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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핀란드화’의 종언/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핀란드화’의 종언/구본영 논설고문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말이 유창한 핀란드 여성이 등장했던 껌 광고 탓일까. 필자에게는 지금도 핀란드 하면 사우나나 충치 예방에 좋다는 감미료인 자일리톨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선입견은 2001년 이만섭 국회의장의 ‘의장단 외교’를 취재할 때는 깨졌다. 휴대전화 생산 세계 1위 기업 노키아를 방문, ‘강소국 핀란드’의 면모를 확인하면서다. 당시 새삼 놀라운 발견은 우리와 핀란드가 지정학적 환경이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인접한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큰 나라들에 국토를 유린당한 핀란드의 슬픈 역사가 묘한 동병상련을 불러일으키면서다. 우리 또한 중·일이라는 이웃 ‘공룡’들에 시달려 왔으니…. 1155년 스웨덴에 병합됐던 핀란드는 1809년 러시아의 자치령이 됐다. 이후 1917년 러시아혁명 후 독립을 선언했으나 동서 냉전기에 옛소련과 국경을 맞댄 게 악몽이었다. 1948년 스탈린 치하 소련과 ‘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한 핀란드는 외교 주권을 일부 포기해야 했다. 미국의 유럽 경제원조계획인 ‘마셜 플랜’의 수혜도 입지 못했다. 냉전기 핀란드의 외교적 행보를 일컫는 국제정치 용어가 ‘핀란드화’다. 여기엔 긍정적 의미가 없진 않다. 핀란드가 옛소련과 국경을 접했던 나라 중 위성국으로 전락하지도,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지도 않은 유일한 나라란 점에서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 초강대국을 옆에 둔 약소국이 자국의 이익을 조금씩 양보하는 ‘사대 외교’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마침내 ‘핀란드화’에서 벗어나는가. 타스통신은 그끄저께 “핀란드와 미국이 핀란드 남부에서 ‘가상 적군’의 공습에 맞대응하는 합동 공군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핀란드가 더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자세다. 옛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와 표면적 우호관계는 유지해 온 핀란드가 이제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런 ‘탈(脫)러시아 외교’는 재작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게 결정적 계기라는 관측이다. “러시아의 ‘침략 본능’에 불안을 느낀 핀란드가 멀리 떨어져 있어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을 생존의 새 파트너로 선택한 것 같다”(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는 분석도 그 일환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우리를 음양으로 압박하고 있는 요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한·미 동맹 균열 가능성을 일축하며 중국과 손잡으면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고 했단다. 하지만 진즉 중국과 손잡았지만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려 온 북한에서 배고픔을 못 이긴 탈북 대열이 꼬리를 무는 현상은 뭘 뜻하나. 핀란드가 ‘핀란드화’의 종언을 선언한 배경을 곱씹어 볼 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개인의 오만과 독선, 어떻게 역사를 바꿨나

    개인의 오만과 독선, 어떻게 역사를 바꿨나

    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마거릿 맥밀런 지음/이재황 옮김/산처럼/368쪽/1만 8000원 국내에서 ‘역사사용설명서’라는 책으로 주목받은 옥스퍼드대 세계사 교수의 신작이다. 역사가들은 천천히 흐르는 강처럼 수백, 수천년에 걸쳐 일어나는 변화에 주목해 역사를 보기도 하고 정치나 지적 유행, 이데올로기의 갑작스런 변화 등 단기적인 것들에 비중을 두고 한 시대를 조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사상가든 예술가든 기업가든 정치 지도자든 개인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며 “역사가 잔치라면 맛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20세기 초 원자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았다면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나치스가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 물리학자들을 망명으로 내몰아 그들이 연합국들을 위해 일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어떻게 됐을까.’(9쪽) 저자는 개인의 특성 중에서도 리더십, 오만과 독선, 모험심, 호기심, 관찰 등이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지 고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마거릿 대처, 스탈린, 리처드 닉슨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개인적 특성이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돼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고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는지 짚었다. 인물들의 집안 배경, 성장 과정, 학교생활, 성공과 좌절, 인간관계, 개인적 약점과 장점 등도 흥미롭게 엮었다. 저자는 “커다란 사건 한복판에서 역사의 물길을 돌린 이들도 있고, 용기 등을 발휘해 새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도 있다”며 “윈스턴 처칠 같은 민주적 지도자나 히틀러 같은 폭군의 등장과 역할을 살피지 않고선 20세기 역사를 제대로 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최고 명주 ‘마오타이주’

    [글로벌 인사이트] 中 최고 명주 ‘마오타이주’

