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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장례식장은 소란스럽고 흥청거리게 마련이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나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도 죽은 자는 뒷전이다. 적당한 슬픔과 절제된 흥겨움이 앙상블을 이루는 우리네 장례식장. 인생 버스를 종점까지 내달린 망자(亡者)는 오히려 엑스트라에 불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망자는 몸을 정갈히 하고 의관을 갖추는 염습(殮襲)실에 이르러 비로소 주인공이 된다. 이곳에서 죽은 자를 주인공으로 마지막 리허설을 준비하는 사람이 ‘장례지도사’다. 기자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일일 인턴사원으로 장례지도사의 일상을 체험했다. 지난 29일 오전 9시, 장례식장에 출근하자마자 장아름(26)씨의 지시가 떨어진다. 그녀는 1999년 국내에서 처음 생긴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과 1기 졸업생.4년의 경력을 쌓은 이 장례식장의 유일한 여성 장례지도사이다. 미혼인 그녀는 한달 평균 30∼40명, 그동안 멀고 먼 저승길을 가는 1500여명의 시신을 단장했다. “안치실 청소부터 하세요. 입관은 9시부터 1시간 간격이에요.” “저 염습실은 언제 들어가나요?” “오전과 오후에 한번씩 들어가면 충분하겠죠?”“헉∼두 번씩이나….” 염습실은 안치실 옆에 있다. 시신을 22구까지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는 온도가 0∼1도로 자동 유지된다. 옆방에는 향나무며,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장씨를 따라 들어간 염습실은 7평 남짓한 크기다. 앞에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 유족들이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는 곳이다. 그녀와 냉장고에서 암으로 숨진 50대 남자의 시신을 조심스레 꺼낸 뒤 염습실로 옮겼다. 유족이 오기 전 준비를 마쳐야 한다. 관을 가져다놓고 수의는 버선, 아랫도리, 윗도리의 순서대로 놓아둔다. 상주가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다.“이제 시작합니다.” 장씨는 유족들에게 정중히 목례를 올린다. 기자도 따라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시신의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자에게 “머리를 꽉 잡으라.”고 지시한다. 장씨는 솜으로 손가락부터 팔, 다리 순으로 닦았다. 출혈도 있었지만 경건해 보일 만큼 정성껏 닦아나갔다. 수분을 잃은 피부는 건조했다. 그녀는 시신의 입꼬리를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미소를 만들고 있어요. 고인이 웃는 것처럼 보여야 유족들도 마음이 편하거든요.” 여성 특유의 손길을 거치면서 고통의 흔적이 지워지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만들어진다. 고인의 얼굴에 비로소 평안이 깃든다. 여기에 남성이라면 면도를 하고 얼굴에 밀크로션을 바른다. 여성은 화장을 한다. 아름씨의 화장법은 독특하다. 로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는 과정은 똑같지만 마음이 다르다.“거울 앞에서 제가 화장하듯 해요.” 유족들은 “평생 화장 한번 안 하신 어머니를 가시는 길이나마 예쁘게 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한다. 고인의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이 나타난다고 한다. 장씨는 삶에 찌든 얼굴을 볼 때마다 “욕심부리고 살지 말자.”고 다짐을 한단다.“등을 잡으세요.” 수의를 입힐 때는 고인의 몸이 뒤척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무거운 시신을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21차례의 매듭을 짓고 시신을 관에 담는다.40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장례지도사는 스스로를 ‘3D 전문직’이라고 부른다. 장례식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24시간 근무하며 시신을 직접 다루지만 보수는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시신을 다루는 일은 위험하다. 병원에서 온 시신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결핵이나 에이즈로 사망한 시신은 병원에서 미리 통보한다. 에이즈로 숨진 시신도 6개월에 한번 꼴로 들어온다. 지도사의 손에 상처라도 있으면 2차 감염이 되는 탓에 온몸을 중무장한다. 시신을 닦은 솜 등 감염성 폐기물은 모두 전문업체가 처리한다. 지난해 4월 장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병원에서 내려온 시신에 수시(收屍)작업을 했다. 수시는 막 운명한 시신의 몸이 굳기 전에 손발을 주물러 곧게 펴주는 일이다. 부검을 한다는 통보를 받고 시신을 옮기자 의사와 간호사는 온 몸을 중무장하고 들어섰다. 알고 보니 시신의 주인공이 급성호흡기증후근(사스) 의심환자였던 것. 누군가의 실수로 미리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사스는 아니었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시신의 부패. 약물 투여가 많은 시신은 냉장고 안에서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살갗이 쉽게 벗겨지는데다 고약한 냄새로 염을 할 때면 온 몸은 땀으로 젖는다. 장례지도사는 특별한 시신이 아니더라도 염습을 할 때 마스크를 하고 얇은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다. 기자 역시 고무장갑을 꼈고, 단단히 각오를 했음에도 염습이 끝난 뒤 소독약으로 6차례 이상 손을 씻는 등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의 종착역인 장례식장에도 각박한 세태는 그대로 투영된다. 장씨는 “돌아가신 분에게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한이 쌓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고 “새 모이 준다.”고 말하는 상주를 본 적도 있다는 것이다. 눈치보며 곡소리를 내는 며느리는 인지상정이라지만 노인을 씻기지 않아 온 몸에 덕지덕지 때가 묻은 시신도 많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녀도 다를 것이 없다. 장례식장을 찾은 유족들의 첫마디는 대부분이 “가장 싼 것을 달라.”이다. 수의나 관을 정하면서 물건조차 보지 않고 무조건 싼 것을 찾는다. 분수에 넘치는 허례허식은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조차 인색하고 각박한 자녀들을 보면 장씨가 더 서운하다. 최근에는 삶에 지친 시신도 많다. 산 자에게 세상 짐을 떠맡긴 시신은 표정도 평화롭지 않다. 조용균(54) 관리실장은 “1주일에 한건 정도 자살한 시신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쪼들리다 세상을 버린 사람들의 장례식은 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여성은 아직 생소한 존재이다. 장씨가 장례 상담에 나서면 상주들은 남자 직원을 찾기 일쑤다.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손길을 경험한 유족들은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자신의 ‘사후’를 일찌감치 부탁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죽음은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죽음이 보내는 소환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모두에게 평등하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장례지도사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날마다 죽음을 접하면서 삶의 소중함에도 눈을 뜬 것인가. 장례지도사는 죽음이 아닌 삶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 장례지도사란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는 장의사를 대체하는 용어이다. 장례 상담에서 시신안치, 염습, 발인까지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장례지도사는 정규 대학과정에서 양성된다.1999년 서울보건대학이 장례지도과를 설치한 이후 대전보건대학과 창원전문대학에 학과가 개설됐다. 졸업생의 90%는 전공을 살려 대학병원 장례식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도 해마다 10여명씩 배출돼 전국에서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커리큘럼은 기본적인 상·장례부터 보건법규, 방부처리, 사체화학, 훼손된 시신를 복구하는 회복기술학, 해부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2년 과정에서 올해부터 3년 과정으로 개편됐다.2003년 현재 전국 623개 장례식장에서는 해마다 24만여구의 시신이 처리된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장례지도사는 2400명 안팎이다. sunstory@seoul.co.kr
  • [길섶에서] 아들의 친구/이용원 논설위원

