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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 인천정유 매각 우선협상자 선정

    ㈜SK가 인천정유 매각입찰 우선협상자에 선정됐다. 인천정유를 법정관리중인 인천지법 파산부(서명수 수석부장판사)는 19일 인천정유 매각 입찰제안서를 접수해 희망 인수 가격과 경영능력 등을 평가한 결과 SK㈜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인천지법은 1차 예비 협상자로 STX컨소시엄을,2차 예비 협상자로 씨티그룹파이낸셜 프로덕트 컨소시엄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인천지법은 희망 인수가격과 자금조달과 경영능력, 고용승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SK는 희망 인수가격으로 1조원이 넘은 금액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SK가 인천정유를 인수함으로써 하루 정제 능력이 현행 84만배럴에서 111만 5000배럴로 늘어나 GS칼텍스(66만배럴) 에쓰 오일(57만 5000배럴) 현대 오일뱅크(39만 5000배럴)와의 정제능력 격차가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SK가 인천정유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국내 시장을 겨냥하기보다는 중국 공략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거리상 중국과 인접한 인천에 생산기지를 보유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2003년 3월 법정관리 인가를 받은 인천정유는 지난해 9월 중국 국영석유회사 시 노켐과 6351억원에 매각 계약을 체결했으나 최대 채권단인 씨티그룹측의 반대와 자체 인수의사 표명으로 계약이 무산됐다가 법원이 지난 6월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 입찰 공고를 내면서 매각작업이 재개됐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재개발 임대주택 2020가구 서울시 이달 말 일반 공급

    재개발 임대주택 2020가구 서울시 이달 말 일반 공급

    이달 말 서울시내 재개발 임대주택 2020가구가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와 청약저축 가입자에게 공급된다.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재개발 구역내에 들어서는 임대주택 가운데 세입자에게 공급하고 남은 잔여가구와 퇴거 등으로 발생한 여유분을 오는 23일부터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장애인, 청약저축 가입자 등 일반인에게 확대 공급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들 임대아파트는 분양받으면 오는 10,11월 입주가 가능하다.2020가구 가운데 절반인 1010가구는 영구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에게 공급된다.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저소득 국가유공자, 일본군 위안부, 저소득 모·부자 가정, 북한 이탈 주민, 장애인, 소득평가액이 수급자 선정기준 이하인 65세 이상 직계존속 부양자 등이다. 나머지 50%는 청약저축 가입자 기운데 불입횟수가 많은 사람에게 공급된다. 신청 자격은 입주자 모집공고일(16일) 현재 서울시내에 거주하며 본인과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입주할 때까지 주택이 없어야 한다.65세 이상, 혹은 장애인인 직계존속을 부양하고 있는 호주 승계 예정자는 단독가구주라도 신청할 수 있다. 공급평형은 12∼15평 규모며 임대보증금은 647만∼2015만원, 월 임대료는 7만 9000∼18만 6000원으로 재개발세입자와 동일한 수준이다. 임대기간은 2년이며 입주자격을 유지하면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월 임대료도 임대보증금으로 전환(이율 연 9.5%) 가능하다. 서울시 재개발임대 담당 이창배씨는 “이번에 공급되는 임대아파트는 동대문·서대문·양천·성북·강동·중구 등 17개 자치구 51개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접수는 23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개포동 SH공사 1층에서 받으며 당첨자는 다음달 23일 발표한다. 입주는 10월20일∼11월21일 이뤄진다. 문의 (02)3410-7781.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윤창번사장 깜짝 퇴진… 회장 추대

    윤창번사장 깜짝 퇴진… 회장 추대

    ‘윤창번 사장은 왜 갑자기 사퇴했나. 하나로텔레콤은 물론 초고속인터넷시장의 향후 구도변화는?’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이 임기 1년을 남겨둔 12일 갑작스레 중도 퇴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윤 사장이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를 밝혀 회장으로 추대했으며, 데이비드 영 이사가 사장으로 자동승계했다.”고 밝혔다. 당분간 권순엽 경영총괄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한다. ●대주주 ‘외자’와 이견차? 윤 사장의 사퇴 배경은 최대 주주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지분 39.6%)과의 의견차가 직접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정체된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강력한 라이벌인 파워콤(데이콤 자회사)이 다음 달부터 일반가입자 모집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실적 악화 등을 우려한 외자의 조급증이 이견을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11일 이사회에서 외자계 이사들이 윤 사장에게 하나로텔레콤에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인수합병(M&A) 전략을 요구하자 윤 사장이 이를 거부, 사장직을 내놓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 사장은 지난 5월부터 이와 관련, 진퇴를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약세를 거듭해온 주가도 윤 사장을 압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윤 사장이 취임한 지난 2003년 8월 평균 주가는 3530원. 하지만 8월 현재 주가가 2700원대로 추락, 이러한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소버린 등의 SK·LG 주식 매집에서 보듯 외자는 기업가치를 올려 주가 상승기에 팔려는 것이 최대 목표”라면서 “시장구조가 상대적으로 특수한 통신시장에 투자한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이것이 여의치 않자, 그동안 M&A를 관련 업체에 타진하거나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출신인 윤 사장은 2003년 회사부도 위기에서 5억달러의 외자 유치를 성사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처음 108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올 1·4분기에서도 51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면서 경영실적을 인정받아 577만주의 스톡옵션도 받았다. ●통신시장 ‘새판짜기´ 신호탄? 하나로텔레콤은 당장 파워콤을 내세운 데이콤군과 초고속인터넷시장을 놓고 싸워야 한다. 또한 4500억여원을 주고 산 두루넷과의 시너지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대주주인 외자는 윤 사장에게 회장직을 맡기면서 향후 시장 전략과 함께 M&A 시장에 대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사장의 사퇴로 통신시장의 새판짜기도 수면위로 급부상할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한때 하나로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SK텔레콤의 관계자는 “유·무선, 통신·방송 융합화시장에서 하나로텔레콤이 M&A 시장 중심이 될 수 있지만 현 상태에서 인수는 출혈이 너무 커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통신시장에서는 LG쪽도 알려진 움직임만큼 자금 여력이 없어 ‘신 3강 체제’로의 재편 가능성은 이르다는 시각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달라이 라마 평전/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달라이 라마.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티베트의 정치·종교 지도자다. 지난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제 전세계 평화의 상징이자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도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이 50여권이나 출간됐을 정도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썼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자서전이나 대담, 강연집도 나와있다. 세계적인 티베트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질 반 그라스도르프가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달라이 라마 평전’(백선희 옮김, 아침이슬 펴냄)은 ‘그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티베트의 정치적·종교적 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풀어 기존 책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저자는 10여년간 달라이 라마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방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탐구를 통해 티베트의 특수한 역사·종교·정치적 상황을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짜냈다. 그동안 티베트 안팎과 달라이 라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미스터리들을 긴박하게 파헤친다. 전세계에 미치는 도덕적 영향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다. 그의 권력 승계에 있어 주변 가족들의 몫은 무엇인가?그의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티베트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가?그는 자연사했는가 살해당했는가?어린 신의 주위에서 놀아난 섭정들의 물질적 탐욕과 한 섭정의 성적 유희가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를 망친 원인인가? 중국첩보국과 CIA는 이 ‘설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었는가? 다람살라 망명정부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정보들과 인물들, 특히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을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 문명과 한 나라의 미래를 자문하게 한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의 죽음부터 2003년까지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특별한 개인을 추앙하고 미화한 전기가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그가 속한 나라, 민족, 문화의 느린 임종을 증언하는 가슴 아픈 평전이다.14대 달라이 라마가 가장 고심하는 것도 티베트 문화의 보존이라고 한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를 찾고 난민을 돕기 위해 애쓰는 것도 티베트가 ‘세상의 안식처´로, 혹은 티베트인들이 자부하듯 ‘이 땅의 배꼽’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 아닐까. 티베트의 아픈 역사와 치부를 긴박한 리듬으로 세세하게 증언함으로써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1만 5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2)-4세 경영

