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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자비가 우리의 힘…코로나 극복하고 이천 화재 이겨낼 것”

    文 “자비가 우리의 힘…코로나 극복하고 이천 화재 이겨낼 것”

    부처님오신날 맞아 SNS 메시지“나라 어려울 때마다 불교는 아픔 나눠이천 화재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 느껴”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우리의 힘이고 희망”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이천 화재의 슬픔을 이겨내며 반드시 우리의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겠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불교는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셨고 아픔을 나눠주셨다. 지금도 ‘청정 사찰 실천’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하면서 감염병 극복에 앞장 서주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자들은 기부와 나눔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스님들은 보시를 반납하며 지친 의료인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무료로 개방했다. 불교계의 따뜻한 마음은 언제나 국민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이 열리는 5월 30일까지 전국 사찰에서 이뤄지는 ‘코로나19 치유와 극복을 위한 기도’도 언급했다. 불교계의 이런 노력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부처님의 지혜와 사랑을 스스로 행하는 그때 그곳이 부처님이 오시는 자리’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기쁨과 희망, 슬픔과 걱정을 국민과 함께 나누는 매일매일이 부처님오신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한편 문 대통령은 전날 발생해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두고 “많은 분이 희생됐다. 코로나19 극복에 모두 애쓰는 중에 불행한 일이 생겨 안타깝고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울러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을 깊이 애도하고 부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진화와 구조에 애써주신 소방대원들의 노고에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처님오신날 아침, 불자들과 스님들의 마음도 편치 않으실 것 같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유가족을 위로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지하 2층 우레탄 작업중 쾅·쾅·쾅… “순식간에 검은 연기 들어차”

    지하 2층 우레탄 작업중 쾅·쾅·쾅… “순식간에 검은 연기 들어차”

    냉장·냉동 물류창고 우레탄폼 발포 작업 발화 즉시 유증기 만나 수차례 폭발한 듯 우레탄 유독가스 마시면 3분내 목숨 잃어 공사 건물은 시야 확보 못해 대피 어려워 건물 모든 층서 시신 끊임없이 들려나와 시공사 “유가족에 책임감 갖고 수습할 것”최소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은 처참했다.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의 거대한 건물을 감싼 건물 외벽은 화염과 열을 견디지 못하고 심하게 우그러졌고, 5시간 동안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연기에 그을려 잿더미로 변했다. 소방당국의 인명 수색 과정에선 시신이 끊임없이 들것에 실려 나왔다. 29일 불이 난 창고 2층 계단에서 타일 작업을 하다 몸을 피한 A씨는 “계단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왔다”며 “순식간에 연기가 건물 안으로 들이찼다”고 말했다. 불이 난 건물은 냉장·냉동용으로 쓸 물류창고로 A, B, C 3개동 중 B동이었다. 전체 면적 1만 1043㎡ 규모로 지난해 4월 23일 착공해 오는 6월 30일 완공될 예정이었다. 85%까지 지어진 상태로 화재 당시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특히 처음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2층에선 마감재 작업이 한창이었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9개 업체 78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지하 2층에서 작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자는 지하 2층에서 4명, 지하 1층(4명), 지상 1층(4명), 2층(18명), 3층(4명), 4층(4명)에서 각각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건축자재인 우레탄폼이 타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발화와 동시에 수차례 폭발이 일어나면서 불이 삽시간에 번지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미처 피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사망자들이 전혀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있었던 것 같다”며 “화상자들의 옷이 다 탄 점 등으로 볼 때 불이 굉장히 빨리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폼 작업을 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맞은편 건물에서 화재를 목격한 B씨는 최소 10여 차례 이상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최초 발화 지점인 건물 지하 2층은 냉동창고가 들어설 예정이었고, 냉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열재인 우레탄을 채워 넣는 도포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지하 2층에서 우레탄 작업을 한 탓에 유증기가 쌓여 화재에 취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레탄폼은 단열 효과가 좋고 작업하기 편한 데다 가격이 저렴해 냉동창고 단열재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연소점이 낮아서 불에 잘 타고, 화재 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순식간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다. 우레탄이 타면 시안화수소(HCN·청산가스)가 나오는데 아주 적은 양만 들이마셔도 3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우레탄 유독가스는 한두 모금만 마셔도 즉시 정신을 잃을 수 있다. 가스가 눈에 닿는 순간 눈도 뜰 수 없어 대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사 중인 건물이어서 대피로는 물론 시야 확보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좁은 통로가 연기로 가득 차면 피난할 시간이 굉장히 짧아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시공사인 건우 임원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큰 슬픔을 당한 유가족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사고를 잘 수습하고 성실히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사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상주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천 물류창고 참사 희생자 15명 신원 확인

    이천 물류창고 참사 희생자 15명 신원 확인

    “우리 아이 아빠는 왜 불속에서 못 빠져나왔나요” 희생자 15명의 신원이 밝혀져 공개되자 모가체육관 가족휴게실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29일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로 숨진 38명 중 15명의 신원이 경찰의 지문 감식으로 확인됐다. 가족임을 확인한 일부 유가족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일부는 슬픔을 주체 못하고 쓰러져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탄식은 명단에 이름이 없는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가족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이 됐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휴게실을 찾은 일부 가족들은 물류창고 공사에 투입된 근로자들의 생사를 물은 뒤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자 “책임자가 누구냐”,“생사는 확인해 줘야지”라고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권금섭 이천시 부시장은 이날 오후 11시 40분쯤 이천시 모가면 A물류창고 화재 참사 현장 인근 모가실내체육관에 마련된 ‘피해 가족 휴게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시공사 측에서 전달받은 출근자 명단을 유가족들에게 공개하고 경찰에서 방금 신원이 확인된 15명에 대한 신원도 유족들에게 공개하겠다”며 “이천시에서 화재로 인한 큰 인명피해가 있어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설명했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등 이천지역 7개 병원으로 분산 안치됐는데, 대부분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해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문 감식으로 신원이 밝혀진 15명 이외 23명의 신원은 유전자 감식을 하기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초 소방당국은 이날 출근한 인원 78명 중 소재 파악이 끝난 29명과 사상자로 확인된 48명 외에 1명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이는 명단 취합 과정에서 중복 인원이 생겨 발생한 착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당국은 혹시 모를 추가 사망자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밤새 수색작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38명의 사망자들은 이천의료원 병원 12명, 가남베스트병원 3명, 송산장례식장 4명, 장호원요양병원 3명, 하늘공원 6명, 효자원 4명, 곤지암농협 3명, 곤지암연세장례식장 3명 등에 이송 안치되었다. 중상자들은 바른병원에 1명, 참좋은병원에 1명, 마티마병원에 1명, 다보스병원에 1명, 아주대병원에 2명, 분당서울대병원에 1명 등에 입원 치료중 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오늘 세계 안내견의 날…고마운 ‘네 발의 천사’ [김유민의 노견일기]

