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슬픔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물건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피지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선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목표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194
  • 세종 솔로이스츠 내일 예술의 전당서 내한공연

    조선조 임금 ‘세종’의 이름을 따 창단된 악단이다.그러나 단원들의 국적은 각각이다.한국을 비롯해 호주 일본 대만 중국 미국 독일 출신으로 이뤄졌다.모두 미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한 동창생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이들은 모두 세계 유수의 콩쿠르인 자크 티보,인디아나폴리스,티보 발가,나움부르크,비니아우스키-리핀스키,메뉴힌,파리소-슈타커 닐슨 등에서 수상한 실력파들이다. 지난 95년 창단된 ‘세종 솔로이스츠’를 나타내는 말이다.세종 솔로이스츠는 당시 삼성문화재단의 지원을 얻어 미 줄리어드음대 강효교수가 창단했다. 현재는 삼성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그동안 연주자들이 많이 바뀌었다.출범 당시 단원 12명 중 10명이 한국인이었으나 현재는 한국인이 단원 15명중 4명으로 줄어들었다.창단 멤버로는 강효교수를 포함해 바이올린의 아델 안토니,김현아,심 캐서린이 남아 있다.단원들의 잦은 교체에도 불구,바로크부터 현대곡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실력을 뽐낸다.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강효교수는 서울대 음대 2학년에 다니다 64년 도미,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했다.78년에는 한국인 최초,최연소교수로 임용돼 현재줄리어드 강단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바이올린의 김현아는 티보 발가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센트 피터스버그 실내악단,캄머필 실내악단 등과의 협연을 통해 21세기를 이끌 연주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델 안토니는 차세대 유망주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자크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2등상을 따냈고 아스펜 콘서트 오케스트라,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등과 협연을 통해 한몸에 기대를 받고 있다.지난해 10월부터는 세계적 매니지멘트사인 ICM에 전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2개의 음반을 냈고 내년에는 한국 가곡만으로 음반을 낼 계획이다. 세종 솔로이스츠는 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지난 97년에 이어 2년만이다.비렌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사장조’와 스토코프스키가 편곡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나의 예수’ ‘영혼의 슬픔’ 브리튼의 ‘프랑크 브리지의 테마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하고국내 중견피아니스트 신수정의 협연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 12번 가장조’를 들려준다.(02)580-1300강선임기자sunnyk@
  • ‘얼 킴을 아십니까’ 한국계 美작곡가로 해외서 널리 알려져…

    ‘얼 킴을 아십니까’ 지난해 11월 타계한 한국계 작곡가 얼 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예음문화재단과 월간 객석이 1∼2일 토탈미술관과 영산아트홀에서 각각 마련하는 연주회의 주제이다.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얼 킴은 국내에는 낯선 작곡가이다. 간간이 그의 작품이 소개된 적이 있으나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뉴욕타임즈 등 미국내 주요 언론이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업적에 관해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지휘자 주빈 메타를 비롯한 연주자들이 추모음악회를 개최하면서부터이다.얼 킴의 작품이 뒤늦게 알려진 데 대해 예음문화재단의 장광렬부장은 “국내에는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드물고 악보를 구하기가 힘들어서”라며 “작곡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연주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 킴은 생전에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어 한국에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져있지 않다.그러나 서구적 스타일의 개성있는 작품세계와 반핵운동 등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외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 디누바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얼 킴은 UCLA와 버클리대학에서 거장 쇤베르크와 블로흐 등을 사사한 작곡가.이후 하버드와 프린스턴대학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오페라 ‘풋볼’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도중 연습’ 등 작품 30여편을 남겼다. 1일 오후 5시 토탈미술관에선 얼 킴의 제자인 레하이대학 폴 샐러니 교수가 나와 슬라이드 영상과 음반을 통해 얼 킴의 생활과 음악세계를 설명한다.그리고 7시 30분 미술관 야외무대에선 얼 킴의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모놀로그’ ‘슬픔이 쉬는 곳’ ‘소프라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세개의 프랑스 시’를 동랑댄스앙상블과 백연옥 발레단,리을 무용단이 각각 춤으로 풀어낸다. 이어 2일 오후 7시 30분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세종솔로이스츠 예술감독인 강효의 지휘 아래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와 폴 샐러니교수가 ‘슬픔이 쉬는 곳‘ ‘12개의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등을 들려준다.(02)3703-7382
  • 프리뷰-내일 방영 K2TV TV문학관 ‘새’

    KBS2TV ‘TV문학관’이 1년남짓만에 부활해 30일 밤 10시10분 오정희의 원작소설 ‘새’(극본 박남준 연출 장형일)를 내보낸다. 꿈은 찬란하지만 현실은 처절한 남매의 이야기이다.아빠의 매질에 못이겨달아난 엄마,돌봐주던 외할머니마저 쓰러지자 친척집을 전전하던 남매는 다시 아버지를 만나 바다가 내려보이는 달동네의 단칸 셋방으로 이사온다.그곳에서는 천박한 새엄마 등 인간군상이 남매를 기다리고 있다.살인자인 포장마차 주인 정씨,동성연애중인 여성 부부,새를 키우는 트럭운전수 이씨,밤무대에서 트럼펫을 부는 김씨와 휠체어의 아내…. 새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아버지도 떠나지만 동심을 잃어버린 소녀는 아버지를 붙잡지 않는다.이 소녀는 동생의 엄마이자 선생님.또 동생을 의지하지만 결국 남동생마저 죽고 만다.소녀는 동생이 죽자 “새가 되어 날아다니고 싶다”던 동생의 꿈을 이뤄주려 바닷가로 나가고,누나는 진짜 새가 된 동생의 환영을 만난다. 꿈이란 무엇인가.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에너지이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의 벽은너무 높고 가파르다.가난과 고독,소외… 이 드라마는 원작처럼 어둡고 절망적이다.어린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세상살이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한다.장수혜와 유종원의 아역연기는 화면을 생동감있게 살려낸다.또 인간군상을 연기한 할머니 김지영과 정종준,정동환,방은희도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TV드라마에서는 금기시된 남장여자로나와 동성부부의 남편역을 해낸 연운경의 몸을 던진 연기가 두드러진다. “새가 되고 싶다”는 구체화되지못한 꿈으로 버티지만 갈수록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어린 남매의 삶은 꿈을 잃어버린 오늘의 어른들을 울린다.부산에서 촬영한 어두운 도시와 바다의 영상,희끄무레하게 변해가는 하늘을 담은 화면은 남매의 불행한 삶을 그들의 것으로만 한정짓지 않는다.인생은 슬픔일까.주체할 수 없이 가벼운 여느 드라마와는 다르지만 너무 무겁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등신불’‘바닷가 소년’‘열녀문’‘불새’‘인간과 전장’ 등 옛 ‘TV문학관’을 연출한 장형일감독의 작품이다. 허남주기자
  • 제3회 참전수기 호국문예작품공모 /최우수작