    며칠전 대학 동기가 모친상을 당했다.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라서 장례식장에 모인 우리 동기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밤이 깊어 문상객이 뜸해지자 상주를 붙잡아 놓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누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2시를 넘겼는데 남은 문상객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어느 상가를 가봐도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역시 상주의 친구들이다. 친구라고 해 봐야 평상시 얼굴 보기 힘든 세상이니, 만사 제쳐 두고 가게 되는 상가는 귀한 만남의 장소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주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장례 전후의 어려움을 상의해 주는 것도 결국은 친구의 몫일 터이다. 상가를 나와 귀가하는 길에 몇년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들 녀석은 친구가 많아 툭하면 집에 데려와서 밤을 보냈다. 아무리 어린 손님이라도 비좁은 아파트에 객식구가 끼면 여러모로 불편한 건 당연하다. 아내는 먹을 거며 잠자리며, 그 친구 집에 연락하는 일까지 일일이 챙기면서도 “친구를 너무 자주 데려온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한마디했다. “이봐요, 나나 당신이 죽으면 영안실에 와서 밤새 줄 사람이 바로 저 녀석들이야.”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고깃배 두어척이 심포항에 닻을 내린다. 어선이 겨우 닿는 자그마한 포구가 제법 커져서 민박집, 횟집이 즐비하지만 불황 탓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제땅에 들어서면 늘 찾게되는 곳, 바로 심포갯벌이다. 심포갯벌은 새만금 갯벌의 깊숙한 안쪽을 말한다. 사실 ‘억만금’을 발견이라도 하 듯 억지로 지어진 새만금이라는 명칭부터 작위적이고 거북스럽다. ●심포갯벌은 새만금갯벌의 깊숙한 안쪽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까지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흑갈색의 ‘바다 들판’이 펼쳐지고,‘징게멩게 외야미들’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넓이로 뭍을 덮는다.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니 예로부터 쌀농사와는 불가분인 곳이다. 지평선 없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의 수탈적 농업정책에 의해 동진 만경강이 간척되고,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일본인 농장주와 척식회사의 채찍에 내몰리면서 개간한 들판이다. 전국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개딱지 같은 집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울부짖던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지금의 새만금을 빠져나가 군산에 집결돼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황금들판의 끝에 황금갯벌이 이어지다가 이윽고 갈색의 바다로 수렴되는 심포갯벌의 망해사를 찾아든다. 바다를 굽어보는 뛰어난 절이라면 으레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 따위를 내세우리라. 바위 끝에서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낙산사의 씩씩하면서도 장엄한 우조, 미려청고(美麗淸高)하고 애원처절한 향일암의 계면조, 이 모두 빼어난 절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망해사의 해조음(海潮音)도 그에 못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망망대해로 펼쳐진 갯벌을 마주보고 있어 밀물 썰물에 따라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까닭이다. ●앞마당이 갯벌인 망해사 망해사에는 앞마당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기도 하고, 무한히 넓기도 하여 무량(無量)이다. 무망한 갯벌이 모두 앞마당인 탓이다. 그래서 망해사 앞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바다가 절을 부르고, 절이 바다를 부르나니!” 김제땅 진봉반도의 윗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 처처불불(處處佛佛)인데 초가삼간이면 어떻고, 거창한 내력이 또한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곳에 눈발이 나부끼고 절집의 큰나무가 바다로 굽이쳐서 흔들린다. 눈발에 감싸인 낙서루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 옆에는 청조헌(聽潮軒)이 있다. 말 그대로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 소녀들의 시구에 등장하는 해조음보다도 청조음은 얼마나 걸찍한가. 가히 서해다운 표현이다. 계곡물이나 강물소리를 듣는 정자나 불당은 널렸지만 앞마당에서 밀물 썰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하던가. 질퍽거리는 갯벌로 나간다.20분쯤 걸었을까. 북쪽으로 군산항이 손 끝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고군산열도의 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곳에 새만금간척지의 둑방이 멀리 시야를 가로지른다. 해가 지고 있다. 망해사 앞마당 갯벌에서 마주하는 일몰, 서해 낙조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갯벌 위에 깔리고 있다. 끝내 갯벌이 사라지고, 아스팔트 포장이 깔릴지 모른다. 서해는 애초부터 바다가 아니라 중국과 연륙된 뭍이었다. 빙하가 흘러내려 서해가 창조되었다. 운동은 사물을 변화시켰다. 뭍에서 실려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8m에 이르는 조석간만의 차이는 드넓은 조간대를 형성했다. 오랜 조석운동의 결과는 질과 양의 변화를 가져와 바닷가에 변증법의 지평을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억겁이지만 지구 나이로 보자면 이 갯벌의 나이는 청년기에 불과한 고작 8000년. 갯벌 생성은 서해안의 조석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해 온 ‘청년운동’이라고 표현함이 어떨른지. 너무 흔하면 소중한 줄을 모르는 법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 해안, 캐나다의 동부 해안, 미국 동부의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갯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배운다. 수차례 새만금을 찾았던 독일 홀스타인갯벌센터의 켈러만 박사는 새만금의 종다양성에 관해 “세상에, 이런 갯벌이 있다니….”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증산·수출·건설을 지고의 좌표로 삼고 자란 우리는 간척지가 우리를 먹여 살릴 유일한 해법인 줄로만 알았다.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바다는 이미 결단이 나있었다. 갯벌이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동죽을 캐던 심포 아낙들이 부지런히 서두르는 것을 보니 물이 들어올 시간인가보다. 망해사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흡사 등대처럼 느껴진다. 갯벌을 마구 없애버리는 혼돈을 일깨우는 등대 같다. 동죽을 하나 집어든다. 나이테가 분명하다. 나무만 나이테가 있는 게 아니다. 여름 나이테는 성기고, 겨울에는 촘촘하게 선이 그어져서 삶의 흔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륜뿐 아니라 조석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빠질 때 나타나는 성장의 결과물인 일륜까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토양 정화시키는 수많은 게 구멍 물이 들고 나는 매일매일의 일기를 자신의 몸에다 직접 쓰는 셈이다. 고작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생일잔치, 출생신고 따위의 통과의례로 연륜을 확인할 수 있는 인간과는 그런 점에서 확연히 대비된다. 하찮은 조개같은 미물 하나에도 생명의 숨겨진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물이 들어오자 갯벌의 수많은 구멍마다 난리가 난다. 먹이의 사슬 속에서 적자생존의 삶을 체득해 살아남기 위해 갯벌에 은신처를 마련한 게. 그 구멍 깊숙이 밀물이 채워지자 마침내 그 은신처에서 몸을 뺀 미물들의 시간이 된다. 그들이 죽도록 파헤치는 노동 덕분에 신선한 물이 구멍을 통해 갯벌 지층의 썩은 흙을 정화시킨다. 구멍들의 어마어마한 정화작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무심코 잡는 갯벌의 게, 별다른 경제적 이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게들을 잡아다 파는 무심한 ‘살인’은 이제 그만 둘 일이다. 심포갯벌만 하더라도 게들이 정화공장 수십개 이상의 역할을 공짜로 해준다. 갯벌전문가 서울대 고철환 교수(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장)는 “찬반 논란을 떠나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정리한다. 서해안 갯벌 연구의 메카로 나아가고 있는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조영조 소장은 “만경강 동진강은 탯줄, 갯벌은 태반”이라고 말한다. 탯줄과 태반, 그보다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새만금 일대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찬반 논란을 넘어서 실사구시적으로 데이터를 축적, 분석하고 있는 송재희 박사는 “해수 유통만 제대로 보장된다면 새만금을 충분히, 그것도 일시에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만 다행이다. 마침 법원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으니, 새만금을 살리는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의 손으로 공이 넘어온 셈이다. 해수를 유통시켜 갯벌과 생명체들을 영구히 살릴 것인가, 아니면 갯벌을 땅으로 만들어 농사라도 지을 것인가. 환경운동연합의 장지영 갯벌팀장은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갯땅으로 국가적 투기판이라도 벌일 것인가.”고 되묻고 있다. 반면에 ‘새만금완공연대’라는 지역조직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이기’를 선언하고 있다. 이제 새만금을 둘러싸고 각각의 다른 시각을 보였던 이들에게 마지막 답이 제시될 시간이 착착 다가오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든 선택 권이 양측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법원도 사실 최종적 결정권한이 없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왜 갯벌의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가.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 갯벌의 주인 아닌가. ●죽어가는 생태자원의 보고 완강하기만 한 ‘토건(土建)국가’에서 풍전등화의 석양을 지켜보는 망해사의 저 등대 불빛은 언제 꺼질까. 서해안의 8000년 청년운동사를 우리는 단 몇 년의 간척사로 대체시키고 있다. 법원 결정을 놓고서 사회적 논란이 재연되고 있으나 토론하고 동의를 구할 시간은 거의 없다. 죽어가는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들에게 남은 시간, 선택의 여지는 아예 없다. 문득 망해사와 인연을 맺은 진묵스님을 떠올린다. 비승비속처럼 살다간 그의 행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다산 정약용과 늘 마주하였던 대둔사의 초의선사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를 통해 겨우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조선 중기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한 소리를 남기고 떠난 거인. 초의는 그를 두고 ‘석가여래의 응신(應身)’이라는 헌사를 올렸다. 남은 기록이 몇 줄이라면 민중의 구전 역사책은 수십권이니 그를 생불(生佛)로 여기는 전설이 지금껏 유전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제 만경의 심포에서 지척인 불거촌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라고 했다. 토건국가를 그만 지향해도 될 법한데 여전히 토건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에 관하여 그는 무어라 했을까. 끝내 바다를 굽어보는 망해사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망륙사(望陸寺)’를 택할 것인가! 잘못되면, 훗날 이곳에 다시 와 관해기가 아닌 관륙기(觀陸記)를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 얼마나 참담하고 민망한 일이겠는가.
