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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기 “이다인과 결혼 후 부모님과 사이가…” 솔직 고백

    이승기 “이다인과 결혼 후 부모님과 사이가…” 솔직 고백

    배우 이승기가 “결혼 후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전했다. 이승기는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대가족’(감독 양우석) 언론 시사회 후 간담회를 통해 가족애를 그린 작품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이승기는 아버지 함무옥(김윤석)의 승려가 된 아들 함문석 역을 맡았다. 승려가 돼 속세와 인연을 끊은 것 때문에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이승기는 “모든 부자 관계가 살갑고, 공익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 것 같다. 대화를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라 말했다. 이어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은 많은데, 저도 막상 아버지와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면서 “오히려 제가 결혼하고, 아이도 갖고 나니 부모님과 더 돈독해지고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승기는 견미리 딸 이다인과 2023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슬하에 자녀 1녀를 두고 있다. 한편, 영화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 삼국유사…세계기록유산 등재 도전에 나선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 삼국유사…세계기록유산 등재 도전에 나선다

    ‘삼국유사의 고장’ 대구 군위군이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국제목록)으로 등재하기 위해 나선다. 군위군은 다음 달까지 국가유산청에 삼국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를 위해 군은 2018년 국학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과 삼국유사를 소장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범어사 등 5개 기관과 업무 협약을 맺은 뒤 2022년 11월에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시켰다. 또 지난 9월엔 ‘삼국유사의 세계 유산적 가치와 위상’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해 왔다. 국가유산청이 내년 2월쯤 삼국유사를 세계기록유산 신청 대상으로 선정하면 등재신청서와 홍보영상물을 제작해 11월까지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종 등재 결정은 유네스코 사무국 적격성 검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를 거쳐 2027년 상반기 개최 예정인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결정된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삼국유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군위인들의 염원”이라며 “삼국유사가 반드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삼국유사는 고조선에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 역사서이자 한국 정신문화의 핵심으로 이견이 없는 기록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위군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삼국유사 중요 판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해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복안이다. 군위에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1206~1289년)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가 있다.
  • 국보 지광국사탑 1년 걸려 복원, 오늘 기념식 개최

    국보 지광국사탑 1년 걸려 복원, 오늘 기념식 개최

    1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국보 지광국사탑이 1년여간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완전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강원 원주시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2일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지광국사탑 복원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복원을 마친 지광국사탑은 높이 5.39m, 무게 24.6t이다. 규모 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도상, 문양, 석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복원에 참여했고 레이저 세척 등 과학적인 보존 처리 방법에 장인의 전통 기술이 더해져 완성도를 높였다. 지광국사탑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고려시대 대표적인 석탑으로 구조가 독특하고 장식이 빼어나 고려 불교미술의 백미로 손꼽힌다. 애초 법천사지에 세워진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처음 반출된 뒤 1975㎞에 달하는 긴 유랑 생활을 했다. 서울 명동(1911~1912)과 일본 오사카(1912)를 거쳐 경복궁(1912~2016)으로 이전됐다.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1만 2000개 파편으로 조각났다가 1957년 시멘트로 땜질됐다. 2016년 보존 처리를 위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옮겨졌고 5년간의 전면 해체와 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해 8월 법천사지로 112년 만에 귀향했다. 당시 33개 부재 가운데 31개가 돌아왔고 나머지 부재 옥개석과 탑신석 등 2개는 최근 귀향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가 복원했고 원주시는 주변 정비를 했다. 엄주호 원주시 문화재팀장은 “해외로 무단 반출된 석조 문화유산이 제자리로 복원된 첫 사례”라며 “원주와 강원을 대표하는 국보여서 전국적인 역사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불국사 회주 종상스님 8일 입적…세수 76세,법랍 60년

    불국사 회주 종상스님 8일 입적…세수 76세,법랍 60년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회주(會主) 종상스님이 8일 입적했다. 세수 76세, 법랍 60년. 영결식과 다비식은 12일 불국사에서 엄수될 전망이다. 불교계에 따르면 종상스님은 이날 오전 1시 2분쯤 경북 경주시 소재 불국사 정혜료에서 원적했다. 그는 지병이 악화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아오다가 전날 불국사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종상스님은 ‘미움도 싫어함도 깨끗이 씻어 버리니 헐뜯고 칭찬함이 어디에 붙겠는가. 초연히 생사를 해탈하니 금까마귀 하늘 뚫고 날아가네’라는 뜻을 담은 “혐시탕척 훼예하류 초연탈생사 금오철천비”(嫌猜蕩滌 毁譽何留 超然脫生死 金烏徹天飛)를 열반송으로 남겼다. 열반송은 승려가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의미한다. 1948년 전북 임실군에서 출생한 종상스님은 1965년 법주사에서 월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또 1973년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비구계)를 수지하고 이듬해 법주사 승가대를 졸업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석굴암 주지, 청계사 주지, 불국사 주지, 불교방송 이사, 동국대 이사 등을 지냈고 2020년 11월 조계종이 비구에게 주는 가장 높은 법계(法階)인 대종사(大宗師)에 올랐다. 종상스님은 2001년 출간한 저서 ‘기와를 갈아서 거울 만들기’(청계사)에서 “한국불교가 새롭게 달라지기 위해서는 먼저 불사문화(佛事文化)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며 “집 짓고 불상 조성하고 탑 만드는 일보다 사람 키우는 불사에 대해 원력을 모아야 한다”고 지론을 폈다.
  •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복원 완료…113년 만에 본래 모습으로 제자리에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복원 완료…113년 만에 본래 모습으로 제자리에

