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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골목길에 버려졌던 아이, 佛의원 된다

    서울 골목길에 버려졌던 아이, 佛의원 된다

    서울 태생… 재능 풍부한 의사 스위스 지역구서 현역 상대 압도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한 의사가 프랑스 하원의원 당선을 앞두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프랑스 언론들이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창당한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후보로 출마한 조아킴 송 포르제(34)후보가 그 주인공.지난 4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해외 선거구 1차 투표에서 송 포르제 후보는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지역구에서 63.21%의 득표율로 현역인 상대 후보를 압도했다. 프랑스 하원은 2010년부터 전체 의석 중 11석을 해외에 배정하는 ‘해외 선거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투표율이 20%를 밑돌아 오는 18일 결선투표를 치러야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당선 가능성이 높다. 송 포르제 후보는 1983년 7월 서울의 한 골목을 순찰하던 경찰에 발견됐다. 당시 입고 있던 옷에는 그의 생일로 보이는 ‘4월 15일’이 적힌 쪽지만 남아 있었다. 보육원으로 옮겨진 뒤 프랑스로 입양돼 계몽사상가 디드로가 태어난 랑그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적응 문제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했지만 과학과 음악에서 재능을 보이면서 훗날 제네바 대공연장인 빅토리아홀에서 하프시코드를 단독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현재 스위스 로잔대학병원 신경방사선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가라데 스승인 앙리 플레와 만나 무술을 배우면서 인체 급소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8년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스위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미소가 아름다웠던 티오테 돌봐야 할 가족 남기고 스러지다

    미소가 아름다웠던 티오테 돌봐야 할 가족 남기고 스러지다

    “내가 본 축구 선수 가운데 가장 거친 플레이를 하면서도 가장 미소가 아름다웠던 이가 스러졌다.” 영국 BBC가 지난 4일(현지시간) 코트디부아르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셰이크 티오테(베이징 쿵구)가 소속팀 훈련 직후 31세를 일기로 숨졌다는 궂긴 소식을 전한 뒤 스티브 매클라렌 전 뉴캐슬 감독의 표현을 인용했다.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 구단은 5일 “티오테가 훈련을 마친 뒤 약 한 시간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서 “구단은 티오테를 즉시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오후 7시쯤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티오테는 평소와 다름 없이 훈련에 참가했으며 특이한 징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리그 FC 트웬티와 뉴캐슬에서 고인을 데리고 있었던 매클라렌은 “트웬테에 처음 왔던 어린 시절의 그를 잘 안다. 내가 본 가장 거친 선수였다. 실전에서나 훈련장에서나 그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모든 경기를 이기고 싶어했고 모든 선수를 상대로 공을 차고 태클을 걸고 싶어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뉴캐슬에 있을 때 (파피스) 시세와 셰이크가 미소지으면 세상만사 OK였다는 것을 내가 안다”며 “고인은 모든 이들이 자기 팀에서 뛰기를 원했던 종류의 선수였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아가 고인이 그렇게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에서 축구를 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중국 리그 이적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다. 가족을 부양히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뉴캐슬의 또다른 스승이었던 앨런 퍼듀는 ”고인은 라커룸에서나 필드에서나 믿음을 입증하는 빼어난 존재였다”며 ”우리 뉴캐슬이 아스널과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믿기지 않는 4-0 대승을 거뒀을 때 셰이크의 믿기지 않는 골이 대승을 매조졌던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삶은 때로는 공평하지 못하다. 내가 지도했던 미드필드의 거인으로 고인을 기억할 것이다. 친구여 편히 잠들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2005년 벨기에 안데를레흐트에서 프로 데뷔한 뒤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뉴캐슬에서 뛰었다.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등에 출전한 뒤 지난 2월 5일 베이징 쿵구에 입단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중국 진출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티오테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뉴캐슬 구단은 추모 성명을 냈다. 디디에 드로그바(피닉스), 뱅상 콩파니(맨체스터시티), 뎀바 바(베식타스) 등 티오테와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들과 라파 베니테스 뉴캐슬 감독과 현 주장 자말 라스셀레스 등이 SNS를 통해 추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시카고타자기’ 유아인, 까칠→낭만→달콤→애틋 “깊은 여운”

    ‘시카고타자기’ 유아인, 까칠→낭만→달콤→애틋 “깊은 여운”

    ‘시카고 타자기’의 처음과 끝에는 배우 유아인이 있었다. 지난 3일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극본 진수완/연출 김철규)가 16회 방송으로 종영됐다. 앤티크 로맨스라는 이색적 장르,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스토리, 매력적 캐릭터가 조화를 이룬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그 처음과 끝에는 배우 유아인(서휘영/한세주 분)이 있었다. ‘시카고 타자기’ 최종회에서는 전생의 인연을 뛰어넘어 현생에서 해피엔딩을 맺은 한세주와 전설(임수정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전생의 모든 기억을 떠올린 한세주는 소멸을 앞둔 유진오를 자신의 소설 속에 봉인하고자 했다. 유진오가 환생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소멸을 막으려 한 것. 유진오는 한세주의 바람대로, 한세주의 소설 속에서 신율의 모습으로 서휘영-전설(임수정 분)과 함께 했다. 현생의 한세주-전설 역시 소중한 벗 신율과 유진오를 떠올리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한세주로서, 서휘영으로서 시청자와 마주한 배우 유아인 역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때론 낭만적이고, 때론 아팠던 ‘시카고 타자기’ 속 유아인을 기억해보자. 유아인이 시청자에게 남긴 기억 첫 번째는 ‘낭만’이다. 유아인은 극중 2017년 스타작가 한세주, 1930년 경성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서휘영 두 인물을 연기했다. 그 중 서휘영은 조국을 잃은 슬픔에 고뇌했던 청년의 모습을, 해방된 조선을 꿈꾸는 청년의 감성을 오롯이 보여줬다. 헝클어진 머리, 안경 너머 나른한 눈빛,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가락, 여유로운 듯 비밀 품은 표정. 겉모습은 물론 말투, 표정, 눈빛 등 유아인의 모든 것이 아프지만 낭만적이었던 1930년과 조화를 이뤘다. 유아인이 시청자에게 남긴 기억 두 번째는 ‘아픔’이다. 2017년 한세주는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스타작가.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스승에게 처절한 배신감을 맛봤다. 갑자기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유아인은 자신감, 예민함 등 폭넓은 표현으로 예술가 한세주의 아픔을 그려냈다. 1930년 서휘영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조국을 잃은 슬픔, 신분을 숨긴 채 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지, 그 와중에 죽어나간 동지들. 모든 것이 아픔이었다. 그러나 서휘영에게 가장 큰 아픔은 사랑하는 여인 류수현에게 마음을 드러내지도, 그녀를 지켜주지도 못한 것이다. 유아인은 특유의 섬세한 감정으로, 상황에 따른 서휘영의 아픔을 결을 달리해 표현했다. 유아인이 시청자에게 남긴 기억 세 번째는 ‘로맨스’이다. 유아인은 ‘시카고 타자기’에서 전생과 현생, 두 번의 사랑을 보여줬다. 1930년 서휘영의 사랑은 슬프고 아팠다. 반면 2017년 한세주의 사랑은 애틋했고, 한편으로는 귀여웠다. 그간 선이 굵은 캐릭터, 연기로 사랑을 받았던 유아인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로맨스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방영 내내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귀여운 질투를 하거나 허둥지둥 당황하는 연기까지 유아인만의 색깔로 살려내며, 시청자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아인의 다음 로맨스 연기가 궁금하다’는 기대감을 이끌어 냈다. 드라마의 처음과 끝에는 까칠한 듯 예민한 모습, 여유 속에 낭만과 아픔을 품은 청춘의 모습, 달콤하고 애틋한 사랑의 감정, 가슴이 아릿한 남자들의 우정까지 모두 담아낸 배우 유아인이 있다. ‘시카고 타자기’ 속 배우 유아인이 남긴 기억은, 한동안 깊은 여운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일곱 도둑 수호신, 병해대사와 ‘꺽정불’… 야사의 보고 칠장사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일곱 도둑 수호신, 병해대사와 ‘꺽정불’… 야사의 보고 칠장사

