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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재정건전성, 준칙 도입으로 풀자/백웅기 상명대 부총장·금융경제학과 교수

    [시론] 재정건전성, 준칙 도입으로 풀자/백웅기 상명대 부총장·금융경제학과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지만 궁극적 해법은 금융이 아닌 재정에서 찾았다.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 수 없었다. 의회가 대규모 감세와 재정투입을 시작하자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재정이라는 위기극복수단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나라마다 달랐다.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한 국가들은 비교적 빨리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아직도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등이며, 후자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와 일본 등이다. 최근 이탈리아 재정감축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이탈리아 은행들이 모두 스트레스테스트를 통과함에 따라 유럽 재정위기의 심각성은 다소 약화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미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부채는 법정 차입한도인 14조 2940억 달러에 도달해 있다. 만약 8월 2일까지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는 8월 초 만기가 돌아오는 약 300억 달러의 국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공화당과 부채한도 증액을 위한 정치적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재정 난국에 처해 있지만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행이 지난주에 발표한 경제 전망은 정부 전망치와 큰 차이가 없고 내년 전망치도 올해의 상승 기조를 이어간다. 정부와 한은은 우리 경제가 내년까지는 잠재성장률에 가까운 성장을 보이며, 인플레이션도 물가안정목표 상한인 4%에 묶어둘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재정 전망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빠른 위기 극복 덕분에 지난해 재정적자(관리대상수지)는 국내총생산(GDP)의 1.1%에 그쳤다. 당초 목표치는 2.7%였는데 선전했다. 국가채무 목표치도 GDP의 34.7%였는데 33.5%로 개선됐다. 올해 이후의 재정 전망은 지난해의 전망치보다는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우리 경제를 장밋빛으로 보고 있다. 전망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구미(歐美)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미 두번의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외부 여건의 변화에 대단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원화의 변동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앞으로도 경제위기가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를 강타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우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남보다 빠르게 극복한 것은 선제적이고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주요20개국(G20) 국가가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서 2008년 이후 3년간 쏟아부은 재정규모는 GDP의 4.1%였지만, 우리나라는 6.5%다. 재정 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우리나라가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GDP의 100%가 넘는 나랏빚과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지출예산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초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새 제도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복지지출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5%에서 2030년에 50%에 육박할 전망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무상 또는 선심성 복지 프로그램 제시는 극에 달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과 관련된 고등교육재정과 지방재정 지원에 대한 요구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산재한 재정위험으로부터 재정 건전성을 지켜내려면 하루빨리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 복지지출과 같은 특정 의무지출을 증액하려면 다른 항목의 지출을 반드시 줄여야 하며, 재량지출의 증액은 총액으로 묶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준칙에 따라 스스로의 손발을 묶지 않으면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경제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재정 여력을 확보할 길이 없다.
  • 어느 날 갑자기… 지능 저하 4~5세 수준된 딸, 정부 무관심에 11년간 ‘홀로 뒷수발’

    어느 날 갑자기… 지능 저하 4~5세 수준된 딸, 정부 무관심에 11년간 ‘홀로 뒷수발’

    이런 걸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까. 11년 전 가을쯤이었다.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당시 스물셋이던 은주(34·여·가명)씨는 하룻밤 새 네살짜리 아이가 됐다.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했고, 말투도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누가 몸에 손을 갖다 대는 시늉만 해도 비명을 질렀고, 수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대학 치위생과를 졸업한 뒤 치과에서 8개월가량 일하다 “좀 쉬고 싶다.”며 그만 둔 지 며칠 뒤의 일이었다. 집과 학교, 직장밖에 몰랐고, 부모 속 한번 썩이지 않던 그였다. 어머니 김선자(59·가명)씨는 밤마다 피눈물을 흘렸다. 결국 은주씨는 그해 정신과 병동에 한 달간 입원했다. 병원을 전전했지만 딱히 시원스레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의사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내성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만 내놨다. “내 탓이야, 내 탓….”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20여년간 새벽부터 자정까지 가게를 운영하느라 힘들 때나 아플 때 딸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 “먹고사느라 내 새끼 아픈 걸 몰랐다.”면서. 편견도 모녀를 아프게 했다. “지적장애인은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인식 탓에 남에게 쉽게 은주씨를 맡길 수도, 드러내놓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정부 지원에 대한 홍보도 부족해 김씨는 2009년 주민지원센터를 찾아가기 전까지 은주씨가 지적장애 2급 대상자가 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주위의 냉대와 정부의 무관심을 딛고 김씨는 11년 동안 딸의 뒷수발을 해 왔다. 다행히 은주씨는 점차 호전됐다. 아직 약을 먹고 있고, 여전히 지능은 4~5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말 없이 벽을 응시하지도 않는다. 김씨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착하디착한 우리 애한테 이런 일이 닥칠 줄 몰랐다.”면서 “꽃다운 나이에 아기가 된 딸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이 정도라도 나은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은주씨는 이제 사회에 나갈 훈련도 조금씩 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어머니와 함께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봉제기술자(미싱) 양성과정 ‘희망박음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취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직업교육을 해주는 이곳에서 매주 월·수요일마다 옷 수선기술을 비롯해 친환경 장바구니(에코백) 제작, 봉제 등 전문기술까지 배운다. 센터 측은 교육을 수료한 참가자들이 센터 내 재활용품 매장인 ‘동그라미’ 매장과 연계해 옷 수선을 하거나 지역 내 봉제사, 미싱사 등 구인업체를 통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김씨는 “지적장애인도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창업이나 취업이 가능하도록 정부차원에서도 컴퓨터 등 교육과 운동 치료 프로그램이 확대됐으면 한다.”면서 “생계가 어려운 지적장애 가족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모녀는 이곳에서 희망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한다. 아직 손이 서툴러 바늘에 찔리고, 비뚤배뚤 깁기 일쑤지만 몇 년 안에 모녀만의 수선점을 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어머니는 말한다. “언젠가 우리 애가 혼자 남겨질 텐데…. 먹고살 수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어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지금부터 준비시켜야죠.”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유럽 8개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불합격’

