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스승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상승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설현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법관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기밀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85
  • 두 고교생의 어머니 문맹희씨(「2단계개혁」을 말한다:3)

    ◎“과외비 부담 없도록 교육개혁 시급”/학교수업만으로 진학 가능해야/사회의 변화 실감… 불안감이 문제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또 절실히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새 정부가 추진하고있는 개혁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그러나 요사이 여기 저기서 너무 「개혁」「개혁」하니까 어째 괜히 불안해지는 느낌도 없지않아요』 은행원인 남편과 고2·고1등 두명의 자녀를 두고있는 주부 문맹희씨(47·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는 『지금까지 정권을 잡았던 사람치고 개혁을 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요즘처럼 진짜 각 분야에서 제대로 추진되기는 처음인것 같다』며 이번만은 과거처럼 용두사미가 되지말고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큰 고민 부각 올해로 결혼생활 18년인 문씨는 우리 사회의 표본적인 중산층. 결혼이후 지금까지 남편의 월급으로 알뜰하게 생활하며 저축하여 네 식구가 생활하기에 불편하지않을 정도의 아파트도 장만했고 일상생활에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않게 되었지만 요즘 아이들이 고3에가까워지면서 과외비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모든 주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교육의 개혁일 것 입니다』 현재와같은 제도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대로,못하는 아이는 못하는대로 과외를 하지않을 수 없고 과외비도 일반 서민의 입장에선 상상도 못할정도라니 고교생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로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문씨는 과외를 물리적인 힘으로 무조건 규제할 것이 아니라 과외를 받지않고 학교교육만으로도 대학진학이 가능하도록 획기적인 교육개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문씨는 지난 6개월동안의 개혁으로 일상생활 곳곳에서 개혁바람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주부의 입장에서는 특히 요즘 식탁이 굉장히 간소화된 것이 반갑다고한다. 『우리는 그동안 식탁에서도 너무 과소비가 많았어요.그런데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가 칼국수 식단을 선뵌이후 식탁을 매끼 너무 잘 차리면 죄스러운것같아 조금씩 간소화하기 시작 했어요』 ○개운찮은 현상도 예전같으면 무성의하다고 불평을 했을 가족들도 「고통분담」이라며 그냥 즐겁게 먹는다는 것.그 결과 가계도 절약이 되고 주부의 가사 노동도 크게 줄어들었다. 『친구들 모임에 가도 그래요.모두들 자중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요.그전같으면 고급호텔 뷔페식당은 점심때 주부 계원들이 판을 쳤는데 요즘은 이런 모임도 굉장히 줄어든 것 같아요』 개혁 분위기는 동사무소나 경찰서같은 공공기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실명제실시로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더니 이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친절했다.백화점에 가봐도 고가품이나 수입품 코너에는 확실히 손님이 줄었다. 그러나 아직 개혁의 참된 의미를 못깨달은듯 걸핏하면 「신한국창조」니 「개혁」을 앞세우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한다. 『한번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제 동생이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저녁나절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길을 건너는데 흰 빗금이 쳐진 건널목 표시로부터 1m쯤 벗어나 도로를 건넜답니다.그런데 멀리서 2명의 경찰이 달려와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범칙금통고서를 떼었답니다』 동생이 신호등도 설치하지않을만큼 좁은 동네길에서 건널목을 조금 빗겨 건넌 것인데 무슨 딱지냐고 항의하자 개혁과 신한국창조를 들먹이며 기어이 5천원짜리 딱지를 끊어주었다는 것.어딘지 뒷맛이 개운치않은 현상이라고 꼬집는다. ○스승의 날 관심을 『지난 스승의날 부조리를 없앤다고 학생들이 스승에게 드리는 꽃 한송이 조차 받지않은 것도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먼 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씨는 금융실명제로 요사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하나 사실 따지고보면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을때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과외수입이라고는 생각도 하지못하는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불안해 할것이 전혀 없는데도 공연히 불안하게 만든것은 뭔가 잘못된 것같다고 지적했다. 개혁이후 남편들의 술자리에도 변화가 생긴듯 술먹는 장소도 대중적인 곳으로 바뀌고 귀가시간도 훨씬 빨라져 주부들이 모두 좋아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개혁이 국민 모두가 보다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밝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더욱 알차게 추진되기를 바랐다.
  • 로댕­클로델조각품 국내 첫 “랑데부”

    ◎동아갤러리,새달 7일∼10월24일 전시/“조각거장 사제의 사랑·예술의 결창”/「생각하는 사람」·「왈츠」등 37점 선보여/관람객 감상문 공모… 5명에 파리견학 특전 근대조각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1840∼1917년),그에게 사랑을 바치다 비운에 숨져간 제자 카미유 클로델(1864∼1943년).수년전 「카미유 클로델」이란 책과 영화를 통해 국내에도 그 비련의 사연이 잘 알려져있는 두 예술가의 진품조각 37점이 9월7일부터 10월24일까지 서울 중구 다동에 있는 동아생명빌딩내 동아갤러리(778∼4872)에서 나란히 전시된다. 동아갤러리가 6개월간의 노력끝에 성사시킨 이 전시는 로댕박물관 소장품과 클로델작품 상속자인 조카의 소장품으로 꾸며지며 클로델작 21점, 로댕작16점이 소개된다. 특히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1880년,브론즈,71×56×50)과 「청동시대」(1875∼76년,석고,100×39×19)가 포함돼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은 대작「지옥의 문」에 들어있는 작품과 같은 크기로 당시에도 인기가 있어 소품을 17개나 더 만든 작품이다. 「카미유클로델과 로댕」전으로 이름된 이 전시는 특히 지난85년 국내에서 전시된 예가 있는 로댕의 작품과 함께 국내최초로 클로델의 대표작 「파도」「왈츠」등이 그옆에 자리하는 것으로 올해 50주기를 맞는 그녀의 뛰어난 작품성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전시의미를 두고있다. 「뛰어난 천부의 자질과 재능 그리고 영특하고도 용기있는」조각도 클로델은 스무살이 갓 넘은 나이에 로댕을 만난다. 매우 조숙한 개성에 미모의 소유자인 그녀는 사제지간으로 그리고 로댕조각의 모델로 동반하면서 마침내는 대가의 연인이 된다.15년의 세월속에서 로댕의 작업을 도왔으나 그녀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로댕의 곁을 떠나 결국은 「로댕이 자신의 재능을 도둑질했다」는 피해의식속에서 심한 망상에 사로잡혀 병들어간다.로댕이라는 거목의 그늘에 묻혀 진정한 작업평가한번 제대로 못받았던 그녀의 인생과 예술은 결국30여년간의 정신병원 수용생활에서 스러지고만다.그러나 스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거의 절망적인 시도에 가까운 30∼40대의 작품세계는 지난84년 로댕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통해 비로소 한사람의 진정한 조각가로 정당한 자리매김을 받게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가장 순수한 사랑과 예술의 접점에서 뜨겁게 피어올랐다 무섭게 증오하며 갈라선 두 예술가의 열정을 동시에 접할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된다. 한편 동아갤러리측은 미술애호가와 학생 관람객을 상대로 국내전시에서 드물게 전시감상문(2백자 10장내외)을 공모,선정된 5명에게는 5박6일의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 견학특전을 준다.
  • 고속도 15중 추돌/승객 5명 사망

    【천안=이천렬기자】 23일 상오 3시쯤 충남 천안군 성거읍 점촌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기점 77.1㎞지점에서 경북 9아5318호 25t 트레일러가 싣고가던 철판을 떨어뜨리면서 뒤따르던 서울 7자5507호 1t트럭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대구 1무9309호 엘란트라승용차(운전자 이재신·43·대구시 북구 고성동 1가 63),서울 3두1495호 프린스승용차(운전자 이완헌·38·서울 양천구 신월동)등 15대가 잇따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엘란트라 운전자 이씨와 프린스에 타고 있던 이청자(48·서울 강서구 화곡7동 367의41)·정희씨(43·경기도 안양시 금정동)자매,이씨의 올케 이정희씨(34·서울 강서구 화곡동),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 1명 등 모두 5명이 숨지고 프린스 운전자 이씨 등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한 남자를 사랑했네/서영은 지음(화제의 책)

