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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送 장기수’ 남한에서의 마지막 여행

    “예정된 이별이 아쉽고 슬프지만 하나된 조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9월2일 북송될 장기수들이 19∼20일 이틀동안 남한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했다.이들을 후원해온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양심수후원회가 마련한 이번 나들이에는 북송 장기수 22명,남한에 남을장기수 9명과 민가협 회원 등 100여명이 동행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20일 충주시 안송면 ‘좋은 사람들의 모꼬지 분교터’에 모인 북송 장기수들의 얼굴에는 꿈에 그리던 고향에 간다는설렘과 남쪽의 지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이 교차했다. 5년 동안 장기수를 보살펴온 김은하(金恩河·29·여·교사)씨는 노인들을 끌어 안으며 “아버지,정말 다시 볼 수 있을까요.건강하세요”라며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19일 오후 9시 분교 대강당에서 열린 환송식 송사에서 민가협 임가란 상임의장(71·여)은 “비전향 장기수는 아픈 우리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면서 “북에 가서도 못다한 통일운동을 계속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답사를 한 비전향 장기수 우용각(禹用珏·72)씨는 “6·15선언은 면면히 이어져 오던 통일운동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온 것”이라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계속 전진하자”고 힘차게 외쳤다. 민가협 회원들은 북에 가서도 통일을 위해 일해 달라는 뜻으로 자신들의 목요집회때 항상 쓰던 보라색 수건을 장기수들의 목에 걸어주었다.이날 밤 11시쯤 열린 캠프파이어에서 참가자들은 각자의 소원을종이에 적어 불에 태웠다.‘조국통일’이라고 쓴 종이에 불이 붙자‘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북에 있는 가족들이 과연 잘 살고 있을까.나를 기억이나 할까…”두런두란 나누는이야기 소리는 밤이 깊도록 끊이지 않았다. 30년을 복역하고 출소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장기수 7명과 함께 ‘우리탕제원’을 운영하는 조창손(曺昌孫·70)씨는 “북에서 떠날때 젖먹이였던 딸과 아들이 지금은 마흔 셋,마흔 둘이 됐을 것”이라면서 “아비 노릇 못한게 한스럽지만 손자와 손녀를 꼭 안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權五憲·63) 상임의장은 “할아버지들이 떠나면 쓸쓸하겠지만 30∼40년 가까이 온갖 유혹에도 자신의 소신을 지킨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충주 이창구 조태성기자 cho1904@
  • 남북이산상봉/ 외국언론들 연일 ‘特報’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등 세계 언론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감동적인 모습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연일 속보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언제라도 접근 가능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쉴새없이 업데이트 시킨 ‘따끈 따끈한’기사들로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한반도의 가슴벅찬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15일 상봉에 앞서 실시간 리얼타임으로 인터넷 생중계한다는 안내코너까지 개설하는 등의 관심을 보여온 영국의 BBC는 사진 갤러리 코너까지 개설했다.17일엔 ‘이산상봉의 기쁨과 슬픔’이란 기사에서 상봉의 기쁨뒤에 숨겨진 애틋한 사연과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분단현실을 지적했다. 미국의 CNN은 ‘한국특파원이 보여주는 감동의 장면’을 동영상으로제공하고 있다. 또 17일엔 속보기사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od is thicker than water)는 한국적 표현을 소제목으로 뽑아 한반도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 방송은 특히 수백명 상봉 가족들의 가슴에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못했던 ‘죄의식’으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아사히와 요미우리 등 일본 신문들도 상봉 사흘째 모습을 전했다.특히 일본 신문들은 북한의 류미영 단장이 자녀들을 상봉한 사실에 특히 주목,눈길을 끌었다.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눈물의 상봉으로 한국에서 외국 투자가들의 모험은 감소되기 시작했다.더 많은가족 재회는 외국 투자가들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마지막날 아쉬움속 또 이별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나…”“통일돼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오빠” “오마니,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우요…” 17일 낮 서울과 평양의 이산가족 방문단 오찬장은 사흘 전 첫 상봉때와 같은 오열과 탄식의 바다를 이뤘다.사흘간의 상봉중 마지막인이날 오찬은 50년 전 한맺힌 이산에 이은 또 한번의 눈물어린 생이별의 장이 됐다.너무나 짧은 만남과 감격어린 상봉의 기쁨도 잠시,어머니와 아들,남편과 아내,오빠와 누이는 기약없는 재회를 약속하고 하루 뒤면 남과 북으로 흩어질 혈육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끝내 놓지못했다. 서울에서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여동생 춘희씨(60·경기군포)를 끌어안고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북한의 수학자 조주경씨(68·김일성대 교수)도 숙소에서 어머니 신재순씨(88)를 만나 생이별의슬픔을 나누며 재회를 약속했다. 평양에서는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와 남에서 결혼한이선행(李善行·81·서울 망우동)·이송자(李松子·82) 부부가 이씨의 북쪽 부인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방북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와방북단 의료진인 고 장기려 박사의 차남 가용(家鏞·65·서울의대교수)씨도 북측이 별도로 마련한 장소에서 가족을 비공개리에 만났다. 앞서 류미영(柳美英·78) 북측 단장은 16일 오후 23년만에 서울의 둘째아들 인국씨(53)와 막내딸 순애씨(48),손자 등 가족을 만났다. 남과 북의 방문단 200명은 이날 모든 공식일정을 끝내고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고향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북측 방문단은 전날과 같이 두 팀으로 나뉘어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가족들과 개별상봉했으며 창덕궁(비원)을 둘러봤다.남측 방문단도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한 뒤 북한 가극 춘향전을 관람했다. 남북 방문단은 가족 공동오찬에 이어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평양 옥류관에서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최 환송연회를 끝으로 3박4일의 방문중 공식일정을 모두마쳤다. 18일 오전우리측 대한항공기가 북측 방문단을 태우고 김포공항을출발,남북직항로를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이들을 내려놓은 뒤 남측방문단을 태워 서울로 귀환한다. 한편 15년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남북 각 100명의 인원과짧은 시간으로 제한된 데 대해 남북 당국이 하루빨리 면회소 설치,상봉 정례화 등을 통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98년 남북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전 차관은 “상설 면회소를 만들어 이산가족들에게 많은 상봉기회를줘야 한다”면서 “중간단계인 면회소 상봉을 거쳐 중국·대만,동서독처럼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병문·조문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영(全寅永) 서울대교수도 “이산가족문제는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강력한 이슈임을 이번에 생생히 확인했다”면서 “북한의 경우 절대적 지도자가 마음먹으면 면회소 설치 등은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새달 北송환 앞두고 급부상

