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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수교회 예배 150여명 참석

    ◎지난달 방북 KNCC 김동완 총무 간담/천주교인 3천명·승려 30명 신앙생활 지난달 23일부터 1주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동완총무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종교계 근황을 소개했다. 방북기간동안 북한종교인과 함께 일정을 보내고 묘향산 보현사와 평양 장충성당 등 타 종교시설도 둘러본 김총무는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은 전국에 10개의 도지부와 50개의 군지부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정예배소를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평양 순안에 있는 남산가정예배소를 찾아 12명의 신도와 함께 예배를 본 김총무는 “북한교인들의 신앙심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어 1917년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기독교부흥운동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총무는 또 북한의 대표적 교회인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방문,예배를 보고 설교를 했다.칠골교회에는 80여명의 신자들이,봉수교회에는 150여명의 신자가 매주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봉수교회에는 여성장로가 한명 있다. 한편 천주교인은 3천여명이 있고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의 경우,매주 300명 가량의 신자가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장충성당에는 신부는 없고 신도회장이 종교행사를 인도하고 있으며 신부 희망자가 3∼4명 있다고 한다.그러나 성당 신축공사로 빚을지는 바람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남한천주교회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천주교 역시 각 지역에 조선천주교인협회 지부를 두고 있으며 남포와 원산에는 공소(공소·성당보다 작은교회)가 있다.또 가정예배소도 개신교와 비슷한 숫자인 5백여개소에 달한다. 김총무는 북한의 대표적 사찰인 묘향산 보현사에는 30명 가량의 승려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대처승으로 승복이 남한과는 아주 달랐다고 말했다.
  • 성·사랑에 관한 민담과 설화/프랑스작가 앙리 구고의‘사랑의 책’

    성과 사랑에 관한 세계의 민담과 설화를 한데 모은 프랑스 작가 앙리 구고의 ‘사랑의 책’(유근영 옮김,문학세계사)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설화는 구비문학의 한 갈래인 산문 서사양식으로,글로 씌여진 소설이나 역사와는 달리 말로 구연되는 점이 특징.60년대 샹송 작사가로도 명성을 날린 구고는 세계 각 지역에서 구전되어오는 민담과 설화를 직접 채록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로마시대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사랑에 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 사랑은 그 자체가 곧 법이다”라고 말했다.이 책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로서의 성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동경을 보여주는 57편의 이야기가 담겼다.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대 그리스의 ‘에우로파’설화 한토막.〈왕의 딸인 에우로파가 바닷가 구릉에서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제우스는 태양의 눈을 통해 그녀를 보았다.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강렬한 욕망이 불끈 솟아 올랐지만 그는 신이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제우스는 하늘로부터 바닷가로 내려와 하얀 황소로 둔갑했다.그가 에우로파의 연약한 손 안으로 목을 길게 늘이자 그녀는 그만 질겁을 했다〉설화속의 사랑은 이처럼 신비하게,절대적으로,광폭하게,때론 아주 단순하게 이루어진다.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에우로파는 마침내 제우스의 세 아들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민담도 2편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아름다운 여인으로 화한 석가여래의 도움으로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우치는 승려 이야기인 ‘원효’와 죽은 아내와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 ‘송씨의 이상한 밤’이 그것이다.
  • “고어 만난뒤 대선자금 모금”/상원청문회

    ◎LA 승려 “언론보도후 헌금명단 파기”/CNN “레이건도 집권때 불법모금” 폭로 미 법무부가 민주당 출신 앨 고어 부통령의 선거자금법 위반혐의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4일 CNN은 과거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 역시 업무용 전화를 이용해 광범위하게 선거자금 모금활동에 개입했음을 폭로,관심을 모으고 있다. CNN은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 8년동안 백악관과 주말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선거자금 모금과 관련된 통화를 수시로 했었다고 밝혀,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전혀 정부재산을 이용한 선거자금 모금을 한바 없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공세에 일격을 가했다. 한편 이날 LA 시 라이 불교사원 승려 세사람은 상원 청문회에서 지난해 4월29일 불교사원의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오찬행사는 3월 백악관에서 고어 부통령,민주당 모금책인 존 황,마리아 샤등과 만난뒤 이뤄졌으며 당시 모금된 총4만5천 달러 헌금자들의 명단은 자신들의 선거자금모금에 관한 언론보도가 나온 지난 가을 파기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이날 지난해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민주당의 불법헌금 과정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고어 부통령의 행위는 적법한 것이었다고 두둔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관측통들은 고어 부통령에 대한 상원의 조사는 불가피하며,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이 결국 고어 부통령의 청문회 증언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 고어 불법헌금 개입여부 주목/미 대선자금청문회 시작

    【워싱턴 외신 종합】 미국상원 정부문제위원회는 4일 지난해 미국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민주당의 불법모금 의혹과 관련한 청문회를 시작했으며 앨 고어 부통령이 그동안 민주당 모금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철저히 추궁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 속개되는 청문회는 오는 200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유력시되는 고어 부통령이 외국계 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했는지를 중점적으로 파헤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고어 부통령의 불법헌금과정 개입설은 민주당의 외국계자금 모금책이었던 존 황의 주도로 지난해 4월29일 캘리포니아주의 시 라이 불교사원에서 열린 모금행사에 그가 참석한데서부터 발단됐다. 고어 부통령은 또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백악관 부통령실에서 주요 헌금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민주당에 자금을 기부하도록 독려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공화당은 이와관련,지난해 불교사원 집회에 참석했던 승려 2명에게 증언에 따른 면책특권을 부여하면서까지 의회에 불러내 고어 부통령의 불법헌금 개입을 입증한다는방침이다.
  • 도심성지 수행환경파괴 위기/서울 강남구 봉은사·마포구 절두산성당

    ◎인근 고층아파트·빌딩건설 추진… 신도들 반발/당국도 종교적 환경·재산권 보호 조화에 고심 서울의 대표적인 종교성지 2곳이 지역개발로 인해 조용하고 쾌적한 종교적 환경이 파괴될 위험에 처해 종교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에 직면한 두 성지는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불교사찰 봉은사와 마포구의 절두산성당.지난 94년 불과 6m 떨어진 곳에(주)신성이 대지 917평에 지하6층 지상19층 연건평 1만343평의 운봉빌딩 건립을 추진한다는데 맞닥뜨린 봉은사는 당시 법원에 제출한 공사금지가처분신청이 3년여 송사끝에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자 곧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키로 했다.또 천주교의 주요성지인 서울 마포구 절두산성당 50m 앞에는 19층짜리 아파트건설이 추진되고 있어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성지보호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봉은사의 경우,대법원은 최근 봉은사의 공사금지가처분신청 상고심에서 “사찰의 수행환경도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당초 19층이던 건물층수를 15층으로 낮추라”고 일부 원고승소판결을 내려 15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판시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층짜리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사찰경관을 해치고 승려나 신도들에게 종교활동이 감시되는 듯한 불쾌감과 위압감을 줘 조용하고 쾌적한 종교적 환경이 크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사찰이 갖는 환경이익과 건축신축에 대한 재산권의 조화를 감안한다면 15층까지 건물을 짓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봉은사측은 “대법원의 판결이 사찰환경권의 법적 보호를 인정한 선례가 된 것은 다행한 일이나 19층을 15층으로 돌린 것은 마찬가지 결과”라고 말했다.봉은사는 “사찰의 입장을 최대한으로 양보해 8층정도의 건물은 용인할 수 있으나 공사가 시작될 때는 실력저지도 불사하겠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찰환경 수호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대지 2만여평의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7년(서기794)에 건립한 1천년 넘은 고찰로 서울 강남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한편 조선시대 천주교신자들의 대표적인 순교지중하나인 서울 마포구 절두산성당의 경우 북쪽 강변로를 사이에 두고 19층 아파트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 아파트는 마포구청으로부터 내인가를 받은 상태여서 건물이 들어서면 성당 주위환경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절두산성당은 현재 서울시가 ‘한강8경’의 하나인 관광코스로 개발하고 있으며,문화재관리국에서도 국가사적지로 지정키 위해 지난 28일 지정예고했다.30일의 예고기간을 거쳐 10월에 열릴 문화재위원회에서 통과되면 이곳은 국가사적지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절두산성당측은 국가사적지로 지정되면 아파트 층수를 낮추어 건설해줄 것을 구청과 시청에 당당하게 요구할 방침이다.배갑진 신부는 “1년에 4천여명의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인 절두산성당의 환경이 지역개발로 파괴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절두산은 대원군때 1만여명의 천주교신자들이 순교한 성지로 그 자리에 지난 67년 성당이 건립됐고 28위의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지난 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참배한곳이기도 하다.
  • 인도 아잔타(세계 문화유산 순례:41)