    국내외를 떠돌다 지난해 8월 고향으로 돌아온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원래 모습으로 제자리에 다시 선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강원 원주시는 오는 12일 오전 11시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앞 광장에서 지광국사탑 복원 기념식을 공동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에 승려에게 내리는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고려시대 탑 가운데 최고로 꼽히지만 우리 역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겪은 비운의 탑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무단으로 해체돼 서울로 옮겨졌고, 이듬해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다가 다시 돌아왔다. 조선총독부 명령으로 반환돼 1915년 이전에 경복궁 경내에 자리 잡았으나 6·25전쟁 때 유물 상단부가 폭격 피해로 파손됐다. 이후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서 있던 탑은 2016년 전면 해체되어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옮겨져 약 5년간 보존 처리를 받았고, 지난해 8월 해체된 부재 상태로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연구원은 지난해 말 복원 위치를 확정한 뒤 유적전시관 안에 탑의 하중을 지탱하고 진도 7 규모의 지진 충격을 버틸 수 있는 면진대를 설치해 탑을 완전히 올렸다. 본래 모습을 갖춘 탑은 앞으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며, 그간의 복원 과정을 담은 최종 보고서도 내년 중 발간된다.
  • 보고 또 봐도 남는 명작의 여운…가을의 깊이 더한 ‘라 바야데르’

    보고 또 봐도 남는 명작의 여운…가을의 깊이 더한 ‘라 바야데르’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재채기와 사랑 그리고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줬을 때의 박수와 함성 같은 것들이 그렇다. 국립발레단이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라 바야데르’는 관객들이 박수와 함성을 참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아이돌 콘서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열광적인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무용수들의 춤은 보고 또 봐도 남을 여운과 함께 가을의 깊이를 더했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인도 황금제국을 배경으로 힌두사원의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용맹한 전사 ‘솔로르’, 솔로르를 사랑한 공주 ‘감자티’와 니키아를 향해 욕망을 품는 최고 승려 ‘브라만’까지 엄격한 신분제도 속 주인공들의 사랑과 배신, 복수와 용서를 그린 대서사시다. 마리우스 페티파의 안무가 원전이지만 국립발레단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2013년 창작한 새로운 버전의 안무를 선보였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라 바야데르’는 이국적인 색채가 가득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무용수들의 분장과 의상, 무대 연출 등을 통해 눈앞에 인도를 생생하게 펼쳐냈다. 남녀 모두 노출이 많은 분장이었음에도 무용수들이 뽐낸 선명한 복근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였다. 국립발레단은 막과 막 사이에 음악만 흐르던 장면과 마임으로만 구성됐던 장면에 춤을 채워 넣었다. 발레 움직임이 풍성하게 추가되면서 단조로운 극 구성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막이 끝날 때마다 무용수들이 나와 인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사진과 영상으로 공연을 추억할 기회를 준 것도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SNS)에는 무용수들을 태그해 사진과 영상을 올린 게시물들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특히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최고무용수) 박세은(35)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32)의 동반 출연으로 엄청난 화제가 됐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무용수가 2009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 이후 15년 만에 한 무대에 서서 보여준 완벽한 호흡은 왜 두 사람이 세계적인 무용수인지를 증명했다. 솔로르로 출연한 김기민이 1막 시작과 함께 그랑주테(뛰는 동시에 다리를 앞뒤로 크게 벌리는 동작)로 등장하자마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동작을 멈추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다. 김기민이 한쪽에서 튀어나와 무대를 휘어잡는 짧은 찰나에는 초원을 달려가는 야생동물 혹은 트랙을 뛰어가는 육상 선수가 폭발시키는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서 그저 넋을 놓고 지켜보게 했다. 감탄한 관객들의 박수가 길어져 김기민도 멋쩍게 웃고 오케스트라가 다음 연주를 기다리는 일까지 생길 정도였다. 니키아를 맡은 박세은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관록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흠뻑 반하게 만들었다. 발레리나의 움직임이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박세은은 그 최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김기민과 호흡을 맞춘 2인무는 발레의 교본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했다. 두 사람이 후끈 달군 분위기에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3막 ‘망령들의 군무’까지 아름답게 펼쳐지면서 감동이 배가 됐다. 두 사람이 출연한 회차 이외에도 무용수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 처연하고도 화려한 춤으로 1막부터 하나도 버릴 것 없고 놓칠 수 없는 명작의 여운을 남겼다. 국립발레단의 어엿한 간판이 된 조연재(29)와 떠오르는 신예 안수연(21)도 아름답고도 슬픈 니키아를 표현해내며 왜 주역을 꿰찼는지 증명했다. 각자의 매력으로 완성한 니키아를 통해 작품을 더 풍성하게 만든 두 사람은 감자티로도 출연하며 국립발레단의 현재와 미래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 아빠 된 이승기, 삭발하고 스님 됐다…‘놀라운 근황’

    아빠 된 이승기, 삭발하고 스님 됐다…‘놀라운 근황’

    영화 ‘변호인’,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의 스크린 연출 컴백작 ‘대가족’이 12월 11일 개봉한다. 영화 ‘대가족’(각본연출 양우석,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게니우스)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30일 공개된 티저 예고편에서는 양우석 감독의 진정성 있는 연출과 함께 영화의 유쾌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예고편은 줄이 끊이지 않는 노포 맛집 평만옥을 운영하는 함무옥(김윤석)을 비추고 승려가 된 아들 함문석(이승기)의 라디오 생방송 장면으로 이동한다. 방송 중 주지스님 함문석에게 자식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대가족’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시작된다. 만두 맛집 사장님으로 변신한 김윤석과 삭발을 감행한 이승기의 케미스트리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과 아역 배우 김시우, 윤채나까지 와글와글한 배우들의 호흡은 올겨울 극장가에서 꼭 만나봐야 할 꽉 찬 영화의 재미를 예고한다. 잘 빚은 만두처럼 속이 꽉 찬 재미를 선사할 영화 ‘대가족’은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치고 올 겨울 12월 11일 극장 개봉한다. 한편 이승기는 지난해 배우 이다인과 결혼했다. 또 지난 2월에는 딸을 품에 안으며 아빠가 됐다.
  • 사복 입은 뉴진스님 1000만원 기부…스님들, 이 ‘한 마디’에 빵 터졌다