    대한매일신보사와 국가보훈처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3회 참전수기 및 호국문예작품 공모에서 구일모(안산 석수초등학교 3년)군이 출품한 ‘현충일’이 초등부 시부문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초등부 수필부문 최우수작은 변유영(대구 불로초등학교 6년)양의 ‘할아버지의 눈물’이 선정됐다. 중·고등부 시부문 최우수상은 이한주(경북 청송여중 2년)양,수필부문 최우수상은 김보경(부천 시온고 3년)양에게 돌아갔다. 일반부 시부문 최우수상은 곽홍란(여·대구 수성구 시지동 135-14)씨,수필부문은 강정(여·대구시 수성 수성4가 보성아파트 101동 1906호)씨가 선정됐다. 참전수기 부문에서는 최종태(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12 주공하얀마을6단지 608동 402호)씨의 ‘국군이 된 인민군분대장’이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응모 작품은 모두 3,500편이었으며 당선작은 모두 35편이다. 입상자에게는 상패와 10만∼1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오는 6월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 호국문예 詩 최우수작 현충일 구일모(초등부) 난 현충일에 생각했어요 동작동 국립묘지 언덕에 앉아서 수많은 비석이 보였어요 너른 언덕에 가지런히 서 있는 비석의 날짜와 이름이 선명했어요 목숨 바쳐 가신 분들 한사람 한사람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이런 것이 애국심이구나 혼자 생각했어요 이젠 나도 더욱 바르고 씩씩하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소나무 가지에 지저귀는 새 한마리 푸드득 날아가는 언덕에서 난 물끄러미 하늘을 보며 현충일날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기에 적어 볼래요나의 꿈 이한주(중고등부) 나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분단된 우리 땅 휴전선 싸악 지우고 평화를 그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습니다 하얀 꿈을 싣고 평화의 날개로 떠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줄기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한움큼 햇살이 뿌려둔 행복의 씨앗을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전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은 눈물이 되고 싶습니다 가슴속 깊숙히 새겨둔 아픔과 슬픔을 싸악 지우고 자유를 싹틔우고 평화를 피워서 행복이란 열매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작은 행복이 통일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다부원에 피는 꽃 곽홍란(일반부) 아버지 다부원에는 풀꽃이 느낌표로 핍니다 초록보다 더 푸르른 청춘을 내어 걸고 산허리 솟은 혈맥을 골골이 넘습니다 한 마리 풀벌레조차 못 죽이던 사람들이 제주에서 평양으로 뜻 다른 이 찾아 총부리 겨누던 한숨이 저리 피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부원에는 뭇별들도 꽃이 됩니다 이름을 가진 장미나 백일홍,목련꽃보다 제 이름 알 수 없는 꽃이 여기선 더욱 곱습니다 주리고 비틀어진 낙강의 허리채 안고 끝끝내 깍지 끼어 목숨으로 바꾼 이들, 오늘은,그 넋들이 내려 꽃으로 피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부원에는 풀꽃들도 꿈을 꿉니다 흩어진 전우들의 깊은 잠,잠시 깨워 생채기진 군복일랑 벗어 색동으로 갈아입고 차마 못다 푼 한은 두견에게 맡겨 두고 피어린 능선을 넘고 넘어 그리운 이름들과 백두대간 오고 가는 저 환한 웃음에 오늘은,내가 잔을 올립니다
  • [기 고] “金대통령 러시아방문 양국관계 새 章 열것”

    27일부터 30일까지 보리스 옐친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초청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러시아를 공식방문한다.이번 방문에서 김대통령은 정상회담과스테파신 신임총리,셀레즈뇨프 국가두마(하원)의장을 비롯해 러시아 정치인,사회인 및 기업인들과 만나 협의를 갖고 또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계획이다. 모스크바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옹호,그리고 러시아와의 동반자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분으로 널리 알려진 김대통령을 따뜻하게 환영하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다.김대통령은 그 전에도 러시아를 몇차례 방문한 바있고 모스크바대학 명예교수이며 러시아 외무부 부설 외교아카데미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향해 많이 발전해왔고 한국도 정치 및 경제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겪은 경제위기를극복할 것을 확신하며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두 나라의 교류잠재력은상당하다고 믿는다. 김대통령 방문중 서명될 무역,경제,투자,과학 기술등 분야의 중요한 협정들은 상호 유익한 협력을 틀림없이 가져올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첨단기술,한국의 투자,상품화 능력,경영 경험을 결합시키려는 나홋카 자유경제지역 러·한 공단 창설에 관한 협정도 두 나라 협력에 유익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러시아말로 나홋카는 ‘행운’ ‘행운의 발견’이라는 뜻이다.이번 정상회담은 모든 분야에서 상호 유익한 협력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접경한 나라로서 이 지역 정세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러시아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전쟁을 벌인 적이 없는데다 러시아인들은 부지런한 한국사람들을 항상 존경했고 슬픔이나 기쁨을 함께 느꼈다.러시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수십만명의 한인들은 러시아의 경제·과학·문화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한반도 문제해결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은 뚜렷하고 명백하다.러시아는 이지역에서 평화와 안전을 공고히 하고 군사·정치대결을 제거하며 한반도의비핵화를 보장하고 러시아와 대한민국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정상적인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원한다.또한 극동,시베리아를 비롯한 러시아의 여러 지방과 남북한과의 경제교류를 지원하고 가능하다면 공동 경협사업을 하기 원한다. 러시아는 남북한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정세를 정상화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서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발전시킬 것을 시종일관 지지해왔다.러시아는 남북한간의 합의도출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필요하다면 체결된 협정을 보증함으로써 남북한 문제해결에 이바지할 용의가 돼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통일이 이룩되면 한반도 안전보장 체제를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러시아에서는 북한과의 접촉,교류발전을 위한 서울의 입장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다.중요한 것은 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하고 시한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문제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깊이있게 논의될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의 주요국가로서,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한국의 이웃나라로서 한반도 문제해결에 중대하고 긍정적기여를 할 수 있다.이번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21세기를 앞두고 두 나라의 동반자관계 역사에서 새 장을 펼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 추모행사 이모저모

    5·18민주화운동 19주년을 하루앞둔 17일 광주에는 여느 해와는 달리 용서와 화해를 바라는 갖가지 추모행사가 잇따라 열려 분위기가 한껏 달아 올랐다. 이날 오전 광주 전남대병원에서는 ‘영·호남인간의 장기이식’이라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대구·경북지역본부와 광주·전남본부를 통해 마련된이번 행사는 경북 안동에 사는 박모(58·농업)씨가 자신의 신장을 광주에 사는 임모(42·여)씨에게 이식하겠다고 자청해 이루어졌다. 생면부지의 영·호남인 사이에 이뤄진 장기기증 행사는 80년 5·18이후 오랫동안 반목으로 대립해온 두 지역간의 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18기념기간인 18일부터는 전국 대학생 순례단 1,000여명 등 전국 각지에서 온 1만여명이 망월동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5.18기념재단의 이성길 사무차장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온 것은 5·18이 국민화합의 장으로 자리매김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계엄군이었던 군인들이 묘역을 참배하고 헌혈을 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5·18묘역에는 일부 외국인 추모객도 눈에 띄었으며,특히 일본인 29명이 단체로 희생자들을 참배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인 미야자와 미에코(41·여)씨는 “진도 영등제 관광에 앞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긴 5·18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광주에 들렀다”며 “역사의현장에 와보니 그날의 참뜻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피력. 이날 추모제가 열리는 동안 유가족 200여명은 80년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상기하는듯 연신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이 항쟁 마지막날인 27일 도청을 사수하다 총상을 입고 5년간 투병생활 끝에 삶을 마감했다는 이미희(44·여)씨는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잊혀졌던 그날의 아픔도 5월 이맘때만 되면 되살아나 유가족들의 가슴을 짓누른다”며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 누구를 원망하고 분노하진 않지만 국가유공자 지정 등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완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80년 당시 광주시장을 지낸 고(故) 구용상(具龍相)씨의 유족들이 최근 5·18 당시 구시장의 메모,시청 상황일지 등을 한데 묶어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광주시민들에게 남기고 떠나며’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는 5월 18일 이후 광주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참상의 현장을 누비면서 27일 계엄군 진입 이후 수습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소회가 담겨 있다.당시 시위대를 폭도로 간주한 당국과 계엄군의 과잉진압 등에 대한 시민들의심한 반발로 극한 대립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기관장들의 대책회의모임과 이후 대책수립 상황 등이 날짜별로 기록돼 있다. 광주 임송학기자 shlim@
  • [역경을 딛고…]고대에 10억기증 崔丙順할머니 육필수기(1)

