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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8월의 대한민국이 아껴야 할 것들/박재범 논설실장

    [서울광장]8월의 대한민국이 아껴야 할 것들/박재범 논설실장

    러시아 동부의 하바롭스크는 한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하다. 조선이 후기 지식층의 공허한 이념논쟁 끝에 망한 1910년대, 항일독립군들은 국경에서 이곳까지 일제에 의해 쫓겨났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거슬러 수백㎞를 걷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들은 길에 숱하게 뼈를 묻었다. 100년 전의 참상을 끄집어내는 것은 하바롭스크의 ‘김유천 거리’ 때문이다. 그는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때 적군에 들어가 활동하다 차르의 백군 총에 맞아 죽었다. 소련은 외국인임에도 그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붙여 고마움을 나타냈다. 미국 플로리다 포코시티에는 밴플리트 스트리트가 있다. 2차대전 참전용사인 밴플리트는 한국전쟁 때 미 8군사령관으로 전쟁을 총괄 지휘했다. 한국에 4년제 육사를 설치하도록 했고, 한국군 장교의 미국유학 길을 텄다(백선엽 ‘군과 나’). 플로리다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킨 그에게 이런 방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물론 러시아와 미국 등에는 마르크스, 엘리자베스 여왕 등 수백년 전 인물의 이름이 붙은 거리가 훨씬 많다. 다만 나라를 세우고 지킨 같은 시대의 사람도 간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도로명 역시 역사적 인물들이 많다. 퇴계로, 율곡로, 충무로, 을지로 등. 그러나 러시아나 미국 등이 김유천이나 밴플리트라는 동시대인을 상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수백년 전 사람만 존경할 뿐이다. 오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국파군망(國破君亡) 이후 99년 동안 한민족은 광복을 맞았고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민족의 국가 틀을 만들고 지키는 데 목숨을 바쳤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훈장 등 포상한 독립운동가들이 1만여명이고, 사료에는 명단이 있지만 유가족이 없어 포상 못한 독립운동가가 2만여명에 이른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도 수십만명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체는 존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선 이들을 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전시관에 기념품처럼 모시고 있다. 천안의 봉주로 등 문화예술체육인의 이름이 생활 속에 자리잡은 정도다.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유지한 사람들도 완벽하지는 않다. 이승만, 백선엽, 박정희, 그제 타계한 김대중… 그리고 맥아더, 밴플리트. 인간이기에 흠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이가 누구인가. 대학(大學)은 사리분별력이 있는지를 경중, 완급, 선후를 따질 수 있는지로 가른다. 이런 측면에서 맥아더를 살펴보면 공은 대한민국을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으로부터 지킨 것이요, 과는 전쟁통에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일이다. 이제는 경중, 완급, 선후를 제대로 가려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희생으로 지켜진 국가의 틀 안에서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갈등을 빚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자신들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쓴 사람들에게 성인도 통과 못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까탈을 잡으려고만 한다. 이제는 변방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도 됐건만. 최근 재조명되는 일제하 작가의 한 명인 백신애는 단편소설 ‘꺼래이’에서 1930년대의 삶을 눈물로 그렸다. “이리에게 잡혀가는 목자 잃은 양떼와도 같이 헤매어 넘어온 국경의 험악한 길을 다시금 쫓겨넘는 가엾은 흰옷의 꺼래이 떼….” 나라를 잃었고 나라를 되찾은 8월을 맞아 러시아·미국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지킨 사람들을 아껴보자고 제안해본다. 박재범 논설실장 jaebum@seoul.co.kr
  • 개발논리 앞세운 모스크바 세계적 건축물까지 없앤다

    개발논리 앞세운 모스크바 세계적 건축물까지 없앤다

    “유서 깊은 도시에 테마파크식 접근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허브’로 거듭나려는 러시아 모스크바가 개발 논리로 세계유산까지 갈아엎고 있다. 무분별한 도시계획과 질 낮은 복구공사로 모스크바의 세계적인 건축물 유산들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인디펜던트가 23일 보도했다. 22일 국제운동단체인 모스크바 건축보존사회(MAPS)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9세기 궁부터 스탈린주의 건축의 걸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중요 건물들이 헐리거나 방치되고 있다. MAPS는 “이 중에는 다른 나라와 함께 건립한 것도 포함돼 있다. 이는 러시아만의 유산이 아닌 세계 공동체의 것”이라며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제는 개발업자들을 제지할 법적 절차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또 개발계획이 대중에 공개되지 않아 개발에 착수할 때까지는 알 수도 없다. 더욱이 최근 러시아를 잠식한 금융위기로 질 높은 개보수를 감당할 돈도 없는 상태다. 그래서 보수공사가 이뤄져도 결과는 형편없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부풀려진 사기 복제”라고 비난했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던 볼쇼이 극장도 2005년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가 방수막에 가려져 있으나 내부는 엉망이다. 여기저기 금이 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극장은 당초 지난해 재개관할 예정이었으나 공사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비용도 초과되고 있다. 볼쇼이 오페라의 상임지휘자인 알렉산더 베데르니코프는 극장 관리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며 보수공사에 넌더리를 냈다. 보고서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10여개의 건축물을 목록에 올렸다.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도 목록에 포함됐으나 이 건물은 지난해 완전히 파괴됐다. 공동주거 실험의 개척인 나르콤핀 아파트 등 구성주의 건축들도 위기를 맞았다. 이런 혼돈은 1992년 모스크바 시장으로 당선된 유리 루슈코프의 개혁 바람에서 시작됐다. 러시아의 유일한 여성 억만장자인 그의 부인과 건설업체 간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MAPS는 2년 전에도 시민사회의 우려를 정부에 전달했다. 시당국은 개선 의지를 보였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소비에트 시절 모스크바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슈추셰프 건축박물관장 데이비드 사르키크얀은 “2년간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을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예술사학자 안나 브로노비스카야는 “지난 10년간 이뤄진 파괴행위가 모스크바가 후세에 전해줄 유산이 됐다.”고 꼬집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오래된 흙벽집(이상교 글, 김원희 그림. 청어람주니어 펴냄) 그 동안 펴낸 그림책과 동시·동화집이 하나 같이 주목을 끌었던 동화작가 이상교의 신작. 오래된 흙벽집을 통해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임을, 나아가 가치있는 자연의 일부임을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9000원. ●안도현 시인이 들려주는 불교동화(안도현 글, 임양 그림. 파랑새 펴냄) 불교의 윤회론에 따르면 당연히 부처에게도 전생이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생각이 미친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우화로 만들었다. 인도에서 이렇게 생성된 전설과 민담에 부처의 가르침을 더해 탄생한 인류 최초의 동화라는 자타카를 시인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맛깔나게 다듬어 냈다. 9000원 ●청소년을 위한 파닥파닥 세계사 교과서(임영대 지음, 삼우반 펴냄) 우리 교과서의 오류를 떡밥 삼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근대의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세계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교양을 낚아 올렸다. 1만2000원. ●왜 꼭 해야 하나요?(브리기테 라브 글, 마누엘라 올텐 그림. 계수나무 펴냄) 끊임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나쁜 버릇이나 관행을 키워간다. 이런 아이들이 지키기 어렵고 딱딱한 일상의 규칙들을 왜 지켜야 하는지, 또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돕는 책이다. 9500원.
  • 뮌헨회담은 실패작이었다

