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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새소설 ‘바리데기’ 출간

    황석영 새소설 ‘바리데기’ 출간

    뿌리 뽑힌 자의 허망함은 뿌리 뽑힌 자가 가장 잘 안다. 굶주린 자의 허기는 굶주려 쓰러져 본 자가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의 슬픔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가슴 속까지 쩍쩍 갈라터진 자가 가장 잘 안다.‘바리’는 그런 여자다. 뿌리 뽑혀 북한 청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부초처럼 떠밀려 다녔다. 한 끼 밥 걱정 없이 하루를 살지 못했고, 부모는 생사조차 모르며, 동생 현이는 얼어 죽었고, 할머니도 딸 홀리야 순이도 떠나보내기만 했다. 소설가 황석영(64)은 새 소설 ‘바리데기’(창비 펴냄)의 주인공 바리를 그렇게 창조했다. 누구보다 아팠고 누구보다 억울했기에 누구든 공감하고 어떤 이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는 사람. 황석영은 ‘만신 바리’를 만들기 위해 어린 바리에게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겼다. ●문장은 인테리어 불과… 구성이 중요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소설 구성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황석영은 “요즘 문장 문장 하지만 문장은 인테리어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 곧 자기형식”이라고 강조했다. 작가의 펜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환상이되 현실이고, 설화이자 실화며, 은유이되 직설이다. 소설은 바리데기 설화를 원용했다. 설화 속 바리데기는 무당의 원형이다.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버려진 바리데기는 서천 생명수를 구해와 병들어 죽은 부모를 살린다. 소설 속 바리도 일곱째 딸이고, 버려졌다. 바리가 넋을 띄워 만나는 모든 헛것들은 황망하고 쓸쓸한 것들뿐이고, 우는 사람들뿐이다. 황석영의 손끝을 거친 후 바리는 ‘가장 고난 받는 자’와 ‘가장 고난 받는 자의 치유자’로 재해석됐다. ●90년 이후 세계사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동과 조화’. 작가가 집약해 표현한 작품주제다. 바리의 인생역정엔 영국과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세계화의 격랑을 관찰한 작가의 고민이 배어 있다. 바리는 90년 이후 세계사의 모든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동을 강제하는 소용돌이의 핵으로 작가는 신자유주의를 지목한다. 바리는 중국으로,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심장 런던으로 떠밀려가고,‘뱀단’(밀항자) 브로커에 걸려 인신매매 당한다. 이주노동자 단속에 하루하루 떨고,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후엔 파키스탄인 남편 알리까지 쿠바 관타나모 감옥에 갇힌다. 이동이되 ‘유목’이 아닌 ‘유랑’이다.‘주체적 노마드’가 아닌 ‘주체가 원치 않는 유랑’이다.‘공존의 조화’가 아닌 ‘온갖 상처로 얼룩진 섞여듦’이다. ●올해 10월 파리서 귀국 “누구에게나 평범한 보통 여자아이로 보여지길 진심으로 원했던” 바리, 남을 위로하기 전에 “슬퍼 살 수가 없어.”라며 자신부터 위로받기 원했던 10대 소녀 바리. 바리에게 ‘잔인한 고통’을 안기면서 황석영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불바다→피바다→무쇠성→서천으로 이어진 여정 끝에 바리 입에서 ‘공수’가 터지는 과정에 꾹꾹 집약돼 있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고 애달아 죽은 세상의 넋들과 팔 떨어지고 목 떨어지고 붕대 매고 의족 짚은 사람들이 묻는다.“우리가 받는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악한 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가”…. 바리가 답한다.“사람들 욕망 때문이래.”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대, 이승의 정의란 늘 반쪽이래….” “남북 분단과 정치적 문제에서 이제야 한 걸음 벗어난 것 같다.”는 작가는 오는 10월 4년간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파리에서 귀국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영원한 샤롯데’ 서승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영원한 샤롯데’ 서승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⑬] “나이를 까먹지 않고 제대로 먹었거든요. 엄마는 벌써 신랑감을 찾는 것 같아요” 1979년 3월 선데이서울 표지를 장식했던 기사에서 스물한 살 서승희(본명 서미경)가 처녀티가 완연하다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한 말이다. 조선 정조시대의 세도정치가 홍국영과 상노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TBC-TV 드라마 <상노>(1978.7.10~1979.3.31)에서 용녀(龍女) 역을 맡아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때다. 아역 탤런트로 활동했던 서승희는 안양예고를 다니던 1977년 제1회 미스롯데로 뽑혀 국내 제일의 ‘얼짱’으로 공인 받았다. 롯데그룹은 TBC-TV와 함께 77년부터 80년대까지 탤런트 겸 자사의 CF모델을 뽑는 미스롯데 선발대회를 공동개최했는데, 뽑히기만 하면 곧바로 탤런트가 될 수 있어 경쟁률이 300대1에 이를 만큼 치열했다. 서승희 이후 원미경, 이미숙, 안문숙, 채시라, 이미연 등 80~90년대의 쟁쟁한 영상 스타들이 이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미스롯데에 당선되어 광고모델과 탤런트로 활동하며 <방년 18세> <단둘이서> <협객 김두한> 등 1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인기의 절정에 오른 서승희는 80년대 초 돌연 연예계를 떠났다. 76년 로맨틱 코미디 청춘 영화 <단둘이서>에서 함께 주연했던 백윤식은 최근 “서승희는 ‘70년대의 문근영’이라고 할 만큼 아이돌 스타였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학 가서 공부한다.”며 종적을 감췄던 그녀가 사실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숨겨둔 연인이 됐다는 소문이 연예가를 떠돌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맴돌던 그녀의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88년에 이르러서였다. 83년에 낳은 딸을 5년이나 지난 뒤에 신 회장이 자신의 호적에 입적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롯데 별당마님’이란 별칭을 얻긴 했지만 사실 연예계에도 재벌가 인명록에도 공식적으로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그림자뿐인 삶이었다. 그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영화계의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인과 전혀 접촉하지 않아 재계 일각에서 불렀던 것처럼 신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로 지내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샤롯데’는 괴테의 서한체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롯데’를 연모하며 금지된 사랑을 하다 결국 자살로 끝을 내리는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통해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실체와 비극적 귀결을 그린 작품이다. 여주인공 ‘샤롯데’라는 이름에서 롯데를 따와 그룹의 브랜드로 사용할 만큼 젊은 시절의 신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재계에서 서승희를 ‘신격호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것 역시 그녀가 신 회장에게 ‘샤롯데’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에서 붙여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벌가의 여인 서미경으로 변신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철저하게 베일 속의 삶을 살아 왔던 그녀가 요즘 뜻하지 않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한때 롯데에서 근무했던 오빠와 함께, 롯데시네마의 매점을 운영하는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이라는 회사의 경영진으로 등재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신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경영하는 회사에 롯데시네마 매점의 운영을 맡기는 것은 부당지원행위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연예계 스타에서 재벌가의 여인으로 그리고 다시 경영인으로 변신한 그녀의 삶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표지=통권 536호 (1979년 3월 4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안방극장의 여왕’ 한혜숙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안방극장의 여왕’ 한혜숙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⑫] “요즘 같으면 시집이나 가버렸으면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남자가 있어야 가죠. 일단 나타나줘야 마음을 정해보는 것 아닌가요?” 78년 12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슬픔은 이제 그만>의 개봉을 앞둔 스물일곱 살 한혜숙이 선데이서울의 표지를 장식한 기사에서 밝힌 말이다. 쉰여섯 살(1951년 8월 20일생)인 지금 그녀는 여전히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을 남자를 기다리는, 소녀 같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 독신이다. 한혜숙은 덕성여고를 졸업하던 70년 MBC 탤런트 2기로 김자옥, 박원숙 등과 함께 연예계에 첫 발을 디뎠다. MBC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지만 71년 KBS 청소년 드라마 <꿈나무>의 주연급 탤런트 현상공모에서 여고생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된다.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하명중과 사랑하는 연인 역으로 출연하여 단번에 스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후 74년 국민홍보용 드라마인 KBS <꽃피는 팔도강산>을 통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로 자리 잡았다. 1남 6녀를 둔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분가해서 지방에 사는 자녀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경제개발에 따라 달라진 생활모습을 간접적으로 조명하는 내용이다. 막내딸로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인 한혜숙은, 인생 수업차 신분을 숨기고 속초에서 물지게를 지고 있는 재벌2세 민지환과 짝을 이뤄 출연한다. 70년대의 한혜숙은 꼬리가 아홉 달린 무시무시한 구미호로, 80년대의 그녀는 <토지>(1987)의 최서희로 사람들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77년에 시작된 한국 공포물의 고전이랄 수 있는 KBS <전설의 고향>에서 제1호 구미호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잠든 아기 옆에서 남편은 새끼를 꼬고 아내는 바느질하던 단란한 가정의 안방. 