    1년 동안 9번 끓이고 8번 발효 7번 걸러내 ‘탄생’ 닉슨·김일성도 ‘건배’… 中 역사의 순간마다 등장 구이저우성의 마오타이주(茅台酒) 마케팅 전략은 신비주의이다. 가짜가 많기 때문에 진짜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마오타이진으로 몰려오지만, 양조장만큼은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다. 지난 10일 구이저우성 고위층의 협조로 우여곡절 끝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술문화박물관단지 ‘국주문화성’(國酒文化城) 내에 있는 양조장을 견학했다. 양조장 문이 열리자 된장 또는 간장을 빚는 듯한 특유의 장향(醬香)이 코끝을 찔렀다. 중국 바이주(白酒)의 향은 농(濃), 장(醬), 청(淸), 미(米) 등 12가지로 분류되는데 마오타이주는 장향형에 속한다. 1862년에 지어져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에선 20여명의 기술자들이 대장간을 방불케 하는 열기 속에서 수수(가오량·高糧)와 누룩을 뒤섞고, 발효된 수수를 가마솥에 올려 증류시켜 햇술을 뽑아내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작업장 구석에 있는 수도꼭지로 마오타이 원액이 졸졸 흘러나왔다. 양조장 관리자인 쩌우리구이(鄒立貴) 부주임이 건넨 원액을 한 모금 마시자 목구멍과 가슴으로 불덩이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듯했다. 원액은 7차례 걸러져야 비로소 마오타이주가 된다고 했다. 마오타이주가 천하제일의 바이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의 수수와 츠수이허(赤水河) 강물 덕택이다. ‘붉은 수염’으로 불리는 이곳 수수는 작고 껍질이 단단하며 알맹이가 차져 최상의 원료로 꼽힌다. 마오타이진을 휘감고 흐르는 황톳빛 츠수이는 광물질이 풍부해 술맛을 깊게 한다. 마오타이주의 생산 주기는 1년이다.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시작해 1년 동안 아홉 번 끓이고 여덟 번 발효시킨 뒤 일곱 번에 걸쳐 햇술을 걸러 낸다. 공정별로도 수십 개의 비법이 숨어 있다. 병입·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정이 사람 손에 의존하는 전통 방식 그대로다. 마오타이주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15년 11월 ‘파나마 태평양 국제박람회’부터다. 당시 관람객이 없던 중국 전시관에서 술병이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마오타이주 향기가 장내에 퍼져 관람객이 구름처럼 모였고, 마오타이주는 수많은 출품작을 제치고 금상을 차지했다. 국주문화성에는 마오타이주가 빛낸 역사적 사건이 빠지지 않고 기록돼 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국공합작, 마오쩌둥·스탈린 회동,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등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중요 회담엔 반드시 마오타이주가 있었다. 북한 김일성과 중국 지도자들이 마오타이주로 건배하는 장면도 네 번이나 등장했다. 보통 마오타이주는 5년간 숙성된 뒤 시장에 나오지만, 30년산과 50년산도 있다. 50년산의 맛은 독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웠고, 향기는 투박하면서도 달콤했다. 빈 잔을 휘감은 장향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마오타이진(구이저우성)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여성을 악의 대명사 격으로 묘사 지배층의 반여성적 시각 드러내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 힘/336쪽/1만 6000원 흔히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광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계몽주의의 환한 빛이 세상을 비추는 근대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마녀사냥은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1805년 최후의 재판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그동안 근대 세계의 형성에 관심을 두고 저작 활동을 해온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등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진 마녀사냥을 서구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의 필연성과 마녀사냥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미시사회학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저자가 근대 초에 마녀사냥이 정점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하며 풀어낸 원인은 이렇다.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을 정치적 기제로 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했고, 마녀사냥은 이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근대성의 산물이었다. 중세부터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종교 문화로 떠올랐지만 실상은 귀신이나 요정, 각종 영과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이 강력하게 잔존해 있었다. 초자연적인 힘들에 대한 믿음은 민중들에게 마술적 세계관이 되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을 치거나 병을 치료해주던 민간 신앙 전파자들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으며 국가와 교회, 마을공동체의 복합적 관계 속에 16~17세기 마녀사냥이 유럽을 휩쓸었다. 1400년부터 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마녀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은 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점에서 마녀사냥의 첫 번째 성격은 민중을 억압하는 근대성의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마녀사냥을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일탈했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온 현상으로 규정한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근대 유럽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확고했고, 이런 의미에서 신성의 반대되는 개념인 마녀는 억지로라도 발명됐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마녀사냥이 ‘반(反)여성성’을 띤 억압이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 희생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1350년 이전 악마적인 사악한 행위의 재판 대상자 중 70%가 남성이었고 30%가 여성이었지만 14세기 후반에는 남성 대 여성 비율이 42% 대 58%로, 15세기에는 여성 비율이 60~70%로 늘게 되고, 16~17세기로 가면 80%에 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지배계층인 남성들의 인식에서 여성은 욕망에 약하며, 모든 악덕은 그들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반여성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같은 생각은 악의 대변인인 마녀가 대개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고착화된다. 프랑스의 영웅이자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이 점에서 마녀라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잔 다르크를 생포한 영국 역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마녀 혹은 이단이라는 증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잔 다르크는 자신을 우상화하고, 악령의 도움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주 교수는 결론에서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행위는 중·근대 유럽뿐 아니라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편을 악으로 모는 마녀사냥은 문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야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美·蘇 수소폭탄 도발 또 다른 전쟁의 시작