    유럽연합(EU) 21개국 90개 은행을 대상으로 벌인 제2차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8개 은행이 핵심 자기자본비율 최소 기준인 5%를 넘지 못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유럽은행감독청(EBA)이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국가별 불합격 은행은 스페인 5개, 그리스 2개, 오스트리아 1개 등이었다. 이들은 오는 9월까지 자구계획을 제출하고 늦어도 내년 4월까진 이행해야 한다. EBA는 8개 은행이 5%를 맞추는 데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를 25억 유로로 추산했다. 이와 관련, 해당국들은 테스트에서 탈락한 은행들이 파산 등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지원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EBA는 16개 은행의 경우 핵심 자기자본비율이 5~6%로 턱걸이 합격했지만 유럽 주요 은행들이 모두 유럽 금융감독당국이 가정한 유럽 재정위기 악화 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간신히 탈락을 면한 이들 16개 은행도 자본 확충 등 재무 건전성 제고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EBA는 권고했다. 이번에 위험 상황을 가정해 평가한 전체 90개 은행들의 핵심 자기자본비율은 7.7%로 나타났다. 일부에선 이번 평가가 지나치게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재정위기 우려를 잠재우기엔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령 지난해 실시했던 테스트에서는 아일랜드 은행들이 모두 합격점을 받았지만 그 뒤 아일랜드가 은행권 부실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도 했다. 디폴트 위기에 처한 그리스에 대한 채권이 많은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 모두 이번에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경제 브리핑]

    여름철 외래 병해충 유입차단 ‘비상’ 올해 상반기 농산물 검역 실시 결과,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수입검역 과정에서 병해충 유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여름철 외래 병해충 유입 차단에도 비상이 걸렸다. 17일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 따르면 수입검역 과정에 병해충 등이 발견돼 폐기, 반송되거나 소독 처분된 건수는 1만 5802건으로 전체(9만 2089건)의 1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 5302건)보다 3% 증가한 수치다. 구제역 예방접종 안하면 500만원 과태료 앞으로 구제역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은 농가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17일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을 수령하고도 스트레스, 유·사산 우려 및 증체율·산유량 저하 등을 이유로 백신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는 현장 동향이 파악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7월 1일부터는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는 소·돼지·염소를 거래하거나 가축시장·도축장에 출하할 때는 반드시 ‘예방접종 확인서’를 휴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 생태계 바꾼 ‘최장 장마’

    50년 만에 찾아온 긴 장마가 할킨 상처가 계속되고 있다. 일조량이 줄고 비가 많아 초여름에 한창 자라야 할 식물과 동물은 생장에 악영향을 받았다. 채소와 과일은 짓물렀고, 맹꽁이 등 양서류는 제대로 번식하지 못했다.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과실 작물과 채소는 집중호우로 인해 출하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랐다. 수박의 경우 이달 1~15일 기준 반입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8% 감소했고, 2009년 같은 기간보다 5% 줄었다. 7월 과일 생산량 전망치는 사과가 작년 대비 5.1%, 평년 대비 6.1% 각각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포도 역시 지난해보다 6.3%, 평년 대비 13.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하량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도 올랐다. 강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물 중 하나인 고랭지 배추는 6월 하순 이후 계속된 집중호우로 출하량이 감소돼 이달 들어 가격이 크게 올랐다. 7월 상순 고랭지 배추의 도매가는 지난달 하순보다 52% 오른 10㎏당 3290원을 기록했다. 김봉환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 지도관은 “비가 자주 오고 햇빛이 부족하면 식물의 뿌리가 물에 잠겨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약해진다.”면서 “특히 배추, 고추 등 노지 작물은 무름병이나 역병, 탄저병 등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장마는 더위와 습도에 민감한 동물의 성장과 번식을 더디게 하고 개체 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성경일 강원대 동물생명시스템학과 교수는 “긴 장마로 습도도 높아져 동물들의 평소 생활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면서 “동물도 습도가 높아 잠자리가 불편해지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영향으로 평소 섭취량이 줄어들어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마철에 주로 출현하는 개구리·맹꽁이 등 양서류는 개체 수가 줄어들 처지다. 박완희 한국양서류보존네트워크 국장은 “이번 장마처럼 비가 지나치게 많이 내릴 경우 개구리 등이 낳는 알이 떠내려가서 개체 수가 줄게 되고, 또 하천변에 있는 이들의 서식지가 쓸려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김진아기자 sam@seoul.co.kr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한국인들의 상가가 밀집돼 있는 신주쿠 신오쿠보에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지만 상업 지구다. 외국인의 주거지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주쿠를 비롯해 도쿄 전역에 비교적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도 아시아에서 제일 큰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상업 시설 위주로 분포돼 있다. 도요타 자동차가 들어서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를 비롯해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등 공장지대에 브라질 이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일본계 브라질인들이어서 일본 사회에 동화된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지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국제결혼으로 인해 농촌 지역에 외국인들이 일본인 남편들과 다수 거주하고 있다. 야마가타현이 외국인들의 이주 정책이 비교적 성공한 지역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야마가타현에는 중국인 2872명을 비롯해 한국인 2032명, 필리핀 682명, 베트남 163명, 브라질 117명, 미국인 155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도자와 무라는 20년 전부터 외국인 여성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펴 효과를 거둔 모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교수를 매주 초빙해 외국인 신부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실을 열어 일본말을 배우게 했다. 외국인 신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우려해 산부인과 의사는 물론 정신과 의사로부터 정기적인 진단도 받도록 배려했다. 외국인 여성이 이혼이나 재산상속, 가족 양육 문제 등과 관련해 법률지식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일본 법률상담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을 어머니로 둔 자녀들이 원활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장과의 간담회’ ‘국제아동의 보육에 대한 의견 교환회’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도자와 무라 사무소의 마에다 고에는 “국제 결혼이 추진되면서 처음에는 외국인 주부들에게 언어, 자녀보육과 교육 문제 등이 발생했다.”면서 “하지만 지역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추진하는 행정력을 펴면서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 이곳에 시집온 이승호(49)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자주 조선적이라고 불러 상처를 받았다.”면서 “하지만 행정기관의 도움으로 주민들과 마음을 열면서 고려촌까지 세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요즈음 해병대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군기 사고에 대하여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해병대원으로 치러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했던 노병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가 해병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공략하던 시기에 조직된 군사 편제이다. 한국 해병대의 창설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와중에 낙동강 교두보에 몰리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 사령부의 주도로 제주도에서 급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초기 기수의 해병 대부분이 4·3 항쟁을 겪고 살아남아 가족과 자신의 사상적 알리바이를 온몸으로 보여야 했던 제주도의 청년들이었던 것은 분단에서 비롯된 국군의 태생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유명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창설되자마자 부산 방어선을 위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던 통영 작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군 내부에서는 독자적으로,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미국 해병대의 작전 편제 안에서 그 특수성을 견제 혹은 격려받으면서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육·해·공 지휘 체계의 외곽에서 비정규적 작전권을 갖고 있던 해병대가 언제나 군사정변에 동원되었고 한국의 5·16 쿠데타에서도 역할은 비슷한 것이었다. 따라서 육군이 주도했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해병대의 애매한 위치에 대하여 고민을 했던 흔적이 여러 가지 자료에 보인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는 해군의 지휘 체계에 들어가면서 예산·진급·작전 모든 면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아픔이었던 일제 군대의 잔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급 병사들에게는 내무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모든 병영 문화의 출발이 내무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는 미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은 젊은 장교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일본 육전대의 전통이 내면화되었다. 베트남에서 겪은 일이지만 미군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한명에게 거의 열 배에 가까운 군수, 병참, 화력 지원의 역량을 투입했다. 아무리 조건이 나쁜 하급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와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민주 군대’의 토대는 결국 경제적 역량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였던 것은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었고, 이른바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아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기수 열외’라는 생소한 용어에 당황한다. 해병대의 기수란 한 달에 한 번씩 자원한 젊은이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모병제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시기에 입대한 젊은이끼리는 서로 ‘동기생’이라고 부른다. 병력의 최소 단위가 되는 소대에서 분대로 나뉘는 편제를 모르면 어째서 기수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대장 아래 분대장인 하사관들이 있고 일개 분대는 스무 명쯤 되며 이는 다시 화기를 중심으로 조장 사수 부사수 소총수로 내려간다. 병장이 부분대장쯤 되고 그 아래로 상등병과 일등병, 이등병이 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기수는 이러한 편제를 맞추어 나가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작전을 나가는 모든 병사는 수통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나가도 절약해서 마시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오후에 텅 비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다른 병사에게 물 한 모금 먹자고 하면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내 피를 달라고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동기생이 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내준다. 당시만 하여도 얼차려를 줄 때에도 상급자는 엄동설한에 병사들을 발가벗겨 구보를 시키면 자신도 발가벗었고 얼음물에 처박으려면 자신도 함께 처박혀서 구령을 붙였다. 기수란 체력이나 요령이 부족한 동료를 낙오시키고 내버리고 왔을 때 모든 동기생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전우애’라고 부른다. ‘기수 열외’란 언젠가부터 극단적인 경쟁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우리네 학원의 청소년 문화가 되어버린 ‘왕따’가 병영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충격을 주는 용어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여 병사 모두가 그를 묵살하거나 엄정하게 주어진 계급 따위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은 내막적으로는 군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하여 하급병사들에게만 엄중하게 묻는 것을 개탄한다. 사실 변죽을 울리면서 한참 동안 해병대의 유래와 특수성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조직 피로’ 증후군이다. 천안함 이래 그리고 연평 포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해병대를 온 사회와 정치권이 그리고 지휘 상층이 얼마나 쪼아댔을까. 만만한 게 뭐라고 하급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미군식 ‘민주 군대’란 병사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지원 능력과 높은 ‘노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군대에 안 가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릴 정도의 강압적 징병제를 책임질 만한 내무반을 창출해 낼 국가적 의무가 있다. 군기를 지키되 장군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전우’라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기 직책과 책임에 관한 것만 예외로 하고 모든 사사로운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소대장은 당번병을 없애고 자기 구두는 자기가 닦아야 하며 하사관 병장은 제 양말을 빨고 상등병은 자기 식기를 설거지하며 일등병 이등병은 근무 이외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광주’를 말하며 당시의 신군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군대’는 정치권력의 사병(私兵)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인이 버젓하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특정한 정치적 집회에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손자는 그의 유명한 저작인 병법에서 전쟁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국가와 백성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과 군대는 국가를 위한 최후의 필요악이라는 말이 된다. ●황석영1943년 만주 출생.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에 이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 1969년 제대한 뒤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1989년 방북 후 독일·미국 등지에서 머물다가 1993년 귀국해 5년여 복역했다. 지난달 신작 소설 ‘낯익은 세상’을 발표했다.
  • “타인과 생명 나누고 희망 얻었죠”

