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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실상 파악위한 실무접촉일뿐”/미 국무부「북 인사 면담」해명

    ◎거의 사설기관 초청받고 개인자격 방미/현상태론 대북투자할 미국기업 없을것 한·미정상회담에서 제의된 4자회담에 대한 북한측의 공식반응이 없는 가운데 최근 각종 세미나 참석등을 구실로 미국을 찾는 북한인이 부쩍 늘어나면서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개선 모색을 위한 과속 질주가 우려되고 있다.지난주부터 불과 2주사이에 워싱턴을 비롯,샌프란시스코·애틀랜타등에서 4∼5개의 대표단이 동시다발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미국관리들과의 면담에서 북한경제실패를 자인하고 미국측의 경제적 도움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버클리대가 주최한 코리아평화통일 심포지엄에 김경남 사회과학원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김영성 김일성대 사회정치학 연구실장 등 3명의 북한대표가 참석한 것을 비롯,워싱턴에서는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국제군축세미나에 북한의 군축평화연구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이번주에는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 남북한 경제협력 학술대회에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김정우 부위원장 일행이 참석했으며 26일부터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북·미주기독학자회의」에 참석키 위해 이종혁 노동당 아태평화위부위원장 일행이 와있다.이들 역시 워싱턴을 방문,국무부 관리들과 만날 계획으로 있다. 그러나 미국무부측은 한국측의 우려표명에 대해 『북한의 정확한 실상파악을 위해 그들의 면담요청을 받아들여 이뤄지는 「실무접촉」일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면서 북한대표단들이 사설기관의 초대를 받아 개인자격으로 미국에 왔으며 대부분의 메시지가 북한의 어려운 경제를 도와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지워싱턴대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김정우는 국무부관리와의 면담에서 북한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비교적 솔직하게 설명하면서 미국측의 추가경제제재완화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즉 미행정부의 경제제재가 미기업인들의 북한투자를 지연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북한경제침체의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무부관리들은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화한다 해도 현재 북한의 정치·경제상황에서 진출할 미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중국과 베트남에는 제재가 한창일 때도 많은 기업이 「사업성」을 보고 몰래 들어갔던 예를 상기시켰다. 따라서 미관리들은 북한에의 진출이 필요하다면 기업인들이 먼저 제재해제를 요청해올 것이라면서 북한이 기업인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지로 평가될 수 있도록 내부개혁을 통한 자구노력이 우선 필요함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한편 미학계 일각에서는 특히 김정우가 북한의 경제현황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북한경제운영방식의 실패를 자인한 것은 바로 북한내에 김일성의 통치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김정일이 홀로서기 과정에서 과거 소련의 스탈린 격하운동과 같이 김일성에 대한 격하운동을 펼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아무튼 김정우에 의해 공식화된 북한경제운용방식 논란은 그가 자급자족경제체제의 강력한 옹호에도 불구하고 향후 북한사회 변화의 신호탄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워싱턴=나윤도 특파원〉
  • “구소 경협 연방부활로 가선 안돼”(해외사설)

    소련 붕괴후 5년이 지난 지금 옛소련지역에서 러시아를 중심으로 소연방의 재통합 움직임이 활발하다. 러시아,벨로루시,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등 4개국은 지난달 통합강화조약을 체결했다.상품,노동력,자본,서비스 유통을 자유화하고 관세를 폐지하여 단일경제권의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러시아와 벨로루시는 특히 최근 2개국 조약을 체결,공동체 창설을 지향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서로 국가주권을 유지하면서 공동시장화와 통화통합을 우선 진행하고 외교·국방등에서도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과 관련,러시아의 지배와 옛소련의 부활을 경계하는 소리도 적지않다.벨로루시에서는 조약에 반대하는 시위도 있었다. 소연방은 러시아혁명후 내전이 일단락되며 탄생했다.레닌 사망후 스탈린 독재체제가 소연방을 지배했다.스탈린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근대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한 역사의 재현을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어느면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의 통합움직임이 반드시 소련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그전과 지금은 국내외 환경이 여러면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는 소연방을 지탱해온 공산당과 같은 강력한 조직이 지금은 없다.두번째는 우크라이나 같은 대국은 소연방의 해체로 얻은 주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러시아 공산당등은 91년의 소연방해체를 무효화하는 결의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나 옛소연방의 다른 나라들은 이에대해 일제히 항의했다.러시아내에서도 소연방 부활은 경제자원의 유출로 이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전문가가 적지않다. 지금 두드러지고 있는 재통합의 움직임은 역시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한 한정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가 적지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옐친대통령의 선거전략의 측면도 없지않다.그러나 재통합의 큰 흐름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 릴리 전 주한 미대사가 내다본 한반도­중·대만 정세(특별인터뷰)

    ◎북,러·중 지원없인 대남 군사도발 못해/북 군부 상징적 지도자로서 김정일 필요/평양에 등소평 같은 경제개혁 주체 없어/중국의 무력시위 대만독립 절대 불용 의지 □대담=이창순 기자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는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는 경제개혁을 단행할 만한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며 국제사회는 군사적 방법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한다고 말했다.미국기업연구소(AEI)아시아연구 책임자인 그는 미국중앙정보국(CIA)중국담당자와 중국대사도 지냈으며 지난해 1월에는 북한을 1주일간 방문했던 미국의 저명한 아시아 전문가.한반도상황 및 중국의 무력시위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본다. ­중국의 무력시위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유발할 위험성은 없는가. ▲북한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할수 없을 것이다.중국과 러시아가 그동안 여러차례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할 경우 어떤 지원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왔기 때문이다.북한의 독자적인 군사도발은 어렵다.만약 북한이 한반도에서 어떤 군사적 도발을 하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군사보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중 관계 악화 바라 북한은 그러나 대만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마찰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지난 45년간 중·소대립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북한은 강대국과 그 적대적인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를 이용하는데 노련하다.북한은 미국과 중국간에 많은 문제가 있고 그들의 긴장관계가 폭발하기를 바라고 있다.그들은 실제로 지난 93년과 95년 양국간의 긴장상황을 매우 반가워 했다.북한은 그들의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하기때문이다.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않을 것이다.미국과 중국은 비록 대만문제로 대립하고 있지만 북한문제에서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양국은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가 없는 한반도,북한의 경제개혁,남북대화 재개,DMZ의 긴장완화,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적 통일등 공통의 한반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김정일이 이러한 난국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 지도력에 의문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북한의 상황은 심각하지만 김정일의 지도력과 능력은 의문이기 때문이다.북한에는 그러나 경제난 극복을 위한 개혁을 적극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것 같다.내가 중국에 있었던 1973년 등소평이 복권되자 그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농업 및 경제개혁,그리고 군의 개혁을 단행했다.그러나 현재의 북한에서는 그러한 패턴의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어느정도라고 평가하는가. ▲외부세계에서 지금의 북한 권력구조 실상을 알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그러나 김정일의 군부·당·관료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강력한 권력집단인 군부도 적어도 상징적 지도자로서의 김정일을 필요로 하고 있다.북한은 모든 행위가 김정일의 지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김정일이 실제로 어느정도의 권력을 장악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다. ○북 체제 쉽게 붕괴 안돼 ­북한의 붕괴조짐은. ▲북한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가고 있는 징후는 많다.식량부족과 경제난,탈북자 및 망명자의 증가,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중단등….지난해 1월 북한을 1주일동안 방문하기위해 중국에 갔을때 중국으로부터 많은 북한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으며 음식과 식량등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북한에 실제로 가보니 그들은 정말로 가난에 찌든 얼굴이었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김일성,김정일을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정치적 통제는 여전히 강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대규모 군대 및 안보요원,오랜전통의 독재체제등으로 북한체제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다.매우 위험한 조짐이 있는가 하면 강력한 통제체제도 존재하고 있다.이때문에 현시점에서 북한의 붕괴는 예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집단지도 체제의 출현은 가능한가. ○미,남북대화 지원해야 ▲공산주의체제에서는 과도기적으로 집단지도체제가 있었다.소련의 스탈린,중국의 모택동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죽었을 경우 전임자와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후계 지도자가 등장하지 못할 경우 잠정적으로집단지도체제가 나타난다.북한에도 김일성이 죽은후 김정일이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했으나 그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때문에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은 있다.그러나 그 가능성이 그렇게 높다고는 생각지않는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어떤가. ▲북한은 지난 93∼94년에는 미국에 대해 공세적 입장이었다.그러나 북한 상황의 악화와 한국,일본,중국등의 미국지원으로 상황은 역전됐다.미국의 입장이 강화된 것이다.더욱이 중유제공,경제지원등에서 북한의 미국등 외부세계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미국의 북한 정책이 강력해졌다.미국등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제및 경수로건설 지원등은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는 건설적인 정책이다.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켜 국제상황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은 행동보다는 수사학적인 면도 없지않으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미국은 한반도문제에서 중심 역할보다는 보조적 역할에 중점을 두어왔다.그러나 미국은 남북대화 재개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외교노력이 필요하다.하지만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미국과의 직접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협정은 결코 득이 될 수 없다.한국,일본,중국,러시아등도 북한의 평화협정 주장을 나쁜 아이디어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의 차이는. ▲미국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기때문에 정책의 차이는 당연하다.미국과 한국은 대북정책에서 공통의 이해도 있지만 이해가 서로 다른 점도 있다.한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절박한 상황이지만 미국은 북한문제를 세계전략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화제를 대만해협 긴장으로 돌려보자.중국의 무력시위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군사모험 계속할듯 ▲중국의 군사훈련은 미국의 대만정책을 변화시키고 대만의 독립등 정치적 움직임을 제어하기위한 것이다.보다 구체적으로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와 양국간의 교류를 억제하고 미국이 대만의 국제기구 복귀움직임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며 대만의 독립과 국제기구 가입 움직임이 어느정도 선을 넘으면 군사공격도 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전략이다. ­중국의 전략은 성공하고 있는가. ▲중국의 강경론 지도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군사적 방법을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국제사회는 중국의 그러한 전략이 성공하지 못함을 보여주어야한다.중국의 군사력 이용 전략이 성공한다면 그들은 계속 군사적 모험을 할 것이며 그것은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거나 홍콩이나 센카쿠열도등에 대해서도 군사적 모험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중국이 평화적인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국제사회는 중국이 군사력의 사용보다는 경제적 협력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한다.중국은 특히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군사력의 사용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무력시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국은 대만해협에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2개의 항모 선단을 파견했다.미국은 항모선단 파견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공격을 저지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미국의 그러한 메시지는 매우 현명한 예방적 조치로 평가된다.미국의 함대파견은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작용을 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이 직접적으로 군사적 개입을 단행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최선의 정책은 중국과 대만과의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침공의 모험을 하지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대화채널 가동을 ­미국·중국간의 무대뒤 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양국간에는 무대뒤 대화뿐만아니라 어떤 대화도 없는 것 같다.미국과 중국은 공통의 어려움,아시아전략등 폭넓은 양국관계를 논의하기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닉슨·포드·카터·레이건·부시 정권때는 키신저,브레진스키등을 메신저로 중국과의 최고위급 대화가 이루어졌다.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미국의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다음달 북경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그정도로는 장기적인 양국관계를 논의하기에는 불충분하다.미국과 중국은 무대뒤 대화든 공개적인 접촉이든 하루빨리 대화채널을 가동해야하며 특히 최고위급 접촉이 필요하다. ­중국의 무력시위는 아시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중국의 군사훈련은 이미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안보를 뒤흔들어 놓았다.중국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바라는 미국과 경쟁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중국의 군사훈련은 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그러나 동북아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중국은 군사위협으로 아시아의 경제성장 기적과 무역및 대만의 투자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그러나 대만도 필요이상으로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된다.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정치·군사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적인 문제를 중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임스 릴리 약력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68)는 중국에서 태어난 CIA 출신의 중국 및 아시아통.그는 27년간 CIA에서 근무하며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등을 거쳐 부시 전대통령이 북경연락사무소장(73∼75년)으로 있을때 북경주재 CIA 책임자로 일했다.그는 86년 한국대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국무부 동아·태 담당부 차관보로 일했으며 89년부터 91년까지 주중미국대사를 역임했다.예일대를 졸업한 그는 홍콩대등에서 중국고전을 연구했다.부시 부통령 당시 그의 안보담당보좌관도 역임했다.
  • 콘스탄틴 주예프 러 철학연구소연구원/모스크바타임스기고(해외논단)