    ◎승려들이 700년 쪼고 다듬은 석굴 ‘장관’/말굴모양의 600m… 30개 동굴 조성/화려한 벽화로 장식… 호화궁전 방불 세계적인 불교예술의 보고 아잔타의 불가사의는 장자가 꾸었다는 호접몽(호접몽)의 고사에 견줄만했다.현기증이 날만큼 까마득한 자연암벽을 뚫고 들어가 오직 불은만을 생각하며 700년 이상 깎고 다듬어 만든 종교적 신앙심의 결정체.그 앞에서의 벅찬 감흥은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7세기경에 걸쳐 조성됐다.이 석굴은 하마터면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8세기에 들어 불교가 쇠퇴하면서 그만 정글에 묻힌채 1천년 이상 방치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그런 아잔타 석굴에 한 영국군 장교가 ‘환생’의 기쁨을 안겨줬다.1819년 인도 중부 데칸고원 일대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던 존 스미스라는 영국군 기병대 장교가 그 장본인이다.야생 넝쿨속을 더듬던 그는 암벽 사이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동굴 안에는 휘황찬란한 채색벽화와 각종 조상들이 그득했다.그는 주위에 그런 동굴들이 온통 무리를 지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랐다.그렇게 아잔타 석굴은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다. ○기원전 2세기부터 ‘시공’ 아잔타 석굴은 인도 중부의 고도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0여㎞ 떨어져 있다.아잔타로 가는 교통요지인 아우랑가바드에는 아잔타행 지역버스가 하루 네차례씩 다닌다.30루피의 요금을 주고 버스를 탔다.버스는 데칸고원의 앙가슴을 파고들었다.고원의 뜨거운 땅기운과 쏟아지는 햇살,거무틔틔한 면화토가 이국정취를 자극했다.3시간 가량 달렸을까.버스는 아잔타 석굴로 올라가는 입구앞 정류장에 멈춰섰다. 데칸의 품안을 흐르는 와그라 강 협곡을 따라 늘어서 있는 아잔타 석굴은 말발굽처럼 구부러진 모습이었다.아잔타 석굴은 모두 30개에 이른다.장장 600m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석굴군에는 편의상 입구에서부터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그러나 그것은 연대기적인 순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잔타 석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번 굴이다.버스정류장 앞 돌계단에서 1번 굴까지는 불과 200m 거리다.허위단심으로 층층대에 오르니 왠 건장한 장정 둘이 옷깃을 잡아 당겼다.인도의 1인승 가마 ‘팰런킨’(palanquin)을 타라는 것이었다.집요한 그들의 손길을 간신히 뿌리치고 1번 굴까지 걸었다. 그 1번 굴은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돌에서 채취한 자연물감으로 그렸다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들로 장식돼 마치 호화궁전 같았다.이 벽화들은 세월에 절어 선연한 빛은 잃었지만 살아 숨쉬는듯 생동감이 넘쳤다.그중에서도 뒷 복도 왼쪽에 있는 ‘보디사트바 파드마파니’라는 보살그림은 단연 압권이었다.오른손에 연꽃을 한송이 들고 있다고 해서 지연화보살화로도 불리는 이 벽화는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그린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를 쏙 빼닮았다.기품있는 표정과 자연스레 흘러내린 곡선의 아름다움은 신조지교란 말을 실감케 했다. ○1819년 영군장교가 발견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1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전기동굴과 5세기 중엽부터 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후기동굴로 나뉜다.연대순으로 보아 가장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0번 석굴이다.전기 동굴은 이른바 무불상시대에 조성돼 본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대신 중앙에 거대한 돔을 연화대위에 두었다.좌우에는 회랑형식으로 기둥을 깎아 놓아 통로로 삼았다.10번 석굴은 ‘차이티야’,곧 불사리탑인 스투파를 모신 탑원식 예불당이다. 차이티야가 불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동굴이라면 ‘비하라’,곧 승원식 동굴은 승려가 살기 위해 만든 요사채 형식의 동굴이다.이 양식을 대표하는 것이 12번 석굴이다.굴안에는 바위를 쪼아 만든 한평 남짓한 방들이 10여개나 벌집처럼 들어 앉았다.다리를 겨우 뻣고 눕기에도 비좁은 방안에는 돌침대까지 마련됐다.고양이 이마빼기만한 이 숨막히는 방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선정삼매에 빠져 수행정진하는 옛 선승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잔타의 벽화는 석가세존의 전생담인 ‘자타카(jataka)’와 그의 일생에서 소재를 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아잔타에서 가장 큰 비하라 동굴인 4번 석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28개의 기둥에 의해 실내가 지탱되어 있는 이 굴에서는 무엇보다 팔상도가 그려진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팔상도는 석가세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생동안 드러낸 여덟가지의 변상을 다룬 그림이다.싯다르타 태자 시절의 궁중생활이며 당시의 상가,악기,동물 등에 대한 묘사가 더할나위 없이 섬세했다.16번 석굴에서는 부처의 이복동생 난다의 아내 순다리가 남편의 출가수행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주목을 끌었다.이른바 ‘죽어가는 공주’ 벽화다. ○불당·요사채 형식 동굴 아잔타 석굴 벽화 중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17번 굴의 벽화다.탁발하고 카필라성으로 돌아온 부처를 맞이하는 야소다라 왕비와 아들 라후라 왕자의 애처러운 표정이 그대로 눈에 잡혔다.아잔타 석굴답사에서 결코 빼놓을수 없는 그림 하나가 더 있다면 열반상일 것이다.26번 석굴 출입구 왼쪽에는 길이가 7m에 이르는 인도 최대의 열반상이 누워 있다.오른손을 베개 삼아 평온하게 누운 부처의 얼굴에 청정무구한 불국정토의 상이 겹쳐졌다.오! 아잔타여.
  • 치욕의 역사 되새겨 일본을 이기자/광복의 달 ‘의식있는 책’봇물

