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스카우트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유아교육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집단행동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선 개입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00
  • [커리어 우먼] 박소영 현대카드 ‘더 블랙’ 매니저

    [커리어 우먼] 박소영 현대카드 ‘더 블랙’ 매니저

    “잠 드는 순간까지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가 뭘까라는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현대카드의 슈퍼프리미엄급 카드인 ‘더 블랙’은 회원수가 150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 2월 출시 때부터 대한민국 상위 0.01%의 고객 9999명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회적인 명예가 없으면 가입할 수 없다.‘박리다매(薄利多賣)’라는 신용카드 마케팅의 기본을 철저하게 무시한 카드이지만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이만한 상품도 없다. 연회비 100만원에 걸맞게 서비스도 상상을 초월한다. 항공기 좌석 업그레이드, 전세계 특급 호텔 숙박료 할인은 기본이고 구두를 가장 잘 만든다는 프랑스 장인(匠人)을 불러 고객들에게 구두를 맞춰주기도 하고, 쿠바 최고의 시가(cigar)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한다. 상위 0.01%를 감동시키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스물여덟살의 앳된 여성이다. 검정 원피스에 검정 스타킹, 검정 구두, 검정 휴대전화…. 박소영 대리가 건네는 검정색 명함에는 ‘더 블랙 매니저’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호텔리어, 블랙에 빠지다 박 대리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미국에서는 중학생도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부모를 조른 끝에 초등학교 졸업 후 혼자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날 정도였다. 영어 한 마디 못 배운 채 떠났지만 중도에 포기하면 창피할 것 같아 고등학교까지 기어이 미국에서 졸업했다고 한다. 대학 선택의 기준도 화려함이었다. 화려한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 호텔경영학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스위스의 글리옹 대학에 입학했다. 미국 리츠칼튼 호텔 본사에서 근무하다 2003년 봄에 서울 리츠칼튼으로 발령났다. 서울 리츠칼튼에서는 30여개 부서의 서비스와 상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퀄리티 매니저’를 맡았다. 박 대리는 “가장 화려한 호텔에서 화려함의 이면을 여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화려함을 연출하기 위한 호텔리어들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호텔 서비스는 카드사 VIP마케팅의 필수 요소다.‘더 블랙’을 출시한 현대카드는 VIP를 위한 서비스 마인드가 가장 투철한 호텔리어를 물색했고, 박 대리를 지난해 2월 스카우트해 0.01%의 고객을 맡겼다. ●“불가능한 서비스는 없다.” 박 대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카드를 쓰는 고객들인 만큼 대한민국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들에게 발송하는 우편물이나 서비스 안내 책자도 모두 스스로 제작한다. 우편물 발송 변경 일자까지 고객들의 허락을 일일이 얻을 정도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벤트를 여는데 음식 선택은 물론 강사 초빙, 심지어 식탁보까지 손수 챙긴다. 친분이 두터운 고객들에게는 자녀의 유학 준비까지 주선해 준다. 이번 여름 휴가철을 맞아서는 세계 유일의 ‘칠성(七星) 호텔’인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호텔 근무 당시 구축한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고객들이 서비스에 감탄,“내가 아들이 한 명 있는데….”라며 며느릿감으로 탐을 낼 정도다. “연회비를 100만원씩 내는 고객이니까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대리는 손사래를 쳤다. 일반 카드의 서비스 개발을 맡았어도 이 정도 노력은 했을 것이라는 항변이었다.“서비스는 돈이 아니라 정성이고, 고객 누구든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박 대리는 직업을 제대로 택한 행복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 박소영 대리는 ▲1978년 서울생 ▲미국 보스턴 브룩스스쿨 졸업 ▲영국 웨일스대학 경영학 학사 ▲스위스 글리옹대학 호텔경영학 학사 ▲미국 리츠칼튼호텔 재경부 소속 ▲미국 리츠칼튼호텔 객실관리부 ▲서울 리츠칼튼호텔 퀄리티 매니저 ▲현대카드 ‘더 블랙’ 매니저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텐더 보이스 가수 현미(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텐더 보이스 가수 현미(2)

    작곡가 이봉조씨와의 19년간의 사랑,13년간의 이별. 이들 커플이 남긴 유독 ‘슬픈 노래’는 한 때 현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이었지만 어느덧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난다. TBC,KBS 악단장을 거치며 연주자로, 또 작곡가로 최희준 남일해 차중락 정훈희 조영남 등 흔히 ‘이봉조사단’이라 불리는 톱스타군단을 거느리고 있던 이봉조씨. 그 ‘이봉조사단’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해 있어 한 때 ‘부부싸움’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지냈던 만큼 ‘연예인 마이카족 1호’라는 영광까지 누리며 인기가도를 질주했던 명콤비 ‘이봉조-현미’ 커플. 그러나 작곡가 이봉조씨가 남긴 노래들의 저작권은 현미씨 몫이 아니다. 그녀는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이를테면 이들 노래처럼 법적으로는 호적상 ‘애인이란 두글자‘일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인의 제사는 장남 이영곤씨의 몫으로 돌아왔으며 아울러 ‘이봉조 추모가요제’ 또한 현미씨가 도맡아야 할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 평양 초등학생 시절 김일성 앞에서 노래부르기도 현미,38년 1월 21일 평양 박구리에서 여덟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김명선. 평양 경림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단장이자 어린이 대표로 당시 인민공산당 대표 김일성 장군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헌화했을 정도로 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평양 정의여중 재학시절 1·4후퇴 때 두 여동생을 남겨둔 채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얼어붙은 대동강, 임진강, 한강을 지나 대구에서 피란생활을 시작한다. 징집을 피해 부친과 오빠가 외부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의 호구지책은 어머니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의 몫. 열네 살의 현미와 두 살 아래 남동생 뽀빠이(김명순씨)는 대구 염매시장에서 떡 장사를 해야 했고 ‘아이스께끼통’을 들고 시장 주변을 돌다가 미군부대 주변에서 깡통을 줍거나 산이나 들에 떨어진 낙하산을 주워 다 여자속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가족의 생계를 도맡은 어머니를 그나마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던 시절, 임시로 문을 연 연합중학교 2학년 때 당시 김백봉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가 ‘꽃초롱 오페라단(단장 김동진)’의 단원이 된다. ‘백치 아다다’,‘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겸 배우 나애심씨(76)의 회고. “내가 현미를 처음 보았을 때가 대구 피란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활동할 때였어요. 그 무렵 김백봉, 후라이보이 곽규석(MC), 구민(성우)씨 등과 함께 ‘을지문덕’을 공연했는데 이때 무용수로 갓 입단한 현미가 너무 어려서 가슴에 양말 등을 구겨 넣어 만든 ‘뻥브라’를 한 채 무대에 올라 춤을 추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린 현미는 예서 그치지 않고 이어 ‘희망가극단’의 뒤풀이 막간가수로 들어가 삼개월간의 부산 공연길에 올랐다가 마침내 서울공연까지 따라나선다. 이내 가족들의 손에 끌려 되돌아오지만 몇 달 간 가출에서 맛본 악극단 무대의 매력은 그녀가 대전종합학교를 거쳐 덕성여대 가정과에 입학한 뒤까지도 내내 그녀를 지배했다. 결국 ‘꿈’이자 ‘생계수단’의 방편으로 55년, 대학을 중퇴한 뒤 무대로 나선다. 학업 대신 무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 그녀는 이 젊은 날로부터 40여 년 뒤인 2004년, 덕성여대 측으로부터 명예학사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 현미씨 ‘스타 기질´ 2세까지 이어져 현미씨 집안은 스타 패밀리를 이루고 있다. 두 아들의 아빠인 작곡가 이봉조씨, 그리고 맏언니 김화선씨는 이북에 살 당시 최승희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춤꾼, 그리고 ‘울릉도 트위스트’의 3인조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막내 김상미씨가 올케로 오빠 김명준씨의 부인이다. 아울러 74년 한국가요제에 입상해 ‘신중현사단’으로 활동하던 가수 김명희씨가 막내 여동생으로 ‘만남(노사연)’의 작곡가인 최대석씨와는 부부 사이. 이들 스타군(群)은 2세로까지 이어져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의 가수 원준희씨가 며느리, 가수 노사연씨와 MC로 잠시 활동했던 노사봉씨가 맏언니 김화선씨의 딸들.SBS 9기 탤런트 한상진가 조카, 승무 무용가 양대승씨가 조카사위로 이들 집안은 2대에 걸쳐 화려하게 빛난다. 또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가 ‘이모’ 같은 캐릭터의 한명숙씨와 ‘고모’같은 캐릭터의 이금희씨.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이들 셋은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보가 터져 나와 함께 무대에 설라치면 NG라도 낼까, 각자 서로의 시선을 피해야할 정도로 ‘죽’이 맞았던 단짝들. 최근 이금희씨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재 입원시켜야 했지만 현미씨에겐 이들 셋과 함께 다시 한 번 무대를 꾸며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우선 ‘이금희 돕기 쇼’라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81년, 한국가수 최초로 레이건 미 대통령 취임식에 특별 초청되어 축가를 부르고 미 의회에서 앙코르 송까지 받았을 만큼 국제적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현미. 그녀는 현재까지도 방송 활동을 포함, 노래교실 등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한다. 밤무대가 아닌 노래교실을 택한 것은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준 이들을 위한 일종의 ‘은혜갚음’이다.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 무대에 설 것이고 또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음반을 취입, 찬송가 음반을 10장정도 더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그는 내년인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50주년 기념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sachilo@empal.com
  • [World cup] “이들도 지성·영표처럼…”

