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스승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순환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시간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경상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의회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84
  • [기고] 철학의 빈곤이 몰고 온 교육 위기

    교원정년 단축 부작용이 너무나 심하다.교원부족 사태는 위험 수위에 육박해 명퇴교사들을 명퇴와 함께 거의 계약교사로 사실상 재임용해야 할 판인 데다 교육의 질과 교실현장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기 때문이다.특히 교원의 정년단축 정책이 뼈아픈 큰 실책으로 부각되고있는 것은 우수한 교육자적 자질과 갈고 닦은 경륜 및 축적된 지식을지닌 많은 인재들을 획일적으로 몰아낸 발상이 교육에 대한 빈곤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제 우리 국민은 교육정책 결정과정이 얼마나 중요하며 함부로 정치적인 혹은 경제논리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믿는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독일 철학자 칸트의 ‘교육학 강의’에서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만 사람이 될 수 있다’ 혹은 ‘교육은 인간에게 부과된 가장 크고 어려운 과제다’하는 글을 인용하거나유교 고전인 ‘예기(禮記)’의 ‘교학위선(敎學爲先)’,즉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제일 먼저 하라고 한 글도 자주 인용한다.이는 어느 분야보다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일임을 강조한 말들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정보화시대에서 뒤떨어진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지적 소작인 신세로 전락해 종속관계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까봐 지금 세계 각국은 서로 소리없는 교육전쟁을 하고 있다.왜냐하면 나라의 흥망성쇠가 교육의 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나라살림이어려워도 교육개혁 방향을 연구하고 교육재정을 확보하며 그 효율성을 검증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우리의 선조들이 교육을 중히 여겨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교육적인 유산을 남긴 것은 실로 값진 것이라 믿어진다.이는 교육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창조적 기술이며 지고지순의 예술이며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경제사정이 좀 어렵다고 교육을 가볍게 여겨 희생의 대상으로 삼았던 고위 공직자들의 빈약한정신세계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 여당에 직언을 아끼지 않는 교육계지도층 원로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개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장관이나 총리 자리도 출세와 영달에는 적극적이나 정작 교육과 교원의 권익을 위해서는 침묵한다.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도덕적파산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교실과 가정이 무너지는 대신 룸 살롱이 작년의 3배를 넘었다고 한다.어느 외국 신문기자가 한국을 ‘전체 부패국가(Republic of Total Corruption)’라고 지적한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 경제의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가? 냉혹한 국제금융시장 동향에너무 어두워 외환관리를 잘못한 것도 크지만 그보다 진정한 원인은전통적인 우리의 가치관과 문화를 갈고 닦지 않아 우리 고유의 빛깔과 혼이 부정부패와 집단이기주의,퇴폐적이며 부정적인 서구문화 수용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따라서 우리 국민이 건전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규범을 제시하고 평생교육 자원에서 의식수준을 높여 우리 사회를 건강한 도덕적 공동체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국가의 흥망성쇠가 교육에 달려 있고 인간의 삶이 가치지향적이라한다면 교육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기본자세로 돌아갈 때만 희망이 보이리라 믿는다. 방황하는 교육정책,원점에서 다시 정립할 때다.과거 미국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정치인·교직자 등이 ‘저 언덕을 넘어서’‘저 모퉁이를 돌아’란 슬로건 내세워 위기를 극복한 때가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된 미국이 있는 것처럼 ‘저 언덕을 넘으면신천지가 열리고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 있도다’라고 외치며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자랑스런 큰 정치인을 기대해 본다. 손은배 전 교육부 장학관
  • KBS2‘태양은 가득히’강민기役 유준상

    “주말드라마 주인공을 맡았는데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제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 하겠습니다” KBS2 새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극본 배유미,연출 고영탁·신창석)의 남자 주인공 ‘강민기’로 발탁된 유준상(30)은 수수하고소탈한 인상이다.하지만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다. 유준상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95년 SBS 공채 5기 탤런트로 TV에 데뷔했다.그 뒤 드라마 ‘백야’,‘첼로’,‘연어가 돌아올때’,뮤지컬 ‘그리스’,영화 ‘가위’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그동안 맡은 역도 다양했다.“소박하고 순결한 청년부터 공사판 일꾼,부잣집 아들 등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특히 검사 배역을자주 맡았죠”라고 밝혔다.이번 드라마에서도 강민기는 훗날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 검사가 될 예정이다.유준상에게는 익숙한 배역이다. 그렇지만 강민기는 유준상으로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악역’이라는 점에서 종전과 다르다. 민기는 출세를 위해 그의 유일한 친구 호태와 애인 지숙을 배신하고호태의 애인이자 대기업 상속녀인 가흔과 결혼하지만 결국 기업도 잃고 암에 걸려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된다.“민기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이를 분노,미련 등의 감정으로 표출합니다.다행히 마지막에는 본래의 선한 모습을 되찾게 되죠”라고 강민기에 대해 설명했다. 본인의 성격이 강민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자신의 삶에나름대로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같아요.그렇지만 저는 훨씬 소박한 편이죠”라고 대답했다.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남들은 선해 보인다고 하던데…”라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연기에서도 서서히 주가를 높이고 있는 유준상이지만 음악,미술 등못하는 것이 없다.색소폰,피아노,기타 등 악기 연주가 수준급이고 미술은 최근 개인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다.“샤갈은 인생의 스승입니다.그림도 샤갈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상상과 동화의 세계를 함께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라고 자신의 미술세계를 설명했다. 음악과 미술 뿐 아니라 여행도 즐긴다.짬이 나는 대로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비어 있는 공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매력”이라고 유준상은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
  • 독자의 소리/ 아셈타워∼삼성역 불법주정차 단속해야

