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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키 132cm 작은 거인의 메시지 “장애·비장애인 어울려야 서로 삶도 풍요”

    키 132cm 작은 거인의 메시지 “장애·비장애인 어울려야 서로 삶도 풍요”

    병원 면회실에 온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태어나자마자 격리돼 입원한 중증 선천기형의 아들과 면회 온 가족 사이에는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두꺼운 유리창이 놓여 있었다. 홍역, 풍진, 볼거리에 감기는 10번도 넘게 앓은 아이는 세 살 때 비로소 가족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중증 장애를 딛고 세계 무대에 우뚝 섰던 독일 출신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60)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전한 어린 시절 모습이다. 성악 무대에서 은퇴 후 재즈가수로 전향한 그가 다음달 1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재즈 레퍼토리와 함께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릴 때부터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도 풍요해집니다.” 크바스토프는 어머니가 임신 중 복용한 입덧 방지용 진정제인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다 자라지 못한 팔과 손가락 7개의 중증선천기형으로 태어났다. 키는 132㎝까지 자랐다. 어린 시절 ‘마녀가 낳은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음대 진학이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를 극복했다.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과 어울리게 하겠다는 부모의 의지에 따라 그는 8세 때부터 일반 초등학교에 다녔다. 장애인을 격리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부모는 당시 살던 독일 힐데스하임의 거의 모든 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그전까지 그는 장애인 기숙학교에서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크바스토프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사회가 장애·비장애인 아이들을 함께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가족 내에서 형과 똑같이 교육을 받았고, 잘못한 게 있을 때는 형과 똑같이 혼났다”면서 “비록 나의 외모에 대한 주변의 수군거림을 참아야 했지만 숨지 않고 일반학교든, 어디든 갔다”고 했다. 29세 때 신인 성악가들의 등용문인 뮌헨 ARD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미국 그래미어워드를 3회 수상하는 등 정상급 가수로 활동한 그는 2012년 돌연 성악계에서 은퇴했다. 작가 겸 출판인인 친형 미하엘의 사망과 후두염 등 건강악화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원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며 재즈와 연극, 방송 등을 오가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크바스토프는 학창 시절 동료들과 아마추어 재즈 음반을 이미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성악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랐던 스승 샬트로 레만의 뜻에 따라 잠시 재즈를 멀리해야 했다. 그럼에도 형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대중음악을 즐겼던 그는 현역 때 몇 차례 재즈 음반을 내는 등 끊임없이 장르를 오갔다. 크바스토프의 인터뷰 답변에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클래식 무대 은퇴를 후회한 적도 없고 지금 삶에 만족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장애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삶을 산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하면 삶도 풍요로워지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크바스토프 첫 내한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하면 삶도 풍요로워지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크바스토프 첫 내한

    병원 면회실에 온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태어나자마자 격리돼 입원한 중증 선천기형의 아들과 면회 온 가족 사이에는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두꺼운 유리창이 놓여 있었다. 홍역, 풍진, 볼거리에 감기는 10번도 넘게 앓은 아이는 세 살 때 비로소 가족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중증 장애를 딛고 세계 무대에 우뚝 섰던 독일 출신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사진·60)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전한 어린 시절 모습이다. 성악 무대에서 은퇴 후 재즈가수로 전향한 그가 다음달 1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재즈 레퍼토리와 함께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릴 때부터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도 풍요해집니다.” 크바스토프는 어머니가 임신 중 복용한 입덧 방지용 진정제인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다 자라지 못한 팔과 손가락 7개의 중증선천기형으로 태어났다. 키는 132㎝까지 자랐다. 어린 시절 ‘마녀가 낳은 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음대 진학이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를 극복했다. 어릴 때부터 비장애인과 어울리게 하겠다는 부모의 의지에 따라 그는 8세 때부터 일반 초등학교에 다녔다. 장애인을 격리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부모는 당시 살던 독일 힐데스하임의 거의 모든 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그전까지 그는 장애인 기숙학교에서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크바스토프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사회가 장애·비장애인 아이들을 함께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가족 내에서 형과 똑같이 교육을 받았고, 잘못한 게 있을 때는 형과 똑같이 혼났다”면서 “비록 나의 외모에 대한 주변의 수군거림을 참아야 했지만 숨지 않고 일반학교든, 어디든 갔다”고 했다. 29세 때 신인 성악가들의 등용문인 뮌헨 ARD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미국 그래미어워드를 3회 수상하는 등 정상급 가수로 활동한 그는 2012년 돌연 성악계에서 은퇴했다. 작가 겸 출판인인 친형 미하엘의 사망과 후두염 등 건강악화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원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며 재즈와 연극, 방송 등을 오가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크바스토프는 학창 시절 동료들과 아마추어 재즈 음반을 이미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성악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랐던 스승 샬트로 레만의 뜻에 따라 잠시 재즈를 멀리해야 했다. 그럼에도 형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대중음악을 즐겼던 그는 현역 때 몇 차례 재즈 음반을 내는 등 끊임없이 장르를 오갔다. 크바스토프는 “성악은 정확히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즈는 모든 게 자유롭다”며 “재즈는 어려서부터 함께했기에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크바스토프의 인터뷰 답변에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클래식 무대 은퇴를 후회한 적도 없고 지금 삶에 만족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장애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삶을 산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전 프로야구 선수 홍성흔과 이해창의 특별한 인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홍성흔은 22일 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야구선수의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해준 이해창 스승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홍성흔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며 방송 최초로 가정사를 고백했다. 이어 “2006년도에 발목, 팔꿈치 부상을 입으면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모든 감각들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야구를 그만해야 하나 생각했던 시기에 이분의 말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다. 제 인생의 키를 주신 스승님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 한 번. MBC 청룡 이해창 선수가 도봉 리틀야구단에 방문한 것. 당시 이해창은 어린 홍성흔을 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으면 잠실야구장에 네 이름이 울려 퍼질거야”라고 희망을 심어줬다. 홍성흔은 “선배님께서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인생의 뿌리가 된 말 한마디를 해주셨다. 정신력을 심어주셨고 그 말 때문에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당시 선배님이 했던 그 세 마디를 꼭 해준다”고 말하며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KBS1 ‘TV는 사랑을 싣고’는 추억 속의 주인공 또는 평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주인공을 찾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패소하면 인간 포기”..‘리갈하이’ 진구 VS 윤박 ‘저작권 소송’ 정면승부

    “패소하면 인간 포기”..‘리갈하이’ 진구 VS 윤박 ‘저작권 소송’ 정면승부

    ‘리갈하이’의 괴태 진구와 에이스 윤박이 변호사 평판을 걸고 저작권 소송으로 맞붙었다. 지난 23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리갈하이’(극본 박성진, 연출 김정현, 제작 GnG프로덕션, 이매진 아시아) 6회에서 “이 노래 내 노래야. 표절이야!”라고 소리치며 서재인(서은수)의 절친 남설희(문예원)의 카페에 등장한 소피아(현쥬니). 그녀는 안토니오(강두)와 함께 록밴드 ‘자폭하는 영혼’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설희의 소개로 고태림(진구) 법률 사무소를 찾아간 이들이 “내가 만든 노래를 도둑맞았다”며 지목한 노래는 바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스윗걸즈’의 ‘루나스타’였다. 사무장 구세중(이순재)은 “(이 곡을 만든) 작곡가 제임스박(변우현)의 명성 때문에 화제가 될 거고 앞으로 연예계 인사들의 수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조언했고, 고태림는 손해배상에서 승소하면 금액의 절반을 성공보수로 받는다는 조건으로 소송을 맡았다. 제임스박이 소속돼있는 디팍스엔터테인먼트와 법률 고문 계약을 맺고 있던 B&G 로펌은 강기석 변호사를 내세웠다. 본격적인 스승과 제자의 법정 승부를 알린 것. 이렇게 저작권 소송의 재판이 시작됐고, 고태림은 표절을 주장하며 음원판매 및 그 밖의 모든 판매 금지와 전체 수익의 70%, 즉 29억5천만원 지급을 요구했다. 표절의 근거로는 가사와 악보를 분석한 세계관과 멜로디의 유사성을 주장했다. 이에 강기석은 이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함수 그래프를 제출하면서, “공통되는 비율을 산출했더니 37% 이하였다”며 “과거 표절로 판정난 곡들의 경우 50%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이었다”고 맞섰다. 각각 진술에 나선 제임스박과 소피아 역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제임스박은 “자폭하는 영혼이란 밴드를 이번 일로 처음 들어봤다”며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히트곡이 표절이라는 이 소송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소피아는 “가로등, 눈물, 낙엽, 향수를 읊어대던 사람이 갑자기 우주라뇨? 말이 안 된다”며 “내꺼가 오리지널이야. 내놓으라구!”라고 소리쳤고, ‘록스피릿’으로 소동을 피웠다. 강기석은 고태림 보다 한발 앞서 여론을 움직일 인터뷰를 제임스박에게 제안했다. “노래는 팬 여러분들 모두의 것이다. 이걸 모르고 돈이나 달라고 하는 건 팬과 노래에 대한 모독”이라는 제임스박. 이에 여론의 질타는 물론,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고, 고태림 법률 사무소는 욕과 저주가 쓰인 돌멩이 테러를 받았다. 소피아 역시 공연 무대에서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당분간 몸을 피하라”는 경찰 측 권고로 고태림과 구세중은 서재인의 집으로 피신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고태림의 제자가 아닌 변호사 강기석”이 되기 위해 고태림을 이겨야만 하는 강기석. 이번 재판에서 패소하면 “거액에 사수를 배신하고도 몸값도 못해 쫓겨난 한심한 변호사로 낙인찍힐 상황”이다. 고태림 역시 “단 한 번이라도 패소하면 인간이길 포기한다”는 선언했던 바. 치열한 법정 승부의 결과가 기대되는 이날 방송은 시청률은 전국 2.7%, 수도권 2.9%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제공, 유료가구 기준) ‘리갈하이’ 매주 금,토요일 밤 11시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리갈하이’ 진구 VS 윤박, 짜릿한 법정 승부 “실컷 머리 굴려봐”