    평생 모은 재산 10억원을 고려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최병순(崔丙順·84)할머니(대한매일 3일자 23면 보도).장학금 기증으로 ‘희망의 닻’을 내린감동 못지 않게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한다.할머니는 일제시대,광복 이후의 혼란기,한국전쟁,5·16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홀몸으로 견뎌냈다.부역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가난과 병마,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인내와 용기로 꿋꿋이 이겨낸 최할머니의 육필 원고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별안간 다리가 부러진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지난 세월이 떠올라 설움이 북받친다. 언제 뜰 지 모르는 세상,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이 몸에 소망이 무언가…,소망의 닻을 주리라’.즐겨 부르던 찬송가를 불러봤다.이제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유언 공증을 해야겠다.은행에 있는 돈과 집까지 모두 고려대학교에 내놓으려 한다. 가난과 병마,고통,불행으로 점철된 내 삶의 이야기도 함께 적는다. 지나온 날들은 밤과 같은 세월이었다.하루하루가 생존과의전쟁이었다. 어려서부터 찾아온 병마,손을 쓸 수 없었던 가난,젊은 세월을 옥죄던 봉건적 가족제,전쟁과 이념에 희생돼 치렀던 10년간의 옥살이….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병으로 죽어갈 때도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다.‘빨갱이’라는 낙인에 등을 돌린 세상.이를 악물고 버텨왔다.식모살이,품팔이,행상,창녀촌 빨랫일,보모,극장 암표상 등 안해본 일이 없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운명이 또 있을까.인생의 행복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살아온 한 생.이제는 자식없는 설움과 고독만이 남았다. 나는 1915년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에서 났다.할아버지와 아버지,어머니,삼촌,오빠,그리고 나 6식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5살 때였다.갑자기 목에 조그만 혹이 생기기 시작했다.불행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이른바 ‘연주창’이라는 것이었다.혹은 계속 커져만 갔다.고개를 가눌 수가 없었다.여름이 되니 열이 나고 곪아터져 고름이 나왔다.촌구석에 살다보니 고칠 수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혹은 눈으로,가슴으로,겨드랑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병은 깊어지고 있는데 7살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눌 시간도 없었다.곧바로 부뚜막 일을 시작했다.농사일도 거들어야 했다.학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 때는 15∼17세면 결혼을 했다.그러나 나는 시집을 갈 수도 없었다. 병마에 시달린 지 14년.하늘의 은혜가 내렸다.18세되던 해 마을을 지나던한 노인이 집에 찾아와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자신을 ‘돌팔이 의원’이라고 소개한 이 노인은 맥을 짚어보더니 치유를 장담했다.하얀 가루를 솜에 뿌려 환부에 대고 불을 붙이니 고름이 쏟아졌다.몸에서 불이 나는 듯 했다.환부 이곳저곳에 여러차례 하니 고름이 모두 빠지면서 혹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내가 낫기를 기다렸다는 듯 19세 나던 해 근처의 마을로 나를 시집보냈다.고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엄청난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남편은 노름과 술에 찌들어있던 사람이었다.집안 일을 돌보지 않고 나가서만 살았다.시댁에서는 남편이 해야할일을 나에게 강요했다.시댁은 많지 않은 논과 주변의 텃밭으로 근근이 생활했다.농사일과 막내 며느리로서의 집안일은 모두 내가 해야 했다. 시댁에서는 동짓달에도 방에 불을 때주지도 않아 늘 냉방에서 자야 했다.텃밭을 일구고 거름을 져 나르고,식사준비에서부터 설거지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잠시도 쉴틈이 없었다.
  • 소설가 이승우씨 성지순례 체험 산문집 ‘내영혼의 지도’ 펴내