  • [길섶에서] 스팸메일 유감/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스팸메일 지우기다. 스팸메일이 정상적 편지보다 훨씬 많으므로 정상적 편지만을 뽑아 옮긴 후 나머지 메일은 한꺼번에 지우는 편이 수월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스팸메일의 발신자 표시에 지인들의 이름이 많아졌다. 김희선, 채시라 같은 연예인들이야 지인이랄 것도 없지만 동료, 친구, 선·후배들의 이름을 보면 메일을 지우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둘 사이에 오간 메일을 해킹해 발신자로 이용한 걸까. 지인의 이름이 나타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 터.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사신들이 틈입을 당한 것 같아 번번이 불쾌하고 께름칙하다. 최근 들어 나를 놀라게 한 발신자의 이름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최근 들려왔던 대학동창생의 이름이다. 이거야말로 우연의 일치겠지만, 학창시절 그의 열애와 결혼과정을 지켜봤던 내게는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아련한 추억과 슬픔을 일으킨다. 이름을 볼 때마다 사망소식을 듣고도 경위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있는 동창생의 무심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팸메일은 이래저래, 받는 이에게는 고통이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인 경계령/김경홍 논설위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은 비루한 근성이다. 마음만 먹으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세상이 된 지는 오래다. 외국여행에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갔을 때 움츠러들었던 심정이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갔을 때 다소 우쭐대고 싶은 심정을 가졌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화나 해외여행 자유화는 새삼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된다. 세계속의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모습이나 태도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새삼스럽게 등장한 얘기는 아니지만 ‘어글리 코리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한 방송의 해외르포에서 낯 뜨거운 모습을 목격했다. 동남아 국가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를 구타한 한국인, 술집에서 접대부에게 인간 이하의 요구나 행패를 부리는 한국인,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호스를 꽂는 한국인 등등. 일부 관광객들의 일탈행위에 불과한 것일까. 베트남의 버려진 현지처와 신(新)라이따이한 어린이들, 한국의 사기꾼들에게 물건 값을 사기당해 거리에 나앉은 중국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봤자 어느날 갑자기 꾸며댄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해외 추태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과 국제결혼해 들어온 동남아 여성들의 인권침해 사례도 한두건이 아니다. 최근에는 유독성 환경에서 일하다 ‘앉은뱅이 병’에 걸린 태국 여성근로자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태국 여성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자기나라 여성들을 위로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필리핀 당국이 최근 ‘한국인 경계령’을 내렸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과거 우리의 이민시절, 우리의 해외동포나 해외취업근로자가 겪었던 슬픔을 생각한다면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국적이 어디든간에 지금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도 마찬가지다. 주변국에 짓밟히고 살았던 기억이 도대체 얼마나 됐다고 이런 추태를 보이는가. 쥐뿔도 없으면서 졸부처럼 구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 콤플렉스’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한국 단편애니 ‘버스데이‘ 아카데미 후보에

    호주 동포 영화 감독인 박세종씨의 한국 소재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Birthday Boy)’가 25일 밤(한국시간) 발표된 2005년 아카데미상 후보작에 선정됐다. 한국인의 작품이 아카데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올해 77회째를 맞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됐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외국어 영화 부문 후보작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발표한 후보작 목록에서 ‘버스데이 보이’는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고퍼 브로크(GOPHER BROKE)’,‘로렌조(LORENZO)’,‘라이언(RYAN)’ 등과 함께 후보작 다섯편 중 하나로 선정됐다. ‘버스데이 보이’는 한국전쟁 중 졸지에 고아가 된 한 어린이가 처한 슬픔을 사실적 기법으로 담아낸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전쟁 중 폐허가 된 마을에서 전쟁놀이를 하는 어린이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겪는 당시 한국인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년 전 호주로 이민, 현지인 아내와 두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박 감독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6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인 부천시장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합
  • “자오 장례식 공정하게 치러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전 공산당 총서기의 장례식 절차와 관련, 그의 역사적 평가 문제를 둘러싸고 당과 유족들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완리(萬里) 전 전인대 위원장 등 원로급 인사들이 공정한 장례식을 요구하고 나섰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24일 인민일보(人民日報) 전 사장 후지웨이(胡績偉)의 부인 훠사(荻莎)의 말을 인용, 원로들이 공산당 지도부에 자오 전 총서기 장례를 공정하게 치러 달라는 요구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훠사는 “완리와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위원장, 톈지윈(田紀雲) 전 전인대 부위원장 등 원로급 인사들은 관례에 따라 자오 전 총서기가 생전에 맡았던 직책에 따라 고별 의식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훠사는 “남편인 후지웨이가 자오 전 총서기 사망 당일, 이는 국가의 비극이며 만민의 슬픔이라면서 중앙정부에 그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공개적으로 추도 행사를 갖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타이완 연합보(聯合報) 등 중화권 언론들은 추도사없는 장례식이 25일쯤 열릴 것으로 보도하면서 “자오 전 총서기의 영결식 날짜를 못잡고 질질 끌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가족과 당의 갈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명보의 기자 2명이 자오 전 총서기의 베이징 자택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하고 유족들을 인터뷰하자 당국이 이들을 조사한 뒤 추방했다고 타이완의 현지 언론들이 24일 전했다. oilma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55)