    칠장사라는 절 이름을 일찍부터 알았던 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듯 ‘임꺽정’ 때문이었다.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은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지만 칠장사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숨소리가 잦아들곤 한다. 작중 임꺽정의 스승인 갖바치가 훗날 병해 대사가 되어 수도하던 절이 바로 경기도 안성 칠장사다. 신을 짓는 갖바치는 신분이 가장 낮은 천민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임꺽정도 벽초가 생불(生佛)로 그려 놓은 병해 대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소설 ‘허생전’도 안성을 무대로 삼았다. 서울 남산 아래 오막살이에 살고 있던 허생원은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려 나가던 아내는 어느 날 참다 못해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 때문에 읽느냐”고 대든다. 그렇게 허생원이 장안의 갑부 변씨에게서 빌린 1만냥을 들고 내려간 곳이 안성장이었다. 허생원은 그곳에서 삼남에서 올라오는 과일을 매점매석해 얻은 열 배의 이익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준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장길산’에서도 안성은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임꺽정과 마찬가지로 실존인물인 장길산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광대의 손에 성장한다. 소설 속에서 장길산은 흉년이 들어 창기로 팔려간 묘옥이 재인마을 총대의 구원을 받은 뒤 연분을 맺게 되는데, 두 사람이 머물던 재인마을이 바로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안성 청룡사 주변이었다. 오늘날 안성시의 중심은 시청이 있는 서부권이지만 과거의 지역 중심은 동부권의 죽산이었다. 죽산에는 신라시대 처음 쌓은 죽주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죽산은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잇는 간선 도로에 속했다. 개경이나 한양의 물산이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한강을 건넌 뒤 광주와 용인을 거쳐 죽산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은 죽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는 충주, 남쪽으로는 청주로 이어졌다. 지금도 죽산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다. 안성의 중심이 서쪽으로 옮겨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다. 충청도와 경기도 서부 평야지대의 농업 생산이 급증함에 따라 안성장이 한양으로 가는 물산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 안성은 대구, 전주와 함께 전국 3대 장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니 연암이 허생원으로 하여금 안성장으로 달려가게 한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소설적 장치였을 것이다. 구경꾼을 모아야 먹고살 수 있는 남사당패 역시 시장판을 근거지로 삼을 수밖에 없다. 청룡사의 존재가 아니었어도 안성에 남사당 마을이 들어서는 것은 필연이었다. 장길산은 숙종(1661~1720 재위)시대 인물이다. 연암(1737~1805)도 조선 후기를 살았다. 하지만 임꺽정(?~1562)은 조선 중기 인물이다. 당시의 중심은 죽산이었다. 바로 칠장사가 있는 곳이다. 오늘날 경부선을 중심으로 보면 한편으로 비켜 선 위치지만, 임꺽정 시대에도 죽산은 한반도의 남북을 잇는 중심축이었다. 칠장사는 결코 한적한 절일 수 없었다. 안성장에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야겠지만, 죽산은 중부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편하다. 일죽나들목에서 안성 시내 쪽으로 달리다 죽산 면소재지를 지나 왼쪽으로 진천으로 가는 옛 국도로 갈아타야 한다. 여기서 4.6㎞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4.5㎞를 달리면 차령산맥 줄기 초입에 칠장사가 나타난다. 칠장사 뒷산은 칠현산(七賢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소설 ‘임꺽정’에는 칠장사의 역사도 담겨 있다. 임꺽정과 의형제를 맺은 박유복이 칠장사로 병해 대사를 찾아가는 대목이다. 어쩌다 동행하게 된 죽산 양반에게 절의 내력을 설명하는 상좌의 목소리를 곁에서 듣고는 이렇게 옮겼다.‘이것은 고려 혜소 국사의 비올시다. 혜소 스님께서 도둑눔 일곱을 감화시키셔서 정도(正道)로 끌어들이셨는데, 그 도둑눔 일곱이 모두 신장(神將)이 되어 이 절을 수호합니다. 세상에서는 혜소 스님이 이 절을 개창하신 줄 말하지만 삼한고찰(三韓古刹)을 중창하신 것이외다.…이것은 나옹 스님이 심으신 반송이올시다. 이 반송의 나이가 지금 육백 살이 넘었을 것이외다.’ 상좌의 말처럼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후 혜소 국사 정현이 고려 현종 5년(1014) 왕명을 받아 크게 중창했다. 혜소 국사가 수도할 때 찾아온 7명의 악인(惡人)을 교화하니 모두 도(道)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 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도 전한다. 일곱 도둑은 훗날 임꺽정과 의형제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남북 물산의 소통로였으니 ‘떼도둑’도 기승을 부렸을 것이다.칠장사는 두 개의 건물군으로 나눠져 있다.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이 있는 중심권역이 보이고, 다시 서남쪽 언덕으로 돌아가면 혜소 국사 비각과 나한전, 삼성각이 한데 모여 있다. 비각 주변의 건물들은 최근 세워진 것들이다. 고려 문종 14년(1060) 조성된 혜소 국사 비각에는 이런 설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절에 들이닥쳤을 때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잘못을 꾸짖자, 칼로 내리치니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전설처럼 비석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크게 쪼개진 모습이다. 혜소 국사 비각과 나란히 서 있는 나한전은 절집으로는 드물게 정(丁)자 형태다. 얼마 전까지 숙종 29년(1703) 탄명 스님이 지었다는 한 칸짜리 나한전이 있었으나 최근 새로 지었다. 나한전 내부에는 삼존불 아래 일곱 나한이 모셔져 있다. 바로 혜소 국사가 제도한 이후 일곱 현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혜소와 일곱 도둑 이야기’가 신앙의 대상으로 성격이 강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옹 스님이 심으신 소나무’도 주변에 있다.임꺽정의 흔적은 대웅전 권역 맨 아래 새로 지은 극락전에서 볼 수 있다. 임꺽정이 병해 대사의 극락왕생을 빌며 모셨다는 ‘꺽정불’이다. 작은 목조아미타불의 바닥에는 ‘봉안 임꺽정’(奉安 林巨正)이라는 묵서(墨書)도 남아 있다. 얼마 전 충북대 연구팀이 방사성 연대측정법으로 불상을 조사한 결과 ‘1540년 ±100년’이라는 연대가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임꺽정이 발원한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임꺽정과 같은 시대 조성됐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일곱 도둑과 임꺽정 설화 말고도 칠장사에는 궁예와 어사 박문수에 얽힌 전설도 있다. 그 흔적을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절 주변을 잘 정비해 놓았다. 하지만 칠장사는 무형유산인 설화의 보물단지에 그치지 않는 유형유산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절 들머리의 철당간은 당간을 세우는 지주만 눈에 익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시대 당간은 칠장사 말고 충북 청주 용두사 터와 충남 공주 갑사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웅전과 천왕문의 소조사천왕상도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들이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만 볼 수 있지만 오불회 괘불탱은 국보, 삼불회 괘불탱은 보물로 지정됐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상조 ‘낡은 가방’ 눈길…옛 제자 “가방이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했다”