    “내 천박해지는 정신과 궁핍한 상상력,빈궁한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간절함이 이스라엘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내 신앙과 문학과 삶의 원천이 그곳에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지요” 종교적 구원의 문제를 즐겨 다뤄온소설가 이승우씨(40)가 이스라엘 순례 체험을 담은 산문집 ‘내 영혼의 지도’(살림)를 펴냈다. 한때 신학도로서 목사의 꿈을 키웠던 이씨에게 이스라엘의 의미는 각별하다.“형이상학에 빠졌던 청년시절 이스라엘은 내 정신의 중심,세계의 배꼽,우주목이 서 있는 영혼의 델포이였습니다.말하자면 성육신 이전의 로고스였던셈이지요.이번 순례를 통해 그런 추상과 로고스가 아닌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구체적 대상으로 이스라엘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신앙과 삶,문학의 수원(水源)을 이뤄 왔다.그런 만큼 그가 영혼 속에 박힌 지도를 따라 상징의 땅을 밟는 행위는 그 자체가 정신적인 성지순례다. ‘성경의 땅 이스라엘,마음으로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산문집은 모두13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가나안을 출발해 예루살렘과 유대광야,요단강과 나사렛,갈릴리와 사해를 지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마지막 길을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성경을 나침반 삼아 이스라엘 곳곳을 순례했다.육신의 눈으로 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며 유대정신의 근간을 떠올렸고,예수가 체포된 겟세마네에서는 2,000년의 나이를 먹은 감람나무를 지켜보며 예수의 탄식을 생각했다.요단강에 이르러서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오도송같은 시도 한 수 읊었다. “내 영혼에도 물이 스며들면 다시 신성한 풀이 돋고 감격의 꽃이 피어나리” 한편 작가는 로마시대 유대인들이 집단자살한 마사다 성에서 출애굽과 바빌론,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며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유대인들은 ‘기억하는민족’이고 그들의 힘은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우리의 아픈 현대사에 대한반성적 고백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작가의 순례는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에 이르러 끝난다.그는 골고다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의 마지막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마음이무거웠다.성서의 현장에서 예수 이름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종교상인들과 예수의 빈 껍질만을 숭배하는 눈먼 신앙의 실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떠도는 현실을 정박할 매혹적인 환상’이었던 이스라엘을 ‘살과 뼈를 가진 육체’로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그는 그 과정에서 영혼의 멀미같은 현기증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 [외언내언] 文藝峰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 묵객 등 예술가나 성공한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그들이 걸어온 인생의 뒤안길은 영욕과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슬픔이있는가 하면 성취의 기쁨이 만발하고 절망이 있는가 하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오기가 도사린다. 그중에서도 문화예술계의 경우는 예민한 감수성으로인해 시대적 아픔과 사상적 배경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예가 흔하다. 엊그제 타계한 북한배우 文藝峰의 경우는 북한 배우 이전에 1930년대와 40년대 우리 영화 초창기를 풍미한 최고의 배우였다. 지난 32년 이규환감독에게 발탁되어 ‘임자없는 나룻배’에서 나운규와 공연했고 고전적인 용모와청초미로 인해 당장 3,000만의 연인으로 부상됐는가 하면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의 타이틀롤로 인기절정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몇푼의 돈을 위해 화면에 눈물과 웃음을 팔며’ 식민지 배우로서의 설움과 고통이해방 후에도 가시지 않아 민족문화예술이 난만(爛漫)하는 이북이야말로 희망의 등대라는 판단아래 월북을 단행했다고 한 수기에서 밝히고 있다.월북의감격에 대해서도 ‘엄혹한 겨울이 물러가고 따뜻한 계절이 시작되던 그 3월의 봄은 예술가로서의 저의 인생에서 과거와 영원히 결별하고 새출발한 인생전환의 뜻깊은 봄이었다’고 했다. 월북 다음해인 49년부터 십수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지난 65년,영화전문지 조선영화 4월호에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를 ‘청사에 길이 빛날 천재’로 찬양한 것이 빌미가 되어 협동농장으로 추방되는 등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80년대 이후 복권되었고 86년에는 북한 예술영화촬영소가제작한 ‘봄날의 눈속에’가 성과작으로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의 영화의 삶은 월북 15년만에 막을 내린 셈이다. 배우는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 등 자신이 맡은 역할 외엔 언제나 예술에 뜻을 두고 예술밖에 모르는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다. 그래서 괴테는 ‘예술가는 그 이름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가 엄혹한 북한체제에서 나운규를예찬한 것은 바로 예술가의 순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50여년전 봄에 과거와 결별하고 월북으로 인생을 전환한 것처럼 금강산 관광등 남북교류의 변화가 빈번해진 봄날에 그가 파란많은 생애를 마감했다니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과는 상관없이 그의 공적이 북한에서 ‘인민배우’로 호칭된 것처럼 우리 영화사에서도 무성영화시절과 최초의 발성영화 출연배우로서의 활약상 등으로 그 이름이 기억될 것이다. 이세기/논설위원
  • 김영욱 합류 보자르트리오 내한연주회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보자르 트리오’에 합류한 이후 두번째로 내한공연을 갖는다.‘보자르 트리오’는 그동안 세차례 내한했다. 지난 1월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잠겼던 김씨는 오는 31일∼4월 2일 오후 7시 30분 아트선재센터에서 ‘보자르 트리오’ 멤버로 베토벤의 트리오 11곡 전곡을 들려준다. 보자르는 불어로 ‘아름다운 예술’이란 뜻.보자르 트리오는 그동안 연주자들이 여러차례 바뀌었으나 세계 정상급 실내악단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현재 구성원은 메나헴 프레슬러(75·피아노),김영욱(52·바이올린),안토니오메네시스(42·첼로).김영욱은 13세 때 미국 커티스 음악학교에 입학,이반 갈라미안에게 사사받은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안토니오 메네시스도 뮌헨 국제콩쿠르와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세계적인 연주자이다. ‘보자르 트리오’는 1954년 미국 버크셔 음악축제(현재 탱글우드 음악제)에 참가했던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에 의해 창단됐다.창립멤버는 프레슬러와 미 NBC교향악단 악장이었던 다니엘 기레(바이올린),줄리어드 음대 교수였던 버나드 그린하우스(첼로) 등.이후 보자르 트리오는 바이올린의 이지도르 코헨과 이다 카바피안,첼로의 피터 윌리 등을 멤버로 맞으면서 모두 30여장의 음반(필립스)을 내놓았다. 보자르 트리오가 창단후 40여년동안 가졌던 수많은 공연중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냉전시대에 소련 모스크바에서 가진 ‘12월 밤의 축제’이다.당시연주회는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참가,첫 내한연주회를 가졌다.그 때멤버는 코헨 윌리 프레슬러 등이었다.또 95년에는 카바피안 윌리 프레슬러를 멤버로 연주했으며 지난해에는 김영욱 메네시스 프레슬러가 내한공연했다. 김씨는 프레슬러로부터 여러차례 입단 제의를 받았으며 브라질 태생의 메네시스를 합류시키고 활동기간을 1년에 2∼3개월로 제한하는 조건을 붙여 지난해부터 참여했다. 아트선재센터는 25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보자르 트리오는 그동안 큰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소규모 공간에서는 이번이 처음.실내악 연주를 밀도있게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김씨는 어머니의 사십구일재를 맞아 국내에 있으며 다른 연주자들은 28일내한,호흡을 맞춘다.(02)733-8945
  • 4월 2∼4일 ‘괴테 탄생’ 250돌 기념영화제

    독일의 대문호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오는 4월 2∼4일 ‘괴테 심야 영화제’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린다. 그의 문학적 향기를 담은 영화 8편을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는 독일문화원이 오는 26일부터 4월11일까지 마련하는 괴테 탄생 기념행사의 하나. 영화제 외에 연극,시낭송회,도서 및 우편 전시회,가곡제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다. 영화제 첫날인 2일은 괴테의 동명 소설과 희곡을 바탕으로 한 ‘파우스트’(60년)와 ‘클라비고’(70년)가 밤 11시부터 잇따라 상영된다. 이어 3일 밤 11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눈물’(75년)이 상영된다.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용한 이 영화는 주인공 에드가 위버가 유치원교사 찰리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소설 속의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줄거리이다. 마지막날인 4일 오후 6시에는 괴테의 소설 ‘친화력’을 주제로 삼은 ‘타로’(86년)가 선보인다.이 영화는 4명의 젊은 남녀가 우연히 서로 짝을 맺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인간관계의 의외성을 보여준다.또 자신의 어머니가 괴테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104세 노부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괴테를 직접 본 여인의 딸’ 등도 상영된다.입장료 2,000원.(02)580-1300,1700
  • [朴康文 코너] ‘미스 리’의 슬픔