남편은 아내가 구미호인줄도 모르고, 일정기간동안 입 밖에 내지 않기로 약정했음을 잊었는지 구미호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얼굴빛이 점차 변해가는 아내, 마침내 구미호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아내는 구미호로 변하고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며 원통해하며 남편을 죽이려 한다. 그 순간 잠자던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구미호는 차마 남편을 죽이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 인간의 정이로구나”라고 내뱉고는 아기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당시 TV를 봤던 시청자들은 무섭게 변해가는 구미호의 얼굴에 소름이 돋았던 이 장면을 떨쳐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한혜숙이 처음 구미호 역을 맡은 이후 여자 연기자들 사이에 구미호 배역을 따내려 경쟁이 치열했단다. 한혜숙, 김미숙, 선우은숙 등 구미호로 출연했던 연기자들이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인데 급기야 ‘구미호 역할을 맡으면 여우혼이 붙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소문까지 생겨났단다. 70년대 영화계에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가 있었다면 TV 탤런트 트로이카로는 한혜숙, 김자옥, 이효춘이라고 할 만큼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다퉜다. 한혜숙은 KBS 드라마 <노다지>로 87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87년 KBS 대하드라마 ‘토지’로 한국방송대상 TV연기자상 등을 휩쓴 지 19년만인 지난해 <하늘이시여> (2005.9.10~2006.7.2)로 SBS 연기대상에서 드디어 대상을 수상했다. 낳은 뒤 이별해야 했던 딸과 기른 아들을 결혼시킨다는 비현실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까닭은 한혜숙의 가슴 절절한 母情 연기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시집은 물론 애도 낳아보지 못한 한혜숙이 어찌 그렇게 애틋한 엄마 역할을 잘 해내는지 찜질방 등 아줌마들이 모인 곳마다 온통 그 얘기뿐이었다고 한다. <하늘이시여>를 끝낸 그녀는 요즘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촬영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36년 전 청춘스타로 <꿈나무>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하명중이 16년만에 감독으로 다시 복귀하는 작품으로, 옛 인연 때문에 출연료도 거부하고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감독과 주연으로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 성공한 탤런트로 모든 연기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여자로선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다섯 공주중 맏딸로 태어나 서른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여동생 넷을 보살피느라 연애할 틈이 없이 어느덧 독신으로 남게 됐다. 연인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그녀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물론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표지=통권 524호 (1978년 12월 3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강진 성전~영암 영보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강진 성전~영암 영보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10리마다 원(院)을 두고 30리마다 역(驛)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사람이 4㎞쯤 걷고 난 뒤 쉬고, 한참을 달린 말에게 먹이를 먹여야 했던 거리이다. 석제원은 호남대로의 시발점인 전남 강진 포구와 해남 땅끝에서 출발한 관리·군사·상인들이 꼭 거쳐야 했던 쉼터였다. 석제원은 지금의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원기마을 일대이다. ●석제원이 원터였음을 알리는 암석비문 ‘방치´ 원기(院基)란 마을 이름에서도 옛 ‘원 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해남과 강진 방면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이다. 또 30여리(10여㎞)쯤 북쪽으론 월출산 고갯길이 위치해 하룻밤을 묵는 쉼터로서 손색이 없는 자리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예전 사람들로 북적였던 기대와 달리 한적할 뿐이다.10여년 전 들어선 성화대학 정문엔 이곳이 원터였음을 짐작할 만한 2m 길이의 암석비문이 방치돼 있다. 이 비문엔 ‘순상 이희명 선진활인 영세 불망비’(순찰사 이희명이 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도와줘 감사하다)란 문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세워진 송덕비로 보인다. 이 마을 이장 정일성(65)씨는 “이 비문은 월평리 161-1 ‘동승관’ 중화요리집 뒤뜰에 세워졌던 것으로, 최근 건물 신축 때 지금 장소로 옮겨졌다.”며 “마을회의 등을 거쳐 이 비문의 보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곳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전 터미널과 신천리 오일 재래시장이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 폐허가 된 상점과 썰렁한 골목길만 눈에 띈다.30여년 동안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정인엽(55·여)씨는 “한때 시장 골목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난전이 열렸고, 우시장엔 영암·해남·강진 등지에서 소를 끌고 몰려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말했다. 우시장이 없어진 20여년 전부터 시장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전한다. ●탑동마을엔 보물 298호 ‘월남사지 3층석탑´ 다산 정약용도 1801년(순조 1년) 강진으로 유배될 당시 석제원이 자리했던 성전을 거쳤다. 그는 강진 유배생활 도중 ‘탐진촌요’ 20수의 하나인 ‘석제원’이란 시조를 남겼다.‘북쪽은 길이 여섯갈래, 끝내는 서로가 헤어지던 이별길, 문앞에 버들은 한풀이로 잎이 졌고, 서리에 꺾어져 가지조차 드물다.’는 이별의 슬픔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향토사학자 양광식(61)씨는 “이 시로 보아 당시 석제원이 이별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될 만큼 교통의 중심지였다.”고 말했다. 옛길은 성전에서 국도 13호선을 따라 영암쪽으로 이어진다. 신작로를 따라 10㎞쯤 가다 보면 월출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월출산 남쪽 기슭인 성전면 월하리엔 천년 고찰 무위사가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고요 속에 묻혀 있다. 이 사찰은 617년(신라 진평왕 39년) 원효(元曉)가 관음사(觀音寺)로 창건했다. 그 뒤 중수와 개칭이 반복됐으며, 경내엔 보물 제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가 있다. 무위사를 뒤로하고 월출산 방향으로 향하면 ㈜태평양이 조성한 거대한 녹차밭이 눈에 들어오고, 그 밑자락엔 월남마을이 자리를 한다. 마을 곳곳엔 절터와 고탑(古塔)들이 산재한다. 최근 퇴직한 조선대 이효복(61) 교수가 탯자리인 이곳에 조상들이 살던 집을 개조해 ‘월남 정사’를 짓고 자연과 벗삼고 있다. 이 교수는 “녹차와 황칠나무를 이용해 고유차를 개발하고, 올해 처음으로 자연에 바치는 다신제(茶神際)를 올렸다.”며 “이 고을은 예부터 산이 좋고 물이 맑아 절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탑동마을에는 보물 제298호로 지정된 ‘월남사지 3층석탑’이 자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고려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이 ‘월남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 ●풀치재 너머 월출산 사자봉·매바위 보여 성전∼월남마을 13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던 옛길은 강진과 영암의 경계를 이루는 ‘풀치재’ 바로 밑 신월마을에서 뚜렷이 갈라진다. 지금의 신작로는 일제 때 개통된 도로를 없애고 최근 터널을 뚫어 새로 건설됐다. 선인들이 가파른 고갯마루에 올라 땀을 식혔던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터널을 넘나드는 차량만 분주하다. 옛길은 신월마을 입구에서 월출산 자락인 야트막한 ‘누릿재’로 향한다. 이 길은 초입부터 숲이 우거지고, 일부는 농경지로 변해 전체의 모습은 헤아리기 힘들다. 그러나 사람과 우마가 다닐 정도의 소롯길 모습은 남아 있다. 신월마을 주민 전근순(82)씨는 “40여년 전에는 농한기에 짠 가마니를 팔기 위해 이 고갯길을 넘어 영암읍장에 다녔다.”며 “당시엔 소를 끌고 가거나 봇짐을 짊어진 나그네들이 쉼없이 오가는 주요 통로였다.”고 회상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영암읍 개산리 내동으로 빠진다. 고개 너머 왼쪽엔 월출산의 기암인 사자봉과 매바위 등을 볼 수 있고 천황사로 가는 길목의 ‘구절폭포’도 만날 수 있다. 누릿재가 해발 230m인 데 비해 이곳과 이웃한 국도 13호선 풀치재는 180m로 50m가량 낮다. 일제가 누릿재에 신작로를 내지 않고 풀치재를 택한 것은 해남 쪽보다는 장흥과 강진 병영에 비중을 더 뒀던 것으로 보인다. 향토사학자 김정호씨는 “풀치재는 강진 작천·병영, 장흥 쪽에서 영암으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로 누릿재보다는 이용도가 높다.”며 “일제가 효율적인 수탈을 위해 ‘누릿재 옛길’을 버리고 우회 도로격인 지금의 신작로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풀치재를 넘으면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다다른다. 강진·영암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숙소 많았던 석제원 동학도 수만명 머물러” 강진은 예부터 포구가 발달해 제주 등 섬을 오가는 교통 통로였다. 왜구들의 침입도 잦아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군사와 관리·정치인·상인들이 강진∼한양 옛길을 왕래한 흔적이 많다. 호남대로로 이어지는 통로 가운데 성전면 석제원은 중요한 자리였다. 원(院)을 중심으로 주막과 민간인이 머무는 숙소와 장터 등이 생겨나고 장사꾼들도 모여들었다.1894년 전국 각지의 동학도 수만명이 마지막 남은 인근 병영성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와 숙식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월출산 쪽으로 2㎞쯤 지나면 신풍마을이다. 이 마을은 무위사로 이어지는 입구로서 ‘두여원’이 있었다. 무위사를 드나들던 관원이나 나그네들의 쉼터였다. 이곳보다 북쪽인 월남마을 월남사지 주변에 ‘월남역’이 위치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등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 한때 역으로 사용되다가 원(院)으로 격하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을 낳는다. 해남 별진역∼석제원이 20리이고, 석제원∼월남마을은 10리인 만큼 역(驛)이 들어설 만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강진∼영암 옛길은 지금의 국도 13호선 방향 말고도 여러 접근로가 있었다. 제주에서 강진읍 남포항으로 들어온 관리나 나그네들은 강진읍 통로역(성요셉여고 자리)∼작천·병영성(진원역)∼풀치재 코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강진군 관내에 산재한 10여개의 역과 원은 당시 장흥 벽사역의 관할을 받았다. 고갯길마다 세워진 주막이나 간이 숙소 등의 흔적은 현재로선 찾기가 어려워 아쉽다. 양광식 강진군 문화재연구소장
  • [최혜열의 퀼트가 있는 풍경 4] 4월에는 쿠션에도 꽃이 핀다

