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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와일라잇 시리즈 5년 여정의 완결판 ‘브레이킹 던 파트 2’ UP&DOWN

    트와일라잇 시리즈 5년 여정의 완결판 ‘브레이킹 던 파트 2’ UP&DOWN

    ‘트왈러’(판타지 로맨스 소설·영화 ‘트와일라잇’의 마니아를 일컫는 말)들의 피가 끓고 있다. 전설(영화 원제목에 전설을 뜻하는 ‘사거’(saga)가 붙어 있다)의 대미를 장식할 최종편 ‘브레이킹 던 파트 2’가 15일 개봉했기 때문이다. 스테프니 메이어의 판타지소설 ‘트와일라잇’은 45개국에서 1억 5000만 부가 팔려 나갔다. 10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원작을 할리우드가 놔둘 리 없었다. 2008년 ‘트와일라잇’을 시작으로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 파트 1’까지 해마다 1편씩 개봉하는 전략을 취했고 25억 599만 달러(약 2조 732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1~4편을 통틀어 관객 682만 6415명을 동원했다.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 인간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사이에서 태어난 르네즈미가 흡혈귀는 물론 늑대인간 퀄렛족까지 엮인 거대 전쟁의 불씨가 된다는 게 최종편의 얼개다. 르네즈미를 제거하려는 볼투리가(家)에 맞서 에드워드-벨라 부부가 속한 컬렌가(家)는 비주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규합해 연합군을 조직한다. 좋든 싫든 이젠 뱀파이어, 늑대들의 로맨스와는 작별이다. ‘브레이킹 던 파트 2’의 장단점을 짚어봤다. [UP]전쟁 끝 쟁취한 불멸의 사랑 볼투리家 vs 컬렌家 설원 위 한판 승부 압권 판타지 로맨스의 대명사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5년간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브레이킹 던 파트 2’는 인간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종족을 넘어선 불멸의 사랑을 완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평범한 인간에서 완벽한 뱀파이어로 거듭난 벨라의 이야기만으로도 한편의 영화로서 완결성을 지닌다. 오프닝에서부터 붉은 눈동자를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이동하며 사냥을 하는 등 뱀파이어로서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깨닫는 벨라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더 이상 에드워드와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등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장 관리’를 하는 연약한 여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죽는 순간까지 딸 르네즈미를 지키려는 강한 모성애를 보여주면서 소녀에서 엄마로 거듭난 벨라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사람과 뱀파이어 사이에서 태어난 신비의 혼혈 소녀 르네즈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르네즈미는 다른 사람을 만짐으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기억을 상대방에게 영상으로 보여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침착한 눈빛에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매켄지 포이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4살의 외모를 지닐 만큼 빠른 성장 속도를 지닌 신비로운 소녀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낸다. 르네즈미가 미래 제이콥의 짝이 된다는 것에 분개하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엄마 벨라의 설정도 흥미롭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르네즈미가 종족 전체에 위험을 가져올 ‘불멸의 아이’라며 그를 제거하려는 볼투리가와 컬렌가의 한판 승부. 하얀 설원 위에서 에드워드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뱀파이어들을 불러 모아 볼투리가에 대항하는 장면은 흑백의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100여명의 배우들이 30일 동안 ‘뱀파이어 캠프’를 만들고 숙식을 해결하며 촬영했다는 대규모 전쟁 장면은 시리즈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특히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 벨라와 에드워드의 달달한 신혼 생활은 파트 1이 끝난 뒤 무려 1년을 기다렸던 ‘트왈러’들에게 더없는 팬 서비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DOWN]롤러코스터식 반전의 허무함 난무하는 캐릭터 속 길 잃은 주연들 원작 소설의 팬이 아니라면 소설 ‘브레이킹 던 파트 2’의 해피엔딩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빌 콘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또한 소설의 결말이 1억 3000만 달러짜리(추정치) 블록버스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의식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끝을 바꾸면 극성스러운 ‘트왈러’들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결국, 제작진은 절충안을 짜냈다. 뱀파이어 세계의 권력 집단 볼투리가(家)가 에드워드-벨라 부부를 응징하려고 쳐들어오는 설정은 원작과 같다. 원작에서는 볼투리가와 컬렌가의 대치가 일촉즉발의 위기로까지 치닫지만 최악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르네즈미가 ‘불멸의 아이’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자 어쩔 수 없이 볼투리가도 제 발로 물러난다. 그러나 콘던 감독은 승부수를 던진다. 원작에 없는 시리즈 사상 가장 과격하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을 20분가량 배치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브레이킹 던 파트 2’는 더 이상 말랑한 소녀 취향이 아니다. 100여명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이 뒤엉켜 목을 절단하고 허리를 꺾고 몸에 불을 지르는 등 ‘19금(禁)’ 액션이 이어진다. 달콤한 모던록이 순식간에 헤비메탈로 뒤바뀐 셈. 문제는 결말이다. 원작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모던록으로의 회귀는 불가피하다. ‘트왈러’가 아니라면 롤러코스터식 반전이 허무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단점은 너무 많은 캐릭터를 늘어놓은 데서 비롯된다. 다코타 패닝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메켄지 포이가 연기한 르네즈미는 물론 컬렌가를 돕기 위해 모여든 전 세계의 뱀파이어들은 저마다 독특한 능력과 사연, 개성을 지녔다. 이들을 한꺼번에 낭비하기보단 적당히 추려냈어야 한다. 조연 캐릭터에까지 공을 들이려다 산만해졌다. 로버트 패틴슨(에드워드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벨라 역)와 함께 시리즈를 이끈 테일러 로트너(제이콥 역)의 팬이라면 최종편이 못내 아쉬울 법하다. 시도 때도 없이 웃옷을 벗어젖히며 ‘짐승남’의 매력을 뽐내던 제이콥은 팽팽하던 삼각관계가 무너지면서 르네즈미의 보모(혹은 보호자)로 전락했다. 임일영·이은주기자 argus@seoul.co.kr
  • 조준희 기업은행장의 ‘파격’