    삼성동 주변은 코엑스나 아셈타워 등 대형건물들이 많고 최근까지진행되었던 지하철 공사로 인해 상습적인 체증을 보이는 구간이다. 그런데 지난달 지하철공사가 끝났음에도 주변도로의 체증은 좀처럼풀릴 기미가 없다.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셈타워 주변의불법주정차가 체증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셈타워에서 삼성역에 이르는 구간은 늘 한개의 차로가 불법주정차차량들로 메워져 있고,특정한 시간대에는 2∼3개의 차로가 불법 주정차차량들에 의해 점령당한다.이들 차량들은 버스정류장에까지 늘어서 있기 때문에 버스승객들은 길 한가운데에서 타고 내려야하는 형편이다. 이들 불법주정차 차량 중 상당수는 단체관광객을 싣고 온 관광버스,타워내의 여러 매장이나 사무실의 납품차량,택배업체의 배송차량 등이다.하지만 단속경찰관이 나타나면 운전자가 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얼른 차를 빼서는 주변을 한바퀴 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 오기 때문에 단속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경찰은 건물 내에 충분한 주차공간과 물품하치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편의를 위해 불법주정차를 일삼는 이들 차량을 보다 효과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동익[서울시 송파구 잠실5동]
  • [발언대] 독서의 계절 가족에 책 선물하자

    독서의 계절인 9월이다.독서의 달을 맞아 1권의 책이라도 읽는 여유를 가져보자. 한국출판연구소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3권으로 월 1권도 읽지 않았다. 학생들의 한학기 독서량은 초등학생 23.3권이고,중학생 9.6권,고등학생 7.1권으로 초·중·고 모두 3년전에 비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학생 독서량 감소 추세는 컴퓨터 게임,인터넷 확산 등 매체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 1년동안 단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독서 기피층도 우리나라 성인의 22.2%(99년 기준,95년 21%,96년 22.8%)나 된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의 독서 불감증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가 개인은 물론 한나라의 문화의 양식이 되고 긍극적으로는 국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책은 곧 우리를 일깨우는 말없는 스승이요,길잡이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이다.금번 여름방학에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에게 각각5권의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방학 첫날부터 권유하였다.그러나아이들이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것 보다 TV와 인터넷 게임에 더 관심이 많아 씁쓸했다. 서늘함이 더해오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독서의 생활화가 자리잡을수 있도록 국가적인 홍보와 운동이 전개되었으면 한다.학교 자치단체공공기관 독서단체 언론기관 기업체 등 사회 각분야에서 시민들의 독서의욕을 고취시키는 책읽기운동을 펼친다면 효과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책을 가까이하는 습성을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또 언론사 등에서도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독서캠페인을 전개할 필요성이 높다. 나도 올 추석에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도서상품권을 선물할 계획이다.사색과 독서의 계절을 맞아 부모는 자녀에게,자녀는부모에게 사랑이 담긴 1권의 책이라도 선물하는 여유를 갖자.그러면마음의 풍요로움 또한 커질 것이다. 김동균[부산광역시 여성정책과]
  • 車 공회전 금지조례 추진