    ◎“러시아 민주주의 험난하다”/대통령·측근에 권력 집중… 의회·사법부 무력/체첸사태 관련 옐친의 독단은 러 현실 반영 러시아가 소련붕괴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해 오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초보단계에 그치고 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철학연구소의 콘스탄틴 주예프 수석연구원이 최근 모스크바 타임스지에 기고한 「러시아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지적했다.다음은 이 글의 내용이다. 러시아는 지금 비록 정부당국이 일관성없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우선 헌법이 민주주의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다양한 견해,언론의 자유등 민주주의의 기본요건들이 어느정도 충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체첸사태 보도 때 여실히 드러났듯이 실제로 언론의 자유로인해 많은 정보들이 왜곡되거나 임의로 취사선택되고 있다.민주헌법이 있다는 점을 금과옥조로 내세울 수도 없다.브레즈네프나 스탈린시대의 헌법도 여러 가지 면에서 헌법조문만을 놓고 볼 때는 민주적인 헌법이었으나 시민들의 실제생활은 법과 관계없이 많은 반민주적 제약을 받았었다. 러시아의 현재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지금 누구의 손에 가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의심할 여지없이 러시아의 권력은 지금 행정부,나아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손에 집중돼 있다.현재의 두마(러시아하원)는 지난 93년 막을 내린 옛소비에트(최고회의)와 마찬가지로 유명무실한 존재다.심지어 의원들의 봉급도 대통령행정실에서 지급한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 역시 거의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는 일이 없으며 따라서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됐다.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다.대통령 측근의 몇몇 인사들이 중요국사를 모두 주무르기 때문에 입법부나 사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계속되고 있는 체첸사태의 비극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말해준다.순전히 이념적인 동기로 시작됐던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러시아지도자들은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그래서 이번같은 위험천만하고 무의미한 정치군사적 모험을 또다시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 어느 면에서는 아프간전쟁때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체첸전쟁은 비록 한 지방에 국한된 전쟁이지만 아프간전보다도 더 참혹한 내전이 될 것이다.더구나 지금 러시아역사상 가장 위험한 정책을 수행하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바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의 명령에 따르는 안보위원회 위원들이다.이들이 취하는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알려진 그대로다.예를 들어 니즈니고로드지역 전체주민 4백만명가운데 1백만명이 체첸전쟁의 중단을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문서에 서명했다.하지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다.지난번 다게스탄지역에서 일어났던 체첸반군들의 인질사건 때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무력진압행위에서 보듯 옐친 대통령은 군인이건 일반시민이건국민의 생명을 털끝만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이 인질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논평은 어리석음을 넘어 차라리 웃지못할 코미디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초보적인 민주주의국가라 하더라도 그같은 일을 정당하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수천만명의 국민이 이 인질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는데도 사건경위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뿐 아니라 이 사태로 고귀한 생명을 앗긴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옐친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 대해 옛날 수법을 동원해 엉뚱하게 화살을 나라밖으로 돌려 만일 유럽의회가 러시아를 유럽이사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는 체첸의 테러리스트들을 도와주는 격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재정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는 러시아 의회민주주의 탄생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다.당시 문을 열었던 4차례의 두마는 지금 러시아두마의 선조격이다.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전제정치의 폐해에 대해서는 논박하지 않았다.당시 차르(러시아황제)에 대해 쓴 글들을 보면 『황제폐하,당신은 러시아땅의 지배자이십니다』라고 쓰고 있다.스탈린 역시 러시아의 지배자였다.그리고 형식적인 집단지도체제방식으로 권력이 제한되기는 했지만 스탈린 이후의 여러 당서기장들도 마찬가지였다.불행하게도 지금 러시아의 「지배자」인 옐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이 옐친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인 빅토르 일류신,알렉산드르 코르차코프 경호실장을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으로 꼽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올해초 많은 분석가들은 코르차코프 경호실장을 체르노미르딘 총리에 이어 러시아에서 세번째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았다.물론 대통령도 자기가 뽑은 인물과 얼마든지 자주 접촉할 수는 있다.그러나 러시아의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지금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이런 식으로는 안정된 발전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러시아국민 모두가 앞으로 엄청난 위험에 빠져들 우려도 없지 않다.
  • 조강지처 이야기(송정숙 칼럼)

    한때 북한 김정일궁의 내실을 차지하고 그 혈통 이을 아들도 낳아주어 호강스런 생활을 누렸던 성혜임여인과 언니 혜랑여인 자매의 망명화제는 한동안 우리를 흥분시켰다.그중에서도 그들의 육성과 그것이 풍기는 『의외로 부르주아적인 분위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고 20세기의 철학적 거봉 「버트란드 러셀」을 빌려가며,망명한 아들을 신칙하는 어머니로서의 혜랑여인은 인상적이다.러셀을 인용할때 그는 경칭호를 빼놓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을 붙였다.러셀은 「경」칭호를 이어받은 영국 귀족집안의 자손이다.한때 소련의 공산혁명에 호감을 보였지만 초기의 소련을 방문했다가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등에 실망하고는 『그들의 파벌성과 잔인함이 내 피를 꽁꽁 얼렸다』며 볼셰비즘에의 환상을 버린 러셀을,혜랑여인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식을 타이르면서도 세계적 석학이나 문호를 인용하는 「인텔리 취향」을 지닌,그런 지적 선민의식과 그들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들 모자간의대화에서는 『내가 그 사회(남쪽세계)를 좀 알지않니』하는 대목도 나온다.자신이 남쪽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지니고 있는 듯하다.그러나 그들은 열서너살에 남쪽을 떠났다.그나마 해방직후의 혼란과 가난만 팽배했던 혼미한 시기에 부모를 따라 월북한 그들이다.안들 뭘 그리 많이 알겠는가.그런데도 이 자신만만한 지남파행세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아마도 그것은 그가 북쪽 삶에서도 그것을 우월감삼아 지켜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부모는 당대의 전형적인 인텔리 남녀였다.개화기 한국의 대표적인 인텔리여성과 대지주의 호화자재인 동경유학생의 만남으로 그들은 태어났다.그시절 대개의 남성의 경우처럼 그 아버지에게는 어린날 부모가 짝지어준 조강지처가 고향에 있었다. 그 시절의 아들들은 비록 마음에 안드는 아내라도 부모가 정해준 지어미를 버리지는 못했다.그래서 그들은 그 처지를 역으로 활용했다.그런 아내를 고향 부모곁에 두고 아이를 기르며 칭칭시하의 시집살이를 감당하고 봉제사며 대가의 온갖 어려운 살림을 이끌도록짐지워 두었다.그리고 자신은 신여성과 자유연애를 나누며 딴 살림을 차리고 사는 실리를 차지했다.남편들에게는 너무도 편리한 조강지처였다. 그래도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도리를 율법으로 알았던 「고향의 아내」들은 인종으로 그 삶을 지켰다.그런 아내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적실의 자격이었다. 성씨남매의 모친같은 신여성들중에는 그런 개화한 남자들과 만나 개화의 동지 혁명의 동반자로 반려가 된 경우가 많았다.그런 신여성아내는 족보나 호적에 등재되는 본실의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어디까지나 측실,그러니까 첩이었다 자존심 강한 신여성에게 그것은 굴욕이었다.태산같이 완고한 전통과 인습의 벽앞에서 만나는 커다란 좌절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많은 경우 연인들은 남자를 졸라 어딘가 먼곳으로 탈출하고 싶어했다.현해탄에서의 정사도 유혹하고,당시의 겉멋든 많은 젊은이들이 홍역삼아 치르는 이념에의 환상을 좇아 혁명대열에 열정을 퍼붓게도 했다.충남의 한 명찰 앞에서 여관을 하며 산 조강지처를 놔두고 젊은 화가지망생 제자와 파리로 탈출했던 한국화의 거장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성씨남매의 아버지인 작가 성유경씨도 그런 경우에 들겠고 성혜림의 첫남편이었던 이평의 부친 작가 이기영도 그랬다고 할수 있다.「법적 아내」 자리를 뺏을 수는 없고 어딘가 그런 불명예를 문제삼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던 「신여성 작은댁」들.성씨네의 북행이 그런 결과라면 다음 세대의 탈출로 그들은 50년만에 원점에 돌아온 셈이 된다. 『거지도 부자가 될수 있다.일단 손안에 들어온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며 아들에게 「돈」의 교훈을 넣어주려고 필사적인 어머니 성혜랑여인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살아온 남쪽의 보통 어머니들과 너무 흡사하다.인민의 절박한 기아만을 남긴 최후의 공산주의 집단 안에서 만들어진 너무도 「부르주아」적인 가족,성씨일가의 운명적인 종점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 성혜림 망명과 북 정권의 행보(해외사설)

