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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데타는 막았지만…1년째 국가비상사태, 패권정치 에르도안에 잃어버린 ‘터키의 봄’

    쿠데타는 막았지만…1년째 국가비상사태, 패권정치 에르도안에 잃어버린 ‘터키의 봄’

    쿠데타 진압 1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15일(현지시간)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최대도시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의 곳곳은 붉은색의 대형 국기로 뒤덮였고, 수십만명의 시민이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250명의 희생자를 부각시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이스탄불 순교자의 다리에서 “매년 7월 15일을 ‘순교자의 다리 기념일’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군부에 피격당해 숨진 시민들을 기리겠다며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대교의 이름을 ‘순교자의 다리’로 바꿨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반대파에 섬뜩한 경고를 보냈다. “국가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반역자의 목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의지는 곧바로 법률로 연결될 수 있다. 터키가 국가비상사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칙령도 시행할 수 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1년 전 군부를 물리친 뒤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주권자의 칭호)의 힘에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발발 5일 만인 지난해 7월 20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효 3개월짜리 국가비상사태는 지금까지 3차례 연장됐다. 17일 터키 최고안보자문기구는 비상사태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까지 “국가비상사태를 해제를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온 만큼 이번에도 국가비상사태가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정부는 국민들을 무더기로 감옥에 넣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5만 510명이 형을 살거나 구속 상태로 재판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범죄사실 소명 없이도 한 달까지 용의자를 구금하며 심문하는 게 가능하다. 군인, 경찰, 교사, 교수, 판·검사, 일반직 공무원 등 15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학교, 대학, 병원, 비영리기구 수천개가 정부 직권으로 문을 닫았고, 기업 965곳의 자산 410억 터키리라(약 13조원)가 당국에 압류됐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터키 정부가 투옥한 언론인은 약 160명이다. RSF가 발표한 2017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터키는 180개국 가운데 155위를 기록했다. 이에 비례해 반(反) 에르도안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터키 제1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지난달 지지자들과 함께 독재를 비판하며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25일간 425㎞를 걷는 ‘정의의 행진’을 했다. 지난 9일 이스탄불 해안 광장에서 열린 행진 완주 선언에는 200만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대통령을 규탄했다. “에르도안 정부가 쿠데타 저지 1주년을 기념하겠다면서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정부가 구테타를 구실로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보도했다. 터키 정부가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은 레닌, 스탈린, 사담 후세인에 비견될 것”이라면서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터키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으면서도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새 영화]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이향만리 고려인의 삶을 읊조리다

    [새 영화]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이향만리 고려인의 삶을 읊조리다

    한반도에 머물고 있는 입장에선 아리랑은 다소 고리타분한 과거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향만리로 떠난 이들에게 아리랑은 현재이자 뿌리이다. 25일 개봉하는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고려인 민족극장이 있다. 국립고려극장이다. 원래 1932년 원동(러시아 연해주 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만들어졌었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현재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자리잡았다. 이제껏 200편이 넘는 연극과 음악 공연으로 고려인의 애환을 달랬던 이곳은 1970년대 들어서 아리랑가무단을 조직해 구소련의 도시 곳곳을 돌며 소수 민족을 위로했던 찬란한 시기가 있었다. 영화는 초반 고려극장의 창립 멤버이자 카자흐스탄의 인민 배우였던 ‘춘향이’ 이함덕(1914~2002)에 대한 고려인들의 기억과 낡은 사진을 더듬으며 강제 이주사를 들여다본다. 남아 있는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영화적 연출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전달하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영화의 중후반부는 1970년부터 20여년간 순회공연 시기를 풍미한 디바 방 타마라(74)에게로 향한다. 고려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러시아인 어머니와 두 딸,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가족사가 이어진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아리랑 외에도 “그대의 눈에서 빛을 찾고 질문도, 대답도 찾을 수 있을”것이라며 방 타마라가 부르는 러시아 노래 ‘비가 쏟아진다’, “엄마의 가을이 왔지만 아직은 멀었다, 안타까워하지 말라”는 방 타마라의 둘째 딸이 부르는 자작곡 ‘엄마’가 귓가를 맴돈다. 최근 시사회에 맞춰 한국을 찾은 방 타마라는 아버지 나라가 고국을 떠난 이들을 기억해줘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려서 고려말을 배우고 싶었지만 쓸 일이 없을 거라는 아버지 말에 포기했다. 그래서 처음엔 고려극장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제가 고려인이기 때문에 극장을 이어 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극단에서 들려줬던 노래에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고려인은 그저 스크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머나먼 존재가 아니다. 외국인 200만명 시대에 우리 곁에서 함께하는 고려인이 점점 늘고 있다. 비공식 집계로 4만~5만 명에 달한다. 김영숙 고려인지원센터 너머 사무국장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4세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성인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게 큰 문제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장진호 전투 기념비 미국서 제막

    장진호 전투 기념비 미국서 제막

    미국 버니지아주 콴티코에 있는 미 해병대 박물관에서 4일(현지시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제막행사가 열렸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미국 해병 1사단 1만 5000여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명과 싸우며 포위망을 뚫고 함경남도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군이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겨울 전투로 꼽힌다. 사진은 2m 높이, 8각 모양의 각 면에 장전 장면이 새겨졌고 꼭대기에는 ‘고토리의 별’이 올려져 있는 기념비의 모습. 콴티코 연합뉴스
  • ‘자본의 세상’에서 되짚어 본 민중혁명

