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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아시아시대-성장의 원천] 템플스테이 참석 아시아 유학생 4인 참선 세계화 좌담회

    [新아시아시대-성장의 원천] 템플스테이 참석 아시아 유학생 4인 참선 세계화 좌담회

    문화가 경쟁력의 첨병이자 원천인 시대다. 한국의 경제력 지위에 비해 국가브랜드 인지도는 상당히 낮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와 민간에서 힘을 모아 ‘한국 고유의 것’을 찾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려는 이유다. 외국인들이 매력적으로 바라보는 참선과 한식의 세계화는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진단했다. 불교는 세계적으로 퍼져 있지만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看話禪)’의 전통이 남은 곳은 한국뿐이다. 그 때문에 화두를 들고 마음을 닦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승려들이 부지기수다. 지난해 템플스테이를 통해 참선을 체험한 외국인도 2만명이나 된다. 간화선이 고유한 한국 불교의 전통이 된 가운데 한국의 참선문화를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에 대중화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서울을 찾은 아시아계 유학생 네 명에게 한국 참선문화의 현주소와 세계화를 위한 대책 등을 들어봤다. 조선계 중국인 이미옥(26)씨와 카자흐스탄 고려인 안젤리카 김(20),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김흠(21), 중국인 가전초(21)씨 등이 그들이다. 한국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간 생활했다. 이들은 지난달 27~28일 서울 화계사(주지 수경 스님)에서 템플스테이를 직접 체험했다. 화계사는 국제선센터를 마련하고 매주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열고 있다. 좌담회는 지난달 29일 서울신문사에서 열렸다. →일정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이미옥(이하 이) :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날이 밝을 때까지 참선한 뒤 예불을 드렸고, 오전에는 울력과 산행, 오후에는 다시 참선을 했다. 참선은 하루 네 번 정도 한다. →다들 템플스테이가 처음인데, 참선을 처음 해본 느낌이 어떤가. 이 : 잡생각이 많이 들더라. 가려움, 통증 같은 몸의 감각부터 사소한 걱정거리들, 또 왜 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이런 고민들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안젤리카 김(이하 안) : 계속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받던 스트레스를 잊고 푹 쉬어 본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주변에서 자동차나 휴대전화 벨소리 등 소란스러운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으니까 긴장이 풀리고 편해지더라. 가전초(이하 가) : 스님들이 하시는 걸 보니 쉬워 보였는데 한 시간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잠이 너무 왔다.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고 염불소리조차도 너무 조용한 시간이었다. 김흠(이하 김) : 참선은 혼자 하는 것 같으면서도 깨고 나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이번 체험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 안 : 공동 생활 속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던 게 좋았다. 바쁜 일정이 아니라 천천히 생활하니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평소와 달리 전통을 화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 좋았다. 또 다도와 아리랑을 배우는 코너도 있어 유익했다. 김 : 새벽 3시에 일어나 등산, 참선, 울력 등을 조금도 쉴 새 없이 해나가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의 근면성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가 : 잠도 안 자고 3000배를 하는 사람도 봤다. 108배를 하면서 나는 20개만 해도 힘들던데. 그런 걸 보면 한국인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한계도 있었을 듯한데. 이 : 동양권은 모두 어느 정도 불교적 바탕이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사람들이 참선수행만으로 한국의 문화가 특색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분명 한·중·일과 동남아지역 불교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인들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사찰을 둘러싼 자연환경이나 음식 등 생활 분야 체험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됐다. →동아시아 지역은 한류열풍이 한창이었는데 정신문화 부분은 어떤가. 이 :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많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가요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다. 전통보다는 현대적인 발전상이나 유럽 문화의 모방을 보여주는 게 많다. 인기드라마였던 ‘대장금’도 배경은 과거지만, 거기에서도 참선수행 같은 전통 불교문화나 전통사상을 소개한 적은 없다. 나 역시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체험에서 힘들었던 점은 뭔가. 가 : 방이 너무 좁았다. 다섯 명이 함께 잠을 잤는데, 그런 게 익숙지 않아 잠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안 : 더운 건 참을 만했다. 하지만 침대 없이 자려니 어깨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한순간에 생활패턴이 바뀌니 자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 의사소통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화계사는 외국인을 위한 기반이 잘 갖춰진 곳이었고, 스님들의 영어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영어로만 진행하다 보니 다른 언어권 사람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수행은 몸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두를 던지는 등 말로 전할 부분도 있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되더라. →해외에서 같은 수행을 한다고 할 때 보완할 점은. 이 : 정신적인 바탕을 알아야 체험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언어 번역이 아니라 그 수행이 갖는 역사적·사상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진 통역인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이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길 수는 없다. 프로그램 자체는 옮겨가더라도 운영은 장소에 따라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안 : 잠자리나 음식 등 생활의 불편은 있었지만, 나는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편한 방식으로 모두 바꾸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통적인 방식대로 외국인들이 생활해 보는 것도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고 무얼 먹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체험하게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김 : 나는 아직 왜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고 또 삭발을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참선수행이나 사찰체험을 해외에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어떤 의미이고 무슨 메시지가 있는지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문화적인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얻어 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 : 나역시 금기라서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알았더라면 밥을 먹는 순간에도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체험 전에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中언론 “왕조현 비구니 됐다”

    中언론 “왕조현 비구니 됐다”

    홍콩 영화배우 왕조현이 여자승려가 됐다는 기사가 중국언론에 연일 보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 7일과 8일 연이어 배우 왕조현이 지난 6월께 캐나나 밴쿠버에 소재한 화교계 불사로 출가했다고 보도했다. 대만 홍콩 현지 언론을 인용하고 있는 중국 언론들은 “대만에 머물고 있는 왕조현의 가족들이 왕조현이 캐나다 밴쿠버 소재 불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고 보도했다. 왕조현은 지난 1980-90년대 홍콩의 톱스타로 국내에서도 명성을 날리며 당시 임청하, 장만옥, 종초홍과 홍콩을 대표하는 4대 여배우로 손꼽혔다. 하지만 두 차례의 결혼에서 모두 실패하며 인생의 굴곡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조현은 90년대 중반 옛 연인 가수 치친(齊秦)과 헤어진 후 홍콩재벌과의 결혼에 실패하는 등 잇따른 심적고통으로 불교에 더욱 심취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졌다. 최근 싱가포르로 국적을 바꾼 배우 이연걸과 마찬가지로 왕조현 역시 티벳불교에 심취해왔다. 왕조현은 2003년 영화 ‘미려상해’ 이후 연예계를 떠나 캐나다에서 불법공부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출처 = 영화 ‘미려상해’ 스틸컷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슬람 히잡은 수녀복과 다르지 않아요”