    ◎김동리 사랑한 서영은의 수필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기도 한 김동리와 함께 살아온 서영은의 자전 에세이.그동안 겪어야 했던 아픔과 절망,행복 등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1장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에서는 김동리를 사랑하고 사랑을 지켜가는 자신의 이야기를,2장 「지금 나는 옛집에서 그를 추억합니다」에서는 김동리가 병석에 눕고 난 뒤 옛집에 돌아와 그와의 기억들을 떠올린다.3장 「시린 기억들이 있습니다」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힘든 사랑을 선택한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어린시절의 기억과 어머니,그리고 기억 속의 몇몇 여인들의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마지막 4장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이 있습니다」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서영은 지음 미학사 6천원.
  • 춘천·대구 보궐선거/가열속 타락선거운동 조짐

    ◎돈봉투·흑색선전 나돌아 혼탁가속/대구/버스승객 상대 1분좌담회로 효과/춘천 대구동을 및 춘천지역 보궐선거가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공명선거 정착에 적신호를 주고 있다. 일부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되거나 경고를 받는사례가 빈발하고 있다.심지어 돈봉투까지 등장했다는 소리까지 나올만큼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태의 재연은 후보간 우열이 여전히 불투명한데다 선거결과에 지나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4월 1차 보선당시의 깨끗한 선거전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선거휴유증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대구동을◁ ○…불법선거운동 사례가 속출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야 정당은 선거 과열 양상과 관련,연일 치열한 성명전을 벌이고 있다.민자당 조용직부대변인은 5일 민주당이 중앙당개입배제 약속을 파기한 점을 들어 과열의 책임을 민주당으로 떠넘겼다.민주당 박지원대변인은 이에 맞서 『민자당이 엄청난 조직을 동원해 불법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자당은 중앙당 개입배제를 선언했으나 상당수의 소속의원들을 이곳에 투입,지역 및 직능할당제를 통해 지원활동을 전개중이다.민주당은 이기택대표가 6일부터 나흘동안 이곳에 상주하면서 총력전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미 당원증 교부와 함께 돈을 살포하려다가 적발돼 선관위에 고발조치되는 사례가 나타났는가 하면 민자당의 노동일후보는 무속인모임에 참석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민주당의 안택수후보는 지구당개편대회에서 옥외 확성기를 설치해 경고를 받았으며 불법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물 부착차량을 운행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지역의 음식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어 후보들의 향응제공이 노골화되고 있는 인상이 짙다.지저동의 한 주민은 『이웃사람들 중에 모후보진영이 주최한 모임에 참석,음식과 돈을 제공받았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기초의회 의원까지 가세,정당의 선거운동원으로 뛰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근거도 없는 마타도어가 줄을 잇고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유인물이나돌아 불법 혼탁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춘천◁ ○…5명의 후보 모두 지명도가 낮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유종수후보(민자)는 「알몸 유세」방식을 채택.자신의 「모든 것」을 훤히 드러내놓고 살을 맞대며 유권자들의 애환을 피부로 체득하겠다는 것이다.레슬링선수 출신이라 우람한 체격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 유남선후보(민주)와 황환도후보(신정)는 버스유세로 짭짤한 재미.버스안에서 승객들과 「1분좌담회」를 개최한뒤 홍보물을 나눠준다.서민적인 이미지를 심는 효과도 있다.유후보는 춘천이 공무원도시임을 감안,퇴직공무원을 내세워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방법도 병행. 황환도후보(신정)는 출퇴근시 중앙로,8·9호광장,남부광장등에서 신호대기중인 자동차에 홍보물을 나눠준다.배포과정에서의 유실을 막을 수 있고 여러명이 한 차에 타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회독률 또한 높다는 것. 유지한·강청용후보(이상 무소속)는 선거경험이 전무한 탓인지 발로 뛰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 서예전「금품입상」부정 적발/수년간 남의것 대리 출품·심사때 돈거래

    ◎협회간부등 14명 무더기 구속 스승의 작품을 자신것처럼 가장,서예대전에 출품해 입상하거나 심사위원들에게 입상시켜달라며 금품을 준 서예가들과 서예협회 간부및 심사위원등이 무더기로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지검 수사3과는 26일 한국서예협회 이사장 심우식씨(51)와 이사 양택동씨(44)등 서예협회간부 5명,서예대전 심사위원을 했던 서예가 윤영조씨(43)등 서예학원장 8명,월간 서화정보사 대표 최점식씨(54)등 모두 14명을 업무방해·배임수재·공갈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한국서예협회 인천지부장 이규환씨(47)등 2명을 배임증재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풍남서실 대표 이용씨(43)를 수배했다.
  • 정부의 전교조관 “불변” 공식화/「선탈퇴 후복직」 확정 안팎

    ◎“학교교육 현장 보호” 강력한 의지/해직교사들 태도따라 조직 약화 될수도 24일 정부가 발표한 「전교조 해직교사 교단복귀조치」는 지난89년 5월이래 4년넘게 끌어온 「전교조」문제를 더이상 그대로 방치하기 어렵다는 일반적 인식과 정부의 법수호의지및 국민정서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온 것이다. 오병문교육부장관은 이날 특별담화문을 통해 『현행법내에서 전교조와 해직교사문제를 해결할 방침을 갖고 있는 정부는 그동안 일반국민과 교육현장의 여론을 신중하게 수렴,최종 처리방안을 내놓게 됐다』고 밝혀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오장관은 특히 『전교조는 헌법소원에서도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스승이 노동자라는 주장은 우리의 전통적 교육관이나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전교조」의 해체를 촉구했다. 정부가 「더이상 지체하거나 물러설수 없다」는 내용이 선별교단복귀조치를 내놓음에 따라 이제까지 밀고 당기는 상황이 거듭됐던 「전교조」문제는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일대 국면전환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곧 문민정부 출범이후 한동안 무르익었던 화해무드를 깨고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2단계 대결구도로 비화되든가,아니면 새정부의 혁신적인 조치를 기대하며 팽팽하게 유지되던 응집력이 허물어져 「전교조」의 유명무실화를 초래하든가의 기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부와 「전교조」쌍방이 강경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해직교사 복직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따라서 해직교사 개개인의 태도변화에 따라 앞으로 「전교조」전체의 입장이 바뀔수도 있으나 당분간은 상당한 대치상태를 빚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4월과 6월 오병문교육부장관이 정해숙「전교조」위원장을 두차례 공식면담하고 3번씩이나 실무접촉을 하는등 처음으로 「전교조」의 실체를 인정할듯한 화해제스처를 취했으나 당초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정면돌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전교조」측도 오장관의 담화문발표가 있자마자 입장을 정리,「전면거부」방침을 천명했다. 정부는 해직교사 선별복귀 방안을 제시하면서 ▲전교조인정불가▲원상복직불가 ▲선별구제 ▲전교조해체 ▲복귀후 불법행위엄단등의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오장관은 담화문을 통해 『진정한 교육을 위한 고뇌와 노력은 인정하나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편승되어 있으며 이로인해 교육계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서 교육현장의 안정과 질서를 위한 숙제로서 해직교사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를 밝혀 「전교조」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가 이날 최종입장을 발표함에 따라 이제 공은 「전교조」쪽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금은 「전교조」가 이를 세게 되받아칠 형국이지만 교단복귀가 시작될 내년 새학기때까지의 추세는 예측하기 어렵다.
  • 노도 사도 “후련”… 시민들 “잘했다”/현대자 분규