    ‘제2의 태극듀오’,“우리는 러시아로 간다.” 딕 아드보카트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황태자는 역시 ‘금빛날개’ 김동진(24·FC 서울)과 ‘신형 진공청소기’ 이호(22·울산)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러시아 클럽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나란히 이적하는 것. FC서울은 27일 “김동진이 계약기간 3년에 러시아 프로축구 1부리그 제니트로 간다.”고 공식 발표했다. 울산도 이날 제니트와의 이적 협상을 마무리, 이호는 김동진과 함께 러시아로 가게 됐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은 역시 3년. 아드보카트 전 감독도 둘의 이적을 공식 확인했다. 그는 이날 지난 9개월간 자신의 거처였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가진 고별 기자회견을 통해 “김동진과 이호는 나와 함께 러시아로 간다.”면서 “둘과 나에게 모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각각 2∼3경기에 나서는 등 꾸준히 아드보카트 전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이로써 김동진과 이호는 독일월드컵 멤버 가운데 가장 먼저 해외에 진출하는 선수가 됐다. 더욱이 아드보카트 감독이 새 사령탑을 맡을 제니트로 이적, 지난 한·일월드컵 직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으로 진출한 데 이어 전 대표팀 감독과 한솥밥을 먹는 두번째 사례가 됐다.‘러시아판 태극듀오’인 셈. 그러나 제니트에는 이미 한·일월드컵 멤버였던 현영민(27)이 뛰고 있어 이들은 사실상 러시아 진출 2호다. 다음주 현지로 건너가 메디컬 테스트를 비롯한 필요한 절차를 밟은 뒤 정식 계약을 체결할 예정. 관건은 월드컵 후광을 업은 둘의 러시아 진출이 빅리그 도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느냐다. 러시아리그에서 잘 적응할 경우 에인트호벤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의 뒤를 밟을 수도 있다. 더욱이 러시아리그는 최근 급성장해 빅리그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아드보카트 전 감독은 “신임 핌 베어벡 감독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세계적인 지도자”라면서 “압신 고트비와 홍명보 코치 등도 뛰어난 지식과 자질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한국 축구는 좋은 연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남기고 곧바로 한국땅을 떠났다. 제니트를 1년6개월간 지휘할 그는 새달 6일 다이나모 모스크바를 상대로 러시아 데뷔전에 나선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클릭 지구촌 이곳!] 일본 ‘하녀 서비스’ 확산

    [클릭 지구촌 이곳!] 일본 ‘하녀 서비스’ 확산

    |도쿄 이춘규특파원|메이드(maid·하녀) 카페로 촉발된 ‘하녀서비스 열풍’이 도쿄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확산중이다. 첨단 전자제품 마니아(오타쿠)들이 많이 찾는 아키하바라에 손님을 ‘주인님’으로 모시는 메이드 카페가 들어서 인기를 끌자, 미용실과 전자제품상점에서도 하녀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메이드 카페란 유럽풍의 하녀복장을 한 여성들이 손님을 주인님이라고 모시는 카페다. 카페에 따라 서비스는 다양하다. 입·퇴장 때만 주인대접을 받은 뒤 게임이나 뉴스검색만 할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별도 요금을 내면 함께 카드놀이도 하고, 사진찍기, 그림그려주기 서비스 등도 받을 수 있다. 요금이 조금 비싼 곳은 메이드가 사탕을 던져 주면 주인이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서비스도 있다. 말 상대도 해준다. 메이드들이 무대에서 노래·율동을 보여 주는 곳도 있다. 최근엔 메이드가 주인님을 모시고 도쿄의 명소로 데이트도 나간다. 인기 메이드는 고액의 스카우트 대상이다. 지난 주말. 전철 야마노테센 아키하바라역에서 나와 대형 전자제품 매장이 줄지어 선 중앙대로 쪽으로 향하는 광장에서 ‘유이’(24)라는 이름표를 단 메이드가 전단을 돌리며 “찾아와 주세요.”라며 애교를 떨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행인들과 기념사진 촬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앙대로 안 골목에 있는 메이드카페 ‘메이쇼’ 소속이다. 메이드 자격은 18∼29세의 여성이다. 급료는 보통 시간당 900엔 안팎이다. 메이쇼의 첫회 입회비는 2000엔(약 1만 6800원)이다. 메이드를 지명해 서비스를 받으려면 1000엔이 추가로 든다. 밀실데이트 등 특별한 서비스 요금은 시간당 6000엔. 도쿄 시내 데이트는 시간당 6000엔. 교통비와 공원입장료 등은 ‘주인님’ 부담이다. 코스는 우에노공원, 아사쿠사, 도쿄돔시티 등 세가지다. 가라오케, 쇼핑도 가능하다. 아키하바라역 근처엔 메이드 카페 20여곳이 영업중이다. 메이드 카페는 처음에는 “불경기에다 취업난으로 고생한 젊은이들이 하녀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카페들은 골목길에 은밀하게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8시까지가 대부분. 중앙로에서 두 골목 정도 들어간 곳에 있는 ‘메이드 카페’에 들어서니 하녀 복장을 한 메이드들이 “주인님, 어서오시와요.”,“주인님 모셔라.”고 외친다. 건물 3층 카페 안에는 일반테이블에서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있고, 한켠에선 4대의 컴퓨터에서 정보검색에 열중인 손님도 있다. 손님은 20명 정도. 한쪽으로 가 DVD게임기에 앉았다.30분간 게임을 하면서 우롱차 등을 마음대로 마시는데 400엔이다. 작은 캔맥주는 별도로 400엔, 바쁘다며 식사는 판매하지 않았다. 입·퇴장 때 입으로만 주인님을 외쳐댔지만, 서비스 수준은 별로였다. 인근의 K카페는 지난해 가을 개점했다. 하루 평균 손님 130명 안팎이 찾는다고 한다. 손님은 남녀 구분없이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단골손님도 있지만 호기심에 찾는 손님이 많다. 메이드 카페는 오사카 등 다른 도시에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이나 태국 등지에도 메이드 문화가 수출됐다. 이 하녀서비스는 미장원, 전자제품 판매점 등 다른 업종에 도입돼 확산되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헤어살롱’은 하녀복장을 한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어 준다. 천장에 거울이 설치돼, 메이드가 성심성의껏 머리를 감겨주는 모습을 의자에 누운 채 볼 수 있다. 학축제에서도 교내에 설치된 포장마차에 하녀복장의 학생들이 인기를 끌었다. 하녀복장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할인점 돈키호테 아키하바라 점포에는 ‘메이드제품 코너’가 설치돼 호황이다. 한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엘리자베스(25)는 시간당 900엔을 받아,10만엔 정도의 월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녀는 개성이 넘치는 조그만 선물을 만들어 주인님들에게 500엔을 받아 팔기도 한다. 회사원인 아버지(56)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좋다.”고 한다. 반면 어머니(52)는 “남들이 알까 걱정이다. 빨리 그만두면 좋겠다.”라는 입장으로 엇갈렸다. taein@seoul.co.kr
  • 삼성전자 출신 홍보우먼 은경씨 기획처 홍보팀장으로

    기획예산처가 삼성전자 출신의 여성 홍보 전문가를 영입해 정부 정책 홍보에 나선다. 기획처는 지난해 신설한 홍보기획팀장(4급)의 계약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공모를 거쳐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센터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파트장 출신인 은경(36)씨를 채용했다고 15일 밝혔다. 23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은 팀장은 현재 각 부처에서 일하고 있는 민간홍보 전문가 팀장급 가운데 가장 젊다. 은 팀장은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한화그룹 공채로 입사,8년간 휴대전화를 비롯한 통신기기 광고홍보 업무를 했으며 기획력과 업무추진력을 인정받아 그룹내에서 최연소 과장으로 승진했다. 2001년에는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와와컴 홍보팀장으로 변신, 대언론 홍보와 온라인 프로모션·사업제휴 업무를 했다.2002년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돼 신규사업 조직인 디지털솔루션센터에서 홍보와 광고, 전시, 브랜드 기획 등의 일을 해왔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World cup] ‘만년 우승후보’ 이번엔 恨 푼다

