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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창업 권하는 사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광공업통계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0년중 우리나라의 5인 이상 사업체수는 9만8,777개로 외환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함에 따라 약 2만여개의 사업체수가 격감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불과 2년여만에 사라져간 사업체들의 빈 공간을 새로운 기업들이 훌륭히 메우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견스러운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짧은 시일내 사업체수가 늘어난 것은 적극적인 창업지원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당시 정부는 창업활성화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전국 주요 도시에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만들고 창업상담을 비롯해 자금지원에 적극 나섰다.각 금융기관 및 경제단체들도앞다퉈 창업박람회를 개최해 예비창업자의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후원했다. 이에 따라 창업안내 강좌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몰려든사람들로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창업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와 같이 모든 경제 주체들이 혼연일체가 돼 조성된 창업붐은 새로운 바람이 되어 연쇄부도,대량실직 및 실업증가 등으로 암울하던 사회분위기를 밝고 활기차게 변화시켰으며,우리나라가 예상보다 빨리 IMF 체제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필자는 이러한 창업열풍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발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창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먼저 변해야 된다고 본다. 창업을 취업이 안돼 차선책으로 모색하는 대안이 아닌 자기 성취를 꿈꾸며 당당히 선택할 수 있는 환경,즉 부모가 자녀에게,스승이 제자에게,선배가 후배에게 취업보다 창업을 적극 권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성인 중심이었던 창업지원정책의 대상을 청소년으로까지 폭을 넓히면 그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디지털 경제시대를 맞아 기성인보다는 오히려 자라나는 젊은 세대인 청소년들이 사업하기에 더 적합하다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과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창업교육을 실시하고,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규제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개선할 사항이 있으면 고치는 한편,필요하다면 자금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청소년 창업지원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김덕배 중기특위 위원장
  • 伊 아티스트 파올로 판돌포 내한 독주회

    고(古)악기 ‘비올라 다 감바’를 아시나요? 르네상스 시대부터 귀족들의 사교장소인 살롱에서 춤곡을 반주하거나 성악가의 목소리를 부분적으로 대신하던 악기.첼로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첼로의 화려하고 뚜렷한 선율에 비해 섬세하고 깊은 공명으로 내면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여성적인 악기이다. 이 비올라 다 감바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국내 최초로 마련된다.오는 14일 오후 7시30분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파올로 판돌포(42) 독주회.국내에서 단 한 차례도 독주는 물론 협연 형태로도 소개된 적이 없는 비올라 다 감바 연주회인만큼 관심을 모으는 자리이다. 파올로 판돌포는 주로 첼로로만 연주되던 J.S.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을 세계 최초로 비올라 다 감바로 연주한음반을 발표해 주목받은 인물. ‘현대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조르디 사발의 제자로 실내악을 배웠으며 스승 사발도 시도하지 못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을 비올라 다 감바로 연주해 유럽을 놀라게 했다.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를 섭렵했으며 마지막 악기로 비올라 다 감바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번 내한 무대에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중 1,4,5번을 2시간에 걸쳐 선사할 예정.첼로를 위해 작곡된 이 곡의 표준 음높이를 감바에 맞춰 조절했고 강약의 대비를 극대화하기위해 빠른 템포를 강화해 원래의 무곡적 느낌을 경쾌하고 맑은분위기로 살려낸 레퍼토리들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현대무용가 김복희씨 춤인생 30년 기념공연

    현대무용가 김복희(한양대 체육대학장)가 춤 인생 30년을 중간 정리하는 기념공연 ‘슬픈 바람이 머문 집’을 5∼7일 오후8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갖는다. ‘슬픈 …’은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3대비극중 하나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모티브로 한 신작.1930년대 스페인을 배경으로 엄격한 가정의 다섯 딸 이야기를 다루면서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다섯 딸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섞었다. 이번 작품은 이전의 ‘피의 결혼’(96년) ‘천형,그 생명의 수레’(99년) 등과는 달리 한국적인 토속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가면이나 인형같은 소품을 쓰지 않고 소품 사용을 최대한 줄이며 간결한 무대 위에서 몸 동작만으로 작품을 풀어 나간다. 작품 속에서 어머니나 여인을 상징하는 역할을 김씨가 직접 맡았으며 오문자,손관중,서은정,김남식 등 왕성하게 활동중인 그의 제자들이 출연한다. “한국적인 현대 춤을 추고 싶다”는 뜻을 세워 스승인 육완순의 곁을 떠났던 그는 지난 71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에서 불교를 소재로 한 첫 안무작 ‘법열의 시’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김성호기자
  • [여성 선언] 그놈의 사모님 소리

    “사모님 도장 좀 주시겠어요?” 매번 입금하는 대학의거래 은행이 필자 회사 주거래 은행과 달라 대학과 같은은행의 새 통장이 필요해 회사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은행을 첫 방문했다.그 곳은 마침 출퇴근하는 중간지점에있어 담당 직원을 시키는 것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각종 서류를 챙겨들고 은행에 갔다. 담당 은행원은 사업자등록증 등 회사의 대표이사임을 입증하는 서류들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일일이 꼬장꼬장하게 따지기가 뭣해서 그 “사모님”소리에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은행원이 도장을 달라며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른 순간 참지 못하고 화를 내었다.“사모님이라고 안 부를 수 없어요?” 은행원은 “그럼 뭐라고 불러요”라고 되물었다.그 젊은 은행원의 반문은 여사장을 사장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그래서“사장을 사장이라고 불러야죠”라고 답변했다. ‘사모님’은 스승의 부인에 대한 존칭을 상사나 윗사람의 부인에게까지 확대해 사용하는 존칭이다.그러다 보니남편 잘 둔 아내들은 다 사모님이 되었다.딱히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싫어할 이유는 없는데도 내가 민감한 이유는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 여성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음모가 호칭 속에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같은 업종의 남자 사장은 당연히 사장님,일정한 직업이 없어도 여사장 남편은 여전히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여사장은 버젓한사장도 사모님으로 불린다. 이는 여성이 비독립적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사모님의 사용 범위가넓어지면서 고객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는 업종의 종업원일수록 결혼한 여성이면 누구라도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평생 남편의 그늘을 마다하고 독자적인 일에 매달려온 나 같은 여성은 사모님 소리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일하는 여성이 늘수록 사모님 호칭은 점차 퇴색될 것이자명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이러한 호칭의 난립에 대해여성 자신이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한번은 업무 관계로 만난 대학교수 한 분이 나에게 ”이정숙씨“하며 이름을 불렀다.연배가 비슷하고 지위의 고하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내가 그의 수하 직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부른 것이다.만약 내가 남자 사장이었다면 그가 이름만 부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여간 괘씸하지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1주일에 한번씩 대형 여성전용 사우나에다니게 되었다.식당과 한증막이 다 구비되어 있어 한주간의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그러나여기서는 식당부터 때 미는 아주머니까지 고객을 모두 ‘어머니’ 또는 ‘언니’라고 부른다. 언어란 사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호칭과 용어 선택은 매우중요하다. 여성의 사회 활동 역사가 짧아 여성에 관한 호칭이 이처럼 난립되어 있다.지금부터 여성 자신이 이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못마땅한 호칭에 대해서는 “이러이러하게 불러달라”고 당당하게 주문해서 왜곡된 메시지가 담긴 호칭을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정숙 (주)시그니아 미디어그룹 대표
  • [굄돌] 나는 허준이 싫다