    “이슬람 히잡은 수녀복과 다르지 않아요”

    “이슬람 사원에서는 왜 남녀 공간이 분리돼 있나요?” “한국 이슬람 여성도 히잡(이슬람식 여성 머릿수건)을 쓰나요?” 지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이슬람중앙성원. 로만칼라에 말끔한 검은 셔츠를 입은 예비 신부들은 쉼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이규화 부(副)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은 하나하나 친절히 답변을 한다. “줄 맞춰 예배를 볼 때 서로 어깨를 맞대기 때문에 불편함과 불경한 마음이 없도록 남녀 공간을 나눈 거죠. 이슬람 여성의 히잡은 수녀님들의 수녀복과 다르지 않습니다. 쿠란에 명시된 이슬람인의 신앙행위 중 하나이지요.” 예비 신부들과 부이맘 사이의 질의응답은 ‘쌀라(예배)’를 알리는 음성이 들려온 뒤에야 그쳤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마련한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자리였다. 주교회의는 교단간·종교간 이해와 화합을 위해 지난해부터 이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가톨릭대학 예비사제 20명 체험 올해는 인천가톨릭대학 소속 20명의 예비 사제들이 25~26일 1박2일로 첫날에는 성공회와 정교회를 찾았고, 26일에는 행사 마지막 일정으로 이슬람 중앙성원을 찾았다. 이중 11명은 내년 1월이면 사제품을 받는 부제들. 곧 성사를 주관할 입장이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평소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드물었기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만남에 임했다. 한국 이슬람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예비 신부들은 이어 오후 예배를 참관했다. 그리고 예배를 주관한 이행래 이맘과 다시 대화의 시간을 이어 갔다. 이 자리에서 예비 신부들을 인솔한 인천가톨릭대 송용민(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신부는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대로 그저 테러와 연관된 이미지로만 이슬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이슬람의 많은 부분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맘은 “정의를 위해 힘쓰는 게 신앙인들이 할 일이다. 우리는 똑같이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면서 “정의로운 선배들을 모범으로 삼으라.”고 예비 신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들은 앞서 정오쯤 서울 조계사에서 불교와의 만남도 가졌다. 총무원 내 나무갤러리 카페에서 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 혜경 스님, 조계사 사회차장 고경 스님 등과 만난 예비 신부들은 승려 교육과정부터 수행생활, 템플스테이의 효과 등 평소 불교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이 자리에서 혜경 스님은 “이 시대의 화두가 종교 간의 화합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예비 신부들의 질문에 답했다. ●성공회·정교회·이슬람·불교 순례 조계사 경내를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예비 신부들에게 조계사 경내를 안내한 고경 스님은 대적광전 앞에서 삼위일체 사상과 불교 삼신불 사상의 공통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선조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온 것이 불교사찰”이라면서 “머지않아 문화재가 될 성당 역시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은 조계사를 둘러 본 뒤 사찰 앞에서 농성 중인 ‘운하백지화국민행동’ 회원들을 찾아 박수로 격려했다. 종교간 대화에 참석한 김현우 바오로(27) 부제는 “처음에는 이슬람 하면 테러 등 좋지 않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면서 “이번 기회에 많은 오해가 풀렸고, 같은 유일신 신앙인으로서 각자의 신앙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기회가 된다면 불교 같은 경우 템플스테이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워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성직자들도 시국선언

    전국 대학교수를 비롯해 대학생, 예술인 등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가운데 성직자들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승려 1447명은 15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현 정부의 반성과 민주주의 발전을 염원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읽었다. 스님들은 ‘국민이 부처입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통해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반성하지 않는 정부의 행태와 죽음마저 음해하는 정치검찰의 패악을 보며 이 나라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도 이날 오후 3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전국사제 비상 시국회의’를 진행한 뒤 오후 7시 용산 참사 현장에서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펼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 한편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개신교의 진보적 목회자 1000여명도 18일 오전 11시 서울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정부의 국정쇄신과 보수 개신교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대근 강병철기자 dynamic@seoul.co.kr
  • [도시와 산] (11) 천안 광덕산