    서울시와 인천시,경기도 등 수도권 3개 시·도가 특정지역에서 자동차공회전을 금지하는 조례 제정에 나섰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수도권 3개 시·도는 지난 5월의 수도권 대기질개선 광역협의회 2차 실무회의에서 자동차 공회전금지 조례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환경부에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규정 개정을건의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버스터미널,상가밀집지역 등 특정지역에서 버스승합차 소형화물차등 경유 차량의 공회전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이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서울시는 이달중열릴 예정인 광역협의회 3차 실무회의에서 이를 논의,환경부에 재차건의하고 녹색교통운동 등 시민단체와 함께 공청회도 갖기로 했다. 심재억기자
  • ‘저서 100권 출간’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최근 현장비평서 ‘초록빛 거짓말,우리 소설의 정체’를 펴내 100권째 저서출간이라는 의미깊은 기록을 세웠다.번역,편저,감수 저서까지 합하면 130권이 넘는 김교수를 찾아 책쓰기,문학작품 읽기,그리고 문학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언제부터 100권 째 책저술을 의식하게 되셨나요. 내가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고 홋데이란 일본 서지학자가 리스트를 만들어 알려줬어요.이미 90권이 넘어섰을 때였습니다.책 숫자가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았던 탓입니다.왜 시간이 많았던가.사람은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일만 하는,자기 일에만 몰두하는,‘고약한’ 유형이며,두번 째는 자기 일은 내팽개치고 남의 일,사회에 온갖 열정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이도고약한 유형입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중간을 적당히 걷고 있는데 나는 첫번 째 고약한 타입으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간이많았고 그 시간을 책보는 데 쏟았던 것입니다. ◆책에다 남달리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인상입니다만. 그렇습니다.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야겠군요.‘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학자나 비평가 ‘종자’들을 공동묘지에서 시체나 지키는 신세로 꼬집고 있습니다.책은 관이고 도서관은 공동묘지로 남이 쓴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체지기에불과하다는 것이죠.현실을 모르고,시체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공부나 하고 있는,인간 축에도 못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꼽니다. 사르트르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스로 여기서 뛰어나오려고 이렇게 책과 관련된 것을 비하하면서 참여문학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입니다.사르트르의 말에 나를 비쳐볼 때꼼짝없이 들어맞는다는 생각,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것입니다. ◆그래도 책을 쓴다는 건 대사회적인,적극적인 어떤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간접적으로 뛰어나온다고나 할까.극도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도 알고보면 ‘문제있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 연구가 출발점입니다.1930년대의 카프 활동은 우리의 진정한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3년에 나온 본격적인 첫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 절대우위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금기시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으니 판금도 당하고 보안사에서 내 책을 죄 가져갔습니다.그런데 그때 나한테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이건 착각이었습니다.이론이나 학문은 어떻든 회색의 세계입니다.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생명의 황금 나무는 녹색’이라고 말할 때의 녹색과 대비되는 회색입니다.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회색에다 회색을더해봐야 회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나 책을 내는 건 아닙니다.자신의 책에 대해 더 말한다면. 내가 쓴 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비평사 연구 같은 학술적인 것,창작품에 대한 현장비평 즉 평론,그리고 학술 예술 문학 방면의 기행 등입니다.나는 본래 어려서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국문과에 가야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와 대학 국문과에 갔습니다.그러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습니다.잘못 온 것이죠.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때려치우고 연구의 길로 나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창작은 못하고 중간적인 비평을 하게 됐고,창작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많은 기행문을 썼습니다.나름대로 유려한 문장을 실컷 쓰고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썼다는 사실보다 남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면.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본업이죠.지난 25년간 소설을 주로 해서 새로발표되는 작품은 거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왔습니다.왜 이렇게 열심히 읽어왔나,꼭 직업 상의 이유 뿐일까.아까 말했듯 시간이 많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한 이유가 되고 또 하나는 문학 창작 작품에는 뭔가,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작가는 평범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결코 비범하다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어떤 의도가 있는데 신기한 것은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처음 의도한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작가도 모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문학작품이 인간과 세계를 읽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며이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매료당해 소설을 끊임없이 읽었다고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보통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가치가 있고 나아가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작품 속에 내가필요로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내 스승인 것입니다. ◆거기서 찾은 의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통속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문학은,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가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의 기품,인간성,인간다움을 강조하는 것인데 우리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벌레 취급을 받아오곤 했습니다.이데올로기 분단 계급 문제의 와중에서 싸우고 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예가 수두룩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 문학은 위대합니다.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지키는데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반공 이데올로기,기관원 시대나 유례없는 경제발전 속에 숱한 노동자가 벌레같이 희생되어 온 노사문제의 시대에 벌레가아니다라는 명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습니다.황석영의 ‘객지’가 그렇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문학도 달라져야만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94년에 나온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에서 뚜렷해지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벌레다’가 됩니다.여기서 벌레는 인간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제한했던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확장의 개념입니다.인간은 이제 연어고 철새고 메뚜기고 게놈인 것입니다.세계문학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우리 문학의 이런 조류를 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비평을 학문의 일분야라고 할 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말한 ‘학문은 예술과 달리 언제가 뒷사람에게 추격당한다’는 말만큼 시사적인 것은 없습니다.누구 작품은 어떻고 저떻고 하고수많은 현장비평을 했던 나로서 비평은 ‘남을 창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정의내립니다.이 말에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땅처럼 굳건합니다. 김재영기자 kjykjy@. *약력. 김윤식교수는 1936년 경남 진영에서 출생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71년과 80년 일본에서 연구했다.62년 ‘문학방법론서설’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 신인상(73년) 대한민국 문학상 문학평론상(87년) 등을 수상했다.평론가 김현과 ‘한국문학사’를 공동집필한 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와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냈으며 80년대에는 평전쓰기를 주력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등을 냈다.‘우리 소설과의 만남’ ‘현대소설과의 대화’ ‘한국소설의 표정’ 등 현장비평서 외에 ‘한국현대문학사상론’ 등 문학사상사서도 저술했다.
  • 우디 앨런 두번째 딸 입양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64)과 그의 부인 순이 프레빈(29)이 둘째아이를 입양했다고 워싱턴포스트와 영국의 더 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이들 부부는 우디 앨런의 전 부인이자 영화배우 미아 패로의 딸을입양해 기르고 있으면서 이번에 다시 딸을 입양했다.우디 앨런의 대변인은 “앨런 부부가 텍사스주에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데려왔으며 현재 생후 6개월”이라고 밝혔다.이들이 입양한 아기의 이름은 맨지 티오 앨런.우디 앨런의 우상인 재즈 클라리넷 주자 시드니 베첫과협연했던 드러머 맨지 존슨,베첫의 스승 로렌조 티어의 이름에서 각각 하나씩 땄다.첫째 입양아의 이름도 베첫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분당 종합버스터미널 개장 연기