    북한이 비전향장기수들의 9월 송환 때 남한의 가족을 데려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그러나 실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정부에서 신중하지만,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활발한 의견조율이 진행될것으로 전망된다. ●북측 입장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광복절인 15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인터뷰에서 “일부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능하면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갈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오든,혼자서 오든 다 뜨겁게 맞이할 것”이라고말했다고 평양방송이 전했다.북한이 비전향장기수의 가족까지 수용할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변인은 이어 “인생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려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소망이자 온 겨레의 환영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서 “과거가 어떻든 관계없이 공화국으로 올 것을 희망하는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받을 것이며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대변인의 말을 인용,“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부모 처자를 가진 인간의 초보적인예의 도덕으로 너무도 응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 입장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아직은 부정쪽에 가깝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 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9월초 북송을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키겠다”면서도 “그밖의 문제(비전향 장기수 가족 북송 등)는 다시 협상을 할 문제”라고 원론적인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전향 장기수 가족의 북송문제를 이산가족문제의 범주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송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더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산가족문제 해법이궁극적으로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재결합하는 방향이어서 시기가 문제이지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간에 이산가족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경우 우선적으로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전향장기수 북송추진위원회(공동대표 권오헌)에 따르면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6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가족과 함께 북송을 원하는 사람은 신인영씨(72)와이경구씨(71) 등 모두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9월초 北송환 金東起씨. “북에 가면 이산가족들의 한을 알리고 이를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보탬이 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9월초 북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金東起·68)씨는 요즘TV를 통해 방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애써 외면하고있다. 20여일 후면 자신도 똑같이 겪어야 할 일이기에 가슴이 저며오고 그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핏얼핏 비춰지는 상봉장면을 보면 깊은 회한에 휩싸인다고 한다.“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그는 “혈육을 갈라놓은 채 50여년동안남남으로살게 한 정치인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남 그 자체에는 ‘통일’‘민족화합’등의 어휘가 구차하게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요즘 며칠후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간다는 희망과 함께 그동안 정들었던 남쪽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느라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옥중생활 등을 담은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내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이산가족들이 북한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며 편지와 전화안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하는 광주시 북구 두암동 ‘통일의 집’에는 최근 하루 3∼4통의 편지가답지하고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린다. 여류시인 서영숙씨(58)는 자신의 시집을 6·25때 월북한 아버지에게 전달해 달라며 보내왔고,인천에 사는 권영숙씨(78·여)의 딸은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북에 있는 오빠를 너무나 보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보내오기도 했다. 김씨는 “제2의 고향인 광주에서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가슴아픈데 이들의 한맺힌 사연을 접할 때마다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일일이 챙기고 전화로 전해오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낱낱이 메모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이를 꼭 전하겠다고다짐했다. 김씨는 66년 대남공작 요원으로 남파돼 검거된 뒤 33년동안 옥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2월 석방됐으며,현재 다른 비전향 장기수 3명과함께 통일의 집에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108살 동갑의 부모와 부인(64),돌을 갓 지난 뒤 헤어졌던 아들(36),누나 3명 등이 있으며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한민족 하나로 남북 이산상봉/ 각계 표정

    “정말 기쁩니다.다음번엔 나도 고향땅을 밟았으면…” 상봉단에 포함되지 못한 대부분의 실향민들은 15일 TV를 통해 50년 만의 상봉을부러움 속에 지켜봤지만 남북관계 개선으로 우리들도 헤어진 가족을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금례씨(75·여)는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북으로 떠나는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를 보면서 “혹시 동향 사람이 있으면 북에 있는 금봉 언니(84)와 여동생 복삼(63)의 소식을 알아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이곳에 왔다”며울먹였다. ■함북 청진 출신의 황영숙씨(67·여·경기도 남양주시)는 “마치 내가 상봉의 당사자인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흥분된다”면서 “남북간왕래가 계속돼 나이 많은 실향민들이 다 고향 땅을 볼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한숨지었다. ■황해도 수안이 고향인 박영규씨(70·경기도 의정부시)는 TV로 이산가족 방북단의 출국 장면을 보며 “지금이라도 저 행렬에 끼여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다”면서 “9월과 10월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해진다니 나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 