    [World cup] ‘만년 우승후보’ 이번엔 恨 푼다

    만년 우승후보와 첫 출전 우승후보가 월드컵 무대에서 충돌한다. 스페인과 우크라이나가 14일 오후 10시 라이프치히에서 독일월드컵 H조 조별리그 첫 경기를 펼치는 것. 스페인은 3개 빅리그 가운데 하나인 프리메라리가를 가진 축구 강국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선 최고 성적 4위를 기록한 1950년 브라질대회를 빼곤 단 한 번도 4강 안에 들지 못했다. 한·일월드컵 때도 8강에서 대한민국과 승부차기 끝에 눈물을 삼켰다. ●노장 라울 교체선수로 투입 될듯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풍부한 선수층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절치부심 최상의 성적을 노린다. 스페인의 이번 대회 기수는 ‘신성’ 페르난도 토레스(22·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토레스는 18세에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해 02∼03시즌 29경기 13골,03∼04시즌 39경기 15골을 작렬시키며 라울 곤살레스(29·레알 마드리드)의 뒤를 이을 킬러로 떠올랐다. 지역 예선에서도 10경기 7골을 쐈다.183㎝의 큰 키에도 빠른 스피드를 갖췄고, 슈팅 센스는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우상 라울이 부상 회복 속도가 더뎌 우크라이나전에서 교체선수로 투입될 전망이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겁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대회가 사상 첫 월드컵이다. 하지만 잠재력만은 유럽 어느 팀 못지않다. 지역 예선 2조에서 한·일월드컵 4강 터키와 유로2004 우승팀 그리스를 꺾고 개최국 독일을 빼곤 가장 먼저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다만 ‘득점기계’ 안드리 첸코(30·첼시) 의존도가 너무 높고 주전들이 큰 대회 경험이 적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우크라 첸코 의존도 너무 높아 우크라이나의 별은 역시 2004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선수 첸코다.1994년 우크라이나 명문 디나모 키예프에 입단한 첸코는 1999년 UEFA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소속팀을 4강까지 끌어올린 뒤 세리에A 명문 AC밀란으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2003년 팀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이듬해 세리에A 득점왕으로 팀을 리그 정상에 각각 올려놨다.05∼06시즌부터는 ‘로만 제국’ 첼시로 자리를 옮겨 프리미어리그 정복에 나선다. 순간적인 공간침투 능력에다 반 박자 빠른 슈팅 타이밍으로 ‘결점이 없는 스트라이커’로 불린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World cup] 지단-앙리 조합 먹힐까 포겔 리더십 발휘할까

    [World cup] 지단-앙리 조합 먹힐까 포겔 리더십 발휘할까

    프랑스-스위스의 정면 승부에는 포지션별 창과 방패가 날카로운 승부를 예고한다. 프랑스 공격의 선봉장에는 현존 최고의 공격수 티에리 앙리(29·아스널)가 나선다. 육상선수 출신의 앙리는 빠른 발과 날렵한 몸놀림, 어떤 상황에서도 슛을 날릴 수 있는 골 결정력이 돋보인다. 프랑스 명문 AS모나코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뒤 1999년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 입단했다.03∼04시즌 30골을 몰아치며 팀의 무패 우승을 이끄는 등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A매치 78경기에 33골을 몰아쳤다. 앙리에 ‘프랑스 리그 득점왕’ 알렉산더 프라이(27·스타드 렌)가 맞선다. 프라이는 지역 예선 10경기에서 팀내 최다인 7골을 터뜨린 스트라이커.03∼04시즌 프랑스 리그 28경기 20골로 득점 2위에 올랐고 04∼05시즌에는 36경기 20골로 득점왕에 올랐다.A매치 45경기에서 25골을 터뜨렸다. 중원에선 공격형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34·레알 마드리드)과 수비형 미드필더 요한 포겔(29·AC밀란)이 충돌한다. 노장 지단은 가끔 어이없는 실수도 보이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킬패스로 뒷공간 수비가 약한 스위스를 마음껏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위스의 김남일’ 포겔도 만만치 않다.1995년 대표팀에 뽑힌 뒤 다음해 바로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다 ‘카데나치오’(빗장수비)로 유명한 세리에A의 명문 AC밀란에 스카우트될 만큼 뛰어난 중원 수비력을 보여 노쇠한 지단을 꽁꽁 묶을 능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스타지망 좋다만 속지마오

    스타지망 좋다만 속지마오

    당신도 영화배우가 될 수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피를 본 「스타」지망생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는 미끼에 걸려들어 금품을 빼앗기고 몸을 망치고, 그래서 화려한 「신데렐라」의 꿈 대신 사색(死色)의 낯빛이 되어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영화가 주변엔 지금도 「스타」지망생을 노리는 상습 사기꾼이 버젓하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 피해자들의 실례를들어 영화사기꾼의 숫법을 알아보자. 강정태(姜貞泰)(가명·24·고졸(高卒))씨는 2개월가량 영화배우가 된 줄만 알고 기뻐했다가 돈 20만원만 날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가 마의 손길에 걸린게 지난 6월. S예술학교에 다니면서 출연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어느 날 두툼한 편지 봉투가 날아왔다. 『범인을 찾는 12인의 얼굴』이란 영화제목의 광고문과 신인배우 모집요강이 들어 있었다. 신문지 크기의 광고문에는 제작자 김동기(金東基)(가명), 감독 김중원(金中遠)(가명)의 이름으로 『연애시대(戀愛時代)』『흑춘(黑春)』 두편의 영화가 사진과 함께 소개됐고 「개봉박두(開封迫頭)」라고 박혀 있었다. 그리고 동봉한 엽서에는 『출연할 의사가 있으면 일차 면담하자』고 서울 광화문의 S다방을 지정해 놨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金씨는 있는 맵시를 다 내고 지정한 다방으로 나갔다. 먼저 만난게 제작부장이라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 金모, 감독 金모의 차례 최종적으로 金감독은 『우선 촬영현장에 가서 「카메라·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일사천리의 진행에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촬영현장이라는 정능(貞陵) 골짜기에 가서 金씨는 실제로 「카메라」앞에 섰다. 촬영, 조명「스태프」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앞얼굴, 옆얼굴을 찍고 간단한 「액션」도 해보았다. 이틀뒤 金씨는 조연으로 출연시킨다는 통지와 함께 「시나리오」를 받았다. 주연엔 申모, 尹모라는「톱·스타」. 2개월간 세 번 촬영장에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申, 尹같은 「톱·스타」는 그때마다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예명을 짓고 1년간 전속계약까지 체결한 金씨는 그 동안에 제작자에게 1만원에서 5만원단위로 15만원을 빌려줬다. 「카메라·테스트」에 3천5백원, 분장료 9천원, 제작부장, 조명기사, 촬영기사에게 잘 보이려고 준 돈이 근 10만원. 그리고는 끝장이 났다. 똑같은 「케이스」에 걸린 사람으로 朴종만(가명), 文진희(가명)가 있다. 두 사람은 모 영화사가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했다가 낙방한 사람. 약간 실의에 잠겼을 때 예의 초대장이 왔고 각각 15만원~20만원씩 빼앗겼다. 여자인 文양의 경우 「매니저」를 자청한 청년에게 별도의 사례로 2개월에 5만원을 주었고…. 끝장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수상하다고 느끼면 이미 늦은 때였다. 사기꾼의 행각이 그만큼 완벽하기 때문에 배우지망생이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들이 조금만 침착했다면 그들의 출연영화가 실제로 제작되는 것인가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들을 속인 『연애시대(戀愛時代)』란 영화가 제작됐는가도 알아봐야할 일이다. 제작자는 한국 영화제작자협회에, 감독은 한국영화인협회에 그 정체를 문의해봤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정체를 알아보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얼마전에 이름을 대면 곧 알 수 있는 영화감독의 명의로 배우지망생을 농락한 사기한이 있었다. 그 사기한은 서울교외 팔당(八堂)에 근거를 두고 주로 여배우 지망생에게 야릇한 「카메라·테스트」를 며칠간 했다. 7,8명이 빈집에서 합숙하면서 「필름」도 들지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했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 자신이 수치심 때문에 고발을 못했다. 물론 그런 약점이 충분히 이용된 것이지만 상습 사기한은 숫법이 좀 더 치밀하다. 3년전에 피해자의 고발로 철창신세를 진 일이있는 K라는 사기한은 지금도 다른 이름(그에겐 10개 이상의 이름이 있다)으로 계속 성업중. 그가 내건 영화사 이름만도 「x亞필름」등 6개나 된다. 그는 신인모집에 1개월쯤 앞서서 월간잡지에 만들지도 않는 영화광고를 낸다. 윤정희(尹貞姬), 남정임(南貞妊) 같은 A급 배우의 사진을모아 「스틸」을 만들고 「개봉박두(開封迫頭)」를 선전한다. 이용하는 잡지는 주로 「영화xx」「xx잡지」등 값싸고 판매율이 적은 잡지. 그 다음엔 같은 이름으로 일간지 광고난에 신인모집 광고를 낸다. 잡지에 게재한 「개봉박두(開封迫頭)」의 영화는 「포스터」로 만들고 거기에 신인기용의 새작품을 발표한다. 제작 실적을 과시함으로써 의혹을 씻으려는 작전이다. 응모자가 나타나면 20명이든 30명이든 우선 면접통지를 우송하고 예의 「카메라·테스트」를 한다. 「테스트」비용 3천여원을 선뜻 내면 우선 합격이고 2단 3단계로 돈을 긁어낸다. 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혼자만 합격인가 싶지만 사실은 몇십명을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숫법으로 상대하는 것. 이들은 실제로 「시나리오」도 만들고 촬영흉내도 낸다. 7,8명이 작당해서 「카메라」를 메고 야외 「로케」를 나간다. 「레디·고」를 부르고 연기연습도 시키지만 사실상 그 앞에서 돌고 있는 촬영기는 「필름」도 들지 않은 빈털터리. 믿고 돈이나 주면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들중에는 현역감독, 제작자의 이름을 빌어 행동하는 철면피도 있다. 정진우(鄭鎭宇), 문여송(文如松)씨등의 이름이 이용된건 오래전 일이고 얼마전엔 가짜 정소영(鄭素影)감독이 나타나 말썽이 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영화제작은 당국에 등록된 영화사만이 할 수 있고 촬영에 앞서서 제작자는 작품신고를 하게 돼있다. 신인모집은 감독, 제작자가 「스카우트」하는 경우와 공개모집의 두 「케이스」가 있지만 사서함(私書函)을 이용하거나 신문 3행광고를 이용하는 따위 옹색한 짓은 않는다. 「스타」지망생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다. 또한가지 배우지망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는 이른바 각종명칭의 배우학원이다. 서울에는 한때 20에 가까운 배우학원이 난립하여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이중 실제로 일정「코스」를 정해 교육시키고 있는 학원은 불과 4,5개. 이중 10년 전통을 자랑하고 배우산출 실적이 있는곳도 한둘 있으나 나머지는 믿을게 못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기한이 그렇듯 영화계 주변의 사기한들은 피해자가 고발을 못하도록 교묘한 수단을 쓰고 있다. 일단 법망에 걸려도 빠져 나오기 일쑤. 영화의 부산물 치고는 엄청난 사회문제다. 배우 지망의 선남선녀는 우선 영화 출연에 돈이나 그밖의 것을 요구하는 제작자가 있다면, 그를 사기한으로 고발하는게 좋을 것 같다. [선데이서울 69년 10/12 제2권 통권 제 55호]
  • 한국팀의 스타 이회택