    지난 4일 경기도 광주 선영에서 가진 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32주기는 침울했다고 한다. 생전에 인화와 우애를 가르치고, 강조했던 선친 앞에 얼굴 들기가 부끄러웠던 탓이다. 이날 가문에서 축출된 박용오 전 회장과 경원, 중원씨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형제의 난’ 이후 두산가는 ‘언론 기피증’을 보이며, 숨을 죽이고 있다. 내부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하루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또 검찰 수사 이후 몰아칠 ‘후폭풍’과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한 단속도 눈에 띈다. 재계 최초로 경영에 참여하는 두산가 4세들이 이를 극복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관심을 끈다. ●악몽 같았던 일주일 두산산업개발은 지난달 15일 ㈜두산 지분 280만주(12.8%)를 계열사와 박용곤 명예회장,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에게 시간외거래를 통해 매각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권 안정,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이유를 댔다. 경영권 분쟁을 대비하기 위한 ‘용곤(73)-용성(65)-용만(50)’ 3형제의 치밀한 정지작업이라는 사실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지난달 18일, 용성 회장은 용곤 명예회장의 지시로 대한상의 제주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이어 두산그룹은 용성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용오(68) 현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형제간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두산가의 우애가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용곤 명예회장의 ‘연막’도 그럴듯했다.“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두산그룹의 회장으로 폭넓은 인맥과 신망을 얻는 용성 회장이 적임자”라고. 그러나 안으로는 이미 ‘용곤-용성-용만’ 3형제와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우애 깊은 형제가 원수 사이라는 것은 사흘 후에 드러났다. 두산은 지난달 21일 용오 전 회장이 용성 회장 취임에 반발, 검찰과 모방송사에 그룹의 경영현황을 비방한 투서를 제출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를 확인시켜 주듯 용오 전 회장은 이날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내가 용성 회장 등과 관련된 비리를 적발하자 나를 밀어낸 것으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진실공방 게임은 이어 본격화됐다. 용곤 명예회장은 “그룹과 가족에 대한 반역 행위”라고 규정했으며, 용성 회장은 지난달 22일 “이번 사태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용오 전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승자 없는 ‘형제의 난’ 두산가 ‘형제의 난’은 다른 국내 재벌가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궤를 달리한다. 대부분 재산과 ‘대권’ 싸움이어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됐지만, 이번 두산가 분쟁은 승자가 없는 오직 패자만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비리 의혹을 폭로한 용오 전 회장 일가는 마지막 ‘무기’를 던짐으로써 가문에서 축출이라는 비애를 맛봤다. 또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두산산업개발 경영권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동생들과 조카의 사법처리’ 빼고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용오 전 회장의 부인 최금숙 여사가 지난해 암으로 죽고 나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용오 전 회장이 극단적 행동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용오 전 회장 부부는 미국에서 만나 연애 결혼해 부부 금실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용곤-용성-용만’ 3형제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형제간 우애와 집안 망신,109년 전통의 명예, 경영 차질 등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또 자칫 집단 사법처리 가능성도 있어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단지 용오 전 회장 일가를 가문과 그룹에서 축출한 것이 유일하게 얻은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얻기 위해 이같은 처참한 분쟁이 일어난 걸까. ●‘원’자 돌림 4세 9명 경영수업 ‘원’자 돌림의 4세 15명 가운데 두산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는 총 9명이다.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예사롭지 않다. 두산 3세간 일어난 ‘형제의 난’도 사실상 4세들을 위한 ‘대리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두산측 설명은 이렇다.“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가 알겠나.(용오 전 회장)눈에 뭐가 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용오 전 회장이 나선 것은 자식들을 위해 총대를 멘 부문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4세간 역학 구도를 보면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가장 앞선다.4세 가운데 유일하게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용성 회장의 장남 진원씨는 지난 5월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관리 총괄 상무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섰다. 두산 경영에 참여치 않는 박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태원씨도 네오플럭스 상무로 일하며, 두산의 M&A(인수합병)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네오플럭스는 최근 삼성전자의 소형가전 자회사인 노비타를 인수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정원 부회장과 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5%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1999년 벤처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며 자신감이 넘쳐났던 용오 회장의 장남 경원씨는 두산가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 회의를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2001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던 경원씨는 2003년 전신전자를 인수, 아예 독자노선을 걸었다. 수년 전부터 ‘밖’으로만 돌았던 경원씨의 행보를 보면 이미 ‘정원-진원’을 비롯한 4촌 형제와 경원씨간의 대립 구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오 전 회장이 지난해부터 두산산업개발을 탐낸 것도 결국 두산 지분이 4세대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두 아들만 소외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형제의 난’ 이후 용오 회장과 자제들이 경영에서 빠진 만큼 두산의 경영구도에서 용만 부회장과 장손인 정원 부회장의 ‘파워’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용성 회장은 사실상 그룹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동하고, 내부 살림은 용만 부회장과 정원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용만 부회장이 용성 회장에 이어 두산의 향후 ‘대권’을 잡을지도 관심사다. 정원 부회장은 두산가가 장자 상속의 전통을 이어온 점을 감안하면 미래의 그룹 총수 1순위다. 그는 올 초 그룹 사장단 회의로부터 ‘2004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을 정도로 경영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4세 경영 과외도 ‘형제의 난’이 마무리되면 빨라질 전망이다. 용만 부회장은 현재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과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 두산 4세들의 경영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반면 가족간 우애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가는 계속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을 원칙으로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용오 전 회장 일가가 빠진 가족회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물밑에서 용곤 명예회장과 용오 전 회장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경원-서미경 부부 곤혹 두산가 장손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공군 참모총장과 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 전 의원의 딸 소영(40)씨와 결혼했다. 부친인 박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두 사람의 혼담이 오간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후문이다. 김 전 의원은 포스데이타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상민(15)양과 상수(11)군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 박혜원(42) ㈜두산 잡지BU 상무는 의사인 서경석(4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자녀는 주원(18)양과 장원(15)군으로 학생이다.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평범한 집안 출신인 서지원(36)씨와 혼인했다. 아들 상우(11)군과 딸 상진(5)양이 있다. 두산가에서 요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는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의 부인 서미경(39)씨로 보인다. 박 사장이 이번 ‘형제의 난’에 깊숙이 연관된 데다 연일 시끄러운 ‘X파일’ 사태도 친정과 적잖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경씨의 부친은 서상철 전 동자부장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고려대 교수로 있다가 전두환 정권 때 경제관료로 영입됐다. 안타깝게도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 ‘X파일’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자금 전달자로 나오는 서상목 전 의원이 바로 미경씨의 숙부다. 장남 상호(16)군과 차남 상모(13)군을 두고 있다. 용오 전 회장의 차남인 박중원(37)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정윤주(37)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아들 상윤(6)군과 딸 상이(4)양이 있다. 용성 회장의 장남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차남 박석원(34) 두산중공업 차장은 모두 평범한 가문의 딸들인 김선영(34)씨와 정현주(35)씨를 배필로 맞아들였다. 상효(6)-상인(2)과 상현(7)-상은(2) 등 각각 딸만 두고 있다. 용만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는 최근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범 LG가(家)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셋째 남동생이다. 박용훈(두산산업개발 부회장)-구선희(고 구철회씨의 4녀) 부부에 이은 두산가와 LG 구씨가의 두번째 사돈이다. ●두산의 역대 악재들 이번 ‘형제의 난’ 외에도 두산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악재는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중공업 노조원인 배달호씨 분신자살 사건과 낙동강 페놀 사태를 꼽을 수 있다. 2003년 배달호씨의 분신 자살은 두산가와 노조의 악연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용성 회장은 “결코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면서 “지금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불법 파업의 뿌리를 뽑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었다. 