    나는 가끔 허준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칭찬의 뜻이지만 이 말을 듣는 것이 제일 싫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저자이자 이 나라 역사에서 칭송을받는 명의다.허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조건 허준을 위대한 의사의 표본으로 내세우는 것이 싫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허준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왜곡하여 온 국민이 드라마의 내용을 역사적인 사실인 냥 믿게 한 것이 싫다. 허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은 거의 전부가 중국의 의학책들을 그대로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허준은 수백 종의 중국의학책들을 발췌하고 인용하여 ‘동의보감’을 만들었다.그러나 중국은 우리나라와 기후와 토질은 물론 체질이 다르다.중국은 쌀보다는 고기가 주식이며 온돌방이 아닌 침대에서 생활하며 언어는 영어를 많이 닮았다. 나는 십여 차례 이상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 사람도 모르는 오지를 찾아다녔고 약초를 채취하고 많은 병자들을 만났다. 중국의 약초와 중국 사람의 체질은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르다.‘동의보감’은 중국의학책들을 옮겨서 정리한 것이기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맞지 않는다. 둘째 허준은 우리 땅의 약초를 연구하지 않았다. 소설 ‘동의보감’이나 드라마 ‘허준’을 보면 허준이 스승 유의태 밑에서 의학을 배우면서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는 것이 나온다.그러나 허준은 한 번도 약초를 캐러 산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동양의학의 기본은 약초이다.약초를모르고서는 의학을 안다고 할 수 없다.그러나 허준은 중국약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 약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동의보감’ 탕액편에 있는 약초와 약재에 대한 설명은 전부 중국책에서 옮긴 것이다.심지어는 중국책의오류나 오자까지도 그대로 옮겼다. 우리나라에는 수천 년 전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발달해온 전통의학이 있다.그런데 허준은 이 겨레의 전통의학을 철저히 외면했다.얼마 전 드라마 ‘허준’을 쓴 작가를우연히 만나 역사를 그렇게 왜곡할 수 있느냐고 따진 적이있다.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허준은 시대의 영웅이자 ‘의성(醫聖)’으로 대접받는다.책방에 갔더니 어린이용 허준의 전기가 수십 권 나와 있는데내용이 모두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었다.위인의 전기라면 사실을 기록한 것이어야한다.그런데 소설을 사실인 양 기록해서 영웅으로 조작하고서는 칭송한다.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한다고 탓하기 전에우리부터 역사를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진규 한국토종약초硏 소장 herb@koreanherb.co.kr
  • [종교간 화해의 길] (5)갈등 넘어 화합의 세계로