조창선씨(72·서울 관악구 봉천7동)는 “남북이 모여서 논의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이번 일은 전 세계에 우리저력을 과시한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씨(71)도 “내가 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라며 흐뭇해했다. ■납북자들의 생환을 촉구하는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우영) 회원 7명은 이날 정오 서울 워커힐호텔 앞에서 ‘납북자 송환’이라고 적힌어깨띠를 두르고 “남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왜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나요”라며 정부측에 납북자의 생사 확인과 함께 조속한 생환을 호소했다. ■가족들이 모두 TV 앞에 모여 앉아 함께 눈물을 지었다는 허유영씨(27·여·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는 “이번에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은 TV를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라면서 “중국 대만과 같이 우리도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박경식씨(53)는 “북한 방문단이 오는 장면을 보고 싶어 로비까지 내려와 TV를 시청했다”면서 “아픈환자지만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오늘의 눈] 이념 녹여버린 혈육의 情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15일 이산가족 상봉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홀은 삽시간에 ‘눈물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남측 혈육들이 흘린 눈물은 홀을 가득 채우고 한반도 산하로 흘러넘쳤다.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실향민들,이제나 저네나 북녘 땅만 바라보는 1,000만 이산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더한 까닭이다. 50여년 동안 차곡차곡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이들의 한(恨)은 이날차라리 통곡이 되어 전국에 메아리쳤고 분단 현실의 아픔을 어떤 필설보다 생생히 전달했다.이념과 냉전의 국제질서에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새삼 확인했던 역사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이산가족 상봉이 며칠동안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 신파극’에 그쳐서는 안된다.역대 남북 정권들이 그랬듯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50여년간 분단의 고통이 농축된,민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적 결정체란 의미다. 눈물을 눈물로 그치지 않고 대승적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반세기 전,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분노와 증오가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상봉의 눈물과 그 감격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추진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여 전 혹독한 냉전기에도 서슬퍼런 이념의 굴레를 녹이며 독일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엔진이 된 것이 바로 동서독의 이산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이날 TV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을 온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남북 화해와 통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15년 전역사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의 체제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됐던 사실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던 남북 정상들이 이산가족은 물론 분단으로 고통받는 7,000만 겨레의 눈물마저 닦아줄 날을 기대해본다.[오 일 만 정치팀 기자 oilman@]
  • [기고] 한 시인의 부활

    해방 이후 반세기의 분단역사도 이제 어떤 전환점에 다가선 느낌이다.대통령이 평양으로 날아가서 북의 수뇌와 손을 맞잡는,그 꿈 같은장면을 화면에서 봤을 때 환호의 갈채를 보내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남북화해라는 말이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다가와 있다. 이런 시점에서 월북시인 조운의 시집 복간과 시비 제막사업이 마침 시인의 탄생 100주년과 맞물려 그의 향리인 전남 영광사람들에 의해 마련된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화해의 훌륭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화해는 단순히 정치적 수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이번 행사의 핵심이면서 문화적,혹은 정서적인 화해의 참뜻을 멋지게 보여줄계기가 될 뻔했던 시비 제막은 그러나 실현되지 못했다.그것이 얼굴없는 지역주민 몇 사람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든,극소수 관리의 경직된사고에서 초래된 일이든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가슴에는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이 행사는 단순히 분단의 멍에에짓눌려 이름조차 잊혀질 뻔한 한 불행한 시인을 되살리는 의미뿐아니라 우리 모두가 50년의 갈등을 뛰어넘어 진정한 화해를 받아들일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시험하는 기회였던 것이다. 근래 북으로 간 예술인의 작품이 전면 해금되고 그동안 묻혀 있던작품들이 활발하게 선보이는 것은 우리 현대문화사에서 비어 있던 해방 전후 공간을 메워주고 문화자산을 한층 풍성하게 해줬다는 점에서매우 반가운 일이다.이것은 우리 의식이 분단멍에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반증도 된다.비록 ‘월북자’라는 지탄을 받긴 했으나 그들은엄연히 그 시기 우리 문화의 주역이였다.대표적인 사례로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나 가곡 ‘산유화’로 알려진 김순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해금 이후 민요가락을 선구적으로 가곡에 도입한 김순남의많은 노래가 오늘 우리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시조시인 조운의 경우도 분야는 다르지만 작곡가 김순남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석류’‘구룡폭포’ 등 그의 작품들은시조작품으로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법상 파격도 서슴지 않아시조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두 사람 모두 독자적 작품세계와 진취적 기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그리고 거창한 외래사상에 집착했다기보다 소박한 민족주의자였다. 그 증거는두 사람의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조운의 시나 김순남의 노래는 모두 예술적으로 뛰어나며 순수한 인간의 정한(情恨)을 노래할 뿐,정치나 유별난 사상의 흔적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애틋한 연인의 감정이나 자녀와 가족사랑을 소재로 자주 다룬 것도공통점이었다.그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해금되었다. 조운은 탁월한 시조시인일 뿐 아니라 지역교육의 개척자였고 항일투사로 투옥된 바도 있다.다만 그의 ‘북행’ 때문에 이름이 표면에 등장하지 못했을 뿐,그의 향리에서는 지금도 시인의 흠결 없는 이력과높은 인품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이번 행사도 한두 사람의 유력인사에 의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각 분야의 지역사람들이 힘을 모아 마련된 것이었다.노 화가는 시화전의 그림을 그려냈고 서예가는 글씨를 써냈으며 적은 금액을 자진해 보내오거나 발품으로 힘을 보탠 이들도 있다. 시비가 세워질 장소는 영광교육청으로 서울로 치면 시청앞 광장에해당되는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그곳은 한 지역의 정서적 상징이 되는 시인의 시비가 서있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다.그런데 그 장소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이것은 이 지역사람들의 일부가 고향의 시인을 아직 가슴으로 맞이할 준비가 채 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필자는 ‘얼굴 없는 사람’들의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다행히 시비는 기념사업회측과 영광군수를 비롯한 지역기관장이 협의끝에 이달말 영광읍 한전 문화회관 동산에 다시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모처럼 맞은 남북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때문인 것 같다.시인의 고향사람들은 이제 오랜 상처의 아픔을 뛰어넘어 진정한 화해의 새 시대를 향해 나갈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해보인 것이다. 송영 소설가