    뮌헨회담은 실패작이었다

    등산에서 흔히 쓰는 정상(Summits)이라는 단어를 외교 용어로 처음 가져다 쓴 이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는 1950년 2월 에든버러 연설에서 소련 최고위층과의 또 다른 회담을 제안하며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후 언론도 자주 사용하며 외교 용어로도 대중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두 적수 사이의 위험한 만남,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순간, 명성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결정하는 건곤일척의 기회, 일단 시작하면 물러서기가 거의 불가능한 여행 등 정상회담은 서사시적 특성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을 유혹하곤 한다. 그런데, 이미 원시시대부터 외교와 협상이라는 관습이 있었음에도 안전과 체면 문제로 정상회담은 기피됐다. 적어도 19세기까지는 그랬다. 정상회담은 항공기 여행,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대중매체에 의한 가정 내 뉴스 보급 등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며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기준에서 데이비드 레이놀즈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에 열렸던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뮌헨 회담을 현대적인 정상회담의 출발점으로 본다. 레이놀즈 교수는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에서 20세기를 움직인 6대 정상회담을 집중조명한다. 뮌헨 회담을 비롯, 2차 대전을 빨리 끝내려고 했던 1945년 미국·소련·영국의 얄타 회담, 1961년 빈 회담, 1972년 모스크바 회담, 1985년 제네바 회담 등 냉전시대에 이뤄진 미국과 소련의 세 차례 회담, 1978년 중동 평화를 위한 캠프 데이비드 회담 등이다. 저자는 정상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는지, 정상에서의 회담은 잘 진행됐는지, 어떻게 지상으로 내려왔는지 등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정상회담 3단계인 준비, 협상, 실천 과정을 두루 살피고 있는 것. 실패한 정상회담의 대명사는 뮌헨 회담이다. 레이놀즈 교수는 배짱이 없는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유화책만 제시했고, 아마추어 외교를 펼친 끝에 히틀러에게 속았다고 본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착각했으나 1년 뒤 2차 대전이 일어났다. 성패와 관련해 다소 엇갈리는 의견도 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이 함께 했던 얄타회담은 히틀러 체제를 구제하고 전쟁을 1년 더 지속시켰다. 빈 회담은 만남 자체가 강조된, 준비되지 않은 정상회담으로 실패작이 됐다. 존 F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탐색전과 이념 논쟁만 벌였다.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이 뒤따랐다. 반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네바 회담은 개인적인 화학작용과 함께 보좌관들의 팀워크를 활용, 끈기 있게 대화를 지속해 냉전 종식을 이뤄냈다. 지미 카터도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세부사항까지 꼼꼼하게 관리하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합의를 끌어냈다. 저자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주인공들 개개인의 품성과 건강, 회담 과정도 중요하지만 실천도 그에 못지않다고 강조한다. 회담 뒤 자국으로 돌아와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회담은 물거품이 된다는 것. 2003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엔 결의안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믿었지만, 미국 정부는 결국 자국 내 보수적 여론에 휘둘려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2만 9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과거사, 감추거나 반성하거나