    繼母(계모) 儒林 262에는 繼母(이을 계/어미 모)가 나오는데,繼母란 正室(정실)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後娶(후취)인 ‘의붓어머니’를 일컫는다. 繼자는 ‘잇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실을 이어 놓은 모습을 본뜬 象形(상형)에 속한다. 후에 그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나타내기 위해 ‘(실 사)’를 첨가하였고,‘이어받다.’‘이어지다.’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 母자는 ‘女(계집 녀)’를 기본으로 가운데 두 점이 있는데,女는 여성의 뜻이며 두 점은 두 팔로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혹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양이라고도 한다. 두 점(乳頭·유두)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의 象徵(상징)이라는 데에서 ‘어머니’의 뜻을 類推(유추)한 것이다. 어머니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사랑’이다. 중국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AD 403∼444)이 편찬한 世說新語(세설신어)에는 애끊는 母性愛(모성애)를 그린 ‘斷腸(끊을 단/창자 장)’이라는 故事(고사)가 전한다. 제나라의 桓公(환공)이 蜀(촉)나라로 들어가는 길에 三峽(삼협)이라는 곳에 당도할 무렵 어떤 병사가 원숭이 새끼를 한 마리 사로잡았다. 어미 원숭이가 구슬피 울며 배가 지나가는 沿岸(연안)을 따라 백여 리를 쫓아왔다. 배가 협곡에 이르자 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올랐다.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태우며 달려온 원숭이는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은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적 특성인 禮(예)는 恭敬(공경)과 配慮(배려)의 마음을 分(분)과 和(화)라는 방법으로 發顯(발현)함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服喪(복상)의 문제 가운데 이른바 ‘八母(팔모)’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팔모 가운데 ‘繼母’는 正室(정실)의 아들이 아버지의 後娶(후취)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중국 고대의 三皇五帝(삼황오제) 가운데 한 분인 舜(순) 임금의 繼母는 콩쥐의 繼母를 凌駕(능가)하는 표독한 여인이었다. 숯을 굽던 無名(무명)의 시골 청년이 堯(요)임금의 後繼者(후계자)로 발탁된 것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효성을 발휘한 인간성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우둔한 性品(성품)을 지닌 장님,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한 여인은 모진 성품의 繼母, 매우 심술궂은 異腹(이복) 동생 象(상)이 가족의 일원이었다. 계모는 나날이 멋진 청년으로 성장하는 순을 猜忌(시기)하여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이 짧은 아버지는 이미 계모와 한통속이었다. 어느날 아버지 고수는 순으로 하여금 지붕에 올라가 비가 새는 곳을 수리하라 해놓고는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순은 機智(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謀免(모면)하였다. 계모의 陰謀(음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舜이 청소를 위해 우물 속으로 들어가자 남편을 부추겨 우물 뚜껑을 닫아버렸다. 다행히 순은 손에 들려 있는 삽으로 통로를 만들어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 후로도 가족이 모질게 대할수록 순의 孝誠(효성)은 더욱 지극해질 뿐이었다. 이러한 순의 孝誠(효성)과 友愛(우애)는 단절된 가족간의 信賴(신뢰) 회복을 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기에 충분하였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역대 美대통령 취임 명연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20일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취임사를 분석해 소개했다. 훌륭한 취임사들은 역사적 전환점을 요약하거나 행정부가 나아갈 기조를 나타낸다고 설명하면서 기억에 남는 명연설 등을 반추했다. 닉슨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훌륭한 연설은 위대한 순간에 나오며 취임사는 모두의 희망과 긍지,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1801년 미국이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로 분열된 상황에서 취임했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는 공화주의자이고 우리 모두는 연방주의자”라고 선언, 분열을 ‘치유’했다. 또 대공황 시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세대교체를 주장하면서 “국가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라.”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1981년 연설도 기억에 남는 명연설로 회자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일하며 우리 등 뒤에 올라타지 않고 우리 곁에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자신의 혁명적 견해를 표현했다. 그러나 모든 대통령이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 취임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이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기 전인 1857년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노예제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으며 남북전쟁 후 첫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은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동감 있는 취임사를 할 수 있었지만 전쟁부채 해결에 집착해 회계사 같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dawn@seoul.co.kr
  • ‘공공의 적2’ 강우석 감독

    “‘공공의적2’는 전편과 타협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전편보다 못하다는 말은 죽어도 못 듣겠습니다.” ‘전편이 재밌으니 속편도 보고싶다.’는 말이 가장 섬뜩하게 들린다는 강우석(45)감독은 이번 영화를 “전편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고 말했다.‘공공의적’을 찍은 뒤 ‘영화와 제목이 정말 어울리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었던 그는 이번 영화는 “공공의적다운 인물을 그렸다.”고 자평했다. 그는 전편과 가장 다른 점으로 ‘드라마’를 꼽았다.“전편이 너무 엽기적이고 지적이지 못한 분노와 행위만 담은 것 같아 이번엔 오버 액션 대신 드라마로 승부를 걸었다.”는 게 그의 설명. 재미있게 웃다가도 슬픔을 느끼고 결국은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도록 관객들을 유도하기 위해 “지금까지 찍은 영화 가운데 가장 머리를 많이 썼다.”고 했다. 드라마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은 곧 긴 러닝타임으로 이어졌지만, 영화를 자르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단다. ‘실미도’를 찍으면서 “영화가 사회를 판단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연출관과 사고를 굳혔다는 그는 이제 “사회현상이나 역사적 소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영화를 찍기가 싫은” 정도가 됐다. 다음 작품은 ‘투캅스’때의 정신으로 돌아가 즐겁고 신나는 영화를 찍을 생각이지만 “그 바탕은 우리 사회가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사회성 있는 감독이 되겠다기보다는, 실컷 웃었는데 뭐 하나 얻고 나오는 영화를 많이 또 자주 찍는 감독으로 남고 싶습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아자!아자! 시민기자] 쓰나미 난민돕기 음악회

    [아자!아자! 시민기자] 쓰나미 난민돕기 음악회

    진눈개비가 오락가락하는 짓궂은 날씨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도 지구촌 이웃에 대한 ‘사랑의 밀물’을 휩쓸어가지는 못했다. 지난 1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인근 서초구민회관. 남아시아 지진해일 난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는 ‘아픔과 슬픔 함께 나누는 우리는 하나입니다.’라는 타이틀로 물밀듯한 이웃사랑을 실감케 했다. 오후 7시 막을 올리기 훨씬 전인 6시를 조금 넘기자 관객들이 밀려왔다. 꼬마에서부터 노인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랑을 보태려는 이들은 1200여명이나 됐다. 예약판매한 입장권 1000장으로 객석 800자리가 모자라 간이의자 200여개를 마련했으나 입석 관람객들이 늘어나면서 행사 담당자들은 의자를 잇달아 들여와야만 했다. ‘쓰나미’의 무자비한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면서 “바다가 덮쳐와 뛰어보지만 힘이 빠져요. 엄마, 보고 싶어요….”라는 동남아 어린이의 말이 들려오자 관람석에서 흐느끼는 장면까지 보여 코끝이 찡하게 만들었다. 합창단을 포함해 60여명의 출연진은 행사의 뜻을 살리기 위해 저마다 갈고 닦은 솜씨를 맘껏 쏟아냈다. 특히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0)양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꿋꿋이 일어설 수 있다는 굳은 다짐을 시민들에게 심어줬다. 8시20분쯤 선천성 ‘사지기형’ 장애인인 희아양이 두 무릎으로 걸어나와 영화음악 ‘러브스토리’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자 곳곳에서는 길고도 짙은 탄성이 새나왔다. 희아양은 자신의 무대가 막을 내렸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 또 다른 감동을 남겼다.1부 마지막 순서로 ‘코요테’가 나와 ‘빙고’를 부를 땐 함께 신바람나는 춤으로 희망을 얘기했다. 합창단이 관객과 어우러져 ‘사랑으로’를 부르며 작별을 고할 때도 손을 맞잡고 밝은 미래를 노래했다. 음악회에서는 많게는 최고 1000만원에 이르는 특별성금을 합쳐 8000여만원을 모았다. 출연자들도 기꺼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사랑의 무대를 빛냈다. 희아양은 “말로 못다할 정도로 힘들겠지만 난민들이 바다 건너편에도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른 평화를 되찾았으면 한다.”며 웃어보였다. 글·사 진 송한수 기자·유근환 시민기자 onekor@seoul.co.kr
  • 컬러링 인기순위 조은 ‘슬픈연가’ 1위 등극