  •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상봉 준비에 들뜬 하루

    오는 15일 꿈에 그리던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 방문단에 선정된 100명의이산가족들은 가슴졸이며 기다렸던 ‘낭보’에 밤잠을 설쳤다.일요일인 6일에는 북한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며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들이 갖고갈 선물은 손목시계,속옷,한복,족보,과자,카메라,현금 등 다양했다.하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100명 모두 똑같았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직후 서울에 들어온 박영일씨(76·서울 양천구 목동)는 6일 북한에 있는 누나 혜준씨(78)와 동생 임준씨(64)에게 줄 첫번째 선물로 족보를 챙겼다. 박씨는 “재산을 모두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대한적십자사로부터 1,000달러 이내에서 선물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비싼 선물보다는북한에 있는 후손들에게 조상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족보를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동생 경희(60),여동생 경수씨(66)를 만날 임경옥씨(69·경남 김해시 외동)는 “50년전 헤어진 동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면서“경희에게는 카메라를,경수에게는 한복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덕씨(72·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평양에 사는 큰언니 순덕씨(75)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 6명의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강씨는 “남쪽에있는 손자들처럼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손자들도 초코파이를 좋아할 것 같다”면서 “초코파이와 생전의 부모님 사진,달러, 의약품 등을 갖고 갈 계획”이라며 기뻐했다. 허리 통증으로 10일 전 입원한 김금지씨(70·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병원에서 방북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오빠를 만날 기회를 겨우 잡았는데 몸이 아파불안하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를 꼭 만나겠다”고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김씨는 오빠 어후씨(74)에게 줄 선물로 자녀의 결혼식과 자신의 환갑때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손목시계,손자들이 부른 노래 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간병중인 며느리에게 일렀다. 장정희씨(70·여·서울 양천구 신월7동)는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다.코트와 쌍가락지,영양제 등을 준비한 장씨는 “고향에 가기 전까지동생들에게 줄 모시적삼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부인 이옥녀씨(72)와 딸 현실씨(51)를 만날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가난 때문에 남들처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공공근로와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김씨는 “아내와 딸에게 근사한 옷을 선물하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답답하다”면서 “남은 기간 곰곰이 생각해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방북단 탈락 26명…”다음엔” 희망 안버려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이 확정된 지난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의 생사가 확인된 126명 가운데 최종명단에 끼지 못한 실향민들은 또다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보따리를 도로 풀었다. 우원형(64·禹遠亨·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뜬눈으로 지샌 뒤 6일 새벽경기도 파주시 수양사를 찾았다. 이번에도 북한에 살아 있는 여동생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달래기 위해서다.아들 병희(丙熙·32)씨는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126명의명단에 든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면서 “여동생에게 줄 한복과 의약품도 준비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신천 출신 강재필씨(74·여·전남 광주시 북구 인동)는 “북한에 사는조카들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생전 사진이라도 건네받으려 했다”면서 “100명이라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좋은 일아니냐”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분들 모두 한을 풀고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이번에 못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장홍진(張洪珍·5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북한에 계신 누님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달러,약,옷가지 등 누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라고 섭섭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나보다 20∼30살이나 많은 분들이 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위안했다”면서 “다음에 방북단을 선정할때 탈락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얘기도 들리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이산가족 생사확인 특징