    수도권 남부지역 최대 규모인 분당 버스종합터미널이 어처구니없는설계변경으로 개장이 무기한 연기될 형편에 놓였다. 22일 성남시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신탁은 95년 분당구 야탑동 341 일대 8,300여평에 극장과 쇼핑센터가 한꺼번에 들어서는 지하 4층 지상7층 규모의 종합터미널 공사에 들어가 5월에 준공검사를 끝내고 7월개장을 목표로 최근 성남시로부터 임시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 터미널은 면적(6만2,000여평)이 서울 강남터미널의 영동·호남선을 합친 것보다 더 넓고,복합영화상영관과 대형 할인매장 등 문화·교통·유통시설이 한꺼번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부통산신탁은 당초 1층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모란터미널을 97년 설계변경을 통해 지하 1층으로 옮기고 이곳에 20여개의 버스승강장을 설치했다. 그러나 설계변경 사실을 모르고 있던 모란터미널측은 최근 이같은사실이 밝혀지자 지하실에서는 통풍장치가 돼있더라도 매연으로 승강장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터미널측의 반대로 21일 버스회사 관계자와 시 공무원,부동산신탁,주민대표가 모인 가운데 실제로 지하실에서 일부 버스를 시범운행했으나 30분도 않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매연으로 모두 철수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모란터미널 운영자인 ㈜성일(대표 김정범·62)은 당초 계획대로 1층에 승강장을 설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용도변경 및 벽체공사가 끝나 불가능한 형편이다. 모란터미널 관계자는 “설계변경시 터미널측에 통보도 하지 않아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며 “재공사를 할 수 없다면 이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신탁측은 “공해문제를 일으킨다며 주민들이 버스터미널 입주를 반대해 할 수 없이 지하에 설치한 것”이라며 “이전이 불가능할 경우 벽면을 헐어내 1층을 당초 계획처럼 터미널 승강장으로 재공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한국외교관 인민일보 기고문 호평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현직외교관의 기고문이 중국정부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실려 화제가 되고 있다.인민일보에 한국인 관련기사가 더러 실리긴 했으나 한국인이 직접 쓴 글이 실리기는 이번이처음이다.주인공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한중교류연구중심(센터)에 근무하는 강효백(姜孝伯·41) 서기관. 지난 7월 28일자 인민일보3면에 실린 ‘염염불망김가항(念念不忘金家巷)’이라는 글이 강씨의기고문이다. 내용은 강씨가 상하이총영사관 근무시절 수차례 답사했던 상하이소재 한국관련 유적지에 대한 감상문.강씨는 “상하이 동서에 우리는성지(聖地)를 보유하고 있다.동쪽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제 서품자인 김대건(金大建)신부의 기념성당이,서쪽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현장인 홍구공원이 있다”며 “상하이는전방위,전천후로 우리를 애국심으로 고취시키며 사명감으로 각성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인민일보는 이례적으로 강씨의 글 말미에 첨부한 ‘편집자 부기(附記)’에서 “상하이에는 다른 나라의 역사적 유적지가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아는 바가 적어 그 나라 학자들에 의해 알게 되는 점이 아쉽다”며 강씨의 글에 찬사를 곁들였다.강씨는 “상하이 근무시절 평소 알고 지내던 궈웨이청(郭偉成) 인민일보 상하이지사장 겸 고급기자(대기자)가 지난 6월 베이징에 출장왔을 때 글을 보여준 것이 계기가돼 인민일보에 실린 것 같다”고 말했다.강씨의 글은 당일자 인민일보 전자신문에도 실렸다. 강씨는 지난해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의거후 일경에 잡혀가는 사진이 가짜라는 사실을 당시 현지 외국신문 보도를 찾아내 입증한 바 있으며,특히 인민일보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대서특필토록 이면에서 기여하기도 했다.강씨는 또 중국내 ‘항일독립운동 100대 사적지’를 3권의 백서로 펴낸데 이어,이를 주중 한국대사관 홈페이지(www. koreaemb.org.cn)에 올려 일반에 공개했다.경희대 법학과 출신인 강씨는 타이완 국립정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동양스승,서양제자’등 수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조계종 혜암종정, 夏安居해제일 법어 발표

    대한불교 조계종 혜암(慧菴) 종정은 14일(음력7월 15일)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을 앞두고 지난 9일 법어를 발표,선승들에게 지속적인 수행을 당부했다. 조계종 2,500여 승려들은 수행전통에 따라 지난 음력 4월15일부터 3개월간 전국 70여개 선원에서 외부 출입을 끊은 채 참선수행에 동참했다. 김성호기자. *혜암 종정의 해제법어 전문. 첫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고두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 되고세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자기도 구하지 못한다 하니임제 늙은이의 좋은 잠꼬대여 남쪽을 가리켜 북쪽이라 하고도적을 인정해 자식을 삼으니 천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뿐 아니라자기의 본래 생명도 스스로 죽임이다산승은 그렇지 않으니첫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지고두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맑은 바람 밝은 달이요세번째 구절 아래 깨달으면 부처를 죽이고 마왕을 살린다비록 그러하나 독사가 사람 몸을 휘감으매 해골이 땅에 깔렸으니투탈(透脫)한 한 마디는 어떠한가(한참묵묵한 후에 말하였다)오경에 닭이 우니 집 앞이 밝아지고 봄이 오니 여전히 풀은 푸르네아 악.
  • 간통피소 여성파출소장 “남편이 폭행 불륜사실 없어”

    친딸이 엄마의 불륜을 인터넷에 공개해 간통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여성파출소장 김모씨(42·경위)의 심경이 적힌 글이 서울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랐다. ‘경찰사랑 김규주’라는 이름으로 올려진 ‘친딸에게 공개 고발당한 여자의 진술서’라는 글에서 전 광주D파출소장 김씨는 “친딸(21)이 나를 공개고발했지만 딸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지금까지 남편 하모씨(49)에대해 대응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김씨는 “남편과는 고3때 제자와 스승으로 만나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딸을임신하게 돼 결혼했다”며 “남편은 지난 80년부터 줄곧 폭력을 행사해 왔으며 동료 여교사, 함께 교회를 다닌 여성 등과 여러번 외도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고소당하기 직전인 지난달 7일 시아버지가 내가 위자료 1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이혼을 허락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친구 이모씨(40·광주시서구 상무동)집에서 잠시 지낸 것”이라며 불륜사실을 부인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할리우드産 홍콩영화‘태풍’한국상륙