이는 노조의 극한 투쟁으로 이어졌고, 배씨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인화를 5대째 강조하는 두산가와 노조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것도 꽤 아이러니하다. 두산가로서는 노사 합의만 되면 불법이 합법화되는 노조의 관행을 더 이상 둘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노조와의 악연은 두산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올 초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의 노조도 한동안 두산 인수를 격렬히 반대했다. 또 두산 계열사 노조는 이번 ‘형제의 난’과 관련해 그룹 회장직을 둘러싸고 형제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하고, 두산의 도덕성을 바닥에 추락시킨 책임을 지고 박용성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즉각 퇴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산가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사태가 있다. 여전히 반세기 최대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꼽힌다.1991년 ‘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쳐 놓다니….’라는 구호가 전국을 들끓게 했으며,2차 페놀 사건이 터지면서 당시 박용곤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었다. 또 두산 불매운동으로 매출액이 급감했으며, 당시 환경처 장관과 차관이 경질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숨은 그림자 박용욱 회장 ‘용’자 돌림 가운데 막내인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두산가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가장 먼저 깨뜨리고 독자사업에 나섰을 뿐 아니라 ‘KS(경기고-서울대)’가 수두룩한 두산가에서 박 회장은 서울고-인하대를 나왔다. 또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박 회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홀로 무역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당시 부친으로부터 받은 지분을 종자돈으로 삼아 지난해 매출액 1000억원대의 소그룹으로 키웠다. 반면 용곤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인 박용훈(63·박우병 전 고문의 장남) 부회장은 두산산업개발에 몸담고 있다. 박 부회장의 부인은 LG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씨의 4녀 선희(61)씨다. 구철회씨는 1999년 LG화재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박 부회장은 두산식품 부사장을 거쳐 92년부터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비상근으로 실제 경영에는 참여치 않고 있다. ●‘두산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유병택(61) ㈜두산 부회장은 일명 ‘면도칼’로 불린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기민함이 탁월하고, 현장 경험이 많다.69년 동양맥주에 입사한 후 두산기계와 두산음료 등 그룹내 요직을 거쳤다. 강문창(62)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68년 동양맥주로 입사한 이후 경리와 영업, 총무, 기획, 해외현장 등을 두루 거쳐 해박한 실무지식을 자랑한다. 제주에서 상고 야간을 나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수재형 경영인이다. 자신의 이력은 ‘두산 입사, 두산 퇴사’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두산맨이다. 건설업을 주력기업으로 만든 주인공이기고 하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경(55) ㈜두산 전략본부 사장은 두산그룹 ‘10년 구조조정’의 숨은 공신이다. 전략기획통으로 통한다. 두산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부터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착수해 한국3M과 한국코닥, 코카콜라, 한국네슬레, 두산씨그램 등 돈이 될 만한 회사는 가리지 않고 팔았다. 모기업인 동양맥주도 매각했다. 이런 ‘무차별 구조조정’을 주도한 인물이 박용만 부회장이고, 그를 보좌한 이가 이 사장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냉철한 판단력을 겸비했다는 평이다. 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이 사장은 성격도 급하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북고 동기생이다. 김대중(57) 두산중공업 사장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69년 동양맥주에 입사했다.㈜두산 주류BG와 ㈜두산 테크팩BG 사장을 거쳤다. 두주불사형으로 알려진 그는 주류업계의 ‘히트상품 제조기’로 불렸다. 청하, 설중매, 그린, 산 등 두산의 주류 히트상품은 그의 손을 거쳤다. 김 사장은 불도저 같은 업무 스타일로 유명하다. 노사 화합과 현장 경영을 토대로 그는 중공업분야에서 ‘신인’이라는 우려를 씻고,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최승철(57)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77년 두산메카텍의 전신인 두산기계에 입사한 뒤 기계업종 외길을 걸어왔다. 김홍구(59) 두산산업개발 사장은 건설사 사장 가운데 흔치 않은 수주영업 전문가로 통한다.‘똑똑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두뇌회전이 빠른 명석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똑게’로 불린다. golders@seoul.co.kr ■ 6형제가 좌장… 이사회보다 막강 두산가(家)의 가족회의는 좀 특별하다. 단순히 형제간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모임일 뿐 아니라 사실상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그룹의 중요 결정 사항은 가족 회의에서 정해진다. 이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가족회의는 평상시 한 달에 한 번씩 3대(3∼5세)가 모여 선친 박두병 초대 회장이 강조한 ‘가화만사성’을 되새기며, 인화와 우의를 다진다. 가족 중 그룹경영 참가 선수인 ‘박용곤-용오-용성-용만’뿐 아니라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전 서울대 병원장)와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등 ‘용’자 돌림 6형제가 가족회의의 좌장들이다. 집안 대소사 등이 화젯거리로 등장하지만 경영이나 사업 얘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룹에 위기가 오거나 비상 사태, 중대한 경영 결정을 내릴 때 열리는 가족회의는 ‘숨겨진’ 비공식 최고 기관이다. 경영진에 대거 포진한 ‘원’자 돌림의 4세들도 이런 경우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표시한다. 이 때문에 각 계열사 이사회는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두산 오너가가 고작 5%대의 지분으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셈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지금까지 그룹 경영과 관련된 모든 중요한 결정은 가족회의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형제의 난’ 기폭제도 사실상 가족회의에서다. 지난 5월 열린 가족회의에서 용곤 명예회장은 용오 회장 일가의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M&A(인수합병) 시도 대가로 그룹 회장 교체를 언급했으며, 지난달 가족회의에서 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추대와 용오 회장의 퇴진을 최종 결정했다. 당시 가족회의는 보안요원이 배치되는 등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회의의 경영 행위에 대해 “기업을 가족 소유물로 여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시민단체와 두산 노조 등은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전근대적 족벌경영 체제가 두산그룹의 현주소”라며 기업을 족벌의 사유물로 여기는 이같은 그룹 체제는 즉각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4세들도 분기별로 한번씩 ‘패밀리 미팅’을 갖고 우애를 나눈다. 모임의 주관은 장자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맡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두산가 4형제 경영스타일 ‘아름다운 형제’에서 한순간에 ‘돈 앞에 형제도 없는’ 처지로 추락한 ‘박용곤-용오-용성-용만’ 4형제의 성격과 스타일은 어떨까. ▲ 2000년 초 우애 깊은 형제였던 박용오(오른쪽) 전 회장과 박용성(왼쪽) 회장, 박용만 부회장 등 3형제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용곤 명예회장은 집안의 장자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용오 회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그의 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묵한 성품으로 말이 거의 없다. 내부 회의에서도 말을 듣는 입장이지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 임원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를 가장 어려워한다. 그는 또 게임의 룰을 중요시 여긴다. 용오 회장의 이번 행위에 대해 “가문에서 빼버리겠다.”고 강경 대응한 것도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집안의 원칙을 깬 데 대한 분노로 보인다. 그는 골프에서도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두번 다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용오 전 회장은 어느 자리에서나 격의없는 대화와 만남을 좋아한다. 체면보다 실리를 챙기는 스타일이다.‘형제의 난’ 역시 이같은 그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그는 미식가이자 애주가로 통한다. 술을 통해 상대의 스타일이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 근로자들과도 곧잘 술자리를 갖고 어울린다. 그의 애주론은 이렇다.“술은 백년지기를 만나는 마음으로 즐겁게 마시면 오히려 호쾌해져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용성 회장은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정부와 재계, 사회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비유를 동원하는 그의 발언은 화제가 된다. 어느 사업이 좋다면 경쟁 업체를 무조건 따라서 투자하고 보는 풍토를 비판한 ’들쥐떼론’과 전통 산업은 외면하고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만 좇는 기업 풍토를 비튼 ‘첨단병론’ 등이 대표적이다. 또 소탈하면서도 집념과 추진력이 대단하다. 박 회장은 1995년 세계유도연맹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서울에 돌아갈 생각하지 말고 모두 창 밖에 뛰어내리자.”고 할 정도였다. 그는 사진과 음악을 좋아한다. 해외출장 때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다. 또 클래식 마니아로 소장한 CD만 2만장이 넘는다. 용만 부회장은 꼼꼼히 따져 보고, 분석하는 일을 좋아한다.2002년 디스크 수술 이후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을 때다. 강사의 수영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분석했으며, 과도한 수영 연습으로 어깨 근육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또 재계의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통한다. 냉철하고 전략적인 그의 성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두산의 구조조정 10년 동안 15개 기업의 M&A를 진두지휘한 경험을 책으로 풀어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운이 작용하는 ‘감(感)의 경영’을 싫어한다. 경영은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삼성 영입인사 30% 관료출신

