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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4)어린이 동화작가 안데르센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4)어린이 동화작가 안데르센

    여기 세 명의 소녀가 있다. 첫 번째 소녀는 도끼를 든 사형집행인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이 두 발을 잘라주세요!” 그녀는 빨간 구두를 신은 제 두 발이 깡충깡충 춤추며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두 번째 소녀는 새해 아침에 눈밭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밤새 성냥을 켜 언 몸을 녹이려 했으나 역부족. 따뜻한 난로와 잘 구워진 거위 요리, 죽은 할머니의 환영을 보던 소녀는 앉은 채로 숨이 멎었다. 마지막 소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혀를 자른 대신 두 다리를 얻었지만 끝내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9세기 당시에도 그랬듯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겠지만, 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적합한지 묻는 이들은 아주 많다.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구슬프지 않은가 ? 아니, 애초에 안데르센의 동화는 정말 어린이를 위한 글이었을까? ●못생기고 배운 것 없이 배우의 길로 “한데 저 커다란 오리 좀 봐.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저 오리하고는 함께 어울리기 싫은걸.” 덴마크의 시골 오덴세에서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열네 살 되던 1819년 코펜하겐으로 상경한다. 당시 교양인들의 관심사는 예술과 문학이었고, 특히 코펜하겐 중산층의 오페라와 연극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안데르센 역시 당시 흐름대로 배우의 꿈을 품고서 무작정 상경했던 터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배우로서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걸림돌이라면, 그보다 더 심각한 걸림돌은 볼품없는 외모였다. 안데르센 자신이야말로 한 마리 ‘미운 오리 새끼’였던 것이다. 배우의 꿈을 접고 그가 만약 오덴세로 돌아갔다면, 우리는 ‘빨간 구두’나 ‘성냥팔이 소녀’를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자신의 상상력과 시적 재능으로 무언가 해 볼 것이 있다고 여겼다. 마침 코펜하겐에서 문학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의 지식인들이 정치와 혁명에 열을 올리는 사이 덴마크 지식인들이 집중할 거리는 예술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못생기고 배운 것 없는 미운 오리도 코펜하겐의 예술과 문화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발표한 글마다 혹평을 받아, 칭찬에 굶주린 그에게 두고두고 큰 상처가 되었다. 또한 출세작 ‘즉흥시인’이 조국 덴마크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린 탓에 안데르센은 덴마크가 자신에게 모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사실 코펜하겐에는 보잘것없는 저 어린 남자를,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원하고 기다려 준 이들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좋은 선생을 추천받았으며, 학교에도 새로 입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복에 힘입어 그는 ‘외다리 주석 병정’처럼 녹아 사라지지 않고 길이 남을 동화들을 써낼 수 있었다. ●주목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 “당신은 이제 사람이 아닌 그림자처럼 보이는군요.” 동화를 쓰면서 승승장구하던 안데르센은 41살이 되던 해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행복하고 온갖 신나는 일로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의 제목은 ‘내 인생의 동화’. 그는 자기 삶을 동화로 만들고자 했고, 이에 사건의 연대를 바꾸고, 자신의 천재성과 순수성을 과시하는 데 자서전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그뿐이 아니다. 저명한 40대 작가가 쓴 이 자서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명 인사들의 호의와 환호에 흥분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안데르센의 빼어난 동화들은 이처럼 그의 아이 같은 성격에 빚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느 식사 장소에서든 나오는 요리를 가장 먼저 대접받지 않고는 못 배겼고, 어느 자리에 가도 자신이 에스코트 받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곧잘 토라지고 상처 받았다. 그런 면에서 안데르센은 영원한 아이다. 그리고 그 자라지 않은 마음이야말로 그의 동화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떼쓰는 마음, 미친 듯이 질투하는 마음…. 10년에 한 번꼴로 자서전을 발표한 것도 자기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의 산물이었다. 총 세 권의 자서전 속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과시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첫 번째 자서전이 거의 마무리되던 즈음 안데르센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남자를 둘러싼 짧은 동화 ‘그림자’를 쓰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서 그림자는 어느 날 성공해서 남자 앞에 나타나고, 차차 주객이 전도되어 남자가 오히려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고 만다. ‘이봐, 친구. 이제 난 이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은 행운과 권력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널 위해서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주려고 해. (…) 대신, 사람들이 널 보고 그림자라고 부르게 하겠어. 그리고 네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대로 말해선 안 돼. 1년에 한 번씩 내가 햇살이 비치는 발코니로 나가 앉아 있을 때 넌 내 발 아래 누워 있어야 해. 예전에 내가 그림자였을 때처럼 말이야.’ 바야흐로 그림자의 역습. ‘그림자’의 안데르센이 ‘내 인생의 동화’의 안데르센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처럼,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안데르센 역시 자기가 과시하는 명성과 사랑이 모두 허구임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동화는, 안데르센 자신도 모르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어공주 등 안데르센 동화의 불편한 진실 인어 공주의 목소리는 다른 형상들의 목소리와 같이 천상의 소리처럼 맑고 투명했다. 땅 위의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 소리를 흉내낼 수는 없었다. 안데르센은 애초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쓴 게 아니었고, 동화작가로 분류되는 것조차 꺼렸다. 때문에 1835년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첫선을 보인 그의 동화집은 훗날 단순하게 ‘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린이에게 줄 교훈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쓰고자 했다. 몇몇 일화들 속의 안데르센은 마치 하루의 긴 시간 내내 홀로 방치된 애완견 같다. 강아지는 너무 외롭고, 그래서 귀가한 주인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주인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게 된다. 감정이 풍부한 안데르센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후에도 여전히 눈치가 없었고 과장된 언행을 일삼았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는 진절머리를 냈고, 그의 구애를 받은 여성들은 질겁하며 달아났다. 안데르센은 죽는 날까지 끝내 연인이나 가정을 얻지 못했다. 그의 이런 모습들이 여러 동화들 속에 편재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연약하고, 고독하고, 이룰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주인공들 모두가 그의 분신이다. 주목받고 싶어 하고, 그만큼 늘 배고픈 안데르센들. 때문에 안데르센의 동화는 꿈 많은 아이가 보는 세상처럼 환상적일 수 있었으며, 갈망하고 떼쓰는 아이가 겪는 세계처럼 비극적일 수 있었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는 영원한 영혼을 갈망하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아름답지만 슬픈 목소리로 노래한다. 디즈니가 새로 창조한 인어는 왕자의 사랑을 얻고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이 세계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곳임을 안데르센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의 동화가 세상에 나오고서야 사람들은, 세상은 고통에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구원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동화를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이를 몸소 보여 준 것이 안데르센 자신이다. 그는 세계란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인간은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동화를 통해서만, 허둥대고 어처구니없는 짓만 골라 하는 얼간이 안데르센이 아니라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는 작가 안데르센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는 어린 아이 같은 자신을 위한 글쓰기에서 시작해,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아파하는 모든 이를 향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동화를 쓴 사람이다. 안데르센이 허영에 차 있고, 고독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남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런 남자였기에 지금 우리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157편의 동화를 읽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리라. 안명희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마음의 고향’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마음의 고향’

