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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보] 文, 尹에 “꼭 성공하길…집무실 용산 이전 예산 면밀히 살펴 협조할 것”

    [속보] 文, 尹에 “꼭 성공하길…집무실 용산 이전 예산 면밀히 살펴 협조할 것”

    “文, ‘집무실 이전 판단’ 오롯이 차기 정부 몫’”文, 尹에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MB사면·정부조직 개편 언급은 안 해상춘재서 한우갈비 만찬… ‘허심탄회’ 대화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만찬 회동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와 관련, 예산 등에 대한 협조 의사를 밝혔다고 윤 당선인측이 전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의 2시간 51분간의 첫 만찬 회동을 마쳤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가운데 최장시간 회동이었다. 회동에서는 다양한 주제가 허심탄회하게 논의됐다. 윤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은 이날 만찬 종료 후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에서 “자연스럽게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얘기가 나왔다”면서 “문 대통령께서는 ‘집무실 이전 지역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차기 정부 몫이라 생각하고, 지금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집무실 이전 예산을 위한 예비비를 국무회의에 상정할지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절차적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면서 “제가 느끼기엔 아주 실무적으로 시기라던지, 이전 내용이라던지 이런 것을 서로 공유해서 대통령께서 협조하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그는 ‘취임식 이전에 집무실 이전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두 분께서 시기까지 가능하다, 하지 않다는 말은 없었다”면서 “어쨌든 문 대통령이 협조를 하고 실질적인 그런 이전 계획 예산을 면밀히 살펴보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은 현재 청와대에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꼭 성공하길 빈다”면서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조직개편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장 실장은 전했다.기다렸다 윤 당선인 직접 맞은 문 대통령“저기 매화꽃이 피었다” “정말 아름답다” 이날 오후 5시 59분에 녹지원에서 만나 청와대 상춘재로 향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오후 8시 50분까지 총 2시간 51분간 회동했다. 문 대통령은 만찬이 예고된 오후 6시가 2분 앞으로 다가오자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만찬장인 상춘재 앞 녹지원에 먼저 나가 윤 당선인을 기다렸다. 문 대통령이 먼저 나가서 상대를 기다리다가 에스코트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윤 당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시 59분에는 윤 당선인을 태운 차가 문 대통령 앞에 멈춰 섰고, 문 대통령이 차에서 내린 윤 당선인에게 오른손을 내밀자 윤 당선인이 가벼운 묵례 후 양손으로 문 대통령의 오른손을 잡으며 신·구 권력의 첫 회동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감색 양복에 청색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 차림, 윤 당선인은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를 맸다.문 대통령은 이동하면서 녹지원 안에 있는 소나무, 또 녹지원 옆에 있는 여민관(비서동)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 대통령은 녹지원에 대해 “여기가 우리 최고의 정원이라고 극찬을 하셨던 (곳)“이라며 ”이 너머에 헬기장이 있고, 그 지하에는…”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윤 당선인은 여민관을 지나며 “이 쪽 어디서 회의를 한 기억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라며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 청와대를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찾은 것은 2018년 7월 검찰총장 임명식, 2019년 11월과 2020년 6월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한우갈비와 레드 와인 등을 곁들인 이번 만찬 회동에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남은 지난 9일 대선이 치러진 지 19일 만에 성사된 것으로, 역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 중 가장 늦게 이뤄졌다.
  • [속보] 문 대통령-윤 당선인 회동 종료…2시간 51분간 ‘허심탄회’ 대화