    [최혜열의 퀼트가 있는 풍경 4] 4월에는 쿠션에도 꽃이 핀다

    4월은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올해는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 좀 일찍 핀다고 하지만 내게는 4월은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벚꽃도 좋아하지만 벚꽃이 진 다음에 피는 겹벚꽃을 나는 더 좋아한다. 겹벚꽃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피는 벚꽃이다. 벚꽃은 하얀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이고 겹벚꽃은 톤 다운이 된 분홍빛이다. 또한 무게감이 있는 색깔이다. 꽃 모습은 4월의 축제처럼 풍성하고 마치 그 축제에서 춤을 추는 프리마 발레리나의 멋진 발레복 같다. 4월에는 그 겹벚꽃의 색깔과 모습을 닮은 퀼트 쿠션cushion을 만들어 보자. 쿠션은 흔히 암체어 혹은 소파 같은 의자에 앉을 때 쾌적한 느낌을 주기 위한 서양식의 작은 방석이다. 그러나 쿠션과 방석은 다르다. 방석은 깔고 앉는 것이지만(더러 방석을 베고 자는 사람도 있지만요!) 쿠션은 신체의 일부와 의자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cushion은 ‘완충물’’위안을 주는 것’이란 뜻으로도 사용된다. 쿠션은 실용적인 기능도 있지만 장식적인 기능도 강하다. 그렇다고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실내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 쿠션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 모양을 지양해야 한다. 퀼트 쿠션을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쿠션도 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퀼트는 더 이상 여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사과를 좋아하는 아이에겐 푸른 사과 모양의 쿠션을 만들어 줄 수 있고 고래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고래를, 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별을 쿠션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상상력이 발휘된 쿠션은 그것을 사용하는 아이에게 상상력을 키워준다. 상상력은 자연에서 많이 온다. 쿠션은 오래 전부터 자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그건 자연처럼 편안한 것은 없고 자연은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연을 닮는 디자인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눈인 헤드라이트가 동물의 눈을 닮아버린 지 오래고 차의 외형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의 대표적인 모델인 ‘비틀’은 딱정벌레를 닮지 않았는가. 최근에 시판되는 폴크스바겐의 ‘뉴비틀’ 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자동차 안을 쿠션으로 변화를 주자. 가속도의 기계문명 속에 혹은 시멘트의 공간 속에 자연을 닮은 쿠션이 몇 개 있다면 그 공간은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자연을 닮은 완충물인 쿠션 하나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21세기 문명에 편안하게 팔을 기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겹벚꽃 퀼트 쿠션’은 꽃잎이 똬리를 튼 모양을 하고 있어 특히 팔을 기댈 때 좋다. 딱딱한 의자에서 책을 읽을 때 이 쿠션을 이용하면 마치 겹벚꽃 나무 화사한 꽃그늘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된다. 실제로 4월의 겹벚꽃 나무 아래서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쿠션이 자연과 함께 있으면 더욱 화사하고 향기로워진다. 4월에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 위에서 피리를 부노라’로 시작되는 박목월 시인의 시 <4월의 노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쿠션 하나로 당신의 4월도 목월의 시처럼 ‘빛나는 꿈의 계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겹벚꽃 퀼트 쿠션’은 외형적으로는 아주 큰 코르사주(코사지)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축하할 때 이처럼 감동적인 선물이 있을까? 나는 사실 꽃이 필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 벚꽃이 질 때는 눈보라처럼 지지만 겹벚꽃이 질 때는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그래서 4월에 내가 만드는 쿠션에는 꽃이 핀다.때로는 기쁨이, 때로는 슬픔이 인생의 완충물 역할을 한다. 내게 쿠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글 최혜열 퀼트작가     월간 <삶과꿈> 2007.04 구독문의:02-319-3791
  • [女談餘談] 기적의 약/이순녀 국제부 기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난 3월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영국 BBC방송의 앨런 존스턴(45)기자가 사흘전 풀려났다. 억류 114일 만에 석방된 그는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면도기를 달라고 해 머리카락을 싹 밀어버렸다. 납치될 당시의 모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라고 했다.“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증언에서 드러나듯 한시라도 빨리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누구나 살면서 힘들고 아픈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혈육의 죽음, 불의의 사고, 실연의 상처, 실패의 쓴맛 등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기억이 어디 한둘일까.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자고나면 아무 기억도 떠오르지 않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꿈같은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 아픈 기억을 잊게 하는 ‘기적의 약’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캐나다 맥길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심장병 환자의 고혈압 치료제가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 고통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지우개처럼 기억을 몽땅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의식은 그대로 두되 감정적인 부분만 없앤다고 한다. 즉 사건의 내용은 기억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더이상 심적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험이 아직 초기단계라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또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약이 진짜 개발된다면 선뜻 사야 할까. 죽을 만큼, 때로는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면서도 고통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신에게 의지하든 가족이나 연인의 힘을 얻든 어떻게 해서라도 끝내 아픔과 슬픔을 견뎌낸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면서 사람은 비로소 인생 갈피갈피에 숨겨진 삶의 참뜻을 깨닫게 되는 건 아닐는지. ‘세월이 약’이라고 했다. 어떤 ‘기적의 약’이 자연의 치유력을 앞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 in] 트리스탄과 이졸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 너머의 사랑. 이 공식이야말로 수많은 연애 서사의 근원이다. 왕의 아내를 사랑한 신하, 적의 딸을 사랑한 병사처럼 극복할 수 없기에 그 사랑은 더 숭고해 보인다.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시 그렇다. 12세기 켈트족 신화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가장 오래된 고전 중 하나이다. 운명적 우연과 돌이킬 수 없는 정염의 소용돌이 속에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격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연애 서사시이다. 켈트족 신화 속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신화의 속성상 운명의 장난에 가깝다. 사랑의 묘약을 잘못 나눠 마신 두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이니 말이다.