    김상조 ‘낡은 가방’ 눈길…옛 제자 “가방이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2일 김 후보자의 ‘낡은 가방’이 눈길을 끌었다.이날 인사청문회장에 김 후보자는 낡은 갈색 가죽 가방을 가지고 왔다. 손잡이 부분은 가죽이 닳아 벗겨졌고, 가방 전체에 흠집이 가득했다. 옆면과 모서리도 내부 흰색 천이 드러난 상태였다. 오랜 세월 한 가방을 사용했음을 짐작케 하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이 가방이 그의 ‘옛 제자’라고 밝힌 이가 말했던 가방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했다. 지난 1일 ‘15년 전 김상조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는 한 네티즌은 “수많은 제자 중 하나일테니 교수님은 기억을 못하실 가능성이 크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고 가치관에도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라며 김 후보자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제자는 김 후보자에 대해 ‘정말 물욕은 없는 분’이라며 “당시에는 다 떨어진 가방을 들고 다니셨다. 대학원 때부터 쓰시던 거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저녁 늦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전철 막차 시간에 나가면 종종 김 후보자와 마주쳤다면서 ‘가방이 진짜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한 걸 들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그가 김 후보자에게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가방 꼴이 그게 뭐냐’고 말하자 김 후보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면서 ‘가방은 그냥 대학원 때부터 쓰던 거라 편해서 쓴다. 이 가방이 뭐 어떻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 제자는 “카드 신고액 0원이라는 걸로 이렇게 사람들이 의심할 줄 몰랐다”면서 “옆에서 잠깐만 지켜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 알 거다. 생활 내에서 돈 쓸 일이 없는 양반”이라고 회상했다.한편 이와 관련해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신용카드를 전혀 안쓰는 것이 아니다”라며 “연말정산 프로그램이 카드 사용액이 급여의 25% 넘을 때만 입력되게 돼 있는데 한참 카드 사용액이 기준에 미달해 애초부터 ‘0’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저희 부부의 연간 카드 사용액은 2000만원 정도이며 은행 자동이체나 인터넷뱅킹으로 지출하는 생활비도 많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근에 와서는 돈 쓸 틈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인터뷰 플러스]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도심 대중 깨우쳐 온 혜거 스님, 시대의 고민에 답하다 30년 가까이 도심에서 불경과 참선을 가르치며 대중의 마음을 열어 온 금강선원(서울 강남구 개포동, www.geumgang.org) 주지 혜거 스님은 “연꽃이 있는 곳을 지나간 물은 깨끗해진다. 또 연꽃은 인격의 완성으로, 성불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혜거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의 최고 스님으로 추앙받는 탄허 스님의 상좌로 그 뜻을 이어받아 경전공부와 참선을 통한 수행과 실천을 강조해 왔다. “종교는 세상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라며 사회와 단절된 수행을 경계하는 스님의 말씀에서 그 뜻이 묻어났다. 혜거 스님에게 우리 시대의 질문에 대한 말씀을 구했다. 대담 기록으로 그 지혜를 지면에 옮긴다.→도심에서 경전과 참선 대중화에 앞장서 오셨는데,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선이란 무심(無心)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무심이란 사람의 근본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마음작용이 자기 위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 마음으로 하나 되는 것, 그것이 선입니다. 내가 먹은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양보를 한다고 해도 상대방과 마찰이 생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 마음을 내려놓는 것, 욕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요. -우리는 욕심과 원을 혼동합니다. 욕심은 버리고 원은 더 크게 가져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는 것까지 전부 욕심으로 살아요. 욕심이 빠져버리면 살 방법이 없지요. 그런데 욕심을 갖다 보니까 업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업이 되는 욕심을 버리고 원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즐겁게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욕심이 일어날 때 선으로써 내 마음을 버리고 복이 되는 원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과거보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상대적인 비교를 버려야 합니다. 중국에 머물 때, 어떤 학생이 굉장히 좋은 차를 타고 통학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수행원들이 가방까지 챙겨주고, 매일 같이 그렇게 다니더군요. 그런 모습에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중국 학생들을 봤습니다. 남을 쳐다보지 않는 거죠. 우리가 남을 너무 의식을 하니까 상대적인 박탈감, 빈곤감이 들어요. 남을 보기보다 나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데 우리는 자꾸 남과 비교를 해요. →그러한 비교 때문인지 재물 욕심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문제가 됩니다. 탐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것이 사실 종교가 할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불교나 기독교를 막론하고 종교가 잘못된 기복신앙을 가르쳤어요. 세계가 다 그랬습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고 하면 기도를 해야 합니까 훈련을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의 종교는 기도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복을 비는 종교는 존재해선 안 돼요. 수행하고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이 인격으로 이어지고,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종교는 미래엔 유지되지 않을 겁니다. 욕심을 가지고 깨달음을 찾으면 깨달음의 문턱도 구경 못 합니다. →정치와 종교는 대중의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도 사회에 대해서 배척하는 종교관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교리니 뭐니 다 소용없어요. 상대를 배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종교 내 종교를 비교하고 차별하는데, 신자와 비신자를 차별하려면 종교라고 나서지도 말아야 합니다. 차별 없이 품어야 종교 아닙니까. 정치인들도 그래요. 상대방의 인격을 그대로 존중하되, 의견이 다른 부분에 있어서 뜻하는 바와 의사를 밝혀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잖습니까. 주장은 주장대로, 존중은 존중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먼저 보여야 세상이 그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공격하는 것이 깡패보다 더하니 안타까운 일이죠. →인간의 목표를 ‘행복’이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스님께서는 생각하시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행복이 모든 사람의 행복과 같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바르게 행복하면 다른 사람도 모두 다 행복하거든요. 그러려면 부정과 결탁되지 않은 행복이어야 합니다. 정당하게 추구하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행복할 때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러나 부정한 행복이라면 그것은 한 사람만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나만 행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신발이라도 하나 옮겨주겠다는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청소년, 청년 세대가 힘든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기에 꿈이 없어져 버리면 성공은 불가능합니다. 꿈을 이루고자 마음먹는 순간 공부도 잘되고 건강도 좋아지고 모든 것이 이뤄집니다. 꿈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어른들도 역할을 해야 해요. 바르게 성공하는 모습을 청소년들 젊은이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작은 위인들을 발굴해 내야 합니다. 부정적인 모습보다 죽도록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례들이 나와야 청소년들이 꿈을 가질 수 있어요. →스승이신 탄허 스님의 뜻을 이어 ‘화엄경’을 다시 정리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탄허 스님께서 국문으로 정리하신 화엄경이 이제 3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언어가 30년 지나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스님께서 미처 손 안 대셨던 부분을 조금 보완하고 정리해서 책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화엄경소론찬요’ 1, 2권 책이 나왔고 금년에 두 권이 나옵니다. 앞으로 20편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이 화엄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중생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등이 아주 구체적으로 되어있는 것이 화엄경이지요. 그게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되어 있던지,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학문은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부분이 수없이 많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탐방 플러스] ‘敬’으로 빛나는 퇴계 종손… ‘살아 있는 교과서’

    [탐방 플러스] ‘敬’으로 빛나는 퇴계 종손… ‘살아 있는 교과서’