    삼성 영입인사 30% 관료출신

    참여연대는 3일 취업, 사외이사, 재단이사 등으로 삼성이 영입한 5급이상 고위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현황을 담은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해부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삼성에 취업한 고위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그룹계열사 사외이사 ▲그룹 관련 재단이사 ▲삼성출신 고위 공직자, 법조인, 주요 경제·경영학회 임원 등 4개의 범주에 속하는 278명의 경력, 학력 등을 분석했다. ●관료 출신 대거 영입 참여연대가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로 분류한 이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관료 출신이 101명(복수 경력 따로 계산)으로 전체의 30.1%를 차지한다. 학계가 26.0%인 87명으로 그 뒤를 이었고 법조인이 59명으로 17.6%를 차지했다. 공직자 출신 101명 가운데 1995년 이후 ‘취업’ 형태로 삼성에 영입된 이들은 전직 행정부 공무원 47명과 판·검사 27명으로 모두 74명이다. 이 중 82.4%인 61명은 기업을 감독하는 기관 혹은 사법기관 출신이다. 참여연대는 “이들은 기업의 직접적 부가가치 생산활동과 별로 관련이 없다.”면서 “사업이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유발되는 법률적 위험요소를 관리하려는 목적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부터 참여연대가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인수와 관련된 탈세 문제를 제기한 이후 8명의 국세청 전직 관료가 영입됐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또 1998∼1999년에 4차례 공정위 부당내부거래 조사로 485억원의 과징금을 받았고 2000년 이후 이곳 출신 5명을 영입했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특수부 출신처럼 기업 및 경제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들을 선호한다고 참여연대는 분석했다. ●영입과정에 편법 사용 이 보고서는 관료 출신을 영입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지적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제17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 또는 직무 분야에 종사했던 공무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정병기 현 삼성전자 상무 등 3명은 퇴직한 해에 삼성에 취직했다. 또 일부는 2년 규정을 지키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를 ‘신분세탁소’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아울러 제기했다. 보고서는 김익수 전 경제기획원 경제교육기획국장 등 5명은 퇴직한 이후 2년간 삼성경제연구소에 근무했지만 연구실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로비스트, 법적 방패막이로 사용” 이처럼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은 삼성의 이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로비스트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 또 불법행위 혐의와 관련된 법률적 위험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김상조(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이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삼성 공화국의 힘이 두려움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3중악재’ 겹쳐 국제유가 요동

    ‘3중악재’ 겹쳐 국제유가 요동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정 불안 가능성이 국제 유가를 장중 한때 배럴당 62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10여년 전부터 진행된 권력 승계가 순탄하게 마무리됐고 원유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우디 정부의 거듭된 언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사우디 왕실에 불어닥칠 내홍의 먹구름에 더 무게를 실었다. ●국제유가 하룻만에 소폭하락 1일 파드 빈 압델 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사망 소식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국제유가는 2일 오전(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소폭 하락하며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앞서 1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는 장중 한때 배럴당 62.3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전날보다 1달러 오른 61.57달러에 마감됐다. 이 장중가는 1983년 NYMEX에서 거래가 시작된 이래 최고 기록으로 종전 기록은 지난달 7일의 62.10달러였다.WTI 가격은 2년만에 곱절 이상으로 뛰었고 올해만 42%가 올랐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에서 9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1.07달러(1.8%) 오른 60.44달러에 거래를 마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의 원유 수입원인 두바이유 역시 전날보다 89센트 오른 54.70달러에 장을 마쳤다. 물론 사우디 정정의 향배만이 유가를 끌어올린 것은 아니다. 미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엑손 모빌,BP, 발레로 등의 정유공장이 가동 중단됐다는 소식, 사우디에 이어 2위 수출국인 이란이 우라늄 농축 강행으로 제재를 받을 경우 석유 수급이 커다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 등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왕가 권력다툼 격화 우려 석유시장 분석가들은 압둘라 새 국왕이 82세 고령에다 얼마전 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점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지난 1995년 파드 전 국왕의 뇌졸중 이후 10년간의 통치 경험과 그가 추진한 개혁노선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인했지만 왕실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새 왕세제로 지목된 술탄 빈 압둘 아지즈 국방장관도 고령이어서 차기 왕세제 자리를 놓고 왕실 내 치열한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마저 상존한다. 1953년 리야드 지사로 출발해 1963년 국방장관에 이어 1982년부터 부총리도 겸임해온 술탄 새 왕세제가 “진작부터 ‘압둘라 이후’를 꿈꿔온 야심가”라고 BBC 인터넷판은 평가했다. 장기간 미국 대사를 역임했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도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반다르 왕자가 최근 자리를 물러나 귀국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있다. BBC 보도는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비관적’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알리 나이미 석유장관은 유가를 배럴당 40∼50달러 선에 맞추는 것이 사우디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국왕 승계과정에 따른 정치·경제적 불안을 줄이기 위해 비현실적인 유가밴드(적정 가격대)를 폐기하고 당분간 고유가 정책을 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하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컨트롤 타워’인 사우디의 역할을 고려할 때 정정 불안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대림그룹 3세 경영권승계 잰걸음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의 장남 이해욱(37)씨가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림산업은 2일 “대림산업 경영기획실 이해욱 전무가 지난주 유화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면서 “당분간 유화부문 대표이사인 한주희 부사장과 투톱 체제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사장은 이 회장의 3남 2녀 가운데 맏아들로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5년 대림산업 유화부문에 입사했다. 외환위기때 유화부문 구조조정 등 기반을 다진 뒤 경영 수업을 쌓기 위해 2000년 건설부문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2004년부터 전무를 맡았다. 지난 5월부터는 대림산업 지분의 21%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지주회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공동 대표이사에도 취임했다. 이 부사장의 유화부문 복귀는 대림산업에서 유화부문이 차지하는 매출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이 부사장의 다양한 경영 경험 쌓기 과정으로도 해석된다. 대림산업 상반기 매출은 1조 9485억원이며 이 중 유화부문이 3190억원으로 16%를 차지했다. 유화부문은 건설과 함께 대림산업의 양대 줄기이며 현재 한화와 50대50으로 투자한 여천YNCC를 비롯, 외국 업체와 합작 투자한 포리미레와 KRCC 등을 거느리고 있다. 대림산업은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재계 27위 규모의 대림그룹 모기업이다. 그러나 이 부사장의 지분은 아직 움직임이 없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라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대림 관계자도 “이번 승진은 경영수업 차원에서 받아들여야지 단순 경영권 물림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라며 조기 경영권 이양을 경계했다. 또 “이준용 회장이 아직 건강에 문제가 없어 당장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계속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현재 대림산업 0.47%,㈜삼호 1.85%, 비상장 운송회사인 대림에이치앤엘 100%를 소유하고 있어 아직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이동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親美 실용주의 노선 부담 美와 일정거리 유지할 듯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이 1일 사망함에 따라 향후 사우디와 아랍권의 변화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새 국왕은 압둘라 왕세제, 차기는? 새 국왕으로 결정된 압둘라(82) 왕세제는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95년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10년 가까이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통치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압둘라 왕세제는 테러 및 부정부패와 싸워왔으며 경제를 자유화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사우디 국민들도 압둘라 왕세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왕권은 순조롭게 승계됐지만 앞으로 ‘차기’ 국왕 자리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차기 왕세제는 파드 국왕의 동생인 술탄 부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결정됐지만 파드 국왕의 다른 동생들이 자리를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는 나예프 내무장관이 꼽힌다.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나예프 왕자는 사우디 내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파드 국왕 이후 당장 사우디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새 국왕이 등극하면 그동안 강경보수파에 눌려온 시민들이 민주화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고, 과격 이슬람주의자들도 왕정타도를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미국·아랍과의 관계에도 영향 있을 듯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고, 영토와 인구 규모에서도 중동의 최강국이다. 그만큼 원유시장과 중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미국도 사우디의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외신들은 압둘라 왕세제가 그동안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어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수차례 미국을 방문하며 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편 2001년 9·11테러 이후 사우디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미국과 일정 거리를 두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같은 그동안의 행적으로 볼 때 그가 왕위에 올라 본격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면 중동의 안정을 위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 파드 국왕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53센트 오른 61.10달러에 거래가 시작돼 장중 한때 61.45달러까지 치솟았다.AP통신은 투르키 빈 알 파이잘 영국주재 사우디대사의 발언을 인용, 석유정책 등 사우디의 주요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파드 국왕은 누구 지난 82년 즉위한 파드 국왕은 사우디 근대화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특별한 서구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친미 노선과 전통 이슬람 사이에서 균형잡힌 외교정책을 펼치려 노력했다. 이는 사우디가 비교적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91년 걸프전 당시 사우디에 대규모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를 샀고, 이후 사우디도 테러의 타깃이 됐다.95년 뇌졸중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으며 지난 5월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다. 아랍권 방송들은 파드 국왕의 장례식은 3일 거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제주 새달 대대적 조직 진단 용역