    조은의 2집앨범 타이틀곡 ‘슬픈연가’가 컬러링 인기차트 정상에 올랐다. 조은의 ‘슬픈연가’는 장나라의 ‘겨울일기‘를 2위로 밀어내며 1위를 차지하며 MP3다운로드 차트 및 네이트닷컴의 BGM 순위 등 모바일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조은의 ‘슬픈연가’가 모바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우울’ ‘슬픔’ 등 대중의 정서를 가장 쉽게 사로잡는 전형적인 ‘한국형 발라드’라는 점이다. 조은의 ‘슬픈연가’를 컬러링으로 다운받으려면 휴대전화를 열고 ‘##90’과 코드 번호 5자리 ‘00292’와 send(통화) 버튼을 누르면 된다.
  • ‘마더 데레사’ 21일 개봉

    “저는 그분 손안의 작고 보잘 것 없는 몽당연필일 뿐입니다. 쓰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1997년9월5일, 평생을 헌신과 사랑으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 마더 데레사의 영면에 전세계는 슬픔에 잠겼다. 그로부터 8년, 만인의 어머니이자 빈자의 성녀인 데레사 수녀의 삶을 조명한 영화 ‘마더 데레사’(Mother Teresa·21일 개봉)가 세상에 나왔다. 영화는 데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기 이전인 1940년대 말부터 87세로 선종하기 직전까지 40여년간의 삶을 서사적으로 그리고 있다.‘로레토 성모수녀회’의 일원으로 인도 콜카타에서 20년간 교육과 선교사업에 헌신하던 데레사 수녀는 내전과 종교갈등에 희생돼 비참하게 죽어가는 빈민들을 보며 자신이 있을 곳은 수녀원이 아니라 콜카타 거리임을 깨닫는다. 한방울 한방울의 물이 모여 대양을 이루듯 데레사 수녀의 사랑은 수많은 이들에게 전파돼 전세계 곳곳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선교회’가 세워진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녀의 명성을 악용한 ‘로건 스캔들’과 ‘아동매매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선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힘든 상황에서 그녀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이는 다름아닌 거리의 병자다. 한때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줄리엣’의 눈부신 청순함 대신 사려 깊은 눈매, 주름진 손에서 한없는 온화함과 연륜이 묻어나는 올리비아 허시의 열연이 반갑다. 이 아름다운 여배우는 “사람들은 내가 그 역할을 해내기에 너무 예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지만 난 데레사 수녀가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그래도 1월은…/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시간은 간단없이 흐른다. 나눌 수 없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식으로 나눠놓은 것이 연대기적 시간이다. 분절된 시간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슬픔이 깊을수록 고통스러운 과거와 단절하고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걸고 싶기 때문이다. 묵은 해와 새 해의 구분은 새해부터 변신을 결심하고 실천하기에 좋은 심리적, 문화적 계기를 마련해준다. 어제도 어김없이 뜬 태양을 오늘 또다시 바라보면서도 해돋이 의식과 같은 숭엄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1월1일의 태양이 주는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1월처럼 마법적인 달도 없을 것이다. 영어권에서 1월(January)은 야누스 신에서 기원한다. 고대 로마의 야누스 신은 불연속적인 시공간을 연결하는 신이었다. 그는 표리부동의 두 얼굴을 상징한 신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출구와 입구, 내부와 외부 등 상반된 시공간의 공존을 상징한 신이었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1월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의 문이자, 공간의 달이다. 그래서 1월은 과거의 절망 가운데서도 미래의 희망을 갖도록 해주는 주술적인 달인 셈이다. 2005년을 바라보는 마지막 순간까지 2004년은 예측불허의 잔인함을 드러냈다. 서남 아시아의 쓰나미는 인간의 슬픔과 애도의 능력을 넘어서는 참사였다. 이처럼 참담한 자연 재해나 세계 도처에서 발발하는 전쟁과 같은 잔혹한 인재에서 보다시피,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 자연의 자비와 타자의 선의에 볼모로 잡혀 있다. 자연의 횡포를 예측하고 인간의 변덕을 통제함으로써 삶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려는 것이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었다. 옛사람들은 정초가 되면 토정비결도 보고, 한 해의 신수도 점쳤다. 해와 달, 물과 돌에게 소박한 소망을 기원하기도 했다. 별의 운행을 통해 지상의 삶을 가늠하기도 했다. 계몽담론에 의하면 그와 같은 행위는 비과학적인 미신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미래를 겸손하게 예측하고 싶어했던 옛사람들 나름의 과학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과학을 미신으로 간주하면서 현대의 과학문명으로 세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선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학문명은 엄청난 변화를 선도하는 만큼이나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 게다가 문명화의 척도를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옛사람들보다 과연 얼마나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는 사회적 약자와 삶의 터전이 보내는 아픔에 둔감해지고 있다. 고통받는 존재들의 아픔을 고발하는 천막 농성장들이 해를 넘기고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면서 단식하는 사람들의 천막, 군의문사 규명을 요구하는 천막,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한 천막, 비정규직 폐지를 위한 천막,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천막, 서해안 생태계 파괴를 저지하려는 천막 등. 이들의 외침에 국회는 귀막고 눈감는다. 건강은 아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픔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상태이다.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인 건강상태는 갈등과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쓰나미의 참사 와중에도 동물들은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동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의 변화조짐과 고통파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고통뿐만 아니라 멧돼지와 도롱뇽과 산호초를 위시하여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보여주는 고통에 예민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되는 방법일 것이다. 지상의 가난한 자들에게는 슬픔도 힘이다. 비탄에 잠긴 아시아 사람들의 슬픔에 동참할 때, 희망이 가능해질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자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선물은 희망이다.2005년은 절망한 자들이 새처럼 날 수 있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앙코르는 ‘느낌’이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배어 있다. 보는 순간마다, 보는 장소마다, 보는 기분에 따라 각각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유적지의 웅대함에 놀라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의 신비로움과 인류의 위대함에 매료된다. 캄보디아인의 인자한 미소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13세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앙코르 왕조의 몰락과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는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만든다. 또 유적지 곳곳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앙코르 유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사전 지식없이 무작정 찾았다가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돌무더기’의 지루함만을 느낄 수도 있다. 신들이 사는 세계를 이땅에 재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왕조가 멸망된 뒤 수세기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혀있다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앙코르의 느낌속으로 들어가 보자. # 설렘 앙코르 유적과의 만남은 설렘으로 시작됐다. 캄보디아 시엠레압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신들의 땅을 직접 본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늦은 밤에 도착한 탓에 유적지 인근 호텔에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뒤척임 속에 새벽을 맞아야 했다. 호텔을 출발해 처음 찾은 곳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 시엠레압 주변 1000여개 유적지 가운데 앙코르와트와 함께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유적지 매표소에서 3일 동안 자유롭게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앙코르 패스(40달러)를 끊은 뒤 앙코르톰의 관문인 남문에 도착하자 장엄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교도로는 처음 왕위에 오른 자이야바르만 7세(1181∼1201)때 지은 정사각형 도성이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 복잡했다. 