    ‘자본의 세상’에서 되짚어 본 민중혁명

    러시아 혁명사/레온 트로츠키 지음/볼셰비키그룹 옮김/아고라/1040쪽/4만 8000원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러시아 민중은 전제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민중의 나라를 세웠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 기념비적인 순간이 바로 1917년이다. 그러나 이후 세계의 선택은 자본주의로 귀결되어 왔다. 지금은 자본이 전제 군주처럼 군림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압도한 자본주의가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부의 양극화와 실업,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폐해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 어쩌면 우리는 러시아 혁명을 들여다보며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혁명사’는 레닌, 스탈린 등과 함께 혁명의 주역이었던 레온 트로츠키가 남긴 생생한 기록이다. 트로츠키는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라고 강조하며 혁명 당시 계급투쟁의 양상, 혁명의 역학, 서로 다르면서도 전형성을 띠었던 군상들, 여성 해방, 이중 권력, 극우 쿠데타와 파시즘, 혁명 정당의 역할, 공동 전선, 민족 문제 등을 상세하게 다뤘다. 방대한 저작을 우리말로 옮긴 볼셰비키그룹은 트로츠키주의를 연구하는 모임이다. 앞서 ‘사회주의는 실패했는가’, ‘레닌과 전위당’, ‘제국주의와 전쟁’ 등의 트로츠키 저작물들을 번역한 바 있다. ‘러시아 혁명사’가 국내 첫 출간은 아니다. 2001~2004년 풀무질 출판사에서 1500쪽에 달하는 세 권 세트로 발간했는데 절판됐다. 이번에는 독자 편의를 위해 한 권에 담았다. 쪽수가 3분의1가량 줄었으나 내용까지 편집된 것은 아니다. 판형을 키우고 글자를 꽉꽉 눌러 담았다. 앞서 있었던 일부 오류들도 바로잡았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마오쩌둥 집권 승부수는 ‘중국의 스탈린화’

    마오쩌둥 집권 승부수는 ‘중국의 스탈린화’

    마오쩌둥 평전/알렉산더 판초프 지음/심규호 옮김/민음사/1044쪽/5만원1966년 7월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은 그 스스로 ‘하늘 아래 완전한 무질서’라고 불렀던 문화대혁명의 충실한 집행자였던 네 번째 부인 장칭(江靑)에게 심경을 담은 편지를 썼다. “산속에 호랑이가 없으면 원숭이가 왕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내가 그런 왕이 되었소. 이는 절충주의가 아니오. 내 몸속에는 호랑이의 기운이 주가 되고 원숭이의 기질은 그다음이오.” 20세기 중국 현대사의 절대 군주이자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마오쩌둥(1893∼1976). 그는 자신을 ‘혁명 중국’을 이끈 호랑이로 여겼을까, 어쩌면 소비에트 사회주의 모델을 추종한 원숭이라는 자괴감을 품고 있진 않았을까. 마오쩌둥의 삶과 권력을 다룬 전기 중 가장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평가받는 ‘마오쩌둥 평전’이 국내에 출간됐다. 책은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RGASPI)의 마오 관련 극비문서와 소련 비밀경찰(KGB) 기록 등 방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기술됐다.저자는 러시아 출신으로 중국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미국 캐피털대 역사학 교수 알렉산더 판초프. 그의 조부 게오르기 보리소비치 에렌부르크는 러시아 최초의 ‘마오쩌둥 평전’을 쓴 학자였다. 마오쩌둥 연구가 저자의 가업인 셈이다. 1000쪽이 넘는 책이지만 핵심은 중·소 공산주의 태동 이후의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정치적 관계의 재조명이자 마오에 대한 기존 관점을 깨는 데 있다. 앞선 전기들은 마오쩌둥을 교조적인 스탈린주의와 대립하며 중국만의 독자적 사회주의를 영도한 사상가로 묘사해 왔다. 하지만 판초프 교수는 소련 기록을 기초로 “마오가 크렘린 두목인 스탈린의 충성스러운 추종자”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오가 스탈린을 스승으로 여겼고, 스탈린주의의 엄격하고 집중적인 전체주의와 당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 국민에 대한 중앙집권화된 통제, 중공업 우선주의를 중국에 이식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스탈린화’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후 1950년대 초반까지 모스크바의 재정 지원에 의존했고, 스탈린의 통제를 받던 코민테른(공산주의 국제연합)에 종속됐다.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의 권력 핵심에 굴기한 배경으로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힘을 조명한다. 6·25전쟁은 마오의 훗날 표현대로 자신을 ‘의심스러운 티토주의자’로 보는 스탈린에게 충성심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스탈린은 1950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가진 마오와의 회담에서 북한의 남침 계획을 언질조차 하지 않는 등 무시했다. 마오는 언짢아하고 분개했지만 스탈린의 한반도 무력 통일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파병한다. 6·25전쟁은 스탈린의 계획적인 세계 혁명 책략의 일환이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이 열정적으로 떠벌린 한반도 통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을 북한·중국과의 무력 충돌에 묶어둔 채 동남아 공산화를 실현하는 성동격서를 꿈꾸고 있었다. 마오는 10만명 이상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사하고, 경제마저 파탄 지경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전쟁을 수행하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 사망 이후에야 전쟁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 “한국의 통치자들도 시민 권리에 반대하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고된 투쟁의 결과로 지금은 민주 사회에 살고 있다”며 “마오쩌둥의 피비린내 나는 독재 정권을 재조명한 이 책을 통해 그 누구도 인간의 뼈와 피 위에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주말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EBS1 일요일 오후 2시 15분)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탁월하게 묶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스웨덴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100년을 살며 현대사의 주요 사건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던 알란은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는 처지다. 100세 생일을 맞아 요양원을 뛰쳐나온 알란은 갱단의 돈 가방을 우연히 떠맡게 되며 한바탕 소동에 휩쓸린다. 알란이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스탈린,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트루먼, 레이건 등 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중에선 다양한 연령대의 알란이 등장하는 데 스웨덴의 유명 배우 로베르토 구스타프손을 비롯한 여러 명이 연기했다. 지난해 말 후속편이 나왔다. 2013년작. ■폴리스 스토리 2(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폴리스 스토리’는 청룽(成龍)이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리즈다. 1985년부터 2013년까지 모두 6편이 만들어졌다. 홍콩 영화가 1960~70년대 무협물에서 현대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매 작품 대역 없이 펼치는 청룽의 스턴트 액션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빼어난 무술 실력을 지닌 경찰관 진가구가 악전고투 끝에 악당을 물리친다는 게 기본 줄거리다. 3편까지는 장만위(張曼玉)가 여자 친구로 나와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5, 6편은 웃음기를 덜어낸 정극이다.
  • [공연리뷰]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리뷰] 뮤지컬 ‘미드나잇’

