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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내형’ 이강인 “마지막 올림픽처럼 준비… 목표는 금메달”

    ‘막내형’ 이강인 “마지막 올림픽처럼 준비… 목표는 금메달”

    스무 살에 올림픽 그라운드를 밟는 ‘김학범호의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이 도쿄올림픽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이강인은 6일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미디어 인터뷰에서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 생각하며 준비 중”이라며 “다음 올림픽보다 도쿄올림픽,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고 각오를 불살랐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도 연령 제한에 상관없이 출전할 수 있는 이강인은 지난달 제주도 소집 훈련 때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에 처음 합류한 뒤 도쿄행 최종 엔트리에 전격 발탁됐다.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는 그는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을 꿈꾸는 김학범호에 ‘골든 보이’나 마찬가지다. 201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18세 막내로 출전해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최우수선수)을 수상했다. 준우승은 한국 남자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이강인은 “U-20 월드컵처럼 올림픽은 정말 크고 중요한 대회”라며 “지난번과 다름 없이 목표는 우승”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패스 능력이 출중하고 왼발을 잘 쓰는 이강인은 김 감독이 중점을 두고 있는 세트피스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상황에서 뛰든 제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제 장점으로 팀에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올림픽 팀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는 이강인은 “형들이 귀찮아할 수도 있지만 잘 대해주고 장난도 많이 치고 해서 기쁘다”며 “형들과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고 바라기도 했다. 이강인은 지난달 조모상을 당한 데 이어 유년 시절 축구 스승이었던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도 이별했다. 이번 올림픽이 더 특별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지난 일이라 지금은 괜찮다”며 “일단 도쿄올림픽이 있어 따로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자연과의 아름다운 상생과 공존을 노래하는 작가, 유미숙 개인전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상생과 공존, ‘어울다展’>

    자연과의 아름다운 상생과 공존을 노래하는 작가, 유미숙 개인전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상생과 공존, ‘어울다展’>

    자연은 언제나 예술창작의 원천이다. 이러한 자연을 스승 삼아 인간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재해석해 온 유미숙 작가가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신문사 1층 서울신문·서울갤러리 특별전시장에서 개인전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상생과 공존, 어울다展’을 연다. 본 전시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과 공존을 테마로 바쁜 일상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쉼’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회화 10점을 선보이는 유 작가는 “항상 세속적 욕망이나 집착으로 부터 한발 물러나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자연을 마주하며 깨달음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자연 속에 인간은 아주 작고 어리석은 미성숙한 존재일 뿐이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다 같이 숨 쉬며 조화롭게 살아가길 희망하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인간과 인간의 화해를 기대하는 뜻으로 ‘어울다’의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어울다’는 ‘어우르다’의 우리 옛말로 삭막한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라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품은 광목이나 아사천 등의 자연친화적인 재료에 아크릴 물감과 먹을 사용하여 작업했는데, 마치 일러스트 같은 깔끔한 화면 처리와 여백의 미는 현대적 감각의 문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미술평론가 안영길은 그의 작품에 대해 “외로운 관조자의 자연 바라보기를 통해 선과 면으로 창조한 마음의 풍경들은 자연스럽게 고독한 자신의 아이콘과 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며, “마주 보며 대화하는 듯한 새의 이미지를 비롯하여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자연의 풍광들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어울리되 부화뇌동하지 않음)’의 덕목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서양화를 전공한 유미숙 작가는 201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 부문 특선, 산둥 국제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마니프 뉴시스 온라인 아트페어’, ‘한국·헝가리 현대 미술 페스타’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했다. 현재 경기미협사무차장으로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초대작가, 조형예술교육학회, 한국미협 등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실존의 심연에서 건져낸 언어…견고하게 빚어낸 문학의 주름