    오늘 세계 안내견의 날…고마운 ‘네 발의 천사’ [김유민의 노견일기]

    시각 장애인의 눈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안내견들. 4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인 오늘은 국제안내견협회에서 지정한 ‘세계 안내견의 날’입니다. 안내견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고 고마움을 새기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날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약 2만여 마리 안내견들이 영국, 미국, 뉴질랜드,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내견의 시작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일의 한 의사가 시력을 잃은 군인을 돌보는 개의 모습을 보고 적십자와 협력해 관련 교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안내견 학교는 1929년 미국 최초의 안내견을 등록시킨 도로시 유스티스가 세운 ‘The Seeing Eye’로 현재도 안내견을 양성하며 전 세계에 그 가치를 알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1972년 임안수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안내견 사라와 함께 귀국하면서 안내견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고, 1993년 삼성화재가 안내견학교를 설립하면서 전문적인 양성이 이루어졌습니다. 1994년 양현봉 씨가 분양받은 ‘바다’가 국내 첫 안내견입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게 된 김예지 당선인의 ‘조이’ 역시 같은 학교 출신입니다.순한 외모에 지능이 높아 ‘천사견’이라는 별명을 가진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가장 많습니다. 안내견은 모든 장소에 출입이 가능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법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장소에서는 ‘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아무리 귀엽고 기특해도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안내견은 목줄의 움직임으로 주인의 상태를 파악하고, 주인은 안내견의 움직임을 따라 보행하며 주변의 위험을 피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주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것도 안내견의 활동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개는 색맹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무단횡단을 할 경우 건너도 되는 상황이라고 인지할 수 있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10여 년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한 안내견은 노견이 되면서 은퇴를 합니다. 자원봉사자 가정에 위탁되거나 안내견 학교에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기꺼이 사람의 눈과 발로 살다 가는 안내견은 ‘네 발의 천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조차 쉽지 않을 장애인들에게 안내견은 보행을 보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독립된 삶을 영위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안내견의 날을 맞아 어려운 훈련을 받고 있을 후보견, 이제는 느린 하루를 보내고 있을 은퇴견을 포함한 모든 안내견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앞으로 더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사설] 세월호 사찰 확인된 ‘박근혜 국정원‘의 범죄 밝혀내야

    박근혜 정부 시절의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마저 집중사찰했다는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절제와 통제 없는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이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직권남용을 넘어 국가폭력의 전형을 보여 준 ‘박근혜 국정원’의 엇나간 활동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 특조위가 그제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사 당시 국정원 직원은 단식투쟁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서울동부시립병원에 입원하자 병원장 등을 만나 김씨의 건강 상태와 신상을 조사해 보고했다. 병원장을 만나는 장면 등은 고스란히 병원 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당연하다는 듯이 사찰했다는 얘기다. 특조위가 2014년 4월 17일부터 11월 5일까지 국정원이 작성한 세월호 참사 관련 동향보고서 215건을 분석한 결과, 그중 48건이 유가족 사찰과 관련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유가족들을 8개월여 동안 집중사찰해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류하고 동영상 등을 자체 제작해 유가족에게 비판적인 여론조작을 주도한 정황까지 드러났다니 이게 과연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조위는 이런 보고서들이 대부분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결론을 내리고 국정원 현장 직원 5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공식 요청했다. 세월호 참사 6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국정원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국정원 개혁 태스크포스(TF)조차 유가족을 포함한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결론 냈었다. 특조위 조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이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조직적 범죄라는 점에서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된다. 사찰 경위 및 보고라인 등을 밝혀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국정원의 또 다른 범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은 인식해야 한다.
  • 한 해 소년 범죄자 6만 6000명… 5.3%가 살인·성폭력 등 흉악범

    한 해 소년 범죄자 6만 6000명… 5.3%가 살인·성폭력 등 흉악범

    중고생 음주율 15%·흡연율 6.7% 달해 30%는 우울감 경험… 2000명 넘게 사망 40% “장래 국가기관·공기업 근무 희망” 75% 사교육 받아… 한 주 평균 6.5시간소년 범죄자가 7만여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5%는 강도·성폭력 등 흉악 강력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중고등학생 100명 가운데 15명이 최근 한 달 내 술을 마셨고, 100명 중 7명은 담배를 피웠다. 27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소년 범죄자(14∼18세) 수는 6만 6142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같은 해 전체 범죄자(173만 8000명)의 3.8%에 해당한다. 범죄 유형별로는 절도·장물·사기 등 재산 범죄가 40.1%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공갈이나 폭행·상해 등 폭력 범죄가 29.8%, 교통사범 또는 저작권법 위반 등 기타가 24.8%로 조사됐다.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흉악 범죄도 5.3%나 됐다. 지난해 중고등학생 음주율은 15.0%, 흡연율은 6.7%나 됐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4명은 앞으로 정부 부처 등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청소년 22.2%는 국가기관을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았고, 이어 공기업 19.9%, 대기업 18.8%, 자영업 1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32.8%는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수입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 적성과 흥미가 28.1%였으며 안정성이 21%로 나타났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3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 등 우울감을 느낀 비율은 28.2%로 전년보다 1.1% 포인트 증가했다. 여학생은 3명 중 1명이 이런 우울감을 경험했다. 최근 10년 가까이 감소했던 청소년 사망자 수는 다시 늘었다. 2018년 청소년 사망자 수는 2017명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2010년 2937명에서 계속 줄어들던 사망자 수가 9년 만에 증가한 것이다. 사망 원인으로는 고의적 자해(자살), 안전사고, 암 등의 순이었다. 청소년 사망자 10명 중 6명이 남자였다. 2010년에는 안전사고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였으나, 2018년에는 고의적 자해(자살)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청소년 10명 중 9명은 청소년도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소년 4명 중 3명이 사교육을 받으며 주당 평균 6.5시간을 사교육에 할애했다.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은 6.5시간으로, 2015년 5.7시간에서 해마다 증가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관악구 모자 살해’ 남편 1심서 무기징역 선고… “반성 없어 속죄하며 살아야”