    ◎밤샘협상끝 극적타결 보던날/노사집행부,「복직문제」 조합원 설득/승용차 라인 1백% 가동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였던 울산 현대자동차 분규사태가 21일 원만히 타결되자 울산일대는 노·사 당사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안도와 함께 후련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현대자동차의 조업률은 4공장의 그레이스승합차 생산라인이 일부 기기의 수리로 90%를 나타낸 것 말고는 승용차 생산공장인 1,2,3공장 모두 1백% 가동돼 이미 정상화 단계에 접어든 인상. 울산지역 1백여개 협력업체들도 현대자동차의 합의에 고무돼 거의 1백%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는 등 작업장에 모처럼 활기가 넘치는 모습. ○…이날 상오 잠정합의를 이뤄낸 마지막 협상을 마치고 노조간부들에 둘러싸여 다소 지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선 윤성근노조위원장은 『많은 성과를 얻어내지 못해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문을 연뒤 『조합을 사랑하는 조합원들의 냉철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23일의 조합원총회 결과를 낙관적으로 전망. ○…이날 새벽까지 계속된 마라톤협상끝에 잠정합의안이 도출되자 울산시내는 『공권력투입등 타율에 의한 사태해결을 면하게 됐다』며 안도. 특히 20일 자정쯤부터 속개된 협상에서 45개 미타결 조항중 퇴직금누진제등에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으나 이날 새벽4시부터 시작된 임금협상·단체협상 일괄교섭에서 잠정합의에 성공,사태 해결의 큰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 ○…이날 상오8시20분쯤 회사측과 밤샘협상을 마친 노조대표들은 협상의 잠정타결에도 불구하고 선뜻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삼간채 상오11시까지 협상결과에 대한 입장 정리에 들어가 대의원및 노조원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특히 노조집행부는 회사측과의 합의안을 조합원총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해고자복직문제」가 노사협의회로 미뤄진데 대해 노조내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등을 설득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많은 노조원을 두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사는 21일 2차례의 현안문제에 대한 협의를 하면서 자동차의 잠정타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지금까지와는 달리신중한 분위기. 현대중공업 일부 노조원들은 노조창립기념일로 공식적인 휴무일인데도 불구,노조사무실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현대자동차에 타결사항등을 전화로 문의하는등 자신들의 임금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분석하는등 분주. ○…노동부는 이날 상오 현대자동차 노조가 예정됐던 파업을 중지하고 회사측안을 23일 조합원 총회 찬·반 투표에 부치기로 하자 안도의 표정이 역력.그러나 노사간의 협상분위기를 끝까지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아래 현지의 근로감독관들을 중심으로 50여명이 현지에서 노사지도에 최선을 다하도록 계속 독려중.◎조정위 오늘 구성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 김용소)는 현대자동차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됨에 따라 22일중 노·사·공익 등 3인조정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 여장부 박귀희(외언내언)

    『치마를 둘렀으니 여자지만…』.그의 여장부기질을 두고 주변에서 곧잘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향사 박귀희(본명은 오계화)여사가 영면했다.40년넘게 살아오는 서울 운니동 79의2 자택에서.이집이 지은지 1백년이 훨씬 넘는 전통한옥이다.조선조때 권세있던 내시가 지었다는 것인데 대청마루 천장을 가로지르는 춘양목 대들보는 잘 손질해온 주인의 정성을 말하는듯 반들반들 세월을 모르는 양하다. 판소리에서도 일가를 이룬다는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무형문화재23호.그는 가야금병창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한평생을 몸바쳐온 국악인이다.『어단성장이라 했어요.붙임새는 짧게 목성음은 길게 뽑으라는 말이지요.동편소리는 너무 꼿꼿하고 서편소리는 좀 느끼한 맛이 있어요.이래서 소리제는 섞어 배워야 제맛을 알게 됩니다』.그는 88년,한국바둑사의 중심무대가 되기도 하는 운당여관을 판돈 20억원을 국악예술고등학교재단에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다.국내 첫여성국극단을 창립했을때 싹틔운 꿈을 이룩하는 쾌거였다고 할 것이다. 『옛날엔 꽤괜찮은 얼굴이었어요.한때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때가 있었으니까요』.서른 다섯에 우리나라 최초의 총천연색영화 「선화공주」에서 주연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랬던 이「여장부」도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사진찍히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얼굴의 주름살 드러나는게 보기안좋다는 데서였다.여장부도 역시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할까. 훌륭한 스승아래 훌륭한 제자는 배출된다.안숙선·강정숙·김성녀·오갑순…등등 수백명이 그의 문하를 거쳐갔다.호남이 주류를 이루는 국악계에서 경북칠곡출신인 그는 영남의 맥을 이어내린다고도 하겠으나 그의 말투만 놓고보면 영락없는 호남사람이다.『아따,멋땀시 그란다요』 『안그라요 잉』.스승과 동료들이 그쪽인데다 소리또한 그쪽 사투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국악사에 큰발자국을 남기고 간 그를 기린다.평안히 잠드소서.
  • 모방과 창조/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사람은 모방하며 살게된다.어린이는 부모의 행동을 따라 배운다.제마음 내키는대로 해보지만 실패하며 기성세대를 본받는게 안전함을 깨우친다.그러나 조만간 어른의 뜻에 거역할때가 온다.독립심과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나의 뜻을 내세우고 싶어질때가 있다. 이 자유독립의 단계에서만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이룰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을 모방의 민족이라 업신 여겼다.예전엔 우리 조상의 문물을 본받았고 또 우리가 쇄국정책을 쓰고 있을때 약삭빠르게 서구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흉내내 식민지 획득에 나섰다. 이제 일본인들은 더 이상 모방할게 없어졌다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을 추월,창작하기에 이르렀다.세계적으로 특허 출원에 단연 앞서고 있다.우리야말로 그렇게 욕하던 모방의 시대에 아직도 살고 있다.산업기술은 그렇다치고 TV 광고,청소년의 복장과 머리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게 일제다.문화의 새로운 식민지가 된다는 걱정도 나올 정도로 그 침투가 대단하다. 높은 수준의 문화는 얕은 문화권에 뿌리내리고번지게 된다.제것을 찾고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자의식 즉 개인의 얼,민족의 얼을 지켜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창조자요 섭리자를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창조는 옛일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우리의 목표와 가치는 창조의 목적을 부여받은 창조적 능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준주성범」이란 신앙과 수덕에 고전같은 신심서가 있다.엄격하고 영세적인,중세의 신중심 사상의 내용이라선지 별로 안읽히는데 새삼 개신교 형제들 사이에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새번역이 나왔다.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범임은 분명하다.그러나 2천년전의 상황과 오늘의 현실은 꽤나 같으면서도 다르다. 오늘의 삶가운데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처해있는 상황안에서 모방을 넘어 창조를 이룩하는 것이다.창조적인 사랑만이 부부의 나태와 탈선을 극복하며,창조적인 연구와 투자와 노력만이 세계안에 살아남게 할 것이다. 자기의 얼과 특성 민족의 얼과 특성을 똑바로 찾아 갈고 닦아야 한다.복제인간을 원치않는 창조자임을 믿는다. 이창호가 조훈현스승을 이겼 을때 참스승의 은혜를 갚았다했다.
  • 시카고 체임버 오늘 내한 공연/음악의 즐거움 선물