    실존의 심연에서 건져낸 언어…견고하게 빚어낸 문학의 주름

    더위가 일찍 찾아온 초하(初夏)에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시인 정현종 선생을 나희덕 시인과 함께 뵀다. 건강하신 스승의 말씀을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나 시인이 연필을 선물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들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좋아하는 그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목사가 목수가 되어 만든 연필을 바다 건너 구입해 스승과 친구에게 나누어 줬다. 순간 ‘연필’이라는 상징이 세 사람의 글쓰기를 환하게 이어 주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나희덕만이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그의 첫 시집 ‘뿌리에게’(1991) 발문에 정현종 선생이 쓴 한 구절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의 나희덕은 시를 열심히 쓰는 학생이었고 산문을 봐도 우선 문장력이 마음 놓이는 학생이었다. 말이 그렇지 대학 시절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글을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벌써 상당히 견고한 문장은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인터뷰는 그의 ‘견고한 문장’이 빛을 발하는 신작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삶과 시 전체로 번져 갔다. 그는 이제 막 종강을 해서 한숨 돌리고 있다면서 벌써 세 학기째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좀 지치기도 했다고 한다. “책을 내고 나서 한동안 행사나 강연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어요. 방학에는 조용히 시인의 자리로 돌아가 살아 봐야죠.” ●시인의 눈으로 읽어 낸 오솔길 같은 책 이번 산문집에서는 ‘아름다움’과 ‘주름’의 의미가 각별하다. “예술의 여러 장르들을 넘나드는 책을 낸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시나 문학이 아닌 다른 예술장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헤아려 보는 일이 많은 공부와 즐거운 경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예술적 성취를 논하는 비평가의 역할보다는 예술적 순간이 시작되어 창조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시인으로서의 느낌을 책에 가득 채워 넣었다. ‘주름’은 무슨 뜻일까? “희로애락과 온갖 기억이 깃들어 있는 우리 몸과 마음의 주름처럼 예술작품에 새겨진 주름을 찬찬히 펼쳐 보면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예술이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그 주름 속에 감춰진 심연이나 온기를 제 방식으로 길어 올린 기록들인 셈이다. 책에서 호명한 여러 예술가들은 시대도 장르도 성별도 국적도 개성도 모두 다르다. 한때 피아노를 치고, 유화를 그리고, 사진에도 남달리 심취했던 나 시인의 예술적 경험이 다른 예술언어에 대한 이러한 차근한 기록을 가능케 했을 성싶다. 그리고 그 결실은 그가 지상에 남기는 또 한 권의 시집인 것 같기도 하다.●전위적 언어가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의 비밀 그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종교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려 했던 분이었고 그러한 인생관으로 경북 산골에서 신앙공동체를 일궜다. 아버지는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산을 내려와서 정착한 곳이 논산이었다. 그의 시에 줄곧 나타나는 현실과 종교의 갈등적 공존이라거나 타자를 향한 한없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유전자와도 같은 것이었을 터이다. 그에게 종교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성장기에 갈등도 심했다. 문학을 하게 된 것도 “종교적 수행과 사회적 혁명 사이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한 자의 경계인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한동안 그에게 종교와 문학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간극을 지닌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 양자의 갈등이 더이상 자신을 억압하지 않게 됐다. 그는 “흔히 제 시에 대해 붙어 다니는 ‘생태적, 여성적, 공동체적’ 특성이 넓은 의미의 ‘영성’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더이상 종교성에 갇히지 않으면서 다양한 영성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의 주름들’ 서문 첫 행에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어린 시절 예배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던 가녀린 손이 써 내려간 시가 진정한 찬미(讚美)의 노래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초의 예술적 꿈이었던 음악적 선율이 그만의 시로 펼쳐져 간 것이니까 말이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돼 30년 넘는 시력을 일구어 왔다. 그의 초기 시는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1997)에 담겨 있다. ‘형식적 단정함과 따뜻한 모성’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고단함과 기다림과 상처와 통증으로 버텨 온, 나희덕만의 시간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사라져 감으로써 존재의 빛을 남기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애착, ‘시’를 향한 자기 엄격성의 산물로 진화해 갔다.오랫동안 이러한 지속과 변이를 거듭해 온 그의 시에서 우리는 한동안 시단을 잠식했던 분열과 환각, 우울과 공포, 광기와 모멸, 전위적 포즈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언어들이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의 비밀스러움을 탐색했고, 그만큼 그의 시는 다양한 폭과 깊이를 담고 있으면서도 언어 선택에서만은 고전적인 청교도적 자세를 유지해 왔다. “저의 문학 수업은 어쩌면 등단과 함께 시작됐고 늘 학생의 마음으로 지내 온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빛에서 어둠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식물성에서 동물성으로, 낙관주의자에서 비관주의자로 조금씩 변화했죠.” 그 점에서 그는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2001)이 중요한 변곡점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힘들고 불안할 때 비명처럼 한숨처럼 토해 낸 시들이어서인지 그 시집은 자신에게도 애틋하고 독자들에게도 가장 공감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후 시인은 ‘사라진 손바닥’(2004)과 ‘야생사과’(2009)에서 자신의 시를 변화시키려는 모험과 도전을 새롭게 보여 준다. 그 안에는 나희덕 시의 속살이 지속하고 변이하는 충일하고도 격렬한 교차 과정이 펼쳐져 있다. 그는 이 시집들을 통해 ‘가이아’에서 ‘사이렌’으로, 상처를 ‘다스리는 것’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뿌리’로부터 ‘가지’로 ‘잎’으로 끝없이 시적 원심을 확장해 갔다. 그러면서 가장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심층으로서의 ‘죽음’과 ‘사라져 감’의 형이상학에 대해 노래하는 성숙한 시인이 되어 갔다. 그 뚜렷한 귀납적 결실이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이었을 것이다. 그는 시집 뒤표지 글에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사라진 존재를 불러오려는/ 불가능한 호명, 시”라고 썼다. 그렇게 이 시집은 한 시대의 죽음을 넘어 애도와 치유라는 이중 기능을 충실하게 담아낸 결과로 남았다.●진퇴의 왕복을 벗어날 수 없는 시의 힘 여덟 번째 시집 ‘파일명 서정시’(2018)는 ‘눈과 얼음’으로 시작해 ‘서른세 개의 동사들 사이에서’라는 시로 끝난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간신히 살아내면서, 현실의 그 한기와 단단함을 조금씩 녹여내면서, 마침내 허공과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눈과 얼음이라는 고체적 상태에서 어떤 기화와 액화를 위한 몸부림을 쳤다고 말한다. 이 작품들을 쓰는 동안 개인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다양한 죽음과 폭력을 통과해야 했는데 막상 시집으로 내고 나니 그런 시간에서 조금은 놓여나게 되었다고 한다. 나희덕 시의 찬연한 결실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끔 배시시 웃기를 잘한다. 물론 그것은 발랄한 성정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고통을 지나고 나서 얻어 낸 어떤 넓음 같은 것에서 온다. 그의 이름처럼 웃음은 ‘희’(喜)고 넓음은 ‘덕’(德)이다. ‘파일명 서정시’의 ‘시인의 말’에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라고 썼다. 아름다움을 향한 간절한 그의 언어를 가장 적정하게 담은 말이 아닐까 한다. “저를 머물게 하기도 하고, 나아가게 하기도 하고, 결국 그 진퇴의 왕복 작용에서 끝까지 벗어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시는 참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시보다 앞장서지 않고 겸허하게 시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럴 것이다. 그나 나나 정현종 선생을 만난 것은 문학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감사한 인연이다. 선생은 시인이 지녀야 할 자존과 주름까지 낱낱이 보여 준 스승이시다. 불가피하게 이 글은, 스승과 제자들이 모처럼 만난 초여름 저녁에 시인 친구와 나눈 우정의 기록도 되는 셈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독일 고속도로변 쓰레기통에 350년 된 유화 두 점 버려져

    독일 고속도로변 쓰레기통에 350년 된 유화 두 점 버려져

    지난달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고속도로 노변 쓰레기통에서 17세기에 그려져 값나가는 유화 두 점이 발견됐다. 네덜란드 화가 겸 작가 사뮈엘 반 후그스트라텐(1627~1678년)과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벨로티(1625~1700년)의 작품이었다. 한 남성이 뷔르츠부르크 남쪽 A7 고속도로 길가에서 발견해 쾰른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직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경찰이 그림 주인이나 그림이 버려진 이유에 대해 실마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전문가들이 초기 감정한 결과, 두 그림 모두 진품으로 확인됐다. 후그스트라텐의 그림은 붉은 모자를 쓴 한 소년의 초상화다.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져 있는 벨로티의 그림은 웃고 있는 자화상이다. 후그스트라텐은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년)의 제자이며 다양한 시각 실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기법은 작품을 3D 입체 화면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르드레흐트 출신인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와 렘브란트 문하에 들어갔다. 렘브란트 사후에 ‘Introduction to the High School of the Art of Painting’를 출간했는데 스승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의 작품은 최근 경매에서 좋은 값을 받았다. 한 여자 목동이 나무 아래에서 쉬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2019년 런던의 본햄스 경매소에서 5만 62파운드(약 7878만원)에 팔렸다. 십자가 처형을 그린 작품은 랏 서치(Lot Search)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8년에 28만 5285 파운드(약 4억 5000만원)에 팔렸다.벨로티 역시 바로크 시대 화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베네치아 명문가들이 그를 후원했다. 스위스의 갤러리아 카네소가 정리한 바이오그라피에는 베네치아의 화가 지롤라모 포라보스코 문하생으로 “특히 초상화에 재간을 드러냈는데 휴매니티와 자연스러운 묘사“가 돋보인 화가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 대소변 가릴수도 없는 처지 돼버렸다”[이슈픽]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 대소변 가릴수도 없는 처지 돼버렸다”[이슈픽]