    ‘미션임파서블2’와 ‘글래디에이터’가 개봉관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간판을 거는 새 영화 두편,‘샹하이 눈’(5일 개봉)과 ‘와호장룡’(12일 개봉).이래저래 관심이 쏠린다.할리우드 옹벽을 훌쩍 뛰어넘은 ‘홍콩산’ 남자들의 영화란 점에서 무엇보다 그렇다.성룡(재키 찬)과 주윤발(저우룬파).홈그라운드를 떠나 제대로 빛을 보게 된 두 남자의 ‘원정게임’이 올 여름 극장가에서 맞불을 지핀다. *내일 개봉 '샹하이 눈'. 댕기머리에 치마두른 성룡이 서부 총잡이들의 높은 코를 납작 뭉개놓는 코믹액션이다.1950년대 대표 서부극 ‘하이눈’을 패러디한 제목이 영화 내용얼개의 절반은 암시해주고 넘어간다.존 웨인에서 따온 주인공의 이름 ‘장 웨인’도 마찬가지다.‘아시아의 용’(성룡)이 구사하는 변함없는 쿵푸와 서부의 쌍권총이 스크린을 섞바꿔 누비는,‘퓨전액션’인 셈이다. 성룡의 올해 나이 마흔여섯.“언젯적 쿵푸스타냐?”고 심드렁해할 관객들을그는 정통쿵푸의 절도있는 박진감이 아니라 유머와 휴머니티 가득한 잔재미로 달래보려 했다.해서,기대만큼 액션스케일 자체가 큰 영화는 아니다. 1881년 중국 자금성의 공주(루시 리우)가 자금성에서 추방당한 전 근위병의음모로 납치된다.공주를 구하기 위해 황실은 근위대 무사 3인을 차출하는데,평소 공주를 흠모해왔던 장 웨인(성룡)이 구출단에 합류하기를 자처한다. 공주가 묶인 곳은 바다건너 미국 네바다주 카슨시티.울긋불긋한 자금성 근위병 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서부원정에 나선 장 웨인 일행은 ‘불가능한 미션’을 띠고 간다 싶을만큼 영 미더워보이질 않는다.아니나 다를까.카슨시티로 가는 열차안에서 신통찮은 총잡이 강도들에게 휘둘려 한바탕 혼줄이 빠진다.하지만 이때 만난 ‘인간적인’ 황야의 무법자 로이(오웬 윌슨)와 함께 장웨인은 엎치락뒤치락 어드벤처 버디무비를 엮어나간다. 인디언 마을에서 얼떨결에 결혼한 인디언 처녀 ‘낙엽’은 그가 불가능한 특명을 완수해내기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도와준다. 할리우드에 입성한 성룡은 이 영화로 뿌리를 내릴 작정인 듯하다.할리우드가 새삼스레 손댄 서부영화에 주인공으로 등극했다는 대목만으로도 그에게 있어 이번 영화가 ‘홍번구’나 ‘러시아워’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이 감잡힌다.그는 시나리오의 원안을 직접 쓰고 제작을 총지휘했다. 영화를 만든 톰 다이 감독은 CF감독 출신으로,처음 극영화에 데뷔했다.12세이상 관람가. *12일 개봉 '와호장룡'. 할리우드를 빛내주느라 주윤발도 바쁘다.‘애나 앤 킹’에서 조디 포스터를향해 그윽하고 근엄한 시선을 내리깔던 샴왕국의 왕은 이번엔 강호를 호령하며 보검을 휘두르는 무림의 고수다. 때는 여러 파벌의 무림들이 각축하던 청조(淸朝).전설의 보검 ‘청명검’을보유해 천하무적의 위용을 자랑해온 무당파의 수장이 자객 ‘푸른눈의 여우’에게 암살당하자,후계자인 리무바이(주윤발)는 비정한 무림세계에 회의를느껴 사랑하는 여인이자 무사인 수련(양자경)에게 보검을 맡기고 떠나려 한다.북경 세도가인 옥대인의 가문에 보관한 검이 정체모를 자객에게 도둑맞으면서 이야기는 한고비를 맞는다. 청명검을 훔친 장본인은 옥대인의 외동딸 용(장지이).정략결혼을 앞두고 방황하며 최고의 무공을 익히려 ‘푸른눈의 여우’를 스승으로 받들어온 용은무당파의 무공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던 리무바이의 눈에 띄고,보검을놓고 쫓고 쫓기면서 둘은 연정을 느낀다. 주윤발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실제로 영화는 ‘여인 무림천하’다. 시종 화면이 어지럽도록 몸을 날려대는 건 ‘리틀 공리’라 불리는 장지이와 액션스타 양자경이다.이들의 무술지도는 ‘매트릭스’로 액션마니아들을 휘어잡고 있는 원화평이 맡았다.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아이스 스톰’ 등을 연출한 이안 감독이 액션으로 눈을 돌려 자존심을 걸고 찍었다는 영화다.지난달 20일 내한한 감독은 첫 액션인 ‘라이드 위드 더 데블’(8월중 개봉 예정)을 “‘와호장룡’을 위한 워밍업이었다”고 잘라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화려한 권법에 기대 어물쩍 넘어가려한 대목이 거슬리기도 한다.어린 용이 신장사막의 도적 호(장진)와 인연을 맺던 지난날을 플래쉬백(회상)처리한 부분은 맥락없이 늘어진다. 근래 보기드물게 배경음악이 주목해볼만하다.중국출신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를 하고,‘뮬란’의 목소리 주인공 코코리가 노래한다.콜럼비아 트라이스타,소니픽처스 공동제작.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
  • [대한광장] 홍범식, 아 홍범식

