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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속으로-이소룡의 부활

    ■ 빵빵한 뒷모습 내가 누구게? 그가 부활하고 있다. “이소룡이 언제 잊혀진 적이 있었더냐?”고 반문할 맹렬팬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다.그 조짐을 대중문화의 중심코드로 싹틔운 주역은 스크린이다.국내는 물론이고 상업영화의 종주국인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뒤늦게 그의 오라(aura)에 눈돌리기 시작했다. #스크린에서 꽃핀 ‘이소룡 팬터지’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이소룡 팬터지’에 기름을 부었다.영화는 지난달 16일 개봉해 2일 현재 전국관객 262만명을 확보했다.1978년을 시대배경으로 잡은 영화에서 주인공 권상우는 ‘이소룡 키드’.첫사랑의 아픔과 학교폭력에 대한 울분을 쌍절곤으로 달래는 억압된 캐릭터다.감독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존경)로 만든 영화”라고 공공연히 밝혔다.그에 앞서 30주기를 맞은 지난해 12월 국내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은 ‘이소룡 바람’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33세로 요절한 동양의 액션달인이 할리우드에서까지 시대적 문화욕구로 해석되고 있음을 웅변했다.팔등신의 우마 서먼이 맨주먹의 쿵후액션을 신랄하게(?) 구사해 스크린을 달궜다. #곳곳에서 “아뵤∼”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난 이소룡은 지금 곳곳에서 “아뵤∼”하고 괴조음(怪鳥音)을 쏟아내고 있다.인터넷 다음카페에만도 관련 사이트가 줄잡아 200여개는 된다.‘이소룡은 무슨 이씨인가’류의 우스갯소리에서부터 ‘이소룡식 트레이닝법’‘쌍절곤 정신 배우기’‘이소룡의 희귀사진방’ 등 관심분야도 나날이 다양해진다.절권도를 어디에 가면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문답도 부쩍 많아졌다. 방송이나 관련 업계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발빠르게 반응한다.지난달 30일 케이블·위성 다큐전문 Q채널에서는 이소룡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 ‘불멸의 신화 이소룡’을 내보냈다.스펙트럼DVD는 조만간 대표작들을 묶은 세트 ‘브루스 리 컬렉션’을 출시할 예정이다.‘당산대형’(唐山大兄) ‘정무문’(精武門) ‘맹룡과강’(猛龍過江) ‘사망유희’(死亡遊戱) 등 4편이다. #왜 이소룡인가? 이소룡의 급부상에는 어떤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을까.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아무리 억압적인 과거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라면서 “이소룡이 활동한 70년대에 한국은 암울한 유신말기였던 만큼 그는 억압에 맞서는 저항적 메시지로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라고 풀이했다. 그런 배경에다 최근 한국영화 소재의 복고주의와 결탁해 붐을 일으켰다.이소룡이 ‘475세대’에겐 아련한 향수로,10∼20대에겐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이다.그러나 할리우드 쪽의 관심은 색깔이 약간 다르다.미국의 ‘복고’는 대중적인 소재를 끊임없이 반복해 우려먹는 리메이크 바람과 맞닿아 있을 뿐이라는 시각들이 많다. #동양액션에 홀려버린 할리우드 할리우드의 요즘 관심은 이소룡이라는 액션 아이콘에 국한된 게 아니다.갱스터 무비의 속도감에 쿵후,사무라이 액션을 두루 가미한 ‘퓨전’스타일의 화면 자체에 벽안의 관객들은 꼼짝없이 경도된 분위기다.전국관객 40만명을 확보한 국내와는 달리 ‘킬 빌’은 미국에서만 지금까지 7000만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스타감독 에드워드 즈위크가 연출해 세계적 흥행작으로 띄워올린 ‘라스트 사무라이’도 그 흐름을 입증한 사례. 이래저래 ‘이소룡 바람’은 한동안 풍속을 유지할 것 같다.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킬 빌’ 2편이 올봄에 국내 개봉된다.5월에는 우리 영화도 가세한다. 황수정기자 sjh@ ■ 책! 책! 책!도 아뵤~ 출판가에서 이소룡을 다룬 책은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팔려왔다. 현재 나와 있는 이소룡 책은 크게 이소룡이 창안한 전설적 무예 ‘절권도’를 다룬 무술 서적과 전기 등 두 종류다.이 가운데 지난해 11월 이룸출판사에서 펴낸 청소년 평전 ‘드래곤의 전설 이소룡’은 최근 판매량이 늘고 있다.30,40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추천할 만한 동서양의 인물을 타깃으로 한 이 시리즈를 기획한 최낙영 주간은 “동서양의 인물 가운데 청소년에게 거울이 될 만한 인물을 골라 그들의 눈높이에서 조명한다는 의도였는데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다른 인물에 견줘서 이소룡 책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든 유하 감독의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게 바친다’(문학동네 펴냄)도 개봉 이후 서점가에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갈무리 출판사는 ‘성인 이소룡’을 펴낼 계획이다.저자인 웹진 ‘부커스’의 서평기자 이성문씨는 “이소룡의 전기를 훑어보면 그가 단순히 무술인이 아니라 깊은 사상·철학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며 “그의 삶을 통해 ‘자유와 해방’이라는 핵심 정신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한다.이어 “경제난 때문에 사회시스템에 종속되는 경향이 더해가는 현실에서 몸과 정신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이소룡이라는 코드는 과거형이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매력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北核 안풀리면 힘으로”