    조준희 기업은행장의 ‘파격’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뽑아 일자리를 주는 것이 바로 양극화 해소의 길이 아닐까요.” 조준희 기업은행장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기업은행은 올해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에서 은행권 최초로 기초생활수급자를 별도로 분류해 공채를 실시했다. 일각에서 우려를 표명했지만 조 행장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생활 형편이 어려운 12명이 15일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기업은행은 이날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 최종 합격자 235명을 발표했다. 당초 채용 계획은 210명이었지만 청년 일자리를 더 늘리자는 취지에서 25명을 더 뽑았다. 올 하반기 공채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전형 기준에 넣은 점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와 그동안 정규직 채용에서 소외됐던 전문대 졸업자 등을 따로 나눠 채용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전형에는 모두 414명이 지원했다. 필기시험에 이어 합숙 면접, 임원 면접 등을 거쳐 34대1의 경쟁을 뚫고 12명이 최종 합격했다. 대부분이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조손 가정 출신이거나 한부모 가정 출신이다. 시각장애인인 부모를 대신해 농사를 지으며 혼자 힘으로 대학을 졸업한 김모(25)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합격 소식에 어쩔 줄 몰라했다. 공사장 막노동 등 웬만한 아르바이트는 다 해 보았다는 김씨는 “기업은행 덕분에 부모님을 편히 모실 수 있게 됐다.”며 울먹거렸다. 조 행장은 “기초생활수급자 전형을 따로 하자고 하니까 다른 일반 전형 지원자들에 비해 학력 등 이른바 스펙이 떨어질 수 있다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면서 “솔직히 나도 내심 걱정했는데 막상 뽑아 보니 전혀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당당하게 합격한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내복을 사드리면 얼마나 뿌듯하겠느냐.”면서 “어서 빨리 첫 월급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대생 전형에는 482명이 지원해 10명이 합격했다. 최종 합격자들은 오는 26일부터 약 10주간의 연수를 받은 뒤 내년 2월 일선 지점에 배치될 예정이다. 기업은행의 ‘행원 출신 첫 행장’인 조 행장은 2000명에 가까운 임직원 인사를 단 하루에 끝내는 ‘원샷 인사’로도 유명하다.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입에 달고 다니는 현장 중심주의자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사설] 청년 실업한파, 국가지속성 경고음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고용률은 57.0%로 4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10명 중 4명 이상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구하다가 지쳐 구직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공식적인 20대 청년 실업률 6.9%에 가려진 우울한 자화상이다. 게다가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고졸자 채용 확대가 맞물리면서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20대 후반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층의 근속기간이 5년 전 17.6개월에서 올해에는 15.6개월로 줄어들 정도로 일자리의 질도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섣불리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도 못하고 ‘스펙쌓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젊은 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창조경제’(박근혜 후보), ‘공정경제’(문재인 후보), ‘혁신경제’(안철수 후보) 등 요란한 구호를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놓은 청년층 일자리 창출 방안을 보면 한결같이 뜬구름 잡기식이다. ‘스펙 초월 채용시스템 정착’(박 후보),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문 후보), ‘청년고용특별조치법 제정’(안 후보) 등 일자리 창출 주체인 기업의 의지나 능력과는 동떨어진 규제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상인 청년층으로부터도 냉소적인 쓴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물론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5년간 ‘한국호’를 이끌겠다면 청년층이 공감할 수 있는 고심의 흔적은 보여야 한다. 더구나 청년층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지탱할 버팀목이 아닌가. 지금 유로존은 재정 긴축과 일자리 감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유로존 전체의 실업률이 11.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그리스와 스페인의 실업률은 25%를 넘어섰다. 특히 스페인의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무려 54.2%에 이른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퍼주기 경쟁이 빚은 참사다. 유로존의 ‘잃어버린 세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국가 지도자가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청년 실업한파가 울리는 국가지속성 경고음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 “인턴 채용 ‘스펙’ 안본다”

    AK플라자는 13일 정직원 전환을 전제로 한 인턴사원 4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선발 분야는 백화점 부문에서 경영지원·재무·마케팅·영업관리, 온라인쇼핑몰 부문에서 마케팅·영업 등이다.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나눠 모집한다. 일반전형은 4년제 대학 졸업자 또는 내년 상반기 졸업예정자 가운데 전 학년 학점 평균 2.7점(4.5만점) 이상, 토익 730점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채용에서는 백화점 업계 최초로 학력, 성별, 자격증 등 소위 ’스펙‘을 보지 않는 특별전형인 ‘AK열정캐스팅’을 도입했다. 전형 과정은 서류와 포트폴리오 심사, 1·2차 면접으로 이루어지며 지원자의 차별화된 경험과 특기를 주로 심사한다. 특별전형 면접에서도 파격이 시도된다. 면접관 직급을 파괴하고 각 소속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실무자급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입사 1년차 사원도 면접관으로 참여해서 지원자를 심사할 수 있다. 입사지원서는 22일 오후 6시까지 애경그룹 유통 부문 채용 홈페이지(recruit.akmembers.com)에서 받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열린세상] 가을과 거울의 교감을 위하여/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열린세상] 가을과 거울의 교감을 위하여/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우리 사회에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다. 외양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여기겠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인간이 외모에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시간과 돈을 들이는 현상은 거울의 발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류 최초의 거울은 연못이나 호수에 자신을 비춰보는 물거울이었다. 그 후 청동이나 구리 등의 반사경이 만들어졌고, 서양에서는 은거울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은 청동거울을 많이 사용했는데, 가난한 이들은 일제강점기까지 물거울을 사용했을 정도였다. 100년 전만 해도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맑고 투명한 유리는 유리판의 뒷면에 주석박을 붙이는 방법으로 12~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16~17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말기에 들어와서 사용되었다. 당시 남편이 장터에서 귀한 물건이라는 거울을 사서 부인에게 선물을 하고 두 사람이 같이 거울 구경을 하는데, 부인은 남편 옆에 웬 낯선 여인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몹시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맑고 투명한 거울은 우리의 외양을 비추는 아주 정직한 거울이 되었다. 지금처럼 외모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이 맑고 투명한 거울의 영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외모는 개인의 스펙이나 사회적인 힘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외모 때문에 좌절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거나 성형의 후유증 등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젊음이라는 전설적인 힘을 가진 청춘들이 외모에 대한 압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의 거울들을 전부 깨서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자존감의 결여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젠가 작가 최수환의 작품 ‘검은 거울’(작품명은 ‘emtiness’)을 보면서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 우리 조상들이 화장실에서 들여다보던 거울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타오르는 추억’ 속에도 지붕 없는 뒷간의 으스름 달빛 아래서, 어린 주인공이 숨겨간 거울 조각 속에서 뒷날의 아내 얼굴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검은 거울 속의 이미지는 자신의 이상형, 어쩌면 C G 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합체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에게 들어 있는 여성성인 아니무스와 여성에게 들어 있는 남성성인 아니마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부터 이들 중 하나를 잃어버려 항상 찾아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신경과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을 ‘거울신경체계’라고 한다. 인간은 일생에 한번 정도 상대의 기쁨이나 슬픔 등 모든 감정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데, 그것이 사랑에 빠졌을 때라 한다. 신경전문의 김현철은 자신의 저서 ‘불안하니까 사람이다’에서 “우리 뇌에는 연결선이 없이도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처럼 상대방의 뇌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일종의 와이파이 혹은 블루투스 같은 조직이 작동한다.”고 적고 있다. 사랑에 빠지면 “거울신경 체계의 자물쇠 역할을 하는 좌반구의 기능”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때 거울신경체계는 타인과의 공감력을 통해 다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오로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반해 혹은 좌절해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진정한 거울의 다른 기능은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타인을 통해 보완하고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검은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인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만나는 일이다. 이 늦가을에 검은 거울 속의 누군가를 만나길 바란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그대의 자존감을 높여줄 사람, 운이 좋다면 사랑에 빠져 기적 같은 소통력과 공감력을 체험하길 바란다. 이 가을에, 눈부시게 빛나는 당신을 거울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 개성파 3인 건반 배틀