    충청남도 금산에는 장렬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1910년 한일합방 당시 순절(殉節)한 금산군수 홍범식의 비문이다.그 기개와 충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기에 숙연하지 않을수 없다.비문의 내용은 생략하거니와 유사한 비문이 충청북도 괴산 시내에도세워져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다. 1910년 8월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탄하였다.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후 군대를 주둔시켜 강점하다가 마침내 그 야욕을 드러내고야 말았던 것이다.조정은속수무책이었고 부패한 관리들은 일제의 강점과 병탄을 오히려 환영하였으니 통한하고 통탄할 일이 그 아니고 무엇이랴! 송병준 이완용과 같은 친일매국노들에 의하여 한일합방조약은 체결되었고 마침내 고종은 눈물어린 칙서(勅書)를 상하 관리들과 각 수령들에게 내렸다. 그 칙서가 도착하던 날,41세의 젊은 군수 홍범식은 의리와 충절을 지키고자결연히 목숨을 끊었으니 이 어찌 비분장렬하지 않은가! 1910년 한일합방 당시 나라가 망했다는 비보를 듣고목숨을 끊은 사람은 수십 명쯤 된다.그런데그 중에서 만조백관과 수령관리들은 거의 없었지만 이범진 공사와 홍범식 금산군수만이 결연히 자결했던 것이다. 봉건 유교의 근간이던 주자학의 덕목은 군신과 부자의 의리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는데 여기서 군신(君臣)의 덕목은 백성의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것이다. 그 덕목으로 수양을 하고 입신을 해서 관리로 재임하던 대다수의 지배계층들은 당연히 나라가 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 재직하던 60% 이상의 관리들이 일제에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다.합방조인식 현장에서 목숨을 끊어야할 고관대작들은 기가 막히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본천황이 하사하는 합방은사금과 작위를 받았고 중하급 관리들 역시 대부분 일제에 고개를 조아리고 구차한 목숨을 유지하며 일신의 영화를 쫓았다. 아,그러나 어찌 세상에 의인이 없었으랴! 여기 홍범식 의사가 있다.41세의장년,지조있는 현직 군수 홍범식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조금이라도 갚겠다는 뜻으로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그러니 그의순절 앞에서 황제 고종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500여년사직(社稷)을 보전해온 나라 조선이라면 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기개를가진 자가 많았어야 한다. 하물며 그 유교의 덕목이야말로 인간의 도리라고그토록 강조하는 지배계층의 태만과 배신에 이르러서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홍범식은 누구인가?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부친이다.그리고 신간회의 맹장이자 저명한 국어학자였던홍기문의 조부이다.또한 그는 나라를 통치하던 사대부로 정승판서가 대를 끊지 않던 명문거족 출신이다.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고자 마지막 수단인 죽음을 택한 것이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그의 기개와 의리를 생각한다면 민족 전체의 스승으로 모셔야 할훌륭한 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홍범식만한 의사가 있었다는 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지만,1948년북한으로 넘어가서 돌아오지 못한 홍명희 때문에 그 빛이 가려진다면 이는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충북 괴산에는 그의 생가가 있는데 수백년 풍상을 이고 서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니 이를 보전하여 존경의 예를 표하는 것또한 우리 의무의 하나라고 믿는다.8월 한일합방이 있던 치욕의 달에 우리는고개숙여 홍범식 의사의 장렬한 죽음을 생각해야 하리라. 인간이 사는 도리를 배워야 하는 이 여름은 무척 덥다. [김승환 충북대 교수·국문학]
  • 새 국면맞은 안티조선 운동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안티조선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상의 비평에 이어 오프라인에서의 서명운동과 각종 이벤트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안티조선’의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확산추세에 있으며 일각에서는 ‘안티조선운동’이 언론개혁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지난 98년 11월 조선일보의 최장집교수 사상검증 관련보도가 단초가 됐다.문제의 기사를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를 가리켜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청부살인업자’,월간 ‘말’의정지환 기자는 ‘마조히즘적인 정신분열증상’이라고 비판했다.이후 두 사람은 이 기자측으로부터 피소된 후 재판에서 각각 700만원,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네티즌들이 이들을 돕기 위해 사이버상에서 성금모금에 나선것이 안티조선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 1월초 문을 연 안티조선운동의 사이버 활동무대인 ‘우리모두(www.urimodu.com)’는 7개월쯤 지난 2일 현재 방문자가 50만명에 이르고 있다.이 사이트는 ‘죄선(조선)일보를 말한다’ 등 조선일보와 관련된 항목이 주류를이루고 있으나 큰 틀에서는 ‘언론개혁의 공개토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한 언론학자는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라는 특정사 하나를 겨냥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국내 보수신문 전체에 대한 반대운동”이라고지적한 바 있다. ‘우리모두’가 역점을 둔 첫 사업은 온라인 서명운동.재불 문화비평가인홍세화씨가 이한우 기자의 글을 비판하면서 한겨레에 기고한 ‘나를 고소하라’라는 글이 발표된 후 진중권씨 등이 ‘우리모두’에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수가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우리모두 측은 지난 7월7일자 한겨레신문에 서명자 명단을 전면광고로 실었는데 이후로서명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것.특히 이 광고가 나간 후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중진작가인 박태순씨가 동참의사를 밝혀 서명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까지 서명에 동참한 문인은 5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우리모두측은 이와 함께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우선 조선일보의 불법 판촉운동에 대한 감시강화를 비롯해 조선일보 불매운동 가두서명 및 스티커 부착,조선일보 기고자 및 광고주에 대한 항의전화,그리고 ‘나를 고소하라’의 서명자 3,000명 기념 서명자대회 등을 준비중이다.이들을모두 안티조선운동의 ‘투사’로 키운다는 생각이다. 또 안티조선운동이 ‘조선일보 취재거부’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지난 6월21일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모임은 프레스센터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조선일보 취재거부’를 행사장에 공개적으로 써붙였다.이에 앞서 5월 30일 소설가 황석영씨는 한 공개강좌 자리에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었다.이같은 ‘조선일보 취재·인터뷰거부운동’은 급기야 지식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지난달부터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일장신대 신방과 김동민 교수는 “현재 진보성향의 학자·문인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있다”면서 “장차 각 분야로 대상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언론개혁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언론개혁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강준만 교수 등 비판자들로부터호된 질타를 받아온 참여연대는 지난달 27일 열린 상임집행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한 관계자는 “현재 구체적인 방침이 결정된것은 없으나 상집위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이상 정책위원회(위원장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에서 내부토론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최근 국회에서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검토하고 있어 언론개혁문제는 올하반기에도 언론계내외의 핫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시론] 백년전의 세 金씨