    ‘리갈하이’ 진구 VS 윤박, 짜릿한 법정 승부 “실컷 머리 굴려봐”

    ‘리갈하이’가 진구와 윤박의 짜릿한 법정 승부를 예고했다. JTBC 금토드라마 ‘리갈하이’(극본 박성진, 연출 김정현, 제작 GnG프로덕션, 이매진 아시아)가 오늘(23일) 본방송에 앞서 스승과 수제자 사이였던 고태림과 강기석의 짜릿한 법정 승부를 예고하는 스틸컷을 공개했다. “정렬적인 템포의 삼바”와 “품위 있는 왈츠”라는 메타포로 대비되는 두 변호사.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만하게 법정에 선 고태림과 차분한 카리스마로 변론을 시작하는 강기석의 상반된 모습이 시선을 끈다. 지난 방송에서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하자 “브라더!”라고 외치며 반가움을 격한 포옹으로 나눈 강기석과 고태림. 그도 그럴 것이 강기석은 지난 2년간 고태림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고태림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운 수제자였으며, 고태림은 어느 날 갑자기 떠난 수제자를 오래도록 기다려왔기 때문. 하지만 강기석의 선택은 고태림 법률사무소가 아닌, 고태림의 저격수를 원하는 B&G로펌이었다. 이후 강기석은 ‘알바생 살인사건’ 항소심에서 판도를 바꿀 새로운 증인을 찾아내 고태림에게 첫 패소 위기를 안겼고, ‘웨딩촬영장 손해배상청구’ 상대 변호사로 서재인을 지목해 재판을 주도했다. 강기석은 의뢰인을 위해 변론하되, 자신만의 정보원을 이용해 의뢰인을 따로 조사했고, 재판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증거가 나오자 상대 변호사에게 합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역시 고태림의 수제자다운 방식이었던 것. 그리고 마침내 서재인을 상대로 승소, “기뻐? 이겨서?”라고 묻는 고태림에게 “네, 다음엔 선배하고 제대로 한 번 붙어 보려구요”라고 답했다. 물론 서재인이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고도 의뢰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고태림의 ‘축하 선물’로 한방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지만. 방송 직후 공개된 예고 영상(https://tv.naver.com/v/5477466)에서 “내가 만든 노래 도둑맞았어요”라며 고태림 법률사무소를 찾은 소피아(현쥬니)와 안토니오(강두). 고태림이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B&G로펌에서 꺼낸 카드는 바로 강기석이었다. 드디어 스승과 수제자의 법정 승부가 마련된 것. 재판을 앞두고 “신경 쓰이지?”라고 묻는 민주경에게 “아뇨. 고선배하고 제대로 붙어보고 싶어서니까”라고 답하며 의지를 드러낸 강기석과 그런 그를 두고 “실컷 머리 굴려봐”라는 고태림. 두 변호사의 짜릿한 법정 승부는 어떻게 전개될까. 그리고 고태림에게 승소하는 것이 “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라는 강기석의 속내는 무엇일까. ‘리갈하이’ 제6회, 오늘(23일) 밤 11시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열혈사제’ 김남길 vs 김성균, 예측불가 대치 현장 포착 ‘궁금증 UP’

    ‘열혈사제’ 김남길 vs 김성균, 예측불가 대치 현장 포착 ‘궁금증 UP’

    ‘열혈사제’ 김남길과 김성균의 예측불가 대치 현장이 포착됐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극본 박재범/연출 이명우/제작 삼화네트웍스)는 다혈질 가톨릭 사제 김해일(김남길 분)과 바보 형사 구대영(김성균 분)이 살인 사건으로 만나 어영부영 공조 수사를 시작하는 익스트림 코믹 수사극. 첫 방송 만에 전국 시청률 13.8%를 기록한 것은 물론, 순간 최고 시청률 18.3%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닐슨 코리아 기준) 다채로운 매력들로 꽉 찬 ‘열혈사제’. 그 중에서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 플레이는 ‘열혈사제’의 커다란 재미 요소다. 지난 방송에서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까칠한 신부님 김해일과 불의를 꾹 참는 겁쟁이 형사 구대영의 만남이 그려지며 웃음을 선사했다. 김해일은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 이영준(정동환 분) 신부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경찰서로 돌격, 그를 막아서는 구대영에게 펀치를 날렸다. 이에 쌍코피를 터뜨리며 쓰러진 구대영. 코믹의 진수를 보여준 4회 엔딩은 두 사람의 ‘톰과 제리’ 같은 인연의 시작을 알리며, 향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런 가운데 오늘(22일) 방송되는 ‘열혈사제’ 5,6회에서는 다혈질 사제 김해일과 바보 형사 구대영의 또 한번의 좌충우돌 만남이 그려진다. 이영준 신부의 억울한 죽음에 폭주하는 김해일과 그를 막아서는 구대영의 대치 장면이 공개된 것. 사진 속 구대영의 모습은 폭소를 유발한다. 구대영은 겁먹지 않은 척 김해일에게 테이저건을 겨누고 있지만, ‘쫄보 눈빛’만은 숨길 수 없는 모습이다. 여기에 김해일에게 맞아 빨갛게 부은 코는 웃음을 자아낸다. 김해일은 이러한 구대영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내 금방이라도 돌격할 듯 분노의 눈빛을 쏘는 김해일의 모습은 예측불가 긴장감을 형성, 본 장면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방송에 앞선 예고편에서 구대영은 김해일의 등장에 한껏 경계태세를 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김해일을 향해 “사람 패는 신부입니다”라고 말하며 김해일의 신경을 박박 긁은 것. 앞서 김해일에게 강력한 주먹 한 방을 먹은 구대영이다. 과연 두 사람의 만남이 이번엔 어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불러올지, 오늘(22일) 방송되는 ‘열혈사제’ 5,6회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22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부산시교육청 야간콜센터 및 민원실 운영...전국서 처음

    부산시교육청 야간콜센터 및 민원실 운영...전국서 처음

    부산시교육청은 3월부터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야간민원실’과 ‘야간콜센터’를 운영한다고 20일 밝혔다. 부산시시교육청 고객지원실이 야간민원실을,부산교육콜센터( 051-1396)가 야간콜센터를 각각 운영한다. 이에따라 직장인과 맞벌이 부부 등 낮 시간에 교육청을 찾기 어려운 학부모와 시민들은 화요일과 목요일 퇴근시간 이후에 민원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야간민원실을 방문하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로 발급할 수 있는 졸업증명서와 재학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를 즉시 발급받을 수 있다. 야간콜센터로 전화를 하면 원 콜(One-Call) 서비스가 이뤄지는 고등학교 전·편입학,검정고시,스승 찾기 등 14개 영역에 대해 바로 상담받을 수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야간콜센터는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운영한다”며 “학부모와 시민이 야간 민원실과 콜센터를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산하기관과 학교,부산시와 구·군,유관기관,지하철 등에 홍보 포스터 등을 게시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하루 13시간, 그렇게 3개월… 지혜의 칼을 찾아 번뇌를 베다