    미국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결선을 치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대북 정책 밑그림이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아홉 후보의 대선 공약과 그동안의 강연,회견,언론보도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민주당 후보들의 대북정책은 다음의 세가지로 압축됐다.첫째,북한의 핵 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둘째,북한과의 양자 혹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셋째,협상을 우선하되 군사적 행동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와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점은 6자회담을 통한 해결보다는 미·북간 직접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다.그러나 정책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한두명의 후보는 오히려 부시 행정부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선판도가 부시 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재부각되고,민주당의 정책들이 대안으로 떠오르면 누가 되든 미 차기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하워드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6일 후보간 토론회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그는 대북정책의 5대 원칙을 공약으로 제시한다.즉 ▲6자회담 대신 미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착수하고 ▲명확한 레드라인(북한 행동을 용인할 수 있는 한계)을 설정하며 ▲검증가능한 핵무기 제거의 대가로 경제 교류를 제안하고 ▲검증을 위해 불시 사찰을 실시하며 ▲한국,일본,중국과 함께 북한 경제회생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딘 후보는 지난달 30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는 “북한이 보유한 우라늄 전체를 사들이거나,(핵 수출을 막기 위한)해상에서의 선박 조사 강화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따라서 딘의 대북정책은 대화를 강조하지만,압도적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온 양면이 혼합된 것이다. 지지율이 상승중인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 사령관도 대북 직접 협상을 주장한다.지난달 23일 NPR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도 북한과의 직접 혹은 다자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한다.지난해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군사적 대응보다는 협상이 우선돼야 하며 ▲협상에서는 핵 뿐만 아니라 생화학 무기,미사일 수출,재래식 무기,마약,인권,그리고 북한의 안전 및 경제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다.다만 평화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군사적 행동이 불가피하다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유태인인 조 리버만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은 다소 강경한 입장이다.북한이 중동에 수출한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인 것같다.리버만 후보는 지난해 워싱턴 포스트 기고에서 “한반도 위기의 책임은 부시가 아니라 김정일에게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제거와 북한에 대한 정치적 인정,경제회복을 위한 지역국가들의 투자 등을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게파트 미주리주 하원의원은 선 협상 후 군사력 사용이 해법이다.NPR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이룬 외교적 성과를 지나치게 ‘경멸’했다.”면서 “가능하면 외교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지만,여의치 않으면 군사적 행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소후보 가운데서는 존 에드워즈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이 가장 강경하다.에드워즈 후보는 ‘채찍과 당근’의 병행을 대북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강경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에드워즈 후보는 지난 달 15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즈 대학 연설에서 미국이 미사일을 실은 북한 선박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사실을 상기시키며 “국제법을 따르지 않는 북한을 국제법에 따라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데니스 쿠치니치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의 대북 정책이 가장 온건하다.그는 지난해 11월20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정일을 개인적으로 만나 북한이 부시 대통령의 ‘자기충족적 예언’에 따라 ‘악의 축’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 여성후보인 캐롤 모즐리 브라운 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은 지난해 7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및 이란과 관련한 질문에“유엔 무기사찰단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협조해야 한다.”고 유엔의 역할을 강조했다.알 샤프턴 목사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세계 각국과 친구가 되고 동맹이 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다소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도운기자 dawn@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20·30代 현대작가 ‘8人8色’/호암갤러리 ‘아트스펙트럼’展

    박세진,정수진,박미나와 사사,이윤진,문경원,한기창,이한수.각기 다른 개성과 색깔을 지닌 여덟 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스펙트럼(Art Spectrum)’전은 20,30대 젊은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 양상을 살피는 전시다.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주목받되 너무 노출되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이 전시는 삼성미술관이 2년마다 개최하는 한국 현대작가 기획전으로 2001년에 이어 두번째다. 참여작가 중에서 최연소인 박세진(26)은 가장 전통적인 회화 장르로 간주되는 풍경화를 통해 동영상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안견의 ‘몽유도원도’ 배경을 연상케 하는 그의 풍경화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처럼 이상적인 원경을 표현한다.하지만 그의 그림은 세부적인 데까지 빠짐없이 다룸으로써 근접(zoom-in)과 망원이라는 두 가지 시야를 동시에 확보한다.종이에 수채물감과 버찌를 으깬 즙을 사용한 ‘장미도’ 같은 작품은 하나의 모티프를 반복하는 ‘연속회화’ 방식을 택해 회화의 절대적인 시공간을 극복한다. 2층 전시실 전체를 차지한 이한수(36)의 ‘팬시 니르바나(Fancy Nirvana)’는 녹색,빨강,주황의 플라스틱 보살상 500개로 구성된 미디어 설치작품.이 중 절반 이상에는 레이저 포인트가 설치돼 있다.작가에 따르면 이것은 해탈한 보살을 의미한다.디지털 기술과 가상공간 등으로 대변되는 미래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내년 2월29일까지.(02)750-7824. 김종면기자 jmkim@
  • 편집자에게/ “성탄 뜻 살린 화합의 면회에 감명”

    -‘김 추기경,송두율 교수 성탄절 면회’ 기사(대한매일 12월25일자 1면)를 읽고 김수환 추기경과 박홍 서강대 이사장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구치소에 있는 송두율 교수를 면회했다고 한다. 얼핏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세 사람이 화합의 뜻을 다졌다는 것이 사랑이 가득한 성탄절의 뜻을 제대로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 북의 체제 아래서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거부했던 송 교수가 이날 “신앙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명심하겠다.”고 말한 것이 어떤 고백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종교적인 결심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송 교수가 스스로 화합의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김 추기경이 스스로 밝혔듯 생전 처음으로 구치소에서 성탄미사를 올린 사실의 의미도 되새겨야 한다.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존경을 받는 김 추기경의 화합의 메시지는 그 자체가 감동이다. 올 한해도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탓하며 상처를 줬다.그러나 김 추기경과 박홍 이사장,송두율 교수는 해묵은 이념 논쟁도,잘잘못을 따지려는 어떤 불편한 발언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밑 성탄절,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이들이 한뜻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축복으로 느껴진다. 김지나 서강대 대학원생
  • 中 정치 새바람 부나/ 區의회선거 무소속 대거 출마

    10일 베이징에서 실시된 구(區) 인민대표대회(구 의회) 선거에 20여년만에 처음으로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중국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한편 중국 민주화 과정에 새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10일 보도했다. 물론 선거 자체가 구 의회 의원을 뽑는 것으로 대폭적인 정치개혁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국 언론들은 무소속 후보들의 출마가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토론에 불을 붙여 선거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평가하며 무소속 후보들의 동정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무소속 후보들은 학생에서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중산층,자산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대부분의 무소속 후보들은 구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 철회 종용을 받아들였지만 수십명의 후보들은 끝까지 선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양펭청은 중국 정치가 바뀌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한다.정치평론가 리우주닝 역시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중국 정치는 매일매일 변하고 있다. 무소속 후보들의 출마가 늘어난 것은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으로부터 보다 활발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같은 변화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정치개혁과는 달리 밑에서부터 위로 향하는 일상의 자동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유세진기자 yujin@
  • 충무로에 배우가 없다?