    태권도장에서 낙법 교육을 받던 중 발생한 사고로 사지 마비가 된 아들이 CCTV가 없어 책임도 묻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14일 오후 현재 해당 청원은 7266명이 동의한 상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지 마비가 된 어린 아들의 억울함과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태권도 관장의 강력한 처벌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 A씨는 지난해 2월 20일 태권도장에서 낙법교육 도중 일어난 사고로 경추 1번과 5번의 골절 진단을 받아 사지 마비 상태로 1년 넘게 병상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초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는 이제 엄마 없이 혼자서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는 처지의 가엾은 아이가 돼버렸다”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지만, 별다른 호전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태권도 관장이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아이에게 자신의 몸 위로 회전 낙법을 시켰다. 이것은 수련생의 안전을 책임지는 교육자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는 사고 발생 후 태권도 관장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초기에 태권도 관장은 집에 찾아와 스승의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책임지고 돕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얼마 후 관장 측은 본인들의 어려움을 앞세우며 도장에 가입된 보험조차 접수하지 않는 등 책임 회피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A씨는 처벌을 요청했지만 사건은 도장 내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검찰에서 혐의 없으므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A씨는 “오로지 제 아들과 한 살 터울의 동생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건조사가 진행됐다”며 ”태권도장에서의 중상해 책임을 외면하는 지도자의 처벌과 CCTV 설치의무화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모든 걸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억울함에 자포자기한 상태”라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A씨는 “관장은 불기소처분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다. 그 어떤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미래는 누구에게 책임과 보상을 물어야 하는지 억울하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저희 아이는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겠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태권도 관장의 법률 대리인은 “검찰에서 두 번이나 무혐의 판단이 나왔다”며 “피해자 측 항고가 받아들여져서 재수사도 했는데 지난 5월에 최종적으로 혐의가 없다고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을 신청했다가 취소한 이유는 보험사 약관에 따르면 관장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정이 돼야 보험료가 지급 가능하니 일단 법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사건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따듯한 우유 목소리” 84세 英할아버지 ASMR에 ‘홀딱’ 빠진 이들

    “따듯한 우유 목소리” 84세 英할아버지 ASMR에 ‘홀딱’ 빠진 이들

    “젊은 사람이 이런 걸 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난 유튜브란 게 뭔지, 인터넷이 어떤 건지도 모른단 말이요.” 올해 84세로 영국 더비셔주 베이크웰에 사는 전직 농부 존 버틀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ASMR이 묘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해 유튜브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고 BBC가 14일(한국시간) 전했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임말인 ASMR은 다양한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뜻한다. 사실 그의 동영상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치기 전의 인터뷰인데 이 적막하고도 막막한 세태를 위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게 여겨진다. 500만명 이상이 시청했으며 할아버지의 정기 구독자는 12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승 제다이를 현실에서 만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할아버지일 것이란 반응부터 “할아버지 목소리가 따듯하게 데운 우유 한잔 같다”고 소감을 적은 이도 있었다. ‘침대 곁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는 이도 있었다. 영국인 재스민 부처는 “내 생각에 존의 동영상은 우리 모두가 신체적으로 속박돼 있다고 느끼는 시대에 정말 많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버틀러 할아버지는 평생 명상을 해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 있고 안식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다. 하느님이나 절대자가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분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마음의 균형을 찾고 평안해지고자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남성,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여성이 동영상으로 올린 댓글을 보며 할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살아오면서 난 늘 불운한 사람이며, 사람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공유할 수 있어 가만히 감사하며 살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단식여왕’ 된 복식여왕 크레이치코바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26·체코)가 생애 첫 메이저 단식 트로피와 통산 세 번째 복식 우승컵을 한꺼번에 들어 올렸다. 크레이치코바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끝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복식 결승에서 카테리나 시니아코바(체코)와 호흡을 맞춰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베서니 매틱샌즈(미국) 조를 1시간 14분 만에 2-0(6-4 6-2)로 제압하고 메이저 복식 통산 세 번째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크레이치코바는 앞서 열린 단식 결승에서도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러시아)를 1시간 58분 만에 2-1(6-1 2-6 6-4)로 제압하고 우승했다. 세계랭킹에서도 이전까지 단식 33위, 복식 7위였던 그는 2관왕 등극으로 단식 15위와 복식 1위에 다시 오를 전망이다.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과 복식을 한 해에 석권한 것은 2000년 마리 피에르스(프랑스) 이후 올해 크레이치코바가 21년 만이다. 크레이치코바는 ‘복식 전문가’다. 2014년 US오픈 단식 예선으로 메이저대회에 발을 내디뎠지만 이듬해부터 복식에 전념했다. 이전까지 19차례 출전해 2018년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서 2번 우승했고 2019년 1월까지 복식 세계랭킹 1위로 군림했다. 단식에서는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지난해 프랑스오픈 16강에 이어 5번째 출전만인 올해 마침내 우승까지 일궈냈다. 3대를 이은 체코판 ‘청출어람’이 눈에 띈다. 크레이치코바는 1981년 하나 만들리코바에 이어 체코 선수로는 두 번째 프랑스오픈 단식 챔피언이 됐다. 그런데 만들리코바가 가르쳤던 이가 크레이치코바의 스승인 야나 노보트나다. 체코 테니스의 ‘전설’로 불리는 노보트나의 지도를 받은 크레이치코바는 19세이던 2014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에 데뷔해 처음으로 복식 결승에 올랐고 이듬해 첫 복식 타이틀을 따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이날 프랑스오픈 단·복식을 석권한 크레이치코바는 “노보트나 코치님이 하늘에서 늘 돌봐주고 있었다. 그 역시 하늘에서 오늘 내 우승에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짚은 우리 의식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올가을 시흥서 첫 전국 짚풀공예대회 열 계획”

    “짚은 우리 의식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올가을 시흥서 첫 전국 짚풀공예대회 열 계획”

