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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시집 발간 준비중인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

    “요즘 학생들은 팬터지소설을 즐겨 읽는 것 같아요.아마 권선징악과 휴매니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저도 요새 들어 판타지 소설을 무척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랑시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는 시집 ‘홀로서기’의 저자 서정윤(47) 시인.그는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함께 80년대 국민적 시인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시집으로는 유례없이 ‘홀로서기’가 2년 전에 300만부 넘게 팔렸다.이후 한동안 뜸하다.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현재 대구 영신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1학년 담임을 맡았지만 1∼3학년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올곧은 ‘스승’의 길을 걷고 있다.학생들이 ‘시 한수’를 부탁하면 “시는 사랑이고 그리움이다.”라며 그저 웃기만 한다.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사인 좀 받아오라고 하던데요.” 하며 떼를 쓴다. 서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무협지를 좋아했던 학생들이 요즘 들어 팬터지소설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말했다.복선을 깔고 있는 복잡한 철학적·문학적 소설보다는 단순한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란다.까닭에 그도 팬터지소설을 좋아하게 됐다.최근에 ‘바람의 마법사’‘이노센트’‘묵향’‘가제나이트’ 등을 읽었다.학생들과 좀더 가까워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TV프로그램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벌 뮤직(개울가에서 올챙이 한마리가…뒷다리가 쏙,앞다리가 쏙…)을 핸드폰 벨소리로 다운로드를 받은 이유도 그래서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한번 가르쳐주면 잘 따라준다.그런 과정이 너무 순수하고 착하다.”라고 말했다.그가 ‘팬터지’에 빠진 또 하나의 이유.문학적 채찍을 가하자는 차원이다.지난 2002년 11월 ‘홀로서기’ 300만부 돌파 기념으로 시선집을 낸 이후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작품요? 장르에 관계없이 쓰고 싶은 것을 쓸 따름입니다.시,수필,우화,소설 등 닥치는 대로이지요.또 새로운 의욕도 생겨나고요.” 그는 요즘 붕어낚시를 자주 간다고 했다.경산 인근의 저수지나 냇가를 찾아 낚싯대를 드리운다.한동안 적막하고 얄밉게끔 입질이 없으면 그는 절로 펜을 들어 메모를 한다. 이렇게 해서 쌓여진 작품 하나,우화집 ‘내가 만난 어린 왕자’가 최근 새로 완성됐다.작품 둘,일상적이고 생활주변의 단상들을 모은 수필집도 완성됐다.작품 셋,시 역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쓰는 날짜를 꼭 정한 것은 아니지만 3일에 1∼2편의 시를 쓴다.여전히 ‘사랑’과 ‘외로움’을 키워드로 그리움의 서정성을 된장 담그듯 질그릇에 담고 있다고 했다.올 가을 그 뚜껑을 기어코 열겠단다.수필과 우화집은 3년 만이고 시집은 4년 만에 출간하는 셈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시 묘미는 쉬운데 있다고 한다.그는 영남대 3학년 재학시절 ‘영남대 교지’에 ‘기다림은/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좋다…/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는 시를 발표했다. 이후 ‘홀로서기’라는 말이 편지나 일상에서 단골로 인용되는 문화코드가 됐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평소에 한빙계(寒氷戒)를 지어놓고 ‘불망어(不妄語)’,즉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철저히 지켜나가던 스승 한훤당은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뒤 순천의 시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약을 먹고 사사당한다. 바로 그 순간 매계의 시신도 고향 금산에서 관이 쪼개져 참시를 당해 사흘이나 장사를 지내지 못한 것처럼 스승 한훤당의 시신도 시장거리에서 사흘간이나 거적에 둘둘 말린 채 방치되었으니,한갓 망령된 말이라고 무시하였던 한훤당의 운명도 결국 요동의 점쟁이가 내린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점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것이 불과 15년 전. 그렇다면 조광조의 운명도 매계는 물론 스승 한훤당의 비극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팽손이 조광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갖바치네.” 조광조가 대답하자 양팽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갖바치라면 피장이 아닙니까.일개 피장이가 어찌 신명의 뜻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매계에게 점괘를 내린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미천한 일개 복자가 아니었던가.” “너무 심려치는 마시옵소서.” 양팽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매계도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일단 생명은 보존하였으며,대감께오서도 일시 재앙의 화를 면치 못하시지만 천층 물결 속에서 헤엄쳐 나와 곧 주상의 부르심을 받고 환향하게 되실 것이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갖바치가 만든 태사혜를 신은 채 조광조가 말하였다. “이 말의 뜻은 여전히 무슨 뜻인가 알 수 없지 않은가.” 조광조는 갖바치가 쓴 마지막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매계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그렇다면 나는 바위 밑에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일찍이 채소권(蔡紹權)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아 한 쪽 발에는 검은 신을 신고,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더이다.이를 본 김안로(金安老)가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양팽손의 말 역시 김정국이 지은 ‘사재척언(思齋言)’에 실린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채소권은 권신 김안로의 처남이었으나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훗날 김안로가 흉적으로 참화를 입을 때 무사할 수 있었던 문신인데,그는 천성이 부드럽고 탄솔(坦率)하였다고 한다.‘사재척언’에 의하면 채소권은 조금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날 아문에 출사하면서 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한 쪽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가니,아전들이 입을 가리고 서로 웃었다고 한다.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매형인 김안로를 만나자 이를 본 김안로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 김안로의 말은 ‘꽃이 필 때 어떤 빛깔은 진하고 어떤 빛깔은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나고 뒤에 나오는 차이뿐 꽃은 꽃일 뿐이다.’라는 말로 처남 채소권의 소박한 심성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오니 대감께오서 한쪽 발은 검은 가죽신을 신고,한 쪽 발에 흰 가죽신은 신은 것은 김안로 대감의 표현대로 꽃 빛이 옅고 짙은 차이뿐 다른 뜻은 없을 것입니다.” 양팽손은 짐짓 조광조를 위로하기 위해 가볍게 말을 흘렸다.