    사복 입은 뉴진스님 1000만원 기부…스님들, 이 ‘한 마디’에 빵 터졌다

    ‘뉴진스님’이라는 ‘부캐’(부캐릭터)로 활동 중인 개그맨 윤성호가 승려들의 노후 복지 기금으로 써달라며 아름다운동행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아름다운동행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설립한 공익기부재단이다. 윤성호는 지난 21일 승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했다. ‘왜 승려 복지를 위해 기부하느냐’는 물음에 윤성호는 “우리 형이 승려”라고 너스레를 떨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앞서 윤성호는 승복의 일종인 장삼을 입고 조계종을 방문했을 때는 자신은 ‘진짜 승려’이고 개그맨 윤성호는 ‘쌍둥이 동생’이라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날은 사복 차림이라서 뉴진스님이 아닌 쌍둥이 동생 윤성호라고 자처한 것이다. 윤성호는 원래 불교 신자라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조계사에서 오심스님에게 ‘뉴진’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뉴진’은 영어의 ‘뉴’(NEW)와 한자 ‘진’(進)을 결합해 ‘새롭게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지난해 5월 조계사 앞 사거리에서 열린 연등놀이 때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디제잉 공연을 한 것을 계기로 여러 불교 행사에 초청받으며 주목받았다.
  • “아내가 소림사 승려와 바람났다”…황당 스캔들에 결국

    “아내가 소림사 승려와 바람났다”…황당 스캔들에 결국

    중국에서 국영기업의 여성 직원이 2000년생 소림사 승려와 바람이 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중국 포털 바이두에는 소림사 승려와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폭로한 남편의 사연이 다수 올라왔다. 아내의 성은 장씨로 부부 사이에는 2명의 자녀가 있으며 아내는 33살이라고 한다. 황당한 불륜 사건은 지난 8월로 거슬러 간다. 자녀의 심신 단련을 위해 부부는 아이들을 소림사 여름 캠프에 등록했다. 이곳에서 장씨는 아이들을 지도할 24세의 승려를 만났고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감정을 싹틔우게 됐다. 직장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지내던 장씨는 승려에게 남편이 자신에게 정서적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며 외로움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결국 아내는 남편에게 9월 1일 이혼하자고 요구했다. 3일 후 장씨는 승려를 만나기 위해 기차표를 샀고 두 사람은 한 호텔에서 명상한다는 명분으로 약속을 잡고 만났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해당 승려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키가 크고 힘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남편은 호텔에 머물며 다정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이 콘돔과 응급피임약까지 샀던 사실까지 알게 됐다. 남편은 가정을 지키고자 했지만 이혼을 결심한 아내의 의지는 단호했다. 아내는 또다시 소림사 승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었고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호텔에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결국 남편은 해당 승려의 신분을 확인하고 소림사에 연락을 취했다. 남편은 두 사람의 행각을 폭로했고 소림사 측도 해당 승려의 문제를 확인하고 소림사에서 내쫓았다. 남편이 공개한 두 사람의 대화는 불교에 대한 모독이 담겼을 정도로 수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진 후 장씨의 회사인 삼협공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가족은 사회의 주춧돌이며, 바람은 당신의 인생을 망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라”라고 비판하는 의견, “참된 사랑이다”라고 옹호하는 의견이 엇갈렸다.
  • 뉴욕에 상륙한 절밥과 선명상…조계종, 맨해튼서 한국 불교 알린다

    뉴욕에 상륙한 절밥과 선명상…조계종, 맨해튼서 한국 불교 알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와 종무원 등 100여명 규모의 미국 방문단이 현지에서 한국 불교 알리기에 나선다. 4일 조계종에 따르면 방문단은 미국 뉴욕 일대에서 5~13일(현지시간) ‘2024 한미 전통불교문화교류’ 행사를 통해 전통 수행법 ‘간화선’을 바탕으로 한 선명상을 비롯해 한국 불교의 매력을 홍보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은 10일 예일대에서 선명상과 마음 건강을 주제로 특강도 펼친다. 예일대 학생들에게 5분간 선명상을 할 기회도 마련한다. 아울러 마음 챙김 명상(MBSR) 개발자인 존 카밧진(11일)이나 과학과 영성, 인간 의식 등에 관해 학제적 연구를 수행한 양자물리학자 미나스 카파토스 미국 채프먼대 석좌교수(9일) 등 석학들과 만나 선명상과 현대명상, 과학과 불교의 접점도 모색한다. 11일에는 유엔(UN) 본부를 방문해 세계 명상의 날 지정도 제안할 계획이다. 5일 뉴욕에서 열리는 ‘2024 코리안 페스티벌’과 7∼13일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예정된 연등회 전통등 전시 및 사진 영상전을 활용해 불교문화를 소개한다. 사찰음식 명장인 정관스님은 11일 뉴욕 맨해튼 소재 고담홀에서 조계종이 주뉴욕한국총영사관과 공동 개최하는 만찬에서 귀빈들에게 사찰 음식을 선보이고 공양에 담긴 불교 철학 등을 알린다. 해외특별교구 소속 사찰인 원각사(뉴욕주 소재)의 창건 50주년을 기념하는 법회를 13일 봉행한다. 진우스님은 미국 체류 중 6·25 참전 용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메달도 수여할 계획이다.
  • 월정사 “일본에 있던 사명대사 유묵 확보…4일부터 전시”