    “예전엔 짚으로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도 지어 우리 의·식·주 모든 삶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죠. 올가을엔 시흥시 호조벌에서 전국적인 짚풀공예대회를 열 계획입니다.” 경기 시흥시 향토민속보존회 회장이며 대한민국 짚풀공예 숙련기술 김이랑(62) 전수자는 공예재료인 볏짚은 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다고 13일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대문 앞에 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걸어 뒀다. 아이를 뉘일 때 미리 방바닥에 볏짚을 깔아 두면 구들장이 너무 뜨거워지는 걸 막아주고, 구들장이 식어가면 추운 걸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태어난 우리들은 짚신을 비롯해 도롱이·짚삿갓·둥구미 등을 사용하며 살다 생을 마감하면 새끼줄에 묶여 땅으로 간다. 사람과 짚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동안 떼려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걸 다 내어주는 짚을 재료로 하는 짚풀공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어오고 있는 민속전통이다. 김 전수자는 20년 전 어려운 생활고에 아이 둘을 키우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을 무렵 시흥 신천동의 한 복지사 권유로 처음 짚풀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시흥의 드넓은 호조벌이 창작작품의 무대다. 짚으로 씨줄을 삼고 시간으로 날줄을 삼으며 볏짚공예 길을 운명처럼 걷고 있는 김 전수자는 “사람살이에 필요한 모든 필수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짚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농기구들이 주된 작품소재다. 공방 안에는 누런 황소를 비롯해 토실토실 웃는 돼지와 빗자루·맷방석과 바구니·지게·삼태기 등 크기별로 200여개 다양한 둥구미들이 있다. 이 중 최신작인 ‘티라노 사우루스’가 눈길을 끈다. 호조벌을 상징해 ‘호티’라고 부른다. 수많은 작품 중 김 전수자가 가장 아끼는 건 짚신과 맷방석·길마다. 볏짚은 습도에 가장 약하므로 보존을 위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고 작품 보존기간은 조건만 잘 갖춰지면 1000년 이상도 가능하다고 한다.김 전수자는 “짚풀공예는 예술이라기보다 전승이며 작가라기보다 장인이고, 창작이기보다는 맥을 이어가는 전통이자 민속”이라며 “짚풀공예 분야 장인으로서 세대 간 단절되지 않게 맥을 잇고 보존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처음 볏짚에 쓸려 손에 피가 맺히고 지문이 없어지듯 닳아 생손을 앓는 경험을 수없이 하고 나서야 볏짚 두려움이 없어졌다. 보통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길게는 새벽 2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커피로 잠을 쫓으며 몰입해 작업한다. 한 자리에 오래도록 구부리고 앉아 작업을 하다보면 어깨며 팔이며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하루라도 짚을 엮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는 김 전수자. 그동안 노력으로 선조들한테 물려받은 손끝의 기량도 축적돼 있고, 전남 곡성에 있는 전남무형문화재 제55호 임채지(83) 스승으로부터 짚풀공예의 다양한 기술도 배웠다.피나는 노력을 인정받아 2018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우수한 숙련기술의 단절을 방지코자 숙련기술을 전수하는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됐다. 역점사업으로 올해 호조벌 300주년을 맞아 가을추수 후 전국 규모의 짚풀공예 솜씨 겨루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번 대회를 전국 솜씨겨루기 대회의 원년으로 삼고 짚풀공예 분야와 시흥시의 정체성을 홍보하는 무대로 만들어 호조벌의 역사를 빛내고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물려주겠다”면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의미있는 짚풀축제 잔치를 펼쳐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김 전수자는 “이젠 무형문화재가 되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볏짚의 자연물을 접할 수 있는 일상놀이를 통해 감성인지와 인성함양 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체험기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다음은 소박한 짚풀공예 전수관을 갖고 싶다. 안전한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옮겨다녀 작품이 훼손되고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호조벌 근처에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특히 김 전수자는 “다른 지자체에서는 일자리를 제공해 소득창출과 노인 치매예방에도 좋아 시민들에게 권장하고 있다”면서, “100세 실버시대 자아실현과 호조벌 정체성을 세우는 데도 매력적인 짚풀공예 노인일자리 창출사업을 시흥시에 적극 제안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 전수자는 서울산업대 미술학사 졸업 후 전주대 대학원에서 한지문화산업을 전공했다. 2001년부터 임채지 선생한테 짚풀공예를 사사했으며 국가숙련기술전수자 짚풀공예부문, 한얼의 천년혼으로부터 명장자격을 받았다. 베트남 세계전통민속축제 후에페스티벌을 비롯해 시흥갯골축제, 연성문화재와 대보름행사, 전남 곡성 심청축제, 남도축제, 고성 세계공룡엑스포, 정선 아리랑제 등에 출품했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태권도장 갔다가 사지마비 된 아들…관장 책임회피”

    “태권도장 갔다가 사지마비 된 아들…관장 책임회피”

    10대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낙법교육을 받다가 사지마비가 됐으나 CCTV가 없어 책임을 묻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됐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사지 마비가 된 어린 아들의 억울함과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태권도 관장의 강력한 처벌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12일 오후 3600명이 넘는 동의를 얻고 있다. 청원인은 “아들이 지난해 2월20일 태권도장에서 낙법 교육 도중 일어난 사고로 경추 1번과 5번의 골절진단을 받아 사지 마비 상태로 1년 넘게 병상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초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는 이젠 엄마 없이는 혼자서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처지의 가엾은 아이가 돼 버렸고 별다른 호전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청원인은 “사고 초기에 태권도 관장은 집에 찾아와 스승의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책임지고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후 관장 측은 본인들의 어려움을 앞세우며 도장에 가입된 보험조차 접수하지 않는 등 책임 회피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원인은 처벌을 요청했지만 사건은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그는 도장 내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사고 당시 상황을 현장에 있던 어린이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로지 제 아들과 한 살 터울의 동생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건조사가 진행됐다”며 “태권도장에서의 중상해 책임을 외면하는 지도자의 처벌과 CCTV 설치의무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월드컵 영웅, 별이 됐다” 맨유도 토트넘도 애도 물결

    “월드컵 영웅, 별이 됐다” 맨유도 토트넘도 애도 물결

    이강인 ‘축구 인생 첫 스승’ 옛 사진 공개해외 구단·FIFA도 부고 메시지 띄워축구협회, 장례는 ‘축구인葬’ 치르기로천상의 그라운드를 누비게 된 ‘한일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에 대한 추모 물결이 뜨겁다. 올림픽팀에 처음 소집돼 가나와의 평가전을 앞둔 이강인은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 전 감독과 함께 공을 차는 어린 시절 사진을 올려 ‘축구 인생의 첫 스승’을 추모했다. 이강인은 암 투병 끝에 전날 세상을 뜬 유 전 감독과 2007년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축구 인생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며 “감독님이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앞으로 후배들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의 밝은 미래와 무궁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썼다.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전날 밤늦게 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한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등이 달려왔다. 거제 전지훈련 중 비보를 접한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한축구협회 이천수 사회공헌위원장, 김병지 부회장 등과 입관식에 참여한 홍 감독은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은데 앞으로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이 슬프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너무 빨리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은퇴한 이동국과 서울의 박주영, 인천의 정산, 김도혁 등 현역 선수들도 빈소를 찾았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허정무 대전 이사장 등 축구 관계자 외에 일반인의 발길도 이어졌다. 온라인 추모 물결도 거셌다. 전날 밤늦게 대한축구협회가 인스타에 올린 추모 포스트는 12시간 만에 11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고 5000명 가까이 댓글을 달았다. 벤투호에 소집된 손흥민은 이 포스트를 자신의 인스타로 옮겨 추모의 뜻을 드러냈다. 추모 열기는 종목과 국경도 넘었다. ‘국민 타자’ 이승엽과 ‘탁구 영웅’ 유승민도 온라인에 추모 글을 남겼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공식 계정에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고 애도했다. 유 전 감독이 뛰었던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등도 부고를 전하며 슬픔을 드러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등도 공식 계정에 추모 메시지를 게시했다. 유 전 감독이 프로 데뷔하고 은퇴했던 울산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인천은 홈 경기장에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대한축구협회도 유 전 감독의 장례를 축구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태극전사들도 이날 훈련 시작 전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했다. 9일 고양에서 열리는 스리랑카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는 킥오프 전 헌정 영상을 상영하고 관중과 함께 추모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추모 통천과 유 전 감독의 등 번호를 딴 국화꽃 66송이를 부착한 현수막도 게시된다. 또 선수들이 팔에 추모 밴드 착용하고 전반 6분까지 응원도 하지 않는다. 유 전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가 6번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발바닥 다 닳은 등산화 한 켤레와 시인은 늘 사람을 향해 걸었다