    사망한 스탈린주의자 김일성에 의해 세워지고 그 아들 김정일에 의해 세습된 북한 전제정권을 연구하는 서방학자들은 더욱 곤혹스럽게 됐다. 북한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실상을 제대로 알기가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김정일 전처 성혜임의 최근 망명사건이 있기 전에도 북한바깥의 김일성연구 학자들은 이 후계자가 허울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었다.군대이동,라디오방송,경제정책을 아무리 면밀히 살펴보았자 김정일이 과연 실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판정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북한정권의 수사학은 언제나 허장성세와 호전성으로 가득차 있어 공식발표문을 샅샅이 뜯어보았지만 권력투쟁의 가능성이나 임박한 정책변경의 기미를 느낄 어떤 단서도 없었다. 정확히 말해 처라기 보다는 정부에 더 가까운 성혜임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곤 83년부터 모스크바 고급아파트에 살아왔고 제네바에 있는 2백만달러짜리 주택에 가끔 들렀으며 몇몇 국경일 때에만 평양으로 돌아가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보곤했다는 것 뿐이다.한국 정보기관 안전기획부는 이번주 영화배우출신의 이 여자가 제네바에서 실제 사라져 유럽의 다른 나라로 몸을 숨겼다는 것을 확인해줬다.그간 북한의 홍수피해와 이에따른 기아 문제를 걱정해온 김일성전문가들은 이제 자기 맏아들의 어머니가 딴나라로 도망친 창피스런 사건이 김정일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지는데 문제가 될것인가 안될 것인가를 아주 곰곰히 생각해봐야만 한다. 이미 권력을 장악했을 경우엔 김정일이 이번 사건으로 별난 짓을 벌일 수도 있는 가능성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북한정권이 너무도 비밀스럽고 악의적이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국가지도자 결혼생활의 한 스캔달에 불과한 이 사건을 예의 주시할 수 밖에 없다.북한의 플루토늄추출 원자로를 대체하기 위해 40억달러이상이 걸려있으며 고립주의에서 이 정권을 빼낼 셈으로 미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부랑아국가 명단에서 뺐다. 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한국은 김정일의 장남을 낳아준 여인이 망명한 사실을 지나치게 입에 올려 북한을 비웃기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 “통제 북 정권 점진적 해체 징후”/외국언론 최근 북 사태 진단

    ◎식량난으로 탈출 급증… 몇년 못갈것­미지/엘리트 불만고조… 즉각붕괴는 안될듯­독지/지도층 이탈로 정치불안… 김정일 타격­불지 ○…미국 유수 언론매체들은 북한에 관한 기사를 쓸때 거의 예외없이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 국가」란 말로 북한을 소개한 뒤 뉴스를 전한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는 형식으로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시사해 오다 러시아대사관 망명시도뉴스와 관련,『이 사건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북한이 비록 순식간에 붕괴되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허물어지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고위 귀순사건의 증가 와중에서 일어났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성혜림씨 망명설을 보도하면서 북한의 한국 귀순자가 최근 급증했으며 식량결핍 현상이 확산일로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한 뒤 몇몇 전문가는 북한정권이 몇년안에 붕괴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이어 「아직 주민에게 공포감을 끌어낼 수 있어 북한정권은 당장의 붕괴를 막고 있다」는 한국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했다. ○…북한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망명과 총격사건등 혼란에도 불구,당장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지가 15일 보도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 망명한 3명의 잠비아 주재 북한외교관이 전하는 상황으로 볼때 북한당국은 외교공관 유지를 위한 지원도 불가능한 상황이며 내부 엘리트들간에도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은 특히 김정일의 전동거녀로 알려진 성혜림씨(59)의 망명잠적 사건뿐 아니라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에 무장괴한이 침입,정치망명을 요구하는 등 최근 북한인의 탈출기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북한내 정치·경제적 상황이 매우 혼미스럽고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프랑스언론들은 북한이 최근 성혜림씨등의 서방탈출과 평양 러시아 무역대표부 총기난동 사건등으로 정치적인 불안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리베라시옹지는 무장 요원의 러시아 무역대표부 난입을 보도하는 가운데 성씨와 최근 잠비아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 사실을 지적하면서 북한 지도층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신문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는 「정권의 해체 징후」라며 『이같은 분명한 조짐들이 나타나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르몽드신문은 성혜림씨 등이 네덜란드에 있다는 국내보도를 인용하면서 그러나 네덜란드 사법당국은 현재 그들이 네덜란드에 있지않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르 피가로지는 북한 주민의 탈출사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성씨의 서방 탈출은 김정일에 또 다른 타격이라고 지적하고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성씨는 한국측에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김에 관한 상당한 양의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16일 북한 평양에서 일어난 조명길하사의 망명기도 자살사건에 대해 서울발로 『한국이 자살이라고 발표했다』,『한국정부는 앞으로 대량망명에 대비,준비에 착수』등 관련기사를 짤막하게 보도했다.조하사의 난입후 북한정권의 통제가 흔들리고 있는조짐이 아닌가라는 분석을 내놓았던 일본언론들은 그러나 이번 사건이 29시간만에 자살로 끝나자 사건이 갖는 의미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한국 외무부가 정치망명의 동기와 사건의 진상은 확실치 않지만 『사건은 러시아와 북한의 문제』로서 러시아정부의 자살이라는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마이니치신문은 한국정부가 15일 총리주재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앞으로 1백명단위의 대량 탈출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준비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평양의 「망명총성」­러 대표부 진입서 자살까지

    ◎29시간만에 막내린 망명의 꿈/14일 새벽 「김정일 축제」 허점 노려 결행/「러」 신병인도 조기결정에 “최후의 결심” 북한청년 조명길하사가 미명에 잠든 평양거리의 심장부를 뚫고 높이 2m의 러시아대사관 담장을 넘은 것은 14일 새벽 5시35분.북한의 최대경축일인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생일축제를 불과 이틀앞둔 시간이었고 김정일의 집무실을 바로 지척에 둔 곳에서,그것도 불과 30m 간격으로 경비병이 배치된 삼엄한 경비망을 뚫은 것이다.진입과정에서 그는 소지한 권총1정으로 현장의 북한군경비병과 총격전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3명의 북한군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일단 공관에 무사히 도착한 그는 곧바로 대사관구역내에 위치한 무역대표부의 1층사무실로 뛰어들며 『정치적 망명』임을 외쳤다.지상유일의 스탈린국가의 심장부에서 드디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순간이었다.『쫓기고 있다.정치적 망명을 하려니 도와달라』고 그는 러시아공관원들에게 호소했다. 곧바로 북한경비병 수십명이 그를 뒤쫓아 대사관 주변을 에워싸는 가운데 러시아당국은 사태파악에 들어갔다.평양주재 파디예프러시아대사가 달려오고 곧바로 그와 협상을 시작했다.러시아측은 총기반납을 종용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망명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이를 거부했다.사건발생 1보부터 평양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뉴스원인 이타르­타스통신은 그가 침착한 태도로 러시아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러시아대사관이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다고 타전했다.극도의 신변불안에 떠는 조는 러시아측 대표가 항상 자기곁에 함께 있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모스크바의 러시아당국은 긴급대책논의를 시작했다.체르니예프 러시아외무차관이 인테르팍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힘에 따라 크렘린이 일단 그를 정치적 망명요청자로 대우하는 것 같은 기대감이 퍼져나왔다.이후 모스크바로부터 갖가지 엇갈린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57년 옛소련과 북한사이에 맺어진 범인인도협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조가 북한측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설과 인도적인 고려와 국제관례가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설이 교차됐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러시아측은 당초예상보다 일찍 조의 신병인도를 결정했다.북한측에 이같은 결정이 전달되자 곧바로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 10여명이 대표부안으로 진입했다.러시아 공관원들이 자리를 피한 가운데 조는 10여명의 특수부대원과 단신으로 마주하게 된다.그리고 그의 숨을 멈추게 한 1발의 총성.15일 상오 10시 30분.한반도 전역을 전대미문의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은 발생 29시간만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타스통신은 특수부대가 진입하면서 그가 사살됐다고 보도했으나 몇시간이 지난후 자살로 바꾸어 보도했다.이어 러시아정부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러」 외무부 대변인 일문일답/“범죄자 인도 마땅한 처사”/자수·무장해제 수차례 요구 거절/평양당국­대사관 「작전」 긴밀협력 그리고리 카라신 대변인은 15일 하오 외무부 회견실에서 정례회견을 갖고 조명신하사사건과 관련한 러시아의 입장을 밝혔다. ­침입과정은. 『14일 아침 그가 러시아 대사관 영내,무역대표부를 무장한채 무단침입했다.그는 『나는 네사람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나중에 세사람이 죽고 한사람이 부상당한 것을 알게됐다.그는 자신이 수용소의 초병이라고 했다. ­어떻게 자살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더 조사를 해야한다.그는 북한당국에 자수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그래서 우리는 북한당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특공대의 영내진입을 허락했다.특공대의 작전과정에서 그는 자살했다』 ­협의를 진행하면서 특공대를 불러들인 것인가. 『범인은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무장해제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우리는 북한정부와의 협의하에 특공대를 불러야 했다』 ­왜 정치적인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안된다.그는 범죄자이다.러시아 정부는 그를 정치적망명요청자로 받아들일수 없었다.러시아 대사관측과 북한당국,그리고 러시아외무부는 이번 작전전에 긴밀한 협의를 벌였다』 ­투입특공대의 규모는.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그의 자살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가.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표정/돌발사태 대비 대책반 확대 가동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한국대사관측은 이날 상오 정화태 대리대사 주재로 북한상황전반에 대한 채널을 점검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 특히 대사관측은 이번 문제가 러시아와 북한간의 문제로 한국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판단아래 일단 러시아 외무부와의 다각적인 채널을 점검하고 관련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단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밝히면서도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사태결과에 대해서는 논평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대사관의 다른 한 관계자는 『조하사의 자살소식도 이날 상오에 러시아측으로부터 전달받는등 비교적 빨리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고 전하고 『성혜림씨 사건등 최근 남북한 관련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때보다 러시아와의 협조가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평. 현재 한국대사관측은 남북한이 동시에 수교하고 있으며 대사관이 있는 모스크바의 특수성을 고려,북한의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한 대책반을 이날부터 확대가동.
  • “미의 대북 원조 한국 충고 따라야”(해외사설)

    지난 수개월간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의 경제난은 분명 심각한 수준이다.주민 다수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궁지에 몰린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지경에 이르면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휴전선 일대에서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복잡한 국내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남한이 이에 어떤 과민대응을 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신문 기자가 중국·북한 국경등에서 취재한 내용으로는 북한의 식량사정은 실제로 심각한 것같다.옛날 한국인들이 겪었던 보릿고개의 식량난이 이 스탈린주의 국가를 강타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지난 수개월 북한전역을 휩쓴 식량난은 많은 주민을 기아선상으로 몰아넣을 위험을 안고있다.북한당국은 그간 1개월 이상동안 국제적인 원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지난주 저의가 의심되는 결정을 발표했다.군장성들의 입장을 빌려 서방에 대한 식량원조 요청을 취소한 것이다.이것이 일시적인 원조중단을 뜻하는 것이었을까.조만간외부세계에 식량원조요구를 다시 할 것인가. 이런 의문에 해답이 될 몇가지 사항을 고려해보자.첫째 주민의 복지문제가 북한정권 담당자들의 주요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국민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옛동구권들처럼 북한도 개혁에 나서야한다.대신 그들은 개혁과 담을 쌓고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전철을 밟고있다. 이런 마당에 서방에 식량원조를 청하는 행위는 걸맞지 않다고 판단해 뒤늦게나마 이를 철회한 것이다.식량원조요청을 철회한 두번째 이유로는 이들이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임을 들수있다. 그 목적이란 남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이간시키는 것이다.미국이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를 결행하겠다고 발표한지 6일 뒤 북한은 미국의 도움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북한의 이런 행위는 남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밖에 해석할수 없다.그동안 북한은 미국을 3만7천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최대의 적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뿐만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남한의 입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대북한정책을 수행한다며 추켜세웠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튿날 북한은 외부세계에 대한 식량원조요청 철회를 발표했다.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의례적으로 북한군부의 영향을 거론하며 이 결정이 군에 의해 내려졌다고 밝혔다. 미·일이 이 원조를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빌미로 삼고있다고 판단한 군장성들의 입장 때문이라는게 철회사유였다.군부의 영향력을 공개시인한 것은 김정일의 정권장악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은지 1년 반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 주석직과 당총서기직을 공식승계하지 않고있다. 최근에 공개되는 사진들을 보면 그는 공개석상에 등장하는 횟수가 극히 적을뿐 아니라 모습을 보일 때도 군장성들에 의해 포위되다시피 둘러싸인채이다. 군부가 김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한다는 분석도 있다.그러나 정통한 북한분석가들은 현재 김과 군부가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있다.김은 최근 혁명원로세대인 국방상 최광을 포함한 2명의 항일빨치산 원로장성을 진급시켰다.군의 원로들은 김이 갖지 못한 군사적 경험을 가진 반면 김은 이들이 갖지못한 권력의 정통성이 있다. 아직은 어느 한쪽도 다른 편을 밀어낼만큼 권력을 확고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령이양기의 미묘한 어려움에 처한 북한의 집단지도부는 자기들의 경제운용방식이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한다.아울러 우리는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2백만 달러를 지원키로 한 미국의 결정에 잘못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이것은 순수히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당연한 결정이다. 비록 정권은 부도덕할지언정 그밑의 굶주리는 주민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하지만 이 경우에도 미국은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해야한다.그것은 바로 동맹국인 남한정부의 충고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보드카(시베리아 대탐방:63)