    쾅! 쾅! 쾅! 12월 마지막날 밤 12시 직전. 새해를 기다리며 파티를 하려는 한 부부에게 의문의 사내가 찾아온다. 매일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공포의 시대. 자신을 비밀경찰이라고 소개한 낯선 손님 ‘비지터’는 서로를 애지중지하는 부부에게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한다. 서로에게 감추고 있던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이 부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심리 스릴러 뮤지컬 ‘미드나잇’은 인간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부부를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지터는 부부의 나약함과 비열함을 끊임없이 두드리며 숨어 있는 잔혹한 본성을 드러나게 한다. 극한에 몰린 인간이 보여 주는 날것 그대로의 본능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극의 배경은 구소련 스탈린 체제. 비밀경찰 ‘엔카베데’ 주도로 국가에 반기를 드는 반혁명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 자행된 시절이다. 고위 간부인 남편은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헌신하는 다정한 남자다. 아내는 매일 밤 엔카베데에 끌려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공포를 느끼며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여린 여자다. 그런 그들에게 비지터는 충격적인 소식을 늘어놓는다. 착한 줄만 알았던 남편은 변호사 친구를 반역자라며 당국에 고발한다. 실망을 금치 못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그저 “당신과 나,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선택만 있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이내 아내도 남편과 다를 게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비지터가 죽기 전 자신을 ‘악마’라고 부르는 남편에게 한 말은 곧장 관객에게 돌아와 화살처럼 꽂힌다. “뿔 달리고 불을 내뿜어야 악마라고? 길을 걷다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일 걸. 당신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그리고 왜 내가 여기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수백, 수천 곳에 내가 있을지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비지터가 되살아나 무대에 다시 등장하면서 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된다. 배우들의 촘촘하고 격정적인 대화 사이로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극작가 엘친의 희곡 ‘시티즌스 오브 헬’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영국 작사·작곡가 로런스 마크 위스와 극작가 티머시 냅맨이 만나 재탄생했다. 국내 초연작으로 뮤지컬 ‘아가사’의 김지호 연출·한지안 작가가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부부를 공포에 떨게 하는 비지터는 정원영·고상호가 연기한다. 남편은 ‘고래고래’ 등에서 호연한 배두훈과 최근 남성 4중창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하며 노래 실력을 뽐낸 백형훈, 아내는 ‘넥스트투노멀’의 전성민과 일본 극단 시키에서 활약한 김리가 맡았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4만~6만원. 1666-8662.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히틀러 트로츠키 티토 프로이드 스탈린이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퀴즈 하나. 아돌프 히틀러와 레온 트로츠키, 요시프 티토, 지그문트 프로이드, 요시프 스탈린이 한 세기도 훨씬 전인 1913년 함께 머물렀던 도시는? 답은 오스트리아 빈. 영국 BBC 매거진은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게 한 도시에 삶의 궤적이 얽힌 다섯 인물의 빈 생활을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해 1월 스타브로스 파파도풀로스란 이름의 여권을 지닌 인물이 폴란드 크라쿠프를 떠난 기차에 몸을 싣고 빈의 노스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수염을 달고 있었으며 목재 여행가방을 든 채였다. 그가 만났던 한 남자는 몇년 뒤 “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작고 땅딸막한 그는 회갈색 피부에 마마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눈에는 친근함 따위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이 글을 쓴 이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러시아의 반체제 신문 프라우다를 발행했던 러시아 지성의 대표자 트로츠키였다. 그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며 니콜라이 부하린과 함께 ‘마르크시즘과 국가 문제’를 집필하고 있었다. 의문의 사나이는 태어날 때 이름이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이며 친구들 사이에 Koba로 통했으며 지금은 요시프 스탈린으로 기억되는 인물이었다. 그해 1월 한달 동안 이 다섯 남자가 모두 빈 중심가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둘은 도망자 신세였으며 프로이드는 1860년대 빈에 이주해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이 도시를 떠났는데 당시는 베르가세란 곳에 살며 마음의 비밀을 연 남자로서 추앙받고 있었다. 나중에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 장군으로 명성을 얻은 젊은 날의 Josip Broz는 빈 남쪽의 빈 노이슈타트에 있는 다임러 철강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며 좋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제국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북서부 출신으로 1908년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 24세 나이에 화가의 꿈을 안고 비엔나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싶었으나 두 차례나 낙방하고 다뉴브강 근처 멜더만스트라세의 저급 여인숙에 기거하던 히틀러가 있었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이 도시의 호프버그 궁전은 1848년 혁명 이후 즉위한 프란츠 요세프 황제가 노년을 보낸 곳이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난디드 대공은 근처 벨베데레 궁전에 머무르며 왕위 계승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가 암살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빈은 15개 나라 5000만명이 훨씬 넘는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이 도시에서만 17년 동안 살아왔고 오스트리아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발행되는 월간지 ‘비엔나 리뷰’의 수석 편집자인 다르디스 맥너미는 ”딱히 ‘용광로’가 할 수는 없겠지만 비엔나는 제국의 야망이 한데 모이는 일종의 문화적 잡탕(soup)이었다“며 ”200만 시민의 절반 이하만 원래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이고 4분의 1씩은 보헤미아(지금의 체코공화국 서부)와 모라비아(지금의 체코공화국 동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어와 체코어는 물론, 10여개 언어가 혼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는 독일어 외에도 11개 언어로 명령을 내려야 했고 국가는 그 수만큼 공식 번역본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 커피 하우스란 독특한 문화 현상이 출현했다. 