    ◎정통클래식·팝송·오페라·가요 한자리에/지휘자 디터 코버와 가수 조영남 협연/「갈대의 순정」등 불러 가요수준 재평가 음악에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을까.우리나라 음악가 가운데는 아직도 자신들이 하는 클래식을 빼곤 나머지는 모두 좋지않은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시카고쳄버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디터 코버의 생각은 다르다.이들은 훌륭한 음악과 상대적으로 그에 못미치는 음악은 있을지언정 나쁜 음악이란 없다고 생각한다.청중에게 즐거움을 줄수 있는 음악이 어째서 나쁜 음악일수 있냐는 것이다. 이들은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연주회를 10일과 11일 하오 7시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갖는다. 이 음악회의 2부에는 대중가요 가수 조영남과 그의 아우인 바리톤 조영수(부산대교수)가 나온다.1부는 헨델의 오페라 「솔로몬」서곡과 바하의 「오보에협주곡」(오보에 독주는 워싱턴 맥클레인),하이든의 「교향곡 70번」 등 정통클래식 레퍼토리로 짰다.2부에서는 조영남의 초창기 히트곡인 팝송 「딜라일라」에서부터「갈대의 순정」「만남」「향수」등 가요,그리고 「오!나의 태양」「별은 빛나건만」등 이탈리아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까지 두사람에 의해 불려진다. 「갈대의 순정」이 들어간 것은 조영남의 장난이다.조영남은 당초 세계 정상급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협연자」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고는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고 한다.그러면서 서울음대 재학시절 팝송가수로 변신했다는 이유로 스승과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했던 그로서는 한편으로 우리 음악계가 갖고 있는 편견의 벽에 도전해 보고픈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그 결과 이제는 흘러간 옛노래에 속할 뽕짝조의 「갈대의 순정」을 프로그램 안에 슬며시 끼워 넣었다.12명으로 구성된 「백 코러스」도 넣자고 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않고 불쑥 내민 이런 제의를 받은 디터 코버의 회답은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라면 무조건 OK,빨리 악보를 보내지 않고 무얼하고 있냐」는 것이었다.편곡까지 직접하겠다며 오히려 독촉이었다.이에따라 한달쯤 전에는 「갈대의 순정」을 비롯해 연주될 곡이 담긴 카세트테이프와 악보가 미국에 보내졌다. 코버는 19 52년 직접 창단한 시카고쳄버와의 연주 이외에도 미국과 유럽에서의 눈부신 활동으로 가는 곳마다 존경받는 음악가이다.그러나 한국의 음악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리라고는 기대할수 없다.따라서 이번에 연주할 우리 음악에 대한 평가는 이 노래가 가곡이냐 가요냐 하는 생각의 틀이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관점에서 이루어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영남은 『코버가 이번 연주를 통해 「가곡은 수준 높은 것,가요는 수준 낮은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정반대 되는 생각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대원군 진품난화 2백∼3백점뿐/고서화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상

    ◎당시 감정사 “JP병풍 가짜 판정”/진짜일 경우 현시가로 2억 상당 김종필민자당대표가 80년초 신군부에 의해 빼앗긴 것으로 밝혀 신군부의 도덕성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화제의 「대원군 난병풍」에 정치권뿐 아니라 예술계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우선 그 난병풍의 진품 여부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현재 누가 그것을 갖고 있느냐,또 김씨는 그 병풍을 어디서 입수했느냐는 점등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고미술협회 전회장인 공창호씨(46·관훈동 공창화랑대표)는 2일 『대필한 흔적이 역력해 모조품 판정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석파(대원군의 호)는 김응원 방윤명 윤영기등 당시 제자들에게 자주 자기 이름의 작품을 대필하도록 시켰는데 김씨 집에서 압수했다는 난병풍은 석파 특유의 힘있는 필치로 그린 석란이 아니고 얌전한 느낌을 주는 근란이었기 때문에 대필한 작품으로 판단했던 것같다』고 설명했다. 공씨는 또 『김씨의 병풍은 흔히 「6·6곡」으로 불리는 6폭짜리 2개를 이은 12곡병으로 대원군의병풍중에서도 그같은 작품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 때문에 진품이었다면 1억∼2억원은 호가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모조품이었기 때문에 당시 고미술협회의 감정위원들이 60만원으로 산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원군의 작품은 전지크기(40호)는 드물고 반절지에 수준작이면 1천5백만∼2천만원선에서 거래되나 10호미만의 소품중에서도 좋은 작품은 이정도 가격과 거의 맞먹는다.그러나 같은 크기라도 작품의 상태에 따라 커다란 가격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병풍같은 경우는 최고 5억원까지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원군의 서화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글씨는 추사체에 가까우며 획이 예리하고 힘찬 특징이 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세의 영웅다운 기백이 넘치고 학자다운 문기가 서려 특이한 운치와 패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원군의 서화가 이처럼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현재 시중에 나돌고 있는 작품은 대략 1천여점.그러나 이 가운데 70∼80%는 가짜라고 고미술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이같이 대원군의 작품에 가짜가 많은 까닭은 본인이 대필시킨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제 무단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10년대 독립군자금을 마련키위해 조직적으로 대량 위조 판매됐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 김기창화백,“친일행적 회개”/기념관건립 논란일자(조약돌)

    ○…운보 김기창화백은 1일 자신에 대한 친일 시비와 관련,『일제 말기 친일 활동을 한 사실이 있으며 이에대해 역사와 민족앞에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보는 이날 외아들 김완씨(46)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오는 10월 5권으로 발간할 예정인 「운보의 전작도록」에 회개의 글을 싣겠다』고 덧붙였다. 아들 김씨는 『아버지의 친일은 스승인 이당 김은호화백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운보가 청각장애자로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김씨는 이어 『사재를 모두 털어 장애인 복지사업과 문화예술사업에 힘써 민족과 국가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운보의 뜻을 전했다. 운보는 최근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충북 청원군 북일면 형동리에 기념관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지역 인사들은 그의 친일경력과 기념관건립 예정지 주변이 의병장 한봉수선생등 독립운동가의 유적지임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 교원노조 불인정/정부의 입장 불변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9일 전교조해직교사 복직문제에 대해 『교원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불변의 입장』이라면서 『이같은 기본입장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 학교별로 서명한 해직교사 복직촉구 건의문이 청와대에 전달된것과 관련,『스승이 학생들앞에서 「나는 노동자요」라고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게 대통령의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사들이 직장을 잃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교육자가 노동자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하고 『김정남청와대교문수석도 해직교사복직추진위원회등으로부터 충분한 입장을 전달받은 만큼 문교부측과 긴밀히 협의해 오병문교육장관이 잘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이세기의 인물탐구:31)