‘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신화 속에서 트리스탄은 슬픔에 빠져 죽고 이졸데도 따라 죽는다.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환상적 성격이 강한 신화를 역사적 배경을 근간으로 한 연애 서사시로 각색해 냈다. 아일랜드와 영국간의 오래된 갈등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전치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적국의 여인을 사랑한 트리스탄과 그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 이졸데, 이 보편적이면서도 오래된 구성은 지금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두 나라의 갈등 위에서 팽팽히 진행된다. 바그너의 오페라로도 잘 알려진 이 이야기의 힘은 금지된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압축된다. 적국의 여인이기에, 그리고 충성을 다짐한 영주의 아내이기에 열정은 더해간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던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선택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윤리와 법이 금지한 사랑에 빠지는 것은 통속적이지만 가장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사건임에 틀림없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또 하나의 매력은 몸과 칼이 부딪치는 원시적 전투의 생명력이다. 특별한 기계적 도움 없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된 전투 장면은 고전적 로맨스의 질감을 강화해낸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찬 스크린에 익숙해진 눈에 투박한 질감으로 완성된 12세기 영국 풍경은 독특한 아우라를 제공한다. 고전적 로맨스의 질감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성적 사랑뿐만 아니라 마크 영주와 트리스탄 간에 충성과 신의로 맺어진 남성적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안타까움만큼이나 격정적인 트리스탄의 눈빛은 두 여인을 사이에 둔 갈등보다 더 절절하게 받아들여진다.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영주 역할을 한 루퍼스 스웰 역시 마찬가지이다. 트리스탄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드라마에는 엄밀히 말해 새로운 이야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 묵은 로맨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금지된, 장애물 너머의 사랑이 인류의 영원한 서사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 [누드 브리핑] 중구청장은 ‘…아가씨’ ‘…처녀’만 부른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인과 최근 서울시에 합류한 권영걸 전 서울대 미대 학장의 35년 묵은 인연이 공개됐고, 정동일 중구청장이 최근 구민들 앞에서 노래 솜씨를 뽐냈는데, 노래 제목이 ‘…아가씨’‘…처녀’ 등 여자 일색이어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35년전에 본 바로 그 얼굴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인 송현옥(46·세종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서울시 부시장급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으로 지난 4월 임용된 권영걸 전 서울대 미술대 학장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권 본부장은 최근 오 시장 내외 등과 함께 한 저녁모임에서 35년 전쯤의 만남을 털어 놓았고, 송 교수는 어릴 적 아픈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두 사람은 송 교수가 초등학교 4학년, 권 본부장이 서울대 미대 1학년생 때 송 교수 부친의 장례식 자리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송 교수의 부친은 우리나라 추상 조각의 거장이던 송영수 전 서울대 교수인데요. 권 본부장은 “고인은 천재 조각가였다.”면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눈물을 흘리던 딸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이 더 북받쳤다.”고 말했습니다. 고인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추풍령에 세울 기념 조각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지만 과로가 겹쳐 그만 고혈압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권 본부장도 얼마 전에야 한 지인으로부터 “스승님의 딸이 오 시장의 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알았다고 하는군요.●구청장님이 ‘…처녀’를 찾는 까닭은 정동일 중구청장의 노래 실력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지난 2일 중구청 광장에서 ‘춤추는 분수대’ 개관식과 정 구청장의 취임 1주년 기념식이 함께 열렸는데요. 정 구청장은 주민 200여명이 보는 자리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상당한 노래 실력을 뽐내 ‘앙코르’까지 받았는데요. 그런데 노래 제목이 모두 처녀, 아가씨여서 ‘소싯적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노래방을 꽤 다닌 것 같다.’는 촌평이 있었습니다. 정 구청장은 이에 대해 “구청장 취임 이후 한번도 노래방을 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답니다. 또 ‘노래 사연’과 관련,“아직도 영산강에 처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미있는 웃음을 날렸다고 하네요. 정 구청장이 부른 노래의 제목은 ‘영산강 처녀’와 ‘동백아가씨’였다고 합니다.시청팀
  • [평창, 아쉽지만 잘했다] 충격·허탈… “다시 희망의 싹을”

    ‘충격과 허탈…’ 5일 오전 8시22분 강원 평창군청 광장에 ‘NO 평창’이란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탄식보다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어 여기저기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재수’를 하면서 준비했기에,‘유리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새벽부터 기도” 엉엉 운 어린이들8년 동안 겨울올림픽 유치 준비를 해왔던 강원 도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군청 광장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3000여명의 주민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한 여성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자리에서 개최지 발표를 지켜보던 박소현(13·평창초교6)양과 같은 반 친구 10여명은 엉엉 소리내며 통곡을 했다. 박양은 “새벽 5시30분부터 엄마, 여동생과 함께 광장에 나와 올림픽 유치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했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겨울올림픽이 유치되면 지역 발전을 20여년 앞당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터라 도민들의 상실감은 더했다.강릉시 정순철(45·사업)씨는 “답답하다. 무슨 희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평창읍 홍금숙(51)씨는 “딸 쌍둥이를 겨울올림픽이 유치되면 2014년에 합동결혼식을 시키기로 약속했는데 너무 서운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주민 사이에서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오지 산골마을을 세계인이 찾는 국제적인 규모의 관광도시로 만들어 보겠다던 열정은 꺾였지만 다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권순철 평창 부군수는 이날 군민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통해 “2010년 유치 실패의 쓰라린 눈물을 삼키고 군정의 최대 현안으로 또 군민의 최대 염원으로 유치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또 좌절돼 매우 죄송스럽다.”며 유감을 표했다.●“소홀했던 생활행정 펼쳐야”전수산 춘천상공회의소장은 “슬픔을 추스르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면서 “강원 도정도 그동안 겨울올림픽으로 소홀했던 점을 살펴 도민들을 위한 생활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고 주문했다.평창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캄보디아 사고’ 수습 오갑렬 재외동포영사대사