    한국팀의 스타 이회택

    한때는「홍콩」의「프로」축구가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로 서독의 어떤「프로·팀」이 2만5천「달러」로 계약을 하자고 덤벼들었다. 이 국제적「스카우트」의 눈초리 속에 휘말려들고 있는 선수가 바로 한국대표 양지「팀」의 CF 李會澤(23)이다. 힘찬 突破力(돌파력)…敵陣(적진)뚫는「톱·플레이어」 확실히 李會澤은 한국 축구의「스타」이다. 세월따라 한 시대씩을 대표하는 명「플레이어」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열광적인 갈채속에 파묻히게 마련이다. 李會澤은 1960연대 후반기를 장식하고 있는 오늘의「스타·플레이어」임에 틀림없다. 168cm의 키에 65kg의 몸무게-다부진 체격이다. 초록의 잔디밭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재간있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여간 멋진게 아니다. 李會澤의「플레이」는 돌파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온통 힘으로 뭉쳐진듯한 다리가「볼」을 요리조리 몰아대면서 상대편의 수비를 뚫고들어가 멋진「센터링」으로「찬스」를 만들어주는가하면 상대방의 헛점을 잽싸게 잡아 강「슛」을 쏘아대기도 한다. 꼭 10년전이었다. 경기도 金浦(김포)중학 교정의 운동장에선 김포군내 각 읍·면대항 축구전이 벌어지고있었다. 막 김포중학 1학년에 입학했던 李會澤은「러닝」바람으로「볼」을 차고 있는 선수들의 힘찬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원정 10여차례 올림픽 豫選(예선)선 敗勢(패세) 막고 「골」을 집어넣은 「팀」의 선수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날뛸때 李會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슴밑으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흥분이 있었다. 『나도 축구 선수가 돼봤으면!』 李會澤은 다음날 김포중학 축구「팀」에 자원해서 들어갔다. 처음엔 선배 선수들의 뒤치다꺼리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1년이지나 2학년이 되면서는 김포중학의 「베스트·멤버」로 뽑혔다. 중학을 졸업하자곧 서울의 東北(동북)고교에「스카우트」됐다. 1963년의 일이었다. 당시 한국 고교축구는 동북-한양공고의「라이벌」시대였다. 동북고에 진학하면서부터 주전「멤버」로 활약했다. 고교 3학년때인 65년 한국 청소년 대표선수로 뽑혀 제7회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첫해의 원정이었다. 10여차례의 해외원정을 위한 서곡이었다. 차차 李會澤의 이름이 축구인들사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회택이란 놈 크게 될꺼야. 두고 보라구. 쓸만한 재목이라니까』 1966년 동북고교를 졸업했다. 石公(석공)에 들어갔었다. 그해 12월 태국「방콕」에서 열린 제4회「아시아」경기 대회에 마침내 한국대표「팀」의 CF로 참가했다. 「아시언·게임」에서 돌아 온 이듬해인 67년 양지「팀」이 탄생했다. 한국 축구의 재건을 「캐치·프레이즈」로 내 세우고 이름있는 유망주들을 널리 규합 사실상의 국가대표「팀」으로 출범하고 있었다. ”팔려갈생각 전혀 없어요「월드·컵」향해 정력쏟을뿐” 양지에 뽑혀갔다. 바야흐로 李會澤의 화려한 전성기가 막을 열게 됐다. 이해 일본「도꾜」에서 열린「멕시코·올림픽」축구예선에 다시 한국대표로 나갔다. 일본과의 경쟁이 촛점이었다. 예상은 일본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과연 전반에서 한국은 2-0 으로「리드」를 뺏겼다. 선수들은 모두 풀이 죽어 버렸다. 아무래도 이길수는 없을 것 같다고 지레 힘이 빠진듯한 허탈감속에 잠겨 있었다. 후반에 접어들자 李會澤은 미처 일본 수비진이 진용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혼자「볼」을 몰고 들어가「클린·슛」1점을 만회해냈다. 눈깜짝할새였다. 이 총알같은 李會澤의「슛」은 의기소침해 있던 한국「팀」에게 분발의 신호탄을 터뜨려 올린 셈이었다. 결국 3-3으로 비길 수있었다. 뒤에 일본은「멕시코·올림픽」에 나가 기적의 3위를 차지했다. 강「팀」이었다. 그 일본과 3-3으로 비기는데 李會澤은 크게 기여했다. 『10여차례 해외에 나가 보았지만 그때 그「게임」이 제일 인상에 남아 있읍니다』 이번「월드·컵」예선전에서도 물론 그의 활약은 가장 큰 기대속에 파묻혀있다. 『일본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국과 같이 동양축구를 하고 있거든요.게다가「가마모또」가 출전치 못한다는 소문이 어서 일본「팀」은 그만큼 전력이 약화됐다고 보아야겠지요. 오히려 호주가 더 무섭습니다. 서구식 축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뭏든 있는 힘을 다해 꼭 이기도록 이를 악물겠읍니다』 고향인 경기도 김포군 김포면 사우리에서 농사짓는 삼촌 李容燮(이용섭·33)씨가 유일한 후견자다. 부모는 모두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형제도 없이 혼자뿐이다. 그러나 그에겐 그늘이라곤 없다. 축구가 있으니까. 축구는 그의 어버이요 애인이요 그리고 전부다. 지난 6월 양지「팀」이 「유럽」원정도중 서독에 들렀을때 그쪽에서 계약하자는 얘기가 나왔었지 않았느냐는 물음엔『아직은 생각이 없읍니다. 한국의 축구가 곧 나의 그것입니다』 축구와 더불어 사는 李會澤의 단호한 대답이다.
  • 축구스타 미쳤던 축구소년