물론 그 출발은 1683년 오스만 군대가 저유명한 터키 포위에 실패한 뒤 커피 종자를 빈에 들여온 것이었다. 해외정책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선임연구원이며 ‘1913-대전쟁 전의 세계를 찾아’의 저자인 찰스 에머슨은 ”카페 문화와 카페에서의 토론과 논쟁에 대한 언급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빈 생활의 커다란 영역“이라며 ”빈의 지성 커뮤니티는 아주 작아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알았다.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들이 오갔다“고 지적했다. 도망 중인 반체제 인물들에게는 빈의 이런 풍토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에머슨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도 아니었고, 아마도 약간은 느슨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서도 유럽에서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찾는다면 빈은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츠키와 히틀러는 카페 센트럴에 자주 나타났는데 이곳에는 케이크, 신문, 체스와 무엇보다도 대화가 가능했다. 맥너미는 ”그 카페들을 중요한 장소로 만든 것들은 모든 이들이 간다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규율과 이해관계에 상관 없이 비옥한 사상의 토양이 만들어졌다. 나중에 서구 사상은 매우 엄격해졌는데 여긴 아주 물흐르듯 자유로웠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1867년 프란츠 황제가 시민권을 전면 보장하면서 학교와 대학 접근권이 보장돼 유대인 지성계와 새로운 자본가 계급의 에너지가 넘쳐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성 지배 사회였지만 상당수 여성도 혜택을 누렸다. 구스타프 말러가 1911년 세상을 떠난 뒤 미망인 알마도 작곡자 겸 뮤즈가 돼 예술가 오스카르 코코슈카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연인이 됐다. 빈은 음악과 호화 무도회와 왈츠의 상징이 됐지만 뒷모습은 암담해졌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슬럼가에 거주했고 거의 1500명이 한해 동안 자살했다. 히틀러가 트로츠키와 마주쳤는지, 티토가 스탈린과 만났는지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2007년 로렌스 마크스와 모리스 그랜이 만든 라디오 드라마 ‘프로이드가 히틀러를 진찰한다면’는 이런 만남을 상상해 만들어졌다. 이듬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빈의 지성계는 와해됐다. 1918년 제국이 붕괴되면서 히틀러와 스탈린, 트로츠키와 티토는 영원히 세계사에 아로새겨질 각자의 행로에 접어들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타임지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타임지 ‘올해의 인물’…히틀러부터 당신까지 80년史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유수 매체들은 한 해를 결산하는 내용의 사건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중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이다. 그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계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는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시작돼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타임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간 타임이 선정했던 올해의 인물 중 특기할 만한 주인공을 꼽아봤다. 첫 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지난 1927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타임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를 꼽았다. 린드버그는 그해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첫 미국인 아닌 올해의 인물 1930년 타임은 미국인이 아닌 첫번째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올해의 인물 표지에 올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다. 첫 여성 올해의 인물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는 여성이 극히 드물다.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역사상 네 번 째일 정도. 첫번째 주인공은 지난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인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히틀러도 올해의 인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지난 193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는 올해의 인물이 반드시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 영웅만 선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은 두차례(1939, 1942년)나 올해의 인물이 됐다.   올해의 인물왕 루즈벨트 한번도 선정되기 힘든 올해의 인물로 가장 많이 등극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32년을 시작으로 1934년, 1941년 각각 선정됐다. 사람이 아닌 올해의 인물 가끔씩 타임은 사람이 아닌 것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982년 선정한 컴퓨터로, 타임은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이름 붙였다. 또한 1988년에는 위기에 처한 지구를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올렸다.    특이한 올해의 인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만 올해의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올해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타임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으로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보노를, 2011년에는 '시위자들', 2014년에는 에볼라 전사들을 올해의 인물로 올렸다. 그리고 '당신'도 올해의 인물로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타임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당신(you)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극우 물결 막은 ‘유럽의 오바마’