  •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평소에 한빙계(寒氷戒)를 지어놓고 ‘불망어(不妄語)’,즉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철저히 지켜나가던 스승 한훤당은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뒤 순천의 시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약을 먹고 사사당한다. 바로 그 순간 매계의 시신도 고향 금산에서 관이 쪼개져 참시를 당해 사흘이나 장사를 지내지 못한 것처럼 스승 한훤당의 시신도 시장거리에서 사흘간이나 거적에 둘둘 말린 채 방치되었으니,한갓 망령된 말이라고 무시하였던 한훤당의 운명도 결국 요동의 점쟁이가 내린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점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것이 불과 15년 전. 그렇다면 조광조의 운명도 매계는 물론 스승 한훤당의 비극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팽손이 조광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갖바치네.” 조광조가 대답하자 양팽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갖바치라면 피장이 아닙니까.일개 피장이가 어찌 신명의 뜻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매계에게 점괘를 내린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미천한 일개 복자가 아니었던가.” “너무 심려치는 마시옵소서.” 양팽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매계도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일단 생명은 보존하였으며,대감께오서도 일시 재앙의 화를 면치 못하시지만 천층 물결 속에서 헤엄쳐 나와 곧 주상의 부르심을 받고 환향하게 되실 것이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갖바치가 만든 태사혜를 신은 채 조광조가 말하였다. “이 말의 뜻은 여전히 무슨 뜻인가 알 수 없지 않은가.” 조광조는 갖바치가 쓴 마지막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매계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그렇다면 나는 바위 밑에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일찍이 채소권(蔡紹權)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아 한 쪽 발에는 검은 신을 신고,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더이다.이를 본 김안로(金安老)가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양팽손의 말 역시 김정국이 지은 ‘사재척언(思齋言)’에 실린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채소권은 권신 김안로의 처남이었으나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훗날 김안로가 흉적으로 참화를 입을 때 무사할 수 있었던 문신인데,그는 천성이 부드럽고 탄솔(坦率)하였다고 한다.‘사재척언’에 의하면 채소권은 조금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날 아문에 출사하면서 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한 쪽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가니,아전들이 입을 가리고 서로 웃었다고 한다.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매형인 김안로를 만나자 이를 본 김안로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 김안로의 말은 ‘꽃이 필 때 어떤 빛깔은 진하고 어떤 빛깔은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나고 뒤에 나오는 차이뿐 꽃은 꽃일 뿐이다.’라는 말로 처남 채소권의 소박한 심성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오니 대감께오서 한쪽 발은 검은 가죽신을 신고,한 쪽 발에 흰 가죽신은 신은 것은 김안로 대감의 표현대로 꽃 빛이 옅고 짙은 차이뿐 다른 뜻은 없을 것입니다.” 양팽손은 짐짓 조광조를 위로하기 위해 가볍게 말을 흘렸다.˝
  • 가정의달 맞아 30%까지 할인

    가전업계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다채로운 판촉행사로 ‘가전의 달’을 준비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전후해 자녀나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가전제품을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어린이날 행사는 오는 9일까지 프린터,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어학용 카세트플레이어,스탠드 등을 할인판매하며,어버이날 행사는 6일부터 17일까지 TV,홈시어터,캠코더,냉장고,세탁기,김치냉장고,비데,안마기 등을 대상으로 한다. LG전자는 대리점인 하이프라자에서 1일부터 20일간 홈페이지를 통해 부모님이나 스승님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 고객 100명을 선정,카네이션과 편지를 해당 부모나 스승에게 대신 보내주는 행사를 갖는다. 16일까지 2000명을 추첨,X캔버스 신제품인 LCD프로젝션 TV를 30% 할인해준다.이밖에 어린이 뮤지컬 관람권 증정,가스오븐레인지 10일 무료 체험 등 판촉행사도 연다. 위니아만도는 20일까지 ‘딤채클럽’(www.dimchae.co.kr)에서 딤채,에어컨,공기청정기,이온수기 뉴온 등 4가지 지정 세트제품을 구매할 경우 30% 할인혜택과 함께 10 인용 쿠쿠 압력밥솥을 증정하는 등 온라인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류길상기자˝
  • 젊은 연극 두번째 ‘즐거운 인생’