    2004년 말 ‘자유만세’(1946)와 ‘양산도’(19 55)의 DVD를 선보인 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속적으로 한국 고전영화 DVD를 내놓았다. 당대의 한국영화만 홈비디오로 제작되는 현실에서 이 시리즈가 갖는 의미는 크다. 보기 어려운 한국영화의 감상 기회를 부여할 뿐 아니라 수집, 발굴, 복원된 결과물이 연구 자료로 쉽게 활용 가능해진 것이다. 리스트에는 신상옥, 김기영, 이만희 같은 유명 감독 영화는 물론 일제 강점기나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희귀한 영화도 포함돼 있다. 윤용규의 1949년 작 ‘마음의 고향’은 해방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얼마 전까지 제작자가 보관해온 16㎜ 프린트의 열악한 상태로만 볼 수 있었으나, 2005년 일본 국립필름센터에서 잘 관리된 마스터 필름을 입수했다고 한다. 따로 복원 작업을 거치지 않았으나 영화의 상태는 놀랍도록 양호하다. ‘마음의 고향’은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금껏 수많은 극단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2002년에는 주경중이 연출을 맡아 영화로 재등장한 적이 있다. 한국영화사연구가 김종원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마음의 고향’의 특별한 가치를 찾는다. 그의 글에 따르면 ‘마음의 고향’은 최초의 해외 교환 상영작이고, 당시 항일영화 사이에서 보기 드문 문예영화이며, 한국의 첫 번째 불교영화다. 한국 불교영화는 안타깝게도 장르 영화로 안착하진 못했지만, 시발점인 ‘마음의 고향’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해외에 많이 알려진 한국 불교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드리운 ‘마음의 고향’의 그림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성의 어머니는 세 살 먹은 아기를 절에 버리고 떠났다. 주지 스님의 손에 의해 도성은 어린 스님으로 성장한다. 소년은 깊은 산속을 떠나 바깥세상에 나가고 싶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립다. 소나무에 새겨 놓은 금만큼 자라면 어머니가 올 거라는 나무꾼 아저씨의 말에, 도성은 툭하면 소나무에 키를 잰다. 하지만 올라가는 금에 맞춰 자라기를 벌써 여러 번, 어머니는 소식 한 번 전하지 않는다. 어느 날 서울 아씨가 공양을 바치러 온다. 예쁜 그녀를 보고 도성은 꿈에 그린 엄마를 만난 듯 마음이 설렌다.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은 그녀 또한 도성에게 정을 느낀다. 이윽고 아씨는 도성을 수양아들로 받아들이기를 결심하는데, 도성의 업보를 아는 주지 스님은 반대 의사를 밝힌다. ‘마음의 고향’은 불교의 말씀을 친밀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아이를 잃은 두 여인과 버려진 소년을 통해 인연을 맺는다는 것의 뜻을 묻는다. 감동적인 내용 못지않게 영화의 외형도 인상적이다. ‘마음의 고향’은 이제 감독으로 더 익숙한 한형모(1917~1999)가 카메라를 잡던 때의 영화다. 그는 담담한 톤으로 고혹적인 한국미를 그려 보인다. 도성의 생모가 슬픔으로 떠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풀과 나무와 산과 물, 그리고 길이 어우러진 풍경은 흘러간 시간처럼 다시 보기 어려운 시적 흥취를 자아낸다. ‘마음의 고향’의 또 다른 기쁨은 갓 스물을 넘기던 시절의 최은희(85)를 만나는 데 있다. ‘마음의 고향’은 그녀의 세 번째 출연작이다. 최은희가 1960년대에 출연한 영화에 익숙한 관객은 그녀의 앳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질 법하다. 영화평론가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0)동물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0)동물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

    인간이 자살을 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대뇌 때문이다. 엄청난 자극에 의해 질서가 무너지면 사람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택하게 된다. 동물들은 어떨까. 사람과 달리 대뇌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자살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자살의 의미를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로 규정하면 그들도 자살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다. 우선 고래의 자살, ‘스트랜딩’을 들 수 있다. 고래 떼가 해안가로 밀려와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현상이다. 지난해 호주의 해안가에 범고래들이 대규모로 올라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 곳곳에서 간간이 벌어지는 현상인데 예전처럼 고래 사냥이 유행할 때라면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칼을 들고 달려들었겠지만 대부분의 고래가 멸종 위기에 놓인 요즘, 이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나도 해안가에 밀려온 돌고래 두 마리를 구해준 적이 있다. 갯벌에 올라와 있었는데 피부에 상처만 조금 입은 상태였다. 돌고래처럼 삶에 충실하고 낭만적인 동물이 일부러 얕은 곳으로 밀려온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자살과 진배 없는 일이다. 북극의 레밍(나그네쥐)도 동물 자살 이야기가 나올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동물이다. 레밍은 먹이 환경이 좋아 개체 수가 급격히 늘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에 나선다. 거의 맹목적으로 선두를 따라간다. 그러다 보니 선두가 방향을 바다나 호수로 잡아 안내하면 그대로 빠져 죽는다. 내가 직접 겪은 다람쥐원숭이 사건은 자살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극적인 것이었다. 처음으로 새끼를 낳은 다람쥐원숭이가 있었다. 그런데 새끼는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죽어 버렸다. 보통 자그마한 원숭이들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닌다. 그러나 새끼가 죽은 날엔 이상하게도 어미가 품에 안고 있었다. 젖을 주나 하고 봤더니 새끼는 이미 죽어서 축 늘어진 상태였다. 그럴 경우 보통은 어미를 쫓아서 새끼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날도 긴 장대를 이용해 어미로부터 새끼를 떼어낸 후 통상적인 부검을 거치고 바로 묻어 주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어미는 먹이와 일상 활동을 일절 거부했다. 끝내 한자리에서 그대로 못 박혀 죽고 말았다. 이 어미의 죽음에 대해 달리 쓸 말이 없어 진료부에 그냥 ‘자살’로 기록했다. 동물들은 죽음이 가까이 옴을 알고 무리를 벗어나 스스로 잡아먹히거나 코끼리 같은 경우는 무덤 자리(흔히 알려진 집단 무덤은 아니다)를 찾아가기도 한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표범이 있었다. 마치 돼지처럼 사육되던 걸 구해온 건데도 낯선 환경 때문인지 보름 동안 먹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죽기 일보 직전 음식을 먹으며 ‘삶’을 선택했다. 이런 걸 보면 동물들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뭍으로 올라온 고래를 정성껏 구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니면 그들이 선택한 죽음을 방해하는 것인지는 그들만이 정확히 알 것이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5)영월 청령포 관음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5)영월 청령포 관음송

    짙은 숲 그늘이 벌써 그립다. 여름이 이르게 다가온 것처럼 숲 향한 그리움도 빠르게 깊어졌다. 숲은 여름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자연의 치유력을 무한정 나눠준다. 초록의 숲은 바라보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살이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도 갖고 있다. 프랑스의 숲 치료 전문가인 패트리스 부샤르동은 “모든 나무는 제가끔 특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나무의 거친 껍질에 등을 대고 앉으면 나무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에너지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호흡 리듬을 바꾸고 고통과 통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래 전부터 널리 활용되는 숲의 에너지를 이용한 그의 심신 치유법이다. ●유배당한 어린 단종의 마음을 위로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임금 자리를 빼앗긴 어린 단종이 555년 전에 부샤르동의 나무 치유법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홀로 남겨진 유배지의 숲 한가운데 나무에 기대어 앉아 삶의 슬픔을 치유하고자 했다. 어쩌면 그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게 오로지 나무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의 소나무 숲 가운데에는 ‘관음송’(觀音松)이라는 고매한 이름의 소나무가 있다. 바로 유배된 임금 단종의 슬픔을 치유한 기특한 소나무다. 마음 속 고통과 깊은 슬픔을 말없이 바라보며 치유의 에너지를 뿜어낸 나무는 그로부터 550년의 세월을 보내고도 여전히 융융한 자태를 잃지 않은 ‘치유의 소나무’로 남았다. ‘육지 속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이 삼면을 휘감아 돌고 다른 한쪽은 육륙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자유롭게 바깥으로 드나들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을 가진 곳이다. 그래서 청령포에 들어서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넌다 했지만, 힘 좋은 사람이라면 헤엄을 쳐서라도 금세 건널 수 있을 만큼 강폭은 작다. 기껏해야 100m도 채 안 되는 가늣한 강이지만,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남한강의 지류인 이 강은 영월의 동강으로 이어지는 서쪽 강이어서 서강(西江)이라고 한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이곳에 유배된 것은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인 1457년 6월이었다. 병약한 아버지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린 나이에 임금 자리에 오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권력을 찬탈당하고, 이름뿐인 상왕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나중에는 아예 이곳 청령포로 유배됐다. ●30m 우리나라 최장신 소나무 “앞에 서 있는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큰 소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라는 이름의 소나무예요. 생김새도 특별하죠.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줄기가 둘로 나뉘었는데, 한 줄기는 하늘로 곧게 뻗어올랐고, 다른 한 줄기는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뻗었어요.” 조용하던 청령포 솔숲에 휴대용 마이크를 통해 낭랑한 목소리가 퍼져온다. 청령포를 찾은 노인 관광객들에게 구수한 입담으로 관음송을 소개하는 문화관광해설사 김은영(41)씨의 이야기다. 키가 30m인 관음송은 우리나라의 소나무 가운데에 가장 큰 키의 소나무다. 사람 키 높이 쯤에서 둘로 나뉜 줄기가 옆으로 뻗은 잔 가지 없이 위로만 높지거니 솟구쳐 오른 탓에 실제 키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인다. 바로 곁을 둘러싸고 무성하게 자라난 소나무들 탓에 가지를 옆으로 펼칠 수 없었던 게다. 햇살 들지 않는 그늘 아래에서는 가지도 잎도 내놓지 않는 침엽수 특유의 생존 방식이다. 솔잎을 내어봐야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사람 가슴 높이쯤에서 잰 줄기 둘레는 5.19m인데, 바로 그 부분에서 줄기는 둘로 나뉘었다. 바로 이 자리에 어린 단종이 걸터앉아 슬픔을 삭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편안히 걸터앉기에는 조금 높은 자리이지만, 그리 크지 않았을 555년 전이라면 걸터앉기 십상이었지 싶다. “두 줄기 중 한 줄기가 하늘로 뻗어오른 건 단종이 하늘을 향해 풀어내는 한을 따라 솟아난 것이고, 다른 한 줄기는 단종이 그토록 갈망했던 한양 땅을 향해 자라난 겁니다.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단종이 손수 쌓아올린 돌무지 탑이 바로 저 위쪽의 망향탑이죠.” 마치 관음송의 속내라도 짚어내듯 구성지게 풀어내는 김은영씨의 해설에 데면데면하던 노인들도 단종의 설움을 알아챘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치욕과 배반의 세월… 치유의 나무 한 맺힌 반역의 세월을 돌아보며 단종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차오를 때에도 ‘나는 왕이다’를 되뇌며 왕가(王家)의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울음 소리는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울음을 알아챈 건 나무뿐이었다. 이 나무를 문음(聞音)송이라 하지 않고 관음(觀音)송이라 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들으려야 들을 수 없었던 임금의 울음을 온전히 바라본 나무라는 뜻이다. 누가 붙였는지 전하는 기록은 없지만, 절묘하다. 청령포 관음송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나무는 겉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한 많은 임금이 쏟아내는 장탄식과 멍울진 슬픔의 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친 껍질에 기댄 임금의 등줄기를 향해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치유 에너지를 내뿜었을 것이다. 두 달 뒤 단종은 청령포를 떠났지만, 나무는 임금이 겪은 반역과 치욕의 세월을 치유한 기록으로 살아 남았다. 오래 전 임금의 고통을 어루만져 준 치유의 나무가 됐다. 이 여름,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치유의 소나무’ 관음송을 찾아갈 일이다. 그리고 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 앞에 서서 그가 들려주는 이 땅의 슬픈 역사를 말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땅에 살아 남는 방식이 될 것이다. 글 사진 영월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명랑수녀님 귀여운 춤사위에 앙코르 쏟아지다