    美·蘇 수소폭탄 도발 또 다른 전쟁의 시작

    수소폭탄 만들기/리처드 로즈 지음/정병선 옮김/사이언스 북스/1160쪽/5만원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인 동시에 시작이었다.1945년과 1950년 사이 미국과 소련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선 치열하게 원자폭탄에서 수소폭탄으로 이어지는 핵무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긴장과 갈등은 서서히 고조되고 과학자, 군인, 정치가들은 전쟁과 동맹이 뒤엉킨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수소 폭탄 만들기’는 원폭 투하로 2차 대전이 종결된 후 수소폭탄과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를 그렸다. 원자폭탄이 탄생해 일본에 투하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원자폭탄 만들기’(1986)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리처드 로즈가 1000여건의 문헌과 육성 증언을 바탕으로 실감 나게 재구성했다. 책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50년이던 1995년 출간돼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베스트 1위에 올랐을 만큼 화제가 됐었다. 책에 따르면 수소폭탄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소련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 과학, 군사적 사안들이 충돌·분열·융합해 태어난 결과물이다. 강경파, 매파 정치가와 군인들은 적대국이 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전쟁 계획을 짰고 과학자들은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폭탄 개발에 뛰어들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이고리 쿠르차토프 등 스타 과학자들과 트루먼, 스탈린, 흐루쇼프, 존 F 케네디, 이승만 등 정치가들이 고민과 고뇌, 공포와 광기, 이데올로기와 지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실명으로 그려진다. 당시 활발하게 진행된 러시아의 첩보 활동과 원폭 개발에 얽힌 숨은 얘기도 다루면서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사실도 폭로했다. 1947년 4월 냉전이 개시됐을 때 미국에는 사용 가능한 원자폭탄이 1개도 없었다는 것, 소련은 1960년까지 미국의 핵폭탄을 이용한 전략 폭격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것,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트루먼은 미군의 합동참모본부로 하여금 9개의 원자폭탄을 괌으로 보내 한반도 또는 중국을 핵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토록 했다는 것 등이다. 로즈는 “핵무기는 국가 주권을 제한해 국제사회의 폭력을 줄이는 바로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주권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다”고 말한다. 이 미묘한 균형 틈새를 뚫고 핵 기술은 확산됐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지난 1월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책을 통해 되돌아보게 되는 역사의 진실들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20년 만에 최악 무력충돌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20년 만에 최악 무력충돌

    아제르바이잔 일방적 휴전 선언 아르메니아 “전투 중단 의미 아냐” 옛 소련의 대표적인 분쟁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20년 만에 최악의 무력 충돌을 벌여 최소 30명이 숨졌다. 국제사회는 오랜 기간 대립해 온 두 나라가 전면전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AP와 AFP 등에 따르면 두 나라가 영토 분쟁을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해 아르메니아 병사 18명, 아제르바이잔 병사 12명이 숨졌다. 열두 살 소년이 숨지고 어린이 2명이 다치는 등 민간인 사상도 발생했다. 3일에도 일부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대포 등으로 먼저 공격해 반격한 것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기독교 분파인 동방정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제르바이잔은 오랜 기간 종교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해 온 곳이어서 1920년 소련 복속 당시에도 아르메니아에 귀속됐지만 1924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에 편입되며 영토 갈등이 불거졌다. 20% 정도에 불과한 아제르바이잔계 무슬림이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들을 무단 통치하면서 민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소련 쇠퇴기인 1988년 지역 주민들이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상황을 지켜보던 아르메니아도 이듬해 “주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1991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으로 독립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력 충돌이 본격화됐다. 1994년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의원 총회 중재로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로 3만여명이 숨지고 1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현재 아르메니아가 분쟁 지역 대부분을 점령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에 반발하고 있어 국지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진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같은 동방정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터키는 인종·종교적 유대를 지닌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도 카스피해와 인근 지역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려 아제르바이잔과의 연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은 3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해 교전이 멈췄다고 주장한 반면 아르메니아는 교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폭력 충돌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부응하기로 했다”면서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아제르바이잔 측의 성명은 정보전의 일환”이라며 “이 성명은 전투행위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IT 거물’ 그로브 전 인텔 CEO 별세

    ‘IT 거물’ 그로브 전 인텔 CEO 별세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을 30년 넘게 이끌었던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 앤디 그로브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9세. 그로브는 1980년대 중반 인텔의 주력 사업을 메모리칩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하면서 회사의 성공을 이끈 인물로 유명하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가능성을 내다본 그의 판단이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과 맞아떨어지면서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다니는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난민이었다. 인생의 기점은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를 만나 인텔의 세 번째 직원이 된 것이다. 이후 1979년 인텔 사장, 1987년 CEO에 이어 2005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침묵’ 깬 김현수 2G 연속안타, 팀은 10연패… 다음 과제는 “잘 맞은 타구”

    ‘침묵’ 깬 김현수 2G 연속안타, 팀은 10연패… 다음 과제는 “잘 맞은 타구”