    [도시와 산] (11) 천안 광덕산

    충남 천안 광덕산(廣德山)은 연꽃처럼 생겼다. 산 줄기들이 꽃잎처럼 포개져 있다. 산세의 곡선이 부드럽다. 거칠지 않고 여성적이다. 운무가 끼면 더 부드럽게 보인다. 광덕산은 천안시 광덕면과 아산시 송악면에 펼쳐져 있다. 700m에서 단 1m가 모자란다. 높지 않지만 연꽃 모양이라 속은 꽤 깊어 보인다. 광덕산은 ‘태화산’이라고 불리다 조선 초에 바뀌었다고 한다. 광덕산이란 이름은 세조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자비를 널리 중생들에게 베푼다는 ‘광덕보시(廣德布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 어귀의 광덕사가 불교 포교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광덕산 주변에는 태화산이라고 쓰인 푯말과 비석 등이 적잖게 남아 있다. 천안 쪽 산행은 광덕사에서 시작한다. 광덕사는 그다지 크지 않은 절이다. 역사는 천 년이 넘는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오면서(643년) 가져온 진신사리를 승려 진산에게 건네 창건됐다고 한다. 문화유산해설사 황서규(74)씨는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광덕사 사람은 부역을 면제한다.’는 교지를 내릴 정도로 대찰이었다.”면서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큰 지장 도량이었다.”고 설명한다. 대웅전 앞에는 천안이 호두과자로 유명하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4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398호다. 안내판에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유청신 선생이 원나라를 다녀오면서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에,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자신의 집 앞에 심었다.’고 쓰여 있다. 이 호두나무가 그 묘목은 아니지만 시배지임을 강조한다. 광덕면 일대엔 25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있다고 한다.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 있지 않다 보니 다른 해석도 있다. 천안 직산위례문화연구소 백승명 소장은 이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백 소장은 “유청신은 귀국하지 않았다. 천안 호두과자를 알리려고 만든 허구다.”라면서 “광덕사도 진산의 생존연대와 광덕사 사적기로 미뤄 832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됐다. 선덕이니 진덕여왕이니 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에서 나온 역사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역사는 산속에 고요하고, 사람은 논쟁한다 역사와 유래에 이견은 있어도 광덕사의 고졸한 분위기는 그만이다. 대웅전 계단 밑 양쪽에 석사자가 있다. 세월에 얼굴이 닳아 부드럽다. 천진난만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웃는다. 그 모습이 친근하다. 100m쯤 가면 천불전이 있다. 10m가량 되는 다리로 건너야 한다. 홀로 떨어져 호젓하다. 주변 산길과 어우러진 풍경이 정겹다. 1998년 소실됐다 중건돼 예스러움은 떨어진다. 조선조 3000불 탱화도 지난해에 복원됐다.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탱화 3점이다. 각각 불상이 1000개씩 그려져 있다.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란다. 황씨는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광덕사 개보수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귀띔했다. 광덕사 위쪽에 기생 시인 운초 김부용의 묘가 있다. 잡초가 무성하다. 풀이 바람을 못 이겨 쓰러진다. 부용은 애초 유학자의 딸이었으나 집안이 기울면서 기생이 됐다. 그 과정에서 함경관찰사 등을 지낸 김이양을 만나 소실이 됐다. 그녀는 시재가 출중했다.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조선의 3대 명기로 꼽힌다. 김이양이 죽자 ‘임이 묻힌 광덕산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60년 가까운 나이 차를 뛰어넘는 사랑이 처연하다. 황씨는 “이 묘는 소설가 정비석(1911~1991년)이 ‘명기열전’을 쓸 때 찾아내 봉분을 만들고 비석도 세웠다.”면서 “매년 4월 마지막 일요일 묘지 앞에서 다례식이 열린다.”고 말한다. ●산행하기 딱 좋은 산 광덕산은 정상까지 갔다가 오는 데 3시간쯤 걸린다. 광덕사 앞 좁은 돌담길을 지나자 단풍나무 길이 펼쳐진다. 그 너머 숲 속에 호두나무가 더러 보인다. 연두색 둥근 잎이 싱그럽다. 얼마를 지나가자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사람을 맞는다. 산은 가팔랐다. 돌산은 아니다. 나무턱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이 길다. 금방 숨이 찬다. 팔각정과 헬기장을 지나 정상까지 오르막이다. 정상의 북쪽 앞에 설화산이 펼쳐진다. 낙타 등처럼 생겼다. 서쪽에 봉화산이 있다. 정상에서 막걸리를 팔던 김춘경(61)씨는 “날씨가 좋으면 서해대교도 보이고, 남쪽으로 계룡산도 보인다.”면서 “설화산부터 망경산을 거쳐 이곳까지 오는 등산객도 있다. 4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름에는 아산 쪽이 낫다. 등산로가 모두 그늘이고, 계곡에 물이 많다.”고 덧붙였다. 아산 쪽은 강당골과 외암민속마을이 있다. 장군바위가 있는 길로 돌아 내려온다. 허약한 청년이 이 물을 먹고 장군처럼 몸이 커졌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올라갈 때보다 경사가 덜하다. 중턱에 민가 2곳이 보인다. ‘안산’이란 곳이다. 주막처럼 국수 등을 판다고 쓰여 있다. 집 앞에 샘물이 있다. 잠시 쉰다. 물을 마시던 천안 쌍룡동에 사는 박현석(32·회사원)씨는 “광덕산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산타기에 딱 좋아 자주 온다.”면서 “가을에는 호두도 줍는다.”고 웃는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천안 시민만 즐긴다구요? 수도권 어디서나 지하철로 OK! 수도권 전철이 충남 아산 온양온천만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광덕산이 대표적이다. 이제 광덕산은 천안시민의 산이 아니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의 산이 됐다. 천안역 역무원 이용훈(33)씨는 “2005년 1월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된 뒤 승객이 30~40% 늘었다.”고 말했다. 천안 전철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하루 2만 4000명에 이른다. 기차 승객 2만여명보다 많다. 이씨는 “출퇴근자가 많은 평일과 주말 이용객수가 비슷하다. 주말 승객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오는 관광객이다.”라면서 “등산복 차림의 사람도 많이 눈에 띄는데 거의 광덕산 가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광덕산은 천안역이나 천안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다. 600번과 601번이 있다. 둘 모두 역과 터미널을 거친다. 600번은 30분마다 있고, 601번은 하루 4번 오간다. 천안시내에서 광덕산까지 50분쯤 걸린다. 남부오거리, 풍세면, 보산원 등 남부지역을 거쳐 광덕사로 빠진다. 삼안여객 운전사 유효창(40)씨는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 평일 오전에도 크게 붐빈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천안시민만 탔는데, 요즘에는 수도권 사람이 많다고 했다. 수도권 전철 개통 덕이다. 버스에서 내리던 30대 여성은 “경기 평택에 살고 있는데 가끔 전철을 타고 광덕산을 찾는다.”면서 “평택 근방에는 큰 산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광덕산 입구에 늘어선 식당들도 손님이 늘었다. 산채비빔밥과 동동주 등을 파는 음식점 주인 이정희(60)씨는 “등산객, 손님 모두 적잖게 늘었다.”면서 “나이 든 사람과 여자도 많다.”고 귀띔했다. 등산객이 늘었지만 광덕산으로 가는 교통편은 변하지 않았다. 천안시 담당직원 이명창씨는 “천안이 워낙 급팽창하다 보니 버스가 부족하다.”면서 “광덕산 교통은 여력이 생기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김춘추 탄생으로 시청률↑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김춘추 탄생으로 시청률↑

    미래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8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연출 박홍균 김근홍·극본 김영현 박상연)에서는 유승호가 연기할 신라 제 29대 임금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나 눈길을 끌었다. 천명공주(신세경 분)의 남편 진골 김용수 공(박정철 분)은 태자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오산성 토란 작전에 출전했으나 미실(고현정 분)의 계략으로 전사한다. 미실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 천명공주에게 “계양성의 주인 같은 건 떨쳐버리고 도망쳐라. 이게 나의 마지막 연민”이라고 협박해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에 천명공주는 미실을 피하기 위해 용수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숨긴 채 출궁해 승려가 된다. 천명공주는 죽은 남편 김용수의 동생 김용춘(도이성 분)에게 미실로부터 아기를 지키고 화랑의 세력을 되찾기 위해 국선 문노(정호빈 분)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1년 뒤 사찰에서 출산한 천명공주는 아들에게 ‘세월’을 의미하는 춘추라는 이름을 붙인다. 천명공주는 “미실이 세월 앞에선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 말을 떠올려 춘추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장차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는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요원 분)이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장차 김유신(엄태웅 분)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룰 인물로 성장한다. 시청자들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오열하던 천명공주의 애처로운 모습이 슬프다.” , “자신과 아기를 지키기 위해 조용히 일을 도모하는 천명공주의 활약이 기대된다.”며 천명공주와 김춘추의 전개에 관심을 표했다. 한편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8일 ‘선덕여왕’의 일일 전국 시청률은 20.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고, 일일 수도권 시청률은 지난 2일보다 2.1% 증가한 23.8%로 전체 시청률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 = MBC ‘선덕여왕’ 캡처)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 봉원사 6일 영산대재