    하루 13시간, 그렇게 3개월… 지혜의 칼을 찾아 번뇌를 베다

    겨울철 단체 집중 수행인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오후 경북 영천 은해사 백흥암. 팔공산 동쪽 자락에 고즈넉이 앉은 목조 전각들이 단아하다. 따사로운 겨울 볕과 어울리는 전각들의 모습에 취해 있을 무렵, 문득 알 수 없는 묵직한 기운이 불청객을 휘감는다. 극락전 계단 오른쪽 아래 심검당(尋劍堂). ‘번뇌를 단번에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란 주지 스님의 편액 설명이 예사롭지 않다. 두 열로 좌복에 앉아 면벽한 채 입정한 눈 푸른 비구니 스님들. ‘나는 새도 숨을 죽인다’는 선방 속의 이 수좌들은 무슨 인연을 따라, 또 무엇을 찾아 이곳에 모여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백흥암은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산내 암자. 서슬 퍼런 수행 전통으로 소문 난 비구니 수행 도량인 울산 석남사의 선(禪) 가풍을 잇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빼곤 1년 내내 일반인 출입이 봉쇄된 금남(禁男)의 집.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서’의 배경이기도 한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데다 선원장 영운 스님이 석남사에서 선지식과 스승들로부터 배우고 몸에 익힌 수행 전통이 오롯이 살아 있다. 그래서 비구니 스님들 사이에선 가장 인기 있는 수행처 중 하나로 꼽힌다. 석남사처럼 서슬 퍼렇지는 않지만 선방 속 수행 결기는 불청객의 옷매무새까지 바로잡게 만든다. 올해 방부(房付·승려가 절에 가서 그곳에서 머물며 수행할 수 있기를 부탁하는 일)를 드린 비구니는 모두 13명. 선원장 영운 스님과 주지 스님, 일반 수행자까지 모두 23명이 한 철을 났다. 이들은 오전 3시에 기침해 3시 30분 입선에 들어 5시까지 정진을 마치고 오전 6시 발우공양을 한다. 7시 30분 다시 오전 입선에 든다. 아침 정진을 마친 뒤 점심공양을 한 뒤 오후 1시부터 정진을 이어 가며 모든 일과는 밤 10시에 마무리한다. 하루 꼬박 13시간을 참선에 매진하는 셈이다. 안거에 참여한 모든 대중이 엄격한 청규를 세워 오차 없이 지키기로 유명하다. 지난 3개월간 눈 푸른 비구니 수좌들은 각자의 화두를 들고 밤낮으로 용맹하게 달려왔을 터. 그 굳디굳은 결기에도 마구니들의 유혹과 밀려드는 잠은 떨칠 수 없는 것일까. 간간이 적막을 깨는 입승 스님의 죽비 소리가 날카롭다. 용맹하게 들고 풀어온 화두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의 발원은 하나일 터. 이번 정진 공부에서 얼마나 큰 열매를 거두었을까. ‘공부가 잘 됐느냐’는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이 되돌려진다. 일찌감치 정진을 마무리한 몇몇 비구니 수좌가 심검당을 나선다. 선방 입구 벽에 걸린 심검 편액을 힐끗 올려다보며 산문을 나서는 수좌들의 등 뒤에 얹어진 주지 스님의 외마디 소리. ‘또 오십시오’ 그 말에 정성스레 두 손을 모은 비구니 수좌들이 하나같이 바랑 끈을 다잡는다. 이제 다시 구름처럼 바람처럼 만행을 떠나는 수좌들. 그 등에 걸친 바랑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글 사진 영천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백발 할머니 학생 8명 초등학교 6년 영광의 졸업, 경남 초교 2곳 이색 졸업식

    백발 할머니 학생 8명 초등학교 6년 영광의 졸업, 경남 초교 2곳 이색 졸업식

    경남지역 초등학교 2곳에서 14·15일 뜻깊은 졸업식이 열렸다. 평균 80세가 넘는 할머니 8명이 6년간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며 초등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 졸업장을 받았고 독립운동가 2명이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경남도교육청은 15일 하동군 고전면 고전초등학교에서 지난 14일 열린 제 87회 졸업식에서 평균 80세가 넘는 할머니 학생 8명이 졸업을 했다고 밝혔다.올해 고전초 졸업생은 이들 할머니 학생이 전부다. 졸업생 할머니들 연세는 71세부터 86세 까지 평균 80이 넘는다. 모두 학교 인근에 거주한다. 이들 할머니들은 배우지 못한 한을 풀겠다며 6년 전인 2013년 3월 5일 입학식을 하고 고전초등학교 학생이 됐다. 백발 할머니들은 배움에 대한 강한 의지 하나로 6년 동안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며 열심히 공부해 나이는 뛰어 넘은 끝에 마침내 영광스런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14일 졸업식에는 학교 주변 주민들도 대거 참석해 졸업식장은 마을 잔치 행사장이 됐다. 6년 세월을 이겨낸 졸업생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자녀들과 손주들도 꽃다발을 건네며 할머니들의 졸업을 축하했다.박종훈 경남도 교육감도 졸업식에 참석해 할머니 졸업생 한분 한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박 교육감은 할머니들의 졸업을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매화’에 비유하며 “배움의 길에는 나이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진 할머니들께서 우리 모두의 스승이시다”고 축하했다. 15일 경남 밀양시 밀양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09회 졸업식에서는 올해 졸업생 122명 졸업식과 함께 독립운동가 김상득 선생과 한봉삼 선생의 명예졸업식이 열려 두 독립운동가에게 명예졸업장이 주어졌다. 두 선생의 명예 졸업장은 각각 윤일선 밀양독립운동사 연구소 소장과 한봉삼 선생의 조카며느리인 조현주씨가 받았다.1910년 밀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김상득 선생은 의열단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 장군과 함께 1911년 11월 3일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에 반대해 일장기를 화장실에 버린 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김상득 선생은 1919년 3·13밀양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한봉삼 선생은 1917년 밀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19년 3월 학생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퇴학당한 뒤 의열단 단원이었던 형제들과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옥고를 치르고 후유증으로 1933년 순국했다. 박종훈 교육감은 이날 밀양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을 격려하고, 김상득 선생과 한봉삼 선생의 명예졸업을 축하했다. 박 교육감은 “지난해 김원봉 장군 명예졸업장 수여에 이어 두 분 독립운동가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가 우리 아이들의 역사교육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안양시, 범죄예방 위해 버스정류장에 폐쇄회로(CC)TV, 방범벨 설치

    안양시, 범죄예방 위해 버스정류장에 폐쇄회로(CC)TV, 방범벨 설치

    경기도 안양시 버스정류장에 범죄예방을 위해 폐쇄회로(CC)TV와 방범벨이 설치된다. 시는 버스정류정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안전쉘터를 구축한다고 14일 밝혔다. 시는 이용객이 많은 만안과 동안구 각 5곳에 모두 10개 안전쉘터를 설치한다. 2억여원을 들여 4월까지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새로 설치되는 CCTV는 U통합상황실과 연계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범죄를 예방한다. 위치확인과 음성통화가 가능한 비상벨을 설치해 범죄나 교통사고 등 돌발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새로 설치되는 발광다이오드(LED) 오색 조명은 주변 이목을 집중시켜 버스승객을 보호한다. 비 가림을 할 수 있는 쉘터형 정류장에는 USB충전포트, LED조명 등 시설도 갖춰 시민 편의를 제공한다. 시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성과를 분석 후 안전쉘터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시에는 616개의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쉘터형은 435개소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승부 위주의 한국바둑 한계에 봉착…세계화가 돌파구”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승부 위주의 한국바둑 한계에 봉착…세계화가 돌파구”