    예수와 석가에 따르면 어버이가 낳아준 나(ego,自我)는‘참나’가 아닌 ‘거짓나’에 불과하다.이 거짓나를 참나로 알고 사는 것은 속는 일이다.석가와 예수는 어버이가 낳아준 멸망의 나(ego,自我) 밖에 하느님(니르바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Dharma,soul)를 깨달았다.득도한 뒤에 카필라성에 돌아온 석가는 부왕 슈도다나(정반왕)에게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연등불 이래의 붓다의후예”라고 하였다.예수도 출가한 뒤에 고향 나사렛에 돌아와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여인이여,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였다. 석가와 예수도 몸으로는 어버이의 자식인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는 육친의 어버이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석가는 80살에 열반하면서도 ‘얼나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여의어서 영생한다’고 하였다.예수도‘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얼나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므로 종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한 5:24 필자의 역)고 하였다.노자(老子)의 도(道),장자(莊子)의 참(眞),공자(孔子)의 덕(德),맹자(孟子)의 성(性)도 같은 얼나이다. 류영모도 ‘예수,석가에게 나타났던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도 나타났으니,영원한 생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없다’(『다석어록』)고 하였다.개체는 서로가 다르지만 하느님이 주신 얼생명으로는 공통된 한 생명인 것이다.류영모는 이를 ‘귀일(歸一)’이라고 하였다.예수·석가·노자·공자 그리고 저 무함마드(마호멧트)까지 하느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그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고,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느님을 바라보자는 것이다.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보려고 하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귀일은 하느님을 가르쳐 준 스승조차도 뛰어넘어 하느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예수가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말아라.너희 스승은 오직 한 분(하느님)뿐이고,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마태오 23:8)라고 한 것도 하느님이 너희들의 스승님이시니 하느님께로 가야한다는 귀일신앙을보여준 것이다. 귀일에 이르면 얼나로 통하는 하나의 생명인데 갈등이 있을 수 없다.문제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기가 어렵다는것이다.얼나를 깨닫지 못하니 하느님을 잘 몰라 불교도는석가를,기독교도는 예수를,유학자는 공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석가·예수·공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석가·예수·공자의 신앙을 본받아 하느님(니르바나님)을 신앙하여야 한다.내게 온 얼나는 우주 안팎에 가득찬성령이시다.그 성령이 하느님(니르바나님)이시다.하느님은다른 이가 아니라,우리의 참나로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는영원한 생명이시다.그 얼나(성령)가 맘 속에 샘솟으므로 하느님이 계신 것을 안다. 예수·석가·공자가 한 자리에서 만난다면 서로가 잘났다고 뽐내거나 우쭐하겠는가? 그들은 이미 탐·진·치(貪瞋痴)의 수성(獸性)을 죽여 다투는 자아가 없다.한 얼생명으로살게 되므로 이심전심이 되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종교간의 갈등은 아집(我執)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거짓나요짐승나인 자아를 죽이고 얼나로 솟날 생각은 하지 않고,자아를 강화하여 아집만 부리는데 이게 무슨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9.11 대참사 이후 ‘이슬람’이 세인들의 화두가 되었다.이슬람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슬림의 수가 13억에 이르는 대종교라지만 톨스토이는 기독교의 한 분파로보았다.예수의 엘리 하느님이나,무함마드의 알라 하느님이나 같은 유일 절대의 하느님인 것이다.또한 아랍민족이나이스라엘민족이나 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미워하고 죽이고 할 까닭이 없다.서로 싸우는 것은 하느님을 빙자한 아집인 것이다.나(ego)를 죽여야지 왜 남을 죽이는가?예수와 무함마드가 만나면 싸울 것 같은가.무함마드는 예수를 매우 존경하였다.무슬림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예수는 무함마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마태오 26:52)라고 다시 한 번 깨우쳐 줄 것이다.무함마드가 메카에서 13년 동안 기도와 인내로 동족인 꾸라이쉬족의 박해를 이겨냈을 때 그는 예수의 제자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알라 하느님의 아들이었다.이상적으로 말하면 그때 무함마드가 예수처럼 순교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 히즈라(hijra,이주)의 길을 택한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메디나로만 옮긴 것이 아니라,신앙인에서 정치인으로도 옮겼다. 그리하여 무함마드는 종교인으로서는 실패하였고,정치인으로 성공하였다.대 이슬람왕국을 세운 영웅으로 카라일이 예찬하였다.예수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한 18:36)라고 한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군주로서는 명군이라고 할 수 있다.남의 집 머슴에서 아랍을 통일하는 이슬람왕국을 일으켰으나,예언자에 머물려고 하였지 군왕이 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종교의 입장에서는 무함마드의 지하드(Jihad,聖戰)를 인정할 수 없다. 무함마드는 방어전만이 지하드라고 이야기하였으나,무함마드 자신도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그래서 나쁜 말을 듣기도 했다. 무함마드의 생애를 집필한 H·하이칼은 무함마드가 성전(聖戰)을 변호하기를 예수도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오 10:34)고 호전적인 말을 하였다고 지적하였다.이는 예수의 말을 잘못 안 것이다. 그 말에 뒤이어 가족 사이에 불화하게 된다는 말이 나온다. 성령인 진리의 칼로 혈연을 끊어 가족이나 민족을 초월하라는 말인 것이다.예수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이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말하였다. 선사(禪師) 임제는 부처님을 죽여야 한다는 살불(殺佛)이란 말을 곧잘 썼다.끔찍하지만 옳은 말이다.불교도는 부처님을 죽이고,기독교도는 예수를 없애고,무슬림은 무함마드를버리고 하느님께로 업그레이드(up grade) 해야 바른 신앙에들어설 수 있다. 그때 종교간의 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 박 영 호 성천문화재단 연구위원. ■박영호 위원은 다원주의 선구자 '다석'의 애제자. 1934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59년부터 81년까지 20여년 동안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현재 성천문화재단의 다석사상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과 함께 노장사상을 강의하고 있다.다석사상에 관한 글을 모은 ‘다석사상전집’외 ‘중용 에세이’‘다석어록’‘다석 추모문집’‘노자’‘장자’‘다석 류영모 명상록’ 등의 저서가 있다. ■‘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다석의 애제자인 박영호 위원이 다석의 핵심 사상을 가장정확하게 풀이했다고 평가받는 책(두레刊)이다. 젊어서 기독교 신앙에 들어갔던 다석은 불교와 노장(老莊),공맹(孔孟)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사상을 두루 섭렵,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혜안을 일찍부터가졌던 ‘종교다원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다석은 모든 종교와 고전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상호 텍스트’ 방식으로 읽고 탐구해 어느 곳에도 묶이지 않는 열린 사상의 소유자로 추앙받고 있다.특히 여러 종교의 교의와 방법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 궁극적인 진리는 ‘하나’로서 끝내는 같다는 주장을 일찍부터 폈다. 최근 서방세계에서 그에 대한 연구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있다.궁극적인 진리를얻기 위해선 상대세계를 벗어나 절대세계를 추구해야 하며 상대세계를 넘어설 때 인간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일치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위원은 이 책에서 다석의 사상 가운데 절대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 자아와 육신을 중심으로생각하는 ‘몸나’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아인 ‘얼나’(靈我,기독교에서의 성령)를 찾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람은 이 ‘얼나’를 찾아 참다운 자아에 이를때 절대세계,즉 ‘하나가 되어 생사를 넘어서는 참다운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박 위원은 책에서 “다석이 본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교의신학과는 달랐다”고 주장한다.“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은 십자가에 못박혀 흘린 예수의보혈로 속죄받는다는 십자가 신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다석이 본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도신경에 입각한 교의신학이 아니라 ‘제나’(자아,ego,몸나)를 없애고‘얼나’(영아,성령)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얼나’만이 참된 나이며,이러한 ‘참나’에 이를 때 사람은 진리에이르러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관점에 서서 교의신학의 베일을 벗기고 예수와 기독교를 바라본 다석의 핵심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예수 석가를 다 몰랐다.누구를 존경하고 좇는다고 하지만 다 제 욕심 채우려 드니까 모르게 되는 것이다.예수·석가는 바른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들었다”는 부분이이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교육현장 수범사례’ 최우수상 이기호교사

    “아이들에게서 발견한 실낱같은 희망이 이렇게 위대하게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실시한 ‘교육현장 수범사례’ 수기공모에서 ‘교단수범사례’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울성수공업고 이기호(李基鎬·34) 교사는 “10년의 교직생활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은 사회의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문제학생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이 교사는 ‘사랑으로 희망을 만든 우리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했다. 이 교사에게 이같은 가르침을 준 ‘스승’은 98년부터 3년 동안 담임을 맡았던 자동차과의 수현군(가명·19).단란했던 수현이의 가정은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아버지는 가출하고 가족들은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녔다. 수현이가 결석하는 날은 몰래 이사가는 날이었다.어머니가 자수한 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수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학교에서는 퇴학시키자는 말까지 나왔다.하지만 ‘한명의 아이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 교사는 수현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어머니를 통해 수현이를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며칠 뒤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편지 검열을 하던 구치소측에서 편지 내용에 감동,직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밀린 학비를 보내왔다.이후 수현이의 마음은 열리기 시작했다.어머니도 모범적인 수감생활로 감형돼 출소했다.수현이의 생활태도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얼굴도 몰라보게 환해졌다. 올 6월에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나의 아이들,이 아이들은 영원한 나의 제자이자 나를 깨우쳐 주는 스승입니다.” 이 교사의 얼굴에는 참스승의 열정이 배어 있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대한칼럼] 교육현안은 교육적으로 풀어야