    발바닥 다 닳은 등산화 한 켤레와 시인은 늘 사람을 향해 걸었다

    국토서시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곡성 동리산 계곡 작은 집에/ 등산화 한 켤레/ 업어가도 모를 수면 중이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가/ 걸음 또한 느긋한 법이 없어/ 멀찌감치 앞서만 갔으니/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역력하다/ 불의는 걷어차고/ 모종의 감시도 피해/ 산에라도 들어야지/ (중략)험준한 산을 넘어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울컥해지는/ 어느 시인의 등산화/ 스무 해째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황형철 시 ‘등산화 한 켤레’) 한 켤레의 등산화로 남은 시인이 있다. 아니 시인은 죽어서 전남 곡성 태안사 마당 어귀에 등산화 한 켤레를 남겼다. 대쪽 같은 성정으로 정의와 ‘사람’을 말하고, 많은 이들을 진한 형제애로 대했던 시인 죽형 조태일의 이야기다. 시인은 1941년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의 이름과는 달리 태안사(泰安寺)의 태(泰)자를 따서 ‘태일’이라는 큰 이름을 지어 주었다. 훗날에 큰스님이 되라는 뜻이었다. 이름의 일화에 관해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스님이 되지 못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나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말았지만 문학이나 종교가 다 같이 인간을 위한 것에 최종목표를 둔다고 볼 때, 아버지의 바람과 나의 길이 그렇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소회했다. 태안사 바로 아래에서 살던 시인의 가족들은 1948년에 발발한 여순사건을 계기로 졸지에 광주로 내몰리게 된다. 가족 모두가 생계를 위해 밥벌이를 해야 했지만 유독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했던 조태일은 수재들만 진학한다는 서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고등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행상을 하던 큰누나의 한 살배기 조카가 병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고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어린 조카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문학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를 썼다는 그는 고3 때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포도에서’가, 경희대 국문과 2학년 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됐다 ‘아침 바다는 예지에 번뜩이는 눈을 뜨고/ 끈기의 저쪽을 달리면서// 시대에 지치지 않고, 처절했던 동반의 때에/ 쓰러진 시간들을 하나씩 깨워 일으키고/ 저, 넘쳐나는 지평의 햇살을 보면/ 청명한 날에 잠깨는 출항.’(조태일 시 ‘아침 선박’ 중)1965년부터 조태일은 첫 시집 ‘아침 선박’을 필두로 두 번째 시집 ‘식칼론’과 세 번째 시집 ‘국토’를 출간했다. 그러나 신동엽 시인의 전집과 함께 ‘국토’가 신군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1974년에 문인들과 함께 뜻을 모아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쟁취를 위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위)를 창립한 이유다. 자실위 창단에 앞서 월간 시전문지인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시인을 발굴하는 데 앞장섰다. 그 시인들의 저항정신이 조태일 시인의 ‘시와 삶의 정의’와도 맞닿아 있었지만 이는 곧 당국으로부터 폐간조치를 당하는 빌미가 됐다. 저작들이 줄줄이 판금 되고, 잡지 ‘시인’이 폐간되자 조태일은 한동안 시를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조태일 ‘국토서시’) 이 시를 쓴 시인이 직접 겪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야 오죽했을까. 조태일은 계엄해제를 촉구한 지식인 124명 서명에 참여하고 그해 5월 17일 신군부의 예비검속에 걸려 구속 수감됐다. 두 달 후엔 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보통군법회의와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주변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가 보상금을 신청하라고 권했지만 일축했다고 한다. “그때 죽은 사람도 있어.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유공자 신청을 해.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 꺼내지도 말어.” 그리하여 조태일의 사후에 지인들과 유족들이 자료를 모아서 사후 유공자 등록을 추진했고, 2000년 12월에 5·18 민주 유공자로 정식으로 등록돼 경기도 용인에 묻혀 있던 그의 유택을 광주 망월동 5·18 묘지로 이장했다.조태일은 옥고와 관련해 “살면서 정식 구속만 3번이었고, 경찰서를 드나든 것은 수십 차례”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독재 정권 아래 저항하다 구속된 문인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리어카에 쌀 한 가마니를 실어 주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겨울이 되면 그 가족들의 추위마저 걱정해 남몰래 겨울 외투를 사입히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다 집의 생계를 책임져 주던 아내의 역할이 컸다며 자신의 발자취를 모두 다 아내의 은덕으로 돌렸다. 조태일의 시는 독재에 항거하는 모습과 민중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담은 것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 쪽으로 지나치게 촉수를 들이밀다 보니 자연이 삶의 보고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회고로 자연을 노래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현실과 잠시 거리를 두고자 시를 통해 자연으로 들어간 듯했지만 그때에도 그는 김준태 시인과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오페라 극본 ‘무등 둥둥’을 공동집필했다. 시인과 자실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상임이사이기도 했지만 그는 ‘스승’이었다. 광주대 문예창작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초대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매년 조태일시문학관에서 조태일 문학 축전을 개최하는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조태일 시인을 ‘스승’이라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시인 황형철은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술자리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나면 시작된 술자리는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져 새벽 두어 시는 돼야 끝났는데 그 이후로 운동을 하자며 새벽 5시 광주대 정문으로 나오라는 엄포가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전해왔다. 시인의 제자들은 늘 가난한 학생들의 밥과 술을 가장 먼저, 제일 많이 사주기를 서슴지 않는 스승에게 졸업 사은회 선물로 단골 호프집의 선불 영수증을 건넸다고도 한다. 그 스승의 그 제자들이라고나 해야 할까. 사은회 선물이랍시고 내민 영수증을 들고 스승과 제자가 시와 삶, 세상을 논하며 또 같은 자리에서 그 금액의 절반 가까이를 마셔 버렸다고 했다. 황 시인은 또 그것이 선생의 병세를 재촉한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앓아누워 있으면서도 가난한 자취생에게 시집과 고등어를 사서 내미는 스승의 손이라니. 제주 조천에서 ‘시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세실리아 시인 역시도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시도, 시인의 집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웠고, 세상의 불의에는 대나무처럼 올곧았던 시인이 아직도 세상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은 까닭이 바로 이들의 대답이 아닐까.조태일시문학기념관의 이해영 관장은 혼자 매일 이곳 산문의 문을 여닫는 것이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태안사와 시문학관의 대문이 같다. 일주문을 시문학관의 대문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관장은 눈발을 뚫고, 비바람을 맞으며 조태일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단 하루도 이곳의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있는 동안은 끝내 이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시문학관에는 늘 태안사에 묻히기를 희망했다던 시인의 유택 대신 생전의 그가 지니고 썼던 모든 것들을 옮겨다 놨다. 주민등록증과 수첩, 장서들을 비롯해 그가 늘 신고 다녔던 등산화까지도 그곳에 자리했다. 치열한 삶과 시에 관해 가졌던 태도들이 그가 남긴 것들로 대변되는 공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롯하게 모여 있는 장소다.맨몸으로 있는 힘껏 ‘국토’를 돌아보느라 금세 낡아버린 등산화와 그의 시들은 여전히 세상의 빛으로 누군가의 눈을 밝힌다. 이것은 스승이자 시인이었던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발자국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바로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꼭 곡성의 조태일시문학관에 들러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가 이은선
  • 서울시향, 핀란드 지휘자 달리아 스타세브스카와 호흡…김다미 협연