    개성파 3인 건반 배틀

    클래식 피아노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달 살맛 날 것 같다. 개성이 뚜렷한 3명의 피아니스트가 대기 중이다. 덕분에 고민할 여지는 적다. 코스보단 단품 요리 대가에 가까운 두 거장과 빠른 보폭으로 메뉴를 늘리는 신예가 포함됐다. 최고의 슈베르트 해석가 라두 루푸(67), 죄르지 리게티를 비롯한 현대 피아노곡의 교과서 피에르-로랑 에마르(55)가 전자라면, 클래식계의 뜨거운 ‘블루칩’ 랑랑(30)이 후자에 해당한다. 은둔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는 17·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1966년 반클라이번콩쿠르 우승, 1969년 리즈콩쿠르 우승 이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거나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반면 지난 30년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연·앨범으로만 대중들과 소통할 뿐. 2010년 한국에 올 뻔했지만, 건강 악화로 1주일 전에 공연이 취소된 바 있다. 때문에 국내 팬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러시아의 대가들과 공부했지만, 그의 레퍼토리는 19세기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슈베르트,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에 집중된다. 17일에는 16개의 독일춤곡, 4개의 즉흥곡, 피아노소나타 D.960까지 슈베르트로만 꾸민다. 19일에는 코리아심포니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4번을 협연한다. 5만~15만원. (02)541-3183. 피에르 불레즈, 죄르지 리게티, 올리비에 메시앙 등 20세기 위대한 작곡가들이 신임하는 피아니스트를 꼽자면 에마르가 첫손에 꼽힌다. 16세에 메시앙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후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 전문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솔리스트로 18년을 활동했기 때문에 ‘에마르=현대음악’의 이미지가 각인됐다. 하지만 그의 스펙트럼을 현대로만 좁히는 건 실례다. 2003년 바로크 거장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작업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5번 전곡, 황금 디아파종상을 안긴 바흐의 ‘푸가의 기법’ 앨범이 그 방증이다. 2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첫 내한 독주회 프로그램도 범상치 않다. 슈만(1810~1856)의 교향적 연습곡부터 리게티(1923~2006) ‘6개의 연습곡’까지 시대를 관통한다. 4만~8만원. (02)2005-0114. 화려한 기교와 무대매너, 아름다운 음색이 장기인 중국의 대표 피아니스트 랑랑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협주곡 5번 ‘황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함께한다. 랑랑이 국내에서 협연무대를 선보이는 건 2008년 라스칼라 필하모닉(지휘 정명훈)과 함께한 이후 4년 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클래식 아티스트”라는 뉴욕타임스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2010년 소니클래시컬로 음반사를 옮길 당시 계약금만 300만 달러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로열콘세르트허바우와 함께한 유럽투어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외려 국내에서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연주 등 ‘중국이 미는 아티스트’란 편견 탓에 다소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다. 6만~16만원. (02)541-623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노는’ 20대 25년만에 최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20대 비율이 25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20대 연령층의 비(非)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7% 포인트나 오른 38.4%(구직기간 4주 기준)를 기록했다. 2005년 이전 통계가 있는 구직기간 1주 기준으로는 38.7%로 1988년 2월(38.7%) 이후 24년 7개월 만에 가장 높다. 20대 비경제활동인구(이하 구직기간 4주 기준)는 9월에 238만 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만 6000명 늘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통학(학생)이나 취업준비, 육아, 가사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은 9월 기준으로 2007년 36.5%에서 2008년 37.3%로 올라선 뒤 2011년 37.7% 등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 특히 20대 후반의 비율이 지난해 9월 25.1%에서 지난 9월 26.9%로 1.8% 포인트나 뛰어올랐다. 20대 초반이 같은 기간 54.3%에서 52.1%로 2.2% 포인트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이는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력이 떨어진 데다 청년층의 학력 인플레이션, 기업의 경력직 선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20대 비경제활동인구 중 사실상 실업 상태를 뜻하는 취업준비(41만 8000명)는 1년 전보다 3만 2000명(8.3%) 늘었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 역시 16.5%에서 17.5%로 높아졌다. 상당수가 구직을 포기하고 ‘스펙 쌓기’에 전념하고 있는 셈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6)새내기 유권자에게 듣다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6)새내기 유권자에게 듣다

    첫 투표는 설렘입니다. 올해 만 19세가 돼 당당히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새내기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뿌듯해집니다. 정말 제대로 뽑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느 후보가 나와 나라에 보탬이 될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공약들을 살펴봐도 정작 내 고민을 해결해 줄 만한 후보는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교 학창시절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막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만 19세 유권자 3명에게 그들만의 생생한 고민과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점들을 들어봤습니다. 새내기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희망고문’으로 정의했다. ‘희망고문’이란 애매한 태도를 보여 상대방이 희망을 갖도록 해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들에게 정치와 선거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고려대학교 정경학부 김도유(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임동민,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강윤서(여)씨는 대선을 40여일 남긴 6일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전부 ‘장밋빛’인데, 내 한 표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며 기대 섞인 우려를 내비쳤다. ●새내기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20대 젊은 층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얘기하는 일부 기성 세대들이 있다. 실제로 새내기들에게 정치는 먼나라 얘기인 경우가 많은 듯하다. 김씨는 “어떤 친구들은 ‘문재인이 누구야’라고 묻기도 한다.”면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투표하는 날만 ‘주인’ 대접을 받는 게 아니냐는 반문도 따랐다. 강씨도 “일상생활에서 정치가 화두는 안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 무관심에 대해 결이 다른 해석도 있었다. 이념적 양극화로 인해 탈정치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임씨는 “새내기들 간에 이념 양극화가 아주 심하다.”면서 “이념 성향이 다르다 보니, 친구들 간에 정치를 주제로는 대화가 안 통해 정치 얘기를 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좌우 양극단에 있는 인터넷사이트들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로, 박정희는 ‘히틀러’로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영향을 받는 친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투표시간 연장이 논란이 되는 것에는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했다. 휴일에 쉴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임씨는 “학교에 일용직이나 식당 아줌마들이 주말과 쉬는 날에도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까지 일을 한다.”면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왜 투표를 못한다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김씨도 “투표참여율이 저조하면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생각한다.”고 동조했다. 강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들만의 고민은… 강요받는 진로 새내기들만의 고민은 뭘까. 이들은 캠퍼스에만 들어오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푼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씨는 “대학은 선진적인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필수로 들으라고 하는 과목은 시시하다.”면서 “대학생다운 공부를 하기가 힘들다. 학점을 위해, 과제가 적고 출석체크도 잘 안 하는 ‘꿀교양’만 찾아듣는다.”고 말했다. 임씨는 “새내기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강씨 역시 “대학 가면 자유롭기만 할 줄 알았는데,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은 진로 문제였다. 어른들에 의해 강요받는 진로 문제 때문에 꿈을 갖기도 힘들고, 오직 입시와 취업 준비만 해야 하는 처지라고 이들은 하소연했다. 임씨는 “선배들이나 어른들이 항상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어서, 관심이 별로 없는데도 변호사 할 거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했다. 김씨는 “학교 공부가 진로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사는 것 같아 회의가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친구들 사이에 만연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점수 맞춰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전과 신청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취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임씨는 “정치인들이 ‘요즘 애들 문제의식이 없다’든가 ‘열심히 노력을 안 한다’면서 혼내는 느낌이 많다.”면서 “안철수 후보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듣고 토닥거려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무줄 잣대’ 입시제도는 불만 고무줄 같은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은 공통적이었다. 입학사정관제의 혜택을 받은 임씨는 강남에서 입학사정관제 토론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토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경험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했다.”면서 “수능이 아닌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가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털어놨다. 입학사정관제에도 빈부격차의 문제점이 투영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공약들을 후보들이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김씨 역시 “입학사정관제는 주관적으로 점수 매기는 것”이라면서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강씨는 “입학사정관제보다는 논술의 객관적인 기준이 좀더 명확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교육을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공약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한국감독 미국서 성공하려면 사소한 일까지 소통 신경써야”

    “한국감독 미국서 성공하려면 사소한 일까지 소통 신경써야”

