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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과 김일성 비교론/김학준교수,남북한단정 두주역을 말한다

    ◎끝까지 항일깃발… 사상적 뿌리 민주주의에/이승만/기독교신자서 마지막 스탈린주의자로 종말/김일성 대한민국 건국 4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삼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 가운데 한 분으로 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장과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박사를 생각하게 된다.동시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는데 앞장서 북한 공산정권의 초대 내각수상으로 북한 권력구조의 정상에 오른 뒤 무려 46년동안 1인장기집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죽은 김일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똑같은 이북 사람으로 이승만은 황해도에서,김일성은 평안남도에서 각각 태어났다.두 사람은 37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는데 그러나 차이는 연령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부분들에 걸쳐 있다.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황혼기에 태어나 고전적인 한문교육을 받다가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다니며 미국 교육을 받았다.이렇게 볼때 그는 미국 교육 또는 서양 교육을 일찍받은 당대의 선진적 소수 지식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서양 민주주의와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그는 상당히 자극됐으며 그리하여 독립협회 운동과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해 싸우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된 뒤 그는 기독교 청년운동에 종사하다가 도미하여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사를,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및 역사학 분야의 석사를,그리고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및 국제법 분야에서의 박사를 각각 받았다.그의 학문적 배경만을 놓고 볼때 당시의 조선사람으로는 단연 정상급의 학자였다고 할 것이다. 이승만은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에서 벌어진 심각한 노선투쟁은,특히 무장투쟁노선을 옹호하는 세력은 외교선전노선을 앞세우는 이승만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만들고 이 기구를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국제연맹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운동에 매달리게 했다. 그의 독립운동 방식이 무장투쟁 방식의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단 한차례도 일제와 타협한 일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항일독립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 망국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이승만이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듯 김일성 역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그러나 이승만이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켰음에 반해 김일성은 곧 기독교를 버리고 반기독교적 입장에 섰다는 점이 대조된다. 이승만의 교육적 배경과 활동의 무대가 미국이었음에 비해 김일성의 그것들은 만주였다.이승만이 영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썼음에 비해 김일성이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썼다는 대조도 흥미롭다. 김일성의 교육은 그러나 중학교 퇴학으로 끝났다.그는 곧 중국공산당 당원이 됐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고 그 종착역은 소련극동군의 정보특무 대위였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승만은 만70세의 노인으로 미국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한편 김일성은 만33세의 청년으로 소련으로부터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승만의 사상적 뿌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였다.그래서 그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국가 이데올로기,곧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소련의 영토적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소련이 북한을 발판으로 남한까지 공산화시켜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일찍부터 단정론을 들고 나왔다.되지도 않을 남북통일에 연연하다가는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성이 크므로.게다가 북한에서는 「소련 점령군의 앞잡이」김일성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창출되고 있으므로 남한에서도 서둘러 정부를 수립해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소련점령군의 북한 소비에트화 전략을 떠받들고 북한에 공산주의 단독정권을 세워나갔다.그는 이 단독적 공산정권이 서고나면 그것을 발판삼아 남한까지 공산화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48년8월15일에는 남한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졌고,같은해 9월9일에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두 국가는 각각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했다.부인할 뿐만아니라 상대방을자신에게 흡수통합시키기위해 무력의 사용도 주저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가해 온 쪽은 김일성이었다.그는 소련및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50년6월25일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동족상잔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승만은 다행히 미국의,그리고 국제연합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압록강까지 진격해 북진통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이 시점에서 김일성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정권의 궤멸을 막을 수 있었다.여기서 전전 원상의 회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휴전이 성립됐고 이 휴전체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승만은 권위주의 체제의 길을 걸었다.부산 정치파동과 3선개헌을 거치면서 민심의 이반을 낳았던 그의 통치는 결국 60년의 3·15부정선거로 귀결됐으며 4·19학생의거에 따른 4월혁명을 만나게 됐다. 대한민국의 조지워싱턴이 될 수 있었던 그는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고,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5년 뒤 그는 유명을 달리한 채 귀국했다. 김일성은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스탈린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자 했다.그것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피치자에 대한 억압과 세뇌였다. 이승만이 하야한 뒤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다.헌정사에는 굴곡이 적지 않았으며 어두웠던 시절들이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쌓아올린 건국의 울타리 안에서 대한민국은 결국 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일성의 북한은 한때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앞선 때가 있었다.그러나 1인 장기집권의 억압체제가 반세기 가깝게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활력을 잃게 됐으며 자연히 경제적 침체라는 늪속에 깊숙하게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북한 공산체제의 붕괴론마저 나오는 시점에서 김일성은 마침내 죽었다.이승만의 별세 이후 29년만의 일이다. 48년 이후 남쪽에서는 공화정이 여섯차례나 바뀌었고 최고권력자도 일곱사람이나 나왔다.그래서 대한민국은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교체를 통한 국민적 활력이 살아도 나고 지탱도 되어 선진국을 바라볼 수 있는 민주적 신흥공업국가로 커졌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최고집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은채 지내오다보니 세포가 죽어버려 결과적으로 빈곤의 땅이 됐다.이것은 김일성이 역사적으로 너무 오래 살았음을 의미한다.역사와 민족을 위해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권력에서 떠났어야 했다. 이제 미래가 대한민국의 편임이 확실해졌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시대적 흐름을 탄 대한민국으로서 자신감을 갖되 신중하게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해 착실하게 전진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김정일체제의 성격과 방향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우선은 기본적인 교류와 협력의 부문에 돌파구가 열리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년의 8·15는 해방 50주년이면서 분단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역사적 시점이다.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겨레의 형편이 훨씬 더 개선되기를 바란다.
  • 「박총장 발언」 각계의 반응