    ‘관악구 모자 살해’ 남편 1심서 무기징역 선고… “반성 없어 속죄하며 살아야”

    서울 관악구 다세대주택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모자를 살해한 범인이 남편이 맞다고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는 24일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모(42)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망추정 시각이 대부분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있는 동안이고 그 외 3자가 개입했을 정황은 추상적 가능성에 그친다”면서 “피고인의 성격과 범행 당시 갈등상황 등에 비춰 인정할 수 있는 범행 동기와 간접사실을 종합하면 공소사실에 관해 유죄 증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해 8월 21일 오후 8시 56분에서 다음날 오전 1시 35분 사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아내 A(41)씨와 아들 B군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목격자도 없어 조씨는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사망 추정시간에 집에 있었던 사람은 조씨가 유일하고,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나 강도 및 절도 등 제3자에 의한 범행가능성이 적다며 조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조씨가 경마에 빠져 수백만원의 돈을 탕진했고 아내가 죽으면 보험금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조씨가 경찰초부터 가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사망 원인 등을 전혀 묻지 않고 현재 어디인지만 물어봤고, 장례절차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고 슬퍼하지도 않은 점 등을 정황증거로 설명했다. 검찰이 사형을 구형할 때 외에는 가족의 사망 현장 사진이나 부검 사진 등을 봐도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고, 범행 전후로 ‘진범’, ‘재심’, ‘도시경찰’ 등 살인 범죄와 관련된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다운받아 시청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5살 남짓한 아들을 무참히 살해했고 흉기로 수차례 찌른 행위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면서 “피고인은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가져왔고 아들을 살해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피해자의 친구들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면서 “그런데도 피고인은 냉정한 태도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죄 전력이 없는 유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어두운 터널 지나… 이젠 ‘예은’답게

    어두운 터널 지나… 이젠 ‘예은’답게

    총 14곡 중 13곡 직접 작사·작곡심리상담 경험·일기 묶어 책 펴내“무력감 빠져 방황한 시간들 담아같은 고민하는 후배들, 꼭 살아가길”“억눌렸던 감정, 어두웠던 지난 시간을 음악으로 담았습니다. 우울, 슬픔, 분노까지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23일 데뷔 후 14년 만에 첫 솔로 정규 앨범 ‘1719’로 돌아온 ‘핫펠트’는 익숙했던 원더걸스의 예은과 전혀 달랐다.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던 ‘국민 여동생’은 어두운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이었다. 핫펠트는 예은이 2011년부터 사용한 프로듀서 예명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핫펠트는 “원더걸스를 기억하는 분들은 이질감이 클 수 있지만 그동안 못 한 이야기를 꼭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1719’는 10대 후반 사춘기를 겪듯 방황과 우울 속에 있었던 2017년부터 2019년까지를 의미한다. 앨범과 함께 그동안 쓴 일기와 1년간 심리 상담을 받으며 적은 글들을 토대로 에세이집 ‘1719’(부제: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도 펴냈다. 늘 밝은 모범생인 줄 알았던 그의 고백에는 밝히지 못한 가정사부터 연애, 일을 하며 느낀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이라는 부제는 “물속에 잠겨 있다”와 “잠겨(locked) 있다”의 중의적 표현이다. 핫펠트는 “한때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면서 “글을 쓰고 앨범 작업을 하면서 감정들이 많이 정리됐다”고 털어놨다. “단지 너만의 길을 가”(‘새틀라이트’),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날아가 초록 바다 위로”(‘블루버드’) 등 고민의 흔적이 가사에도 담겼다. 총 14곡 중 13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2년간 작업한 첫 정규 앨범이다 보니 애정도 깊다. 원더걸스 시절에 비하면 앨범 자체에 들이는 시간의 비중도 훨씬 커졌다. 원더걸스를 대학 시절에, 핫펠트를 사회인에 비유한 그녀는 “그룹 시절에는 친구 같은 멤버들과 많이 배우고 꿈을 이뤘다면 핫펠트는 전혀 다른 작업이니 타인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은 여성팬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감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거나 방송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때도 망설임은 없었다. “큰언니처럼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여성으로 겪는 사회적 억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어서 많은 공감을 해주시고요.” 그녀는 “알고 보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많은데 난 걸그룹 출신이라 이름이 알려진 것뿐”이라며 “이들을 위한 무대가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두운 터널을 지난 당사자로서 최근 가수 후배들의 비보를 접하며 진심 어린 조언도 전했다. “많은 아이돌들이 비슷한 고통을 마주할 거예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는, 자연스러운 일들도 죄책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통제하고 혐오하게 돼요. 자신을 더 사랑하길 바라지요. 일을 안 해도 좋고, 하고 싶은 무엇을 해도 좋으니 그저 꼭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미얀마 코로나19 샘플 운반하던 WHO 기사 총격 사망