    “타인과 생명 나누고 희망 얻었죠”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이식대기자는 2만여명. 이 가운데 신장이 필요한 만성신부전 환자가 1만여명이나 된다. 그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성신부전은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할 때 노폐물이 몸 속에 축적되는 병이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 평생 혈액투석을 받을 수도 있다. 독소가 몸 안에 쌓이면 ‘요독증’ 등의 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수도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신장 이식밖에 없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평균 4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에는 1~2일마다 한번씩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늘만 있으리란 법은 없다.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선뜻 자신의 신장을 내주는 가슴 따뜻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제가 살아가는 힘을 얻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삶을 놓고 싶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았지만 만성신부전 환자들을 도우면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15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 김미정(47·여)씨는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정모(34·여)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하나 떼어주기 위해서였다.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정씨는 만성신부전 때문에 이틀에 한번씩 투석을 받아야 해 파트타임직을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살았다. 새로운 삶을 살려면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지만 가족들도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그에게 신장을 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이식 서약서를 제출한 김씨와 정씨는 운명처럼 만났다. 정씨는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김씨가 소중한 장기를 떼어주기 위해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수술 시작 전 김씨는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환자를 돕는 일인데”라며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고 눈을 감았다. 이식수술을 마치기까지 6시간이나 걸렸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먼저 수술방을 나온 김씨는 경황이 없는 가운데도 정씨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는 “과거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그때 건강을 회복하면 꼭 그들과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신장 기증자인 김씨의 삶은 정씨 못지 않게 기구했다. 김씨는 1994년 ‘자궁유착증’이라는 병을 얻어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홀로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딸이 ‘척추결핵’에 걸려 자신과 딸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투병생활을 하던 1996년 그는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자 등록을 하고 만성신부전 환자를 위한 후원에 나섰다. 2004년 자신과 딸 모두 건강을 회복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근육병 환자와 치매 환자를 돌보며 생활하던 그는 2008년 돌연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며 딸과 아들을 돌보면서 생긴 스트레스는 마음 깊은 곳을 할퀴어 상처를 냈다. 3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그는 마지막 자살 시도 이후 “내가 죽는 대신에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그는 다시 병을 이겨냈다. 삶에 굴곡이 많았지만 그는 지난 15년간 한화손해보험에서 자산관리사(FP)로 근무하면서 단골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후 장기기증을 홍보했다. 사내에도 장기기증 서약서를 비치하는 등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돕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장기기증 홍보활동을 펼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의 정성에 감동해 부모는 물론 아들과 딸도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했을 정도였다. 그는 “신장기증을 한 뒤에도 봉사를 하며 생활하고 싶다.”면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소정 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팀장은 “최근 장기이식법 개정으로 우리 본부 같은 민간기관은 더 이상 장기이식 대기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면서 “앞으로 규제를 완화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사랑과 나눔의 물결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특별기고]다시 전우를 생각하며