    오랜 침묵을 깨고 첫 안타를 신고했던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경기 연속 안타를 쳐냈다. 김현수는 1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M.스타인브레너 필드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뉴욕 양키스전에서 4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김현수는 전날 메이저리그 24번째 타석 만에 첫 안타를 때렸다. 김현수는 2회초 선두타자로 등장, 양키스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의 초구를 공략했다. 빗맞은 타구는 느리게 2루수 쪽으로 굴러갔고, 양키스 2루수 스탈린 카스트로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됐다. 김현수는 그 사이 1루를 밟았고, 기록원은 처음엔 2루수 실책으로 썼다가 내야안타로 정정했다. 1루 주자 김현수는 1사 후 헨리 우루티아의 2루수 앞 땅볼 때 2루에서 포스 아웃을 당했다. 0-7로 점수 차가 벌어진 4회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간 김현수는 바뀐 투수 체이슨 슈리브의 공을 공략해 다시 2루수 땅볼로 아웃됐다. 마지막 타석은 7회초였다. 김현수는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비센테 캄포스와 상대해 또다시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다만 2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쳤지만 3타석 모두 잘 맞은 타구는 없었다. 따라서 배트 중심에 맞혀 좋은 타구를 만드는 게 김현수의 다음 과제로 꼽힌다. 김현수는 1-7로 뒤진 7회말 대수비 L.J. 호스와 교체됐다. 안타를 추가한 김현수의 시범경기 타율은 0.074(27타수 2안타)로 조금 올라갔다. 한편 볼티모어는 양키스에 1-7로 졌다. 볼티모어는 이날까지 시범경기 10경기에서 모두 패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베일 속 푸틴 장녀는 ‘호화 생활’ 의학도

    베일 속 푸틴 장녀는 ‘호화 생활’ 의학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맏딸로 추정되는 이의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러시아 주간지 더뉴타임스는 최신호에서 푸틴의 장녀 마리아(30)가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의 펜트하우스를 소유한 의학도라고 전했다. 마리아는 모스크바대에서 내분비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네덜란드 출신 사업가 요릿 파센(36)과 결혼해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더뉴타임스는 기사와 함께 마리아로 추정되는 금발의 여성이 2008년 네덜란드의 한 축제에서 19세기 유럽 여성의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 2010년 이탈리아 휴가 중 친구 2명과 찍은 사진 등을 게재했다. 마리아는 아버지가 2000년 권좌를 잡은 이후 15년이 넘도록 한 번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리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마샤 보톤체바’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친구들과 아리아호라는 이름의 고급 대형요트를 타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을 자주 방문하는 등 호화 생활을 즐긴다고 더뉴타임스는 전했다. 마리아 부부는 모스크바에도 고급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저택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심복이 살았던 곳으로 전한다. 크렘린 측은 이에 대해 “대통령 가족에 관한 어떤 보도와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마리아의 동생으로 한때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설이 돌기도 했던 푸틴의 둘째 딸 예카테리나(29)는 지난해 말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러시아 청년 부호와 약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푸틴, ‘정적 제거’ 내용 만화로 배포…섬뜩한 경고

    푸틴, ‘정적 제거’ 내용 만화로 배포…섬뜩한 경고

    러시아 친정권 정치조직이 푸틴의 정적들을 숙청하는 내용의 만화를 온라인에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비록 만화의 분위기는 코믹하지만, 실존 인물을 본 딴 캐릭터들이 등장해 살해 당한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을 준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등 외신들의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전러시아국민전선(All-Russia People’s Front, ONF)은 최근 SNS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짧은 만화 여러 편을 공개하고 있다. ONF는 지난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창립한 정치조직으로, 러시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과 여러 비정부기구(NGO)들 간 연합체의 성격을 띤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제안, 새로운 얼굴’이라는 모토 아래 정치혁신과 부패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번 만화에서 푸틴에 의해 제거당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뇌물수수 등 부패혐의가 공식적으로 확인돼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부패와의 전쟁에서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ONF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의 환영’(Putin’s Reception)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들 만화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각 화에는 푸틴과 정치 인사 한 사람씩이 등장하며, 푸틴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상대방은 소형 비행접시, 거대로봇 등 다양한 존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 부패혐의가 확인된 일부 인물은 푸틴에게 해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뇌물수수죄로 해고된 뒤 많은 고초를 겪었던 알렉산더 호로샤빈 사할린주정부 주지사는 만화에서 혐의를 부인하던 중 앉아있던 의자 아래의 함정이 작동돼 지하로 떨어진다. 일부 인물들은 자신의 직책과 관련된 방식으로 살해당하고 있다. 두 번이나 등장한 빅터 치칼리크 카렐리야 공화국 천연자원 환경부 장관의 경우, 벌목용 톱과 나무인간의 도끼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번 만화는 분명 황당한 내용과 연출로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핵심 정치조직이 정치 인사들을 자비심 없이 축출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과거 숙청을 일삼았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행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한편 해당 만화를 접한 해외 네티즌들은 이번 만화를 “러시아에서 지금도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 “푸틴의 희망이자 경고”라고 말하며 서슴없이 정적을 공격해 온 러시아 정권의 평소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푸틴의 친위조직, 만화로 경고한 ‘푸틴의 정적 제거’