    미얀마 코로나19 샘플 운반하던 WHO 기사 총격 사망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는 군부와 불교도 원주민들을 대변한다는 아라칸 반군이 최근 자주 교전을 벌여 수십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이곳에서 코로나19 관련 샘플을 운반하던 세계보건기구(WHO) 차량 운전사가 총격을 받고 숨졌다. 퍄에 소네 윈 마웅이란 이름의 28세 청년인데 유엔 표시가 뚜렷한 차량을 몰아 모니터링 샘플을 운반하다 변을 당했다고 영국 BBC가 21일 전했다. 양측 모두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2년 전부터 자율 통치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아라칸 반군은 한달의 휴전을 제안했지만 군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군부 대변인인 툰 툰 은위 대장은 “우리와 조국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 자신들이 유엔 차량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로이터 통신에 털어놓았다. 미얀마 주재 유엔 사무소는 민뱌 마을에 있는 군 검문소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문제의 차량은 시트웨란 곳에서 수도 양곤으로 이동하다 화를 당했다. 유엔은 어느 쪽이 총격을 가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정부 관리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아마도 샘플 수거 작업을 지원한다고 밝힌 미얀마 문화체육부 소속이 아닐까 짐작된다. 고인의 부친 흐타이 윈 마웅은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며 “최일선에서 의무를 다하다 숨졌다고 위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아들은 많은 이들이 가겠다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교전의 와중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22일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185개 나라와 지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256만 1044명, 사망자는 17만 6984명인 가운데 미얀마는 각각 121명, 5명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오랜 내전과 경제난 탓에 의료 여건이 형편 없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덮칠 수 있어 WHO와 유엔이 우려하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美 총격참사 당시 목숨 지켜준 남성과 결혼한 여성