    ‘브로크백 마운틴’(2005·아카데미 감독상)과 ‘색, 계’(2003·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를 만든 타이완 출신 거장 이안(58) 감독이 새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 1월 3일 개봉)를 들고 한국에 왔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전 세계에서 700만부가 팔려나간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물원 동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민을 가다 폭풍우를 만나 가족을 잃고 벵갈호랑이와 구명정에 탄 채 표류하게 된 인도 소년 파이의 227일간 여정을 그렸다. 이안 감독은 5일 서울 여의도 IFC몰에서 ‘맛보기용’ 영상 프레젠테이션과 더불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지금껏 내 작품 중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원작소설을 읽자마자 모험과 생존, 삶의 경이로움을 담아낸 이야기에 푹 빠졌다. 하지만 소년 파이의 여정을 2D로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D 기술을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때만 해도 3D영화의 신기원을 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개봉하기 9개월 전. 3D에 대한 관객 반응이 검증되기 전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3000여명의 스태프와 4년여를 매달린 끝에 영화를 완성했다. 이날 소개된 하이라이트 영상 중 파이 가족과 동물을 실은 화물선이 난파하는 장면은 지금껏 어떤 영화도 구현하지 못한 스펙터클과 입체감을 담아냈다.이안 감독은 “3D는 더는 신기술을 가지고 눈속임하는 게 아닌 새로운 예술 미디어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1992년 ‘쿵후선생’으로 데뷔한 뒤 가족의 갈등, 이방인과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집요하게 다뤘다. 이방인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도 웬만한 미국 감독도 지니지 못한 미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줬다. 아시아 감독 중 미국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그에게 최근 할리우드에 진출한 박찬욱·김지운 등 한국 감독들의 전망을 물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그들을 부른 건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고 자국시장에서 영화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할리우드는 (한국·타이완처럼 감독이 군림하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일까지 (미국)대통령이 정책 설명을 하듯 표현하고 소통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런 걸 못하면 독불장군처럼 비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작 ‘센스 앤 센서빌러티’(1995)에서 문화적 차이로 배우들과 갈등을 빚었던 그의 조언이기에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감독들이라면 새겨 들을 만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열린세상] 열정(熱情)이 천직(天職)을 만든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열정(熱情)이 천직(天職)을 만든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가을도 끝자락에 걸린 어느 날, 연구실로 졸업을 앞둔 제자가 찾아 왔다.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또 학생회 간부로 씩씩하게 활동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몹시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진로 때문에 무척 고민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 고민 끝에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는데, 어느 대학에 지원을 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는 대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자 제자는 조금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나는 제자에게 왜 교사가 되려는지 물었다. 제자는 정년이 보장된 가장 안정된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불현듯 얼마 전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생각났다. 고교 시절 수재 소리를 들으면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 임원으로 있던 친구이다. 쉰을 갓 넘긴 나이에 퇴직을 한 친구는 대취한 채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자식들이 아직 대학 다니고 결혼도 못 시켰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하고 싶었던 일은 다 저버리고 오로지 가족과 회사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삶이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의미를 갖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퇴직을 한 친구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행복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회사 다니는 동안 그는 늘 자부심을 느꼈고, 또 매사 자신만만했고, 알토란 같은 자식을 무척 대견스러워했다. 그런 그가 왜 지금 “여태껏 살아온 것이 후회스럽다.”라고 절규하는 것일까.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는 이가 있다. 한국 문단의 특성상,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문명(文名)을 떨치기는 매우 어렵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시인으로 이름을 드날릴 수 있었던 그가 산골로 간 이유가 궁금해 직접 만나 물었다. 시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린 후 말했다. 서울에서는 자꾸 헛된 욕심 때문에 사는 것이 괴로웠는데, 이곳에 와 하고 싶은 농사 짓고, 쓰고 싶은 시를 쓰니 무척 행복하다고. 세계 10대 강국이 취업 대란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 젊음의 낭만이 사라진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취업을 위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문제집을 통째로 외우고, 또 온갖 스펙을 쌓는 데 귀중한 청춘을 소진하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친구와의 우정, 낭만적인 사랑,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 깊이 있는 전공 지식의 탐구 등은 그들에게 호사처럼 여겨질 뿐이다. 문학에 대한 향유도, 철학을 통한 사색도, 예술을 통한 감흥도 사라진 대학에는 취업을 위한 삭막한 투쟁만이 난무하고 있다. 농사 짓는 시인이 말했다. 남을 위해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가족이 행복하겠느냐고. 퇴직을 한 친구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돈도 명예도 출세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평생토록 스스로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으리으리한 집과 드높은 명성과 높디높은 자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하면서 밤을 새워도 피곤한 줄 모르고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제자가 교사가 되어 훗날 퇴직을 한다면, 그때 느낄 것이다. 남들보다 오래 근무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르친 많은 제자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서 행복하다는 것을. 또 다른 제자가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원서를 들고 왔다. 비싼 등록금, 빠듯한 집안 형편에도 작가가 되려는 제자를 보면서 ‘열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물질적 측면에서 성공한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모방해서 자신도 그렇게 되려는 것을 ‘허영심’이라 한다면, ‘열정’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의지로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교사가 되려는 제자나 작가가 되려는 제자 모두 허영심보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박시후, 낯선 외출 날선 미소

    박시후, 낯선 외출 날선 미소

    올해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또 한편의 ‘물건’이 등장했다. 바로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다. 공소시효가 끝난 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연쇄 살인범과 를 끈질기게 뒤쫓는 형사의 추격전을 그린 영화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와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작품 한가운데에는 스크린 데뷔작에서부터 ‘꽃미남 연쇄 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한 배우 박시후(34)가 있다. 드라마 ‘역전의 여왕’ ‘검사 프린세스’ ‘공주의 남자’ 등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남성적인 캐릭터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박시후는 이 같은 이미지를 뒤로하고 비열하고 얄미운 살인마 역을 맡는 다소 ‘위험한’ 도전을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이유부터 물었다. “드라마라면 도전하기 힘들었겠지만 영화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이중인격이나 양면성을 지닌 인물을 좋아했어요.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턴처럼 선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죠. 살인범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인상에 강하게 남기도 하고 일단 마케팅도 강하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웃음)” 원래 부드럽고 자상한 ‘실장님 전문 배우’로 뜬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는 그는 “전작 ‘공주의 남자’로 사극에 도전한 이유도 처음에는 그저 부잣집 도령으로 등장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복수의 화신’으로 바뀌면서 남성스럽고 마초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5년 KBS 드라마 ‘쾌걸춘향’으로 데뷔해 안방극장에서 흥행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가 7년이 지나 스크린 신고식을 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나름의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데뷔 초에 드라마를 두 작품 정도 끝내고 영화를 하려고 했었어요. 깔끔한 분위기의 검사 같은 형사 역할이었죠. 캐스팅된 뒤 대본 리딩을 마치고 포스터 시안 촬영까지 마쳤는데 다른 배우로 교체됐어요. 당시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지도가 낮았고 검증도 잘 안 돼 투자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때는 박시후가 2006년 MBC 월화 드라마 ‘넌 어느 별에서 왔니’를 마친 뒤였다. 그 뒤로는 개봉까지 갈 영화인지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배우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그때보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터널 속으로 사라진 ‘살인의 추억’ 속 범인이 공소시효가 끝난 뒤 스스로 세상에 나온다는 정병길 감독의 상상에서 시작됐다. 영화는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연곡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이두석(박시후)이 자신의 범행을 기록한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의 상황에서 출발한다.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잘생긴 외모와 수려한 말솜씨로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팬층을 형성하면서 스타로 떠오른 이두석. 박시후는 “실제로는 발생하면 안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대본을 읽으면서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꽃미남이면서 동시에 살인마라는 상반된 캐릭터의 역할을 맡아 묘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극적 재미를 주려고 했어요. 두식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과연 반성을 하기 위해서인지, 돈을 벌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인지 궁금해하면서 몰입할 수 있게요.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에다 감정의 폭이 큰 인물이 아니어서 눈빛으로 미스터리한 성격을 그리려고 노력했죠.” 섬세하고 미세한 표정 변화에 집중했다는 박시후. 언뜻 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두식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다소 차갑고 무뚝뚝한 인상 때문인지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쳐다볼 때 오해를 많이 받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부드럽고 털털한 면이 많은 편이죠. 저 반전 있는 남자예요.(웃음)” ‘내가 살인범이다’의 하이라이트는 도심 시가지에서 촬영된 대규모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박시후는 수영복에 가운만 걸치고 달리는 자동차 위를 구르면서 생생한 액션 연기를 펼친다. “처음에 대본을 보고는 상상이 되지 않아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할 줄 알았는데 감독이 액션스쿨 출신이라 실제로 찍지 않으면 티가 난다고 해서 위험한 장면도 거의 다 대역 없이 직접 찍었어요. 저도 첫 영화여서 일단 시키는 대로 다 했죠. 머리를 옆 차에 찧기도 하고 맨발로 차 위에서 열흘간 찍다 보니 깨진 유리 조각 때문에 무척 힘들었어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종영 뒤 단 이틀 쉬고 영화 촬영에 들어간 그는 한겨울에 찬물이 채워진 수영장에서 18시간 촬영했을 때가 특히 어려웠다고 했다. “힘들었지만 막상 모니터에 나온 장면을 보니까 만족스럽더라고요. 사실 드라마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하루에 10장면도 넘게 찍는데 한 장면을 열흘씩 찍는 영화가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한 가지 감정을 그렇게 오래 가지고 가는 것도 힘들었고요. 하지만 매 장면 감독과 소통하고 고민하면서 만들어 내는 영화 작업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영화 홍보를 서둘러 마친 그는 다시 드라마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다음 달 SBS ‘다섯 손가락’ 후속으로 방송되는 ‘청담동 앨리스’에서 세계적인 명품 유통회사의 최연소 회장인 남자 주인공 차승조 역을 맡아 문근영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이번엔 제대로 망가지고 찌질하기도 하지만 슈퍼맨처럼 멋있기도 한 캐릭터입니다. 자수성가한 인물로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점은 영화 속 이두석과 정반대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이번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신인 배우로서 이번 영화를 발판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朴 “인생 후반전 위해 정년연장 정착”

