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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사찰과 현대예술의 만남’··· 화엄사, 광복절 문화 전시 공연

    ‘전통사찰과 현대예술의 만남’··· 화엄사, 광복절 문화 전시 공연

    구례 화엄사가 광복절을 맞아 문화 전시 공연을 마련해 관심을 모은다. 화엄사는 천년의 화엄사상을 춤과 시 낭송, 국악,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동시대 예술로 풀어내며 전통사찰과 현대예술의 새로운 만남을 선보인다고 12일 밝혔다. 지난 1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보제루와 성보박물관에서 ‘화엄전–몸짓과 낭송’을 개최하고, 이어 프랑스 파리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한국 작가 8인이 참여하는 ‘경계의 화엄–파리에서 구례까지’를 통해 화엄의 세계관을 현대미술로 확장한다. 첫 번째 전시인 ‘화엄전–몸짓과 낭송’에는 파리와 한국,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아방가르드 무용가 “신은주(애나벨 신)”와 시 낭송가이자 한지 퍼포먼서인 엄경숙 국제하나예술협회 대표가 참여한다. 신은주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춤과 드로잉, 미디어아트로 풀어낸다. 파리에서 작업한 사진 위에 드로잉을 더하고 자신의 몸짓을 회화적 이미지로 재구성해, 시간예술인 춤을 전시 공간으로 확장한다. 엄경숙은 화엄사 성보박물관에서 QR코드를 통해 시 낭송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듣는 전시’를 선보인다. 관람객은 ‘화엄의 범종’ 등 낭송 작품을 직접 들으며 시각과 청각이 결합된 새로운 전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15일 광복절에는 화엄사 보제루에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주제로 한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시인이었던 한용운의 정신을 기리는 이날 공연에서는 엄경숙의 시 낭송과 한지 퍼포먼스, 신은주의 아방가르드 춤, 대금·가야금·양금·징·북·구음 등 국악 연주가 어우러진다. 신은주는 “화엄사상의 법계연기는 모든 존재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며 “몸짓과 목소리, 이미지와 공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전시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엄사의 현대예술 프로젝트는 ‘경계의 화엄–파리에서 구례까지’로 확장된다. 이 전시는 오랜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온 한국 작가들이 천년고찰 지리산 대화엄사로 돌아와 자신들의 예술적 여정을 펼쳐 보이는 자리다. 전시는 파리의 자유로운 예술 형식과 화엄사의 장엄한 고요가 만나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오랜 시간 파리에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유목의 시간’이 화엄사의 ‘천년의 시간’과 만나면서,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예술적 귀향과 정화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홍현주, 문창돈, 최현주, 훈 모로, 박우정, 홍일화, 박인혁, 오세견 등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한국 작가 8인이 참여한다. 이들은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1991년 창단된 파리의 대표적인 한인 예술인 단체인 소나무작가협회 회원들이다. 지리산대화엄사 전시 관계자는 “몸짓과 낭송,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그리고 파리 작가들의 현대미술은 서로 다른 예술처럼 보이지만 모두 화엄의 ‘연결’이라는 하나의 정신이다”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수행과 예술이 화엄사에서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문화예술의 인드라망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태국 부적 하나에 ‘600만원’…1200만 中청년 취업난이 만든 ‘영적 소비’ [여기는 동남아]

    태국 부적 하나에 ‘600만원’…1200만 中청년 취업난이 만든 ‘영적 소비’ [여기는 동남아]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린 중국 청년들이 태국 불교 부적에 매달리고 있다. ‘재물운’과 ‘취업운’을 판다는 이 작은 부적이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거대한 시장으로 커지자, 이번엔 범죄 조직이 이를 자금세탁 통로로 노리기 시작했다. 결국 태국 당국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11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글로벌 등에 따르면 태국 상좌부 불교의 민간 신앙물이던 부적(태국어로 ‘프라크루앙’)이 최근 중국 젊은층 사이에서 하나의 ‘집착’에 가까운 유행이 됐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과 소득 불안, 연애와 창업의 높은 벽 앞에서 청년들이 운을 바꿔줄 지름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어떤 부적이 재물운과 승진운에 좋은지를 놓고 벌이는 토론과 수집담이 넘쳐난다. 특히 승려가 아닌 민간 주술사가 만드는 ‘음패’(陰牌·어두운 힘을 다룬다고 여겨지는 부적)는 ‘빠른 효과’를 앞세워 5만~30만 바트(약 214만~1285만원)에 팔리고, 최고급품은 수백만 바트까지 호가한다. 부적 열풍의 뿌리에는 중국 청년들의 불안이 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2026년 대학 졸업생은 1270만명에 이르며, 앞서 취업에 실패한 이들과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까지 더해지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오르지 않는 소득도 불확실한 청년들에게 부적은 일종의 심리적 버팀목이 된 셈이다. 청론 림파디 태국 이민국 부국장 겸 대변인은 “많은 중국 청년들이 사회·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며, 사랑과 부, 경력에서 앞날을 개선해줄 영적 지지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열풍이 범죄 조직의 눈에도 들었다는 점이다. 태국 이민국은 급성장한 부적 거래가 중국계 회색자금 네트워크의 자금세탁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온라인 도박과 통신사기,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돈이 부적 판매 수익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림파디 대변인은 “금이나 주식, 부동산과 달리 부적 같은 신성한 물건에는 정해진 시장 가격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몇천 바트짜리 물건이 수백만 바트짜리 희귀품으로 포장될 수 있고, 거래도 현금이나 가상자산으로 이뤄져 추적이 어렵다. 그는 “불교 부적은 태국의 문화유산이자 신앙의 일부이며, 범죄를 감추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적 시장을 둘러싼 잡음은 이미 여러 차례 터져 나왔다. 2023년 8월 태국 경찰은 촌부리주 카오치찬 사원에서 중국인 관광객에게 실제 가치가 11달러가량인 가짜 부적을 715~2830달러(101만~400만원)에 판 혐의로 중국인 18명을 적발했다. 올해 3월에는 홍콩 관광객 9명이 나콘시탐마랏주의 한 사원에서 유명 불탑을 배경으로 부적을 팔며 라이브 방송을 하다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태국은 자금세탁방지청과 중앙수사국, 사이버경찰 등이 합동 단속에 나선 상태다.
  • 진우스님 연임 의사 공식화…조계종 새 지도자 ‘3파전’

    진우스님 연임 의사 공식화…조계종 새 지도자 ‘3파전’

