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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일깨우는 ‘사랑의 힘’

    누군가 다가와 귀엣말로 돌연 이렇게 물어봤다. “당신은 사랑의 힘을 믿습니까?” 언제부터인가 꼭꼭 숨어버려 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련한 감정들이 닭살 돋듯 뭉클뭉클 솟아오른다. 그것은 어색함이기도 하고, 뜻밖의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이기도 하다. ‘절망의 시대’ ‘종언의 시대’에 사랑의 힘을 일깨워주는 시편들이 `톡’하고 튀어나왔다. 시인 정다혜씨의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고요아침 펴냄)과 서울 덕원여고 교사 손승의(본명 창수)씨의 첫 시집 ‘아버지의 강’(아버지의사랑 펴냄)에 그런 시들이 박혀 있다. 정 시인은 17년 전 자동차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자신이 운전하던 차의 옆자리에 타고 있던 어린 딸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말하자면 한쪽 눈만으로 죽어가는 딸을 지켜본 셈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과 죄책감은 정 시인을 나락으로 몰고갔다. “…/잊고 살았던 슬픔의 오장육부에/검은 콩알들 산탄처럼 박힌다/아이는 그해 여름 길 위에서/콩 꽃처럼 피었다 떨어졌다/무심히 콩밥 담는 저녁밥상에서/다시 만나는 검은 화인火印/여태 너 나하고 살고 있었니?/내 안에서 너, 콩처럼 살고 있었니?/너 묻고, 나는 평생 콩밥 먹는 죄인이었는데/너 묻고, 나는 평생 콩밥 먹는 슬픔이었는데”(‘딸아이에게’ 가운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시인은 때로 ‘검은 콩’에서, 때로 ‘상자’에서 죄인의 심정으로 아이를 만났다. 하지만 이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정 시인의 남편 손춘식씨는 우울증에 빠진 시인을 사랑의 힘으로 ‘시’의 세계로 초대했다. 손씨는 아내의 시 쓰는 작업을 위해 매일 출근 전 아내의 ‘한쪽 눈’안경을 정성껏 닦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정씨에게는 ‘스피노자’가 안경을 만지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자/오늘도 안경을 닦아/잠든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그가 안경을 닦는 일은/잃어버린 내 눈을 닦는 일/그리하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푸른/새벽과 아침을 맞이하지만/그때마다 아픔의 무늬 닦아내려고/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 삼켰을까/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안경의 렌즈를 갈고 닦았다는/철학자 스피노자/잃어버린 내 한쪽 눈이 되기 위해/스피노자가 된 저 남자/안경을 닦고 하늘을 닦아/내 하루 동안 쓴 안경의/슬픔을 지워, 빛을 만드는/저 스피노자의 안경”(‘스피노자의 안경’ 전문) 아내를 위해 안경을 닦고, 그런 남편으로부터 ‘눈물’을 발견한 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한국교원대 교수)씨는 “‘아내의 안경’은 남편에게 ‘한 그루의 사과나무’일 것”이라면서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편의 위대한 노동은, 시인으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주제에 눈을 뜨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형질이 된 것 같다.”고 평했다. 정 시인은 “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스피노자의 안경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사의 시집 ‘아버지의 강’은 ‘시련 중에 있는 모든 어버이들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한때 가족들과의 ‘동반자살’까지 생각했던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해준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의 힘을 시집에 담았다. 5년 전 손 교사 가족은 거리로 나앉았다. 빚보증 한번 잘못섰다가 20년간 맞벌이 하면서 공들여 마련한 집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온종일 햇볕이라고는 들지 않는 산동네 골목의 단칸방에서 절망의 싹은 점점 몸집을 키워갔다. “불운의 폭격을 맞은 듯 풍비박산이 된 집/겨울비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무방비로 적시고/…/껍데기만 남은 것들을 빗속에 고아들처럼 남기고/…/마지막 남은 꿈들도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이사풍경’ 가운데) 하지만 그렇게 햇볕이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꿈까지 얼어붙는 와중에서도 이웃들은 나눔과 사랑으로 어둠 속에서 함께했다. 힘을 얻은 부부는 ‘아이를 등에 업고’ 백두대간을 걸으며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신혼을 떠올렸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파산자들이 속출하는 극단적 양극화의 풍경 속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희망의 두레박은 과연 있는 것일까. 동료 교사들과 이웃 화가들이 기꺼이 그려준 그림과 손 교사의 시편들에서 그런 두레박을 찾아보게 된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리크 게이트’ 리비 유죄평결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신분 노출 사건(리크게이트)으로 기소된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에게 유죄평결이 내려졌다.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 배심은 6일(현지시간) 리비의 5가지 혐의 중 위증, 사법방해, 허위진술 등 4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리비는 이에 따라 최고 3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리비는 2003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부인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조지프 윌슨 전 대사에게 보복하려고 그의 부인인 밸러리 플레임이 CIA 요원이란 사실을 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뒤 수사가 시작되자 “기자한테서 들었다.”는 등 허위진술을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초기 딕 체니 부통령 등 부시 행정부내 고위 관리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최종적으로 리비 한 사람만 기소돼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5주간 진행된 ‘리크 게이트’ 재판에는 플레임의 신분을 처음 폭로한 보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을 비롯해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부국장,NBC의 팀 루서트 워싱턴 지국장 등 스타 기자 10명과 애리 플라이셔 전 백악관 대변인, 존 해너 부통령 안보 보좌관 등 모두 19명이 증언대에 섰다. 그러나 리비의 변호인은 정작 리비에게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하도록 지시한 체니 부통령은 증언대에 세우지 않았다. 재판 초기 리비의 변호인은 백악관이 리비를 희생양으로 만들려 한다면서 처벌의 부당성을 피력했으나 이후 공판에서는 이를 부각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이 평결을 TV로 지켜봤으며, 리비와 그의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슬픔에 잠겼다고 전했다. 체니 부통령은 “평결에 매우 실망했다.”면서 “리비는 오랫동안 쉴 새 없이 뛰어난 분별력을 갖고 공직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리비에 대한 유죄 평결은 곧 체니에 대한 유죄 평결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뉴욕대의 폴 라이트 교수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재판은 부시 대통령이 행한 윤리 서약에 타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체니가 과연 현직을 오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면서 “이제 체니가 사직서를 제출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CIA를 사직한 플레임은 리비를 비롯, 리비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준 체니 부통령과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늘의 눈] 여수가 미워요/ 남기창 지방자치부 차장급