    러시아가 자국에 불리한 역사 해석을 막기 위해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캄보디아는 처음으로 ‘킬링필드’를 다룬 교과서를 발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해치는 ‘역사 왜곡’을 조사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군, 행정부, 정보기관이 참여하는 역사특별위원회 설치를 명령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보도했다. 이는 옛소련에 소속돼 있던 국가 등 다른 나라들의 러시아 전체주의 비판 등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옛소련 통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시대의 배고픔을 자국민에 대한 ‘대량 학살’로 분류하는 시도를 했고 에스토니아는 붉은 군대 기념비를 수도 중심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폴란드는 옛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된 자국 정부 관료에 대한 진상 조사를 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에 골칫거리다. 국내적으로는 옛소련의 향수를 자극, 애국심을 이용해 정치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특별위 설치에 앞서 요시프 스탈린에 대해 관대하게 적고 있는 특정 교과서 사용을 의무화한 바 있다. 반면 캄보디아는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는 대신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에 나서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크메르루주 정권의 학살을 다룬 최초의 교과서를 20일 공개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노의 날’인 이날 유엔이 후원하는 전범 재판소 인근 훈 센 앙 스누올 고등학교에서 기념식을 갖고 학생 1000여명을 포함한 참석자 수천명에게 교과서를 나눠 줬다. 툰 사임 캄보디아 교육부차관은 “일부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은 몰랐던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의 아픔과 잔혹상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교과서 50만부를 학교 1000여곳에 배포할 예정이다. 그동안 캄보디아 학교에서는 학살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데다 학살에 연루된 인사들이 여전히 캄보디아 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전범재판소 설치 이후 과거사 청산 움직임이 일면서 교과서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오판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6·25전쟁을 재조명한 ‘콜디스트 윈터’(정윤미·이은진 옮김, 살림 펴냄)의 한국어판이 나왔다. 핼버스탬은 뉴욕타임스 베트남 특파원이던 1963년부터 방대한 자료 조사, 100차례가 넘는 관계자 인터뷰 등을 진행하며 44년 만인 2007년에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핼버스탬은 ‘한국전쟁은 연이은 오판으로 벌어진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1950년 1월)을 두고, 소련이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일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오해한 것이 전쟁의 시작이다. 김일성은 한반도에서 자신의 인기를 과신했고, 더글러스 맥아더는 미 육군의 전투력을 과대 평가하면서 중국군을 지나치게 얕잡았다. 책에서 저자는 해리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 등 전쟁 주역들의 성향과 그들이 저지른 오판을 조목조목 따지는 한편 ‘낙동강 방어선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전투’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책은 출간 당시 “한국전쟁의 밀고 밀리는 전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는 평가를 받았지만, 핼버스탬은 탈고 후 닷새 만에 인터뷰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 뒤였다. 73세까지 취재 열정을 불사른 저널리스트의 집념이 담긴 책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 충분하다. 4만 8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고] 세계 최고령 130세 카자흐스탄 할머니 사망

    [부고] 세계 최고령 130세 카자흐스탄 할머니 사망

    세계 최고령으로 알려진 카자흐스탄의 사칸 도소바 할머니가 1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은 도소바 할머니가 지난달 자신의 아파트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를 다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지난 3월 빈민촌에 사는 도소바 할머니에게 130세 생일을 맞아 아파트를 선물했다. 당시 카자흐스탄 관리들은 카라간다시에서 인구조사를 하던 중 1879년 3월27일 출생인 도소바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할머니는 옛소련 여권과 독립 카자흐스탄 여권을 모두 갖고 있었으며, 스탈린 치하였던 1929년 실시된 인구조사 때 47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소바 할머니는 지난 3월 한 인터뷰에서 장수비결을 묻자 “특별한 것은 없고, 병이 나면 할머니가 치료해 주던 요법으로 치료했다.”면서 “약이나 단 음식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9세기 카자흐스탄 인구조사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할머니의 최고령 기록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현재 세계 최고령 공식기록을 가진 이는 올해 114세인 미국의 에드나 파커 할머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러시아서 청국장 만들어 한국수출도”

    “러시아서 청국장 만들어 한국수출도”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시 고려인 정착촌인 ‘우정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 여성 7명이 처음으로 고국을 찾았다. 카차(60)를 비롯해 베네라(54), 로자(53), 나스차(50), 비카황(33)씨 등 모두 고려인 2, 3세들이다. 이들은 10일 충남 천안시에 있는 민속마을을 둘러보고 한의원에서 건강진찰도 받았다. 나스차씨는 “어릴 때 아버지가 뿌리를 잊지 말라며 자다가 일어나더라도 ‘제비 강씨, 본은 전주’라고 대답하도록 연습시켰다.”면서 고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재외동포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의 초청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1863년부터 농업과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후손이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에 대한 강제이주 정책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다가 1990년대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삶의 터전을 러시아 연해주로 다시 옮겼다. 이들은 현지에서 ‘청국장 마마’로 통한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이들의 재정착을 돕기 위해 2004년 조성한 우정마을의 주소득원이 무공해 청국장이기 때문이다. 우정마을에는 이들을 포함해 고려인 2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청국장 제조법은 2004년 연해주에 정착한 평화연대 대표 김현동씨 부부와 사회적 기업 ‘바리의 꿈’(대표 황광석)이 전파했다. 이들은 연해주의 너른 평야에서 키운 야생 청정콩에 인근 자작나무숲 ‘사마르칸’에서 채취해온 차가버섯 진액을 결합해 ‘고려인 청국장’을 만들었다. 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소문을 듣고 연해주로 고려인들이 모여들면서 우정마을에서 20㎞쯤 떨어진 순얏센 고향마을, 크레모바, 아시노프카에는 고려인 300여가구가 정착한 또 다른 청국장 마을들이 생겨났다. 청국장 마마들은 9일엔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공정무역 페스티벌에 참가해 청국장 제품홍보도 했다. 청국장 덕분에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이 한 해 올리는 매출은 5억원이나 된다. 지난해부터는 사업영역을 확대해 연해주에서 자란 야생 도라지와 민들레로 청(淸)과 엑기스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딸과 손녀 2명과 함께 사는 카차씨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는 게 우리들의 소망”이라면서 “대대로 청국장을 만들며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국장 마마들은 오는 14일 연해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슬프지만 유머도 좀 있어… 내 영화 잘 관찰하고 웃어라”