    ‘범진’은 노총각 고교 음악교사다.혼자서는 밥을 먹지 못해 거울을 친구삼아 숟가락을 들고,외로움에 지쳐 장난 전화를 걸기도 한다.술에 취해 옛 애인의 집에 찾아가서도 행패를 부릴 용기조차 없다.반면 범진이 가르치는 ‘세기’는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남을 웃기는 개그맨이 꿈인,스승보다 어른스러운 제자다. 오는 12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올리는 연극 ‘즐거운 인생’은 자의든 타의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 두 남자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젊은 연극 시리즈’두번째 작품으로,지난 2001년 연극 ‘이(爾)’로 동아연극상,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등을 휩쓴 극작가 겸 연출가 김태웅(40)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인생을 ‘즐거운’ 인생으로 승화시키는 매개체는 음악이다.극중 범진은 TV 전국노래자랑에서 노래부르며 정말 즐겁고 행복해하는 ‘미스 김’을 보며 “자신이 정말 즐겁고 좋아서 하는 음악이 부처의 음악이고,그 사람이 부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누추한 일상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작은 몸부림과 깨우침이 부처라면 음악은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존재라는 것.음악은 무대를 넘어 객석에까지 밀려온다.극 중간쯤 객석이 강의실로 바뀌면서 관객과 배우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놀이를 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그의 전작들이 그렇듯 ‘즐거운 인생’도 ‘웃음’이라는 코드로 주제의 무거움을 희석시킨다.김태웅은 “힘든 삶이지만 그 삶을 견디면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즐거운 인생”이라면서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희열을 막는 사회 구조에서도 즐거움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광대들처럼 극중 인물 범진과 세기를 통해 그런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범진역으로는 ‘이’에서 연산군 연기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던 김내하가,세기역에는 신예 박정환이 출연한다.범진과 세기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범진의 애인 선영역은 박미현이 맡았다.30일까지 (02)580-1300. 이순녀기자˝
  • 儒林(8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연산군은 평소에도 사림파를 비롯한 선비들을 증오하고 있었다.이극돈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는 글이라며 사림파들을 불충한 무리로 몰아 일으킨 것이 무오사화였으며,이때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록 맨 첫머리에 기록한 사람이 바로 매계 조위였던 것이다. 무오년에 옥사가 일어나자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참소하기를 ‘매계가 조의제문을 첫머리에 기록한 것은 선왕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하니,연산군은 크게 노하였다.그때 매계는 하정사(賀正使)로서 중국의 사신으로 들어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연산군은 강을 건너오는 즉시 참살하도록 명하였다.매계 일행이 요동에 도착하여 이 소식을 듣자 허둥지둥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매계의 서제(庶弟)로 신(伸)이라는 자가 있어 일찍이 그 지방에 점을 잘 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듣고 가서 길흉을 물었다.그 사람은 운수를 따지다가 다른 말은 없이 다만 시 한 수를 적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 신이 매계에게 말하기를 ‘처음 글귀는 화를 면하는 것 같기는 하나 아래 글귀는 해석하기 어렵다.’하고 서로 근심하여 소리 없이 울었다. 모두 압록강에 도착하여 강변을 바라보니 매계를 척살하기 위해서 관인들이 기다리는 형상이었다.일행이 실색하여 ‘금오랑(金吾郞)이 와서 형을 집행하기를 기다린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목메어 울었고,매계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구나.’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마침내 강을 건너오자 정승 이극균이 다만 잡아다가 추문(推問)한다는 것을 알았다.일행이 기뻐하고 다행히 여겨서 이를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점쟁이의 시가 바로 맞은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아래 글귀는 해독되지 않았다.서울로 잡혀 왔으나 죽지는 않고 곤장을 맞고 순천으로 귀양 갔다가 병들어 죽어 고향인 금산으로 이장되었는데,그로부터 6년 뒤 갑자사화가 다시 일어나 연산군은 전일의 죄도 따로 기록하여 매계의 관을 쪼개어 시체를 참시하도록 명하였다. 시체를 바위 밑에 끌어내다 두고 사흘 동안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이에 모든 사람들이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점괘가 맞음을 신통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의 매계의 운명을 점지하였다는 사실에 탄식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매계의 그런 일화는 훗날 김정국(金正國)이 지은 척언집(言集)에 수록되어 있는데,척언이란 문자 그대로 ‘주워들은 이야기’란 뜻으로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모은 잡록집이었다. 매계의 이 일화는 특히 유생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김종직이 사후에 관속에서 꺼내어져 참시되었던 것처럼 사림파의 운명은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간신히 죽음을 면한다 하여도 끝내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고 스스로 자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광조는 매계의 일화를 스승 한훤당을 통해 이미 전해들을 수 있었다.스승 한훤당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희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조광조와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매계가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온다 하면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더니 나도 천층 물결 속에서 헤쳐 나와 마침내 너를 만나게 되었구나.” “하면.” 조광조가 스승에게 물었다.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참언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준엄한 스승은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부드럽게 말하였다. “그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어차피 점술이란 미신이 아니겠느냐.”