    “주사파는 대남적화용 세포… 격리 마땅”/운동권 이념문제 사회적 평가 확실히 내려야/합리적 학생운동 자리잡을수 있도록 노력을 서강대 박홍총장을 비롯한 일부대학총장들이 대학가의 주사파나 좌경사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데 대해 사회 각계인사들은 소신있는 행동으로 지지의 뜻을 나타냈으나 이번 일로 우리 사회가 소모적인 이념논쟁에 휩쓸려서는 안되며 합리적인 학생운동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동노력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동익목사·새문안교회 주사파운동권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지난 수년동안 느껴온 것으로 박총장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과거 유신과 5공시절에는 민주화라는 대과제때문에 운동권의 이념을 본격적으로 문제삼을 형편이 못되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뀐 만큼 차제에 국민적 논의를 거쳐 운동권의 이념문제에 대한 평가를 확실히 하고 사회적으로 정화해야 한다. ▲김덕환씨·쌍용그룹 종합조정실장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박총장의 발언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동안 대부분의 사회지도층들은 학생운동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꺼려왔는데 박총장이 운동권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한다.다만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이때 불필요한 사상논쟁으로 국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문구씨·소설가 박총장의 용기있는 발언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현교육 풍토에서 모처럼 본을 보인 스승다운 자세라고 생각한다.학생운동에서 진실이 결여된 운동은 의미가 없으며 학생들이 북한의 대남선전용의 세포로 전락한다면 사회에서 추방 격리되어야 한다.학부모도 하기 어려운 우리의 대학 현실과 학생운동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박총장의 용기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김인회교수·연세대 교육학과 과거 군사정부하에서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대학의 권위도 서지 않았고 학생운동이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지렁이는 땅속에서만 살 수 있고 햇볕에 나오면 살 수 없다.학생들의 지하활동을 가능케 하고 대자보를 통한 익명성의 자기주장이 판을 쳤던 풍토가 문제였던만큼 학생과 교수,학생상호간에 공개토론과 논의의 장을 마련해 정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아야 한다. ▲이영희교수·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주사파학생들이 사상적 편향에 빠지게 된 정치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상을 접해 스스로 자신들의 모순점을 느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최재천변호사 좌경·급진화된 일부운동권학생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부대학총장들의 소신과 스승으로서의 인격에 박수를 보낸다.그러나 주사파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으며 그 수도 적은만큼 이를 전체 학생운동권의 현실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특히 가뭄·북핵문제 등 중대한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이들의 발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찬반논쟁 또는 사상논쟁으로 몰고 가서는 안될 것이다. ▲서경석씨·경실련사무총장 대학가에서 운동권이 득세하는 것은 대다수학생들의 지성적 용기가 부족해서다. 용기있게 꾸짖지 못한 대학교수나 사회단체의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의 일단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경직된 이념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학생운동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학준교수·단국대 이사장 최근 주사파학생들의 행적을 보면 이들이 가치체계의 혼란을 일으키는 아노미상태에 빠져있지 않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그러나 운동권안에서도 주사파반대세력이 있고 이들에게서 최근 자성과 노선변화가 있는 만큼 주사파들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 우파성향의 “차기총리감”/블레어 영노동당 새당수(뉴스인물)

    ◎변호사로 76년 정계 입문… 유럽통합 적극적/18년집권 보수당에 맞설 “야당의 희망” 평가 21일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새 당수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41)는 보수당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노동당의 희망으로 간주되는 인물.보수당의 인기 급락과 노동당에 대한 지지 급상승이란 현재의 영국 정치상황 속에 노동당의 새 당수에 선출됨으로써 차기총리로 유력시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집권보수당에 비해 무려 25%포인트나 높은 전체 투표자의 50%의 지지를 얻어 이같은 지지를 계속 유지할 경우 오는 97년 총선에서 18년만에 재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블레어당수는 지난 5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타계한 스미스 전당수의 선례를 따라 현대화주의를 제창하고 있으며 좌파 성향의 노동당내에서 우파적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최근 급속히 추진되고 있는 유럽통합에 대해서도 보수당의 통합반대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큰 실책』이라고 비판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에게 가해진 비난은 너무 온순·덤덤하며 지나치게 말쑥하고 지루하며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정도.그러나 스코틀랜드 사립학교에서 블레어를 가르쳤던 당시 스승은 「매우 영특하지만 반골기질이 있는 학생」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53년 5월 에딘버러에서 출생한 블레어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뒤 75년 런던의 한 법률회사에 들어가 법률가로서의 수업을 시작했다.76년 노동당에 가입,83년 영국 북동부 서지필드에서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돼 5년뒤에는 고용 대변인으로 노동당 예비내각(섀도우 캐비닛)에 들어갔다.92년 고 스미스당수에 의해 예비내각의 내무장관에 임명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입심좋은 변호사로,TV 화면발 잘 받는 정객으로 명성이 높다. 역시 변호사인 부인 체리 여사와의 사이에 3자녀를 두고 있다.
  • 4중충돌로 6명 사망

    【천안=이천렬기자】 17일 하오 6시30분쯤 충남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서울기점 75.5㎞)에서 서울로 가던 서울 1프7564호 엑셀승용차 (운전자 한승희·33세 수원시 장안구 지동 113의 13)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충북 1부6180호 프라이드 승용차(운전자 미상)와 대전 5아3076호 금남여객 소속 고속버스(운전사 김대성·31)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엑셀 승용차 운전자 한씨와 함께 타고있던 이범주(40·서울 성북구 정릉동 110의 40),전옥자씨(34·여)등 6명이 숨지고 버스승객 김충옹씨(29·평택군 지탄면 아두2리)와 1살된 김씨의 딸 채윤양등 2명이 크게 다쳐 천안 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김정일 「호칭」/「당중앙」→지도자동지→위대한 수령 격상