    27일 8·15방북 이산가족 후보자의 북쪽 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밝혀지면서,북측의 서울방문 후보자 명단이 공개된 지난 16일에 이어 다시 한번 기쁨과회한의 눈물이 뿌려졌다.가슴뭉클한 8·15상봉 날짜는 어느덧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생존자보다 사망자 많아= 남북당국이 각각 지난 열흘에 걸쳐 200명 교환방문 후보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결과,상봉 가능인원이 최종 방문인원 100명을 상회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특히 북측의 경우 우리와 달리 비공개로 가족찾기 작업을 벌였음에도 138명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것은 생사확인 작업이 성의있게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생사가 확인된 가족들 가운데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것으로 집계된 것은 이산가족들에게 적잖은 슬픔을 안겨준다.북 후보자 200명이 상봉을 원한 남쪽 가족 1,341명 가운데 확인불능자를 제외한 생존자는 613명인반면,사망자는 617명이었다.남측은 확인불능자 111명,추가확인자 326명까지포함,총 1,667명의 확인내용을 북측에 보냈다. 남 후보자 200명이 상봉신청한 북 가족은1,201명이었다.북한이 현재까지생존·사망을 확인해 회보한 인원은 849명.생존자 276명,사망자 392명,확인불능자 168명,추가확인자 13명 등으로 집계됐다. 생사확인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상봉신청한 명단 외에 새로운 가족을 추가로 발견한 것은 의미있는 수확이다.남측 거주 가족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난 북측 상봉희망자는 2명에 불과했으나,북측 거주 가족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남측 상봉희망자는 12명에 이르러 아쉬움을 자아냈다. ◆이산가족,서울·황해도에 주로 거주= 북의 상봉후보자 200명중 78명의 남쪽 가족이 서울에 사는 점이 특이하다.25명의 가족은 경기도에 거주,수도권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7명의 가족은 해외에 살고 있다. 반면 방북 후보자 200명 가운데 35명의 가족이 황해도,32명은 평안남도에살고 있다. 방북 후보자중 북쪽 부모의 생존을 확인한 사람은 21명이나 됐으나,북 후보자의 남쪽 부모가 살아 있는 경우는 1명 뿐이었다. ◆향후 일정 빠듯= 남북은 당초 26일 상봉 후보자 생사확인을 끝내기로 했었으나,북측의 확인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음에 따라 우리측은 다음달 1일까지추가확인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이에따라 상봉일이 보름여밖에 남지 않은상황에서 향후 일정이 매우 빡빡하게 됐다. 접수가 마감되면 우리측은 늦어도 8월4일 이전에 이산가족 인선위원회를 열어 최종 방북단 100명을 선정한 뒤 다음달 8일 북측과 명단을 교환할 예정이다. 북한도 우리측으로부터 넘겨받은 198명의 생사확인 결과를 토대로 서울 방문단 최종 100명을 선정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 초등교 통일교육 어떻게 달라지나

    개편된 초등학교 교과서와 부교재에 나타난 통일교육은 남과 북의 화해·협력·통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2학기에 사용될 2학년 ‘바른생활’의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와 3학년 2학기 실험용 ‘도덕’의 부교재 ‘생활의 길잡이’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고 치켜올린 사진을 실었다. 특히 2학년 바른생활의 ‘우리는 한 겨레’단원의 서두에서는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지만,우리는 한 겨레입니다.우리는 통일을 바라고있습니다’라고 기술,지향점을 명백히 했다. 이어 남북한의 생활 비교,북한 친구에게 편지쓰기,통일 주사위 놀이·노래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꾸몄다.평양교예단 공연·남북 통일 농구대회·금강산 장전항,북으로 가는 소떼·이산가족 상봉,북한 교과서 등의 사진도 게재했다. 내년에 배포될 3학년2학기 생활의 길잡이 ‘우리의 소원’ 단원에서는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역사적인 ( )을 가져 긴장완화와 평화공존,현실적인통일방안,이산가족의 상봉,화해와 협력,자주적인 통일 노력 등을 제시하였다’라는 문제를 예시하기도 했다.물론 괄호안의 답은 ‘남북정상회담’이다.2학년 교재 보다 사진과 삽화를 줄이는 대신 분단의 아픔 등을 이산가족의 편지 소개와 사례를 통해 소개했다.금강산,북한 가족의 명절과 공연등의 사진을 보며 ‘통일을 이뤄야 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자’는 단락도 있다. ‘보기와 같이 이산가정으로 4행시를 지어 봅시다’에서는 ‘이:이산 가족의 슬픔을 아십메까.산:산천도 이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립메다.가:가족과 헤어진 지 벌써 60년이 넘었습메다.정:정말 이제는 통일이 되어서 헤어진 가족과 함께 살고 싶습메다’라고 적고 있다. 2·3학년 생활의 길잡이에는 안전띠-걸상끈,소프라노-녀성고음,골키퍼-문지기,도넛-가락지빵,도시락-곽밥,라면-꼬부랑국수,소풍-들모임,아이스크림-얼음보숭이 등 달라진 남북한 언어를 소개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이산가족‘ 박사논문 준비 재미교포2세 김영란씨

    “마지막 분단국이란 오명을 깨려는 한민족의 의지를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실감합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들로 붐비는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구관 2층 민원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서투른 한국말로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수첩에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미교포 2세김영란(Nan Kim·31)씨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이산가족의 개념과 월북가족의 생애사’를 쓰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았다. 김씨에게 남북정상회담과 후속 조치로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은 더없이좋은 기회가 됐다.김씨는 생생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듣고 자료를 수집하기위해 북한이 방문단 명단을 보낸 16일 적십자사로 달려왔고 이산가족들과 더가까워지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김씨는 지난 87년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해 프리랜서 기자 활동과 94년 뉴저지에 있는 ‘더 레코드(The Record)’지 기자 활동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를집중취재했다. “매년 광복절을 취재하면서 분단의 고통을 만났습니다.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고통을 전해주고도 싶었습니다” 김씨는 93년 북한의 핵문제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때 분단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복잡한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남한과 북한을 각기옹호하는 ‘분단된 교포사회’도 김씨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는 한많은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김씨는 95년버클리 대학원에 진학했고 문화인류학을 선택했다.분단의 고통과 이산가족의아픔,그중에서도 특히 월북가족들의 고통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산가족의 개념이나 월북자 가족과 월남자 가족들이 남북한 이념대립에서겪는 고통에 대한 연구가 현재까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는 김씨는 “연좌제라는 기형적인 제도와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이들의 심리적 고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월남자를 배신자라고 여겨왔던 북한의 태도 역시 이산가족 문제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왔다고 김씨는 분석한다. “오는 12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민족의 한이 배어 있는 체계적인 논문을준비하겠다”고 말한 뒤 민원실 창구에서 서성이는 실향민 노인에게로 다가서는 김씨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이산가족 상봉 확인 사연들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아나운서 이지연(李知娟·52)씨도 이날 북한에 있던 오빠의 생존을 확인한 뒤 “이산가족찾기 방송 당시 남한에서도 헤어져 있는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 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도 못 꺼냈다” 며 “죽은 줄 알았던 오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똑같이 친형,친오빠를 북에 두고 있는 부부중 남편은 형으로부터 상봉희망 연락이 왔지만,아내는 오빠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해 희비가 엇갈렸다.8·15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 명단이 발표되면서한가족이면서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사람은 양문열(6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정인혜씨(60·여) 부부.남편 양씨는 17일 북측 명단에서 6.25때 헤어진 둘째형 원렬씨(70)를 확인,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아내 정씨는오빠 용준씨(71)로부터 아무런 기별을 받지 못해 침통해 했다. 김경운 전영우 전주 조승진기자