    명랑수녀님 귀여운 춤사위에 앙코르 쏟아지다

    누구도 그를 4년째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 마찬가지였다. 무대 위에 올라 얼굴 가득 눈웃음 지으며 얘기했다. 노래에 맞춰 고운 손동작 만들어가며 춤도 췄다. 삶을 힘겨워하는 이들의 고단함을 듣고 다독거려주는 위로의 말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했다.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뒤 오히려 행복 지수가 높아졌다는, 그래서 4년째 ‘명랑 투병’하고 있다는 이해인(66) 수녀다. 그가 최근 내놓은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 펴냄)는 두 달 만에 10만부가 팔렸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KT 드림홀에서 열린 이해인 수녀의 북콘서트는 200석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진행됐다. ‘책의 노래 서율(書律)’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밴드가 이해인 수녀의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고, 배우 소유진씨가 수녀의 시 ‘6월의 장미’를 낭송했다. 오랜 지인(知人) 강지원 변호사도 예정에 없던 시(‘잎사귀 명상’) 낭송을 마다하지 않았다. 50~60대 여성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객석에는 젊은 남성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객석과의 대화.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줘야할지 모르겠어요.” 한 젊은 남성의 간절한 고백에 객석은 순간 숙연해졌다. 너무 ‘진지 모드’였다고 판단했는지, 남성은 재빨리 “기도하는 것 말고요. 기도는 이미 하고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이내 쏟아진 폭소. 더불어 웃던 이해인 수녀는 “나, 기도하라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능청스럽게 응수한 뒤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들이 제게 보내준 편지를 모두 모아 (친구의) 남은 가족들에게 보내”줬단다. 그 친구들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 장영희 서강대 교수, 법정 스님, 박완서 소설가가 포함돼 있다. 가까운 벗들을 최근 몇 년 새 잇달아 떠나보내야 했던 그다. “친구가 생전에 좌절했거나 못다 이룬 꿈이 있다면 그것을 대신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슬픔 자체에 빠져 그리워하는 것도 치유의 한 과정이죠.” 그래도 못내 마음이 쓰였는지 수녀는 “이메일을 보내 주면 더 깊이 생각해 답하겠노라.”고 했다. 결혼하라는 성화에 너무 시달리다보니 가족조차 싫어진다는 한 여성의 하소연에는 “상상이별을 해보라.”고 했다. “매 순간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용서 못할 게 없다.”는 게 이해인 수녀의 얘기다. 올해 입사했다는 한 여성 신입사원은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어릴 때 수녀원에 들어와 교과서 같은 말만 들으면서 평생 살아 별로 해 줄 말이 없는데 어떡하나.”라는 수녀의 재치 있는 응수에 객석은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됐다. 수녀는 이내 정색한 뒤 “매일 새로운 기회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 기회를 잘 찾으세요. 본받고 싶은 이의 전기를 찾아 읽는 것도 좋은 일이죠.”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콘서트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율동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요란한 박수와 함께 객석에서 터져나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수줍은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선 이해인 수녀는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로 시작하는 ‘사랑의 송가’를 온몸으로 불렀다. 수녀복을 살짝살짝 들어올려 고운 선을 만들고, 고개 들어 허공을 쳐다보는가 하면 손가락도 살짝살짝 비틀었다.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는 사람, 앙코르를 연신 외쳐대는 사람,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 시쳇말로 객석은 ‘뒤집어’졌다. ‘명랑소녀 이해인’은 사양하는 법을 몰랐다. 동요 ‘동구 밖 과수원길’을 진지한 표정으로 부르며 다시 한 번 열심히 춤을 췄다. 환하게 웃는 얼굴 어디에도 암세포의 그림자는 없었다. “이렇게 독자들을 만나니 병도 잊을 수 있고, 더 행복하다.”는 이해인 수녀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 글 쓰고 희망을 나누고 싶다.”고 말하며 콘서트장을 떠났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9) 동물에 관한 진실 같은 오해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9) 동물에 관한 진실 같은 오해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혁신’ 관련 강연이 홍수를 이룬 적이 있었다. 당시에 강사들이 자주 예로 든 것이 솔개였다. 솔개는 40년을 산 후 깊은 산속 절벽으로 들어가 부리와 발톱을 모두 바위에 갈아 뽑아 버리는데, 그 고통의 세월을 참고 이기면 다시 새 부리와 발톱이 나 그 후 40년을 더 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언뜻 감동적이었지만 그게 정말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이고 서적이고 다 뒤져 보았지만 솔개는 그저 40년의 꽤 오랜 수명을 사는 새로만 되어 있었다. 이솝우화 같은, 그저 하나의 현대식 우화일 뿐이었는데 사실처럼 믿고 이야기하는 강사들을 보며 답답해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TV광고 중에 백조가 물 위에서 열심히 발을 젓다가 멈추면 물속으로 쑥 빠지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이 있다. 겉으로 편하게 보여도 안으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때 오리나 백조가 물속에서 발 젓는 것을 예로 든다. 그게 정말일까? 오리들은 대부분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공기가 찬 깃털, 부레와 같은 기낭, 함기골(공기가 들어있는 뼈) 조직 등으로 몸이 저절로 떠 있는 것이다. 교훈의 내용은 좋지만 사례 자체는 사실과 다른 셈이다.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많은 이들은 청설모를 외래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청설모는 거의 나무 위에서 사는 겁쟁이들이고, 주로 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 청설모가 사는 곳에 다람쥐도 함께 사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나무 위와 나무 아래로, 서로 사는 영역이 달라 별다른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오해는 왜 생겨났을까? 자료를 뒤져 보니 1980년대 어느 인기 소설가가 청설모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한 과수 농부의 말을 액면 그대로 소설에 옮긴 게 발단인 듯했다. 청설모는 외래종이 아니다. 오히려 다람쥐보다 더한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청설모의 영문 이름도 ‘코리안 스쿼럴’(한국 다람쥐)이다. 예전에는 털이 붓의 주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다람쥐의 진짜 적은 1960~70년대 수출을 위해 한 해에 30만 마리를 포획한 인간들이었다. 요즘엔 여름 철새인 뻐꾸기 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뻐꾸기는 탁란(托卵)하는 새로 유명하다. 주로 자기보다 훨씬 작은 멧새 등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아 놓고 잘 키우는지 아닌지 주변에서 감시까지 한다. 그런데 유명한 가요 제목으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있다. 새들은 대개 하늘을 지붕 삼고 나무 위를 잠자리 삼아 자유롭게 살다가 새끼를 키울 때쯤 둥지를 애써 만든다. 그런데 왜 하필 탁란을 하는 뻐꾸기를 소재로 삼았을까 싶다. 둥지를 잘 만드는 까치 같은 평범한 새들을 놔두고 말이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래 제목과 같은 이름의 미국 소설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미국 뻐꾸기는 많은 수가 자기 둥지를 짓는다고 한다. 글 사진 광주우치동물원 최종욱 수의사 lovnat@hanmail.net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중독성 있는 공연… 감정 연기 즐거워”