각 변이 3㎞로 돌벽과 해자(성곽 주변의 못)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힌두교의 창조신화인 유해교반(乳海攪拌)이 형상화돼 있다. 다리 난간에는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몸통을 부여잡고 있는 54개의 반인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입구인 남문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얼굴,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화려한 장식물이 먼저 발길을 사로잡았다. #웅대함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 남문을 통과하자 본격적인 신들의 안식처가 눈앞에 펼쳐졌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 사원은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새겨진 사면 돌탑이 있는 곳.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수백m에 이르는 회랑 벽화에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 달리 당시의 생활상과 위대한 왕의 전투장면이 관광객을 맞는다. 벽화에는 창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크메르인과 밥을 짓느라 분주한 여성의 모습, 투견과 투계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를 잘못해 무너져 내린 수많은 석축물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했다. 바이욘 사원 북쪽에 있는 바푸온 사원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13세기 이 곳을 방문한 원나라 사신이 쓴 ‘진랍풍토기’에 ‘아침에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도성을 비추던 곳’으로 묘사된 힌두 사원이다. 바로 위에는 3층 피라미드 형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피미야나카스(천상의 궁전) 사원이 버티고 서있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열병식을 거행했던 광장과 코끼리 테라스, 라이왕 테라스를 볼수있다. 앙코르 톰 동쪽에 있는 타프롬 사원(왕의 수도원)은 복원이 어려워 발견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1861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어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앙코르 유적은 거대한 나무뿌리로 뒤덮여 있었다.’는 말 그대로 스퐁(열대 무화과 일종)이라 불리는 나무가 사원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나무 뿌리가 돌틈 사이를 파고 들어가 사원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로서는 나무를 베어낼 수도 벽돌을 다시 세우기도 어려워 유네스코에서도 복원보다는 현상을 유지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곳은 영화 ‘툼레이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가 사원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알려져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 경외로움 그동안의 앙코르 유적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숨죽일 만큼 아름답다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해자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는 폭 12m, 길이 540m의 참배도로 주변에는 일찌감치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길은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갈림길. 죽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잠시 뒤 수미산(세계 중심에 있는 산)을 상징하는 중앙탑 등 5개의 탑 뒤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사원이 시시각각으로 붉게 물드는 장면은 마치 신들이 자신의 세계를 인간들에게 조금씩 내어주는 듯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돼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 최고로 꼽힌다. 이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사원과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다. 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2)때 3만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7t짜리 돌기둥 1800개, 높이가 67m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3개의 회랑 벽면과 기둥에 새겨진 정교한 벽화는 힌두교 2대 경전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 라마야나 이야기는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팔이 스무개인 악마 라바나에게 강탈당한 아내 시타 왕비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신화다. 3층으로 된 앙코르와트의 중앙탑에 오르는 길은 70도 경사도. 손과 발을 이용해 기다시피 해야 올라설 수 있다. 신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찌 인간이 두발로 걸어 갈 수 있겠는가. # 아쉬움 앙코르 유적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쿨렌산은 앙코르의 발원지. 앙코르의 건립자 자야바르만 2세(802∼850)가 최초로 도읍을 정했던 곳. 돌무더기 유적에 질린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 볼 만한 코스다. 정상에서 약 10m크기의 와불상과 함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또 툼레이더가 촬영된 멋진 폭포도 구경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반테아이스레이 사원도 볼 만하다. 이 사원은 왕들이 세운 다른 사원과 달리 고위 관료가 지은 사원. 붉은 색 사암으로 지어진 핑크빛의 사원은 규모가 작지만 다른 사원과 비교해 어느 한군데 빠지지 않는 화려한 조각품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곳은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작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사원내에 있는 데비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돼 실형을 받은 일화도 있다. 앙코르 관광의 마무리는 프놈바켕의 일몰. 앙코르와트와 바이욘의 중간지점에 있는 높이 60m의 작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고 가파르지만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길고도 짧은 앙코르 관광이 끝났지만 신들이 새겨놓은 장엄한 잔상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원들을 돌아보느라 밀려드는 피곤함보다는 다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특히 9∼15세기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서 번성하던 앙코르 왕조와 내전으로 피폐해진 현재의 캄보디아 모습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사원 곳곳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여행 내내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했다. 과연 역사란, 삶이란 무엇일까. 알고가면 편해요 앙코르와트 여행은 겨울철이 가장 좋다.11∼2월이 건기로 이 기간이 가장 시원해서 유적을 둘러보기 적합하다.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 기후지만 하루에 몇번 스콜이 지나가는 정도일 뿐 금방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반면 3∼4월은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혹서기이며,5∼10월은 고온다습한 우기다.시차는 2시간으로 한국이 오전 10시면 캄보디아에서는 오전 8시다. 화폐는 리엘(Riel)이지만 시엠레압 등 대도시에서는 달러가 유통돼 환전할 필요는 없다. 소규모 상점에서는 거스름돈이 부족하므로 1달러짜리 소액권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1달러는 약 4000리엘 정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기전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거나 현지 도착후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권과 여권용 사진 1장, 비용 20달러가 필요하다. 종교는 상좌부불교(소승 불교)이며, 인종은 크메르족이 80%를 차지한다. 유의 사항으로는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생사정이 좋지 않다. 반드시 생수를 사먹는 편이 좋다. 관광지에서는 돌 하나도 가져가면 밀반출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루종일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므로 모자는 필수다. 전화가 거의 없으며, 호텔에서도 1분당 6달러 정도로 비싸다.전압은 220V로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적지에 들어 가려면 앙코르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1일권 20달러,3일권 40달러,7일권 60달러이며,1일권 외에는 사진을 찍어 함께 코팅해 준다. ‘쏙 싸바이’(안녕하세요),‘쭙닙수’(반갑습니다),‘옥꾸운’(감사합니다) 등 기본적인 캄보디아어를 외워두면 편하다. 가는 길은 시엠레압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4시간 20분, 방콕에서 시엠레압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이르면 3월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주 2회 직항편을 준비하고 있다. 