    지난달 28일 ‘천년호’의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 정준호는 속을 많이 끓였다.중국 올로케이션으로 공들여 찍은 ‘천년호’와 역시 자신이 주연한 코미디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개봉일이 1,2주차로 겹칠 듯해서였다.장르가 딴판인 작품을 배우가 한꺼번에 홍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게다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그가 차린 제작사의 첫 작품.눈물을 머금고 ‘동해물과…’의 개봉일을 오는 31일로 멀찍이 미뤘다.김하늘도 속앓이 중이다.자신의 출연작인 산악영화 ‘빙우’와 코미디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하필이면 내년 1월16일 같은 날 개봉할 판이다.이미지 관리에 겹치기 출연이 득될 리 만무하다. 충무로가 참았던 한숨을 다시 터뜨릴만하다.“배우가 없다.”“그 배우가 그 배우라서….” 배우의 겹치기 개봉은 제작사들의 스케줄이 묘하게 꼬여버린 탓도 있다.하지만 쓸 만한 배우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된 해프닝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실험정신 부족한 제작관행 이 대목에서 실험정신이 결여된 충무로의 제작관행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배우 이미지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거의 모든 시나리오를 관객 동원력이 검증된 몇몇 톱스타들에게 무조건 건네고 보는 캐스팅 관행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동선이 큰 작품이라면 한석규,송강호,설경구,최민식 등 ‘A급’들을 무작정 쑤셔보는(?) 방식인 것. 한 제작자는 “개성있는 캐스팅을 하고 싶어도 돈줄을 쥔 투자사측에서 맨 먼저 따지는 조건이 어느 스타를 섭외했느냐는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신인배우의 가능성만 믿고 ‘발굴 캐스팅’에 모험을 걸 제작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토로했다.‘발굴 캐스팅’이 보기 좋게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0년 개봉한 ‘공포택시’.제작사 씨네월드가 호기있게 남녀신인 이서진과 최유정을 발탁했으나,결국 흥행에 참패했다. #중량급 여배우 ‘지구력' 부족 남자배우쪽은 그나마 낫다.흥행력과 연기생명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여배우층은 훨씬 더 엷다.심은하가 은퇴한 이후 관객층을 폭넓게 포섭할 만한 톱 여배우로 꼽혀온 이영애·이미연도 ‘개점휴업’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씨네월드의 오승현 프로듀서는 “제작 1년 전쯤 계약에 들어가는데,정작 크랭크인할 때 그들이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면서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작품을 맡기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중량급 여배우들의 지구력 부족을 안타까워했다.“몇년이나 스크린을 떠나 있으면서 CF모델로만 인기관리를 하거나,TV쪽으로 슬그머니 ‘외도’해 방송개런티에 거품만 조장한다.”는 지적들도 많다.여배우의 역할비중이 큰 영화는 아예 기획조차 되지 않는 제작풍토도 여배우층이 얇아진 데 한몫한다.‘고양이를 부탁해’‘피도 눈물도 없이’‘울랄라 씨스터즈’ 등 최근 선보인 ‘여배우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자 여배우를 부각시킨 영화는 씨가 말라버린 형편이다. #조연들의 약진 여배우들이 위축되고 스타급 남자배우를 구심으로 한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나타난 결과가 조연들의 약진.지난해부터 선보인 주요영화들,특히 코미디의 경우는 조연들의 비중이 주인공 뺨친다.이범수·이문식·공형진·김수로·이원종·박준규·성지루 등의 남자조연들이 그들.2년전만 해도 주연을 상상도 못했던 이범수,박준규,공형진은 최근 아예 주인공 영화를 꿰찼다.‘오! 브라더스’에서 주연한 이범수의 몸값은 어느새 2억 5000만원선으로 훌쩍 뛰었다.‘황산벌’에서 주연보다 더 흥미로운 캐릭터로 주목받은 이문식만 해도 2년전 ‘달마야 놀자’때 2500만원선이던 개런티가 1억원을 가볍게 넘어섰다.그도 현재 자신이 주인공인 시나리오 2편을 검토중이다. “역량을 검증받은 조연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는 풍토가 충무로의 ‘배우은행’을 탄탄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게 영화가의 자성이다.스타 영화에만 덮어놓고 눈길을 주는 관객들의 ‘편식’취향도 바뀌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황수정기자 sjh@
  • 시의 세계 쉽고 재미있게 재해석/ 김재홍교수 ‘현대시 100년 한국명시 감상’

    “지금까지 시 혹은 문학은 연구실·강의실 수준에서 논의됐는데 이젠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이 뜻을 담아 현대시사 100년을 돌이켜보며 1차로 명시 405편을 골랐습니다.” 문학수첩에서 펴낸 ‘현대시 100년 한국명시 감상’시리즈의 편저자인 문학평론가 김재홍 경희대교수는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덧붙여서 시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평론가의 세계관을 중시하는 재단비평(입법비평)을 벗어나 독자 위주의 감상비평을 중시해온 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또 비평방법 중 ‘통합주의’라는 잣대에 기댄 그의 노력에 힘입어 같은 제목의 시 ‘진달래꽃’을 노래하되 사랑과 이별(김소월),사회주의 선구자(박팔양),실존·배고픔(조연현) 등 다른 빛깔의 시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고은·신경림 등의 민중시인과 이상·김춘수의 모더니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도 비교할 수 있다. “우리 근대사는 죽임(일제 강점기)와 찢김(분단)으로 점철됩니다.그 와중에 문학도 편을 갈라서 사분오열돼 왔습니다.그러나 ‘생명 중시’가 바탕인 시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여기에 바탕해 좌우와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물론 문학내적인 차이인 서정·민중·모더니즘을 망라하는 시를 모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시를 두루 모은 것은 아니다.제대로 된 시를 고르겠다는 김 교수의 노력은 이번 작업에서 새로운 분석을 보태는 데서 잘 드러난다.그는 “한용운의 ‘님’은 연인·조국·민중·불타 등으로 해석했는데 시집 ‘님의 침묵’을 꼼꼼히 분석하면 님은 ‘나’임을 알 수 있다.”며 “결국 만해의 시세계는 ‘너를 통해 나를 찾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그는 김소월의 ‘산유화’는 존재론적인 철학의 면모를,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생의 양면성과 모순성’으로 해석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수첩의 시리즈 분석 대상은 20세기 초 한용운부터 2000년 등단한 젊은 시인까지 포괄한다.4계절에 맞춰 나눈 4권 출간에 이어 앞으로 ‘시란 무엇인가’‘꽃과 나무’‘어머니와 아버지’(가제) 등 약간 전문화되고 세분된 주제로이어지면서 1000편을 소개할 예정이다.
  • 스포츠서울21 코스닥 등록 승인