    朴 “인생 후반전 위해 정년연장 정착”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일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연계해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정착되게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중장년층 표심 잡기에 나섰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 지원 등 사회안전망 강화안도 내놨다. 경제위기를 돌파할 자질론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박 후보가 경제 중추인 4060세대에 대한 지원 의지를 적극 내보인 것이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4060 인생설계박람회’에 참석해 “더 일하실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제가 꿈꾸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는 “4060세대는 각 가정의 기둥으로서 삶의 무게와 실질적인 고충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분들”이라면서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 같은 말을 들을 때 저 역시 마음이 무겁다. 재교육과 재취업 등을 대폭 강화해 퇴직 후에도 인생 후반전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박 후보는 SBS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0차 미래한국리포트 ‘착한성장사회를 위한 리더십’ 행사에 참석해 “월 130만원 미만 비정규직에 대해 국가가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을 100%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오후에는 한국외대 캠퍼스에서 진행된 대학 학보사 연합인터뷰에서 반값등록금, ‘스펙 타파’ 방안 등 자신의 공약을 설명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교환학생이 선호하는 국가 1위는?

    교환학생이 선호하는 국가 1위는?

     대학생들이 가장 공부하고 싶어 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해커스교육그룹의 유학시험 커뮤니티 ‘고우해커스(www.goHackers.com)’가 교환 학생을 준비하는 대학생 53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환학생 준비시 가장 선호하는 국가는 미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77%로 높게 나타났지만 유럽은 높은 환율 등으로 13%로 2위에 그쳤다.   미국은 인지도가 높은 유명 대학들이 많은데다 선진화한 교육 시스템과 국내 대학과의 연계로 다양한 장학 혜택이 마련돼 있어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캐나다, 호주, 아시아 등은 각각 7%, 2%, 1% 정도로 선호도가 비교적 낮았다.  교환학생 지원목적에서는 유학이 43% 1위로 나타났으며, 취업 스펙이 32%로 2위, 해외 경험이 21%로 3위를 차지해 유학 목적 외에도 극심한 취업난으로 스펙을 키우기 위해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다수 분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교환학생 준비시 가장 고려하는 사항을 묻는 항목에서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인지도 등을 이유로 ‘학교를 우선시 본다’가 42% 1위를 차지했으며 영어권 국가, 치안 상황 등을 고려해 ‘어느 나라인지가 중요하다’가 2위(33%)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장학금이 지원 되는지를 가장 많이 본다’가 18%로 3위를 차지해 고물가 속에서 부담을 덜기 위한 학생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해커스 교육그룹 심새롬 마케팅팀장은 “비싼 등록금, 취업난 등 요즘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취업 스펙, 영어시험 성적 올리기 등을 이유로 급하게 교환학생을 준비하기 보다는 많은 정보가 집약돼 있는 유학시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교환학생 면접 후기나 선배들의 경험담 등을 토대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해커스 교육그룹은 유학시험 커뮤니티 ‘고우해커스’를 통해 교환학생을 준비 중인 학생들을 위한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교환학생 길라잡이, 교환학생 정보나눔, 교환학생 학교정보, 교환학생 Q&A 등의 코너를 통해 교환학생 준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교환학생, 유학 등과 관련한 최신 정보, 뉴스 등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 영어 학습에 유용한 해커스VJ영어, 영어뉴스, TED강연 청취 등 총 18개의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정기홍 기자 hong@seoul.co.kr
  •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3) 여성 직장인에게 듣다

    [선택 2012 민심탐방-내게 대선은 [ ]다] (3) 여성 직장인에게 듣다

    ‘여성 상위시대라고?’ 사상 처음 유력한 여성 대선 후보가 나왔다지만 아직은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약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아닌 직장인으로 오롯이 평가받고 싶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은 벽입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100% 펼칠 수 없는 제도적·사회적 불평등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18대 대선 후보들이 화려한 포장과 함께 내놓고 있는 여성·보육정책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여성 직장인 3명에게 이번 대선에 거는 기대를 들어봤습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지난해 1.24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안의 절반 수준인 보육·유아교육 재정지원 비율(2011년 GDP 대비 0.53%), 아시아 최저 수준의 기업 여성임원 비율(1%), 여성격차지수 세계 135개국 중 107위(지난해 세계경제포럼)….’ 각종 수치로만 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여성 분야의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직장맘’들은 “우리나라의 보육 환경과 여성의 기업 근무 환경은 갈 길이 한참 멀다.”고 입을 모았다. 미혼인 직장 여성도 “고용과 승진은 ‘유리천장’에 막히고, 보육은 엄마에게만 맡기는 사회 시스템 탓에 결혼을 외면하는 또래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보육 환경 갈 길 멀어” 그럼에도 이들은 올해 18대 대선을 ‘바람’이라고 정의했다. 바람은 자유로운 공기이기도 하고, 거센 바람을 일으켜 낡은 구태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또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버겁지만 앞으로 5년 뒤엔 ‘나도, 아이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국민 마음 속에서 진정한 ‘바람’을 탄 후보가 당선되기를 소망하는 마음도 보인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반도체 부품업체인 시리얼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코리아의 서현아(34) 과장은 7살 아들, 5살 딸을 둔 워킹맘이다. 회사에선 자산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시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서씨는 어린이집이나 보육 도우미에 기대야 하는 동료들에 비해선 그나마 숨통이 트인 편이다. 그런 서씨도 업무 특성상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회의가 이어질 때가 다반사이고, 그럴 때마다 가시방석이다. 그는 “직장맘이 야근 때 회사 눈치를 본다면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눈칫밥을 먹는다.”고 했다. 첫 아들을 낳았을 당시 법적으로는 출산휴가·육아휴직이 모두 보장돼 있었지만 4주만 쉬고 출근해야 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커리어가 최근 직장인 57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육아휴직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직장 내 눈치’가 절반 이상(51.9%)를 차지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A사에서 건축설계를 하는 신효민(29)씨는 9개월된 딸을 두고 복직한 지 한 달째를 맞고 있다. 대기업이라서 후생 복지가 좋은 편인데도 신씨는 “복직 이후 아직 저녁 7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산후 1년은 모성보호 기간이라 야근·휴일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무도 ‘먼저 집에 가라’고 하지 않아요.”라고 신씨는 한숨지었다. 한 달에 150만원이나 드는 보육 도우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분유값, 기저귀값까지 합하면 한달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는 “아이를 낳아보니 안 낳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면서 “유럽 선진국은 보육료가 거의 안 드는데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아이를 낳을 수도 없다.”며 씁쓸해했다. 직장 새내기로 EBS 라디오부 조연출로 일하는 백지은(28)씨는 최근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의 남성 지원자에게 밀려 최종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미혼인 백씨는 “사회인으로 입문하는 시점에 성별을 이유로 차별부터 당하니 사기가 꺾이더라.”고 털어놨다. 각 후보마다 앞다퉈 내놓은 각종 육아 보육 대책도 대부분의 직장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백씨는 “(보육정책이 실현되려면)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그나마 혜택을 받으려면 대기업에 근무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씨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도 육아 휴직을 다 못 쓰고 승진에서 밀릴까 하소연한다.”면서 “이런 모습을 보면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여성·보육 공약에 대해 “워킹맘들의 마음만 잔뜩 부풀려놓고 당선 이후엔 실망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서 과장은 “민간 어린이집 수준이 그야말로 들쭉날쭉하다. 보육료는 어린이집이 아니라 가정에 직접 지급했으면 좋겠다.”면서 “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을 정규과정으로 편입하면 일하는 엄마들이 마음 편히 질 좋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시켜줄 수 있다.”고 후보들에게 제안했다. 정부 운영 24시간 키즈카페와 직장맘 문화수당도 아이디어로 내놨다. 사회 인식의 변화도 주문했다. 신씨는 “고위 임원 중에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고 전했다. ●마음만 부풀리는 ‘풍선 공약’ 그만 각 후보마다 여성·보육 정책은 화려하지만 재원 확보안이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백씨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기를 바라지만 공약들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혼여성 직장인 비율에 따라 회사의 세금을 감면해 주거나 아이 나이에 맞는 맞춤형 보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세 후보 대학생 관련 주요 공약은

