1백70명 무사 【예루살렘 AFP AP 연합】 승객과 승무원 1백70여명을 태운 이란 국내선 여객기가 19일 수도 테헤란을 이륙해 걸프연안의 키시섬으로 향하던 도중 공중납치돼 이스라엘의 오브다공군기지에 착륙했으며 납치범인 이란국적의 여객기 남자승무원 1명이 투항했다고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가 19일 밝혔다. 이와 관련,이스라엘국영 라디오방송은 『납치범이 투항하기전 총탄 한발을 발사했지만 승객중에 부상자는 없으며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안전하게 대피시켰다』고 전했다. 한편 이스라엘국영 TV는 이 납치범이 이스라엘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전했으나 일각에서는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 세계 최대 담수호/바이칼호(시베리아 대탐방:35)

    ◎남북길이 6백36㎞… 3백여개강 유입/한때 얼어붙은 호수위에 임시철도 가설 운행/생태계연구 「바이칼호 연구소」는 세계적 평판 많은 사람이 이르쿠츠크를 찾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바로 바이칼호수를 보기 위해서다.이르쿠츠크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낮 12시에 택시를 대절해 곧장 바이칼호로 향했다.짙푸른 타이가숲을 뚫고 꾸불꾸불 난 포장도로를 1시간여 달리면 확트인 강하구 같은 곳이 나타나며 호수 초입의 마을 리스트비양카에 도착한다.이르쿠츠크에서부터 따라온 앙가라강이 호수와 연결되는 곳이다. ○앙가라강만 우회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에서 발원해 흘러나가는 유일한 장강이다.모두 3백여개의 크고 작은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데 유독 앙가라만이 바이칼호를 버리고 떠나간다.리스트비양카 선착장에서 취재진을 태우고 호수를 보여준 모터보트의 젊은 선장은 제일 먼저 높이 1m,폭 1.5m로 호수위에 솟은 작은 바윗돌에 일행을 데려다 주었다.앙가라는 얌전한 처녀였다.그러나 그가 사랑한 바이칼호는 난폭한 영웅이었다.앙가라는 바이칼호의 광포한 사랑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보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남성 예니세이를 찾아 먼길을 떠났다.떠나면서 앙가라는 정표로 이 바윗돌을 남겨두었다.보트의 젊은이가 가리키는 대로 실제로 물살은 이 바윗돌을 기점으로 앙가라로 흘러들고 있었다.이곳에서부터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것이다.앙가라는 북서쪽으로 먼길을 거쳐 크라스노야르스크주에서 새 연인 예니세이를 만난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깊이 1천6백20m,남북 길이 6백36㎞,동서 폭 45㎞.각 종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호텔로비에서 파는 팸플릿에 적힌 안내문이다.그러나 이런 수치만으로 바이칼호의 「위대함」을 묘사하기는 어림없다.호수면을 감싸던 물안개가 걷히자 반대편 부랴트공화국쪽의 눈덮인 산맥이 모습을 드러낸다.보트가 일으키는 물보라로 얼음같이 찬 물방울이 얼굴을 때린다.호수 밑 12m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는 여행안내서의 내용은 거짓이 아니었다.바이칼호는 1월초 얼음이 얼기 시작해 4월말까지 녹지 않는다.그리고 여름철에는 항상 짙은 물안개가 호수면을 뒤덮는다고 한다.호수 반대편 부랴트산맥을 본 것은 보통 운이 좋은 게 아닌 셈이다. 바이칼호 역시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역사에 한 획을 남긴 곳이다.1905년 리스트비양카에서 호수남단을 싸고 슬루지양카까지 연결되는 「크루가(순환) 바이칼」건설은 당시 최대의 난공사로 손꼽혔다.지진대로 엄청나게 단단한 바윗돌로 이루어진 산악지대였기 때문이다.모두 23개의 터널을 뚫고 산을 깎는 대역사가 벌어졌다.1899년부터 1905년 이 바이칼호 순환선이 놓이기까지 시베리아대륙을 달려온 열차가 호수앞에 와서 멈추면 승객들은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겨울이면 10m이상을 얼어붙은 호수위로 임시철로를 놓아 그 위로 기차가 달렸다. ○부근에 아이크별장 힘들게 건설된 바이칼호 순환선은 1949년 이르쿠츠크에서 슬루지양카를 잇는 현재의 단축노선이 완공되며 사용이 중단됐다.