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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광양 매실 유럽이 반했다

    전남 광양 매실 유럽이 반했다

    市, 스위스 제약회사와 업무 협약 건강 기능 호평… 상반기 100t 납품국내 최대 생산량을 뽐내는 전남 광양 매실이 유럽에 진출한다. 12일 광양시에 따르면 정현복 광양시장과 스위스 제약회사 ‘스트라젠’사의 얀테타드 대표가 매실 판매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스트라젠’은 의약품를 비롯해 매실식품 등 건강 기능성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 10여개국에 계열사를 두고 60여개국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광양에선 연간 9000여t을 생산해 우리나라 전체 매실의 25%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브랜드 대상’에 4년 연속 대상을 수상할 정도다. 현재 미국, 중국, 태국, 필리핀에 매실차 등을 수출하고 있다. ‘스트라젠’은 매실에서 나오는 과육으로 간 기능 개선 및 보호를 위한 건강 기능성 식품을 제조·판매하게 된다. 매실이 매실청, 장아찌, 음료와 화장품 재료, 식초 소스 등의 원료로 쓰이지만 외국에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판매된 사례는 국내 처음이다. 회사 측은 광양 매실이 원료를 만드는 기능성 물질 추출량에서 다른 지역 생산품을 뛰어넘고, 물량의 안정적 기반에 매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부터 세 차례 샘플을 가져가 성분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는 올 상반기 100여t 납품을 추진한다. 인기 추세에 비춰 앞으로 판매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옥자 시 매실원예과장은 “매실의 기능성이 널리 알려져 소비 확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판로 확보에 도움이 돼 가격 하락 예방 등 농가들의 소득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2000명의 생각을 들었습니다…‘존엄한 죽음’ 에 대한 정답은 없었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2000명의 생각을 들었습니다…‘존엄한 죽음’ 에 대한 정답은 없었습니다

    에필로그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연재를 위해 지난 5개월간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 봤습니다. 친구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까지 동행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안락사를 고려 중인 한국인 디그니타스 회원도 인터뷰했습니다. 위암 말기 부친과 희귀병을 앓는 모친이 한날한시 목숨을 끊은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일반인을 포함해 환자, 의사, 법조인 1791명도 설문조사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81명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하며, 임종을 앞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마의 끝자락에서 숨만 쉬는 환자에게 고통을 견디게만 하는 건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부작용을 우려하거나 종교적 신념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악용하는 사례가 늘 것이고, 결국 돈 없는 사람만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라고 외칩니다.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결정하자며 입장을 유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권리’를 보는 시선은 첨예하게 엇갈렸습니다. 안락사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주제입니다. 쉽게 쥘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 5개월간 취재를 함께한 탐사기획부 다섯 명의 기자도 3대2로 찬반이 갈립니다. 신문사 내에서도 워낙 급진적인 주제라 공감을 이끌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찬성과 반대 어느 한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말라는 조언도 이어졌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찾아보겠다며 시작한 연재였지만, 정답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없는 정답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다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말기암 환자였던 40대 남성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고통 없이 숨을 멈추게 하는 약을 마셨습니다.<서울신문 3월 6일자 4면·7일자 8면> 한날한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 노부부는 죽음을 결심한 직후 만든 두 사람의 인형 속에서 환하게 웃었습니다.<8일자 4면> 희귀병과 끝까지 싸우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눈을 감은 정유준씨는 투병 기간 쓴 시집을 어머니에게 선물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12일자 8면> 탐사기획부는 이들 중 누구의 죽음은 존엄했고 누구는 그렇지 않았다고 평가할 자격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연재를 진행한 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몸이 너무 아프고, 나이가 많이 들어, 마음이 병들어 죽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하기보다는 왜 죽음을 선택하려는지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좋은 죽음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에서 결국 환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서 도달한 최종 선택지가 ‘죽음’이라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우리 사회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정유준씨가 죽음을 앞두고 쓴 시집 한 소절을 인용하면서 연재를 마치려 합니다. 어쩌면 이 글귀에 존엄한 죽음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까지 그대로일 수 있을지는 누구도 답해 줄 수 없다. 그저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정유준씨의 시집 ‘내가 널 기억할게’에서)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안락사 시행은 이르지만 논의는 시작해야…사회적 돌봄 제공하는 의료복지 구축부터”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안락사 시행은 이르지만 논의는 시작해야…사회적 돌봄 제공하는 의료복지 구축부터”