    푸틴의 친위조직, 만화로 경고한 ‘푸틴의 정적 제거’

    러시아 친정권 정치조직이 푸틴의 정적들을 숙청하는 내용의 만화를 온라인에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비록 만화의 분위기는 코믹하지만, 실존 인물을 본 딴 캐릭터들이 등장해 살해 당한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을 준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등 외신들의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전러시아국민전선(All-Russia People’s Front, ONF)은 최근 SNS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짧은 만화 여러 편을 공개하고 있다. ONF는 지난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창립한 정치조직으로, 러시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과 여러 비정부기구(NGO)들 간 연합체의 성격을 띤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제안, 새로운 얼굴’이라는 모토 아래 정치혁신과 부패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번 만화에서 푸틴에 의해 제거당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뇌물수수 등 부패혐의가 공식적으로 확인돼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부패와의 전쟁에서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ONF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의 환영’(Putin’s Reception)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들 만화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각 화에는 푸틴과 정치 인사 한 사람씩이 등장하며, 푸틴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상대방은 소형 비행접시, 거대로봇 등 다양한 존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 부패혐의가 확인된 일부 인물은 푸틴에게 해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뇌물수수죄로 해고된 뒤 많은 고초를 겪었던 알렉산더 호로샤빈 사할린주정부 주지사는 만화에서 혐의를 부인하던 중 앉아있던 의자 아래의 함정이 작동돼 지하로 떨어진다. 일부 인물들은 자신의 직책과 관련된 방식으로 살해당하고 있다. 두 번이나 등장한 빅터 치칼리크 카렐리야 공화국 천연자원 환경부 장관의 경우, 벌목용 톱과 나무인간의 도끼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번 만화는 분명 황당한 내용과 연출로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핵심 정치조직이 정치 인사들을 자비심 없이 축출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과거 숙청을 일삼았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행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한편 해당 만화를 접한 해외 네티즌들은 이번 만화를 “러시아에서 지금도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 “푸틴의 희망이자 경고”라고 말하며 서슴없이 정적을 공격해 온 러시아 정권의 평소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러시아판 ‘國父 논쟁’

    러시아판 ‘國父 논쟁’