    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연임 도전을 공식화했다. 앞서 출마 의사를 밝힌 정념스님, 경우스님까지 조계종 차기 총무원장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진다. 진우스님은 다음달 치러지는 제38대 총무원장 선거 후보 등록 첫날인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비공개 출마 선언을 하고 곧바로 후보 등록했다. 진우스님은 출마 선언문을 통해 “다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슴에 안고 이 자리에 섰다”며 “사부대중이 함께 힘들게 이뤄낸 종단의 안정과 변화를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이제는 종단의 안정이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 한국 불교가 더 큰 도약을 향해 진일보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원과 현안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다양한 포교 불사를 통해 불교의 대사회적 위상을 높였다”며 “불교는 젊어졌고, 더 역동적인 변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추대제부터 직선제까지 다양한 대안을 열어놓고 선거 제도를 검토하는 것을 비롯해 비구니 스님의 권익 향상, 승려 완전 복지 완성, 기본수행비 지원, 중앙 권한 교구 이양 등의 종책 공약을 제시했다. 이어 “지금 한국 불교는 도약과 중흥이라는 미래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갈림길”이라며 “승가는 더욱 당당하게, 종단은 더욱 안정되게, 불교는 더욱 젊고 역동적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진우스님은 백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8년 관응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용흥사·백양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제37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조계종 최대 종책 모임인 불교광장으로부터 합의 추대되면서, 단독 후보일 경우 투표 없이 당선되는 선거법 규정(2019년 개정)에 따라 무투표 당선됐다. 이후 2022년 9월부터 임기를 이어 오고 있다. 진우스님이 연임에 성공하면 제33대와 34대에 연임한 자승스님(1954∼2023)에 이어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후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이날 진우스님의 후보 등록 직후 총무원장 투표권을 가진 중앙종회 의원 81명 중 53명이 진우스님 지지 선언을 했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는 다음 달 3일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전국 24개 교구본사에서 10명씩 선출한 240명을 합쳐 총 321명의 간접선거로 치러진다. 후보 등록은 13일까지 사흘간이다. 진우스님에 앞서 출마를 선언한 전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전 선운사 주지 경우스님도 이날 곧바로 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 편지·난초에 담긴 ‘추사의 인연’

    편지·난초에 담긴 ‘추사의 인연’

    정선·김홍도 이어 서화가 주제전주변인들 통해 추사 삶·예술 조명편지·서예·그림 등 31건 38점 공개말년 서화일치 경지 ‘불이선란도’9월 13일까지 한 달간 한시적 전시 묵향 속에 글씨와 그림이 하나로 녹아든 보물 ‘불이선란도’는 서화일치의 경지를 증명하는 추사 김정희(1786~1856) 말년의 역작이다. 겉치레를 걷어낸 필묵으로 난초의 절제된 미감과 생명력을 담아낸 작품으로, 화면 여백에 네 차례에 걸쳐 적힌 추사의 글귀를 통해 태생과 소장 경위의 사정을 고스란히 펼쳐 보인다. 그는 애초 곁에서 심부름하던 아이 달준에게 건네려 붓 가는 대로 난을 그려냈다. 이후 제자 오규일이 달준에게서 그림을 억지로 가져갔다는 일화의 기록은 주변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거장의 소탈한 일상도 함께 전한다. 19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정희의 삶과 학문, 예술 세계를 그가 맺은 인연과 교류를 통해 조명하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제전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를 11일부터 오는 11월 22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연다고 10일 밝혔다. 서화실 재개관을 기념해 마련한 세 번째 서화가 주제전으로,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에 이어 김정희를 다룬다. 이번 전시는 김정희가 조선·청나라 문인, 제자, 승려 등과 맺은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편지, 서예, 그림, 탑본 등 총 31건 38점이 공개된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교류가 뛰어난 예술적 성취로 이어진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단, 불이선란도는 9월 13일까지 한시적으로 전시된 후 김정희의 ‘함추각 행서대련’으로 교체된다. 김정희의 금석학 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도 함께 선보인다. 금석학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글씨와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당시 문인들에게 금석학은 변형된 서첩을 넘어 글자의 원형을 직접 확인하고 고대 역사를 새롭게 발굴하는 중요한 학문적 수단이었다. 경북 경주 암곡동 터에서 김정희가 찾아낸 통일신라 시대 ‘무장사 아미타불 조성기비 편’이 대표적이다. 이 비석은 신라 소성왕의 왕비 계화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며 아미타불상을 조성한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비의 머릿돌 왼쪽 면에는 이를 발견한 김정희의 조사기가 함께 새겨져 있다. 말년의 대작들도 공개된다. 1856년 김정희가 71세 때 쓴 ‘산호가·비취병 대련’은 과천 봉은사에 머물던 시기에 북청 유배 당시의 제자 요선(유치전)을 위해 쓴 작품이다. 같은 해 쓴 ‘해붕대사화상찬’은 고승 해붕을 기리는 글로, 김정희의 말년 해서체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6건 6점의 작품이 대중에 처음 공개된다. 부친 김노경의 예조판서 임명과 자신의 문과 급제 소식을 담은 1819년 ‘황해도 무관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제주 유배기의 ‘기유십육도시첩’,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를 보여주는 ‘소동파입극도’ 등이 포함된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된다. 1부 ‘김정희의 편지와 일상’에서는 편지를 통해 가족에 대한 애정과 유배 생활의 고독을 살핀다. 2부 ‘함께 성취한 금석학 성과’에서는 비석 조사와 석노 고증을 다룬다. 3부 ‘추사 김정희의 문예교유’에서는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류, 김유근·권돈인과의 인연, 허련과 이하응으로 이어지는 예술적 계승 관계를 소개한다. 4부 ‘추사 김정희의 벗, 불교’에서는 고승들과의 교유를 통해 불교가 김정희의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는 추사 김정희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라며 “다양한 교류가 뛰어난 예술적 성취로 이어진 과정을 살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100년 이어온 ‘수행의 뒷간’… 사찰 해우소, 국가유산 된다

    100년 이어온 ‘수행의 뒷간’… 사찰 해우소, 국가유산 된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사찰 뒷간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불전과 탑 위주였던 사찰 문화유산 보존 범위가 승려들의 생활 공간으로 확장됐다. 국가유산청은 ‘순천 선암사 측간’, ‘영월 보덕사 해우소’,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 등 사찰 해우소 3곳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밝혔다. 지정 예고는 국가유산 지정을 앞두고 대상과 내용을 공개하고 의견을 받는 절차다. 지정 예고된 해우소 3곳은 건립 시기가 문헌과 상량 묵서로 확인되고 원형을 유지한 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어 역사적·민속적 가치가 크다. 전남광주 순천시 선암사 측간은 1920년대 이전, 강원 영월군 보덕사 해우소는 1882년, 경남 합천군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는 1910년 건립됐다. ‘근심을 내려놓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소는 한국전쟁 이후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사찰 전통 화장실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건축적으로는 경사지를 이용해 앞면은 단층, 뒷면은 중층 누각 구조를 갖는다. 문 대신 가슴 높이 칸막이와 살창을 둬 통풍·채광과 시선 차단을 함께 고려한 점, 분뇨를 왕겨·낙엽과 섞어 발효시켜 밭의 거름으로 되돌리는 자원 순환 방식 등이 전통 사찰 생활문화의 특징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최종 지정할 방침이다.
  • 100년 이어온 ‘수행의 뒷간’…사찰 해우소 3곳 국가민속문화유산 된다