    ‘존엄한 죽음’에 대한 해법 - 전문가 좌담서울신문이 6회에 걸쳐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를 연재한 건 높아진 한국인의 삶의 질과 달리 죽음의 질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한다. 임종 직전까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지속하다가,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죽음을 맞고 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 윤영호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가나다 순)를 서울신문 본사로 초청해 ‘존엄한 죽음’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이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호스피스 돌봄을 확대하고 병원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되 사회적 돌봄을 충분히 제공하는 의료복지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안락사를 도입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좌담은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이 진행을 맡았다. -시행 1년을 맞은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에 대한 평가는. 김 총장 우리가 그동안 금기시했던 죽음에 대한 논의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법을 통해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죽음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다. 그동안은 임종이 임박환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언제까지 지속할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 법이 마련되면서 서로 논의를 통해 임종 시기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신 변호사 존엄사법이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를 내팽개치는 일종의 ‘고려장’법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오히려 ‘말기 환자 권리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중환자실에 환자를 데려갔다가 치료를 중단할 수 없어서 파산할 때까지 퇴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이 법의 시행으로 환자가 원하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박 교수 존엄사법 시행 후 실제 현장에서 보면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전처럼 처절하지 않다. 과거에는 개인이 혼자 죽음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법과 제도 안에서 개인이 어떤 죽음을 선택하고 어떤 치료를 중단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윤 교수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매년 28만~29만명이 사망하는데, 이 중 0.1%만이 본인이 사전에 직접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라 임종을 맞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단순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품위 있는 죽음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뭔지 논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정책과 조직과 예산이 갖춰져야 한다.-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돌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윤 교수 말기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완화 의료나 호스피스 돌봄이 최소 임종 6개월 전부터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임종기가 다 돼서야 호스피스에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의 남은 삶이 3~6개월 이내로 판단되면 치료 과정에서도 언제든지 완화 의료나 호스피스 돌봄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신 변호사 호스피스는 종교인이나 사회복지사, 봉사자가 중심이 되고 의료진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이상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다. 호스피스는 원래 회복 가망이 없는 노숙인 환자를 수녀원으로 데려가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돌보는 데서 시작됐다. 호스피스가 선진화된 독일 등에선 의료진이 중심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호스피스를 보면 깜짝 놀란다. 윤 교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선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 경제적 문제까지 전반적으로 돌보는 사회복지영역과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는 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의료 영역만 강조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은 호스피스 전체 돌봄 과정에서 최소 5%는 봉사자가 담당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독일도 봉사자가 130시간의 교육을 받고 2년간 의무적으로 활동한다. 봉사자 교육 비용은 정부가 지원한다. 김 총장 호스피스가 선진화된 국가 대부분은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봉사자가 왕진을 가는 형태의 가정형 호스피스가 주축을 이룬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구조, 주거형태, 사회·경제적인 문제들로 아직은 많은 사람이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정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정형 호스피스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 우리나라 사회복지 체계도 억지로 연명의료를 강요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사가 아픈 노인을 발견했는데 그대로 두면 방임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입원시키고 병원에서 운명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의사로부터 직접 이들의 사망 선고를 받아야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강하게 원해도 시스템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 전반의 문화와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여론조사 결과 안락사 찬성이 80%를 넘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김 총장 서울신문 보도를 통해 안락사 도입 여론이 생각보다 높다는 걸 알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시대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 구축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치료비를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녀들에게 간병과 경제적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건 힘들 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며 제출된 연명의료의향서를 봐도 환자 스스로 쓴 경우는 3분의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2는 보호자의 합의로 쓰였다. 이들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과연 명확하게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아직까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윤 교수 안락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시행은 시기상조다. 환자가 안락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병의 고통이 극심한 육체적 문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등 정신적 문제,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문제, 비참하게 사는 걸 원치 않는 존재론적 문제다. 이 중 육체적·정신적·경제적 문제는 사회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런 문제로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건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몰아세운 사회 제도적인 모순들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박 교수 안락사를 제도화거나 정책화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논의는 빨리 시작해야 한다. 윤 교수가 말한 안락사를 원하는 네 가지 이유는 사실 자살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사회에 호소하거나 도움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삶을 더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와 그 가족, 사회가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시각은 서로 다를 것이고, 이를 합의하는 과정은 오래 걸릴 것이다.신 변호사 안락사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만큼 논의를 시작할 적기라고 본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시행과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고자 영양분 공급 등을 중단하는 소극적 시행으로 나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공급한 영양분이 암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양분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오히려 환자를 위해 필요한 때도 있다. 윤 교수 우리 사회는 영양분 공급 중단이 굶겨 죽인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어 특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신 변호사 말대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게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등 해를 가하는 상황이 있다. 이럴 땐 공급을 중단하는 게 맞지만,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라 그러지 못한다. 법 때문에 환자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공론화돼야 할 부분이다. -안락사 논의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윤 교수 풀어 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목적은 궁극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존엄한 죽음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소홀한 실정이다. 안락사 논의도 이런 식으로 진행돼선 안 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보다 사회적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삶을 마무리하려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김 총장 연명의료결정법도 20년에 걸친 논쟁 끝에 시행된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목소리가 쌓이고 다양한 논의를 거쳐 입법화된 것이다. 안락사도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사회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신 변호사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나라는 의료가 거의 무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안락사를 허용하면 결국 돈에 떠밀려서 안락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순수하게 자기 뜻이 아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안전망 확보가 우선이다. -사회적 여건을 따지지 않고 개인적인 안락사에 대한 생각은. 박 교수 안락사의 필요성을 부정할 순 없다. 서울신문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40대 남성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 남성이 단순히 통증과 고통만으로 스위스행을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역할 수행이 불가능해지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등 존재론적 고민도 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더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경우, 죽음을 준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길을 뚫어 주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윤 교수 진통제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마저도 잘 안 되는 상황이다. 진통제로도 통증 관리가 불가능하고 의학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면, 스위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안락사의 한 형태인 의사 조력자살(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는 행위)에 대해 논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전에 정밀한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김 총장 안락사는 반대하지만, 의사 조력자살에 대해선 찬성한다. 조력자살은 환자가 죽음을 결심하면 의사가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다. 의사가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나 영양 공급 등을 중단해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소극적 안락사는 반대한다. 신 변호사 2~3개월밖에 살 수 없고, 신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극한의 고통을 겪는다면 의사 조력자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순수하게 본인의 결정으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나라에 속하는데. 김 총장 임종기 환자의 통증 완화에 사용되는 약물이 모르핀 등 마약성 진통제다. 한국 의사의 모르핀 사용률이 해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르핀은 환자의 고통을 줄여 주기도 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킨다. 이게 종종 의료 현장에서 문제가 된다. 모르핀 사용으로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 변호사 한번 모르핀을 투여하면 한 달 뒤에는 18배나 많은 용량을 써야 같은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내성이 강하다. 모르핀의 과도한 투여는 죽음도 앞당길 수 있다. 이것이 법적 처벌 대상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치료를 위한 모르핀 투여로 인해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은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게 형법 학계의 통설이다. 윤 교수 국내 의료계에 모르핀이 들어온 지 벌써 15년 정도 됐다. 문제는 모르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어느 정도 사용량이 적절한 수준인지 조사와 평가를 안 하고 있다. 과다하게 쓰면 호흡곤란으로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지만 환자의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 써야 할 필요가 있는 약물이다. 현재 모르핀을 사용하는 상황이 어떤지, 어느 정도로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신 변호사 돌봄 시스템을 환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게 공급자 중심이다. 그래서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하고 여기서 죽음을 맞는다. 임종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죽음은 내가 자던 침대에서 치료받고 일상을 영위하다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가족들 손 붙잡고 있다가 편하게 떠나는 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 죽음일 것이다. 그러려면 집이든 직장이든 의료진이 찾아와 돌보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기 전 온 가족이 모여 애틋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이게 바로 존엄한 죽음이라고 느꼈다. 박 교수 낯선 공간과 모르는 사람 속에서 떠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시간이 담긴, 나의 공간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존엄한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사망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이 어떤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행복할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장례비를 지원하는 게 아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엔 그런 옵션이 없다. 병원에서 홀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립하고, 삶을 마감하는 다양한 길을 열어 주는 게 국가의 책무다. 윤 교수 고통을 완화해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유산은 물론 정신적인 유산, 자신이 존재한 가치를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고 떠나는 게 존엄한 죽음이다. 이런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려면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도 정부가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말기 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정도 인력과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지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선진국 수준의 완화 의료 및 호스피스를 제공할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는 비용의 20~40%를 절감하면서 존엄한 죽음을 확대할 수 있다. 캐나다는 개인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죽음의 권리를 담은 ‘모든 캐나다인의 권리’를 만들었다. 영국은 매년 국가가 나서서 ‘좋은 죽음’을 정의한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오스트리아 목장 소 습격 주의보…관광객 강령도 제정

    오스트리아 목장 소 습격 주의보…관광객 강령도 제정

    오스트리아에서 소떼 공격으로 인명사고가 종종 발생하자 정부가 나서 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강령까지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방목지를 산책하는 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만들겠다”며 소떼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특히 개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행동강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달 공개될 예정이지만 관광객들이 개를 동반하는 것에 대해 규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츠 총리는 “소떼가 관광객이 데리고 온 개를 보면 송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면서 “행동강령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피해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티롤주에서 기르는 소 가운데 툭스질러탈이라는 종은 소싸움에 맞게 개량한 것으로 덩치는 보통 소보다 조금 작지만 힘이 세고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14년 7월 개를 데리고 방목지를 산책하다가 소떼 공격으로 숨진 독일 여성에게 소 주인이 49만 유로(약 6억 2000만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남편과 아들은 농부가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농부는 목장에 경고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며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당시 이 소송은 티롤주 관광·목축 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지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법원은 지난달 소 주인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으며 경고 표지판만으로는 부족하고 목초지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들을 방목했던 농가들은 목초지를 완전히 울타리로 둘러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2017년 6월에도 목초지를 산책하던 여성 2명이 소떼 공격을 받아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인근 스위스에서는 인명 사고 방지와 소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소뿔을 제거하기도 한다. 스위스에서 사육되는 소의 4분의 3은 뿔이 제거된 소들이거나 태생적으로 뿔이 없는 소들이다. 스위스에서는 지난해 11월 동물보호 활동가들의 주도로 소뿔을 그대로 두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자는 법안을 놓고 국민투표가 벌어졌으나 부결되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사람 1위는 일본인…한국인은 몇 위?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사람 1위는 일본인…한국인은 몇 위?

    인간이 다양한 노화 관련 질환에 노출돼 질병을 앓기 시작하는 나이를 국적별로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건강트렌드예측센터 연구진은 세계 질병부담연구(GBD) 데이터에 있는 293가지 질병 중 노화수반 질병(환자가 병으로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은 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 92가지를 골라냈다. 92가지 질병 중 81가지는 비전염성 질환으로, 심혈관 질환과 암, 만성 호흡기 질환, 소화기 질환, 당뇨 및 신장 질환 등이 포함돼 있다. 이후 연구진은 195개국의 1990~2017년 노화수반 질병부담을 수치화 하고, 실제 나이와 노화의 정도를 비교 분석했다. 연구진이 195개국의 평균적인 65세 노인과 똑같은 노화수반 질병부담을 경험한 나이, 즉 65세 노인이 겪는 건강문제를 경험하는 나이를 국가별로 비교한 결과 일본인이 76.1세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평균적인 65세가 겪는 노화 질병을 일본인은 76세가 되어서야 겪는다는 의미로, 그만큼 노화관련 질병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파퓨아뉴기니인이 노화 질병을 겪는 시기는 46세로 나타났다. 1위를 차지한 일본과는 무려 30년이나 차이가 난다. 스위스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76.1세, 뒤를 이어 프랑스와 싱가포르가 76세, 쿠웨이트가 75.3세롤 기록했으며 한국은 75.1세로 세계 6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70.8세와 70.7세로 나타났으며 미국은 이보다 한참 뒤떨어진 68.5세, 중국은 66세로 75위에 머물렀다. 세계 평균 수준의 노화수반 질병부담률을 보인 국가는 65.2세의 부탄과 볼리비아, 브루나이 및 65.1세의 도미니카, 팔레스타인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59.5세로 세계 평균에 못미치는 149위에 머물렀다. 연구진은 “늘어난 기대수명은 전체 삶의 웰빙에 기회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화와 관련한 건강 문제는 건강비용 증가뿐만 아니라 조기 은퇴 및 노동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각국 정부 및 보건시스템 관계자들은 사함들이 ‘노화의 부정적 효과’(노화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인지적 능력 약화 및 손실)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나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의학전문지 랜싯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 7일자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설] 국민 81%가 찬성한 안락사 도입, 공론화할 때다