    월정사 “일본에 있던 사명대사 유묵 확보…4일부터 전시”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일본에 남아 있던 사명대사(1544~1610)의 유묵 1점을 확보해 4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고 3일 밝혔다. 유묵은 가로 30㎝, 세로 120㎝ 정도의 크기다. 한 독지가의 기증으로 소장하게 됐다는 게 성보박물관의 설명이다. 박물관이 사명대사 유묵이라며 공개한 사진을 보면 세로 방향으로 길게 표구된 종이 중앙에 ‘불심종조달마원각대사’(佛心宗祖達麽圓覺大師)라고 써있다. 불심종은 선종을, 조(祖)는 조사(祖師)를 가리키며 원각대사는 당(唐) 대종(代宗)이 달마대사에게 올린 추존(推尊) 시호(諡號)를 의미한다고 박물관은 풀이했다. 오른쪽에는 ‘만력을사춘 이보제 남유일본 이시구해사 부득사 감이서지’(萬曆乙巳春以普濟南遊日本以是求楷寫不得辭敢以書之)라고 작게 기재된 것은 ‘만력 을사년(1605년) 봄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남쪽 일본에 와 있을 때 해서(楷書)로 써달라고 요구하길래 사양할 수 없어서 감히 쓴다’는 취지라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왼쪽에는 ‘경산 37대손 사명사문 송운운운’(徑山三十七代孫泗溟沙門松雲云云)이라고 적혔는데, 이는 붉은 도장과 함께 낙관에 해당한다고 박물관 측은 덧붙였다. 이에 따라 성보박물관은 “사명대사께서 1605년 임란 직후 대일(對日) 강화 사절로 일본 교토에 갔을 때 일본 승려에게 써 준 글로 추정된다”고 해석했다. 아직 국가기관 등이나 공적인 위원회의 판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박물관 측은 향후 국가문화 유산 등록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 발레야 아이돌 콘서트야? 역대급 함성 터진 ‘라 바야데르’

    발레야 아이돌 콘서트야? 역대급 함성 터진 ‘라 바야데르’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가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지난 5월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연달아 대극장 객석을 사로잡은 대작을 선보이며 창단 40주년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줬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27~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 바야데르’를 선보였다.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페티파(1818~1910)가 1877년 만든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5대 예술감독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87)가 1999년 초연을 올렸고 이번에 6년 만에 돌아왔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인도 황금제국을 배경으로 힌두사원의 아름다운 무희 ‘니키야’와 라자왕의 비호를 받는 용맹한 전사 ‘솔로르’, 솔로르를 사랑한 공주 ‘감자티’와 니키야를 향해 욕망을 품는 최고 승려 ‘브라민’까지 엄격한 신분제도 속 주인공들의 사랑과 배신, 복수와 용서를 그린 대서사시다. 작품의 서사도 탄탄하지만 ‘라 바야데르’는 화려한 볼거리, 감미로운 음악, 쉴 틈 없는 춤의 향연 등 즐길 거리가 차고 넘쳤다. 총 3막으로 이뤄졌는데 유니버설발레단은 1막부터 하나도 버릴 것 없고 놓칠 수 없는 공연으로 관객들을 제대로 반하게 만들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라 바야데르’가 공들인 작품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대 한쪽에 놓인 불상의 뾰족한 정상계주(머리 가장 윗부분)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승려들의 복장은 남방불교의 특징을 제대로 구현했고, 나무들의 크기와 밀도는 인도 지역에 온 것 같은 풍성함을 자랑했다. 조각들 역시 지난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막을 내린, 남인도 조각상을 소개했던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디테일을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연출이었다. 여기에 인도 왕국의 휘황찬란한 궁전과 장신구들도 눈을 못 떼게 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 반짝이는 장신구들은 작품을 더 반짝반짝 빛내며 발레의 황홀함을 극대화했다. 15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400여벌의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무대가 어우러져 3시간에 육박하는 공연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금방 지나갔다. 아무리 볼거리가 풍성해도 발레 공연의 본질인 춤이 떨어진다면 결국 말짱 도루묵일 터. ‘라 바야데르’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춤에 있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무용수들의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 처연하고도 화려한 춤들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을 여러 차례 만들어내며 발레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춤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터져 나온 관객들의 함성은 발레 공연장을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게 만들었다. 교양 있기로 유명한 발레 팬들에게서 이 정도 탄성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최고를 보여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라 바야데르’가 의미가 있던 점은 또 있었다. 바로 29일 마지막 공연에서 차세대 한국 무용을 빛낼 전민철(20)이 전막 공연에 데뷔했다는 것. 헝가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약하다 지난해 유니버설발레단에 합류한 이유림(27)도 전민철과 함께 짝을 이뤄 선배들에 밀리지 않는 실력으로 무대에서 빛났는데 차세대 스타들이 같이 주연으로 나섰다는 점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공연이었다. 무대 인사 때 관객들이 보낸 엄청난 함성과 박수는 새로운 발레 스타들을 향한 관객들의 기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 범어사를 품은 부산의 아름다운 진산 금정산 [두시기행문]

    범어사를 품은 부산의 아름다운 진산 금정산 [두시기행문]

    금정산(金井山)은 부산을 대표하는 진산이다. 부산 금정·북구와 경남 양산시 동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금정산은 6000~7000만년 전부터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진 화강암질 마그마가 식어 굳어진 화강암이 융기해 만들어졌다. 금정산에는 화강암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지형과 역사 유적지가 분포해 있다. 금정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당봉이 있는 801.5m로 연말연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고당봉에서 경남 김해시와 창원시 진해구는 물론 일본 대마도까지 내려 볼 수 있다. 한자로 쓰인 고당봉의 표지석은 2016년 8월 1일 낙뢰를 맞아 파손되었으나 10월 26일 한글로 쓰인 석비가 다시 설치됐다. 최근 금정산은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수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힘쓰고 있으나 아직도 일부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 협의가 진행중이다. 금정산에 있는 산성의 둘레는 1만 8845m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조선 숙종 대인 1701~1703년 사이 쌓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상에 능선부터 계곡을 따라 축성되어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많은 성곽이 유실되었으나 복원 작업을 통해 거의 대부분을 복원하게 되었다. 산성에 만들어질 당시 금정산 자락 해발 450m에 화전민촌이 형성되었고 이후 산골마을이 만들어지는데 이곳을 산성마을이라 칭한다. 이곳 산성마을에서는 유독 막걸리가 유명한데 금정산 자락의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빚기 시작했다. 누룩이 자연스럽게 막거리로 만들어지고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우리나라 민속 막걸리 1호인 산성막걸리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의 마을 사람들은 농사대신 술을 빚어 생계를 유지했는데 오죽했으면 범어사의 승려들도 누룩을 빚어 생계를 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동쪽 산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이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사찰로 불릴 정도로 이름난 곳으로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했다. 국보인 삼국유사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는 금빛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 해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쓰고 그곳에 사찰을 범어사로 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또한 1950년 동산스님이 불교정화 운동을 주도하는 등 한국 근대불교를 이끌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 거기에 풍경도 좋아 외국인들도 여행지로 방문하기도 한다. 범어사는 총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첫번째 문인 조계문을 지나 두번째 문인 천왕문을 지난 뒤 3번째 문인 불이문을 지나야 비로소 사찰의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각 문마다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문인 불이문의 경우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의미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지만 아직도 웅장하고 위엄있는 사찰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범어사에서 원효암으로 가는 숲길에는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많고 가을철 단풍 명소로도 방문하기 좋다 금정산의 등산코스는 다양하게 있는데 명륜역 근처의 금강공원에서 올라가거나, 온천장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로 갈 수 있는 방법 등 여러 코스가 있다. 가장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등산 코스로는 범어사를 통해 북문과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가 인기가 좋다.
  • “식민사관” “고증 거쳐”… 2년째 자부심 못 펼치는 ‘전라도 천년사’ [이슈&이슈]