    “슬프지만 유머도 좀 있어… 내 영화 잘 관찰하고 웃어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8일까지)가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초청한 감독은 유럽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폴란드 출신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71) 감독이다. 지난 2일 방한 첫날, 전주 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은 장시간 비행과 시차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빛은 형형하고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1960년부터 2008년까지 그가 연출한 22편의 영화 가운데 ‘출발’(1967년·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외침’(1978년·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문라이팅’(1982년·칸영화제 각본상) 등 주요작 9편과 그의 인생을 담은 다미앙 베르트랑의 다큐멘터리 1편(2003년 ‘영화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등 모두 10편이다. 그는 “전주영화제가 내 작품을 상영해 매우 기쁘고 영광이다.”면서 “중요한 작품이 거의 다 들어가 있으며, ‘등대선’만 추가됐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고 말했다. 다만 상영작 ‘페르디두르케’에 대해서는 “내가 싫어하는 영화”라며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소설을 영화화했는데, 번역이 불가능한 폴란드 소설을 영어로 제작했기 때문에 애초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반스탈린주의에 상영금지돼 망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작품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손들어!’(1967년)가 반스탈린주의적 성향 때문에 자국에서 상영금지되자 해외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야 했다. 이후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지를 떠돌면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딥 엔드’, ‘외침’ 등을 찍은 영국에서 영화적 지식을 숙련되게 쌓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때 영화 증오… 17년간 화가 활동 1991년 ‘페르디두르케’를 찍은 이후 17년 동안은 오직 전업화가로만 활동했다. 그는 “‘페르디두르케’를 끝내고 그 영화를 거의 증오하게 돼 영화작업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영화계 공백기는 그의 말에 따르면 “예술가로 재탄생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그림에 집중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됐으며, 진정한 화가가 되려는 야망도 채울 수 있었다.”면서 “배우 잭 니컬슨, 데니스 호퍼를 비롯해 많은 개인 컬렉터들과 박물관이 내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내놓은 복귀작 ‘안나와의 나흘 밤’은 2008년 칸영화제에서 “과연 거장”이란 찬사를 이끌어 냈다. 감독은 유럽의 영화혁명인 누벨바그와 교류하는 등 동시대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누벨바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었다.”면서 “1965년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린 뉴시네마 페스티벌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르코 벨로키오, 밀로스 포먼, 얀 네메치, 폴커 슐렌토르프, 알렉산더 클루게 등 각국의 감독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스타일은 분명 공통점이 있었지만, 사실 모두들 누벨바그를 독립적으로 재창조하려 했었다.”고 설명했다. ●초면 주연배우에 12번이나 침뱉은 일화도 감독은 다수의 작품에서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해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에 출연했다. 당시 에피소드를 묻자 첫 촬영에서 주연 비고 모텐슨에게 침을 뱉어야 했는데 테이크(take)를 여러 번 가서 초면인 그에게 침을 12번이나 뱉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영화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르면 올해에도 제작자 제레미 토머스와 함께 새 영화 ‘에센셜 킬링’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법에 대해 거장이 제시한 해답은 간명했다. “슬프지만 약간이라도 미소 지을 만한 유머감각이 있을 것이다. 관찰하고 웃어라.” 글ㆍ사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총싸움게임 ‘카르마2’, 신규 게임요소 추가

    총싸움게임 ‘카르마2’, 신규 게임요소 추가

    온라인 총싸움게임 ‘카르마2’가 신규 게임요소를 적용하고 분위기 일신에 나선다. 이들 게임요소는 게임 속 신규 맵과 총기를 비롯해 게임 이용자 모임 간 대결을 뜻하는 클랜전 추가 등으로 구성됐다. 신규 맵은 기존에 선보인 ‘원하우스’와 ‘레일야드’ 맵의 뒤를 이어 ‘베이스캠프’와 ‘빌리지’ 맵이 추가되며, 신규 게임모드인 ‘폭파 미션’도 새롭게 선을 보인다. ‘톰슨 기관단총’은 이번에 추가된 대표적인 무기다. 이 총은 2차 대전 중에 미군이 실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작 ‘카르마 온라인’에선 ‘토미건’이란 애칭으로 사용된 바 있다. ‘클랜전’은 팀데스매치와 개인전 및 스탈린블러드를 제외한 모든 게임모드에서 즐길 수 있도록 설정된다. 대전 결과에 따라 클랜포인트가 차등 지급되며, 향후에는 클랜 랭킹 서비스도 선을 보일 예정이다. 한편 ‘카르마2’는 올해 1월 공개 시범 서비스를 실시했으며, 최초의 온라인 총싸움게임인 ‘카르마 온라인’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일 TV 하이라이트]