    서울 봉원사 6일 영산대재

    서울 신촌에 위치한 안산 초입에는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승무’ 시비가 서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불교 무용인 승무를 추는 승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 안산 앞자락으로 태고종 사찰인 봉원사가 위치해 있다. 봉원사는 오는 현충일(6일)에 ‘전 세계인의 평화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영산대재’를 시연한다. 봉원사는 영산재 보존회를 두고 1988년부터 승무를 비롯해 불교종합예술의 정수인 ‘영산재(靈山齋·중요무형문화재50호)’를 지금껏 20여년째 이어오고 있다. 본래 단옷날 열렸으나 2007년부터 국가적 행사로서의 의미를 살려 현충일에 시연을 하고 있다. ●세계평화기원·호국영령추모 의식 영산재는 일종의 불교식 천도의식.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 후 영취산에서 중생들을 모아놓고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할 때 모습을 재현했다. 단순히 죽은 자를 위로해 보내는 의식이 아니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불도를 깨닫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장엄한 제례의식이지만 사실 예술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영산재에는 바라춤, 나비춤 등 무용 요소는 물론이고 불교노래인 범음범패(梵音梵唄)에 취타, 3현6각 연주 같은 음악적 요소도 있다. 또 괘불(掛佛·야외에서 법석을 차릴 때 뒤에 거는 불화)이나 의상 등은 미술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불교종합예술 정수로 정평 올해 행사는 ‘세계평화기원·호국영령추모’ 목적 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천도재를 겸한다. 영산재 보존회 사무장 전지암 스님에 따르면 올해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모시는 순서도 따로 둘 예정이다. 또 평소 진행의 어려움으로 시연하지 않던 ‘괘불이운(掛佛移運)’ 의식도 올해 행한다. 괘불이운은 6×10m의 대형괘불을 평소 모셔져 있던 만월전에서 야외로 옮겨와 거는 과정이다. 또 올해 영산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을 앞두고 있어 의미가 크다. 9월 중 이와 관련한 대략의 윤곽이 나올 예정이라 보존회측도 영산재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파리 세계문화유산의 집을 비롯해 벨기에, 일본, 캐나다 등에서 영산재를 시연했고 중국에서는 종교국 초청으로 ‘쓰촨성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영산대재’를 열었다. ●바라춤·범음범패 등 선봬 전지암 스님은 “한국불교의 전통의식을 전수한다는 것 외에도 전 세계의 평화는 물론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전몰장병, 호국영령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연다.”면서 “올해 행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등을 맞아 어느 시연회보다 더욱 경건하고 장엄한 스케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9월에는 영산재를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일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계속된다. 20명이 넘는 시연자들이 불교예술의 정수를 펼친다. 관람무료. (02)392-3007.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지친 도심 속 ‘무념의 밥상’

    지친 도심 속 ‘무념의 밥상’

    ‘절밥’이 저잣거리로 내려온 지는 오래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과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스님들의 소박한 ‘무념(無念)의 밥상’을 엿보는 중생이 많아진 까닭이다. 철저하게 채식 위주로 짜여지는 식단은 그저 배만 불리기보다 건강도 함께 챙기려는 웰빙(well-being) 트렌드에 부합한다. 소식(小食)으로 채우지만 동시에 비우는 식사법은 가리지 않고 넘치게 먹어 오히려 병을 부르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요즘 시중에서도 사찰음식 전문점을 표방한 식당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호텔 뷔페 레스토랑들도 특별 건강식으로 사찰음식을 메뉴에 올리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산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절밥을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반갑다. 하지만 불교에서 식사도 수행의 하나일진대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음식점에서 ‘발우공양’에 담긴 뜻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맞은 편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건물 5층에 자리한 사찰음식 전문점 ‘바루(BARU)’. 새달 1일 문을 여는 이곳을 그저 또 한군데 사찰음식 식당이 생기나 보다 하고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는 ‘발우’에서 비롯한 ‘바루’는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첫 사찰음식 전문점. 템플스테이와 더불어 사찰음식을 포교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종단에서 제대로 된 사찰 음식을 선보이고자 만들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부 음식점에서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등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다섯가지 식물)를 슬쩍 넣는 등 사찰음식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염려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루’의 총책임을 맡아 중생의 식습관을 바로 잡고 사찰음식의 정통을 바로 세우는 중책을 띤 이는 이미 사찰음식연구가로 이름 높은 대안 스님이다. 경남 산청의 금수암 주지승으로 ‘금당 사찰음식 연구원’을 운영해 온 스님은 출가 이후 쌓아온 음식에 대한 철학과 솜씨를 부려 ‘바루’의 식단을 짰다. 불가(佛家)의 전통을 철저히 따르면서 일반인들의 마음까지 채울 만한 음식들이다. 식재료에 쏟은 정성은 말로 다 못한다. 금수암 주변의 자연과 텃밭에서 자란 신선한 무공해 채소들을 직접 공수해 왔다. 젓갈, 파, 마늘을 넣지 않아 담백하고 시원한 김치와 ‘장아찌 달력’에 따라 절기마다 담근 각종 장아찌, 제철에 거둔 계절 나물들이 기본으로 상을 채운다. 코스 요리로 가을에 채취한 능이버섯을 말려 은행가루와 두릅을 넣고 끓인 담백한 능이죽, 닭고기살보다 쫀득하고 상큼한 더덕 샐러드, 새콤한 산야초 초밥, 그윽한 향기가 입맛을 자극하는 연잎밥, 자연송이의 향이 뜨거운 김과 함께 솔솔 피어 오르는 송이 누룽지탕 등 쉽게 접해 보지 못했던 음식이 선보여진다. 코스 메뉴는 저녁에만 해당되며 8합, 12합, 15합 발우 등 세가지로 제공된다.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서 점심에는 4합 발우 세트를 선보이는데 주 요리는 날마다 달라진다. 점심은 1만원선, 저녁은 2만~5만원으로 정해 놓고 있다. 바루의 식기 또한 남다르다. 불가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느티나무를 재료로 7차례 옻칠 끝에 탄생한 발우는 인간문화재 김을생 선생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 바루’의 실내는 건물을 지은 유명 건축가 승효상씨가 디자인했다. 작은 산사에 온 듯 아늑하다. 총 좌석이 68석으로 그리 크지 않다. 건물 외부와 내부가 연결된 직선 계단을 통해 1층에서 5층 ‘바루’까지 108 걸음을 걸어야만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겠지만 몸은 물론 마음을 채우는 ‘영혼의 음식’을 먹기 위한 의식을 치른다는 의미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02)2031-2081. 글 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전국 조계종 사찰 2501개 ●조계종이 26일 발표한 종단통계자료집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전국 조계종 사찰은 2501개로 전년 대비 57곳(2.3%)이 증가했고, 5년 전보다는 203곳(8.8%)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계종 승려 수는 1만 3860명으로 전년 대비 284명(2.1%)이 증가했고, 최근 5년 동안에는 1186명(9.3%)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불교관련 문화재 중 국보 308점, 보물 1573점, 사적 456점 등 총 3041점이 국가지정문화재인 것으로 집계됐다. 조선왕조 의궤 번역 학술대회 ●한국고전번역원은 29일 성균관대600주년기념관에서 ‘조선왕조 의궤 번역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갖는다. 신승웅 성균관대 교수, 박소동 한국고전번역원 교무처장, 박가영 한국궁중문화연구원, 김연주 대구가톨릭대 연구원 등이 주제발표를 한다. 한국학과 함께하는 문화나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9일 오후 3시 연구원 대강당 세미나실에서 ‘한국학과 함께하는 문화나눔, 문화가꿈-미루’를 마련한다. 한국학 강연과 전통 정악을 바탕으로 한 실내 음악회를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www.aks.ac.kr)에서 받는다. 6월, 9월, 10월 마지막주 금요일에도 열린다. 새달1일 종교보도 사진전 ●원불교신문사는 새달 1일부터 ‘종교보도 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화합·은혜·희망’이라는 주제로 원불교를 비롯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천도교 및 민족종교 등 7개 종단이 참여해 각 종단의 대표 언론기관이 최근 3년간 보도한 사진 중 60여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1차 전시는 새달 1~5일 전북도청 1층 전시실, 2차는 10~16일 서울불교중앙박물관 나무갤러리에서 열린다. 가톨릭청년대회 공모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청소년위원회는 20 10년 제2회 한국가톨릭청년대회를 앞두고 행사 주제문구·성구·해설을 공모한다.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하느님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목표. A4 용지 1~2장 분량으로 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국 담당자(youth@ujb.catholic.or.kr)에게 보내면 된다. 올해 필리핀에서 열리는 1회 대회 참가비, 항공권, 기념품 등이 상품이다. 새달 20일 마감.
  • 수치여사 기소 엇갈린 반응…서구 “석방” 亞 “…”