    [특별기고]다시 전우를 생각하며

     요즈음 해병대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군기 사고에 대하여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해병대원으로 치러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했던 노병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가 해병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공략하던 시기에 조직된 군사 편제이다. 한국 해병대의 창설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와중에 낙동강 교두보에 몰리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 사령부의 주도로 제주도에서 급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초기 기수의 해병 대부분이 4·3을 겪고 살아남아 가족과 자신의 사상적 알리바이를 온몸으로 보여야 했던 제주도의 청년들이었던 것은 분단에서 비롯된 국군의 태생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유명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창설되자마자 부산 방어선을 위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던 통영 작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군 내부에서는 독자적으로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미국 해병대의 작전 편제 안에서 그 특수성을 견제 혹은 격려받으면서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육해공 지휘 체계의 외곽에서 비정규적 작전권을 갖고 있던 해병대가 언제나 군사정변에 동원되었고 한국의 5·16 쿠데타에서도 역할은 비슷한 것이었다. 따라서 육군이 주도했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해병대의 애매한 위치에 대하여 고민을 했던 흔적이 여러 가지 자료에 보인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는 해군의 지휘 체계에 들어가면서 예산 진급 작전의 모든 면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아픔이었던 일제 군대의 잔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급 병사들에게는 내무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모든 병영 문화의 출발이 내무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는 미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은 젊은 장교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일본 육전대의 전통이 내면화되었다. 베트남에서 겪은 일이지만 미군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하나에 거의 열 배에 가까운 군수 병참 화력 지원의 역량이 투입되는데 아무리 조건이 나쁜 하급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와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민주 군대’의 토대는 결국 경제적 역량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였던 것은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었고, 이른바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아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기수 열외’라는 생소한 용어에 당황한다. 해병대의 기수란 한 달에 한 번씩 자원한 젊은이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모병제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시기에 입대한 젊은이끼리는 서로 ‘동기생’이라고 부른다. 병력의 최소 단위가 되는 소대에서 분대로 나뉘는 편제를 모르면 어째서 기수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대장 아래 분대장인 하사관들이 있고 일개 분대는 스무 명쯤 되며 이는 다시 화기를 중심으로 조장 사수 부사수 소총수로 내려간다. 병장이 부분대장쯤 되고 그 아래로 상등병과 일등병 이등병이 제 역할을 논다는 얘기다. 기수는 이러한 편제를 맞추어 나가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작전을 나가는 모든 병사는 수통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나가도 절약해서 마시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오후에 텅 비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다른 병사에게 물 한 모금 먹자고 하면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내 피를 달라고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동기생이 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내준다. 당시만 하여도 얼차려를 줄 때에도 상급자는 엄동설한에 병사들을 발가벗겨 구보를 시키면 자신도 발가벗었고 얼음물에 처박으려면 자신도 함께 처박혀서 구령을 붙였다. 기수란 체력이나 요령이 부족한 동료를 낙오시키고 내버리고 왔을 때 모든 동기생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전우애’라고 부른다.   ‘기수 열외’란 언젠가부터 극단적인 경쟁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우리네 학원의 청소년 문화가 되어버린 ‘왕따’가 병영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충격을 주는 용어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여 병사 모두가 그를 묵살하거나 엄정하게 주어진 계급 따위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은 내막적으로는 군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하여 하급병사들에게만 엄중하게 묻는 것을 개탄한다. 사실 변죽을 울리면서 한참 동안 해병대의 유래와 특수성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조직 피로’ 증후군이다. 천안함 이래 그리고 연평 포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해병대를 온 사회와 정치권이 그리고 지휘 상층이 얼마나 쪼아댔을까. 만만한 게 뭐라고 하급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미군식 ‘민주 군대’란 병사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지원 능력과 높은 ‘노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군대에 안 가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릴 정도의 강압적 징병제를 책임질만한 내무반을 창출해낼 국가적 의무가 있다. 군기를 지키되 장군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전우’라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기 직책과 책임에 관한 것만 예외로 하고 모든 사사로운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소대장은 당번병을 없애고 자기 구두는 자기가 닦아야 하며 하사관 병장은 제 양말을 빨고 상등병은 자기 식기를 설거지하며 일등병 이등병은 근무 이외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광주’를 말하며 당시의 신군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군대’는 정치권력의 사병(私兵)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인이 버젓하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특정한 정치적 집회에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손자는 그의 유명한 저작인 병법에서 전쟁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국가와 백성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과 군대는 국가를 위한 최후의 필요악이라는 말이 된다. 소설가 황석영
  • 아일랜드도 ‘정크’ 추락… EU 정상들 15일 긴급회동