    제주도행정구조 개편을 위한 지난 7·27 주민투표 결과 제주도를 광역자치체제로 개편하는 ‘혁신안’이 결정됨에 따라 행정자치부와 제주도 등은 광역자치체제로의 개편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혁신안에 반대해온 시·군은 투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도 불사할 움직임이어서 투표 후유증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9일 제주도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는 제주도 단일 광역체제 개편을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제주도는 별도의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구조 등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후속작업에 들어간다. 오는 9월까지 제주도 특별법인 가칭 ‘제주도행정구조에 관한 법률’을 마련, 정부입법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제출,12월 공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법에는 시·군의 자치법인격 폐지, 시·군 및 시장·군수 권한의 도 및 도지사 권한으로의 조정, 시·군의회 폐지에 따른 도의원 정수 확대, 시·군세의 도세 전환, 시·군 통합에 따른 공무원 처우 보장, 읍·면·동 기능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사무·재산승계, 행정행위 효력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게 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시행과 단일 광역체제로의 개편에 따른 기구·업무·인력 재편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다음달 2억원의 예산으로 대대적인 조직진단 용역을 실시한다. 또 이번 7·27 주민투표에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 지역에서 ‘점진안’이 ‘혁신안’보다 우세했던 점을 감안, 제주도 이전이 예정된 9개 공공기관의 산남(山南)지역 집중 배치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읍·면·동사무소 기능 및 주민자치위원회 권한 강화 등 주민참여를 통한 생활자치 활성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남제주군 등 ‘혁신안’에 반대해온 시·군에서는 투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반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주민투표에서 현행 유지안인 ‘점진안’ 지지율이 높았던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경우 반발 강도가 더욱 거세다. 지난 8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만큼 결과를 지켜보고 필요할 경우 헌법소원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제주 새달 대대적 조직 진단 용역

    제주도행정구조 개편을 위한 지난 7·27 주민투표 결과 제주도를 광역자치체제로 개편하는 ‘혁신안’이 결정됨에 따라 행정자치부와 제주도 등은 광역자치체제로의 개편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혁신안에 반대해온 시·군은 투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도 불사할 움직임이어서 투표 후유증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9일 제주도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는 제주도 단일 광역체제 개편을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제주도는 별도의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구조 등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후속작업에 들어간다. 오는 9월까지 제주도 특별법인 가칭 ‘제주도행정구조에 관한 법률’을 마련, 정부입법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제출,12월 공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법에는 시·군의 자치법인격 폐지, 시·군 및 시장·군수 권한의 도 및 도지사 권한으로의 조정, 시·군의회 폐지에 따른 도의원 정수 확대, 시·군세의 도세 전환, 시·군 통합에 따른 공무원 처우 보장, 읍·면·동 기능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사무·재산승계, 행정행위 효력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게 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시행과 단일 광역체제로의 개편에 따른 기구·업무·인력 재편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다음달 2억원의 예산으로 대대적인 조직진단 용역을 실시한다. 또 이번 7·27 주민투표에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 지역에서 ‘점진안’이 ‘혁신안’보다 우세했던 점을 감안, 제주도 이전이 예정된 9개 공공기관의 산남(山南)지역 집중 배치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읍·면·동사무소 기능 및 주민자치위원회 권한 강화 등 주민참여를 통한 생활자치 활성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남제주군 등 ‘혁신안’에 반대해온 시·군에서는 투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반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주민투표에서 현행 유지안인 ‘점진안’ 지지율이 높았던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경우 반발 강도가 더욱 거세다. 지난 8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만큼 결과를 지켜보고 필요할 경우 헌법소원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안양SBS, KT&G에 매각

    안양SBS, KT&G에 매각

    프로농구가 새판짜기에 들어갔다. 오는 10월 시작되는 05∼06시즌을 앞두고 안양SBS가 KT&G로 매각된데 이어 원주TG의 매각 협상 역시 가속도를 붙이는 등 선수 트레이드를 넘어 아예 구단 소유주가 뒤바뀌는 등 지각이 꿈틀대고 있다. SBS 황호형 단장은 28일 “29일 KT&G 이사회에서 SBS 인수가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매각 대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농구계에서는 30억원 안팎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지난 1992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창단된 SBS농구단은 14년 만에 7번째로 간판을 내리게 됐다(표). 특히 SBS가 하차함에 따라 SBS의 모기업인 ㈜태영 윤세영 회장(현 KBL 명예총재)의 프로농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윤 회장은 프로농구 출범 과정부터 깊숙이 개입했고,1∼3대 총재를 지낸 바 있다. SBS측과 KT&G측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구단 프런트 전원의 고용 승계를 보장키로 했고, 구단 연고지도 현재 안양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모기업의 부도로 일찌감치 매각 논의가 진행되던 TG는 현재 동부그룹과 매각 협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TG삼보의 채권단은 지난 시즌 우승팀이라는 점을 들며 120억원을 요구한 반면, 동부그룹측은 30억원을 제시해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1) 시험대에 오른 우정공사