    ‘강한 러시아’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왼쪽·64) 러시아 대통령이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소비에트연방의 창설자 블라디미르 레닌(오른쪽·1870~1924)을 정면으로 비판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지도자가 ‘건국의 아버지’ 레닌을 강하게 비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푸틴은 그동안 유권자들을 의식해 러시아 역사와 관련한 발언에 신중을 기해 왔다. AP 등에 따르면 푸틴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에서 지역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레닌이 러시아에 ‘시한폭탄’을 안겼다”며 부정적 평가를 했다. 레닌이 소련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주장한 단일국가로 만들지 않고 연방국가로 만든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방국가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영토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는 의미다. 이어 “레닌과 볼셰비키 정부가 제정 러시아의 황제인 차르를 비롯해 로마노프 왕가의 가족과 신하들을 잔혹하게 처형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레닌이 수천 명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를 학살했다고 언급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이 성역으로 여겨져 온 레닌의 통치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최근 러시아가 처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15개 위성국은 독립 노선을 걸었다. 최근 이들 국가 중 일부가 친서방 정책을 내세우면서 러시아의 안보는 치명타를 맞았다. 예컨대 크림반도에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이 자리하는데, 이 항구는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이런 까닭에 푸틴은 “(서방 제재로 인한) 지금의 러시아 경제 위기도 모두 레닌 탓”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푸틴은 스스로를 차르라고 칭할 만큼 제정 러시아에 남다른 유대감을 지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푸틴이 집무실에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인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초상화를 걸어 둘 만큼 절대왕정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2000년 집권 이후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16년째 권좌를 지켜 온 푸틴은 이미 안팎에서 차르로 불린다. 심지어 러시아 정교회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해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로 볼셰비키에 살해당한 니콜라이 2세의 유해 확인 작업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로마노프 왕조 40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국민이 과거 제정 러시아처럼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도록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이 예전 중국 지도부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문화혁명 비판처럼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레닌은 여전히 상당수 러시아 국민에게 국부(國父)로 여겨질 만큼 존경받고 있다. 지금도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이 러시아 대통령궁인 크렘린 바로 옆 붉은 광장에 나란히 안치돼 있을 정도다. 레닌의 시신을 옮겨야 하느냐는 물음에 푸틴은 “사회의 분열을 피하려면 이런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모호하게 답했다. 한편 연봉 11만 달러(약 1억 3000만원)인 푸틴의 재산이 400억 달러(약 48조원)에 이른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고 BBC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프로파간다 파워(데이비드 웰치 지음, 이종현 옮김, 공존 펴냄) 선전은 ‘정보 전달’이나 ‘교육’과는 다른 정치적 행위다. 프로파간다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선전이 전쟁의 조직적인 공략 수단으로 대규모로 이용되면서 대중은 선전의 목적과 방법을 의심하게 됐고, 거짓말, 속임수, 세뇌와 같은 단어와 동의어가 됐다. 저자는 선전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쳐 초고속 정보통신 사회관계망이 특징인 21세기까지도 더 정교해지고 효과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역사상 가장 유능한 프로파간다 전술가로 꼽히는 나폴레옹은 “1000명의 적군보다 3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며 1801년 프랑스 신문 73개 중 64개를 폐간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도 절대적 지도자 숭배라는 프로파간다로 새로운 왕조를 건설했다. 255쪽. 3만원. 역사 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이야기(박지욱 지음, 시공사 펴냄) ‘진료실의 고고학자’로 자평하는 저자는 의학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뇌졸중이 스탈린을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6·25전쟁은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에 만연했던 결핵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염세적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책에서는 한국의 비극적 운명이 결정된 회담으로 유명한 1945년 2월 얄타회담에 대한 의학적 진단도 내리고 있다. 얄타회담의 거두인 영국 처칠 총리는 심한 건망증을 앓았고, 소련 스탈린은 과도한 의심증을, 그들에 비해 젊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심각한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이들 셋은 공교롭게도 모두 뇌졸중으로 숨졌다. 뇌기능이 완벽하지 못했거나 이상으로 인해 판단력이 약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328쪽. 1만 3000원. 플레이(김재훈·신기주 지음, 민음사 펴냄) 작은 벤처에서 시작한 게임 회사 넥슨은 어떻게 글로벌 공룡이 됐을까.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우리나라 게임 역사를 새로 쓴 기업이 넥슨이지만 회장도 없고, 비서도 없고, 직함도 없는 독특한 기업 문화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넥슨 창업주이자 은둔의 경영자로 꼽히는 김정주와 그의 친구인 송재경의 만남부터 시작한다. 21년 된 청춘 기업 넥슨의 역사는 한 편의 게임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어제의 친구가 넥슨을 떠나 강력한 라이벌이 되고, 경쟁자가 회사의 기둥이 된다. 넥슨과 관련된 수십명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이 교본서로 삼을 만하다. 글과 카툰으로 구성됐다. 376쪽. 2만원.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로딘 던바 지음, 김학영 옮김, 반니 펴냄) 인간의 진화를 다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인간은 대형 유인원 과에 속한다.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은 약 2만년 전 번성했던 유인원 종의 후손이다. 기후 변화로 숲이 사라지면서 수십종이 멸종하고, 영장류가 사라진 무대는 원숭이가 재빠르게 차지했다. 인간이 인류로 진화한 데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종교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문화적 행위가 자리잡고 있다.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뇌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졌고, 현재와 같은 골격 구조가 만들어지는 등 다섯 단계의 전환점을 거쳤다. 이 책은 뇌의 절대적 부피와 사회적 관계망 크기가 관련돼 있고, 뇌에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과 예산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진단한다. 416쪽. 1만 9000원. 정의:세상이 정의로워지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최진기 지음, 휴먼큐브 펴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문학 강사인 최진기가 쉽고 재미있게 정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개념부터 칸트의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을 통한 절대 선에 대한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설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작이 된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해설서 격이다. 샌델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를 제시한다. 184쪽. 1만 2000원.
  • 들리나요, 시대의 아픔

    들리나요, 시대의 아픔

    노래, 세상을 바꾸다/유종순 지음/목선재/362쪽/1만 4800원 노래가 위로다/김철웅 지음/시사인북/351쪽/1만 5000원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에 실렸던 록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로망’. 구슬프면서도 흥겨운 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비정규직 또는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그런데, 러시아에서 왔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칭송받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뒷걸음치는 말’이 원전이다. 비소츠키는 이 노래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관료들이 러시아 인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제멋대로 달리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기득권층 비판과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직시했던 비소츠키였기에 정부의 금지 조치로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도, 음반도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2008년 러시아 국민이 뽑은 ‘러시아의 인물’ 중 스탈린, 표트르 대제, 레닌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그의 노래와 삶이 러시아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래, 세상을 바꾸다’는 순응이 아니라 거부와 비판, 저항을 통해 예술로 승화한 서른다섯 곡의 노래들을 복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가 보기에 이른바 ‘저항음악’은 정형화된 음악적 장르가 아니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사회 변화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그렇게 부른다. 상업적 대중음악도 저항음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상과 꿈을 노래하고 이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게 바로 저항음악”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우리에게 동요로 익숙한 ‘라 쿠카라차’. 원래 동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노래다. 15세기 스페인 민요에 뿌리를 둔 라 쿠카라차는 여러 형태가 있는 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것은 1910~2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불렀던 버전이라고 한다. 압제자 카란사와 농민혁명군 지도자 판초비야, 사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가 6·25전쟁 뒤 미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박정희 정권 시절 동요로 번안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뒤늦게 저항음악이 된 경우도 있다. 프렌치 록의 선구자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 ‘키 아 테 그랑마망’이 대표적이다. 개발에 밀려 소중하게 가꾸던 정원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상심해 세상을 떴다는 내용의 노래다. 환경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이 노래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한 ‘오월가’로 바뀌었다. 언론인 출신인 ‘노래가 위로다’의 저자는 노래의 역할을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방 전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우리 대중음악을 훑는다.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로 가득 찬 불안정한 지금, 그나마 우리를 손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것이다. 물론, 문제 해결이 아니라 위로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선 저자도 의문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로의 부재 시대에 그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저자는 정치적 노래가 불필요해진 시대라는 일부 인식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정치적 노래의 경우 메시지는 물론, 그것을 담는 그릇도 좋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저항음악으로 꼽힌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양희은이 민주화 투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거나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항의 성가로 불린 까닭에 대해 저자는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도 좋았고, 멜로디와 화성적 울림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종결부에 사용된 화성은 찬송가에 흔히 나오는 것으로 노래에 영웅적 비극성을 부여했다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노래, 세상을 바꾸다’에 등장하는 저항음악 모두 음악적으로도 빼어나다. 두 책 모두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읽으면 새로운 경험이 될 듯.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범죄성과 창의성 알고보면 한 뿌리