잠시 보트에서 내려 지금은 폐허가 된 바이칼호 순환철도의 녹슨 기찻길을 따라 걸어보았다.침목 하나하나에 빈틈없이 꽉 조여진 나사못들,천장에서 물한방울떨어지지 않도록 일목요연하게 화강암을 깎아 다진 터널 내부…당시 소비에트 노동자들의 꼼꼼한 일솜씨를 보며 잠시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바이칼호수와 함께 유명해진 2개의 기관이 있다.바로「호수연구소」와 이 연구소 뒷산에 위치한 사나토리움(휴양소).1927년 바이칼호수의 생태계를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된 호수연구소는 한때 쟁쟁한 학자 4백여명이 일하던 세계적 연구소였다.바이칼호에 대한 학문체계를 쌓은 업적으로 전세계 지리학자들 사이엔 대단한 평판을 누렸던 곳이다.최근에는 바이칼호 오염문제를 제기해 역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지금 이 연구소는 자금난으로 거의 폐쇄 일보 전에 와 있다.연구소는 과거 이 연구소 학자들의 학문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불과 20여명의 학자가 남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이르쿠츠크의 지리연구소로 자리를 옮겨갔다.이곳에 남은 학자들도 연구비 부족으로 거의 일손을 놓고 있었다. ○5시간 호수 감상 연구소 뒤편 산자락에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기막힌 경관을 자랑하는 휴양소는흐루시초프가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에게 선사한 별장건물로 유명한 곳이다.흐루시초프가 미국방문 때 아이젠하워로부터 받은 선물에 답례로 이 별장을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물론 아이젠하워는 이 별장에 한번도 묵은 적이 없지만 3개 동으로 이루어져 흐루시초프시대의 전형적인 별장양식을 갖춘 아담한 건물이다.3개동 모두 폐가로 변했으나 지금 수리가 한창이다.아이젠하워 별장 뒤편으로는 65년에 현대식 휴양소가 들어서 러시아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다.휴양소 마당에는 꼭 우리나라의 진달래꽃같은 「바굴리크」라는 연붉은색의 바이칼호 야생화가 만개해 있다. 이튿날 모스크바시간으로 상오 9시 이르쿠츠크역에서 울란우데행 열차를 탔다.울란우데까지는 8시간의 거리다.이른 기차를 탄 것은 도중에 바이칼호를 실컷 보기 위해서였다.기차가 호수 남단을 감싸고 도는 5시간여 동안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바이칼호의 갖가지 풍광들을 보는 것이 바이칼호 관광의 진수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역에는 다리에 짝 달라붙는 감색 유니폼 바지에,바지 양옆에 일자로 댄 노란색 스트라이프(줄),카키색 상의,넓은 가죽 허리띠,금색 견장,긴 가죽장화,단정하게 깎은 콧수염의 전형적인 코사크군인들이 역구내를 지키고 있다.풀어헤친 앞단추에다 불뚝 튀어나온 배,뒤통수까지 밀어 올린 모자 등 하나같이 「기합이 쑥 빠진」 모습의 러시아군인,경찰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쾌한 차림이 단번에 코사크군인들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부랴트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는 그곳 말로 「붉은 우다강」이란 뜻으로 셀렝가강과 우다강이 만나는 곳에 만들어진 도시다.셀렝가강은 몽골의 후수구호수에서 발원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장강이다.북경∼울란바토르∼모스크바를 잇는 기차가 반대편 선로에 정차해 있다.북경행 역시 평양행과 마찬가지로 군복을 입은 자체 승무원들이 객실을 관리하고 있다. 울란우데까지는 4인용 객실을 탔는데 옆에 꼭 우리나라 시골장에 다녀오는 듯한 차림의 부인 한명이 같이 탔다.내몽골에 산다는 것과 우리가 한국기자라는 사실로 수인사는 했으나 그 이상은 도저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서투른 필담을 몇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한자실력에 너무 차이가 져 그만두었다.
  • KAL기 또 아찔/탑승교량과 충돌/인명피해 없어