    코스닥위원회는 26일 스포츠서울21을 비롯,듀오백코리아·빛과전자·디지탈멀티텍·스펙트럼디브이디·태화일렉트론·에스텍파마(이상 벤처기업) 등 7개사의 코스닥 등록을 승인했다고 밝혔다.스포츠서울21(액면가 5000원)의 공모 예정금액은 36억∼40억원 규모이며,주당 예정발행가는 5300∼6000원이다.듀오백코리아(액면가 1000원) 1만 5000∼2만원,빛과전자(액면가 500원) 7500∼8500원 등으로 책정됐다. 이날 승인된 기업들은 올 12월∼내년 1월에 공모를 거쳐 내년 1∼2월중 등록하게 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경제 플러스 / 스포츠서울21등 10社 코스닥 예심

    코스닥위원회는 스포츠서울21 등 10개사에 대해 오는 26일 등록 예비심사를 벌인다고 24일 밝혔다.이날 예심을 받는 기업은 스포츠서울21을 비롯,듀오백코리아·빛과전자·디지탈멀티텍·태화일렉트론·윔스·휴림인터렉티브·디에이피·스펙트럼디브이디·에스텍파마 등이다.예심을 통과한 업체는 오는 12월∼내년 1월중 공모를 거쳐 내년 1∼2월중 등록절차를 밟게 된다.
  • 신도시 사는 당신, 행복하십니까/ 제1회 신도시展 ‘넌, 어디서, 사니?’

    1만여평의 벌거벗은 땅(裸垈地)에 30여개의 컨테이너가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의 모습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차가운 금속구조물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고,빈터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누구나 살고 싶어할 신도시의 모습이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우리들이 꿈꿀 수 있는 여러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새달 16일까지 일산 MBC사옥부지서 제1회 신도시전(展) ‘넌,어디서,사니?’는 신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이 전시회는 ‘현재’와 같은 신도시를 만든 원인을 규명하거나,신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다양성’이 숨쉴 수 있는 공간으로 신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상상력에 기대어 살펴보고,시민들도 함께 꿈꾸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다. 일산신도시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문화도시 고양을 생각하는 문화예술인모임(대변인 영화감독여균동·공연기획자 안태경)이 주최하는 ‘넌,어디서,사니?’전은 일산신도시 호수공원에서 가까운 장항동 MBC 사옥부지에서 새달 1일부터 16일까지 열린다. 신도시전에는 미술에서 박불똥 양주혜 홍현숙과 얼마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구본주,영상에서 고승욱 김세진 박찬경,디자인에서 안상수와 홍동원,문학에서 김지하와 고형렬 박영근 하종오 유용주,퍼포먼스에서 박정희 등 일산신도시 안팎에 사는 4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양주혜가 설치작업을 할 16m 높이의 대형 철탑을 중심으로,넓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땅에 가져다놓은 컨테이너에는 작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입주’하게 된다.홍현숙은 이 나대지 한복판에 보리를 심어 황폐한 ‘가상의 신도시’를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박이창식은 신도시를 분양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이는데,아파트를 분양할 때면 어김없이 따라다니는 ‘떴다방’을 희화화하는 작업이다. 장르간 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김지하의 시를 안상수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형상화하는 작업도 그하나가 될 것이라고 한다. ●도시마다 문화적 주체성 찾는 길잡이로 주최측은 앞으로 신도시전을 해당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분당 산본 평촌 부천 과천 중동 등 경기도 지역을 순회하며 열어,도시마다 문화적 주체성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기로 했다. 전시회 공동기획자의 한 사람인 임정희(미술미학) 연세대 겸임교수는 “신도시는 개발한 사람들이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이주한 사람들이 들어가 산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친근감이 배제되어 있는 공간”이라면서 “신도시에 어떤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고,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넌,어디서,사니?’전의 관람료는 없다.(031)902-7377. 고양 서동철기자 dcsuh@
  • 일제시대 작가 55명의 소설속 등장인물 탐구/현길언 ‘…한국인의 얼굴’

    “물리적 유물과 중심부 세력에 의한 기록과 시대를 주도해 나갔던 인물들의 삶을 자료로 복원된 역사가 얼마나 그 시대와 사람들의 진실을 정직하게 보고해줄 수 있을까?(…)동시대의 지배문화와 다른 인간의 진실을 설명하는 틀로서 문학의 의미가 소중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소설가인 현길언(63) 한양대 국문과교수가 ‘주류 중심 역사’의 틈새를 소설로 메운다는 문제의식을 담아 ‘소설에서 만나는 한국인의 얼굴’(태학사 펴냄)을 내놓았다.일제강점기 유명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성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책의 미덕은 선정된 작가의 풍부함과 이념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이다. 이번에 실린 작가 55명 가운데는 김동리 김유정 김동인 박종화 이광수 황순원 등 알려진 작가도 많다.하지만 곽하신,박노갑,박영준 최인욱 최태응 등 인지도가 낮은 작가를 대거 포함해,“중심부 이데올로기와 중심집단의 가치를 보완한다.”는 자신의 문제제기에 충실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틀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지향한 카프계 작가(김남천 안회남 윤기정 이기영 조명희 최서해 한설야 등)와,그들과 논쟁을 벌인 작가(김동리),그리고 중도파(채만식 염상섭)를 아우르고 있다.이는 이념보다는 문학을 중요시해온 저자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지은이 나름의 독특한 구성방식이다.작가의 주요 작품 내용이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연구서는 많았다.하지만 이 책처럼 주요작품을 대상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세계관,서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경우는 흔치 않다. 문학을 통해서 소외된 인간상을 정리한다는 저자의 방법론은 숱한 소설속 주인공에게 숨결을 불어넣는다.저자의 연구가 이후 해방공간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 문학사는 인간의 향기가 그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기자
  • 책 / 딸아 딸아 연지 딸아