    21세기 퇴계 이황의 철학사상과 실천적 삶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86세 이근필 옹이다. 이 옹은 퇴계 이황의 16대 종손이다. 그런데 이 옹은 노환으로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청년이 노년이 된 때문이다. ‘만물은 유전하고 변화한다’는 명제를 실감케 한다.하지만 늘 한결같은 분이 계시다. 흔들림의 변화도 없다. 퇴계 종택의 이 옹이다. 이 옹의 퇴계 이황 할아버지가 남긴 유지를 정성과 성심을 다해 봉양하는 정행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무릎 꿇는 퇴계 종손’, 이미 오래전부터 세간에 알려졌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무릎 꿇는 퇴계 종손’은 변함이 없다.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는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따지지 않는다. 퇴계 종택을 찾는 사람을 맞이할 때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무릎을 꿇는다’. 평생을 지극정성으로 변함없는 한길을 걸었다. 종손으로 산다는 것. 종손은 한 해 서른 번이 넘을 정도의 제사와 수많은 대소사를 치러야 한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쉬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옹은 상상 못 할 피로와 가볍지 않은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옹은 예(禮)를 다해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경(敬)의 마음으로 인간존중·인간사랑을 실천했다. 그렇다 보니 그 예는 무릎 꿇음이 됐고, 경은 겸손이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감동을 일으켰다.86세 퇴계종손의 무릎 꿇는 가르침 퇴계 이황은 성리학적 삶의 표상이다. 그분은 경(敬)으로써 명덕(明德)한 성리철학을 삶에 녹여내는 지행합일의 실천적 삶을 사셨다. 그래서인지 퇴계 이황의 유전자를 받은 16대 종손 이 옹 역시 ‘무릎 꿇는 삶’으로 ‘경’을 실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퇴계 종택을 “퇴계 선생의 아주 검소한 서당”이라고 묘사했다. 퇴계 종택이 500년 전 이황 선생이 사셨던 오래된 옛집이 아니란 뜻이다. 퇴계 종택은 이황 당시에도 그랬듯이 지금에도 여전히 ‘배움의 학교’란 설명이다. ‘서당’은 그래서 훈장만 바뀌었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서당이다. 예전에는 퇴계 이황이었고, 21세기 오늘에는 16대 종손 이 옹이다. 사람은 오고 갔지만 정신과 삶은 그대로이다. ‘무릎 꿇고 공손하게 말하는 86세 종손의 삶’은 그래서 현장이고, 실제상황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책, 교과서’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이 빛나는 이유다.퇴계 종택은 살아 있는 책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퇴계 종택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 이충호가 1926년~1929년에 새로 지었다. 원래의 가옥은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모두 타 없어졌다.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택은 야산을 등지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동남방으로 앉았다. 이 종택은 5칸 솟을대문과 ‘ㅁ’자형 정침이 있다. 정침이란 주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집과 방을 말한다. 오른쪽에 5칸 솟을 대문과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 있다. 그 뒤에 솟을삼문과 사당이 있다. 본채인 ‘ㅁ’자형 정침은 사랑마당을 건너 사랑채와 마주한다. 그 뒤가 안채이다. 이 종택은 근대에 지어졌음에도 사대부가의 공간영역을 구비했다. 대종가로서의 품격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옛 살림살이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퇴계 종택 앞에 논이 있어 씨 뿌리고 거두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보여 준다.도산서원, 퇴계의 성리학적 자연관 담아 종택에서 10여분 거리에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건립했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과 퇴계 사후에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으로 나눌 수 있다. 앞쪽이 도산서당이고 그 뒤편이 도산서원이다. 도산서당은 3칸밖에 안되는 작은 규모의 남향 건물이다. 서쪽 1칸은 골방이 딸린 부엌이고, 중앙의 온돌방 1칸은 퇴계가 거처하던 완락재이며, 동쪽의 대청 1칸은 마루로 된 암서헌이다. 퇴계는 이곳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퇴계성리학적 자연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삼년상을 마치자 그의 제자들과 온 고을 선비들이 1574년 봄 “도산은 선생이 도를 강론하시던 곳이니 서원이 없을 수 없다”해서 서당 뒤의 두어 걸음 나가 조성됐다고 한다. 그 이듬해인 1575년 8월 낙성과 함께 선조로부터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576년 2월에 사당을 준공해 퇴계 선생의 신위를 모셨다. 권기창 안동대 교수는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일한 현장”이라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선비문화수련원, ‘오늘의 선비’ 양성 목표 도산서원 부설기관으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 종택 왼쪽 위에 자리하고 있다. 2001년 11월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설립됐다. 개개인의 바른 인성과 선진 도덕사회 구현, 지와 덕을 겸비한 인재로서 오늘의 선비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련원은 150~200명 숙박이 가능하다. 제1원사와 제2원사로 구성돼 있다. 제1원사와 제2원사는 강의실, 실습실, 토의실,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내식당은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수련원은 “선비정신은 21세기 문화의 시대, 우리의 자랑스런 국민정신이다”를 모토로 ▲나보다 남을 위하는 겸손과 배려의 박기후인의 자세 ▲자기인격을 닦고 나서 사회에 기여하는 수기치인의 삶 ▲공동체가 어려울 때 자신을 희생하는 견위수명의 실행을 실천덕목으로 삼고 있다. 권 교수는 “퇴계 이황 선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성리학자로 학문연구와 유교문화의 이념을 몸소 실천하신 세계적인 인물”이라며 “각박하게 변하는 지금의 이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 중의 하나가 퇴계 선생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안동은 한국인본정신의 본향이고, 전통문화의 중심지”라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면서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장 혁신적인 곳”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바로 안동에 있다는 설명이다. 권용진 객원기자 spangle007@seoul.co.kr퇴계 이황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은 한국정신문화 원류의 한 축인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이다. 그는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나 조선 지성사에서 사림의 성장기를 살아갔다. 당시 연속된 사화는 사림의 학문에 치열성을 더함으로써 사림의 세를 전국적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퇴계의 학문은 한국역사를 통해 영남을 배경으로 한 주리적(主理的)인 퇴계학파를 형성했다. 퇴계의 학풍을 따른 학자는 당대의 류성룡·김성일 등을 위시한 260여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일본유학의 기몬학파와 구마모토학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개화기 정신적 지도자에게서도 크게 존숭을 받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3국의 도의철학의 건설자이며 실천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고향 사람들이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낙성하여 도산서원의 사액을 받았다. 그 이듬해 2월에 위패를 모셨고, 11월에는 문순(文純)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위패가 있는 도산서원은 제5공화국 때 크게 보수 증축되어 우리나라 유림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으니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으니