    【마닐라 AFP 연합】 대한항공(KAL)의 보잉 747 SP여객기가 1백5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채 3일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공항에서 공항시설물과 충돌,왼쪽 날개가 부서지는 사고를 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공항관계자들이 말했다. 앨런 바란다 공항운영실장은 이날 서울에서 도착한 KAL기가 공항착륙후 지상주행과정에서 정지선을 8m가량 벗어나 공항건물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탑승교량(에어로브리지)에 날개가 부딪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승객과 승무원의 인명피해는 없으나 사고기가 기체를 수리한 후에야 운항을 재개할 수 있다면서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공항관계자들은 대한항공측이 당초 이번에 사고를 낸 747 SP기보다 동체가 긴 보잉 747 정규기종이 착륙할 예정임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 불 여객기 공중납치/핵실험 계획에 항의

    ◎스페인인 체포… 탑승 2백89명 무사 【제네바·파리=박정현 특파원 외신 종합】 승객과 승무원등 2백89명을 태우고 스페인의 팔마 데 마요르카를 떠나 파리로 향하던 프랑스 에르 앵테르항공 소속 에어버스310 여객기가 3일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결정에 항의하는 한 스페인인에게 공중납치됐으나 납치범은 납치한시간만에 스위스경찰에 체포됐다고 제네바 공항당국자가 밝혔다. 프랑스 보르도지방 상공에서 납치된 여객기는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 강제착륙됐으나 착륙직후 승객들은 모두 석방돼 인명피해는 없었으며 경찰은 납치범인 30대의 스페인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조사중이다. 제네바공항의 필립 로이 홍보부장은 『범인은 프랑스의 핵실험 결정에 항의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요구사항은 명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무기는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공항당국의 다른 대변인은 『이번 여객기의 납치가 프랑스가 최근 재개하기로 한 핵실험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마드리드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공중납치극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프랑스의 언론들은 이번 자국 여객기의 납치극에 대해 납치사실만 간략하게 보도했으나 프랑스의 핵실험에 반대하는 납치자의 신분,요구사항등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 불,그린피스 선박 2척 나포/핵기지 접근 보트 9척도

    ◎플랫폼 잠입한 다이버 2명 체포 【파페에테 AP 로이터 연합】 프랑스는 1일(한국시간 2일)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무루로아 환초 부근에 접근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보유 선박 2척을 나포,역외로 강제 예인함으로써 핵실험 반대에 대한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실험을 강행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날 해군소속의 특공대들을 무루로아 주변 제한수역을 침범한 그린피스 소속 「레인보우 워리어 Ⅱ」호에 투입한데 이어 그린피스 소속 두번째 선박인 「MV 그린피스」호도 나포했다. 특공대는 또 예정된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의 핵실험 기지로 잠입한 고무보트 9척 전부를 붙잡았다. 샤를르 미용 프랑스국방장관은 TV를 통해 그린피스 선박 2척이 전관수역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다고 발표했다.프랑스는 6백㎞ 떨어진 하오 환초까지 이들 선박을 예인한 뒤 승무원들을 타이티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한편 타히티 주둔 한 프랑스 장교는 핵실험 플랫폼 아래로 잠입한 그린피스 소속 다이버 2명이 체포됐으며 무루로아 환초를향해 가던 고무보트 9척도 붙들렸다고 밝혔다. 이 장교는 「MV그린피스」호가 특공대들이 나포할 당시 제한수역 밖에 위치해 있었으나 이 선박에 소속된 헬리콥터가 핵실험 장소 근처 제한수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이 배를 나포한다고 말했다.
  • 타밀 반군/스리랑카 여객선 납치/1백36명 탑승

    ◎해군 함정도 격침… 21명 사망 【콜롬보 AFP 연합】 승객과 승무원 1백36명을 태우고 스리랑카 동부 해안을 항해중이던 여객선이 타밀 반군에 의해 납치됐으며 이를 저지하려던 두척의 해군 포함도 격침돼 해군 병사 21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군사 소식통이 30일 밝혔다. 스리랑카군의 한 대변인은 최근 정부군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있는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전날 해군 함정을 공격해 격침시키고 승객 1백28명과 승무원 8명을 태우고 스리랑카 동부의 트린코말레항을 출발해 북서부의 카라이티부섬으로 향하던 이리스 모나호를 납치했다고 전했다. 사라스 무나싱 대변인은 이날 현재 이들 1백36명의 신병에 무슨일이 발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BAM 철도(시베리아 대탐방:33)