    이탈리아발 위기론으로 또다시 출렁이기 시작한 유럽연합(EU)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에 이어 아일랜드마저 국가신용등급이 정크(투자 부적격)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EU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간) 유로권 국가 고위 외교관의 말을 인용, 15일 EU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다른 외신들은 17개국 유로존 국가 정상회의 가능성을 전했다. 이날 EU 27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끝나자마자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은 그만큼 현 상황이 급박함을 방증한다. 주요 의제는 그리스 문제이지만 이탈리아 상황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똥이 이탈리아로 번지면서 EU의 기류는 그리스에 대해 부분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허용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상황이다. 디폴트를 인정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탈리아로까지 문제가 확대될 경우 소요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미리 불을 끄는 게 낫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15일은 제2차 재무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미 재무장관이 성명을 통해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은행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시장에 좀더 확실한 신호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탈리아 위기설을 가중시키고 있는 재정 감축 문제를 둘러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 간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6.09%까지 치솟았다. 앞서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Baa3에서 한단계 낮은 Ba1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전망도 기존의 ‘부정적’을 유지함에 따라 추가 강등 가능성도 남겨 뒀다. 무디스는 “2013년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추가 지원을 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등급 변경 배경을 설명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비름나물 무칠 때는 초고추장 넣고, 설탕 대신 꿀을 조금만 넣으면 감칠맛이 나. 너무 많이 쓰면 굳으니까 적당히 넣어야 해.”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콜센터 상담 직원인 정재은(41) 대리는 하루 업무를 홀로 사는 노인들과의 전화 통화로 시작한다. 결혼 10년 차 주부이지만 요리에는 도통 자신이 없었던 정 대리는 솜씨 좋은 조모(78) 할머니에게 콩나물밥, 된장찌개 등 요리법을 배우고 있다. “자원 봉사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제가 얻는 게 많아요.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어르신들에게 삶의 지혜를 듣다 보면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싹 가십니다.” 전화 상담업무는 ‘감정 노동’이라고 한다. 불만이 많은 고객을 친절히 응대해야 하다 보니 힘들 때가 많은데 독거노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안식도 얻고 보람도 느낀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지난 1월부터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 지역 독거노인 100명에게 일주일에 2번 정도 전화를 걸어 말벗을 해 드리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정 대리는 6명의 노인들과 통화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이 보통 1~2명과 연락하는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2명을 배정 받았지만 육아 휴직을 내거나 퇴사한 동료들이 전화 드리던 노인들까지 맡게 되면서 인원이 늘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살갑게 전화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이 직업인데도 두려웠다고 한다. 노인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 전화가 아니냐며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고, 전화 친구 해주는 대신 돈으로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 2~3개월 정도 꾸준히 전화를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어요. 보통 3~5분 정도 통화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나한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섭섭해하셔서 마음을 터놓고 30분 넘게 통화한 적도 있습니다.”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 말벗 도우미인 콜센터 직원들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매주 주는 참고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 자료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쌀을 판매하는 제도를 이용하는 법, 전기요금 지원 안내,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녹내장·백내장 예방수칙 등 독거노인들이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정보가 담겨 있다. 정 대리는 가끔 통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어르신들은 팔, 다리,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세요. 그럴 때 진료비가 저렴한 동네 의원을 소개해 드리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찾아가기 어렵다고 하실 때가 있어요. 제가 직접 모시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독거노인들의 궁핍한 생활도 걱정스럽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인 독거노인들은 정부 보조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탓에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재활용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종이를 주워봤자 겨우 3000원을 번다고 해요.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정 대리가 연락하는 노인 한 명은 통화할 때마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한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 짐만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젊은 청년이 안 좋게 이야기를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아요.” 정 대리는 “어르신이 1960~70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잘살 게 된 거니 그런 생각 마시고 편히 계시라.”며 달랬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2003년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자체 자원봉사 조직인 ‘다사랑회’를 만들었다. 스스로 기부금을 모아서 지체장애아 보호시설인 맑음터에 정기 후원을 하고, 매년 서울 가양5동 복지관에서 김장을 담근 뒤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에게 직접 김치를 전달해 왔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자원봉사부문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에도 점차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전체 직원 500명 중 100여명이 말벗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전용 시스템을 구축하면 올해 안에 모든 직원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콜센터 직원들은 자원 봉사이지만 오히려 노인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인생 선배로서 현명한 충고를 해주고, 결혼 안 한 직원들에게는 외모보다는 됨됨이가 괜찮은 사람을 사귀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사이로 발전하다 보니 직원들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정 대리는 20~30대 청년들이 독거노인 사랑잇기에 동참해서 이들의 고독과 아픔을 이해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자기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돕다 보면 세대차이도 줄어들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한국인 성인 10%가 밤만 되면 ‘먹보’ 충동…야간식이증후군 시달려

    한국인 성인 10%가 밤만 되면 ‘먹보’ 충동…야간식이증후군 시달려

    습관적으로 야식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여름밤이 괴롭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방해할 뿐 아니라 각종 위장 장애의 원인이기도 한 야식 습관 ‘야간식이증후군’(Night eating syndrome)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야간식이증후군이란 잠자리에 들기 전 또는 잠을 자다 일어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낮에는 식욕이 없다가도 밤만 되면 이것저것 챙겨먹는데, 특히 저녁 식사 후 섭취하는 양이 하루 섭취량의 절반에 이르거나 밤중에 일어나 스낵류 등 고탄수화물 음식을 섭취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며, 불면증 등의 수면장애 증상을 가졌다면 야간식이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성인 10명 중 1명꼴로 이런 야식 습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야간식이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우울증·불안·신체이미지 왜곡 또는 스트레스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티졸’ 호르몬이 다량 분비되면서 반사적으로 스트레스 해소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분비를 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도당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도 몰래 음식을 찾게 되고, 특히 달거나 짭짤한 음식을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밤에는 대사 기능이 떨어져 위산 분비가 줄기 때문에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 소화불량을 유발하거나 위에 자극을 줘 위염·위궤양을 만들기 쉽다. 특히 야식 후 바로 누우면 위와 식도 사이의 괄약근이 열리면서 위산이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하기 쉽다. 여기에다 같은 양의 음식이라도 밤에 먹으면 살찔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 낮에는 교감신경이 작용,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향으로 대사가 이뤄지지만, 밤에는 부교감신경이 작용해 섭취한 열량이 대부분 지방으로 축적된다. 야식을 먹은 다음 날, 얼굴이 붓는 것은 야식과 함께 섭취한 염분이 원인이다. 야식 습관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규칙적인 식사가 필요하다. 특히 아침식사는 절대 거르지 않아야 한다. 아침식사는 뇌를 활성화시켜 인체에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은 가능한 한 가볍게 먹는 게 좋다. 단, 야간식이증후군으로 잠을 깰 정도라면 저녁 식사를 든든히 해 위장을 채우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야식 욕구를 부추기는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운동 등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결책을 갖는 것이 좋다. 만약 밤에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면 저녁 식사 시간을 아예 8시쯤으로 늦추는 것도 요령이다. 그래도 먹고 싶다면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을 최소량만 섭취하도록 한다. 물이나 우유 한 잔, 오이, 당근 등은 포만감을 주면서도 위의 부담이나 칼로리가 낮아 적당한 밤참이 된다. 밤참 과일은 당분이 적은 수박이나 토마토가 좋으며, 따뜻한 호박죽, 깨죽 등을 적당량 먹는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창해 교수
  • 병영이 앓고 있다-선임 해병·현역 대위·前사령관의 호소