    [속보] 문 대통령-윤 당선인 회동 종료…2시간 51분간 ‘허심탄회’ 대화

    기다렸다 윤 당선인 직접 맞은 문 대통령“저기 매화꽃이 피었다” “정말 아름답다”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에서의 2시간 51분간의 첫 만찬 회동을 마쳤다. 회동에서는 다양한 주제가 허심탄회하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5시 59분에 녹지원에서 만나 청와대 상춘재로 향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오후 8시 50분까지 총 2시간 51분간 회동했다. 문 대통령은 만찬이 예고된 오후 6시가 2분 앞으로 다가오자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만찬장인 상춘재 앞 녹지원에 먼저 나가 윤 당선인을 기다렸다. 문 대통령이 먼저 나가서 상대를 기다리다가 에스코트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윤 당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시 59분에는 윤 당선인을 태운 차가 문 대통령 앞에 멈춰 섰고, 문 대통령이 차에서 내린 윤 당선인에게 오른손을 내밀자 윤 당선인이 가벼운 묵례 후 양손으로 문 대통령의 오른손을 잡으며 신·구 권력의 첫 회동이 시작됐다.문 대통령은 감색 양복에 청색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 차림, 윤 당선인은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를 맸다. 문 대통령은 이동하면서 녹지원 안에 있는 소나무, 또 녹지원 옆에 있는 여민관(비서동)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 대통령은 녹지원에 대해 “여기가 우리 최고의 정원이라고 극찬을 하셨던 (곳)“이라며 ”이 너머에 헬기장이 있고, 그 지하에는…”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윤 당선인은 여민관을 지나며 “이 쪽 어디서 회의를 한 기억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라며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 청와대를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찾은 것은 2018년 7월 검찰총장 임명식, 2019년 11월과 2020년 6월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한우갈비와 레드 와인 등을 곁들인 이번 만찬 회동에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남은 지난 9일 대선이 치러진 지 19일 만에 성사된 것으로, 역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 중 가장 늦게 이뤄졌다. 이전까지는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간 9일 만의 회동이 가장 늦은 신·구 권력의 만남이었다. 이날 회동에서는 코로나19 방역대책 및 이에 따른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비롯해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위기 안보 논의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나왔다. 또 윤 당선인이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 등을 두고도 이야기를 나눴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윤 당선인 측이 코로나 손실 보상 문제를 시급하게 다뤄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청와대와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닮아있습니다. 정부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 처음에 전염병을 부인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누가 퍼뜨렸는지 뒷담화를 하게 되죠. 이후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70)가 인류 공동의 난제 팬데믹을 소재로 한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파무크는 28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면서 “제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는 없었지만,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을 서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액자소설 형식을 띤 작품은 여성 역사학자를 화자로 1901년 오스만제국의 속주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며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다.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가 공존하는 문명의 충돌지다. 무슬림들은 방역 조치를 존중하지 않고 종교·정치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역은 실패한다. 오스만제국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따라 섬을 봉쇄하고, 섬 지도층은 민게르가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파무크는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이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었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을 쓸 때 터키의 정치적 상황도 권위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가 희석돼 이를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말기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묘사한 그는 “당시 오스만은 서구제국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족주의·종교 등 내부 갈등으로 쪼개졌다”며 “민게르섬은 ‘고립된 공간’이란 주제를 좋아하는 내가 크레타섬, 헤이벨리섬, 메이스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작업 막바지에 코로나19가 닥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는 그는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이를 축소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사건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을 쓸 것”이라며 “중동 남성들의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제 모습도 고치려 노력한다”고 했다.그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와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페스트’는 1940년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묘사한 정치적 알레고리인 반면, 제 책은 사실주의적 팬데믹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터키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영미판보다 먼저 나왔다. 펜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겹친 현 세계에 대해 파무크는 “푸틴의 공격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서구 사회도 핵전쟁이 두려워 관망하고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펜데믹이 끝나면 한국을 다시 가고 싶다”며 “한국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범인에게는 침을, 바보에게는 존경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는 1971년 자신의 아틀리에 벽에 이런 낙서를 남겼다.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바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한길을 걸었던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고독하게 예술혼을 불태웠다. 지난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는 한평생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끈질기게 추구했던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노실’(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방)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시장은 작가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해 만들어졌고 1950~1970년대까지 그가 만든 조각, 회화, 드로잉 등 240여점이 전시됐다. ‘노실의 천사’란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 즉 순수한 정신적 실체를 뜻한다. 오는 5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권진규 개인전 중 역대 최대 규모로 1947년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1973년 5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만든 주요 작품을 총망라한다. 동물상, 여성 두상과 흉상, 자소상, 부처와 예수상, 승려상 등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전시하며 주요 제작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 제작 과정도 소개한다. 전시작은 유족의 기증품 외에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이뤄졌다. 여기엔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장한 ‘말’(위·1965년 제작 추정)도 포함됐다. 전시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입산’, ‘수행’, ‘피안’ 등 세 시기로 구성됐다.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스카프를 맨 여성’, 건칠 기법으로 제작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이중섭의 ‘황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흰소’ 등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고려대 박물관을 찾아 한참을 응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사를 걸친 자소상’(아래)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작가의 평화로운 미소가 긴 여운을 남긴다. 권진규는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한 작가였다. 여성의 모습도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았고 작품 곳곳에 자신만의 유머도 심어 놓았다. 그는 아틀리에 옆 조그만 방에서 자신이 추종했던 프랑스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수행하듯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탐구 정신이 담긴 메모와 기록들도 함께 전시됐다. 세속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던 작가는 한국 화단의 몰이해로 인해 좌절하고, 불교에 침잠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생은 공(空)’이라고 적힌 마지막 메모에서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깊은 고뇌가 전해진다. 전시를 기념해 작가가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매주 토요일 특별 개방된다. 다음달 특별 공연과 학술대회도 열린다.
  • 사전 감지 어려운 이동식발사대… 北 기습도발 위협 더 커졌다[뉴스 분석]