    ◎지도에 없던 「극비 철도」… 스탈린이 계획/타이셰트∼콤소몰스크나아무르 총 3,200㎞/일제위협 대비 41년 착공… 84년 전구간 개통 이르쿠츠크에서 북으로 우스치림스크댐까지 거대한 인공호수가 돼있다가 이후부터 실제로 강의 모습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앙가라는 북으로 주경계를 넘어 크라스노야르스크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서 에니에시강과 합쳐진 다음 북극해로 들어간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보쿠차느이시가 있는 지점의 앙가라강에는 지금 제4의 댐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시베리아여행중 제일 친절한 승무원을 만나서 비교적 유쾌한 여행을 즐겼다.모스크바교외에 산다는 이 젊은 여승무원은 한번 기차를 타면 2명이 1조가 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왕복 15일 밤낮을 쉬지 않고 교대로 일한다고 했다.그 다음 2주일을 쉬고 다시 2주일 동안 기차를 타는 것이다.보통 체력과 인내심이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왜 많은 승무원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했다. ○바이칼호 북단을 지나 이르쿠츠크주 초입에 있는 타이쉐트는 20세기 최대의 대공사로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BAM(바이칼∼아무르철도)철도의 시발점이다.이곳에서 시작된 BAM철도는 동쪽으로 거의 직선거리로 진행해서 바이칼호수 북단 위쪽을 지나 종착역인 하바로프스크주의 콤소몰스크나아무르시까지 이어진다.총길이 3천2백㎞에 달하는 구간이다.이곳에서 지선으로 남쪽의 하바로프스크를 통해 다시 대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 철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건설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30년대 중반 스탈린이었다.가장 큰 이유는 바이칼호수 남단을 우회하는 대시베리아철도가 당시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만주국경과 너무 가까워 안보면에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이후 계획을 완성해 착공한 것은 41년이었다.바이칼호 북쪽은 바위·험로가 첩첩한 난공사구간이다.당초 대시베리아철도가 호수남단을 우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번째 구간으로 아무르주의 스코보르디노∼튄다 사이의 공사가 시작됐다.일차적인 목적은 남쪽의 기존 시베리아횡단철도역인 스코보로딘을 통해 치타주로부터 공사장비·인력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 이 구간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인 41년 완성됐으나 이후 전쟁으로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모든 물자·인원을 모두 서쪽 전선으로 보냈기 때문이다.종전 직전인 45년 공사가 재개돼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태평양연안의 군항인 소베츠카야 가반항까지 구간이 착공됐다.블라디보스토크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될 경우에 대비해 태평양함대를 이곳으로 옮길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태평양함대 이동 목적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구간공사가 시작됐다.46년이전에 타이쉐트∼브라츠크구간은 완공돼있었다.브라츠크의 목재·메탈·철 등을 서쪽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따라서 BAM공사의 실제 시발점은 브라츠크인 셈이다.46년부터 이후 51년까지 브라츠크에서 동쪽으로 계속 공사가 진행됐다.브라츠크에서 강항인 우스트구트까지 구간이 완공됨으로써 BAM철도는 레나강과 연결되게 됐다.레나강을 통해 실어온 주변의 목재들은 우스트구트에서 철도로 실어 러시아 각지로 운반해 나갔다. 이후 브레즈네프시절인 77년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튄다까지 구간이 완공돼 BAM의 동쪽구간이 완성됐다.당시 중소관계가 악화돼자 중국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공사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BAM은 일명 「젊은 영웅들의 철도」라고 불린다.기차에서 만난 튜멘주의 건설노동자같이 젊은 콤소몰 청년들이 대거 건설현장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처음으로 동서 전구간이 연결돼 기차가 운행했다.그러나 토넬느이에 있는 터널 1곳은 아직 미완성인 채 우회로를 통해 기차가 다니고 있다.현재 미완성 구간은 토넬느이∼탁시모간 15㎞이다. 스탈린시절 BAM철도 건설은 1급비밀로 속해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물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수용소 죄수들이 동원됐다.이 철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55년이었다고 한다.브라츠크발전소 건설을 발표하면서 이곳에 철로가 있으며 이 철로를 이용해 발전소를 건설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복선·전철화작업 진행 현재 BAM은 전구간 복선·전철화 작업이 진행중이다.그러나 아직은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철도란 건설 뒤 10∼15년 지난 뒤부터 철도주변에 개발효과가 가시화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 지역에도 경제개발붐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덕분에 일찍이 외국인에 개방된 곳이다.바이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따라서 우리가 묵은 인투리스트호텔은 입구에서부터 서구화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새벽에 체크인하는데도 교대근무자들이 친절히 맞아주었고 엘리베이터는 금성사제품,객실 세면대에는 한국산 비누·치약·샴푸 등이 깨끗이 준비돼 있는 등 여행중 최고로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객실의 냉장고도 다른 지방의 호텔에서 같이 「탱크 굴러가는 듯한」요란한 소음을 내는 러시아제 대신 말끔한 한국산 냉장고가 갖추어져 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듯 한식당·일식당도 있고 호텔 로비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나붙어 있다. 현재 인구 60만명의 이르쿠츠크시는 1661년남쪽의 몽골·중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출발했다. 이후 1686년 군사요새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마감하고 정식도시로 재출발했으며 1698년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이르쿠츠크는 매우 중요한 교역중심지로 부상했다.도시가 커지면서 17 64년에는 당시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고 총독의 집무처가 들어섰다.그래서 이곳에는 「벨르이 돔(백악관)」으로 불리는 순백의 당시 아름다운 총독관저가 지어져 지금 빼놓을 수없는 관광명소가 돼있다.가가린프로스펙트에 있는 이 건물은 현재 이르쿠츠크 시립도서관이 입주해 있는데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크바렝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 평양행 열차(시베리아 대탐방:32)