    범죄성과 창의성 알고보면 한 뿌리

    인류의 범죄사/콜린 윌슨 지음/전소영 옮김/알마/1000쪽/4만 2000원 원시시대 이후 인류가 저질러온 참혹한 범죄의 모습들은 때로 인간에 대한 절망적 회의까지 낳는다. 지구상에서 동족을 살해하는 유일의 동물인 인간 본성을 놓고 니체는 “전쟁에 대한 의지는 평화에 대한 의지보다 강하다”고까지 역설했다. ‘인류의 범죄사’는 인간의 범죄성과 폭력성의 근원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 ‘인간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인간은 원래부터 사악한 존재인가’라는 물음부터 시작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으로 이어가는 흐름이 흥미롭다. 책에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범죄상이 수두룩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뼈를 이용한 무기로 사람을 살해하는 법을 이미 익혔다는 대목부터가 놀랍다. 베이징원인은 두개골에 구멍을 내 뇌를 파내는 식인종이었고,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도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종이었음을 폭로한다. 종교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15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잔 다르크의 전우였던 질 드 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문, 살해를 일삼은 변태행위를 즐겨 ‘원조 연쇄살인범’으로 통한다. 20세기 들어서도 그 가학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학적 성도착자 게오르크 그로스만은 사람을 유인해 살해한 뒤 인육을 먹고 살았고, 하노버의 프리츠 하르만은 젊은 남자 부랑인들을 죽여 시체를 고기로 내다 팔았다. 책의 특장은 그 가학적인 범죄들을 관통하는 맥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초기 문명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생리적 욕구와 관련된 생존형 범죄가 대부분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를 채우려는 범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존경의 욕구가 범죄의 주종을 이루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자기 존중 및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련된 범죄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공통점은 ‘가혹하고 효율을 지향하는 인간들이 모두 좌뇌인이었다’는 것이다. 좌뇌형은 목적달성 이외의 모든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원하는 게 있다면 무리하게 낚아채서라도 손에 넣으려 한다. 저자는 좌뇌형 인간들은 성취를 바탕으로 단기적 안정과 쾌락을 얻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결같이 패배하고 좌절했음을 들춰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독재자들의 말로는 모두 불행했다. 그 대목에서 천재적 작곡가 베토벤의 사례가 도드라진다. 베토벤은 자신을 언짢게 한 웨이터에게 수프 접시를 내던질 만큼 독선가의 행동을 보였으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폭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파괴적일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음악이라는 방편으로 정제해 사용함으로써 창조적 성취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람을 위로 하고 세상을 바꾸는 노래