  • 儒林(8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연산군은 평소에도 사림파를 비롯한 선비들을 증오하고 있었다.이극돈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는 글이라며 사림파들을 불충한 무리로 몰아 일으킨 것이 무오사화였으며,이때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록 맨 첫머리에 기록한 사람이 바로 매계 조위였던 것이다. 무오년에 옥사가 일어나자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참소하기를 ‘매계가 조의제문을 첫머리에 기록한 것은 선왕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하니,연산군은 크게 노하였다.그때 매계는 하정사(賀正使)로서 중국의 사신으로 들어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연산군은 강을 건너오는 즉시 참살하도록 명하였다.매계 일행이 요동에 도착하여 이 소식을 듣자 허둥지둥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매계의 서제(庶弟)로 신(伸)이라는 자가 있어 일찍이 그 지방에 점을 잘 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듣고 가서 길흉을 물었다.그 사람은 운수를 따지다가 다른 말은 없이 다만 시 한 수를 적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 신이 매계에게 말하기를 ‘처음 글귀는 화를 면하는 것 같기는 하나 아래 글귀는 해석하기 어렵다.’하고 서로 근심하여 소리 없이 울었다. 모두 압록강에 도착하여 강변을 바라보니 매계를 척살하기 위해서 관인들이 기다리는 형상이었다.일행이 실색하여 ‘금오랑(金吾郞)이 와서 형을 집행하기를 기다린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목메어 울었고,매계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구나.’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마침내 강을 건너오자 정승 이극균이 다만 잡아다가 추문(推問)한다는 것을 알았다.일행이 기뻐하고 다행히 여겨서 이를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점쟁이의 시가 바로 맞은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아래 글귀는 해독되지 않았다.서울로 잡혀 왔으나 죽지는 않고 곤장을 맞고 순천으로 귀양 갔다가 병들어 죽어 고향인 금산으로 이장되었는데,그로부터 6년 뒤 갑자사화가 다시 일어나 연산군은 전일의 죄도 따로 기록하여 매계의 관을 쪼개어 시체를 참시하도록 명하였다. 시체를 바위 밑에 끌어내다 두고 사흘 동안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이에 모든 사람들이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라는 점괘가 맞음을 신통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의 매계의 운명을 점지하였다는 사실에 탄식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매계의 그런 일화는 훗날 김정국(金正國)이 지은 척언집(言集)에 수록되어 있는데,척언이란 문자 그대로 ‘주워들은 이야기’란 뜻으로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모은 잡록집이었다. 매계의 이 일화는 특히 유생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김종직이 사후에 관속에서 꺼내어져 참시되었던 것처럼 사림파의 운명은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간신히 죽음을 면한다 하여도 끝내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고 스스로 자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광조는 매계의 일화를 스승 한훤당을 통해 이미 전해들을 수 있었다.스승 한훤당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희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조광조와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매계가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온다 하면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더니 나도 천층 물결 속에서 헤쳐 나와 마침내 너를 만나게 되었구나.” “하면.” 조광조가 스승에게 물었다.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참언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준엄한 스승은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부드럽게 말하였다. “그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어차피 점술이란 미신이 아니겠느냐.”˝
  •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그 글씨는 낯익은 갖바치의 친필이었다.그렇다면 갖바치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짝짝이의 태사혜와 그 신발을 주제로 한 참언(讖言)을 통해 조광조의 운명을 점지해준 것일까.때문에 갖바치는 능주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걸망 속을 뒤져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것이 아닐까.그러면 도대체 갖바치가 남긴 참언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갖바치가 남긴 문장을 읽은 조광조는 이를 들어 양팽손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양공,이것이 내 운명이오.천지신명이 점지해준 내 월단평이오.” 양팽손은 조광조가 내민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천천히 문장을 읽고 나서 양팽손은 조광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양공이 모르면 내가 어찌 알겠소이까.” 빙그레 웃으며 조광조가 말하였다. 양팽손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하였다. “하오나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말은 매계(梅溪)에게 내렸던 그 유명한 점술의 내용이 아닙니까.”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이다.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조광조의 말은 사실이었다.갖바치가 점지한 참언의 두 문장 중 앞의 것은 일찍이 매계 조위(曹偉)에게 내렸던 참언 중의 한 문장이었다.이 문장은 특히 사림파의 유림들 간에 널리 유행되었던 참언이었던 것이다.그 참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산군은 선왕이었던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사국을 열었는데,이때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金日孫)이 사초(史草)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데서 사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세조3년(1457)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踏溪)에서 하루를 숙박했는데,그날 밤 신인이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나타나 전한 말을 듣고 슬퍼하여 지은 글이었다. 김종직은 이 제문에서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의 회왕(懷王),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이는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하여 세조의 정권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었던 것이다. 