    서울신문의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기획 연재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지는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 현지 취재를 통해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자발적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고, 같은 방식의 죽음을 스위스에서 준비 중인 한국인이 107명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우리는 효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죽음을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본인이나 가족 동의로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지난해 2월부터 시행 중이나 존엄사를 스스로 결정한 환자는 30% 정도다. 연명의료 중단을 동의한 유족들은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린다. 존엄사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구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본지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은 안락사 허용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1년 전 조사보다 15% 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절반 정도는 ‘죽음의 선택도 인간의 권리’인 만큼 진통제로도 질병의 고통을 덜 수 없을 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생의 욕망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인 본능이다. 환자에게 영양분 공급을 중단하거나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하는 안락사의 제도화는 부작용도 적잖다.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는 데다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에게 생명 연장의 선물을 선사한 반면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에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환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단적인 고통에,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빈곤을 겪다 못해 10만명 중 50명이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게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웰다잉’에 대한 공론화를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까닭이다. 존엄사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이를 제도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존엄한 삶 못지않게 존엄한 죽음도 소중하다.
  • [하프타임] 시프린, 스키 월드컵 시즌 15승 신기록

    미국의 ‘스키 요정’ 미케일라 시프린(24)이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월드컵 시즌 15승으로 최다 우승 신기록을 세웠다. 9일(현지시간) 체코 슈펜들레푸르믈린에서 열린 2018~2019 FIS 월드컵 알파인 여자 회전 경기에서 시프린은 1·2차 합계 1분 38초 98로 승리했다. 시프린은 이번 시즌 15승으로 1988~1989시즌 브레니 슈나이더(스위스)가 세운 시즌 14승 기록을 깼다. 아울러 시프린은 2018~2019시즌 회전 부문 종합 우승뿐 아니라 알파인 전 종목을 합산한 통합 우승도 확정했다.
  • 죽음, 두렵지요 하지만 ‘끝’은 선택하고 싶어요

    죽음, 두렵지요 하지만 ‘끝’은 선택하고 싶어요

    모두에게 죽음은 두렵다. 인간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닫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종교가 생기고 철학이 발달한 이유다. 의료기술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자 또 다른 두려움도 생겼다. 병상에 누워 주렁주렁 의료기기를 달고, 고통과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공포다. 억지로라도 생명을 늘리려다 보니 존엄하지 않은 마지막 삶을 강요받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암 환자 3명을 만났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무엇이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지를 물었다.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그간 삶에서 숱한 선택을 스스로 해 왔듯이 죽음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지 되물었다.■간암 투병 중인 73세 황정숙씨 2007년의 일이었다. 부엌에서 갈비탕을 끓이던 황정숙(73·여)씨는 갑자기 하혈을 하며 쓰러졌다. 동네 병원에선 “암인 것 같은데, 좀 애매하다고”만 했다. 대학병원에서 대장 기스트(GIST·희귀 암의 일종)라는 걸 알게 됐다. 영정사진을 찍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건강을 회복한 듯했다.하지만 2015년 다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 간을 3분의1이나 잘라 냈다. 또 암세포가 번질지 모르니 항암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항암제를 먹었던 8개월 황씨는 죽는 게 낫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이 퉁퉁 부었다. 손바닥은 갈라져 피가 났다. 하는 수 없이 장갑을 끼고 살았다. 급기야는 발바닥까지 망가져 걸을 수가 없었다. “설설 기어다녔어요…. 사는 게 아니었죠. 그런데 다른 환자가 그 약을 먹은 뒤에도 병이 심해져 결국 죽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먹지 말자’. 독한 약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삶 살아서 뭐해요.” 황씨가 항암제를 끊은 지 벌써 3년이 됐다. 다행히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가끔 배가 아프긴 하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병원에 가라고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황씨는 병이 심해지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더라도 항암제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진통제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삶을 마칠 생각이다. “물론 저도 죽음이 두려워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끝’도 결국 제 삶의 일부예요. 가족들과 즐겁게 살았던 때를 생각하며…, 내가 갈 때를 알고 준비도 하면서…, 잘못한 일 있으면 회개도 하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약으로 연명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황씨는 얼마 전 14년간 키우던 개를 안락사시켰다. 자식 같이 키우던 개라 끝까지 돌보려 했지만 수의사가 안락사를 권했다. 수의사는 “개가 말기암 환자보다 고통이 심할 것”이라며 “안락사시키는 게 개를 위하는 길”이라고 했다. 황씨는 결국 펑펑 울며 승낙했다. “저도 주사 맞으며 자는 것처럼 편하게 가고 싶어요. 개도 안락사를 할 수 있는데 사람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해요.” 황씨는 처음엔 가명 인터뷰를 원했다. 하지만 실명으로 이야기하는 게 더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하자 흔쾌히 응했다. “꼭 가족 품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건 아닙니다. 혼자 있는 곳에서 가도 상관없어요. 다만 제 죽음만큼은 제가 관리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안락사를) 끝내 허용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나라가 제 삶의 질을 책임질 거 아니면 마감을 선택할 권리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25년 암과 싸우는 66세 정판배씨 “젊을 때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눈앞에 닥치니 너무 두렵고 캄캄하더라고요.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서 보니 죽음을 미리 준비하게 됐어요. 다음엔 좀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임종 전 고통이 심한 환자에게는 안락사도 필요하다고 봐요.”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정판배(66)씨는 지난 25년간 암과의 전쟁을 치러 왔다. 1994년 마흔 한 살에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상상도 못했죠.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니 세상이 무너지더라고요.” 당시 정씨는 육군 중령이었다. 정기 건강검진에서 암덩어리를 발견했다. 당시 위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에 해당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위 전체를 절제해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암은 이후에도 정씨 곁을 맴돌았다. 수술 5년 뒤엔 만성골수성 백혈병이, 그 뒤엔 대장암이 생겼다. “수시로 팔다리에 마비와 경련이 와요. 마비가 오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손을 집어넣어요. 그래야만 풀리거든요.” 정씨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하고, 늘 부어 있다.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부와 뼈는 유리처럼 약해졌다. 뭔가와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나고 다친다. 언제 경련이 올지 몰라 응급처치를 위해 뿌리는 파스를 두 통씩 들고 다닌다. 10년 넘게 복용 중인 백혈병 치료제 부작용이다. 수술 후유증도 심각하다. 시시때때로 음식물과 담즙이 식도까지 올라오는 통에 정씨의 목은 항상 헐어 있다. 수술 후엔 한 번도 반듯하게 누워 본 적이 없다. “또다시 병이 찾아오면 치료를 하지 않고 편안한 임종을 맞을 겁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과 고통 속에 사는 날을 하루하루 연장하는 건 이제 저에게 무의미해요.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결심이 더 확고해졌어요.” 지난해 어머니의 죽음은 정씨가 존엄한 죽음을 결심하는 큰 계기가 됐다. 당시 아흔 넷인 어머니는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피부가 괴사했다. 다리가 썩어 들어갔지만 노모는 고통조차 제 입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매일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노모는 결국 고통 속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정씨는 담즘 역류를 완화해 주는 수술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만 발버둥 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죽는 건 개인의 주관대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그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저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게 내가 꿈꾸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기스트 고위험 앓는 40세 이지연씨 “일상이 갈등의 연속이에요. 다시 병이 안 나려면 적당히 해야 하는데, 몸이 조금씩 좋아지니까 더 일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이러다 병나겠네, 하면서 조심하게 되고…. 아프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들을 항상 하게 돼요.” 지난달 16일 만난 기스트(희귀성 암의 일종) 고위험 환자인 이지연(40·여)씨는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에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서 “그게 건강한 사람과 아파 본 사람의 차이”라며 입을 뗐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이씨는 매일 아침 6시에 나와 운동하고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했고, 주말에는 승마, 골프, 보드 등 취미 생활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병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2015년 초 갑작스레 쓰러져 실려 간 병원에서 기스트 진단을 받았다. 위에서 생긴 종양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1년간 약물치료를 한 뒤 이듬해 위 전체와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극심한 고통은 정작 수술 이후 시작됐다. 1년 내내 구토와 설사가 반복됐다. 어지러워서 움직일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너무너무 아프니까 병원에 왜 창문이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이해했어요. 지켜보는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못 버텼을 거예요.” 1년여에 걸친 재활 끝에 건강을 다소 회복했지만 삶에 대한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이씨는 “다음에 또 병이 재발하면 그땐 수술 대신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미혼인 이씨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돌봄이나 경제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는 “언젠가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제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뜻에 따라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면서 “정신이 있을 때 제가 제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락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통이란 자체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사회가 내 고통의 경중을 따지거나 판단한다는 게 좀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스위스행’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병을 앓는 지인에게 ‘스위스에선 외국인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서 외려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전 여기 있으면 그냥 고통스럽게 죽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언제든 제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번엔 400만원 다리미…다이슨 대박친 김 대표 이유있는 성공 자신감?

    이번엔 400만원 다리미…다이슨 대박친 김 대표 이유있는 성공 자신감?