    사전 감지 어려운 이동식발사대… 北 기습도발 위협 더 커졌다[뉴스 분석]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기동력과 은밀성을 담보한 이동식발사대(TEL)에서 직접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위협이 극대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TEL에 탑재된 ICBM은 사전 감지가 어려워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한미는 지난 24일 북한이 발사한 ICBM이 신형 화성17형이 아닌 기존의 ‘화성15형’이라고 결론을 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 25일 공개한 영상을 보면 ICBM은 격납고에서 바퀴 22개를 장착한 이동식발사대에 실려 발사장으로 옮겨졌다. 이후 발사대가 수직으로 세워지고 지지대가 땅에 내려진 뒤 ICBM이 발사됐다. 이는 지난 2017년 화성15형 발사 때보다 한층 진전된 기술인데 당시에는 이동식발사대로 미사일을 옮긴 뒤 실제 발사는 별도 거치대에서 이뤄졌다. 북한이 이번 영상을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이동식발사대에서 ICBM을 발사할 능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동식발사대가 ICBM을 운반하고 수직으로 세우는 역할을 했으니 사실상 발사 가능한 수준까지 고도화됐다는 평가와 함께 실제 발사엔 별도 거치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공존했다. 그러나 북한이 4년 4개월만에 재개된 이번 발사에서 별도 거치대 없이 이동식발사대에서 ICBM을 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ICBM의 위험도 더욱 커졌다. 유사시 발사대가 은폐된 상태에서 이동한 뒤 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어 사전 포착이 어려운 만큼 선제타격의 위험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동식발사대를 이용하면 액체연료를 쓸 경우 15분가량, 고체연료라면 5분으로 발사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의 킬체인(Kill Chain)은 미사일 진지와 이동식발사대 등을 30분 안에 탐지해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미국 정보자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북한 전역을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이동식발사대를 이용하면 미사일 발사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사전 포착이 어렵다”며 “한국군 스스로가 독자적 정보 감시정찰(ISR) 능력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복수의 군 및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는 이번 ICBM을 정밀 분석한 결과 화성15형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적외선 열감지 센서가 있는 위성 등으로 확보한 정보를 종합한 결과 당시 발사된 ICBM의 엔진 노즐이 화성15형과 동일한 2개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화성17형은 엔진 노즐이 4개다. 군 당국은 화성15형의 탄두 중량을 감소시켜 발사해 화성17형과 유사한 궤적을 구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미사일이라도 탄두 탑재 중량이 줄면 상대적으로 더 멀고 높게 날 수 있다. 북측은 발사 직후 대내외 매체를 통해 화성17형 발사 성공을 대대적으로 자축했는데, 지난 16일 화성17형 발사 실패를 만회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 25일 공개한 발사 장면은 2월 27일 오전 7시쯤 촬영한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짜깁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지난 16일 3차 발사 실패로 태양절에 맞춰 과시하려던 빅이벤트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영상]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폭풍 성장한 근황 공개

    [영상]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폭풍 성장한 근황 공개

    방송인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6)군이 ‘폭풍 성장’한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 26일 윌리엄 인스타그램에는 “독학으로 집에서 공부 중. 이제 아날로그와 디지털시계까지 조금씩 볼 수 있어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윌리엄이 시간 읽기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훌쩍 커서 이제 아기 때 모습을 벗고 의젓한 어린이가 된 윌리엄은 연필을 귀에 꽂고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함께 올라온 영상에서는 윌리엄이 느리지만 또박또박 시간을 읽는 모습도 담겨 미소를 자아냈다. 샘 해밍턴 가족은 지난 1월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했으며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 ‘류현진 ♥’ 배지현, 눈웃음 닮은 딸과 함께 한 근황 [EN스타]

    ‘류현진 ♥’ 배지현, 눈웃음 닮은 딸과 함께 한 근황 [EN스타]

    방송인 배지현이 딸과 함께 남편 류지현을 응원했다. 26일 배지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프링캠프 첫 야구장 방문. 아빠, 야구, 아자아자, 짝짝까지 응원 가능. 다같이 잘 해보자 올 시즌”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배지현이 22개월이 된 딸과 함께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이 담겼다. 배지현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과 딸을 바라보는 류현진의 모습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22개월 된 딸의 환한 눈웃음 또한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했다. 한편, 류현진과 배지현은 지난 2018년 결혼해 지난 2020년 5월 딸을 얻었다.
  • 한 달 넘게 고전하는 러시아, 전략 수정?…“돈바스 집중”

    한 달 넘게 고전하는 러시아, 전략 수정?…“돈바스 집중”