    “설마 괜찮겠지. 전에도 그랬는데….” 이러한 무사안일과 근무태만이 고귀한 1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달 11일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의 화재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현장 근무자 4명 가운데 1명만 똑바로 근무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후진국형 참사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보호동 3층 감시실에는 파견나온 용역업체 직원 1명만 있었다. 있어야 할 출입국 직원은 아예 없었다는 사실이 서울신문 보도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이전에도 그랬다고 한다. 철창 너머에서 수용자들이 “불이야, 불, 살려 달라.”고 절규한 시간 2층 상황실 당직자 3명은 대리근무자를 세워 놓고 잠을 잤거나 책상에서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했다고 한다. 방화범으로 지목된 김모(38·사망)씨는 불이 나기 4분 전까지 4번이나 304호실 철창을 오르내렸다. 철문 밖으로 손을 뻗어 감시렌즈에 젖은 화장지와 치약을 발랐다. 이 때 격리조치를 했다면…. 수용자들의 도망을 우려해 보호실 문을 늦게 연 것도 화를 키웠다. 사망자들은 소방관들이 문을 열기 전에 이미 질식사했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는 1월1일부터 2월6일까지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됐다. 경찰수사 관계자는 “직무대행체제 때 근무기강이 흔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근무 일지가 조작됐고 경찰에서의 진술도 엇갈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제 밝힌 경찰수사 결과에 유족들이 온몸으로 항변하고 있다. 차제에 이 같은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벌백계 해야 한다. 지금 여수에는 유족(28명)들이 20일 넘게 찢겨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으로 지새우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땅을 밟은 사망자들의 유족들은 여수와 한국을 미워하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되새겨 보며 이들의 슬픔을 감싸 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여수화재의 참사를 계기로 우리 주변에서 이런 후진국형 사건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기창 지방자치부 차장급 kcnam@seoul.co.kr
  • “野·언론이 국민사기극”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법안 등 민생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2월 임시국회 마지막날 야당과 보수언론을 향해 날선 비판을 내놨다. 유 장관은 6일 국정브리핑 기고를 통해 “(한나라당과 민노당은)국민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면서 “복지부 장관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눈물과 회한, 슬픔과 절망으로 넘쳐 흐른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내 주장은 보수가 좋다거나 진보가 좋다는 게 아니라 보수는 보수답게, 진보는 진보답게 책임 있는 자세로 토론하자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 “시행 첫 해 11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돼야 할 기초연금제 법안을 발의하며 동시에 국민에게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면서 “지난해 정기국회에선 노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비를 1000억원이나 삭감해 도로건설 등에 투입했다.”고 못박았다.민노당에 대해서도 “해마다 2000억원 넘게 들어갈 6세 미만 아동 무료예방접종을 시행토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담뱃값 인상에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언론에 대해서는 “신문 시장을 압도하는 보수신문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모든 노력을 ‘작은 정부론’으로 공격한다.”고 지적했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다신 이런 희생 없게…” 끝없는 애도 물결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27) 하사의 빈소에는 궂은 날씨 속에도 주말 내내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성남 국군수도병원 분향소에는 4일 오전 일찍부터 고인의 희생을 애도하는 조문객들이 늘어섰다. 분당에 사는 최윤환(11·탄천초 4)군은 아버지와 함께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시민 고성혁(40)씨도 “장하고 대단한 아들을 조국으로 보내주셨다.”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3일에는 윤 하사와 초등학교 때부터 ‘삼총사’ 친구였던 백현준·이호승(이상 27)씨가 찾아와 어머니 이창희(59)씨와 슬픔을 나눴다. 친구 이씨는 “지난해 파병 전에 휴가나왔을 때 앞으로 볼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 잠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미국에서 2일 밤 도착한 백씨도 “파병 전날 통화할 때 너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는데 ‘미군과 같이 있고 전투병이 아니어서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계 및 군 고위관계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4일 허평환 국군 기무사령관과 트롬비타스 주한미군 특전사령관이 유족들을 위로했다. 허 사령관은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와 안타깝다. 윤 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 방위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트롬비타스 사령관도 “용감한 사람이었다. 미군과 미 정부를 대신해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고 윤 하사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들이 한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전사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답했다.3일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영결식은 5일 오전 8시 국군수도병원에서 특전사부대장(葬)으로 치러지고 유해는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옛 성남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 전사자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고인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5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린다.3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은 4일 “영결식에 맞춰 윤 하사의 희생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병 한국군의 철군을 촉구하는 추모 촛불 문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또 이라크전 발발 4주년에 즈음한 17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에 맞춰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뒤 광화문까지 거리행진을 할 예정이다.성남 윤상돈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그대 조국애 영원하리”

    “그대 조국애 영원하리”