    ◎6백년 역사 자랑… 러시아인의 생활자체/마가단 공장 하루 5백㎖용 2만병 생산/망명 러인이 전수… 고급품 대부분 외산/감기·배아플때 고춧가루·소금 타 마시기도 보드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인 동시에 철학이요 생활 그 자체다.특히 추운 극동·시베리아지방의 겨울나기에는 보드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가두판매점인 키오스크의 진열대도 절반은 보드카로 채워져 있다. 마가단시내 마가단식료품공장.한쪽에서는 소시지 등 식료품을 만들면서 한쪽에서는 보드카를 만든다.상표는 「보드카 루스카야」.말하자면 러시안 보드카로서 서민이 즐기는 값싼 보통보드카다.여러 공장이 같은 상표를 공동사용한다.다만 뚜껑에 마가단식료품공장이라고 산지를 표시해줄 뿐이다.스피릿(알코올)에 물을 타서 여과장치를 통과시켜 만든다.불순물이나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고 독특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다. 이 공장에서는 여과장치에 모래필터와 활성탄필터를 사용한다.이 공장 1층에서 알코올과 물을 섞어 올려보내면 3층의 필터를 지나내려가면서 병에 담긴다. ○96도 알코올에 물 타 57년부터 이 공장에서 일해온 생산사장 라리사 고루보트스카야(여·51)는 『맛을 결정하는 핵심은 스피릿과 물·필터』라면서 『러시아 보드카는 물이 깨끗하기 때문에 외국 보드카보다 맛이 월등하다』고 강조한다. 옐레나 벨리첸코연구원(여·28)은 『알코올은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고 남쪽에서 전량 가져다 쓴다』면서 『밀·보리·호밀·옥수수 등 곡류나 감자에서 96도짜리 알코올을 뽑아내는데 밀에서 뽑는 알코올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레본 다다미얀 영업사장은 『하루 2만8천ℓ 생산용량을 갖추고 있으나 남쪽에서 수송해오는 알코올이 부족해 요즘은 5백㎖들이 2만병정도인 1만ℓ 생산에 그치고 있다』면서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희색이 만면하다. 다다미얀 사장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면서 먹고 살기가 더 힘들어진 사람은 홧술을 더 마시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맞아 경쟁력 있는 사람은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한다.양극화현상이벌어지는 셈이다. 그루지야식당에 갔더니 마침 10여명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보드카도 빠지지 않았다.한국기자로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높은 분들이 참석해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다음날 다른 식당에서 생일파티가 벌어져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흔쾌히 응했다.남녀 구분할 것 없이 신나게 흔들어대며 보드카를 잘도 마셔댔다. ○축배 따라 예절달라 40도가 넘는 무색투명한 술 보드카가 러시아에서 만들어지기는 14세기말부터다.6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보드카의 제조·판매는 국가의 엄격한 규제를 받았고 보드카에 부과하는 세금이 중요한 국고수입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 고급보드카는 대부분 외제다.키오스크 판매가격이 5백㎖정도를 기준으로 스웨덴제 압솔룻이 6만루블(약10만원)로 가장 비싸고 미국제 스미르노프와 화이트 이글이 각각 4만루블,1만8천∼2만3천루블,러시아의 보드카 루스카야 1만4천∼2만8천루블 등이다.1917년 러시아혁명후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에 의해 제조법이 전해져 미국·독일·스웨덴을 비롯한세계 각국에서 보드카를 제조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킨 반면 러시아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스미르노프는 망명한 러시아의 보드카제조업자 이름을 딴 술이다.독일제인 고르바초프와 라스푸틴,핀란드의 핀란디아 등 외제 유명상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러시아의 고급보드카중에는 크렘료프스카야가 있다.크렘린에 있는 힘깨나 쓰는 사람만 마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세계적으로 9대 1정도로 외국제가 많고 러시아국내에서도 6대4정도로 외제 보드카 점유율이 높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보드카를 마시는 일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보드카로 건배를 하지 않으면 외교협상마저 풀리는 법이 없다.취할 때까지 무섭게 마시는 경우가 많다.맨정신에서는 서먹서먹하던 관계도 술이 들어가면 털어놓고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보드카를 권하는데 사양하면 관계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1인평균 14ℓ 소비 보드카 건배에도 예절이 있다.생일집에서는 첫건배가 생일을 맞은 사람을 위해서고,둘째건배는 그 부모를 위해서다.결혼식에서도 첫잔은 신랑신부,둘째잔은 그 부모를 위해 건배한다.하객중 한 사람이 『너무 쓰다.달콤하게 해라』고 외치면 일제히 『쓰다』고 합창을 하게 되고 신랑신부는 긴 키스를 해야 합창이 멈춰진다.키스할 동안 신부엄마까지 다 함께 큰 소리로 숫자를 센다.길수록 박수소리가 커진다.친구끼리 하는 첫 건배구호는 「부젬 즈도로비」(우리의 건강을 위하여)다.한참 건배를 하다가 더 할 게 없으면 그냥 「부즈ㅣ」라고 한다.우리의 「위하여」 식이다.초상집에서 첫 건배는 망자를 위한 것이지만 절대로 잔을 부딪쳐서는 안된다. 스탈린 철권통치시절에는 어린이 생일잔치 때도 첫잔은 으레 「스탈린을 위하여」「성공적인 과업완수를 위하여」 등이었으니 세월이 많이 변했다. 러시아사람은 감기에 걸리면 보드카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신다.아예 페르초프카(고추술)란 약한 술도 있다.배가 아프면 소금과 함께 보드카를 마시기도 한다. 러시아인은 술을 즐기기로 정평이 나 있다.회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회교는 술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1인당 보드카소비량은 84년 6ℓ,87년 10.7회ℓ,92년 14ℓ로 꾸준히 늘어왔다.거리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거나 얼어죽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흉악범죄의 85%는 알코올이 원인이라고 한다.남성 평균수명이 87년 65세에서 94년 58세로 줄어든 것도 술소비 증가와 무관치 않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서기장이 취임하자마자 엄격한 절주법을 실시했으나 술을 사기 위한 행렬이 길어지고 암거래만 늘어나는 등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구소련 붕괴와 동시에 흐지부지돼버렸다. 큰 인형속에 조그만 인형이 여러 개 들어 있는 마트료시카란 목각인형은 러시아 민족혼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실은 일본에서 19세기말에 건너와 러시아인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뒤부터 유명해진 것이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보드카시장은 외제가 장악하고,밖에서 들어온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민예품으로 정착된 것을 보면 세상은 돌고 도는가 보다.
  • “크렘린 다음 주인은 대머리”라고?(박갑천 칼럼)

    『크렘린의 다음 주인은 대머리』.지금 러시아에 번져나고있는 우스개라 한다.역대의 크렘린주인이 한사람 걸러 대머리였기에 나오는 말이다. 우선 소비에트연방을 건설한 레닌이 대머리였다.그를 이은 스탈린이 다보록머리였고 그다음의 흐루시초프는 대머리였다.다시 브레즈네프의 다보록머리에 이어 안드로포프 대머리,다보록머리의 체르넨코를 대머리 고르바초프가 잇고 그를 이은 옐친은 새하얀 다보록머리다.그런데 다음의 강력한 대통령후보 두사람(주가노프와 체르노미르딘)이 모두 대머리니 어느 쪽이 되든 대머리­다보록머리 전통은 이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곧잘 찾아낸다.그러면서 망상스런 의미부여를 하며 즐긴다.미국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한때 나돌았던 입방아도 그것이다.그건 링컨대통령으로 거슬러오른다.그가 암살된건 재선된 다음해인 1865년이었다.한데 처음 당선된 해는 1860년.그해로부터 쳐서 20년마다 당선된 사람은 재임중에 죽어온다는 내용이다. 정말이다.1880년 당선된 가필드는 이듬해 20대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넉달만에 암살된다.25대 매킨리는 1900년 재선됐으나 다음해 무정부주의자의 저격으로 숨진다.1920년 당선된 하딩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중에 급사하고 1940년에 3선된 루스벨트는 44년 4선된 다음 종전을 앞두고 병사한다.60년당선자 케네디도 암살된다. 그「법칙」대로라면 80년,70줄노령으로 당선된 레이건대통령도 이승사람이 아니어야한다.하지만 재선임기 마치고 퇴임하여 며칠전엔 85회생신을 맞고있다. 역시 호사가들의 언거번거한 주먹구구놀이엔 구멍이 뚫린다.그러므로 크렘린의 다음 주인으로도 남몰래 근사모아온 털북숭이가 들어설지 누가 알랴. 땅이름에 부여하는 예언성·신비성도 사람들의 그런 호기심과 맥이 통한다.가령 평양서쪽 30리에 있다는 부산현의 신비를 보자.그 왼쪽언덕에 석장군상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거기서 흐른 피가 부산현에서 멎었다.임란때 평양까지 온 왜군이 부산현을 못넘었으니 전해내려오는 비참­『왜놈들이 부산으로부터 쳐들어와 부산에서 멈춘다』가 그럴싸해진다(「국포쇄록」).남녘부산과 북녘부산을 꿰어맞춘 견강부회 전설이다.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에 상식과 논리를 뛰넘는 일들이 세상엔 많다.하지만 관심은 가져볼망정 별쭝나게 신비성에 빠져들 일은 아니다.생각하자면 이승을 영위하는 섭리의 뜻이 하나같이 신비 그것 아닌가.
  • 마가단의 교육현실(시베리아 대탐방:62)