    “식민사관” “고증 거쳐”… 2년째 자부심 못 펼치는 ‘전라도 천년사’ [이슈&이슈]

    1만 3559쪽에 담은 5000년 역사‘일본서기’ 속 지명·인명 사용 비판고조선 역사 축소·낙후 표현도 논란 “日 극우 말 인용” vs “제한적 참고”전북 “다른 의견 담은 별책 발간”시민단체·전남 “전면 수정·폐지를”전라도 (오)천년 역사를 집대성한 ‘전라도 천년사’. 각계각층 전문가들이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만든 이 책은 지난 2022년 완성됐다. 그러나 일본서기 속 고대 한반도의 일제 사관 문제가 다시금 불거졌고, 역사 왜곡 논란이 확산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명과 역사적 표현의 적절성에 대해 역사 전문가와 시민단체, 3개 시도 등의 입장 간극이 크다. 3개 시도는 책이 만들어진 그해에 진행하려던 봉정식도 취소했다. 자랑스러운 호남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시작된 천년사 편찬이 되레 지역 갈등과 논란만 깊어지게 하는 분위기다.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라는 명칭이 생긴 지 천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호남권 3개 시도(광주시·전남도·전북도)가 공동 제작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역사와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 수백 명이 참여했다. 당초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 전라도 정명(定名) 천년(2018년)까지 1000년 역사를 기록하려고 했으나 편찬 범위를 확대했다. 5000년사를 담았다. 집필진도 112명에서 213명으로 대폭 늘리고 예산도 19억원에서 24억원으로 증액했다. 편찬위는 선사·고대,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 근대, 현대 등 시대별로 전라도의 모든 것을 연구했다. 격동의 근현대 한국사를 향토사와 연계해 세세하게 조명했다. 그 결과 5년여 만에 34권 1만 3559쪽에 달하는 책이 만들어졌다. 방대한 역사가 기록된 만큼 역사적 표현과 해석을 놓고 의견이 다양하다. 특히 시민단체는 전라도 천년사가 ‘일제 식민사관’에 기초해 서술됐다고 주장한다. 일본서기의 지명과 인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는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쓰인 ‘일본서기’ 기술 내용을 차용했다”고 강조한다. 남원을 기문, 장수와 고령을 반파, 강진과 해남을 침미다례, 구례와 순천을 사타라는 임나 지명으로 기술해 전라도민을 일본의 후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하고 전라도를 고조선에서 제외한 점과 전라도를 역사 흐름에서 낙후지역으로 기술한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만약 이대로 편찬되면 일본 극우파에게 ‘고토 회복’이란 구실을 줘 훗날 영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주장에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특히 전남지역의 반발이 크다. 전남도의회는 지난해 성명을 발표하고 전라도 천년사의 전면 폐기를 촉구했다. 전남도의회 의원들은 “고대사 기술 과정에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왜곡해 우리의 기초적 역사관을 통째로 왜곡하는 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뿐만 아니라 일본 극우 사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 왜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을 인용한다는 것은 이의 신청을 떠나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 측은 교차 검증을 위해 여러 자료 중 하나로 일본서기를 참고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간 축적된 고고학 자료와의 교차 확인을 필수적으로 거친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한반도에 비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제 강점기의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편찬위의 입장이다. 일본서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꼽힌다. 그러나 8세기 초 야마토 정권이 당시의 황국사관을 소급해 태초부터 일본은 원래 통일돼 있었던 것처럼, 단일 계보의 천황이 통치해 온 것처럼 조작됐다는 게 국내 학계의 분석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도 폐기됐다. 다만 한국학계는 일찍부터 국내 고대사 연구 과정에서 부족한 자료를 보충하고자 교차 검증을 통해 일본서기의 내용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서기는 황국사관으로 왜곡되고 변조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 기록 속에는 고대 한반도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일본서기가 만들어질 당시 백제계 사서(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 등)에서 백제사 관련 이야기들을 상당 부분 원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편찬위에 따르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준 노리사치계, 일본 세계유산 1호인 법륭사 금당에 벽화를 그린 고구려 승려 담징 등이 모두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지명이나 인명 사용만으로 무조건 ‘식민사학’이라 한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간행된 모든 교과서와 대한민국의 대표 역사기관이 간행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신편한국사도 식민사관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편찬위의 주장이다. 편찬위는 “백제가 침미다례를 정복한 이야기나 백제와 반파가 기문을 둘러싸고 쟁패를 벌였던 이야기 등의 백제계 원자료가 일본서기에서는 일본 천황이 백제에 그 땅들을 마치 ‘하사’한 것처럼 조작 삽입한 것으로 보려는 게 대표적 사례”라면서 “그러나 연구자 그 누구도 일본 천황이 백제에 ‘하사’했다는 일본서기의 조작된 문구를 인정하지는 않고, 다만 백제사나 가야사 복원을 위해서만 활용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전북은 지적 받은 내용을 별책에 담으면 된다고 판단하고 제작을 마쳤다. 반면 시민단체와 전남은 전면 수정이 아니면 폐지를 요구한다. 광주시는 당초 천년사 발간에 찬성했지만 최근 반대로 입장을 선회한 분위기다. 편찬위 위원장들은 그동안 반발이 심한 전남을 직접 찾아 난상 토론도 벌였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만 개진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위원들은 전라도 천년사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의 일방적 주장만을 받아들여 의회 성명서를 발표한 전남도의회에 유감을 표했다. 지난해 문체위 국감에서도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원장과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대표가 출석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이후 광주·전남·전북을 지역구로 둔 당시 여야 문체위원들이 3개 시·도지사에게 “책자 수정 발간이 필요하다”는 서한문을 보냈다. 의원들은 “책자 편찬위가 문제 된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별책으로 묶어 담겠다고 했지만 이는 올바른 방안이 아니다”라며 “분리된 별책이 아니라 논쟁이 되는 부분에 다른 학설·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담아야 한다”고 수정 발간을 요청했다. 편찬위는 “그간 축적된 고고학 자료와의 교차 확인을 필수적으로 거친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한반도에 비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제강점기의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다양한 의견을 모아 별책으로 알리면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자연과 조화 그리고 건축의 승리, 일본 교토 청수사 [한ZOOM]