    초여름이 되면서 여러 꽃들이 만발하다. 특히 장미가 화려하다. 여섯 살 연상의 이혼녀였던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을 하지만 황위를 이을 후계자를 낳지 못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조세핀은 장미 향기가 가득한 말메종 성에서 살지만 가시울타리에 갇힌 위리안치의 유배인 같은 신세였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를 가자 조세핀은 그와 함께 가고자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조세핀은 디프테리아에 걸려 눈을 감는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말메종을 찾아와 죽은 그녀를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나폴레옹은 2차 유배지였던 세인트헬레나섬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보며 운명을 한다. 화려한 장미 뒤에 이런 슬픈 이야기가 있다. 권력은 화려해 보이지만 장미가 필 때와 질 때가 다르듯 그 종말은 대개 슬프고 처참하기까지 하다. 황제의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사람의 좋은 일은 10일을 넘지 못하고, 붉은 꽃의 아름다움도 10일을 넘지 못하는데, 달도 차면 기우니 권력이 좋다한들 10년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장미 외에 작약이 곱게 눈에 띈다. 작약은 꽃이 아름다워 옛날부터 관상용으로 널리 아낌을 받아 왔다. 모란이 꽃의 왕이라면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 불렸다. 그러나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는 말처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 작약을 우리말로는 함박꽃이라고 부른다. 작약(芍藥)과는 관련 없지만, 크게 소리 지르고 뛰며 기뻐한다고 할 때 환호작약(歡呼雀躍)한다고 한다. 요즈음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 그래서 환호작약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어 다만 함박꽃처럼 함박웃음만은 아끼지 않고 크게 지어 본다. 작약이 곱게 핀 요즈음 특히 어울리는 웃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가장 듣기 좋았던 소식은 스승의 날에 대통령이 행한 세월호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산성을 사수하다가 청나라에 함락되기 직전 남문에 올라가 분신 자결한 23살의 김익겸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과 비슷하게 어렸다. 김익겸은 후일 영의정에 추증되는데 이렇게 예우를 하자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둘은 자부심으로 크는데, 특히 김만중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쓰는 등 큰일을 한다. 꽃다운 나이에 순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하고 감동적이었음에도 그동안 국가가 예우 문제에 왜 그렇게 인색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답답함과 억울함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으니 어찌 함박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승의 날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이 계셨는데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하면서 서울엘랑 가지를 말라고 간청을 했더니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가지 않으셨다는 원로 가수 이미자씨가 전해 주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5월 스승의 꽃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해당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혜원 절간 마당에 꽃이 곱게 피었지만 다른 꽃들에 가려져 아무도 알아보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을 보며 황주에서 유배살이 하던 소동파가 자신의 신세와 닮았다고 탄식했던 꽃이 바로 해당화이기도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이 스승의 길이기에 스승의 꽃이야말로 해당화가 아닌가 여겨진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김춘수의 시 ‘꽃’처럼 여러 가지 꽃들이 제각각 의미 있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모두에게 참 좋은 시간들이다.
  • ‘쌈 마이웨이’ 박서준, 태권도 그만 둔 이유 “잔인한 과거”

    ‘쌈 마이웨이’ 박서준, 태권도 그만 둔 이유 “잔인한 과거”

    “나한테 너무 잔인한거 아니에요?” ‘쌈 마이웨이’ 박서준이 태권도를 그만둔 이유가 오늘(30일) 밤, 드디어 밝혀진다. KBS 2TV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연출 이나정, 극본 임상춘, 제작 팬엔터테인먼트)가 태권도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던 고동만(박서준)의 과거 사진을 공개했다. 대기실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경기장 위에서 무릎 꿇은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30일 밤, 태권도 하나만 보고 달려왔던 동만이 꿈을 포기하게 된 사연이 밝혀질 예정. 소개팅에서 눈치 없는 해맑음의 끝판을 선보이던 중, 운동 이야기가 나오자 “아뇨. 운동 안 했어요”라며 급 어두워진 동만. ‘천방고 옹박’이란 타이틀을 잊은 듯 동만은 과거를 부인했고, 사범이라도 하라는 아버지 형식(손병호)의 말에 “아빠. 인터넷에 내 이름 치면, 아직도 2007년 11월 3일 기사가 떠. 누가 나한테 배우겠어?”라며 10년 전,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더했다. 무엇보다 “이가 갈려서가 아니라! 하고 싶을까봐. 환장하게 하고 싶을까봐, 기웃대기도 싫다”며 울컥한 동만은 그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태권도를 그만두게 됐음을 짐작게 했다. 또한, 사내 방송을 하게 된 최애라(김지원)에게 “해보고 싶은 거 해보니까 그렇게 좋아?”라고 묻더니, “죽지”라는 대답에 착잡해진 얼굴은 안쓰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스승 황장호(김성오)의 말처럼 태권도가 아니면, 격투기를 해서라도 못다핀 꿈을 이뤄보고 싶지만, “나 울 엄마 집 사주고 싶고요. 울 아빠 똥차 바꿔주고 싶어요. 그게 다 내 맘인데, 다 돈이잖아요”라는 짠한 이유로 “나만 좋자고, 나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될 거 같으니까”라며 현실을 직시한 동만. 하지만 지난 3회분에서 장호를 따라간 격투기 경기에서 김탁수(김건우)를 보자 과거의 조각을 떠올리며 격분한 동만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연에 또 한 번 궁금증을 자아냈다. 관계자는 “오늘(30일) 밤, 어린 동만에게 잔인했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권도 유망주였던 동만이 꿈을 포기하고 ‘나 하나쯤 꿈 없어도 세상 잘 돌아가더라’며 차가운 현실에 물들게 된 배경과 지난 3회에서 등장한 탁수와의 관계도 담길 예정”이라며 “10년 전, 동만이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꿈을 잃은 동만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많은 응원과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쌈, 마이웨이’ 4회는 오늘 밤 10시 KBS 2TV에서 방송된다. 사진제공= 팬엔터테인먼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하준 “시련과 경험은 더없는 스승, 변함 없는 팬들에 감사”

    서하준 “시련과 경험은 더없는 스승, 변함 없는 팬들에 감사”

    배우 서하준이 근황을 전해 화제다. 30일 서하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난해 MBC 드라마 ‘옥중화’ 출연 이후 공백기를 갖고 있는 그는 “국적을 불문하고 안부와 응원의 한 마디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하준은 “요즘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순간순간을 가슴에 새기며 배움의 시간을 갖고 있고, 여러분 자리의 큰 의미를 또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서하준은 현재의 공백기에 대해 “배우가 되어감에 시련과 경험은 더없는 스승이라고 했던가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주신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금의 버팀목에 대한 감사를 꼭 전하겠습니다”라며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향후 작품 활동 가능성도 내비쳤다. 다음은 서하준 인스타그램 전문. 안녕하세요. 연기자 서하준 입니다^^ 저에게 팬분들 뿐만 아니라 국적를 불문하고 안부와 응원의 한 마디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에 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한 분 한 분께 답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수 없어 이렇게 다함께 할수있는 공간에 글을 적어봅니다. 앞으로의 이 글들을 하나 하나 번역(translate)하여 올리지 못해 먼저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제일 먼저 드리고 싶은 말은 단하나. 감사하다는 말을 제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한 선함위의 선원들은 그 어느 배의 선원들보다 단단하고 굳건하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팬 여러분들과 전 추억이 많은것 같습니다. 이 또한 저의 복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문득 듭니다. 요즘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순간순간을 가슴에 새기며 배움의 시간을 가지고 있고. 여러분의 자리의 큰 의미를 또 다시한번 되세기는 시간이며, 사랑하는 제 가족들도 돌보고, 그동안 제 자신에게 없었던 여유도 하루하루의 일상에 첨가해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가 되어감에 시련과 경험은 더없는 스승이라고 했던가요.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간이 절 더욱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또한 저에게 필요한 시간이기에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곧 좋은 작품과 좋은 생으로 여러분들을 만나 조만간 인사드릴테고 더욱 성장되어있고 여러분에게 더욱 자랑스러운, 제 옆에서 끝까지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상상도 못할 큰 힘이 되어주신 것에 후회되시지 않는 연기자가 되어 있길 약속드립니다. 그땐 제가 지금 저보다 더 힘들고 더 지치실 여러분들의 팬이 되어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주신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금의 버팀목에 대한 감사를 꼭 전하겠습니다. 다들 보고싶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지금 이순간 이날들을 추억하며 포옹할수 있는 그런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그날까지 다들 행복만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I didnt know my own strength. 사진제공=연합뉴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비디오스타’ 이재은 “3년간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김숙 눈물 범벅