숙박은 공항과 앙코르 유적지에서 각각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르 메르디앙호텔’이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리조트형 5성급 호텔로 223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www.lemeridien.com, (02)794-4011. 여행 상품으로는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02)536-4200)에서 앙코르 문화유적지를 충분히 둘러보는 3∼5일 여행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공항서 급행료 주지마세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는 연간 10만여명의 우리나라 관광객이 찾는 곳.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엠레압 공항에서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입국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고 통과하는 특권을 누린다. 공항 직원에게 일종의 ‘급행료’(?)를 지불했기 때문. 실제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우리 일행에게 공항직원이 “10달러를 주면 빨리 통과시켜 주겠다.”는 요구를 했다. 거부하자 한명에 5∼10분가량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급행료를 만든 것은 한국인. 좁은 공항에서 다소 오래 걸리는 입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 뇌물을 건넨 것이 관행화됐다는 게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설명이다. 유적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지 한국인 관광안내원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유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이다. 얼마전 한국인 관광객이 유적지내 돌탑을 흔들며 심한 장난을 치다 부숴뜨려 벌금 800만원과 함께 한달간 실형을 산 뒤 영구 추방조치되기도 했다. 캄보디아인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앙코르 유적지를 모독하거나 훼손, 파손할 경우 엄하게 처벌한다. 또 현지인들이 우리보다 못 산다고 무시하거나 종교적으로 모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신들의 세계를 관광하기에 앞서 좀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시엠레압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박목월의 고향 ‘경주’

    [문학이 머문 풍경] 박목월의 고향 ‘경주’

    첫사랑의 기억만큼 평생을 따라다니는 게 있을까. 박목월(1916∼1978)도 그랬다. 목월의 가슴 아픈 첫사랑의 무대는 그의 고향인 경주.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산골에서 태어난 목월은 10리 길을 걸어 건천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목월은 이웃에 살고 있던 동갑내기 K와 첫사랑에 빠진다. 서로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목월과 K는 사랑을 맹세했다. 그러나 대구 계성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목월은 어느날 K가 시집갔다는 소식을 접한다. 목월이 열다섯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금융조합에 취직한 목월은 첫사랑을 잊을 수 없었던지 건천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목월은 K가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신작로에서 우연히 K와 마주쳤지만 K는 줄달음을 쳐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후 K는 재혼을 해 아들 하나를 낳았고 이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슬픔의 씨를 뿌리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한 해 한 해가 저물어 질 고운 나무에는 가늘은 가늘은 핏빛 연륜이 감기었네〉(가시내사 가시내사…) 〈목이 가는 소년은 늘 말이 없어 새까만 눈만 초롱초롱 크고…/귀에 쟁쟁 울리듯 차마 못잊는 웃녘 사투리 연륜은 더욱 새빨개졌네〉(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이제 소년은 자랐네> 목월의 처녀작의 하나인 ‘가버린 가시내’는 첫사랑 K가 주인공이다. 국도변 작은 읍내 풍경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목월이 K와 사랑을 약속했던 건천 읍내는 아직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첫사랑의 굳은 맹세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지만 신작로 주변 적산가옥하며 목월이 K와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 주변 풍경은 변한 게 별로 없다. 한가로운 신작로를 따라 목월과 K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상상을 하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읍내 신작로를 혼자 쓸쓸하게 걸어다녔을 목월. 남편과 사별후 친정집으로 돌아와 군데군데 묻어있는 목월과의 첫사랑 추억에 가슴 아파했을 K. 목월이 K와 우연히 해후한 그날. 아마도 두 사람은 아무말도 못한 채 화석처럼 굳어버렸을 게다. 건천읍내에서 경주시내 방향으로 가다 모량초등학교 바로 옆길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목월의 생가다.1980년초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토담집 생가는 헐리고 새집이 들어서 이제 목월과는 무관한 집이 돼 버렸다. 정지용이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 했건만 목월의 생가 보존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목월 선생 생가인 줄 알았다면 집을 헐어버리지 않았을 거요. 우린 몰랐어요.”목월선생 생가에 새집을 짓고 27년째 살고 있는 70대 농부는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싫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하기야 잘 살아보자며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시인의 초가 생가를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누굴 탓할 일은 아니지만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마을 주변을 둘러보면 목월의 서정을 풍부하게 키워주었던 선도산이며 단석산은 아직 그대로여서 다행스럽다. 지금은 보리밭으로 변했지만 목월의 생가 주변은 밀밭 천지였고, 목월에게 밀밭은 사색의 공간이었다. 생가에서 다시 국도 방향으로 나와 국도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가면 작은 강이 흐른다. 경주시내를 끼고 흐르는 형산강의 상류지역인 강나루는 아직 얕고 푸른 강물이 차분하게 흐른다. 살얼음이 낀 강나루는 푸르기만 하다. 국민 애송시인 ‘나그네’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아마도 목월은 혼자 가만히 밀밭 사잇길을 지나 강나루에 우두커니 앉아 젊은 문학도의 고단함을 강물에 흘려보냈을 것이다. 경주에는 황성숲(얼룩송아지)과 보문관광단지(달), 건천초등학교(윤사월)에 목월시비가 세워져 있고 해마다 5월이면 황성숲에서 목월 백일장이 열린다. 살아 생전에 목월은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 어린 문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년 말에는 토함산 자락에 소설가 김동리와 함께 하는 ‘동리·목월 문학관’이 문을 연다. 경주가 고향인 동리는 젊은 날 목월의 문학친구다. 목월의 제자인 시인 서영수(67·목월기념사업회)씨는 “늦었지만 목월 문학관이 들어서게 돼 다행”이라면서 “문학관이 문을 열면 목월 선생은 고향인 경주에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결정!맛 대 맛(SBS 오전 10시50분) 야들야들 명태살과 매콤새콤한 양념, 쫄깃한 면발에 백김치로 속살을 채운 북한식 만두의 조화 명태회 비빔냉면과 만두. 아삭아삭한 김치를 썰어서 고소하게 부친 녹두전과 얼음 둥둥 띄운 시원한 국물에 잘 만 국수의 진미가 입맛을 돋우는 김치말이 국수와 녹두전의 맛대결을 보여준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노동자, 농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인도의 MKSS는 지역주민이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MKSS는 투명한 선거를 위해 입후보자들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한다.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본다. ●청소년 원탁토론(EBS 오후 8시10분) 청소년들의 낮은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에서는 2007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했다. 평가를 통해서라도 청소년들의 낮은 독서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독서능력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강수 타령(MBC 오후 7시55분) 가영과 준호는 둘이서 자주 가던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 신률과 왜 헤어졌냐고 묻는 준호에게 가영은 신률이 좋은 사람이지만 편하지가 않았다고 말한다. 나영은 오디션에 합격하고, 소식을 들은 강수는 기뻐한다. 가영은 팀장에게 마지막 원고를 넘기며 사직서도 함께 낸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옥화는 안 교감이 창수를 집에 들이는 것도 못마땅하고 애들을 스키장에 딸려 보내는 것도 미덥지 않기만 하다. 성미는 영화를 보겠다며 무작정 나서는데, 누구 하나 영화를 같이 봐 줄 사람이 없어 혼자 걷던 중, 채영과 형표가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광복 60년 특별기획‘KBS 영상실록’(KBS1 오후 11시) 광복 60년을 맞이하여 1945년 이후 연도별로 영상 자료를 분류하여 환희와 감격, 슬픔을 주었던 사건과 당시 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영상, 또한 히트 가요·유행어·영화 등의 풍속을 보여주는 영상을 중심으로 해마다 벌어진 사회적 변천을 정리해 본다.