    ◎64년이래 총30여개… 「화려한 수사」 일색 「우리 당과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시며 우리 모두의 운명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자주시대의 위대한 태양」「인류가 낳은 걸출한 영웅」….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 정권 두번째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그에게 그동안 주어진 숨가쁠 정도의 길고 화려한 수사로 다듬어진 숭배의 호칭들이다. 세습후계자 김정일을 떠받쳐온 호칭은 30여개.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에게 붙인 그것을 시차를 두고 물려받거나 재가공해 덧입힌 호칭의 변화과정은 64년 김정일이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된 후계작업 30년 역사 그자체로,권력이양의 독도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2∼3년간 등장하기 시작한 「아버지」「수령」등의 호칭은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특히 김일성 사망 이틀째인 10일 북한 중앙방송에서 나온 「위대한 수령」이란 칭호는 현재까지 「별 무리없이」 북한 정권의 정점에 김정일이안착하고 있음을 내외에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김일성대 졸업후 비공식적으로 후계자수업을 받은 김의 첫 직책은 당 조직사업부 지도원.이후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쳐 당 비서직을 맡게되며 이 직책에 맞게 73년까지 불리게 된다.별다른 수식어가 붙었다는 보고는 없다.62년 김일성이 어느덧 남한에서도 익숙한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개인 우상화차원의 호칭을 처음 붙인 것에 비추어 볼때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정지 작업이 한창이었던 70년대의 대표적 호칭은 「당중앙」.김정일이 노동당의 양대 기둥인 조직및 선전선동 비서국을 장악한 73년 9월 당중앙위 제5기 전원회의 직후 처음 사용됐고 이후 80년대까지 가장 흔히 쓰인 호칭이다.그의 생일 2월16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75년에는 「유일한 지도자」가,77년에는 「당중앙」이 우세한 속에 「영명하신 지도자」「경애하는 지도자」등이 등장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80년의 10월 제6차 당대회서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군사위 위원에 오른 3년뒤인 83년 2월 41회 생일을 계기로 「당중앙」대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자리잡았다.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 호칭은 북한 주민들사이에 「친지동」이란 비꼬는 말로 쓰인다. 실제 김정일은 91년 12월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음에도 8년전인 83년 5월 「최고사령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군의 영향력 강화를 의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칭을 통한 미화는 「언어창작」을 넘어서 항일빨치산이 백두산의 나무에 새겨놓았다는 「구호나무」의 역사날조에 까지 이어진다.북한은 87년 「백두산에 광명성이 떴다.광명성(김정일 지칭)미래로 민족 존엄 떨치자」라고 새겨져 있다며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썼다. 90년대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호칭이 등장한다.90년 12월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혁명의 지도자」(노동신문)에 이어 91년 김일성과 동격임을 드러내는 「수령」호칭이 등장하나 미래의 수령이란 의미로 사용됐다.93년조선기자동맹 제7차 대회서 현재를 나타내는 「영명한 수령」으로 표현됐고 올해 3월에는 조선대남방송에서 「주석」으로,5월에는 평양방송에서 「두분의 수령」「탁월한 수령」으로 나와 곧 명실상부한 권력이양이 이루어지리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었다. 「수령」과 같은 카리스마조작 비중을 갖는 「어버이」도 최근 2∼3년전부터 두드러진 호칭. 「오늘은 오실까 우리어버이/내일은 오실까 김정일 동지/우리를 키워준 어버이모습/한해가 다르게 그립습니다」 92년 북한이 보급한 「기다렸습니다」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그토록 기다려 왔다는 올해 52세 「어버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북한 인민에게 다가갈 것인지 궁금하다.
  • 조훈현·이창호·요다·다케미야/「국제기전 4인방」… 먹이사슬 관계

    ◎조9단,“요다는 먹이”… 다케미야에 취약/이6단,조훈현의 출람…요다에 빛바래 최근 특정상대를 만나면 힘을 못 쓰는 이른바 「천적」관계가 국제바둑대회에서 두드러져 바둑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국제기전 4인방」으로 꼽히는 한국의 이창호6단과 조훈현9단,일본의 요다9단과 다케미야9단은 서로 물고 물리는 철저한 「먹이사슬」관계를 형성,더욱 주목된다. 지난 22일 끝난 제5기 동양증권배에서 한국의 조훈현9단은 그동안 역대한국전에서 14승2패를 기록하며 「한국 킬러」로 명성을 날리던 요다9단을 마침내 3승1패로 제압,새로운 「요다 킬러」로 등장했다.조9단은 한국기사로서는 유일하게 요다9단과 1승1패의 호각을 이뤄오다 이번 대회를 통해 4승2패로 앞서게 됐다. 조9단은 대회가 끝난뒤 『요다는 포석부터 끝내기까지 빈틈이 없는 강자』라고 치켜세우고는 『그러나 특기가 없다』며 요다를 간파했음을 시사,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요다9단은 그동안 「세계최고의 기사」로 평가받는 이창호6단을 만나기만 하면 괴력을 발휘,1승5패의 압도적인 승률로 이6단의 천적임을 과시해 왔다.이 때문에 이6단은 「국내용」이라는 비아냥 섞인 소리도 감수해야 했다. 반면 이6단은 중앙을 중시하는 이른바 「우주류」의 다케미야9단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TV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단 한차례 졌을 뿐 후지쓰와 진로배에서 승리,통산 2승1패로 앞서고 있다.다케미야9단의 「우주류」가 묵묵히 한걸음씩 내딛는 이6단의 두꺼운 바둑에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다케미야9단은 평소 『초반부터 끝내기까지 기량면에서 한수 위인 가장 껄끄러운 상대』라며 이6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6단에게 약한 다케미야9단은 조훈현9단에게는 강하다.발빠른 행마로 바둑판을 흔드는 조9단을 더 흔들어 최근 진로배를 비롯,통산 4승1패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같이 상대에 따라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속에서 이6단은 스승인 조9단에게는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인다.이6단은 올해들어서만 조9단을 상대로 13승5패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또한 다케미야9단도 요다9단과 통산 12승3패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자국 선수들끼리는 「천적」관계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 버스승객,검문경찰 살해/청주/만취 40대,연행되자 목졸라

    【청주=김동진기자】 술취한 버스승객이 검문에 불만,파출소로 연행한 경찰관의 목을 졸라 병원에 옮겼으나 숨졌다. 27일 하오3시30분쯤 충북 청주시 청주경찰서 강서검문소에 근무하던 박원규경장(44·청주시 모충동 518의3)은 청주에서 천안으로 가던 금남여객 충남5아 2085호 운전사 노기훈씨(45)로부터 술취한 승객 김상덕씨(44·충남 천안시 성정동124의6)가 난동을 부려 운전을 할 수 없다며 검문소앞에서 정차한 버스에서 김씨를 검문,하차시켰다. 이어 박경장은 김씨를 파출소안으로 데리고 온 뒤 소파에 눕게 하고 『조용히 하라』고 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두손으로 목을 졸랐다는 것이다. 박경장이 김씨로부터 목을 졸리자 함께 근무하던 정지호경장(32)이 달려들어 김씨를 떼어놓았으나 박경장은 이미 얼굴이 창백해지고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어 곧바로 충북대부속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1시간반 뒤인 5시쯤 숨졌다.
  • 출퇴근길 대혼란/“지하철 오늘은 더 지옥” 시민 걱정