  • 3인조 혼성밴드 ‘롤러코스터’2집

    아찔하다. 지난해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물씬 풍기는,‘용감한’ 데뷔앨범을 발표해 평단과 록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던 3인조 혼성밴드 ‘롤러코스터’가 2집 녹음을 최근 마쳤다.알려진 대로 팀 이름은 “청룡열차를 타는 것처럼 출렁출렁 리듬감있고 펑키한 애시드를 하자는 뜻”(보컬리스트 조원선·24)으로 붙였다. 애시드(acid)란 펑키와 솔,디스코,힙합,라틴음악을 섞어 톡쏘는 맛이 깔깔한혼혈음악. 끈적끈적한 미국 본토의 재즈음악과 거리를 둔 일본식 재즈가 곧애시드 재즈인데 롤러코스터는 이 애시드에 팝적인 요소를 비볐다. 작사·작곡능력에 마스터링까지 맡을 정도로 뛰어난 감각파인 지누(본명 최진우·30)가 홈레코딩으로 다소 거친듯한 음질을 보여주는데 그게 이들의 매력. 타이틀곡이 유력해보이는 첫곡 ‘너에게 보내는 노래’에선 몽환적인 느낌을던져주는 지누의 베이스 핑거링이 현란하고 두번째 트랙 ‘가만히 두세요’는 정말 듣는 이를 가만두지 않는다.그렇다고 귀를 찢을 듯한 음향은 아니고그저 사람들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의 재기발랄한 기타와 통통 튀는 베이스라인을 배경으로 ‘자우림’의 김윤아를 연상케하는 조원선의 섹시한 보이스가 깔린다.쉽게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는 단순미가 돋보인다.현악을 도입,과감한 음올림을 시도한 ‘힘을 내요 미스터 김’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뛰어난 편곡솜씨를 선보인다. 빠른 음악에의 장점만 두드러진 건 아니다.느릿한 ‘러브 바이러스’에선 갑자기 아쟁 소리가 들려오는데,앙증맞고 ‘지독한 슬픔’마저 배어나온다. 두 곡의 연주곡 ‘크런치’‘드리지’ 역시 이미 독집앨범을 2장 내고 이승환 015B 윤상 윤종신 박정현 등의 음반에 세션으로 참여한 지누와 록 밴드‘베이비 블루’ 출신 기타리스트 이상순(26)의 거칠 것 없는 저력을 유감없이 까뒤집는다. 이들의 장점은 컨셉이 분명한 음악을 지향한다는 점.2집 역시 그런 노선을철저히 고수하려는 의지가 드러나는데 귀가 얇은 이들로선 조금 지리하다고느낄지도 모르겠다.‘어느 하루’나 ‘일상다반사’ 같은 곡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록에 치우친,우리 음악시장의한 공백을 메우고 싶다”는 결의는 이번 앨범에서도 훌륭히 녹여져 있다.밴드 이름처럼 정신이 어찔할 정도로 현란한 빛깔의 음악들로 말이다. 임병선기자 bsnim@
  • [대한포럼] 高齡化 사회의 지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소설 주인공들의 93%가 마흔살 미만의 인물들이라며따라서 40부터의 삶은 ‘여생(餘生)’이라고 한때 말했다.필자는 40세 문턱에 이런 수필을 읽고 일시 절망했지만 피 선생의 ‘말 바꿈’으로 위안을 받았다.“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사십까지도 아니다.애욕,번뇌와 실망에서해탈되는 것도 축복이고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인생을 관조하고 오래 살면서 신문에서 갖가지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것도 재미있다” 어느 선배는 은퇴후 ‘황금기’를 맞고 싶은 소망을 피력했다.수십년간 쳇바퀴 돌듯한 일터에서 떠나 여행도 다니고 자녀 교육과 생계를 위해 쪼들리던 데서 벗어나 여유있게 돈 쓰는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정년 퇴직후 죽음까지의 여생을 맞는 대부분의 노인의 삶은 그리 화려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은 것같다.70대초반의 장인어른은 “이렇게 살아서는안되는데…”라며 혀를 찼다.치매에 걸린 70대중반의 사돈과 80대의 둘째 형을 문병한 후였다.요양원에 입소한 사돈은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신이오락가락한다. 특히 80대형의 아내는 70대 꼬부랑 할머니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의 온갖 수발을 드느라 허리가 더 휘어질 지경이다. 한때 유행어였던 ‘다 쓰고 죽어라’는 극소수의 사치일 뿐이다.대부분 용돈도 궁한 노인들은 자식들의 짐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그렇지 않으면 병과 정신의 쇠락이 노후를 기다리고 있다.건강하면서도 돈과 시간이 부족했던젊은 시절이 가고 돈과 시간을 얻은 노인도 건강 피폐로 망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65세 인구가 지난 7월1일자로 7%를 넘어 이른바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로 접어들었다.오는 2022년에는 그 비율이 2배인 14%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고령인구가 빠르게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면 노동계층의 연금부담이 가중되는 등 경제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다.특히 사회 복지제도가 아주 허술한 우리나라에서 건강이 나쁘거나 경제력이 약한 노인들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질 지경이다.원론적인 대책은 다 안다.나라에서 노인복지 예산과 병든 노인이 갈만한 시설도 늘려야 한다.더욱이 평균 수명 남자 70세와 여자 78세인데도 60세 이전으로 되어있는 대부분 직장의 정년퇴직연령도 높여야 한다. 이런 당위론에도 불구 경제적 여유,일자리와 건강 등 노년의 행복에 필요한요건을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기업들도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영국 런던 등처럼 유적지에서 머리가 하얀 백발 노인들이 관광안내를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기 힘들다.오히려 구조조정으로 직장의은퇴연령이 더욱 낮아져 증권사를 거친 40대 중반의 컨설팅회사 상무가 “증권계에서는 적어도 50대 초반이면 노인”이라며 쓸쓸해 할 정도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인생의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는 개인들은 스스로 방어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김평일 장로가정리한 ‘노인 십계명’은 음미할 만하다.즉 ▲현재에 충실하자 ▲긍정적인사고를 갖자 ▲끊임없이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에 기여하자 ▲건전한 취미활동 ▲담배와 노름 등 잡기를 금하고 근검한 생활을 한다▲스스로 일해 의존적인 삶에서 탈피한다 등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자원봉사로 목수 일을 하고 어느 전직 그룹부회장처럼 호텔 서비스맨으로 과감히 변신하는 자세가 필요할 지 모른다.청장년들도 다가올 노년을 담담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4년전 시중에서 회자된 ‘나이든 사람 지혜롭게 살기’지침처럼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그러나 정말로는 돈을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라는 익살도 기억해야 한다.우선 절약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일이다. 李商一 논설위원 bruce@
  • [마음은 북녘 고향에](6)평남 성천 출신 이태흥 할아버지