    “어이 미스 리,커피 한잔 줘.”‘미스 리’는 고개를 들어 동료 남자 사원을 쏘아보았다.남자 사원이 퉁명스럽게 다죄었다.“커피 좀 갖다 달라니까그래.” ‘미스 리’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거기는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입만 있어요?” 사무실 안의 공기는 썰렁해졌다.웬 여자가 저리 거세냐는 듯놀란 눈길의 얼굴들…. 대학원 공부까지 해서 석사가 되어 선망하던 큰 기업체에 남자와 동등하게시험을 치고 들어가,남자와 똑같은 일을 하는 이 여사원의 하루하루는 기분잡치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아무개라는 성명 석자는 제쳐놓고,상사나 한두 해 먼저 들어온 선배 사원,심지어 함께 입사한 동기 남자들까지 ‘미스 리’하고 부를 때마다 속이 끓었다.저들은 자리에 한가롭게 앉아 있으면서 여자 동료 사원의 커피 ‘서비스’를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꼬웠다.분위기를 위해 좀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 “미스 리,오늘은 섹시한데” 어쩌구 하는 따위의농지거리를 걸어 오는 것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몇 달 동안 견디다 대학 강사자리가 나오자 미련없이 회사를 떠났다.막상대학 시간 강사를 해 보니,강사료는 교통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대학사회라고 성차별이 덜하지 않았다.같은 무렵 시작한 남자 강사들은 몇 해지나자 하나 둘 전임 자리를 얻는데,10년이 가깝도록 여자에게는 오라는 데가 없었다. 대학 강사로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노라니,‘때려 치운’ 옛 직장이 더러 생각나기도 했다.월급 괜찮은 그 곳에서 고분고분 차 심부름이나 잘 하면서 초년을 국으로 죽어지낼 걸 그랬지 후회까지 하는 자신이 처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또 하나.올해 취업 전선에 나선 ‘미스 리’ 후배도 가장 괜찮다는대학을 괜찮은 성적으로 나왔다.두어 가지 외국어 실력을 자신이 있을 만큼닦았으며,생활과 밀접한 몇 가지 법률을 공부하고 컴퓨터도 익혔다. 국내에서 괜찮은 곳으로 알려진 회사에서 급여가 괜찮은 신입 여자 사무원을 공채한다고 해서 응시했다.영어 필기 시험과 회화 시험이 있었다.국제시대니까 국제적인 업무도 있을 것이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겠구나 하고기대감을 품었다. 기대는 면접 때 벌써 깨지고 말았다.면접위원으로 사무원 고참인 듯한 여성이 나왔는데,영어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영어로 볼 업무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면접위원이 이력서를 훑어보고 나서 하는 질문은 더욱 가슴시린 것이었다.“아침에 출근해서 차 몇 잔씩 ‘서브’해야 하는데 그런 일할 수 있어요?” 또 물었다.“은행 심부름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여성 스스로 여성의 설자리를 한정하고 다른 여성한테도 그리 하도록 다짐을 놓는다.급사가 필요하면 급사를 따로 채용해 쓰도록 해서 제 본분을 찾으려고 여성들이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구직 초년생이 말할 수는없었다. 세상 형편이 선배가 첫 취업하던 때하고 또 달라서 남자와 동등하게 겨룰만한 곳에서는 여자를 거의 뽑지 않았다.몇몇 군데 알아본 자리들이란 것이그렇고 그랬다.급여 수준이 신통치 않거나 구실이 고작 ‘고학력 급사’에가까웠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 보지만 선배의 곤고한 삶이 눈앞에 어른거린다.요즘같은 취업난 시대에 너무고르지 말고 안정된 일자리라면 자존심 눅이고 잡으라는 주위의 충고를 귓곁으로 흘릴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안다. 또 한 사람의‘미스 리’가 될 사회 새내기는 제 앞길에 놓인 장벽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 사라진 ‘ML전설’ 조 디마지오 타계 전세계 애도

    ┑할리우드(미 플로리다주)외신종합연합┑ ‘메이저리그의 영웅’ 전설속으로-.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스타 조 디마지오(84)가 8일 미국 플로리다 할리우드 자택에서 숨져 전세계 팬들을 비탄에 빠뜨렸다. ‘섹스심벌’마릴린 먼로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렸던 디마지오는 지난해 10월 폐암수술후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달자택으로 옮겨진 뒤 이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쾌유를 빌 만큼 전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그는 고향인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영면하게 된다. 30∼50년대초까지 양키스의 중견수로 활약한 디마지오는 개인통산 타율 3할2푼5리,홈런 361개를 기록했고 41년에는 56게임 연속 안타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웠다.아메리칸리그에서 3차례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명예의전당에도 올랐다. 특히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의 결혼.그는 은퇴3년뒤인 54년,1년여의 열애끝에 먼로를 아내로 맞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그러나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9개월만에 끝났다. 한편 디마지오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몰려있는플로리다 등 미국 전역은 슬픔에 잠겼다. 버드 셀리그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디마지오는 그라운드에서 우아함과품위,그리고 권위를 보여준 주인공”이라면서“그에 대한 추억은 그라운드가 아닌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있으며 미국의 희망이자 이상”이라고 말했다.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도 디마지오를 ‘사상 최고로 위대한 인물’이라고 추모하고 “그의 삶은 바로 품격과 권위였다”고 회상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스포츠에는 스타와 전설이 있는데 디마지오는 전설이었다’며 이탈리아계인 디마지오의 죽음을 애도했다. - 디마지오는 누구인가 “신에게 야구선수의 전형이 될만한 인물을 창조해 달라고 부탁하면 신은조 디마지오같은 사람을 만들어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톰 라소다 부사장은 이같이 말했다.디마지오는 그만큼 미국 프로야구에서 불멸의 전설이자 프로야구의 위엄과 품위를 갖춰놓은 인물로 숭앙받고있다. 1914년 이탈리아 이민 출신 어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디마지오는 자식들도 고기를 잡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희망과는 달리 일찍부터 야구에 매달려프로야구선수로 대성했다.대공황으로 어려움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은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희망을 찾았고 그의 성공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꼽혔다. 그는 1936년부터 51년까지,2차대전 참전으로 빠진 3년을 제외한 13시즌 동안 뉴욕 양키스의 중견수로 뛰면서 양키스를 10차례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켜9번의 우승을 일궈냈다.통산 6,821차례 타석에 서 2,214개의 안타를 쳐 타율 .325를 기록했으며 361개의 홈런에 1,537점의 타점을 쌓았다.이같은 기록으로 디마지오는 11차례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3번에 걸쳐 아메리칸리그의 최우수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디마지오는 야구에서의 재능 외에도 인간적인 면에서 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타이 콥이나 베이브 루스 등 디마지오 이전의 스타들이 화려함으로 팬들에게 다가섰다면 그는 조용하고 소탈한 이웃의 모습으로 팬들과 가까와졌다.은퇴후에는 헐리우드에 ‘조 디마지오 어린이병원’을 설립해 사회사업에 힘썼다. 헤밍웨이가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디마지오를 언급한 것이나 듀엣 사이먼 & 가풍컬이 영화 졸업의 삽입곡인 ‘미세스 로빈슨’에서 디마지오를 노래한 것도 인간 디마지오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디마지오는 한편 1954년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이들의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고 9개월만에 깨졌지만 디마지오는 먼로 사후 그녀의 묘소에 계속 장미꽃을 보내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 저자와의 대화-‘한국의 전통춤’ 펴낸 정병호교수