    ◎역마다 항의·차표 환불요구 불새통/귀가길 버스·택시에 몰려 도로 혼잡 전국이 「교통대란」에 몸서리친 하루였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덮쳐온 철도파업과 지하철 거북이운행의 여파로 출퇴근길 교통지옥에 시달린 시민들의 질타와 분노의 목소리가 메아리졌다. 게다가 서울지하철이 24일 새벽 첫차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당장 다음날부터 더 심해질 교통지옥현상을 걱정했다. 국민들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이같은 지경까지 이르게 해서야 되느냐』며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게 한 파업근로자들과 정부를 함께 질책했다. 이날의 출퇴근길은 한마디로 불편과 짜증의 연속이었다. 역마다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고 어쩌다 오는 전동차는 꽉 들어찬 승객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평소 50분정도 걸리던 인천∼신도림 29㎞구간이 1시간50분 걸렸고 40분정도 소요되던 부천∼서울시청구간도 1시간30분이상 걸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택시·버스정류장으로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을 이뤘으며 승용차·화물차 할것없이 출퇴근수단으로 동원돼 서울외곽의 길목이 한때 마비상태를 빚었다. ▷수도권전철◁ 퇴근시간이 되자 전철과 지하철의 지연운행으로 출근길에 이미 혼쭐이 난 경인·경수지역 시민들이 아예 지상교통으로 몰려들면서 경인로·시흥대로등 이 방면의 주요도로가 전철노선과 함께 엄청난 혼잡을 빚었다. 특히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시작된 하오7시쯤부터는 인천및 부천방면의 버스가 출발하는 영등포역앞과 지하철2호선 당산전철역앞 시외버스정류장등이 몹시 붐볐고 신도림역앞 광장에는 퇴근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택시들이 줄지어 몰려들어 합승에 열을 올렸다. 경인전철과 2호선지하철의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는 하오6시부터 승객들이 몰려 20∼30분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도착하는 열차의 진행위치를 안내방송해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기는 했지만 아침 출근길의 당황하던 모습에 비해서는 차분한 편. 반면에 춘천이나 의정부방면으로 퇴근하는 시민들이 종로5가등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와 좌석버스로 몰리는 바람에 버스가 초만원사태를 빚었으며 아예 초저녁부터 대중교통수단이용을 포기한 채 「총알택시」에 합승해 퇴근을 서두르기도. 서울역앞 인천·부평행 직행버스승강장에는 하오7∼8시무렵에 평소보다 두배이상 많은 5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장사진을 형성했다. ▷철도◁ 기관사들의 갑작스런 파업으로 열차운행이 중단되는 바람에 서울역을 비롯해 각 역은 열차를 타지 못한 시민들로 큰 혼란. 서울역측은 철도청에서 내려보낸 긴급열차운행조절표에 따라 1백22개의 정기열차편 가운데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부산행 무궁화호등 27개 열차만 긴급편성해 운행. 서울역측은 기관사파업으로 평소 상하행승객 7만여명이 이용했으나 긴급편성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은 2만여명밖에 안될 것으로 예상. 이에따라 이날 상오 청량리역에는 철도운행중단소식을 미처 알지 못하고 나온 승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며 역무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 상오9시40분쯤 신도림역에서는 열차지연운행에 흥분한 승객들이 늦게 도착한 K20열차의 기관실로 몰려들자 기관사가 이를 피해 도망가는바람에 열차가 30분이상 정차했다.구로역에서는 역에 들어오려고 입구에 대기해 있던 K26열차를 승객들이 불법정차차량으로 오인,기관사 서문규씨(47)를 폭행하고 열차에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이날 상오8시30분쯤 수색역구내에서 출고중이던 부산행 9시15분발 무궁화열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객화차검수원 40여명이 운행중지를 요구하며 열차에 돌을 던져 열차유리창이 깨지고 기관사가 달아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 “한반도 전운 걷겠다”/남북정상회담 YS의 구상

    ◎북 불안감 해소시켜 핵포기 설득/평양측 결심따라 「획기적 경원」 선물 김영삼대통령은 북한주석 김일성을 만나기만 하면 북한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전운」을 걷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은 22일 보기 드물게 「담백하고 정중한」 문체로 실무접촉을 수락했다.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으로써 김대통령의 회담구상과 자신감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개발이 기본적으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한국과의 엄청난 국력차,한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흡수통일시도에 대한 의구심이 핵개발로 치닫게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분석이다.이를테면 김주석을 만나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북한의 불안감을 없애준다면 핵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릴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우리측이 남북대화로 핵문제를 풀자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핵개발을 체질이 허약한 사람의 「비수」에 비유하고 있다.자신감이 있고 체력이 좋은 사람은 굳이 흉기를 소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북한이 흉기에 해당하는 핵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허약성에 대한 불안감,외부세계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고 있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북한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평소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십분 활용,김주석에게 결코 한국이 북한을 해칠의사가 없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불안감을 없애주는 과정에서 김대통령은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획기적인 경제협력」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이는 남북한이 공존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실증시키는 주요한 카드이면서 우리의 선의를 알리는 선물이 될 수 있다.김주석의 느닷없는 정상회담제의가 나왔을 때 청와대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을 통해 김주석이 남북한의 공존을 확약받고,허약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후계체제를 보장받기 위한 시도일 가능성을 주목한 바 있다.공존공영을 약속한다면 김정일체제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약속도 될 것이다. 김주석은 50년동안 북한을 통치했다.그는 합리적이진 않더라도 대단히 노련하다.모든 북한체제가 그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이에 대한 김대통령의 무기는 무엇인가. 청와대측은 김주석의 노련미는 김대통령의 정통성으로 상쇄가 가능하다고 본다.아무런 하자 없이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한때 지지율이 90%에 이른 김대통령의 정통성은 북한의 처지에서는 불가항력의 산으로 느껴질 수 있다.비록 선전매체를 통해 현재의 한국정부를 여전히 타도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은 외부로의 선전일 뿐인 것이다. 김주석은 올해 83살.김대통령쪽에서 보면 마산의 부친 김홍조옹과 동갑이거나 한살정도 차이가 나는 정도다.그래서 회담이 열리면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도 있다.정상들의 회담이 열리면 체력은 회담의 성패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김대통령과 김주석의 이같은 나이차,생물학적인 나이와 대비가 어려운 김대통령의 뛰어난 체력은 김주석을 설득하는 데 좋은 조건이 될 것이다.남북한정상이 만나면 밤을 지새면서라도 김주석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카드 가운데서도 김대통령의 주무기는 역시 그의 돌파력과 회담에 임하는 선의,자신감으로 요약된다.옐친 러시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 돌파력은 북한에 대한 무기공급중단이란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냈다.선의는 만남 자체로서 전달될 수 있다.김대통령은 지난번 스승의 날 행사에서 『일생동안 어느 누구와도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이 모든 일에 갖는 자신감의 요체로 보인다.김대통령은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도 김주석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 조선 교육제도 변천사 한눈에/「태학지」 국역본 간행