    병영이 앓고 있다-선임 해병·현역 대위·前사령관의 호소

    적(敵)을 마주한 병영이 불안하다. 김모 상병 사건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피아구별이 안 되는 군기문란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화약고를 안고 있는 것은 전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후방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열악한 병영시스템과 군대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김 상병 총기 난사’는 피할 수 없다는 ‘육성보고서’가 나왔다. 8일 서울신문이 인터뷰한 김 상병의 20년 선임 해병과 현역 육군대위는 “병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성부터 위관급까지 간부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전직 해병대사령관도 병사들의 근무시스템을 빨리 바꾸라고 호소했다. “총을 쏜 것은 김 상병이지만 진정한 가해자는 해병대 내의 고질적인 병폐다.” 해병대 동기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비역 최모(45)씨는 “김 상병과 변을 당한 사병들 모두 피해자”라면서 “그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도록 몰고간 것은 해병대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1980년대 후반 강화도 해병대 2사단에서 근무했던 최씨는 “사병들이 겪는 심리적·육체적 스트레스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나도 사병 시절 선임들에게 밤새도록 구타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 현재 사병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군대 내의 구조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해병대는 철저히 기수 개념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나이는 상관없다. 그런데 이런 기수 개념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기수 열외”라면서 “5~6년 전부터 생긴 용어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와 같은 해병대 정신이 강조되는 환경 속에서 조금이라도 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씨는 “해병대 내의 열악한 훈련 환경 등을 개선하지 않는 한 문제를 완전히 뿌리뽑지 못할 것”이라며 “워낙 해병대의 훈련이 고되고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악과 깡’을 기르는 것을 해병의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거나 남과 다른 사람은 문제아가 돼 기수 열외를 당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해병은 국방장관의 서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비와 생활환경 등이 열악하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해병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내부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식(63·예비역 중장) 전 해병대사령관도 “전우들에게 총격을 가한 끔찍한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전방부대 근무시스템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사령관은 “60여년의 해병대 역사에서 기수 문화를 중시해 왔는데 없애기는 어렵다.”면서 “나이에 관계없이 기수에 의해 선·후임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병사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휘관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군대 내에서 ‘아군끼리의 전쟁’이 빚어진 참혹한 사고에 대해 곪을 대로 곪아 있는 군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육군 장교인 임모(32) 대위는 “병사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휘관들의 책임 결여도 한 요인”이라며 간부와 병사 간의 괴리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임 대위는 “소대장 등 지휘관은 고민을 들어주고 생활지도기록부 등에 기록을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상담기록만 있으면 지휘관은 책임이 경감된다.”면서 “대부분의 병사들도 소대장 등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 대위는 양자의 책임의식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영준·윤샘이나기자 apple@seoul.co.kr
  • 美 우주여행 어디로…‘우주중독’ 비행사들 새 임무찾아 러시아行

    “우리는 모두 우주여행에 중독돼 있다.” 최근 6개월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다 온 우주비행사 캐디 콜먼은 미국의 우주왕복 프로그램이 30년 만에 막을 내리자 상실감에 휘청였다. 앞으로 미국 우주인들은 러시아의 캡슐형 우주선 소유즈호를 빌려 타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미 항공우주국(나사)은 매년 4~6명가량의 우주인들을 우주정거장으로 보낼 계획이다. 그러려면 러시아 소유즈호에 한 좌석당 5600만 달러(약 597억원)를 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가격이 5년 뒤에는 6300만 달러(약 667억원)까지 뛸 것으로 예상했다. 30년 전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발사로 러시아와의 우주 경쟁에서 승자의 깃발을 꽂았던 미국의 자존심이 구겨지게 된 것이다. WSJ는 7일 우주에서 가장 비싼 구조물(약 1000억 달러)인 우주정거장을 러시아가 장악, 유인 우주왕복선 분야에서 러시아의 독점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았다. 당장 유능한 우주인력들이 민간 우주항공업체나 다른 정부 부처로 빠져나가는 것도 미국의 골칫거리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01년 나사가 고용한 우주비행사는 모두 150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9년에는 92명, 현재는 61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우주인 관련 예산도 2010년 1억 400만 달러에서 2012년에는 8400만 달러로 대폭 깎였다. 사정이 이렇게 보니 나사 직원 전체가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다. 4차례 우주 임무를 마치고 2001년 나사에서 은퇴한 토머스 존스는 “우주비행사 대부분이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면서 “그들이 다시 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5~7년을 기다리고 싶어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산 우주선을 언제 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나사는 새 우주왕복선 개발에 12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밝혔으나 완료 시한이 언제인지,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우주왕복선 시대의 종말로 인해 그동안 ‘우주산업’으로 번성했던 플로리다주 경제도 위기에 직면했다. 파탄설마저 나온다. 당장 케네디우주센터에서 근무하던 지역 주민 8000명이 해고될 판이다. 지난해 휴스턴에서는 존슨우주센터 덕분에 1만 6000여명의 지역민들이 일자리를 얻었으나 최근 몇 개월간 벌써 2000명가량이 해고된 상태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의 뜻은 확고하다. 달에 처음 발을 내디뎠듯, 뉴 프론티어(새 개척지)를 향해 눈을 돌리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번주 초 우주왕복 프로그램이 우주 탐사에 남긴 족적을 기리며 이렇게 독려했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지 말고 영역을 넓혀봅시다. 새로운 지평, 다음 개척지는 어디인가로 생각을 돌려봅시다.” 우주를 향한 미국의 다음 행보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우주로 비상하려는 미국 청년들의 욕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 나사 관리자들은 3500장의 지원서에 파묻혀야 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대사증후군 무료 관리 받으세요

    ‘살과의 전쟁’은 남녀노소를 떠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불균형한 식사와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허리둘레가 급격하게 늘고 혈당과 혈압, 콜레스테롤이 증가하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사증후군이 나타난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성인 4명당 1명꼴로 대사증후군을 갖고 있었지만, 2007년 조사에서는 3명당 1명꼴로 증가했다. 서울시는 이런 대사증후군 확산에 적극 대응하고자 지난해 15개 자치구 보건소에서 시범시행하던 사업을 올해 25개 자치구로 확대한다고 7일 밝혔다. 시는 ‘대사증후군 오락(5) 프로젝트’를 통해 무료 관리를 시도하고 있다. 허릿살을 빼고, 약을 복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등 다섯 가지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티아라 니트 다이어트 공개…간식 먹어도 살이 빠져

    티아라 니트 다이어트 공개…간식 먹어도 살이 빠져

    티아라 니트 다이어트법이 화제다. 간식까지 챙겨 먹어도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법이라는 것. 티아라의 날씬한 몸매 비결 니트 다이어트법은 지난 6일 방송된 SBS 한밤의 TV연예 스타시크릿 코너를 통해 알려졌다. 이날 제작진이 찾아간 곳은 뮤직비디오 ‘롤리폴리’ 촬영 현장. 티아라는 “안 먹으면 스트레스 받아 살이 더 찐다. 우리는 잘 먹는 걸로 유명하다”며 촬영 중간 식사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 치웠다. 또 촬영 틈틈이 간식까지 챙겨먹으며 14시간 이상 계속된 뮤직비디오 촬영에 땀을 흘렸다. 트레이너 장유진 씨는 “티아라는 니트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특별한 운동이나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칼로리 소모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후 20kg을 감량한 보람은 줄넘기와 훌라후프를 추천했다. 보람은 “하루에 3천번 정도 줄넘기를 하고 훌라후프의 경우 하루 2시간씩 했다”며 “다이어트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신곡 ‘롤리폴리’로 컴백한 티아라는 지난 5일 일본 도쿄 시부야 AX홀에서 쇼케이스를 열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에 나섰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4명 일계급 추서… 순직 처리땐 보상금 9700만원