    프로 기사 조혜연 9단이 말하는 ‘바둑과 미래’‘가장 많이 까이는 프로 기사’ ‘일요일엔 시합을 안 하는 프로 기사’, ‘가장 영어를 잘하는 고수’, ‘기업 CEO 프로 기사’, ‘여자 이창호’…. 프로 바둑 기사 조혜연 9단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런 그녀가 바둑계에서는 극히 드물게도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한다고 해서 지난 8일 만나 진학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남녀 프로기사 363명 가운데 박사 학위를 가진 이는 문용직·정수현 9단 딱 2명뿐이다. 물론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는 더러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지난달 30일 전화를 걸기 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에서 이창호 9단에 역전패를 당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역전패당한 것, 위로한다.”라고 했더니 그는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됐는데….”라며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패배한 기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터뷰 내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패배는 빨리 잊어야죠.”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등록3천년 역사의 바둑, 문화콘텐츠로 볼 것학업 탓 대국 포기 없을 터…수업 적게” -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승부 위주의 한국 바둑 문화에 의문이 들었다. 구글의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등장 이후 바둑은 과도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바둑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 바둑은 ‘인류의 문화다.’, ‘예술이다.’, ‘스포츠다.’, ‘잡기다.’는 식의 시선이 겹쳐 있다.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3000년이나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이겨야 한다.’라는 결과주의가 만연했다. 이젠 바둑을 성적 지상주의, 결과주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콘텐츠라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둑을 문화콘텐츠 시각에서 연구하고 분석하고 싶다. 다음 달부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우리 분야, 바둑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박사 과정 공부가 만만찮을 텐데. “사실, 걱정이다. 학부에선 영문학, 석사로는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문화콘텐츠학과는 학부, 석사와는 동일 계열이 아니라서 학점 이수가 많아야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대국을 포기하거나 시합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다. 직업이 바둑이니, 대체로 봄학기에 시합이 있는 편이어서 수업을 적게 들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사학위 취득에 연도를 정해 놓지 않겠다. 초읽기에 몰리는 듯한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프로 바둑계에선 학벌이랄까 학력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프로 바둑기사라는 면장이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어떤 면에서는 졸업장이나 박사 학위보다 더 높게 대우받기 때문이다. 학업을 하겠다고 하면 ‘바둑이나 잘 둘 것이지….’ 라는 다소 냉소적이랄까 폐쇄적인 문화도 작용한다. 하기야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바둑에만 집중해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서 조혜연 9단은 3수생의 나이인 21살 때 첫 입시를 치렀고, ‘06학번’으로 고려대 영어영문학에 입학했다. 그리곤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입학 당시마다 바둑에 집중하지 않고 대학 간다고 많이도 ‘까였다.’ “국내 바둑계, 1등 아니면 루저…경쟁 극심바둑 최고 자리는 인공지능이 이미 차지일류 기사, 인공지능에 두 점 깔아야 정도인간계 1등 의미 퇴색…좋은 기전 사라져” - 국내 바둑계가 비상이다. “그렇다. 바둑계는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는 피라미드 구조, 바로 그것이다. 최고에 대한 추구, 즉 1등 지상주의가 극심한 곳이다. 중간 정도 하면 ‘루저’ 내지 패배주의라는 시각이 강하다. 초일류 기사가 아니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것을 경시했다. ‘1등 주의’가 오늘 한국 바둑을 세계에 우뚝 서게 한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젠 성적 지상주의가 한계에 왔다. 바둑인, 특히 한국기원을 비롯한 프로 기사들이 달라져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 바둑계가 왜 달라져야 하나. “현대 바둑의 역사는 알파고 등장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바둑에서 최고의 자리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 넘어갔다. 현재 최고의 프로기사라도 인공지능에 두 점을 깔아야 할 정도다. 이건 초일류 기사에겐 덤으로 치면 거의 30집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와 닿지 않는다고? 축구로 치면 5-0으로, 5골을 받고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거다. 프로 기사들도 대국 이후엔 인공지능을 돌려가며 복귀하고 연습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바둑계를 지배해온 1등 주의, 성적 지상주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기원이 대국 기사들에게 일체의 전자기기 휴대를 금지시켰다. 물론 화장실에 갈 때도 사용 못 하게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좋은 대회가 많이 없어졌다. “권위의 국수전은 수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명인전, 기성전, 왕위전도 마찬가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알파고 등장 이후 국내 프로 기전의 약 80%가 폐지되거나 중단됐다. 이는 알파고 탓이 아니라 한국 프로바둑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이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프로 기전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 승리 지상주의로 쌓은 바둑의 기반이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전국 규모의 아마추어 대회는 500개가 넘는다. 바둑계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불황인 게 아니라 엘리트 중심주의가 크게 약화된 것이다. KBS바둑왕전이나 GS칼텍스배가 대표적 국내 기전이지만 일부 기전의 경우 예선전에 나가는 기사들에게 출전료도 못 주는 형편이다. 물론 삼성화재배, LG배와 같은 듬직한 국제기전도 있다.” “바둑계 폐쇄적 기수문화탓, 언로 막혀상위 10명 억대 수입…中서 대부분 벌어한국기원 한해 17명 입단…일본은 7명뿐프로들 먹고살 문제, 한국기원 고민해야” - 프로바둑계는 무슨 대책을 세우나.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무슨 대책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프로 바둑계도 입단 연도를 따지는 소위 말하는 ‘기수 문화’가 있다.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팬들이 과거보다 너그럽게 봐줘서다. 상위 10명 정도만 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그것도 중국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나머지 기사들은 도장 운영, 후진 양성으로 먹고산다. 그런데도 한국기원은 1년에 17명(남자 13, 여자 4명)에게 프로기사 자격증을 주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우리보다 프로 바둑 시장이 훨씬 큰 데도 일본기원은 1년에 4명(남자 3명, 여자 1명), 관서기원은 2명 입단에 원생 1명만 뽑는다. 일본기원 소속 프로기사 330명, 관서기원 소속 138명으로 일본은 모두 468명인데, 우리나라는 363명이 활동한다. 몇 년만 지나면 우리가 프로기사 수가 일본보다 더 많아진다. 이들이 뭐로 먹고살아야 하나. 입단을 꿈꾸는 ‘미생’들이 입단한 뒤에는 과연 어떤지 질문해야 하고, 기성 바둑계가 답을 내놓야 한다. 한국기원이 불편해하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전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1985년생인 조혜연 9단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7년 4월 프로가 됐다. 당시 11년 10개월의 나이로, 여자 기사로는 최연소이자 남녀 합쳐 조훈현(9세7개월) 9단, 이창호(11세) 9단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이다. 입단 23년차로 어느덧 그가 듣기 거북해하는 ‘노장’ 축에 끼게 됐다. 