운문체로 지어진 유명한 조의제문은 꿈에서 깨어난 김종직이 다음과 같이 한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꿈에서 놀라 깨어 생각해보니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고,나는 동이의 사람이다.땅이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고,시대가 또 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또 무슨 징조일까.역사를 상고해 봐도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는 말은 없는데,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시해하여 시체를 물 속에 던진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김종직은 제문을 짓고 다음과 같이 넋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이 천지가 다하도록 그 원한 다할까/넋은 지금도 구천을 맴도는데 내 마음 금석을 꿰뚫음이여/임금께서 갑자기 꿈속에 나타나셨네. 주자의 사필을 본받아/설레는 마음으로 겸손히 사례며 술잔을 들어 강신제를 드리나니/영혼이시여 흠향하시옵소서.”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넣어 ‘성종실록’을 편찬하였을 때 책임자는 이극돈으로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사초 속에 자신의 비행이 기록되어 있어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이극돈이 김종직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를 숙청할 목적으로 옥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그 글씨는 낯익은 갖바치의 친필이었다.그렇다면 갖바치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한 짝은 검고 한 짝은 흰,짝짝이의 태사혜와 그 신발을 주제로 한 참언(讖言)을 통해 조광조의 운명을 점지해준 것일까.때문에 갖바치는 능주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걸망 속을 뒤져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것이 아닐까.그러면 도대체 갖바치가 남긴 참언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갖바치가 남긴 문장을 읽은 조광조는 이를 들어 양팽손에게 내어주며 말하였다. “양공,이것이 내 운명이오.천지신명이 점지해준 내 월단평이오.” 양팽손은 조광조가 내민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천천히 문장을 읽고 나서 양팽손은 조광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양공이 모르면 내가 어찌 알겠소이까.” 빙그레 웃으며 조광조가 말하였다. 양팽손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하였다. “하오나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온다’는 말은 매계(梅溪)에게 내렸던 그 유명한 점술의 내용이 아닙니까.”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이다.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조광조의 말은 사실이었다.갖바치가 점지한 참언의 두 문장 중 앞의 것은 일찍이 매계 조위(曹偉)에게 내렸던 참언 중의 한 문장이었다.이 문장은 특히 사림파의 유림들 간에 널리 유행되었던 참언이었던 것이다.그 참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산군은 선왕이었던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 사국을 열었는데,이때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金日孫)이 사초(史草)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데서 사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세조3년(1457)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踏溪)에서 하루를 숙박했는데,그날 밤 신인이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나타나 전한 말을 듣고 슬퍼하여 지은 글이었다. 김종직은 이 제문에서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의 회왕(懷王),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이는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하여 세조의 정권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었던 것이다. 운문체로 지어진 유명한 조의제문은 꿈에서 깨어난 김종직이 다음과 같이 한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꿈에서 놀라 깨어 생각해보니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고,나는 동이의 사람이다.땅이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고,시대가 또 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또 무슨 징조일까.역사를 상고해 봐도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는 말은 없는데,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시해하여 시체를 물 속에 던진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김종직은 제문을 짓고 다음과 같이 넋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이 천지가 다하도록 그 원한 다할까/넋은 지금도 구천을 맴도는데 내 마음 금석을 꿰뚫음이여/임금께서 갑자기 꿈속에 나타나셨네. 주자의 사필을 본받아/설레는 마음으로 겸손히 사례며 술잔을 들어 강신제를 드리나니/영혼이시여 흠향하시옵소서.”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넣어 ‘성종실록’을 편찬하였을 때 책임자는 이극돈으로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사초 속에 자신의 비행이 기록되어 있어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이극돈이 김종직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를 숙청할 목적으로 옥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儒林(7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7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는 묵묵히 최수성의 말을 듣고 있었다.20여년 전 함께 한훤당으로부터 들었던 옛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한훤당의 가르침은 일관된 것이었다.즉 공자가 문학에 재능 있는 자하(子夏)에게 말하였던 것처럼 ‘너는 군자로서의 유자가 되어야지,소인으로서의 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는 가르침은 즉,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켜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으로 이는 스승 한훤당의 핵심철학이었던 것이다. 최수성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도 스승의 말을 잊지 못하네.내가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힌 것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내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네.