    ‘흥분하는 서방국, 침묵하는 아세안’ 지난 14일 미얀마 군정이 아웅산 수치 여사를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은 일제히 미얀마 당국을 비판하며 석방을 촉구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다음날인 15일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1년 연장키로 결정했다. 유럽연합(EU)은 수치 여사가 석방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가 속해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19일이 돼서야 의장 성명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아세안 의장국인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지난주 사건들에 대해 우리의 우려를 명백하게 밝힌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미얀마와의) 관계는 지속적이고 건설적으로 유지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특별한 제재 조치는 내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치 여사 기소를 계기로 미얀마 군정 문제를 둘러싼 아시아 국가와 서방국의 입장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2007년에도 미얀마 정부가 승려가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 세력을 강경 진압,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유감보다는 강한 수준의 성명만을 내놓았을 뿐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서방국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이 미얀마 문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바로 천연자원이 중심이 되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은 천연가스를 미얀마에 의존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 중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가 수치 여사 기소 직후 자체적으로 유감 성명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과 인도가 나서주길 바라고 있지만 두 국가 모두 미얀마와 다양한 경제교류를 맺고 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중국은 “한 국가의 문제는 국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뇨 온 민트는 “아시아 정상들은 중국과 정치적으로나 무역면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미얀마를 너무 심하게 비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같은 입장이 미얀마와 서구 국가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초대형 사이클론이 미얀마를 강타했을 때 미얀마 군정은 국제사회 지원을 거부했지만 아세안 국가들이 설득, 지원을 받도록 한 바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국불교 소통능력 키워야”

    “한국불교 소통능력 키워야”

    지한파이자 세계적인 불교학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56) 교수를 19일 만났다. 20일 포스코 청암재단이 개최하는 포스코아시아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했다. 미국 UCLA에서 불교학 교수 및 불교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동아시아불교학 권위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20대에 출가해 송광사 등지에서 5년여를 살았고, 이후에도 한국과 미국을 오고 가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힘썼다. 그의 부인도 한국인이다. ●한국불교에서 미래사회 희망 보아 서양철학을 꾸준히 공부하던 그가 처음 한국불교에 매력을 느낀 것은 ‘간화선’(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 때문이었다. 간화선 전통이 사실상 온전히 남아 있는 건 한국뿐이다. 그는 “불교는 이론에만 경도된 서양철학과 달리 실천수행이 탄탄해 매력적이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또 “한국에 간화선 같은 정신적 훈련은 서양에도 모범이 될 것”이라며 “아시아문화의 다양한 전통 속에서 발전동력을 찾자는 이번 포스코아시아포럼과도 상통하는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번 포럼에서 ‘동아시아문명의 상호 연관성: 한국불교 사례를 들어’라는 제목으로, 원효·원측 등 7세기 한국 승려들이 중·일 불교에 끼친 영향에 대해 연설한다. 그의 한국불교 연구는 원효 등 신라 고승뿐 아니라 근·현대까지 아우를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가 한국불교 연구에 매달리는 까닭은 뭘까. 미래 사회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만큼 불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 “불교는 자신의 수행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일깨워줘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니냐.”고 했다. 한국불교 현실중 아쉽다는 점도 언급한다. “한국불교는 산속에 몇백년간 떨어져 있으면서, 소통하는 능력을 잊었다.”면서 “소통 능력을 키우는 게 불교 발전을 위한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한국 고전 13권 번역작업도 그는 “불교는 인과관계(인연)를 중시하는 종교이기에 과학이 풍미하는 미래사회에 더 잘 맞을 것”이라면서 “인간은 물질적 부, 사회적 명성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근본적인 질문, 인간존재의 정체성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불교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원효에 대한 자료를 다시 모아 번역하고, 또 스님들의 절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책도 쓸 예정이다. 그리고 삼국유사 등 한국 고전 13권을 번역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중국 한~명나라 개척자 6인의 발자취