    세 후보 대학생 관련 주요 공약은

    대학생을 향한 대선 후보들의 구애가 뜨겁다. 후보들은 등록금과 취업 문제를 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고민의 양대 축으로 보고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소득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체 등록금 부담을 지금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예컨대 전체 계층을 10분위로 나눈 뒤 하위 1~2분위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3~4분위는 75%를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납부하는 등록금 액수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등록금을 현재의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실질적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는 2013년부터 국공립대학부터 반값 등록금을 실현한 뒤 이듬해에는 사립대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 재정을 압박할 수 있어 정책의 지속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고졸 이하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논란거리다. 안 후보는 향후 5년 동안 점진적으로 등록금을 낮춰 임기 내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등록금 의존비율이 높은 현 대학재정의 구조개혁 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취업 문제와 관련해 박 후보는 ‘스펙 초월 채용시스템 구축’을 내걸었다. 소질과 재능을 기준으로 교육생을 뽑아 멘토링과 직업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900여개 직무능력 표준을 만들어 학벌과 관계없이 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입사지원서에 출신 학교를 기재하지 않는 학력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스펙이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 아니냐는 평가도 적지 않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선택 2012 민심탐방] 내게 대선은 [ ]다 (1)대학생에 듣다

    [선택 2012 민심탐방] 내게 대선은 [ ]다 (1)대학생에 듣다

    20대의 표심과 투표율이 18대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반값등록금, 취업난 해소 등 대학생들을 겨냥한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보들의 공약이 실제로 대학생들의 피부에 와닿을지는 의문입니다.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이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지, 구호성에 그치는 건 아닌지 등을 진단하기 위해 서울지역 대학생 3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20대 대학생들은 18대 대선을 ‘밥’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밥맛이다.”라고 표현하면서도, 매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밥이기 때문이다. 또 밥값은 그들의 열악한 호주머니 사정과도 직결된다. 대선 후보들이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경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밥’에 담긴 셈이다. “나에게 대선은 계륵”이라고 표현한 대학생도 있었다. 득될 것은 없으나 차마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장우성(25)·이화여대 사학과 4학년 장영인(23)·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박형윤(24)씨를 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앞 교정에서 만나 대학생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을 들어봤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의 입에 발린 공약에 속아 넘어갈 대학생은 없다.”며 공약의 빈틈을 따끔하게 지적했다. ●“반값등록금은 실현 불가능” 이들은 ‘반값등록금’을 실현 불가능한 공약으로 내다봤다. 또 대학의 등록금 인하·동결은 대학생에게 거의 혜택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장영인씨는 “학생 대부분이 반값등록금을 상징적인 용어로 생각한다.”면서 “실제 절반으로 낮춰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장우성씨는 “등록금은 수백만원까지 오를 대로 올랐는데 장학금으로 고작 50만원을 깎아 주니 장학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고 했고, 박씨는 “등록금 2%를 줄이는 대신 한 학기를 16주에서 15주로 줄여 학내에서는 수업일수 복권에 대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박씨는 후보별 등록금 공약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장학제도 개선 방침은 혜택이 크지 않아 생색내기 공약에 불과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국공립대 실질적 반값 등록금 공약은 가장 시원하고 솔깃하지만 사립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현실성이 가장 떨어지며,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점진적 반값등록금 공약은 그나마 현실적이지만 여대야소 국면에서 국회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학자금 대출 이자나 대폭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학벌·학점 스펙은 옛말 취업 문제 역시 깊은 고민거리였다. 이들은 “취업은 사회가 학생에게 지우는 굴레이며 현실적으로 대학생이면 누구나 그 굴레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현실론을 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의 취업 고민 첫 번째가 ‘대기업’ 입사에 대한 스트레스라는 점에 공감했다. 장우성씨는 “사정이 나쁘지 않고 전도유망한 중소기업이 적지 않은데 대기업에 못 들어가면 입사에 실패했다는 인식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근무 환경이 좋은 중소기업도 정말 많은데 무슨 일을 하는 기업인지 등 국가 주도의 홍보나 장려책이 없다. 고작 취업카페를 통해 입수하는 정보가 전부”라며 아쉬워했다. 장영인씨는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연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대기업 입사를 꿈으로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부 주도의 중소기업 육성과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제고로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 이면에는 ‘스펙(Specification)쌓기’가 최대 걸림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기존의 학벌, 학점, 토익점수 등과 같은 스펙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장우성씨는 “문 후보가 스펙 해결책으로 제시한 ‘블라인드 평가’는 이미 때 지난 얘기”라면서 “기업들이 입사지원 자기소개서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고난도의 스펙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글로벌 인턴 경험이 있는지, 해외에 사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지 등 돈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쌓기 어려운 스펙을 갖춰야 유능한 인재로 평가받는다는 점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고 말했고, 장우성씨도 “해외에 나가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스토리를 쓰느냐.”고 맞장구를 쳤다. 장영인씨는 “교수들과 함께 가는 해외 학술탐방 기회가 간혹 있는데 적잖은 비용이 들지만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치화된 점수와 출신 성분이 1세대 스펙이라면 ‘스토리’를 요구하는 스펙은 2세대 스펙”이라고 규정했다. ●학생 호주머니 터는 학내 물가 대학의 ‘궁핍한 학생 호주머니 털기’도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대학이 유명 커피전문점을 속속 입점시켜 학생들의 과다소비를 조장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장우성씨는 “학생증을 제시하면 10%를 할인해 주는데 5000원에서 500원 할인해 봤자 커피 한 잔에 4500원 아니냐.”고 꼬집었다. 장영인씨는 “커피전문점 할인이 학생회장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오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밥값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장우성씨는 “학내 식당 한 끼 식사 비용이 25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라 용돈 부담이 더 커졌는데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면서 “거액의 등록금이 식당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숙사 문제도 심각하다고 전했다. 장우성씨는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의 한 학기 비용은 200만원에 육박한다. 3월 개강부터 6월 종강까지 월 50만원이나 내야 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에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비율이 적지 않은데 비싼 숙식비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있다면 아마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선택 2012 민심탐방] 내게 이번 대선은 [ ]이다