    수도 키이우 일대를 비롯한 곳곳에서 지상군 진격이 정체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25일(현지시간) 러시아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세르게이 루드스코이는 전황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1단계 작전’은 대부분 이행했다”며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확보하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 등을 통해 북쪽에서 남하하는 자국군과의 연계도 강화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발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공군과 방공시스템이 사실상 파괴됐으며 해군도 괴멸됐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1단계 주요 과제는 전반적으로 이행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 집중하겠다는 발표가 결국 우크라이나 전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초기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초기 예상과 달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각지에서 한 달이 넘게 고전하는 상황인 만큼 이런 분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는 물론 남부 전략 요충지인 항구도시 마리우폴도 아직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일부 주요 도시에서는 후퇴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BBC 보도에 따르면, 키이우 인근에서는 일종의 장기전에 대비하는 방어태세를 구축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BBC는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에서 전사한 장성만 7명에 이르며, 일부 부대의 사기가 있는 대로 추락한 상태라고도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 분석 전문가는 뉴욕타임스(NYT)에 “러시아가 전쟁의 목표 범위를 실제로 축소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성명은 새로운 군사력 보강을 위한 ‘속임수 동작’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BBC에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의도를 재평가할 필요성은 아직 없다”고 강조했다.
  • 호국영령 잠 든 현충원에서 ‘지루박?’…쌍쌍춤 추태

    호국영령 잠 든 현충원에서 ‘지루박?’…쌍쌍춤 추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 24일 호국영령이 잠 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남녀 한 쌍이 춤 추는 추태를 부리는 장면이 포착됐다.대전 서구에 사는 박모(53)씨는 25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어제 현충원에 추모하려고 갔다가 묘역 앞에서 50대로 보이는 남녀가 손 잡고 ‘지루박’인지, ‘탱고’인지, ‘블루스’인지 쌍쌍춤을 춰 깜짝 놀랐다”며 “엄숙해야할 곳에서 춤 추는 게 볼썽사나워 몰래 사진을 찍어 일부 온라인 매체에 제보했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24일 오후 5시 30분쯤 장군제1묘역 바로 앞 공터에서 남성이 여성의 손을 맞잡고 거침없이 춤 동작을 가르쳤다. 이 묘역은 현충원 뒤편에 있지만 둘레길과 가까워 시민들 눈에 띄기가 쉽다. 박씨는 “이 뿐 아니라 대전현충원에서는 운전연습, 취식, 흡연 등도 자주 목격되고, 여름에 텐트까지 치는 모습도 봤다”며 “호국영령이 잠든 엄숙한 곳이니 만큼 좀더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리기 하루 전이어서 준비 때문에 경내 곳곳을 돌았지만 발견을 못했다. 대전현충원이 100만평에 이를 정도로 드넓은 데다 인력이 부족해 단속에 한계가 있다”면서 “오토바이 순찰을 더 자주 돌고, 오는 10월 인력을 충원해 인적이 드문 곳에 초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 허구연 신임 KBO 총재 “지자체가 구단 깔보면 연고지 버리는 강단도 필요”

    허구연 신임 KBO 총재 “지자체가 구단 깔보면 연고지 버리는 강단도 필요”

    경기인 가운데 첫 한국프로야구의 수장이 된 허구연 KBO 신임 총재는 “솔직히 나는 한국인 빈 스컬리가 되고 싶었다. 버드 셀리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빈 스컬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캐스터다. 버드 셀리그는 1998∼2015년 메이저리그 사무국 커미셔너(총재)로 일하며 미국 야구의 전성기를 열었다.KBO는 25일 “서면 표결을 통해 구단주 총회 만장일치로 허구연 위원을 제24대 총재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허 신임 총재는 KBO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해설위원으로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게 내 꿈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시기에 총재 자리에 올랐다”며 “우리 한국야구에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사를 전했다. 허 신임 총재는 야구계 현안을 훤히 꿰뚫고 있다. 최근 화두가 된 ‘강정호 복귀 추진 파문’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 중이다. 그는 “강정호 문제를 신중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시기에 취임한다.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 게 총재의 역할이다. 우리 한국야구에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정규시즌 개막이 다가왔다. 김광현(SSG 랜더스), 양현종(KIA 타이거즈)의 복귀, 김도영(KIA) 등 신인의 등장,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 등 개성 있는 외국인 선수의 입단 등 호재가 많다. 이런 긍정적인 부분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키움이) 강정호 복귀를 추진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문제를 신중히 살피겠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지 않고, 법률적인 부분 등을 잘 들춰보겠다. 내가 또 법대(고려대 법학과 학사·석사) 출신이지 않은가. 지금 KBO 규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KBO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법률 자문 등도 구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겠다.▲야구인 최초 KBO 총재라는 무게감도 느낄 텐데. -커미셔너(총재)는 팬, 구단, 선수의 동의를 구하며 리그를 발전시키는 자리다. 각자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절충안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구단과 선수들에게 ‘팬 퍼스트’를 강조하고 싶다. 선수들은 프로다운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고, 많은 구성원이 ‘스피드 업’ 등 야구의 재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팬 서비스도 선수와 구단의 중요한 임무다. KBO리그의 인기가 하락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 2022년이 한국 야구의 터닝 포인트가 되길 기원한다. ▲팬들은 인프라 확충‘을 기대한다. -내가 ’자연인‘일 때도 지자체 관계자를 만나서 야구장 등 인프라 구축을 강조했다. 최근까지도 꾸준히 지자체장과 만났다. 대전, 부산, 서울 등에 야구장 신축이 절실하다. 이 부분을 독려할 것이다. 또한, ’남해안 벨트‘를 조성해 국내에서 ’2군 캠프‘가 가능하게 하겠다. 이렇게 되면 아마추어팀도 활용할 수 있다. 지방에 야구 붐이 일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자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업이 운영하는 KBO리그 상황을 고려하면, 구단은 지자체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총재인 내가 지자체에 목소리를 높이겠다. 싸움도 불사할 생각이다.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가 ’우리는 야구단의 연고지‘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지자체가 불성실한 태도로 야구단을 대하면 구단이 연고지를 떠나는 강단 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해설위원 허구연’을 그리워할 팬도 많을 텐데. -내 꿈은 해설위원으로 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나는 빈 스컬리가 되고 싶었지, 버드 셀리그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22시즌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중계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갑작스럽게 KBO 총재 제의를 받았고, 결국 KBO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팬들에게 방송으로 인사드릴 기회도 없이 떠난다. 그 점이 참 아쉽다. 40년 동안 팬들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 번도 ’퍼펙트한 해설‘을 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 해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마이크를 놓는 지금, 아쉬운 장면이 더 많이 떠오른다. 총재 자리에서 야구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文 “덕담에 무슨 협상” 尹 “집 팔고 왜 고치나”… 서로 직구 날렸다