    ◎매주 한차례… 객차 1∼2량 연결/블라디보스토크 가기전 우수리스크서 분리/승무원은 북한 보안요원… 철저한 감시속 운행 평양행 열차 시베리아에는 스탈린시절 도처에 강제수용소가 산재해 있었다.그리고 강제수용소 죄수들이 노동자 대신 극지에서 위험한 건설작업을 했다.「굴락」이라고 부르는 이 강제수용소는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뒤 56년 이를 폐지키로 함으로써 90%이상이 문을 닫았다.지금 수용소자리는 늪지로 변해 자취를 감춘 곳이 태반이다.하지만 야말반도·튜멘북부 등지에 있는 옛 수용소자리에서는 지금도 간간이 사람의 유골들이 발견된다고 했다. 튜멘북부에서 온 이 노동자는 자기 일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낚시·사냥을 즐길 수 있고 아직도 「춤」이라고 부르는 이동천막에서 사는 야말 넨츠족·한티 민시족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꼭 한번 자기집에 오라고 청했다.여름에는 모기가 너무 많고 10월이면 추워지니 9월이 제일 좋다고 꼭 한번 오라는 것이었다. ○북극행 철길 다시 건설 이 건설노동자는 요즈음 노브이 우렌고이에서 끝난 철길을 북극 가까이에 위치한 노릴스크시까지 연장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철길 바디는 스탈린시절 수용소 죄수를 동원해 이미 만들었고 이후 스탈린 사후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공사가 재개됐다고 한다.그러면서 그는 우스갯소리로 그곳에서는 지금은 낮에만 일하고 겨울에는 밤에만 일한다고 말했다.북극 가까운 곳이라 여름철에는 심한 백야현상으로 밤이 거의 없고 겨울철에는 반대로 낮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8살난 자기 딸은 집을 떠난 뒤 줄곧 『밤에 어두워 잠을 못자겠다』고 불평한다고 했다. 이르쿠츠크주로 들어서면서부터 스탈린시대 수용소자리가 많이 나타난다.물론 가장 악명높은 강제수용소는 동북쪽의 야쿠츠·마가단 등지에 있지만 이르쿠츠크부터 수용소가 도처에 건설됐다.이르쿠츠크시 진입직전에 만나는 앙가르스크시도 스탈린시절 수용소 죄수가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중 하나다.인구 27만명에 이르는 비교적 큰 도시로 51년 대규모의 유화 콤비나트가 세워졌다.앙가르스크 직전 역은 우솔리예 시비르스코예(소금저장소)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한때 아시아 각지로 소금을 수출하던 러시아 최대 소금산지던 곳이다.아울러 러시아전역에 공급되는 「바이칼」이란 이름의 성냥 생산지로 유명하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특급 「러시아2호」열차는 격일로 매 홀수날 출발한다.그런데 부정기적이지만 1주일에 한번씩은 이 열차에 평양행 객차가 1∼2량씩 붙는다.취재팀은 중간도시에 계속 내렸다 다시 타는 일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언제가 한번은 이 평양행 「쿠페」를 만나게 돼 있었다.평양행은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중간의 교차역인 우수리스크에서 곧바로 남으로 빠져 하산을 거쳐 두만강철교를 넘는 것이다. ○하산거쳐 두만강 넘어 모스크바를 출발한 지 꼭 10일째 되는 날 상오10시45분 기차가 이르쿠츠크주의 일란스카야역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북한승객을 만났다.20분을 정차하기 때문에 플랫폼에 내려가 바람을 쐬다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는 동포를 만난 것이다.기차 제일 뒤쪽에 붙은 객차였는데 「모스크바∼평양행」이라고 행선지표지가 붙어 있었다.