    ◎독자적 음악어법·「긴장의 선율」 일품/화려한 경험·탁월한 직관으로 곡핵심 용해/“정상의 기량·풍부한 감성” 연주로 청중 매료/13년간 「바로크 합주단」 이끌어… “노력이 최고덕목” 삶 일관 칼라일의 말처럼 「음악은 천사의 스피치」,만일 자기자신 안에 아무런 음악적 감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마도 영원히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나기같은 박수를 받으며 김민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활을 움직이기 이전의 숨막힐 듯한 정적까지도 그것은 이미 「절묘한 무음의 음악」이다.피치카토 스타카토 트레몰로로 번뜩이는 자유분방한 테크닉과 모든 음악적 패시지는 청중을 무리없이 곡의 핵심속에 침투시킨다.특히 스마트한 론도의 테마를 제시하면서 코다의 영광으로 소연되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청중은 가슴죄는 초조감마저 느껴야 한다.바로 이 싱싱한 긴장감이 김민연주의 특징이며 음악적 능력이다. ○난해한 음악에 집착 그의 직관력은 음악적 형태를 순식간에 포착하여 작곡의 모티브에 유연하게 밀착하는 곡해석으로 유명하다.난해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을 쉽게 소화하면서 작곡자가 의도하는 비밀을 보석처럼 캐내고 다듬어낸다.그러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테크닉은 그것이 아무리 「하이페츠 테크닉」이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외면한 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랜 연주경험을 통해 「자기 음악을 위한 마음의 환경을 잘 가꾸고 있는 연주가」이며 또는 「음악의 모든 프레이즈(구)들이 음악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호흡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계획에 의해 짜여진 노래이자 노골적인 계획에 의해서 불려지는 노래가 아닌 불가사의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연주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한 음악전문지가 기획한 「한국의 명연주가 집중연구」에 음악평론가 이강숙씨가 김민을 추천하면서 쓴 글이다.한상우씨도 「진지하고 확연한 음악적 틀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음악어법을 지닌 존재」임을 전제,특히 김민이 집착하는 브리튼이나프로코피예프,슈니트케와 츠빌리히등 현대음악이 갖는 난해성을 「활력있는 테크닉의 조화를 통해 긴장감과 함께 리듬을 확대시켜 강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과연 그에게서 긴장감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그에게서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확실한 가능성이 돋보이는 유망주」로 성장한 케이스다.본격적으로 바이올린수업을 받던 서울예고시절부터 첼로 정명화와 함께 예고실내악단을 조직하여 활동했고 아직 고교2학년때 서울대음대가 주최하는 전국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서 선배·동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대학에 들어가자 바로 국립교향악단(현KBS교향악단)에 입단,65년 첼리스트 전봉초씨가 창단한 바로크합주단 부악장등 문자그대로 음악의 탄탄대로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시련의 독유학 시절 그러나 그가 유학한 독일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파란과 시련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예술가로서의 첫 갈등과 회의속에서 그는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끝났는가」라는 좌절감에 허우적거렸다.이제까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은 엄청난 허상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실상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소스라칠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르크국립음악원에서 만난 빌프리트 한케교수는 바흐 바이올린곡을 첫과제로 내주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심오한 환상과 고고한 기품,음악의 모든 정교한 기법을 담아야 하는 이 절후의 명작은 고국연주때 「풍부한 음악적 감성」으로 호평받았고 그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한케교수는 1악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연습해올 것을 명령했다.1주일후 다시 교수 앞에 섰으나 이번엔 『이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교수의 이말은 그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다.여기에 일본인 학생과 비교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가파른 위기의식을 느꼈다.여기서 도망친다면 영영 그만이다.자존심을 천재로 알던 그로서는 이때의 모욕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서울예고시절 오케스트라연습에 늦었다는 이유로 당시지도교수이던 이재헌씨가 「주의」했을 뿐인데도 그 길로 연습실을 빠져나가 연주회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관현악 대신 쳄버오케스트라로 편성하여 바이올린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컸으나 교수는 김민을 나무라지 못했다.건드리면 옥죄는 식물처럼 선병질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끝내 「크리스탈 유리잔 다루듯」했다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그때 내가 크게 꾸짖었다면 오늘의 김민의 대성은 없었을 것이다.자존심만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할일을 투철하게 해내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김민이 독일에서 당한 모욕은 일생일대 대사건일 수밖에 없었다.6개월 만에 바흐 통과후에도 불가사의한 인내심으로 그는 2년간 한케교수 밑에 머물렀다.그리고 한케교수의 손꼽히는 제자로 인정받게 되자 미련없이 그로부터 떠나버렸다. ○세계30국 순회 연주 이번엔 베를린국립음악원 교수이자 혈기왕성한 토마스 브란디스교수를만났다.브란디스 사사를 원하자 한케교수는 크게 실망하며 「너의 재능과 개성을 키워줄 사람은 나」라고 설득하려 들었다.그러나 그는 여러 스승을 섭력한다는 의지로 브란디스문하에 들어갔고 여기서의 시련은 한케 이상의 고통이었다. 곡마다의 프레이스를 수백번씩 되풀이하면서 이를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문자그대로 피나는 훈련이었다. 한케교수가 완벽주의라면 브란디스교수는 이미 인정된 가능성 위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탐색해나가는 노력파였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자존심을 다쳐 결정적인 상처를 주기보다 끈질긴 집념에의한 노력에의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섬세한 예술가의 심성이란 작은 상처에도 영원한 좌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끈질긴 노력끝에 눈부신 성취감을 가르쳤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재학중에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에서 첫독주로 서독음악계에 데뷔,입단이 까다로운 북독일라디오방송교향악단,로린마젤이 지휘자로 있는 베를린방송오케스트라와 함께 전세계 30개국 순회공연했고 그때 만난 줄리어드음대 출신인 피아니스트 윤미경(한양대교수)과 74년에 결혼,지금까지 음악의 협력자·조언자로서의 이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둘사이엔 아들 하나(태원·고2). 독일체류 10년만인 79년에 돌아와서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악장취임,서울대음대교수·바로크합주단 재창단등 다양한 역할을 빈틈없이 맡아 「자신이 지닌 것과 음악이 원하는 사이를 훌륭하게 중재한다」는 주위의 평을 듣고 있다. 오케스트라보다 규모가 작은 실내악앙상블은 그 음악적 질이 한층 치열하고 치밀한 것이 특색이다.또 섬세하고 투명하여 독주자로서의 세련된 기량을 지니면서 여러 소리를 한데 묶어주는 음악적 조직측면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3년간 그는 악장과 지휘를 겸하는 리더로서 이무지치에 비견되는 위치로 바로크합주단을 올려놨고 최근에는 세계정상급 매니지먼트인 콜럼비아 아티스트와 계약,내년부터 세계투어에 들어간다. ○예술가 집안서 성장 그는 원로서예가이며 플루트를 연주하던 심당 김제인씨(82)와 이전 피아노과 출신인 이재순여사(82)의 3남매중 장남.여동생 장희씨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남동생 춘씨는 그래픽 디자이너등 예술가집안에서 어릴때부터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주저없이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림솜씨가 뛰어나 예고진학 때는 미술과 음악을 놓고 망설이기도 했으나 스승인 임원식씨와 이재헌씨의 강력한 조언으로 바이올린의 길을 택했다. 검은 안경과 검은 티셔츠,북유럽풍의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즐기는 만년소년같은 모습은 어느 한 구석에도 세월의 흔적이나 인생의 혹독한 시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또 「모든 것은 내가 열심히 한 탓이 아니라 내 위에서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고」그 누군가를 위해 연주한다는 그의 자세는 음악외엔 도무지 딴관심이나 욕심이 없는 듯 검은 연주복,눈부시게 흰 소매끝에서조차 바그너의 무한선율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흘러나올 뿐이다. □연혁 ▲1942년 서울출생 ▲1960년 서울예고졸업(안용구·이재헌 사사)서울대 음대입학(국립교향락단입단·서울대실내악단·한국학생실내악단 활동) ▲1962년 동아음락콩쿠르 입상 〃 국향과 비에니아프스키협연 데뷔 ▲1964년 서울대 음대졸업 ▲1965년 바로크합주단(단장 전봉초)창단멤버 부악장 ▲1968년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서독유학독주회 ▲1969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원(빌프리트 한케,토마스 브란디스 사사) ▲1972년 재학시 함부르크 클라이네 뮤직홀 첫독주 ▲1972∼74년 쾰른실내악단 부악장,솔리스트,악장 ▲1974년 일시귀국 국립극장 개관기념 독주회 〃 쾰른 실내악단과 캐나다·미국·중남미등 30개국 순회연주 ▲ 〃 북독일라디오방송(NDR)단원및 독주자 ▲1976∼79년 베를린방송 교향악단 단원및 독주자 ▲1977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선발이후(해외다연주참가) ▲1979년 귀국,국립교향락단 악장취임(이후 정기연주·협연참가) 〃 독일문화원주최「바흐,베토벤,프로코피예프를 위한 소나타의 밤」연주 ▲1980년 바로크합주단 재창단 악장겸 리더,해마다 정기연주 4회및 초청연주외 1백50여회연주와 미국등 해외연주 ▲1981년 KBSTV콘서트 텔레만 탄생 300주년 기념 연주 ▲1982년 제4회 독주회 겸 부인인 피아니스트 윤미경과 열번째 부부연주 ▲1984년 KBS교향락단과 일본및 동남아 순회연주 ▲1985년 호암아트홀 초청독주회 ▲1986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월드필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초청연주 ▲1987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듀오이벤트(멜버른) ▲1990년 바로크 합주단 창단 25주년 기념연주 ▲1991년 바로크합주단 동남아 순회연주 ▲1993년3월 서울대 교수 실내악단 창단 첫 연주,한미 우호협회 한국주재 미군과 미국관계자 초청 6월축제 78 한국펜클럽선정 「이달의 음악가상」,87 한국음악가협회제정 「올해의 음악가」,87 바이로이트 바그너페스티벌 10년참가감사패,89 음악동아「올해의 음악가상」,바로크합주단 CD출반
  • 택시회사 노조위장 피습/운행중 승객가장 괴한에 온몸 찔려