    극우 물결 막은 ‘유럽의 오바마’

    EU체제 신봉하는 親유럽주의자… 이민자 집안 출신·동성 결혼 찬성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승리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은 스스로 ‘난민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 공포정치를 피해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넘어왔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러시아인, 어머니는 에스토니아인이었다. 별명도 러시아어로 알렉산더를 뜻하는 ‘샤샤’다. ‘유럽의 오바마’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72세의 판데어벨렌은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인스브루크 대학, 빈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판데어벨렌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층 배가된 포퓰리즘, 특히 반난민 극우민족주의 물결을 일단 막은 모양새다. 그는 유럽연합(EU) 체제를 신봉하는 친(親)유럽주의자다. 탈(脫)EU를 주장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과는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고 EU와 협력 관계에 있는 기존 정당들보다도 더 EU에 가깝다. 애연가인 판데어벨렌은 “넉 달 동안 담배를 끊었는데 왜 내가 이 나이에 나를 고문하나 싶었다”며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그의 당선에 EU 정상들은 환영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성명에서 판데어벨렌을 향해 “EU 집행위원회를 대표해서도, 개인적으로도 전면적인 성공을 기원한다”고 반겼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트위터에서 “그의 승리는 국수주의와 반유럽, 퇴보적인 포퓰리즘의 중대한 패배”라고 환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오스트리아 대선 중도좌파 판 데어 벨렌 승리···극우 물결 차단

    오스트리아 대선 중도좌파 판 데어 벨렌 승리···극우 물결 차단

    오스트리아 대통령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녹색당 전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72)이 극우 성향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45)를 누르고 당선을 사실상 확정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개표에 근거한 오스트리아 ORF방송의 1차 추정에 따르면 판 데어 벨렌은 53.6%의 지지를 얻어 46.4%에 그친 극우 호퍼를 큰 격차로 앞섰다. 호퍼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우 슬프다”며 패배를 인정한 뒤 판 데어 벨렌에게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판 데에 벨렌은 이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자유와 평등, 연대에 바탕을 둔 유럽을 지지하는 오스트리아의 승리”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대선 개표 결과는 이르면 5일 저녁 늦게, 늦으면 6일 오전에 나올 전망이다. 지난 4월 치른 대선에서 1차 투표 때 2위를 차지한 판 데어 벨렌은 지난 5월 결선 투표에서 득표율 0.6% 차이로 호퍼 후보에 승리했다. 그러나 부재자 투표 부정 의혹으로 재선거를 치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면서 이날 다시 선거가 실시됐다. 국민당과 사민당, 노동계도 판 데어 벨렌의 당선을 환영했다. ‘유럽의 오바마’로 불리는 판 데어 벨렌은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고향은 오스트리아 빈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네덜란드계 러시아인과 에스토니아인이다. 그의 부모는 스탈린 체제 아래에 있던 소련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넘어온 난민이었다. 판 데어 벨렌은 1994년 의회에 입성한 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녹색당 대변인과 당수를 지냈다. 이번 대선에는 자유당에 맞선 중도좌파 진영과 무소속 연대 세력의 후보로 나왔다. 그는 대선 결선투표에서도 여론 조사에서 호퍼에 밀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데 이어 이날 재선거에서는 초반 개표 결과이기는 하지만 큰 격차로 앞서면서 승리를 사실상 눈앞에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국민당과 사민당 등 양대 정당 후보가 1차 투표 때 호퍼에게 큰 차이로 밀리면서 결선 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 자칫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성향의 정당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는 나라가 될 뻔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5월 결선 투표 때도 극우 정당이 집권하는 것에 반발해 판 데어 벨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호퍼의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다시 판 데어 벨렌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호퍼가 속한 자유당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정당이다. 영국 BBC는 “내년 선거를 앞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 반이민, 반주류 기치를 내건 포퓰리즘이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나온 오스트리아의 선거 결과는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판 데어 벨렌이 오스트리아 극우 바람을 잠재우면서 유럽연합(EU)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호퍼가 당선돼 오스트리아까지 EU 탈퇴를 거론하는 국면을 맞게 되면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에 이은 충격파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여행제한 완화로 유커에 러브콜