    “거듭된 성공 때문에 결국 네가 미쳤구나.” 김성수 게이트비전 대표가 100만~400만원대 스팀다리미를 들여 오겠다는 구상을 밝혔을 때 친구의 반응이었다. 400만원이면 크린토피아 세탁 서비스를 수천번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2009년 다이슨 청소기를 들여온 김 대표의 게이트비전이라도 시판 제품의 10배 가격 다리미는 모험이란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스팀다리미는 국내 시판 뒤 17개월 동안 약 4500대 팔렸다. 또 성공이었다. 프리미엄 스팀다리미 유럽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인 스위스의 로라스타가 7일 스마트폰 앱과 연동되는 신제품 ‘스마트’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 커넥티드 다리미인 ‘로라스타 스마트’엔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돼 스마트폰 앱으로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다. 앱을 통해 물 잔여량과 물 속 석회를 거르는 필터 교체 주기를 파악하거나 영상으로 다림질을 배울 수 있다. 150도의 초미세 고온스팀을 강력한 압력으로 분출해 옷감을 통과하는 즉시 증발시키며 각종 냄새와 세균을 제거하는 로라스타 스팀다리미 특유의 기능도 탑재됐다. 이날 시연에선 번거로운 여러 단계를 줄인 사용법이 소개됐다. 다리미판 표면을 풍선처럼 바람으로 부풀려 띄워 그 위에 옷을 두고 쓱쓱 문질러도 겹친 부분에 주름이 안 생겨 다림질을 교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 같은 직관적 사용법에 힘입어 다이슨 청소기로 ‘더러움을 즉시 청소하는 남자’를 발굴했듯, 로라스타가 ‘삶에 희열을 느끼게 하는 다림질’이란 장르를 새롭게 열 수 있다고 김 대표는 확신했다. 총 3가지 라인으로 328만~448만원인 고가 신제품을 약 2000대 판매하겠다는 목표로 이어진 김 대표의 확신이 호응을 얻는다면, 그 다음엔 다림질 문화의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2019 쟁점 분석] 개도국 못 벗은 농업… 상품거래소·고도화로 ‘농정 개혁’ 하라

    [2019 쟁점 분석] 개도국 못 벗은 농업… 상품거래소·고도화로 ‘농정 개혁’ 하라

    2년 전 문재인 정부 출범 시 농업계에서는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한 공약을 믿고 많은 기대를 했었다. 올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농정공약인 농특위가 드디어 출발할 예정이지만, 2년 전에 비해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듯하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았던 수많은 농업공약 중 이행된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농업에는 무관심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면 정부가 설치한 농특위가 잘 운영되고 제대로 된 농정을 추진하면 한국 농업이 잘될 수 있을까? 한국농업의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잘 챙기고, 예산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관련 종사자들부터 먼저 아는 내용이다. 전반적인 국가농업시스템 자체가 개발도상국 수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에 수입 농산물의 파상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한국소비자는 왜 높은 식료품비를 부담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비자 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식음료 분야 물가는 전년 대비 2.8% 상승해 미국(0.5%), 호주(0.7%), 네덜란드(0.8%), 캐나다(0.8%), 이탈리아(0.9%), 스위스(1.3%), 일본(1.6%) 등의 주요국가보다 높고, OECD 평균(1.9%)보다도 높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 대부분의 식음료 물가 상승률이 한국보다 낮고, 한국보다 높은 식음료 물가를 보인 나라는 인도, 아르헨티나, 터키,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들뿐이었다. 주목할 점은 OECD 국가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8년 2.6%인 데 비해 한국은 불과 1.5% 상승이라, 식음료 분야에서의 물가상승률이 예외적으로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높은 식음료물가 상승률은 가정경제에도 짐이지만, 타격이 가장 큰 곳은 외식업 분야다. 2014년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음식점 비용과 이익구조 분석에 따르면 식당 메뉴의 원가구성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재료비로서 35.7%다. 최근 임대료와 종업원 인건비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식재료 가격 급등의 충격은 임대료와 인건비 못지않다. 한국의 엥겔계수는 2016년 26.8%로 미국의 12.6%, 유럽연합(EU)의 12.2%에 비해 2배다. 국산 농산물 및 식재료의 높은 가격과 무관하지 않다. 식재료 중 국산 농축수산물 비중은 약 30% 정도이나 가장 큰 가격변동을 유발 요인으로, 농수산물 가격 인상은 물가상승으로 곧바로 이어진다.최근 쌀값에 큰 변동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대표적인 농업정책으로 쌀값 인상을 추진했는데, 2016년 산지 쌀값은 80㎏당 12만원 정도였다가 2018년 말에는 19만원이 넘었다. 무려 50%나 상승했다. 정부가 쌀값 조정을 위해 시장격리물량을 대폭 늘린 것으로 농민들은 오히려 적게 오른 것이라며 쌀값 인상 목표를 24만원으로 설정한다. 이렇게 폭등한 쌀값 탓에 쌀가공산업, 외식업 등 쌀을 많이 소비하는 업종에서는 최근 칼로스 등 수입쌀로 국산을 대체하려고 한다. 수입산 대비 약 3~5배에 달하는 국산쌀 가격 때문에 수입산 밥쌀은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이로 인해 정부가 밥쌀을 수입하자 농민들은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국산쌀 소비 감소와 직결된다는 면에서 국회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논란이 컸다. 그렇다고 값비싼 국산쌀만 유통시키자니 쌀의 의무수입 문제와 물가상승 등으로 사회문제가 될 것이 명백한 상황이다. ●농업은 산업이 될 수 없는가 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농산물의 상품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생각하기를 미국이나 호주 같은 땅 넓은 나라에서는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수확 및 재배관리도 기계로 하기 때문에 생산비가 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산물 거래가격을 잘 살펴보면 흔히 생각하는 상식과 다른 점이 관찰된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해외곡물시장정보를 보면 2019년 2월 국제시세 기준 밀은 t당 169달러, 쌀은 태국산 장립종이 395달러로, 밀값은 쌀값의 약 41%에 지나지 않는다. 밀은 비교적 추운 미국, 캐나다, 러시아, 유럽 등이 주산지인 반면 쌀은 중국 남부,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3모작이 가능한 아열대 지역이 주산지인 데다 쌀은 밀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약 35%가량 높아 쌀의 생산량은 밀보다 월등히 많다. 또 밀은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에서 많이 생산되는 반면 쌀은 인건비가 저렴한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생산된다. 종합하면 밀은 생산량도 적고, 인건비도 비싼 지역에서 재배되므로 쌀보다 당연히 비싸야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곡물값은 종자비, 인건비, 농약비료 등의 관리비용 등으로 구성된다는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1870년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설립은 농산업 역사에 역사적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 설립 전 미국 농민들은 풍년이 들면 농산물 공급 과잉으로 시세가 폭락해서 망하고, 흉년이 들면 흉년 들어서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의 한국 농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가 농산물 상품거래소가 생겼는데, 여기서 거래되려면 규격이 일정해야 하고 수요공급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서 가격안정성이 확보돼야 했다.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자 선물거래가 가능해지면서 농산물 판매 대금을 미리 지급받은 농민들은 안심하고 농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후 영농기술의 발전과 농기계 발명, 상품 응용기술의 발달과 사용시장 확대로 선물시장에서 취급하는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 모두 큰 폭으로 늘게 됐고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밀은 시카고 상품거래소 취급 품목이지만 쌀은 취급 품목이 아니라는 점은 상품거래소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격이 낮은 농산물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가공용 원료로의 개발이 필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데, 밀은 상품거래소를 통해 안정적으로 가공용 원료로 공급되고 가루로 가공돼 다양한 식품에 대량 사용될 뿐 아니라 추가로 전분과 단백질로 가공 후 사료, 의약, 바이오, 제지, 생활용품, 필름, 바이오플라스틱까지 다양한 산업용 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쌀은 대규모 소비시장을 발굴하지 못하고 주로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기에 상품거래소에서 대규모로 선물거래를 하지 못하고 수익성 낮은 자급자족형 영농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의 한국 농업은 어떠한가? 전국단위 거래 시장은 있지만 시카고상품거래소처럼 선물거래가 우선 되는 시장은 없고 수확 후 공급경쟁에 따라 가격을 낙찰받는 시스템만 있을 뿐이다. 지금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쌀 풍족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줄어드는 소비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 반대로 남는 쌀을 활용해 쌀소비 시스템을 개편하고, 상품화가 중심이 되는 선진국형 농산물 선물거래시장을 빨리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산물이 상품화되려면 선결조건으로서 표준화 및 규격화가 반드시 진행돼야 하고, 전국단위로 수요공급예측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개별농가가 각자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 생산조직의 형태로 대단위 농업경영체 또는 조합이 결성 운영돼 대규모로 거래할 필요가 있다. 유럽, 뉴질랜드 등의 유명 영농조합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농업을 대규모화하고 농산물 상품 공급능력을 키워 조합원들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키위의 제스프리, 유가공품의 폰테라 등 뉴질랜드 생산자조합과 네덜란드의 비온그룹, 대니시 크라운으로 유명한 덴마크축산협동조합 등이 있다. ●농산업과 복지의 행복한 결합 정부에서는 농업농촌을 살리겠다며 수년 전부터 귀농귀촌 장려정책을 펴고 있다. 농촌인구가 증가하려면 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의 문화, 편의, 보건, 생활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귀농인들이 가장 실망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고 실제로 귀농한 사람 10명 중 1~2명꼴로 다시 돌아가는 역귀농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농가소득현황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율은 2016년 63.5%다. 한국의 농업이 발전하려면 생산성 낮은 자급자족형 영농시스템에서 벗어나 미국, 유럽 등 농업선진국처럼 대규모화된 상업영농을 육성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방법론은 아직까지 갑론을박이다. 현재까지 농업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는 농업과 농촌,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모순적인 탓이다. 농업과 귀농장려는 좋은 일이지만 지금 같은 농사 일변도의 장려정책은 필연적으로 국내 농가 간 과잉경쟁을 유발해 농산물 폭락현상이 상시화된다. 2017년에 비해 2018년에 과잉생산으로 인한 산지폐기 물량과 품목이 늘었는데, 산지폐기품목이 그동안 귀농인들이 많이 선택했던 밭작물이다. 한국의 농업인구 비율은 2017년 현재 4.7%로서 미국(1%), 일본(3.8%), 독일(1.4%), 영국(1.1%)에 비해 높은 수준이며, 루마니아(24.0%), 불가리아(18.0%), 그리스(11.3%) 등이 한국보다 높은 농업인구를 보이고 있다. 농업선진국일수록 농업인구 비중이 줄어드는 경향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무작정 귀농귀촌을 장려해 농업인구 증가를 이끄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자칫하면 한국 농업은 인력 수요가 많은 후진국형 농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2018년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EU의 농가 및 농가경제 동향에 따르면 EU의 농민들은 대부분 시간제로 근무하고, 농업 외 주요 수입원이 있다. 농업의 특성상 농번기에 노동력이 집중 투입되는 등 필요시 단기고용하는 추세다. 이런 추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EU 농업선진국에서 두드러진다. 대규모화된 생산자협동조합이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농업생산 외 농산물 가공사업 및 부대사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제조업, 레저휴양, 관광서비스업까지 존재하며, 탄탄한 사업구조를 가진 생산자조합은 해당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보건복지 및 문화생활여건도 향상시키는 등 농촌지역 발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한편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농업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17년 현재 42.5%에 달하는데 정부가 바라듯 농촌소멸이 일어나지 않고 농촌지역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향후 농산업 고도화구조개편은 청년층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노인 농업인구의 실직은 사회복지문제로 전환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초노령연금 등의 혜택을 강화해 농촌노인들의 자연스러운 은퇴를 유도함과 동시에 상품거래소 등 기반시스템 개선과 농산업을 고도화함으로써 농촌지역 청년일자리의 증가를 꾀하는 근본적인 농정개혁이 필요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집행함과 동시에 농민과 농산업 관계자 등 민간에서도 농업보조금에 의존하거나 신토불이 같은 막연한 구호를 외치기보다 내 앞길은 스스로 개척한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농업개혁에 임해야 한다. ■정광호 아이엔비 대표는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해태제과식품, CJ제일제당을 거쳐 현재 농식품 R&D회사 아이엔비 대표로 있다. 바이오기술 기반 차세대 농업시스템과 가치창출 전략을 제안, 시도 중이다.
  • 국민 81% “안락사 도입 찬성”