    ◎사주비리 고발 보복테러인듯 【김천=한찬규기자】 택시회사 노조위원장이 심야운행중 승객을 가장한 괴한에 피습당한 사건이 발생,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5일 상오 2시40분쯤 경북 금릉군 감천리 금송2리 이라리 버스승강장부근에서 구미택시(주)노조위원장 위성택씨(39)가 경북 2바 8376호 택시를 운전하고 가다 30대 남자승객이 휘두른 흉기에 찔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주변 우범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하는 한편 위씨측이 범인이 돈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최근 단체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다 노조원들이 회사대표의 비행을 사직당국에 진정한점 등을 들어 계획된 테러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
  • 몸매·창의력·끼 겸비한 춤의 요정(이세기의 인물탐구:30)

    ◎환상의 율동속 감성·지성 융해… 칠정묘파/「…슈퍼스타」로 데뷔… 문학성 짙은 작품 추구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한다.「우리의 걸음걸이는 너무 쉽고 익숙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스텝을 결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신기한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박명숙은 최근 그가 번역한 샐리 베인즈의 「포스트 모던댄스」서문에 이 글을 인용하고 있다.그는 모든 것은 춤,모든 움직임은 춤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보행조차도 이미 춤임을 알고있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다. ○보행도 춤으로 인식 지금부터 20년전 그가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맡았을때는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는 한낱 외롭고 초라한 여인을 표현하는데 불과했다.그 무대는 청순한 처절미로 일관돼 있었다.그러나 지난해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수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는 인생의 고락과 희비,번뇌와 갈등을 넉넉하게 껴안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승화되어 그날 관객들은 사랑의 힘으로 신에게다가간 절실한 기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연극이나 영화처럼 언어없는 춤이 신비한 주술임을 체험한 순간이었고 특히 하이라이트를 이룬 「어떻게 그를 사랑할지(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박명숙솔로는 평자들로 하여금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는 평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춤은 대부분 짙은 문학성과 철학성,그리고 연극적인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작품전편에 깔고있는 점이 특징이다.흔해빠진 일상적인 것을 일순간에 초월하여 의외성과 경이로움으로 역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빗발치는듯한 눈부신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비둘기만 날아가다」가 그랬고,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곡선과 직선을 사선으로 붕괴한 「시간기행」「풀잎환상」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언제나 당황하고 망설이고 거부하는 습관이 배어있다.그것은 섬약한 감성과 투철한 지성감이 복합적으로 대립되어 어느 한쪽의 우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려는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한 예로73년 육친같은 스승인 육완순씨가 영국의 록오페라 「…수퍼스타」를 현대무용으로 재구성·안무하여 그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맡겼을때,그래서 모든 무용계가 육완순을 잇는 제2의 스타탄생을 기대하고 있을때 그는 개막을 앞둔 몇시간전 소리없이 도망쳐버린 적이 있었다.물론 소동과 곡절끝에 어렵게 막이 올려지긴 했으나 그후 자신의 작품이 막이 오를때도 바로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두려움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그러나 연극계와 화단,음악 문학 사진 조각 각 분야의 사람들과 절친한 우정을 누려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얼굴의 하나이기도하다. 박명숙은 어릴때부터 춤췄다.사업을 하는 박승규씨와 김대순여사 사이의 3남매중 외동딸.어머니의 손에 끌려 국립국악원 김부남씨에게 고전무용,진명여중 2학년때 김정욱씨에게 발레,여고 2학년때 육완순씨의 현대무용발표회를 보고 그는 그가 선택해야 할 길을 「두눈을 크게 뜨듯」결정할 수 있었다.육완순씨는 박명숙의 극과극의 기질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나 과묵하면서도 참을성 있고 화려하면서도 겸손하고,그리고 무엇보다 욕심이 도사린 승부근성이 대성의 지름길임을 간파한 것이다.더구나 나는 듯한,출렁이는 듯한 긴 팔의 선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새의 선회처럼 신선하기만 했다.그의 두 팔에 대해선 같은 경희대 교수이며 무용계 대선배인 김백봉씨도 「백만불짜리」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무용가가 아름다운 체구에다 재능,거기에다 번뜩이는 창의력까지 지녔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모두들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고 최욱경과도 절친 단지 한사람,연전에 타계한 화가 최욱경만은 예외였다.생전에 천재화가로 불리던 최욱경의 박명숙에 대한 사랑은 좀더 끈끈하고 각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 마사 그레이엄을 더 배우고 싶어하면 최욱경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그 사람의 것은 그의 것.외국은 여행만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결혼할 때도 「예술가의 결혼은 난센스」라고 쏘아붙였다.『춤이 있는데 결혼하다니,너는 너무 욕심이 많은가』라고.그후 결혼해서 남매를 낳고 이제부터는 「춤」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지자 『결혼과 아이가 왜 춤에 방해가 되는가? 결혼과 아이는 네 예술을 더 살찌웠다.네가 무용가라면 죽을 때까지,그리고 죽을 때도 무대에 서라』고 충고했다. 광기와 신기없이 늘 조용한 박명숙도 최욱경의 천장까지 그림으로 들어 찬 여의도 화실에 들어서면 언제라도 즉흥무를 출수 있게 되었고 최욱경은 그런 박명숙을 모델삼아 춤추는 그림들을 얼마든지 남기고 있다. 최욱경이 타계하자 친형제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던 그는 작품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화려한 장례식춤을 만들어 사랑하던 화가 친구에게 바쳤다. 박명숙은 고지식하고 외곬인 성격으로 한곳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또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굵은 실로 뜬 숄을 두르고 앉아 연습실에서 작은 막대기 하나만으로 「다시!」이렇게 지시하고연습한다.튀는 사람이 있으면 사정없이 몰아붙이되 상대방이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 작품에다 연결시켜 나간다.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그를 따르고 아끼고,그도 제자들이 「나의 재산,그래서 나는 부자」라고 말할 정도다. 1주일에 20시간의 강의,요즘은 26일로 다가온 춤발표회를 앞두고 연습에 쫓겨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지만 부군 유대렬씨는 「춤만 제일이냐?」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오히려 일만 아는 아내가 애처로운 나머지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라고 지켜보고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딸 희주(19·이화여대무용과)는 어릴때부터 남몰래 춤추어왔고 지난해엔 혼자서 동아무용콩쿠르에 나가 금상을 타왔다.그전까지는 한동작도 춤을 지도하지 않았으나 「피는 속일 수 없어」 비로소 감싸기로 마음먹었다. ○명분·사명감에 눈떠 이제 박명숙은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됐다고 말한다.한사람의 아내·어머니이기도 하지만 그는 무용가이고 제자를 길러내야할 교수다.단 한번도 선생이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스승과선배들의 현대무용 30년을 잇기 위한 뼈저린 흔적이 자신에게 닿고 있음을 피하려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뚜렷한 명분과 사명감에 눈뜨자 그 옛날의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움트려하고 있다.그래서 이를 씻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몸속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묘한 힘에 이끌려 담담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물론 그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언제나 박명숙,나의 방식대로」 춤추고 있을 뿐이다. 더글러스 던의 「춤추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케네스 킹의 「춤추는 존재가 되는 것」,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신에게 다가가는 정신의 춤을 추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연보◁ ▲1950년 서울 효자동 출생 ▲1972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동대학원 졸업 ▲1976년 N Y 머스커닝햄 마사 그레이엄 엘빈에일리 현대무용학교 수료,뉴욕대학 대학원 무용과 박사과정이수(NYU DA코스),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1년부터 현재 경희대무용과 교수,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 예술총감독,한국 현대무용 협회이사,한국무용협회이사,경희대 무용과교수 ◇공연 ▲1973년 팀라이스 작사·앤드루 웨버 작곡 육완순안무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역으로 데뷔이래 20년간 2백여회 출연.그외 박명숙 현대무용단(78년이래 해마다)제1회 한국현대무용향연(82년이래 해마다),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아시아무용제 참가,제10회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88서울올림픽 개회식(엠불렘춤)등 국내 해외공연등 수백회 ▲1993년6월26일 박명숙춤 「구십삼년6월」 문예회관대극장 예정 ◇대표작 「잿빛우울의 거리」「얇은사 하이얀 고깔은」「초혼 ⅠⅡⅢⅣ」「살풀이」「학ⅠⅡ」「소용돌이치는 영혼」「결혼식과 장례식」「그날새벽 ⅠⅡ」「비옷을 입은 천사」등 78편 안무 수 상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문공부장관상,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0년)·개인상(82년),86예술가상,코파나스상(86년),서울무용제 안무상(91년)
  • 교단의 자정이후(개혁바람… 달라지는 세상:11)