그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7살 때. 어렸을 적엔 노근수 아마 6단에게 바둑을 배웠다. 프로가 되기 6개월 전쯤 김원 프로 7단 도장에서 등록했다. 그의 바둑 스타일은 한마디로 야전 형이다.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정규 바둑수업을 받지 않고, 당시 PC통신 ‘천리안’에서 강호의 고수들을 깨면서 실전을 익혔기 때문이다. 잡초와 같은 강호가 그의 스승인 셈이다.- 영어 바둑책도 많이 냈다. “헤아려보니 20권이 된다. 현현기경(玄玄棋經)과 관자보(官子譜) 같은 바둑 고전 10권을 번역했고, 조혜연의 ‘창작 사활’ 시리즈 10권을 냈다. 이 또한 틈새시장이 먹힌 것 같다. 영어로 된 초급 바둑 책은 시중에 많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의 바둑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급 수준의 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수요에 부응했던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책을 내고 싶고, 머릿속에는 창작 사활문제가 막 돌아다닌다. 너무 어려운 것보다는 일반 사람들이 보고 싶은 쉬운 책을 내고 싶다.” “영어 바둑책 20권…바둑 세계화 투어도日도장서 지도…한일 바둑문화 차이 실감” - 바둑 국제화도 앞장섰다. “사실, 영어영문학 전공도 바둑 국제화 포석을 깔고 진학한 것이다. 바둑 영문 블로그도 운영했고,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4년간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른 살 이후 아프리카와 중동을 빼고 다른 대륙에 바둑 보급 투어를 다니고 있다. 가장 중시하는 대륙은 역시 동남아로, 태국·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바둑 붐이 일고 있다. 유럽·미주·오세아니아도 연 1회 꾸준히 방문해 바둑을 지도한다. 남미는 바둑을 비교적 최근에 배워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고 있다. 비용은 공식기전에서 대국 후에 나온 것으로 충당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늘어난다면 바둑 세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둑은 앞으로 더욱 세계화될 것인데, 이를 생각하는 기사라면 외국어 공부가 필수적이다.” - 일본도 자주 간다고 들었다. “한국 젊은 사람들, 일본 많이 가잖아요. 뭐, 그런 차원이다. 일본어 공부도 독학으로 하고 있다. 장기 체류는 아니고 일본 바둑 도장에서 ‘알바’를 하면서 여행 비용을 충당한다. 일본 도장에서 하루 지도하면 몇만엔 받는데, 그것으로 다음 여행을 하곤 한다. 일본은 바둑 저변인구도 넓고, 도장 분위기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 프로기사가 왔다고 하니, 도장이 이벤트를 갖는다. 일본에선 프로기사와 대국을 하는 자체를 기념으로 삼는다. 장인 문화에 대한 존중이 보이고, 그런 것은 사실 부럽다. 그런데 한국에선 성적을 내지 못하는 프로기사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 차이가 있다.” - 여자 기사여서 차별받지 않았나. “제가 프로에 입문할 때만 해도 ‘여자는 바둑이 약하다.’라고 매도당했다. 여자는 수리 논리에서 약하다는 편견을 극복하는 게 힘들었다. 바둑은 중반 이후 미세한 승부로 접어들면 고도의 수리적 능력이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편견, 남성의 지적 우월주의가 10대 시절 나에겐 강한 자극이 됐다.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 사범이 1999년, 이창호·조훈현 9단을 연파하고 통합국수에 오른 것은 바둑사에 남을 일이지만 여성이 수리 논리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남성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여자 기사는 입단대회는 남자와는 별도로 갖지만, 정작 대회만큼은 남성과 똑같이 치른다. 여성 수련생을 위한 훈련 방법 잘못으로 여성 기사들의 성적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감정이 섬세하고, 남성보다는 멀티플레이에 능하다. 지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 즉, 교육단계에서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 남성적인 시각과 지도방법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다. 예컨대, 사범이 지적할 때 ‘왜, 그렇게 두면 안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이유 설명 없이 질책한다. 그러면 심약한 여성 수련생들이 울면서 도장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독한 사람만 꾸역꾸역 참아낸다. 상대 전적에서는 앞서지는 못했지만 저는 ‘레전드’인 이창호·이세돌·조치훈·유창혁 9단과 맞붙어 승리한 경험도 있다. 여성을 위한 교육도구 개발이 시급하다.” “여성, 수리 논리에 약하다는 편견 깨여성 위한 바둑 지도 방법 개발 시급여성 기사 ‘얼평’ 말투…굉장히 폭력적” - 여성 기사에 대한 외모 평가도 많다. “외모 평가에 맞서 싸우는 것도 어려웠다. ‘얼평’에서 자유로운 여성 기사들은 아마 없을 거다. 바둑팬 대다수가 남성이어서 그렇겠지만…. 바둑 내용을 보고 평가해야지, 얼굴 보고 몸매 보고 싶으면 연예인을 보지, 왜 바둑을 봅니까. 1990년대 바둑에 몰두했던 여성 기사들이 ‘기사’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기사에 대한 남성의 시각이나 말투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조혜연 9단은 한국 여성바둑계를 군림했던 루이나이웨이 9단을 두 번 제압했다. 2003년 여류 국수전과 2004 여류 명인전 결승에서 루이 9단을 내리 꺾으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또 바둑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주장인 그가 일요일 경기를 할 수 없다며 기권해버려 충격을 줬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 대국 포기는 오래된 불문율이었다. 대타로 나선 선수가 중국을 꺾으면서 조 9단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첫 여류 10단 전에서도 우승했다. 2016년 프로기사와 다면기를 해주는 앱 ‘더바둑’을 개발했다. 또 삼성전자 투자를 받아 ‘알파탭’이라는 바둑 전용 태블릿PC를 만들기도 했다. ㈜더바둑 대표인 조 9단은 회사와 관련, “창업 5년째인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재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1000대국을 달성했다. 그의 목표 1000승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루이 상대 첫타이틀 획득 가장 기억13번 패배로 고통스러운 순간 많아“ -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기억에 남는 대국이 많다. 특히 고교생 때인 2003년 루이나이웨이 사범님을 꺾고 여류국수전 결승을 2대 0으로 승리한 그 기보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겐 첫 타이틀이었고, 상대가 루이 9단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루이 사범님과 60판가량 공식전을 벌였는데, 승률이 30% 정도밖에 안 된다. 루이 사범님께 결승에서 두 번을 이겼지만, 13번을 패해 준우승 기록이 13번이나 된다. 루이 사범님과의 결승 무대를 떠올리면 기쁨보다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다.”- 바둑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둑은 빈 공간(바둑판)에서 출발, 사유만으로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게임이다.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지적 발견과 즐거움 추구를 돕는 도구로서 바둑을 더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등장으로, 온라인 고수의 실력도 이젠 믿지 못한다. 진정한 고수는 오프라인으로 더욱 나오게 될 것 같다. 바둑이 세계화와 생활체육으로 변신에 성공한다면 인류의 지적 즐거움을 주는 도구로서 오래 사랑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바둑, 인류의 지적 발견·즐거움 추구 도구세계화·생활체육 변신하면 오래 사랑받을 것프로기사 면장, 특권 아냐…자격증이 될 것젊은 기사, 다른 분야 공부도 절실한 시기”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둑계의 지배적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수천 년을 지배해온 정석도 바뀌고 있다. 프로기사 면장이 특권일 수 없고,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옮겨갈 것이다. 젊은 기사들은 바둑 이외에 학업이나 다른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적응력을 키우려면 하다못해 어학 공부라도 해둬야 한다. 바둑에서 졌다고 실패는 아니다. 사실 바둑의 전성기는 30대 이전이다. 나머지 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도 학업을 포기하는 기사들이 많은 데 안타깝다.“ 조 9단은 큰 대회를 앞두곤 식단조절을 했지만 이젠 평소에도 식단에 신경 쓸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바둑이 끝나면 녹초가 되는 경우도 많단다. “운동요?, 지하철 역 계단 오르기를 실천하는 것은 몇 년 됐다. 하루 1만보 걷기를 꾸준히 실천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리갈하이’ 독설로도 웃기는 진구의 괴태쇼 “웃다 보니 벌써 끝났다”