    최근 북한이 여행제한을 완화하자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방북이 늘고 있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8일 보도했다. 북한은 평양·신의주·동림·개성 등을 유커에게 개방했고, 지난 7월부터 여권 없이도 반나절짜리 북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입국 문을 열었다. SCMP는 방북 유커 수가 한국 방문객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유커에게 방문을 허용하는 도시가 늘면서 방북 인원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작년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이 10만 명에 달하고,이 중 90%가 유커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 당국이 2008년 6월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허용하고 나서 현재 중국에 북한 전문 여행사 수십 곳이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단둥 둥윈여행사의 쑹쥔 대표는 단둥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는 중국인 관광객이 하루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중국 당국은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중국인 수를 하루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SCMP는 중국 관광객이 북한을 찾는 이유를 호기심,그리고 예전 중국과 비슷한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중국 장시성의 퇴직자 장춘란(66) 씨는 “북한이 1950년대와 1960년대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며 “당시를 여전히 좋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옌링(27) 씨는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 북한에 대한 신비함을 느꼈다고 감상을 전했다. 중국인 여행 가이드인 왕스타오 씨는 북한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거나 북한 지도부에 충성편지를 보내 좋은 대접을 받으려 하는 등 ‘문제성’ 관광객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북한 내 관광지 부족과 여행 안내원 동반, 휴대전화, 소지 금지, 특정 장소 촬영 금지 등은 중국 관광객의 증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여행 가이드 왕 씨는 북한에 중국 문화 관련 책을 남긴 한 관광객이 중국 문화 전파를 시도한 혐의로 벌금 2천 위안(약 33만8천 원)을 내고서야 북한을 떠나는 것이 허용됐다면서,주의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인 여행 가이드 류 양(여) 씨는 동림의 호텔에서 근무하는 여종업원들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이며 월경을 멈추려고 찬 강물에 몸을 담그는 이들도 있다며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북한의 심각한 굶주림과 권리 박탈에 놀란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제왕따’ 北, 여행제한 완화로 유커 모으기 안간힘

    ‘국제왕따’ 北, 여행제한 완화로 유커 모으기 안간힘

    국제사회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최근 여행제한 완화로 중국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8일 보도했다. 북한은 평양과 신의주, 동림, 개성, 나선 등을 중국 관광객(유커)에게 개방했고, 지난 7월부터 중국인에게 여권 없이도 반나절 짜리 북한 여행을 할 수 있게 허용했다. SCMP는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가 한국 방문객에는 못 미치지만 중국인에게 방문을 허용하는 도시가 늘면서 방북 인원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이 10만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90%가 중국인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 당국이 2008년 6월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허용하고 나서 현재 중국에 북한 전문 여행사 수십 곳이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단둥 둥윈여행사의 쑹쥔 대표는 단둥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는 중국인 관광객이 하루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중국인 수를 하루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SCMP는 중국 관광객이 북한을 찾는 이유를 호기심과 예전 중국과 비슷한 모습에서 느끼는 향수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중국 장시성 퇴직자 장춘란(66)씨는 “북한이 1950년대와 1960년대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며 “당시를 여전히 좋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옌링(27)씨는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 북한에 대한 신비함을 느꼈다고 감상을 전했다. 베이징의 퇴직자 양양치(61)씨는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 가운데 한 곳인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에 북한을 방문했다고 언급했다. 중국인 여행 가이드인 왕스타오 씨는 북한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거나 북한 지도부에 충성편지를 보내 좋은 대접을 받으려 하는 등 ‘문제성’ 관광객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북한 내 관광지 부족과 여행 안내원 동반, 휴대전화·노트북 소지 금지, 특정 장소 촬영 금지 등은 중국 관광객의 증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24일 트위터를 통해 “박지원은 노태우다”라면서 “제3지대로 다모이자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을 하자는 거다. 문재인 세력만 빼고 온갖 잡탕 다 끌어들여 친일부패연합당 만들자는 것. 김대중 빼고 다 모이자던 노태우 역할을 박지원이 하자는 거다. 진짜 기름장어는 국민외면당 박지원 대표”라고 비난했다. 그는 “박지원 대표와 전화로 언쟁을 좀 했습니다”라면서 “NLL대화록 대선부정, 건국절, 국정교과서를 앞장서 주장한 박근혜정권 부역자 김무성과 합치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이라는 제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화내용은 한때 동료선배임을 감안해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박지원과 김무성의 시랑, 물불 안가리는 두사람의 불장난. 촛불로 막읍시다”라고 촉구했다. 전병헌 전 의원도 블로그를 통해 “정치권 일부에서 탄핵을 (비박+야3당)으로 추진하자는 일부 정치권 주장은 민심을 벗어난 것”이라며 “탄핵은 야3당 공조로 추진하고 새누리에게는 ‘요구’할 문제이지 부탁하거나 설득할 문제가 아닙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새누리에 면죄부를 발급할 권한은 정치권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국민의 권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위원장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험난한 고개를 넘으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합니다. 반공주의자 처칠 수상은 스탈린과 손을 잡고 히틀러와 싸워 이겼습니다”라면서 “무소속 포함 야당 의석은 172석,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서는 최소 28석, 안전하게 가려면 40석 정도의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가 필요합니다. 탄핵안은 가결시켜야지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줍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누가 새누리 비박과 통합한다고 했나요”라면서 “저는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우리당에 입당한다면 함께 할 수도 있지만 총선 민의로 확인된 국민의당 외의 제3지대론은 반대한다 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또 선 총리 후 탄핵도 보류하고 3야 공조 및 비박과 탄핵을 추진하자 했습니다. 우상호 대표도 새누리당 의원들을 접촉 설득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도 찬성합니다”라면서 “개헌도, 선 총리 선출도 반대하고 탄핵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를 얻는 것을 구걸하는 것으로 필요없다고 하는 일부 과격한 주장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벌떼처럼 저를 공격하지만 겨울의 벌떼는 맥이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의 버티기가 계속되며 우리 모두 큰 스트레스 속에 힘든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자꾸 까칠해지고 화를 못참는 일이 많아집니다”라면서 “친박을 제외하곤 서로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너그럽게 관용하며 차이를 잠시 뒤로 미뤄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화합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혐오발언은 용납 못 해” 트위터, 극우파 계정 차단 나섰다