    “중독성 있는 공연… 감정 연기 즐거워”

    ‘헤드윅’. 남자배우 4명(조정석, 최재웅, 김동완, 김재욱)이 번갈아 주인공을 맡는 뮤지컬이다. ‘미모’도 용호상박이고 연기 색깔도 저마다 개성 있다. 대략 난감. 누구를 인터뷰해야 하나. ‘공연 좀 보러 다닌다.’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의외로 압도적인 답변이 나왔다. “헤드윅의 정석은 뭐니뭐니 해도 조정석이지.” ●“내가 봐도 예쁠 때 있어… 남성 관객이 엉덩이 만지기도” 인터뷰에 앞서 공연을 봤다. 왜 사람들이 그를 ‘뽀드윅’(뽀얀 피부와 애교 넘치는 발랄함에서 비롯된 애칭)이라고 하는지 단박에 느낌이 왔다. “분장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예쁘다고 느낀 적이 있다.”는 조정석(31). 동반 캐스팅된 김동완(그룹 신화 출신)이 “헤어진 여자친구와 닮아 깜짝깜짝 놀란다.”고 고백했을 만큼 그는 예쁘다. 몸 동작도 요염하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폭발적이다. 그를 지난달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헤드윅’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2006년, 2008년, 그리고 올해…. 중독성이 있는 공연이에요.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컨트리나 블루스 등 (극 중) 노래들도 참 좋아요.” 그는 뮤지컬 배우 송용진(200회 이상) 다음으로 ‘헤드윅’을 가장 많이 한 배우다. 헤드윅은 성 전환 수술에 실패한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가수 이름이다. 한마디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영혼이다. 감정 표현이 쉽지 않은 캐릭터라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는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좀 예민한 편이라 힘든 느낌은 없어요. 작년에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우울한 소년(모리츠)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도 오히려 즐겁고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픔, 슬픔, 이런 감정선을 관객들이 읽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워요.” ●“몰입은 힘의 원천… 양면성 있는 영화 캐릭터 해 보고 싶어” 정작 그 자신은 시원시원하게 얘기하지만 작품 속에서 갖는 헤드윅의 비중은 무겁다. 주인공이 공연 진행과 노래를 도맡아 2시간가량 끌고 가는 콘서트형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은 헤드윅이 웃으면 따라 웃고, 화를 내면 같이 분노한다. 객석을 동화시키는 ‘힘의 원천’을 물었다. “헤드윅이라는 인물에 100% 몰입하는 것?(웃음)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조정석이 아닌, 헤드윅에 철저히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면 버림받은 헤드윅의 분노, 삶의 슬픔, 이런 느낌이 본능적으로 전해져 와요.”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관객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며 야한 몸동작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언젠가 한번은 남성 관객이 제 엉덩이를 만져 무척 당황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노련해져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습니다(웃음). 아, 브래지어 속에 넣은 토마토를 끄집어내 던지며 절규하는 장면이 있는데 토마토가 없어져 혼난 적도 있어요.” 그는 2004년 데뷔했다. 8년째 뮤지컬 배우로 살면서 눈물 삼킨 날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家長)이라 늘 뭔가에 짓눌리는 느낌이 있고, 단독 주연(원 캐스팅) 공연을 할 때는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가장 힘든 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입니다.” 그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뮤지컬, 연극, 드라마를 종횡무진 오가고 있는 조정석. 일흔 넘은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배우야.”라고 주위에 자랑할 때 무척 행복하단다. 그에게는 목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영화배우다. “원래 꿈이 영화배우였어요.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제 공연을 본 어떤 기자 분이 트위터에 ‘조정석 심장에는 마그마가 있는 것 같다. 끓어오르는 에너지로 그가 사이코패스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올렸는데 양면성이 있는 캐릭터로 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뮤지컬 ‘헤드윅’은 8월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볼 수 있다. 5만~6만 5000원. (02)3404-4311.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농식품부 사무관들 우리술 전설을 읊다

    백약지장(百藥之長). 백 가지 약 중에 으뜸이라는 뜻이다. 천연효모로 빚은 술을 음식과 함께 반주로 먹으면 약이 된다는 의미다. 이처럼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식문화라는 인식 하에 농림수산식품부의 새내기들이 숨겨진 우리 술의 전설을 찾아나섰다. 농식품부는 10일 새내기 사무관 18명이 전국 각지의 12가지 술을 집중 취재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제작한 우리 술 홍보 책자 ‘술래잡기’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책 제목인 ‘술래잡기’는 술래잡기 놀이처럼 신임 사무관들이 숨어 있는 우리 술에 얽힌 전설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한국의 12대 명주는 평창 감자술, 홍천 옥선주, 한산 소곡주, 면천 두견주, 전주 이강주, 고창 복분자주, 해남 진양주, 진도 홍주, 김천 과하주, 안동 소주, 제주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등이다. 책 속에 소개된 우리 술에는 갖가지 사연들이 있다. 맛과 향이 뛰어나 한번 맛을 보면 일어날 줄 모른다고 해 ‘앉은뱅이술’로 불리는 한산 소곡주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집집마다 빚고 있는 술이다. 소곡주는 백제 유민들이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려 만든 술이었다고 한다. 제주도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된 고소리술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대몽항쟁군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끝까지 항전했으나, 결국 100년 가까이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 전해진 술이다. 이 책은 총 3000부가 제작돼 전국 공공 및 주요 대학 도서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농식품부 자료실 홈페이지(library.mifaff.go.kr)에서 원문보기 서비스를 통해서도 열람할 수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문화마당] 연예인 자살 ‘유감’/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연예인 자살 ‘유감’/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지난달 말 송지선 아나운서가 투신자살했다.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4일 뒤 가수 채동하가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평소 자신의 일에 철저한 프로정신을 보여 왔던 이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인터넷이 미디어의 중심이 되면서 가져온 변화는 무궁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볼 때, 연예계의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자살’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2005년을 전후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연예계 최고의 스타와 무명배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스스로 삶을 놓아버렸다. 1990년대 연예계에서 ‘연예인 자살’ 뉴스는 자주 접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다 2005년 들어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7년 1월과 2월엔 각각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 2008년 9월에 안재환, 그리고 며칠 뒤 당대 톱스타로 군림한 최진실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신인 연기자 장자연과 우승연이 또 그 길을 선택했다. 최진영도 누나(최진실)의 뒤를 따랐다. 2005년 이후 6년 동안 연예계는 자살로 점철됐다. 비극이었다. 자살의 원인 중 하나가 ‘우울증에 의한 순간적 선택’이라고 한다. 유니의 매니저는 자살하기 전날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네티즌 댓글에 속상해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겉으론 웃되 속으론 늘 경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연예인의 운명이지만, 스스로 벽을 쌓고 안으로 외로움을 키워 나갔던 셈이다. 이를 곁에 있던 사람도 눈치채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 결과였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인기라는 모래성을 쌓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더없이 굳건해야 하고 자신에게 붙은 거품을 모두 빼내 버려야 스스로 단단해진다는 생각을 저버린 채 걸어왔던 것이다. 10여년간 연예인들의 이미지 관리 행보를 지켜본 결과, 근거 없는 악플도 많았지만 연예인 스스로의 범법행위와 도덕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 등이 악플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인터넷 시대는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리알 들여다 보듯 실시간으로 뉴스화하고 있다. 그만큼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상상하기 힘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도 그에 걸맞은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생각해야 한다. 연예인의 얼굴을 얼마나 알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인격권과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도 있는 것이다. 연예인 스스로도 악플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평소 생활방식과 자세부터 가다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악플에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필수다. 만일 악플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해서 얕은 잔꾀로 해명만 늘어놓거나, 거짓말로 상황만 모면하려 한다면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연예계는 아직도 진심 어린 반성이 가장 현명한 선택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대중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통의 무게란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일반 서민들의 역경과 불굴의 삶 앞에서 자살을 미화하는 것이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살을 미화하는 미디어도 죄악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더 큰 슬픔을 안기는 근시안적인 대처다. 후배들의 자살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우리 시대의 연기자 최불암과 이순재의 말은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자살을 두둔해서는 안 된다. 자살에 대해 사회가 야단을 쳐야 한다.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인 만큼 신변의 변화에도 꿋꿋이 밀고 나갈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적했다. 특히 최불암은 최진실 자살을 사회에 대한 폭력이라고 할 만큼 단호한 입장을 밝혀 경각심을 높였다. 죽음을 선택할 용기로 살아간다면 겁날 것이 어디에 또 있으랴.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8) 독자 의견 들어보니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8) 독자 의견 들어보니