    서울시향, 핀란드 지휘자 달리아 스타세브스카와 호흡…김다미 협연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번달 정기공연에서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이자 올해 가을부터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을 시작하는 달리아 스타세브스카와 호흡을 맞춘다. 서울시향은 오는 17~18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021 서울시향 달리아 스타세브스카의 라흐마니노프’를 연다고 4일 밝혔다. 브리튼의 ‘진혼 교향곡’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으로 꾸며지는 무대로, 서울대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도 갖는다. 달리아 스타세브스카는 핀란드 탐페레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지휘를 공부했다.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오스모 벤스케의 스승 요르마 파눌라를 사사했다. 화가인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에서 문화와 음악을 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특히 헤비메탈 밴드 리더인 스타세브스카 남편의 외증조부가 시벨리우스로 알려졌다. 여성 지휘자로는 두 번째로 지난 2018년 노벨상 수상 기념 음악회를 이끌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2019년과 지난해 BBC 프롬스 무대를 지휘했다. 2019년부터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고 그가 2021/2021 시즌부터 이끌게 되는 핀란드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벤스케 감독이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음악감독을 지내기도 했다.스타세브스카는 이번 무대 프로그램에 대해 “모두 매우 강렬하고 충만한 프로그램”이라면서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은 진정한 걸작이라서 종종 지휘를 즐기는 편이고, 또 다른 ‘교향곡’을 짝을 지어 연주하고 싶어 브리튼의 ‘진혼 교향곡’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매우 순수하고, 때로는 거의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을 지니고 있어서 프로코피예프 말고는 어느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김다미는 2012년 독일 하노버 요아힘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2010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및 최고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특별상 수상 등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았고 지난해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엄태준 이천시장, 증포동 안흥지서 파라솔 톡

    엄태준 이천시장, 증포동 안흥지서 파라솔 톡

    경기 이천시는 엄태준 시장이 파라솔 톡을 저녁시간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소통채널을 개설하고 지난 2일 증포동 안흥지에서 세 번째 톡을 진행했다고 4일 밝혔다. 세 번째로 운영된 이번 파라솔 톡은 시민들이 많이 찾는 장소에 시장이 직접 나가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과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소통채널이다. 이날 행사에는 사전에 대화를 신청한 증포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바르게살기위원회 회원들과 현장에서 접수한 아파트 주민 등 2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장애인 복지 문제,공원 환경 개선, 주차장 문제 등과 관련해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주요 내용으로 ▲온천공원 인공폭포 활용 방안 모색 ▲안흥지 수질관리 등 환경 개선 문제 ▲장애인을 위한 주간보호센터 확충 ▲아파트 주변 공영주차장 확충 ▲버스승강장 부스 내 에어커튼 설치 제안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엄 시장은 “이천의 숨은 보석인 안흥지에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며 “오늘 주신 제안과 건의사항은 시정에 적극 반영해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천시장 파라솔 톡~!’ 은 올해 연말까지 매달 첫째, 셋째 주 월 2회 정기적으로 진행되며, 다음 행선지는 장호원으로 이달 17일 한 시간 앞당겨진 저녁 6시에 운영할 예정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피아노·판소리 멋진 퓨전 콜라보곡과 창극 도전해보고 싶어”

    “피아노·판소리 멋진 퓨전 콜라보곡과 창극 도전해보고 싶어”

    “너무나 큰 상을 받아 영광입니다. 피아노와 판소리의 멋진 퓨전 콜라보곡과 창극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난달 말 개최된 제32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중고등부 부문에서 경기 김포 출신 정윤아(19·김포솔터고 3학년)양이 대상을 받은 뒤 활짝 웃으며 소감을 말했다. 4일 대구국악제에 따르면 예선은 비대면 영상심사를 통해 선발했으며 본선은 지난 5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과 비슬홀에서 열렸다. 정양은 예선에서 흥보가 중 ‘집터잡는’ 대목으로, 본선에서는 심청가 중 ‘선인따라가는’ 대목을 불러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판소리에 입문한 지 겨우 3년째인 정양은 “너무나 큰 상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올해 마지막 학생부에서 판소리 대상을 받아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며,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 큰상을 받아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상이자 스승이신 원진주 선생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 엎드려 감사드린다”며 이번 수상 공을 스승한테 돌렸다.입문시절부터 정양은 가르치고 있는 원진주 명창은 “윤아는 16세에 늦게 소리를 배운 만큼 몇 배 노력해야 한다는 ‘연습벌레’ 마인드가 있어서 예상보다 빨리 실력이 향상될 수 있었다”며, “기본적으로 탄탄한 목을 갖고 있으며, 소리연습으로 목소리를 잘 다져 ‘수리성’이라 불리는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이어 “전공하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보니 평소 본인 실력에 대해 걱정을 많이해 절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연습량이 너무 많다. 목이 쉬어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을 때가 잦아 되레 실력 발휘를 못할 때가 있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욕심과 열정이 많은 제자”라고 정양을 칭찬했다. 이번 대구국악제에서는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불렀으며 실력발휘를 제대로 한 결과 대상을 받았다. 앞으로 컨디션 관리만 잘한다면 실력발휘에 큰문제 없이 좋은 결과를 이뤄 낼 것이며 장래가 매우 총망된다고 정양의 앞날을 예견했다. 판소리 입문 동기에 대해 정양은 “‘서편제’라는 창극을 접한 후 대중들에게 감정연기를 하며 우리소리와 함께 극으로 올리는 데 관심을 갖게 돼 판소리를 처음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스승인 원진주 명창 밑에서 소리를 배우고익혀 많은 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그녀는 “판소리를 연습하다 보면 목이 쉬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제일 아쉽다”면서, “그래도 판소리는 저를 빛내주는 우리 소리이기에 소리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양에게는 누구보다 가족들과 학교 친구들이 적극 격려해주는 응원군이다. 이번 대구대회 대상을 받고 많은 축하를 받았단다. 앞으로 더욱 더 성장해서 전통적인 우리 소리를 널리 알리는 훌륭한 소리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양은 판소리 말고도 취미로 피아노를 잘친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피아노와 판소리의 멋진 퓨전 콜라보를 이뤄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정양은 “지난해 김포 ‘애기봉’을 주제로 만든 창작판소리 작품에서 주인공의 어린시절 소리공부하는 과정을 맡았는데 너무 큰 역할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경험이 부족했기에 역할을 잘 소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창극을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윤아양 판소리 수상경력 및 이력 ▲2019.09. 경기도 청소년 종합예술제 고등부 우수상(경기도 지사) ▲2019.11. 부평국악대축제 전국국악 경연대회 종합금상(인천시 교육감상) ▲2020.10. 권삼득 전국국악대제전 고등부 최우수상(전북 완주군 교육장상) ▲2020.10. 금포풍류 시아소리터 공연 ▲2020.11. 애기봉평화생태공원 기념 국악 뮤지컬 ‘애기봉’ 주인공 어린시절 역 ▲2021.05. 제32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학생부 대상(대구시 교육감상)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2022 보령해양머드박람회 홍보 위해 테마보행등 설치 나서

    충남 보령시가 ‘2022 보령해양머드박람회’를 알리기 위해 테마보행등을 설치하고 여객선 등에 홍보 이미지를 랩핑하는 등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나섰다. 보령시는 지난해 말 보령해양머드박람회 개최 장소인 대천해수욕장에 박람회 캐릭터를 활용한 테마보행등 5개를 설치한 데 이어 최근 26개를 추가 설치하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4일 밝혔다. 2022 보령해양머드박람회는 ‘해양의 재발견, 머드의 미래가� ?� 주제로 내년 7월 16일~ 8월 15일까지 대천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다. 박람회 캐릭터 보행등은 진흙별에서 보령 해양머드를 탐사하러 온 불가사리 모양의 토니, 주꾸미 모양의 꾸니, 말미잘 모양의 자리를 친근한 이미지로 형상화해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천항과 삽시도 등 보령 앞바다 섬을 운항하는 여객선인 가자섬으로호와 신한고속훼리호 외부에는 박람회 홍보 이미지를 랩핑했다. 시내·외버스와 물류운송차량, 관용차량, 버스승강장 등에도 박람회 홍보 이미지 랩핑을 진행 중이다. 김동일 보령시장은 “캐릭터 활용 테마보행등과 여객선 등을 대상으로 한 홍보 이미지 랩핑이 박람회 분위기를 띄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령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손흥민의 새 스승은 콘테?