    ◎홀가분해진 학부모­교사 상담/진정한 대화 막아온 「봉투악습」 사라져/고액과외·치맛바람 퇴조… 교육 정상화 일선 교육현장이 달라지고 있다.불치의 고질병으로 치부돼왔던 「돈봉투」가 사라지고 돈을 벌기위해서라면 스승으로서의 자긍심마저도 버리던 일부 교사들의 고액과외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같은 변화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학부모나 일선 교사들은 한동안 악습을 반복해왔다. 각급 학교의 비뚤어진 관행은 워낙 뿌리가 깊어 역대 장관들이 으레 강조해왔지만 그때마다 공염불에 그쳐왔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아예 「돈봉투 학군」으로 알려진 8학군의 S고교에서 1학년 학급 담임 교사(36)는 올들어 7명의 학부모로부터 1백20만원의 촌지를 받았다.3월 학기초부터 지난 4월중순까지 학부모들이 담임교사와 자녀문제를 상담하러 오면서 건네 준 것이다.3명의 학부모는 10만원씩,또 다른 3명의 학부모는 20만원씩을 주었고 1명은 30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이같은 학부모들의 촌지는 ▲담임한학년에 따라 다르고 ▲같은 8학군이라도 학부모의 경제수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돈봉투를 들고 학교선생님을 찾아오는 학부모 수는 대략 한반의 60명 가운데 20명정도로 비슷하지만 봉투속에 든 돈의 액수가 다르고 담임교사를 찾는 횟수에 차이난다. S고의 경우 고3 담임 연간 1천만원,고1 담임 8백만원,고2 담임 5백만원정도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같은 8학군이라도 서울 압구정동의 K고교나 청담동의 C고교등에서는 형편이 또 다르다.전국에서 최고 노른자위 학교로 알려진 이들 학교에서는 돈봉투의 단위가 최소한 20만원이기 때문에 연간 촌지 액수가 서울소재 다른 고교의 2배정도라는게 일선 교사들사이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흡사 교사와 학부모의 악순환처럼 굳어졌던 촌지관행이 지난 4월중순 개혁바람이 교육계에도 밀어닥치자 약속이나 한듯 바람처럼 사라졌다.찾아오는 학부모도 돈봉투를 준비하지 않고 교사도 아예 봉투받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S고교의 교사는 4월말 쯤에도 2명의 학부모와 면담을 했지만 진학문제만 진지하게 상담했고 학부모도 자연스럽게 그냥 돌아갔다.자연스레 치맛바람도 사라졌다.지난 스승의 날에는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의 선물도 받지 않았을 정도였다. 새정부의 개혁바람으로 사라진 또 다른 악폐의 하나가 일부 교사들의 고액과외 풍조이다.1주일에 두번 출장가서 2시간씩 영어나 수학과목을 과외교습하면 대략 1백만원씩을 받는다. 서울 구로구 M중학교의 한 영어교사(24)는 『대학시절 했던 과외 학생들을 통해 중·고생들에 대한 과외교습 제의를 숱하게 받아왔으나 요즘들어 과외교습 제의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또 교사생활 13년째인 서울 강남의 K고교의 사회과 교사는 『일선 교사들은 누구나 몇번씩은 고액과외 제의를 받아 보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요즘은 학부모도 교사들에게 과외를 부탁하지 않고 교사들도 한마디로 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정부 출범이후 교사나 학부모들이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이번 기회에 교육계의 일그러진 현상을 바로 잡아 교육풍토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자는데 자연스럽게 의견을 모은것 같다는 것이최근 교육계풍토가 달라지고 있는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
  • 건축가 엄덕문씨(이세기의 인물탐구:29)