    [월드피플+] 美 총격참사 당시 목숨 지켜준 남성과 결혼한 여성

    지난 2017년 10월 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 야외 공연장에서 스티븐 패덕(당시 58세)이 자동소총을 난사해 일으킨 무차별 살인 사건은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 이 사건의 생존자가 당시의 슬픔을 떨쳐줄 만한 소식을 전해줬다. 사건 현장에 있던 한 여성이 자신을 지켜준 남성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1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인퀴지터 등 외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라모나에 사는 섄탈 멜란슨(29)과 그녀의 남편 오스틴 먼포트(24)는 지난해 11월 1일 결혼해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사실 미국 범죄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된 라스베이거스 총격 참사의 생존자들이다. 사건 당시 멜란슨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살았으며 그해 9월 29일부터 사건 당일까지 사흘간 개최된 컨트리뮤직 축제 ‘루트 91 하베스트 뮤직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친구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었다. 그녀는 도착 당일 밤 컨트리뮤직바인 길리스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가 먼포트를 만났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온 먼포트는 이날 자신의 21세 생일을 친구에게 축하받았고 거기서 본 멜란슨에게 말을 걸었다.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고 축제 마지막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당일 재회한 두 사람은 공연장의 열기 속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10시쯤 무렵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인근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에서 스티븐 패덕이 공연장에 있던 2만2000여 명을 향해 자동소총을 난사한 순간이었다. 멜란슨은 순간 불꽃이 튀는 줄 알았던 것 같지만 곧 총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먼포트와 마주 보며 땅에 엎드렸다. 총성이 여전히 울려퍼지며 사람들이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가운데, 먼포트는 멜란슨을 꽉 끌어안고 빠른 걸음으로 공연장 밖으로 향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공연장 옆 거리에 있던 택시에 탈 수 있었지만, 이미 몇 명의 여성이 타고 있었고 이들 여성은 다리와 복부에 총사을 입었기에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이에 대해 멜란슨은 “아직 밖이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병원에서 하룻밤 머물게 됐다. 오스틴은 그동안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어줬다”면서 “그는 날 계속 지키려 했다. 그때 그는 내게 안전한 장소가 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총격범을 포함한 59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527명이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두 사람은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안은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이들은 페이스타임(영상통화)으로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마침내 서로 둘도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먼포트는 멜란슨을 만나기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그때부터 두 사람은 6주 넘게 쉴틈없이 캘리포니아와 캐나다를 오가며 사랑을 키웠다. 지난해 3월 8일에는 먼포트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서 멜란슨에게 청혼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멜란슨의 미국 영주권 취득을 위해 그해 11월 법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떳떳하게 부부가 됐다.멜란슨은 “우리가 만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서로를 필요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예정대로라면 다음 달 8일 서로의 가족을 초대해 결혼식을 성대하게 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탓에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화목하게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나에게 ‘무진’은 첫 필사(筆寫)의기억이 각인된 장소다.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나 보던 소설 원문을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이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의 중간고사 리포트였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가 강의하던 현대한국문학사 시간의 일이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전문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필사라니. 처음에는 정직하게, 중간쯤에는 발랄한 필기체로 쓰다 종내에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문장들을 베껴 나갔다. 단편소설은 생각보다 길었고, 분명 한글인데 이상하게 그림들 같았다. 놀다가 졸다가 연애를 시도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맥주나 마시자는 심정으로 소설을 옮겨 그렸다. 여귀(鬼)의 입김이 우리에게도 옮겨 온 것 같이 추운 밤이었다. 에어컨의 전원을 끄며 건너다본 교수 연구실의 불빛은 그날도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함께 고되게 벼락 필사를 하던 동기이자 이 여행에 동행하게 된 석양정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교수님도 필사를 다 하셨을까?”전남 순천 무진길. 4월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군락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순천문학관이 나온다. 순천시가 2010년에 개관한 이곳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를 벗어나 얼마를 더 달렸는데도 갈대숲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쯤에 김승옥 선생께서 미리 도착해 계신다고 했다. 2003년 이문구 소설가의 장례식에 가던 차 안에서 쓰러진 뒤로 언어 능력을 많이 상실한 까닭에 일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선생께서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였고, 공개적인 자리에 서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선생의 건강 상태에 따라 준비해 간 질문의 답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도 전해져 왔다. 코로나19 탓에 문학관은 잠정적으로 폐쇄된 상태였다. 선생께서 직접 순천문학관 내에 있는 김승옥관의 문을 열어 줬다. 지그려 둔 사립문을 여는 손끝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내 선생의 손끝만 따라다녔다. 음성 대신 그려 주는 손말을 해석해 가며 선생의 지난 시간을 듣는 갈대숲 속이라니. 어떤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닫힌 문을 여는 시간이면 충분했다.선생의 안내로 김승옥 전시관을 둘러봤다. 전시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유리관이 있었고, 선생께서는 그 유리관에 대고 손끝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써 가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줬다. 동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던 ‘국민학생’ 때의 일부터(선생은 1941년생이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김이구’라는 이름으로 만화 연재를 시작한 일화, 단체 사진 속에서 선생의 친구들을 찾아 이름을 알려 주는 손끝을 따라가고 있자니 병색은 간데없고 활기차고 옛이야기 해 주기를 좋아하는 어른 한 분이 오롯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선생의 활기찬 손끝 따라 거닐다 질문마다 선생은 품에 꼭 지니고 다니던 메모지에 단어와 그림을 그려 가며 대답을 했다. 곁에 있던 에세이스트 석양정과 박진규, 김경희 소설가가 선생의 ‘새로운 창작물’에 해석을 곁들여 줬다. 선생의 근황을 여쭙자 “서울에서 3일, 순천에서 사나흘 정도를 지낸다”고 했다. 4월에는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순천시청에서 ‘무진기행’ 관련 그림 30부를 요청해 5월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요.”혹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작업 진행 여부를 물었는데 “이제부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 작가를 움직이는 건 마감 시간인 건가’라는 동의였는지 동석한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가 “순천문학관이 2010년 개관된 이래 계속 이곳에서 생활을 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자랑 좀 해 주세요.” 김 선생 “순천은 갈대가 유명하고요. 포구에 들어오는 배와 철새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순천만 갈대 습지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용산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노을이 매우 일품입니다. 그리고 순천문학관에는 정채봉과 김승옥이 있지요.” 이 작가 “이곳 풍경은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무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시대적·개인적 슬픔이 무진기행 쓰게 만들어 김 선생 “무진은 평양과 서울, 부산 등 한반도의 모든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에요. 이곳이기도 하고, 이곳이 아니기도 하죠. 신과 악마가 남녀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머니와 태중의 아기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섞인,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신과 악마의 사이에서 급기야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소설 ‘무진기행’의 맨 마지막 문장)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쓰던 당시에는 제게 어떤 슬픔 같은 것이 컸어요. 외교관이 되려던 꿈이 좌절됐고, 두 살 연상의 연인과 결별을 겪었지요. 시대적 아픔도 컸고요. 가족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 슬픔이 내게 그 소설들을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작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소설을 한 번쯤 필사하거나 문장을 외워 가면서 습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도 일어나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도 활용됐는데, 그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선생 “제가 소설을 쓴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아주 짧은 시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 작품을 읽어 주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더 큰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제 소설로 된 문제를 풀어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이 작가 “아까 전시관에서 유독 친구분들과의 사진을 오랫동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김 선생 “김현, 최하림, 김치수, 최인훈, 최인호, 박태순, 이문구…. 친구들이 다 먼저 갔어요. 그중에 김현은 가끔 꿈에도 나와요. 많이 보고 싶어서 그렇죠.” 이 작가 “올해 선생님의 SF소설 ‘2020년, D9 기자의 어느날’(동아일보 1970년 4월 1일자, 창간 50주년 특집호)이 발표된 지 50주년이 됐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선생님 소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앤솔러지 한 권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김 선생 “후배들이 좋은 소설을 쓰고 있다니,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저도 천천히, 조금씩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끝내 그럴 겁니다.”●선생의 크고 단단한 발음으로 “좋다” 인터뷰는 오랜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건네 오는 단어로 진행됐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건넨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그림과 단어들에 어떤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지 우리에게 다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김경희 작가가 ‘이 작가가 지금 첫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을 전하자 막 걸음을 떼려던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좋다”고 크고도 단단한 발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날 내가 들은 선생의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도 호쾌한 발음이었다. 인터뷰를 위한 현장에서는 ‘김승옥 다큐’ 작업이 한창이었다. 4년 전부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고 있는 김병수 PD(아르띠잔)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그날도 선생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옛날 선생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영화 연출을 하던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와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해 16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감자’는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연출까지 한 이력이 있는 선생에게는 오히려 영상에 담기는 것보다 영상 밖에서 ‘김승옥’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선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TV와 영화로 상영될 예정이란다. 거장의 옛날을 예우하는 사람들의 혼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무진’의 갈대숲이었다. 월요일이 됐지만 약속한 답변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화요일이 돼도, 금요일까지도 답변지는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갈대숲에서의 대화를 하나씩 곱씹던 나는 급기야 선생이 답변지를 한 30년 정도 늦게 줘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선생은 다시 ‘다음 월요일까지 답변지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따름이었다.●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하는 삶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 보니 스무살 적에 도서관에서 가졌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굳이 몰라도 될 것만 같다. 세상에는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를 하는 삶이 있기 마련이고, 게다가 그 시간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우주선들의 도킹 같은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를 무진으로 초대하는 일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김승옥 선생과 그의 소설로부터 꽤 괜찮은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라고, 무진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는 어떠한 해석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어떨까. 나는 훗날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의 출생을 축복해 준 안개와 갈대숲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 답변지를 고르느라 갈대숲 속에서도 아주 많이 바쁘시다고, 무진의 안개를 그려 낼 시간조차도 답변지를 작성하는 데 쓰고 계시다는 사실도 넌지시 전해야겠다. 내 아이는 언제쯤 소설을 필사하고, 삶과 시간이 주는 비의에 기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그곳과 여기 그리고 나와 너의 무진에서.
  • ‘기생충’ 박명훈, 오늘 부친상...폐암 투병 끝 비보