    해병대 총기 사건으로 변을 당한 해병대원들과 현장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어떤 처우를 받게 될까. 일단 해병대는 사상자들에 대한 처리와 관련해 이번 수사가 마무리되면 전공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들의 죽음과 부상이 사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것인지 공무 중 발생한 것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불법행위나 사적인 문제가 확인되지 않으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국방부에 순직을 건의하게 되고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내리면 보훈처는 유족과 가족, 부상자 본인에게 보상을 하게 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이 순직처리될 경우 군인사망보상금 9700만원과 매달 일정금액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앞서 지난 2005년 경기 연천 최전방 GP 총격 사건 당시 현장에 있다가 생존했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장병들과 부상자들도 모두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았다. 일부 병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전역했다. 전역 후 피해자들은 모두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국방부는 사망한 이승훈 하사 등 4명에 대해 일계급 추서했다. 이 하사는 중사로, 이승렬·박치현 상병은 각각 병장으로, 권승혁 일병은 상병이 됐다. 또 더 큰 참사를 막은 권혁 이병의 경우 부상 정도가 심해 군 생활이 어려울 경우 조기 전역시키는 한편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 줄 예정이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공무상 재해 인정은 쉽지 않다. 김민찬 상병이 5일 첫 진술에서 기수 열외 등을 언급해 수사 결과에 따라 상당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2)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2)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지면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생리 장애를 일으킨다. 보통 소는 5∼20도, 돼지는 15∼25도, 닭은 16∼24도의 기온을 좋아한다. 농촌진흥청 조사여서 가축들의 연구 결과만 나와 있지만 동물들도 사람처럼 30도 넘는 날씨는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마철과 같은 높은 습도의 날씨도 동물을 못살게 군다. 사람에게 불쾌지수가 있듯 동물에겐 열량지수가 있다. 열량지수는 기온과 상대습도(%)를 곱해 계산한다. 보통 가축은 1000∼1500 사이가 적당하다. 예를 들어 기온이 30도, 습도가 80%일 경우 열량지수는 2400(30도X80%)이 된다. 열량지수가 2300을 넘어서면 가축이 열사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마에 무더위가 겹치는 이맘때가 동물들로서는 가장 힘든 때다. ●발목 높이 전체 다리 길이의 절반 하지만 삼복더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놈이 있다. 더위의 절대강자 낙타다. 낙타의 몸 곳곳에는 무더위에 의연할 수 있는 비결들이 숨어 있다. 우선 낙타는 발목의 높이가 어느 동물보다도 높다. 다리 길이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낙타 사진을 보여 주고 “무릎이 어디일까요?”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발목을 짚는다. 이렇게 발목의 위치가 높이 있는 것은 사막의 강한 복사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낙타는 60~70도에 이르는 사막 지면보다 10도 정도는 시원한 곳에 몸통을 둘 수 있다. 더위를 피해 ‘하이힐’을 신었다고 볼 수 있다. 낙타는 또 변온동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체온의 변화가 심하다. 한낮 무더위에는 자기 체온을 41도까지 높였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34도까지 낮춘다. 체내 수분이 땀으로 낭비되지 않도록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다. 쉬지 않고 한번에 마실 수 있는 물의 양도 100ℓ에 이른다. 웬만한 승용차 기름 탱크의 두 배 수준이다. 이 정도 물을 한꺼번에 마시면 대부분 동물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급성 물중독 탓이다. 몸에 다량의 물이 일시에 유입되면 나트륨 등 체액의 전해질 농도가 급격히 낮아져 심장부정맥이나 뇌부종 등을 일으킨다. ●날씬한 몸매도 더위 퇴치에 한몫 낙타가 더위에 강한 또 다른 이유는 날씬한 몸매에 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뚱뚱하면 땀을 많이 흘린다. 두꺼운 피하지방 때문에 몸 밖으로 열이 잘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몸은 땀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지만, 사막 동물에게 수분 낭비는 치명적이다. 또 낙타는 몸 전체에 필요한 지방을 등 쪽에 몰아넣고 필요할 때마다 빼 쓰는 재주를 지녔다. 통상 몸 전체에 체지방이 퍼져 있으면 체지방 분해 과정에서 생기는 열이 체온을 높이는데 이걸 막기 위한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될 때 사용하는 마지막 ‘지저분한 필살기’도 있다. 오줌을 제 몸에 싼다. 더울 때 마당에 물을 뿌리면 잠시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울대공원에 가도 어지간해서는 이 필살기를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낙타에게 한국의 삼복 날씨는 서늘한 사막의 밤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관광객도 현지인도 즐거운 ‘공정여행’

    관광객도 현지인도 즐거운 ‘공정여행’