    ●문화지대(KBS1 오후 11시30분) 도심 속 낡은 건물의 변신이 눈에 띈다. 쓰레기 처리장과 폐공장이 문화창작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자 만든 재활용 창작공간을 소개한다. 또 퍼포먼스와 콘서트가 결합된, 기존 국악 연주회와는 차별되는 신개념 퍼포먼스 콘서트 현장을 찾아가 본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55분) 행복을 배달하는 아침편지의 주인공 고도원을 만나본다. 아침편지를 쓰게 된 계기, 한번도 거른 적 없는 아침편지에 대한 남다른 애정, 수많은 독자와 함께 여는 아침풍경을 엿보고, 신문사 기자에서 대통령 연설문 담당 비서관을 지내고 아침편지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올해 18살인 건희는 안양의 한 복지 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건희가 10살이던 8년 전, 엄마 손에 이끌려 이곳에 맡겨졌다. 그때만하더라도 건희의 등은 멀쩡했다. 건희의 척추가 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 몇 년 전만 해도 잘 걷고 잘 뛰어놀던 아이가 자꾸 기어다니려 하는데…. ●아내의 유혹(SBS 오후 7시15분) 건우는 옥상 위로 뛰어올라가 난간에서 뛰어내릴 듯한 소희를 말린다. 하지만 소희는 건우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걸 보느니 뛰어내리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말한다. 이에 건우는 결혼을 원하는 거라면 결혼하자는 말을 던지고, 이에 소희는 깜짝 놀라 그 말이 진심이냐고 물어본다. ●스페이스 공감(EBS 밤 12시5분)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클럽 문화의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크라잉 넛을 만나본다. 이들은 1998년 첫 번째 정규 앨범 ‘크라잉 너트’를 시작으로 2006년에 발표한 5집 ‘OK 목장의 젖소’까지 한국적 펑크를 선보이며 평단과 팬들의 두터운 지지를 얻고 있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옛 소련 스탈린 시대에는 러시아에 집 없는 사람이 없었다.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살 수 있었다는데, 말 그대로 방 한 칸이었다. 가족 구성원이 많든 적든 가족마다 방 한 개씩 배정받은 탓이다. 이것이 바로 공동 아파트 ‘코뮤날카’. 공동 화장실에 공동 부엌, 네다섯 명이 사는 우리 군 막사 같이 생겼다.
  • [씨줄날줄] 5성장군/박정현 논설위원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1950년 8월. 국군과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놓고 치열한 ‘대부동 전투’를 벌였다. 북한군은 3개 사단 2만여명을 투입해 파상공세를 벌였고, 국군은 학도병을 포함해 고작 7000여명으로 맞섰다. 북한군에 밀려 1사단 11연대 1대대가 철수한다는 보고를 받은 백선엽 1사단장은 현지로 달려갔다. 그는 “내가 선두에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라면서 권총을 뽑아들고 돌격했다. 장병들은 백 사단장의 뒤를 따랐고, 북한군은 새로운 증원부대가 오는 줄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백 장군은 10년 전 펴낸 회고록 ‘길고 긴 여름날 1950년 6월25일’에서 사단장이 직접 돌격하던 모습을 보고 미군 대령은 한국군을 ‘신병’(神兵)이라고 감탄했다고 소개했다. 백 장군은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육군참모총장(대장)을 지냈고, 북진 때는 평양에 첫 번째로 입성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전쟁의 살아 있는 영웅으로 불린다. 정부가 내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89세의 백 장군을 ‘명예 원수’로 추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명예원수가 되면 우리나라 첫 5성장군이 되는 셈이다. 군인으로서 엄청난 영예의 계급인 5성장군을 받은 미국 장군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비롯해 조지 마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공산국가에서는 5성장군보다 더 높은 대원수 제도가 있고, 스탈린·김일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백 장군이 5성장군이 되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원수는 전쟁 중에 수여하는 계급이다. 미국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4성장군들을 지휘·통솔하기 위해 5성장군으로 승진, 임명했다. 우리나라는 원수를 현역 대장 가운데 임명하고, 명예진급의 상한선은 대령으로 한다고 법령으로 정하고 있다.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원수 임명 방침이 알려지자 백 장군의 전력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일제하 만주군 중위 출신인 백 장군에게 줄 바에야 독립운동가에게 줘야 맞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평시에 원수 계급 수여가 적절한지도 따져볼 일이다. 법령 개정과정에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것 같다. 국내 제1호 5성장군이 나올지 주목된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그림속 103명의 유명인을 찾아라

    그림속 103명의 유명인을 찾아라

    #1. 요시프 스탈린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 모습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망원경으로 훔쳐 보고 있다. #2. 블라디미르 푸틴이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나란히 앉아 있고 오드리 햅번과 아돌프 히틀러가 같은 연주를 듣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같은 장면은 최근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 그림의 일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103명의 유명인들을 동시에 담아낸 이 그림 속 인물을 전부 밝혀 내는 게 최근 유행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www.telegraph.co.uk)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천문학자 등 유명 인물 54명을 표현한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 그림에는 유명 정치인은 물론 배우, 운동선수 등의 모습이 담겨있다. 당초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의 육상선수인 류샹(劉翔) 등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중국인들이 여럿 포함돼 있어 중국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됐다. 네티즌들의 ‘수사력’이 동원되면서 이 그림은 무명의 중국, 타이완 작가 3명이 2006년 그린 ‘단테와 신곡을 논하다’라는 작품으로 밝혀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신인 여배우 12명 돌아가며 만나는 재벌” 연 8만명 중동여행…여행사들 생계수단 체육활동중 부상자도… 도넘은 유공자 남발 결국 법정 가는 고교등급제 의혹 ’녹색기획관’은 자리 늘리기? 의사·경찰·‘나이트 삐끼’까지 “코끼리 주사 한 방만…” 애원
  • 세계 유명인사 모인 짝퉁 ‘아테네 학당’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 푸틴 전 대통령, 마오쩌둥이 한자리에? 세기의 유명인사 103명을 한자리에 모아 그린 그림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 학당’과 흡사한 이 그림에는 고대 철학자와 과학자 대신 현대의 역사적 인물 등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다. ‘Discussing The Divine comedy’(단테의 신곡)이라고 명명된 이 유화에는 간디와 부시 전 미국대통령, 마오쩌둥, 영국 찰스 왕자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스탈린, 아인슈타인 등 분야를 막론한 유명인 외에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던 중국 육상 영웅 류샹 등 스포츠 스타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날카로운 안목의 네티즌들은 다음의 특징들로 작가를 추정하고 있다. 우선 그림 속 여럿 인물들은 중국의 공산주의를 이끌었던 지도자, 또는 중국의 시인이며 아시아 이외의 인물이 많지 않다는 점이 특징으로 제시됐다. 또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개최에 큰 힘이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 출신의 IOC 명예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가 그림에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독특한 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밖의 증거로는 구석에 자리 잡은 3명의 인물인데, 네티즌들도 쉽게 알아보지 못한 이들은 중국과 타이완 출신의 아티스트라는 주장이 제기돼 그림을 그린 작가가 중국 출신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아트전문기자 알래스테어 수크(Alastair Sooke)는 “이 그림은 동시대 중국 아티스트들이 서구의 스타일과 소재를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카르마 2’, 스탈린블러드 모드 업데이트