    교육계가 들끓고 있다.손을 맞잡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현안마다 서로 엇갈린 의견으로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학교 선생님들이 주장의 관철을 요구하며 무단 조퇴를 서슴지 않는가 하면 스승의 길을 가겠다는 전국의 교육대 학생들이 동맹 휴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지극히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이 지극히 반교육적인 행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파행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는 공교육을아예 황폐화시키려 작정을 했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총체적인 교육문화 수준이기도 하겠지만 반복된 교육정책 실패가 불러온 병리현상이라는 생각이다.커다란 현안인초등학교 교사 부족만 해도 그렇다.1999년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에 때맞춰 연금법 개정에 착수한 게 화근이었다.고령의 교사들은 무능하다는 예단을 근저에 깔고 있었음은물론이다.1999년 한해에 무려 1만6,130명의 교사들이 정년과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다.1998년의 4,871명의 무려3.3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등학교는 그대로 수업 불능에빠졌다.당국은 급기야 바로 ‘무능한 선생님’ 3,440여명을 다시 모셔 오는 해프닝을 연출해야 했다. 제7차 교육과정 역시 교육 현실의 코앞도 못 내다본 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내년부터 중·고교 도입에 앞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현실을 보자.학생 활동 위주의 학습이라 해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가족신문을만들어 오라,현장학습 계획안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이게 학부모 숙제지 어디 어린이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가.5,6학년 학생들이 날마다 망치 들고 판자에 못이나 박는다고 창의력이 생겨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일선 교사들조차 ‘학부모의 교사화 과정’이라고 코웃음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국은 학생활동 위주의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만을 반복하며 시행도 해보지 않고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린다.이같은 권위적인 행태는 바람직한정책조차 교원단체 등에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교육계 자체의 위기 극복 노력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 십상이다.그렇다고 당국이 내놓은 다른 정책도 싸잡아 반대할 명분은 못된다.과거의 잘못된 정책이라면 이제라도 보완하고시정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당국의 정책 실패라는 이유로 교육을 외면한다면 역시 반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교육계의 쟁점인 교원 성과상여금제를 들여다 보자.교원단체들은 교사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그렇다면 기존의 근무평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교육계만은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언제까지 비켜서 있겠다는 것인가.교육의 발전보다는 조직원들의 신분보장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무단조퇴까지 서슴지 않았던 전국교직원노조의 경우 태동되던 당시의 암울했던 교육계 시대상을 반추해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활용하는 ‘교대학점 운영제’도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교육대학교 학생회 등은 초등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전문성이 저하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또 2004학년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토록 되어 있는 ‘교육여건 개선계획’을 연기하라는 것이다.도식화하면 한해 5,200여명씩배출되는 교육대학 졸업생들이 남아 돌 때까지지금처럼 콩나물 교실 수업을 계속하라는 얘기가 아닌가. 당국의 정책 허물을 인질 삼아 왜곡된 교육현실을 외면하라는 얘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전문성 저하와 콩나물교실의 학습부실 문제를 비교 계량해 볼 일이다.검증되지도 않은 전문성을 이유로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실한 교육여건을 감내하라는 요구는 반교육적인 억지다.교육계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아태지역 사무소가 최근 이 지역 17개국 청소년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경우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의 최하위였다는 사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교육 현안은교육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대통령 장학생 생긴다

    내년부터 국내에서도 미국의 ‘대통령 장학생’과 유사한상이 제정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 2월중 고 3년생과 대학 4년생 가운데 172명을 뽑아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 대통령상’을수여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 대상자는 성적이 우수하고 창의성·지도성·봉사성이 뛰어난 고교생 72명,대학생 100명이다. 고교 수상자에게는 대통령 메달과 함께 장학금 300만원,산업시찰의 특전 등이 주어진다.또 선발된 고교생에게 영향을 많이 준 스승은 대통령이 베푸는 리셉션에 초청된다.수상자 선정은 대입 전형과는 무관하다.대학 수상자는 장학금없이 메달과 산업시찰 기회만 주어진다.수상 대상자는 졸업평점이 상위 5% 이내로 창의성 등이 뛰어나거나 장애인,고학생,벤처창업자,국제 수준의 논문을 발표한 학생 등이다. 우수 인재 대통령상은 미국이 지난 64년부터 매년 봄에 미국수능시험(SAT,ACT)성적 우수 고교생 141명에게 수여하는대통령 장학생 프로그램을 본떴다. 국내 대통령상은 미국과는 달리 성적 우수·창의성·지도성·봉사성뿐 아니라 장애인,소년소녀가장,특정분야 재능우수자 등도 포함됐다. 교육부는 오는 12월까지 시·도 교육청과 대학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뒤 중앙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 박홍기기자 hkpark@
  • [대한광장] 산행