    “춤은 사람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예술입니다”.춤의 예찬론을 펴는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72)는 어린이와 같은 천진한 행복에 빠진다.춤은 그에게 생명의 빛이다.춤과 함께 자란 그에게 춤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춤의 환희는 그를 춤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게 해왔다. 전남 나주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 농악대의 뒤를따라다니며 춤의 세계에 빠졌다.중앙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지만 춤꾼의 길은 접었다.춤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택했다.그는 전통춤 이론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0년대부터 30여년동안 사라져가는 민속과 전통춤을 발굴하기 위해전국을 누볐다.궁중춤 외에는 문헌상의 기록이 거의 없어 구전으로 내려오는 춤의 내용과 형식 등을 현장을 찾아가 채록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실체를 파악했다.그 현장기록을 바탕으로 전통춤의 이론적 체계를 정리,‘한국의 전통춤’이라는 책으로 펴냈다.(집문당 4만원).이 책은 서울시스템에서 CD롬으로도 제작됐다. 그는 전통춤을 종교의식춤·민속춤·교방춤·궁중춤 등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세분화된 전통춤의 종류는 376가지로 분류한다.“전통춤을 376가지로세분화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정 교수는 말한다.그는 다양한 춤의 세계를 많은 화보와 함께 소개한다. “한국춤에는 인간적인 한과 슬픔을 풀어 환희로 전환시키는 삶의 정신이있다.일본춤에는 죽음의 미와 같은 비극미가 있지만 한국춤에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환희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그는 책에서쓰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민속춤은 그러나 마을에서 사라졌다.마을에서 민속춤이 사라지며 신바람나는 기층문화도 없어졌다.“민속춤은 민중이 스스로 흥에 겨워추는 춤이어야 합니다.그러나 기능보유자나 예술가들에 의한 보여주는 ‘공연예술’로 변질됐죠.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민속춤의 보존 정책에도 변화의 때가 왔다고 말한다.“단순히 보존에머물러서는 안됩니다.마을 사람들에게 전승시켜 마을의 축제로 만드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그는 ‘마을춤 진흥회’를 만들어 우선 농악을 중심으로 민속춤을 마을로 되돌리려는 꿈을 현실화 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전통 예술춤의 현실도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무용가는 자기춤을 춰야 합니다.그러나 대부분의 무용가는 배운대로 반복할 뿐이죠.원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춤을 창작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우리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춤이있어야 합니다”.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춤에 대한 애정과 집념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그는 신바람나는 공동체 문화가 춤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신명이나야 우리 민족은 흥한다”며 춤의 사회학적 중요성도 강조한다. 李昌淳 cslee@
  • 여성국극 르네상스 꿈꾼다

    “아니 여보시오 도련님 지금 뭐라고 말하셨소.이별이 웬 말이오 답답하니일러주오”(월매) “꽃이 필때 만났으니 꽃이 지니 이별이오”(춘향) “너잘있거라 나는 간다”(이도령) 요즘 서울 남산예술원에는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이 구성지게 울려퍼진다.여성국극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국악인들의 목소리다.원로 중견 신인 가릴것 없이 주말 무대에 올려질 국극 연습에 한창이다. 올해는 여성국악동호회가 ‘햇님 달님’으로 남성창극판에서 떨어져 나와홀로 선지 50년째.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이사장 박영애)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6일부터 오는 11월까지 9개월동안 매주 토요일 ‘사랑의 연가’(춘향전)를 국립중앙극장 소극장무대에 올린다. 박이사장은 “춘향전은 한국적 러브스토리로서 최초로 여성이 남장을 하고출연한 작품”이라면서 “이번 공연은 ‘한국의 꽃’인 여성국극을 ‘세계의 꽃’으로 승화시키려는 디딤돌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성국극계는 공연의 완벽성을 갖추기 위해 연습에 혼신의 힘을쏟고 있다.점차 사그러지는 여성국극의회생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원로배우 김진진씨는 “지난 63년 이전까지 인기를 누렸으나 이후 TV와 영화에 밀려 세인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지는 상황”이라며“이번에 다시 국극의 인기를 되살리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여성국극은지난 87년 ‘무영탑’ 공연 이후 매년 한두편씩을 공연하면서 근근이 맥을유지하는 형편이다. 어린 춘향과 이도령의 소리가 성에 차지않는듯 원로 조금앵씨가 “소리를오므리지 말고 벌어지게 터뜨려야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옆엔 부친을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합류한 김성애(춘향)가 2부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하나로 합치자”는 박이사장의 제의에 진경여성국극예술단과 서라벌예술단 등 흩어져 있던 단체들이 흔쾌히 동의했다.‘어제의 용사’들은 먼저 대잇기 작업에 나섰다. ‘원로들의 잔치’라는 이미지로는 대중화가 어렵다고 판단,신인배우 오디션을 실시했다.“애들이 올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판소리와 전통무용을 겸비한 ‘실력있는 젊은 끼’들이 70여명이나 몰렸다. 원로배우들은 3월 공연에 무료출연키로 했고 신인 배우의 연기지도도 떠맡았다.조영숙씨(방자)는 의상비를 아끼기 위해 배우의상 70여벌을 손수 바느질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정현씨는 “만남과 이별을 다룰 1부는 신인의 신선함을 살리고 2부에서는 원로들의 노련함을 섞어 아름답고 섬세한 무대를 만들겠다”고말한다. 젊은 춘향과 이도령으로 조영경과 한혜선이 나온뒤 2부에서 김성애와 이옥천이 바톤을 이어 받는다.방자로는 김지희와 조영숙씨가 나온다.월매는 1,2부 모두 김진진씨가 고정출연한다.이번 공연에서는 국극의 선구자 고 임춘앵씨 회고 사진진도 열린다.(02)790-5564
  • 독립의 봄 찾아 수십년간 피의 투쟁/지구촌 민족·종족 분쟁