    하늘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에서 무장세력의 폭탄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27) 하사의 유해가 2일 오전 7시 아시아나 전세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장례식장 지하 1층 4호 분향실에 차려진 빈소에는 오전 9시부터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윤 하사의 아버지 윤희철(65)씨와 어머니 이창희(59)씨는 금쪽 같은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슬픔과 왕복 20여시간의 비행 탓인지 눈이 충혈되고 침통한 표정 속에 조문객을 맞았다. 특히 윤씨는 추도 예배중 복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윤씨는 “쿠웨이트에서 아들의 얼굴을 봤는데 잠만 자고 있더라. 오랫동안 못 봤으니 화장터에 가는 순간까지 영안실에 가서 보고 또 볼 생각이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어머니 이씨도 “국민들이 장호를 아껴 주셔서 고맙다. 하루라도 더 곁에 두고 보고 싶다. 오랫동안 같이 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인과 함께했던 다산부대원들이 먼저 빈소를 찾았다. 조재식(28) 대위는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국가여서 음주가 금지돼 있다.(한국으로) 복귀하면 옛날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약속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두 달간 함께 통역병으로 근무한 유성관(22) 상병은 “최고 선임병으로서 항상 밝은 얼굴로 도와주려 했다.”면서 “이렇게 돼서… 조금만 있었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기 전에 특전사령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엄선호(22) 병장은 “아직도 안 믿긴다. 동기라기보다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앞장서 부대원을 감싸 주는 큰형 같은 존재였다.”면서 “4월에 돌아오면 단골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기로 했는데 (다음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 꼭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인디애나대 경영학과 동창인 박철환(28·회사원)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최근까지 이메일로 연락해 왔다.”면서 “그 친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다시 만나 얘기 나눌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밝혔다. 대학친구 구충희(27)씨는 “아프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면서 “내가 말렸지만 가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빈소에는 한명숙 국무총리와 윤병세 통일외교안보수석, 김장수 국방부장관 등이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미 정부가 순직한 외국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동성무공훈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평화활동가 20여명은 낮 12시37분부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횡단보도에서 윤 하사의 나이를 나타내는 27분간 ‘플래시 몹’ 퍼포먼스를 펼쳤다. 참가자들이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라는 구호를 외칠 때마다 군복 차림의 사람이 일어나 “사람의 목숨은 저글링 놀이가 아니다.”라며 저글링을 펼쳤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추모의 글이 쇄도했다. 아이디 ‘nalsenne’는 “하늘마저 우는가 봅니다. 님의 고귀한 정신 후세에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이 땅에 전쟁이 없는 그날을 기다리며…”라고 적었다. 아이디 ‘원미애’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족분들 모두 힘내세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성남 윤상돈·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매번 송승환 대타지만 항상 히트쳤어요”

    “사연 속 이야기를 100%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을 열고 자세를 낮추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진행자가 되겠다.” 중견연기자 강석우(50)가 오는 5일부터 송승환의 뒤를 이어 MBC 라디오 ‘여성시대’의 진행을 맡은 첫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또 그는 “송승환이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진행을 했다면 나는 아무래도 성격 차이가 있을 테니 얌전하게는 못할 것 같다.”며 “말 실수가 제일 걱정이다. 절친한 친구이자 방송계 선배인 송승환씨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30%만 하라고 말해주더라.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며 부담감을 내비쳤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송승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인 강석우 때문에 앞으로 여성시대는 눈물뿐 아니라 웃음이 많아져 한층 듣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또한 강석우는 절친한 동료인 송승환의 ‘대타인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그동안 나는 송승환씨의 대타를 많이 했다. 드라마 ‘보통사람들’로 데뷔했을 때 역시 송승환씨의 대타로 출연하게 된 것”이라며 “송승환씨가 여행을 가거나 일 때문에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도 내가 항상 대타로 뛰었다.”고 말해 웃음바다를 만들었고 항상 대타도 열심히 하니까 이렇게 빛볼 날도 온다며 항상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석우는 3년 전 송승환 대신 며칠간 ‘여성시대’ 진행을 맡으면서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이 인연이 돼 이번에 새 DJ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는 5일부터 강석우는 양희은과 함께 매일 오전 9시10분부터 2시간가량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슬픔, 기쁨이 묻어있는 다양한 편지를 소개한다. 털털한 웃음이 아름다운 중년의 강석우가 얼마나 많은 청취자를 울리고 웃길까 기대가 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느림과 여유로 떠나는 여행