    100년 이어온 ‘수행의 뒷간’…사찰 해우소 3곳 국가민속문화유산 된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사찰 뒷간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불전과 탑 위주였던 사찰 문화유산 보존 범위가 승려들의 생활 공간으로 확장됐다. 국가유산청은 ‘순천 선암사 측간’, ‘영월 보덕사 해우소’,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 등 사찰 해우소 3곳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밝혔다. 지정 예고는 국가유산 지정을 앞두고 대상과 내용을 공개하고 의견을 받는 절차다. 지정 예고된 해우소 3곳은 건립 시기가 문헌과 상량 묵서로 확인되고 원형을 유지한 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어 역사적·민속적 가치가 크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 측간은 1920년대 이전, 강원 영월군 보덕사 해우소는 1882년, 경남 합천군 해인사 국일암 해우소는 1910년 건립됐다. ‘근심을 내려놓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소는 한국전쟁 이후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이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사찰 전통 화장실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건축적으로는 경사지를 이용해 앞면은 단층, 뒷면은 중층 누각 구조를 갖는다. 문 대신 가슴 높이 칸막이와 살창을 둬 통풍·채광과 시선 차단을 함께 고려한 점, 분뇨를 왕겨·낙엽과 섞어 발효시켜 밭의 거름으로 되돌리는 자원 순환 방식 등이 전통 사찰 생활문화의 특징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최종 지정할 방침이다.
  • 당신이 무심코 쓰는 단어, 알고 보면 다 사연 있다

    당신이 무심코 쓰는 단어, 알고 보면 다 사연 있다

    우리는 문어, 낙지, 주꾸미를 제대로 구분할 줄 안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 낙지나 주꾸미를 문어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중국어로 문어는 ‘장위(章魚)’라 하고, 낙지나 주꾸미는 작은 문어라는 의미로 ‘샤오장위(小章魚)’로 통칭한다. 반대 사례도 있다. 우리는 카스텔라를 빵의 한 종류로 알고 있다. 빵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빵을 만드는 제빵사는 ‘블랑제’라 하고, 카스텔라나 케이크, 과자 등을 만드는 사람은 ‘파티셰’로 나눈다. 우리 삶에 밀접한 대상일수록 이름은 정교해진다. 그렇지 않은 대상은 하나의 큰 범주로 무심하게 묶어 버리곤 한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단어의 어원과 변천, 적정한 쓰임새,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탐구해온 저자가 우리 주변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또 풀어냈다. 2년 전 출간한 인문교양서 ‘단어가 품은 세계’에 이은 후속작이다. 23개의 꼭지로 일상 속 단어의 사연을 펼친다. 앞서 문어, 낙지, 주꾸미 사례처럼 단어에 얽힌 인식 문제까지 풀어낸 게 책의 묘미다. 예컨대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높여 부르는 단어 ‘도련님’의 변천사를 보자.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가르쳐주는 사람’이란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ācārya’에서 왔다. 이를 한자로 소리 표기한 ‘아사리(阿闍梨)’로 들어왔고, 한자 ‘사’가 ‘도’로 발음이 변하면서 ‘도리’가 됐다. 고려시대에 ‘도리’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된 총각을 이르는 말이었다. 여기에 ‘리’가 ‘려’로 바뀌며 ‘도려’가 됐고, 사이시옷이 붙으며 ‘도렷님’, 이를 발음하기 쉽도록 ‘도련님’으로 바뀌었다. 이 말은 또 ‘도련’, 그리고 ‘도령’으로도 변화했다. 도령은 한자 ‘道令’으로 쓴다. 저자는 이를 두고 “단어는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바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흐름을 억지로 바꾸긴 어렵다고 덧붙인다. 도련님을 비롯해 아가씨, 서방과 같은 호칭부터 금자탑, 도나츠, 낭만, 북채 등 우리에게 익숙한 번역어가 어떻게 생겨나고 바뀌었는지 따라간다. 잘못 쓰이는 단어도 짚어낸다. 많은 이들이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생겨난 줄 알지만, 사실 어원은 1785년(정조 9년)의 을사년 대기근에서 왔다고 한다. 저자는 단어를 대할 때 사전적 정의만 따지지 말고 맥락, 그리고 문화적 용법을 두루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랜 세월 동안 소비되고 다듬어져 ‘문화적 맥락’까지 알아야 그 단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어는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다. 나아가 우리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설명을 따라 단어들의 어원과 변천을 쫓아도 좋을 듯하다. 대부분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에 대한 풀이여서 책이 술술 읽힌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단어는 우리 인생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 불탔던 日호류지 금당벽화… 77년 만에 본래 색채 되찾아

    불탔던 日호류지 금당벽화… 77년 만에 본래 색채 되찾아

    고구려 승려 담징(579∼631)이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일본 나라현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가 77년 만에 본래의 색채를 되찾았다. 19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호류지 벽화 보존활용위원회는 지난 17일 1949년 화재로 심하게 훼손된 금당 벽화 가운데 제6호 벽화를 고해상도 컬러 이미지로 복원했다고 발표했다. 호류지 금당 벽화는 석가와 약사여래 등을 그린 4개의 대형 벽화와 보살상을 담은 8개의 소형 벽화 등 모두 12면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복원된 것은 여섯 번째 벽화로, 복원 이미지에서는 화재 이후 사라졌던 불상의 붉은 법의와 보살의 화려한 장식, 섬세한 색채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금당 벽화는 1949년 1월 화재로 안료가 심하게 손상돼 거의 흑백처럼 보일 정도로 색을 잃었다. 이후 1958년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까지 호류지 수장고에서 보존돼 왔다. 다행히 전쟁 전인 1930년대 교토의 미술 공방 벤리도(便利堂)가 유리 건판을 이용해 벽화 12면 전체를 촬영했다. 벽화를 실물 크기로 나눠 촬영한 정밀한 흑백 건판과 컬러 인쇄용 4색 분해 원판도 남아 있었다. 복원에 참여한 후지필름은 당시 사진에 남아 있는 색상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원래의 색을 추정했고, 벽화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 촬영한 고해상도 흑백 사진 원판을 결합해 세밀한 컬러 이미지를 완성했다. 복원된 벽화는 18일부터 9월 13일까지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미국 보스턴미술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호류지 금당 벽화는 일본 최고(最古) 수준의 불교 벽화로 평가받으며, 고구려 승려 담징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전승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 화재로 잃은 색 되찾은 日 호류지 금당벽화…77년 만에 컬러 복원