    ◎자연이 담긴 한국적 건축문화 선도/「최상의 기능·최고의 미」 조화이룬 공간 추구/물욕없는 양심파… “대담·화기살린 구조” 정평/모두 격찬한 세종문화회관이 대표작… 데생·서악에도 빼어나 아름다운 푸른 자연을 경관으로 그 경관을 캔버스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괴테가 말한 것처럼 「단 한번도 살아보지 못할 건물을 낳기위해」원로건축가 엄덕문씨는 그때마다 모든 영혼,모든 마음,모든 정열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하나의 건축이 지나치게 잘 꾸며졌다는 사실은 건축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일지 모른다.그것이 올바른 장소에 세워졌느냐,어떻게 쓰일 건물이냐에 따라 기능적인 특징을 질서정연하게 갖춰야만 비로소 최고의 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둥근 초가지붕과 미닫이창,쪽마루와 굴뚝과 사립짝,싱싱한 소나무 숲속에 둘러싸인 삼칸두옥은 얼마나 표정이 풍부한가.여기에 에메랄드비색같은 하늘과 햇빛·한가로운 구름의 모습,바람에 흔들리는 풍경(풍경)소리조차 건축에 포함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엄덕문 건축의 언어다.이를테면 온기와 화기,개성과 낭만,무한한 자연에의 추구가 엿보일 때만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된다는 논리다. 그는 모름지기 우리 건축계의 원로이자 현대건축의 선두주자의 한 사람이면서도 좀처럼 자신의 치적이나 업적을 앞세우는 법이 없다.겸허하게 주변에 양보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일요화가회서 활동 다만 음악에 심취했던 일,화가 이마동 박광진씨등과 어울려 일요화가회에서 그림그리던 일만은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성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토스카」에서의 「별은 빛나건만」,도니체티「사랑의 묘약」중에서 「남모를 눈물」의 라멘토소 탄식은 그의 많은 노래 중에서도 절창으로 손꼽히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러나 완고한 엄친은 그를 노래부르지 못하게 했고 그림물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생전에 서양화가 이마동씨는 그의 「대한민국에서 알아줘야 할 데생실력」을 못내 아까워했고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취미삼아 여기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투시도를 그릴 때도 그는 절대로 자를 대는 법이 없다.지우개로 지우지도 않는다.자를 대면 선은 죽어버린다.그래서 그가 그려온 투시도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삶의 여러 모습과 잔잔한 시어를 오밀조밀 담고있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예술적 정서를 지닌 반면 영묘하거나 민첩한 재기가 번뜩이는 수재형과는 유형을 달리한다.언제나 넉넉하고 신중하고 건실하다.마치 큰날개로 범상하는 알바트로스처럼 천천히 크고 넓게 그리고 높고 길게 나는 편에 속한다. 그는 동경유학시절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건축가 F L 라이트의 데이코쿠(제국)호텔을 보고 건축의 기능과 미의 조화에 일찍이 눈떠갔다.단순한 호텔건물이 아닌 호텔의 기능을 최상으로 살리면서 현대적 건축양식과 동양의 전통미를 절묘하게 절충한 점이 놀라웠다. ○라이트작품에 감동 더구나 「라이트작품집」에 실린 「카프만의 집」은 혼도직전의 감동과 함께 그가 걸어가야할 건축의 방향과 목적을 번개처럼 일깨워주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천연바위 위에 지은 이 별장은 자연 그대로의 일부였으며 건축과 자연과의 대선율적 조화를 단적으로 성취시킨 걸작품이었기 때문이다.인간이 없는 자연,자연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고 인간이 바로 이 지구상의 주인임을 각성시킨 예였다. 건축에 관한한 더 이상의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건축은 도시를 형성하는 그림이었고 교치와 아치의 거대한 조형세계였다.부친을 원망하며 못내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음악과 미술이 그곳에 도사려 있었다.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작업에 그는 당연하게 취할듯이 빠져들어갔다. 작품을 보면 그사람의 인간됨을 알수 있듯이 그가 이뤄논 건물들은 한결같이 스케일이 방대하고 대담하고 헌칠한다. 세종로 한복판,사방 어디서 보아도 그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의 호쾌한 선만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궁궐의 열주를 변형시킨 8각기둥과 8m나 곡선이 뻗어나간 캔틸레버,만자창살로 처리된 벽면등은 「동양최대의 문화예술전당」이란 찬사에 걸맞게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과 「예술적 조형미 단연압권」으로 개관당시부터 신문방송의 대대적인 기대를 모았었다. 이른바 엄덕문의 「최상의 기능·최고의 미」를 실현시킨 「세종문화회관식 건축」의 탄생이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여유만만 작작유여하다.이기심이나 경쟁심이 없어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6·25직후 불어닥칠 건설붐에 앞서 낙후된 건축기술을 향상시킨다는 차원에서 후배인 김중업씨를 프랑스에 유학시킨 일화는 건축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모두들 가난하고 절박하게 어려웠던 부산피란시절,풍산산업 김영구사장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을때 그는 「나대신 재능있는 후배」를 밀었고 김중업씨가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연구소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홍대에 건축과 창설 그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워지면 의욕적인 동료들을 작업에 참가시켰고 동료중의 하나가 공금실수를 저질렀을때도 수년에 걸쳐 자신의 빚처럼 갚아나갔다.또 조각가 윤효중씨와 함께 홍대에 건축과를 창설,국전 미술부문에 「건축」을 포함시킨 공로자이기도 하다. 나이 40을 넘긴 지난 60년,그가 다닌 일본 조도전대공고는 전문대 교육수준이라면서 한양대 홍대 이대에 출강하는 교수신분으로 뒤늦게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생생한 현장경력만으로 충분히 교수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남들이 다밟는 절차에서 특혜자가 되긴 싫다고 굳이 대학과정을 졸업했다. 많은 건축가들,이를테면 건축원로 김희춘씨와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근·김중업씨 등이 그들의 집을 짓지 못한 것처럼 그도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라곤 없다.지금도 둔촌동의 한 빌라에서 5남매를 출가시키고 부인 고희용여사와 둘이 살면서 공용택지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취미다. 한창 부흥부의 도움으로 국민주택을 지을때도 20평규모 50가구씩 50동의 배당을 받았으나 건축가의 양식으로 형편없이 허술한 집을 지을수 없다는 신념에서 2m 도로폭을 4m로,좀더 탄탄하고 실용적인 건축자재를 써서 30가구로 줄어든 바람에 업자들과 관계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돈과는 상관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않아 그의 결벽과 청렴은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있다.오죽하면 건축가 홍순오·송민구씨가 『엄덕문이가 화를 냈다면 그를 화나게한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엄덕문씨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태어났다.부친 엄항주씨는 경남 충무,옛통영 나전(나전)칠기의 장인으로 이왕직의 교사였고 명공 김진갑 김봉명의 스승이기도 하다.성격이 유별나고 꼿꼿하기만 한 부친의 엄한 가정교육이 그의 인격과 성격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다만 부친의 추호도 용서함이 없는 단호함에 비해 그는 「성실·정직·효도」의 가훈아래서 부모말씀에 극진히 순종하고 반듯하게 처신하여 일제시대때는 동네에서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그는 너무 단단하여 부러지기 쉬운 성격보다 만사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수용하는 편에 속한다. ○장인집안서 태어나 『해방된지 반세기를 바라보건만 우리 정서와 한국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현대 한국건축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그는 이제 우리의 멋과 미를 현대건축에 접목시킨 「우리의 것」을 창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의자하나라도 인체구조에 알맞게 가장 편안한 기능을 살려야만 최고의 미라 할 수 있다.디자인만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아니다』 그는 최근 마포에 있는 도원빌딩에 홍역문의 이미지를 건물입구에 적용시키고 부분 부조와 떡살무늬 솥뚜껑과 만자창살을 적절하게 살린 한국적 현대건축을 시도한바 있다.그리고 미완성이긴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최고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지로 충주호수 관광설계에 임하고 있다. 라이트가 「카프만의 집」을 지은것은 69세,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완성한 것은 그가 작고하던 해인 92세,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50부터나 60부터가 아닌,지금 무엇인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있다면 그나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것이 아니겠는가고 묻는다. 건축가로서 국전의 영예인 심사위원장을 거쳤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건축으로는 처음 미술부문을 수상,오랜 파란끝에 예술성취를 이루는 모습은 체관으로 자연을 응시하는 청결과 정열,그나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투철한 사명감이 담겨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가느껴지게 한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 엄항주씨와 김수경여사의 3남4녀중 셋째(장남) ▲1943년 일본 조도전대학 공고건축과졸업 ▲1960년 한양대 공대 건축과졸업 ▲1946년부터 한양대 출강 ▲1954년 신건축 문화연구소 창설 ▲ 〃 대한민국 건축학회 이사 ▲1956년 홍대 건축과 창설(조각가 윤효중씨 등과) ▲1956∼69년 홍대 및 이대 미대 교수 ▲1956년 국전에 「건축」부문 참여 ▲1956∼80년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국전 운영위원 ▲1960∼81년 국전 심사위원 ▲1964년부터 일본건축가협회 초청 한국대표참석이후 각종 국제회의 참가 ▲1970∼72년 한국 건축가협회 회장 ▲1970년 UIA(국제건축가연맹)회원 ▲ 〃 예총 상임이사 ▲1971년 서울특별시 행정 자문위원 ▲1977년 서울특별시 도시재개발 심사위원 ▲1980년 국전 심사위원장 ▲1988년 엄덕문 건축상 제정(매년 시행) ▲1990∼91년 대한민국 건축대전 운영위원장 ▲1992년 한국건축가협회 작가상 심사위원장 ▲현 재엄·이 건축연구소 회장·조도전 도문 건축회 회장·한국건축가 협회 명예이사 남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리틀엔젤스 예술회관·세종문화회관·정부제2종합청사(과천)·롯데호텔(을지로입구)·롯데백화점·대한교육보험(교보빌딩)본사사옥및 전국 각 지사 빌딩·중소기업은행본점·단양 한국시멘트공장·남산외인주택·외인아파트·도원빌딩(마포)·충주호수일대 관광시설설계·이승만전대통령동상·민충정공·세종대왕·이율곡·다산·4·19학생의거기념탑 좌대및 구조물 일체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석탑산업훈장(세종문화회관설계공로)89 제2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미술부문)·초평건축상 수상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