    축구스타 미쳤던 축구소년

    1957년의 어느날이었다. 경남 충무(忠武)시의 어느 골목안. 한떼의 조무라기들이 편을 짜 고무「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하프·라인」도「골·포스트」도 아무것도 없었다. 양쪽으로 갈라져 놓여있는 돌멩이 두개가「골」을 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국민교 5학년때 골목안 시합에 진후로 공을차는 꼬마들이 표정만은 어느 국제대회에 출전한 대선수 못지않게 진지한 것이었다. 한쪽 편 선수가 신나게「볼」을 몰고 들어갔다.「골」가까이 이르러「볼」을 걷어찼다. 상대편 수비선수의 발앞으로「볼」이 굴러갔다. 아주 쉽게 내 찰수 있는「볼」이었다. 그러나「볼」을 향해 내찬 소년의 발은 그만 허공을 차버리고 말았다. 헛 발질이었다. 뒤에 받치고 있던 선수가 가볍게「볼」을 받아「슛」을 성공시켰다. 「게임」이 끝나버렸다. 시간을 정하고 한 시합이 아니라 두「골」을 먼저 넣는쪽이 이기게 돼 있었다. 이긴쪽 꼬마들은 신이나서 날뛰었다. 진쪽 꼬마들은 기가 죽어버렸다. 그 중에서도 헛발질을 해 승리를 상대편에게 안겨주게 만들었던 소년은 고개마저 푹 숙인채였다. 두국민학교 5학년 아동이었다. 집에 돌아온 김호는 저녁밥도 먹지않았다. 머릿속에서는 헛발질을 한 자기의 모습만이 아물거렸다. 아무리 지워 버리려해야 지워지지 않았다. 김호는 이를 악물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이기고야 말리라. 학교 축구부에서도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겠다. 『최정민 아저씨같이 돼야한다. 나도 최정민 아저씨만한 축구선수가 돼야한다』 몇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월드·컵」세계축구 15-A조 예선전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김호는 어려서부터 무척 축구를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골목에서고 학교운동장에서고「볼」을 찼다. 아버지 김선돈(金善敦)씨는 축구경기가 있을때마다 김호를 데리고 구경을 가곤했다. 어린눈에 운동장을 누비는 선수들의「유니폼」차림은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최정민선수의 이름은 어린 김호에게는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번도 본일은 없으나「라디오」중계방송이나 신문에서 최선수의 활약상을 가장 부럽게 듣고 보고했다. 용두국민학교를 거쳐 통영중학에 입학, 축구선수로서의 기초를 닦았다. 통영중학을 졸업하자 부산 동래(東萊)고교에 진학했다. 동래고 축구「팀」의 재건에 주축이 되었다. 동래고는 그때 그다지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한 동래고「팀」에서도 특히 김호의 활약만은 눈이 띄곤 했다. 64년 동래고를 졸업하자 제일모직에「스카우트」됐다. CH였다. 큰 키를 이용, 수비와 공격을 이어주는데 특별한 활약이었다. 이름난 공격의 명선수(名選手)도 막아서면 뚫고가지 못해 다음해인 65년 해병대에 입대, 해병대「팀」에서 활약, 67년 양지「팀」이 창단되면서 양지로 옮겼다가 다시 지난봄 상은으로 자리를 잡았다. 첫 해의 원정에 오른 것은 66년의「메르데카」배 쟁탈 축구대회때였다. 한국대표 선수로 화려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4위에 그치고 말았지만 김호의 활약은 뛰어났다. 일본과의 대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었을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었다. 67년「멕시코·올림픽」예선전을 비롯, 10차례의 국제무대진출이 관록으로 붙어있다. 「플레이」의 폭이 무척 넓다.「센터·하프」로 수비의 중심일뿐더러 공격으로의 전환을 위한 연결에 특히 뛰어난「센스」를 보이고 있다. 상대편의 공격이 아무리 세차다가도 김호앞에 와서는 막히고 만다. 지난번 양지「팀」의「유럽」원정에 끼였다가 돌아왔다. 『서독(西獨)같은데는「게임」을 하기 앞서「위밍·업」하는 구장이 따로 있고 경기를 하는「론·그라운드」가 따로 있었읍니다. 얼마나 잘 정돈돼 있는 경기장인지 모릅니다. 한국에도 마음놓고 경기할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이 빨리 마련돼야겠습니다. 선수들의 숙소「샤워」장 연습장 할것 없이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읍니다.』 이번 서울 15-A조 예선전에 대비한「컨디션」정비는 만점. 양지「팀」합숙소에서 거르지 않고 해온「하드·트레이닝」은 고된 것이기도 했지만 다가올 결과를 생각하면 무척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겠읍니다. 일본이나 호주가 모두 만만치 않은 적수이지만 무섭지는 않습니다. 우리「팀」도 보통 실력이 아니거든요.「팬」들과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읍니다』 올해 나이 25세. 176cm의 훤칠한 키에 67kg의 몸무게. 경남 충무산(忠武産). 틈틈이 영화를 즐기는 외에 특히 운동구경을 좋아한다.
  • 드림팀 왜 무너질까

    쟁쟁한 스타들이 즐비한 드림팀이 맥없이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최고 인재들을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한 에너지 기업 엔론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돌아보면 드림팀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된다고 포천 온라인판이 1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잡지는 기업의 팀워크를 이야기할 때 다섯가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머서 델타 컨설팅사의 데이비드 네이들러는 “지금까지 보아온 최악의 팀은 모두 잠재적인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팀”이라며 “소위 승계라 불리는 제로섬 게임이 계속되는 한, 조직의 효율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두번째는 성공하는 팀의 가장 기본으로 꼽히는 신뢰. 컨설턴트인 램 차란은 “헤드헌터가 늘 주시하고 다른 팀에서 빼내가려 하기 때문에 드림팀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세번째로 ‘태양’이 둘이면 오래 못 간다는 것이다.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에 머물렀던 10년동안 조직관리임원(COO)이었던 프랭크 웰스와는 찰떡 궁합으로 황금기를 일궜다. 그러나 마이클 오비츠를 회장으로 맞은 14개월간 서로 어젠다가 너무 달라 아무것도 못했고 회사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네번째로 긴장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운동 경기를 통해 팀원들을 최대한 어이없는 경쟁을 하도록 내몰고, 자신들의 경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의나 격식 때문에 에두르지 말고 실제 문제를 드러내 해결하라는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IMD)의 조지 콜리저 교수는 “생선을 식탁에 올려놓으면 냄새나고 피가 흘러 성가시지만 맛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커리어 우먼] 한명일 우리아메리카은행 윌셔지점장

    [커리어 우먼] 한명일 우리아메리카은행 윌셔지점장

    “교포는 물론 미국인들까지 감동하는 은행 서비스를 선보이겠습니다.” 지난달 22일부터 30일까지 우리은행 본점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 왔다. 우리은행 해외지점과 현지법인에서 일하는 직원 30명이 한국의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등을 배우러 온 것이다. 이들은 모두 현지에서 채용된 교포나 현지인들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여성은 우리아메리카은행 LA 윌셔지점의 한명일(크리스티나 한·45) 지점장이었다. 우리아메리카은행은 우리은행이 100% 출자한 현지법인으로 주로 미국 동부지역에서 영업을 하는 미국 최대의 한인은행이다. 지난해까지는 우리아메리카은행의 지점 14곳이 모두 뉴욕 등 동부에 있었는데 올 1월 처음으로 서부인 LA에 윌셔지점을 냈다. 윌셔가(街)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100여개의 은행이 밀집한 곳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지점장으로 ‘서부 개척’의 특명을 받은 한 지점장은 은행원 출신이 아니다. 전업 주부로 여행사 직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1992년에 이민을 떠난 한씨는 주위에서 “친화력이 좋으니 은행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보라.”는 권유를 종종 받았다. 남편은 “평소 은행에 잘 가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은행일을 하겠냐.”며 만류했다. 한씨는 음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전공과도 무관했다. 한씨는 어렵게 이민 생활을 꾸려가는 남편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한인은행인 중앙은행에 원서를 냈고, 뜻밖에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지점장 비서를 거쳐 창구텔러 업무까지 맡게 된 한씨는 지인들에게 집요할 정도로 예금 유치를 부탁했고, 밤을 새우며 미국의 은행 업무를 공부했다. “나이 서른한 살에 첫 직장에 들어간 셈이죠.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뚜렷한 목적없이 살았던 젊은날이 후회스럽기도 했고요.” ●“해외 부동산 투자 조심하세요.” 악착같은 영업으로 마케팅 시즌 때마다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은행은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 단순 입출금에서 수표관리 등으로 업무를 확대시켰고, 매년 꼬박꼬박 승진해 오피서(부지점장) 자리까지 올랐다. 한인은행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평판이 자자해졌고, 결국 우리아메리카은행은 서부 거점인 윌셔지점을 개설하면서 그녀에게 지점장을 맡아달라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 왔다. 한씨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의 은행 업무가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소개했다. 테러·마약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고객이 은행 계좌를 열 때마다 월 예상 입·출금액 등을 꼬박꼬박 물어야 했다. 고객이 애초 예상한 입금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들어오면 금융감독당국은 여지없이 감사에 착수했다. 고객 대부분은 교포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지점을 찾는다. 한씨는 “현지인 고객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세계적인 은행을 제쳐놓고 굳이 조그마한 한인은행을 찾는 사람들은 일단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은 뒤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얼떨결에 시작했던 은행원 생활이 벌써 14년째가 된 한씨는 “나름대로 고객에 대한 원칙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녀는 높은 이자를 좇아 예금을 수시로 옮기는 고객보다는 적은 액수이지만 꾸준히 믿고 맡기는 고객을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씨는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우리 지점으로도 투자를 문의하는 한국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한씨는 “캘리포니아 지역 역시 부동산 버블 논란이 있다.”면서 “철저한 현장 조사를 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투자 브로커를 조심하라고 했다. 윌셔지점을 포함한 많은 한국 은행의 지점들이 최근 원화 환전 업무를 시작했다. 한씨는 “원화가 돌기 시작하니까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도 원화를 받기 시작했다.”면서 “화폐의 위상은 곧 그 국가 경제의 위상”이라며 으쓱해했다. 영업실적 1등보다 금융사고 없는 지점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 한씨. 깐깐한 아줌마 지점장은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국내 은행의 과제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한명일 지점장은 ▲1961년 서울생 ▲음대 졸업,1992년 미국 이민 ▲한인은행인 중앙은행, 나라은행, 새한은행에서 근무 ▲창구 텔러에서 오피서(부지점장)까지 승진 ▲2006년 1월 개설된 우리아메리카은행 LA 윌셔지점장 발탁
  • “한류 과제는 우수 콘텐츠 개발”