    “혐오발언은 용납 못 해” 트위터, 극우파 계정 차단 나섰다

    트위터가 백인 지상주의를 내세우는 극우파 대표 주자들의 계정을 줄줄이 퇴출시키고 있다.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혐오 발언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위터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인 지상주의 싱크탱크인 국가정책연구소 대표 리처드 스펜서의 개인 계정과 연구소 계정, 그가 발간하는 온라인 잡지 계정을 본인에게 고지하지 않고 차단했다. 스펜서는 미국을 백인 민족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로 2008년 ‘대안 우파’란 말을 처음 만들기로 했다. 16일에도 팩스 디킨슨, 폴 타운, 리키 본, 존 리버스 등 대안 우파 활동으로 유명한 이용자들의 트위터 계정이 잇따라 폐쇄됐다. 대안 우파는 유대인을 혐오하고 백인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다문화주의나 이민 확대를 결사 반대하는 극보수 성향의 네티즌 집단이다. 트위터 측은 “정책적으로 혐오발언나 폭력적인 위협을 금지하며, 이러한 방침을 위반한 이용자들을 제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 계정 폐쇄에 대해서는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미 트위터는 지난 14일 사이버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이용자들이 특정 키워드나 문구로 트윗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 방침을 밝혔다. 스펜서는 트위터의 일방적인 계정 폐쇄는 ‘기업 스탈린주의’로, 특정 견해를 가진 이용자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극우 인터넷 매체 브레이트바트 창업자 스티브 배넌도 대안 우파로 분류된다. 그는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임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트럼프 인수위 내홍… 칼자루 쥔 맏사위

    트럼프 인수위 내홍… 칼자루 쥔 맏사위

    트럼프 “내각 최종결정은 나의 몫… 기밀브리핑에 쿠슈너 참석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 트럼프 당선자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수위를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정권 인수인계도 차질을 빚고 있다. CNN은 16일 복수의 인수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인수위 내부의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의 중심에 트럼프 당선자의 사위이자 막후 실세로 알려진 쿠슈너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해석은 인수위에서 국가안보팀을 이끌던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이 돌연 하차한 것과 관련이 있다. 로저스 전 의원은 차기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트럼프 내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그는 공화당 내의 초당적, 온건 보수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로저스의 낙마는 공화당 주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 트럼프 당선자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는 15일 회동을 갖고 내각 주요 직위 인선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로저스 전 의원의 하차 이유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선거 기간 인수위를 이끌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펜스 부통령 당선자에게 밀려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강등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언론들은 해석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신임을 받는 쿠슈너와 크리스티 주지사 간의 껄끄러운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연방검사이던 2005년 뉴욕의 유명한 부동산 개발업자인 쿠슈너의 아버지를 조세회피 및 불법 선거자금 기부 등의 혐의로 기소해 감옥에 넣었다. 로저스 전 의원은 바로 크리스티 주지사와 가까운 관계다. NBC는 “로저스 전 의원은 일명 ‘스탈린식 숙청’의 희생자”라면서 로저스의 퇴출이 사실상 크리스티파의 제거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로저스 전 의원 낙마 외에 인수위 국방·외교정책 담당 2인자인 매슈 프리드먼도 인수위에서 배제됐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그는 대선 이후 세계 정상과의 전화 통화를 조율해 왔던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처음으로 기밀 브리핑을 받은 트럼프 당선자가 쿠슈너를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NBC가 보도했다. 쿠슈너를 브리핑에 참석시키려는 시도만으로도 트럼프 당선자는 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인수위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 간의 정권 인수인계도 차질을 빚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갑작스레 인수위원장을 지난 11일 크리스티 주지사에서 펜스 부통령 당선자로 바꾸면서 당분간 인수인계가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신임 정권인수위원장을 맡은 펜스 부통령 당선자가 인수인계 양해각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위 갈등과 관련해 트럼프 당선자는 15일 저녁 트위터에 “조각을 둘러싸고 아주 조직적인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누가 마지막에 승선할지는 나만이 안다”는 글을 올렸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씨줄날줄] 대역(代役) 음모론/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역(代役) 음모론/박홍환 논설위원