    [신복룡 건국대 교수·정치학] 세 김씨라는 말만 들어도 독자들은 넌더리를 내겠지만,나는 지금의 얘기를하려는 것이 아니라 백년 전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그때에도 3김이 있었는데 김옥균(金玉均,1851∼1894),김홍집(金弘集,1842∼1896),그리고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그들이다.하기야 그리 흔치도 않은 허(許)씨 셋이서 나라를 떡 주무르듯 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국 인구의 22%를차지하고 있는 김씨가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이상할 것도 없지만 어쩌면 역사는 이토록 반복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역사는반복한다”고 말한 토인비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세 김씨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너무 다른 길을 갔다.김옥균은늘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과격하여 사상을 의심받았고 결국에는 잔명을 보전하지 못한 채 저자의 주검이 되었다.김홍집은 사람은 진국이었으나 무능하여 한 시대를 위기로 몰아넣고 결국 자신도 덕수궁 돌담길의 시체가 되었다.그리고 재승박덕(才勝薄德)했던 김윤식이다.그런데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바로 세번째 김씨인 김윤식이다.명문청풍 김씨의 후손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스승으로부터 장차 대제학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으며 젊은 날을 보낸 그의 전도는 그야말로 막힐것이 없었다.그는 영선사가 되어 청국으로 들어가 한·미 개국 교섭의 막후실력자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외무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거쳐 그의스승의 기대대로 대제학이 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김윤식의 일생은 그 훗날이 문제였다.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긴자(銀座)에서 호강도 했고 한일합방이 되자 자작(子爵)의 칭호와 함께 합방축하금 5만원을 받았으며,시서화에 능해 그의 문집인 ‘운양집(雲養集)’은 1915년에 일본학사원 상을 받았으니,만약 그에게 후손이 없고 이 나라가 영원히 일본의 속방이 되었던들 그의 일생은 누릴 것 모두 누린 셈이요 욕되거나 후회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1922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신문들은 한국의 셰익스피어가 서거했다고 법석을 떨었고,최남선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조사를 썼고,박영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위원회가 구성되어 그를 유월장(踰月葬)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그러나 그때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민중은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결국은 사회장이 취소되고 가족장으로 양주 땅에 묻혔다. 필주(筆誅)의 뜻을 아는지? 내가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재주이다.그는 너무 오래 살았고,늙어서도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세속을 탐냄으로써(老貪) 그의 살아 생전의 공을 모두 묻어버렸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김옥균인들 허물이 없었을까만 그는 국가를 개혁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허물을 덮었고,김홍집은 한창 일할 쉰 넷에 죽었으니 한이야 없을까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윤식은 김옥균보다 두 배를 더 살고 욕을 열 배로 더 먹었으니 옛 성현의 말씀대로 ‘오래 산 것이 욕(壽則多辱)’이었다.왜 가장 늦게 태어나 가장 이른 나이에 가장 먼저 죽은 김옥균은 역사의 사면을 받았는데 가장 먼저 태어나 가장 오래 살다가가장 늦게 죽은 김윤식은 그토록 욕을 먹는것일까? 첫번째 김씨는 너무 과격했으나 역사에 공적을 남겼고,두번째 김씨는 다소무능했으나 자신을 탐하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역사에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세번째 김씨는 그 경륜이 일세를 풍미했으나 너무 때묻었기 때문에역사의 오명을 벗을 길이 없다.그런데 나는 지금 김윤식을 필주하는데 왜 자꾸 김종필의 생각이 머리에 맴도는지 참으로 이상하다.원내 교섭단체가 뭐기에….
  • 대한매일 주최 018배 패왕전, 이창호 연승행진 어디까지…

    돌부처 이창호 9단의 단일기전 연승 행진이 어디까지 갈까. 올해부터 국내 최초로 연승전 방식으로 바뀐 대한매일 주최 제35기 한솔 M. com 018배 패왕전 본선에서 세계 최강 이9단이 26일 홍태선 7단을 꺾고 5연승을 거두며 새로운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1일 이희성 3단과 대국에 이어 서능욱 9단,윤성현 6단,조한승 3단을 상대로기록 경신에 도전한다.요즘 잘 나가는 이세돌 3단까지 누르면 10승.성격은좀 다르지만 서봉수 9단이 지난 96·97년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9연승을 거둔 바 있다.김성룡 6단,안영조 5단,김찬우 초단,유재형 4단,장두진 7단,하찬석 8단,안달훈 3단,한종진 3단마저 ‘제물’로 삼을 수 있을지관심거리다.마지막 관문은 이9단의 스승이자 현 패왕 타이틀 보유자인 조훈현 9단.조9단이 이기면 두 사람이 결승 5번기를 갖는다.그러나 이9단이 승리하면 19연승과 동시에 그것으로 우승이 확정된다.우승상금 1,200만원 외에 1승당 100만원씩을 챙긴다. 이9단은 이성재 5단과 양재호 9단을 눌러 2연승으로 첫 결선 토너먼트 진출자로 확정된데 이어 윤기현·서봉수 9단을 제압했다.패왕전은 본선진출자 20명이 질 때까지 두고,2연승 이상자들이 결선 토너먼트로 최종우승자를 가린다. 한편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포츠서울 주최 제11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에서는 1승을 거둔 송태곤 초단이 25일 안달훈 3단에 219수만에 흑 불계패했다.안3단은 목진석 5단을 누르면 결선 진출권을 확보한다. 김주혁기자 jhkm@
  • 중·고교 인터넷사이트 ‘스승매도’ 욕설 춤춘다