    [선택 2012 민심탐방] 내게 이번 대선은 [ ]이다

    18대 대선을 50일 앞두고 선거판이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전략으로 요동치고 있다. 정책 대결을 약속한 후보들 역시 밑바닥의 생생한 민심을 귀담아 듣기보다 정치공학 측면에서 공약을 남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신문은 정치권과 유권자의 쌍방향 정치를 복원하고 거대 담론에 밀려 묻히고 있는 유권자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시리즈를 선거 50일 전인 30일부터 게재한다. 비싼 등록금과 고비용 스펙에 휘청이는 대학생,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불안한 위치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 폐업에 직면해 전전긍긍하는 자영업자, 가정과 육아의 양립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여성 직장인 등 서민의 삶이 녹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정치권과 후보들에게 전달하고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돕자는 취지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소금의 격동기 : 쓰러진 사람과 뜬 사람 소금이 넘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소금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러나 60여년 전만 하더라도 소금 1석에 쌀 1석이 맞교환되던 때가 있었다. 소금을 구하기가 어렵고 비싸다 보니 소금에 울고 소금에 웃는 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구한말은 소금 시장을 둘러싸고 극한 변동이 있었던 시기였다. 개항 이후 일본의 소금과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 밀려왔고, 일제는 우리나라 소금을 재원으로 하여 식민지 경영 자금을 확보하려 하였다. 이러한 염업사의 격동기는 온몸으로 저항하다 쓰러진 사람과 시류에 편승하여 뜬 사람을 갈라놓았다. 삶의 선택이 자유로운 만큼 역사의 평가가 냉혹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알았을까. ●이토 통감 마차 가로막은 꼿꼿한 소금장수 김두원 1907년 10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원산항에 사는 김두원씨가 일인에게 소금값을 찾으려고 여러 해를 호소하더니 일전에 경시청에 잡히어 갇혔다더라.” 소금값을 받으려는 김두원을 경시청에서 잡아 가둔 까닭은 무엇인가? 김두원은 비록 항일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일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다. 좀처럼 변하지 않고 단단한 육각형의 결정체인 소금처럼 그는 일관되고 굽힘 없이 일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 방식은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핵심 인물을 찾아서 호통을 치는 일이었다. 구속되기 불과 3개월 전인 7월 10일에도 그는 오른손에는 직소(직접 호소한다)라고 쓴 종이를, 왼손에는 편지를 들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마차 앞을 막았다. 일곱 번이나 시도를 하였지만, 한국통치를 위한 일제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와의 직접 대화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환갑을 몇 해 앞둔 노인을 이렇게 꼿꼿한 집념의 사나이로 만든 자는 일본인 사기꾼이었다. 때는 8년 전인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소금을 대규모로 매매하는 거상이었다. 함경도에도 영흥·문천과 같이 소금 생산지가 있었지만, 원산의 거상들은 경상도를 넘나들었다. 강원도와 영남 일대를 통틀어 최고의 소금 생산지는 경상도의 김해와 울산이었다. 김두원은 이곳에서 소금을 사서 원산에서 파는 방식으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당대의 소금 시장에서는 파는 자나 사는 자 모두가 신뢰를 기반으로 하였다. 믿음이 한 번 깨진 사람은 다시 상대하지 않았으니 소금 매매는 정말 짜디 짠 상거래였던 것이다. 이런 신뢰의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는 개항 이후였다. 개항 이후로 일제의 전오염(우리나라의 자염처럼 끓여서 만드는 소금)이 부산과 원산 등 개항지로 유입되었고, 일본인 상인들도 조선의 소금 시장에 직접 나섰다. 속칭 포대가리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일본인 상인들은 간수가 많은 일본의 저질 소금을 조선의 가마니에 담은 뒤에 조선 소금이라 속여 팔았다. 이런 일본인들을 믿은 것은 김두원의 큰 실수였다. 1899년 5월에도 김두원은 동해안과 낙동강을 오가면서 소금을 매입하여 한 포구에 모아두었다. 이렇게 모은 소금이 자그마치 1088석이었다. 당시 시세로 따지면 약 5100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무라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형제가 객줏집에 머문 김두원에게 다가섰다. 고기 절이는 데 소금이 급하게 필요하여 소금값을 후하게 줄 테니 자신들의 배에 소금을 싣고 울릉도까지 가자고 속였다. 보름간의 항해를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자 기무라 형제는 김두원에게 소금 짐은 다음 날 하역하고 뭍에 내려 푹 쉬라고 하였다. 순진했던 김두원이 깊은 잠에 든 사이에 사기꾼 형제는 배를 띄워 유유히 동해를 건너 시무라 현으로 사라졌다. 희대의 ‘소금 먹튀’ 사건에 김두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분통이 터져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조선의 외부대신에게 청원해 보았지만 이미 쇠멸해 가는 조선 정부는 자국민의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두원은 직접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기꾼들이 이미 징역을 살고 있고, 소금값을 물어낼 형편이 못 된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분기탱천한 김두원은 1903년 일본 공사인 하야시를 직접 찾아가서 소금값을 내놓으라고 고성을 질렀다. 인력거를 타고 가다가 놀란 하야시는 그만 종로의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렇게 김두원은 일본 공사뿐만 아니라 조선 통감, 일본 총리, 중의원을 상대로 청원하고 투쟁하였지만, 일제는 소금값을 지불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휼금 얼마를 주겠다며 그를 회유하려 하였다. 김두원에게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구휼금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는 경시청 총감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이를 거절하였다. “일본 선박이 홍주군 바윗돌에 부딪혀 파손된 것을 그 바윗돌이 조선에 있다 하여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배상금 3000원을 받아가고, 공주군에 있던 일본인이 조선의 군인과 시비하다 구타를 당하였다고 치료비로 5000원을 받아간 즉, 전례와 같이 나의 소금값도 일본 정부에서 물어내는 일이 당연하다.” 참으로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장장 20여년에 걸친 배상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그가 정당히 받아야 할 소금값은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소금이 물에 녹듯이’ 사라져 갔을 것으로 보인다. ●탁지부 대신 고영희, 소금세 높여 염민에 큰 고통 1907년 10월 김두원이 영문도 모른 채 경시청에 잡혀간 이유는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문이었다. 일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김두원이 황태자의 앞을 가로막고 ‘소금값 배상하라.’고 외칠 것이라 여겼다. 김두원이 일제에 의하여 불법 구금된 동안, 일본 황태자를 극진히 모시고 환영행사를 주관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탁지부 대신 고영희이다. 1849년생인 고영희와 김두원은 서로 나이도 엇비슷했으나 황태자 방문 앞에서 전혀 다른, 반대편의 삶에 서 있었다. 차가운 유치장에서 지내야 했던 김두원에게 그해 10월은 지옥과 같은 반면, 황태자 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제로부터 훈1등 욱일대수장(旭日大授章)까지 받은 고영희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1867년 역과에 합격한 고영희는 일제의 부상으로 호기를 맞았다. 1876년 김기수 수신사 일행으로서 일본어 통역을 맡아 일본을 시찰한 이후로 그는 순탄한 등용의 길을 걸었다. 1885년 연천 현감에서 사직하면서 잠시 가시밭을 만나는 듯하였으나 1895년 주일공사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고관대작의 지위를 한껏 누렸다. 특히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부 관리로서 승승장구하였다. 1907년 5월에 출범된 이완용 내각에서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탁지부 대신에 임명된 것도 그간 쌓아온 탁지부 스펙 때문이었다. 탁지부 대신인 고영희의 주요 임무는 일제가 식민지 재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파견한 고문들을 충실히 돕는 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조선의 소금을 가지고 식민지 경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1907년 9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명일에 총리대신 이완용, 농상대신 송병준, 내부대신 임선준, 탁지대신 고영희 4대신이 인천 주안리에 나가서 소금 굽는 마당을 시찰한다더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친일파 4대신이 당시 한적한 어촌인 인천 주안리에 행차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행사를 주관한 자는 탁지부의 고영희와 탁지부 소속의 재정고문이었던 메가타 다네타로였다. 1907년 우리나라의 인천 주안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천일염 시험장이 건설되었다. 수천년간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해 왔던 조선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결정되는 천일염업의 등장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천일염 시험장을 건설한 내막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렸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재원이었다. 일제는 자국에서 담배, 소금 등의 전매제도를 통해서 침략전쟁의 군비를 마련했고, 식민지 타이완에서도 아편, 소금 등을 전매시켜서 재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렇게 상품을 전매하여 톡톡히 재미를 본 일제에 늘 위협적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동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는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었다. 중국산 천일염에 대항하는 방법은 천혜의 갯벌이 깔린 조선의 서해안에서 직접 천일염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었다. 염화나트륨 함유량이 높은 천일염은 화학공업과 무기산업의 원료가 되었으므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제에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다. 이때 고영희와 메가타 다네타로는 서로 합심하여 주안에 최초의 천일염전 시험장을 건설함으로써 일제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다. 또 하나, 고영희는 일제의 의도대로 충실히 소금세를 걷어줌으로써 재원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 일제는 소금세가 궁내부에 귀속되어 왕실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선의 금고를 빼앗기 위해서 먼저 왕실의 금고에 들어가는 소금세를 국가의 금고로 들어가게 했다. 소금세를 많이 매기기 위하여 탁지부를 시켜 염세 규정도 치밀하고 까다롭게 바꾸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희의 취임은 일제에는 희소식이었지만 소금 생산자인 염민들에게 큰 악재였다. 소금세가 갑자기 늘어나자 여기저기서 백성의 시위가 일어났다. 일본 순사들이 염민들을 잡아들이자 대규모 시위가 뒤따랐고, 이내 일본 군인들의 총칼 진압이 시작되었다. 일제와 탁지부의 강압적 소금세 징수로 인하여 결국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매국노 고영희 후손, 친일재산 환수 반환소송 나서 고영희는 일제에 수많은 재원을 넘겨 준 덕에 한평생 영화를 누렸다. 탁지부 대신으로서 한일합병조약의 체결에 앞장선 그는 이후 중추원의 고문이 되어 매년 1600원의 연금을 받기도 했다. 1916년 고영희가 사망하자 일제가 준 자작 작위는 장남인 고희경에게 세습되었다. 고영희 집안이 대를 이어서 호의호식할 때 소금장수 김두원은 여전히 소금값을 받지 못하고 허망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영희의 증손자가 국가의 친일재산 환수에 반발하여 반환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반환 소송이라면 억울하게 1088석의 소금을 일인에게 강탈당한 김두원의 후손들이 일본 법정에 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역사 앞에 부끄러운 자는 떠들고, 당당한 자는 조용하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란 말인가.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사설] ‘스펙 공화국’ 면하려면 기업 채용 방식 바꿔야