    ◎‘백범일지’ 이땅이 뉘 땅인데’ 등 잇단 출간/‘일본은 살아있다’선 제국주의의 음모 고발 광복절과 국치일이 들어 있는 8월.올해도 조국과 민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의식있는’ 책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돌베개)를 비롯,전후 일본부활의 상징적 인물인 세지마 류조(뢰도용삼)라는 인물의 행적을 통해 한일관계사를 조명한 ‘일본은 살아 있다’(프리미엄북스),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혜안) 등이 우선 눈에 띄는 책들.이밖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도 일본 사진작가 이토 다카시(이등효사)가 펴낸 증언록 ‘종군위안부’(눈빛),한국계 미국작가 노라 옥자 켈러가 쓴 소설 ‘종군위안부’(밀알),조계종 혜진 스님이 지은 감동실화 ‘나,내일 데모간데이’(대원사) 등 3권이 나와있다. 광복의 달에 더욱 그 진가가 빛나는 ‘백범일지’는 27년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조국광복투쟁사를 진솔하게기록한 책.53∼54세와 67세에 각각 쓴 상·하권과 정치논문 ‘나의 소원’ 등으로 이루어진 ‘백범일지’는 지금까지 20여종이 출간되었지만 정본이 없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이번에 나온 ‘백범일지’는 첫 출간본인 ‘국사원본’을 기점으로 올해로 출간 50주년을 맞는 이 책의 ‘결정본’임을 내세우고 있어 주목된다.주해를 맡은 창원대 도진순 교수는 ‘백범일지’의 정본화 작업을 위해 지난 4년간 본격적인 원전비평과 교감작업을 거쳤다.‘백범일지’의 경우 완벽한 의미의 원본은 없다.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는 지난 6월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된,백범의 영식 김신 장군이 소장하고 있는 친필본을 꼽을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42년 이후의 추가본과 ‘나의 소원’은 담겨 있지 않다.도교수는 원본을 중심으로 추가본을 발굴,그 내용을 누락없이 실었으며 기존 출간본들의 오류는 물론 원본의 잘못된 사항도 바로 잡았다. 일본 교토통신사 다나카 아키라(전중장)기자 등이 엮은 ‘일본은 살아 있다’(양억관 옮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음모의 역사를그대로 보여준다.이 책의 주인공 세지마 류조는 서른살의 나이에 일본 대본영의 참모로 태평양전쟁을 입안,수행했으며 종전 뒤에는 11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기도 한 악성 제국주의자.귀국 후 이토추 상사에 입사해 20년만에 회장에 오르는 등 경제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그는 ‘역대 수상의 산파역’‘정계 배후의 키 맨’ 등으로 불리며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나카소네 정권을 탄생시킨 막후인물도 바로 그다.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세지마는 60년대 대한 배상 비즈니스와 70∼80년대 한일 정상회담 등에도 깊숙히 관여했다.일본 제국주의의 음모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그 배후에는 전범 출신으로 이뤄진 ‘일본 우익’이 도사리고 있다.이는 종전 직후 승려 행세를 하며 태국 현지에 남아 권토중래의 날을 꿈꾸었던,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 참모 츠지 마사노부의 광신적 행태와도 맥이 통한다.“일본은 자존 자위를 위해 일어섰다.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86세의 노인 세지마.이 책의 지은이들을 비롯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같은 그릇된 역사인식은 ‘심각한 자기기만’이며 지킬과 하이드 같은 ‘인격분열’일 뿐이라고 꼬집는다.이 책은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신적 분열’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로 끝을 맺는다. ‘이 땅이 뉘 땅인데!’는 ‘독도 역사의 산 증인’인 고 홍순철 대장과 울릉도 청년들의 진솔한 나라사랑 이야기를 다룬 실화.최근 독도에 대한 주권선언 내용을 담은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존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또 지난 8일에는 울릉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이러한 시점에서 나온 이 책은 단순한 활자기록 이상의 실감을 안겨준다.독도를 지키고 가꾸는데는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 “사찰옆 고층건물 제한 마땅”/대법,종교적 환경 침해 이유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에는 자연적 환경뿐 아니라 종교적 환경도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정귀호 대법관)는 27일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찰옆에 19층짜리 빌딩을 지으려는 (주)신성을 상대로 낸 공사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15층까지만 건물을 지으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층짜리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사찰의 경관을 해치고,승려나 신도들에게 종교활동 등이 감시되는 듯한 불쾌감을 줘 조용하고 쾌적한 종교적 환경이 크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면서 “사찰이 갖는 환경이익과 건물신축에 대한 재산권 사이에 조화를 감안한다면 15층까지만 건물을 짓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봉은사측은 (주)신성측이 94년 서울 강남구 봉은사 사찰에서 6m 떨어진 곳에 지하 6층,지상 19층짜리 건물 2동을 지으려 하자 “사찰의 환경권이 침해된다”면서 소송을 냈었다.
  • 스님이 쓴 시사칼럼집 첫선/서남현 한일문제연구원장 ‘대중공사’

    한일문제연구원장 서남현 스님이 칼럼집 ‘대중공사’를 도서출판 서평에서 출간했다.해외포교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남현스님이 불교계 전반의 문제점과 제도를 테마로 삼아 그 대안을 제시한 불교계의 첫 시사칼럼집이다. 스님은 이 책에서 94년 개혁종단 출범이후 포교 교육 문화 제도등 불교계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속의 개혁대안’을 내놓았다.또 출가 승려로서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남북문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조계종의 제도개혁은 승가의 기득권 포기와 재가 불자의 제도권 참여를 개혁의 원천이 된다”며 “지금과 같이 조계종단의 분규와 혼란이 계속된다면 재가불교교단이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21세기는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진행,정보혁명과 지식기반 사회로의 이행,생명중심 사회로의 전환 등 세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 거대한 3각파도의 세계적 차원의 문명사적 변화를 어떻게 판단하며 수용해야할 것인가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3년 안동에서 출생한 남현스님은 63년 양산 통도사로 출가,월하대종사를 계사로 득도하고 71년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했다.84년 대한불교문서포교원을 설립,포교전문지 ‘월간법회’를 발행하고 ‘불교와 청소년’‘믿음에서 실천으로’‘빼앗긴 조국 끌려간 사람들’ 등 청소년관련 저서를 출간했다.지난 88년 일본 오사카 소재 한문화연구소장으로 도일한 뒤 조계종 일본 총본산 고려사 주지 및 한일문제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일문화교류사,일제시대 한민족수탈사 등 한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조선후기 윤덕희의 ‘하마선인도’(한국인의 얼굴:111)