    “별명은 ‘돌배’,야무졌던 북녘의 동생이 살아 있는지…” 이태흥(李泰興·70·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씨는 4일 “평남 성천군 대곡면 대곡리 추피마을에 두고 온 막내 동생 태용(泰龍·62)이는 어릴 적 별명을부르면 나를 곧바로 알아볼 것”이라며 신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보비(75)와 보옥씨(73),누이동생 보화(68)·보여씨(65)도 고향에 남았지만 나이가 많은 누님 둘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난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돌배’가 누이동생 둘은 잘 보살피고있을 것이라고 되뇌인다. 이씨는 1946년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일제 치하에서 대장장이 일로 어머니를 비롯,8남매를 부양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버지가 44년부터 강원도이천군 음탄면 건자리 두메산골에 숨어 지내다 광복 이듬해에 어머니와 함께 장티푸스로 숨진 것이다. 이씨는 부모님을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 전인 그해 2월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당장 생계가 걱정인데다 이불 보따리 등 이삿짐도 많아 ‘돌배’만은 두 매형에게 맡기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고향 길은 험난했다.원산에 이르자 눈이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쌓여 사경을 헤메다 간신히 트럭을 얻어탈 수 있었다.하지만 고향에 돌아온지 얼마 안돼 태용은 10세의 나이로 수백리 길을 찾아와 ‘과연 돌배’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 1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48년 11월 흩어졌다.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곧 전쟁이 터져 50여년 동안 생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1·4후퇴 때 동생과 누이들의 얼굴도 못본 채 혼자 남으로 내려와 1남 4녀를 둔 이씨는 “고향 앞을 흐르는 대동강의 물결치는 모습이 아련하다”면서 “죽기 전에 동생과 누이,친척 어르신들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한수기자 onekor@
  • [굄돌] 전쟁의 슬픔

    바오닌이라고,베트남의 작가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간 일이생각난다. 때마침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은 터였기에 관심이부쩍 생겨 그를 보려 가기도 했었다.그는 베트남전에 직접 오랫동안 참전하여 상대방 병사를 향해 총을 겨눈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아름다운 소설이었다.페이지마다 스민 ‘전쟁의 슬픔’은 어떤 그럴듯한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정의의 전쟁이란없는 것이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조차 산 것 같지 않은 자로 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바로 며칠 전,파주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로 인해 두 중령이 무릎과 발목 아래를 절단 당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참으로 마음이 아팠다.그러나,졸지에 일을 당한 이들의 참담한 마음을 내가 헤아릴 재주는 없을 것이다.그저께인가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가‘난리’를 벌인 일도 있었다.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고엽제 피해보상 소송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조금만 더고개를 뒤로 돌리면 매향리 미군 사격장을 둘러싼 문제…… 이것들이 내게는 모두 ‘전쟁의 슬픔’으로 보인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오르면,몇 년 전 잠수함이 고장 나 남쪽의 산야에 들어와이리저리 쫓기다 죽어간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특히,열 명이 넘는병사들이 벌거벗은 채 나란히 쓰러져 있던 모습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런가 하면,토벌작전에 나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남쪽의 병사들도 있지 않았던가.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는나의 세대도 실은 전쟁의 기운 속에서 ‘전쟁의 슬픔’을 목도하면서 살아온 셈이다.변화만큼이나 논란 많았던 6월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이제서야 한반도는 전쟁이 강제하는 죽음의 기운으로부터 겨우 한 발자국 멀어진 셈이라고. [방민호 문학평
  • 변방서 떠오르는 샛별로

    아름다운 ‘변방의 반란’-.유럽축구선수권대회 초반부터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4강까지 뛰어 오른 포르투갈이 28일 새벽 프랑스와의 연장혈투 끝에 무릎을 꿇어 아깝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석연찮은페널티 킥’으로 골든골을 낚은 98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보다 패자인 포르투칼에 더 큰 박수를 보냈다.그만큼 포르투갈의 선전은 뜻밖이었고 인상적 이었다. 물론 포르투갈의 ‘질주’는 우연은 아니다.10년전부터 쌓아 온 저력이 이번 대회서 폭발한 것이다.포르투갈은 지난 8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일궈내며 미래를 예약했다.당시의 주역 가운데 9명이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10대의 어린 나이로 그라운드를 호령한 그때의 선수들이 10년이지난 지금 20대 후반의 농익은 기량을 맘껏 과시하고 있는 것.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갈 축구는 ‘검은표범’ 에우제비오를 앞세워 66년 월드컵 4강에 오르는 등 60년대를 풍미했다.그러나 이후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경제력을 앞세워 거대한 프로시장을 형성하면서 변방으로 밀려났다.이 때문에 최근 14년간 월드컵 본선에 단 한차례도얼굴을 내밀지 못했다.이번 대회 개막 이전까지만해도 최약체로 평가 받았다. 프랑스와의 격전이 끝난 뒤 포르투갈은 “우리의 패배 뒤에는 축구 강대국이 주축이 된 UEFA의 음모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 주변국인 포르투갈이 결승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UEFA는 오늘 경기 결과에 무척 행복해할 것이다”라며 변방의 설움을 터뜨렸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는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한때 수많은 포르투갈 노동자들이 유럽 각국에서 ‘3D’ 업종에 종사하며 타향살이를 경험했다.이 때문에포르투갈의 정서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포르투갈이라는 국명도 ‘고요한 항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변방의 반란’은 끝났지만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를 통해 유럽축구의 중심국으로 우뚝 섰고 전세계 축팬들에게 2002년 월드컵의 당당한 우승후보임을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박준석기자 pjs@
  • [데스크 시각] 참 이상한 참회

    성경말씀에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복음 6장3절)는 구절이 있다.좋은 일을 할 때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해야 아름답고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뜻이리라. 중국의 양(梁)무제는 온 나라에 불교를 크게 펼치고 절과 탑을 많이 짓고수행승들에게 많은 공양을 해 ‘불심천자(佛心天子)’로 불린 황제다.무제는인도에서 ‘달마’라는 고승이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공덕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다.무제는 그가 쌓은 공덕이얼마나 큰지 물었다.그러나 달마의 말은 단 한마디로 ‘무(無)!’였다.무엇을 의식하고 자랑하기 위해 하는 일에 무슨 공덕이 있겠냐는 말이겠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는데는 자기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그래서 더 진한 감동을 주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일은 누가 알까 쉬쉬하고감추며 사실을 왜곡하려 한다.지난달 말경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386 세대국회의원 당선자들이 5·18전야 광주에서 벌인 ‘5·18 광주술판’도 그런예 가운데 하나이다. 국민들의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던 젊은 정치인들이라 당시 곤죽이 되도록 지탄을 받았고 그들은 국민들 앞에 참회하는 성명을 내고 다시는 그와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럭저럭 무마되고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동석했던 한 시인이 최근 좀 ‘이상한’ 참회시를 주변에돌렸다고 해서 화제이다.바로 우리들의 ‘노동해방시인’ 박노해씨다. 