몇 사람과 수인사를 한 뒤 기차가 출발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이 탄 객실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양으로 가는 객실은 우선 러시아승무원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북한승무원이 배치돼 있는 게 특이하다.1주일이상을 여행하기 때문에 승무원 6명이 2인1조로 교대근무한다고 한다.승객수는 정원 80명인 객실이 꽉 들어찬 것 같았다.모두 4인1실로 된 방이었다. 책임승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영철이라는 사람은 보안요원인 듯 유난히 「꽉 막힌」사람이었다.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날의 대화내용중 그가 한 말을 몇 대목만 소개한다.그는 대뜸 김일성 사후 조문건과 평양축전을 가지고 남한정부 욕을 잔뜩 늘어놓았다. 『김영삼 그 사람,정말 그럴 수가 있어.세계지도자가 모두 다 애도를 표하는데 같은 동포끼리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기자선생.평양축전에는 안오면서 와 쓸데없이 이런데 돌아다니고 있어.평양축전때 말이야 남조선기자는 한명도 안왔더만.그런데 좀 와서 취재보도하면 얼마나 좋아.다 왔는데남조선기자만 안왔어』 가만 놔두면 이런 식으로 끝이 없을 것같아 『그런 말 하기 시작하면 피차 피곤하니 평양동포 사는 이야기나 들려달라』며 말을 막았다. ○북요원,승객면담 차단 그랬더니 더 가관이다.『그말 잘했어.당신 의식주란 말 알디.우리 그거 걱정 안하고 살아.그러면 되는 거 아냐.남조선은 언제 그럴 수 있갔어』 한번더 말을 바꾸어보려고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50살이라고 했다.그래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해주었더니 반응이 걸작이다.『당연하디.김정일장군 영도하에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잘사니 젊을 수밖에』… 내내 이런 식이었다.『통일이 멀지 않았으니 기자 똑바로 하라』는 등 「훈계」도 잔뜩 늘어놓았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온 뒤 한동안 우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다음 정차역부터 평양행 승객은 휴식시간에 한명도 객차에서 내리지를 않았다. 현지시간 하오9시경 모스크바로부터 4천6백77㎞라는 푯말이 붙은 지점에 니즈니우딘스크역이 지나갔다.「우다강 하류」라는 뜻의 마을이다.플랫폼의 키오스크에는 한국산 과자류,중국산 장난감·일용품이 잔뜩 진열돼 있다.현지시간 상오5시37분 마침내 이르쿠츠크역에 도착했다.도착직전 앙가라강 철교를 지났고 역에 내리면 바로 맞은편에 앙가라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히 펼쳐져 있다. 수백개의 강이 바이칼로 흘러드는데 오직 이 앙가라강만이 바이칼에서 흘러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앙가라는 총길이 1천7백79㎞로 바이칼에서 발원해 북으로 예니세이강으로 연결되며 이 지역의 산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이다.3개의 큰 댐이 건설돼 있기 때문이다. 이중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은 61년 건설된 브라츠크댐이고 그 다음 규모는 이르쿠츠크시내에 있다.그리고 세번째가 주북단의 우스치림스크댐.그래서 주북단의 우스치림스크에서 주하단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시내까지 앙가라강은 사실상 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댐이다.
  • KAL기 활주로 이탈/김포 착륙중/빗길 미끄러져… 인명피해 없어