    ‘기생충’ 박명훈, 오늘 부친상...폐암 투병 끝 비보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박명훈이 오늘 부친상을 당했다. 15일 소속사 에이스팩토리 측은 “금일 배우 박명훈의 아버지께서 별세하셨다”라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박명훈 배우는 가족들과 함께 슬픔 속에 빈소를 지키고 있다. 박명훈과 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 부탁드린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덧붙였다. 박명훈의 부친은 폐암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명훈은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 인터뷰를 통해 투병 중인 자신의 부친을 배려한 봉준호 감독이 극비리에 진행된 ‘기생충’ 스태프 시사회에 아버지를 초대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박명훈 부친의 빈소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오전 9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고통 여전한 세월호 생존자들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고통 여전한 세월호 생존자들

    “잃어버린 제 삶, 저 자신을 이제는 되찾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에 사는 화물차 운전기사 윤길옥(55)씨의 삶은 6년 전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매일 대여섯가지 종류의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불은 항상 켜고 잔다. 윤씨는 “컴컴한 곳에 있으면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에 침몰한 세월호에서 맨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 그게 바로 윤씨다. 참사 후로 6년이 흘렀다. 생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지난 2018년 12월 발표된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생존자 66명(단원고 생존자 41명, 일반인 생존자 25명)의 상당수가 우울증과 불면증, 만성두통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생존자들은 참사를 직접 경험한 피해자지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숨겨야 했다. ‘아직도 세월호냐’는 비난과 ‘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오해는 생존자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사회는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에서 만난 윤씨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윤길옥씨학생들 탈출 돕고 가까스로 생존발에 화상 입고 2년 가까이 입원퇴원 후 빚·대인관계 축소 고통윤씨가 ‘그날’ 세월호 3층 선미(배꼬리)에 있는 화물차 운전기사 방을 나와 선수(뱃머리) 쪽 매점에 갔을 때 배가 기울었다. 온수통에 있던 뜨거운 물이 윤씨의 두 발을 덮쳤다. 발을 움직일 수 없던 상황에서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킨 윤씨는 바닷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를 때 가까스로 배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얼마 안돼서 배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승객 476명 중 304명(미수습자 5명 포함)이 희생됐다. 정부는 2015년 6월 윤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윤씨가 다치고, 누군가를 구하고, 사투를 벌이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없었다. “밖에 나왔더니 기우는 배 객실 유리창 너머로 학생들이 보였어요. 해양경찰이 망치로 유리창을 깼으면 학생들을 많이 살릴 수 있었을텐데….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요.” 그는 가슴을 쳤다. 2016년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윤씨는 퇴원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30여년 경력의 운송일이 그에겐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화물차 대신 2017년 새 차를 샀다. 집을 담보로 빚을 내 겨우 마련한 전재산이었다. 하지만 차 할부금에 기름값, 지입차 보험료, 수리비 등 빠져나가는 돈이 버는 것보다 많았다. 빚은 늘어만 갔다. 윤씨는 현재 개인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다. 윤씨의 대인관계도 참사 후로 위축됐다. 그는 “원래 성격이 활달했는데 요즘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랑 말을 잘 섞지 않는다”면서 “예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면 2시간은 있었는데, 요즘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샤워만 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결과 생존자의 절반가량(48.5%)이 ‘(참사 후) 대인관계에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했다. 운동·절주를 통한 극복 노력 시작앞으로 어떤 삶 살고 싶은지 묻자“약 없이 편하게 자는 게 큰 소원”윤씨는 보건소로부터 매달 안부 전화를 받는다. 그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자살 충동이 인다”면서 “캄캄한 그곳에서 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들이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라며 괴로워했다. 퇴원 후인 2016년 3월 말 윤씨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진도군청에서 진도군 팽목항까지 수십㎞를 걸었다. 당시 그가 입었던 노란색 조끼에는 ‘진실을 인양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후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장소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2017년 3월 인양된 세월호가 전남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뒤에 ‘분실물을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 화물차가 세월호 화물칸 2층에 그대로 보관돼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안 갔어요. TV를 보다가도 세월호 영상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꺼요. 보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윤씨는 지난해 7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참사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만날 마셨던 술도 이제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이제 사람이 돼보려고 운동을 하고 술을 안 먹고 있다”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윤씨가 꿈꾸는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약 없이도 편하게 잠을 자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윤씨는 취미 활동을 갖고 싶어했다. 그는 “고교 때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었는데, 드럼과 기타 연주법을 새로 배우고 싶다”면서 “여건만 된다면 예전에 좋아했던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또 다른 세월호 생존자 오용선씨이 악물고 항우울제·수면제 끊어참사 후 5개월 뒤에 복직했지만트라우마로 복직 보름 만에 퇴사 지난 11일 서귀포에서 만난 또 다른 생존자 오용선(58)씨도 2016년 1월 말까지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7가지 종류의 약을 매일 먹었다. 오씨는 “약을 끊으려고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아등바등했다”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핀 담배도 끊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오씨도 화물차 운송기사 경력이 30년에 달한다. 오씨는 참사 후 5개월 뒤에 복직했다. 그런데 밤에 운전할 때마다 헛것이 보였다. 야간근무가 불가피한 화물 운송일을 계속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오씨는 보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화물차로 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다. 고통을 잊는 방법으로 오씨는 침묵 대신 말하기를 선택했다. 그는 “직장 동료들이 내가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날 세월호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직장 동료들이 물으면 저는 다 얘기하는 편”이라면서 “저는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큰 목소리로 말한 오씨는 “원래 목소리가 크다”면서 멋쩍게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오씨는 윗옷 지퍼 손잡이를 계속 만지며 말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2017년 5월인가 6월쯤에 목포신항에 갔었어요. 우리가 탔던 배가 인양됐다고 해서 궁금해서 갔는데,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보려고 했죠. 계속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오씨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지난 2월 ‘4·16 제생지’ 단체 창립제주 생존자 24명 목소리 모은다“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 치유 첫 관문”오씨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4·16 제생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에 사는 생존자 24명(윤씨와 오씨 포함)의 기억을 기록하고 법률 지원, 심리 치유 지원 등을 위해 지난 2월 만들어진 단체다. 오씨는 “앞으로 제주 생존자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삶을 바라는지 이야기를 듣고, 제주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어떤 안내와 지원이 필요한지를 시·도 또는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치료 및 지원체계는 현재 경기 안산에 집중돼 있다. 오씨는 “제주에 2015년 2월 개소한 제주세월호피해상담소가 있지만 제주도가 병원(제주 연강의료재단)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라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상담소가 문을 닫으면 우린 갈 데가 없다. 필요하다면 트라우마센터 건립도 호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생존자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게 제가 제일 바라는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피해자 치유와 일상 회복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생존자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생존자들이 참사 피해자이자 참사로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4·16 제생지)과 함께 앞으로 제주에 살고 있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입니다.
  • 코로나19로 입장 제한…아버지 장례식장 못 들어간 딸 사연