    여행이란 이런저런 경관을 감상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진도 찍는, 즐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할 때마다 숱한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내가 편해지는 만큼 그들이 불편해질 수 있고, 내가 얻는 만큼 그들이 빼앗길 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걸 돌이켜 보자는 것이 바로 공정여행이다. EBS 다큐프라임은 4~5일 오후 9시 50분 ‘우리의 여행이 말하지 않는 것들’ 1·2부에서 공정여행을 조명한다. 제작진은 인터넷 공모를 통해 참여할 세 팀을 만들었다. 대학생 김민영씨는 네팔로, 직장인 오온누리씨는 필리핀과 태국으로, 주부 이순정씨와 딸 은지양은 캄보디아로 떠났다. 네팔은 높은 산들이 즐비한 곳이다. 산을 사랑한다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곳으로 몰려든다. 이들은 온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값비싼 방한복과 등산화로 중무장하지만, 정작 장비를 함께 짊어진 네팔 주민들은 티셔츠에 슬리퍼 바람이다. 그것도 엄청난 짐을 지고 말이다.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가의 장비 대여업체가 생겨나고 짐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를 들어본다. 필리핀 세부도 마찬가지. 휴양지로 유명한 이 곳은 스트레스를 잊고 편히 쉬기 위해 가는 곳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관광객들이 쉬는 곳은 거대한 담벼락으로 차단되어 있다. 담벼락 너머에서는 필리핀 현지인들이 질 낮은 샤워시설에 허름한 수영복을 입고 바다를 즐긴다. 고급 리조트가 만들어낸 바다의 경계인 셈이다. 관광객이 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었는데, 이제 바다를 빼앗긴 어부들은 청소 같은 허드렛일이나 해야 하고, 관광지 특유의 살인적 물가 때문에 먹고살기는 더 빠듯해진다. 관광객들이 뿌린 외화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태국의 코끼리 관광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은 사람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 코끼리가 대견하고 훌륭해 보이지만, 코끼리들은 그 과정에서 살인적인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 코끼리 쇼를 꼭 보지 않아도 코끼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캄보디아 여행을 위한 선택은 패키지 상품이었다. ‘최저가’가 아니라 ‘공정여행’ 패키지다. 최고급 리조트 대신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전통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랐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샤워시설조차 없고 말도 잘 안 통하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집 앞 바나나와 망고를 따먹기도 하면서 함께 지냈다. 돈을 쓰는 사람도 재미있고, 그 돈을 챙기는 사람도 즐거운 만남. 그게 공정여행 패키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송경아·한혜진 “1㎏만 쪄도 촬영하는 분들 단박에 알아채요”

    송경아·한혜진 “1㎏만 쪄도 촬영하는 분들 단박에 알아채요”

    가느다란 팔, 긴 다리, 작은 얼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직업’이 느껴졌다. 한국은 물론 미국 뉴욕 무대에서도 종횡무진하는 톱모델 송경아(왼쪽·31)와 한혜진(28). 분위기는 언뜻 비슷했지만 한 시간여 ‘수다’를 떨어 보니 개성은 사뭇 달랐다. TV 출연으로 대중에게도 얼굴이 제법 알려진 송경아는 모델 하면 떠오르는 단어, 도도함과는 무척 거리가 멀었다. 따뜻했다. 본업인 모델 외에도 미술, 글, MC, 방송 등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한혜진은 ‘시크’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다. 길쭉한 눈매가 차가웠다. 말수도 적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얘기가 나오면 거침없이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이뤄진 두 모델과의 인터뷰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예민하게 진행됐다. →직업으로서의 모델 세계를 압축한다면. 송경아(이하 송) 참 좋은 직업이다.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연예인만큼 사생활이 노출되거나 얽매이진 않는다. 연예인 생활을 반쯤 누리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직업이 바로 모델이다. 한혜진(이하 한) 언니 말에-한혜진은 세 살 위의 송경아를 언니라고 불렀다-전적으로 동의한다. 연예인에 대한 일반인의 동경이 깨지는 순간, 연예인의 인기도 깨지는 것처럼 모델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모델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10년간 톱모델로 장수하는 비결은. 송 런웨이(패션쇼 때 모델들이 걷는 긴 통로) 위의 모델들 얼굴이 무표정해 보이지만 실은 감성적인 면이 많은 게 모델이란 직업이다. 꾸준히 운동해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늘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노력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중시한다. 침울해질 때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기분전환하려 애쓴다. 일을 할 때는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게 하려 한다. 연기를 전공(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해서 화보 찍을 때도 연기하듯 드라마틱하게 찍는 편이다. 한 비결? 그런 건 없다.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 즐기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들다. →두 분은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아직 세계 패션계의 벽은 높다. 해외무대 진출을 노리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송 고등학생 때 프랑스 파리에서 6개월간 산 적이 있다. 당시 동양인은 패션쇼 무대에 거의 나올 수 없는 존재였다. 흑인들에게는 그래도 가끔 기회가 주어졌지만 동양인은 아예 배제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한국 모델들의 신체 조건이 점점 좋아지면서 서양인 모델들과의 경쟁에서도 그리 뒤처지지 않게 됐다. 모델 세계는 연예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과 달라 일이 주어지면 뭐든 혼자 해야한다. 피부 관리, 의상, 오디션 준비 등 전부 알아서 해야 한다. 한 저는 운이 많이 따랐던 경우라 후배들에게 특별히 해줄 말은 없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순간순간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있다. 캐스팅 디렉터(쇼에 맞는 모델을 뽑는 사람)를 만날 때도 그 시간과 공간에 최선을 다한다. 얼마만큼 노력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느냐에 따라 내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5분이 됐든 10분이 됐든 캐스팅 권한을 쥔 사람들 앞에 섰을 때는 내 매력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순간에 충실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후회하는 순간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타고난 몸매를 지녔다고 해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송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정말 힘들다. 모델의 숙명 아니겠는가(웃음). 패션쇼 조명이 워낙 강해 머리카락 손상도 심하다. 발뒤꿈치에서부터 머리카락까지 ‘보여지는 것’은 모두 관리한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살이 덜 찌고 모공 자체가 작고 쫀쫀하다는 거다. 한 몸매 관리, 피부 관리, 헤어(머리카락) 관리에 엄청 많은 돈을 쓴다. 하하. 시간도 많이 빼앗긴다. 일을 안 할 때는 ‘관리’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1㎏만 쪄도 촬영하는 분들이 금방 알아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 엄청 운동한다. →간신히 아문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질문 같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해해 달라. 2009년 톱모델 김다울에 이어 올해도 촉망받던 모델 김유리가 세상을 떠났다. 한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언론에서 동료 모델들이 죽고 나면 우울증과 섭식장애로 연결시키는데 그건 개인 나름의 이유에 따른 결정이다. 왜 그런 식으로 연관짓는지 모르겠다. 송 (무거운 침묵 뒤) 어떤 직업군이든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일부의 문제다. 모델들이 다이어트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사실이지만 죽음으로 연결될 정도로 심하게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분위기를 바꿔 보자. 무대 뒤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고 하던데. 송 살벌하다. 하하. 패션쇼 때는 모델들을 도와주는 헬퍼(Helper)들이 따라붙는데 대개 의상 전공 대학생들이다. 옷을 바꿔 입을 때 헬퍼들이 옷을 잘못 줘서 뒤집어 입거나 지퍼를 열고 나간 적도 있다. 그럴 때는 순발력이 좋아야 한다. 한번은 런웨이에 이미 나갔는데 의상이 제대로 여며지지 않아 옆구리 살이 노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하면서 얼른 가렸다. 한 모델들이 두려워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은 런웨이 위에서 넘어지는 거다. 참고로 저는 넘어진 적은 없다. 하하.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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