    ‘비디오스타’ 이재은 “3년간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김숙 눈물 범벅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배우 이재은이 3년간의 칩거 생활을 벗어나 다시 도전하게 된 사연을 밝힌다. 30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47회는 ‘나는 나와 연애한다’ 특집으로 외로움에 밤 지새우는 연예계 대표 솔로 스타, 이재은, 장돈민, 홍진호, 곽현화, 신보라가 출연한다. 이번 녹화에서 배우 이재은은 심적으로 힘들었던 지난 시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재은은 “3년간 집 밖을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있었다. 말 할 사람이 없어 항상 강아지와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내 모습에 눈물이 났다. 너무 외로웠다”며 당시 심정을 전했다. 이재은의 눈물에 절친 김숙 역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는 후문. 이어 이재은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지금 내 옆에 필요한건 엄마인것 같아서 엄마를 모시고 살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김숙은 “이제는 재은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오랜 친구의 행복을 빌어줬다. 1986년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재은은 최근 이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 스승으로 처음 만난 9살 연상의 안무가 남편과 올해 초 결혼 11년 만에 결혼 생활 종지부를 찍었다. 이재은, 장동민, 홍진호, 곽현화신보라, 화려한 싱글 5인이 함께 하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는 30일 화요일 저녁 8시 30분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알파고 ‘범용 AI’ 입증… 전문가 돕는 놀라운 도구로

    알파고 ‘범용 AI’ 입증… 전문가 돕는 놀라운 도구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2.0은 홀로 배워 깨우쳤다. 인간이 만든 기보를 참고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아 일취월장했다는 뜻이다. 다만 지난해 이세돌 9단을 이기던 시절에 비해 인간의 손길에서 더 자유로워졌음에도 이번 커제 9단을 연거푸 꺾는 알파고에게서 좀더 인간과 비슷한 면모가 포착된다고 바둑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지난해 대국에서 알파고가 일정한 시차대로 기계적으로 수를 뒀다면, 이번에는 쉬운 수는 빠르게, 어려운 수는 숙고한 뒤 수를 놓는 모습도 포착됐다. 인간 기보를 참고하지 않은 채 알파고끼리 대적하는 형태의 강화학습을 했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알파고를 만든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연구개발(R&D) 책임자인 데이비드 실버 박사는 25일 알파고와 중국 프로기사단의 대국이 펼쳐지고 있는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알파고의 성과를 설명했다. 허사비스는 “인간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난해) 예전 버전의 알파고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실력이 좋아져 범용 AI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총평했다. 그가 말한 ‘범용 AI’란 사전 지식 없이도 다양한 지식을 유연하게 익혀 고급 지적 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AI다. 이 단계가 되면 전문가가 수행하고 있지만, 연산 능력이 좋을수록 업무 수행 효율성이 높아지는 거의 전 분야에서 AI 활용처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허사비스는 “범용 AI는 과학자, 의사, 간호사에게 놀라운 도구”라며 “질병을 진단·치료하고, 신약을 개발하고, 단백질 접힘 현상 같은 복잡한 연구를 할 때 AI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강력한 학습능력을 무기 삼아 AI가 인간의 윤리의식과 같은 고차원 주제를 배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허사비스는 “아직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라 당장 검토하기 이르다”고 답했다. 그는 “(윤리·판단의 문제를 AI가 다룰 수 있을지는) 언젠가 논의해야 할 흥미로운 사안”이라며 웃었다. 알파고가 지난해 이세돌과 겨룰 때보다 10배 이상 성능이 개선됐고, 현재 세계 최정상 프로기사들보다 3~7수 앞서는 실력임이 대국이 거듭될수록 드러나고 있지만 허사비스는 알파고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알파고는 아직 바둑밖에 둘 줄 모른다”면서 “‘바둑을 둬서 이겨라’와 같은 목적은 인간이 제시한다”고 말했다. 기억, 상상, 목표 설정,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 등은 AI에게 여전히 취약한 난제라는 것이다. 물론 현 단계의 알파고 능력으로도 응용할 부분은 충분히 많다. 딥마인드는 알파고 기술을 의료 진단, 에너지 최적화 등의 분야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딥마인드 측은 “구글의 대규모 전산 설비인 데이터 센터 열기를 식히는 데 필요한 전력을 AI 최적화를 통해 40%나 절약했다”고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단독] “굶주린 동포 지원은 도리” 햇볕정책 지지...“돈 빼돌리는 건 공동체 배신” 부유층 비판

    [단독] “굶주린 동포 지원은 도리” 햇볕정책 지지...“돈 빼돌리는 건 공동체 배신” 부유층 비판

    “내 삶은 DJ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처럼 위대한 인간을 내 나이 스무 살부터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분이 계셔서 나는 행복했고 충실했다.”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009년 펴낸 ‘식(食)전쟁-한국의 길’의 한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부쳐’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글에는 이 후보자가 김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후보자의 정신적 스승이자 삶의 ‘길라잡이’였던 셈이다. 서울신문은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3일 이 후보자가 펴낸 저서 7권을 분석해 봤다. 이 후보자는 남북 관계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2009년 당시 전년부터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식전쟁에서 “북한은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고, 우리 농민들은 쌀값 안정과 대북 지원을 요구하며 몇 개월째 아우성”이라면서 옥수수를 수입해 북한에 주겠다고 발표한 이명박 정부더러 ‘청개구리 정부’라고 했다. 또 “굶주리는 동포에게는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는 것이 도리이며 상식”이라며 “어느 경우에도 북한에 쌀을 그냥 주기 싫다는 것도 또 다른 이념 과잉”이라고 강조했다.주한 미군에 대해선 엄격한 편이다. 같은 책에서 효순이 미순이 사건 당시 미국 사병의 무죄 판결을 두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유층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특히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일부 부유층에 대해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후보자는 2000년 펴낸 ‘세상이야기’에서 “1998년 현재 우리나라 일부 부유층의 해외 도피 자산은 2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업계 일부에서는 400억 달러로 보기도 한다”며 “경제 구조를 왜곡시키면서까지 재산을 늘린 장본인들이 경제 위기가 닥치자 돈을 빼돌렸다면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이중 배신”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외환위기를 맞아 일부 부유층은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 논란이 됐다. 교육에 대해선 다양성을 강조한다. 이 후보자는 같은 책에서 고시에 편중된 사회적 풍토를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대는 순수학문을 거의 포기한 고시학원 혹은 취직학원이라는 자기 비판이 나온 지 오래”라고 말했다. 또 “기본적으로 사회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인재가 나와야 한다”며 “수재들이 고시에만 몰리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며 개인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두 남자의 운명…노무현과 문재인, 5월의 기록