    23일 하오 3시50분쯤 폭우속에 김포공항에 착륙하던 포항발 대한항공 548편 MD­82 여객기가 활주로를 15m가량 이탈,잔디밭에 멈춰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비행기에는 승무원 5명과 승객 1백68명이 타고 있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날 사고는 비행기가 김포공항 신활주로 끝부분에서 멈춰서지 못한채 방향을 틀다 빗물이 고여있던 활주로에서 30m가량 미끄러지면서 일어 났다. 이날 사고로 활주로 이용이 하오 늦게까지 통제돼 항공기 이착륙이 지연됐다.
  • 과테말라 여객기 추락/탑승자 70명 전원 사망

    【산 살바도르 AFP 연합】 과테말라 여객기가 9일 운항도중 엘살바도르 산 비센테화산 기슭에 추락해 승객 64명과 승무원 6명 등 탑승자 70명 모두가 숨졌다고 경찰이 밝혔다. 이날 사고는 과테말라 아비아테카 항공 소속 보잉 737 제트 여객기가 엘살바도르 수도 산 살바도르에서 동쪽으로 6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 비센테 화산 기슭에 부딪치면서 발생했다.
  • KAL기 기체이상/착륙지연·회항사태/제주·김해공항서

    【제주·부산=김영주·이기철 기자】 대한항공 여객기가 부산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에서 기체 이상으로 회항하거나 착륙이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2일 하오 5시쯤 승객과 승무원 등 2백67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이륙,1시간만인 하오 6시쯤 제주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237편 DC­10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 직전,계기판에 기체 이상 징후가 나타나 제주상공을 선회했다. 이 항공기는 제주상공에서 1시간 40분동안 연료를 소모하며 하오 7시45분쯤 2차 착륙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이륙 3시간만인 하오 8시2분쯤 활주로에 내렸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 승객 2백32명을 태우고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일본 후쿠오카로 향하던 대한항공 KE732편 DC­10기가 엔진결함으로 이륙 30분 뒤인 하오 1시3분쯤 김해공항으로 되돌아왔다.
  • 「푸에블로호」 대북 직거래 항의에 미,한국에 1억달러 군사원조

    ◎일지,미 문서 분석 내막 보도/지휘체계 복잡… 초기대응 실패 【도쿄 연합】 지난 68년 동해상에서 발생한 미해군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은 당시 미군지휘체계의 복잡성 등으로 초기대응에 실패했으며 미정부는 결국 북한이 요구한대로 영해침범에 사죄하는 굴욕적인 문서에 서명했었다고 일언론이 2일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이 미국무성·국립문서보관소 등의 해금문서를 분석,재조명한 푸에블로호사건의 내막에 따르면 당시 미정부는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동기로 한반도에 제2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과 직접교섭을하는 과정에서 당시 베트남전에 병력을 파견한 한국정부가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데 강력히 항의하자 특사 3명을 한국에 파견,1억달러의 군사원조를 추가로 제공했다. 다음은 이 신문이 해금문서를 토대로 보도한 내용. 『68년1월23일 나포사건 당일 러스크 미국무장관은 주소련 미대사에 훈령을 보내 「그로미코소련외무장관에게 사건의 사실관계를 전하고,북한에 푸에블로호와 승무원 송환,부상자 치료 등을 요청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그러나 그로미코 소련외무장관은 중재를 거부했다. 미정부는 당시 북한에 대한 보복공격 등 20개도 넘는 대응책을 검토했으며 리버스 하원 군사위원장은 「북한이 석방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항모 엔터프라이스 등을 동해에 배치하기도 했으나 「승무원 송환을 위해서는 외교적 해결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2월1일 판문점의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직접교섭을 갖자는 북한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북한은 직접교섭에서 스파이활동중의 영해침범을 인정할 것,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것 등을 명시한 문서를 미측에 전달했다.미정부는 그해 12월23일 북한이 준비한 굴욕적인 문서에 서명했다』
  • 미 추락 전투기 승무원/일본서 53명 모두 살해/2차대전 당시