    ◎“배고픈 지식층 싫다”… 대학인기 시들/중학 11학년제… 9학년부터 취업·진학 선택/시장경제 전환뒤 교단이탈 교사 줄이어/유치원 국고보조금 줄어 학부모 부담 가중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학제는 중학교가 11학년제다.우리의 초·중·고교를 합쳐놓은 셈이다.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11학년까지 마친 뒤 5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하든지,아니면 9학년까지만 다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직업학교에 간다.만7살까지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마가단 제2중학교 역사실.정규대학 진학을 앞둔 졸업반인 11학년 1반학생 18명이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장래 희망직업을 물었다.변호사나 판·검사등 법률가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원 4명,사업 3명,경찰1명,통역1명이다.과학자나 우주인 군인 엔지니어 노동자 등 예전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수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법률가·은행원 가장 인기 9학년2반 교실.학생 23명에게 학교를 계속 다닐지 여부를 물었다.11명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 9학년까지만 다닌다는 대답이다.일부는 직업학교에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남학생 유라 아브라모프는 『공부도 잘못하지만 비싼 돈내고 대학에 다녀봤자 별볼일 없기 때문에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학급 담임 아냐 스처니코바(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학자나 교사 등 지식층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아져서 학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 나가 장사하거나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장사를 하거나 처우가 좋은 은행원이 되려고 하지 애써 열심히 공부해 배고픈 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루드밀라 베르진스카야 교장(여)은 『학부모들도 예전에 무료였던 대학학비가 이제는 유료로 비싸진 데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 터여서 공부를 시켜야 할지 시장에 내보내 장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설명한다.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덩달아 변화를 겪고 있는 학교교육 현장의 고민이다.마가단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학년별 4학급씩 44개반 학생 1천명이 다닌다.수업은 주5일.1학년 24시간에서부터 11학년 32시간까지다. ○교과서 공급 제대로 안돼 교사는 80명으로 대부분 여자다.작년에만 6명이 그만 뒀다.교사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초임이 25만루블(약4만원),10여년 경력자가 60만∼70만루블,20년이상이 1백만루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옐친 대통령이 지난 8월1일부터 교사월급 인상을 지시했으나 한달이상 오르기는 커녕 제때 지급마저 안돼 지난 9월26일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쟁취한 월급이 그 정도다.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이직자가 속출한다.사범대학 졸업생들마저 학교로 오지 않고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나이들어 오갈데 없어 연금받기를 기다리거나,아니면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들만이 교단을 지키는 형편이다.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져간다.1주일에 18시간 수업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20∼27시간이 보통이다.게다가 영어·독어 등 외국어 시간이 늘어나고 컴퓨터 등 새로운 과목이 많아서 인근 연구소나 도서관 등에서 특별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어렵사리 모셔오면 실력있는 특별강사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기존교사들이 일하기란 더욱 어렵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 교과서도 많이 개정되고 학생들도 잡지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역사 교과서는 트로츠키나 부하린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과 벌였던 권력투쟁 등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문학교과서도 예전에는 공산주의 작가의 작품위주로 실었으나 이제는 사상적인 작품분석은 사라지고 솔제니친 같이 예전에 공산주의에 맞지않아 발간되지 않고 잊혀졌던 작품들도 교과서에 나오고 시중에서 출간된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 5∼6년사이에 한꺼번에 교과서가 너무 여러가지 나와 어떤 책을 택해야 할지 교사들도 곤혹스럽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는교과서 공급마저 제때 안돼 교사들이 모스크바로 출장갈 때 한권씩 사와 복사해서 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생 52명에 직원 31명 25년 경력의 역사교사 마리아 스파크는 『러시아 역사의 좋고 나쁜 점이 모두 교과서나 시중서적에 다양하게 나오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책이나 잡지,신문 등을 읽고 재량껏 가르친다』고 말한다. 1학년의 경우 유치원에서 간단한 읽기 쓰기는 배워오는데 요즘에는 학비 때문에 유치원을 안다닌 학생들이 늘어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인근에 위치한 36년 역사의 마가단 제2유치원을 찾았다.만2세부터 7세까지 나이에 따라 4개학급으로 나뉘어 52명이 다닌다.아침 7시30분쯤 부모들이 출근하면서 데리고 와 저녁7시30분쯤 퇴근길에 찾아간다.러시아어 읽고 쓰기,산수·미술·체육·음악 등을 가르치고 하루 세끼를 제공한다.교실외에도 장난감실·체육실·마사지실·치료실·음악실 등을 갖추고 있다.취침실도 마련돼 있어 점심식사후에는 2시간 정도씩 재운다. 교사 11명,보조교사 6명과 요리사·마사지사·세탁부·운전기사 등을 모두 합하면 직원수는 31명이다.지난 9월부터 54% 인상된 월급이 30만∼42만루블(6만원 내외)이다.나탈리야 젤렌스카야 원장은 『봉급이 적어도 천직으로 알고 일한다』고 말한다. 학비는 하루 4천1백루블씩으로 월 평균 8만∼9만루블(1만5천원)씩이다.실제비용은 한아이당 한달에 50만루블이 소요돼 80%를 국가에서 보조받아야 하지만 국고보조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지만 여의치 않다.올들어 식비가 10% 올랐다.유치원 학비부담이 몇년전까지만 해도 월평균급여의 2%였지만 요즘은 10%로 높아졌다.앞으로 학비는 더욱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유치원생 1.7명당 직원 1명씩을 두고 부족할 것없는 시설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절의 유산이다.교육분야에서도 일정부분 시장원리에 따른 수익자 부담 원칙을 수용해야 하고 가치관마저 변화하는 현실은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 단동시 영화산기슭 항미원조기념관(압록강 2천리:23)

    ◎한국전 유물 1천여점 10곳에 전시/부지 18만㎡에 연건평 1만2천㎡… 58년 건립/김일선·모택동 친필서한·명령서등도 전시/영웅실엔 전사한 모택동 맏아들 석고상도 중국과 북한이 손을 잡고 치른 한국전쟁을 통해 오늘의 단동시인 당시 안동은 영웅도시가 되었다.그로 인해 1958년 9월 중앙문화부의 비준을 거쳐 안동에 이른바 항미원조기념관이 세워졌다.이 기념관이 오늘의 모습으로 확장된 것은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 93년의 일이다.기념관의 확장은 19 83년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에 단동(안동)에 들른 중앙군사위 부비서장 홍학지의 주선으로 실현되었다. ○등소평 친필 든 탑 세워 항미원조기념관은 단동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화산기슭에 있다.글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원조한 전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의 현판은 당시 중국인민항미원조총회 곽말약(곽말약)이 썼다고 한다.18만㎡나 되는 부지에 1만2천㎡에 이르는 건물을 지었다.그리고 지난 1953년에는 등소평동지의 친필이 든 높이 53m의 탑을 세웠다.탑높이 53m는 1953년의 정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에는 10개의 전시실을 두어 한국전쟁에 관한 1천1백8건의 문물이 전시되었다.이 가운데 주목을 끈 자료는 김일성이 모택동주석에게 보낸 친필서한이다..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중국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 김일성의 친필서한은 여러 자료 가운데 백미인지도 모른다.김일성 서한 옆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조직을 채근한 모택동의 친필 명령서가 나란히 진열되었다. 그러니까 대륙의 거인이던 모택동의 휘필 한점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합작한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그 명령에 따라 1백만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화속으로 뛰어든 것이다.장백현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조선족 서군(65)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당시 중국지원군 참전상황이 잘 드러난다.19 50년 당시 장백현 공청단위원회 선전부장이던 그는 한달 훈련을 받고 중국지원군 고사포부대 제1사 제1탄소속 부중대장으로 참전했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은 10월19일로 기억하지비.그날밤에 안동을 떠나 장전하구로 와서 이내 압록강철교를 건넜수다.극비의 행동이라 중국말도 못하게 했고 중국을 떠날 때 글이 있는 물건은 못 지니게 했구마.삭주를 거쳐 평안남도 북진에 도착한 것이 10월28일인가,그렇지비.그날밤 거기서 5리쯤 떨어진 영봉에서 우리 지원군과 미군이 첫접전을 붙지 않았겠슴둥.그게 운산전투였지지비』 그 운산전투에서 미군은 3일간 포위되었다.11월1일 미군이 포위망을 뚫었으나 지원군은 미군 2천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그 무렵에 지원군을 「38군」이라고 불렀는데 모택동이 「만세 38군」이라는 친필까지 내려 전공을 치하했다.그러나 지원군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특히 서군선생이 소속된 고사포부대는 박살이 났다.장비가 일본군이 쓰던 것이라 포탄이 포신에서 발사되어도 12초가 지나야 터졌다.그런 상황이어서 미군의 포격과 공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서군선생이 소속한 고사포부대는 12월25일 압록강을 다시 건너 요령성 금주시로 철수했다.거기서 소련제37.85포로 재무장하고 이듬해 3월18일 집안을 거쳐 만포로 건너갔다는 것이다.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비해 모든 장비가 열세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단동의 항미원조기념관에서도 확인되었다.기념관내 공군진열실에서 본 쌍방의 공군장비에서는 너무 엄청난 차이가 났다.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체 전투기가 2백대도 안되었지만,연합군비행기는 1천2백대였다는 것이다. ○연합군 비해 장비 열세 1951년 3월15일 지원군 공군사령부가 안동에 창설되었다.사령원은 유진이었는데,더러 미그15기가 F84 미군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공중전 전과는 미미한 것이어서 조선인민군과 함께 대공포화에 중점을 두었다.요령성 관전현 석호구향 보산촌에 사는 김창권(66)씨는 전쟁 때 고사기관총소대에 복무했다.방호산이 사령으로 있던 조선인민군 제5군단 12사 1연대 1중대 고사기관총소대 사수이던 그는 당시 활동상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고사기관총소대는 대우가 달랐디요.일반전투원은 하루 배식량이 8백g이었는데 우리는 1천g이었단 말입네다.12.7㎜ 소련제 고사기관총으로 무장했는데,재수가 좋으면 적기를 명중시켰디요.함경남도 함주군에 주둔할 때니끼리 1951년 1월18일 오전쯤 됐을 겁네다.미군기 한대가 저공으로 공격해와서리 갈겼디요.그거이 명중되어 처음 한대를 잡고서리 뒤에 두대를 더 잡았디 뭡니까.그래서리 전사영예훈장 2급을 받았댔습네다』 그에게는 일생동안 무료치료에 자식의 대학진학특전 등이 돌아왔다.그러나 중국으로 오는 바람에 한때 무효가 되었으나,지난 1987년 전공을 다시 인정받아 지금은 매달 3백원씩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는 전쟁을 회고하기를 떴다하면 미군 비행기고,아군기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그렇듯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북한은 물론 중국쪽 국경지대에도 낙하산부대들이 투하되었다. 1952년 11월15일 백두산일대에 낙하산병이 투하되자 장백·임강·무송현이 발칵 뒤집혔다.경찰과 민병대가 동원되어 5주야를 산을 수색했다.이들에 의해 1명이 사살되고 15명을 포로로 잡았다.「장백현지」를 보면 이보다 앞서 1951년 6월29일 낙하산 침투병을 잡는 데 공헌한 장백현 12도구 사람 채후남(1888∼1974년)이야기가 인물록에 나온다.채후남은 마을에 살다 행방불명된 김형길이라는 청년이 낙하산으로 떨어져 이미 이사한 어머니를 찾아 숨어든 것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관광·참배객 줄이어 항미원조기념관 맨 위층에 마련한 전쟁묘사공간 「청천강전역」은 스케일이 엄청 컸다.그림과 실물조각,조명과 음향이 한데 어울린 이 공간은 높이 17m,너비 1백32m나 되었다.마치 전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그 공간을 넋잃은 듯 바라보는 노인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다.아니나다를까,전쟁에 참가했다는 노인이었다.자신을 평안북도 창성 태생으로 지금은 단동시에 사는 조선족 최정근(69)이라고 소개했다. 『은산전투를 마치고 청천강으로 나갔다.나는 포병이라 부근부대를 뒤따라 조을리에 이르니 전투가 끝났다고 그라데…,시체가 즐비해서 밤이면 얼어서 뻣뻣한 미군시체를 바람막이로 쌓아놓고 잠을 잤디 않았갔수.죽은 미군 신발을 벗겨 신는 것은 약과고 속옷까지 벗겨 입었으니 원….손을 옷속에 넣으면 이가 한줌씩 잡혔으니 별도리가 없었디』 전쟁은 가혹한 것이었다.항미원조기념관 영웅모범열사실에는 모택동의 맏아들 모안영의 석고상이 전시되었다.지원군사령부 근무중 미공군 폭격에 사망한 그의 유해는 북한에 묻혀 있다.어떻든 전쟁은 비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항미원조기념관은 전쟁예찬이 아닌 전쟁억제에 더 큰 비중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 무진장한 광물 마가단주(시베리아 대탐방:61)