    文 “덕담에 무슨 협상” 尹 “집 팔고 왜 고치나”… 서로 직구 날렸다

    회담 아닌 덕담 강조한 文대통령 “다른 말 듣지 말라” 윤핵관 직격“답답해서 한 말씀” 대놓고 충고‘복심’ 윤건영 “尹측 주장은 거짓” 새 정부 인사권 피력한 尹당선인 “저라면 임기말 인사권 행사 안 해” “檢개혁 결국 안 됐단 자평” 꼬집어 이준석 “지방선거 때문에 쟁점화”신구 권력 간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급기야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링’에 등판해 서로 비판을 주고받았다. 인사권과 집무실 이전 문제 등에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법무부 업무보고 거부 등 정부이양 작업으로 전선이 번진 가운데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직접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신구 권력의 갈등 수위가 과거 정권이양기 때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윤 당선인 측과의 마찰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윤 당선인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하고, 혹시 참고가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 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文, 윤핵관 불필요한 조건 요구 비판 사실상 이번 신구 권력 간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윤 당선인 측이라는 문제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이들의 말’이라는 표현으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문제를 언급하며 윤 당선인 측이 양측 사이에서 불필요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편으론 윤 당선인이 측근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어서 윤 당선인 입장에선 불쾌감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답답해서 한 말씀 더 드린다.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대통령이 되실 분이다. 당선인이 대통령을 예방하는 데 협상과 조건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차기 권력’에 충고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동안 신구 권력 갈등과 관련해 직접적 언급을 삼갔던 윤 당선인도 이날 오전 처음으로 문 대통령을 겨냥하며 포문을 열었다. 윤 당선인은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 앞에 마련된 간이 기자실을 찾아 전날 양측이 충돌했던 한국은행 총재 인선 문제를 작심한 듯 언급했다. 윤 당선인은 “저도 임기 말이 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차기 정부와 다년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 조치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저의 원론적 입장은 그런 것이다. 새 정부와 장기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니고,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저도 앞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고, 한은 총재 뭐 이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윤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집을 사면, 당선인은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대금을 다 지불하고 명도만 남아 있는 상태 아닌가”라며 “매도인에게 아무리 법률적 권한이 있더라도 들어와 살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서 본인이 사는 데 필요한 조치는 하지만 집을 고치거나 이런 건 잘 안 하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신구 권력의 인사권 문제를 부동산의 매수·매도인에 비유하며 청와대의 주장이 일반적인 상식이나 관점과 맞지 않는다는 ‘뼈 있는 비유’를 구사한 것이다. ●김은혜 “당선인 판단 문제있단 건가” 윤 당선인은 또 전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폐지에 앞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담보가 선행돼야 한다”며 자신의 사법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을 두고도 “장관 간담회를 쳐다볼 시간이 없었다”면서도 “이 정부에서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검찰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한 것인데 5년간 해놓고 그게 안 됐다는 자평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자제하던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이날 오후엔 “윤 당선인의 판단에 마치 문제가 있고,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처럼 언급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문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정부 인수인계가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긴요한 때에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직접 등판해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여야 간 장외 공방도 한층 거세졌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친문(친문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한은 총재 인사와 관련해 “당선인의 주장이 좀 거짓에 가깝다고 느껴진다”며 “한은 총재로 지명되신 분(이창용 국제통화기금 국장)이 당선인 측에서 나온 이름이다. 당선인 측에서 그분(이 국장)에게 의사 타진까지 해 봤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 양측 “짜증난다” “대선불복” 장외전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은 BBS 라디오에서 전날 양측 참모가 회동 내용을 공개하며 싸운 것을 지적하며 “물밑에서 나눴던 대화를, 더군다나 인사와 관련한 대화를 이렇게 막 백일하에 내도 되느냐”며 “지켜보는 국민이 불안하다 못해 짜증이 날 지경인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한은 총재를 인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KBS 라디오에서 “협의는 합의와 다르다. 협의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당한 대상 입장에서는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거잖아’ 이런 입장으로 보통 응대한다”고 했다. 이어 계속되는 신구 권력 간 갈등에 대해서는 “이런 게 장기화되면 6월 1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신정부와 일부러 여러 쟁점 사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 이런 지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마저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인 양 새 정부의 새로운 출발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 당시 발언을 마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2일 윤석열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서울신문 DB
  • [핵잼 사이언스] 속이 다 보이네…신종 ‘시스루 개구리’ 에콰도르서 발견