    ◎성균관,서울정도 6백년 기념… 상·하 2권으로/성적,경전강독·논문 실력등으로 평가/유생 언론자유·단체행동권 보장 “눈길” 우리나라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은 서울 정도 6백년과 맞물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성균관은 이를 계기로 성균관의 오랜 기록을 담은 「태학지」를 한글로 옮겨 간행했다.이 국역본 「태학지」는 조선왕조 유일의 국립대학격인 성균관의 학풍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국역본 「태학지」는 상·하권 2권으로 모두 1천4백43쪽.원본은 정조9년(17 85년)왕명에 따라 성균관 대사성 민종현이 편찬했다.조선왕조의 교육제도 변천사와 학술사상의 발전상을 유교전통의 춘추필법으로 엮었다.학교를 세우고 제도를 만든 제1권 건치로부터 제14권 부록까지 14권으로 이루어진 「태학지」는 성균관 소장의 전사본과 서울대 소장본이 남아있다. 이 「태학지」는 민족 주체정신의 산물로 평가된다.왜냐하면 청이 중국을 지배한 지 1백20여년이 지난 뒤에 편찬했음에도 청나라 교육제도는 한마디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는 민족교육의 주체성을 찾고 문화의 긍지를 기리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다만 동방의 학교 교육사를 유교가 동쪽에서 왔다(사문동래)는 관점에서 「태학지」를 서술했을 뿐이다. 「태학지」제6권 유생의 성균관 생활규범을 기록한 장보를 보면 정의를 구현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학풍을 역설하고 있다.예의도덕에 바탕을 둔 자율질서와 자치적 운영을 강조하는 가운데 언론의 자유와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대목이 나온다.태학생의 비판 기능 및 건의,진정,고발을 허용했는데 이는 정의심과 공론의 실체성을 전제로 했다.그래서 동맹휴학이나 수업거부 등을 통해 정당한 학생운동의 기풍도 길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현을 기리면서 유를 숭앙(숭유)하고 스승을 받드는(존사)일을 큰 덕목으로 열거했다.특히 제7권 교화에서는 물론 과거를 중시하면서도 학덕이 높은 선비에게 과시(과거)를 면제하고 벼슬을 주는 일(정초)에 더 큰 관심을 돌렸다.이것은 과거공부를 하는 선비 보다는 도덕을 닦는 선비를 더욱 존중한다는 숭유중도의 뜻을 표출한 것이다.과거로 입신 출세한 관료가 소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청렴을 존중하는 관료를 존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태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방법의 공정성과 경전강독 및 논문작성의 중요성을 교육방법으로 제시했다.이와 더불어 스승의 인격적 감화력이 태학생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실례로 곁들였고,사회가 요구하는 수신의 교육과목들을 훈회항목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태학지」는 한마디로 조선왕조가 자랑하는 교육문화의 진수를 담았다.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수호한 조선시대 성균관의 학풍은 오늘날 대학들도 받아들여야 할 교육지침서일 수도 있다.국역본 「태학지」는 지난해 성균관이 특별한시 기구로 설치한 편찬사업회가 1년만에 완성한 것이다.
  • “입시 강박관념 때문에”/조한종 전국부기자(현장)

    ◎수석여고생 자살에 친구들 눈물 7일 상오11시 강원도 춘천의료원 영안실.전날 모의고사를 치르려 나갔다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채 발견된 박진희양(18·춘천여고3년)의 조촐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영문과를 지원해 외교관이 되고 싶다던 진희가 이렇게 우리곁을 떠나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손에 손에 하얀 국화꽃을 한송이씩 들고 영구차앞에서 친구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급우 50여명은 평소 차분하게 공부만하던 친구를 그리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감추지 못하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힘들게 살아가는 엄마,아빠를 위해 내년에 서울대 영문과에 꼭 진학해 부모님에게 멋진 선물을 하겠다던 진희가 숨지다니…』 평소 밝기만하던 딸이 불귀의 객이된게 믿기지 않는듯 영안실을 떠나려는 영구차를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어머니 김혜옥씨(42)와 언니 준영씨(21)는 눈물마저 말라버린 채 망연자실해 주위를 더욱 숙연케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조객들은 진희양은 국민학교때부터 학생회장을 맡아오는등 활발한 성격인데다 고등학교에서도 3년동안 줄곧 인문계열 수석을 차지해 온 수재로 친구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해 온 재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았다. 『지난달 스승의 날에는 담임선생님은 물론 교무실을 찾아와 모든 선생님들의 가슴에 일일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진희의 모습이 선하다』는 최규완교감선생님(56)도 『진희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빠지기쉬운 편견이나 이기적인 성품이 아닌 합리적이고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으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이같이 공부 잘하고 쾌활하며 팔방미인으로 불리던 박양도 입시가 다가오면서 수험생들이 겪는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다고 급우들이 귀띔했다. 『결국 진희양의 죽음은 우리의 대학입시제도와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져온 또 하나의 희생양이었습니다』라며 혼자말 같이 내뱉는 어느 문상객 조사의 긴 여운이 아깝게 요절한 재원의 영구차를 감싸고 떠날줄 모르는듯 했다.
  • 중학 스승집 턴 10대 3명 영장

    【인천=최철호기자】 중학교 교감집 강도사건을 수사중인 인천 부평경찰서는 6일 이모군(18·무직·인천시 북구 산곡동)과 최모양(18·무직·부천시 소사구 송내동)등 10대 3명에 대해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지난달 31일 상오11시쯤 북구 산곡동 현대아파트 이모씨(58·S여중 교감)집에 침입해 이씨의 부인 김모씨(54)를 흉기로 위협,7백만원이 입금된 국민투자신탁 통장과 도장을 빼앗아 인천시 남구 주안동 국민투자신탁 주안지점에서 5백16만원을 인출해 달아난 혐의다. 이들은 이군의 B중학교 졸업앨범에서 이 학교의 교감으로 근무한 이씨의 주소를 알아낸뒤 부인 김씨에게 『교감선생님의 제자인데 인사하러 왔다』며 문을 열게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 “음란물 기준 생각 해본적 없다”/박용현 사회부기자(현장)