    ‘캄보디아 사고’ 수습 오갑렬 재외동포영사대사

    “따르릉, 따르릉∼” 지난 6월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 오갑렬(53) 재외동포영사대사 집무실의 전화기가 급하게 울려댔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 여행객 13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했다. 현장에 가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또 사고’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골든로즈호침몰 등 부임 두달 4번째 사고 그가 지난 4월 해외 동포와 해외 여행객 등이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지 대사와 함께 상황 대처 업무 등을 관장하는 재외동포영사대사를 맡은 지 두 달만에 벌써 4번째 접하는 안타까운 사고다. 지난 5월3일 나이지리아에서 대우건설 임직원 3명이 피랍됐고, 같은 달 12일에는 동중국해에서 골든로즈호가 중국 진생호와 충돌해 침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7명이 실종, 사망했다. 사흘 뒤에는 소말리아에서 한국어선 2척이 피랍됐다. 나이지리아 피랍 당시에는 출장길에 오르려다 해결됐다는 소식에 짐을 풀었지만 골든로즈호 사건 때는 정부 신속대책반장으로 중국에 달려가 사건해결에 힘을 쏟았다. 1978년 12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외교관 생활 시작부터 안타까운 사건들과 유난히 ‘인연’이 많았다.81년 주 버마(현재 미얀마) 대사관에 2등 서기관으로 처음 부임했는데 83년 10월9일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등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사건 현장과 5분 거리에 대사관이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후 미국과 스웨덴, 호주 등지의 1등 서기관과 참사관, 총영사관 등을 지낸 뒤 2002년 7월 외교부 재외국민영사국 재외국민담당 심의관 자리를 맡았다.2004년 6월에는 고 김선일씨가 이슬람 과격단체에 피랍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라크에 급히 달려갔지만 결국 김씨가 피살되는 안타까운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유족 위로 가장 힘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달 26일 캄보디아 현지로 달려가 갑작스런 비보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시신 확인 작업 등을 무리없이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30년의 외교관 생활동안 이번 참사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을 맺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에서 부디 행복하길….” 낯선 이국땅에서 안타깝게 숨진 캄보디아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1일 유가족들의 오열과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 ‘눈물 바다’를 이뤘다. 전날 마련된 빈소에는 이날도 100여명의 친지와 친구, 정·관계 인사 등 조문객이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선생님, 왜 여기에 계세요” 빈소에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힘없이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빈소가 차려진 지난 30일에 비해 차분해진 분위기였지만 무거운 침묵 속에 간간이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고 황미혜씨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던 어린이 20여명이 빈소에 들러 헌화하며 “선생님∼”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 어린이는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흐느꼈다. 고 박진완씨의 동생 준완(35)씨는 “희생자들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냐.”면서 “시간이 흐르면 곧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해찬 전 총리는 “어린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이 크다.”면서 “여행객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2시쯤 회의를 열고 발인 날짜 등을 논의했다. 고 조종옥 KBS기자의 장례는 오는 4일 오전 8시30분 여의도 KBS본사에서 회사장으로 치른다. 유가족들은 하나투어 관계자, 사고 항공사인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 관계자들과 장례비용 문제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날 오전 PMT에어 측은 1000만원의 장례비를 보상하기로 결정했으나 유족들은 이에 거칠게 항의했다. 박씨는 “유족들은 장례 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1000만원으로 통보했다.”고 분개했다. ●보상금 난항 겪을 듯 일부에서는 보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보상 문제를 직접 논의해야 할 PMT에어 본사 측에서는 한국으로 실무자도 보내지 않은 상태다. 또 PMT에어가 생긴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영세한 신생 항공사여서 유가족들이 우려하고 있다.PMT에어 한국 총판매대리점 김주영 영업부장은 “PMT에어가 지금 캄보디아 정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 본사 관계자는 다음 주쯤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유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보상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유족과 하나투어,PMT에어 관계자는 2일 오후 1시쯤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대책 회의에서 하나투어 측은 유족에 도의적 차원의 보상금을 책정,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공포영화 ‘해부학 교실’ 새달 12일 개봉

    공포영화 ‘해부학 교실’ 새달 12일 개봉

    공포영화를 보면 무서운가. 얼핏 두려움으로 싸여진 공포영화의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슬픔의 속살이 드러난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등장인물들이 끔찍한 모습의 변사체로 나타나게 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사연이 밝혀지게 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서글픔이다. 요즘 한국공포영화의 경향은 두려움의 뿌리로 인물들의 불우한 경험과 상황을 설정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새달 12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해부학교실’도 그렇다. 올들어 한국공포영화가 소재의 다양화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가운데 ‘해부학교실’ 또한 ‘카데바’라 불리는 해부용시체를 소재로 삼아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 그 안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지점에 서있는 의사, 추상적인 죽음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환기시켜주는 카데바 등을 공포의 재료로 삼은 것은 어쩌면 반쯤 먹고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의대 본과 1학년에 재학중인 여섯 명의 동기들, 선화(한지민), 은주(소이), 중석(온주완), 기범(오태경), 경민(문원주), 지영(채윤서). 이들은 한 팀이 되어 해부학실습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배정된 젊고 아름다운 카데바. 가슴 부위의 장미꽃 문신이 묘한 기운을 자아내는 이 카데바를 접하고 난 뒤 이들은 똑같이 환영과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선화의 룸메이트로 모범생 은주가 야밤에 홀로 해부학 실습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처음으로 죽음을 맞고 연적 관계에 있던 지영 또한 은주처럼 심장이 도려내진 채로 발견된다. 실습 도중 간식까지 챙겨먹을 정도로 비위가 좋던 경민까지 정신을 놓자 선화, 중석, 기범은 카데바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담당교수 지우(조민기)가 카데바로 쓰인 여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된다. ‘카데바’라는 이색 소재를 삼았을 뿐 영화는 공포장르의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공포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등장인물의 행동과 상황을 통해 누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인지 ‘두부에 못박기’식으로 눈치챌 수 있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인물들을 돌아가며 의심스럽게 비추거나 중간중간 복선을 깔아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복잡하게 얽혀 놓는 바람에 집중력을 떨어뜨려 감독이 의도한 복선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연출은 단편 ‘필통낙하시험’을 만들고 봉준호 감독과 ‘플란다스의 개’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했던 손태웅 감독이 맡았다. 첫 장편 데뷔작으로 공포영화를 택한 감독은 새로운 볼거리로 색다른 공포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금속성의 문이 차가운 빛을 발하는 시체 냉장고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그 앞으로 수 십개의 실습대가 도열한 해부학 실습실은 음산하고 축축한 기운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1구당 4000만원의 돈을 들여 2개월 동안 만들어낸 사실적인 시체 ‘더미’들은 공포의 체감을 높여주는 장치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다. 과거와 현재가 경계 없이 겹쳐지는 판타지 기법으로 카데바가 된 여성의 사연과 아울러 선화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밝혀지는 부분은 단연 돋보인다.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분산되다보니 중반에 다소 늘어지긴 했지만 종반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잘 유지시킨다. 그래서인지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허무해지지 않는다. 사체와 메스가 나오지만 사지절단 등 신체훼손의 수위가 높은 요즘 영화에 비해 잔혹성은 덜한 편.15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깔깔깔]

    ●서둘러라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선장이 소리 쳤다. “누구 기도할 줄 아는 사람 없나?” “제가 기도할 줄 압니다.” 하고 한 사나이가 앞으로 나왔다. “좋아 그렇다면 기도를 해 주게.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어라.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가장 위험한 음식 한 의사가 대규모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고지방 식단은 파멸을 초래하며, 우리가 마시는 물 속에도 세균이 들어있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곤 하죠. 그러나 우리가 먹었거나 먹을 음식 중 가장 위험한 음식이 하나 있습니다. 먹고 난 후에 오랫동안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을 유발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말해주실 분 있나요?”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맨 앞줄에 앉아있던 노인이 손을 들고 조용히 대답했다. “웨딩케이크요.”
  • [동영상] 크리스 벤와 사망…유튜브에도 추모 열풍

    [동영상] 크리스 벤와 사망…유튜브에도 추모 열풍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인기 프로레슬러 크리스 벤와(40. 캐나다)가 26일(한국시간) 그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사망하면서 해외팬들도 깊은 슬픔에 잠겼다. ☞ [관련기사] ‘WWE 스타’ 크리스 벤와 가족과 사망한채 발견 세계적인 UCC사이트 유튜브에는 벌써 생전의 경기영상을 담은 ‘크리스 벤와 추모영상’(Chris Benoit Tribute)이 올라와 순식간에 수백여개의 댓글이 달리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아이디 ‘tvwatcher35’는 “크리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다.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적었다. ‘JNash72288’는 “그는 최고의 테크니컬 레슬러였으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ThaCobra45’는 “크리스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clb73’는 “크리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며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 나우뉴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 달에 만난 사람]음악 전령사로 변신한 첼리스트 장한나