    유안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랫녘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두류박 딱딱 우여.”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불려진 ‘녹두새’란 제목의 동요다.여기서 새는 민중이고 두류박은 두류산을 가리킨다.녹두새는 전봉준이 체구가 작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그리고 ‘딱딱 우여’는 날아가라는 뜻이다.전주라는 말에는 전봉준의 전씨가 왕이 되려한다는 의미도 담겼다.그렇게 볼 때 이 동요는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관변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이처럼 시대상을 반영한다.그런가하면 갓난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힘든 농사일 중에 부르던 노동요,장터의 각설이타령,세시풍속과 관련된 노래,재치 있는 말장난이 담긴 노래 등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딸아 딸아 연지 딸아’(유안진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서울대 아동학과 교수)가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수집한 우리 노래 209편을 묶은 민요 모음집이다.저자는 민요를 내용에 따라 부녀자들이 불렀던 부요(婦謠)와 남정네들이 불렀던 속요,여자아이들의 동요와 남자아이들의 동요로 나눠 실었다.민요는 우리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종다양하다.작사자나 작곡가가 따로 없고 소리꾼과 청중도 따로 없다.누군가 지어 부른 뒤 또 다른 사람이 저마다 사연을 보태어 부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민요다.저자는 “전래동요와 속요야말로 가장 짙고 야한 바탕색 그대로의 우리 말,우리 혼,우리 넋의 우리 문화”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찍이 우리 말과 민속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등 그가 쓴 장편소설이나 ‘월령가 쑥대머리’같은 시집도 모두 민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의 민요 해석은 그런 민속학적 지식에 힘입어 한층 설득력을 더한다.부인들이 부르던 민요 ‘답교’의 한 토막.“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답교하고 노니는데/우리 임은 어딜 가고 답교할 줄 모르난고/이월 청명일에 나무마다 춘풍들고/잔디 잔디 속잎 나니 만물이 희락한데/우리 임은 어델 가고 춘기 든 줄 모르난고….” 답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다리를 밟던 풍속으로,열두 다리를 밟으면 그 해의 액을 면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사뭇 독특하다.대낮에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이 달밤에 다리 위를 건너면서 산책하는 것이 허용·장려된 것은 달빛을 받아 출산력을 강화하고 다리 힘을 키워 건강한 아이들을 자주 임신·출산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아가 달힘 마시기·달모래 찜질·그네뛰기·널뛰기·탑돌이 등도 부녀자들이 다산력을 얻기 위한 우리 민속이라는 견해를 편다. 민요를 대하면서 얻는 또다른 즐거움은 우리의 맛깔스러운 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고네기·달구·군디·딩겨·강생이·구무·번들개·거렁·다릉개·나승개….민요에는 듣기만 해도 정겨운 사투리와 옛 말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자가자 감나무/오자오자 옻나무/대낮에도 밤나무/벌건 대낮 밤나무/등 밝혀라 등나무/시퍼래도 단풍나무/죽어서도 살구나무/회초리는 싸리나무/마당쓸어 뱁싸리나무/아무따나 모개나무/멍들었다 자두나무/귀신 쫓는 복숭나무/무덤 둘레 엄가시나무….” 어린 아이들이 한둘 또는 여럿이 선창과 후창으로 불렀던 ‘나무 노래’라는 전래 동요다.나무 이름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다.여러 말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가며 유쾌한 말놀이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재치와 상상은 지금 접해도 신선한 데가 있다. 우리 옛 노래 중에는 전란을 당해 특별히 지어 부른 ‘애국 민요’도 있었다.‘쾌지나 칭칭 나네’와 ‘강강수월래’가 대표적인 예다.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는 ‘강한 왜놈 오랑캐인 가등청정이 물을 건너 왔네’라는 뜻.임진·정유란을 겪으면서 왜의 침략을 받은 전라도 지방에서 봉홧불을 못 올리는 상황이 되자 이같은 노래를 불러 한양 조정에 침략을 알렸다고 한다.한편 경상도에서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러 왜군의 침략을 알렸다.‘쾌지나 칭칭 나네’는 ‘왜장 청정(倭將 淸正) 나왔네.’라는 말을 변용한 것이다. 전래 부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토설한 노래.“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메꽃 같은 우리 딸이/시집 삼년 살고 나니/미나리꽃이 다 피었네.”‘미나리와 장다리’라는 이 민요는 원래 조선 숙종이 장희빈을 편애해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킨 내용을 담은 노래다.민씨 성을 가진 인현왕후를 미나리로,장희빈을 초여름에 꽃피는 무씨받이 장다리에 비유했다.인현왕후의 친정집 당파인 서인,그 중에서도 서포 김만중이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동요라는 설도 있다.그러나 저자는 이 민요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그린 노래로 본다.메꽃같이 튼실하게 어여뻤던 딸이 웃자란 미나리꽃 같이 초췌해진 데 대한 안쓰러움,장다리처럼 한 철뿐인 첩실에 대한 원망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와 함께 나고 자란 우리 민요가 오늘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다.저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우리의 토종 민들레는 본래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그러나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에 의해 도태당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요.우리 민요 또한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닐까요.” 민요가 사라져가고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말들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이기에 이 책은더욱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매일신보등서 찾은 근대 계몽기 문학적 양식/정선태박사 연구서 ‘심연을‘