    서울동물원이 지난 2월 죽은 로랜드고릴라(수컷·1963년생) ‘고리롱’의 박제(剝製) 계획을 철회했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보낸 고리롱을 박제하는 것은 동물의 죽음을 기리는 방법으로 적절치 않다.”는 시민들의 반대 의견을 받아들였다. 앞서 서울동물원은 멸종 위기종인 로랜드고릴라가 다시는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박제를 추진했다. 동물원 관계자는 7일 “반대가 많은 박제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면서 “고리롱이 죽고 나서 100일 동안이나 냉동고에 보관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시민들이 올려준 고마운 의견과 아이디어를 충분히 참고해 깊이 있는 추가 논의를 거쳐 동물원의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신문은 고리롱 사체의 처리 방안을 놓고 독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박제 찬성’과 ‘박제 반대’ 사이에 논란이 격화되고, 고리롱의 냉동고 보관이 길어지면서 조속한 결론 도출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25일자 23면 ‘숨진 멸종위기 로랜드고릴라 고리롱 박제 찬반 논란’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과 서울신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다양한 의견들이 전달됐다. ‘박제 찬성’과 ‘박제 반대’는 3대7정도로 ‘반대’가 우세했다. 서울신문은 해당 의견을 동물원에 전달했다. 동물원은 일단 고리롱의 장례를 치르고 땅에 매장한 뒤 일정 시점 후에 유골을 수습해 골격을 짜맞춰 전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실제 외국의 유수 동물원들은 고릴라를 비롯한 영장류의 골격을 표본으로 전시해 연구 및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국내 동물원 사상 최장수 기록을 갖고 있다가 58세로 숨진 아시아코끼리 ‘자이언트’에 대해서도 현재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자이언트는 1955년 당시 삼성물산 이병철 회장이 태국에서 들여와 55년간 서울살이를 했다.서울동물원은 자이언트를 코끼리 우리 밑에 매장한 상태다. 약 12년 후에 파내 골격 표본을 만들어 전시할 계획이다. 동물원 관계자는 “코끼리와 고릴라는 개체가 다른 만큼 골격표본을 만들더라도 그 방법이 같을 수 없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영화프리뷰] ‘악인’

    당신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이며, 용인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훌라걸스’, ‘식스티 나인’ 등을 연출한 재일교포 이상일(37) 감독의 신작 ‘악인’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돼 일본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휩쓰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인 요시노(미쓰시마 히카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는 채팅 사이트를 통해 만남을 이어 오던 요시노의 뒤를 따라갔다가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한순간에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된 유이치는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던 미쓰요(후카쓰 에리)를 만나 뒤늦게 진실한 감정을 느낀다. 신사복 매장에서 일하면서 집과 직장을 오가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유이치를 만나 생애 처음 행복을 느낀 미쓰요는 살인범이라고 고백하는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도망치게 된다. 영화는 겉으로는 살인범과 금단의 사랑에 빠진 여자의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요시노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진정한 악인이란 누구이고, 그들을 악인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요시노가 죽임을 당한 데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마스오, 부잣집 아들인 마스오를 좋아하면서 육체노동을 한다고 유이치를 업신여긴 요시노, 딸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요시노의 아버지, 손자가 살인범으로 몰리자 어찌할 줄 모르는 유이치의 할머니 등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선악이라는 화두에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영화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묵직한 울림을 전해 준다. 원작 소설은 주변의 증언을 통해 유이치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이를 삭제하고 유이치의 시선에 집중했다. 덕분에 슬픔과 외로움, 욕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다만 일본 내 계층 간 갈등과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워터보이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청춘 스타 쓰마부키 사토시는 기존의 밝은 이미지와 상반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통해 배우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일본의 전도연’이라고 불리는 후카쓰 에리도 살인범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역을 섬세하게 표현해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투박하기는 하지만 인물을 강조하는 클로즈업 샷을 자주 사용한 이상일 감독은 극대화된 내면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감독은 “인물의 눈동자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촬영감독과 함께 신경 썼다.”면서 “전반에서는 눈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화면이 어두운데 후반으로 가면서 (관객이) 인물을 좀 이해하게 되면 밝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낳은 ‘영화 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아 작품의 무게감을 더한다. 9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소설 속에 절절히 녹아…

    과거의 아픈 기억은 그저 가슴에 묻어야 할까, 아니면 꺼내어 달래고 치유해야 할까.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은 대개 땅속에 묻어 잊어야 할 생채기로 기억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후유증이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는다 해서 잊히지 않을 아픔이라면 차라리 눈 부릅뜨고 바라보면서 청산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전상국은 흔히 전쟁과 분단에 시선을 깊숙이 두는 작가로 각인된다. 이는 유년 시절 겪었던 전쟁의 아픔에 대한 천착이다. 그것은 잊어선 안 될 상처를 덧나게 하는 고집이 아니라 번번이 치유와 소통의 애정으로 귀결된다. ‘온 생애의 한순간’ 이후 6년 만에 낸 ‘남이섬’(민음사 펴냄)은 그 치유와 소통의 절절함이 한결 더해진 소설집이다. 중편 두 편과 단편 세 편의 모음집이다. 표제작 ‘남이섬’과 ‘지뢰밭’이 전쟁의 편린과 기억을 되살려낸 작품이라면 ‘꾀꼬리 편지’ ‘춘심이 발동하야’ ‘드라마 게임’은 노년, 중년의 연애 감정과 마음의 깊이를 감칠맛 나게 풀어낸 소설이다. 그중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들여다본 작품 세 편을 놓고 전상국은 이렇게 말한다. “뒤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도 큰 얻음이 아닌가 싶다.” ‘남이섬’은 남이섬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중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을 통해 죽임과 죽음의 상처를 대비한 작품이며, ‘지뢰밭’은 전쟁에서 상처받은 채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한과 윤리 문제를 짚은 것이다. ‘드라마 게임’은 미군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평생 땅굴을 파고 사는 두더지 인생과 양갈보란 천대를 감내하며 사는 인물을 다룬다. 저자는 상처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실과의 소통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특유의 서사적 필치로 풀어낸다.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 마음이 죽는 일이라 했던가.’ ‘벌써 오래전에 내 마음속에서 제거했어야 할 지뢰였다. 지뢰는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살아 있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고통스러운 역사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상처를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과 소통의 싸움을 겨눈 대목들이 도드라진다. “이 나이쯤 된 사람의 눈에 비친 인간사의 시시풍덩한 이야기”로 소개한 단편 ‘꾀꼬리 편지’ ‘춘심이 발동하야’ ‘드라마 게임’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 곁들인 소품격 작품들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맺는 인연의 끈과 허물 없는 소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마마 고고’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마마 고고’