    ◎선인과 두꺼비의 익살 그려/선 굵은 얼굴에 큰웃음 담아 도교와 불교를 도석이라고 한다.도교의 상징은 물론 신선이다.그러나 도석인물화라는 그림에서 불교의 상징은 부처가 아니다.나한이나 승려가 등장하는 것이다.그러니까 도석인물화는 도교의 신선과 불교의 나한을 묘사한 그림이다.도석인물화는 거의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아내어 흥미롭거니와 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의 하나가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낙서 윤덕희(1685∼1766)가 그린 ‘하마선인’이다.도교풍의 선인이 어깨에 올려놓은 두꺼비 말목을 슬쩍 거머쥐고 걷는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신선은 마치 두꺼비와 말을 건네는 자태다.그리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성큼성큼 걷고 있다.두꺼비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신선은 함빡 웃음을 지었다.두꺼비는 막상 말을 던져놓고 선인 표정을 살피는 눈치다. 이 그림의 주제는 옛날 이야기 고사에 두었다.10세기쯤 중국의 후량에 유해라는 선인이 세개의 발을 가진 두꺼비와 살았다.그가 바로 하마선인이다. 하마선인이 키운 두꺼비는 주인을 세상 어디라도 데려다줄수 있는 신통력을 지닌 영물이었다. 그런데 두꺼비는 가끔 우물속으로 달아나 버렸다.그럴 때마다 선인은 금돈이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잡아 끌어냈다.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하마선인과 두꺼비가 나오는 그림을 행운의 상징으로 보고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선인과 두꺼비의 만남은 대자연의 섭리요,자연에 순응하면서 생명체들이 어울려 사는 공존의 질서다.그리고 그림에 나타난 선인과 두꺼비의 삶에는 조화가 깃들였다.그림이 신비스러워 보이는 까닭도 비범하기 짝이 없는 두꺼비와 선인이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데 있을 것이다.참으로 기이한 그림이기는 하나 화폭에는 푸근한 정감이 어렸다. 선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다.선이 굵은 얼굴에 큰 웃음을 담았다.나이 탓도 있겠지만 얼굴 여기저기에 골 깊은 주름이 진 것은 소탈한 웃음 때문일 것이다.웃음이 너무 커서 다물지 못한 입속으로 이빨이 드러났다.그야말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만면희색의 선인은 코주부 못지않은 코를 자랑했다.눈썹은 아직 검다.눈은 본래 컸을 법도 하나 웃음을 웃느라 좀 작아졌다.관자놀이 연저리에 좀 남은 머리칼이 아니었더라면,선과 석을 구분하지 못했을만큼 귀 역시 크다.오종종한데가 없이 기골이 장대한 선인이다.〈황규호 기자〉
  • 발해사 재인식(송화강 5천리:31)

    ◎92년 대규모 ‘무덤떼’발굴 연구 본격화/무기류 등 2천여점 출토/중 10대 고고발굴로 평가 중국에서 발해사 연구는 사실상 도외시 되어왔다.그런데 90년대 들어 시각이 바뀌어 발해사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에 걸쳐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칠색송어장 부근에서 발굴한 발해무덤떼가 그 계기를 이루었다.국가 관계기관으로부터 1995년 중국 10대 고고발굴로 평가된 이 무덤떼는 이른바 칠색송어장무덤군으로 호칭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용암언덕 모래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돌무덤을 비롯,벽돌무덤,돌과 벽돌을 함께 써서 축조한 무덤 등 형태도 다양했다.4만㎡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발굴한 유적은 323기의 무덤과 7기의 제단으로 되어있다.생활용품과 무기류,말갖춤,장신구를 포함한 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323기·제단 7기 그러나 관광객들이 쉽사리 대할수 없는 유물이다.칠색송어장무덤군 출토유물 뿐아니라 중국에서 다른 발해유물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관광객들에게 개방한 유물이있다면 발해진 중앙대가에 자리한 흥륭사 경내의 석조유물 정도가 고작이었다.남대묘라고도 부르는 흥륭사 용암돌담을 돌아 큰 대문옆 쪽문을 들어서면 가지가 휘휘 늘어진 고목이 길손을 맞았다.300년을 자랐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는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그 나무밑에서 쉬노라니 큰 돌거북 대석구가 첫눈에 들어왔다.지난 1976년 8월12일 발해진 발해소학교 울안 1.2m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데,이 절로 옮겨온 것이다.높이 58㎝,길이 1m의 돌거북은 높이 32㎝,길이 1.36m의 대석에 올라앉았다.돌거북은 희한하게도 용머리와 용발을 했다.그러니까 용두용족의 거북인 것이다.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인 돌거북이 왜 용머리와 용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절 맨 뒤쪽에 들어앉은 대웅보전 앞뜰에는 석등탑이 우뚝했다.용암을 쪼아서 만든 석등탑은 높이가 6m에 이르고 있다.기단은 4개의 큰 돌을 이어서 붙여 놓았다.그리고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다.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이 승려를 서천에 보내 불경을 구한 뒤에 세웠다는 석등탑은 애절한 전설도 간직했다.문왕대에 만든 걸작의 대석불도 이 절에 있다.옛 기록을 보면 석불의 높이는 3길이었다.그런데 건륭연간인 960∼963년 사이에 불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지금은 복원되어 1963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모셔놓았다.이 석불 역시 전설을 안고 있다.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하나가 살았다.하루는 고기를 싣고가는 수레에 웬 스님이 올라탔다.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스님이 오간데가 없었다.고기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사라졌던 지점에 이르렀을때 근엄한 여래석불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바로 오늘날 흥륭사의 대석불이라는 이야기다.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석불앞에 넙죽 엎드렸다.이는 석불에 얽힌 전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물고기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길에 여래석불을 만났던 어부는 그 자리에 넙죽이 엎드려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발해유적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그러나 길림성 화룡시 정효공주묘와 같은 중요 고분벽화는 감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유적보호를 위해 일반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이와는 달리 누구라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바위그림이 흑룡강성 해림시 임구현 고려정촌에 있다. 고려정촌은 목단강시에서 75㎞가 떨어졌다.본래는 조선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조선족이 모두 마을을 떠났다.그래서 한족 70가구가 사는 한족 마을이 되었다.조선족과 큰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려정촌이라 불렀던 마을이다.하지만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고 우물마저 메워버렸으니,고려정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무색하게 되었다. ○흥륭사 대석불 전설 역사는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옛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그래서 역사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만,읽고 가꾸는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한다는 집념의 사람들이 있다.흑룡강성 벌리현 향수향 행선촌 최금산선생과 임승환선생이 그들이다.두 분은 3년여에 걸쳐 대하역사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을 합작으로 탈고했다.조사비 등 10여만원의 돈을 들인 이 대하소설은 10부작으로 2백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최선생은 경박호변 남호두가고향이고 임선생은 상경용천부가 고향이니까 모두 발해진 태생이라 할 수 있다.최선생은 대흥구 중학교를 다닐때 학자였던 하숙집 주인때문에 발해와 인연을 맺었다.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2년동안이나 들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새로웠다는 최선생은 ‘발해연의’를 100회나 쓴 적이 있다.그리고 임선생은 조선족과 만족,몽골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속에 남아있는 발해설화와 신화 80여편을 수집 정리한데 이어 ‘발해전’120회를 썼다. ○대하소설 합작 탈고 그들은 발해라는 고대왕국을 소재로 이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쉽사리 합작을 약속했다.두 분의 대하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은 고왕 대조영이 698년 오늘의 요령성 조양땅인 영주에서 나라를 세워 926년 망하기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그렸다.오늘의 중국 동북3성은 물론,러시아의 연해주와 한반도 동북부를 잇는 영토확장을 위해 숨가삐 달린 발해의 영욕이 담겨있다.자그마치 300명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하소설은 발해의 정치,군사,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우리역사 움직인‘위대한 한국인’/한길사 인물평전 1차분 4권나와