    *쿠르드 4,000년간 나라없는 유랑민족 터키정부의 쿠르드인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체포로 쿠르드인 문제가 국제사회의 초점이 되고 있다.4,000여년동안 나라없는 슬픔을 겪고 있는 쿠르드인은 지구촌 최대의 유랑민족.‘중동의 집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2,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터키(1,200만명)를 비롯,이란(400만명)·이라크(400만명)·시리아(100만명)·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해발 3,000m의 고원·산악지역에 위치한 쿠르드인 집단거주지 ‘쿠르디스탄’의 대부분이 터키 영토에 속하는 탓에 이들의 독립 요구는 터키 정부의 최대 현안이었다.수천년동안 오스만 터키제국 등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온 쿠르드인은 1차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제국이 맺은세브르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을 국가로 승인한다고 규정한 탓이다. 그러나 23년 터키가 다시 군사강국으로 부상,이 조약은휴지조각이 돼 악연이 시작됐다.터키는 쿠르드인을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며 쿠르드어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요 도시에서 쿠르드인의 고유의상을 입는 것까지도금지하는 등 철저히 탄압,쿠르드인의 증오심을 키웠다.이 때문에 74년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당(PKK)이 결성돼 반(反)터키 독립투쟁을 벌였다.PKK는 84년 이후 본격 무장투쟁을 전개,이 과정에서 3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3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쿠르드인의 끈질긴 추구에도 불구하고 독립국가 건설 전망은 밝지 않다.쿠르드인 내부적으로 분열된 데다 열강들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쿠르드인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독립국가 건설에 미온적이다. *코소보 '분리독립'요구에 학살로 대응 새해 들자마자 신유고 연방의 세르비아 공화국은 남쪽 코소보주에서 분리독립을 외쳐온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십명의 무고한 양민이 처참히 살해된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가까스로 체결됐던 세르비아 정부측과 알바니아계 주민 간의 휴전협정을 일거에 무효화하면서 코소보 ‘피의 역사’가 진행중임을 여실히 입증했다.발칸반도의 새화약고 코소보 민족분쟁은 13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막강 대국의 오스만 터키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의 근원지인 코소보를 점령,이곳에 이슬람교도인 자국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정착시켜 인구의 90%를 차지하게 했다. 그러나 20세기초 터키 제국의 지배가 끝난 뒤 코소보는 다시 기독교 신앙의세르비아에 편입됐고 이때부터 끊임없이 인종·종교 갈등을 겪게 됐다. 특히 지난 89년 ‘대(大)세르비아’를 주창한 밀로셰비치(현 신유고 대통령)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 사용까지 금하자 이곳 주민의 분리독립운동도 거세지기 시작했다.96년 알바니아계 무장단체 코소보해방군(KLA)의 등장은 이후 세르비아 정부군과의 유혈충돌을불러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의 ‘무력 중재’로까지 이어진 코소보 사태는 지난 한해에만 2,000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을 희생시켰는가하면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등 참혹의 도를 더해갔다.방관적이던 국제사회도 프랑스 랑부예로 양측을 불러들여 평화회담을 벌이도록 종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 티모르,印尼서 내년 1월 독립허용 시사 23년간 인도네시아의 압제에 신음했던 동티모르에 최근 봄 소식이 잇달았다.그러나 독립의 진짜 봄이 올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92년 수감했던 동티모르 독립운동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를 석방했다.이어 11일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00년1월에는 더 이상 동티모르 문제로 시달리기 싫다”면서 동티모르 독립허용을 시사했다.석방된 구스마오는 가택연금 상태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 독립문제를 협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동티모르가 독립을 달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인도네시아 내에는 야당지도자 메가와티를 비롯한 강한 정치세력이 동티모르 독립을 반대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정세에 따라 현재의 분위기가 급변할 수있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있는 동티모르는 400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받아오다 1975년 독립했으나 1년도 안돼 인도네시아의 27번째주로 강제 합병됐다. 이때 동티모르인 70만명 중 20만명이 학살당했다.인도네시아 정부의 심한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가운데 91년 180명이 희생된 ‘산타크루즈 대학살’과같은 독립투쟁이 이어졌다. 지난 96년 인도네시아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한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호세 라모스 호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동티모르에 주목하게 됐으며,지난해 수하르토정권 축출 후 독립운동이 한층 거세졌다. *세계 주요 민족 분쟁 지역 [티벳]90년대부터 중국 자치구에서 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 표출.클린턴 미 대통령98년 중국방문 중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할 것을 장쩌민 주석에게호소. [카슈미르]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후 귀속을 둘러싸고 2번 전쟁.89년후 분쟁격화 1만2천명 사망. [스리랑카 내전]인도 남부에서 이주한 힌두교의 타밀족 83년부터 분리독립 무장투쟁.5만명사망. [보스니아]4년간 20만명 사망한 내전이 95년말 협정체결로 종식됐으나 세르비아계 강경파 지도층 득세중. [바스크]이민족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온 과격파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가 지난해 말 30년만에 무기한 정전 선언. [체첸]러시아 정부와 분리독립 전쟁으로 3만명 사망.96년말 2001년까지 정전 합의. [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안에 섬처럼 있는 아르메니아족 거주지역.88년부터 아르메니아 공화국 귀속 투쟁. [키프로스]그리스계 80%,터키계 20%.83년 북부에 터키 승인한 독립국 생긴 후 그리스,터키 긴장고조. [르완다]94년 후투족 50만명 투치족 학살.200만명 난민. [브룬디]93년 이후 다수파 후투족과 소수파 투치족 항쟁 격화.97년 투치족 군사쿠데타 집권.
  • 비전 ‘99 이런사람이 대접받는 사회-白貞姬씨

    [서울 관악보건소 방문간호사 白貞姬씨] ‘달동네 백의의 천사’ 서울 관악구 보건소 방문간호사 白貞姬씨(39·여).흰 가운을 입은 白씨의모습이 보이면 봉천동과 신림동의 산동네에는 웃음이 넘친다. 白씨는 봉천2·3·5·9동과 신림7동 일대 생활이 어려운 522가구의 환자들을 돌본다.요즘에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늘어 白씨의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쑤신다. “주민들을 가족같이 생각합니다.내 어머니,내 동생같이 생각해야 비로소간호의 효과도 나타나지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의논 상대가 돼주는 일도 白씨의 주요한 일과다.그래서 白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독거(獨居) 노인들도 많다. “주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방문간호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보건소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가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최근에는 교통사고로 방광과 요도를 다치고도 수술비 1,500여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애태우던 柳모군(17·관악구 신림4동)을 돕는일에 앞장서고 있다. 白씨는 기독교단체 등에 도움을 호소,수술비를 모았다.柳군은 한달 전 경기도 분당의 한 병원에서 1차 수술을 받고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곧 모금한 돈으로 2차 수술도 받게 된다. 지난해 8월 사고로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병원비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던 鄭모씨(51·관악구 신림7동)도 白씨의 도움을 받았다. 白씨가 다니는 동네에는 고혈압,당뇨병,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이 유난히 많다.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白씨의 조그만 소망이다. 무거운 왕진가방 때문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듯하다.도움을 받고 고마워하는 산동네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全永祐 ywchun@
  • 외언내언-코리안 마마