    코로나19로 입장 제한…아버지 장례식장 못 들어간 딸 사연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탓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호주 현지 시간으로 지난 11일, 빅토리아주에서는 코로나19로 한 남성의 장례식이 열렸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고인의 딸인 헬렌 콜로보스를 포함한 가족 몇몇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를 가로막은 경찰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조문객의 숫자를 일일이 센 뒤, 일정 숫자가 넘자 통제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경찰 두 명은 장례식장의 통제 인원은 최대 10명인 지침에 따라, 콜로보스 등 일부 가족의 입장을 제한했다. 콜로보스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 밖에서 애도의 뜻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에서 온 가족들이며, 사전에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가족과 밖에 남을 가족을 미리 정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교회로 경찰관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참담함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리스 교회에서는 총을 소지한 채 교회당으로 들어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경찰들은 인원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총을 든 채 장례식장에 들어왔고, 심지어 고개를 숙이며 조의를 표하지도 않았다”며 “장례식장에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리를 숙이고, 고인에게 존경을 표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호주 연방정부는 지난달 말,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장례식장은 최대 10명, 결혼식장은 최대 5명, 쇼핑센터는 최대 500명까지만 동시 입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는 합당한 사유 없이 외출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공중보건 명령 2020’을 발동했다. 공중보건 명령을 위반하면 개인에 대해서는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1만 1000 호주 달러(약 830만 원)나 징역과 벌금을 동시에 부과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이미 경찰이 교차로에서 세차를 하던 남성이나 잔디밭에서 홀로 일광욕을 하던 남성 등을 적발한 사례가 나왔다. 한국시간 13일 오후 1시 기준, 호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6322명, 사망자는 61명이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외할머니 살해한 손녀 징역 25년→17년 항소심서 감형

    외할머니 살해한 손녀 징역 25년→17년 항소심서 감형

    자신을 돌봐주러 집으로 찾아온 외할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가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던 20세 손녀가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받은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형사2부(부장 심담)는 지난 8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20·여)씨에게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3일 새벽 경기도 군포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외할머니 B(78)씨를 미리 구입한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2018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기를 마치고 자퇴한 뒤 취업 문제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같은 해 10월 발생했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보고 흉기 살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6월 1일 부모가 집을 비우고 외할머니가 집에 오기로 한 것을 알고선 6월 2일 흉기 5개와 목장갑 4개 등을 구입해 숨겨 놓고 범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의 부모가 집을 비우자 평소 아끼던 외손녀인 피고인을 돌보기 위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끔찍한 신체적 고통, 정신적 충격과 공포, 슬픔의 정도는 가늠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초부터는 정신과적 문제를 보였다”며 “범행 당시 만 19세의 피고인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스스로 감당하거나 치료하기 어려웠으리라 보이는데, 가족의 도움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에다가 유가족들이 피고인을 교화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한 점 등도 양형에 참작했다. 다만 원심이 기각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에 대해서는 피고인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미국 코로나 정점 찍었나…뉴욕주지사 “최악은 지났다”

    미국 코로나 정점 찍었나…뉴욕주지사 “최악은 지났다”

    사망자 1만명 넘어서…증가 폭은 줄어쿠오모 “곡선 평탄해지고 있다” 평가휴교 문제 두고 뉴욕시장과 신경전도 미국 뉴욕주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말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뉴욕주의 코로나19 사망자가 전날보다 671명 늘어난 1만 56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쿠오모 주지사는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선 데 대해 “끔찍한 뉴스”라면서 “끔찍한 수준의 고통과 슬픔, 비통함”이라고 했다. 다만 700명대를 유지해오던 하루 사망자 증가 폭은 약 1주일 만에 가장 적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최근 신규 입원 환자나 총 입원자 수, 집중 치료 환자의 숫자가 둔화세를 보이는 것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확산을 통제하고 있다. 곡선이 계속 평탄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어 “우리가 계속 스마트하게 대응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신규 입원 환자 수는 1958명으로 약 2주 만에 가장 적었다.하지만 쿠오모 주지사는 낙관도 경계했다. 그는 “내일이라도 끝나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1년에서 1년 반까지 걸릴 것으로 보이는 백신 개발 전까지는 진정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휴교 문제를 둘러싼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과의 신경전도 사흘째 계속됐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지난 11일 현재 휴교 중인 학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며 학기가 끝나는 시점인 6월까지 계속 휴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휴교 관련 최종 결정은 자신의 권한이라면서 “결정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NBC방송에 따르면 뉴욕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 전해졌던 18만 8694명에서 19만 531명으로 늘어, 19만명선을 넘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자살 그 후, 남겨진 사람들 보듬는 중랑… 회복지원 프로그램 운영