    인도로 긴 여행을 떠나기 전 후배가 건네준 건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우리 손이 닿을 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는 ‘19세기적 할머니’의 생활상을 담은 이 책은 사랑을 잃고 사람의 들고 남에 지치고, 시원찮은 글쓰기에 코 빠뜨린 나에게 얼마간은 위로를 준 것이 사실이나 그것만큼 좌절과 망연자실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가꾸며 수백 종의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그녀의 일상이라면 손에 닿을 행복 없이도 마냥 웃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일주일쯤 전화기를 손에서 놓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무의도식하였다. 외로움과 공허함과 가슴 아픈 것들을 온전히 혼자 맞닥뜨려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이런, 솔직히 고백하자면 방치다. 남의 말과 생각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청승이나 떨어보자는 심산이었는데, 그러던 중 불쑥 여행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후일담은 칼럼 뒤에 얘기하도록 하자. 위험한 첫사랑이 시작된 곳, 차갑고 막막한 세상에 대한 은유 ‘알래스카(alaska,de·2000년)’. 많은 영화가 그렇듯 개봉의 기회가 참으로 더디게 열렸다.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 소녀의 위험한 첫사랑을 그린 영화 ‘알래스카’는 이혼한 아빠와 살기 위해 낯선 도시로 전학온 사비나와 전문 유리창닦이가 되고 싶은 온순한 성격의 에디, 소년원을 밥 먹듯이 드나드는 문제아 미샤,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황폐한 대도시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10대들의 위태로운 삶과 사랑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알래스카’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황폐하고 거친 대도시 변두리의 차갑고 막막한 풍경을 표현하는 동시에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심리적 풍경을 표현한 말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꿈꿔왔던 드림 프로젝트!‘사랑해, 파리(paris,je t’aime·2006년)’. 코엔 형제, 알폰소 쿠아론, 구스 반 산트, 웨스 크레이븐, 월터 살레스, 알렉산더 페인, 빈센조 나탈리 등 기라성 같은 감독들과 나탈리 포트만, 엘리야 우드, 줄리엣 비노쉬, 스티브 부세미, 닉 놀테, 윌리엄 데포, 메기 질렌홀 등 세계 톱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에펠탑, 몽마르트, 센 강변 등 파리를 배경으로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등 각기 다른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사랑의 달콤함과 추억의 향기가 가득한 연인들의 도시 파리에서 피어난 ‘사랑해, 파리’.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하는 동시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산재하는 작업과 수많은 미팅들. 또 그것을 위한 준비. 그리고 가슴에 남은 감정의 덩어리들은 잠시 놓았다. 그랬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기보단 그러기 위한 여행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밤샘작업으로 대충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침녘에 나서 차안에서 부족한 잠을 채웠다. 그리고 대관령의 고개를 단숨에 넘어 도착한 바닷가. 떠나지 않을 수 있으면 그래 보려고 했던 내 고집이 단숨에 무너졌다. 나를 부여잡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아니라 내 스스로였음이 아파왔다. 왜 좀 더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 자리에 바다는 날 향해 가슴을 내놓는데…. 그 말이 맞았다. 행복은 손닿을 곳에 있었다. 돌아올 곳을 두고 떠난다는 건 여유와 느림의 지혜를 알게 한다. 시나리오 작가
  • “나라 살리려던 사람 죽고 꾀부린 사람만 살아남아”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 죽어가면서 옥살이 하면서 나라 살리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고, 꾀부린 사람들만 살아 남았어.”경기도 양평군 용수사에는 3·1 운동에 참여했던 독립투사인 유정(여·104·속명 임엽) 스님이 초고령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생존해 있다. 유정 스님은 1999년 사찰땅 1만여평을 송두리째 사기당했다며 청와대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6년여 동안의 억울한 소송사건에 휘말려 마음고생이 가시지 않은 상태지만 그러나 3·1절을 앞두면 모든 것이 숙연해진다고 한다. 유정 스님은 “지금도 일본 소리만 들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면서 “요즘 친구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잘 모른다.”고 젊은이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용수사 주지스님인 유정 스님은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서 자신보다 한 살 많았던 유관순 열사와 함께 죽을 힘을 다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1903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집성촌이 있는 천안에 머물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사람들이 ‘동천 마당에서 난리났다.’고 그러더라고. 그 때는 거기(아우내)를 동천이라 불렀거든. 가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 내가 그 나이에 무슨 혁명투사, 독립투사였겠어. 아무 것도 모르고 끼게 된 거지.” 유정 스님은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친다.”면서 “일본 사람들 횡포가 말도 못했지. 순사들이 우리한테 장총을 겨누더니 막 쐈어. 죽어나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애 어른 할 것 없이 죄다 쏴 죽였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유정 스님은 스무살 무렵이던 1920년대 중반 첩자로 오인받아 고문을 받은 뒤 산사에서 휴양을 하던 중 승려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어느덧 불가에 귀의한 지 80년을 훌쩍 넘겼고 10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산에서 나물을 캘 정도로 정정하다. 유정 스님은 3·1운동 당시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유관순이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만세삼창을 하는데 가슴쪽 천에는 ‘내 나라 내놔라.’라고 씌어 있었어. 일본 순사들이 ‘주동자다.’그러면서 잡아갔지….” 유정 스님은 올 3·1절에는 서울에 올라가 젊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다. 한민족운동단체연합과 불교조계종대각사,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의 주관으로 열리는 ‘3·1문화대제전’에 참석해 젊은 친구들에게 1919년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계획이다. “그 때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은 다들 힘들게 살다 갔어. 백성들도 고쳐야 할 것이 많아. 세상이 못 됐다고 욕만 하면서 뒷짐을 지고 있으면 어떡해. 좋은 세상이 오도록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야지.”양평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사설] 해외파병 장병 안전대책 강화해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윤장호 병장이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테러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인디애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조국의 병역의무를 다하려 자진 입대한 청년의 죽음인지라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하다. 유학시절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삭발기도를 했을 정도로 효성과 신앙심이 깊은 막내 아들이었다.‘여긴 밥도 맛있고 위험한 것 하나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외려 부모를 위로하던 그 아들이 제대를 불과 석달 앞두고 참변을 당했으니 부모의 충격과 슬픔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윤 병장의 참변은 베트남전 이후 해외에 파병된 한국군으로서 처음 테러에 의해 희생된 사례다. 지금 우리 장병은 이라크 2300여명을 비롯, 세계 8개 분쟁지역에 2500여명이 파병돼 유엔평화유지군(PKO)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 병장이 근무한 바그람 지역은 그동안 테러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곳이다. 윤 병장의 희생은 결국 그 어느 파병지도 테러 위협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언제든 제2의 불행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만 해도 테러의 표적은 아프가니스탄을 극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었다. 우리 군이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던 윤 장병이 뜻 밖의 변을 당한 것이다. 미국은 보안상 정상급 인사들의 테러지역 방문은 극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테러범에게까지 정보가 새는 판에 동맹국에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동맹국 장병이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오는 7월이면 레바논에 새로이 350여명이 파병된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미군과의 정보공유 등 해외파병군 안전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불요불급한 파병군을 감축하거나 조기 철수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 故 이은주 눈물 속 2주기 추모식

    2005년 2월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큰 충격을 줬던 배우 이은주의 2주기 추모식이 22일 오후 7시 서울 CGV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그의 팬클럽과 생전 소속사였던 나무엑터스 등이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이은주의 어머니 최순향씨를 비롯, 그의 유작인 ‘주홍글씨’에 함께 출연했던 한석규, 엄지원과 나무엑터스 소속 김태희, 김주혁, 김민정, 김소연, 김효진, 친구 바다와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도 참석했다. 특히 이날 추모식에서는 이은주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이은주 Only One’ 음반과 뮤직비디오가 첫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컴퓨터그래픽과 사운드 믹싱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이은주가 살아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으며, 뮤직비디오 역시 이은주가 영화 속에서 노래부르는 장면 등을 합성해 사실성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김대승 감독은 추도사에서 “스타들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슬픔을 달래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존재들인데 정작 우리는 은주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했다.”며 “같이 세월을 쌓아가면서 든든한 동지가 돼주는 스타들을 우리가 든든히 받쳐줬으면 하고, 오늘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한편 주최측은 ‘이은주 Only One’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추모사업회를 통해 젊은 영화인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서울 연합뉴스
  • [프로농구] 인기짱의 슬픔