그러나 정암 자네는 국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벼슬길에 올랐네.나는 어느 쪽이 옳은가는 말할 수 없네.일찍이 채근담은 ‘권세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깨끗하다.’고 말하였지만,또 이렇게도 말하였네.‘권세에 가까이 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은 더욱 깨끗하다.’ 그뿐인가. 이렇게도 말하였네.‘권모와 술수를 모르는 사람을 높다 하나 알아도 이를 쓰지 않는 사람을 더 높다 할 것이다.’” 최수성은 말을 끊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겐 술을 따르지 않는 건가.이보게,노천.술 한잔 가득 따르시오.” 김식이 최수성의 술잔에 술을 한가득 따라주었다.넘치도록 따른 술을 최수성은 단숨에 들이켜고 말하였다. “그런데 정암,자네는 이미 권세에 물들었네.자네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권모술수에 도통하여 있네.그러므로 진실로 볼기를 때릴 사람은 마보꾼이 아니라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그대들일세.숙청되어야 할 사람들은 정국공신들이 아니라 그대들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권세욕일세.한 잔 더 주시게나.” 최수성은 다시 빈 술잔을 김식에게 내어주었다.김식이 마지못해 다시 따라주자 이를 단숨에 비우고 말을 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술을 마시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이보게,정암.자네가 마지막으로 술잔을 채워주게.” 최수성은 빈 술잔을 조광조에게 내밀었다.조광조가 술을 따라주자 최수성은 물끄러미 조광조의 얼굴을 바라보며 불쑥 수수께끼의 말을 던졌다. “나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탔어.이제 곧 얼마 안 있어 물에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술 석잔을 거푸 마시니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구나.” 순식간에 석잔을 비운 최수성은 그 길로 방을 나가버렸다.김식을 비롯한 세 사람이 어이없는 얼굴로 조광조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가라앉은 배에 탔다니요.” 기록에 의하면 이 질문에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가 가라앉는 배라고 말한 것은 바로 우리들을 비유해서 가리킨 말이 아니겠소이까.” 결과적이지만 최수성의 비유는 그대로 적중된다.정국공신을 개정하여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축연을 벌였던 네 사람은 그로부터 정확히 6일후에 붕당죄의 반역죄인으로 숙청되는데,그렇다면 이들을 가라앉는 배에 비유했던 최수성의 참위는 그대로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최수성의 충고는 정치가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될 진리인 것이다.권력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순간부터 권력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며,미라잡이가 미라가 되듯 수구세력들을 몰아낸 개혁세력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수구세력으로 전락함으로써 가라앉게 된다.최수성의 지적처럼 정치에 있어 최고의 선은 곧 자기 자신의 개혁이며,그 어떤 권력에도 물들지 않을 수 있는 도덕의 완성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가라앉는 배. 이 지상에서의 권력은 그 어떤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진수(進水)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물이 새어 가라앉는 난파선에 불과한 것이다.
  • 儒林(79)-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는 묵묵히 최수성의 말을 듣고 있었다.20여년 전 함께 한훤당으로부터 들었던 옛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한훤당의 가르침은 일관된 것이었다.즉 공자가 문학에 재능 있는 자하(子夏)에게 말하였던 것처럼 ‘너는 군자로서의 유자가 되어야지,소인으로서의 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는 가르침은 즉,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켜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으로 이는 스승 한훤당의 핵심철학이었던 것이다. 최수성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도 스승의 말을 잊지 못하네.내가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힌 것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내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네.그러나 정암 자네는 국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벼슬길에 올랐네.나는 어느 쪽이 옳은가는 말할 수 없네.일찍이 채근담은 ‘권세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깨끗하다.’고 말하였지만,또 이렇게도 말하였네.‘권세에 가까이 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은 더욱 깨끗하다.’ 그뿐인가. 이렇게도 말하였네.‘권모와 술수를 모르는 사람을 높다 하나 알아도 이를 쓰지 않는 사람을 더 높다 할 것이다.’” 최수성은 말을 끊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겐 술을 따르지 않는 건가.이보게,노천.술 한잔 가득 따르시오.” 김식이 최수성의 술잔에 술을 한가득 따라주었다.넘치도록 따른 술을 최수성은 단숨에 들이켜고 말하였다. “그런데 정암,자네는 이미 권세에 물들었네.자네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권모술수에 도통하여 있네.그러므로 진실로 볼기를 때릴 사람은 마보꾼이 아니라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그대들일세.숙청되어야 할 사람들은 정국공신들이 아니라 그대들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권세욕일세.한 잔 더 주시게나.” 최수성은 다시 빈 술잔을 김식에게 내어주었다.김식이 마지못해 다시 따라주자 이를 단숨에 비우고 말을 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술을 마시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이보게,정암.자네가 마지막으로 술잔을 채워주게.” 최수성은 빈 술잔을 조광조에게 내밀었다.조광조가 술을 따라주자 최수성은 물끄러미 조광조의 얼굴을 바라보며 불쑥 수수께끼의 말을 던졌다. “나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탔어.이제 곧 얼마 안 있어 물에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술 석잔을 거푸 마시니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구나.” 순식간에 석잔을 비운 최수성은 그 길로 방을 나가버렸다.김식을 비롯한 세 사람이 어이없는 얼굴로 조광조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가라앉은 배에 탔다니요.” 기록에 의하면 이 질문에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가 가라앉는 배라고 말한 것은 바로 우리들을 비유해서 가리킨 말이 아니겠소이까.” 결과적이지만 최수성의 비유는 그대로 적중된다.