    단풍을 찾아 설악을 향해 떠났다.강원도 홍천을 지나며 차창에 뿌리는 비를 보았다.산행을 접어야 하는 염려가 내리는 빗물만큼이나 강하게 밀려왔다.벼르고 별러서 떠나온 길을 비 때문에 접기에는 너무 아쉬웠다.어쩌면 백담사 근처에 이르면 비가 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폭우가 아니라면 꼭 대청봉에 올라 단풍을 보리라마음 먹었다.차가 내설악을 향해 달리는 동안 내내 비는 조금도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바람까지 동반한 비는 다시 산행에 주저와 망설임을 남겼다.산행을 해야 할까,말아야 할까.좀처럼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홍천쯤에서의 결심이 다시 용대리 근처에 와서는 흔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결심 사이로 나를 돌아보았다.어쩌면 내가살아온 시간 모두는 주저와 망설임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른다.행동 이전에 너무 많은 주저와 결심을 반복하다 행동하지 못하는 햄릿형의 인간.정작 살아오면서 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 무엇이 있을까? 별로 보이지 않는다.반평생 이상을 살아온 사내에게 이것은 어쩌면 슬픈일일수도 있다. 그것은 삶이 그만큼 명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은근히 오기가 생겼다.비가 오든 말든 산에 올라야겠다고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차가 멎고,나는 우의를 걸치고 대청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비가 얼굴을 치고,걸음은 자꾸 바위 길을 헛디뎠다.그러나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즐거웠다.내 마음 속의 주저와 망설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 이렇게 걷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자신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출가할 때의 모습도 이렇게 대견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어렵고 긴 결심의 시간이었지만 그때 내가 결심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속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날마다 집착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안주와 편안이내게 무의미하게 다가올 때 나는 스스로 무의미로부터 떠나기 위해 몸을 꿈틀거린다.무의미한 정신이 밤보다는 다소시린 정신의 새벽을 만나기 위해 나는 언제나 자신을 바라본다. 산에 오르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계곡의 물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콰르르 무너져 내리는 물소리.물길은 계곡이 좁은 듯 거침없이 흘러내리고 있다.저 물길을 타고 내려가면그 끝이 어디일까 궁금했다. 한번쯤은 저 거센 물결과도 같이 거침없이 삶의 진실과 진리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이 모든 어둠과 혼돈을 일순간에가르고 정말 밝고 조화로운 세계에 서서 따뜻하게 웃고만싶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물소리 하나에도 마음 속에자리한 진실의 문이 넓게 열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그 순간은 정말 행복하기까지 하다. 길이 대청봉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은 조금씩 파아란 하늘의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찾던 단풍들이 여기저기 피어 얼굴을 내밀었다.가을 산마루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단풍.단풍은 초록을 버리고야 찾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초록을 버린 단풍과 세속을 버린 출가승인 나,무척이나 닮은 한 생애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세계와 보다 진실에 가까운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아까워하고 미련을 가진다면 결코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갈 수 없다.새로운 길은 무거운 마음으로는 결코 이를 수가 없다.마음을 텅 비워 가벼워졌을 때 새로운 길을 향한 출발이 비로소 가능하다. 무거운 여름날의 초록을 버린 단풍의 색은 그 가벼움으로투명하다.그러나 나는 아직 투명한 삶의 색을 지고 있지 않다.투명하게 붉은 그 색이 내 온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나도투명한 삶의 색을 지니고 싶기 때문이다. 헛된 기대와 욕심과 주저를 모두 산마루에 버려야겠다.자신을 텅 비우고 가을 하늘 아래 서서 두팔을 벌리면 단풍처럼 그렇게 투명하게 물들 것만 같다. 성전 옥천암 주지
  • 외국의 명절 풍속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가위 명절을 어떻게 즐길까.가까운일본과 홍콩 등 아시아권과 미국의 풍속을 알아본다. ■홍콩·타이완:우리나라와 같은날 중추절을 맞는다.외식사업이 번창한 나라답게 온 가족이 중추절에는 식당에 모여만찬을 즐긴다.좋은 식당을 예약하는 것이 필수.밤늦게 식사를 마치고 보름달을 구경한다. 또 월병이라는 보름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이웃에 돌린다. 월병 안에는 단팥과 계란,깨,밤 등을 넣는다. ■일본:음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은 해마다 양력 8월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을 ‘오봉’이라는 명절로 정해 놓고있다.‘오봉’은 조상의 혼이 저승에서 돌아와 가족과 함께즐기는 기간을 뜻한다.13일 아침에는 바구니에 꽃,과일, 오이로 만든 동물을 담아 조상신을 모시는 곳에 올려놓는다. 그 동물은 주로 소나 말로,조상이 저승에서 타고 오도록 하려는 것이다. ‘오봉’때는 식사 시간에 조상들의 음식도 함께 차린다. 특별히 다른 음식을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 주부들이힘들지는 않다.또 시댁에 가더라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손님으로 대접하기 때문에 며느리는 설거지 정도의 일을 할뿐이다. ■미국:온 가족이 모여 칠면조 고기를 먹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네째주 목요일이다.친척이나 이웃을 불러 함께저녁식사를 한다. 한국과 달리 시댁이나 친정을 구분해 모이지 않는다. 이웃,친구,제자,스승 등 평소에 가까운 사람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부엌일을 대부분 여성이 하기 때문에미국 주부들도 추수감사절 스트레스가 크다. 칠면조 고기는 초대한 집의 안주인이 준비하지만 다른 요리는 손님들이 분담해 갖고 온다.남자들은 식사 후 설거지와 집안 정리를 거들며 식사한 다음에는 칠면조를 준비한안주인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이송하기자 songha@
  • 귀성 버스승차권 예매 개시

    서울시가 이번 추석을 앞두고 각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승차권 예매를 실시한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동서울터미널은 이미 예매가 진행중이며 시외버스 남부터미널은 21일부터,상봉터미널은 22일부터 시작한다. 시간은 터미널별로 차이가 있으나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모든 터미널에서 승차권을 예매할 수 있으며 고속버스는 신용카드를 이용,전화와 인터넷을 통해서도 예매가가능하다. 귀성객이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28일부터 10월 1일 사이의 고속버스 예매율은 현재 27%로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씨줄날줄] 테러계좌