    ◎마광수교수,「사라」 항소심재판서 답변 소설 「즐거운 사라」의 저자인 연세대 마광수교수(42)에 대한 항소심재판이 열린 서울형사지법 법정.지난번 재판이후 5개월여만인 3일 다시 열린 이 사건 공판에는 마교수의 「인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20대 초반의 남녀대학생 1백여명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스승」에 대한 공판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재판장인 서울지법 항소1부 박인호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직접신문에 나서 음란물의 제작·배포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규정이 정당한가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물었다. 마교수는 『음란물에 대한 형법의 정의가 애매할 뿐아니라 법규정 자체에도 회의가 든다』며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재판부가 이처럼 적용법률의 정당성여부에 대한 피고인의 견해를 듣는 것은 이례적인 일.한때 대학강단에 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마교수의 확신범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재판부의 배려였다. 마교수의 진술은 확신범의 대표격인 시국사건 피고인들이 적용법률의 반민주성을 들어 무죄를 주장하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날 마교수는 범죄인 줄을 알면서도 양심과 사상에 따라 행동하는 「확신범」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행동한 것으로까지 비쳤다. 음란물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려보라는 재판부의 주문에조차 『음란물이라는 용어자체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기준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애매하게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마교수의 확신은 더해만 가는 것 같았다. 『문학이 권선징악이나 도덕설교를 벗어나 사회적인 일탈이나 불륜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20세기적 경향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며 이는 한국문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항소심재판부는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여부를 가리기 위해 이미 서울대 안경환교수 등 4명의 외부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그러나 찬반이 2대2로 팽팽히 맞서 재판부의 판단에 실질적 도움은 주지 못했다. 공판을 진지하게 지켜보던 학생들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법정을 빠져나가는 마교수의 뒤를 한참동안 응시하다 하나둘씩 방청석에서 자리를 떴다.
  • 탈선 한국유학생은 극소수(박강문 귀국리포트:4)

    ◎“건실한 생활… 투철한 애국심” 불인들 칭찬 프랑스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 단기연수하러 온 일단의 한국 여학생들중 일부가 어떻게 몸가짐을 헤프게 했는지 그 후에 온 연수생들은 프랑스 남자들이 거리낌없이 추근대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 한 여학생은 지방대학에서의 6개월 어학 연수를 마친 뒤 파리에 올라와 뭇 남학생들을 상대로 난잡한 생활을 하다가 이를 질책하는 옆방 유학생과 대판 싸운 뒤 딴데 방을 얻어 나갔다. 또 한 여학생은 불어를 배운다고 프랑스 청년과 사귀다가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시선이 따갑자 한국 유학생 사회에 아예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한국 남녀 유학생끼리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방은 따로 쓴다』고도 하고 『서로 돕고 의지가 되어 편하다』고도 한다.전통적 윤리관으로서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렵다.파리 한인교회 목사가 설교때 『혼전 동거는 죄악』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동거하던 쌍의 절반 정도는 정식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여학생들만 예로 드냐고 하겠지만 이성간의 문제에서 주로 여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비난의 표적이 되게 마련인 것은 국외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프랑스 유학생은 여자 수가 많아 90%를 넘는다. 국내의 혼탁한 사회상이 유학생 사회에도 옮겨진 듯 동족에 의한 성폭행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한참 떠돌았다.파리에서 발행되는 어느 한인신문은 쓰던 생활 용구를 팔겠다는 광고를 보고 여학생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 몹쓸 짓을 하는 동포 젊은이들이 있다고 개탄하면서 『여학생들은 쓰던 물건 처분할 때 몇푼 건지겠다고 신문에 광고하여 화를 부를 기회를 주지말고 아는 이웃에 선심 쓰도록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듣고 본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유학생이 탈선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듯 전달될까 두렵다.실상 이런 경우란 아주 드물다.국내에서 부녀자 납치가 한참 횡행할 때 나라 밖의 유학생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고 파리가 얼마나 안전한 도시인가가 이야기되곤 했다. 근래 한국 학생의 프랑스 유학이 엄청나게 늘었다.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약 2천5백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6천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방학을 이용한 단기연수생을 포함하면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대사관에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대사관은 서류 떼러 한번 찾아온 학생들의 명단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불어를 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미국에 비해 유학생 숫자가 아주 적다.실력 없고 돈많은 유학생들이 일으키는 말썽 또한 극히 드물다.마약이나 도박에 탐닉하는 학생들은 없다.한국 학생들을 아는 프랑스인들은 건실한 생활 태도와 유별난 애국심,스승과 연장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칭찬한다. 뚜렷한 목표나 수학 능력도 없이 자신 또는 부모의 허영심으로 유학하는 극소수 학생들에게서 문제가 생긴다.부모 감독에서의 해방,이국에서의 외로움,혈기 방장한 젊음.본인의 주관이 뚜렷하게 서 있지 않을 경우 쉽게 흔들린다.성에 개방적인 서양 풍토에 빨리 편입되는 것이 가장 첨단적이기나 한 것처럼 여기는 극도의 가치관 전도에까지도 이른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파리에 보내놓고 『바빠서』 4년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부모를 보았다.아찔한 생각이 들었다.학생보다 부모가 문제다.
  • 국립극단 신인배우 한희정양(인터뷰)