    [핵잼 사이언스] 속이 다 보이네…신종 ‘시스루 개구리’ 에콰도르서 발견

    피부가 투명해 속이 훤히 보이는 신종 개구리가 발견됐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은 에콰도르에서 신종 유리개구리(Glass frogs) 2종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피부가 투명해 장기가 밖에서도 보이는 유리개구리는 그 특징 때문에 '시스루 개구리'라는 재미있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주로 중미와 남미의 습한 산 속에서 서식하는데 이번에 발견된 2종 역시 비슷하다. 두 개구리는 안데스 산맥 구아얄라밤바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20㎞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데 한 종(학명·Hyalinobatrachium mashpi)은 강 남쪽 마시피 보호구에서, 또 다른 한 종(학명·Hyalinobatrachium nouns)은 강 북쪽 계곡에서 발견됐다.두 개구리가 사는 곳의 기온과 습도가 거의 같았던 만큼이나 생김새도 유사하다. 몸 길이는 1.9~2.1㎝이며 등에는 노란 물방울 무늬가 있으며 그 주위에 검은 점이 마치 후추처럼 뿌려져 있다. 또한 배는 다른 유리개구리들처럼 투명해 심장과 소화기관 등 내장이 훤히 보인다. 연구를 이끈 에콰도르 샌프란시스코 데 키토 대학 후안 마누엘 과야사민 교수는 "처음 이 개구리들을 봤을 때 같은 종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두 개구리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다른 종인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두 개구리는 특히 신종으로 확인되자마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 생물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적색목록(Red List)으로 추천됐다. 인간에게 처음 발견되자마자 곧바로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되는 셈. 이는 사실 '병 주고 약 주는' 인간 탓이다.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개구리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최근에는 농업과 광업으로 오염과 서식지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 신종 개구리가 발견된 안데스 산맥 지역도 활발하게 광산이 개발되고 있어 서식지 파괴는 시간 문제다. 과야사민 교수는 "사실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호하며 연구할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이번에 발견된 유리개구리는 시간 내에 발견돼 세계와 공유하게 됐지만 다른 신종은 그럴 기회 조차 갖지못하고 멸종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리개구리는 중미, 카리브해, 남미 등에 널리 분포하며 현재까지 확인된 종은 총 156종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어제이’(PeerJ)에 최신호에 실렸다.     
  • [속보] “키이우 탈환” 우크라 기세 역전…러시아군 방어태세 전환

    [속보] “키이우 탈환” 우크라 기세 역전…러시아군 방어태세 전환

    우크라이나군이 수도 키이우 동부에서 러시아군을 격퇴해 후퇴시키면서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선 방어태세로 전환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 화력을 집중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며칠간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기세를 역전시키며 영토를 되찾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23일(현지시간) CNN방송,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동쪽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을 후퇴시켰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군은 키이우 도심에서 약 5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는 전날보다 25~35㎞ 멀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고위 관계자는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15~20㎞ 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군 병력은 땅을 파고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구축한 방어선을 따라 그 이상으로는 키이우 도심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우회를 시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라며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키이우 동쪽과 북동쪽으로 더 멀리 밀어낸 것으로 평가한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필사 항전 우크라…러시아군 고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수도 키이우 교외의 한 지역을 탈환했지만, 러시아군이 부차, 호스토멜, 이르핀 등 다른 북서부 교외 지역을 부분적으로 점령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거의 한 달 전 러시아가 침공한 이후 계속 공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에 계속 포격을 가하면서 포위 공격의 압력을 높여가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함락 위기인 마리우폴에서도 강력히 저항하며 러시아군의 점령을 막고 있다.러시아는 마리우폴을 포위하고 투항을 요구했으나, 우크라이나는 항복을 거부했다. 양국이 치열하게 교전하면서 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미 국방부는 “러시아군은 이전보다 더 거센 공격을 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키이우에서 방어태세로 전환함에 따라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CNN방송에 러시아군이 인명 피해와 다른 문제로 인해 가용한 전력이 애초의 90%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식량과 연료 문제에 더해 동상으로 인해 병사들을 전투에서 열외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들은 적절한 방한 장비가 부족하다. 동상 탓에 일부 러시아군을 후송시킨 정황을 미 국방부가 목격했다”고 말했다.
  • “우리 땅이다!” 헤르손 장악한 Z탱크, 시민 맨몸 저항에 줄행랑 [영상]