    [이 달에 만난 사람]음악 전령사로 변신한 첼리스트 장한나

    취재, 글. 박혜란 기자 털털하기 그지없는 ‘껄껄껄’ 소리로 시작해 장난기와 애교가 듬뿍 담긴 ‘히히히’ 소리로 마무리되는, 인상적인 웃음소리가 연신 귓가를 두드린다. 그 얼굴과도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제가 어떤 아이였느냐고요? 선생님이 어머니께 이런 하소연을 하셨다지요. ‘우리 반 아이들은 쉴 틈이 없어요. 한나가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 거느리고 학교 놀이를 하는 통에.’ ‘한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저 굉장한 개구쟁이였어요.” 이처럼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한나는 이제 더 이상 음악 신동도, 대견한 국민 여동생도 아니다. 올해 스물여섯의 어엿한 성인인 그는, 지난해 영국의 클래식음악전문지 <그라모폰>이 꼽은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열한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 것이 벌써 1994년의 일이니, 그가 어른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올해 3월에 나온 새 앨범 <로맨스>의 재킷 사진을 보고 팬들은 너무나 커버린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장한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가지 신선한 소식을 전한다. 5월 성남에서 열리는 국제청소년관현악축제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관객들에게 곡에 관한 해설도 들려줄 계획이다. “우선 음악가로서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지요. 완벽한 음악가란 자신의 감정을 자기 손으로 완벽하게 연주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4년 전부터 줄리어드 음대 지휘과 교수님께 수업을 받아왔습니다. 또 한편으론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식사시간마다 아버지께서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너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곰곰이 궁리해보니, 결국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나누는 일이었어요.” 놀고 숨쉬듯이 그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소개하는 일에 각별한 의욕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장한나와 함께 가는 상상의 음악여행’이란 방송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진 후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제 생각에,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기쁨과 슬픔을 품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다만 어떤 계기로 그 감정을 일깨우느냐가 중요하지요. 저는 음악이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의 어린이들은 공부하랴 학원 다니랴 무척이나 바쁘잖아요. 그럴수록 감성과 지성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어른들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하면 돼요. 음악의 아름다움은 아이들 스스로 찾아낼 거니까요. 이렇게 음악을 친구로 소개하는 일을 이왕이면 빨리, 아이들이 저를 언니나 누나로 부를 수 있을 때 시작하고 싶었어요. 기대고 싶을 때 편하게 기댈 수 있고, 굳이 존경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장한나는 유독 스승 복이 많은 음악가다. 얼마 전 타계한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와 미샤 마이스키,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 등 거장과의 만남 속에서 성장해왔지만, 그 세기의 수업에는 수업료 한 푼 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제 순수하고 총명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에게 음악의 문을 열어주고 친절한 안내자가 되려고 나선 것은 하나의 자연스런 흐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은 누구일까. 돌아온 답은 예상을 약간 빗나간다. “아시다시피 저는 정말 훌륭한 분을 많이 만났어요. 모두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분들이죠. 그런데 굳이 가장 존경하는 인생의 스승을 꼽으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고 말씀드릴래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할 수 없이 힘든 시절을 보내셨지만, 자신의 고통을 큰 소리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견디며 삶을 받아들이신 분들이지요. 그분들이 평생에 걸쳐 익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어요.” 한 사람을 사귀듯이 첼리스트임에도 하버드대에서 음악이 아닌 철학을 전공한다는 사실로도 그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또 지독한 책벌레다. “철학이요? 어렵지만 즐거워요. 철학책은 한 단락을 다섯 번은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지요. 칸트 같은 것은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 혼자서는 생각조차 못 했을 문제들을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게 철학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런 점은 음악과도 닮았어요. 사실 웬만큼 산전수전을 겪지 않고서야 일상생활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이란 한계가 있잖아요. 하지만 음악은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초월적인 감동을 느끼게 해주지요. 일종의 휴가나 여행 같은 거랄까요. 물론 음악을 듣는 데 여유와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그건 한 사람을 만나 사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엔 잘 몰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서면 언젠가 상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음악이, 작곡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음악 속에도 결국 인생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월간샘터 2007년 6월호
  • [기획] 행복하세요

    [기획] 행복하세요

    [1] ‘나는 행복해’… 하루 3분 반복하라 글 최규상 한국유머전략연구소 소장 1991년 일본의 아오모리현은 연이은 태풍으로 사과가 90%나 떨어지는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너무나 큰 피해여서 거의 모든 농민들이 하늘을 탓하면서 한탄과 슬픔에 빠졌고 당장 먹고 살 문제에 직면한 농민들은 농촌을 떠났다. 하지만 오직 한 농민만이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가 10%나 남았으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일 남아 있는 10%의 사과로 어떻게 이익을 남길까를 고민했다. 긍정적인 생각은 언제나 기적을 만들어내듯 그는 멋진 생각을 해냈다. 바로 사과들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마침 대학시험 철이어서 그는 이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으로 수험생에게 팔기로 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홍보 문구는 기존 사과보다 10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날개돋친 듯 팔렸다. 후년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사과 브랜드로 수험생들에게 최고의 인기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합격 사과’의 전설이다. 태풍에 의해 떨어진 사과. 겨우 10%만 남은 사과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현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 헬렌 켈러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말고 등을 돌려 찬란한 해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어두운 그림자는 제일 먼저 우리의 얼굴을 어둡게 만든다. “할 수 있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행복하다. 카네기는 매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1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행복해, 나는 건강해, 나는 부자야”라는 말을 반복하기만 해도 행복감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하루에 3분 정도 조용히 눈을 감고 이 말을 반복함으로써 행복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좋게 보는 것이 최고의 능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좋게 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의 조건이 되고 있다. 긍정적으로 좋게 좋게 세상을 바라보자. 그렇다면 내맘대로 행복해질 수 있다. [2] 남을 행복하게 하라 글 혜인스님 생활이 풍부하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은 모든 것에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이다.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이미 풍부하게 신덕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라도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항상 지금이 시작이다. 때는 지금이다. 과거의 일에 연연해 하지 말고 항상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행복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빛나고 즐거운 것이 되도록 고무시킬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선 감사 기도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좋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좀더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소중히 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른 안경을 쓰고 보면 세계 전체가 푸르게 보이듯이 상쾌한 마음으로 인생을 보면 보이는 것이 모두 기쁘고 즐겁게 보이는 것이다.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진실한 행복은 자기 자신의 참회를 통해 가능하다. 또한 행복해지는 비결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이 행복해져 있는 것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불행하게 하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이 불행해져 있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취한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그 행복은 타인에게서 자기가 희생되고 짓밟혀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때는 타인에게 고통을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남의 행복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는 반드시 당신의 행복이 있다. 또한 남의 연인을 빼앗아서도 안 된다. 당신에게는 반드시 당신만의 연인이 어딘가에 있다. 그 사람을 기도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적당한 때에 나타날 것이다. 남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빼앗아 취한 것은 반드시 어둡고 괴롭고 갈등이 생기고 순간적인 행복일 뿐 아니라 반드시 고통으로 되돌려 받는다. 사람이 행복에 도달하는 근원은 ‘끝까지 믿는다’는 이 한마디에 달려 있다. 끝까지 믿는다는 것은 믿되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고 일편단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인생의 불안, 초조, 갈등, 우울, 불행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오늘 내가 살아야 하는 의미》(삶과꿈) 중에서- [3] 인터넷으로 발견한 ‘행복 찾기’ 행복해지는 방법 15가지 ① 나무를 껴안고 ‘우리는 한결같은 친구’라고 속삭인다. ② 밤하늘을 우러러 별을 보고 ‘너를 잊지 않게 해줘’라고 얘기한다. ③ 혼자서도 큰 소리로 어린 날에 좋아했던 동요를 불러본다. ④ 찬물 한 잔에도 ‘아~!’하고 감탄사를 내놓는다. ⑤ 아이의 눈동자와 1분 이상 눈맞춤을 한다. ⑥ 수첩 속의 사랑하는 사람 사진을 하루 한 번 이상 들여다본다. ⑦ 하늘의 흰 구름한테 손을 흔들어준다. ⑧ TV·오디오 등 모든 전자음을 잠재우고 바깥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⑨ 일주일에 한 번은 전깃불을 모두 끄고 촛불 아래에서 책을 본다. ⑩ 차를 마실 때 오늘 본 꽃을 화제로 삼는다. ⑪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책상 밑에서 발장난을 건다. ⑫ 버려질 종이 위에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낙서해 본다. ⑬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감동받은 시를 읽어준다. ⑭ 어린이의 천진한 그림을 책상 유리 밑에 넣어두고 본다. ⑮ 지는 해한테 일어나서 ‘내일 또 뵙지요’하고 거수경례를 한다. 미국 미시간 호프대학의 데이비드 마이어 교수가 39개국 1만 8천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성별, 나이, 결혼 유무, 소득 수준 등 네 가지 변수에 따라 인간의 행복 유무를 조사했는데, 이 네 가지 변수는 행복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인생에 있어 행복을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들고 느낄 때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삶과꿈 4월호
  • 김경욱 교수 네번째 장편 ‘천년의 왕국’