    ‘리갈하이’ 독설로도 웃기는 진구의 괴태쇼 “웃다 보니 벌써 끝났다”

    JTBC가 포문을 연 코믹 법조 활극 ‘리갈하이’가 “웃다 보니 벌써 끝났다”는 시청자들의 열띤 반응을 얻었다. 시청률은 전국 3.3%, 수도권 3.7%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지난 8일 첫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리갈하이’(극본 박성진, 연출 김정현, 제작 GnG프로덕션, 이매진 아시아)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의문의 백발노인(동방우)이 오프닝을 장식했다. 그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엄청난 변호사의 존재를 알렸는데, 그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그 선생님이 맡기만 하면 무조건 무죄! 변론을 시작하면 비난은 이해와 용서로 증오는 동정과 자비로 변하지. 의뢰는 이거면 돼, 쩐!” 증거가 너무 확실해 집행유예 정도만 받아도 황송하다는 의뢰인도 새로운 진실을 찾아 무죄로 만들어준다는 것. 뒤이어 각종 요상한 포즈를 취하며 화보 촬영중인 변호사 고태림(진구)이 등장했다. 한 잡지사 악질 사장의 고소건을 해결해주는 대신 화보와 인터뷰를 실어주기로 한 것. 괴물변태, 일명 ‘괴태’라 불리는 그는 확실히 다른 변호사들과 달랐다. 온갖 독설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돈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순한 양이 됐다. 광대한 대륙의 돈을 끌어 모으겠다며 중국 거대 기업인 왕민그룹의 딸 왕려령(차오루)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는가 하면,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하는 국회의원 앞에서는 “의정 활동만 열심히 하시라”며 머리를 숙였다. 더군다나 과거가 미스터리한 사무장이자 집사인 구세중(이순재)으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관리 받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증거, 판례, 판사의 성향까지 모든 게 유죄가 확실해 1심에서 엄청난 배상금이 떨어진 ‘쓰레기 국밥’ 재판의 판결을 뒤엎은 것이 그 실례였다. 그에게 패소한 B&G로펌의 시니어 변호사 윤상구(정상훈)가 분노한 것처럼, “쓰레기를 주워다 팔은, 먹을 거로 장난친 놈, 그거 먹은 사람들 식중독으로 죽을 뻔한”, 누가 봐도 파렴치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고태림은 형편이 어려웠던 판사의 과거를 조사해 쓰레기 국밥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포장했고, 결국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초보 변호사 서재인(서은수)이 그를 찾아간 이유도 승소율 100%의 실력 때문이었다. 인턴으로 일하던 법률 사무소의 상사인 변호사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함구하는 조건으로 합의해야 했고, ‘알바생 살인사건’의 살인범으로 지목된 초등학교 동창 김병태(유수빈)의 부탁으로 변론을 맡았지만, 결국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았다. 스승인 송교수(김호정)의 말대로, “요즘 친구들 같지 않게 요령도 없고 고지식한” 서재인이 불타는 정의감만으로는 자신도, 친구도 구해내지 못한 것. 항소심을 맡아줄 변호사를 구하던 그때, “괴태 같은 미친놈이 미친 척 달려들면 모를까”라는 윤상구의 말이 서재인을 사로잡았다. 수임료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고태림을 찾아갔고, “성실한 젊은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읍소하며, 수임료 할부까지 제안했다. 이에 “외상 사절, 에누리 사절, 카드 사절”이라며 수임료 5억을 외친 고태림. 이어 “꼴같잖은 정의감 남한테 떠넘기던 그대가 변호사라니, 세상 참 말세네”, “다 지가 정의라고 믿는 놈들이 서로 지께 맞다고 우겨대는 아사리판이 바로 법정이라고”, “그대 같은 삐약삐약 병아리 얼치기 변호사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면 그때야말로 이 법조계는 끝이지”라는 온갖 독설이 이어졌다. “정의는 돈으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돈을 가져오라구, 돈”이라는 고태림에게 결국 폭발한 서재인. “누가 당신 같은 인간한테 의뢰할까봐, 돈벌레, 인간말종, 괴물, 변태, 사회악”이라고 소리치며 돌아섰다. 하지만 서재인이 김병태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유죄를 무죄로 바꿀 수 있는 괴태 뿐. 서재인은 고태림의 마음을 바꾸고 항소심을 맡길 수 있을까. 오만방자한 독설로도 웃기는 독특한 변호사 고태림의 활약으로 유쾌하고 통쾌한 법정극의 포문을 연 ‘리갈하이’ 제2회, 오늘(9일) 토요일 밤 11시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크바스토프 재즈 무대로 첫 내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크바스토프 재즈 무대로 첫 내한

    선천적 장애극복한 휴먼스토리의 주인공3월 19일 LG아트센터에서 재즈 공연 예정키 132㎝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하지만 관객에게 전한 감동은 가장 큰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한국을 처음 찾는다. 바로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60)가 그 주인공이다. 현역 은퇴 후 재즈 가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크바스토프는 오는 3월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재즈 레퍼토리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독일 출신의 크바스토프는 작은 키와 손가락이 7개인 중증선천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이유는 어머니가 임신 중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입덧 방지용 진정제를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와 의지를 가진 그였지만, 그의 장애는 데뷔 전 음악활동의 장벽이 되기도 했다. 하노버 음대를 지원했지만, 모든 성악 전공자는 반드시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학교 규정에 따라 음대 진학을 하지 못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3세부터 성악 레슨을 받은 스승이자 유명 소프라노인 샬로트 레만 부부의 개인교습으로 더욱 철저히 음악을 배운 그는 29세였던 1988년 신인 성악가들의 등용문인 뮌헨 ARD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세이지 오자와 등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들의 총애를 받았고, 미국 그래미어워드를 3회 수상하는 등 정상급 성악가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크바스토프는 2012년 돌연 클래식 무대에서 은퇴했다. 그의 형인 미하엘이 암으로 사망하며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미하엘은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를 쓰기도 한 출판인이자 작가였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가족을 잃은 크바스토프는 이후 후두염을 앓으며 진로를 바꾼다.크바스토프는 클래식 무대를 은퇴하고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영국 BBC4에서 독일 가곡을 소개하는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연극배우로 독일 최고 극단 베를린 앙상블의 작품에 출연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는 이번 내한 무대에서 재즈를 선보인다. 재즈 마니아였던 형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재즈를 즐겼던 그는 이미 2007년 도이치그라모폰을 통해 재즈앨범을 발매했고, 2014년 ‘마이 크리스마스’에 이어 올해 소니 레이블을 통해 ‘나이스 앤 이지’를 발매했다. 그는 이번 내한에서 아서 해밀턴의 ‘크라이 미 어 리버(Cry Me a River)’,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등 새 앨범에 수록된 곡 위주로 무대를 꾸민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설연휴 영화] 혼놀족 심심타파 온가족 재미보장

    [설연휴 영화] 혼놀족 심심타파 온가족 재미보장

    설날을 앞둔 이맘때면 들뜬 귀성객들만큼 극장가도 달뜬다. 최대 성수기 중 하나인 설 연휴를 노리는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 맞을 채비를 마쳤다. 가족들이 두루 즐길 수 있는 액션과 코미디부터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까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 볼 수 있는 기회다.●시원한 액션 ‘뺑반’… 빵 터지는 코미디 ‘극한직업’ 미세먼지로 꽉 막힌 가슴을 뚫어 줄 영화를 원한다면 액션과 코미디가 제격이다. 한준희 감독의 신작 ‘뺑반’은 레이서 출신의 스피드광 사업가를 쫓는 뺑소니 전담반 ‘뺑반’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액션물이다. 내사과에서 ‘뺑반’으로 좌천된 엘리트 경찰 은시연(공효진)과 에이스 순경 서민재(류준열)가 미해결 뺑소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정재철(조정석)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 장면들이 볼거리로 등장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믹 수사극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를 맞은 마약반 형사 5명이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코믹 요소가 가득하다. 조폭 출신 기업인과 내성적이고 소심한 고등학생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내안의 그놈’ 역시 다소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코믹 연기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엄마 손 잡고 ‘그대 이름은 장미’… 우리말 지킴이 ‘말모이’ 가족과 영화관 나들이에 나선다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작품들은 어떨까. 딸만 바라보고 사는 싱글맘 홍장미(유호정) 앞에 첫사랑 명환(박성웅)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그대 이름은 장미’는 어머니와 함께 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가족을 돌보느라 젊은 시절 품은 꿈도 잊은 채 사는 모든 어머니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1940년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우리말 사전 ‘말모이’를 완성하는 과정을 조명한 ‘말모이’는 시대의 폭압에 맞서 우리말을 지켜낸 사람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노리코(구로키 하루)가 인생의 스승인 다케타(기키 키린) 선생에게 다도를 배우면서 깨우침을 얻는 내용의 ‘일일시호일’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추천작이다.●풍성한 애니 잔치… ‘드래곤 길들이기’ ‘미래의 미라이’ 애니메이션도 풍성하다. ‘드래곤 길들이기3’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바이킹 족장으로 거듭난 히컵과 그의 영원한 친구 투슬리스가 드래곤들의 파라다이스 ‘히든 월드’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쿤이 여동생 미라이가 생기면서 맞는 감정의 변화를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통해 세밀하게 그린다. 매직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비한 마법의 왕국 ‘몬스터 파크’로 가게 된 소년 테리가 마법사 그럼프의 우울마법에 빠진 왕국을 구하는 모험기를 담은 ‘몬스터 파크’, 버려질 위기에 처한 오락기 부품을 찾기 위해 와이파이를 타고 인터넷 세상에 접속한 절친 주먹왕 랄프와 바넬로피의 좌충우돌기를 그린 ‘주먹왕 랄프2:인터넷 속으로’도 놓치지 말자.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설 지나도,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았잖아