    ◎원효서 윤이상까지 100명 삶과 사상 조명/철저한 자료조사·현장취재… 완성도 높여 삼국시대의 원효에서부터 현대의 윤이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한국인물평전 ‘위대한 한국인’시리즈(한길사) 1차분 4권이 나왔다.모두 100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철저한 자료조사와 현장취재를 병행해 평전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 특징.대상인물은 사상가를 비롯,문학가 음악가 미술가 과학자 종교가 정치가 등 시대와 분야를 망라해 우리 역사의 다층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이번에 선보인 책은 ‘원효’(고영섭 지음),‘허균’(이이화 지음),‘일연’(고운기 지음),‘나운규’(조희문 지음) 등이다. 시리즈 첫째권인 ‘원효’는 민중불교의 대의를 보여준 신라 불교 르네상스기(7∼8세기)의 승려 원효의 승속의 삶을 다룬다.원효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갈라진 마음을 한 마음으로 귀일시키고,다양한 주장을 조화롭게 화해시켰으며,무애의 자유로움을 실천했다.이 책에는 원효가어린 나이에 출가해 60여년이 넘는 법랍을 출가수행자로 살다 혈사로 돌아와 입멸하기까지의 치열한 구도행각이 빈틈없이 담겼다. 허균이 살았던 16세기 말은 유교적 교조주의가 고개를 들고 당론이 심화됐으며 신분제도에서는 서얼금고가 한층 가혹해진 때였다.허균의 ‘홍길동전’은 이같은 봉건체제의 모순과 부당성을 폭로한 대표적인 소설이다.평전 ‘허균’에서는 그의 이같은 저항적 문학정신을 집요하게 살핀다.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그는 “명나라 변공의 청치가 있다”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가를 이뤘다.1천500수가 넘는 시를 남겼다.허균은 수사에 치우친 시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글자에 집착해 시의 본래 맛을 잃는 것을 경계했다.따라서 그의 시에는 음풍농월류 보다는 사회개혁 의지가 담긴 것들이 많다. ‘일연’은 독특한 형식으로 된 평전이다.지은이 자신이 직접 일연이 거쳐간 지역을 답사하면서 서술한 기행문형식을 띠고 있다.이 책은 먼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가지산파의 종찰 보림사를 첫 행선지로 삼는다.가지산파는 신라말 선문의 기운이 싹틀 무렵 그 첫번째 뿌리를 내린 곳이다.일연이 속한 산문이 바로 가지산파다.이 책은 일연의 생각을 추체험,고려후기 사회의 문화사를 되짚어보게 한다. 1∼3권과는 좀 색다른 기분으로 읽을수 있는 것이 ‘나운규’다.한국영화사의 개척자로 일제시대의 암울한 상황에서 영화로 민족정신을 대변했던 춘사 나운규.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춘사의 작품은 ‘아리랑’ 하나 뿐이다.그것도 필름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불과하다.지은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 나운규를 복원해낸다.한국영화사의 신화적 존재인 나운규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추어내 그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간 인물임을 보여준다.현실은 때때로 영화보다 더 극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가난과 혼돈 앞에서 몇번이고 쓰러졌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던 나운규도 단 한가지 피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죽음이었다.폐병과 싸우던 나운규는 1937년 36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서구 등의 경우 인물평전은 고급 읽을거리로 꾸준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그러나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평전은 대부분 일부 사상가에 집중돼 있거나 위인전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양극화 양상을 보여왔다.한길사의 ‘위대한 한국인’시리즈는 단순한 개인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읽을수 있게 하는 색다른 차원의 역사교양서로 주목된다.이미 출간된 4권 외에 연말까지 10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한­캄보디아 불교계 첫 만남

    ◎조계종 혜창 스님,현지 최대 우날롬사원 방문/「왕사」 텝퐁 스님과 양국교계 우호증진 논의/대승­소승 교류 추진 본격화 계기 기대 북방 대승불교의 한국 불교계와 남방 소승불교의 캄보디아 불교계가 교류의 길을 열었다.대한 불교 조계종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총무원의 총무부장 혜창 스님을 캄보디아로 파견,캄보디아 불교 종정스님과 한국·캄보디아 불교교류와 우호증진 방안을 협의했다.혜창스님은 프놈펜의 최대 사원인 우날롬 사원을 방문,캄보디아 불교의 최고 지도자이며 노르돔 시아누크 국왕의 왕사인 텝 퐁 스님(73)을 만나 양국 불교계 인사교류와 유학생교환,불자들의 상호방문을 통한 우호증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한국의 혜창 스님은 『1천6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대승불교와 1천800년의 역사를 가진 캄보디아의 소승불교가 비록 뒤늦게 만나게 되었지만 앞으로 우호와 교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며 『내년 부처님오신날 행사에 텝 퐁 스님이 캄보디아 불교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해달라』고 요청했다.아울러 『전쟁으로피폐해진 캄보디아가 안정을 되찾고 평화를 정착한 것은 종교지도자들의 노력』이라고 치하하고 『파괴된 캄보디아의 사찰 복원과 스님들의 교육에 대한 지원도 하겠다』고 밝혔다. 텝 퐁 스님은 『일정과 수행원 등을 협의해 적극 검토하겠다』며 『승려교육 지원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지난해 7월 훈센총리의 방한으로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한국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스님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국 스님들과 신도들의 교류가 크게 늘어나기 바란다』고 말했다.텝 퐁 스님은 한국의 불교 미타종 초청으로 오는 19일 3명의 캄보디아 스님과 함께 서울을 방문할 계획이며 서울을 방문하는 동안 한국의 불교 지도자들과 만나 유학생교환,신도 상호방문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인도차이나 반도 남쪽에 위치한 캄보디아는 면적 18만㎢에 인구 1천만명중 9백만명이 불교신자인 불교국가이다.주변의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캄보디아는 입헌 군주국가로 독실한 불교도인 노르돔 시아누크 국왕이 국가원수이다.시아누크국왕은 국가의 중요행사때마다 텝 퐁 스님을 왕궁으로 초대,불교식 절과 합장을 한 뒤 국가행사를 시작한다. 우리 불교계는 그동안 중국과 일본 불교계와 교류를 갖고 인도를 성지로 순례해 왔으나 캄보디아와 교류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조계종은 이번 캄보디아 방문을 계기로 소승불교국가들과 본격적인 종교교류를 갖게 됐으며 앞으로 미얀마 라오스 등 교류가 없던 나라들과 동남아시아 유일의 대승불교 국가 베트남 불교계와도 교류를 할 방침이다. 한국은 지난 92년 베트남과 수교한이후 95년 라오스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지난해에는 프놈펜에 한국 대표부가 설치되고 7월 훈센 총리가 방한하는 등 인도차이나 반도의 외교 경제 문화 종교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 캄보디아 불교계 최고지도자 텝퐁 스님