    화재로 잃은 색 되찾은 日 호류지 금당벽화…77년 만에 컬러 복원

    고구려 승려 담징 전승 벽화최신 필름 기술로 원색 재현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일본 나라현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가 77년 만에 본래의 색채를 되찾았다. 19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호류지 벽화 보존활용위원회는 지난 17일 1949년 화재로 심하게 훼손된 금당 벽화 가운데 제6호 벽화(사진)를 고해상도 컬러 이미지로 복원했다고 발표했다. 호류지 금당 벽화는 석가와 약사여래 등을 그린 4개의 대형 벽화와 보살상을 담은 8개의 소형 벽화 등 모두 12면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복원된 것은 여섯 번째 벽화로, 복원 이미지에서는 화재 이후 사라졌던 불상의 붉은 법의와 보살의 화려한 장식, 섬세한 색채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금당 벽화는 1949년 1월 화재로 안료가 심하게 손상돼 거의 흑백처럼 보일 정도로 색을 잃었다. 이후 1958년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까지 호류지 수장고에서 보존돼 왔다. 이번 복원은 1935년 컬러 필터를 사용해 촬영한 사진 원판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후지필름이 당시 사진에 남아 있는 색상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원래의 색을 추정했고, 여기에 벽화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 촬영한 고해상도 흑백 사진 원판을 결합해 세밀한 컬러 이미지를 완성했다. 복원된 벽화는 18일부터 9월 13일까지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미국 보스턴미술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호류지 금당 벽화는 일본 최고(最古) 수준의 불교 벽화로 평가받으며, 고구려 승려 담징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전승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 보물 지정…조선시대 불교 건축 가치 인정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 보물 지정…조선시대 불교 건축 가치 인정

    충남 금산군은 7일 남이면 소재 금산 보석사 산내 암자 영천암의 중심 건물인 ‘영천암 무량수각’이 국가 보물로 지정 고시됐다고 밝혔다. 영천암은 통일신라시대 조구대사가 수도장으로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영천암 무량수각은 2000년 전체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과 상량 묵서를 통해 1786년(정조 10)에 중수된 사실과 함께 공사에 참여했던 승려와 장인이 정확하게 확인된 건물이다. 상량문에는 중수 당시 공사가 100여년 만의 보수였다는 내용이 남아 있어 무량수각이 17세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영천암 무량수각은 ‘ㄱ’자형 평면, 이익공 공포,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결합된 지붕 구조, 다락 공간 구성 등에서 조선시대 산중 암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군 관계자는 “금산 영천암 무량수각은 조선시대 산중 암자의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 11살 소년이 몰던 트럭에 승려 9명 참변…260㎞ 순례길 비극, 처벌은? [여기는 동남아]

    11살 소년이 몰던 트럭에 승려 9명 참변…260㎞ 순례길 비극, 처벌은? [여기는 동남아]

    태국에서 11세 소년이 부모의 픽업트럭을 몰래 몰고 나왔다가 순례 중이던 승려 행렬을 덮쳐 승려 9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6일 태국 현지 경찰과 외신에 따르면 사고는 전날 태국 북동부 묵다한주에서 일어났다. 당시 승려 35명과 재가 신도 5명은 인근 사원에서 우본랏차타니주까지 약 260㎞에 달하는 도보 순례를 시작한 지 겨우 30분 만에 변을 당했다.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도로 가장자리를 한 줄로 걷던 중 픽업트럭 한 대가 갑자기 돌진해 행렬을 덮치는 장면이 담겼다. 충돌 직후 곳곳에 쓰러진 승려들과 흩어진 소지품이 사고의 충격을 보여줬다. 이 사고로 승려 5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승려 가운데 4명이 추가로 숨을 거두었다. 현재 최소 13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위중한 상태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고 당시 행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승려 프라 솜퐁은 “멀리서 픽업트럭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면서 “기도를 올리던 중 갑자기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어 “다른 승려와 함께 몸을 던져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눈앞에서 많은 승려들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는 놀랍게도 초등학생 나이인 11세 소년으로 확인됐다. 소년은 부모의 허락 없이 몰래 차량 열쇠를 들고 나와 약 10㎞를 운전하다가 이 같은 끔찍한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사고를 낸 소년 역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여서 아직 충분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차량 정밀 감식과 함께 정확한 사고 경위, 그리고 부모의 방임 등 보호자 책임 여부를 함께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지 법적 처벌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태국 형법상 만 12세 미만 아동에게는 형사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년에 대한 실질적인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향후 보호자의 관리 소홀 책임과 민사상 배상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묵다한주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고는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모든 운전자와 부모에게 큰 교훈이 되어야 한다”며 “도로 안전의 중요성과 자녀 교육의 책임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비극”이라고 애도했다. 한편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 태국에서 승려는 사회적으로 깊은 존경을 받는 성스러운 존재다. 대중교통들도 승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 속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에 태국 전역은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 “16∼17세기 건축 특징 남아”…‘금산 신안사 대광전’ 보물 된다

    “16∼17세기 건축 특징 남아”…‘금산 신안사 대광전’ 보물 된다

    독특한 가구 양식을 지닌 400여년 역사의 불교 건축이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금산 신안사 대광전’을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3일 예고했다. 충남 금산 신안사 대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 건물로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을 이루는 기둥, 보 등의 나이테 연대를 분석한 결과, 1583년에 조성된 것이 확인됐고 16세기 건축 양식 흔적도 여럿 남았다. 특히 대광전은 곳곳에 독특한 구조가 남아 있다. 어칸(御間·기둥과 기둥 사이를 나누는 기본 단위인 칸 가운데 정중앙의 공간)의 경우 대들보를 놓고 그 위에 동자기둥이 중보를 받치는 형식이다. 대광전은 옆에서 보면 ‘ㅅ’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린 형태인데, 이런 구조의 어칸은 주로 팔작지붕 건물에서 나타난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맞배지붕의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쓰는 부재가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구성된 점도 특이한 사례로 여겨진다. 국가유산청은 아울러 경북 포항시의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항 달전재사는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언적(1491∼1553)과 그 일가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한 건축물이다. 승려들이 묘역을 지키며 생활하던 작은 암자였으나 1754년 옥성루와 양익실(兩翼室), 고사(庫舍) 등 건물을 증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국가유산청은 “조선시대 묘제 문화의 변천과 영남 지역 재사 건축의 특징을 집약하고 있어 국가유산으로 체계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전북 임실 성가리의 옛집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될 예정이다. ‘임실 성가리 근대한옥’은 1939년 건립된 건물로, 전통 한옥과는 다른 근대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대한옥은 근대 이후의 건축·생활 양식이 반영돼 구조 등이 변한 한옥을 뜻한다. 성가리 한옥은 2중 서까래가 독특한 지붕 구조를 이루고 아치형 창호, 꽃 모양 철제 장식, 실내 붙박이 가구 등 독특한 부분이 많아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등을 확정할 방침이다.
  • 그라운드의 기적을 스크린에… 우릴 울리고 웃긴 축구영화 [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본 영화]