당시 언론은 박시인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름만 나갔을 뿐 그에 대해서는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386세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도덕성’만문제였을 뿐이다. 물론 문단 일각에서는 입방아가 없지 않았지만 그건 그의 유명세에 대한 일종의 시샘도 얼마간 작용했으리라.그런데 ‘유명한’ 그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안 가져줘 기분이 상했던 것일까.그동안 자신의 불찰에 대해 참회하는(?)뜻으로 10일동안 삭발단식을 했노라는 내용의 시를 써 300여장을 복사해 주변(기자들을 포함)에 돌렸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자들이 ‘관심’을 갖고 ‘박노해씨 광주술판 반성 단식-삭발 묵언 참회시 발표’,‘단식하며 5·18 참회시 쓴 박노해’등 제목으로 몇몇 신문에서 얼굴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왜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까.언젠가 TV에서봤던 드라마와 함께….오래전에 여의도 광장에서 한 젊은이가 벌인 ‘광란의질주’로 광장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이유도 없이 차에 치여 죽은 사건이 있었다.그 사건을 주제로 한 드라마였는데 사건후 교도소에 수감된 범인은 목사님의 인도로 기독교 신앙을 찾고 열심히 기도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죽은 아이의 어머니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자식을 잃은 슬픔과 범인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가누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범인은 신앙의 힘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아이의 어머니 또한 슬픔과 분노를 극복하고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는다. 그런데 아이의 어머니를 만난 범인은 너무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아이의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 하느님이자신을 용서해줬다며 떠든다.아이의어머니는 범인의 그런 태도에 너무 어처구니없어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대충 이런 줄거리이다. 참회,반성.얼마나 좋은 일인가.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바로잡는다는 것은아름다운 일이다.때문에 그것은 칭찬해야 할 일이고 또 본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일수록 감추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진정한 참회나 뉘우침은 드러내지 않고 남 모르게 조용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그래서 ‘근신(謹愼)’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너,정말 잘못한 줄 알면 잠자코 있어!” [박 찬 특집기획팀장]
  • 휴먼 다큐멘터리 새場 열었다

    병원에서 피어나는 슬픔과 고통,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는 KBS2의 휴먼다큐멘터리 ‘영상기록 병원24시’(수 밤9시50분)가 28일로 100회를 맞는다. 병원을 주 공간으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다.자극적이지도 않고 흥미,오락과도 관련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98년 6월 처음 방송된 뒤 외주 제작프로그램이 늘상 겪는 부침 한번 없이100회까지 방송됐다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PD와 환자,병원 3자간의 관계 속에서 제작이 이뤄진다.PD들은 16㎜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보통 2주 이상 병원의 협조 아래 환자들과 24시간 지낸다.제목처럼 ‘기록’하기 위해서다.제작진은 프로그램에서 해석을 아끼는 대신,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시청자들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길기대한다. 그동안 영화배우 손창호의 투병기,젊은 나이에 위암 판정을 받은 해태투수김상진의 병상일기,뇌질환을 앓는 아들을 둔 가수 우순실의 사연,방송 사상최초로 공개된 성전환 수술 장면 등 삶의 뒤안길을 돌아볼 수 있는 장면들을방송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제작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시청률이 크게 오르진 않았지만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고정 시청층이 생겼다.또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방송 뒤후원금을 내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한 편을 방송하고 나면 최고 3,000만원 이상의 성금이 모인다.이 성금으로 안면기형으로 고생하던 16살 소녀가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살게 됐을 때 제작진들은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한다. 제작사인 제이알엔의 직원들은 책상 앞에 환자들의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붙이고 있을 정도이다. 상복도 따랐다.지난해 2월 방송된 ‘어떤 형제’는 방송대상을 받았다.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다 사고를 당한 형과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된 동생의 이야기를 다뤘다.또 간질 때문에 정신연령이 5살 수준에 머문 형을 간병하며살아가는 17살 성락이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형은 다섯살’(2000년 3월 15일 방송)은 현재 미국 애미상 TV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올라가 있다. 반면 환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 때는 힘이 든다.더욱이 촬영중 또는 촬영이 끝난 뒤 환자가 숨을 거둘 때 제작진은 인간적인 괴로움을 느낀다고 밝힌다.마땅한 유족이 없을 경우 제작진이 상주가 돼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제작을 맡고 있는 조선종PD는 “환자들과 만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하다보니 이런저런 욕심들을 많이 버릴 수 있게 됐다”면서 “앞으로는 휴먼다큐멘터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의학 정보를 전달하는 기회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상기록…’에서는 100회 특집으로 28일과 다음달 5일 2회에 걸쳐불임을 다룬다.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일본 등의 불임 치료술의 발전 수준을 살펴보고 치료 가능성을 찾아볼 계획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 고은 시인『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려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구천을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 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난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근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백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물이되어 그 울안의 하루하루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 달리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은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 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 민족의 세상을 우러러보며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송이 꽃들고 돌아간다. 고은 시인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 이 시를 14일 밤 평양 목란관의 김대중대통령주최 만찬 석상에서 직접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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