    ‘카르마 2’, 스탈린블러드 모드 업데이트

    드래곤플라이가 온라인 총싸움게임 ‘카르마2’에 스탈린블러드 모드를 업데이트 했다. 이 모드는 최근 선보인 원하우스(One House) 맵을 배경으로 칼을 이용한 전투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와 함께 ‘뱃지’, ‘손목시계’ 등의 게임 아이템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고지된 웹 클랜 서비스(Web clan service)도 추가될 예정이다. 이들 아이템은 각각 소령과 소위 이상이면 구매 가능하며, 아이템 착용 후 게임에서 적을 물리칠 때마다 보너스 경험치 발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빠른 캐릭터 성장을 희망하는 게이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상화 ‘카르마 2’ 개발팀장은 “3월중으로 클랜전이 포함된 대규모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만큼 게임 이용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특파원 칼럼] 거듭나는 프랑스 좌파/이종수 파리 특파원

    [특파원 칼럼] 거듭나는 프랑스 좌파/이종수 파리 특파원

    최근 프랑스 좌파 진영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졌다. 극좌파 진영인 ‘혁명공산주의연맹(LCR)’이 외연을 넓혀 6일(현지시간) ‘반(反)자본주의 신당(NPA)’을 창당했다. 다른 축에서는 좌파 정당이 연대해 유럽의회 의원 선거,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혁 노선 수정 요구 등 사안에 따라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 좌파 진영은 그동안 너무 미세한 분화와 현실적 대안 제시 실패 등 몇가지 원인이 겹쳐 ‘무기력증’에 걸려 있었다. 특히 186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인 사회당의 존재는 거의 유명무실했다. 당내 중진들이 이끄는 계파간 불협화음으로 적전 분열상마저 드러냈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슈 선점’ 앞에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면서 제1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통의 공산당과 녹색당도 2007년 대선에서 예상 밖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얻으면서 ‘잊혀진 정당’이 돼가고 있다. 이처럼 주요 좌파 정당이 무력해지자 극좌파 진영이 나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LCR이다. 일간 르 몽드와 르 피가로 등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LCR 5일 역사속으로… 6일 NPA로 확대 탄생’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LCR는 1969년 태어났다. 1968년 5월 혁명 뒤 ‘친 트로츠키주의-반 스탈린주의’ 진영의 좌파 그룹이 결집한 정당이다. 관념적 과격성을 보이다가 1997년부터 총선에 자체 후보를 내고 노동총동맹 등 노조연합과 연계해 현실 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좌파 스타’ 로 급부상했다. 현재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34세의 브장스노는 2007년 대선에서도 4.08%대의 지지율로 전통의 공산당 후보를 제치며 기염을 토했다. 또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사르코지에 맞설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면서 ‘브장스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브장스노는 지난해 말 사회당과 거리를 둔 범좌파의 통합을 주창하면서 LCR보다 몸집이 3배나 불어난 NPA 창당을 주도했다. 정치학자 드니 팽고는 5일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브장스노가 이끄는 NPA의 창당으로 정치 영역이 요동을 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좌파의 활발한 움직임은 LCR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3일에는 좌파 진영 12개 정당·정파가 모처럼 회동했다. 그들은 지난달 29일 노동계가 주도한 총파업 당시 분출한 다양한 주장에 대한 지지를 공식 밝히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는 “개혁 노선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해 11월28일에는 공산당의 당수로 연임한 마리 조르주 뷔페 당수가 2009년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 좌파가 공동 전선을 형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정치적 힘은 아직 크지 않다. 2007년 대선에서 1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한 정도다. 그리고 하원의 의석 수도 많지 않아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서 일부는 사회당과 연대하거나 비슷한 성향의 소수 그룹이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맞는 대안을 모색하고 거듭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좌우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좌파의 이런 활발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침잠한 한국 좌파의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종북주의’ 논란으로 분당한 민주노동당과 진보 신당, 당 정체성 혼란으로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민주당…. 그들은 언제 ‘정치 기지개’를 켤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 시대’ 준비, 가속화됐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9월 건강 이상설 이후 첫 외국손님 접견이자 대외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처음으로 내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67세인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로서 부담을 더하고 있다. 김정일의 절대권력을 고려할 때 그의 공백과 후계구도는 북한의 향후 진로는 물론 한반도,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3월8일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6년만에 예정돼 있어 권력 엘리트들의 교체 등 후계구도를 위한 세대교체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도 지난해 말 펴낸 ‘2008년도 정세 평가와 2009년도 전망’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중폭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등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할 것으로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모두 후계자 선정 등 김정일 이후의 후계체제 정비를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당장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지명하거나 공표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 선호하는 후계자를 위한 인적 물갈이 등 조직 정비에 나서면서 후계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노동당의 움직임도 지적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실장은 2일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인 조선노동당에서 후계자 영도체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조직 지도부가 김경옥 부부장을 전국 시·도 당 지부를 관할하는 제1부부장에 임명, 전국적인 조직망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도 후계 구도 수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이미 ‘인민 추대, 수령의 차세대, 수령 생존시 결정’이란 후계자 선정 기준을 갖고 있다.”면서 “후계자가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 주요 지위에서 일정 기간 역할과 성과를 보여주는 후계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정일도 1973년부터 후계 수업을 받아왔지만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1980년 당 조직 지도부장이 되면서였다. 현재 김정일의 세 아들은 모두 김정일과 같은 ‘후계 수업’을 거치지 않아 권력 기반이 약하다. 때문에 당과 군의 연합 성격을 띠는 집단지도체제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는다. 우뚝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들은 기존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연착륙하면서 점진적인 권력 진화를 시도하려 할 것이란 주장이다. ‘포스트 김정일’과 관련,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부자세습 가능성 여부다. 북한은 건국 이래 수령제 통치체제를 다져왔고 봉건적인 북한의 정치문화와 스탈린주의에 가까운 사회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3대 세습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수령에게 절대적인 충신과 효자가 되라.’는 가르침이 뿌리박혀 있는 북한 상황에서 부자세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세 아들이 과거 김정일과 같은 치밀한 세습 준비를 받지 못한 데다 누구도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지위를 누가 잇더라도 최소한 과도기적으로는 군과 당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란 점에서 부자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결합은 유력한 시나리오로 설득력을 갖는다. 양무진 교수는 “당 중심 국가인 북한에서 선군 정치로 군부가 득세했다 하더라도 후계 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당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공론화가 필수적”이라면서 “군부 실력자들은 과도기적인 권력이양기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상징적, 실질적인 후계는 당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대권력의 김정일이 누구를 낙점하든 일단은 그가 대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적다. 다만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할지 아니면 잠시 권좌에 올랐다가 밀려날지는 후계자 자신과 둘레 인물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毛澤東)은 후계자로 화궈펑(華國鋒)을 내세웠지만 화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덩샤오핑(鄧小平) 에게 밀려나면서 과도기적인 인물로 그친 예도 있다. 당시 중국과 달리 북한에는 김정일 친위세력에 맞설 만한 파워 그룹이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스탈린·히틀러, 같은 듯 다른 ‘20세기 쌍둥이 독재자’