    그라운드의 기적을 스크린에… 우릴 울리고 웃긴 축구영화 [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본 영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열기로 온 세상이 뜨겁다. 각본 없는 축구 경기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환호는 우리 일상마저 감동의 드라마로 바꿔 놓는다.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축구’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큰 절집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그것도 커다란 스크린을 걸어 놓고. 2000년 봄 조계사 대웅전에서 부탄의 승려 겸 영화감독인 종사르 켄체 린포체가 연출한 ‘컵’(The Cup·1999)을 관람했다. 앞서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먼저 접했다. 이 작품을 조계사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과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 조계사로 달려가 한 번 더 봤다. 영화는 히말라야 산속에 자리잡은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 월드컵을 보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렸다. 수행에 정진하려 하지만 프랑스와 브라질의 결승전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큰스님은 경기 시청을 허락한다. 스님들은 경기를 보기 위해 위성 안테나를 손보고 다 함께 모여 결승전을 본다. 영화를 대웅전 경내 부처님들을 곁에 두고 마룻바닥에 앉아 아이들과 한 시간 반 동안 까르르 웃고, 살짝 눈물 비추고, 소리 지르듯 응원하며 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참 흐뭇했다. 아이들 중 불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 특별한 경험으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사찰을 가까이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2003년 개봉한 이민용 감독 작품 ‘보리울의 여름’도 기억에 남는 축구 영화다. 시골 마을 보리울에 살고 있는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 이야기를 그렸다. 스님을 코치로 한 절집 아이들, 신부님을 코치로 모신 성당 아이들은 성당에서 열린 잔칫날 “우리 축구 같이 하자. 조그만 동네에서 따로따로 연습할 거 뭐 있어?”라는 한 소년의 제안에 팀을 만들고, 읍내 축구팀을 상대로 멋진 승부를 펼친다. 영화는 축구를 소재로 하지만 불교와 천주교의 만남과 축구를 통한 종교적 화합을 보여 준다. 목포 출신 신부님과 부산 출신 스님의 만남은 영호남 간 지역 갈등과 화합도 소박하게 그려낸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다 보니 다소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 가슴을 뛰게 하는 축구 경기를 보는 관객들은 미소 지으며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재미난 축구 영화로는 많은 이들이 주성치 연출의 ‘소림축구’(2001)를 떠올릴 것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 중 이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영화가 있을까 싶다. 영화는 퇴물 취급을 받는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 명봉(오맹달)이 재기를 꿈꾸며 시작한다. 그는 축구 감독이 되고 싶지만 아무도 그를 봐주지 않는다. 어느 날 소림사에서 무공을 익힌 청년 씽씽(주성치)이 명봉의 눈에 띈다. 그는 허름해 보이지만, 축구 실력은 상당했다. 둘은 함께했던 소림사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팀을 만든다. 그러나 세상 풍파에 찌든 그들은 날렵했던 옛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외모 비관론자, 고도비만 청년, 박봉의 청소부, 방콕론자, 돈벌레…. 하나같이 삶의 의욕을 잃고 지내던 터였다. 하지만 차례차례 씽씽을 다시 찾아오고 이른바 ‘소림축구단’이 결성된다. 이들은 길거리 축구에서 시작해 프로 축구단과 겨룰 만큼의 실력으로 급성장한다. 관객들에게 단지 웃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권선징악’이라는 교훈도 안겨 준다. 신기에 가까운 축구 묘기가 인기를 끌었다.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주성치의 코믹 연기,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가 상상하던 세계를 스크린에 잘 펼쳐 놓으면서 감독으로서 연출력마저 인정받았다. 이번엔 진지한 축구 영화 한 편을 살펴보자.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영화 ‘드림’(2023)은 2010년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모티브로 홈리스 축구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축구의 감동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인간사를 스크린에 담았다.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는 일부러 만들어 낼 수 없는 우연성을 담아내는 최고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실제 있었던 경기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 놓으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관객들의 감동을 키운다. 실제 일어난 스포츠 이야기에 영화적인 요소로 극적인 즐거움을 살짝 더하면 그 울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진다. 드라마와 스포츠가 만나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이 멋진 작품들은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커다란 감동을 안겨 준다. 지금 한창 열리는 월드컵에서의 멋진 드라마가 한 편의 영화처럼 그라운드에 펼쳐진다. 이런 이야기는 또다시 스크린으로 찾아와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때, 용기가 필요할 때 스포츠 영화 한 편을 관람하면서 쉼을 즐기거나 다시금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곧 열리는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도 즐기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들도 함께 즐겨 보길 권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 법주사 전직 주지가 마카오 등 ‘원정도박’ 수십회…징역형 집행유예

    법주사 전직 주지가 마카오 등 ‘원정도박’ 수십회…징역형 집행유예

    대형 금동미륵불상으로 유명한 법주사의 전직 주지가 거액의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주지법 형사6단독 조진용 부장판사는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법주사 전 주지 A(60대)씨에게 전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80시간의 사회봉사와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A씨는 2015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에서 47회에 걸쳐 슬롯머신, 바카라 도박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8년 3월 다른 승려들이 사찰에서 도박한 사실을 알고도 방조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바카라를 한 사실이 없다. 슬롯머신은 도박 위험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부장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도박장 관계자를 통해 항공편을 예약하거나 10만 달러로 11만 달러를 따기도 한 사실이 확인된다”면서 “슬롯머신 역시 도박의 위험성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법주사에 주지로 재직한 사람으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준법의식이 요구되는 지위에 있음에도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피고인의 범행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일부 범행을 자백하고 있으나 도박 횟수가 많고, 도박죄로 형사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찰 내 승려들의 도박을 방조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해당 승려들이 앞선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점을 토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우리들의 호수(앤지 강 글·그림, 장미란 옮김, 주니어RHK) “해냈구나!” 형이 신나서 외쳐요. 형의 얼굴이 왠지 일그러져 보여요. 마치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처럼. 어쩌면 형도 아빠가 생각나는가 봐요. 이곳에 데려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아요. 대신 나는 형을 와락 껴안아요. 형도 날 꼭 그러안아 주어요. 여기, 우리들의 호수에서 물도 우리를 폭 안아 주어요. 아빠를 잃은 형제가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호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형제의 상실과 슬픔,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그린 그림책. 여러 그림책 관련 문학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아빠의 부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어둡지는 않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슬픔을 응시하도록 이끌며,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40쪽, 1만 7000원. 이웃집의 탐스러움(정기현 지음, 북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다. 말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면 그곳에는 늘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다. 친구, 연인 등 세상엔 많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웃은 이상하리만치 멀다. 우리가 진짜 자신인 채 머무는 유일한 공간이 집이라면, 이웃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일 텐데 어째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상대를 떠올리며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써서 건넨다면,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진정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런 생각을 담아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담은 이야기를 이웃에게 건넨다.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진정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184쪽, 1만 4800원. 컬러의 경계, 흑백의 문장(우현 글·사진, 담앤북스) 어떤 승려가 운문에게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운문이 답했다. 볼만할 것이다./색을 지우고 가면을 벗고 만난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나/정말 볼만할까? 135편의 시와 사진이 어우러진 책. 경남 창원시 마산포교당 정법사 주지를 맡고 있는 우현 스님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불자들과 꾸준히 소통한 내용을 담았다. 선적(禪的) 감수성과 불교 세계관이 어우러진 문장과 사진들이 묵직하면서도 다정하다. 특히 불교 경전과 선어록 등의 옛글을 현대인들이 읽기 쉽도록 간명하게 재해석해 독자들의 내면에 웅크린 감각과 마음을 일깨워준다. 298쪽, 2만원.
  • “승려가 女 7명과 성관계, 혼외자 21명”…소림사 전 주지, 거액 횡령까지 [핫이슈]

    “승려가 女 7명과 성관계, 혼외자 21명”…소림사 전 주지, 거액 횡령까지 [핫이슈]