    개봉 당시엔 흥행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종종 회자되는 영화가 있다. 홈비디오로 출시되며 뒤늦은 발견의 기쁨을 주었던 ‘자연의 아이들’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교환가치를 잃은 노인의 상실감과 생존, 사라지도록 강요받는 자의 슬픔 같은 익숙한 주제와 아이슬란드의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을 병치한 영화의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연출을 맡은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의 존재는 몇몇 시네필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하지만 이후 프리드릭슨의 영화는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콜드 피버’, ‘팔콘’, ‘나이스랜드’는 영화제를 통해서만 소개됐으며, 근래 영화 제작에 신경을 쓴 프리드릭슨은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나이스랜드’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그는 관객과의 대화 도중 차기작으로 ‘가슴 따뜻한 멜로 드라마’를 찍고 싶다고 밝혔다. 멜로라고 하면 대부분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리겠으나, 멜로 드라마의 오랜 주제 가운데 하나는 ‘가족 간의 갈등’이다. 프리드릭슨은 ‘나이스랜드’ 이후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영화 ‘마마 고고’(2일 개봉)로 자신의 말을 지켰다. ‘자연의 아이들’, ‘콜드 피버’, ‘어머니의 용기’에서 다뤘던 ‘가족(과 노인)’의 주제를 잇는 ‘마마 고고’는 프리드릭슨의 개인사가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은 많은 부분 감독과 지인의 경험에서 따온 것이고, 영화의 주인공은 ‘자연의 아이들’의 감독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은 영화의 불모지로 알려진 아이슬란드에서 고독하게 영화 작업에 매진해 온 감독이다. 야심 차게 발표한 ‘자연의 아이들’로 영화계의 주목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노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관객들은 영화를 철저히 외면한다. 국가의 경제난과 가족의 열악한 형편이 겹치면서 그는 곤경에 처한다. 때마침 벌어진 어머니의 병환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크고 작은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데다 감정 기복이 심해진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와 누이들은 여의찮은 경제사정을 이유로 어머니의 요양원 행을 결정한다. ‘자연의 아이들’에서 양로원을 탈출하는 노인을 그렸던 그가 정작 자신의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 프리드릭슨은 영화에 판타지를 삽입하기를 즐긴다. ‘마마 고고’에서도 노파는 죽은 남편의 환영과 계속 대면한다. 이와 이질적으로 그의 영화는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다. 가식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스타일을 찾기란 힘들며, 사모곡에 마음을 담은 ‘마마 고고’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런데 수수한 옷만 걸쳤음에도 ‘마마 고고’의 클라이맥스에선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무색무취인 것처럼, 깊은 감동엔 요란한 장치가 필요 없는 법이다. 기다려 주지 않는 부모와 시간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질문은 보다 근원적이다. ‘마마 고고’는 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한다. 영화평론가
  • 영화 ‘마마’ 주연 류현경 “스타 꿈꾸지 않아요… 쓰임받는 배우, 그거면 돼요”

    영화 ‘마마’ 주연 류현경 “스타 꿈꾸지 않아요… 쓰임받는 배우, 그거면 돼요”

    배우 류현경(29). 그녀의 이름은 선뜻 떠오르지 않아도 얼굴은 마치 오랜 친구를 보는 것처럼 친숙하다. ‘방자전’, ‘시라노; 연애조작단’, ‘쩨쩨한 로맨스’ 등 히트작에는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 그녀는 2일 개봉한 영화 ‘마마’에서 김해숙, 유해진 등 대선배들과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충무로의 ‘명품 조연’ 류현경을 지난달 31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경력 15년 아역배우 출신… 히트작마다 출연 →출연작마다 성공했는데, 작품을 보는 눈이 있나 보다. -영화가 꼭 저 때문에 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되는 작품은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현장에서 무조건 모든 스태프, 배우, 감독이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처음엔 나를 새침하게 보지만, 남자처럼 술도 잘 마시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어느새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명품 조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연기 경력 15년차의 내공 덕인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별 생각 없이 연기하다가 ‘신기전’(2008) 이후에 비로소 평생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연기자가 된 이유도 좀 엉뚱하다. 어릴 적에 가수 서태지의 팬이었는데, 그의 뮤직 비디오에서 이재은씨가 그와 대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태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연기자가 됐다. 그런데, 데뷔하니 서태지가 은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수가 더 빠른 길이었는데, 연기자가 된 것을 보니 운명이긴 한가 보다. →아역배우 출신이다. 유난히 여자 톱스타들의 아역을 많이 했는데 성인 배우로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영화 ‘깊은 슬픔’의 강수연, 드라마 ‘곰탕’의 김혜수, 영화 ‘마요네즈’의 고(故) 최진실 선배의 아역으로 출연했다. 다들 지금의 나를 보면 ‘얼굴이 예전과 똑같다. 아직까지 연기할 줄 몰랐다.’며 놀란다. 아역 이후로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아서 슬럼프도 없었던 것 같다. 영화의 일부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가족 등 주변 사람들도 꼭 스타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지 않았다. →‘마마’는 본인이 출연을 고집했다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잘난 연예인 엄마(전수경)에게 콤플렉스를 지닌 딸 은성 역을 맡았는데, 은성이 트라우마(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트라우마가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늘 내게 무뚝뚝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고 어린 시절엔 짧은 커트 머리에 축구, 발야구 등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 ●평생 연기하는 데 전념… 주·조연 안 가려 →영화 속 은성은 엄마에 대한 반발심으로 가수의 꿈을 버린 전업주부이지만, 실은 엄마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신이 가진 꿈과 열망을 숨기고 살아가는 착한 딸이다. 실제로는 집에서 어떤 딸인가. -정반대다(웃음). 집에서 나는 ‘나쁜 남자’ 캐릭터이지만, 엄마는 희생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극 중 엄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한 유명 소프라노다. 연예인으로서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스타의식이 없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선뜻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다. 화려하거나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스타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는 편이다. 그것이 더 오래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배우라면 주연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는 없을 텐데. -난 모든 가치를 평생 연기를 하는 데 두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영화에 쓰일 수 있는 배우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물 좀 주소’ 등에서 주연을 맡은 적이 있는데, 주연으로서의 압박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 내 자신의 부족한 점도 알게 됐다.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배역 아닌 큰 배역 욕심 내봤자 무의미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해서 그런지 작품을 크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큰 배역에 욕심을 내고 뺏어 봤자 자기 역이 아니면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방자전’에서 내가 맡은 향단이는 춘향보다 더 예뻐 보일 필요가 없다. 영화에서 춘향이가 빛이 나면 자연스럽게 향단이도 빛이 난다. 튀어 보이려다 영화의 균형을 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배우는 너무 드러내거나 감춰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4차원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절친’인 최강희(배우)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평소 성격이 상당히 감성적인 편이고, 뭐든지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최)강희 언니를 4차원이라며 특이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분이 나쁘다. 연기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한해서 그렇지, 평범한 면도 많다. 남에 대한 배려심도 많고, 생각도 어른스러워 나는 ‘두번째 엄마’라고 부른다. 2004년 드라마 ‘단팥빵’에 출연하면서 언니를 처음 만났는데, 낯을 엄청 가려 3년 동안 말을 놓지 못하다가 좋아하는 책 얘기를 하다가 친해졌다. 류현경은 ‘마마’와 같은 날 개봉한 독립 영화 ‘굿바이 보이’에도 출연했다. 그녀는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의 경계를 굳이 두지 않고 현장에서 사랑받고, 언제나 그 역할에 딱 들어맞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서른을 앞두고 그 나이대에만 표현할 수 있는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류현경. 장인처럼 한 단계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그녀의 내공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연기 세계가 기대를 모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3)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이팝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3)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이팝나무