    두 남자의 운명…노무현과 문재인, 5월의 기록

    다시 5월이다. 누군가는 손 꼽아 기다렸던 황금연휴의 5월이고, 누군가에게는 뜨겁고도 처절했던 5·18 민주화운동의 5월이다. 또 누군가는 불꽃같은 삶을 스스로 접어야했던 5월이고, 비탄에 빠졌던 한 남자가 새 역사를 쓰기 위해 일어선 5월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었고, 또 대통령이 된 두 남자의 5월을 돌아봤다.● 평온했던 5월 23일 아침, 대한민국이 뒤집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5시 45분경에 사저를 나와 봉화산 등산을 하시던 중 6시 40분 쯤에 봉화산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을 했습니다만 상태가 위독해서 양산 부산대 병원으로 다시 옮겼고 조금 전 9시 30분경 돌아가셨습니다” 남색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담긴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비통함을 애써 담담하게 억누른 어조였지만, 얇고 검은 안경테 너머 눈빛은 단단했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11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렇게 자신의 반평생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 노무현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2002년 당내 경선 2% 지지율로 출발해 제16대 대통령 당선이라는 기적을 일군 노무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인권변호사를 거쳐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허망하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대통령직을 떠나 고향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간 지 1년 3개월 만의 일이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거리의 변호사로, 국회 청문회에서 요즘 말로 ‘전국구 사이다’로 급부상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대통령까지 지낸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은 달랑 171자 메모 형식의 유서 한 장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 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문서는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사용한 컴퓨터에서 발견됐고, 산으로 떠나기 직전인 오전 5시 10분쯤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됐다.유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의 분노는 이명박 정권으로 향했다. 2008년 4월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전국적인 대규모 ‘광우병 촛불집회’ 파동으로 국정운영 동력을 잃은 이명박 정부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게 거액의 뇌물을 줬다는 내용의 ‘박연차 게이트’를 국면 전환 카드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를 위해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도 앞서 소환 조사했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언론을 통해 흘리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런 노 전 대통령 곁을 지킨 사람은 언제나처럼 문재인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민정수석을 포함해 두 번의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임기 말 비서실장을 맡았고 2004년 4월 탄핵심판 당시 노 전 대통령 변론도 맡아 기각을 이끌어냈다. 1982년 법무법인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문 대통령은 2009년 5월 7일간의 국민장 상주로 ‘친구 노무현’의 세상 떠나는 길을 지켰다. 1970~80년대 부산에서 소위 잘 나가던 ‘변호사 노무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이도 문재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문재인과의 첫인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문재인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원래 모르는 사이였지만 1982년 만나자마자 바로 의기투합했다. 그는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서도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았다. 정직하고 유능하며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사건도 많았고 승소율도 높았으며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약속했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울분과 비통함만이 가득했던 봉하마을과 영결식장에서 문 전 실장이 보여준 의연함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참여정부의 퇴장과 함께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경남 양산 자택에서 생활하던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 비보를 들은 즉시 병원으로 달려와 그날부터 봉하마을을 지켰고, 5월 29일 발인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의 영결식, 수원 연화장 화장과 다시 봉화산 정토원 안치까지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국민장 기간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문 대통령도 분골함 안치를 위해 정토원으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는 눈물을 훔쳤다.특히 영결식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헌화 도중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정치보복을 사죄하라”고 고함치자, 현장을 수습한 후 문 전 실장이 이 대통령을 찾아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하는 모습은 ‘인간 문재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훗날 당시의 기억에 대해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 시신 확인에서부터 운명, 서거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 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노무현의 운명, 문재인의 운명 “정치, 하지 마라… 정치인은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2009년 3월 4일 공식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쓴 글의 일부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가까운 참모들에게는 제도권 정치에 나서는 것을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종료와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간 문 전 실장에게도 정치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변호사 문재인이 잘 나가던 ‘변호사 노무현’을 훗날 대통령의 길로 이끌었듯이, 퇴임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은 그를 운명처럼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그(노무현)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 하게 됐다” ● 대통령 문재인, 다시 봉하마을로 간다 총 1342만 3784표, 득표율 41.08%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선. 지난 9일 치러진 대선에서 9년간 보수 정당에 표를 줬던 국민의 선택은 적폐 청산과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한 문재인이었다.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는 557만 938표 앞서며 역대 대선에서 가장 많은 표 차이다. 취임사에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강조한 문 대통령은 연일 소통과 탈 권위, 국민 통합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당장 집무실을 청와대 참모들의 업무 공간인 여민관으로 옮겼고,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분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약속했다.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 인정을 지시하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는 직접 참석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제창을 금지했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제1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이런 문 대통령을 ‘좌파 행보’라며 연일 비판하고 있지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등에서는 지지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른정당의 이혜훈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굉장히 잘한다. 솔직한 말씀으로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 국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지켰던 남자. 변호사 노무현이 사람 사는 세상에 눈 뜨게 하고, 그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노무현의 동지 문재인. 그가 5월 23일, 대통령 문재인으로 다시 봉하마을을 찾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북마크] 로봇이 열반에 든다면…

    [북마크] 로봇이 열반에 든다면…

    이번 주 신간 중 최고 화제작은 인공지능(AI) 시대 인류의 미래상을 그린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일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500만부 넘게 팔린 전작 ‘사피엔스’에 이어 1년 반 만에 국내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책입니다. 책의 표지 뒷장에는 ‘스승 S N 고엔카(1924~2013)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있습니다. 하라리 교수는 초기 불교수행법인 위파사나 구루(영적 스승)인 고엔카에게서 명상을 배웠습니다. 인류의 빅히스토리를 전개하며 ‘빅퀘스천’을 던지는 그의 안식처는 다름 아닌 종교적 영성입니다.첨단과학기술의 발전에 인간이 부유하고 소외되는 시대, 종교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요. 이상헌 세종대 초빙교수의 신간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과학과 불교’(살림)는 AI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드러냅니다. 월간 ‘불교문화’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의 부제는 ‘인공지능과 불멸을 꿈꾸는 시대, 불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 교수는 불교는 여타 다른 종교보다 첨단 과학에 대해 수용적이라고 말합니다. 창조주로서의 신을 상정하지 않는 불교적 관점에서 물성을 지닌 AI도 생명체이며, 몸과 마음이 분리된 초지능적 존재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독점해 온 ‘생각’의 특권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부여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천상의 피조물’의 주인공은 불심을 깨우쳐 득도한 로봇(인명 스님)입니다. 사찰 안내용으로 제작된 로봇이 어느 날부터 법문을 외고 ‘나는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해체하려는 사람들을 보며 홀연히 작동을 멈추고 열반에 듭니다. 이 교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요. 그는 “세계에 대한 궁극적 이해는 지능이나 언어로 도달할 수 없으며, 실재는 지각될 수는 있어도 인식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깨달음은 정보처리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생명, 존재에 대한 인류의 철학과 성찰을 고민하고 있는 종교적 사유의 분투를 엿볼 수 있습니다. ipsofacto@seoul.co.kr
  • 최루탄 매캐하던 그때… 우리에겐 영초 언니가 있었다

    최루탄 매캐하던 그때… 우리에겐 영초 언니가 있었다

    영초 언니/서명숙 지음/문학동네/288쪽/1만 3500원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낸 회고록이다. 자신이 길어올린 젊은 날의 기록이면서도 정작 ‘타이틀 롤’의 영광은 자신의 선배에게 돌리고 있는, 다소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저자가 이야기의 모티브로 삼은 이는 책 제목과 동명인 ‘영초 언니’, 천영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실존인물이다. 고려대 76학번 서명숙에겐 “담배를 처음 소개해 준 ‘72학번 나쁜 언니’였고,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 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을 몸소 보여 준 ‘지식인의 모델’”이었다. 대학 시절 같이 자취를 하고, 함께 영어의 몸이 되는 등 40여년이나 질긴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책은 제주 서귀포에서 ‘서명숙상회’의 딸로 태어난 저자가 여태껏 살아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다만 대학 이전의 이야기들은 많지 않고 영초 언니를 만난 이후, 그러니까 민주화에 헌신하던 대학 시절과 긴급조치 위반으로 복역하던 당시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나어린 여대생들에게 형사들이 가한 협박과 고문들, 여자 사상범들이 수감된 감옥 안의 풍경 등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 과정에 ‘사각형 얼굴의 서울대생’ 이해찬(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시민 등의 유명인들이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아울러 동지이자 피앙세였던 엄주웅과의 시간들도 담담하게 그려 낸다. 형식이야 각기 다른 두 여성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지만 사실 영초 언니는 저자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천영초와 서명숙, 두 여성의 젊은 날에는 유신정권과 긴급조치 발동, 동일방직 노조 똥물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다. 저자가 설명한 출판 동기가 기막히다. 최순실이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면서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라고 외치는 순간 40여년 전 호송차에서 끌려내리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영초 언니가 오버랩되더란다. 저자는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모든 것을 바쳐 가며 지켜낸 민주주의를 욕보이고 제 것인 양 운위하는 족속들이 역겨웠을 것이다. 어쩌면 저자도 특검 사무실의 청소부 아줌마처럼 “염병하네”라며 최순실과 그 부역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자양분이 되어 준 사회를 향해 욕을 해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40년 넘게 담아 뒀던, 치유받지 못한 가슴속 멍울들을 드러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진짜 ‘억울’한 이들은 누구며, 역사가 호명해야 할 이름은 누구인지 말이다. 봄의 끝자락에 들려온 삼다도 소식이 신선하면서도 서늘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사설] 검찰 개혁 신호탄 된 ‘돈 봉투 만찬’