    ‘영원한 오빠, 식지 않는 인기.’ 새달 1일 울산에서 열리는 남자프로농구 올스타전은 11회째를 맞는다. 올스타를 선정하기 위한 팬 투표는 01∼02시즌부터 시작됐다. 이전엔 기자단 투표였다.‘영원한 오빠’ 이상민(35·KCC)이 첫 실시된 팬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새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됐다. 흐르는 세월 탓에 최근 개인 성적이 내리막이고, 특히 올시즌 팀은 바닥을 헤맨다. 하지만 ‘그놈의 인기’는 이상민을 떠날 줄을 모른다. 한국농구연맹(KBL)은 06∼07프로농구 올스타전 팬 투표 결과 이상민이 13만 2633표 가운데 5만 296표를 받아 최다 득표자가 됐다고 21일 밝혔다. 이상민은 현장 투표에서 주희정(KT&G), 신기성(KTF), 양동근(모비스), 키부 스튜어트(SK)에 밀렸지만 인터넷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2위는 KT&G의 주희정(4만 5540표).6회 연속 장기 집권하고 있는 셈. 또 프로농구 첫 해를 제외하곤 98∼99시즌부터 9회 연속 ‘베스트 5’에 선정됐다. 자로 잰 듯한 패스와 깨끗한 3점포 등 깔끔한 플레이, 경기장 밖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코트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샤프한 외모와 훈훈한 매너….19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점화된 이상민의 불꽃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요즘도 중·고교 여학생들이 “오빠!”를 외치며 따라다닐 정도다. 김광 KCC 코치는 “(이)상민이는 농구대잔치 시절 얻었던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팬들이 많은데 조금은 갸냘픈 몸매에 여성스럽다거나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어 연령대를 떠나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식지 않는 이상민의 인기는 현재 프로농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김승현(오리온스), 양동근, 방성윤(SK) 등이 이상민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고 있으나, 인기에선 그렇지 않다.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 초창기 열기에서 탄생한 팬들은 지금까지 건재하지만, 이상민의 뒤를 잇는 새 얼굴들이 올드 팬을 뛰어넘는 새로운 팬층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만큼 농구 인기가 식었다는 반증이다. 이상윤 엑스포츠 농구해설위원은 “스타 만들기는 구단이나 연맹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국내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의 그늘에서 벗어나 제 솜씨를 발휘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농구판을 만들어야 스타가 나온다.”고 말했다. 또 “대형 선수가 여럿 나와야 저변이 넓어지고 저변이 넓어져야 스타가 또 탄생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슬플 땐 슬퍼할 것”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극복이란 말은 강요의 성격을 띠잖아요. 그건 슬픔에 잠긴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거예요. 슬플 땐 슬퍼하는 것 외엔 다른 기도가 없지요.”(박완서) “때론 잊으라는 말도 공허한 충고가 되더라고요. 위로할 수 없으면 침묵하는 게 제일 좋지요.”(이해인) “옛날에는 여자들이 고생은 했지만 공허함을 느끼진 않았지요.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 완전히 내면화되었으니까요.”(이인호)“삶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면 아주 평화로워져요. 열매가 익어서 꼭지가 똑 떨어지듯이, 삶도 그렇게 갈무리해야 해요.”(방혜자) 소설가 박완서(76)와 이해인(62) 수녀, 서양화가 방혜자(70)와 역사학자 이인호(71)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시대의 큰 누이 같은 이들이 나눈 삶의 이야기가 ‘대화’(도서출판 샘터)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정리돼 나왔다. 지난 몇년 새 월간 ‘샘터’에 대담 형식으로 실린 글들을 한데 묶은 것. 잠언과도 같은 구절들이 가득한 ‘지혜의 서(書)’다. 박씨와 이해인 수녀는 문학, 종교, 슬픔, 사랑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씨는 작가의 자기절제를 무엇보다 강조한다.“쓸 얘기가 고갈되었을 땐 과감히 붓을 꺾을 줄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으로 먼저 떠난 자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작가에게 문학이란 삶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정의한다. 이슬처럼 맑은 영성을 추구하는 수녀 시인 이해인. 그는 인터넷 문화의 폐해를 슬몃 지적한다. 인터넷에 자신이 쓴 게 아닌데 자기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시가 수십 편이 된다고 밝힌 그는 “요샌 누구나 다 시인이니까…”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빛의 연작’ 방씨와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로 꼽히는 이씨는 일찍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해 온 ‘여성 선각자’. 방씨는 “캔버스가 없으면 치마를 찢어 사용했다.”고 회상한다. 이씨는 1990년대 후반 이른바 ‘4강’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대사로 가게 됐을 때 여성이란 점에서 저항이 만만찮았다고 한다.“외교적으로 중요한 나라에 여자를 보내 러시아 사람들이 화가 났다느니, 보드카를 못 마셔 외교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한다느니…. 보드카는 외교계의 술이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인데 말이지요.” 우리 사회의 역할모델이 될 만한 네 명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한 가닥 삶의 지침을 전해주는 책.1만 1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잘 가거라 2006년] 나의 올해는 행복했다