    나치 수괴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시내 지하 벙커에서 부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는 것이 공식 사망 기록이다. 친위대원들이 권총 자살한 히틀러의 시신을 곧바로 불태워 인근에 묻었고, 그 유해를 소련군이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히틀러 자살 대역(代役)설은 여전하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소련군이 가져간 유해가 히틀러라는 법의학적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부인과 함께 잠수함을 타고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70세까지 살았다는 주장부터 파라과이에서 사망했다는 미확인 첩보까지 있었다. 일본 와세다대 교수 시게무라 도시미쓰는 2008년 8월 발간한 ‘김정일의 진실’을 통해 “김정일이 이미 2003년 당뇨병으로 사망했다”며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나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난 김정일은 가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성문(聲紋) 분석 결과 다른 사람 것으로 판명됐다면서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도 김정일 대역설은 종종 있었다. 일부 탈북자들은 그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닮은 대역을 최소한 2명 이상 이용하고 있다는 증언도 했다. 사망 후 몇 년 동안 대역을 세웠다는 주장은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살아 있을 때 대역을 이용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평소 비슷하게 생긴 대역을 내세워 암살 등에 대비했다지 않는가. 주군의 방패막이인 ‘가케무샤’(그림자 장군)가 바로 대역들이다. 대역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정보가 부족하니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음모론까지 가미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흥행 소재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두 달 후 수배 중이던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부패한 시신이 그의 전남 순천 별장 근처에서 발견됐을 때에도 대역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유전자검사 등 과학수사를 통해 유병언 시신으로 확정됐지만 의혹은 수사 의문점 등과 맞물려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대역을 내세워 수사받고 있다는 의혹이 SNS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체포된 이후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이송 버스에서 내릴 때의 사진과 검찰 출두 당시의 사진을 비교한 결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네티즌 수사대’는 두 사진 속 인물의 얼굴 피부 노화도, 머리숱 차이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화들짝 놀란 검찰이 지문 대조를 통해 현재 조사받는 사람이 최순실씨 본인임을 확인해 대역 의혹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뒷맛이 영 씁쓸하다. 검찰 불신이 얼마나 깊으면 핵심 중의 핵심 피의자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나온단 말인가. 이러다 박 대통령 대역 의혹까지 제기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푸틴 총선 압승, 가까워지는 ‘4번째 차르’

    푸틴 총선 압승, 가까워지는 ‘4번째 차르’

    통합러시아당 3분의2 이상 확보 경제난·대외 고립 심화에도 불구 대체 세력 없어 지지율 고공행진 2018년 3월 대선 출마 발판 마련 모스크바 등 젊은층 ‘투표 파업’ 블라디미르 푸틴(63) 러시아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여당이 18일(현지시간) 실시된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푸틴은 러시아의 경제난과 대외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도 총선 승리를 이끌어 내면서 2018년 3월 대선의 네 번째 출마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지만 푸틴은 강경한 대외 노선을 고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일 오후 개표가 99% 진행된 가운데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정당 득표율 54.17%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산당이 13.37%, 극우 자유민주당이 13.18%, 중도좌파 정의러시아당이 6.2%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이번 선거에서 전체 450석 중 225석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하고, 나머지 225석은 지역구에서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통합러시아당은 225개의 지역구 중 203곳에서 승리해 정당 득표율로 얻은 의석을 합하면 전체 의석의 76%에 해당하는 343석을 확보했다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1991년 러시아연방 성립 이후 한 정당이 차지한 의석수로는 최대 규모다. 직전 2011년 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 49%, 의석 238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던 통합러시아당은 개헌선인 전체 의석의 3분의2를 넘기면서 의회 장악력을 한층 높이게 됐다. 푸틴은 투표 종료 직후 “우리가 좋은 결과로 승리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며 “현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국민은 통합러시아당에 표를 던졌다”면서 승리를 선언했다. 앞서 선거 기간에 경제, 외교 등 대내외적 상황은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에 불리했었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는 지난 몇 년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해 서방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 국가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푸틴이 총리를 거쳐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2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3.5%였으나, 지난해 -3.7%로 급락했으며 올해도 -1.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푸틴과 통합러시아당을 대체할 정치 세력이 미약해 푸틴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의 집권이 끝날 경우 대안 세력의 부재로 1990년 초 소련 붕괴 당시의 정치·경제적 혼란이 다시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에 푸틴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80%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으며 통합러시아당은 푸틴의 인기에 기대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또 푸틴 정권이 장악한 국영 TV 등 주요 언론들이 경제난은 서방의 제재 탓이라는 ‘핑계’를 유포하고 선거 기간 통합러시아당에 유리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면서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푸틴에게 기울게 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푸틴은 2018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 선거의 승리로 그의 네 번째 대통령 도전이 가시화되고 있다. 푸틴이 2018년 대선에 승리해 2024년까지 임기를 채우게 되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제외하고 20세기 이후 러시아에서 최장 재임한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 투표율이 직전 선거의 60.2%보다 현저히 낮은 47.8%를 기록하고, 젊은층이 몰려 있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통합러시아당 득표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점을 고려했을 때 통합러시아당의 압승은 국민 전체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시의 젊은층이 선거를 하지 않는 ‘투표 파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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