    ‘테러계좌’라면 밀수·뇌물·마약 등 지하경제나 암거래, 즉 어두운 곳을 연상하기 십상이다.그러나 이는 오산이다.거래는 대부분 대명(大明)천지에 이루어진다.공개를 꺼리는 은밀성 때문에 그렇게 불릴 뿐이다. 영국에서 테러를 주도한 아일랜드공화군(IRA)은 ‘테러 스승’격인 리비아에서 ‘용돈’을 타다 썼다.우선 리비아는파운드 등으로 현금을 준비한다.그리고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IRA 전령이 갖고 온 가방을 똑같은 모양의 현금가방으로 바꿔치기한다.그러나 이런 현금 거래는 예외적이다.거액을 현금으로 인출하면 금융기관들이 ‘비정상적인 거래’로 수상하게 보기 때문이다.거액 현금은 또 운반이 어렵다. 지하경제 거래자들도 은행 계좌에서 수표를 발행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테러범이나 배후세력들이 금융기관의 전자 시스템을 이용해 자금을 움직였을 경우 그들의 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다.비행기 납치범들은 1등석 표를 사는 데직불카드를 이용했다고 한다.이 돈도 어디선가 송금되고 인출됐을 것이다.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테러 직전 그들이 투기적인 옵션거래에서 거액을 벌었다면 금융기관에거래 실적이 남아 있다. 테러의 가장 유력한 배후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의 보유 자금 가운데 최소 3억달러가 어느 금융기관에 예금형태로 있을 것이다.그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경영한다는 염소가죽 가공공장,건설회사,해바라기 농장과 무역회사 등도 금융기관을 끼고 자금을 이동시켰을 것이다.테러 동조세력이 보낸지원금이나 기업 기부금 등으로부터 흘러들어 왔다고 해도역시 금융기관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 테러범들의 자금이 과연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테러계좌를 추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영국 고든 브라운재무장관은 “테러범들은 은행계좌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고 지적한 뒤 “자금공급을 차단할 국제적 합동조치가 필요하며 스위스도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스위스는 그러나 “은행비밀법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범죄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까지 돈세탁수사에 비협조적인 나라는 영국이었다”고 맞받아쳤다.미국은테러 자금의 돈세탁을 막을 전략을 짠다고 한다.흥미로운 것은 영국과 스위스 간의 입씨름이다.실제 국가나 금융기관이 장삿속으로 지하자금을 감춰주어 온 점에서 앞으로얼마나 보호막을 거둘지 두고볼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울라마회의는/ 이슬람 성직자들로 구성 탈레반 주요정책들 논의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인도를 최종 결정할 아프가니스탄울라마(성직자)회의는 어떤 성격일까.물라 모하마르 오마르가 ‘모든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힌 만큼 아프가니스탄의 최고 정책 결정 기구임은 분명하다.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 중부 바미얀주의 석불 파괴여부를결정할 때도 울라마 회의를 소집하는 등 주요 사항이 있을때마다 회의를 소집,의견을 묻고 따르는 형식을 취해왔다. 또 그동안 자신이 구소련의 침공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충분히 공부하지 못해 물라(스승)가 아니라 탈리브(학생)라고 자처하며 중대 국사는 모두 울라마의 결정에 따른다는입장을 보였다. 오마르 자신이 ‘아미룰 모미닌’(신자들의 사령관)이라는 칭호와 함께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것도 칸다하르에서 열린 울라마 회의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사실상 울라마회의는 형식적인 최고 기구일 뿐 오마르의 절대적 영향아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참석하는 율법학자들이 대부분 탈레반 정권의 실권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남은 인생 촛불처럼 살고싶어”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사제수품 50주년과 팔순 축하미사 겸 축하식이 14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천주교 주교단 신부를 비롯한 사제와 수녀,여규태(余圭泰) 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최홍운(崔弘運·대한매일편집국장) 가톨릭언론인협의회장 등 평신도들이 성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린 행사는 축하미사에 이어 꽃다발·예물 증정,화보집 봉정,축사,답사,축하연으로 진행됐다. 미사직전 하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사제단과 함께입당한 김 추기경은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으로 미사를 집전하며 하객들의 축하에 답했다.서울대교구 평신도 어린이들중 선발된 화동들이 꽃다발을 증정하자 환하게 웃으며꽃을 받아들었고 김추기경과 오랜동안 ‘사랑의 편지’를주고받았다는 여성 평신도 대표의 축사가 끝난뒤엔 “편지만 주고받다가 이렇게 얼굴을 처음 보게 되니 반갑다”면서 포옹을 하기도 했다. 미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와,몬시뇰 모란디니 주한교황청 대사가 축하전문을 보내왔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鄭鎭奭)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김 추기경은 우리 민족이 어려울때마다 어김없이 복음의 빛을 비추셨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교회와 민족의큰 어른이요,스승으로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산 교구장인 박정일(朴正一) 주교는 축사에서 “김 추기경은 지난 50년간 온 정성을 바쳐 하느님의 부름에 응했고 책임을 다해왔다”고 회상했다. 김추기경은 답사를 통해 “처음 사제서품을 받을때 가졌던 생각만큼 충실하게 살지 못해 후회스럽다”면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촛불처럼 사랑을 불태우면서여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와 축하식이 끝난뒤 김 추기경은 바로 옆에 마련된가톨릭회관 3층의 축하연장으로 옮기기전 하객들과 일일이인사를 나누며 오랫동안 환담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셔틀콕 여왕’ 방수현 해설위원·광고모델 데뷔

    ‘셔틀콕의 여왕’ 방수현(29)이 TV 해설위원 및 광고모델로 데뷔한다.96년 애틀랜타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은 다음달 11일부터 부산 동의대체육관에서 열리는 눈높이컵 2001배드민턴 슈퍼시리즈에서 MBC-TV 해설위원을 맡는다.최근 유아복 전문업체인 ㈜하모라와 1년간 광고계약을 맺기도 한 방수현은 다음달부터 광고모델로도 팬들 앞에 나선다. 아버지인 코미디언 방일수(61)씨의 끼를 이어받아 평소말솜씨가 뛰어난 방수현은 SBS-TV 해설을 맡고 있는 스승서명원(43) 감독과 해설 대결을 펼치게 됐다.
  • [김삼웅 칼럼] 최익현과 ‘얼빠진’ 지식인들