    자연과 조화 그리고 건축의 승리, 일본 교토 청수사 [한ZOOM]

    한반도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들은 이들을 ‘물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에서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불렀다. 고조선의 멸망,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초기 도래인들은 일본의 정치, 문화, 사회체제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8세기 후반, 백제 계통의 도래인 출신으로 일본 역사에서 최초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다무라마로는 사슴사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아름다운 물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물소리가 시작된 샘물을 찾았는데 그곳에서는 연진(延鎮)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다무라마로는 연진스님을 통해 살생을 뉘우쳤고, 2년 동안 연진스님과 함께 절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청수사’(淸水寺·키요미즈데라)라고 전해진다. 청수사의 부침청수사는 교토시 청수산(淸水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에 있는 맑은 샘물이 때문에 ‘맑을 청’(淸),‘물 수’(水)를 붙여 청수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그 맑은 샘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 ‘소리 음’(音), ‘깃털 우’(羽)를 붙여 음우산(音羽山·오토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수사는 바로 그 샘물이 있는 ‘오토와 폭포’가 있는 곳에 세워졌다. 1467년 일본에서 ‘오닌의 난’이 일어났다. 보통 난의 이름에는 ‘황건적의 난’처럼 난을 일으킨 사람이나 조직의 이름을 붙이지만, ‘오닌의 난’의 오닌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1467년이 일본 연호인 오닌(應仁)을 붙인 것이다. 다이묘들끼리 치열하게 싸운 오닌의 난은 1477년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 난으로 교토는 불바다가 되었다. 청수사 역시 오닌의 난 기간 동안 완전히 소실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복원과 소실을 거듭하다가 에도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복원된 것은 아니며,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사찰과 승려들의 특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찰과 불상을 훼손한 ‘폐불훼석’(廢佛毀釋)으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청수사의 정수(精髓)는 역시 본당이다. 본당은 절벽에 세워져 있는데 절벽이라는 제약조건을 역이용해서 본당 아래쪽에 느티나무로 된 나무기둥을 받쳐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본당 아래 나무기둥은 길이가 무려 12미터나 되는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정밀하게 조립하는 방법으로 본당을 떠받치고 있어 건축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오토와 폭포, 산넨자카 & 니넨자카청수사 본당 아래로 내려가면 청수사의 기원이 된 샘물이 떨어지는 ‘오토와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이 폭포수 줄기는 세 갈래로 나누어져 아래로 떨어지는데 왼쪽부터 학업, 연애, 건강에 효험이 있다하여 이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명심해야 할 것은 두 가지까지는 마셔도 효험이 있지만 세 가지를 모두 마시면 오히려 불행이 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청수사를 나오면 아래로 향하는 언덕길을 따라 기념품과 간식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길 양쪽으로 즐비한데, 이 곳을 ‘청수판’(淸水坂·키요미즈자카)라고 한다. 키요미즈자카를 따라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100년 이상 된 에도시대 목조건물들이 즐비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삼년판’(三年坂·산넨자카)와 ‘이년판(二年坂·니넨자카)’라고 부른다. 이 길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 길에서 넘어지면 3년 동안 또는 2년 동안 재수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이 길에서 넘어지더라도 부적이나 호리병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액운을 물리칠 수가 있다고 하며, 그 부적과 호리병은 길가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청수사를 내려오면서 주변 상점들을 하나하나 유심이 살펴보았다.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오래된 상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인사동 거리가 떠올랐다. 인사동은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전통문화 거리로 탈바꿈한 곳이다. 처음 인사동 거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의 인사동은 그때의 인사동과는 자못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신식건물도 많이 들어섰고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물건 보다는 관광객들에게 잘 팔릴 수 있는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 오히려 더 많아졌다. 이 곳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의 구시가지, 구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많은 상점들이 예전의 모습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생계가 가능할까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K-컬처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도 정책적인 관점에서 모두 함께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 [씨줄날줄] 日 아스카 세계유산 추진

    [씨줄날줄] 日 아스카 세계유산 추진

    우리 역사학계는 ‘일본서기’를 ‘맹독(猛毒)만 잘 제거하면 고급스러운 맛을 볼 수 있는 복어’에 비유하곤 한다.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는 일왕 중심 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한 만큼 윤색되거나 굴절된 내용이 적지 않다.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을 모두 일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고대사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 많으니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서기’는 ‘552년 임신년 백제 성명왕(聖明王·성왕)이 승려 노리사치계 등을 보내 금동석가상과 경전, 번개(幡蓋·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깃발이나 우산) 등을 헌상했다’고 적었다. 문화는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져 가기 마련인데 불교를 알려준 것을 ‘헌상’이라 했으니 어색하기만 하다. ‘일본서기’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창건하는 과정에도 588년 백제로부터 건축 기술자가 다수 초청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백제 기술자들은 당연히 사원 건축에 머물지 않고 당시 일본 야마토 조정의 궁궐 조성에도 적극 참여했을 것이다. 일본의 아스카시대는 불교가 발전하고 특히 7세기 들어서면서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당시 정치의 중심이 나라분지 남쪽 아스카 지방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국과 중국의 각종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사회 체제를 혁신한 결과다. 불교와 함께 유교와 도교 등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수용해 국제성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본이 ‘아스카 후지와라 궁도(宮都)-고대 수도의 고고학 유적지 및 관련 문화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일본 정부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일본과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 사이의 문화·기술적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주변국도 수긍하는 세계유산 등재가 될 수도 있을 듯싶다.
  • 영원한 사랑과 무소유의 상징, 길상사 [한ZOOM]