    ◎양국 불교도 「마음의 평화·안정」 노력/“예산부족에 많은 사찰 방치 안타까워” 『불교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최고 덕목으로 수행하는 종교입니다.한국과 캄보디아의 불교도들이 같은 신앙을 갖고 함께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면 두 나라의 우호와 교류는 급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캄보디아 불교의 최고지도자 텝 퐁 스님(73)은 프놈펜 시내 왕궁 옆에 자리잡은 우날롬 사원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콩강으로 흐르는 톤 레삽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 좋은 이 사원은 1443년 건립된 프놈펜 시의 대표적인 사원.현재 100여명의 승려들이 수행생활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3천371개의 사찰이 있으며 4만1천여명의 승려들이 9백만 신도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기 2세기,인도에서 전래된 캄보디아 불교는 베트남과 라오스 등 주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나 힌두교가 국교였던 앙코르제국(802∼1432년) 시절에는 쇠퇴했다가 앙코르 제국이 망한 다음 15세기부터 다시 국교가 됐다.그러나 지난75∼79년 집권,소위 킬링필드로 유명한 극좌 공산주의자 폴 포트 정권은 자본가 지주 귀족 학자 승려등 2백만명을 학살했다. 『세계 어느나라 국민들도 캄보디아처럼 참혹한 경험을 한 나라는 없습니다.승려 2만5천168명이 처형당하고 사찰은 감옥이나 처형장으로 쓰이고 불상은 깨트려버리고 불경은 불살라졌습니다.나도 승복을 벗기우고 감옥에서 3년8개월동안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79년 말 폴 포트 정권이 망하고 민주적인 헹 삼린 정권이 들어서면서 복원된 불교는 승려수가 폴 포트 정권 이전보다 많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지방의 많은 사찰에는 불상이 깨어지고 법당에 비가 새는 등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나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캄보디아 정부로써는 예산이 없어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60명의 캄보디아 젊은이가 승려가 되기 위해 우날롬 사원을 찾아 삭발을 했다고 밝힌 스님은 『앞으로 불교 전문학교와 비구니 훈련원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외국문화 알고 떠나면 ‘재미 두배’

    ◎홍콩인에 시계선물·브라질서 OK 사인은 금기 □해외여행 알짜정보 ·불의의 사고대비 여행보험 가입 ·환전은 공항내 환전소 이용이 유리 ·여권,카드 분실 현지 경찰서에 신고 ·교통사고시 통역구해 책임 명확히 한달뒤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돼 많은 사람들이 해외나들이를 한다.해외여행을 하려면 여러가지 준비할 것이 많다.해외여행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소개한다. ▷출국전 준비◁ 여행중 발생하기 쉬운 상해나 질병 및 도난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여행보험에 가입해 두면 안전하다.방문국의 기후,풍토나 생활관습 등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추도록 한다.의복,신발,가방 등 여행용품은 가급적 국내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항공권이나 현지 호텔 등의 예약상태는 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확인하고 여권·항공권·여행자수표·신용카드 등의 주요 내용은 따로 수첩에 적어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외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없이 약을 사기 어렵다.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상비약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전염병 감염지역으로 여행할때는 반드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며 예방주사는 가급적 2주전에 맞는 것이 좋다.항공권과 여권,신용카드의 영문성명은 반드시 일치되도록 하고 예약할 때도 영문성명을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 ▷공항에서◁ 이름,주소,전화번호를 정확히 기재한뒤 수화물표를 부착하고 잠금장치를 확인한다.이전 여행시 사용한 수하물표는 떼어내 착오가 없도록 해야 한다.공항에는 비행시간 2시간전 도착,준비하는 것이 좋다.현지에 도착하면 다음 행선지 항공편 예약상태를 재확인(72시간전),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환전은 공항내 환전소에서 하는 것이 환율면에서 유리하고 시간도 절약된다.환전은 필요한 액수만큼만 하고 반드시 환전증명서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 ▷외출시◁ 외출할 때에는 호텔위치나 소재지가 기재된 성냥 또는 팜프렛 등을 갖고 나가 길을 잃었을 때에 대비한다.호텔의 객실문은 대부분 자동으로 잠겨짐으로 잠시라도 문을 나설 때에는 방열쇠를 갖고 나와야 한다.태국,필리핀 등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는 택시를 타기 전에 미리 요금을 합의해야요금시비가 없다.빈 택시가 여러대 있을때에는 맨 앞의 택시를 타고 가능하면 운전기사 옆 좌석에 앉는 것을 삼가자. ▷문화·관습의 차이◁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서 어린이를 심하게 야단치거나 때리면 어린이 학대죄로 고발당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밀고 타거나 새치기 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자랑하거나 너무 정치적 또는 개인적 이야기를 해 외국인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좋치 않다. 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는 머리를 신성시한다.남의 머리를 만지지 않도록 하고 어린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지 않도록 하자.태국은 불교국으로 불상,승려를 신성시하며 왕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따라서 이들을 대할 때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사찰을 출입할 때 반바지차림은 금물이다.여성관광객이 승려와 악수하거나 물건을 건네주는 것도 금지돼 있다. 회교국가인 중동지역 및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에서는 남에게 물건을 건내거나 받을 때에는 오른손을 사용해야하고 돼지고기와 술을 찾는 일을 삼가야 한다.일본에서는 짝으로 된 것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으므로 선물은 짝으로 된 세트를 주는 것이 좋다.홍콩에서 시계는 죽음을 상징하므로 시계선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중국문화에서 청색과 백색은 장례식 색깔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중국인들은 또 자기가 사용한 젖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주는 버릇이 있다. 프랑스에서 손가락으로 OK사인은 「가치없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브라질에서는 몹시 상스럽고 외설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불가리아에서 앞뒤로 고개를 끄덕이면 No의 뜻이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 Yes의 뜻이다.멕시코 인디언들은 사진을 찍으면 혼을 빼간다고 믿기 때문에 촬영을 할 때에는 신중히 해야 하며 유적지안에서 삼각대를 이용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외여행 안전수칙◁ 여권을 분실했을때에는 먼저 현지 경찰서에 서면으로 신고하고 신고확인증을 받은뒤 이를 토대로 현지 주재 한국공관에 가서 분실사실을 알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따라서 여행지의 한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두고 여권사본 및 여분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여행자수표,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때에도 현지 경찰에 서면으로 신고하고 신고확인서를 첨부,현지 발행회사 지점으로 가서 소정의 절차를 밟아 재발행신청을 해야 한다.분실에 대비,수표와 신용카드번호,발급일자 등은 별도로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항공권을 분실했을 때에는 발행 항공사에 분실신고를 한다.항공권 유효기간의 범위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구제받을수 있다.교통사고를 당했을때에는 일단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 사고의 책임여부를 따져야 한다.지나치게 위축된 행동이나 「I am sorry」 등을 연발하는 것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므로 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마약단속 법규가 매우 엄격하다.공항 또는 시내에서 수고비를 준다며 짐을 대신 운반해 달라는 부탁은 마약운반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러시아에서는 입국시 신고한 액수보다 많은 외화를 갖고 출국할 경우 주재국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외화를 압수당하게 된다.따라서 입국시 세관신고서상에 소지한 외화총액을 반드시 기재,신고한뒤 이 신고서를 출국할 때까지 소지해야 한다. ◎유럽의 여행안내소/지도 무료배포… 호텔예약도 가능 유럽에는 관광에 대한 뒷받침이 잘돼 있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든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하면 안내소를 쉽게 찾을수 있다.유럽지역의 안내소들은 모두 영문자 「i」로 표시해놨기 때문에 찾기가 쉽고 직원이 많은 곳은 5명이 근무하는 등 충실하다. 관광의 시작은 지도를 얻는 것이다.안내소에서는 대부분 지도를 무료로 배포해 주지만 간혹 돈을 받는 곳도 있다.이용자가 많을 경우에는 직원이 나눠준 번호표를 갖고 1∼2시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안내소 직원들은 현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다.따라서 이들에게 문의하면 값싼 숙소,숙소 주변의 유명관광지 및 공연·축제 등 관광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자세히 들을수 있다.나아가 이들 안내소에서는 호텔은 물론 일부 교통편도 예약할 수 있다.런던이나 파리 안내소에서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오가는 실자라인을 비롯 스위스의 등산열차 등도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정비가 잘돼 있다.주의할 것은 기차역에 있는 안내소에서는 열차편에 대한 안내만 한다는 점이다. ◎해외정부 얻으려면/관광공사 국내외 최신자료 완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관광을 할 때에는 현지정보에 밝은 것이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국내·해외 관광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으려면 한국관광공사 관광자료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공사 관광자료실은 해외 20개국 지사에서 보내온 최신의 관광정보와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관광산업 전반에 걸친 각종 자료들을 갖추고 있다.자료는 국내·해외 관광청에서 발간한 정기간행물,단행본,신문 등이 주류를 이룬다.관광관련 업계·학계에서 참고할 수 있는 관광산업개발·마케팅·교육에 관한 자료 등을 합해 1만4천여권 정도가 있다. 각종 자료들은 컴퓨터로도 저장돼 있어 자료검색이 편리하다.「사진자료실」과 「여행자료실」도 이용할 수 있다.자료실에는 도서담당 직원 2명이 상근하면서 자료이용을 돕고 있다. 자료실은 평일에는 상오 9시∼하오 5시30분까지,토요일은 낮 12시까지 개방한다.7299­318. ◎여행불만 피해 구제/안내인 무성의도 배상청구 가능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된지 10년이 가까와지고 있지만 해외여행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한국소비자보호원에는 지난해 198건의 해외여행 관련 피해구제 요청건이 접수됐다.이는 95년과 비교할 때 45%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행조건과 일정 등은 현지사정에 따라 쌍방이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기간중 변경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따라서 여행사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할 때에는 일종의 계약위반이므로 소비자는 보상을 받을수 있다.또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안내인이 동행했다면 관련법상의 위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고발조치가 가능하다.자격을 갖춘 안내인이라도 자질이나 성의부족으로 여행중 불편을 겪었다면 신의와 성실을 다하여 여행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따라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소비자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약서,항공권,광고 팸플릿 등을 보관하고 여행중 불만족스러운 일이 생기면 즉시 동행한 여행객들과 함께 이의를 제기해 계약대로 이행되도록 요구해야 한다.해결이 안된 경우에는 한국관광공사나 소비자 고발창구 등을 이용한다.
  • 불법체류 한인 복지혜택 중단/미 새이민법 오늘 발효