    380년전 네덜란드인 박연(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은 조선 땅에서 조선 사람이 되어 살았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등의 화제작을 발표해온 소설가 김경욱(36·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교수)이 선택한 네번째 장편 ‘천년의 왕국´의 주인공은 바로 그 박연이다. 박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작가는 ‘하멜 표류기’에 적힌 한 줄을 그루터기로 삼아 수백장의 원고지를 채워나갔다.‘1653년 제주도에 좌초한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선원들에게 자기들보다 26년 앞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조선국왕의 사자(使者)가 나타났는데 그 역시 네덜란드인이었다.’는 구절이 소설의 단초가 됐다. 소설에서 박연 즉 선장 벨테브레와 요리사 에보켄, 선원 데니슨은 1627년 조선 인조때 ‘이교도의 땅’에 표류해 탈출이냐, 적응이냐 고민하며 각자의 삶을 이어나간다. 작가는 “일본에 무역하러 가다가 표류해 조선 국왕의 친위대까지 맡는 박연이 자신의 불가해한 운명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말했다. 소설은 박연이 조선에 표류한 뒤 병자호란을 겪기 직전까지 10년간을 그렸다. 작가는 “그때까지 박연은 타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동료의 죽음과 참전을 겪으며 어느 순간 자신의 운명을 조건없이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의고체와 단문으로 부자연스러운 외국인의 언어를 표현했다. 이방인이라는 숙명에 놓인 박연이 느꼈을 낯섬과 슬픔이 문장에서 전해진다. “당시 세계시민으로 살았던 박연의 삶은 지금처럼 국경이 무의미해진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박연의 드라마틱한 삶이 현대의 우리에게도 유효할 것이라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박노해 시인의 눈을 통해 본 레바논

    작명자의 권력은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그 대상의 본질을 규정해 버린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가 헤즈볼라를 ‘무장테러조직’이라 부르는 순간, 헤즈볼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평화의 파괴자로 굳어졌다. 레바논인들이 헤즈볼라를 ‘평화와 승리의 상징’으로 여기든, 조직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레바논의 체 게바라’로 평가하든 상관없다. 시인 박노해는 헤즈볼라를 다시 부른다. 헤즈볼라는 35명의 국회의원과 2명의 장관을 배출한 ‘합법정당’이고 ‘레바논 최대의 대중정당’이다. 일자리 창출과 국민 복지를 중시하는 정치가이고,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존경받는 기업의 경영자다. 성숙한 국제감각을 가진 레바논 ‘정부 안의 정부’이자 ‘레바논 유일의 정부’다. 지난해 7월13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자국 병사 2명을 헤즈볼라가 납치했다는 이유였다. 박노해는 레바논으로 날아갔고, 폐허의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울고 있는 레바논인들의 삶을 기록했다. 박노해의 글과 사진으로 꾸며진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느린걸음 펴냄)엔 한국 언론이 접근하지 못했던 헤즈볼라의 면면이 담겨 있다. 2006년 8월, 박노해가 물었다.“쿠리아가 UN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전투병 파병요청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 나와프 무사위 국제국장이 대답했다.“레바논 땅에서 레바논 민중과 헤즈볼라의 평화의지를 거스르며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군대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2007년 7월19일, 한국은 레바논으로 군대를 파병한다. 한국군 파병에 대한 헤즈볼라 지도부의 답변은 참혹한 회고이자 끔찍한 예견이다. 이라크에서 사망한 김선일씨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윤장호 병장을 회고하게 만들고, 또 다른 김선일과 윤장호를 예견하게 만든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다. 고통과 슬픔은 전쟁 후부터 본격화되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 속에서 매일매일 죽는다. 박노해는 “전쟁은 인간성의 좌표를 드러내고 우리의 인간성을 끊임없이 비춘다.”고 말한다. 레바논의 참혹함을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군대까지 보내는 잔혹한 ‘국가적’ 인간성은 ‘평화유지’란 이름으로 은폐되고 미화된다.“쿠리아 좌누비아?(남한) 쿠리아 샤말리아?(북한)”라 묻는 레바논인들에게, 박노해는 ‘좌누비아’라 답하며 그들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 전쟁은 불평등하고, 폭탄에도 눈이 있다. 박노해는 “이스라엘 폭탄은 참으로 정밀하게 기독교 마을과 부잣집들을 비껴갔다.”면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은 가난한 레바논 남부 무슬림의 집이었다.”고 말한다. 폭탄의 상흔 너머 보이는 부촌의 평화스러운 모습에 박노해는 “이것은 이스라엘의 선별적 자비인가, 레바논의 모순인가.”라며 자문한다. 열 살도 채 안 된 레바논 아이들의 입에서 ‘성전’‘순교’‘영원한 승리’란 말이 한국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 게임용어 읊듯 무심하게 흘러나오게 하는 전쟁. 박노해는 시로써 외친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1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패리스 힐튼, 옥중편지 “당신의 격려에 힘이 납니다”

    패리스 힐튼, 옥중편지 “당신의 격려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따뜻한 격려에 힘이 납니다.” 패리스 힐튼의 감옥살이는 어떨까. 나름대로 소일(?) 거리를 찾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낙은 팬레터 읽기. 그리고 팬레터 답장하기다. 최근 힐튼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 1통이 화제다. 하루 대부분을 감방에서 보내고 있는 힐튼은 팬들이 보낸 편지에 손수 편지를 쓰며 답장을 보내고 있다. 그중 한통을 미국의 연예뉴스 ‘E!온라인’에서 입수해 보도했다. 힐튼은 답장을 통해 맨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당신의 편지를 읽었다”는 말로 글을 써내려간 힐튼은 “당신이 보여준 사랑과 격려의 말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의 편지가 슬픔에 잠겨있던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며 ‘땡큐’를 연발했다.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속내도 드러냈다. 힐튼은 “지금 난 내 생에서 가장 힘들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나는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튼의 옥중편지를 읽은 팬들은 의외의 모습에 낯설다는 반응이다. 제멋대로 행동하며 사고만 치는 힐튼에게 이런 따뜻한 모습이 있었냐고 놀라는 분위기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정말로 힐튼이 쓴 편지가 맞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옥중편지는 힐튼이 손수 쓴 게 맞다. 힐튼이 옛애인 닉 카터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와 글씨체가 일치한다. 힐튼의 대변인도 호사가들의 의문에 “힐튼이 직접 쓴 편지가 맞다”고 공식 발표했다. 힐튼은 지난달 음주운전으로 운전 자격이 박탈됐음에도 불구 운전을 한 혐의로 45일 징역형 처분을 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징역 5일만에 조기석방됐으나 다음날 다시 복귀했다. 현재 차가운 바닥에서 홀로 지내며 자신의 죄값을 달게 받고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 송은주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의 ‘크리미널 마인드’ 대검 심리분석실을 가다