    근대, 특히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 이 근대성을 문학이란 마당에서 천착해온 신진 국문학자 정선태 박사(이화여대)가 두번째 연구서 ‘심연을 탐색하는 고래의 눈’(소명출판 펴냄)을 내놓았다. 저자의 시각은 먼저 ‘근대 계몽기 서사문학의 스펙트럼’으로 향한다.박사학위논문인 ‘개화기 신문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에서처럼 그는 이 시기 문학텍스트에서 근대성의 맹아를 발견하고자 한다.전근대와 근대성이 충돌한 당대를 지배한 시대정신을 ‘계몽’으로 정의한 뒤 그 문학적 양식을 대한매일신보와 제국신문 등의 토론·문답체 ‘논설’과 신채호의 을지문덕전 등 역사전기서사체,그리고 이인직의 ‘혈의 루’ 등 신소설에서 찾는다. 2부에서 저자는 분석 대상을 동아시아로 넓힌다.일본 격변기의 작가 나츠메 소세키(1867∼1916)의 3부작을 통해 일본식 근대에 담긴 불안과 권태속 반근대적 사유를,근대 중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뚫고 헤쳐온 루신 작품에서는 전통도 근대도 아닌 제3의 삶을 향한 예언자적 정신을 끄집어낸다.지은이는 또 동아시아 근대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작가로 입센의 의미를 강조한다.그의 문제작인 ‘인형의 집’이 불러 일으킨 ‘노라 신드롬’이 중국과 한국에 드리운 그림자를 통해 양국 근대성의 단초를 분석한다. 이런 저자의 지적 탐색은 “한국 근대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한국문학만을 붙들고 있어서는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좁히고마는 결과밖에 낳지 못한다.”라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근대성을 향한 지은이의 항해는 3부에서 ‘번역의 문제’로 닿는다.1,2부에서 시도한 동아시아 담론구성이 근대적 사유의 부정적 측면을 탐색하는 탈근대적 사유의 하나인데,그를 위한 기초작업이 바로 번역이라는 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번역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사유의 운동’이 낳은 다시 쓰기”(308쪽)이다. 이종수기자
  • 이라크 전투병파병 논란 / 정부 “검토할 시간 달라”

    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논의가 점차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청와대 보좌진과 외교부 당국자가 대(對) 언론 브리핑을 갖고 1차 정리에 나섰다.이들은 “이 순간 이 시점,정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한 것이다.”라면서 “정부가 충분하게 검토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와 외교부 등 핵심 정부 관계자들이 브리핑을 자처한 것은 지난 9일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이 밝혀진 뒤 우리 정부내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입장이 각양각색으로 쏟아지면서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파병 문제를 놓고 각자가 갖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른 입장이 그대로 언론에 투영되면서 여론을 분열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청와대 일부 보좌진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관계자,국방·외교 부처 관계자들은 한·미동맹과 국익을 감안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조속히,화끈하게’ 파병 결정을 해야 한다는 쪽과,여론 추이를 봐가며 ‘근본적으로’ 검토하자는 신중론으로 엇갈리는 양상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북핵문제,주한미군재배치 등을 고려,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5일 오전 전화통화에서 “찬성한다는 말은 하진 않았다.”면서 그러나 “한쪽에서 너무 안 된다고 하니….”라고 말해 정부내부의 견해차를 시사했다.그는 “이번 문제는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다.”면서 한국 안보상황과 연결돼 있고,북핵문제,대미관계,에너지 안보 전략 등을 고려해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비슷한 성향의 다른 관계자도 “폭넓은 안목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월남전 때도 파병했는데….”라며 파병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근본적인 문제점을 검토,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쪽은 반전단체 등의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는 ‘명분론’에 다가가 있는 이들이다.주로 NSC관계자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서진들로 알려졌다.NSC의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국민여론과 한·미동맹,그리고 이라크 현지 상황도 하나하나 따져 봐야 한다.”면서 “속도감 있는 결단이 국익을 보장하는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책꽂이 / 바우덕이 外