    “그 오만 분의 일 지도, 그 다음에는 그 조선소를 짓겠다는 백사장 사진, 그걸 들고 가서 당신이 배를 사주면, 사겠다는 증명을 가지고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영국 정부에서 차관을 얻어서, 기계를 뭐 사들이고 그래서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서 너희 배를 만들어줄 테니 사라, 뭐 이런 이야기죠.”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86년 중앙대학교에서 했던 특강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 방송 광고로 전파를 타며 도전 정신의 표상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미국식으로 요약하면 프런티어 정신이고, 송강호식으로 이야기하면 ‘무대포 정신’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가며 앞으로 나아갔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개척자 이야기는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더욱 증폭시킨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로 정부 요직에 있다가 문화혁명 때 실각한 우한(1909~1969)이 한나라부터 명나라까지 위대한 여행가 6명의 이야기를 담은 ‘대여행가’(김숙향 옮김, 살림 펴냄)를 집필한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수천, 수백년 전 이미 넓은 세상을 거닐며 원조 세계인이 됐던 이들의 이야기는 중국을 넘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사람들에게도 공통의 메시지를 준다. 평소에는 궁문을 지키며 황제가 외출할 때 수레를 호위하는 보잘것없는 시종의 신분이었다가 한무제에게 대월지(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쪽에 있던 고대국가) 사신으로 발탁돼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BC 114)이 전하는 메시지는 현재 나의 위치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 첫 원정에서 흉노에 포로로 잡혔던 장건은 특별 대우를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13년이 걸려 임무를 완수했다. 중국 불교계의 부패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계율 경전을 얻으려고 동진 시대의 승려 법현(337~422)은 65세의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어 천축(인도) 땅을 밟았다. 도전의 적기는 언제나 ‘지금’이라는 교훈을 제시한다.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여정을 담은 불국기는 고대 중앙아시아나 인도의 풍습을 기록한 최초의 원시자료로 꼽힌다. 스리랑카에는 법현촌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중국 고전 ‘서유기’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여행한 삼장법사로 알려진 당나라 승려 현장(602~664)은 실제로는 혈혈단신으로 서역을 뚫고 중국 최초의 인도 유학생이 됐다. 역시 당나라 승려였던 감진(688~763)은 폭풍으로 인한 난파, 열병으로 두 눈의 시력을 잃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여섯 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율종의 시조가 됐다. 콜럼버스(1492년)의 신대륙 발견이나 바스코 다 가마의 희망봉 발견(1498년)보다 1세기가량 앞서 1405년부터 약 30년 동안 일곱 차례나 바닷길을 개척하며 아프리카 동부와 홍해까지 나아갔던 환관 정화(1371~1433)는 치밀한 준비 끝에 색목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를 중용했던 명나라 영락제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평생을 바쳐 중국 산천과 동굴을 찾아다니며 지형과 지질을 과학적으로 기록해 중국 근대 지리학을 세운 ‘중국판 김정호’인 명나라 선비 서하객은 치열한 도전정신의 표본이다. 1만 4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마음의 道 구하기… 하루 12시간 수행

    마음의 道 구하기… 하루 12시간 수행

    중국 고승 조주선사가 지팡이를 짚고 오고 간다. 수유화상이 묻는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물 깊이를 더듬습니다.” 재차 질문이 나온다. “여기에는 한 방울의 물도 없거늘 무엇을 더듬는다는 말입니까?” 조주선사는 지팡이를 벽에 기대 놓고 그냥 떠나가 버린다. 올해 하안거에 주어진 화두인 ‘조주탐수(趙州探水)’ 공안이다. 도대체 조주선사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일까. 각박하다. 세상도 어렵단다. 무슨 뾰족한 답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화엄사로 달려갔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계곡물 소리, 사분대는 댓잎소리가 청량하다. “이곳 화엄사에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주지 종삼 스님의 말씀도 틀린 게 아니다. 잘 끓인 차도 향기로워 한 모금에 전신의 오탁(汚濁)이 씻겨 내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잠시, ‘아, 나도 출가나 해버릴까.’라는 마음은 역시나 세속인의 허튼 생각. 안거(安居) 수행 기간, 좌선에 들어 있는 스님들을 보고 나면 그런 마음을 먹은 일조차 부끄러워진다. 구도의 길을 위해 화두를 들고 앉은 그 고요함과 진지함이란. 속인으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다. ●올 화두는 ‘조주탐수’ 9일 전국에서 하안거(夏安居)가 시작됐다. 우기에 새로 자라고 피는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승려들이 동굴에서 수행을 하며 시작된 안거. 90일 동안 이어지는 하안거에는 올해 100여개 선원에 2200여명의 수좌(참선을 주로 하는 승려)들이 방부(房付·선원 입방 신청서)를 들었다. 하안거 결제일, 전남 구례 선등선원(禪燈禪院)의 공기는 사뭇 비장했다. 선등선원은 지리산 화엄사 깊숙이 숨어 있는 수행선방. “결제일 전 수좌들은 예민하니 각별히 예를 차려야 한다.”는 화엄사 교무스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선방을 찾아드니 아무래도 불편하다. 이날은 말하자면 안거에 들기 전 수좌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시간이다. 안거에 든 스님들은 90일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수행에 정진하게 된다. 오직 깨달음을 위한 결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 동안에는 부모나 은사가 죽어도 좌복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원수가 앞에 있어도 좌복 위에 앉아 있다면 건드려선 안 된다. 그 순간에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좌들은 ‘조주탐수’라는 화두를 두고 90일간 고민하게 된다. 하루 12시간씩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한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18시간을 좌선하는 가행정진에, 24시간 용맹정진도 마다하지 않는다. “도중에 쓰러지는 도반들도 많습니다. 중도 포기하고 돌아가는 자들도 있죠.” 길을 안내한 화엄사 포교국장 대요 스님의 설명이다. 대요 스님은 화두를 고민할 때 화장실을 가려다 목욕탕으로 간 적도 많다고 한다. ●90일간 외부와 완전 차단 결제법어를 내린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 후미에 “세상이 어지러우니 하인이 주인을 속이고/운이 쇠퇴하니 귀신이 사람을 농락하는구나.”라고 일종의 힌트를 달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어지러운 풍진 세상에 던지는 물음일까. 또 100안거를 훌쩍 넘었다는 선등선원 선원장 현산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후학들에게 “육신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가.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내 마음을 바로 보라. 그것이 부처다.”라고 조언했다. 그럼 조주선사의 지팡이는 마음의 깊이를 재고 있다는 얘긴가. 배움이 부족한 몸에 이래저래 앉아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고, 다리만 저리다. 이날 안거에 든 선사들이 부디 90일이 가기 전에 깨달음을 얻고 못난 중생을 구제해주길 바랄 뿐이다. 글 사진 구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대법원 판결 4題] ‘경부고속철 공사 방해’ 지율스님 유죄

    천성산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도 공사 작업을 막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지율 스님’에게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3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지율 스님 조모(52·여)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대한불교 조계종 내원사 소속 승려인 조씨는 지난 2004년 3~6월 경남 양산시 동면 개곡리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를 막는 등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앞서 1·2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자연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24차례에 걸쳐 공사업무를 방해한 것은 사회통념에 비춰볼 때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앞서 2006년 6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착공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우리말 여행]행각