정국공신을 개정하여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축연을 벌였던 네 사람은 그로부터 정확히 6일후에 붕당죄의 반역죄인으로 숙청되는데,그렇다면 이들을 가라앉는 배에 비유했던 최수성의 참위는 그대로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최수성의 충고는 정치가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될 진리인 것이다.권력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순간부터 권력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며,미라잡이가 미라가 되듯 수구세력들을 몰아낸 개혁세력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수구세력으로 전락함으로써 가라앉게 된다.최수성의 지적처럼 정치에 있어 최고의 선은 곧 자기 자신의 개혁이며,그 어떤 권력에도 물들지 않을 수 있는 도덕의 완성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가라앉는 배. 이 지상에서의 권력은 그 어떤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진수(進水)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물이 새어 가라앉는 난파선에 불과한 것이다.˝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혜초 지음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신라인 혜초(慧超·704∼780)가 중국,인도,아랍,중앙아시아를 육로와 해로로 답사한 4년 동안의 기록이다. 아시아 최초의 서역답사기이자 세계문명교류사의 중추적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은 이 국보급 유물은 그러나 우리나라에 없다.1908년 중국 둔황 석굴을 뒤지던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1200여년간 그곳에 묻혀 있던 원문을 발견해 본국으로 가져갔다.이후 원본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왔다. 무하마드 깐수로 잘 알려진 동서문명교류 전문학자 정수일(전 단국대 교수)씨가 국내 최초의 ‘왕오천축국전’ 역주서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 펴냄)을 펴냈다.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습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유일한 기록인 데다 기존의 번역서들과는 구별되는 역주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책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직접 답사한 기록과 가보지 않고 전해들은 기록이 원본에 섞여 있지만,역주자는 치밀한 분석으로 혜초의 서역기행 노정을 사실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혜초가 서역의 어느 지점까지 여행했느냐는 의문은 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역주자는 원본분석을 통해 페르시아와 대식국(大食國·아랍)까지는 실제로 답사한 게 분명하다는 주장을 펼친다.그리고 혜초가 방문한 대식국의 도시는 카스피해 동쪽으로,호라산 총독부의 소재지인 니샤푸르(마슈하드)였다고 추정한다.혜초의 기행노정을 표시한 지도를 비롯해 혜초 복원도,둔황석굴 등 ‘왕오천축국전’과 관련된 도판들을 천연색으로 실었다.처음 발견 당시 두루마리에 필사된 227행짜리 원문도 포함됐다. ‘천축’이란 인도를 뜻하는 중국식 옛 이름.인도를 동서남북과 중간지역으로 나눠 이를 합쳐 부른 이름이 ‘오천축’이다.16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불가에 귀의한 혜초는 723년 스승의 권유에 따라 인도로의 구법여행에 나섰다.4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
  • 베르베르-현각스님 파리대담

    ‘벽안의 구도자’ 현각(40) 스님과 소설 ‘개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왼쪽·43)가 만났다. 선수끼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는 말이 꼭 맞았다.22일 저녁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가 31번지에 있는 베르베르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약 2시간여 동안 인생과 종교,그리고 과학과 물질문명에 대해 격의없이,그러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도반’이 됐다. |파리 함혜리특파원|베르베르는 “평소 느끼고는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현재’의 개념과 그 중요성을 스님이 일깨워 주었다.”고 말했고 현각 스님은 그에게 “당신도 아마 전생에 승려였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영어·프랑스어 통역이 자리를 함께 했지만 보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이들은 줄곧 영어로 대화했다. 이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베르베르의 아파트를 나와 근처의 한국식당으로 걸어 가는 동안에는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식당에 마주 앉아서는 음식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화제가 옮겨지기도 했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파리의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들었던 노을은 점차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뉴스 들을 때면 최후의 순간 맞는 느낌 베르베르 현실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매일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걱정스럽기만 합니다.마치 인류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양심이 없는 과학은 이렇듯 인류에게 위험을 가져오고 있습니다.물질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새로운 영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스님’(베르베르는 ‘스님’이라는 발음을 한국어로 하려고 노력했다.)께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각 나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희망은 없다.”는 것입니다.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모든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코로 냄새를 맡고 있는 지금에서 출발합니다.현재에 충실하면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미래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베르베르 내 작업은 주로 미래에 대해 얘기합니다.글을 쓰기 위해 뇌를 움직이는 동안은 지금 이 순간이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의식도,양심도 없는 물질문명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끝은 같은 것… ‘현재’에 충실해야 현각 예수님께 누군가 물었지요.“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예수님께서는 “그럼 당신은 시작은 어땠는지 이해하고 있나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시작과 끝은 같은 것입니다.과거,현재,미래는 결국 ‘현재’라는 시간의 다른 모습입니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르베르 현재는 그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현각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베르베르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세요. 