    충남 청양에 모덕사(慕德寺)란 사당이 있다.해방후 환국한 백범이 임정요인을 이끌고 이곳을 찾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환국고유제(還國告由祭)를 지낸 곳이다. 고유제란 임정주석이 휘하 요인들과 함께 ‘정부가 조국땅에 돌아왔음’을 아뢰는 의식을 말한다.6·25전쟁후 피란지에서 서울로 환도한 국회의장 신익희도 국회의원들과모덕사를 찾아 ‘환도고유제’를 지냈다. 모덕사가 어떤 곳이기에 나라를 되찾은 임정 주석과 서울을 수복한 국회의장이 고유제를 지냈을까.“대한민국 28년(1947년)4월23일 후생 김구는 삼가 맑고 깨끗한 술을 따르고 향을 지피어 제사를 올리며 아뢰오니,춘추의 대의시며일월같이 높은 충절이었습니다”로 시작된 백범의 ‘환국고유제문’을 더 들어보자. “외로운 소자(小子)는 어렸을 때 스승의 가르침에 선생의 말씀을 받잡고 내내 잊지 못하였습니다.나라잃고 안팎의 난리속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선생의 위대한훈업에 격려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선생이시어!이제야 저의 힘을 다하여 산넘고 물건너서 여기선생의봉롱(封瓏)가까이 왔사옵고 산같이 높으신 뜻을 받들고 조촐한 차림으로 모시옵니다” ‘고유제문’의 주인공은 면암(勉庵) 최익현이다.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을사조약후 8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킨 의병대장,일본군에 체포돼 쓰시마(대마도)에 끌려가서도 단식으로 저항했던 지사,순국 뒤에 돌아와 묻힌 곳에 세운 사당이 바로 모덕사이다. 국적(國賊)을 포살한 안중근의사가 최후진술에서 “실로만고에 얻기 어려운 고금 제일의 우리 선생이다”,매천 황현은 “재상과 유림이 모두 한몸에 맺혀지니 해동(海東)천년에 공의 말만 있으리다”,중국의 원세개는 “굴원(屈原)과 개자추(介子推)를 합한 절의(節義)”라고 격찬했던 분이 면암선생 아닌가. 한말과 왜정시대에 자진(自盡)하거나 창의(倡義)한 분이많거늘 유독 면암의 사당에서 고유제를 지낸 까닭은 을사조약 후 전국 의병장의 9할이 그의 문도 출신이란 이유다. 이는 곧 “면암이 의병장을 낳고 의병장은 독립군을 낳고독립군은 항일투사를 낳고…” 독립운동사의 요람인 셈이다. 국민의 기억에서 멀어진 모덕사의 사연을 꺼낸 것은 면암을 지식인의 사표처럼 받들어온 우리 근대 지성 풍토가 너무나 크게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과거 행적으로 보아 ‘사회원로’로 대접받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포함된 지식인들이 급조단체를 만들고 “옛 역사의 ‘낡은장부’를 뒤적이면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운운하는시국성명을 발표했다.매명주의 속성의 지식인들은 탈세언론의 비호에 나서고,평양 8·15통일축전에 참석했던 또다른 지식인들은 돌출행위로 남남갈등을 촉발시킨다.이래저래 지금‘얼빠진 지식인’의 공해가 심각하다. 족벌언론의 탈세를 꾸짖고 색깔론 따위의 시대착오를 질책하고 남북화해를 기피하는 북측의 태도를 비판하면서,사회정의와 민족화합을 주도하는 것이 ‘원로’나 지식인의도리이고 책무이다.친일도,헌정파괴도,탈세도,곡필도,용공음해도 묻어두자는 무책임한 반지성의 목소리야말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칼춤’이 아닐까. 진실을 밝히고 양심세력을 옹호하고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령일진대 칼 뺄 때와 붓 잡을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선악시비도 가리지 못하면서,먹구름 덮이면 단시론(單是論),햇볕들면 양비론,안개끼면 양시론을 펴는 허명의 군상들이 날뛴다.면암의 선비 정신을 아는가 모르는가. 위당 정인보는 왜정시대 다수 지식인들의 정신상태를 ‘얼빠진 상태’라 규정하면서 “얼을 남이 빼앗아가는 것이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잃는 것이라”지적했다. 그렇게 ‘얼빠진’지식인의 전통이 지금도 활개치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 ‘사상 통제’의 무기 禁書의 역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통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대표적으로 중국 진나라의 경우 ‘분서갱유’를 들 수 있으며,청나라 역시 공식적으로 무려 3,000여종이나 되는 책을 금지처분했다.일본 역시 17∼18세기경 민간의 뉴스매체랄 수 있는 요미우리(讀賣)를 금지시켰고,천주교 서적 역시 매매 금지대상이었다.이같은 통제는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로마 가톨릭은 한때 금서목록을 작성하여 종교(사상)통제를 실시했다. 우리역사에서 있어왔던 금서(禁書)의 역사를 한 권으로정리한 ‘책의 운명’(이중연 지음,혜안)이 최근 출간됐다. 대상시기는 조선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편년체식으로다뤘다. 금서는 단순히 책 ‘한 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시대의 지배사상·질서의 유지와 연관된 문제라는 점에서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선초기 숭유억불정책을 펴는 과정에서는 도교·불교관련 서적이 탄압의 대상에 올랐으며,정권교체기나 개혁시기에는 수구 또는 급진적 사상을 담은 서적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금서처분됐다.실제로 신분제를 위협하는 내용을 담은‘홍길동전’이나 조선왕조체제를 부정하는 ‘정감록’등도 한때 금서로 지정됐다.반면 유년기의 아동들이 학문 입문서로 처음 접하는 ‘소학(小學)’ 역시 한 때 금서목록에 포함돼,허균의 아버지가 스승으로부터 남몰래 배우기도했다는 기록도 있다.이는 조광조가 개혁정책을 펴던 당시‘소학’이 요즘 표현으로 치면 급진운동권의 이념서로치부됐던 탓이다.같은 책도 시대와 해석여부에 따라 의미가달라짐을 알 수 있다. 봉건왕조시대에 이어 우리역사상 금서조치가 가장 횡행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1910년 ‘한일병합’이 발표된후 일제는 조선의 문화·역사말살을 위해 출판통제를 대폭강화했다. 대한제국기에 출판,발매된 서적에 대해 대대적인 발매금지·압수조치와 사전검열을 실시,애국적 출판물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나섰다.조선총독부는 1909년 제정한 출판법에 의거,1910년 51종,1911년 4종,1912년 14종,1913년 29종,1914년 1종,1915년 5종,1916년 10종,1917년 6종,1919년 1종 등 1910년대에만 120여종에 이르는 서적을 발매금지·압수하였다.이들 서적 가운데 ‘풍속괴란(壞亂)’이 문제가 된 것은 거의 없다.대부분이 ‘치안방해’ 혹은‘안녕질서 방해’,즉 민족적 내용이나 표현이 문제가 됐었다. 일제의 출판물 검열기준은 한마디로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1920년대 이후 사회주의사상이 도입된 후 일본에서는 버젓이 유통되는 서적이 조선에서는 발매금지처분을 받았으며,동아일보에 연재된 후 1933년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광수의 ‘흙’이난데없이 발매금지·압수처분을 받기도 했다.이유는 ‘널리 읽힌다’는 것이었다.당시 ‘흙’은 한번에 2,000부를찍어낼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당시 경무국은 “검열기준은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시세의 변천에 따라 당연히 변할 수 있다”며 궤변을 둘러댔다.고서점 ‘통문관’ 주인 이겸로옹은 “사흘이 멀다하고 발매금지시킨 책명을 적은 유인물을 각 서점에 배부하곤 했다”고 회고한 바있다. 일제강점기 ‘겨레의 노래’를 정리하는 작업과정에서 금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저자는 “의외로 그동안 이에 대한논의가 그다지 없었다는데 놀랐다”며 3년여에 걸친 작업끝에 1차 성과물로 이 책을 내놓았다.조만간 저자는 해방후 금서의 사회사를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2만원.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한 말들이’ 정치인들의 비극