    국민 81% “안락사 도입 찬성”

    2년 반 전 조사보다 찬성 15%P 올라 기대 수명·독거 가구 증가 여파인 듯국민 10명 중 8명은 안락사 허용을 찬성했다. 진통제로도 병의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가 안락사를 선택할 시기라고 했다. ‘죽을 권리’를 논하는 데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0%가 넘은 것은 처음이다. 7일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리서치 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80.7%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안락사(조력자살 포함)는 현재 네덜란드, 스위스 등 7개국이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을 통해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가능하다.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고자 영양분 공급 등을 중단(소극적)하거나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적극적)하는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존엄사법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국내 안락사 찬성 목소리는 과거보다 한층 커졌다. 안락사 여론조사 중 가장 최근 자료인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팀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찬성 응답이 15% 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윤 교수팀이 2016년 7~10월 일반인 1241명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는 66.5%가 소극적 안락사 찬성에 손을 들었다. 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14% 이상이 65세 이상) 진입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를 자문한 황규성(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한국엠바밍 대표는 “안락사 찬성 비율이 80%까지 늘어난 건 사회 변화에 따른 독거 가구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쓸쓸한 죽음을 맞는 것보다 스스로 임종의 순간을 선택하고 싶은 게 현대인”이라고 말했다. 안락사 허용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52.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특히 20대(67.3%)와 30대(60.2%)에서 이런 생각이 많았다. 젊은 세대는 안락사를 선택 가능한 또 다른 죽음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밖에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34.9%)도 안락사 찬성의 주된 이유로 꼽혔다. 안락사를 허용할 환자의 상태로는 ▲진통제로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48.5%) ▲식물인간 상태(22.4%)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12.2%)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할 때(11.0%) 등의 순이었다. 윤 교수는 “기대여명이 늘어났음에도 억지로 삶을 연장하는 걸 원하지 않는 상황인 만큼 사회적 해법을 논의할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지금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존엄한 죽음을 돕는다는 신뢰가 구축될 경우 한 걸음 더 나아간 안락사 도입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3~14일 유무선 혼용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 진행됐다.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 포인트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라이드온] 탄탄한 잔근육 뷰티풀 SUV… 쌍용차 ‘코란도’ 8년 만의 컴백

    [라이드온] 탄탄한 잔근육 뷰티풀 SUV… 쌍용차 ‘코란도’ 8년 만의 컴백

    낮고 넓은 차체에 수려한 디자인차선 유지·어댑티브 크루즈 탑재최첨단 자율주행 기술 돌풍 기대제네바 모터쇼 참가해 유럽 공략 쌍용자동차 코란도가 멋스러운 모습으로 8년 만에 돌아왔다. 국내외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시장을 뒤흔드는 돌풍의 주역이 될지 주목된다. 쌍용차는 지난달 26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신형 코란도 출시 소식을 알리며 시승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처음 공개된 코란도의 모습은 ‘군더더기 없는 도심형 SUV’ 그 자체였다. 디자인과 차체의 크기는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SUV의 정석이자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낮고 넓은’ 차체의 비율은 안정감을 줬다. 쌍용차가 자신 있게 ‘뷰티풀’(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디자인도 훌륭했다.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 신체를 지닌 수려한 외모의 남성이 연상됐다.코란도를 타고 송도컨벤시아를 출발해 인천대교를 건너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의 한 카페까지 약 44㎞를 시승했다. 디젤 엔진 특유의 가래 끓는 듯한 소음은 나지 않았다. 일부 가솔린 엔진 SUV보다 조용하고 진동은 덜했다. 고속 주행에서도 정숙한 면모를 잃지 않았다. 일본 아이신의 ‘젠3’ 6단 변속기는 부드러운 변속 능력을 보여 줬다. ‘1.6ℓ 디젤 엔진에 최고 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3㎏·m’라는 성능은 국내 도심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제원이었다. 다만 운전자별로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가속 페달을 짧게 끊어 밟았을 때 차량이 반응을 하지 않거나 조금 느리게 반응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코란도에 적용된 자율주행기술은 놀라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능은 ‘차선 유지보조 시스템’이었다. 차량이 차선을 벗어나려고 하면 운전대가 스스로 작동해 차량이 차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코란도는 같은 기술을 탑재한 다른 차량에 비해 운전대가 꺾이는 각도가 큰 편이어서 체감도가 높았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면 ‘차선 이탈경보 시스템’이 작동해 ‘삐삐삐’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또 운전대에서 손을 놓아도 5초 이내에 경고음이 울려 주의를 줬다. 동급 차량 최초로 탑재된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IACC)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제한 속도 100㎞ 구간단속 시작점에서 시속 100㎞를 유지한 채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앞차와의 거리가 좁혀지려 하자 저절로 속력이 시속 90㎞까지 줄면서 차간 거리가 유지됐다. 다시 간격이 벌어지자 속력은 시속 100㎞를 회복했다. 곡선 주로에서는 ‘차선 중심 추종 제어’ 기능을 통해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감지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이 밖에 긴급 제동보조·전방 추돌경보 시스템, 앞차 출발 알림 기능, 주변 밝기에 따라 상·하향등을 자동으로 전환하는 ‘스마트 하이빔’, 부주의 운전경보 시스템 등 코란도에 탑재된 최첨단 자율주행 기능은 한 번에 다 외지 못할 정도로 풍성했다. 계기판은 아날로그 방식을 탈피하고 전면 디지털화됐다. 디스플레이의 화질과 디자인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수입차 못지않았다. 쌍용차가 지난 4년간 “최고의 SUV를 만들겠다”며 코란도 개발에 투자한 3500억원과 노력은 헛되지 않아 보였다. 쌍용차는 이런 코란도를 7일(현지시간) 개막한 ‘2019 제네바 모터쇼’에 들고 가 선보이며 유럽 시장을 겨냥했다. 코란도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5일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진행된 쌍용차 프레스데이 행사에서 최종식 사장은 “혁신적인 기능과 최신 기술을 추구하는 젊은 고객층 덕분에 유럽의 C세그먼트(준중형) SUV 시장은 가장 크고 인기 있는 시장이 됐다”면서 “혁신을 통해 최상의 경쟁력을 갖춘 코란도는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는 유럽 고객에게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임종 순간 선택도 권리” 안락사 찬성 여론 첫 80% 넘었다