    중국 쿵푸(무술)의 발원지이자 세계적인 불교 성지인 소림사(샤오린스)의 전 주지가 계율 위반 및 수백억 원대 비리로 1심 재판에서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다. 지난 29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중국 허난성 신샹시 중급인민법원은 소림사 전 주지 스융신(본명 류잉청)에 대해 직무상 횡령, 자금 유용, 뇌물 수수 등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4년과 벌금 350만 위안(약 7억 7900만 원)을 선고했다. 1965년생인 스융신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로 꼽힌다. 1981년 소림사에 들어가 1999년 주지에 오른 뒤 지난해 축출되기 전까지 25년 넘게 사찰을 이끌었다. 그는 쿵푸 공연과 영화 촬영, 기념품 판매 등 각종 수익사업을 성공시키며 ‘소림사의 CEO’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소림사가 지나치게 상업화됐다고 비판했지만, 소림사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인물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스융신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중국 불교가 발칵 뒤집혔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사찰 자금 1억 5100만 위안(약 336억 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뒤 3개월 이상 변제하지 않았다. 그가 횡령과 유용을 합친 총 범죄 액수는 628억 원을 넘어선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죄 액수가 막대하고, 특히 뇌물 범죄 혐의가 매우 엄중하며 범행 기간이 길다”면서 “이로 인해 심각한 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막대한 부정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다만 스융신이 범행을 자백하고 사정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추가 범죄 사실을 자진 신고하며 반성한 점 등은 참작됐다”고 덧붙였다. 이와 별개로 스융신은 승려의 신분으로 최소 7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혼외 자녀 21명을 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이미 2015년 소림사 출신 승려들로부터 성추문 및 공금 횡령 의혹을 받았으나 당시 허난성 종교사무국은 수개월간 조사 끝에 관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약 10년 동안 스융신은 불교의 규율을 어긴 승려라는 꼬리표와 의혹이 떠나지 않았다.
  • “승려가 女 7명과 내연, 혼외자 21명…668억 횡령까지” ‘소림사 CEO’ 결국