    “한류 과제는 우수 콘텐츠 개발”

    국내외 한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2일 경기도 주최로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한류우드 활성화 국제세미나’에서다. 기조강연에 나선 김지하 서울예술종합대학 석좌교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할리우드에서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국가정책 차원으로 바뀌어야 하고, 스크린쿼터제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류스타 윤손하 등이 소속된 일본 종합엔터테인먼트사인 ‘호리프로’의 호리 가즈타카 부회장은 한류 드라마를 통해 본 한국의 불투명한 음악저작권 관리체계와 매니지먼트 업계의 계약금 관행, 연예인 브로커 문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호리 부회장은 “한국 매니지먼트 업계의 오랜 관행인 계약금 시스템이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가 서로 신뢰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면서 “고액의 계약금을 지불한 회사는 투자액을 빨리 회수하려고 연예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키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매니지먼트사와 연예인 사이에 불신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능 있는 한류 스타를 키우려면 매니지먼트사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기존 연예인을 스카우트하지 말고 연예인을 스스로 발굴, 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연예인은 당장의 이익에 구애받기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리 부회장은 또 “‘겨울연가’ 이후 일본에서 확대된 한국 콘텐츠 시장이 마니아적 수준으로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우수한 콘텐츠를 계속 개발, 공급해야만 한국 콘텐츠 시장은 유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겨울연가·가을동화 등 ‘계절시리즈’로 한류 붐을 일으킨 윤스칼라 박인택 대표는 “한국 드라마는 경제성이 낮은 협소한 국내 시장과 제작비 증가의 주요 원인인 스타 자원의 한계성, 그리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문제 등 제약이 많다.”면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 소재와 시나리오를 개발하려면 공동제작, 마케팅 등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이사, 김종학프로덕션 김종학 대표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위기서 빛난 ‘웨커식 리더십’

    “내일 외환은행 간판을 내리는 한이 있어도 오늘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은행 출입을 막는 노동조합을 상대로 1주일 동안 ‘출근투쟁’을 벌이다 지난 22일 겨우 행장실에 들어온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은 “고용안정과 브랜드 유지를 위해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외환은행의 마지막 행장으로 기록될 웨커는 불행한 최고경영자(CEO)다.한국민 대다수가 ‘투기자본’으로 인식하고 있는 론스타에 의해 고용됐고, 그의 임기 중에 외환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투기자본의 하수인에서 조직의 희망으로” 그러나 ‘미스터 웨커’는 자신만만하다. 노조가 출근길을 막았지만 꼬박꼬박 은행 정문에 나와 ‘노상 대화’를 시도했다. 아예 돗자리를 펴놓고 “여기서라도 대화를 하자.”며 역(逆)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급히 구한 서울시청 근처 오피스빌딩 한편에서 밤 늦게까지 집무를 하는 모습에 직원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은행의 중추인 부장과 지점장들이 사퇴 결의서를 작성하자 “퇴직서를 제출하면 즉각 수리하겠다.”며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결국 부점장 중 누구도 사직서를 내지 못했다. 그의 행동은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내국인 행장이라면 웨커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그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면서 행장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새 주인이 될 국민은행에 독립경영과 고용승계를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웨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 중견간부는 “우리의 요구를 그나마 국민은행장에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웨커 행장”이라면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시기와 장소를 잘못 타고난 유능한 CEO” 또 다른 간부는 “학연과 지연이 팽배했던 조직문화를 2년만에 완전히 뜯어고친 CEO”라고 평가했다. 은행 특성상 명문대학 출신이 유난히 많은 외환은행에는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파벌이 고질병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CEO에게 파벌이 통할 리 없었다. 웨커 행장은 지난해부터 신입행원 선발에서 학력을 완전히 철폐했다. 줄서기가 만연했던 정기인사도 없앴다.‘내부 스카우트’ 제도를 도입해 인사 때마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인재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드러나게 했다. 부점장의 실적이 하위 10%에 두 차례 이상 포함되면 가차없이 보직을 박탈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공명정대한 성과보상 체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국민은행과 합병이 되더라도 과거 성과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돼 있어 일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웨커가 오히려 행복한 CEO라는 평가가 나온다. 짧은 기간 동안에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와 노조와의 극한 대립을 겪으면서도 조직원의 신뢰를 잃지 않은 외국인 CEO가 과연 몇이나 되겠냐는 것이다. 시중은행 부행장은 “세계 최대 기업인 GE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웨커 행장이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은 특별할 것”이라면서 “외환은행에서의 ‘산전수전’은 CEO 이력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구기자window2@seoul.co.kr
  • 현대重, 현대건설 부사장 영입

    현대重, 현대건설 부사장 영입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간 만남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긴장도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현대건설의 핵심 경영진이 최근 현대중공업으로 영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현대중공업 등에 따르면 플랜트건설 전문가로 현대건설 기전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난 4월 말 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한동진 부사장이 최근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한 부사장은 현대석유공사, 현대엔지니어링 근무를 거쳐 97년부터 현대건설 해외플랜트사업본부 임원으로 일하며 현대건설의 굵직한 해외 플랜트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한 부사장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출신 임직원이 추가로 현대중공업에 새 둥지를 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이 ‘미묘한’ 시점에 건설 출신 인사를 영입하면서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결국 현대건설 인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인수하면서 단순투자라고 밝혔지만 현대그룹측이 명백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대부분 조선업체와 마찬가지로 국내건설·해외건설·주택건설 등을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다. 사업 성격이 건설과 흡사한 플랜트부문 매출이 지난해 619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0%였고 굴착기, 지게차 등 건설장비부문 매출도 1조 514억원으로 10.2%를 차지할 정도여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또 현대상선 지분 8.7%를 갖고 있어 34.74%(현대그룹) 대 32.94%(현대중공업·KCC)로 팽팽한 지분구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한 부사장의 영입은 늘어나는 해외플랜트 수주를 소화하기 위한 것일 뿐 현대건설 인수와는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NPB] 승엽-마쓰자카 내일 자존심 격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이 12일 세이부 라이언스의 홈구장인 인보이스돔에서 ‘괴물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격돌한다. 이승엽과 마쓰자카는 한국과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톱스타로서 명성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대결을 벌여 숱한 화제를 뿌렸다. 두 사람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때 처음 맞대결을 펼쳤다. 예선전에서 이승엽은 마쓰자카를 투런홈런으로 두들겨 한국이 10회 연장 끝에 7-6으로 승리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3·4위전에서도 8회 이승엽이 또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터뜨려 일본을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마쓰자카는 패배 이후 회한의 눈물을 흘려 일본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지난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이승엽과 마쓰자카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비록 두 사람의 맞대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승엽은 홈런왕과 타점왕을, 마쓰자카는 3승을 거둬 대회 MVP를 거머 쥐었다. 이승엽은 지난 2004년 지바 롯데 입단 첫해 개막전에선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승타점을 올리는 등 정규시즌 5경기에서 대결했다. 타율 .278(18타수 5안타)로 1타점 5안타 6삼진의 성적을 거뒀다. 지난 2004년 8타수 1안타 1타점에 이어 지난해 10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2루타를 3개 쳐냈지만 홈런은 없었다. 지난해 10월 퍼시픽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이승엽이 마쓰자카의 구위에 눌려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올시즌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이 유력시되는 두 사람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까지 받고 있어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맞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FIFA선정 준비된 영웅들] (1) 포르투갈 호나우두