    ●바우덕이(이재운 지음,글로세움 펴냄)‘소설 토정비결’의 작가가,조선 후기 첫 여성 남사당패 꼭두쇠인 바우덕이의 일생을 소설로 재구성.소설 속 주인공이 초혼굿으로 불러내는 형식을 빌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았다.9000원. ●직선 위에서 떨다(이영광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98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절제와 사색을 바탕으로 단아한 시세계를 담았다.“자석에 문지른 쇠붙이가 자성을 훔쳐내듯(…)시를 훔쳤다.”는 겸허함에도 불구,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6000원. ●그림자 호수(최영철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제2회 백석문학상 수상자인 시인의 일곱번째 작품집.표제시 등 63편의 시에서 무르익은 시세계를 보여준다.시인 고운기는 해설에서 “삶의 부조리한 모습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다.”고 평가.6000원. ●불가사의한 V양 사건(버지니아 울프 지음,한국 버지니아 울프학회 옮김,솔 펴냄)다양한 형식 실험으로 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의 단편집.초기 전통적 기법에 충실한 작품에서 말기의 실험적 작품을 망라,문학세계의 전모를 알 수 있다.9000원. ●책들의 전쟁(조너던 스위프트 지음,류경희 옮김,미래사 펴냄)‘걸리버 여행기’의 작가가 쓴 풍자산문 가운데 대표작 5편 모음.구학문과 신학문의 갈등,영국 국교와 가톨릭교의 반목 등 17세기 말∼18세기 초 영국사회의 혼란상을 잘 반영.8800원. ●런던 스케치(도리스 레싱 지음,서숙 옮김,민음사 펴냄)20세기의 대표적인 영국작가가 1992년 펴낸 단편집.현대인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와 공간 스케치를 통해 런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8000원. ●집없는 아이(엑토르 말로 지음,원용옥 옮김,궁리 펴냄)프랑스 작가가 19세기에 쓴 성장소설의 대명사.어린이 노동력 착취,광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등 세태소설,사회고발 소설의 성격도 강하다.모두 2권,각 1만원.
  • 책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 되살려 전작 ‘조선 사람들,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풍속사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 부산대 강명관 교수(한문학과)가 이번엔 한층 다양한 스펙트럼의 조선 이면사를 이야기감으로 삼았다.최근 펴낸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서출판 푸른역사)은 존재했으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해서 이내 묻혀버린 역사,그리고 지배중심의 역사에 의해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책에는 주변부 인생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탕자,왈자,깡패,기생,도적 등 소외된 민중에는 애정을 보이는 반면 근엄과 엄숙으로 치장된 양반과 주류사회에 대해서는 더없이 냉철한 시선을 던진다. 저자는 먼저 조선 후기 사회와 도박의 관계를 검토한다.도박으로는 투전·골패·쌍륙이 인기 있었다.그 중에서도 특히 투전은 조선 후기는 물론 19세기 말 화투가 들어오기 전까지 도박계의 패자로 군림했다.그것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중인에 의해 수입되고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유행한 투전이 시정의 오락에 머물렀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투전은 수입된 지 100년도 채 못 돼 양반층에까지 전면적으로 파고들었다.‘열하일기’에 연암 박지원이 밤에 역관·비장배(裨將輩)와 투전판을 벌여 돈을 딴 뒤 득의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삼한갑족의 양반 명문가 자손인 연암이 투전이라니! 그런가하면 우의정까지 오른 조선 영조 때 문신 원인손은 투전계 최고의 타자(打子,투전 고수)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오죽하면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재상·명사들과 승지 및 옥당 관원들도 이것으로 소일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소나 돼지치는 자들의 놀이가 조정에까지 밀려 올라왔으니 역시 한심한 일이다.”라고 한탄했을까.당시 투전의 유행은 어전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조선사회의 거대한 사회문제였다. ●오락을 넘어선 투전·골패등 도박 성행 저자는 “한국의 역사학은 성에 관한 담론을 배제하지만,성이야말로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매우 중요한 코드”라고 말한다.예컨대 열녀담론은 도덕적 담론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독점하기 위해 마련한 책략이라는 것.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축첩제와 기생제도를 근간으로 성에 탐닉한 양반 남성들이 여인들의 억울한 섹스 스캔들을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한다.조선시대 성추문의 주인공이라면 단연 사족(士族) 출신 감동과 어우동이다.40여명의 남자와 간통했다는 감동과 ‘희대의 음녀’ 어우동.성적 억압이 강고했던 중세사회에서 성적 자유를 구가한 이들은 근대를 선취한 선구자적 인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을 단지 이질적이고 돌출적인 존재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저자는 어우동을 사형에 처한다는 판정을 내린 성종이 세 명의 왕비와 열 명의 후궁을 거느린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냐고 반문한다.나아가 조선은 일부일처제를 넘어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 축첩제와 기녀제,심지어는 간통까지 제도화된 나라라는 ‘도발적인’ 견해를 편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마이너리티의 조선사다.조선시대 이방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특수집단 거주지 반촌(泮村)은 완전한 의미의 소수자 공간이다.성균관 유학생들의 하숙촌으로 소의 도살을 독점했던 반촌 사람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풍습,삶의 방식을 고집했다.저자에 따르면 반촌민의 도살은 오래전부터 성균관 유생들의 식사에 쇠고기를 제공했던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반촌민들에게 소의 도살을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성균관 유생들의 쇠고기 식사 습관은 율곡 이이가 생명에 대한 배려 등의 이유로 평생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큰 대조를 이룬다. ●‘축첩·기녀제도' 남성 성욕 충족시킨 수단 20세기 들어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시행되자 성균관은 옛 위상을 잃고,반촌도 해체의 길을 걸었다.반촌 사람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 또한 점차 사라졌다.이제 반촌 사람들은 역사 속에 잊혀진 존재가 됐다.하지만 저자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돈과 권력,학벌,출신지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는 세태는 여전하다고 씁쓸해한다. 그런 만큼 저자는우리 역사를 묵묵히 일궈온 무명씨들의 삶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열심이다.민중의(民衆醫) 조광일·백광현·피재길,백범의 탈옥공작을 벌인 불한당 괴수 김 진사,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유광억,반촌 사람들 교화에 뛰어든 안광수,최고의 판소리꾼 모흥갑,유흥계를 누빈 거문고 명인 이원영,조직폭력배 검계(劍契)를 일망타진한 포도대장 장붕익,검계의 일원이었던 집주름 표철주….이 책에서는 형형색색의 조선 비주류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나온다. 1만 4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성격차이는 오히려 장점”/‘부부갈등전문가’ 김병후박사 분석

    흔히 이혼하는 부부들은 ‘성격 차이’를 원인이라고 말한다. ‘부부 갈등 전문가’로 불리는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가 ‘성격 차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6개월간 200건의 상담을 분석,그 결과를 정리한 책,‘우리 부부,정말 괜찮은 걸까?’를 최근 펴냈다. 그는 “성격 차이란 당연한 일이면서,오히려 연애시절이나 결혼 초기에는 매력으로 느껴졌던 서로간의 다른 점들이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무지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없게 되면서 좁힐 수 없는 문제인 ‘성격 차이’가 된다.”고 분석했다.다시 말해 성격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격 차이를 현명하게 조율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그리고 성격차이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정’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성격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에 성장과정 중 형성된 것으로 바뀌기도 쉽지 않고,바뀐다고 해도 절대로 나와 똑같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 김 박사는 비슷한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룬다면 초기 충돌을 줄일 수 있어 처음에는 서로잘 맞는 것같지만 다른 사람끼리 만났을 때의 ‘상승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부부간 싸움의 원인이 되는 다른 점을 반길 것을 권했다.“유전학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생산한 2세는 생존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인간이건 동물이건 ‘짝짓기’는 나보다 우수한 유전자를 갖춘 2세를 생산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와 유전자를 교환하는 과정인데,비슷한 사람끼리의 결합으로 탄생한 2세는 유전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못해 문제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부부는 다르면 다를수록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생존가능성은 높아집니다.”또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곁들였다.“키스는 상대방의 유전자가 나와 얼마나 보완적인 효과를 갖는지 타액을 통해 알아보는 생물학적 과정이란 어떤 과학자의 주장처럼 내가 상대방에게 이끌리는 것은 이미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생존메커니즘의 명령 때문입니다.” 김 박사는 우리의 이혼율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것에 대해서는 ‘성격 차이’가운데 ‘가치관의 차이’때문이라고 꼬집었다.결혼과 가정,가정에서의 역할 등과 관련된 가치관 문제에서 남성과 여성이 워낙 달라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한국 남성들은 사회에서의 남녀 평등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가정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은 너무 급진적이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박사의 처방은 남성은 남녀평등이 가정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여성은 남성이 처한 이 딜레마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지 않으면 이혼율은 정점을 모른 채 위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남주기자
  • 기고 / 정부는 국정 조정기능 강화해야