    영원한 사랑과 무소유의 상징, 길상사 [한ZOOM]

    1932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박재철(朴在喆)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평범하게 살았던 이 아이는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을 계기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 201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승려의 삶을 살았다. 그가 떠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를 본명 ‘박재철’보다 법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무소유’(無所有)의 가치를 남기고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신 법정(法頂)스님이다. 1998년 법정스님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길상사(吉祥寺)를 열었다. 길상사를 연 후에도 법정스님은 강원도 오두막에서 살면서 매년 봄과 가을 정기법회 때에만 길상사로 돌아와 법문을 설파했다. 폐암판정을 받은 법정스님은 2009년 봄 정기법회를 마지막으로 2010년 길상사에서 수많은 신도들과 승려들의 애도 속에서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한과 백석법정스님이 열었던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요정(料亭)이었다. 요정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데, 조선의 기생문화와 일본의 접대문화가 합쳐진 것이다. 대원각의 주인은 김영한(1916~1999)이었다. 그녀는 열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먹고 살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뛰어난 미모에 문학과 음악에 대한 탁월한 재능까지 겸비한 그녀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바꾼 남자가 나타났다. 시인이자 교사였던 백석(1912~1996)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서로 한 눈에 반한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만큼 뜨겁게 사랑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비난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은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한 백석과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한 김영한은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아야 했지만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깊어져만 갔다. 남쪽에 남은 김영한은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를 그리워했다. 김영한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과에 입학했다. 백석을 무작정 그리워하기 보다는 그의 인생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김영한은 1953년 대학교 졸업장을 손위 쥐었고 이후에는 책을 출간하며 북에서 백석이 가고 있을 것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군사정권의 요정에서 무소유의 상징으로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던 김영한은 우연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법정스님을 찾아가 대원각을 시주하겠다고 제안했다. 7000평의 대지와 40채의 건물인 대원각의 당시 가치는 1000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법정스님은 김영한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김영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약 10년 동안 법정스님에게 계속 대원각을 시주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결국 1995년 법정스님은 김영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길상사를 세웠고, 김영한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1999년 김영한이 세상을 떠났다. 백석을 향하던 마음은 여전히 남겨둔 채 그녀의 육신은 화장해서 길상사 뒤뜰에 뿌려졌다. 그리고 길상사 한편에는 여전히 백석을 그리워하고 있을 그녀의 공덕비만이 남아 있다.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한 그리움법정스님이 정의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에게는 백석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불필요한 무소유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백석에 대한 그녀의 절실한 그리움은 우연히 읽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로 인해 파동을 만난 것이었다. ‘길상화’가 된 김영한은 진정으로 원하던 남은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비록 사랑했던 백석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이 생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지금도 웃으며 들려주고 있을지 모른다.
  • ‘조선 왕실 기도처’ 경기 북부의 불교 문화 유산…서울 조계사서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

    ‘조선 왕실 기도처’ 경기 북부의 불교 문화 유산…서울 조계사서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

    경기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등 처음으로 산문을 나선 경기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불교 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은 4일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 경내 불교중앙박물관에서 ‘큰 법 풀어 바다 이루고, 교종본찰 봉선사’전 개막식을 열고 보물 15건 등 총 93건 262점의 문화유산을 선보였다.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경기 남양주 봉선사와 불교중앙박물관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교종 사찰인 봉선사의 본·말사 주요 성보들과 경남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여러 사찰과 기관 26곳에서 소장한 문화유산들이 대거 포함됐다. 불교는 조선 왕조에서 이념적으로 억압받았지만, 왕비와 후궁,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수많은 일원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대대로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도성과 가깝고 능(陵), 원(園), 묘(墓)와 인접한 경기 북부 지역의 사찰은 조선 왕실의 기도처로 주목 받았다. 수많은 불사를 주도하는 등 왕실의 염원은 성보를 매개로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성보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3개 주제로 나뉘어 진행된다. 1전시실에선 ‘봉선사, 산문을 열다’를 주제로 봉선사의 주요 역사와 성보 문화유산을 조명한다. 가평 현등사 ‘범종’,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이상 보물), ‘치성광불회도’(경기 유형)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고,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세조 어진 초본’과 해인사성보박물관의 ‘세조대왕 진영’이 최초로 비교 전시된다. 1, 2전시실은 ‘불교, 경기 북부를 물들이다’가 주제다.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파주 보광사 ‘범종’ 등 봉선사 말사의 대표 문화유산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약사불회도’,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상 보물), 가평 현등사 ‘수월관음도’(경기 유형) 등 조선 왕실과 연관이 있는 성보들이 전시된다. 아울러 해인사성보박물관 소장 ‘감지금니문수최상승무생계법’,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이상 보물) 최초로 비교 전시된다. 근대 불교회화의 거점이었던 19세기 남양주 흥국사 등에서 활동한 승려장인과 불교회화 작품도 조망한다. 3전시실은 ‘선지식, 미래를 꿈꾸다’를 주제로 독립운동, 교육불사, 우리말 번역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초석을 닦은 월초, 운허 스님 등 근현대 봉선사 선지식의 업적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은 10월 2일~20일, 국립중앙박물관 ‘약사불회도’는 오는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의 ‘세조 어진 초본’은 11월 3일까지만 한정 전시된다. 입장은 무료다.
  • [이붕우의 뒷모습 세상] 흔적과 기억