    [일본을 다시본다] (11) 시험대에 오른 우정공사

    |도쿄 특별취재팀|“전국 2만 4200여곳의 우체국과 360조엔을 웃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신고를 보유한 거대 조직….” 공룡 조직으로 불리는 일본우정공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 민영화 법안 추진을 계기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130여년간 국가기관으로 존속해 오다 2003년 4월 공사로 전환한 뒤 ‘고객지향주의’를 외치며 체질개선에 나선 지 불과 2년 만에 ‘민영화’라는 격랑에 휩싸였다.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27만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신분 변화 등을 걱정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사든 민영화든 수익만 내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살길은 서비스 개선뿐 지난 5월 말 도쿄도(都) 지요다구(區) 가스미카세키 인근의 일본우정공사 본부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창구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라며 환한 미소로 반긴다. 오밀조밀하고, 아담하게 꾸며져 액세서리 가게를 연상시킨다. 창구 앞에 부착된 받침대에는 새로 출시된 상품들이 광고전단과 함께 진열돼 고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실내가 너무 안락한 것 같다.”며 말을 던지자 니타 유키오 부국장은 “우정청에서 우정공사로 바뀐 뒤부터는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죠. 뻣뻣하고 고압적인 자세로는 더 이상 고객을 붙들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니타 부국장은 최근 출시된 신상품 ‘EXPAK 500’을 펼쳐 보이며 “인기가 너무 좋다.”고 자랑했다.500엔만 내면 전국 어디든 택배를 이용할 수 있고, 미리 사둔 뒤 이용하면 굳이 우체국에 가지 않고 인근 우체통에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우체국과 편의점의 제휴 공사 전환 뒤 달라진 것 중의 하나는 새로운 택배마케팅을 도입한 점이다. 우체국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11월 택배업계 1위인 야마토운수와 제휴관계에 있는 편의점 체인망 ‘로손(LAWSON)’과 손을 잡았다. 전국에 80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 로손과의 제휴는 택배사업의 거점 확보는 물론 우체국과 편의점의 유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우체국에서 만난 회사원 다나카 다이치는 “우체국이 점차 편의점의 성격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에 눈을 돌리는 게 피부로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도, 사람도 ‘바꿔’ 사실 공사의 구조적인 비효율과 관료주의 색채를 없애는 데는 2002년 12월 도요타자동차의 생산방식을 본뜬 JPS(Japan Post System) 개혁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우편물 접수, 분류, 배달업무 등의 시간을 줄여 시간당 20%의 절감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업무시스템 개선, 인원 재배치 등으로 2003년에는 4년간의 적자행진을 멈추고 우편업무에서만 263억엔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지금은 공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액션플랜(중기경영목표)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고객서비스 개선 등에 초점을 둔 반면 올해부터는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과 상품개발, 경영체질 개선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경영진을 외부 인사로 대거 교체한 것도 액션플랜 실천에 탄력이 붙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부사장 2명 가운데 1명은 도요타차 출신이며, 임원도 15명 중 무려 7명을 학계·업계 등 외부에서 영입했다. 우정공사 경영기획부 다니가키 구니오 전략담당부장은 “임원들을 대거 민간에서 데려옴으로써 집행·감시의 피드백 시스템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대 돈줄인 우편저금과 간이보험의 판매가 민간업체와의 경쟁으로 예전 같지 않다. 공사에 따르면 우편저금 잔액은 1999년 259조 9000억엔이었으나, 이후 줄곧 감소해 지난해에는 214조 1000억엔에 그쳤다. 간이보험 계약건수도 800만건을 웃돌다 2000년을 기점으로 700만건대로 뚝 떨어지고 있다. 우편 영업수익도 시스템 및 서비스 개선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이다. 우정공사 나카지마 히사하루 IR담당부장은 “정부 주도의 민영화 추진에 개의치 않고 민간기업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경영체질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bcjoo@seoul.co.kr ■ 고이즈미 우정개혁 ‘두가지 셈법’ |도쿄 특별취재팀|일본우정공사의 민영화 작업은 ‘고이즈미 개혁’의 핵심이다. 성공 여부에 고이즈미의 진퇴가 걸려 있어서다. 이런 까닭에 국가금융을 민간금융으로 전환한다는 경제논리 외에 정치논리가 깊이 개입돼 있다. 이른바 우정족(郵政族·지방 우체국 토호세력 등의 지지로 정계에 진출한 의원) 등 기득권 세력이 자민당내 반대파다.‘우정 민영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중의원 해산·총선거’라는 카드를 빼든 고이즈미 총리와 내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만료 이후 주도권을 노리는 반대파들간의 힘겨루기 측면이 강하다.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학계·금융계의 엇갈린 시각도 우정 민영화 작업에 논란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나오히로 야시로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은 “일본이 개혁을 하려면 마지막 남은 낡은 사회주의적 금융 잔재를 털어내야 한다.”며 민영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바대학 신도우 무네유키 교수는 “우정 민영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민영화를 추진하는 배경 등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다.”며 “우정 민영화 문제는 형식적인 것과 실질적인 것의 이중성을 추구하는 일본 국민의 속내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 진짜 배경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키히코 스즈키 UFJ종합연구소 조사부 수석연구원은 “자민당내 반대파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 민영화를 정치개혁을 위한 꼼수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문제는 민영화를 왜 하는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다요시 구사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국장은 “공사로 전환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동안 서비스 개선 등으로 경영실적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데, 굳이 이 시점에서 민영화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현재 우정공사 직원은 자체 수익으로 월급을 받고 있는데, 민영화를 하면 공무원을 줄이는 만큼 세금을 덜 거둬 들이게 된다는 정부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bcjoo@seoul.co.kr ■ 와카바야시 시게요시 기획관 |도쿄 특별취재팀|“우정 민영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인 개혁 과제입니다.” 일본우정공사의 민영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내각관방 우정공사민영화준비실’의 와카바야시 시게요시 기획관은 “우정 민영화는 국가가 움켜쥐고 있던 금융업을 시장논리에 따라 민간으로 이양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 작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지 못하면 일본 금융산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5월 국회에 제출한 우정 민영화 법안은 지난 7일 중의원 표결에서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겨우 통과됐다. 현재 참의원에서 심의 중이다. 우정 민영화 법안은 세계 최대 금융기관인 일본우정공사의 금융부문을 떼내 민영화하는 것으로,2017년 3월까지 마무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본 골격은 공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우편저금과 우편보험은 완전 민영화시키고, 우편회사와 창구네트워크만 지주회사가 주식 100%를 보유하도록 돼 있다. 지주회사의 주식은 정부가 3분의1 이상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와카바야시 기획관은 “은행과 보험을 우체국에서 떼낼 경우 업무차질을 우려하지만, 이행기간이 2007년부터 무려 10년이나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특히 민영화가 되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우편저금·간이생명보험 계약자들은 공사 승계법인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기 때문에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폐합하기로 했던 지방 우체국도 고객들의 불편을 고려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반발을 최소화했다고 덧붙였다. bcjo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두산 ‘형제의 난’ 야구에 불똥튀나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의 불똥이 프로야구에 튈지 주목된다.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프로야구의 수장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고 있고, 두산 베어스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박 총재는 1998년 12월8일 총재에 오르면서 중립성을 내세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동생 박용성 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내줬다. 프로야구계에서는 이번 사태 전말을 예의 주시하면서 ‘프로야구와는 별개’임을 애써 강조한다. 하지만 수장인 커미셔너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라는 좋은 않은 이미지를 준 것만은 틀림없어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사실 박용오 총재는 프로야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일체의 행동에 대해 강하게 질타해와 박 총재 스스로가 조만간 어떤 형식이든 ‘액션’을 취하지 않을까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박용오 총재는 원년이후 지속돼온 ‘낙하산 인사’를 끊고 8개 구단 구단주들이 옹립해 뽑은 첫 인물이며 최장수 총재다. 야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폭넓은 식견을 지녀 야구인들의 지지를 받아왔다.이와 관련,KBO의 한 관계자는 “지난 21일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프로야구 얘기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오는 8월2일 경찰청 야구단 창단 조인식에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아무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프로야구계에서는 벌써부터 총재의 거취를 놓고 의견이 크게 갈려 자칫 총재의 사퇴로 파장이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박용성회장 승계 원천무효”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겸하고 있는 박용오 ㈜두산 명예회장은 21일 저녁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원천 무효이고, 박용성 회장 등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 적발됐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 명예회장은 검찰 수사중임을 이유로 질문을 일절 받지 않고 10분 만에 회견장을 떠났다. 박 회장은 성명서에서 “이번 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승계는 정당성이 없는 것이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그동안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 사적으로 유용하고 해외 밀반출을 해왔던 것이 최근 본인에게 적발되자 공모해 일방적으로 명예회장으로 발표하는 등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박 명예회장은 “두산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이미지답게 그동안 깨끗하고 정의롭게 그룹을 운영해 온 것을 자랑으로 여겨 왔다.”면서 “용성·용만 두 형제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반성은 커녕 형을 회장직에서 축출하고 모함하는 등의 작태를 연출했음을 국민 앞에 밝힌다.”고 말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삼성 비판 나선 ‘국정브리핑’

    최근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금산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으로 정부와 삼성간에 갈등기류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 국정홍보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이 삼성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칼럼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국정브리핑(www.news.go.kr)에 따르면 박호성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삼성공화국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칼럼에서 “정부조차도 삼성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한 상황에서 국가경제와 국민을 위해서는 삼성의 지배구조, 경영권 변칙 승계, 무노조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18일자 칼럼에서 박 교수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개정 금산법이 삼성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다며 역정을 냈을 정도로 재정경제부가 제출한 이번 법안은 삼성의 요구를 ‘받아쓰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재경부 개정안을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재경부의 개정안은 “정부가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총대를 맨 것이나 다름없다.”고 혹평을 가했다. 박 교수는 또 “엄청난 부와 수많은 노동자를 거느린 대기업의 힘은 급기야 국가권력의 탈취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기업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경제정책의 핵심”이라면서 “특히 삼성공화국이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삼성내 노동조합 건설을 촉구해야 한다.”는 일방적이면서도 ‘과격한’ 주장을 제기했다. 외부칼럼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달아놨지만 정부의 공식 홍보사이트가 정부(재경부)의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또 특정기업을 공격목표로 삼아 노조설립을 ‘촉구’했다는 점 등에서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민주화기념사업회 연구소장을 역임한 박 교수는 지난해 4월부터 국정브리핑에 ‘박호성 상식론’이라는 이름으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버스철’ 2009년 나온다

    오는 2009년 버스와 지하철의 장점을 갖춘 ‘버스철’이 나온다. 버스철은 연료전지를 이용, 버스처럼 도로 위를 달리기도 하고 지하철처럼 전용궤도에서 자동운전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차량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처럼 버스에 지하철의 장점을 도입한 ‘신에너지 바이모달(Bimodal) 저상굴절 차량’을 개발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오는 2009년 개발을 완료하는 게 목표다. 저상굴절 차량은 탑승계단을 없애 노약자나 어린이, 장애인들도 쉽게 타고내릴 수 있는 차량으로 최근 국내에도 외국산 차량이 도입돼 일부구간에서 운행되고 있다. 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중인 차량은 이같은 저상굴절 차량에 차세대 무공해 에너지인 연료전지를 사용하고 전용 자기궤도와 일반 도로에서 모두 운행할 수 있는 ‘신에너지 바이모달’ 방식이다. 이에 따라 버스철은 궤도만 있으면 좁은 도로에서도 운행할 수 있고 자동운전도 가능해 운행간격 등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지하철처럼 대규모 정류장이 필요없어 정류장 및 전용궤도 설치비용도 ㎞당 수십억원으로 저렴하다. 목재균 선임연구원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중앙 버스전용차로제는 초기단계의 간선 급행버스체계”라면서 “신에너지 바이모달 저상굴절 차량이 간선 급행버스체계에 도입되면 교통난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 연구원은 “오는 2009년쯤 시범차량을 제작, 시험운행을 거쳐 간선 급행버스체계를 대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현대그룹 ‘IT 자회사’ 설립 왜?