    “승려가 女 7명과 내연, 혼외자 21명…668억 횡령까지” ‘소림사 CEO’ 결국

    중국 쿵푸의 발원지로 알려진 소림사의 전 주지 스융신(속명 류잉청)이 대규모 횡령과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3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로이터통신, 홍콩 성도일보 등에 따르면 허난성 신샹시 중급인민법원은 전날 직무상 횡령·자금 유용, 뇌물 수수·공여 혐의로 기소된 스융신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350만 위안(약 7억 80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스융신이 약 30년에 걸쳐 직책을 남용해 총 3억 위안(약 668억원) 상당의 자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스융신은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며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판결이 공개된 뒤 중국불교협회는 성명을 내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보여준 사례”라며 “불교계 인사들에게 강력한 경고와 각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은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1965년생인 스융신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981년 소림사에 들어가 1999년 주지에 오른 뒤 지난해 축출되기 전까지 25년 넘게 사찰을 이끌었다. 그는 쿵푸 공연과 영화 촬영, 기념품 판매 등 각종 수익사업을 성공시키며 ‘소림사의 CEO’로 불렸다. 지나친 상업화 논란 속에서도 소림사를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소림사 관리 당국이 그가 형사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불교협회는 이튿날 그의 승적을 박탈했다. 이번 사건과 별개로 그는 최소 7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21명의 혼외 자녀를 뒀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스융신은 이미 2015년에도 소림사 출신 승려들로부터 성추문과 공금 횡령 의혹을 제기받았다. 당시 허난성 종교사무국은 수개월간 조사 끝에 관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한때 소림사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 개혁 승려로 평가받았던 스융신의 몰락은 중국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기고 있다. 중국불교협회는 지난해 말 승려들에 대한 감독 강화를 위해 별도 감독기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세월을 품은 절집… 속세는 지워지고 산세만이 남았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여유로운 가난’이 머문 고찰본래의 고요함은 변함없어147개 철계단 하나하나에목탁 같은 울림이 번져온다화암사 경내 마당서 올려본네모난 하늘이 주는 평온함송광사 사천왕상 위엄 압도도예공방 봉강요 들러볼 만“절로 가는 길은 가난해야 제격이다. 상점도, 술집도, 모텔도 없고, 하다못해 가로도 중앙선도 없는 가난한 길……. 그래야 가는 사람도 가슴에 품었던 세간의 옥매듭을 풀어버리고 갈 것 아닌가?”심인보 ‘곱게 늙은 절집’ 중에서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세상 푸른 오뉴월의 초록이 그저 녹색으로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날 찾아가는 곳이 있는지? 팍팍한 마음에 여유가 되어주는 장소 말이다. 완주 화암사는 그런 절집이다. 누각 툇마루에 앉아 볕만 쬐다가 와도 족하다. 부처님의 자비는 한 걸음 더딘 이들을 위해 가난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사찰과는 다른 ‘절집’ 절집은 사찰과 같은 말인데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심인보 작가의 책을 빌리면 화암사는 “여유로운 가난”이 있는 절집이다. “분칠인지 분장인지 알 수 없는 흉한 몰골”을 하고 있지 않다. 불심을 과시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시한다. 그 무심한 다정과 묵묵한 환대야말로 부처의 자비이고 자애일 터. 그러므로 사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찰이 되지만 절집은 나이 먹어 그저 잘 늙은 절집으로 족하다. ‘곱게 늙은 절집’(지안출판사)은 2007년에 나온 책이다. 기업이미지통합(CI) 디자이너였던 심인보 작가는 이제 사진작가로 더 유명한데, 그가 찾은 전국 25개 절집의 글과 사진이 실렸다. 영주 부석사, 해남 미황사 같은 잘 알려진 절집도 있지만 포항의 오어사나 남원의 선국사 같은 숨은 절집도 있다. 그리고 화암사를 그 첫 번째 절집으로 소개한다. 내가 사랑한 절집을 말할 때 작가와 마찬가지로 화암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럼 “구례 화엄사?” 하는 답이 돌아온다. 완주 화암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만큼이나 아름다운, 시(詩)적인 절집이다. 시인이 보증한다. 화암사를 세상에 알린 건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이다. 시집 ‘그리운 여우’(창비)에 수록된 시다. 시인은 화암사로 발을 들이는 순간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는 자신이 사랑하는 화암사 “잘 늙은 절 한 채…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며 마친다. 1997년 출간한 시집이니 스마트폰이 나오기 훨씬 전이다. 지도로 전국을 여행하던 시절(그런 시절이 있었다)이므로,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겠다. 아마 시를 읽고 처음 화암사를 찾은 이들은 꽤나 투덜거렸을지 모를 일이다. 고생 끝에서야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화암사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모두의 ‘화암사 내 사랑’ 심인보 작가 역시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고 화암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책이 나온 2007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를 선보인 지 10년 남짓 지난 후다. 그러므로 ‘곱게 늙은 절집’은 1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선 화암사에 대한 작가의 찬가다. 내가 처음 화암사를 찾았던 건 심인보 작가가 다녀가고 또 10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나 역시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을 읽고는 애가 닳았다. 시집이 나오고 약 20년이 지났으니 행여 그 모습이 변했을까 조급했다. 화암사에 다다라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절집은 안도현 시인과 심인보 작가가 보았던 그대로 잘 늙어 가고 있었다. 10년, 20년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을 지켜가는 절집이 얼마나 다행하던지. 덕분에 낡고 바랜 툇마루에 앉아서는 잘 산다는 것 무엇일까, 잘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탐욕 없이 덤덤하게 제 몸 안에 세월을 녹이는 것일 텐데, 조금 더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겠거니 하며 화암사를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 찾은 화암사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니 소란스러울 법도 하다만 화암사 가는 길은 한결같다. “봄날의 게으른 햇빛이 도로 위에 졸고” 좁은 시골길은 구불구불 흐른다. 싱그랭이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고목 곁을 지나고 또 2㎞ 남짓을 올라가자 간신히 주차장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다시 불명산 계곡과 숲길을 걷는데, 곧 폭포와 기암 위로 놓인 147개의 철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목탁 같은 울림이 발끝에서 숲으로 번진다. ‘화암사중창기’에는 나무하는 아이나 사냥하는 남자 어른도 쉽게 가기 어려운 절이라고 했다. “고요하되 깊은 성”은 철계단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암벽 등반에 가까웠겠다. 안도현 시인이 사랑한 절집답게 시인의 글귀 또한 마중한다. 그는 ‘화암사 내 사랑’ 외에 ‘화암사, 깨끗한 개 두 마리’라는 시를 썼다. 또 ‘잘 늙은 절, 화암사’라는 산문에서 화암사를 알게 된 과정을 밝힌다. 시인은 누군가의 “귓속말”을 듣고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을 찾았는데 그 귓속말이 글이 된 셈이다. 시 속에는 혼자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지만, 화암사 우화루가 보일 즈음에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고된 길을 알면 지레 포기할까 염려해 한 말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면 시를 짓지도 않았겠지. ●네모난 하늘을 천장 삼다 우화루(雨花樓)는 화암사의 첫인상이다. 2층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그 이름은 꽃비를 바라보는 누각이란 뜻이다. 한없이 낭만적인 듯하지만 ‘불설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의 꽃비에 가까울 것이다. 여느 사찰이었다면 우화루 아래를 지나 경내로 들어섰을 것이다. 그랬다면 꽃비를 맞으며 지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구현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화암사는 그 같은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 우화루 아래는 누각을 받치는 기둥과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린 축대로 막혀 있다. 입구는 우화루 좌측에 있다. 숲을 일주문 삼고 계곡을 천왕문 삼는 절집은 작은 대문 하나가 출입의 의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 하나가 걸려 있을 따름이다. 경내로 들어서자 다시 반전이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옹기종기한 전각에 반한다. 대문만큼이나 작은 마당 하나를 두고 국보 극락전과 보물 우화루가 남북으로 마주하고, 적묵당과 불명당이 동서로 얼굴을 맞댄다. ‘ㅁ’자형의 양반집처럼 네 채의 한옥이 마당을 두른 채다. 마당만 네모날까. 머리 위로 네모난 하늘이 합장하듯 펼쳐진다. 심인보 작가는 이 풍경을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라 표현했다.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누구든 화암사 경내에서는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네모난 하늘과 네모난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산중의 고요가 마치 야상곡처럼 흐르고 새들의 노래는 음표처럼 얹힌다. 그리 시간을 흩뿌린 뒤에야 극락전과 우화루를 번갈아 둘러본다. 우화루는 경내와 접한 쪽으로 벽과 문이 없다. 휑하니 기둥만 있어 전각 안쪽까지 마당이 확장되는 듯하다. 그 끝 외벽에 세 개의 창이 났는데 방금 지나온 산기슭의 초록이 어른댄다. 그래서 화암사의 품은 한층 깊게 아늑하다. 맞은편의 극락전은 반대다. 처마가 일반적인 맞배지붕보다 마당 쪽으로 조금 더 나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리 밑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부재(하앙)를 설치해 처마를 길게 뻗을 수 있도록 해 그렇다. 이는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구조로 국보에 지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화암사는 역시나 크게 뽐내지 않는다. 경내를 두루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우화루 목어와 눈이 마주친다. 목어는 부리부리한 눈에 반해 꼬리는 만들다 만 듯 뭉툭하게 끝이 나는데, 대신 나무의 결을 살려 정교한 비늘을 표현했다. 그마저 색 없이 소박하다. 목어마저도 참 잘 늙어가고 있는 절집이다 싶다. 화암사는 곱게 늙은 것이 아니라 잘 늙어 곱다는 걸 알겠다. ●산사를 닮은 도예가의 집 완주에는 들러볼 만한 절집이 또 있다. K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 아원고택, 송소고택 등과 가까운 거리의 송광사다. 산사와 달리 평지의 가람은 접근이 편하고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이 일직선에 놓여 그 현판이 겹쳐 보이는 게 특징이다. 무엇보다 보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이 눈길을 끈다. 최명희 작가가 쓴 ‘혼불’에서 승려 도환은 완주 송광사 사천왕의 조형미가 조선에서 가장 빼어나다 말한다.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네 명의 수호신은 위엄과 익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데 거대한 소조임에도 표정과 몸짓이 살아 있다. 범종루 역시 명성이 자자한데 지금은 보수 중이라 볼 수 없다. 대신 절집 안팎으로 꽃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운치가 남다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부터 호젓한 정원을 걷는다. 옛 담과 나란한 길 끝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는데, 이 나무 한 그루만으로 ‘절집’이라 불릴 만하다. 수형에 비해 수고가 높고 수관이 너른 것이 여간 늠름하지 않다. 바람에 잔가지를 내어주어 가벼이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세상 시름이란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송광사 가까이에는 위봉사와 위봉산성이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화보 촬영을 한 위봉산성도 좋지만 위봉사 옆 봉강요에서 우리 도예의 멋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봉강요는 대한민국 명장 진정욱 작가가 꾸리는 공방이다. 진 작가는 봉강요와 함께 ‘잘 늙어가는’ 도예가다. 지금의 터에는 2000년 작업실을 열었고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시와 달항아리 등을 선보인다. 또한 그 자신이 도예에서 얻은 치유와 위안을 나누고픈 마음에 봉강요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그래서 여느 도예 공방과 다르게 카페와 전시관, 정원과 작업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초입에는 ‘산속 깊은 미술관’이 반긴다. 창과 문 없이 활짝 열린 작은 공간은 작품과 자연이 서로를 마주한다. 봉강요 안쪽은 입장권(1만원)을 구매한 후 돌아보는데 입장료는 음료와 소품 도자기 하나를 포함한다. 작가의 작업실과 도자기가 익어가는 전통가마 그리고 청초원과 소풍원 등 꽃과 나무가 울창한 길을 거닐어 봉강요전시관에 이르는 코스다. 카페는 잘 빚은 도자기가 공간과 어우러져 우아한 시간을 선물한다. 남쪽 너른 창으로는 산사처럼 푸른 자연이 펼쳐져 밝고 환하다. 우리가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는 동안 계절은 어느새 봄의 끝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품에서 볕을 쬐며 가마 속 도자기처럼 익어가도 좋겠다. 그것만으로 봉강요에 머물 이유는 충분하다.
  • 늦잠도 지각도 좀 해 본, 신입 MZ 스님 따라 힙한 깨달음을 만나다