    설 지나도,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았잖아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한다. 새 옷, 새 신발, 새 집, 새 차. 가족도 ‘새 가족’을 신청해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신청을 받아 달라고 사람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다. 해, 달, 날이 모두 새것인 시간, 모든 ‘첫’을 품은 상서로운 날이니 덕담을 나누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리라. 지난 해 운이 나빴던 사람, 실패한 사람도 설에는 굽은 어깨를 펴고 새 마음을 가지려 한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조상을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절을 하고, 세뱃돈을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화목한 삶을 꿈꾼다. 설을 맞아 생각해 본다. 올해는 뭔가를 끊으려고만 말고, 안 하던 일을 해 볼까.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늘리지 말고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늘려 볼까. 아끼지 말고 헤퍼져 볼까. 매사에 조심스럽게 말고, 우당탕탕! 소란스러워져 볼까. 할 일을 또박또박 하지 말고, 하지 않아도 될 일만 찾아서 해 볼까. 짜릿하다. 작심삼일이라지만 작심(作心)은 얼마나 귀한 마음이며, 삼일(三日)은 얼마나 충분한 시간인가! 사실 무언가를 끊거나 바꾸는 일은 전부터 내가 수시로 시도해 온 일이다. 중독이 의심되어 작년 봄에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바꿨다. 날마다 몇 잔씩 마시던 커피를 두 달 동안 끊고(이게 가장 힘들었다!), 얼마 전엔 인스턴트 음식과 설탕 함량이 많은 디저트를 끊었다. 요즘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30분짜리 모래시계를 놓고 훈련 중이다. 모래알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30분 동안은 절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기, ‘딴짓 않기’가 규칙이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가며 일하다 보면 나중엔 모래시계를 잊고 집중하게 된다. 고요히 떨어지는 모래를 보고 있으면 숨어 있던 시간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오싹하다. 지금도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자아 단련을 위해서라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하게 굴었나? 더 할까, 덜 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김현승 시인은 “파도가 될 것인가 / 가라앉아 진주(眞珠)의 눈이 될 것인가”라고 노래했다. 나는 진주도 아니면서 가라앉은 보석 흉내를 내느라 애써 왔는지도 모른다. 한편 솟구치는 파도가 되기 위해선 얼마나 까치발을 서고 점프를 해야 할까. 애쓰지 말자. 설렁설렁 해찰을 하며 살자. 올해의 원대한 목표로 정해 두었는데 자꾸 잊는다. 나는 진주도 모르고 파도도 모르니, 그냥 나다운 상태로 꾸준하고 소소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몸에 마음을 가져다 댈 때 그 ‘꼭 맞음’의 느낌으로. 허리가 구부러질 때 마음이 허리에 가 같이 구부러지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땐 마음도 손에 가서 얼른 잡히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상태로 지내면 좋겠다. 올 설에도 여전히 나는 (팔자 좋게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낼 것이다. 떡국을 끓이고 잡채와 갈비찜을 만들고, 동그랑땡은 반찬가게에서 사 올 것이다. 명절 음식을 먹으며 금세 질리겠지. 며칠 동안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역시 물리는군. 새콤한 동치미를 떠먹고 싶군. 그러다 정색하고 존 버거의 문장을 곱씹어 보겠지. “음식도 일종의 전언(傳言)이다. 먹는다는 것은 전갈을 받는 것이다. 누가 어디로부터 보낸 전갈인가?” 먼 곳에서 이쪽으로 전갈을 보낸 사람들을 생각해 보겠다. 잘생긴 당근을 보며 놀라야지. 당근아, 너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구나. 흙 망토를 두르고 있는 여왕 같아. 양배추야, 너는 한 겹 한 겹 뜯기지만 뭉쳐 있을 땐 무기처럼 단단해. 대단하구나! 하지만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속으로만 외치겠다. 공책에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일’, 혹은 ‘싫어하는 일 좋아하기’ 목록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다.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싫어하는, ‘바퀴벌레 사랑하기’인데 차마 못 쓰겠다. 이건 패스. 스노보드 타기, 삐삐처럼 무릎까지 오는 짝짝이 양말 신고 친구 만나기, 동네 할머니랑 친구 되어 보기는 어떨까. ‘숨은그림찾기’를 만들어 인생이 한없이 지루하단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줘 볼까. 존경하는 스승에게 덕담은 괜찮으니 세뱃돈 주세요, 생떼 부려 볼까. 날 이상하게 보겠지…. 노다지다! 날마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생각한다. 설 지나면 어때. 밤이 지나면 늘 새 날이 기다린다. 정월 초하루도 숱한 날 중의 하루일 뿐. 달마다 초하루를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매 달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아 있다. 변신로봇처럼, 자꾸 변신을 꿈꾸는 자에겐 기회가 많다. 올해 설날은 갓난아이가 맞은 인생 첫날처럼 맞이하자. 해 보자. 처음처럼 아니라, 진짜 처음 하는 일을!■ 박연준 시인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스물 다섯 살 차의 장석주 시인과 나이를 뛰어넘은 ‘시인 부부’로 유명하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가 있다.
  • 송파 “백제의 온기로 추위 피해요”... 바람막이 ‘정양막’ 설치

    송파 “백제의 온기로 추위 피해요”... 바람막이 ‘정양막’ 설치

    서울 송파구가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설치한 바람막이의 이름과 디자인에 백제 역사를 담아 눈길을 끈다. 과거 한성 백제의 도읍지였던 지역의 역사를 주민들에게 홍보하겠다는 취지다.송파구는 관내 버스정류장 41곳에 바람막이 ‘정양막’(사진)을 설치했다고 31일 밝혔다. ‘정양’은 ‘해가 중앙에 있어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때’라는 의미다. 백제 근초고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진 철제 칼 ‘칠지도’에는 ‘정양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만들었다’고 새겨져있다. 송파구는 칠지도의 역사적 가치를 기리는 동시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막사’라는 뜻을 담아 바람막이의 이름을 정했다는 설명이다. 정양막에는 백제의 기와 문양을 그려넣고, 칠지도와 정양막의 의미에 대한 설명도 적었다. 정양막은 가로 약 3.6m, 높이 2.1m로 성인 10여명이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됐다. 출입문은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미닫이문 형태로 설치했으며, 조립식이어서 해체 후 매년 겨울마다 재활용이 가능하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텐트처럼 세워진 ‘독립형’과 보도 폭이 좁은 곳의 버스승차대에 결합된 ‘일체형’ 두가지 형태다. 겨울 한파에 이어 봄철 꽃샘추위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다음달까지 운영된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문화마당] 반복의 슬픔과 기쁨/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반복의 슬픔과 기쁨/강의모 방송작가

    아침이면 커피 한 잔을 들고 데스크톱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새해 들어 컴퓨터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인터넷 연결이 자주 끊겨서 애를 먹이더니 종내 불통이 됐다. 바이러스 체크를 하고, 연결선을 뺐다 끼웠다 해봐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아는 이에게 물었더니 설정을 과거 시점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써 보라 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며칠 전으로 돌려야 가장 안전한 걸까? 설정한 날짜 이후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새 작업이 있다면? 과거와 미래의 걱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일단 노트북은 살아 있으니 한숨을 돌리기로 하고 책을 들었다. 어쩌다 보니 올해 첫 독서는 작년에 읽은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재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잡았는데 때때로 내용이 너무 낯설어 신기했다. 기억하고자 접어 둔 페이지와 지금 줄을 긋는 부분이 달랐고, 첫 독서 때 추측했던 인물의 감정과 다시 전해지는 그의 슬픔과 기쁨은 자주 어긋났다. 다만 같은 것은 첫 번째나 두 번째나 읽기에 몰입할 때 느끼는 행복감뿐이었다. 이 소설에는 뒤로 걷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자들의 독특한 애도 방식이다. 뒤로 걷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며 등으로 밀고 나가는 걸음이다. 그 행위가 매혹적이긴 하나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 실행해 보진 못했다. 그저 이 소설을 꼭 한번 더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쩌면 같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뒤로 걷는 것과 비슷한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올해 첫 영화를 보러 나갔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영화는 다도를 중심으로 느리고 지루한 시간이 펼쳐진다. 노스승인 다케타 선생은 다도를 배우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에 단 한번이다 생각하고 임해주세요.” 새해맞이 다도회에는 그해의 동물이 그려진 찻잔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올해 첫 다도회엔 12년 전 꺼내 쓰고 깊숙이 보관했던 돼지 문양의 찻잔이 등장했을 것이고, 모임 후 갈무리한 찻잔은 앞으로 또 12년을 살아내야 다시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1년의 반복에 열두 해 터울의 반복이 겹쳐 있으니,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 찻잔 속에 담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일일시호일’과 비슷한 조합으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이 있다.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자신의 좌우명이라며 수업 시간에 유독 강조했던 구절이다. 뒤늦게 궁금해진다. 그분의 삶에는 어떤 평화가 있었을까.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일일시호일’이 같은 일상에서 기쁨을 건지는 지혜라면, ‘매일매일 새로워지라’는 ‘일신우일신’은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 호된 채찍질일 테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렇게 한나절 이런저런 딴짓으로 마음을 정돈한 후 데스크톱 컴퓨터 문제로 돌아왔다. 해결 과정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고 쉬웠다. 본체를 열어 보니 부속들 틈틈이 먼지가 수북했다. 진공청소기를 대고 샅샅이 훑었다. 뚜껑을 닫고 전원을 켜니 모든 게 정상이 됐다. 과거와 미래의 걱정들도 먼지와 함께 날아갔다. 복구를 기념하며 ‘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는 영화 속 대사를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에 붙였다. 익숙한 자판과 모니터로 지루한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할 때,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 김병조 방송퇴출→교수 “정치적 멘트 후폭풍…덕분에 새 인생”