    [이붕우의 뒷모습 세상] 흔적과 기억

    시간은 공간에 자국을 남긴다. 무쇠도, 돌덩이도 시간을 담을수록 변한다. 연한 풀, 무른 나무와 사람은 더욱 그렇다. 예전에 살던 집이 궁금해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적이 있다. 무심한 세월에 집 전체가 폐허가 됐다. 월세 살던 단칸방 툇마루는 주저앉았고, 창호지가 너덜너덜한 문짝은 돌쩌귀가 떨어져 나가 삐딱하게 매달려 있었다. 호방하던 하사관 출신 바깥주인과 맛이 일품인 고추장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워 주시던 안주인은 세상을 떠났고, 그 집 딸도 지천명의 나이로 계곡 옆에 작은 가게를 내고 행락객을 상대로 무얼 팔고 있었다. 서로 한눈에 알아봤지만 반가워하는 그녀나 나와 아내의 얼굴은 더이상 이십대가 아니었다. 현실이 기억과 부딪치는 낯선 순간이었다. 만사가 고요할 때면 시간과 공간, 사람이 서로 얽힌 옛것이 생각나곤 한다. 대부분 사라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헤지고 부서졌다. 알지 못하던 것들이 불현듯 나타나는가 하면 상상조차 않던 새로운 존재들이 생겨나 그들의 시간을 지배하고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앞모습으로 다가온 것들은 어느새 뒷모습으로 사라지고 또 새로운 앞모습이 쉼없이 왔다 간다. 변치 말자며 손가락을 걸던 별처럼 반짝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열일곱 살 때 일본 도쿄에서 처음 만난 아사코의 기억을 떠올린다. 청순한 어린 소녀에 대한 회상이 애틋하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에 대한 피천득의 회한이 하도 깊어 독자조차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희미해진 기억이 사실을 희롱할 때가 있다. 기억의 환상과 왜곡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을 해체하고 포장한다. 기억이란 과거의 어느 시간과 공간, 거기에서 사람과 사물이 남긴 흔적이다. 그 흔적은 기억의 재생 과정에서 보태고 덜어지면서 상상의 세계에 빠지기 일쑤다. 그날 어렵사리 찾은 이십대 시절 흔적은 폐허로 다가와 나의 소중한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고 말았다. 피천득이 만난 아사코가 그랬듯이…. 시절인연. 명나라 승려 운서주굉의 말이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쳐 깨져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 그렇다. 가는 인연 붙잡지 말고 오는 인연 마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먼지 쌓인 옛것을 찾아 낡고 헤진 지금의 앞모습을 보려 애쓰지 말고 그 시절 그 인연이 만든 흔적을 그저 소중히 묻어 둔 채 앞으로 곧장 가는 게 서로 뒷모습이 된 이들의 길이 아닐까 한다. 그 시절, 그 흔적, 그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이붕우 작가·전 국방홍보원장
  •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악 소리, 곡성 동악산 산행길 [두시기행문]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악 소리, 곡성 동악산 산행길 [두시기행문]

    전남 곡성군 북쪽에 있는 동악산(動樂山·736.8m)은 곡성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원효대사가 동악산 최고봉인 성출봉 아래 길상암을 짓고 수행하던 중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굽어보는 꿈을 꾼 뒤 정상에 올라가보니 1척 남짓한 아라한(阿羅漢·불교 수행자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 석상들이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이후 원효대사가 열일곱 차례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셨고, 독경을 할때 마다 천상에서 음악이 들리며 온 산에 퍼졌다 한다. 이로인해 ‘풍악이 울린다’라는 의미에서 동악산으로 불리게 됐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도림사이후 신라 무열왕 7년(660년) 때 원효대사가 화엄사로부터 이주하면서 동악산 아래 도림사를 창건했다. 처음에는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로 신덕사라 불리었으나 도를 닦는 승려들의 수풀처럼 모이는 곳이라 하여 도림사로 바뀌었다. 동악산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도림사 계곡은 폭포와 노송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도림사계곡은 지방 기념물 101호로 지정됐다. 깊은 골짜기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산세들과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반석들이 있어 예부터 풍류객들의 많이 찾았다. 반석에는 옛 선현들의 문구가 음각되어 있어 그들의 풍류를 엿보고 그 위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는 묘미가 있다. 반석 위에 흐르는 맑은 계곡계곡 정상 부근에는 전망이 좋아 쉬어 간다는 높이 40m, 넓이 30평에 달하는 신선바위가 절경을 만들고 있다.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는 동악산에는 그 두 산을 가르는 배넘이재가 있고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는 형제봉이라 표기해 놓았다. 다만 형제봉으로 등산로가 잘 형성되어 있어 주봉은 형제봉으로 알려져 있다. 동악산의 인기코스는 도림사를 시작으로 배넘어재를 지나 정상에 이른 뒤 신선바위로 하산하는 코스로 왕복3시간 반정도 소요가 된다. 도림사 코스의 시작과 끝에는 도림사의 암반계류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새겨 놓은 이 음각은 암반계류의 절경마다 일곡(一曲)부터 구곡(九曲)까지 새겨 놓았는데, 세월의 풍파에 이기지 못해 깨지거나 도로확장 등의 명목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노송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절경도림사 입구 주차장 부근에 2곡,4곡,5곡 등의 곡 이름과 청류동, 단심대, 낙락대 등의 지명, 요완완초 음풍농월(樂山玩草吟風弄月)과 같은 시구, 아무개 장구처라 하며 자기 이름이나 호를 새긴 크고 작은 각자들은 마치 설악산의 비선대나 두타산 무릉계에서 처럼 발견할 수 있다. 시원한 계곡 바람과 함께 걷다 보면 암반과 어우러진 계곡의 멋과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동악산은 곡성 시내와 인접해 있어 약 10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하다.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움이 없고 인근의 관광지를 함께 방문하기 좋다. 특히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등을 즐길 수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과 일출 전 물안개가 아름다운 섬진강 침실습지도 함께 방문하면 좋다. 다만 교통편이 많이 없어 승용차로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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