    늦잠도 지각도 좀 해 본, 신입 MZ 스님 따라 힙한 깨달음을 만나다

    현밀 스님 ‘성불 한번 해볼까’ 출간수행 과정·불경 등 재미있게 꾸며능행 스님, 죽음 다룬 ‘생의 모닥불’ 호스피스 선구자의 깨달음 전해티베트 불교 만날 수 있는 법문집도 몇 주 전부터 도심 사찰에 울긋불긋 연등이 내걸렸다.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24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장 핫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지만 경전 대부분이 한자로 돼 있어 깊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며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누구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알려주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교보문고를 비롯해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종교적 성장소설이자 걸작으로 꼽히는 ‘싯다르타’가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내에 재진입하기도 했다. ‘성불 한번 해볼까’(휴머니스트)는 대학 졸업 후 절을 첫 직장으로 선택한 비구니 스님 현밀의 출가부터 정식 승려가 되기까지 10년 동안의 수행 과정과 함께 부처님 말씀을 재미있게 꾸몄다. 조계종 불교 크리에이터이자 불교 관련 신문에 ‘뭉밀이 佛스타툰’을 연재했던 현밀 스님은 현재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서 포교 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늦잠을 자서 새벽 예불에 지각하고 밥물을 잘못 안쳐 죽밥과 된밥으로 공양을 올리는가 하면 도량에서 뛰다 걸려 선배 스님에게 혼나고 혼자 남은 방에서는 외롭고 서러워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신입 사원의 일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도 하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뭉게구름에서 착안했다는 캐릭터 ‘뭉밀이’로 불교 기초 교리와 일상 속 행복 메시지를 들려주며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의지처이자 안내자’라는 불교의 자기 돌봄 메시지를 깨닫고 마음의 고요를 얻게 해준다. ‘생의 모닥불’(김영사)은 30년 넘게 죽음 명상을 교육하고 불교 호스피스의 선구자로 살아온 능행 스님의 생각을 모아놓은 책이다. 수많은 죽음을 배웅했던 능행 스님은 “죽음은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시와 같은 짧은 산문에 두께도 시집처럼 얇지만 읽다보면 불교의 가르침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지금 내 뜻으로 살 수 있을 때 깨어 있어야 한다.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놓을 수 있을 때 놓아야 한다”는 구절은 불교의 ‘공즉시색’이라는 가르침과 함께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나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의상 스님 법성계’(해냄)는 정형외과 전문의인 저자가 많은 환자를 만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불경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법성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체계화한 불교 대표 경전이자 동양 철학의 근간인 ‘화엄경’ 중 핵심 가르침을 신라 대표 고승이자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 대사가 7언 30구 210자로 담아낸 게송(운문 형식의 노래)이다. ‘꺕도쎔께 샥빠’(그린비)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티베트 불교를 만날 수 있게 하는 법문집이다. 법문집에서는 악업의 과보, 참회의 순서와 명칭, 8세기 인도의 여섯 가지 수행법 등을 통해 악업을 정화할 수 있는 수행법을 알려준다.
  • 약 1400년 만에 열린 진실, 익산 미륵사지가 감춰온 반전 [한ZOOM]

    약 1400년 만에 열린 진실, 익산 미륵사지가 감춰온 반전 [한ZOOM]

    익산을 찾는 이들은 반드시 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다. 하지만 이 탑을 처음 마주하면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마치 거대한 주먹이 탑을 내리치기라도 한 듯, 동북쪽 면만 겨우 6층까지 남고 나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원래 9층이었을 이 탑의 빈자리는 그 자체로 백제가 견뎌온 모진 세월을 웅변한다. ●마 캐던 소년과 신라 공주의 노래, 서동요 이 탑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는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시작된다. 백제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은 ‘서동’이었다. 마를 캐서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소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동은 비범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그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품고 적국인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잠입했다. 서동은 서라벌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맛있는 마를 나누어 주며 환심을 샀다. 그리고 그 대가로 노래 하나를 부르게 했다. 그것이 바로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마다 몰래 안고 간다”라는 내용의 ‘서동요(薯童謠)’다. 오늘날로 치면 아이들의 입을 빌려 온 나라에 파격적인 가짜 뉴스를 퍼뜨린 셈이다. 이 노래는 순식간에 진평왕의 귀에 들어갔고, 정조를 의심받은 선화공주는 억울하게 대궐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올랐다. 그리고 눈물로 길을 떠나던 공주 앞을 막아선 사람은 다름 아닌 서동이었다. 그렇게 마를 캐던 가난한 소년은 신라 공주와 결혼하였고 마침내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훗날 왕비가 된 선화공주는 부처님의 신비로운 힘이 이 땅에 머물기를 바라며, 미륵사(彌勒寺)를 지어달라고 무왕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깎여 나간 세월, 덧칠해진 상처 639년 완공된 미륵사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법당이 나란히 늘어선 구성은 백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운데 서 있던 거대한 나무 탑은 불에 타 사라졌고,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의 불길 속에 사찰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석탑도 이 무렵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영조 때 강후진이 쓴 기행문 ‘와유록(臥遊錄)’에는 이미 당시에 탑이 절반쯤 무너져 서북쪽만 6층까지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학자가 탑이 무너진 진짜 이유를 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진실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또 다른 비극이 닥쳤다. 일본은 탑의 붕괴를 막겠다며 시멘트를 들이부었다. 위대한 문화유산은 그렇게 무너진 모습 그대로 흉측한 시멘트를 뒤집어쓴 채 수십 년을 버텨야만 했다. ●약 1400년 만에 드러난 탑 속의 비밀 2001년, 드디어 탑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한 층 한 층 조심스럽게 돌을 들어내며 보수를 진행하던 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2009년, 탑의 중심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 안쪽에서 얇은 금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탑을 세운 목적과 날짜, 인물 등을 기록해 둔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였다. 약 1400년 동안 탑 속에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빛을 본 기록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륵사를 세워달라고 무왕에게 부탁한 인물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의 귀족 사택적덕의 딸 ‘사택왕후’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천 년 넘게 믿어온 이야기가 단 몇 글자의 기록 앞에서 흔들렸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왕이 부인을 여러 명 두었기에 선화공주와 사택왕후 모두 실존 인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탑이 무너지지 않고 다른 탑들에도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도 영원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전란의 불길을 맞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지고, 시멘트로 뒤덮였던 약 1400년의 시간. 서동요와 선화공주, 그리고 미륵사의 전설이 사실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낸 탑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오늘도 탑은 묻는다. 눈으로 읽는 기록과 가슴으로 믿는 전설 중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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