    현대그룹이 소리없이 전산 자회사를 차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정은 회장과 현 회장의 딸인 지이씨가 나란히 등기이사를 맡아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성급한 시각도 있다. 그룹측은 “그런 의도를 담기에는 회사 규모가 너무 작다.”며 펄쩍 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는 그룹내 계열사의 전산망(현대증권 제외)을 통합 관리하는 정보기술(IT) 자회사 ‘현대U&I’를 지난 1일자로 설립했다. 자본금은 22억원(발행주식수 440만주). 현 회장이 15억원(68%), 현대상선이 5억여원(23%)을 투자했다. 지이씨도 6%가량 지분을 갖고 있다. 대표이사 사장은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 겸임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등기이사 명단. 최대주주인 현 회장과 대표이사인 최 사장 외에 지이씨가 ‘뜬금없이’ 끼어 있다. 이 때문에 경영권 승계의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과거 SK그룹 등이 IT 관련 자회사를 통해 총수의 지배체제를 강화했던 전례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보탠다. 지이씨는 현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 사이의 1남2녀 중 맏딸로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요즘 20대답지 않게 매우 차분하고 심지가 깊어 현 회장이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외아들 영선씨는 현재 해외유학을 준비 중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자본금 22억원짜리 회사로 무슨 경영권 승계냐.”고 반문하며 “그룹내 전산회사였던 현대정보기술이 다른 데로 넘어가면서 효율적인 전산시스템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된 데다 물류전문 IT기업을 지향하기 위해 별도 회사를 만든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자회사 신설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것도 “규모가 다른 회사의 IT본부 정도로 워낙 작은 데다 괜한 억측을 살 수 있어서”라고 해명했다. 실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U&I의 지분 투자에 참여하지 않아 경영권 승계작업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룹측은 현대U&I를 통해 연간 23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출 목표액은 내년 250억원,2010년 480억원이다. 유비쿼터스와 휴머니즘(YOU&I)에서 의미를 따와 이름을 지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범LG家 ‘계속되는 핵분열’