    ◎“연기로만 승부거는 알짜배우 되고 싶어요” 『화려한 출발이 성공적인 무대생활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죠.이제 겨우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에요.연기로써만 승부를 거는 알짜배우가 되고 싶어요』 국립극단의 정단원 선발에서 올초 5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성한 신인배우 한희정양(23).여배우 기근의 국립극단에 신선한 활력소가 되고있는 그가 새달 2일 막을 올리는 연극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김상열 연출)에서 몸종「이쁜이」역을 맡으며 발 빠른 스타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국립극단이 우리명작 시리즈의 하나로 선보이는 「맹진사댁…」은 불구의 신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한 어여쁜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주의적 도덕관을 강조한 작품.특히 이번 무대는 해외공연에 대비,무대장치를 단순화·조립화시켰으며 새 얼굴 발굴에 역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원로배우 김동원씨의 은퇴무대 「이성계의 부동산」에서 눈에 띌듯 말듯 처음 얼굴을 내민 한양이 이번에 일약 주역급으로 발탁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차분한 이미지가 극중 「이쁜이」의고운 심성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 선이 분명한 이목구비에 상대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당당한 시선이 인상적인 한양은『「국립배우」로서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25시의 삶」을 살고있다』는, 요즘 젊은 세대답지 않은 매서운 일면도 갖고있다. 『실험성에 치우친 창작극이나 번역극 위주의 우리 연극계 풍토에서 토속정취 물씬한 정통 창작극으로 본격 데뷔하게 돼 연기자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배우로서 마력을 갖고 있는 메릴 스트립을 연기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그의 연기 이력은 상당히 깊다.서울 장충국민학교 3학년때 「꽃사슴 아동극단」이란 단체에서 연극에 접했고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때에는 은사인 최형인 교수의 애제자로 「한여름밤의 꿈」 「갈매기」 「세일럼의 마녀들」등 10여편의 번역극에 출연,연기에 대한 꿈과 애정을 키워왔다.『이번 작품이 우리의 전래민담에 바탕을 둔 「신고전」이니 만큼 대학 워크숍시절 영미 사실주의극에 경도됐던 저로서는 색다른 체험입니다.조선시대 여인의 어투·감정을 어떻게 연기해낼 수 있을지걱정이에요』 선한 웃음 뒤에 자신의 장단점을 꿰뚫는 냉철함을 감추고 있는 시선에서 그가 빈틈없는 연기인임을 직감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 김혜란 「서울 굿」 무대에/28일 KBS홀/회심곡 등 7거리 재현

    우리 민속예술의 보고랄 수 있는 「굿」을 무대예술로 양식화시킨 김혜란씨(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준문화재)의 서울굿 공연이 28일(하오 3시,6시30분)여의도 KBS홀에서 열린다. 지난해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가졌던 공연이 큰 호응을 얻어 앙코르무대를 마련하게 됐다. 서울굿의 대가인 이지산씨에게 서울굿의 12거리를 모두 전수받은 김씨의 굿은 단순한 흥미거리로서가 아니라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무가는 물론이고 무복·무구도 모두 원형대로 재현된 것이다. 스승은혜감사 대잔치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부정거리­불사거리­마누라거리(상산거리)­조상거리­대감놀이­창부거리­회심곡등 모두 7거리로 압축해 보여준다. 임정란 김금숙 전숙희 이금미씨 등 21명이 출연한다.음악은 피리 김찬섭,장구 김춘강,제금 장전순,해금 김한국,대금 박문웅씨가 맡는다.
  • 과학자 일반인 보다 오래산다/미서 역학조사

    ◎70세까지 생존율 6% 더 높아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비사교적인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의학계의 정설로 통한다. 이때문에 딱딱한 이론을 좋아하고 생애의 대부분을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연구실에서 보내야 하는 과학자들의 경우 어울리는 사람들보다 장수하지 못하리라고 추정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이 한낱 편견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새 연구결과가 나왔다. 과학전문지 「디스커버」최신호는 미캘리포니아대 호워드 프리드먼교수팀의 역학조사 결과를 인용,『기존의 통념과 달리 과학자가 보통사람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한다. 프리드먼교수는 1922년에 태어난 미국 남성 1천5백28명을 69년동안 그의 스승과 함께 추적·관리,과학자가 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성장 과정의 성향과 평균수명을 조사해보았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이 29살이 되던 지난 51년 이들중 과학도가 된 2백84명과 비 과학도로 성장한 3백26명을 구분,1차적으로 사회적 관심도와 성향을 비교·분석했다.그 결과 비 과학도로 자란 사람들은 예상대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높고 남과 잘 어울리는데 반해 과학도가 된 사람들은 오로지 과학에만 흥미를 가질 뿐 사회성이 크게 떨어지는 등의 외곬기질을 보였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지역사회의 일이나 공공문제에도 시간을 훨씬 적게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이러한 비사회성과 수명은 어떤 연관성을 보일까. 프리드먼박사팀은 연구대상자들이 70세가 되던 지난 91년 이들의 생존여부를 조사했다.그러나 비과학자들이 훨씬 더 많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전혀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다.70세까지 생존한 사람이 비 과학자의 경우 67%인데 비해 과학들은 6%가 많은 72%로 집계된 것이다. 이에 대해 프리드먼교수는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더 오래 살 것이라는 기존의 가설에 대한 일대 반란』으로 풀이했다.하지만 그는 『과학자들이 대외적인 측면에서 사회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동료 그룹안에서는 무척 사회성이 강하다』는 말로 이들의 장수 배경을 풀이했다.즉 과학자들은 수줍음을 잘타고 소심한 면이 있지만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과학자끼리는 매우 강한 인간관계를 가짐으로써 사회성의 질적인 정도가 보통사람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것이다.
  • 만취 방위병 차훔쳐 도주하다 충돌사고

    서울동부경찰서는 18일 술에 취해 훔친 승용차를 몰고 달아나다 승합차를 들이받은 육군 모부대 방위병 전상규일병(22)을 절도및 도로교통법위반혐의로 관할 헌병대에 넘겼다. 전일병은 지난 17일 하오9시10분쯤 서울 성동구 성수1가 13 앞길을 지나가다 조모씨(25·회사원)가 시동을 건채 길가에 세워둔 서울1푸 2898호 프라이드승용차를 훔쳐 운전면허도 없이 몰고 달아나다 지나가던 그레이스승합차를 들이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이 날의 우울과 슬픔/스승의 날에 부쳐/한승원(일요일 아침에)