    “임종 순간 선택도 권리” 안락사 찬성 여론 첫 80% 넘었다

    2년 반 전 조사보다 찬성 15%P 올라기대 수명·독거 가구 증가 여파인 듯49% “진통제도 안듣게 되면 허용을”국민 10명 중 8명은 안락사 허용을 찬성했다. 진통제로도 병의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가 안락사를 선택할 시기라고 했다. ‘죽을 권리’를 논하는 데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0%가 넘은 것은 처음이다. 7일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리서치 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80.7%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안락사(조력자살 포함)는 현재 네덜란드, 스위스 등 7개국이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을 통해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가능하다.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고자 영양분 공급 등을 중단(소극적)하거나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적극적)하는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존엄사법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국내 안락사 찬성 목소리는 과거보다 한층 커졌다. 안락사 여론조사 중 가장 최근 자료인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팀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찬성 응답이 15% 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윤 교수팀이 2016년 7~10월 일반인 1241명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는 66.5%가 소극적 안락사 찬성에 손을 들었다. 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14% 이상이 65세 이상) 진입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를 자문한 황규성(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한국엠바밍 대표는 “안락사 찬성 비율이 80%까지 늘어난 건 사회 변화에 따른 독거 가구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쓸쓸한 죽음을 맞는 것보다 스스로 임종의 순간을 선택하고 싶은 게 현대인”이라고 말했다. 안락사 허용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52.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특히 20대(67.3%)와 30대(60.2%)에서 이런 생각이 많았다. 젊은 세대는 안락사를 선택 가능한 또 다른 죽음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밖에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34.9%)도 안락사 찬성의 주된 이유로 꼽혔다. 안락사를 허용할 환자의 상태로는 ▲진통제로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48.5%) ▲식물인간 상태(22.4%)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12.2%)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할 때(11.0%) 등의 순이었다. 윤 교수는 “기대여명이 늘어났음에도 억지로 삶을 연장하는 걸 원하지 않는 상황인 만큼 사회적 해법을 논의할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지금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존엄한 죽음을 돕는다는 신뢰가 구축될 경우 한 걸음 더 나아간 안락사 도입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3~14일 유무선 혼용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 진행됐다.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 포인트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K-2 전차 방산비리’ 수억원 챙긴 예비역 장군 등 재판에

    ‘K-2 전차 방산비리’ 수억원 챙긴 예비역 장군 등 재판에

    터키 무기 방산비리로 뒷돈 수억원을 챙긴 예비역 장군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언론 보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파나마 페이퍼스’가 수사 단초가 됐다.7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전날 예비역 준장(전 터키 주재 무관) 고모씨와 전 방산업체 임원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6년 ‘대형 방산업체 연관 유령회사 발견…스위스 계좌 신설’ 제목의 뉴스타파 보도로 불거진 터키 방산비리 사건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1월까지 터키 주재 무관으로 근무하다 퇴역한 고씨는 우리나라 K-2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대가로 터키 무기중개상 K사로부터 컨설팅 명목으로 3년에 걸쳐 총 72만 달러(약 8억 1000만원)을 챙긴 혐의(부정처사후수뢰죄)를 받고 있다. 국방과학기술을 수출할 경우 방위사업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고씨는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업체 관계자와 방위사업청 공무원들을 종용해 계약을 이끌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방산업체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에서 2009년 4월까지 근무한 김씨도 K사로부터 K-9 자주포 성능개량사업에 터키업체 제품이 납품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0만 달러(약 13억 5000만원)를 챙겼다. 나아가 국내외 방산부품 납품업체로부터 납품 성사 대가로 금품 7억원을 받은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무기중개상 K사가 조세회치퍼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검은돈을 은닉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나온 이후 관세당국은 관련자들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조사했고, 지난해 초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1년 동안 수사를 진행해왔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함에 따라 모두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억만장자 다이아 거래상, ‘남성확대수술’ 중 심장마비 사망

    억만장자 다이아 거래상, ‘남성확대수술’ 중 심장마비 사망

    한 억만장자 다이아몬드 거래상이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남성확대 수술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푸앙은 4일(이하 현지시간) 자 보도에서 지난 2일 파리 중심가에 있는 한 병원에서 유명 다이아몬드 거래상인 에후드 라니아도(65)가 음경확대 수술을 받던 중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은 금세 프랑스 언론은 물론 그의 회사가 있는 벨기에 등 유럽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벨기에 제2의 도시 앤트워프에 본사를 둔 라니아도의 회사 ‘오메가 다이아몬드’ 역시 창업자의 사망을 공식 인정했다.이 회사는 성명을 통해 “선견지명이 있는 한 사업가에게 작별 인사를 해달라. 우리의 설립자 에후드 라니아도가 세상을 떠났음을 확인하게 돼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라니아도는 항상 자기 외모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서 “오메가 다이아몬드에서 우리는 그의 옷차림이 탱고 댄서처럼 보여 그를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다. 라니아도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자기 키가 작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를 잊는 유일한 순간은 회계사가 자신에게 은행계좌 잔액을 읽어줄 때뿐이었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 회계사에게 이를 요청했다. 라니아도는 모나코에 우리 돈으로 44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가장 비싼 펜트하우스뿐만 아니라 미 LA 교외 고급 주택가에도 저택 1채를 갖고 있으며 이들 집에 유명인사들과 모델들을 초대해 값비싼 샤토 마고 와인을 마시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대 초부터 아프리카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이 다이아몬드 전문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에 한 일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힐튼 호텔에서 마사지사로 근무한 것이었다.한 지인은 “앤트워프에서 그에게 약간의 재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다이아몬드 원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전문가들 중 한 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라니아도는 현재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다이아몬드의 거래를 맡았던 것으로 잘 알려졌다. 이른바 ‘블루문’으로 불리는 12.03캐럿짜리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2015년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559억 원(4860만 스위스프랑, 4840만 달러)에 팔렸다. 낙찰자는 홍콩의 한 억만장자로 당시 7살 된 딸을 위해 이 다이아몬드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확한 재산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라니아도는 2013년 사업 파트너인 실뱅 골드버그와 함께 탈세 혐의로 곤욕을 치렀다. 오메가 다이아몬드의 중역인 두 사람은 1억6000만 유로(약 2043억원)의 세금을 내기로 합의해서 재판까지 가는 것을 막았었다. 하지만 벨기에 세관당국은 이들이 앙골라와 콩고에서 수입한 다이아몬드들 중 일부를 불법으로 거래했다고 의심해 46억 유로(약 5조8700억원)의 미납세와 20억 유로(약 2조5500억원)의 벌금을 청구했다. 법원은 세관당국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항소가 이뤄져 라니아도는 원래 오는 14일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한편 라니아도의 시신은 벨기에가 아닌 그가 태어난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파란 집에서 8시간, 노인들은 그렇게 생을 끝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파란 집에서 8시간, 노인들은 그렇게 생을 끝냈다