    한 한국여인의 인종을 초월한 인간애가 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미국 LA에 살던 한국교포 홍정복 여인의 얘기가 그것이다.대개 존경받는 삶이 그렇듯이 그의 얘기도 사후에 널리 평가받고 있다.그는 52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그렇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다.그는 사랑이라는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한 사람이다. 그의 휴먼스토리는 마치 전설처럼 느껴진다.자신의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흑인소년에게 ‘넘어질라’ 하고 걱정했다는 홍여인이다.불량배처럼 보이는 청소년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보통사람들이 그러기 쉽지만 그는 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일이 없다.돈이 없어 아이에게 먹일 우유와 기저귀를 못 사 망설이는 흑인여인에게 물건을 슬쩍 얹어주기도 했다.그러면서 ‘돈은 나중에 갚으라’고 말한단다.그런 홍여인을 흑인사회에서는 ‘코리안 마마’라고 불렀다.다정한 이웃이면서 때로는 아주머니,엄마,누나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왜 안 그랬겠는가.한국교포와 흑인간의 갈등은유명한 얘기다.지난 92년 흑인폭동때 대부분의 피해가 한인들에게 집중됐었다.그럼에도 홍여인의 가게만은 흑인들이 번갈아가며 지켜주었을정도였다고 한다.인간애에 갈등과 불화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을 리 없다. 홍여인의 얘기가 이를 실증해주는 것만 같다. 이런 홍여인이 비명에 갔다는 소식은 우리를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게 한다. 그는 피부와 인종에 편견이 없었다.그런 사람이 소수 인종 히스패닉 노상강도 2인조의 총격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범죄란 맹목성을 갖는다.성경구절대로 범인들은 필시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를 것이다.그들은 실로천사를 쏘았다.그의 죽음에 흑인들은 깊은 분노와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흑인들 뿐이겠는가.그의 얘기를 알게된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심사를 가누기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홍여인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가 남기고 간 삶의 스토리는 자랑스럽다.우리 핏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홍여인의 삶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만한 휴머니즘을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민족임을 새삼 입증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우리네 생활이 각박하다.홍여인이 이국에서 보여준 사랑의 실천을 우리가 국내에서 승화시킬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은 같은 핏줄끼리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8회)-趙泰一시인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국토서시’중) 죽형(竹兄) 趙泰一시인(59·광주대학교 예술대학장).그가 70년대 초부터 5년에 걸쳐 쓴 48편의 연작시집 ‘국토’(창작과비평사)에는 조국의 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황톳빛 서정이 넘실거리고 잊혀져간 민중의 목소리가일렁인다.건강한 민중적 삶의 의지를 이처럼 곡진하게 그린 시가 또 있을까. 그러나 ‘국토’의 운명은 가혹했다.유신시절 ‘국토’는 출간되자마자 긴급조치 9호로 판매금지됐다.“그 당시 긴급조치는 긴급조치 위반사례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기막힌 제도였습니다.‘국토’는 75년 ‘신동엽 전집’,박형규 목사의 수상집 ‘해방의 여울목에서’와 함께 판매금지됐지요.이나라 강토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쓴 것인데 그것을 범죄시하고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 있었으니….그 뒤로 7년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시를 쓰면서 趙시인은 한번도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다.시대의어둠을 가르는 전령으로서 시인의 임무에 충실했다.74년 11월 그는 뜻있는문인들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간사직을 맡아 유신독재에 맞섰다.77년에는 양성우 시집 ‘겨울공화국’ 발간사건에 연루돼 시인 고은씨와 함께 투옥되기도 했다.그의 문학적 시련은 80년대라고 비켜가지 않았다.80년 그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임시총회와 관련,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이란터무니없는 죄목으로 구속돼 5개월의 형을 살았다.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바뀌면서 그는 초대 상임이사를 맡았다.70년대와 80년대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의 삶을,아니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도무지 분간할 수 없던 시대”였다. 시인은 흔히 예언자로 불린다.신(神)의 입을 대신하는 사람이 시인이다.76년에 발표된 趙씨의 시 ‘겨울소식’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날카로운 시안(詩眼)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다.“…찬바람 속에서 광주는/큰 애를 뱄다더라//찬눈에 덮여서도 무등산은/그렇게도 우람한 만삭이더라//광주를 온몸에 적셔서/서울의 내곁에 사알짝 놓아두고/터벅 터벅/서울을/떠나버리는 친구!” 그의 시는 광주와 우람한 무등산이 합궁해 낳은 옥동자가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임을 웅변해준다.‘겨울소식’은 일종의 예언시 또는 참시(讖詩)로 읽힌다.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그것은 곧 주어진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趙시인은 자신의 시작업을 이렇게 규정한다.“나의 시는 내가 태어난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에서 발원해 전국토를 온몸으로 내달려 민족과 역사 앞에 올바르게 서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에게 고향은 시적 영감의 원천이며,시를 쓰는 것은 시대의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趙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태안사는 곧 아폴로의 헬리콘산과 같은 존재임을알게 된다.“나의 눈물 속에는/동리산 태안사 밑에 붙어 있던/초가집들이 어른거립니다//…초가집도 죽창도 옛 친구들의 허벅다리도/아아,누나의 옷고름도/소리내어 울고 있습니다”(‘나의 눈물 속에는’중) 시인은 태안사의 승려였던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고 편히 불러보지 못했다.그는 ‘신기(神氣)서린’ 아버지를 열 두살에 여의었다.그 어두웠던 유년의 체험,고향의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의 환청을 시인은 끝내 뿌리치지 못한다.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종종 좌절과 체념의 정서가 깔린다.‘눈물’이라는 말이 중심시어로 등장한다.문학평론가 김화영교수(고려대 불문과)는 “조태일은아이러니컬하게도 ‘눈물의 시인’이다.눈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것은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영혼의 힘이다”라고 했다.적절한 지적이다. 趙시인의 일관된 문학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월간 ‘시인’지 활동이다.그는 69년 지금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에 있던 남일인쇄소란 곳에보수도 없이 들어갔다.그곳에서 그는 시전문지 ‘시인’을 창간했다.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 70년대를 빛낸 시인들이 이 ‘시인’지를 통해 등단했다.“당시 ‘시인’지를 주관하며 김지하씨의 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특권층의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비판한 담시 ‘오적’ 때문에 김씨가 도망다닐 무렵이었죠.당국의 탄압으로 할 수 없이 책을 회수,문제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배포했습니다.‘시인’지는 1년 남짓 발간되다 결국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때 많은 문인들이 고료 한 푼 받지않고 글을 써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고 회고한다.문학평론가 염무웅씨 같은 이는 ‘시인’지에 ‘서정주와 송욱의 경우’란 평론 한 편 쓴 것이 화근이 돼 S대 전임기용 기회까지 박탈당하기도 했다고 귀띔한다. 趙시인은 최근 외도 아닌 외도를 했다.처음으로 ‘무등(無等) 둥둥’이란창작오페라 대본을 쓴 것.오는 7월쯤엔 여덟번째 시집 ‘도토리들’(가제)도 펴낼 예정이다.“결코 짧지 않은세월 시를 생각하며 시를 보듬고 살아왔지만 시는 점점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시에 관한한 문리가 트였을법한 그이지만 요즘은 시 쓰는 일이 너무 힘들단다.그의 말마따나 시인은 밤에도눈을 감지 못하는 존재인가보다.金鍾冕 jmkim@
  • 조 치 훈-고바야시‘인고의 대결’3라운드

    인고(忍苦)의 대결 3라운드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평생의 라이벌인 조치훈(趙治勳) 9단(43)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小林光一·47)이 일본 기전 서열 1위인 기성전 도전기에서 맞닥뜨렸다.기타니(木谷)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두사람은 지난 30여년간 타이틀을 주고 받은 숙적이지만 이번 대결은 여느 대국과는 다르다.개인적 아픔을 안고 대국이 진행되고있기 때문이다.두사람간 첫번째 인고의 대결은 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조9단이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기전 랭킹 1,2,3위인 기성,명인, 본인방을싹쓸이하는 ‘대삼관’(大參冠)의 위업을 이룩하자 고바야시 9단이 85년 명인전을 탈취하며 반격에 나섰다.이어 이듬해인 86년에는 기성전을 놓고 한판대결을 벌인다.당시 교통사고를 당한 조 9단은 휠체어에 앉아 수성에 나섰으나 2-4로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이른바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휠체어대국’으로 인고의 대결 서막이 오른 것이다. 두번째는 97년 벌어진 23기 명인전.기성,명인,본인방을 휩쓸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 9단은 고바야시 9단을 명인전 도전자로 맞아 들인다.당시무관(無冠)의 세월을 보내다 국제기전인 후지쓰배를 차지,재기의 조짐을 보인 고바야시는 아내를 잃은 아픔을 딛고 도전장을 내밀었다.그러나 결과는 4-2로 조 9단의 승리. 세번째는 망부(忘父)의 슬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23기 기성전.조 9단은지난 13,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결승 1국에서 아버지 조남석(趙南錫)씨가 사망한 비보를 접하지 못하고 대국에 나서 고바야시 9단에게 승리를 거뒀다.조 9단은 대국이 끝난뒤 곧바로 귀국했으나 이미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승부의 분수령인 3국을 앞두고 있는 조 9단은 지난달 26,27일 이틀간 열린 2국에서도 승리,2승으로 타이틀 방어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전문가들은 조 9단이 힘과 기세에서 앞서 타이틀을 방어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3국에서 고바야시 9단이 승리하면 두사람간의 특유의 라이벌 심리로 인해 어려운 승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任泰淳기자 stsli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