    [잘 가거라 2006년] 나의 올해는 행복했다

    글 송정림 소설가, 방송작가 KBS TV 소설 <너와 나의 노래> <약속>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등의 방송, 그리고 작품집 《슬픔이 아름다울 때》 《라디오 러브스토리》 등과 단상집 《마음풍경》과 자녀교육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해줘야 할 46가지, 성장 비타민》을 펴냈다. 하얗게 망각한 이름 하나가 차가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힌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친구 하나가 거리를 가로질러 달려와 내 어깨를 감싼다, 절대 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용서 하나가 거리를 달려와 내 손등을 어루만진다….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이는 요즘은 주의하시라,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환상, 착오, 오해, 상상….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해를 살아온 나를 위로해 주는 따뜻한 착각이 아닐까. 언제나 한 해를 돌아보면 단어 하나가 풍선처럼 솟아오른다. 다사다난! 올해라고 다를까. 나라고 다를까. 일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런 만큼 많이 배웠고 많이 깨달았고 많이 컸다(늙었다는 표현은 싫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은 큰다). 그런데 아주 행복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다른 안 좋은 일은 다 잊어버리게 즐거운 사건이다. 아들 재형이와 함께 책을 냈고 그 책이 뜻밖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냥 추억 하나 만들자고 한 일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세상일이 그런 것 같다. 이건 꼭 잘 돼야돼, 어깨에 힘주면 잘 안 되고 그냥 즐겁게 하자, 힘 풀면 그 일은 잘 된다. 제품디자이너가 꿈인 고등학생 아들이 삽화를 그리고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 느낀 점을 쓴 책 《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해줘야 할 46가지, 성장 비타민》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것만으로 한 해의 캘린더가 온통 푸른색으로 색칠이 된다. 그것뿐인가. 올 한 해 얻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아들 재형이 키가 더 자랐고, 그 애 마음이 더 자랐으며, 시험공부다 뭐다 하는 동안 그 애의 지식이 늘었고, 밤새는 엄마에게 타주는 커피 맛이 더 향상되었으며, 그 애 친구가 더 늘었고, 성격 아직 안 버리고 대한민국 고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올 한 해 얼마나 감사해야 하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땅에 엎드려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게다가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남편이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으며 형제자매들이 응원해 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또 올 한 해가 보람찼노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일 아침 방송(KBS 1FM <출발 FM과 함께>) 원고 쓰는 일을 하루도 펑크 내지 않고 무사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아주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다.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즐겁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고 팀웍이 좋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해피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으니 입이 천 개 만 개 있어도 그 고마움 다 말할 수 없다. 또, 친구들이 곁에 있고, 새롭게 좋은 사람들을 알았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 올 한 해도 나는 대박을 친 셈이다. 통장 잔고는 비었어도 마음의 창고에는 수확물이 가득하니 올해도 남는 장사한 것이다. 리차드 바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가장 가치 있는 단 하나의 질문은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밀리 디킨슨도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게 아니리”라고 노래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위해 온 마음을 다했다면 올해도 보람찼노라, 자랑해도 된다. 잃은 것 헤아리면 끝이 없다. 나 역시 가슴 아픈 상실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잃은 것은 헤아리지 않는다. 얻은 것 헤아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인생 셈법이다. 흰 머리카락만 세지 말고 사람을 세고, 몸무게만 달지 말고 마음무게를 달아본다면 올 한 해도 누구에게나 대박이다.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인다. 이제 남은 일은 사랑의 힘으로 한 해를 추억하는 일, 그리고 역시 사랑의 힘으로 새해를 꿈꾸는 일이 아닐까.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10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경상북도 청도〉(YTN 오전 11시35분)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여행지, 경북 청도로 떠나본다. 전국 감 생산의 20%를 차지할 만큼 감의 고장이기도 한 청도를 찾아 다양하게 특화시킨 생산품을 만나본다.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 와인터널을 들러 은은한 색소폰 연주와 함께 와인도 즐겨본다. ●행복주식회사-만원의 행복(MBC 오후 4시40분)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두 아들의 응원을 받으며 포부도 당당하게 만원의 행복 두번째 도전을 시작하는 현철. 박경림, 브라이언, 주영훈의 방해작전에 괴로워한다. 박해미의 만원의 행복 도전 최대의 적은 식신 정준하. 초반부터 해미를 흔들리게 하는 준하의 방해작전이 시작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은 동으로는 오만, 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한다. 국경의 절반 정도가 바다와 만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거주지역 중 하나로 3000년이 넘는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나라다.1000개의 풍경과 이야기를 가진 곳, 예멘으로 떠나본다.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노인복지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밝은 김사윤 어르신.‘앙크룽’이라는 악기를 시작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앙크룽으로 제2의 청춘을 맞이한 어르신의 건강비법을 알아본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김용수 어르신의 특별한 책 사랑도 소개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제대혈이란 산모가 출산할 때 탯줄에서 채취하는 혈액을 말한다. 향후 줄기세포 연구에 따른 난치병의 치료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대혈 보관을 고려하는 부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의학적 자원인 제대혈의 효과적인 관리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지연을 찾아온 하영은 준호와의 관계가 지연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알려준다. 충격을 받는 지연의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준호는 달라진 지연 앞에서 당황한다. 입양시설에 보내진 세종이 힘들어 한다는 연락을 받은 태섭은 세종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한다. 태섭의 부모는 태섭이 걱정스럽다.
  •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배우 안나 니콜 스미스 돌연사

    미국의 성인잡지 모델 출신 배우 안나 니콜 스미스가 8일(현지시간) 39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 레스토랑 종업원, 스트립쇼걸, 플레이보이 모델에서 재벌 총수의 부인이자 유명 토크쇼 사회자로 수직 상승했던, 굴곡으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 유전’이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CNN 등이 전했다. 험난했던 성장과정, 짧은 기간 정상에서 주목받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막을 내린 생애 등으로 지난 195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도 비교된다. 1967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니콜 스미스는 1992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동했고 1994년에는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 2세와 결혼했다.‘허드서커 대리인’과 ‘총알탄 사나이 33 1/3’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1995년 하워드 마셜 2세가 90세 나이로 숨지고 수억달러에 이르는 유산을 둘러싼 법정 분쟁을 벌였다.2002년 리얼리티 TV쇼 ‘안나 니콜 쇼’로 연예인으로 재기했고 체중감량 보조제 회사 대변인으로 활동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바하마의 한 병원에서 딸을 출산하는 기쁨과 같은 달 11일 아들 대니얼이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슬픔을 동시에 맛보았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송사에선 첫 재판에서 4억 7400만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8900만달러로 깎였다가 결국 한푼도 받지 못했다. 소송 당사자인 피어스 마셜이 지난해 6월 사망했기 때문이다. 관련 재판은 연방 법원에 계류 중이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기고] 노무현 대통령 교황청 방문을 앞두고/성염 駐 교황청 대사