    구씨·허씨가의 지분 승계가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LG상사가 무역과 패션 부문 분리를 검토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LG상사는 7일 공시를 통해 “패션 부문의 분리를 검토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는 최근 구자경 명예회장 일가의 지분 매입에 이은 패션부문 분리 검토는 무역부문을 LG상사에 남기고, 패션은 계열 분리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LG상사가 무역과 패션 부문으로 분리되면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 일가가 패션부문으로 분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부문은 LG상사에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 구 사장 일가가 보유한 LG상사 지분은 총 15.5%. 장남인 구본걸 LG상사 부사장이 9%, 구본순 상무 3.79%, 구본진 상무가 2.71%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반면 고 구 사장 일가 외에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LG상사 지분은 16.34%다. 올초 LG에서 분리된 GS그룹도 또 한차례 ‘세포분열’이 예정돼 있다. 일단 공정거래법상 8촌 이내의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는 무조건 계열로 편입됐지만 이들이 GS그룹과 사업 연관성이 없어 ‘독립’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차남인 자홍씨가 대표로 있는 로슬린코퍼레이션, 에이치플러스홀딩스, 캠바이오테크놀로지아시아, 크린에어월드 등 소규모 계열사는 지난달 분리를 마쳤다. GS 관계자는 “그룹 출범을 계기로 계열로 편입된 회사들은 수십년간 독립경영을 해왔던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면서 “GS그룹 계열로 편입되는 순간 상호 채무보증 제한, 출자총액 제한 등 갖가지 대기업 규제를 받기 때문에 허씨 일가 가운데 분리를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양통상계열과 승산그룹, 코스모그룹 계열사들이 GS그룹에서 분리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당신, 이야기(베트콩 습격으로 한진직원 5명 사망) 들었소? 내 두말도 안하겠소! 우리 운전수들 군인 출신이오. 방어용으로만 할 테니 M16을 지급해 주시오.”(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너 미쳤냐? 어떻게 민간인에게 군대 소총을 나눠주라는 거야.”(찰스 마이어 꾸이년지구 사령관) “돈 벌러 와서 죽을 수는 없지, 우리도 방어는 해야 할 거 아냐.”(조 전 부회장) “미스터 조, 이건 사이공 사령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과 나만 아는 일이오, 알겠소?그리고 절대 먼저 쏘지 마시오.”(마이어 사령관)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자서전에서 밝힌 이 대화는 한진이 사지인 베트남 정글에서 어떻게 달러를 벌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해방둥이’ 한진이 ‘수송보국’의 길을 걸은 지 60년. 이런 피와 땀들이 모여 오늘날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상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라잡이’에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서있었다. 길이 있는 곳에 ‘한(韓)민족의 전진(進)’, 한진이 있다며 전장으로, 바다로, 하늘로, 수송 외길을 걸어온 고 조 회장.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23개 계열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5대양 6대주에서 한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전장에서 성장한 한진 “형님이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갈 때입니다. 돈 될 만한 사업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중훈 형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꾸이년지역의 풍경에서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냈습니다. 항만을 보니, 화물이 꽉 찬 배가 50척이 몰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것만 본 것이 아니라 배들이 짐을 실은 채 마냥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형님은 갑자기 창문에서 휙 돌아앉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고 합디다. 다른 사장들이 쳐다볼까 싶어 큰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조 전 부회장은 한진의 베트남사업 첫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의 화물수송사업은 전후방이 없었던 베트남에서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빗발치는 전장을 오가며, 뚝심과 오기로 밀어붙였다. 베트콩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직원들이 공포에 떨 때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직접 수송 차량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런 고생끝에 주어진 과실은 너무나 달콤했다. 한진이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무려 1억 5000만달러.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한 가용외화가 5000만달러 남짓이었으니, 한진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진은 베트남 특수로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고 조 회장은 67년 7월 자본금 2억원으로 대진해운을 설립했고, 그해 9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동양화재를 5억 7000만원에 인수했다. 또 68년 2월에는 한국공항,8월에는 건설회사인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을 세웠다. 이어 인하대학교도 인수했다. ●부실기업 대한항공공사 인수 고 조 회장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이자 도전을 맞이한다. 다름아닌 항공사업이었다. “청와대로부터 호출이 왔었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내용이었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비서실장,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만년 적자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독촉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형한테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도 불안해서 저도 형님과 같이 청와대에 따라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게 소망이라는데 형님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조 전 부회장) 고 조 회장은 결국 69년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항공공사는 당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했지만, 전체 좌석수는 점보기 1대보다 적었다. 또 27억원의 부채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은 ‘베트남에서 목숨 걸고 번 돈을 부실 항공사에 모두 쏟아붓게 됐다.’며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국제선 개척으로 이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36년 후 대한항공은 화물수송 세계 1위, 보유 항공기 113대, 매출 7조 2000억원(지난해)이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에겐 은퇴란 없다” 트럭 한 대로 국내 최대의 운수그룹을 일군 고 조 회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지 않고, 현장을 챙길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정열적인 경영자였다. 그가 모언론 인터뷰에서 “창업주에게 은퇴란 없다.”고 한 말은 그의 성격과 일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 조 회장은 또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문어발식’ 확장도 자제했다.‘낚싯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업을 하기보다 수송 전문화에 더 집중했다. 주변에서 ‘돈 버는’ 무역회사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고 조 회장은 그때마다 “우리가 무역회사를 하면 많은 무역회사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텐데 그들이 우리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화물을 맡기겠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1920년 부친 조명희옹과 모친 태천즙 여사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뚝딱거리고 어질러 놓기를 좋아했던 둘째아들에게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 조 회장은 45년 광복 직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설립, 수송 외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만 고만하던 한진상사가 두각을 낸 것은 56년 미군부대 화물 수송을 맡으면서다. 이때 맺은 미군과의 인연은 한진 성장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찰리 조, 보따리 좀 싸봐” 조중건(영어명 찰리) 전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의 동생이라기보다 사업 동반자이자, 유능한 참모였다. 조 전 부회장은 통역과 포병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수송학을 전공했다. 59년에 귀국한 그는 바로 한진에 합류했다. 조 전 부회장의 본격적인 활약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휘됐다. 고 조 회장이 1965년 베트남을 시찰한 뒤, 조 전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니가 가서 보따리 좀 싸봐.”이 말은 한번 기획을 잘 해서 사업으로 만들어 보라는 ‘조 브러더스(중훈·중건 형제)’의 은어였다. 조 전 부회장은 미군 인맥을 활용해 중장비 조달 등의 악조건을 뚫고 베트남 꾸이년항의 미군 용역과 수송작업을 따냈다. 계약금액은 790만달러. 조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베트남 수송사업을 돌아볼 때 그것은 참으로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업이었다.” 조 전 부회장은 또 고 조 회장을 도와 70∼80년대 대한항공의 성장사를 주도했다. 국제노선 개척을 위해 당시 소련과 중국 등 적국까지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하늘을 넓혀 놓았다. 항공노선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토막.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선수단 수송을 위한 부정기 항공 노선을 뚫기 위해 혈혈단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구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사장과 항공청 장관, 체육부 장관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조 전 부회장을 한 궁전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사우나탕과 보드카로 조 전 부회장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 수십번 반복된 행동으로 조 전 부회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력으로 계속 버티며, 협상을 주도해 나갔다. 동이 틀 무렵 조 전 부회장은 그들의 수장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고 조 회장의 막내동생인 조중식(70) 전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한진에 입사했다. 당시 새로운 건축공법인 H-빔 공법으로 서울 소공동 KAL빌딩 설계 및 시공을 했으며, 중동 특수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많은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조씨가, 명망가로 사통팔달 한진 조씨가의 혼맥은 명망가 집안이 두루 포함돼 있다. 관·재·학·법조계 등으로 폭넓게 뻗어있다. 또 연애 결혼보다 유난히 중매 결혼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82) 여사와 결혼했지만, 그의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의 유력 인사의 자녀를 배필로 맞았다. 고 조 회장과 김 여사는 슬하에 4남 1녀(현숙·양호·남호·수호·정호)를 뒀다. 장녀인 조현숙(60)씨는 68년 숙부인 조 전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엘리트 법조인인 이태희(65·현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 변호사는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냈던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인 명희(5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 고 조 회장과 이 전 차관이 한 모임에서 아들·딸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인연이 돼 사돈간이 됐다. 조 회장 얘기다.“양가에서 혼담이 오가던 중에 장모님이 예비 사위 얼굴을 보기 위해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사진을 보고 흡족하셨던 모양입니다. 군제대 후에 바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당시 양가의 통혼은 운수기업과 주무부처인 교통부의 고위층 집안이 맺어졌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76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하대와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 인사로 활약했다.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영혜(54)씨와 우연히 테니스코트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조양호 회장은 “다른 형제는 해외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안에서 혼사를 챙겼지만 둘째는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다 보니,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애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수호(51) 한진해운 회장은 조씨가가 국내 재벌가와 혈연으로 얽혀지는 첫번째 다리를 놨다. 조 회장의 처가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집안이기 때문이다. 부인인 최은영(43)씨의 모친이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여사다. 신 여사의 남편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은 87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인 명진(41)씨와 혼인했다. 이 결혼으로 한진 조씨가는 재계 혼맥의 주류로 편입된다. 장인인 구 회장이 LG 구씨가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 이씨가와도 바로 연결된다. 구 회장의 부인인 이숙희 여사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차녀다. ●방계 혼맥도 장관 사돈 많아 고 조 회장의 형제자매 혼맥도 전직 장관 가문부터 평범한 집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영학(68)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장남인 진호(43)씨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장녀인 경아(3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장녀인 윤정(41)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정훈(4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쌍둥이인 주은(38)씨는 미혼, 주연(38)씨는 김태효(38)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했다. 조씨 가문의 장자인 고 조중렬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최학희(80) 여사와 결혼,2남 1녀를 뒀다. 장손인 조지호(57) 한양대 교수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 숙희(56)씨와 혼례를 올렸다. 차남 건호(53)씨는 재미동포인 윤주덕 내과의사의 딸 영태(51)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인숙(59)씨는 문영호(66) 전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과 혼인했다. 영호씨의 부친은 제일은행 이사를 지낸 문재관씨다. 고 조 회장의 첫째 여동생인 조정옥(82) 여사는 전윤진(89) 전 동양화재 감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둘째 여동생 조정원(80) 여사는 박두진(78)씨와 혼례를 치렀다. 셋째인 조도원(77) 여사는 박태원(79) 전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막내인 조경숙(75) 여사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회(78)씨에게 시집갔다. 고 조 회장의 막내 남동생인 조중식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복수(68)씨를 아내로 맞았다. golders@seoul.co.kr ■ “떠날때는 ‘쿨’ 하게” ‘2인자’ 조중건, 조카 경영권승계 앞두고 야인으로 역사적으로 2인자의 삶은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1인자를 향한 욕심이 화(禍)를 불러들인 탓이었다. 반면 드물게 성공한 2인자는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런 점에서 성공한 2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1996년 조카들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시점에 미련없이 대한항공을 나와 야인으로 돌아갔다. 오너가(家)의 일원이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행동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았던 것이다. 1인자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조 전 부회장이 한때 하와이에 머무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형제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또 조 전 부회장이 일정 기간 대한항공의 ‘수장’을 맡다가 장조카인 조양호 대한항공 사장(현 회장)에게 물려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받을 것으로 판단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세간의 예측과 달리 조 전 부회장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하와이로 떠났다. 조 전 부회장은 훗날 이같이 전했다.“형제간이라도 언젠가 헤어질 거면 기분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조카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보기가 안 좋았다. 또 한국에 있으면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형(고 조중훈 회장)에게 누를 끼칠까봐 신경이 쓰였다.”시쳇말로 어차피 헤어질 거면 ‘쿨하게’ 떠나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96년 초 작은아버지께서 물러나시기를 원하셨다.”면서 “선친도 그동안 숙부께서 고생하셨던 것을 잘 아셨던 만큼 섭섭지 않게 해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럼 조 전 부회장이 생각한 2인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형이 대한항공의 ‘선장’이었다면, 나는 ‘일등항해사’였다. 선장은 모름지기 새로운 곳을 향한 모험심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일등항해사다.2인자는 항상 해결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성공확률은 거의 50% 이하였다.” 그는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이 2인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회장은 고 조 회장이 정부로부터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형에게 수없이 대들었다.“형, 하지 마시오.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그러나 조 전 부회장도 끝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최단 기간에 부실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고 조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 전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전면에 나선 총수가 그저 ‘이러 저러하니, 알아서 만들어봐.’라고 화두만 획 던질 뿐일 경우가 많다. 물론 1인자에게는 1인자의 고뇌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일 하나 때문에 며칠을 헤매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그럼에도 2인자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했다.“2인자들은 1인자가 꾸는 꿈에 덩달아 취해 열정을 다해 일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형은 육·해·공의 종합물류 기업이라는 꿈을 내게 보여줬다.” golders@seoul.co.kr ■ 역대 정권과의 인연 1999년 4월2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다. 민간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이같은 조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빌미를 제공한 것은 대한항공. 대한항공기의 잇단 사고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국적항공사의 항공 사고는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정권과의 갈등이었다. 한진 조씨가와 역대 정권과의 인연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가 우호적 관계였다면, 김대중 정권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고 조 회장은 국적항공사 대표라는 신분과 특유의 사교성, 부지런함 덕분에 역대 정권의 핵심 인사와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사업상 ‘손해본 장사’도 많았다. 고 조 회장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도 정권이 요청한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비롯해 대한선주(현 한진해운과 합병), 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를 떠안았다. 동시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인맥을 활용, 민간 차원의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30여년간 한진그룹의 ‘2인자’였던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도 과거 군경력을 바탕으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대목이다. “1953년부터 2년간 미국 포병학교 교관 생활로 400여명의 기간 장교들과 많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중략)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친근한 관계였고 나를 친아우처럼 아껴주셨고, 가끔 당시 혁명 주체들이 내 형(조중훈 회장) 집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이권과 청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나 형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98년 DJ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씨가는 서서히 ‘쓴맛’을 보기 시작한다. 대통령 전세기의 경쟁 입찰제 도입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어 국세청 조사인력 240여명이 동원된 3개월간의 한진그룹 세무조사는 조씨가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DJ정권이 대한항공에 대해 강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이유는 뭘까.1차적으로 DJ정권 출범 이후 크고 작은 대한항공측의 사고 탓이었다.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훼손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과거 조씨가가 보인 ‘반DJ 행보’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세무조사 이후 대한항공은 노선권 배분 차별 등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법보다 감정을 앞세운 정부의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 사법부는 대한항공이 잇따라 제기한 노선 배분 소송에서 정부 결정을 뒤엎는 판결을 속속 내렸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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