    스탈린·히틀러, 같은 듯 다른 ‘20세기 쌍둥이 독재자’

    1941년 6월22일 독일은 180만 병력을 투입해 소련을 기습공격했다.독일군은 2개월 이내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키예프,레닌그라드,모스크바로 진격했다.하지만 막강한 소련군에 막혀 전쟁은 4년이나 지속됐고,상황은 역전되어 1945년 4월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했다.히틀러의 최대 적수는 미·영 연합군을 이끈 처칠이나 루스벨트가 아니라 동시대 최악의 독재자로 쌍벽을 이룬 스탈린이었던 것이다. 히틀러(1889~1945)와 스탈린(1879~1953).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했더라면 어땠을까.아마도 세계의 운명은 한층 비참하고 끔찍했을 것이다.실제 스탈린과 히틀러도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스탈린은 “독일인과 함께했다면 우리는 무적이었을 것”이라고 했고,히틀러는 “양측에서 냉철한 현실주의의 정신을 지녔다면 영구적으로 동맹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했을지도 모른다.”고 술회했다.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왜 스탈린과 정면대결을 벌였을까.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조행복 옮김,교양인 펴냄)은 두 체제의 성립 배경과 작동 방식,이데올로기적 지향의 닮은 점과 차이점을 다면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 같은 물음에 해답을 제시한다. 두 독재 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패전 후 러시아는 차르 제국에서 공산주의 공화국으로,독일은 권위주의적 제국에서 의회제 공화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폭력과 경제 위기가 촉발됐다.공통으로 발생했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소련에서는 부르주아를 파멸시켜 혁명에 유리하게 작용했고,독일에서는 파산한 예금주들의 분노가 히틀러식 민족주의의 등장에 기여했다.공산주의 소련과 1914년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국제 사회로부터 천민 취급을 받았으며,고립감 때문에 한층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갔다.이것이 결국 독재 체제를 출현시켰다. 국가 운영에서도 비슷했다.대중의 지지를 구하고 유지한 방식,국가의 억압을 확립하고 법률 제도를 파괴한 방식,문화의 전유와 착취,대중적 군국주의의 표현과 총력전 수행에서 그렇다. 하지만 두 체제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스탈린은 공식적으로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건설을 공언했지만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혐오했다.히틀러는 볼셰비즘을 서구 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적(主敵)으로 보았다.반면 스탈린은 히틀러의 독일을 가장 위험한 제국주의 국가로 믿었다.독재자의 DNA를 공유했던 두 사람 사이에는 이처럼 한쪽을 파멸시켜야 한쪽이 살아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1990년대 이후에 발굴된 수많은 통계와 연구논문들,독재 체제를 살았던 실존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 등 방대한 자료 분석을 근거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그 중에서도 두 독재자가 어떻게 그토록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는지를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지은이는 독재자와 국민의 관계가 복잡하고 양면적이었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국민들은 오랫동안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폭력,경제적 궁핍의 시절을 보냈다.위기에서 구해 줄 영웅을 갈구했고,두 지도자는 이들의 심리적 불안정과 지도자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독재 체제가 대중의 갈채와 참여,무제한의 권력에 대한 매혹이 길러낸 대중주의적 독재체제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위기는 진정한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최악의 독재자를 탄생시키기도 한다는 역사적 사실은 총체적 경제난국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이때,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교훈이 아닐까.4만 5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중계석] 한반도 통일의 꿈은 살아 있다/고트프리트 킨더만 뮌헨대 교수·한반도 전문가