    공자와 자공(子貢)이 나눈 ‘정치인(선비)문답’은 생명력이 길다. 시공을 초월한 진리가 담겼기 때문이다. 사제간의문답을 풀어보자. 제자-어떤 사람을 정치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스승-언제나 수치심을 가지고 언행을 욕되게 하지않고 책임과 사명을 다하면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제자-그 다음 부류는 어떠합니까? 스승-일가친척에게 효자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정의롭다고칭찬받는 사람이다. 제자-그 다음은? 스승-말하면 반드시 실행하고 실행하면 성과를 받는 사람이지. 제자-오늘날 정치를 맡고있는 사람들은? 스승-아! 한 말들이밖에 안되는 작은 기량을 가진 사람들이야 논할 바 못된다.([논어] 자로편) 정치가 표류한지 오래다. 나라 사정과 민생이 어려워도 정치는 자기들 ‘밥그릇’싸움뿐이다. 퍼담을 밥이라도 넉넉하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럴 형편도 못된다. 수출이 막히고 내수도 어렵다. IMF의 여파가 경제를 주름잡고 남북관계는 소강상태가 장기화된다. 고이즈미 일본의 우경화가 날을 세우고 부시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애꿎은 한반도가 냉한풍이다. 우리는 흔히 지정학을 탓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서 내부투쟁을 벌인다. 외세에는 온유해도 동족끼리는치열하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라 중국 사서(史書)에서 ‘동이(東夷)’로 불리는 한민족의 터전은 원래 요하 이동의 만주일대와 한반도가 그 중심인데,만주를 잃으면서 생각과 그릇이 쪼그라 들었다. 백산흑수(白山黑水)라 불리던 백두산과 흑룡강의 강역이 백두에서 한라로, 다시 설악에서 한라로 좁혀들더니 근년에는 지리산을 경계로 동서로 토막쳐서 ‘신후삼국시대’를 열려자 한다. 세계는 지금 이데올로기블록이 사라지고 경제연합체가 형성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유럽연합(EU), 안데스공동체(ANCOM),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2002년 초 출범예정)가 대표적이다. 다른나라끼리도 연합하거나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데 우리는 핵분열을 거듭하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까. 필부들도 해가 바뀌면 계획을 세우고 지난날을 돌이키는데 100년의 첫해를 보내면서도 묵은 날의 행태를 벗지 못하니어찌 개탄하지않을까. 대통령선거가 1년4개월이나 남았는데도 이미 대선정국에 들어선지 오래이다. 아니다. 대선이 끝난 다음날부터 ‘차기’가 논의되고 ‘차차기’가 운위되면서 매일 대권싸움으로 격돌하니, 만만한 것은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요, 코끼리싸움에 짓밟히는 민초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적어도 21세기 첫해인 올해만큼은 신세기의 비전을 준비하고, 그것이 너무 거창하다면 5년, 10년후의 국가문제를 계획하고 토론하는 정치의 모습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변화의 물결 외면하면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종으로는생명공학, 횡으로는 세계화의 파고, 옆길에는 보수반동의 일본, 뒷길에는 기지개 켜는 메머드 중국이 다가온다. 북한은다시 커튼을 닫고 미국은 한반도에 현상고착의 말뚝을 박으려든다. 일본에 대비하고 중국을 연구하고 북한을 달래고 미국을 설득하면서 국력을 키우고 민생을 보살펴서 통일을 이뤄야 할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고이즈미의 일본, 부시의 미국, 포스트 장쩌민의 중국을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일도 정파를 넘는 정치인의 몫이다. 영수회담이 예정대로 열려야 한다. 감정적인 한 두마디, 괴문서 한 두장에 정치판이 들끓는 ‘한 말들이’ 속좁은 그릇이 아니길 기대한다. 영수회담이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되도록, 영수들은 물론 여야의 책사들,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침선장 구혜자씨

    “한땀한땀 정성껏 이어지는 촘촘한 바느질에서 옷의 맵시가 살아납니다.” 바늘과 실을 벗삼아 옷가지와 온갖 생활용품을 만들어 왔던 우리 여인네의 솜씨는 침선장(針線匠)에 의해 고스란히 이어져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으로는 정정완(鄭貞婉·90) 할머니가 유일하다.그러나 정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탓에 모든 솜씨를 며느리 구혜자(具惠子·60)씨에게 전수한채 후학들을 지켜보고 있다. 구씨는 95년 중요무형문화재 침선장 전수교육 보조자로 지정된 이래 시어머니의 장인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구씨가 침선에 관심을 갖게된 건 시어머니가 활옷이나 원삼(圓衫·왕비와 공주가 입던 예복이나 일반 여인의 혼례복),남자의 관복 같은 큰 옷과 수의(壽衣)를 마를 때마다 곁에서 도왔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침선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시어머니가 침선장으로 선정된 88년부터였다.이때 나이 46살. 이때부터 바느질과 마름질 등을 골고루 섭렵한 구씨는 이제 장인의 반열을 넘나들고 있다.그의 침선세계는 스승인 시어머니를꼭 빼닮았다. 꼼꼼하고 튼튼하며 편안하고 점잖다.자연스러우면서 흐트러짐이 없는,그래서 더욱 멋스러운 양반가의 품위를 느끼게 하는 침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옷의 형태나 바느질 기법에는 변칙없는 전통기법만을구사한다.치마저고리 한벌을 만드는데 보름이 걸려도 제대로 된 멋을 찾는데 혼신을 다한다. 침선의 전통을 전수하는데도 열심이다.서울시 전통공예전수회관의 침선공방에서 가정주부,대학생,직장인들에게 전통 침선의 세계를 가르치며 한땀한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특히전통공예건축학교 침선교실을 통해서도 매년 60여명의 학생들에게 우리의 침선을 전수해오고 있다. 구씨는 “기계화와 전문화로 이젠 주변에서 재봉틀마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 바느질법을 개발하여 좀더 과학화하고 발전,계승하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다”며 바늘끝에기를 모았다. 글·이동구기자 yidong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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