    한해 어느 하루씩을 받아서 한 차례 치르는 그 행사로서 어떤 노릇인가를 해치웠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깜박 잊어버리는 것은 매우 간편한 일일 터이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한 해에 한번씩만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주고 넘어감으로써 이때껏 잊고 있었던 꺼림칙한 죄책감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으려고 무슨 날 무슨 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신록이 어우러졌다.등나무가 연분홍꽃을 달았고 장미덩굴들이 눈 시린 진홍의 꽃들을 피워냈다.아카시아 꽃떨기 속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린다. 해마다 맞이하곤 하는 스승의 날은 나를 부끄럽고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선생님,이번 일요일에 어디 가시지 않을 건가요? 제가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요』 이때껏 소원했던 어느 제자 한사람이 문득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전화를 걸어오면 나는 매우 난처해지곤 한다.내가 과연 그 제자한테 은사로 떠받들려도 될 만큼 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었을까.그 전화는 또 나로 하여금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나는 내가 은사라고여기는 분들께 잘 하여 왔는가.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고3 졸업시험을 치르고나서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않고 고향마을로 가버렸던 것이다.당시 내 어린 마음은 대학진학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공서나 회사같은 데에 취직을 하지 않을 터이므로 고등학교 졸업장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내 고3시절의 담임교사는 국어과 담당이었고 그분은 문예지도 교사였다.나는 그분 지도를 받으며 교지 창간 일을 하였다.설익은 나의 오만은 그 어느 누구의 지도를 받지 않고도 독학으로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 선생님께 여쭈어보지도 않고 졸업장을 포기해 버리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3년 뒤 내 생각은 바뀌었다.그동안 많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맛보았고 진학을 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걱정이 앞섰다.마지막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 졸업이 되긴 되었을까.졸업 직전에 퇴학처분이 되거나 졸업 보류 결정이 내리지 않았을까.불안한 마음으로 부랴부랴 졸업증명서를 떼기 위하여 모교 서무과로 찾아갔다.졸업증서를 떼어가려면 미납된 납부금을 내야 한다고 할 듯 싶어 그것의 몇배 되는 돈을 준비해갔다. 서무과 직원은 뜻밖에 내가 떼어먹은 등록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수수료만 몇푼 받고 졸업증서를 떼어주었다.고3때의 담임선생님이 고마워 환장할 것 같았지만 부끄러워 그 선생님 앞에 나서지를 못했다. 훗날 소설가 모자를 쓴 다음 광주에서 그 선생님을 뵈었다.나는 그제서야 부끄러워하면서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어떻게 해서 내가 졸업 보류나 퇴학을 당하지를 않았었느냐고 여쭈었다. 또 그로부터 십여년 뒤의 어느날 장흥에 갔을 때 나는 술이 엉망으로 취하여 그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한밤중이었다.그 선생님은 오래 전에 암선고를 받았고 투병중이었다.지금 그 선생님은 이승에 계시지 않는다.세상에는 이러한 제자도 있다. 또다른 두 분의 은사가 계시다.두 분이 다 투병중이다.한 분은 수원에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서울에 계신다.한분은 전화를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만 다른 한분은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 자주 뵈러가지를 못한다.일이 바쁘다는 핑계다.한 해에 큰 명절때에 한두번씩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거나 병문안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삶의 고달픔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나이가 들어 정열이 식은 것인가.강파른 서울살이 속에서 가슴이 메마르고 영악해지고 공리적이고 사무적이 되었는가. 나는 어버이날에 늙으신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사드리거나 선물을 마련해 드리지 않는다.스승의 날에 스승을 찾아가지 않는다.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은 그동안 불효하거나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에 대한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날이 아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내 벅찬 일에 핑계를 댄다.이 일을 마무리 짓고는 그 두 선생님을 찾아뵈어야겠다.지금 일의 결과들을 들고 찾아 뵈어야겠다.그것으로 이때껏 소원했던 죄를 빌어야겠다.너무 늦어서는 안된다.그분들이 어느날 문득 멀리 떠나가신 다음 혀를 깨물면서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먹는다.이 글을 읽으신 당신은 나같이 늘 핑계를 앞세우곤 하는 제자가 되지않기를 바란다.
  • 대구 덕산국교 담임 이의환옹과 6학년 1반 「어린이들」

    ◎6·25때 스승에 “재회 카네이션”/9“28 수복때 헤어졌다 90년 극적해후/팔순스승­초로제자 야산수업등 회상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사십시오』 팔순을 넘긴 옛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50대중반 초로의 제자들 눈가에는 어느덧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서울에서 피란온 학생들로 구성됐던 대구덕산국민학교 6학년1반 동창 20여명은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서울 강남구 K한식집에서 당시 담임이던 이의환옹(81)을 모시고 재회를 기뻐했다. 『나보다 빨리 머리가 희어지는 녀석은 내년부터 나를 만날 생각은 아예 말거라』 이옹의 우스갯소리 한마디에 좌중은 금방 웃음바다가 됐다. 이에 뒤질세라 학급의 익살꾸러기였던 강대영씨(56·성림감정원대표)가 그시절 오락시간마다 불러 인기를 모았던 노래 한곡을 불렀다. 『구야 구야 담방구야 어디메서 놀고가냐…』 한명 두명 따라부르다 결국 이옹까지 콧소리로 박자를 맞춘다. 43년전 6·25동란의 와중에서 선생님도 어린 학생들도 모두 헐벗었던 대구 피란시절.모두가일생중 가장 어렵던 때였지만 당시의 스승과 제자들이 만난 이 자리에서 만큼은 모든 기억이 즐거운 화젯거리로 변한다.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서울 매동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이옹은 피란지 대구에서 서울지역 피란학생들을 모아 만든 덕산국민학교 서울피란분교의 6학년1반 담임을 맡았다. 말만 분교였지 교실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대구 대봉동의 옛 육군관사자리에 가교사를 짓기전까지는 인근 야산에서 수업을 해야만 했다. 『책상 대신 화판을 무릎에 대고 전쟁터에서 주워온 M1소총과 칼빈소총의 탄약통이 책가방겸 의자역할을 했지만 언제나 소풍나온 기분이었죠』 이제는 모두 장성한 자식들을 둔 가장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기반을 갖춘 초로의 제자들은 그때 일을 되새기며 미소짓는다. 『추우나 더우나 검게 물들인 군복 하나만을 입고 다니면서도 항상 웃음띤 얼굴로 우리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당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당시 반장을 맏았던 김시형씨(55·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의 말에 모두들 잠시 숙연한 표정이었다.서울 염창국민학교 교장직을 끝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년동안을 교직에 몸담았던 이옹은 퇴직한 교직자들의 모임인 삼락회에 나가서도 이들 서울피란 대구덕산국민학교 제자의 얘기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 때가 많다. 서울 환도전까지 대구의 연합중학교에 같이 진학했던 제자들은 9·28수복후 뿔뿔이 흩어지고 이옹과의 연락도 끊겼다. 그러다 덕산국시절부터 기억력이 뛰어나고 사람이름 외는데 천재라고 소문난 박종필씨(56·사업)가 여기저기 수소문해 당시의 급우들을 찾아내 82년 덕산회를 만들었다. 모임이 결성되자마자 어려운 시절 자신들을 이끌어준 이의환선생님을 찾아나선 제자들은 4년전 총무 장덕진씨(56·맥산산업사장)가 옛 담임선생님을 찾아내 오랜 그리움을 풀었다. 이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이처럼 스승과 제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으로 밤을 지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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