    1984년 5월3일 오후 2시14분 김포공항에 도착, 알리탈리아 전용기에서 내린 백의의 인물이 트랩을 내려와 땅바닥에 입맞추며 “순교자들의 땅이로다.”라고 뇌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경외하여 그 흙에 입을 맞추는 다른 국가원수가 또 있을 성싶지 않다. 서툰 발음으로 “벗이 먼데서 찾아왔으니 기쁜 일 아닙니까?”라는 우리말 인사가 그의 입에서 나왔을 적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첫 번 방문에서만도 “분단된 한국의 고난은 분열된 세계의 상징”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지나간 시대의 고통이 보다 나은 시대를 내다보는 자신감을 감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존중, 정의와 평화의 항구한 추구라는 굳건한 바탕에서 한국의 현시대와 미래를 정위시켜 나가십시오.”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를 직접 찾아가 그 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으로 아직도 시달리는 이들, 불안과 환멸로 가득찬 상처입은 가슴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격려나 나환우들이 있는 소록도를 방문하여 그들의 처지를 나누던 모습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선지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85세로 서거한 2005년 4월8일 바티칸 장례식에 국가원수 및 행정수반들이 대거 참석하고 400만명의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던 장면에 우리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조문사절단장 이해찬 총리를 수행하여 장례식장에 간 필자의 바로 눈앞에서 이스라엘 카사브 대통령이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과 차례로 악수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거기서는 군대와 돈과 권력이 아닌 다른 힘이 지배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경사롭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경악스럽게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자정에 다가가는 듯한 인류종말의 시계가 인류를 다시 군사와 경제의 논리가 아닌 도덕적 인도적 호소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곳,“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고 타이르는 곳, 이라크 전쟁에 끝까지 반대하다 전쟁이 일어나자 “하늘 무서운 줄 알라!”고 호통치는 양심을 향해서. 교황청과 수교를 맺은 지 44년째 되는 해에,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이래로 두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하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핵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긴장을 두고 “핵무기는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한다.”던 선교황의 호소도 있었고, 지난 1월8일 전세계의 주교황청 외교단을 향하여 “한반도에는 위험스러운 불씨가 잠재해 있다.”면서 “한민족을 화해시키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노력은 주변지역 전체에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지만, 이 같은 목표는 어디까지나 협상의 틀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우리의 6자회담을 격려한 교황, 그리고 “이런 대화가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돌아갈 인도적 지원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교황과의 회담에서 우리 겨레의 하나되려는 노력을 성사시키는 지혜로운 길이 열렸으면 한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교황직에 취임한 후 외교단과 처음 상견하는 자리에서 “나는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겪은 나라에서 왔습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하였기 때문에 우리 겨레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이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성염 駐 교황청 대사
  • ‘1번가의 기적’ 철거촌 무명복서역 하지원