    ◎매장량 1백t 넘는 금광 곳곳에/다이아몬드·백금 빼고는 모든 광물 존재/교통·기후나빠 금·은·동 등 고가품만 캐내/32년 죄수동원 금광 개발… 연80t까지 생산 극동 시베리아의 우상귀끝에 위치한 마가단주는 자원의 보고다.블라디미르 바닌 마가단주 자원담당 부지사는 『마가단주에는 다이아몬드와 백금만 빼고는 없는 광물이 없다』고 말문을 열면서 마가단주가 사상 최초로 95년 외국회사와 금생산 합작기업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마가단 동북쪽 1천㎞ 지점에 위치한 매장량 1백t인 쿠바카지역의 금광 개발을 위해 미국회사와 합작해 총 2억달러를 투자,96년말부터 연 9t씩 생산할 예정이다.마가단 동북쪽 4백㎞지점의 줄리에타지역에도 영국·캐나다사와 합작으로 모두 5천만달러를 투자,97년말부터 연간 3.5t씩 금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외국과 합작할 대상도 두곳이 남아 있다고 바닌부지사는 상세히 설명했다.1백t의 금이 매장돼 있는 나타오카지역에 2억5천만달러를 합작투자하면 연간 8∼10t을 생산할 수 있고,은이 4만t이상 매장된 두카트지역에는 총 8천만달러만 투자하면 연간 1천t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기업과 첫 합작개발 바닌부지사는 『예전에는 연방당국이 일방적으로 싸게 책정한 가격으로 전량 매입했지만 최근 대통령령이 개정되어 이제는 런던금속시장 가격으로 사가고 외국합작기업에는 대금의 50%를 달러로 지불한다』면서 『법적으로 잘 돼있어서 합작기업이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은근히 투자를 권했다.얼마전 만난 LG 관계자가 은개발기술을 안다고 하길래 투자를 권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가단주에는 광물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철도가 전혀없고 북쪽의 교통과 기후가 나빠서 금·은·구리·건축자재 등 고가품만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금광석이라도 1t당 금함유량이 15g이상 되지 않으면 개발하지 않는다. 금생산은 70년대 중반 최고 80t까지 기록하며 러시아 최고를 자랑했지만 그후 사금 고갈로 점차 줄어들어 94년에는 사하공화국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금 28t,은 70t 생산에 그쳤다.세계적으로 금생산중 광석과 사금비중이 9대1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거꾸로다.그러나 앞으로 사금 비중은 점차 줄고 금광석을 캐내는 비용은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금광을 직접 가보고 싶었으나 너무 멀고 교통편이 나빠 뜻을 이루지 못했다.최소한 수백㎞이상 떨어져 있고 교통도 좋지않아 육로로는 가기 어렵고 비행기로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1주일에 1∼2편 정도만 운항하기 때문에 한번 가면 4∼7일을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사금채취는 하천이 결빙되기 전인 10월중순부터 이미 작업을 중지했단다.짧은 취재일정을 효율적으로 쪼개써야 했던 취재팀은 고민끝에 결국 금광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청사 옆에는 마가단 최대 금광회사인 북동채금합동총회사가 있었다.금생산이 마가단의 70%,러시아전체의 20%를 차지한다.블라디미르 쿨핀 부사장은 『유공에서 각종 기름도 구입하고 삼성에서 생필품도 6백만달러어치 구입했다』고 한국기업과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계가 노후해 많이 교체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기후여건이 안좋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도 1.5배이상 줘야 하고,연방정부의 금매입가격은 좋아졌지만 기름·전기·물값 등이 비싸져 이익은 많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광석보다 금이 더 많아 1928년 마가단에서 금이 발견돼 32년부터 캐내기 시작할 당시에는 죄수들의 강제노동에 의존했다.지식인 등 트로츠키주의자들 위주로 1백여명의 정치범및 일반죄수들이 32년 2월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편으로 이곳에 도착,콜리마지역으로 간 이래 죄수수는 이듬해 2만7천여명 등으로 급속히 늘어났고 세보스틀락 등 곳곳에 수용소가 늘어만 갔다.죄수수에 비례해 금생산도 늘어 32년 5백㎏에 불과했던 데서 40년대 초반 몇년간은 80t으로 절정을 이뤘다. 지하 수m 깊이의 하천바닥에 퇴적돼 있는 사금층을 채굴하려면 영구동토인 지표면을 파내야 한다.요즘이야 준설기와 불도저 등 중장비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화약의 힘만 빌릴 뿐 인력에 의존해야 했으니 당시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계 교포 1백명 거주 53년 3월5일 스탈린이 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자 정치범들이 대거 석방되고 수용소도 잇따라 없어졌다.53년 12월 마가단주가 설치됐다. 시외곽의 마가단주 박물관 3층에는 수용소실이 있다.개혁·개방정책을 계기로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91년 설치돼 5년간 시한부로 운영된다.이 전시실에는 당시 사진과 기록,강제노동장비 등이 보관돼 있다. 전시실 담당인 나제스타 훼도노바(여·51)는 『죄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아깝게 강제노동시켰던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근 지질박물관에는 마가단에서 나온 수백종의 광물이 전시돼 있다.32년 첫해에 콜리마금광에서 나온 사금과 22㎏짜리 순금덩어리,소 위장에서 나온 금도 보관돼 있다. 마가단 시내에는 한국계 교포가 1백여명 살고 있다.강제로 끌려온 한인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식 이름의 식당도 두곳 있다.그중 도라지식당에 갔더니 타슈켄트에서 온 30대 후반의 한국계여인이 운영하고 있었다.교포3세라서 한국말은 인사말정도밖에 못한다.음식도 국수와 밥정도 말고는 거의 러시아음식에 가깝다. 이 여인의 시아버지인 박재욱씨(70)를 식당에서 만났다.박씨는 신의주 학생의거에 가담했다가 46년 러시아로 끌려와 스탈린 사망 이듬해인 54년 석방되기까지 8년간 건물·도로 건설및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같은 민족을 이역만리 러시아 땅으로 보내는 냉혈한이 이세상 어디에 있겠느냐』고 북한당국에 대한 원망을 삭이지 못했다. 박씨는 『이곳은 1년 열두달 모두가 동지달』이라고 추운 날씨를 설명한 뒤 시내건물들을 가리키면서 『저 건물은 한인들이 지었고 이 건물은 일본군 포로들이 지었는데 먹을 것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하루 16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죽고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쓰라린 기억을 되살렸다. 북극에 가까운 마가단에는 해가 낮게 뜬다.그래서 한낮에도 그림자가 실물보다 1.5배이상 더 길다.마가단주는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이나 어두운 과거의 부담을 안고 어렵사리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었다.
  • 체첸의 비극(박화진 칼럼)

    옛소련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사이의 회랑지역 전체를 총칭하여 카프카즈라 부른다.영어로는 코카서스라 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미남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하다.톨스토이가 젊은 날 사관후보생으로 이곳 주둔 러시아 기병대에 근무했던 곳이다.그때 경험을 기초로 이곳을 무대로한 코사크 기병과 체첸족간의 갈등·마찰을 그린 것이 「코사크」란 작품이다.말하자면 톨스토이문학 개안의 무대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이 말 잘 타고 용맹하며 상무정신 강하기로 유명한 코카서스 기마민족이다.백색인종을 코카서스 인종이라 부르듯 백인의 뿌리라고도 할수 있는 유서깊은 민족이다.코카서스 내륙에 위치한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의 산악지역이 옛소련 붕괴후 분리독립을 선언,압도적인 러시아군의 집중공격을 받았으며 지금 현재 러시아를 상대로 무차별 인질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인구 1백20만의 체첸공화국이다.회교도인 이들은 1859년 러시아제국에 병합된후 기회있을때마다 독립투쟁을 전개해 왔다. 1944년엔 독립을 위해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군에 협력한 혐의로 스탈린에 의해 당시 80만의 온민족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스탈린사후 흐루시초프의 사면으로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비슷한 운명의 연해주 우리 한인들처럼 이주당시 약 24만명이 기아와 추위로 사망하는 약소민족의 비극도 치렀다. 옛소련의 붕괴가 또 한차례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라 해야할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도 결코 양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체첸은 지정학적으로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하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러시아의 남쪽 관문이다.다른 공화국들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옐친으로선 러시아민족주의와 보수세력의 눈치도 살피지 않을수 없다.결코 그냥 물러날수 없는 상황이다.그러나 힘에 의한 제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예상대로 94년 10월 무력침공이후 끝없는 산악게릴라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게릴라전의 불꽃은 테러전양상을 띠며 체첸밖으로,러시아 본토까지 확산되고 전쟁양상도 점점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월남전」이나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 재판이 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체첸만이라면 몰라도 배후엔 석유자금이 풍부한 아랍회교권이 버티고 있다.사우디,이란 등 회교권이 러시아의 무력진압에 분노를 보이고 있으며 돈과 무기로 체첸독립 게릴라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게다가 체첸족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용맹무쌍한 코카서스 민족의 하나다.그들은 러시아의 인권및 노벨상수상 작가 솔제니친이 저서 「수용소군도」에서 지적했듯이 『절대로 복종하지않는 사람들』로 유명하기도 하다.무력침공 1년이 지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들의 굽힐줄 모르는 게릴라전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이번 인질전을 진압한다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러시아는 이길수 없으나 이겨야 하는 골치아픈 전쟁을 하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러시아개혁에 대한 위협요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옐친 대통령은 체첸무력개입으로 내외의 인기가 폭락했다.무력개입이 예상했던대로 아프가니스탄개입때 처럼 장기 게릴라전화하고 희생이 늘어남에따라 옐친의 입지는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다.작년 12월 러시아의회 총선에서의 옛공산당세력 복귀 및 극우민족주의 세력 급부상에는 체첸무력침공도 크게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많은 희생자를 낸 인질사태와 무자비한 무력진압은 오는 6월 대통령선거에서 옐친 또는 개혁후보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결과적으로 그것이 미국 및 서방세계는 물론,우리와 러시아의 관계 및 탈냉전의 국제정치 분위기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 키신저 전 미 국무의 96세계정세 전망/한승주 전외무 MBC회담