    손흥민의 새 스승은 콘테?

    새 사령탑 구하기에 나선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이 인터밀란을 11년 만에 세리에A 정상으로 이끈 안토니오 콘테(52) 감독과 협상 중이라고 스카이스포츠 이탈리아판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4월 조제 모리뉴 감독을 전격 경질한 뒤 라이언 메이슨 코치 대행 체제로 2020~21시즌을 마무리 한 토트넘은 정식 사령탑 선임 작업에 몰두해 왔다. 최근에는 모리뉴 감독 이전에 토트넘을 성장시킨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복귀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과 계약 중이라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개이적으로 토트넘 복귀를 원하지만 PSG는 보내줄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콘테 감독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2011~2014년 유벤투스를 이끌고 세 차례 이탈리아 정상에 섰던 콘테 감독은 2016-2017시즌에는 첼시를 잉글랜드 정상에 올려놨다. 2019년부터 인터 밀란을 지휘한 그는 2020~21시즌 유벤투스의 10연패를 저지하며 인터밀란을 2009~10시즌 이후 11년 만에 다시 왕좌에 복귀시켰으나 선수 매각을 둘러싼 구단주와의 마찰 등으로 시즌 종료 뒤 팀을 떠났다. 토트넘과 콘테 감독 사이에 연봉 등 일부 견해차가 있어 최종 사인 여부는 지켜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제29회 공초문학상] “아직 대표작 없죠, 지금도 시 찾는 여행 중입니다”

    [제29회 공초문학상] “아직 대표작 없죠, 지금도 시 찾는 여행 중입니다”