    축구 골키퍼가 되고 싶은 초등학교 5학년 나윤호. 손수 만든 물폭탄을 들고 이팝나무 꽃이 환하게 피어난 운동장 가장자리의 꼭짓점 부분에 섰다. 반대편 꼭짓점을 향해 날려보낼 채비를 하는 중이다. 바닥을 잘라낸 페트병 두 개를 마주 끼우고 공기가 새지 않도록 접착제와 테이프로 마감한 물폭탄에 물을 절반쯤 채우고 발사대에 세운다. 한쪽 주둥이에는 공기를 주입할 펌프를 연결한다. 같은 반 소녀 빈주영이 펌프질을 거들고 나선다. 물폭탄에 터질 듯 공기를 가득 채운 뒤 운동장 반대편에 서 있는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윤호가 기세 좋게 발사한다. ●흉년 들어 죽은 아기들의 무덤가에 심어 선생님의 머리 위쪽으로 날아가는 물폭탄을 바라보는 윤호와 주영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떠오른다. 바로 곁에서 무더기로 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의 꽃향기가 소년 소녀의 밝은 표정 위에 살랑 얹힌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군락이 있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마령초등학교의 늦은 봄날 풍경이다. “꽃이 쌀밥처럼 피어나서 이팝나무라고 하는 거예요. 이팝이 쌀밥이거든요. 저 이팝나무들이 우리 학교의 자랑이에요. 이게 우리 교지인데요. 뒤에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읽어보세요.” 나무 이야기를 물어보자 머뭇대던 주영이가 쪼르르 교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곧바로 지난가을에 펴낸 교지 ‘마령글동산’을 들고 와 이야기를 풀어낸다. 학교 정문 좌우로 늘어선 이팝나무는 옛날에 아기 무덤 앞에 심었던 나무들이라고 교지 뒤표지에 쓰여 있다. 또 아기 무덤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꺼렸기 때문에 나무들이 잘 지켜졌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 자리에 왜 아기들의 무덤이 있어야 했는지 모른다. 아기들의 무덤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아기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도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아이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한 맺힌 이 땅의 가난한 아비들의 꿈 “농사가 잘 안 되는 바람에 아이들이 굶어 죽었다나 봐요. 아이들이 죽으면 어른들은 죽어서라도 쌀밥을 먹으라고 쌀밥나무를 심은 거라고 선생님이 알려 줬어요.” 윤호에게 아기 무덤의 이팝나무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또래 아이들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게 특별하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배 고플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당연한 일을 놓고 굳이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윤호는 당차게 반문한다. 그러나 300년 전만 해도 굶지 않는 일은 부모와 하늘에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다. 흉년이 들면 아기들은 젖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어미의 빈 젖을 물고 죽어갔다. 아비들은 어미의 품 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이의 주검을 말 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아비는 아이의 시체를 가마니에 곱게 싸고 눈물의 끈으로 질끈 동여매서 지게에 짊어지고 뒷동산으로 올랐다. 양지 바른 자리를 찾아 구덩이를 파고, 지게 위의 아이 주검을 내려놓아야 했다. 아비는 차마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아기 무덤 앞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생각에 못난 아비는 쌀밥을 닮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를 심고 겨우 발길을 돌렸다. 햇살 좋은 아기 무덤 앞에서 자라난 이팝나무의 사연을 아는 사람들도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무를 심었다. 역시 이팝나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평지리 아기 무덤은 마침내 이팝나무 동산을 이루었다. 봄이면 아기 무덤의 이팝나무들은 마을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려는 듯 환장할 만큼 아름답게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이팝나무 꽃 천지가 된 아기 무덤을 마을 사람들은 ‘아기사리’라는 지방말로 불렀다.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군(群)은 그렇게 봄마다 한 맺힌 이 땅의 슬픔으로 아름다운 꽃 대궐을 이루었다. 이 아름다운 이팝나무들은 결국 이 땅의 아이들을 더 풍요롭게 지키기 위한 뚜렷한 상징으로 남았다. ●이팝나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아이들을 위해 이팝나무 꽃동산이 아이들의 동산으로 바뀐 건 90년 전인 지난 1920년의 일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부모들의 한풀이라도 하듯 아기 무덤을 갈아 엎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세웠다. 바로 마령초등학교다. 사람들은 그토록 찬란했던 이팝나무들을 하나 둘 베어냈지만, 그 가운데 7그루는 남겼다. 높이 13m쯤 되는 가장 큰 이팝나무와 그에 못 미치는 작은 이팝나무들은 학교 정문 옆 울타리에 줄지어 서 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이들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지키는 표상이다.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도담도담 꿈을 키워 가는 학교 아이들이 굳이 이 나무들에 얽힌 슬픈 사연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또 피 맺힌 과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애쓸 부모도, 선생님도 없다. 그저 지금의 환경에서 윤호와 주영이처럼 어린 시절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기를 바랄 뿐이다. 화려하게 꽃 피운 이팝나무를 바라보면,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팝나무 꽃처럼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어 보게 된다. 글 사진 진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991 마령초등학교 내. 새로 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의 진안 나들목으로 나가서 남원 임실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이라 불리는 진안의 명산을 바라보며 8㎞쯤 가면 나무가 있는 마령초등학교가 나온다. 진안 너른 벌에 펼쳐지는 농촌 풍경을 즐기려면 지방도로 49호선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순천~완주 간 고속도로의 상관 나들목으로 나가서 우회전하여 11㎞ 지점의 관촌면까지 가서 동북쪽으로 풍요로운 평야 지대를 14㎞쯤 가면 학교에 닿는다.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일본 해안마을에 남만(인도네시아) 배 한 척이 표류돼 왔다. 이 배에는 커다란 아시아 코끼리가 한 마리 실려 있었다. 선원들은 당시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막부(幕府)의 서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코끼리를 쇼군에게 바친다. 일본에 최초로 코끼리가 상륙하는 순간이었다. 코끼리는 당시 일본 수도인 교토까지 72㎞나 되는 먼 길을 걸어가 쇼군에게 상납된다. ●日서 팔만대장경 판본과 강제 교환 그러나 쇼군은 난생 처음 보는 코끼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불교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코끼리라면 불경에 나오는 것처럼 하얀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불경스럽게도 너무나 까맸다. 쇼군은 코끼리를 궁궐 한구석에서 대충 사육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 막부는 정권 강화를 위해 팔만대장경 판본이 필요해졌다. 조선에 판본을 요구했다. 대신에 아주 귀한 코끼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조선은 외교적으로 이 제안을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코끼리는 다시 배에 실려 조선 땅으로 왔다. 공교롭게 일본과 조선에서 최초 코끼리가 동일해졌다. 태종 1411년 2월 조선에 들어온 코끼리는 역시 일본과 비슷한 이유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래도 외교 선물인 만큼 궁궐 안에서 말을 키우는 사복시에게 맡아 기르도록 했다. 코끼리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대충 말처럼 사육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로부터 1년 후 지금의 국토부 장관쯤 되는 공조전서 이우(李瑀)가 심심하던 차에 코끼리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줬던 모양이다. 화가 난 코끼리는 이우를 밟아 죽이고 말았다. 대형 참사였다. 왕과 중신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살인범이 된 코끼리를 처형할 것인가 살려둘 것인가. 결국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의 장도라는 작은 섬에 귀양 보내졌다. ●‘살인 코끼리’ 전락… 전라도 등 전전 무인도 같은 이곳에 코끼리가 좋아하는 먹이는 거의 없었다. 궁궐에서 삶은 콩이나 과일로 호의호식하던 코끼리는 급기야 먹기를 거부했고 점점 말라갔다. 이 소식을 접한 태종은 매우 슬피 여겨 다시 코끼리를 전라도 땅 육지로 불러들여 절대 죽이지 말고 잘 키우라고 지시했다. 졸지에 애물단지를 떠안게 된 전라도 관찰사는 새로 왕위에 오른 세종에게 장계를 올렸다. “선왕의 뜻을 받잡아 잘 키워 보려 했으나 하루에 100㎏이 넘는 귀한 식량을 축내는 데다 매우 위험하기까지 한 이 코끼리를 전라도 혼자서만 감당하기는 너무 힘드니 따뜻한 삼도(경상·전라·충청) 지방에서 서로 돌려가며 키우게 하소서.” 정권 초기에 민심을 다독이려던 세종은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아 코끼리를 충청도로 올려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코끼리는 공주에서 또다시 사람을 해하고 말았다. 충청도 관찰사는 왕에게 ‘살인 코끼리’를 섬에 유배해 방목시키기를 간청했다. 한반도 첫 코끼리의 10년간의 짧고도 기구한 기록은 여기에서 끝나고 만다. 아마도 이 불행한 코끼리는 얼마 못 가 외로운 고도(孤島)에서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으리라 추측된다. 그 후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500년 뒤인 1912년 한반도에 비로소 두 번째 코끼리가 들어온다. 이 코끼리를 맞은 곳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찬탈한 뒤 궁궐(창경궁)에서 동물원으로 격하시킨 창경원이었다. 글 사진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에 버리고 온 나를 찾아가지 못한다 의상대 붉은 기둥에 기대 울다가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머리에 새들도 집을 짓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이미 잊은 지 오래 동해에서는 물고기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고 별들도 떼지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데 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1970~80년대였다. 분노의 언어는 분명히 적의 심장에 날아가 꽂혔건만 가슴이 아리고 피 흘린 쪽은 외려 자신이었다. 엄정한 과학의 언어는 체계적이었지만 이념의 틀 안에서 쉬 헤어나지 못한 채 바싹바싹 메말라 갔다. 공중에 한 뼘쯤 떠 있는 듯한 관념의 언어 또한 사람들의 마음에 정박하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때 정호승(61) 시인의 시(詩) 속 언어들은 더욱 빛났다. 갈갈이 찢긴 시대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조심스레 이어 붙였다. 다치고 서러운 마음을 가만히 쓸어 주고 위로해 줬다. 투쟁을 들먹이지 않으며 투쟁을 버팅기게 했고,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 너머를 꿈꾸게 했다. 모든 가치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잘 더듬어 찾아보자고 노래했다.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등 내놓는 시집마다 모두 그랬다. 시대의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이율적으로 사랑을 얘기한 ‘사랑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30일 만난 시인은 정색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 이미지가 너무 고정됐나 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랑의 시인’이라며 남녀상열지사나 얘기하는 시인처럼 바라보더라고요. 저, 젊은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데이트 한 번 변변히 못한 사람이에요.” 그렇다. 그는, 그의 시는 많이 변했다. 1972년 등단했으니 벌써 40년 차 시인이다.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는 세월이다. 그는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하는데 그 변화의 마디마디가 없을 수 없다.”면서 “시대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내 눈물 닦기도 버겁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시를 읽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스스로 눈물을 닦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시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을 가질 수 있죠. 시대는 지나가지만 시는 영원하잖아요.” 정호승 시인이 제19회 공초문학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점점 선명해진다. 수상작은 지난해 말 내놓은 열 번째 시집 ‘밥값’(창비 펴냄)에 들어 있는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이다. 시가 품은 성찰과 자성, 관조가 두드러지고 시어는 더욱 넉넉해졌다. 그리고 수상작 속에서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표현했듯 스스로 더욱 엄격해졌다. 얼핏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공초 오상순’과 ‘정호승’의 접점이 널찍해지는 지점이다. 그는 “1968년 대학(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공초 선생은 이미 돌아가신 뒤라 뵌 적이 없었다.”면서도 “그 이름으로 남긴 문학상을 받게 된다니 오랜 시간 시를 버리지도, 시로부터 버림받지도 않았음을 감사할 따름”이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아직’ 외에도 시집 ‘밥값’에 깔린 전체적인 심상은 죽음, 특히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삶에 대한 집착, 욕망에 대한 거리두기를 꾀하는 초월의 지향도 함께 밝힌다. “죽음도 인간의 본질임을 인식하며 더욱 천착하게 되네요. 나이 탓인가…. 삶의 본질로서 사랑과 죽음이 품고 있는 무게감이 똑같지 않으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의 또 다른 형태겠죠. 더욱 성찰하고 시대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역시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랑의 시인’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 10권의 시집과 ‘항아리’, ‘연인’ 등 동화집, ‘정호승의 위안’ 등 산문집 출간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 “성시경 노래 ‘두사람’ 한국말로 불러 녹음할래요”