    “우리 땅이다!” 헤르손 장악한 Z탱크, 시민 맨몸 저항에 줄행랑 [영상]

    우크라이나 헤르손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시민의 거센 저항에 주춤하는 모습이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에 대한 주민의 비폭력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르손 시민 수백 명은 지난 3일 러시아군 점령 이후 매일 같이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보디 광장에 함께 모여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고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적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친다. 러시아군을 맨몸으로 막아서며 퇴각을 요구한다.이날 외신에는 헤르손 시민이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모습도 실렸다. 시민 수백 명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휘날리며 ‘Z’ 기호가 선명한 러시아군 탱크 앞으로 뛰어들었다. “여기는 우리 땅이다, 돌아가라”라며 러시아군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진격하는 탱크 앞으로 몸을 던진 시민에게선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 진입한 러시아군 탱크는 시민의 거센 저항에 주춤했다. 시민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뒷걸음질치던 러시아군 탱크가 결국 줄행랑을 치자, 시민은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러시아군의 끝없는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시민의 기개가 엿보였다.헤르손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유일하게 점령한 주요 도시다. 러시아군은 개전 8일째였던 지난 3일 헤르손을 장악했다. 이후 러시아군은 헤르손을 독립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 투표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민 반발로 러시아군은 헤르손 통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아 총참모부(합참) 산하 지휘센터인 ‘국가국방관리센터’ 지휘관 미하일 미진체프가 “헤르손은 우리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다”고 밝혔지만, 현지에선 매일 시위가 벌어지는 등 정반대의 분위기가 읽혔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는 반격을 도모했다. 16일에는 러시아군이 공군기지로 쓰는 헤르손 공항에 공습을 가했다.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던 전세는 그러나 러시아 쪽으로 다시 기울어진 모양새다. 20일 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최후통첩을 했다. 러시아는 “21일 오전 9시 마리우폴 동쪽과 서쪽으로 인도주의 통로를 만들 예정이다”라며 “우크라이나군은 무기를 버리고 두 시간 안에 도시를 떠나라”고 통보했다. 이어 “그 이후 마리우폴에 남아있는 우크라이나군은 모두 군사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우크라이나는 일단 ‘항복은 없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WP는 전세가 이미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으며, 우크라이나군이 도시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동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연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에서 집중 공격을 펼쳤다. 헤르손에 이어 마리우폴까지 함락되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장악하게 된다.
  • [지구를 보다] 러 공격에 불타는 도시…우주서 본 최대 격전지 마리우폴

    [지구를 보다] 러 공격에 불타는 도시…우주서 본 최대 격전지 마리우폴

    우크라이나 남동부 요충지인 마리우폴 시가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에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망자도 2400명에 달한다는 비공식 보도가 나올 만큼 큰 피해를 입고 있는데 마리우폴 시민들은 러시아의 공격은 물론 식량, 식수 부족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있다. 현재 마리우폴 주위를 포위한 러시아군은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에 무기를 버리고 도시를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에대해 우크라이나 당국의 공식답변은 없지만 결사항전의 의지는 뜨겁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지금까지 마리우폴을 집중 공격해왔는데 이는 이곳이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반군의 점령지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무력으로 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점령하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연결하는 육로 회랑이 완성되기 때문에 마리우폴은 개전 전부터 러시아군의 최우선 전략 목표로 꼽혀왔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애꿎은 시민들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지난 18일 촬영한 마리우폴은 폐허 그 자체다. 먼저 많은 시민들이 거주했던 마리우폴 시내의 아파트, 주택, 상점 등은 러시아 군의 공습으로 파괴되고 검게 그을린 것이 멀리 위성으로도 확인된다. 또한 19일 사진에는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마리우폴 극장 건물이 보이는데 폭격 당시 극장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이 대피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20일 촬영된 미국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랩스 PBC의 사진에도 마리우폴의 끔찍한 전황은 담겨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리보베레즈니 지역을 폭격하면서 많은 민간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특히 살기위해 마리우폴을 떠나는 시민들의 모습도 지난 18일 위성에 잡혔다. 도로에 길게 줄 서있는 수많은 차량들에는 피란을 떠나는 마리우폴 시민들이 타고있다. 보도에 따르면 마리우폴 인구 50만 명 중 15만 명이 이달 초 러시아군의 포위가 시작된 직후 피란을 떠났으나 남은 35만 명 중 20만 명도 시 밖으로 빠져나가려다 러시아군의 포격에 주저앉았다. 
  • 베컴, 우크라 의사에게 인스타 계정 기부…“여러분 도움 필요”