    중·고교생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언어 폭력이 사제(師弟)의 정까지무너뜨리고 있다. 학교에 대한 불만과 고민을 털어 놓고 건전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개설된 안티스쿨(www.antischool.com),예스안티(www.yesanti.com) 등의 사이트에는 매일 수십명의 중·고교생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늘어 놓는다. 안티스쿨 사이트에 ‘X같네’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린 한 학생은 “네가 선생이면 다냐.툭하면 욕지거리나 내 뱉고 애들 때리는게 취미냐.학부모에게돈 뜯는 재주만 뛰어난 너만 생각하면 술맛이 다 떨어진다”라며 일방적으로 교사를 매도했다. 글을 올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은 물론 비난 대상 교사의 실명을 밝히지 않아 욕설 퍼붓기에 그칠뿐 비리를 고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서울 Y여고 3학년 3반 학생들은 지난 20일 ‘체벌 교사를 바꾸어 달라’는 글을 교육청과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 집단적으로 올려 물의를 빚었다. 학생들에 따르면 지난 14일 수학담당 A교사(41)는 “유독 3반의 수업태도가 불량하다”며 교과서를 가져오지않은 학생들을 발로 차는 등 심한 체벌을가했다. 분개한 학생들은 “폭력 교사에게 더 이상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글을올렸고 A교사는 학생들에게 잘못을 사과했다.A교사는 “당시 학생들의 불성실한 수업 태도 때문에 감정이 격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 3학년 나모양(19)은 “인터넷에 글이 올라온 뒤부터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인사도 하지 않는다”면서 “선생님의 인격을 학생들이 단체로 짓밟은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일선 중·고교 홈페이지에도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 글이 봇물을 이룬다. 서울 강남구 H고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학생이 “교장 XX놈과 X같은 유XX 선생,당신들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학교를 휘젓고 돌아다니냐”고 욕설을 퍼부었다.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관리자 박모씨(41)는 “매일 아침 인터넷에 뜬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삭제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일방적인 욕설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K고 학생주임 김모교사(41)는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교사를 비난하는 것은붕괴된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교사와 학생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인터뷰/ 파리오페라 발레단원 김용걸씨

    “5개월간 견습생으로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것이 헛되지 않아 기쁩니다.기대는 했지만 워낙 오디션이 까다로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거든요”동양인 남자무용수로는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 정식단원에 선발돼 국내 발레계를 들뜨게 한 김용걸(26)이 여름휴가와 9월초 있을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공연차 지난 17일 잠시 귀국했다.지난 2월 이 발레단의 견습단원으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는 지난 5일 50명이 참가한 오디션에서 유일하게 정단원으로 뽑혔다. 유학경험이 전혀없는 토종발레리노로 국립발레단의 스타무용수였던 그는 “한국에서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군무나 대기 무용수로 서자니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슬몃 드러냈다. 그러나 “동료 무용수 하나하나가 다 좋은 스승처럼 느껴졌기때문에 만약 떨어졌더라도 후회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개월간 그는 견습생으로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강훈련을 감내하는 한편 틈틈이 어학을 익히느라 눈코뜰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그 와중에 3월에는 ‘신데렐라’로 파리 가르니에극장에,6월에는 ‘레이몬다’로 바스티유극장에 서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나 테크닉면에서 그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대신 무용수들이 무용에 전념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스템은 정말 부럽더군요”한국에선 무용수가 소품,의상,분장 등을 알아서 챙겨야하는데비해 파리오페라발레단은 무용수마다 1∼2명의 스태프가 붙어 모든 편의를봐준다는 것.관객들의 수준도 높아 마지막 커튼콜까지 자리를 뜨지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지금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 서열 5단계중 4번째인 ‘코뤼페(군무’이다.수석무용수인 1단계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년.이제부터 진짜 시험이 시작되는 셈이다.9월1∼3일 ‘로미오와 줄리엣’공연이 끝나면곧바로 파리로 돌아가 ‘그날’을 향한 발걸음을 차근차근 내디딜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 태권도 축제 코리아오픈 최고령 출전 美 젤러

    “태권도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죽어가던 나를 되살려 냈습니다”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열정을 태권도를 통해 뿜어내고있는 벽안의 여성이 화제다. 충청대 주최로 열리고 있는 세계태권도 문화축제 코리아 오픈대회 겨루기부문 최고령 출전자 메리 루이스 젤러(56·여·미국 유타 거주)사범. 12년전 어린 아들이 건물에서 추락,만신창이가 되는 광경을 목격한 뒤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한때 정신요양원에 수용되기도 했던 메리 루이스는 치료의한 방법으로 친구가 권한 태권도를 시작했다. 미국과 러시아 지역 태권도 전도사인 스승 윌리엄 김의 혹독한 지도를 통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난 그녀는 이후 크고 작은 미국내 대회와 국제대회에서 모두 40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일흔을 넘긴 남편의 위암진단 등 잇따른 어려움을 태권도 수련을 통해 터득한 특유의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지난 96년 공인 4단 심사에 합격한 뒤 초급지도자 연수과정에 도전,사범자격을 따냈다. 이어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에 도장을 열고 수많은 국제대회 우승선수들을배출해 냈고 최근에는 그녀가 체험한 태권도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저서 출간을 준비중이다. 그녀는 “장애인이 된 나의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신체의 한계는 노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며,나에게 그 노력은 태권도였다’는 말을 한다”며 “종주국인 한국에서 진정한 태권도 정신을 배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