    “인터뷰 안 합니다. 저희는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었어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7일 스위스 취리히주 쿠스나흐트의 한 주유소 1층에는 3평 남짓한 사무실이 쪽방처럼 딸려 있었다. 외국인 조력자살(안락사) 후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반하는 민간 장례업체의 사무실이었다. 굳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작은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주차된 운구 차량을 보고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신분만 밝혔을 뿐인데도 장의업체 직원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기자일 뿐, 우리는 기자를 믿지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이미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았다.한국인 최초로 안락사를 선택한 이들,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8770㎞를 날아 스위스까지 갔을까. 답을 찾고자 서울신문은 지난 1월 4~11일 스위스 취리히에 다녀왔다. 한국인 안락사가 이뤄진 블루하우스부터, 시신을 운반하는 사설 장례업체,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까지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기록은 감춰져 있고, 흔적은 흩어져 있어 아쉽게도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숨진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최초로 내디뎠던 그 길에서 고인들이 보았을 마지막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건 안락사를 그려낸 영화 ‘미 비포 유’처럼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정답 없는 갈림길이었다.블루하우스는 취리히주 파피콘에 있다. 스위스인들은 조력자살을 하더라도 집에서 받을 수 있기에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오직 외국인만이 이 파란 건물에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블루하우스의 외관은 아늑하지만은 않았다. 건물 바로 뒤편에는 대형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크고 암울한 배경화면처럼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 인적 드문 공터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스위스 일정 중 3일을 투자해 블루하우스 앞을 지켰지만,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매일같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만큼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친구의 안락사를 곁에서 지켜본 익명의 제보자 ‘케빈’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블루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오싹했다. 기분이 참 묘했고 안 좋았다.”8일에는 블루하우스 밖에서 안락사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국적 번호판을 단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와 미색 SUV 한 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각각 두 차량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고,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오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두 시간쯤 지나 가족들이 블루하우스에서 나왔다. 블루하우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디그니타스와 검찰, 법의학자 인터뷰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우선 안락사 전 동행한 가족들은 수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특히 환자의 병명이 적힌 의사 진단서와 환자의 사망 의사가 담긴 선언문 등은 필수다. 물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치사약(펜토바르비탈)을 마시기 전까지 디그니타스 직원은 환자가 지금도 안락사를 원하는지,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수차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리고 환자가 약을 마시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약을 복용하면 보통 수분 내에 사망에 이른다. 죽을 권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날은 예상보다는 조금 늦은 오후 5시 30분쯤 경찰과 법의학자가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경찰이 각종 서류의 확인 등을 마치면 타살 의혹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의 검시가 시작된다. 한 시간 뒤 경찰과 법의학자가 철수하자 곧이어 하얀색 운구 차량이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향했던 노인들은 주검이 돼 8시간 만에 관에 실려 나왔다. 프랑스 노인 두 명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안락사 후 시신은 모두 취리히주 북화장장(Krematorium Nordheim)으로 보내진다. 블루하우스와의 거리는 26.4㎞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 3곳 중 한 곳으로 파피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진 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결정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도 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케빈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국적에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사망하면 현지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례 과정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구분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할 수 있는 대형 장례식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골함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은 스위스 국민들도 꽤 있다.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대략 3일 후 화장이 된다. 화장 전까지는 시신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방에 모신다. 우리가 찾은 회장장에도 23개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케빈은 9번 방에서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북화장장 총책임자인 시릴 지머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외국인들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비용을 스위스 국민이 댄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디그니타스는 조력자살로 외국인들에게 돈을 받지만 정작 자국 화장터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기자는 이곳에서 화장된 한국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빈이 스위스까지 동행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박정호(가명)씨의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디그니타스와 케빈을 제외한 제삼자를 통해 한국인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기록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이름, 한국 주소 등이 적혀 있으며, 사망 장소로는 블루하우스가, 장례 주관자로 디그니타스가 기재돼 있었다.안락사한 한국인의 기록은 더 찾을 수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장의업체 두 곳을 더 찾았다. 한 곳은 파피콘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의업체고, 다른 한 곳은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은 곳이었다. 물론 두 곳에서 더는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수십 년간 죽음을 일상으로 접한 스위스 장례전문가로부터 조력자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파피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례업체인 게르바 린다우의 사장 우르스 게르바(50)는 조력자살도 존엄한 죽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문제라고도 했다.“제 경험으로는 보통 조력자살을 통해 남은 유족들이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가족들은 고인의 조력자살을 원하지 않거나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엔 그런 선택이 남용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나를 위해, 남은 이들을 위해… 안락사를 선택할 겁니다

    [단독] 나를 위해, 남은 이들을 위해… 안락사를 선택할 겁니다

    루게릭병 父, 절망하는 가족 보고 결심 이별 준비 필요… ‘죽을 권리’ 찾고 싶어한국인 2명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안락사(조력자살)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삶을 마쳤고, 107명이 같은 방법을 준비 중이다.<서울신문 3월 6일자 1면> 그들은 왜 스위스로 가려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지난 5개월간 답을 듣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한국인 ‘디그니타스’ 회원 3명과 연락이 닿았다. 이 중 30대 남성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죽음이 슬픔, 회한, 한탄으로 가득해야만 할까요. 헤어짐은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거잖아요. 남은 사람이 각자의 삶을 잘 살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도 이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37)씨는 디그니타스 회원이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3년 전 인터넷에서 디그니타스를 검색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였다. 근육을 차츰 퇴화시키는 이 병은 처음엔 아버지의 다리를 못 쓰게 했고, 이어서 입, 소화기관, 호흡기, 팔 등 차근차근 모든 기관을 잠식했다. 아버지는 말하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나중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24시간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야 했고, 집도 더 작은 곳으로 이사했다. “3년 넘게 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와 절망하는 가족을 보면서 안락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뇌암에 걸린 미국 여성이 조력자살이 허용된 주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읽게 됐지요.” 29살의 이 여성은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를 만들고 남편과 여행을 떠났다. 임종 전에는 조력자살이 허용된 오리건주로 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가족과 친구들 속에서 눈을 감았다. 김씨는 아버지에게도 디그니타스 안내문을 보이며 스위스에는 조력자살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의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잘 아는 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3년간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현재 8개월째 요양병원에서 코에 연결된 영양 공급 기계에 의존해 버티고 있다. “일부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귀중한 것(신체발부수지부모)이라는 유교문화 영향도 큰 것 같고요. 하지만 당사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이기적인 것 아니겠어요.” 김씨는 자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안락사를 선택할 겁니다. 아버지가 병을 치르면서 차츰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사람들이 멀어지는 걸 느꼈어요. 제가 죽고 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슬픈 모습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요. 요즘 사람들 열심히 운동해서 가장 멋진 모습일 때 프로필 사진 많이 찍잖아요.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하) 오랜 친구로부터 스위스에 함께 가 달라는 제안을 받은 케빈(가명). 암 투병 중인 친구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제안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스위스 여정은 곧 조력자살(안락사)을 위한 마지막 여행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케빈은 일단 함께하기로 했다. 현지에 가더라도 어떻게든 친구의 극단적 선택을 말릴 기회는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친구는 구체적 안락사 일정과 사망 후 시신 처리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을 정도로 결심이 확고했다. 스위스에 도착한 케빈은 친구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설득했지만, 극심한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그의 결정을 끝내 꺾지는 못했다. 당일 아침이 밝았다. 친구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안락사 장소인 ‘블루하우스’로 떠났다. 서울신문은 익명의 취재원 케빈으로부터 그가 경험했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받아 상하로 나눠 연속 보도한다.늘 형 같았던 친구에게 스위스까지 따라와 끝까지 설득해 준 네 뜻을 따르지 못해 미안하다. 날 위해 늘 기도하는 맘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네 마음만은 잊지 않을게.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삶을 마감하고자 한다. 너의 뜻이 신앙적으로도 옳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도 알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유약했던 거 같아.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야. 그 마음 영원히 간직할게. 부디 안녕하길. 스위스에서 박정호 올림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 돌아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미친놈’.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죽으려는 놈이 무슨 걱정을 이렇게 하는지, 또 이런 글을 왜 썼는지, 그의 마음을 알기에 고마움과 함께 답답한 감정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친구는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처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나 봅니다. 편지 속에 저를 마치 안락사에 반대하는 성직자인 양 적어 놓았더군요.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미리 써 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친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는 끝까지 저를 보호해 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지금이라도 정호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급히 호텔방을 나서 렌터카를 몰았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약 먹기로 결정했어. 함께 스위스에 와 줘서 고마워.” 제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가라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도 했습니다. 전화를 끊었는데,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도로 갓길에 차를 잠시 세웠습니다. 가슴이 저린다는 게,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제야 알았습니다. 정호가 죽는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파란 이층집에 도착했습니다. 경찰 두 명이 다녀간 후 디그니타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중간 침대에 담요를 덮고 누워 있는 그를 봤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을 살짝 뜬 채 창백한 얼굴로 표정이 없었습니다.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얼굴도 만져 보고 손도 만져 봤지만, 온기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죽었을지 궁금했습니다. 끝까지 함께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한 장의사 두 분이 들어왔습니다. 직원은 제게 “잠시 나가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 하늘을 봤더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구나, 과연 이렇게 죽는 게 존엄하게 죽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이 사람은 고통과 걱정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에서 그간 힘들었던 모든 것을 풀어놓고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얀 천과 쿠션으로 꾸며진 서양식 육각 나무 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정호가 바라던 대로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의사들은 집 앞에 세워둔 검은색 영구차에 관을 실었습니다. 차 안에 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날 옆방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인 남성의 관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디그니타스 직원은 크레마토리움(화장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갈 수 없다며 종이에 주소를 적어 주며 내일 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관에 누운 채 홀로 크레마토리움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내 북쪽 화장장으로 향했습니다. 스위스 화장장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화장만 하는 게 아니라 고인을 모시는 빈소도 있고 장례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큰 장례식장도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5분 정도 기다렸더니 직원 한 분이 숫자 9와 고인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줬습니다. 방은 1.5평 정도 크기입니다. 관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길쭉했습니다. 오른쪽 벽 탁자 위에 관이 놓여 있었고, 고인은 관에서 어제 봤던 그대로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 오른쪽으로 굵고 짧은 큰 촛불이 하나 타고 있었습니다. 방은 춥지는 않았지만 서늘했습니다. 화장장 직원은 제게 괜찮으냐고 물었고, 제가 괜찮다고 하니 인사를 하고 나갔습니다. 저는 말없이 그를 봤고, 정호의 얼굴과 손을 만졌습니다. 어제보다 더 차가웠습니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미래에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병의 특성상 앞으로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 나갔을 겁니다. 죽을 것같이 숨이 막혔겠지요. 결국 정신까지 온전하지 않게 될 거란 걸 알았을 때, 그는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 기약 없는 투병과 간병으로 받게 될 가족의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고려해 스위스에 오는 걸 결정했을 겁니다. 그는 똑똑했습니다. 물론 인간적 갈등도 그의 몫이었겠지요. 대학도 못 간 자식들을 뒤로하고 어떻게 비행기를 탔을까 생각하면 제 가슴이 무너지는 듯 아픕니다. 대단한 친구입니다.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저는 그의 죽음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바랐던 바일 겁니다. 호텔에서 만난 의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고통도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말이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친구를 위해 준비해 온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좀더 환하고 편해 보였습니다. 친구도 제 선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제 마음도 편해지더군요. 며칠 후 그는 한 줌의 재가 됐습니다. 스위스에서 그는 자기 삶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존엄한 죽음이었을까요. 미안한 말이지만 적어도 저에게 친구의 죽음은 존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친구 스스로는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고 확신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상)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단독]한국인 최초 안락사 그 길을 쫓다...스위스 현지 르포