    검찰에 올 것이 와 있다. 이른바 ‘돈 봉투 만찬’으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어지자 어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한 감찰을 전격 지시한 지 하루 만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두 사람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런 완고한 방침에 검찰은 벌집 쑤셔진 모양새다. 두 사람의 공직 신분을 그대로 둔 채 강도 높은 감찰을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분명히 읽힌다. 두 사람은 지난달 21일 최순실 게이트 수사팀과 법무부 간부들을 대동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안 국장은 수사팀 검사들에게, 이 지검장은 검찰국 간부들에게 격려금으로 각각 70만~100만원의 돈 봉투를 건넸다. 이날은 국정 농단 수사를 마무리한 지 불과 나흘 뒤였다. 국정 농단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불구속 기소돼 검찰 부실 수사가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파문이 일자 이들은 오랜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안이한 해명에 비난 여론은 더 거세졌다. 악화 여론은 단순히 부적절한 돈 봉투 회동 때문만이 아니다. 국정 농단 수사 책임자였던 이 지검장이 우 전 수석과 수십 차례나 통화하며 기획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 국장을 하필 그 시점에 만난 발상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의 오만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상황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부실 수사에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부적절한 자리를 가질 엄두를 냈겠는가. 청탁금지법으로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하나도 선물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관행이라는 이유로 돈 봉투를 격려 차원에서 주고받는다는 검찰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납득할 사람은 없다. 검찰만 별천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검찰 개혁 의지는 단호하다. 감찰을 넘어 고강도 검찰 개혁으로 이어질 수순은 명백해 보인다. 검찰이 제 손으로 기름을 부어 준 격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다. 권력 비대증에 걸린 검찰은 보다시피 스스로 반듯이 서 있기조차 힘들어졌다. 뒤따르는 문제가 없지 않겠으나,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물 들어올 때 배는 띄워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 지배구조 파헤친 ‘삼성 저승사자’… 보편적 증세 주장도

    지배구조 파헤친 ‘삼성 저승사자’… 보편적 증세 주장도

    조순·정운찬 애제자 ‘참여형 학자’ 재벌개혁·소액주주 운동 이끌어 ‘재벌 저격수’가 재벌 개혁의 사령탑이 됐다. 17일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상조(55·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평생 재벌 개혁을 위해 연구하고 참여해 온 경제학자다.●삼성 임원보다 지배구조 더 잘 알아 서울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김 후보자는 ‘한국의 케인즈’로 불리며 경제학계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는 조순(전 경제부총리)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운찬(전 국무총리) 전 서울대 총장의 애제자다. 김 후보자는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는 두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참여형 학자’로 살아왔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함께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면서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과 전근대적 지배구조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파헤쳤다. 김 후보자는 재계에서 ‘삼성 임원들보다도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2008년 삼성특검 때에는 특검의 부실 수사와 삼성 측의 해명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삼성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을 다룬 국회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함께 ‘사이다’ 발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도 “삼성그룹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등 삼성에 직격탄을 날리는 발언을 주저 없이 했다. 아울러 “재벌은 이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아가 올 초에는 박영수 특검팀의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이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2013년부터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 등 재벌 기업 사장단들을 대상으로 한 초청강연에 응하며 지배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제로 중간금융지주회사 등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는 재벌 기업들에 조언을 해오고 있다. 삼성그룹 강연 때에는 주최 측이 준비한 500만원의 강연료를 거부하고 평소 본인의 외부 강의료와 똑같이 5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김 후보자와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혁적인 성향으로 재벌과 관료사회, 시민사회를 두루 잘 알고 이론적인 면에서도 탄탄한 보기 드문 인사여서 기대가 크다”면서 “다만 번개처럼 뛰는 적토마처럼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안팎으로 소통하며 개혁과제를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자증세는 비겁한 태도” 비판도 김 후보자는 대기업과 부자 증세로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야당과 진보 진영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겁한 태도’라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재벌·부자 외에 중산층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증세가 있어야 복지재원 마련이 가능한데도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으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한 번도 휴강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당시 문재인 캠프 합류 이유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 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이라고 밝혔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경제 블로그] ‘발전소 셧다운’ 배제된 산업장관 ‘설왕설래’

    [경제 블로그] ‘발전소 셧다운’ 배제된 산업장관 ‘설왕설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30년 이상 된 화력발전소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과 노후 발전소 10기 조기 퇴출 등을 담은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석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경규 환경부 장관에게 관련 업무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발전소 정책을 관장하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장에 없었습니다.이를 놓고 관가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탈원전’, ‘탈석탄’ 등 환경우선 공약을 내세웠던 문 대통령이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에 대한 지시를 주무 장관을 배제한 채 다른 부 장관들에게 한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새 정부의 변화한 정책 패러다임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환경 이슈에서만큼은 경제 논리를 따지지 않고 실천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겁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스승의 날과 미세먼지 대책 등 주제를 감안했을 때 교육부와 환경부 장관이면 됐지 산업부 장관까지 나올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행사 전 사전 협의는 완벽하게 이뤄졌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산업부가 그동안 미세먼지 대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기를 값싸게 공급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경제 논리만 앞세우지 말라는 것이죠. 문 대통령이 산업부에 치여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환경부에 의도적으로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환경부 내부에서는 새 정부에서의 위상 강화를 기대하며 크게 고무돼 있다고 합니다. 한때 청와대 정책실장 내정설까지 돌았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환경부 차관 출신인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위세가 강한 부처들에 대한 ‘힘 빼기’ 차원에서 산업부를 배제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청와대가 재정기획관을 신설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예산 편성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기획재정부의 힘을 빼고 복지 재원 마련을 기재부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와 환경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기존 정책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었다면 국민의 요구와 사회적 합의에 맞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탁월한 균형감각을 발휘해 국민이 만족할 만한 정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사인 종이 찾는 어린이 옆에 쪼그려 앉아 기다린 문 대통령

    사인 종이 찾는 어린이 옆에 쪼그려 앉아 기다린 문 대통령

    스승의 날을 맞아 초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 종이를 찾는 어린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화제다.15일 서울시 양천구 은정초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바로 알기 교실’을 방문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승의 날을 기념해 학교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한 누리꾼은 “아이들이 대통령 차가 들어오자마자 아수라장인데, 보통 관계자와 악수하고 기자 보고 포즈부터 취하는데 문 대통령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에게 다가와서 꽃 받아주고 경호원들이 제지하면 ‘그냥 다가오게 놔두라’고 해서 경호원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한다”라며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의 말을 전달했다. 이어 “일정 때문에 가다가도 아이들이 애타게 부르면 못이기고 도로 돌아와서 애들 봐주고 싸인해줬다더라”며 “몇몇 애들이 사인 받을 종이를 준비를 못하니까 그걸 기다려주고, 어떤 아이는 바닥에 책가방을 놓고 종이 찾으려고 뒤지는데 대통령이 그 애 앞에 쭈그려 앉아서 눈 맞춰주고 종이 꺼내는 거 기다려줬다고 한다”고 전했다.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훈훈합니다”, “멋지다. 이게 나라다”, “할아버지가 손주 책가방 보는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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