    대기업 취직 준비를 위한 취업 사교육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른바 스펙 위주의 채용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 재학 중 학점 관리와 토익 등 영어 점수를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도 모자라 인성·적성검사나 자기소개서, 면접을 준비하는 학원들마저 강남에 성업 중이라고 한다. 해외 어학연수, 봉사활동, 교환학생, 인턴 경험 등이 입사 지원자들의 천편일률적인 스펙이 되다시피하면서 차별화를 위해 ‘스펙 관리’를 종합적으로 해주는 학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 구직자의 37%가 취업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과외시장이 더 이상 과열되지 않도록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 대응해야 한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채용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구직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다. 학력이나 성적, 외국어 구사 능력 등 입사 지원자들의 스펙이 여전히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입사 지원자들이 스펙에만 치중하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라고 지적하는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인터넷 지원으로 지원자가 크게 늘어나다 보니 1차 서류전형에서 스펙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실토하는 인사 담당자들도 있다. 기업의 채용 문화가 달라졌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면 ‘스펙 공화국’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주요 외국계 기업처럼 일단 인턴 사원으로 일을 시켜본 뒤 실무 능력이나 정직성, 창의력, 사회성 등에 따라 정식 직원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재학 시절부터 기업체가 취업 희망자를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는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스펙이 좋은 신입 사원들의 이직 확률이 높다는 연구 자료도 있다. 채용 과정에서 스펙 의존도가 높으면 조기 이직으로 인한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채용 방식을 바꾸려면 취업 희망자들의 관심 분야와 진정성, 성취 동기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변별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전제되어야 한다.
  • 무자비한 신, 없는 편이 낫다…지성인 50명이 밝히는 무신론자 된 이유

    “인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종교적 광신주의는 인문적 이데올로기 및 그와 대립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 각각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을 막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를 비판하는 책의 저자와 삽화가들은 걸핏하면 종교적 광신자들에게 살해위협을 받는다.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이성의 촛불을 켜 두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중략) 어떤 종류의 종교적 관념도 특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러셀 블랙퍼드 ‘진화와 기술 저널’ 편집장과 우도 슈클렝크 퀸스대 철학 교수는 세계 지성 50명에게 왜 무신론자가 됐는지 집필해 달라고 요청하고, 글들을 엮어 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신예찬’(피터 싱어·마이클 셔머·그렉 이건 외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펴냄)이 발간된 배경이기도 하다. 50개의 짧은 글들은 접점 하나를 향해 간다. 신이라는 절대자에 의지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로 그렉 이건과 데일 맥고완 같은 유명 작가,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나 필립 키처 컬럼비아대 철학 교수 등 철학자, 그레고리 벤퍼드 캘리포니아대 물리학 교수와 빅터 스텐저 하와이대 천문학 석좌교수 등 과학자, 인권운동가 피터 태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성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절대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계기는 다소 평범하다. 자신의 신을 강요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폭력을 가하는 행태, 착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는 모습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토록 인간을 가련하게 여기며 구원과 영생을 약속한 신이 왜 저리 가혹하고 폭력적인가.’ 애타는 기도에 응답을 듣지 못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도대체 어떤 선한 목자가 자기 양 떼 중에서도 제일 어린 양의 간청을 무시하는가. 불공정한 신에 만족하기보다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더라도 신은 없다고 결론짓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크리스틴 오버롤 퀸스대 철학 교수)는 가벼운 수다 같은 글부터, 영국 TV시리즈 ‘닥터 후’를 빌려 선과 악의 존재를 우주 만물과 연결 지은 재담(베스트셀러 작가 숀 윌리엄스), “선한 신은 왜 그토록 많은 악이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허용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스티븐 로 런던대 철학 교수)는 학술적인 성격의 글까지, ‘불신(不神) 목소리’의 스펙트럼은 넓고 흥미롭다. 2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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