    [단독]한국인 최초 안락사 그 길을 쫓다...스위스 현지 르포

    “인터뷰 안 합니다. 저희는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었어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7일 스위스 취리히주 쿠스나흐트의 한 주유소 1층에는 3평 남짓한 사무실이 쪽방처럼 딸려 있었다. 외국인 조력자살(안락사) 후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반하는 민간 장례업체의 사무실이었다. 굳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작은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주차된 운구 차량을 보고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신분만 밝혔을 뿐인데도 장의업체 직원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기자일 뿐, 우리는 기자를 믿지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이미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았다.한국인 최초로 안락사를 선택한 이들,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8770㎞를 날아 스위스까지 갔을까. 답을 찾고자 서울신문은 지난 1월 4~11일 스위스 취리히에 다녀왔다. 한국인 안락사가 이뤄진 블루하우스부터, 시신을 운반하는 사설 장례업체,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까지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기록은 감춰져 있고, 흔적은 흩어져 있어 아쉽게도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숨진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최초로 내디뎠던 그 길에서 고인들이 보았을 마지막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건 안락사를 그려낸 영화 ‘미 비포 유’처럼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정답 없는 갈림길이었다.블루하우스는 취리히주 파피콘에 있다. 스위스인들은 조력자살을 하더라도 집에서 받을 수 있기에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오직 외국인만이 이 파란 건물에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블루하우스의 외관은 아늑하지만은 않았다. 건물 바로 뒤편에는 대형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크고 암울한 배경화면처럼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 인적 드문 공터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스위스 일정 중 3일을 투자해 블루하우스 앞을 지켰지만,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매일같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만큼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친구의 안락사를 곁에서 지켜본 익명의 제보자 ‘케빈’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블루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오싹했다. 기분이 참 묘했고 안 좋았다.”8일에는 블루하우스 밖에서 안락사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국적 번호판을 단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와 미색 SUV 한 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각각 두 차량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고,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오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두 시간쯤 지나 가족들이 블루하우스에서 나왔다. 블루하우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디그니타스와 검찰, 법의학자 인터뷰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우선 안락사 전 동행한 가족들은 수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특히 환자의 병명이 적힌 의사 진단서와 환자의 사망 의사가 담긴 선언문 등은 필수다. 물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치사약(펜토바르비탈)을 마시기 전까지 디그니타스 직원은 환자가 지금도 안락사를 원하는지,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수차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리고 환자가 약을 마시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약을 복용하면 보통 수분 내에 사망에 이른다. 죽을 권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날은 예상보다는 조금 늦은 오후 5시 30분쯤 경찰과 법의학자가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경찰이 각종 서류의 확인 등을 마치면 타살 의혹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의 검시가 시작된다. 한 시간 뒤 경찰과 법의학자가 철수하자 곧이어 하얀색 운구 차량이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향했던 노인들은 주검이 돼 8시간 만에 관에 실려 나왔다. 프랑스 노인 두 명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안락사 후 시신은 모두 취리히주 북화장장(Krematorium Nordheim)으로 보내진다. 블루하우스와의 거리는 26.4㎞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 3곳 중 한 곳으로 파피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진 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결정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도 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케빈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국적에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사망하면 현지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례 과정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구분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할 수 있는 대형 장례식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골함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은 스위스 국민들도 꽤 있다. 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대략 3일 후 화장이 된다. 화장 전까지는 시신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방에 모신다. 우리가 찾은 회장장에도 23개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케빈은 9번 방에서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북화장장 총책임자인 시릴 지머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외국인들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비용을 스위스 국민이 댄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디그니타스는 조력자살로 외국인들에게 돈을 받지만 정작 자국 화장터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곳에서 화장된 한국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빈이 스위스까지 동행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박정호(가명)씨의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디그니타스와 케빈을 제외한 제삼자를 통해 한국인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기록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이름, 한국 주소 등이 적혀 있으며, 사망 장소로는 블루하우스가, 장례 주관자로 디그니타스가 기재돼 있었다.안락사한 한국인의 기록은 더 찾을 수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장의업체 두 곳을 더 찾았다. 한 곳은 파피콘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의업체고, 다른 한 곳은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은 곳이었다. 물론 두 곳에서 더는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수십 년간 죽음을 일상으로 접한 스위스 장례전문가로부터 조력자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파피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례업체인 게르바 린다우의 사장 우르스 게르바(50)는 조력자살도 존엄한 죽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문제라고도 했다.“제 경험으로는 보통 조력자살을 통해 남은 유족들이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가족들은 고인의 조력자살을 원하지 않거나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엔 그런 선택이 남용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안락사 준비하는 107명…“나는 왜 디그니타스 회원이 되었나”

    안락사 준비하는 107명…“나는 왜 디그니타스 회원이 되었나”

    한국인 2명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안락사(조력자살)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삶을 마쳤고, 107명이 같은 방법을 준비 중이다.<서울신문 3월 6일자 1면> 그들은 왜 스위스로 가려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지난 5개월간 답을 듣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한국인 ‘디그니타스’ 회원 3명과 연락이 닿았다. 이 중 30대 남성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죽음이 슬픔, 회한, 한탄으로 가득해야만 할까요. 헤어짐은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거잖아요. 남은 사람이 각자의 삶을 잘 살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도 이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37)씨는 디그니타스 회원이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3년 전 인터넷에서 디그니타스를 검색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였다. 근육을 차츰 퇴화시키는 이 병은 처음엔 아버지의 다리를 못 쓰게 했고, 이어서 입, 소화기관, 호흡기, 팔 등 차근차근 모든 기관을 잠식했다. 아버지는 말하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나중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24시간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야 했고, 집도 더 작은 곳으로 이사했다. “3년 넘게 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와 절망하는 가족을 보면서 안락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뇌암에 걸린 미국 여성이 조력자살이 허용된 주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읽게 됐지요.” 29살의 이 여성은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를 만들고 남편과 여행을 떠났다. 임종 전에는 조력자살이 허용된 오리건주로 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김씨는 아버지에게도 디그니타스 안내문을 보이며 스위스에는 조력자살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의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잘 아는 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3년간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현재 8개월째 요양병원에서 코에 연결된 영양 공급 기계에 의존해 버티고 있다. “일부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귀중한 것(신체발부수지부모)이라는 유교문화 영향도 큰 것 같고요. 하지만 당사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이기적인 것 아니겠어요.” 김씨는 자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안락사를 선택할 겁니다. 아버지가 병을 치르면서 차츰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사람들이 멀어지는 걸 느꼈어요. 제가 죽고 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슬픈 모습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요. 요즘 사람들 열심히 운동해서 가장 멋진 모습일 때 프로필 사진 많이 찍잖아요.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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