    ◎9월27일까지 시민권 못따면 자녀 공립학교 퇴교 등 불이익/재정보증 엄격·영주권 인터뷰 폐지 졸속개혁이라는 비난속에 지난해 9월30일 최종 입법화된 미국의 개정이민법이 1일부터 시행된다.「불법이민 개혁 및 이민자 책임법」이라는 이름의 이 법은 클린턴행정부의 복지예산 감축계획에 따른 것으로 5백만명에 달하는 미국내 불법체류자들을 강제이동과 이산가족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법은 지난 4년간에만 불법체류자가 110만명이 증가,미이민·귀화국(INS)의 예산이 15억달러에서 31억달러로 늘어남은 물론 그에 수반된 각종 복지예산의 증가에 따른 대책으로 공화당다수 의회가 마련한 것이다. 특히 이 법의 발효로 합법적 이민 대기를 위한 불법체류자들은 그동안 제공되던 교육 및 복지혜택 등의 중단으로 9월까지 시민권을 따지 못하면 자녀들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로 전학시켜야 되는 등 많은 불이익이 따르게 된다. 이 법은 원래 멕시코국경을 통해 쇄도하는 남미계 불법이민자들을 목표로 한 것이지만 미국내거주하고 있는 한인 불법체류자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됐다.더우기 이 법이 입법과정에서의 졸속으로 많은 모순이 있고 시행세칙 불비로 법조항 해석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화로 불법체류자들이 많은 LA,뉴욕 등지의 한인사회에는 악덕 이민사기업자들까지 날뛰고 있어 불법체류 한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주요 조항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재입국 및 영주권취득 금지조항(301조)=4월1일부터 180일 동안 불법체류한 자는 3년,1년 이상 불법체류한 자는 10년 동안 재입국및 영주권 취득이 금지된다.즉 9월27일까지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하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18세 미만의 미성년자,시민권자 가족은 예외. ▲재정보증 조항(551조)=가족초청 이민시 재정보증인이 반드시 초청인이 되어야 한다.보증인의 수입은 피초청인의 가족수를 포함시킨 전체 가족수를 기준으로 액수가 정해져 있어 가난한 시민권자의 가족초청 이민은 원천봉쇄돼 있어 제3자 보증인 허용 논란을 빚고 있다. ▲불법체류자의 미국내인터뷰허용 조항 마감=불법체류자라도 벌금(지난해까지 650달러,올부터 1천달러)만 내면 미국내에서 영주권 인터뷰를 받을수 있게 만든 조항으로 9월30일로 일단 끝난다. ▲평신도 종교 특별이민 마감=안수받은 목사,신부,승려 등은 계속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나 전도사,지휘자,반주자 등 교회봉사자들이 이용해온 평신도 종교 특별이민은 9월30일로 마감된다.
  • 달라이 라마 대만도착/중 “국민당 연계” 맹비난

    【고웅(대만) AFP 연합】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22일 중국측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대만 남부 고웅에 도착,역사적인 첫 대만방문을 강행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날 하오 1시(한국시간 하오 2시)께 싱가포르에서 항공편으로 고웅공항에 도착해 승려 300여명의 영접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6일간의 방문일정에 들어갔다. 대만과 달라이 라마측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위해 대만 불교단체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방문이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관영 언론매체를 동원해 달라이 라마의 대만방문이 『국민당 분리주의자와 티베트 독립운동 세력간의 연계를 입증하는 것』으로 조국을 분열시키려는 정치적 운동의 시작이라고 비난했다. 대만당국은 이날 달라이 라마의 경호를 위해 공항주변 등지에 1천여명의 경찰관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폈다.
  • 미얀마 불­회교분쟁 확산/1급경계령/경찰,시위 불교도에 발포

    【양곤 AP 연합】 미얀마 북부 만달레이시에서 발생한 불교와 이슬람교간 종교분쟁은 당국의 1급경계경보발령에 이어 이슬람사원 및 재산을 노린 불교도에 대한 경찰의 발포가 이어지는 등 불안감이 한층 심화되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요가 아웅산 수지여사의 민주화운동세력과 연관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경찰은 지난 18일 이슬람사원 등을 파괴하고 있던 승려 등 불교도를 해산시키기 위해 이들의 머리위를 겨냥,실탄사격을 했다고 현지주민이 19일 전화를 통해 전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승려 2명이 부상,병원에 실려갔다고 주민이 말하고 있으나 사망자나 부상자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미얀마당국은 이달초 불교도 소녀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겁탈사건에 의해 촉발된 이번 사태와 관련,만달레이를 포함한 인근 5개 도시에 보안상 1급경계경보를 내렸다고 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 사하라사막 북단 튀니지 수스(세계 문화유산 순례:27)