    [중계석] 한반도 통일의 꿈은 살아 있다/고트프리트 킨더만 뮌헨대 교수·한반도 전문가

    “한반도 통일의 꿈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한반도 전문가 고트프리트 칼 킨더만(82) 뮌헨대 교수는 10일(현지시간) 독일의 유력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한반도 통일의 꿈은 살아 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인들은 동아시아의 위대한 문화국민”이라면서 “한반도 통일의 꿈은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앞으로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주장했다.아시아 전문가로 특히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은 킨더만 교수는 한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 칼럼을 FAZ에 실었다. 킨더만 교수는 기고문에서 한반도 분단,한국전쟁,경제성장,민주화,남북관계 등을 차례로 설명하며 한국전쟁 발생 원인에 대해 “미국의 애치슨 독트린으로 한반도가 미국의 보호지역에서 벗어나면서 김일성이 스탈린을 설득해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베트남,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한국전쟁은 아시아에서 벌어진 최초의 국제전이자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전쟁 이후 패전국인 독일처럼 분단국이 된 것에 대해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의 위대한 문화국민’인 한국인들이 자치를 실시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연합국들이 신탁통치를 결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면서 “특히 미국과 소련이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반도를 2개의 강대국이 2개 지역으로 분할해 민주적 자치정부로 육성한다는 계획의 위험성은 당시에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킨더만 교수는 또 “전쟁으로 피폐된 한국은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와 대기업간의 밀접한 협력,수출지향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대륙 국가들 중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등 이 지역의 모범국가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아이들의 이름을 잘못 지어 후회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나도 그런 축일까.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이름을 ‘은별’이라 지었더니 “그럼 첫째는 금별이겠네요?”라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딴에는 ‘(그리운) 임은 별(같은 존재)’란 식으로 ‘문학적으로 지었다.’고 우기지만 그딴 설명이 통할 리 없다.  그래도 다음 사람들에 견주면 난,꽤 성의있게 이름을 지은 축에 들지 않을까.1일 야후 닷컴에 그레이엄 우드란 블로거가 올린 글 ‘아이 이름으로 지어선 안 될 6가지 이름’에 소개된 사례들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아이 이름으로 ‘애플’이나 ‘파일럿’을 떠올리는 건 애교로 보아 넘겨야 한다.정말로 아이가 자랄 때 어려움을 겪기 원한다면 다음 6개 리스트에서 골라 내기만 하면 된다.    1.배트맨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민족 중 하나다.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정부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아이들 이름을 짓는 이들이 하도 늘어 100가지의 스페인식 이름(예를 들어 후아티나나 미구엘 같은)을 권장하기까지 했다.그랬더니 왠걸,호치민(베트남 공산당 창건자)과 아이젠하워(미국 대통령)를 아기 이름으로 붙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단다.물론 히틀러란 독창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라인은 적어도 60명이나 된다.    2.이클립스 글래시스  2001년 6월 아프리카 남부에서 완전 개기일식이 있었다.짐바브웨와 잠비아 정부는 주민들에게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지 말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 캠페인이 참 잘도 먹혔던 것 같다.이때 출생부를 들여다 보면 이클립스 글래시스 반다,토털리티 주,애뉼라 맥홈보 같은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3.NAAKTGEBOREN(벌거숭이)  나폴레옹이 1810년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현지인들은 이름 하나 만으로 살고 있었다.즉 라스트 네임이 없었다.프랑스인들 역시 수십년 전에는 이랬었다.해서 나폴레옹은 모든 네덜란드인들은 성을 갖도록 명령했고 네덜란드인들은 저항 정신을 드러낸답시고 기발한 성을 갖다붙였다.이렇게 해서 NAAKTGEBOREN(벌거숭이),SPRING INT VELD(들판에 점프),PIESTS(오줌발)란 성이 탄생했다.후손들에겐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나폴레옹의 정책은 꽤 오래 버텼고 때문에 이들 성은 오늘날 네덜란드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4.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이름을 매우 신중하게 짓기로 유명하다.절대 남의 나라 사람들의 성을 따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러시아의 거장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아이슬랜드에 귀화를 신청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정부는 고민 끝에 예외를 인정했고 이 이름은 아이슬랜드에서 공인된 몇 안 되는 이름에 오르게 됐다.    5.YAZID  이맘 후세인 이븐 알리는 시아파 무슬림 신도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 중 하나.7세기쯤 그는 수니파 칼리프인 야지드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그리고 이슬람 역사 최대의 음모극이 된 이 사건 이후 야지드는 수니파에게선 흔한 이름으로,시아파 사이에선 경멸스러운 이름으로 각인됐다.말하자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를 아들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6.아돌프  죽음의 수용소와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아돌프란 이름 역시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름으로 금기시하던 것이었다.그러나 1949년에 한 불행한 젊은이가 그 이름을 얻었다.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아들이었다.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1930년대 히틀러와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인데 왜 그가 개명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지금 57세인 알렉산더 아돌프 히틀러를 포함한 아들 넷은 ‘총통’의 가계도를 끝내 버리기 위해 자손을 갖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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