    요사이 우리나라가 직면한 당면과제로 북한 핵문제,정치사회 갈등과 경제불황을 들 수 있다.다행히도 북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대화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또 다른 과제인 정치사회 갈등과 경제불황은 지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우리사회의 역량을 결집해서 나아가도 쉽지 않은 냉엄한 국제질서와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재 우리 나라는 발전동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마침 노무현 대통령도 정부가 국가 방향 주도의 힘을 상실했다고 지난 1일 국정토론회에서 언급했다.정부의 자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은 1960∼70년대 및 80년대를 거치면서 정부 주도의 자기중심적 압축성장을 이뤘다.여기서 자기중심적 발전이란 자국 실정에 상관없이 구미 산업화 과정을 그냥 답습하는 근대화론이나,저발전이 악순환한다는 종속이론에서 주장하는 발전모델과는 다른 발전모델로서,이미 19세기 말 독일과 그 뒤 일본이 이 발전전략으로 후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었다.즉 자국에 알맞은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보호무역을 적절히 활용했고 정부가 주도했다.바로 우리나라도 우리에 맞는 전략산업을 키웠고,수출주도의 경제정책으로 세계시장에 공격적으로 편입되면서도 저발전 종속되지 않고 고도성장을 달성했다.그러나 이같은 정부 주도의 자기중심적 발전의 문제점은 개발독재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즉 권위주의적 정부가 국정을 독점적으로 주도했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경제의 진정한 발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발전과 병행한다는 기본원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일방적 정부 주도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새로운 패러다임도 등장했다.정부·시장 및 시민사회가 3각축을 형성하여 국가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수평적 협력틀 속에서 발전을 모색해야 되는 것이다.민주화하고 좀더 개방·투명화한 자기중심적 발전을 ‘신자기중심적 발전’이라 얘기할 수 있다. ‘신자기중심적 발전’의 시대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정을주도하지 않고 조정 기능을 강화하면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대화와 양보,타협을 통해 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국민적 합의와 참여를 이룰 수 있다. 국가 발전 방향의 의제들이 정부나 시장,시민사회에서 나오게 되는데 정부는 조정을 통해 바른 국정 수행에 임할 수 있다.이 조정기능이야말로 정부의 자율권에 해당된다. 정부가 국정 조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즉 정부는 중도 실용주의의 입장에서 조정과 통합을 이뤄야 한다.지금 우리사회에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오늘날 선진 현대국가는 중도노선을 지향한다.한쪽에만 치우칠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선진사회에서 보수는 중도 우를,진보는 중도 좌를 지향한다.중도 안에서의 차이일 뿐이다.즉 중도의 이념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고 포괄적이다. 또 중도노선은 실용주의와 잘 어울린다.대북한 및 대미 정책에 실용주의적 접근이 요구되고 경제·사회 현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인기에 연연하지 말고,대화와 타협을 지향하면서도 법과원칙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국가 발전방향의 한 의제로 얘기들 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목표를 이루고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정 조정기능을 강화하여 민주정부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김 우 준 연세대 교수 동서문제연구원
  • [이경형 칼럼] ‘의원 표결기록표’ 만들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정치권의 전열 정비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회는 외국인고용허가제법을 의원들의 자유투표로 통과시켰다.찬성 148명 중에는 민주당 86,한나라당 55,개혁국민정당 2,이부영 의원 등 무소속 5명이었다.반대(88명)에는 민주당 3,한나라당 76,자민련,민국당 등 9명이었고,기권 9명에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 등이 포함됐다. 이 법안의 찬성쪽은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20만명의 합법화를 뒷받침하고,산업현장의 인력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반면 반대쪽은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 상승,외국인의 집단 노사분규 가능성,내국인 실업증가 우려 이유를 내세웠다. 그동안에도 의안처리는 자유투표 형식으로 처리되어왔지만 이번처럼 소속 정당을 뛰어넘어 표결이 이뤄진 사례는 많지 않다.특히 이 법안의 처리과정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 정당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데다 내년 총선까지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또 정치 구조나 권력 체계 문제가 아닌 민생 법안은 통일된 당론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의원들의 다양성을 표결에 반영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 114조2(자유투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작년 3월 개혁 국회법의 한 조항으로 신설된 것이다.비록 훈시 규정이지만 자유투표의 명문화는 국회를 정치의 중심무대로 삼고,국회의원들이 제왕적 당총재의 통솔과 당론 거수기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자유투표제(Cross Voting·교차투표제)명문화가 의원들의 자율적인 의사 표시 보장만으로 끝나서는 그 의의가 반감된다.개별 의원들의 찬·반 의사표시가 기록으로 축적되어야 하며,유권자들이 해당 의원의 의안별 찬·반 표결 기록 집계표를 들고 투표장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기명 표결은 현행 국회법이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로 가부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법대로 시행하면 된다.문제는 각 의원들이 어떤 의안에 대해 어떤 의사를 밝혔는지가 일목요연하게 리스트로 정리하지 않으면,유권자들이 해당 의원의 입법 태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회사무처는 인터넷 등을 통해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의안 처리 말미에 의원들의 찬반기록을 첨부하고 있으나 이것으로는 각 의원들의 총체적인 입법 태도를 알 수 없다.따라서 의원별·의안별 찬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표결기록 집계표를 만들고 찬·반 쟁점을 요약해 곁들이는 등의 국회의원 입법태도 보고서 등을 회기별로,1년 단위로,그리고 총선 직전엔 임기 종합판을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배포하도록 해야 한다. 의원들의 입법태도기록표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 정치개혁의 주요한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 기록표를 의원들의 정치이념과 정책 노선,소신과 일관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로 삼아 투표할 때,전근대적인 선거풍토 개선에도 일조할 수 있다. 다음 달 정기국회가 열리고 이어 총선정국이 전개되면 현역 의원들은 자신의 활동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의정보고서를 선거구에 뿌리기 시작할 것이다.내년 총선에서 혈연,지연,학연의 연줄 선거와 금권 선거를 막고 공영 선거의 영역을 넓히려면 반드시 이러한 의원별 표결 태도를 종합 기록한 집계표가 선거구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내각제 중심의 유럽 각국 의회와 달리 자유투표제가 정착된 미국 의회는 상·하의원들의 개별 의안들에 대한 찬·반 기록이 정례적으로 의회보에 게재되고 있다.16대 국회 들어 찬·반이 갈라진 입법안을 중심으로 의원별 표결기록리스트를 국회 사무처가 만들고,선거 때 중앙선관위가 이를 배포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본사 이사 k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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