    한국의 ‘크리미널 마인드’ 대검 심리분석실을 가다

    지난해 1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심리분석실. 행동분석 담당 김재홍 분석관의 눈빛이 번뜩였다. 건너편에 앉은 안모(35·여)씨의 몸짓이 이상했다. 안씨는 2005년 경남 창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독극물을 먹고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유가족. 하지만 딸의 죽음을 되짚는 안씨의 얼굴에선 분노나 슬픔이 표현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김 분석관을 경멸하는 표정이나 미소도 지었다. 아무 이유없이 신체의 일부를 만졌고, 입술에 주기적으로 침을 발랐다. 말을 더듬었고 속도도 일정치 않았다. 평소 안씨가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과학수사로 풀 수 없는 범죄 해결 김 분석관은 분석 결과 안씨가 딸을 숨지게 한 범인임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어냈고 이를 창원지검에 알렸다. 법원은 종합적인 판단 끝에 보험금을 노린 살인죄로 안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대검 심리분석실 수사팀.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형기 검사관, 강민국 검사관, 이상현 검사관, 김미영 분석관, 김재홍 분석관, 정재영 실장.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증거도 동기도 없어 과학수사로도 풀 수 없는 범죄. 유일한 단서는 사건 관련자들뿐.‘크리미널 마인드’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실제로 존재하는 행동분석팀(BAU)이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다. 범인의 행동과 심리 상태에서 미궁에 빠진 범죄의 열쇠를 찾는 프로파일링을 소재로 한 수사물이다.14일 한국의 ‘크리미널 마인드’ 대검 심리분석실 수사관들을 만나봤다. 충남 보령에 사는 간호사 윤모(22·여)씨는 퇴근길에 직장 동료 유모(37)씨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애원도 해보고 고함도 처봤으며 급기야 손에 잡힌 유씨의 흉기로 자해까지 했지만 유씨는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윤씨는 결국 유씨의 어깨를 흉기로 두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살인과 정당방위의 갈림길에서 물적 증거는 없었다. 열쇠는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한 심리·생리검사 반응뿐이었다. 윤씨는 사건 관련 질문에 답하며 호흡이나 맥박, 혈압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등 진실 반응을 나타내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윤씨는 석달 뒤 결혼할 약혼자와의 사이에서 3개월 된 새 생명을 잉태한 상태여서 성폭행에 대한 저항이 더욱 격렬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심리·뇌파·행동·진술 등 4가지 동원 심리분석실에서 다루는 분석검사는 심리·생리검사와 뇌파분석, 행동분석과 진술분석 등 모두 네 가지다. 심리·생리검사는 거짓말탐지기로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배와 가슴의 호흡 변화, 혈압과 맥박의 변화, 동공의 크기 변화, 피부에 땀이나 닭살 등이 생기는 전류 저항 등을 측정하는 검사법이다. 뇌파 분석은 두피에 뇌파 변화를 탐지하는 32개의 센서를 부착하고 사건 관련자에게 사건 관련 물품을 보여주고 뇌파 변화를 측정한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 용의자 5명에게 피해자의 옷을 보여 줬을 때 범인이라면 이 옷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정보를 처리하면서 특이한 뇌파가 생기지만 관련 없는 용의자는 정보처리를 하지 않는다. 대검 심리분석실 정재영 실장은 “보통 거짓말탐지기를 써도 심리·생리 반응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반응들은 자율 신경계를 통해 나오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해 거짓말탐지기는 97∼98%, 뇌파분석은 100%의 정확성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고성능 카메라로 행동 경향 파악 행동분석은 분석관과 사건 관련자들이 사건에 대해 얘기할 때 관련자들이 하는 말실수, 목소리 톤 변화, 응답시간 지연, 말더듬기, 진술의 일관성, 얼굴 미세표정, 눈의 움직임, 응시회피, 자세 변화와 몸 각 부위의 위치 등과 같은 행동 특징을 파악하는 기법이다. 심리분석실에는 6대의 고성능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에 찍힌 개인마다의 고유한 행동 경향을 파악하고 특정 진술이나 질문에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한다. 진술분석 담당 김미영 분석관은 “정말 겪은 사건에 대한 진술은 감각 정보가 풍부하고 사건 전후와 중간 가운데 중간상황에 대한 진술을 길게 적는다. 반면 거짓 진술에는 감각 정보가 부족하고 하나의 대상을 부르는 명칭이 자주 바뀐다.”고 설명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0.25초 순간 온갖 표정 나타나 ‘당신의 표정엔 만감(萬感)이 숨어 있다.’ 행동분석은 사람의 수많은 행동 속에 숨어 있는 감정 변화를 읽어내는 수사기법이다. 국내 최고의 행동분석 전문가인 대검 심리분석실 김재홍 분석관의 설명을 통해 행동변화가 가장 잘 나타나는 얼굴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해 봤다. 사람의 얼굴은 수천개의 미세근육으로 이뤄져 있다. 이 근육 중에는 통제가 가능한 수의근(隨意筋)이 있는 반면 통제할 수 없는 불수의근도 있다. 김 수사관은 약 0.25초의 짧은 순간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미세 표정을 통해 인간의 온갖 감정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먼저 눈썹이 팔(八)자 모양이 되고 입술 양끝이 아래로 내려가는 건 ‘슬픔’을 뜻한다.‘분노’를 나타낼 땐 미간이 안쪽으로 몰리고 아래로 내려가며 바깥쪽 눈썹이 위로 올라간다.‘분노’땐 턱을 아래로 내리고 치아를 약간 내보이며 공격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눈이 커지고 눈썹과 눈꺼풀이 들어올려지면 ‘두려움’을 뜻하고 여기서 입이 함께 벌어지면 ‘놀라움’이라는 뜻이 된다. 코에 주름이 생기고 눈이 가늘어지면 ‘혐오’라는 뜻이고 입술에 힘을 주는 건 ‘결의·분노’를 뜻한다. 범죄와 관련해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사람이 ‘행복’할 땐 양쪽 입가가 뺨 근육을 통해 살짝 들어올려져 미소 짓는 표정이 된다. 미소에도 진짜와 거짓이 있다. 진짜 미소는 자연스런 긍정 정서에서 유발되기 때문에 눈 양쪽에 주름이 생기는 반면 거짓 미소는 눈가 주름이 형성되지 않는다. 김 수사관은 “얼굴 미세표정 변화로 인한 감정 표현은 심리상태를 포착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면서 “이를 고성능 카메라로 찍어 수천 가지 표정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며 분석하다 보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심리수사 軍에서 시작됐다…1961년 국내 첫 거짓말탐지기 도입 우리나라 심리수사의 역사는 군대에서 시작됐다. 1961년 국내 최초로 거짓말탐지기를 도입해 사용한 곳이 군대다. 이후 79년 4월부터 3개월 동안 국내 최초로 거짓말탐지기 검사관 양성교육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 대검찰청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한 심리·생리검사 업무를 시작했다.2004년 대검에 뇌파분석이 도입됐고 2005년 행동 및 진술 분석이 추가로 도입되면서 세계 최초로 네 가지 통합심리분석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현재 검찰에는 대검찰청을 포함해 전국 13개 지검에 19명의 심리·생리검사관이 있다. 국내 유일의 행동분석관과 진술분석관인 김재홍 분석관과 김미영 분석관 등 모두 21명이 심리수사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지검에서는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한 심리·생리검사밖에 할 수 없고 네 가지 통합심리분석은 대검찰청 심리분석실에서만 이뤄진다. 분석검사는 사건 관련자의 동의를 받아야 이뤄질 수 있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의 요청 외에 사건 관련자도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석을 요청할 수 있다. 심리·생리검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졸 이상 학력에 수사 실무경력이 3년 이상이어야 하고 검찰 수사관 양성교육을 6개월 이상 받아야 한다. 진술과 행동분석관이 되려면 범죄심리학 석사 이상의 학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대검 심리분석실 정재영 실장은 “아직 대법원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수사 증거로 채택되지 않지만 하급심에서는 종종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검사 결과와 판결문이 94% 정도의 수준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6%도 거짓말탐지기의 오류라기보다는 범죄의 추가 증거가 모자라 판결이 검사 결과와 엇갈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심리수사가 범죄 관련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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