    ‘1번가의 기적’ 철거촌 무명복서역 하지원

    인터뷰도 연기(?)일까. 비록 짧은 시간 만났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 검은 눈동자는 아주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때론 슬픔, 유쾌, 열정, 외로움, 공허함. 변하는 감정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며 삶과 영화에 대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색즉시공’ ‘다모’ ‘형사’ ‘황진이’까지만 이야기해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배우 하지원(28)이다. 에어로빅, 검술과 무술은 물론 전통 춤과 거문고까지. 연기를 위해 못하는 것이 없는 그녀가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복싱’을 들고 나타났다. 달동네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꿈과 희망을 품고 사는 철거촌인 1번가에 10년차 철거 깡패가 들어오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랑과 웃음이 시작되는 휴먼코미디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하지원은 가난한 여성 무명 복서 명란으로 나온다. #자기를 만들어 가는 배우 하지원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있는, 아니 운이 좋은 배우’라고 말하지만 그녀와 한번이라도 작품을 같이 한 사람이라면 ‘어떤 배역이든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배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드라마건 영화건 ‘필’이 꽂혀야 작품을 해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라 대충대충 하는 꼴을 못 봐요. 그래서 매번 작품마다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오로지 작품 속의 인물로 거듭나려고 발버둥치지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만화 ‘캔디’의 주제곡처럼 항상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그녀는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며 “돈, 명예, 미모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역할은 재미가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명란은 자신이 정말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였다.”는 그녀는 그래서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윤제균 감독의 설명만 듣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원은 전형적인 청순가련형도,S라인의 섹시함도, 완벽한 미모의 배우도 아니다. 오로지 ‘연기’로 승부하고 ‘근성’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배우다. #멍들고 힘들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동양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몸도 마음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으로 가득찬 가난한 복서 명란. 맞아도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작고 가녀린 체구의 그녀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펼치는 권투 시합은 정말 인상 깊었다. 이번 영화를 위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8시간씩 복싱 연습을 했단다. 단순히 펀치 자세를 잡는 것이 아니라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스파링을 수십 차례 했다.“집에서 멍이든 얼굴을 볼 때 마다 속이 상하고 아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얼굴로 먹고 산다는 여자 배우 중에 이렇게 얼굴을 막 굴릴(?) 수 있는 여자 배우가 또 있을까. 그녀는 사흘 동안 시합 장면을 찍은 뒤 10일 동안 이빨이 아파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슴 따뜻한 코믹 영화 ‘1번가의 기적’을 복싱 영화나 코믹물로 생각하면 오산. 재개발로 곧 없어질 철거촌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어우러진 가슴 따뜻한 영화다.“보고 나면 정말 기분 좋은 영화예요. 힘들어서 우울한, 하고 싶은데 포기하려고 하는 분들은 꼭 보세요. 웃음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상업영화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이렇게 따뜻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던 작품은 보기 드물다. 연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녀도 이젠 이십대를 훌쩍 넘겼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직 사랑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싶다는 배우.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단의 어른으로서 뜻하지 않게 후배들의 반발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오직 한길로 35년을 봉직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다.’이런 상황이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혹은 착잡해지거나 감회에 젖어 많은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정희성(62)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작가회의 명칭 변경이 무산된 데나, 평생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게 된 데 대해서 시인은 의외로 평화롭고 담담했다. 맑은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 서울 아현동,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과작(寡作) 시인답게 말수도 적었다. ▶정관 개정이 무산됐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무산이 아니라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걸려 결정을 못한 것이지요.2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명칭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겠습니다. ▶작년 1월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민족문학’이란 용어를 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 그 사이 생각이 변한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분단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민족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해 온 결과, 작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한과 해외문학인들을 포괄하는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민족문학에 분명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지요. 그래서 민족문학은 이 틀에서 다루게 두고, 우리는 명실공히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인 만큼 포용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젊은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으로는 전체를 포용할 수 없을까요. -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해 온 이미지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성’‘좌파’로 몰리는 반면,‘세계작가와의 대화’ 등 국제교류를 할 때는 ‘내셔널’이란 명칭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단체로 오해받아요. 또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민족문학’개념으론 포섭될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총회 석상에서는 ‘문학은 포기해도 민족은 포기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지만, 문학이 민족문제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문학을 버리고 어떻게 민족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족문학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상임고문이 명칭개정에 찬동하고 있는 이때, 일부 후세대 작가들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백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서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주주의 쟁취와 민족통일을 양대과제로 내세운 한시적 개념이었다. 백 교수는 이제 진영개념으로서 민족문학론은 내실을 잃었다고 보고 새롭게 ‘한국문학론’을 제시한다. 민주화는 완수됐고,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으로 분단체제도 극복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진정한 국민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작가 황석영은 작가회의에 대해 “조직이든 집이든 사람이 만든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친목회 정도의 기능만 남았다면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일갈하고,“분단체제는 남북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작가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던 만큼 심도있는 논의와 우편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했다. ▶정든 교직을 떠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교직 35년, 문단 37년이니 두 경력이 비슷합니다. 그동안 제자 1만명, 시집 4권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길렀으니 행복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기에 용의주도하게 살았다고도 생각됩니다.70∼80년대 주목받던 저항시인으로 1979년 세계시인대회 시위,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하거나 잡혀갔는데도 자신은 훈방되거나 해직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교교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신이 쓴 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무돼 시위에 나서고, 한 여고교사는 시 ‘아버님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선동죄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의주도하게 살았다는 말은 이런 책임의식 때문인 듯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고교교사로 남겠다며 학위논문을 내지 않았다면서요. -대학교수가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1972년 논문만을 남기고 상아탑에서 나왔을 때는 가파른 유신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적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졌고, 이런 관심에 대한 해답이 아닌 다른 논문은 쓰고 싶지 않아 포기한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문예창작과가 많이 생기면서 기회가 또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대학교수가 되면 시가 안 좋아지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사장의 시에는 그 시대의 현실과 급소가 생생하게 표출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무뎌지신 건가요,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가파른 시대에는 쓰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아졌습니다.2000년대 9·11테러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많이 담고 있지요. 무뎌진 점도 있겠지만 관심의 확장으로 봐 주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옛날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처럼 주먹 쥐고 하는 얘기들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또한 현실 문제는 그 시대의 가장 젊은 문인들에 의해 잘 포착될 것입니다. 퇴임식 때 다섯번째 시집을 내 동료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결국 편수를 못메워 싱거운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백령도를 다녀와 40행이나 되는 시 ‘몽유백령도’를 썼다. 짧아지던 시가 예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가는 듯한 느낌이라 기쁘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장이 저항의 시를 썼던 것도, 이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것도,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논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진행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희성 그는… 1945년 경남 창원 출생(만 62세).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충남, 대전, 이리, 여수를 다니며 살았다. 용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국문과를 나왔다.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탁목조’가 당선돼 등단했다.1972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부임해 35년간 재직하고 그제 정년퇴임했다. 글을 쓸 생각이면서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고전문학을 공부해 전통의 바탕에서 창작을 하리라는 계획에서였다. 첫 시집 ‘답청’(1974)’은 그의 생각대로 ‘고전적인 전아함’을 갖춘 시들로 꾸몄다.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해직과 투옥을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나온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에는 칼칼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겼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로 시작되는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어두운 현실을 처절한 서정에 담아 형상화한 대표작이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내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란 시구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신은 시대가 현실주의자를 만들었지 본질적으로는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2001년)는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반독재 문학단체에 몸담아 2006년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yshin@seoul.co.kr
  • [씨줄날줄] 소년병/이목희 논설위원

    “9살에 반군에 납치돼 소녀병사 생활 시작, 성노리개 전락, 초경 시작하자마자 임신, 반군 중대장과 사이에 두 딸, 다른 반군 장교에게 폭행당해 딸, 반군에서 도망치자마자 정부군 장교에 의해 아들. 날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아프리카 소녀의 사연이 탤런트 조민기씨를 눈물짓게 만들었다.‘기아대책’ 나눔대사로 우간다를 다녀온 조씨. 앞서 아프리카를 돌아본 선배 탤런트 김혜자씨는 시에라리온에서 말문을 잃는다. 어른들의 다이아몬드 탐욕으로 인한 내전. 그곳엔 성한 아이들이 없었다. 김씨는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이를 전쟁에 내몰지 말라.”고 절규한다. “사람을 쏘는 게 물 마시듯 쉬웠다.”는 12살 소년병 출신의 증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처럼 마약에 취해, 위협에 의해 소년들이 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엔이 정한 소년병 기준은 18살 미만이다. 국제분쟁지역에 25만명의 소년병이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전투병은 물론 연락병, 짐꾼, 간첩, 성노예 등 착취방법은 다양했다.5살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 주는 극악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소년병이 문제되는 지역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등. 우리도 한국전쟁때 어린 병사의 희생이 있었다.14∼16세의 학도병들이 나라를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북한 인민군에 강제징집된 이들의 얘기는 비극적이다.A씨는 북한군 점령지역의 중학교에 등교했다가 인민군에 차출되었다. 당시 14세. 변변한 전투도 못해 보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풀려난 뒤 뇌물로 신원조회를 통과해 일류대학에 들어갔고,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소년병 얘기가 나오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소년병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16살부터 징집을 시작하는 북한. 제대로 못 먹여서 왜소하기까지 하니…. 북한군 대부분의 행색이 영락없는 소년병이다. 프랑스 파리에 모인 58개국 대표들이 엊그제 소년들의 군징집을 막는 파리규범에 서명했다고 한다. 단순히 선언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집단학살처럼 반인류범죄로 삼아 세계가 함께 징벌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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