    서울 중랑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낸 구민의 아픔을 보듬는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랑구는 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오는 6월 자살 유족 회복지원 프로그램 ‘따뜻한 작별을 위한 마음건강교육 안녕’을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가까운 사람의 자살로 사별을 경험한지 3개월 이상 지난 구민이 대상이다. 프로그램은 우리가 모인 이유, 자살에 대해 이해하기,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 유족의 슬픔과 애도에 대하여, 트라우마와 그 이후, 정신건강과 자살, 회복을 돕는 방법,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 등 모두 8회에 걸쳐서 진행된다. 다음달 15일까지 중랑구정신건강복지센터와 보건소 홈페이지 또는 전화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는 이밖에도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 애도 상담, 사례 관리, 심리지원을 위한 지역사회 연계 서비스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자살에 영향을 받는 주변인이 최소 5~10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사망으로 인한 사별과 달리 사회적 편견에 부딪치고, 고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분노, 우울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랑구가 함께 하겠다”면서 “2차 자살 위험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마스크 빨아 다리미질” 코로나 비극 담은 ‘우한일기’

    “마스크 빨아 다리미질” 코로나 비극 담은 ‘우한일기’

    “N95 마스크만이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N95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 집에서 마스크를 빨아 다리미로 소독해 다시 써야 한다. 비참하다.”(1월 28일) “(중국 정부가 우한 봉쇄 해제를 발표하자) 그간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3월 24일)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참상을 폭로한 일기를 온라인에 게재해 논란을 일으킨 작가 팡팡이 그간 쓴 내용을 묶어 책으로 출간한다. 9일 글로벌타임스는 팡팡이 쓴 ‘우한 일기’가 오는 18일 미국 발간을 앞두고 온라인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예약판매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발병 뒤 쓴 60편의 일기를 모은 이 책은 미 최대 출판사인 하퍼콜린스가 펴냈다. 팡팡은 우한에 거주하는 65세 작가로 루쉰문학상 등을 수상한 실력파다. 그는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직후인 1월 25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60편의 글을 올렸다.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우한 주민들의 고통과 슬픔,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희생과 인간애 등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감염병 확산 초기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사태를 키운 정부와 이를 묵인한 언론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한때 그의 글을 온라인에서 삭제했다.글로벌타임스는 당시 팡팡의 일기가 중국에서 찬반양론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일부 누리꾼은 “우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해줬다”며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팡팡이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전해 들은 말로 불안을 조장하고 우한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이 신문 편집장 후시진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팡팡의 ‘우한 일기’ 영문판 출간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불편해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마미손 측 “특정 정당과 관련 無...공정한 총선 될 수 있길” [공식]

    마미손 측 “특정 정당과 관련 無...공정한 총선 될 수 있길” [공식]

    래퍼 마미손 측이 저작권 무단 도용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8일 마미손 소속사 세임사이드 컴퍼니는 “마미손은 어떠한 정당의 홍보나 후보의 선거 홍보 활동에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 당사의 동의 없이 마미손의 어떠한 이미지와 저작물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앞서 소속사가 4·15 총선을 앞두고 마미손의 저작물 및 마미손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 등이 특정 정당의 홍보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 이와 관련 소속사는 “코로나19로 모두들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현 시국에 4·15 총선이 국민들의 뜻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한 선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마미손은 지난 2018년 Mnet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한 래퍼다. 지난해 11월 새 앨범 ‘나의 슬픔’을 발표했다. 다음은 마미손 측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래퍼 마미손의 매니지먼트를 담당 하고 있는 세임사이드 컴퍼니 입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속 아티스트 마미손의 저작물 및 마미손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 등이 특정 정당의 후보 홍보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 하였습니다. 래퍼 마미손 은 어떠한 정당의 홍보나 후보님 의 선거 홍보 활동 에 전혀 참여 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 드리며, 아티스트와 회사의 동의 없이 아티스트의 어떠한 이미지와 저작물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실 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코로나19로 모두들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 현 시국에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국민들의 뜻에 따라 공정 하고 공평 한 선거가 되어 희망을 주는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되길 바랍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CNN 앵커, 생방송 도중 결국 눈물 터트려…참담한 미국

    CNN 앵커, 생방송 도중 결국 눈물 터트려…참담한 미국

    코로나19로 남편을 잃은 아내의 사연이 CNN 앵커를 울렸다. CNN은 3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사망한 40대 뉴욕 남성의 아내와 이원 생중계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상심이 컸던 탓에 어렵사리 말문을 연 아내는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20년 넘게 뉴욕 퀸스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일하며 세 자녀를 키운 남편은 매일 아침 사랑의 편지를 남길 만큼 자상했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무렵 처음 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은 지난 주말 인공호흡기를 낀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결국 사망했다.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졸지에 어린 세 자녀를 홀로 키워야 할 처지에 놓인 아내의 사연에 진행자로 나선 CNN 앵커 에린 버넷도 함께 울먹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는 앵커에게 아내는 “장례식도 치를 수 없었지만, 남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동차 행진으로 남편을 기억해주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가족과 이웃, 동료들은 감염의 위험과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으로 장례식을 치를 수 없게 되자, 자동차를 끌고 나와 행진하며 애도를 표했다. 행진에는 모두 131대의 차량이 참여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어렵사리 인터뷰를 이어갔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을 떠올리는 아내를 보며 앵커는 또 한번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참담한 상황에 목이 멘 앵커는 "우리 시청자들도 남편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던 아내 역시 북받치는 슬픔에 함께 울었다. 아내는 “남편의 임종을 영상통화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우리 결혼식에서 울려 퍼졌던 축가를 불러주며 남편을 떠나보냈다”라고 오열했다.이어 코로나19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 두기와 외출 자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내는 “당신들은 무적이 아니다. (감염은)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반드시 집에 머물라”라고 호소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집계에 따르면 미국 동부시간을 기준으로 4일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자는 31만2076명으로, 우리나라의 30배를 웃돌며 전 세계 최대 감염국으로 떠올랐다. 사망자는 8496명으로 1만 명을 향해가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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