    김병조 방송퇴출→교수 “정치적 멘트 후폭풍…덕분에 새 인생”

    개그맨 김병조가 말실수 한 번에 방송 퇴출된 사연을 공개한다. 24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는 “지구를 떠나거라”,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유행어로 한 시대를 웃기고 울렸던 개그맨 김병조의 우여곡절 인생 이야기가 공개된다. 김병조는 1975년 TBC 개그 프로그램 ‘살짜기 웃어예’로 데뷔,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유재석을 능가하는 국민 MC 겸 인기 개그맨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배추머리 김병조는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져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1987년 6월 한 정당의 전당대회에 참석해 “다른 당을 비꼬는 개그를 해 달라”는 요청에 공연을 진행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한 기자가 그의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그는 “방송사와 집으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가족들을 위협하는 협박 전화까지 감당해야 했다. 억울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한 만큼 많은 수확을 얻은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현재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병조는 수십 년째 매주 수요일, 조선대학교 강단에 선다. 13년 전 갑작스러운 건강의 위기가 찾아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그런 그에게 수요일은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는 “운전을 못해 30년 동안 아내가 운전사 역할을 해줬다”고 말하며 4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의 옆에서 내조해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활동을 시작한 사실도 공개하며 “처음에는 아들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아들과 추억을 쌓고 있는 기분이다”고 전했다. 앞서 김병조는 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방송 퇴출된 당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는 “1980년대는 한창 인기가 많았을 때고 내 말 한마디가 영향을 미칠 때였다”고 운을 뗐다. 이홍렬은 “당시 김병조의 발언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미리 작성된 대본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김병조도 “대본을 보고 꺼림칙하긴 했지만 나는 연기자니까 해야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는 방송 퇴출이었다. 이에 대해 김병조는 “힘들었다. 어머니께서 밥만 먹으면 된다고 해서 힘을 얻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한학도 하고 지금은 강의를 하고 있다”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당시 그 기자가 원망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김병조는 “그 기자 덕분에 새로운 인생, 진짜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내주는 분이 스승”이라고 했다. 오늘(24일) 밤 10시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끌려간 학생들 대부분 실종…참전 중인 나 대신 모친이 졸업장 받아”

    “끌려간 학생들 대부분 실종…참전 중인 나 대신 모친이 졸업장 받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9회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김춘식 ▲인천학도의용대 창영분대 ▲인천중학교 3학년 15세 때 참전 1935년 5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서, 6년제 공립 인천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자원입대한 후에 참전하여 1954년 4월 만기 명예 제대함.김춘식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23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치과 3층) 대담 김춘식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6·25 사변이 터지고 인민 횡포에 시달리다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 고교)에 다닐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 집은 동구 창영국민학교 옆에 있었으며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인민군이 인천에 들어오자 곧바로 학생들을 인민의용군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끌려간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되었다. 그해 여름을 집에서 숨어 지내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맞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우리 동네에 생긴 인천학도의용대 창영분대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대원은 박희송과 해병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동네 친구 최춘국이다. 인천학도의용대 따라 남하 이후 국군의 후퇴로 전세가 불리해져서 우리들은 1950년 12월 18일 남하하게 되었다.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걸어서 밤이 깊어서 안양까지 갔다. 안양에서 민박으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수원으로 또 걸어갔으며 수원부터는 기차도 타고 걸어서 가면서 20일 정도 걸려서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산진국민학교의 육군 제2 훈련소 입소 나는 1951년 1월 10일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이후 20여일 훈련받은 후 군번 받고 정식 군인이 되어, 경상남도 진주농업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8사단에 배치받았다. 그때 내 소속은 8사단 16연대 2대대 8중대 소속이었다. 이렇게 배치된 8사단은 병력보충 등 재편을 끝나게 되었으며 그런 얼마 후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부대가 진주에서 이동하여 주둔한 지역이 경상남도 산청이라는 곳이었다. 그 후 함양, 거창 등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공비토벌작전에 참전하였다.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당시 공비토벌은 주로 겨울에만 하는데 산속에 있는 갈대가 눈이 내려 쓰러질 때가 공비들이 활동을 못 하고 노출이 되니까 그때가 토벌작전 하는데 제일 좋은 시기였다. 이후 다시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됐다가 다시 전방 중동부 전선으로 이동하여 지형능선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가 전투했던 지형능선이라고 하는 것은 산세가 다섯 손가락처럼 뻗었다고 해서 지형능선이라고 하였다. 나는 휴전이 되고 9개월 후인 1954년 4월달에 만기명예제대를 하였다. 어머니가 대신 받은 나의 인천중학교 졸업장 당시 군에서의 제대는 상이제대뿐이었으며 휴전 후 내가 1차로 만기 명예 제대를 하였다. 나는 인천중학교 3학년 15세에 국군에 자원입대해서 만 3년 4개월 만에 제대했다. 이때는 전쟁 중이라서, 제대는 심하게 다치거나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만 제대를 시켰고, 1954년에 만기제대라는 것이 생겼다. 나는 군에서 제대한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내가 다니던 인천중학교에 찾아갔으나 제대 후 당시는 6년제 중학교가 3년제 중·고등학교로 분리가 되는 학제개편 때문에 고등과는 없어지고 3년제 중학교만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6·25 당시 나는 인천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국군에 자원입대하였고 내가 전쟁터에 있을 때인 1951년 8월에 어머니께서는 전쟁터에 있는 아들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중학교 졸업장을 받으신 것이었다.6년제에서 3년제로 바뀐 인천중학교 그리하여 1954년 제대 후 인천중학교 졸업장을 갖고 인천중학교를 찾아갔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 최고 학년이 되어 내가 돌아갈 학년은 없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재입학 문제를 의논했더니 교장선생님은 “아직 고등학교 인가가 안 나서 그런데 이제 곧 고등학교가 인가되면 받아줄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망하여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갔다. 나의 재입학을 받아준 인천기계공고 집에서 실망하여 지내고 있었는데, 같이 자원입대하고 제대한 한 친구가 인천기계공고에 알아보았더니 학교에서 한번 학교로 오라는 연락이 왔으니까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인천기계공고에 가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어릴 때 입대하여 제대하게 된 과정과 제대한 후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더니, 학교 측에서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좋다”고 하더니 “담배나 술을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네, 합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그것은 전부 군대에서 배운 거라 하니까 학교에서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학교에 와서는 절대로 담배나 술을 할 수 없으며 그 대신 집에서 사복 갈아입고 마시되 학교 재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한다면 입학을 허락하겠다”고 하면서 조건을 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위 조건을 지키기로 하고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1학년에 편입학하고 평탄히 학교생활을 하고 졸업하였다.남기고 싶은 말 6·25 때 우리 인천의 어린 학생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운 것은 그 시대에 닥쳐온 우리들의 운명이려니 하고 자원입대하여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리고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낸 데 대하여는 그 개인마다의 손실은 컸겠지만 고향 인천과 나라를 위하여서는 보람 있는 행동이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참전 역사를 찾는 일은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가 함이 당연한 일인데도 큰 비용과 정신 그리고 시간이 소모되는 이 엄청난 일을 개인이 하는 데 대하여 감사한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으며 부디 이 인천학생 6·25 편찬사업이 무사히 성공하여 우리 인천의 후대(後代)들에 인천의 자랑으로, 그리고 좋은 본보기로 남겨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0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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