    ◎“북한 내부동요 커지면 개혁노선 택할것”/남북대화 재개돼도 적화야욕 포기안해/일 민족주의 추구로 대미의존 탈피 노려 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이 3일밤 11시 방영된 MBC­TV 「세계 석학과의 만남」 프로를 통해 한승주 전외무장관과 세계정세 전반에 관한 대담을 가졌다.한 전장관과 키신저박사는 이날 대담에서 북한문제를 비롯한 96년 동북아 정세전망,보스니아와 한반도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이후의 중동평화 정책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다음은 두 사람의 대담 요지이다. ▲한승주=미국의 대외정책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미군이 보스니아에 파병됐습니다.이로써 국제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지속돼야 한다는 쪽과 냉전이 끝난 만큼 그같은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쪽의 의견 대립이 끝난 것으로 이해해도 괜찮은 겁니까. ▲키신저=그렇지 않습니다.진짜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될 겁니다.그리고 미국의 개입에 대한 논쟁의 초점은 개입 여부보다는 어느 쪽이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가 하는데 맞춰져야 합니다. ▲한=어떤 특정 문제나 지역이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키신저=예를 들어 미군의 한국주둔과 관련해서 보스니아의 경우처럼 시간적인 제약을 둘 수 없는데,이는 한국이 그만큼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특정지역을 잃음으로써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생기고 미국의 정치질서가 무너지느냐의 여부가 미국 국익에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잣대입니다. ▲한=96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입니다.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의 국내외 정책 변화를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올해 미국정책의 주된 논의는 국내정책 쪽에서 일어날 것 같습니다.공화당이 승리하면 국방을 좀 더 강화하는 정책이 나오겠지만 지금과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한=94년말 이뤄진 중동평화협정 조인과 이스라엘­시리아의 평화무드 조성을 중동의 평화정착 신호로 볼 수 있겠습니까. ▲키신저=올해 중동에서는 평화의 진보가 이뤄지겠지만 어떤 문제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스라엘은 과거처럼 고립되지않고 중동지역의 한 국가로 역할을 할 겁니다.그러나 이란­이라크,사우디­요르단 등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이야기를 아시아로 돌려보겠습니다.박사께서는 중국이 아시아의 여러나라와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키신저=군사적인 면에서의 위협은 현실성이 없습니다.그러나 경제적으로 중국은 대국이 될 것이고 이로써 지역 또는 세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입니다.이같은 국력신장에 따른 영향력 강화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도 그에 걸맞게 성장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한=아시아국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반면 미국은 일본과 현재의 안보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키신저=제가 보기에 일본은 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즉 메이지 유신 때와 같은 분위기속에서 미국의 의존상태를 벗어나려는 겁니다.일본은 지금까지 자신들만의 대외정책을 수립해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같은 상황은 바뀔 것입니다.저는 이것을 군국주의로 부르는데 반대합니다. 주일미군의 존재는 절대로 필요합니다.미군의 일본주둔은 미국이 이 지역의 안정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전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북한의 앞날을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스탈린식 통제를 계속한다면 북한은 파멸할 것입니다.북한이 중국처럼 공산당을 중립적인 통치기구로 변모시키고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연적인데 그들 스스로 그런 개혁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보다는 북한 내부의 동요와 불안이 커질때 어쩔 수 없이 개혁을 선택하고 한국과의 대립노선을 포기할 것입니다. ▲한=북한은 요즘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키신저=원조된 식량조차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분배 및 유통구조의 개선이 필요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외부원조는 소수층에게 부정부패의 기회를 줄 뿐입니다. ▲한=한반도의 통일방법에 대해서 박사께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키신저=동독의 붕괴에 따른독일통일에서 북한과의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습니다.북한은 동독과 달리 대외 의존도가 낮아 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저는 어떤 시점에서 북한이 무력도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한국과 대화를 해나가면서도 북한은 자신들의 강점인 무력을 이용해 국부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실익을 얻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러시아의 향후 정치와 경제를 전망해주십시오. ▲키신저=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지위를 상실했으면서도 외교정책은 세계지향적입니다.이를 바탕으로 보면 러시아에서는 앞으로 2∼3년 안에 권위주의적인 독재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것입니다.한국도 사실 거대여당과 강력한 행정부하에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경제력이 회복되면 러시아는 전처럼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문제는 그런 정책이 유럽 쪽에서 취해질 것이냐,아시아 쪽에서 취해질 것이냐입니다. ▲한=양쪽 다 아닐까요. ▲키신저=그럴 겁니다. ▲한=지금까지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로군요. ▲키신저=평화 유지는 어느 나라의 경우나 제일의 목표여야 합니다.
  • WP지 1000∼1995년 분야별 「최고」 선정

    ◎가장 위대한 인물 칭기즈칸/그림­시스틴성당 천장벽화/발명­인쇄술/여배우­그레타 가르보/천재­셰익스피어 서기 1000년부터 1995년의 인류 두번째 「1천년」기간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몽고의 칭기즈칸(1112∼1227년)이 뽑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송년호를 통해 2000년대 진입을 앞두고 아직 5년이 남아있는 서기 두번째 1천년 인류역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대상 및 부분별 「최고」인물과 사건·작품들을 선정,특집기사로 소개했다. ▲대상=칭기즈칸(몽고).현대의 「지구촌」에 버금가는 동서양 연결의 대제국을 7백년전에 「실제로」 건설했다.컴퓨터통신망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에 광범위한 통신망을 구축했고 또 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가트) 못지않는 자유무역지대를 이루었다. ▲가장 위대한 책=새무얼 존슨(1709∼1784년·영국)의 영어사전.혼자서 9년만에 만들어낸 이 사전으로 인해 영어가 세계어로 발돋움하는 기초를 이루었다. ▲가장 위대한 그림=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틴성당의 천장벽화. ▲가장 위대한 발명=구텐베르그의 활자 인쇄술. ▲최고 여배우=그레타 가르보(1905∼1990년·미국).얼굴표정 하나로 인간의 갖가지 감정들을 세계 곳곳에 전달했다.한편 최고 남자배우는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토끼 「버니」. ▲최고의 천재=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영국).「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단 한줄의 토와 함께 선정됐다. ▲가장 좋았던 시절과 장소=화가 티시언이 활약했던 1500년대의 베니스. 이밖에 인류 최악의 업을 남긴 인물로 히틀러,폴 포트 그리고 칭기즈칸,스탈린등 대학살자와 진화론을 통해 인종우열론을 이끌어낸 다윈이 거명됐다.
  • 주변4강의 남북한 정책/미·러 전문가의 교차 분석