    불교용어로 본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행각승’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승려다. 그러나 행각(行脚)을 하며 때때로 일부에서 물의라도 일으켜서일까. 일상용어로 쓰이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붙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뜻하지만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도피 행각, 애정 행각, 사기 행각.’
  •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도시와 산] 강화 고려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제쳐 놓거나 화려함만 찾는 경향이 있다. 산의 경우도 서너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거나 산세가 수려해야 명산이란 인식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인천 강화의 고려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의 역사성에 밀려 강화에서조차 ‘대표산’이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태산준령과 빼어난 계곡도 없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달라진다. 인천시내에서는 물론 서울 서부지역에서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로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 곳곳에 오랜 역사의 자취도 널려 있다. 각종 빛깔의 꽃이 만발해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진가도 알게 한다.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함께 즐길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산이다. 때마침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진달래 군락이 요즘 절정을 이뤄 가는 발걸음이 사뿐할 것이다. ●곳곳이 문화 유적지 고려산은 일반적으로 국화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청련사를 거쳐 정상에 오른다. 도로가 뚫린 청련사까지 1㎞, 이곳부터 정상까지 1.3㎞로 1시간가량 걸린다. 청련사는 고려산의 유래가 담겨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승려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서 절터를 찾던 중 정상 연못에 핀 다섯 색상의 연꽃을 날려 하얀 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노란 꽃이 떨어진 자리에 황련사, 청색꽃 자리에 청련사, 적색꽃 자리에 적석사, 흑색꽃 자리에 흑련사를 세웠다. 청련사만 조사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란 암자를 지어 현재 3개의 사찰(백련사·청련사·적석사)과 1개의 암자가 16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정상(해발 436m)에 오르면 북한 송악산과 연백을 비롯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대로 하산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서쪽의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4㎞의 능선길 주변엔 유적지가 산재해 진짜 묘미는 여기서부터다. 능선을 2㎞가량 걸으면 고인돌군(群)이 나타난다. 강화고인돌은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130여 기가 분포돼 있다. 부근리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강화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 고도보다 100~200m 높은 지역에 있어 이채롭다. 특히 고려산 정상 능선길에 있는 21기의 고인돌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황선국(50·인천 연수동)씨는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톤에 달하는 돌을 이곳으로 옮겼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 양태부(50)씨는 “고려산 기슭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능선에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당시에 나름대로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이 무술을 연마하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치마대가 나타난다. 연개소문이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 연못인 오련지는 정상과 7~8부 능선에 분포돼 있다. 낙조봉에서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대인 낙조대가 나온다. 동해안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 해서 ‘정서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해 석양은 ‘강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적석사에는 조선 중기 유명한 서예가인 윤순이 쓴 사적비가 있다. ●진달래 군락의 향연 진달래는 고려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봄만 되면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향연을 만들어낸다. 등산보다는 진달래 감상이 우선이면 산 뒤편에서 오르는 게 빠르고 편하다. 48번 국도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축제 기간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 길을 택한다. 대신 교통혼잡과 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오르는 밋밋함을 감내해야 한다. 올해 진달래축제는 11일 시작돼 20일까지 펼쳐진다. 도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매년 1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연개소문 메아리 들리나요 고려산에는 만주와 요동을 호령했던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에 대한 민간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강화 사람들은 연개소문이 고려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는다. 정통 역사서에는 연개소문이 태어난 연도와 장소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연개소문과 고려산의 연관성은 1932년 강화지역 향토사학자 박헌용이 쓴 ‘속수증보강도지’에 언급돼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고려산 시루메봉 밑에서 태어나 무예를 닦았다. 이런 내용은 1993년 부근리에 세워진 ‘대막리지 연개소문 유적비’에도 보인다. 연개소문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5개의 연못인 오련지가 현재 보존돼 있다. 연개소문을 기리기 위한 사찰인 성황사도 고려산 중턱에 있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양태부씨는 “분명하지 않지만 연개소문과 연관된 사적이 많은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산은 옛날부터 강화지역에서 신내림을 받거나 신을 모실 때 찾던 영산(靈山)이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산신제와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이같은 무속신앙 역시 연개소문과 관련이 있다. 산 자락인 고천4리에 자리잡은 ‘고려산 굿당’은 이러한 것을 잘 드러낸다. 다른 굿당들이 대개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 장수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연개소문을 신으로 받든다. 이곳에 있는 산신각은 연개소문을 산신령으로 모신다. 글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안티’ 달라이 라마 데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농노 해방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입니다. 티베트는 50년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농노제가 폐지된 이후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1대 판첸 라마인 기알첸 노르부(19)가 중국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드디어 세계 무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판첸 라마는 27일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열린 제2회 세계불교포럼 개막식에 참석, 유창한 영어 연설로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옹호했다. 그는 이날 포럼에 참석한 50여개국 불교 승려 1000여명 앞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을 ‘나의 조국’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그는 또 연설 대부분을 티베트 농노해방의 의미와 티베트의 발전, 그리고 중국 정부의 종교자유 보장 등에 할애함으로써 달라이 라마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활발한 국제활동에 곤혹스러워하던 중국은 ‘원군’의 등장에 반색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은 서열 2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자리. 1989년 10대 판첸 라마가 입적하자 달라이 라마는 1995년 ‘10대 판첸 라마의 환생’이라며 당시 여섯살이던 치에키 니마를 11대 판첸 라마로 지정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한 살 어린 기알첸 노르부를 11대 판첸 라마로 공표한 후 지금까지 베이징 등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교육시켜 왔다. 치에키 니마와 그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한편 중국 정부는 ‘티베트 농노해방 기념일’인 28일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薩)의 포탈라궁 앞 광장에서 티베트인 1만여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 행사를 열었다. 반면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5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stinger@seoul.co.kr
  • 中·티베트 동영상 충돌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몽둥이질 당하는 티베트 승려 vs 족쇄를 찬 채 구걸하는 티베트 농노”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정부간에 이번엔 ‘동영상 전쟁’이 치열하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지난해 ‘3·14 유혈시위’ 당시 붙잡힌 것으로 보이는 티베트 승려 등에 대한 중국 공안(경찰)의 무차별적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급속도로 유포되자 중국 정부는 50여년 전 티베트 농노들의 비참한 삶과 현재의 티베트 발전상을 담은 동영상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7분 분량의 공권력 폭력 동영상에는 손을 등 뒤로 묶인 승려 등 10여명을 중국 공안이 짐짝처럼 내던진 뒤 짧은 곤봉으로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 등이 들어 있다. 중국 정부는 파문이 확산되자 유튜브 접속을 차단했지만 50여초 분량의 동영상이 영국 BBC방송 사이트 등을 통해 계속 유포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긴급히 ‘티베트의 현재와 과거(西藏今昔)’라는 제목의 13분짜리 동영상을 DVD로 제작, 1959년 티베트 봉기 진압 전 ‘정교일치’ 체제에서 고통받던 티베트 농노들의 비참한 삶과 칭짱(靑藏)철도로 대표되는 티베트의 발전상을 담았다. 티베트 봉기를 진압하지 않았다면 티베트 민중의 90%는 아직도 비참한 농노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폭행 동영상에 대해 “교묘하게 편집돼 조작의 흔적이 있다.”고 일축한 뒤 외신기자들에게 중국 정부가 제작한 동영상을 배포했다. 특히 티베트자치구 정부가 제정한 ‘티베트 농노해방 기념일’(28일)을 앞두고 긴장감도 흐른다. 중국 외교부는 27일 티베트 봉기 진압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티베트 망명정부는 농노해방 기념일을 비난하고 나섰다. 망명정부는 27일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가 3월28일을 농노 해방일로 지정한 것은 티베트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면서 “티베트인들은 이를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도발로 간주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stinger@seoul.co.kr
  • ‘티베트의 오늘’을 고민하게 하는 동영상 [동영상]