    【도쿄=강석진 특파원】 제2차대전 당시 일본에 추락한 미국 전폭기 B29기의 승무원 53명이 일본 헌병대에 의해 맞아 죽거나 독살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의 도쿄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전쟁유적에서 평화를 배우는 교토의 모임」이라는 교토의 한 시민단체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보관된 점령군사령부(GHQ)의 영어문서를 조사한 결과 확인된 것이다.
  • KAL기 “위기일발”/김포공항/이륙직전 엔진고장… 아찔한회항

    【부산=이기철 기자】 승객과 승무원 등 2백39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전 엔진고장을 일으켜 운항을 중단,회항했다. 9일 하오 6시 15분쯤 서울로 가기 위해 부산 김해공항 활주로를 이륙하던 대한항공 144편(기장 김병근·A300기)이 이륙 직전 왼쪽 엔진에 고장을 일으켜 이륙을 중단하고 계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사고로 승객들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엔진폭발음에 놀란 승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등 소동을 빚었다. 승객들에 따르면 여객기가 주활주로에 진입,속력을 내 달리던 중 갑자기 좌측엔진쪽에서 「쾅」하는 폭발음이 들린 뒤 연기가 치솟으며 이륙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 미 차사고 사망 하루 110명

    ◎교통사고사의 90%… 2위 기차,3위 비행기 자동차 천국인 미국의 하이웨이가 매일 1백명 이상을 죽게 하는 최대의 살인마로 등장하고 있어 운전자들의 더욱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지난해 미국내 도로에서 자동차사고로 사망한 미국인은 모두 4만4백명으로 하루평균 1백10명꼴로 나타났다. 미국교통안전국(NTSB)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이같은 도로에서의 사망자에 이어 두번째는 철로에서 1천2백99명,세번째는 공로에서 1천71명,마지막으로는 해로에서 8백64명으로 집계돼 도로에서의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 사망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차종은 승용차로 54%인 2만1천9백40명이 죽었고 그 다음은 밴 8천6백40명,오토바이 2천2백50명,자전거 8백30명,트럭 6백30명 순으로 나타났다.한편 보행자 사망자도 5천5백70명으로 집계됐다. 철로의 경우는 열차사고로 인해 죽은 승객수는 5명에 불과,높은 안전도를 보였다.사망한 승무원수는 34명이며 철로 무단횡단으로 죽은 사람은 6백45명,교차로에서 기차와 차량의 충돌로 죽은 사람이 6백15명으로 나타났다. 한편 공로의 경우는 지난해 일반여객기의 사고로 죽은 사람은 3백25명으로 항공여행이 도로여행보다 월등히 안전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자가용비행기 사고로 죽은 사람은 7백25명으로 일반여객기의 배를 넘고 있다.해로에서의 사고 역시 여객선의 사고로 죽은 사람은 74명인데 비해 90%가 넘는 나머지 7백90명은 요팅·수상스키등 주로 수상스포츠중 죽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수치들은 93년에 비해서 모두 1∼5%가 증가한 수치로 NTSB당국은 비교적 안전도가 높은 대중교통수단을 권장하며 반면에 위험도가 높은 개인교통수단의 이용에 있어서는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 영 핵잠함 내일 한국방문

    영국 핵잠수함 트랜천트호가 6일 친선도모를 위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다. 1만7백t급 보조함 딜리전스호와 함께 방한,오는 11일까지 머무르는 이 핵잠함은 5천4백t급으로 길이 85m,폭 9.8m,높이 9.5m다. 86년 진수된 이 잠수함은 가압경수로(PWR)형 원자로 3기에서 공급되는 1만5천마력의 추진력으로 물속에서 시속 32노트로 운항하며 3백m이상 깊은 수심까지 잠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97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이 잠수함은 사거리 1백30㎞짜리 공격용 하푼미사일과 어뢰 및 기뢰를 장착하고 있다.영국은 트랜천트와 같은 트라팔가급 핵잠수함 7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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