    사람을 위로 하고 세상을 바꾸는 노래

     노래, 세상을 바꾸다  유종순 지음/목선재/ 362쪽/ 1만 4800원   노래가 위로다  김철웅 지음/시사인북/ 351쪽/ 1만 5000원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에 실렸던 록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로망’. 구슬프면서도 흥겨운 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비정규직 또는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그런데, 러시아에서 왔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칭송받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뒷걸음치는 말’이 원전이다. 비소츠키는 이 노래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관료들이 러시아 인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제멋대로 달리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기득권층 비판과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직시했던 비소츠키였기에 정부의 금지 조치로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도, 음반도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2008년 러시아 국민이 뽑은 ‘러시아의 인물’ 중 스탈린, 표트르 대제, 레닌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그의 노래와 삶이 러시아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래, 세상을 바꾸다’는 순응이 아니라 거부와 비판, 저항을 통해 예술로 승화한 서른다섯 곡의 노래들을 복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가 보기에 이른바 ‘저항음악’은 정형화된 음악적 장르가 아니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사회 변화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그렇게 부른다. 상업적 대중음악도 저항음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상과 꿈을 노래하고 이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게 바로 저항음악”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우리에게 동요로 익숙한 ‘라 쿠카라차’. 원래 동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노래다. 15세기 스페인 민요에 뿌리를 둔 라 쿠카라차는 여러 형태가 있는 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것은 1910~2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불렀던 버전이라고 한다. 압제자 카란사와 농민혁명군 지도자 판초비야, 사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가 6·25전쟁 뒤 미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박정희 정권 시절 동요로 번안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뒤늦게 저항음악이 된 경우도 있다. 프렌치 록의 선구자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 ‘키 아 테 그랑마망’이 대표적이다. 개발에 밀려 소중하게 가꾸던 정원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상심해 세상을 떴다는 내용의 노래다. 환경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이 노래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한 ‘오월가’로 바뀌었다.  언론인 출신인 ‘노래가 위로다’의 저자는 노래의 역할을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방 전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우리 대중음악을 훑는다.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로 가득 찬 불안정한 지금, 그나마 우리를 손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위로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선 저자도 의문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로의 부재 시대에 그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저자는 정치적 노래가 불필요해진 시대라는 일부 인식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정치적 노래의 경우 메시지는 물론, 그것을 담는 그릇도 좋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저항음악으로 꼽힌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양희은이 민주화 투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거나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항의 성가로 불린 까닭에 대해 저자는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도 좋았고, 멜로디와 화성적 울림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종결부에 사용된 화성은 찬송가에 흔히 나오는 것으로 노래에 영웅적 비극성을 부여했다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노래, 세상을 바꾸다’에서 등장하는 저항음악 모두 음악적으로도 빼어나다. 두 책 모두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읽으면 새로운 경험이 될 듯.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좌편향 꼬집은 黃총리… 국정화 위한 무리수?

    좌편향 꼬집은 黃총리… 국정화 위한 무리수?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뺀 7종의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황 총리가 제시한 사례들이 교과서 기술 내용을 앞뒤 맥락 없이 따왔거나 일부는 사실과 다르게 해석한 대목이 있어 정책 관철을 위해 지나친 꼬투리 잡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서울신문이 8종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모든 교과서가 공통적으로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생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황 총리는 “일부 교과서가 남북 간 38도선 잦은 충돌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6종 교과서 모두 38도선 충돌을 6·25전쟁과 별개의 역사적 사실로 기술했고,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서술한 부분은 없었다. 8종 교과서 모두 6·25전쟁을 북한의 침략 행위로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을 인용하며 ‘북한의 남침’을 강조했다. 미래엔 교과서는 북한이 6·25전쟁을 사전에 준비했음을 보여 주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화 기록’을 사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북한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든지(천재교육), 김일성이 소련 측에 남침 계획을 밝히고 이를 승인받았다든지(지학사), 6·25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자료를 제시하는(리베르스쿨) 등의 방식으로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 때문이라는 것을 현행 교과서가 명백히 서술하고 있다”면서 “38도선 충돌과 6·25전쟁을 연결 짓는 것은 유추 해석(인과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것을 인위적으로 연결한 해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비판 없이 사실과 다르게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황 총리의 발언도 근거가 부족하다. 8종 교과서 모두 주체사상이 북한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는 밑바탕이 됐다는 식으로 비판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검정 체제에서 모든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은 정부가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집필해야 한다는 지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침에 맞게 각 교과서들이 관련 내용을 서술했기 때문에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발행된 것”이라면서 “주체사상을 다르게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라고 덧붙였다. 황 총리는 또 천안함 폭침에 대한 기술 유무를 근거로 “어떤 교과서에는 천안함 폭침 도발 사실이 빠져 있다”고 밝혔지만 2013년 8월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현행 8종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적용된 2011년 집필 기준에는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지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가우크 독일 대통령 “北과 비판적 대화할 것”

    가우크 독일 대통령 “北과 비판적 대화할 것”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12일 “독일과 유럽연합(EU)은 앞으로도 계속 북한과 비판적 대화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 중인 가우크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본회의 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이 주민에 대한 식량 공급보다 핵무장을 여전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한국과 그 파트너 국가들은 북한의 정책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가우크 대통령은 이어 “소프트 이슈를 겨냥하는 박 대통령의 모든 이니셔티브(구상)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평가하고 “박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독일에서는 축복 가득한 결과를 맺었던 정책”이라며 “신뢰와 대화는 평화적 변화와 이해를 위한 열쇠이기 때문에 목표가 아무리 멀게 느껴질지라도 늘 목표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반도 통일은 어마어마한 도전이지만 강력한 민주주의와 경제적 안정성은 이러한 도전에 확실히 맞설 수 있다”며 “게다가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무기력감을 종식시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게 뭐가 있겠나”라고 강조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독일의 통일 경험을 소개하며 “동독 공산 정권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서방 민주주의 세계로부터 유입되는 사상과 아이디어, 정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 번도 이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은 어릴 때부터 철의 손이 지배하는 스탈린주의적 정권의 강력한 영향하에 있다”며 “한반도의 북쪽에 살고 있는 한국인 역시 평화와 자유 속에 살 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한국의 유구한 역사에서 지난 70년은 언젠가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여분간의 연설이 끝나자 여야 의원들은 10여초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에 앞서 가우크 대통령의 비혼(非婚) 파트너인 다니엘라 샤트가 정의화 국회의장의 소개로 여야 의원들에게 인사하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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