    [FIFA선정 준비된 영웅들] (1) 포르투갈 호나우두

    월드컵은 준비된 신예들이 영웅으로 발돋움하는 무대다. 세계 축구 무대를 평정한 ‘황제’ 펠레(브라질)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그랬고, 현재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선 호나우두와 호나우디뉴(이상 브라질)도 월드컵을 통해 샛별에서 큰별이 됐다. 이 때문에 국제축구연맹(FIFA)도 독일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큰 샛별들을 선정했다. 이들 영스타를 시리즈로 살펴 본다. 국내팬에게는 박지성(26)의 팀 동료로 친숙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포르투갈·21·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드필더)는 이미 18살이던 2003년 8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전격 ‘맨유’로 스카우트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10대 선수로는 최고액 이적료(1750만 유로)를 기록했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미남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아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적 후에는 134경기에 출전,25골을 뽑아내며 웨인 루니와 함께 맨유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포르투갈 청소년대표팀(21세 이하)에서 맹활약하며 세계 축구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조국에서 열린 유로2004를 통해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자리를 굳혔다.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루이스 피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낙점된 것. 포르투갈 대표팀에선 30경기에 출전,12골을 터뜨렸고 독일월드컵 예선 12경기에선 모두 선발로 나서 7골을 넣었다. FIFA가 선정하는 ‘올해의 월드플레이어’ 최종 후보자 명단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린 호나우두는 지난해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시상에서 전세계 팬들에 의해 ‘올해의 젊은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폭발적인 스피드, 현란한 드리블, 전방으로 한 번에 내주는 긴 패스, 측면 돌파 후 올려 주는 크로스 등 흠잡을 데 없는 개인기와 무회전 프리킥이 강점이다. 때로 개인기 탓에 팀 플레이를 깨뜨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왼쪽 혹은 오른쪽 날개로 출전, 반대편의 루이스 피구와 함께 ‘황금 날개’를 펼칠 전망이다. 호나우두는 특히 웨인 루니(21·잉글랜드)가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21세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신설된 최우수신인선수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서로의 부족함 채워주는 결혼이 가장 빛나”

    “상대가 갖지 못한 것을 채워주는 결혼이 가장 빛이 납니다.” 신한은행은 최근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중매를 전담하는 프라이빗뱅커(PB)를 영입했다. 많은 부유층 PB고객들이 자녀의 중매를 서 달라고 요청하지만 섣불리 연결시켜 주다가 혹시 신뢰를 잃을까 고민하다 아예 이 분야 전문가를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것이다. 주인공은 PB사업부의 김희경(41) 팀장. 커플매니저인 김 팀장은 PB고객이나 PB센터장은 물론 은행 내 미혼 남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인 김 팀장은 결혼 정보회사 듀오에 재직할 당시 입회비 500만원 이상인 노블리스 회원들을 관리하며 높은 성혼율과 회원 만족도로 명성을 날렸다. 김 팀장은 PB고객의 가정을 방문, 부모뿐 아니라 자녀와의 1대1 면담을 통한 맞춤형 성혼성사 업무를 하고 있다. 여력이 되면 일반 고객이나 은행 직원들의 ‘중매’에도 나설 참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워커힐호텔에서 PB고객 자녀 60명을 초대해 대규모 ‘미팅파티’를 열었다. 이들 가운데 7쌍을 연결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 팀장은 “결혼정보회사 회원들은 비싼 회비를 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 단계 좋은 조건을 갖춘 배우자를 찾았는데,PB고객들은 커플매니징 서비스 자체를 고마워해 심리적인 부담은 훨씬 적다.”고 말했다. 6년 동안 중매를 하면서 느낀 점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남성이나 여성은 모두 자기 나이가 많은 줄은 생각하지 않고 어린 짝만 찾는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여성은 남성의 직업이나 가정형편을 가장 중시한다고 귀띔했다. 표면적으로는 ‘성격’을 제 1조건으로 내세우지만 진짜 원하는 조건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상대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결혼을 하더라도 ‘저 커플이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외모와 나이만 보고 결혼한 남성은 ‘바람’을 피울 확률이 매우 높고, 남성의 ‘조건’만 바라는 노처녀는 결혼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게 김 팀장의 진단이다. 김 팀장이 말하는 결혼의 첫째 조건은 ‘진지함’이다. 적령기를 넘겼다고,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마음에도 없는 맞선을 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단 만나기로 했으면 첫 인상이 좋도록 최대한 외모를 가꿔서 맞선에 임해야 하고, 상대의 첫 인상에 상관없이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특히 “결혼한 사람들 가운데 행복에 겨운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결혼 이후에 닥칠 난관을 함께 극복할 만한 상대인지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1년 정도는 진지하게 교제해 보라는 것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명문대 교육혁명](4)미국 UC버클리대