    “시인이 다루는 언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생명체입니다. 순도 높은 언어, 그 본질을 시의 용광로에서 달궈야 하죠. 이를 통해 우주 삼라만상 앞에 겸손한 시가 돼야 합니다.” 한국 서정시의 대표 중진인 허형만(76) 시인은 “아직 내겐 대표작이 없다”고 했다. 이리 혹독한 담금질 끝에 내놓는 시가 어디 그리 쉬울까. “오늘 밤에 쓰는 시가 혹시 대표작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니, 그래서 시인은 희망을 추동 삼아 언어를 그러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파도’ 등 명시를 꾸준히 써 온 시인은 “시를 찾아가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목숨이 끝날 때쯤이면 분명 한 편의 대표작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을 위해 시를 쓴다”고 말했다. 그에게 시는 당대의 현실이나 사상만큼이나 서정성을 잃지 않는, 사상과 정서의 융합을 뜻한다. 고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렸던 ‘녹을 닦으며’에서 보듯 시인은 치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성찰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왔다. 지난해 계간 ‘예술가’ 가을호에 실린 ‘산까치’가 제29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서 진면목을 발견해 내고, 맑고 고운 우리말을 섬세하게 가다듬어 온 시인의 공로에 대한 작은 보답이다.‘산까치’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시인이 아파트 뒷산에서 산책하는 도중에 나왔다. 산까치 대여섯 마리가 빗속에서도 신나게 지저귀며 뛰어놀자 순간적으로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다가갔지만, 놀란 새들이 나무로 달아났다. 이를 보고 후회 가득한 심정을 담았다.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절실함을 비에 젖으면서도 절실하게 노래하는 산까치에게서 배운 셈이죠. 코로나19로 옹색해진 시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삶의 무게를 이기고 걸어가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는 희망과 꿈을 발견하는 것, 그런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 아닐까요.” 흔들림 없는 보폭으로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반세기가 가까워졌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고교 시절 문예부장을 했던 시인은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순천고 재학 당시 국어 교사는 ‘저항 시인’으로 유명한 고 문병란 조선대 교수.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풀잎이 하나님에게’(1984), ‘입맞추기’(1987), ‘공초’(1988) 등의 시집을 내게 된 것도 스승의 영향이다. 1979년 광주에서 ‘목요시’ 동인회를 결성한 시인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에서 직접 겪었다. 1982년부터 목포대 국문과 교수 생활을 했고 2012년 정년 퇴임했다 .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시인은 자신을 ‘시단의 변방’으로 위치시키고 “이 변방의 힘이 시를 쓰게 했다”고 돌이켰다. 평생 몸에 밴 남도 토속어와 우리말을 아름답게 담아내도록 한 힘이다. “대학 강단에서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강의할 때마다 1920년대 ‘폐허’ 동인으로 활동한 공초 오상순 선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랑하시며 참선하시던 공초 선생도 ‘공’이라는 정신의 변방에서 시를 쓰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지난해 열아홉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산까치’가 포함된 스무 번째 시집도 준비 중이지만, 동시집도 내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동시 ‘동전 한 닢’과 같이 독자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는 시를 계속 쓰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시인에게는 시대정신을 작품에 어떻게 녹일지 고민하는 것도, 세상과 사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제 작품이 제가 쓴 것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도와서 쓴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반성과 감사의 나날을 보내는 이유입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허형만 시인은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1965년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1973년 월간문학 시 당선 ▲1978년 아동문예 동시 당선 ▲1982~2012년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4년 편운문학상 수상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2009년 영랑시문학상 수상 ▲2011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2014년 한국예술상·펜문학상 수상 ▲2019년 윤동주문학상 수상 ▲현 목포대 국문과 명예교수
  •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중국에서 황제는 진시황 이래 2100여년간 약 500명에 이른다. ‘마지막 황제 푸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청나라 선통제는 청나라 뿐 아니라 중국 역사의 마지막 황제다. 푸이에 관한 책은 국내에도 여러 종 나와 있다. 다만 그가 세 살에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사후 현재 허베이성 이현의 공원묘지에 잠들기까지를 소개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푸이 자신의 자서전 그리고 황제에서 죄수, 평민으로 바뀐 굴곡의 주요 고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과 측근, 태감(환관) 등의 눈을 통해 본 푸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것은 없다.푸이는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부터 특사를 받아 나온 직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남겼다. 그의 황후와 비, 귀인 그리고 평민으로 만난 부인 등 다섯 여인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인은 푸이와의 궁정 및 결혼 생활, 이혼 등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다. 여기에 가장 오랫동안 푸이를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동생 푸제, 창춘 위만황궁 시절 들어가 푸이와 함께 해 전쟁 포로로 잡혀갔고 소련 극동 옥중에서 ‘황태자’ 책봉까지 받은 조카 위옌, 푸이의 숙부와 황후 완룽의 동생 룬치, 청이 망한 뒤 푸이의 자금성 소조정 시절 푸이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화’시킨 영국인 스승 레지널드 존스턴 등이 가까이에서 본 푸이의 진면목을 전한다. 특히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기 직전 궁에 들어간 뒤 푸이 곁에서 33년간을 있었던 환관(태감) 리궈슝의 증언은 ‘난폭한 황제질을 했던 푸이’를 고발한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푸이가 태어난 순친왕부, 황제로 살았던 자금성, 톈진으로 가기 전 머물렀던 베이징의 외교단지 거리 둥자오민샹, 톈진에서 7년을 보냈던 청나라 고관들의 별장 장위안과 징위안, 창춘의 위만황궁, 그의 3번째 황제 퇴위 발표 장소인 지린성 압록강변 마을 다리즈거우, 베이징 혁명공원묘지에서 푸이의 유골이 이장 안치된 허베이성의 화룽능원묘지 등을 둘러보며 지금 중국 땅 곳곳에 남아있는 푸이의 흔적을 전한다. 1967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망했으나 중국에서 황제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다. 2012년 11월 시진핑 총서기가 집권한 뒤 2년 뒤 시사주간 타임은 ‘Emperor Xi(시 황제)’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해리슨 솔즈베리는 1993년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책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평등을 이념으로 한 신중국에서 사실상 새로운 황제로 부활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황제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한 저자가 ‘먼저 마지막 황제가 어떻게 왔다 갔는지 보자’하고 찾아 나선 기록이다. 푸이가 살았던 시기 중국 대륙은 왕조와 체제가 완전히 바뀐 격변기였다. 청이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섰지만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 동시에 전개됐다. 동북에는 10여 년간 일본 괴뢰 만주국이 세워졌다. 장제스를 몰아내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신중국이 들어섰다. 중국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기 시작할 때 푸이는 숨졌다. 시대의 격랑이 푸이 60년 굴곡의 역사에 겹겹이 투영되어 있다. 1부 ‘황혼의 제국’은 청말의 여걸 실세 권력자 자희 태후가 왜 세 살배기 푸이를 황제에 올렸는지, 청나라가 망했는데도 자금성 울타리 안에서 황제 노릇을 했던 푸이 그리고 결국 군벌 전쟁 과정에서 쫓겨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2부 ‘괴뢰 황제’는 푸이가 자신을 대륙 침략을 도구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 검은 속내를 꿰뚫지 못하고 미망에 빠져 괴뢰 황제 노릇을 했던 죄악의 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소련 극동과 신중국의 감옥에서 14년간 죄수 생활을 하며 황제 물을 빼고 개조되는 모습을 전한다. 제3부 ‘베이징 시민 푸이’는 1급 전범 푸이가 베이징 시민으로 돌아와 평민으로 살다간 8년 및 그가 떠난 후 마지막 부인의 삶을 전한다. 푸이는 ‘황제도 포용한 체제’라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특사를 받아 석방된 뒤 전국정협 위원까지 지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렸지만 마오와 저우언라이 총리의 보호 덕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푸이는 일찍이 황제에서 퇴위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사망해 그의 유골은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청서릉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담장 밖 공원묘지에 머물게 된 사연을 전한다. 부록의 푸이 ‘나의 자서전’ 서문에 대해 저자는 ‘죽을죄를 지었다 살아난 퇴임 황제의 반성문’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만하다’고 권한다. 반성문은 특사를 받아서 나온 것에 대한 감사와 괴뢰 황제로서의 죄악 등을 반성하고, 자신을 개조시켜 포용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찬양 등을 담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In&Out]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기억하며/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기억하며/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한국에서 5월을 지내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는 특별히 ‘가정의 달’로 일컬어진 5월에 많은 기념일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은 물론이고 이번에 나한테 더욱 와닿은 것은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얼마 전 5월 18일에 앞서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전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고 그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 속 정보를 연상시켰다. 석사를 시작하기 전에 광주에서 1년 동안 살았으나 그때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역사적인 정보를 깊이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 당시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혹은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만 알았다. 오히려 서울에 올라온 후 잠시 광주에 다시 여행을 갔을 때 국립 5·18 민주묘지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다큐멘터리 영상을 관람한 후 부쩍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1998년 혁명과 거의 비슷한 면을 지닌다. 그래서 두 나라 역사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상경했던 2017년에 마침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했다. 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 그 영화에 나온 공간 설정이 나의 경험상 낯익은 장소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실제 상황을 상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같은 상황을 실제로 직면할 때 나도 그렇게 용감하게 시위에 나가고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끔찍함과 공포감이 차올라 계속 울게 되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온 등장인물 중에 구재식(류준열 분)이라는 한 대학생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에게 이 사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에서 매우 마음이 아팠다. 또한 택시 운전사들이 부상자를 살리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김만섭 택시기사(송강호 분)와 힌츠페터가 서울에 다시 올라오는 장면에 군인들을 막아 주는 다른 택시 운전사의 희생을 봤을 때도 아주 뭉클했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모든 피해자를 떠올린 장면이기 때문이다. 영화 ‘택시 운전사’ 이외에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몇 편의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도 그중 하나다. 이 소설을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번역판으로 같이 읽었는데, 작가의 독특한 서사 기법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2인칭 관점의 서술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이 기법 덕분에 독자로서의 나는 소설 이야기 속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사건 현장에 있는 듯했다. 또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이 사건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공포감과 비참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데, 예전에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과 이 소설에 관한 정보와 소감을 공유하고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주제로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5·18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관련한 문학 작품을 더 많이 읽을 의지가 생겼다. 특히 한국 근대 작가 중에 ‘5월 작가’라고 불리는 임철우 작가의 소설들을 더 많이 읽을 계획이다. 임 작가가 ‘5월 작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에는 소설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소재를 상당히 자주 다루었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스스로 대학생 때 겪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문학적으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직접 해명한 바 있다. 작품 안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야 현재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해 보고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 셰익스피어 두 번 죽인 아나운서 “백신 접종 英 최고 극작가 사망”

    셰익스피어 두 번 죽인 아나운서 “백신 접종 英 최고 극작가 사망”

    16세기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21세기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했다.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뉴스 채널 ‘카날26’은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망했다는 대형 오보를 냈다. 카날26 아나운서 노엘리아 노빌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다. 내게는 스승”이라면서 셰익스피어의 작고 소식을 알렸다. 20일 사망한 윌리엄 ‘빌’ 셰익스피어(81)를 16세기 영국의 대문호이자 동명이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 황당한 오보였다.아나운서는 21세기 셰익스피어를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등 여러 대표작을 남긴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혼동했다. “우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죽음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전하겠다”며 애통해했다. 사망한 셰익스피어가 화이자 백신을 맞는 자료화면이 나갈 때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는 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먼저 맞은 남성이며, 81세 나이로 잉글랜드에서 사망했다”는 내레이션을 깔았다. 1616년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를 두 번 죽인 셈이다. 윌리엄 ‘빌’ 셰익스피어는 지난해 12월 8일 영국 코번트리 대학병원에서 전 세계 2번째이자 남성 중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접종 당시 해당 병원 쇠약자 병동에 입원 중이었던 그는 지난 20일 뇌졸중으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이름은 물론 출신 지역까지 같아 큰 주목을 받았다. 생전 “백신을 맞는 것이 셰익스피어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라고 말하기도 했다.16세기 셰익스피어와 21세기 셰익스피어를 혼동한 대형 오보가 나가자 온라인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죽음에 호들갑을 떨다니. 그는 최근 수 세기 동안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과장된 인물”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또 다른 이용자는 “누가 이런 비극을 상상이나 했겠느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57년 만에 전해진 사망 소식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인생의 전성기에 가버렸다”고 비꼬았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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