    ◎북아에 꽃피운 7∼9세기 이슬람문화/가베스만 인접 비옥한 땅… 「사헬의 진주」 애칭/이슬람 4대성지… 성채 수도원 곳곳에/나도르·미나렛 등 그림같은 종탑 우뚝 광대한 사하라사막의 북단 튀니지의 지중해쪽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 해안도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숲들을 보게 된다.올리브 열매는 북아프리카인들의 식단에 오르는 귀중한 요리의 재료이면서 또한 튀니지의 주요 수출품목이다.함마메트만에서 시작해 남으로 가베스만에 이르는 해안에 접한 비옥한 땅을 튀니지인들은 「사헬」지대라고 부른다.해안에는 원유도 생산된다. 수스는 바로 「사헬의 진주」로 불리는 곳이다.넓은 올리브 과수원들.지중해의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점점이 늘어선 눈처럼 하얀 집들.그러나 수스가 「사헬의 진주」로 통하는 진짜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풍광 못지않게 이곳에 남아있는 풍부한 역사유물들 때문이다.수스뿐아니라 사헬지역 전체가 거대한 유물의 창고이다.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최초의 도시로 이슬람의 4대 성지인 카이로우안,이집트를정복했던 파티마왕조의 탄생지인 마흐디아 등이 바로 이 사헬에 위치하고있다. 수스의 역사는 무려 2천 800여년에 이른다.기원전 9세기 지중해 일대해상로를 주름잡던 페니키아 선원들이 해상무역지의 거점으로 도시를 만든 이래 이후 로마,반달인,회교도,터키인 등 온갖 외침을 거치며 도시 이름만 5차례나 바뀌었다고 한다.이곳을 하드루메트라고 불렀던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를 세우기 2세기 전 무역중심지를 이곳에 건설했다.로마와 제2차 포에니전쟁을 이끌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장군은 전쟁 막바지에 이곳에 진지를 구축해 전략거점으로 이용했다.7세기 회교도들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수세기 동안 이곳은 로마인들의 수중에 들어있었다.7세기 회교도들과 비잔틴사이의 전투로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다.이런 거듭된 환란이 이곳을 유물의 보고로 만들었다. 유네스코는 1988년 수스의 구시가인 메디나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메디나는 이곳에 진출한 회교도들의 생활중심지였다.항구옆 광장의 울퉁불퉁한 돌로 포장된 넓은 산책로 오른편으로 9세기에세워진 이슬람 대사원이서있다.사원의 안마당은 장식이 없이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된 나즈막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아치문이 줄이은 전형적인 이슬람사원이다.대사원의 성벽을 따라 미로 속같은 메디나의 좁은 길들을 걷다보면 한어귀에서 확트인 마당이 나타나며 8세기말의 성채인 리바트 수도원을 만난다.수스에서도 가장 귀중한 유물로 손꼽히는 곳이다.왜적에 맞서싸운 우리 불교승려들처럼 이슬람교도들이 외침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낸 독특한 성채 수도원이 원형 그대로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이슬람교도들은 당시 비잔틴 함대를 막기 위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모로코의 세우타에 이르는 해안 방어선을 따라 이같은 성채 수도원을 곳곳에 세웠다.리바트라는 이름도 적에 맞서 도시를 지켰던 신심깊은 전사들인 「무라비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성채는 단순함으로 인해 더욱 견고한 인상을 주는 4각의 돌성벽으로 둘러싸여있다.높고 좁다란 출입문 좌우는 이 도시의 험란한 과거사를 증명하듯 로마인들이 남긴 2개의 돌기둥을 이용해 만들었다.출입문을 들어서면 확트인 장방형 안마당이 나오고 주변은 작은 방들이 들어찬 회랑으로 둘러싸여있다.이 안마당은 주민들의 피난처로 쓰였다고 한다.평화시 전사 승려들은 이 방에서 알라신의 가르침을 익혔다.방은 가로세로 3m의 벽에 아치형 천정을 가졌다.안마당은 돌을 깍아 포장했는데 한가운데를 낮게 만들어 비가오면 이곳의 배수구를 통해 지하 저수조로 흘러들게 했다.비상시를 대비해 만든 것이다. 2층 회랑의 벽은 두께가 2m나 돼 왠만한 포격에도 견딜수있게 만들었다.성벽 4귀퉁이에는 높다란 망루가 세워졌고 성벽위에는 사대들이 촘촘히 만들어져있다.적이 쳐들어오면 이 사대에서 총과 화살을 퍼붓고 펄펄 끓는 기름도 쏟아부었다고 한다.성벽 한쪽 귀퉁이 항구쪽의 망루안으로 들어가 컴컴한 75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망루이면서 회교사원의 종탑인 「나도르」에 도달한다.이 곳에서는 메디나 전체와 눈부시게 푸른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망루에서 바라보는 항구쪽 모습은 수스가 천혜의 항구임을 한눈에 보여준다.둥근 만이 유난히 도시쪽으로 깊숙히 들어와있어 화물선이 도시 중심부까지 접안할 수 있도록 돼있다.성벽 곳곳에 붙어있는 정박용 쇠고리들은 옛날 항구가 메디나에 더 가까이 있었음을 짐작케한다.항구에서 메디나에 이르는 길지않은 보도를 따라서는 싸고 싱싱한 생선 요리집이 즐비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리바트 성채를 나와 주출입문 반대편 골목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미나렛(이슬람 사원의 종탑)을 만난다.4층짜리 미나렛의 3층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타일조각들 사이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하나가 삐죽이 내걸려있다.빼놓을수 없는 곳중의 하나는 메디나의 남서쪽에 있는 성채 카스바.9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지금은 시립박물관이 들어서있다.2­3세기경 풍요로왔던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로마 모자이크 조각 유물들이 인근에서 발굴돼 한곳에 모아져있다.바다의 신,승리에 도취해 춤추는 박커스신,아폴로,뮤즈신,화장을 하는 비너스,야생동물을 달래는 오르페우스의 초상,물고기와 과일 등… 북쪽 해안은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하얀 지중해식 휴양지 건물들이 모여있는 관광지대이다.엘 칸타위의 요트항까지 이어진 이 스페인 양식의 건물들은 수스의 메디나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들 못지 않게 튀니지인들이 자랑하는 우아한 건축물들이다. ◎여행가이드/튀니스서 관광버스로 「총알택시」 이용은 위험 수도 튀니지아까지는 유럽 대도시 공항에서 쉽게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다.지방도시의 교통·숙박시설등 편의시설은 미비한 편.숙박은 튀니지아에서 하는게 좋고 호텔에서 관광버스편을 이용하면 당일코스로 수스왕복이 가능하다.편도에 2시간 정도 소요.현지인들은 튀니지아­수스를 왕복하는 「총알택시」를 주로 이용한다.봉고차 같은데 10여명씩 태워서는 쏜살같이 다니는데 위험하니 여행객들은 타지 않는 게 좋다.지중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지방의 고급휴양시설에서 숙박하면 요금은 비싸지만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튀니지아에서는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카르타고의 로마유적지가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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