    “성시경 노래 ‘두사람’ 한국말로 불러 녹음할래요”

    “한국은 제 가슴 속에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순수한 톤의 제 목소리도 노래를 잘하는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제2의 노라 존스’로 불리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프리실라 안(27)은 31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순수한 톤의 목소리는 한국인 엄마의 영향 ”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한국 근무가 끝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터전을 옮겼다. 어머니와 자신 외에 동양인은 한 명도 없는 도시였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게 프리실라의 고백이다. 본명은 프리실라 내털리 하트랜프트이다. 가수로 본격 데뷔하면서 어머니의 성인 ‘안’을 따 ‘프리실라 안’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성은 발음이 너무 어렵고 철자(스펠링)도 어려워 어머니 성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한자로 ‘안’이 ‘평화’를 뜻한다고 해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대단한 음악 팬이셨고 노래 실력도 뛰어나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해요.” 재즈 전문 음반사 블루노트와 계약하고 2008년 발표한 데뷔 앨범 ‘어 굿 데이’(A Good Day)는 청아한 목소리와 깊이 있는 감성을 담은 음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블루노트가 배출한 팝 스타 노라 존스의 뒤를 잇는 재목이라는 평가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재즈 색채를 내려고 일부러 노력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블루노트의 재즈 색채나 노라 존스와 비교되는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노라 존스와 비교되는 것은 굉장한 칭찬이지만 제 음악이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3년 만에 최근 발표한 새 앨범 ‘웬 유 그로 업’(When You Grow Up)은 다소 쓸쓸한 정서를 담고 있던 이전 앨범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아졌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제 막 결혼 1주년을 맞은 그는 결혼 생활이 자신의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했다. “지금의 제 삶에는 평온함이 있고 이것이 음악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거나 슬픔에 빠져 있거나 하진 않아요. 결혼을 한 뒤 즐겁고 행복한 곡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됐어요.” ●“결혼 후 즐겁고 행복한 곡 만드는 법 알게 돼”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 역시 음악에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제 음악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 미소짓거나 어떤 추억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제 곡들은 굉장히 솔직하고 진실한데, 듣는 사람들도 저의 진실된 마음을 느끼고 믿어 주길 바라요.” 두 차례 내한해 공연한 그는 조만간 또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한국 팬들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에 제 팬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올여름에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인데, 정말 기대되고 기뻐요.” 그는 한국 가요 중 성시경의 ‘두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곧 직접 녹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2011 SBS 대기획 남겨진 미래, 남극 3부(SBS 일요일 밤 11시) 지구환경의 지표이자 자원의 보고인 남극이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고 있다. 연평균 기온 영하 55도, 얼음두께 2000m. 남극 얼음이 모두 녹아내리면 해수면은 60㎝ 상승한다. 더 이상 재앙은 저지대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렇게 기후변화와 생태계 교란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장을 함께한다. ●우당탕탕 캐릭터 극장(KBS1 토요일 오후 1시) 마른 모래마을을 향해 가던 우편 배달부 깜부는 조종간이 고장나 그만 로비브러더스 위로 추락하고 만다. 다행히 로비브러더스는 우편물을 감고 다니는 움직이는 포장상자 패키에게 망원경 우편물을 받게 된다. 그리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망원경으로 얼음꽁꽁마을에 있는 투티를 보게 된다.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혜진은 동훈과의 서먹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시어머니를 대신해 명희의 결혼 준비에 열심이다. 동훈은 그런 혜진이 고맙기만 하다. 한편 영희와 기창은 친정과 시댁 일에 참석하지 않은 상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 둘은 결국 이혼서류를 들고 가정법원으로 향한다. ●반짝반짝 빛나는(MBC 토요일 밤 8시 40분) 승준은 출판사 직원들을 불러 정원이 필름을 잃어버린 현장을 녹화한 CCTV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승준은 금란을 따로 불러 자신의 사랑은 정원뿐이라며 더 이상 자신의 어머니와 엮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승준 어머니는 남봉이 더 큰 도박판에 빠져들도록 일을 꾸민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20살 나이로 실종된 이만균씨. 25년 동안 소식 하나 없던 그가 가족들 앞에 지난 2월 돌아왔다. 가족들은 만균씨를 만난 반가움보다 슬픔과 분노가 앞섰다. 그것은 예전의 만균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군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하고 병든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상앨범 산(KBS2 일요일 오전 7시 40분) 서울의 웬만한 산을 정복한 사람들은 좀 더 멀고 힘겨운 코스를 찾게 마련이다. 그런 산꾼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불·수·사·도·북’. 이는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5개산을 말한다. ‘영상앨범 산’에서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장거리 산행지로, 산악인들에게 일종의 자격증과 같은 산들을 소개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한 소년이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 올라간다. 더 놀고 싶다며 아빠를 졸라 보지만 아빠는 소년을 현관에 세워두고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곧바로 나온 아빠는 깜짝 놀라고 만다. 아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 [日 도호쿠는 지금] “큰 축제 열어 명소 부활” “행복추구권 보장할 것”

    [日 도호쿠는 지금] “큰 축제 열어 명소 부활” “행복추구권 보장할 것”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는 오쿠야마 메이코 센다이(왼쪽) 시장과 미야다테 히사키 (오른쪽) 이와테현 부지사는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도호쿠(동북부) 지방을 새롭게 건설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오쿠야마 시장은 “센다이 시민들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 다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되살리고 싶다.”며 복구 의지를 밝혔다. 오쿠야마 시장은 대지진 이후 일본 전역에서 ‘자숙 모드’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점을 의식해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센다이를 부흥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차원에서 오는 7월 센다이가 속해 있는 미야기현뿐만 아니라 이와테·아오모리·아키타현의 대표적인 축제를 유치해 ‘도후쿠 지방 축제 경연’을 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센다이시가 광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 “대지진 이전에 한국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아왔는데 최근 방문객이 아무도 없다.”며 “한국 분들이 먼저 센다이시를 찾아 줘 한·일 간 우호의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4450명의 사망자와 2994명의 행방불명자가 생긴 이와테현 미야다테 히시카 부지사도 “이와테현을 부흥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미야다테 부지사는 이번 복구 작업의 핵심은 “피해자 한명이라도 슬픔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희생자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계승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태양광 주택을 설치하고 공장시설 등을 재배치하는 ‘부흥실시계획(그라운드 디자인)’을 오는 9월까지 완성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특히 “이와테현 주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히라주미 일대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돼 많은 위안을 삼고 있다.”고 전했다. 센다이·히라주미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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