    베컴, 우크라 의사에게 인스타 계정 기부…“여러분 도움 필요”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우크라이나의 한 의사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기부했다. 팔로워 수가 많은 베컴의 계정을 통해 피해 상황을 알리고 기부를 호소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베컴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권을 하르키우 지역의 어린이 마취과 의사 겸 지역 출산센터 소장인 이리나에게 넘겼다.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북부의 도시로, 수도 키이우에 이어 제2의 도시다. 이리나는 이날 베컴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러시아의 침공 가운데 놓인 환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대거 공개했다. 사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2월 24일 임신부들이 좁은 지하실로 대피한 모습과 중환자실의 한 신생아가 유니세프가 제공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집이 파괴된 가운데 호흡기 문제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있었다. 베컴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약 7150만명이 팔로우 중이다. 이리나는 “우리의 목숨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우린 우리의 일을 사랑한다”면서 “여기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으니 걱정하거나 울지 마시길. 아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주민들을 위로했다. 2005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해온 베컴은 팬들을 향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산부인과병원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의료도구 등을 전달할 수 있도록 자선단체 기부를 호소했다. 베컴은 “여러분의 기부로 전달된 산소호흡기가 신생아들이 끔찍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촉구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주 넘게 하르키우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 판빙빙, 한국체류설…이번엔 한강공원에? “춘분 날 저녁”

    판빙빙, 한국체류설…이번엔 한강공원에? “춘분 날 저녁”

    중국 배우 판빙빙이 근황을 공개했다. 판빙빙은 지난 20일 인스타그램에 “춘분 날 저녁(The evening of the Spring Equinox)”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판빙빙이 우수에 찬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판빙빙이 서 있는 배경은 한국의 한강 공원인 것 같다는 추측이 제기돼 아직도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듯 보인다. 판빙빙은 앞서 JTBC 새 드라마 ‘인사이더’에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3일 일에는 영화 ‘마이웨이’의 강제규 감독과 만난 모습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판빙빙은 지난 2018년 중국 현지에서 탈세 논란에 휘말리며 자취를 감췄다가 복귀해 중국 공안에 의한 감금설 등에 휩싸였다. 그는 지난 9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355’를 통해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 “아내가 되려고 한다” 3월의 신부된 걸그룹 멤버

    “아내가 되려고 한다” 3월의 신부된 걸그룹 멤버

    헬로비너스 출신 채주화가 결혼 소감을 밝혔다. 채주화는 2012년 그룹 헬로비너스의 멤버 라임으로 데뷔했다. 2019년 활동명을 채주화로 변경하고, 배우로 전향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채주화는 20일 서울 모처에서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배우 김기방이 사회를 맡고, 가수 솔지가 축가를 불렸다. 채주화는 식을 마친 뒤 자신의 SNS에 글을 남겨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반짝이는 비즈가 가득한 웨딩드레스 차림을 공개하며 3월의 신부 모습도 공개했다. 채주화는 “개나리가 봉우리 필 무렵 정말 좋은 날에 저의 결혼식을 무사히 잘 치뤘습니다”라며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축복해주시고 먼 발걸음 해주신 모든 분들 너무나도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축하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분한분 연락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썼다. 이어 사회자 김기방과 축가를 부른 솔지에게도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 채주화는 지난 1월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동반자가 생겨 올해 3월 결혼한다”며 SNS를 통해 직접 결혼을 발표했다. 그는 예비 남편에 대해 “늘 언제나 저를 웃게 해주고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은 존경스러운 분”이라며 “그분에게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 언제나 기댈 여유를 주고 지친 날에는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그런 아내가 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대구 사저 입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 ‘귀향 환영회’ 열려

    대구 사저 입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 ‘귀향 환영회’ 열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구 달성군 사저 입주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가운데 18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박 전 대통령 사저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귀향 환영회’가 열렸다.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 김경재·이완영 전 의원 등 친박(親朴) 인사들과 지지자 등 500여명이 몰렸다. 한 지지자 단체가 떡과 물을 무료로 제공해 긴 줄이 만들어졌고, 한편에서는 풍물놀이가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황 전 대표는 “이제 대구로 내려오셔서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란다”며 “그리고 다시 이 나라를 진실된 나라로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박 전 대통령은 빠르면 다음주 퇴원해 달성군 사저로 입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서울 일원본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달성군 주민 원숙희(69)씨는 “오늘 대통령이 오는 줄 알고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관광목적으로 사저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들은 사저 주변을 둘러보거나 대문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이 사저 대문을 열자 관광객들이 우르르 뒤따라가 안쪽을 살펴보는 모습도 보였다. 사저 초입에는 차량 차단기가 설치됐다. 이날 방문객들이 몰리면서 차량 10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도 혼잡했다. 경찰은 교통과 기동대 경력 등을 투입해 현장을 관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입주를 앞두고 보수 인사들의 사저 방문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사저를 방문한데 이어 최근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도 사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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