    [명문대 교육혁명](4)미국 UC버클리대

    |버클리(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매년 ‘Cal Day’ 때면 UC버클리 캠퍼스는 활기가 넘친다. 이 날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신입생들이 부푼 마음으로 캠퍼스를 방문하는 날이다. 올해는 지난달 22일 열렸다. 총장, 교수와 직원, 학부모와 예비 신입생, 재학생 등 4만여명이 축제를 연출했다. 사립대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주립대 입장에서 ‘우수 학생’ 선발은 경쟁력의 관건이다. 버클리 입학 사정은 수학능력시험(SAT)보다 고교 학점(GPA)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버클리 GPA 평균(UC GPA 방식)은 4.17로 UC 평균 3.79보다 매우 높다. 또 UC 계열은 ‘포괄적 사정 방식’을 쓴다. 학업성적뿐 아니라 인성과 성장환경, 사회 봉사, 특별 활동을 종합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버클리 쟈넷 길모어 전략개발팀장은 “SAT와 GPA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입학 정책에 ‘숫자(점수)는 보지 않는다.’는 문구가 명시될 정도이다.2002년에는 SAT 성적(1600점 만점) 1500∼1600점대 학생 600여명 등 고득점자 3000여명을 불합격시켰다. 길모어 팀장은 심화과정인 AP(대학과목 선이수제) 수업을 특히 강조했다. 고교 때 이수한 심화과목 숫자와 실험, 포럼 등 아카데믹 활동, 고교 성적표에 나타난 읽기와 쓰기 능력 등 평소 실력을 비중있게 본다. 대학원 입학은 ‘추천서’와 경제 상태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거주자가 아닌 유학생의 학비가 크게 뛰면서 경제력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 지난해 9월 입학한 전체 아시아인 대학원생 1761명 중 한국인은 182명으로 2위였다.1위는 337명이 입학한 중국이었다. sunstory@seoul.co.kr ■ 공학과 MBA 융합 하스스쿨은|버클리(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미국 경영학 석사(MBA)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는 컨설팅 업체 매킨지다.2위는 실리콘밸리의 강자 구글이다. 경제주간지 포천이 최근 발표한 조사결과에서다. MBA 석사들이 ‘천국’으로 부르는 1·2위 기업에서 모두 입사를 제안받은 ‘토종 한국인’ 정기현(33)씨는 행운아일까. 그는 “이공계 백그라운드를 최대한 키워준 UC버클리의 힘”이라고 말한다. 정씨는 6년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접고 2004년 UC버클리 경영대학원인 하스(HASS) 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오는 22일 졸업한다. 하스 스쿨은 미국 ‘톱 10’ MBA이다. 매년 순위가 상승, 최근에는 6∼7위로 올라섰다. 정씨는 오는 7월부터 구글의 아시아 전략개발 팀장으로 일한다. 정씨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전형적인 공학도. 그에게 버클리 MBA는 ‘실리콘밸리의 생생한 현장을 강의실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곳’이다. 하스 스쿨의 강점은 경영학과 공학의 연계.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MOT(Management Of Technology)’. 실리콘밸리의 한 사이클인 제품 개발부터 투자·판매, 경영전략까지 전 과정을 3개월 동안 체험할 수 있다.MOT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미래의 최고경영자(CEO)를 경험한다. 정씨도 지난해 9월 MOT 수업을 체험했다.MOT는 MBA와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협동 과정이다.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공대 대학원생과 투자와 판매전략을 세우는 MBA 학생들이 함께 하는 수업이다. 학문적 배경이 전혀 다른 학생들의 팀워크는 그야말로 갈등과 충돌의 연속이다. 그것이 이 수업이 노린 핵심이다. 정씨는 전자공학과 존, 산업공학과 켈리,MBA인 어윈과 한 팀이 됐다. 정씨의 팀은 ‘인공지능 스케줄러’를 개발하기로 했다. 모두 10개팀이 경쟁했다. 그의 팀이 받은 성적은 A-. 교수는 수업 시간에 ‘팀원끼리 어떻게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모든 팀이 인성검사를 받았다. 최종 프리젠테이션도 인상적이었다.‘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지’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마지막 수업엔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들이 참석, 각 팀의 아이디어를 현장의 시각으로 난타했다. 정씨는 “실제 투자가들의 냉혹한 평가 앞에 훌쩍거리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수업이다. 하스 스쿨은 실리콘밸리라는 ‘지리적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MBA 학생회는 분기별로 벤처 투자가들과의 ‘라운드 테이블’, 투자 대회, 조찬모임 등을 연다. 라운드 테이블의 경우 일반인의 참석비는 최하 50달러. 학생은 7∼10달러만 내면 실리콘밸리의 CEO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MBA 학생들은 가장 업데이트된 정보와 최신 트랜드를 얻을 수 있다. sunstory@seoul.co.kr ■ ’공교육 모델’ 버클리대의 고민|버클리(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미국 최고의 공립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립화로 갈 것인가.”UC버클리 로버트 비게노 총장이 공개적으로 밝힌 ‘고민’이다.4000여개나 되는 미국 대학에서 버클리의 위상은 특별하다. 미국 공교육의 모델이 탄생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대학운영위원회 의장인 도널드 매퀘이드 대외협력 부총장도 기자에게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버클리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보조금은 매년 삭감됐다.1985년 전체 예산의 70%였던 보조금은 현재 32%로 낮아졌다. 한때 교수와 직원의 연봉이 3년간 동결되기도 했다. 매퀘이드 부총장은 “버클리의 설립목표는 캘리포니아주의 젊은이들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보조금 삭감은 학생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 재정에서 개인 기부금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과연 버클리가 공립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면서 “내용상으로는 이미 사립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공립대로서의 정체성(public identity)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재정 압박에 따라 버클리의 교수 선발 전략도 바뀌었다. 매퀘이드 부총장은 “다른 대학의 종신 교수보다는 젊고 가능성있는 교수를 키워내는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버드나 예일은 젊은 교수를 키우기보다는 이미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종신 교수를 스카우트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면서 “이런 독식 체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sunstory@seoul.co.kr ■ 학생선발 기준은|버클리(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히스패닉인 다니엘 라미레즈는 2006년 신입생이다. 로스앤젤레스 빈민가 출신인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갱과 마약, 폭력을 보고 자랐다. 라미레즈는 “제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육을 받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국 UC버클리에서 라미레즈와 같은 소수인종 출신은 더 이상 특별한 학생이 아니다. 미 공립대 1위이자 ‘서부의 자존심’ 버클리는 미국 대학 중 가장 다양한 인종이 섞인 ‘이민자의 대학’이다. 주립대인데도 전체 학생의 절반이 아시아인이다. 히스패닉도 3000여명이나 된다. 버클리 학생의 67%는 부모 중 1명이 이민자 출신이다.28%는 자신의 가정에서 대학에 들어간 첫번째 자녀이다. 저소득층 장학금(연 소득 3만 5000달러 이하)을 받는 학생만 7600명이다. 지난해 하버드대를 비롯한 8개의 동부 아이비리그에서 저소득층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합해도 600명에 불과했다. 로버트 비게노 총장이 자랑하는 부분이자 버클리가 미국 공교육의 이상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조화시킨 대학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홍영 정치학과 교수는 “버클리는 적극적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지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버클리의 독특한 인종 분포가 그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클레어 유(한국명 임정빈) 한국학센터 소장은 “버클리 교수들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의 발굴자가 되기를 원한다.”면서 “학제간 연구와 글쓰기를 장려하는 것도 넒고 깊게 가르치려는 뜻”이라고 말한다. 버클리에는 한해 약 8000명이 입학한다. 자칫 덩치만 큰 ‘공룡’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주립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은 무엇일까. 지난 3월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김범섭 퀄컴 부사장. 그는 버클리를 “(학생들을)들들 볶는 대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원천기술 업체인 퀄컴의 첫 한국인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한국인’이다.1990년 버클리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를 마쳤다.5년 전 설립한 반도체 회사를 지난해 12월 5600만달러(약 560억원)를 받고 퀄컴에 넘겼다. 버클리를 4년 만에 졸업하는 비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85% 정도가 6년 이내에 졸업한다. 사립대보다도 졸업률은 한참 떨어진다. 버클리의 ‘탈락 경쟁’은 역설적으로 시장에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밑거름이 된다. 김 부사장은 “1년에 2000명 정도를 뽑아 모두 졸업시키는 사립대와 매년 8000명 정도를 뽑아 4년 만에 절반도 졸업시키지 않는 버클리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치열하게 서바이벌(생존) 경쟁을 벌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살아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버클리 출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수학과 2학년 최효민(20·여)씨는 “딴 걸 다 포기하고 공부만 파도 A학점 받기가 너무 어렵다.”고 울상이다. 정치학과 박사 과정 2년차인 오승연(25·여)씨도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 학생들이 많아 백인 학생들조차도 공부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고 말한다. 그녀는 “버클리에서는 고독해야 성공한다는 농담을 한다.”면서 “대형 강의가 많고 규모가 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학 분야는 매년 MIT,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와 수위를 다툴 정도로 수준이 높다. 세계 최초로 입자가속기를 발명한 로렌스 연구소(LBNL), 지진공학연구소(EERC) 등 쟁쟁한 연구소들이 있다. 또 36개 학과에서 국가적인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버클리는 현재 주력 분야인 전기전자·화학 등을 ‘생명공학 분야’로 재편하고 있다. 오는 11월 개원하는 스텐리홀은 ‘전자+화학+생물+기계’가 통합된 연구단지로 조성된다. 분산된 연구실을 모두 통합해 기초과학부터 응용학문, 의·약학까지 바이오 분야의 ‘멀티 컨버전스(융합)’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게 버클리의 복안이다. 루크 리(한국명 이평세) 생명공학과 교수는 “바이오는 이미 전자공학을 잇는 차세대 핵심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화학과 박사 과정을 마친 포스닥 김종명(28)씨는 “연구 시스템이 통합돼 6개월이면 아이디어가 실현될 정도로 빠르다.”고 공대의 강점을 설명한다. 버클리 공대 교수 중 미국공학학회(NAE) 회원 비율은 20%다.MIT(13.9%), 스탠퍼드(14.7%)보다도 높다. 이 학회 회원이 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인종 문제에 대해서는 무척 진보적이다. 미국 대학 중 처음으로 중국계 교수를 총장으로 배출한 곳이 버클리이다. 한국계로는 2004년 국제지역학과 학장에 오른 존 리 교수가 있다. 1890년부터 연구를 시작한 아시아 지역학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마틴 백스트롬 동아시학과 교수는 “전 세계 105개의 언어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버클리대는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소수인종 분야의 최우수 대학으로 꼽힌다. 정치학과 교수진은 60명으로 유럽 정치학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영국 옥스퍼드와 견줄 수 있다. 미국 ‘정치학자’의 요람으로도 불린다. 캘리포니아주립대는 10개의 UC 계열이 있다. 이중 버클리가 제일 먼저 설립됐다. 버클리는 캘리포니아주의 약자인 ‘칼(Cal)’이라는 애칭으로 통할 정도로 특히 캘리포니아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학이다. sunstory@seoul.co.kr
  • 이직때마다 핵심기술 ‘슬쩍’

    삼성전자와 개발용역을 맺은 부품 제조업체에서 삼성 휴대전화 회로도 등을 빼낸 연구원이 기소됐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 업체로의 휴대전화 기술유출 시도가 적발된데 이어 관계사에서의 기술유출 정황이 포착된 셈이다. 어디서 샐지 모르는 첨단기술에 대한 보안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 이건주)는 27일 회사를 옮길 때마다 전 회사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연구원 김모(27)씨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김씨는 2004년 11월 휴대전화 관련 장비 제조업체 E사에서 P사로, 이듬해 다시 K사로 직장을 옮겼다. 옮길 때마다 그는 휴대전화 회로도 파일 등을 유출했다. 특히 부품 제조업체인 E사는 삼성전자와 개발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13억여원을 들여 국내와 일본에서 동시에 통화가 가능한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었다. 김씨는 퇴사하며 두 회사가 공유하고 있던 휴대전화 회로도 등 파일 1만 1400여개를 통째로 빼낸 뒤 P사로 옮겼다. 1년 뒤 다시 K사로 이직한 김씨. 이번에는 P사가 개발 중이던 최신기종인 위성DMB 휴대전화 샘플 모델의 회로도를 갖고 나왔다. 개발에만 64억여원의 연구비가 투자된 모델이다. 검찰은 P사가 동종업계 이직규정을 어겼다며 김씨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수사에 착수, 김씨의 상습적인 기술유출 행각을 밝혀냈다. 한편 K사측은 “김씨는 스카우트가 아닌 공채로 들어왔다. 관련 분야도 휴대전화 오디오쪽이어서 회사는 기술유출과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