    ◎「한반도 안정」전제로 상호견제·실익추구/미서 본「러」정책/존 스타인브루너 미 브루킹스연 외교정책 실장/핵연료처리·군축문제에 적극 개입/남북 긴장완화 따른 반대급부 기대 한국의 통일은 냉전종식이 불러올 필연적 사건으로서 강하게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이 통일이 성취될 방식에 대해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결코 괜한 걱정이 아니다.그 과정은 우아할 수도 있고 아주 난폭할 수도 있다.과연 어떤 모양새로 현실화되느냐 하는 두 한국정부에 의해 주로 결정되겠지만 주변 주요국의 행동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가질 시각과 취할 정책을 언급할 미국인은 당연히 이를 상당한 거리와 익숙치 않는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분명 이런 자세는 정통적인 설명을 위한 기본이라고 할 수 없으나 유익한 통찰을 예기치 않게 선사할 수도 있다.러시아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훑어보는 방식 대신 사태의 건설적 진전에 관심을 가진 사려깊은 러시아 관리의 속마음을 추론해보는 쪽으로 나가겠다. 예전의 단골손님 같은 국가인 북한의 운명에 관심이 아니 갈 수 없다.오랜 냉전기간의 교제에서 앙금이 쌓여 있긴 하지만 해묵은 책임감 같은 걸 느낀다.어쨌든 북한이 어떻게 되는가에 러시아는 연루되어 있다. 북한을 들여다볼수록 정치·경제적 입장이 아주 취약함을 재삼 인식하게 된다.고립,독재적 통제,고집스러운 자립주의의 긴 역사로 북한사회는 그들을 삼켜버릴 수도 있는 냉혹한 국제화에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다.옛 소련을 조각내버린 정보·생활태도·기술·경제관행의 거센 물결이 걷잡을 수 없는 영향력과 함께 북한에 침투할 것이다.지도층이 뜻한대서 이 물결이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그러한 시도는 오히려 내부붕괴를 재촉한다.또한 이 물결을 허용한다 할 때도 서툰 솜씨로 그랬다간 똑같은 결과를 자초한다. 군사적 상황은 이 정도로 시급하진 않으나 취약함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한반도의 외형적인 힘의 균형이 언급될 때 흔히 북한의 우세가 부연되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실제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대대적인 도발을 당하지 않는 한 한·미는 강제적 통일로 나갈 군사력사용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혹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엉킬 경우 대규모 군사행동이 그대로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본질적으로 약체인 몸을 지금까지 대외에 구사한 솜씨는 아주 인상적이다.그들은 영변에서 핵물질제조단지를 세워 세계의 핵확산통제에 심각한 위협을 준 뒤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지렛대로 활용했다.북·미기본합의는 피할 수 없는 통일과 국제적 투자의 과정에 미국이 중재역을 맡도록 하는 동기부여적 바탕을 제공한 측면에서 눈여겨봐야 한다.앞으로의 대략적 방향과 구체적 일정을 잡는 실질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새 지도층이 내부에서 인정받는 대안적 기초를 제공한다.새 지도층은 김일성과 같은 개인적 카리스마를 흉내낼 수 없는 대신 국제투자의 중개자로서 가난한 국민대중에게 물질적 혜택을 줄 수 있다.이같은 투자허용에 안보적 이유를 매단 만큼 국제투자가 필시 동반할 기존질서 파괴적 시장체제의 강도를 강제로 약하게 할 구실도 있다. 북한은 자신의 통일전략에 러시아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환영하지도 않을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는 앞으로 분명히 문제가 될 핵연료처리와 재래식 군사력규제 등 두 사항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나 북한에 새로 건설될 원자로에 사용될 핵연로는 국제사회가 직접 보유하도록 기본합의는 분명히 요청하고 있다.새 원자로는 기존 것만큼은 사용후연료에서 플루토륨을 추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상당량을 뽑아낼 수 있다.새 원자로를 건설한 장본인인 국제컨소시엄이 연료보유·통제를 직접관장하지 않는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일 터다.그런데 이같은 컨소시엄 직접관장은 원자로의 국제판매에 새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이란 원자로건에 즉시 적용된다. 한반도의 전반적 상황을 지배하는 논리는 기본합의정신을 확대,군사분계선상에 대치해 배치되어온 재래식군사력의 위험한 집중을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미국은 원자로거래의 필수적 보완으로 이를 주장할 것이며 북한도 이 점에 큰 이익이 걸려 있다.경제투자에 대한 시급성 때문에 북한은 지금 같은 군사투자를 지속할 수 없으며 투자해본댔자 대치군사력인 한·미연합군에 실제적 경쟁상대로 클 가능성도 희박하다.상호군축협상을 통해 두 한국은 상호안정적인 한반도전역 병력재배치를 꾀하면서 주변강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할 것이다.이같은 재조정이 완성되기 위해선 러시아의 관여가 요청된다. 한반도의 이 군축·재배치는 거시적으로 시베리아상황과 연결된다.러시아는 이 시베리아에 중국과 상호안정적이며 상호규제된 병력이 배치되길 원하고 있다.만약 한반도문제의 한 과정으로 이것이 실현된다면 국제안보가 보장되는 것이다. 결론으로 사려깊은 러시아 관리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한국통일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제기될 보다 넓은 국제현안에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러」서본 미정책/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북한의 몰락보다 점진적 변화 유도/대북관계 급격한 개선 주변국 경계 전세계적인 냉전시절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일차원적이고 경직돼 있었다.북한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고 군사·정치·경제적인 압력을 가능한 한 많이 가하려고 했다.미국은 북한이 남한을 무력침공하는 것을 포함해 어떤 도발도 할 수 있다고 상정했다.그리고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도발을 저지하려고 했다.주한미군은 북한의 그런 도발에 대한 강력한 억지수단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미국내에서는 북한정권의 종말을 가속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미국은 수십년간 자기의 외교정책에 눈엣가시로 여겨지던 김일성정권을 멸망시키고 싶었다.미행정부내에서는 김일성정권의 멸망시나리오를 작성해놓고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이들을 남한에 흡수통일시킬 수 있을까 하는 방안에 몰두했다. 이런 중에 핵문제가 전면에 부상했다.북한이 진정 핵무기개발을 원했을까.나는 아마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물론 북한은 핵무기개발에 나설 초기의도를 가졌고 그런 뜻을 외부세계에 내비췄다.하지만 그들은 대규모 핵무기개발에 착수할 돈·기술·전문가·실험장등 필요한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그럼에도 미국이 핵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내 한반도의긴장을 냉전이후 최고로 고조시켰다. 왜 미국이 이같은 길을 택했을까.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첫째 미국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스탈린식 정권을 없앨 구실이 필요했다.마땅한 구실을 찾던 차에 핵문제가 제기되자 그걸 확대시킨 것이다.지난 1991년 걸프전 승리 뒤 미국은 자기의 힘으로 얼마나 손쉽게 적대적이고 위험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승리감에 도취됐다.그리고 새로운 희생물을 찾고 있었다. 냉전의 승리감에 도취된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더 새로운 승리를 갈구했다. 물론 이런 측면이 있다 해서 북한핵문제가 안고 있는 본래의 위험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시간이 지나면서 미국내 여론은 북한핵문제가 극동,나아가 미국의 안보에 위해가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북한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핵개발에 성공할 경우 핵개발의도를 가진 다른 여러 나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지적됐다.전세계적인 핵비확산체제는 붕괴되고 핵비확산체제의 연장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에 큰 파급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지적됐다.그러나 미국은 열띤 토론과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북한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신드롬에서 벗어났다.북한은 위협이 먹혀들지 않는 나라라는 점도 깨달았다.강경정책은 오히려 전세계 핵비확산체제를 위협하고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는 점을 미국은 깨달았다.아울러 북한정권의 성급한 붕괴는 한국에도 짐을 안겨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한국정부도 이 결론에 동의한다.통일독일이 명백한 전례다.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는 대신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하도록 유인책을 쓰기로 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에 빨리 진출해 그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선도역할을 하고 싶어한다.미국의 이런 계산은 북한이 옛 적대국과 관계개선을 원하는 징조가 포착되며 더 구체화됐다.클린턴행정부의 이같은 방향전환이 시작되자 미국내에서는 북한붐이 일어났다. 클린턴대통령은 새로운 대북한정책을 매우 유연하고도 의욕적으로 펴나갔다.북한의 핵개발의도를 저지키는 대신 미국은 김정일이 원하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안보공약·내정불간섭·외교관계수립·경제지원 등등.이번에는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경쟁에서 승자가 된 것이다.그러자 한국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한국은 미국의 자신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며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너무 열을 올린다고 생각했다.러시아 역시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신이 가졌던 영향력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다.중국도 북한에서 벌이는 미국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한국·러시아·중국이 가진 이러한 우려는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남북한을 포함,한반도주변 4대국의 이해와 우려는 모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증대시키는 데 그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미국과 북한의 관계증진은 한반도의 안정·평화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아울러 북한의 점진적 변화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따라서 한반도문제의 모든 당사국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펴고 있는 이 유연책을 환영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점진 개방 앞두고 내부 단속/김정일의 개혁파 비난 왜 나왔나

    ◎체제동요 우려… 「급진개혁」도 미리 제동 『문을 더욱 굳게 닫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내부 단속용이다』 북한 김정일이 25일 노동신문에 발표한 장문의 담화를 분석한 한 정부 당국자는 26일 이렇게 촌평했다. 김은 북한주민의 사상적 교과서가 될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공산주의 도덕기풍의 확립을 강조하면서 수정주의의 해독을 경고 했다. 그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수정주의자들의 반혁명행위 탓으로 돌렸다.즉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을 노동계급의 수령으로 존대하며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수정주의자들을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반역자들이라고 통렬히 비난한 것이다. 이처럼 김이 새삼스럽게 대내적인 사상 단속에 나선 것은 일단 북한이 처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즉 체제위협을 우려하면서도 점진적이나마 개방·개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북한지도부의 고민이 함축돼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논문에는 여러가지 노림수가 개재되어 있다는 지적이다.이를테면 불가피하게 점진적인 개방노선을 취하지 않을 수 없지만,체제동요를 가져올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들의 「준동」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그 하나다. 사실 김으로서 개방에 앞서 혁명1세대와 군부등 강경파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특히 그의 입지가 이들 강경세력의 등에 엎여 있을 만큼 취약하다는 관측이 사실이라면 이들을 무마해야 할 필요성은 커진다. 김은 이번 논문을 통해 기회주의자들을 경계하면서 은근히 고르바초프식 개혁이나 등소평식 개방노선을 매도했다.반대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격인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그러면서도 김일성의 체취가 풍기는 「주체사상」은 강조하지 않았다. 이 또한 논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처럼 교조적인 공산주의체제로의 회귀를 위한 선언이 아님을 실증케하는 대목이다.오히려 사실상의 노선 변화에 앞선 성동격서격의 사상강화 작업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하자면 경수로사업 및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개발등 예정된 개방코스를 밟기에 앞서 강경실세그룹들을 다독거리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발표 시점이 새로운 노선을 천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새해를 앞둔 시점이라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 러·동구 공산당 복귀와 한반도(박화진 칼럼)

    고르바초프의 개방·개혁을 계기로 탈공산주의폭풍이 휘몰아쳤던 옛소련·동구에 이번에는 공산당부활의 거센 역풍이 불고있다.92년 11월 리투아니아에서 시작,93년 폴란드,94년 헝가리·불가리아 의회총선을 석권한데 이어 금년엔 폴란드의 대통령선거를 앞도했으며 마침내는 17일 실시된 민주러시아 최초의 의회총선도 휩쓰는 맹위를 떨쳤다.이같은 기세로 나간다면 내년6월 러시아대통령선거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관측통들의 비관적 분석이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공산주의는 아직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닌가.서방세계는 그동안 옛소련 및 동구의 탈공산주의를 위한 자유민주화 및 시장경제노력을 환영하고 지원해왔다.그러나 지금 일어나고있는 현상은 개방개혁과 탈공산주의 불과 5년만에 옛공산종주국 소련후신인 러시아를 비롯 그 위성지역이었던 동구가 모두 공산당통치로 그것도 이번에는 국민들의 자유선택을 통해 복귀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것같다.지금의 공산당복귀선풍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옛공산당에 대한 지지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대했던 개방개혁세력의 불만스런 정책미숙과 실패에 따른 사회경제적 혼란에 대한 실망과 반발에서 주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있다.50년이나 살아오며 익숙한 공산당독재 사회주의체제로부터의 탈출이 단기간에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마찰과 희생의 시행착오는 당연히 거쳐야할 불가피한 과정이며 최근 공산당복귀선풍도 그런 갈등의 일부로 보아야 할것이다. 동구및 러시아의 새공산당들은 가격통제를 통한 중앙계획경제의 재생,연금생활자,봉급생활자에 대한 국가보호의 확대 등 정강정책에선 과거공산당과 별차가 없으나 공산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력 혁명노선」을 공식 포기한 점이 무시무시했던 과거 공산당과는 완전히 다르다.또 당부서간부가 기업가들로 채워지고있는 사실도 마찬가지다.공산당복귀선풍 또한 새로운 시장경제 파생물의 하나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러시아·동구의 새공산당은 한마디로 서구의 사회당에 비유될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우리국내의 일부 친북사회주의세력은 러시아·동구의 최근 공산당복귀선풍을 스탈린식 공산당독재 고수의 명분으로 착각해서는 안될것이다.탈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종언의 각성에서 시작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지금의 공산당복귀선풍은 그러한 선택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실천과정의 미숙과 잘못 및 혼란에 따른 반발인 것이다.자유민주체제속의 견제와 균형 과정인 것이다.그 과정의 시작은 서둘러야지 「우리식사회주의」 고수 등으로 기만하거나 기피 혹은 외면할 일이 아닌 것이며 고수는 보다큰 파멸을 예비하는 행동에 지나지않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러시아·동구 공산당 복귀선풍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수 있고 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개혁·개방을 서둘고있는 공산당통치의 중국·베트남과 이미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왔다.최근엔 공산당복귀후의 헝가리 대통령방한,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있었다.러시아와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동구와 러시아의 시행착오와 한·중 관계의 발전등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국가활로는 누가 뭐래도 역시 경제건설 즉 강력한 경제력 달성에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중국·베트남은 물론 공산당복귀의 동구도 우리와의 관계발전을 원하는 것은 그나마 지금의 우리경제력 때문이며 공산당복귀의 러시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지금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가 말을 하는 시대이며 우리의 가장 중요한 통일무기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경제력,일본도 능가하는 강력한 경제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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