     25일 밤 웹서핑을 하던 기자의 눈에 영국 BBC 홈페이지의 충격적인 동영상이 띄었다.중국 공안으로 보이는 10여명 정도가 두 팔을 뒤로 묶인 티베트 승려와 청년들을 몽둥이로 내려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사람을 짐 끌듯 끄는 장면도 나왔다.50초 안팎의 다양한 버전이 웹 상에 떠돌고 있었다.  팔을 뒤로 묶여 버둥거리는 이들은 공안의 몽둥이질을 체념한 듯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동영상을 보면 1980년 광주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제야 오전에 기사 검색을 하면서 보았던 연합뉴스 기사의 제목이 떠올랐다.    ’중국 정부 유투브 접속 차단’    직업적 속성 때문인지 동영상의 출처를 확인해보고자 했다.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투브를 검색한 지 얼마 안돼 지난 20일 인도 북부 달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배포한 7분짜리 동영상이 원 소스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동영상이 시작하면 설산을 배경으로 안온하게 자리잡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 곳곳에 연기가 솟아오른다.그리고 티베트 봉기 때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장면들이 나온 뒤 문제의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3분여가 지난 뒤부터 시작되는 건장한 젊은이의 스틸 사진.그러나 이내 그는 중국 공안에 의해 처참히 짓이겨진 모습으로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BBC가 짧은 편집본에 ‘disturbing’이란 단어를 썼는데 사실 7분짜리 원 소스에서는 훨씬 정도가 심하게 나온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누리꾼들이 왜 50초 안팎의 짧은 동영상을 편집해 유포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그 고민을 여러분과 나누는 것이 옳은지,아니면 필요한 이들이 찾아 보게 놔두는 게 옳은지 고민했다.  동영상을 찾아 보면 그만일 내용을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이 동영상을 보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만 보게 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 란에 유투브에 널리 퍼져 있는 동영상을 올려놓는 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좋지만 글을 읽고 동영상을 볼지 결정을 내린 뒤 ‘동영상 보러가기’를 클릭하도록 하기로 했다.이것이 가장 나은 방법인지는 모른다.하지만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7분 짜리 원 소스는 올리지 않는다.도덕적 딜레마 없이 이 동영상을 지켜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만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영상 보러가기    지난해 11월14일 중국 정부 티베트 장관의 BBC 단독 인터뷰 동영상을 걸어놓는다.    동영상 보러가기    부디 티베트의 오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명동 한복판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추모 행렬이, 일생을 참된 목자로 산 그의 선종을 애도하던 광경이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그가 가르치고 실천한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은 종교와 이념을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직자 김수환의 진면목은 청빈한 삶에서 두드러진다. 얼마 되지 않는 사재를 털어 줄곧 불우계층을 도왔던 그는 정작 식구들에게는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고 한다. 대주교이자 추기경의 반열에 오른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낡은 의복과 안경 그리고 푼돈이 들어 있는 통장이 전부였다. 그는 권력에서도 청빈했다. 엄격한 위계가 규범화한 사제 조직의 수장이자 수백만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이지만 그는 권위를 내세우며 민중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지칭하고 모든 것을 ‘내 탓이오(Mea Culpa).’라고 고백하면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다가간 소탈한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노사연의 ‘만남’을 즐겨 부르곤 했고, 몸소 철거민의 발을 씻어 주었으며, 명절 때는 성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위해 혼자 나가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권위주의에 대해 자성의 칼날을 세웠기에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그릇된 권력을 그는 주저 없이 질타할 수 있었다. 청빈이 도리어 베푸는 삶으로 승화할 수 있고 권위에 대한 초연함이 진정한 권위로 귀결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가야산 호랑이’ 성철 큰스님도 청빈의 전범이었다. 조계종 종정인 그는 누더기가 될 때까지 승복을 손수 기워 입었고, 이쑤시개를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았으며, 화장지도 몇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곤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찾았을 때 그는 백련암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5공화국 시절에도 종교인과 정치인은 가는 길이 다르다며 청와대 방문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물질과 권력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구도자로서 외길을 걸은 그는 정녕 성직자의 사표였다. 개신교에는 한경직 목사가 있다. 한평생 봉사와 헌신에 매진한 그는 이산의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는 월남민의 친구였고 고아와 병자와 장애인들의 아버지였다. 별다른 재산이 없었던 그는 1992년에 받은 템플턴상의 상금 100만달러를 북한 선교에 쾌척했다. 한국 개신교의 상징인 영락교회를 이끈 기라성 같은 목사였건만 그는 은퇴 후 남한산성에 마련된 조그만 외딴집에서 기거하다 여생을 마쳤다. 많은 것을 주고 갔다.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청빈을 본연의 정신으로 삼는다. 한낱 찰나에 불과한 이승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현세의 부귀영달은 그저 덧없다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요체다. 요컨대 극락정토와 천상낙원은 철저한 자기부정과 무소유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종교계는 과연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웅장한 사찰과 화려한 교회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지만, 빈곤에 허덕이는 중생과 피조물들을 보면 왠지 심사가 뒤틀린다. 사판승 요직을 둘러싼 스님들의 난투극에 당황했던 우리는 최근 한 개신교 교단에서 감독회장 직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공방에 또다시 좌절한다. 사찰을 개인의 생활방편으로 악용하는 승려와 교회의 공금을 횡령하고서도 한없이 당당한 목사 앞에서 무소유의 정신을 본받기가 만만치 않다. 성직자와 종교단체가 권력과 물질에 미련을 두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또 거듭되는 자기모순은 준엄한 응징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청빈을 온몸으로 실천한 종교계 큰어른들이 새삼 그립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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