  • [책꽂이]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소설가 박완서가 아들을 잃은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은 산문집.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고통과 슬픔이 절절히 묻어나는 작가의 내면일기다.9500원. ●연어(전2권)(김하인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멜로소설 ‘국화꽃 향기’의 인기작가가 새로 펴낸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가득한 장편소설.33세 남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회한을 그렸다. 각권 7500원. ●조 신부님(토니 헨드라 지음, 이영기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베네딕트회 소속 수도사였던 조 신부(본명 조지프 워릴로)와의 만남을 통해 믿음과 우정, 가족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소설. 조 신부는 60여년을 맑은 영혼의 수도사로 살다간 실존인물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풍자작가.1만원. ●술탄 살라딘(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미래M&B 펴냄)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딘의 행적을 통해 이슬람 역사를 되짚어본 역사소설. 중세 이슬람 궁정의 사회상과 권력투쟁, 동성애 등을 이해할 수 있다.1만 5000원. ●하룬과 이야기 바다(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달리 펴냄) ‘악마의 시’로 잘 알려진 인도출신 작가 살만 루시디가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뒤 10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쓴 우화소설. 소설의 속성인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가 담겼다.9000원.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철수 지음, 삼인 펴냄) ‘그림으로 시를 쓰는’ 판화가 이철수가 자연, 이웃들과 교감한 살갑고도 넉넉한 이야기.190여 통의 짧은 엽서 형식에 상념을 담아 작가는 손칼국수, 손자장면 같은 글맛을 전해준다.9800원.
  • [길섶에서] 아내의 찻잔/우득정 논설위원

    집안 거실 장식장에는 아내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받드는 흰색과 녹색 찻잔 두개가 있었다. 결혼 때 장모님이 선물하신 것이다. 아내는 1년에 한번 목사님 부부가 연초 심방할 때면 찻잔을 꺼내 커피를 대접한 뒤 다시 소중히 모셔둔다. 훗날 아이들이 모두 출가하면 우리 부부가 쓸 잔이란다. 밤 9시가 넘어 늦은 저녁을 먹다가 장식장에 담긴 민속주에 생각이 미쳤다.10여년 전 선물로 받은 두 병 중 한병의 바닥에는 아직 잔술 몇잔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상호명조차 사라져버렸지만 코끝을 감도는 향기 때문에 몇년에 한번씩 홀짝거리던 술이다. 때마침 어머니 문병을 온 친척이 빈 술병에 코를 대고 연신 킁킁거린다.‘아직 한병 남아 있다.’며 장식장 문을 열고 술병을 꺼내려다 아내의 찻잔 두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박살났다. 놀라움과 분노, 슬픔이 한꺼번에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아내가 어쩔 줄 몰라한다.10초쯤 지났을까. 아내가 ‘정말 아끼던 너무나 소중한 찻잔이었는데‘라며 깨진 조각들을 주섬주섬 담는다. 친척들이 돌아간 뒤 미안하다고 하자 벌써 잊어버렸단다. 행여 기회가 닿으면 똑같은 모양의 찻잔을 사달라는 당부와 함께.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獨슈마허 “쓰나미 난민위해…” 105억원 기부

    ●자동차경주의 황제 ‘기부도 황제’ 황제는 씀씀이도 달랐다. ‘카레이싱 황제’ 미하엘 슈마허(36·독일)가 남아시아 쓰나미(지진 해일) 피해자 돕기에 1000만달러(약 105억원)를 선뜻 내놔 잇속에 급급한 강대국들과 갑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슈마허는 5일 자신의 홈페이지(www.michael-schumacher.de)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고 싶다.”면서 매니저 빌리 베버를 통해 독일 ZDF방송에 1000만달러를 쾌척했다. 로이터와 AFP 등 세계 주요 통신들은 앞다퉈 이 사실을 타전했고, 영국 BBC방송과 미국 ESPN 등 언론들도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슈마허가 기부한 1000만달러는 쓰나미 돕기와 관련한 개인 기부액으로는 단연 최고. 재단을 통해 300만달러 상당의 물품을 지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보다 3배 이상 많은 액수이다. ●빌 게이츠의 3배 항상 자선행사라면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슈마허는 지난 2002년 홍수가 동유럽을 덮쳤을 때도 100만유로(약 14억원)를 지원했다.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각별했다. 지난 95년부터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를 꾸준히 지원해 왔고, 지난해 11월에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써달라며 유네스코에 100만파운드(약 20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는 포뮬러 원(F1) 그랑프리에서 우승할 때 입었던 레이싱복을 자선경매에서 9000달러에 팔아 소아혈액암협회(AGEOP)에 기부하기도 했다. 슈마허는 독일의 스포츠통계업체 ‘스포르트인터마티온 딘스트’가 발표한 ‘2003년 스포츠스타 연간소득’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1억 3624만달러)에 이어 8447만달러를 벌어들여 2위에 오른 ‘스포츠 재벌’. 소속팀 페라리에서 받는 연봉만 3500만달러에 달하고, 광고수입 또한 4000여만달러로 만만치 않다. 91년 F1에 정식 데뷔한 뒤 3년 만인 94년 역대 최연소 챔프에 올라 세계를 경악시켰고,95년에 이어 2000∼2004년까지 5연패를 달성해 금세기 최고의 레이서로 추앙받는다. 국내에서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F1은 올림픽ㆍ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로 꼽히는 인기스포츠. 지난 한해만 200여개국에서 8억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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