현각 (다시 탁자를 손으로 탁 친 뒤)과거,현재,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르베르 그렇다면 수백년 전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며 감명을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현각 좋은 지적이에요.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현재를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바로 그것입니다.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완벽하게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감명을 받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스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듯합니다.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글 속에 빠져 듭니다.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지요.명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현각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당신은 컴퓨터로 일하는 승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는 그냥 보통 승려이고요. 베르베르 스님은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각 신부이거나,승려이거나 그런 영적인 일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요.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고 지금은 머리깎고 승려가 됐지만 내 자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르베르 가톨릭 신자였던 당신이 불교를 접하고,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현각 어려움도 물론 있었지요.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그런 질문을 누구도 하지 않았거든요.결국 그 ‘엄청난’ 질문은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내 종교생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베르베르 바보 같은 질문을 한가지 하고 싶습니다.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아닌지요? 현각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이렇게 있습니다.불교에서는 세상에 있되 집착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베르베르 무저항과 비폭력,명상으로 어떻게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을지요. 현각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창 밖의 새 소리를 듣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티베트의 많은 승려들은 중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결국 종교가 그들을 죽인 셈인데…. 현각 그들은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생에서 몸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질(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참 나(眞我)’에 있는 것입니다. ●관조하는 자세가 바로 불교 베르베르 스님께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현각 순간적으로 위험이 닥쳤을 때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신적인 두려움은 없습니다.어떠한 두려움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어 있거든요.아무것도 없어요.멀리서 보면 구름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그냥 물방울인 것과 같습니다.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달라이 라마도 두려움이나 욕망을 느낀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인식하지 않을 뿐이지요. 베르베르 감정을 다스리시나요? 현각 아니요.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고통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나도 명상을 처음 할 때 가부좌를 하느라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그런데 그 고통도 ‘아프다.’는 사고(思考)에 의해 생긴 것이거든요.(펜을 집어들면서)이 펜을 이렇게 보면 길게 보이지만 돌려서 보면 둥근 점이잖아요.마찬가지입니다.다르게 보면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그러나 고통은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Pain is not pain,but pain is pain).관조하는 자세,이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lotus@seoul.co.kr ■현각이 유럽으로 간 까닭은… 현각(玄覺) 스님은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 초청으로 한국 불교를 알리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이다. 지난 19일 프랑스의 명문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고등경영대학원)에서 ‘선(禪)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데 이어 21일에는 프랑스 공영방송인 2TV에서 ‘부처의 음성’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2TV측은 ‘한국 선 불교의 전통’과 ‘현각 스님의 인생 행로’를 주제로 15분짜리 방송프로그램 2회 분량을 제작해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로 프랑스 전역에 방영할 예정이다. 현각 스님은 베르베르와의 만남을 끝으로 프랑스 일정을 마치고 30일까지 영국에 머물면서 공영방송 BBC에 출연하고 옥스퍼드대학 등에서 강연한다. 현각 스님은 1964년 미국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하버드대학원 재학 중인 1990년 5월 숭산(崇山) 대선사의 설법에 크게 감명받고 2년 뒤 출가,선 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으로 건너왔다.그는 현재 화계사의 국제선원 원장을 맡아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 베르베르,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태어났다.7살에 첫 소설 ‘벼룩의 모험’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한 그는 만화와 시나리오,소설과 과학에 탐닉하면서 고교시절인 1978년에는 고등학생을 위한 만화신문 ‘유포리(Euphorie)’를 창간하기도 했다.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국립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는 83년부터 90년까지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과학담당 기자로도 활동했다. 12살 때부터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는 그는 200여차례의 개작을 거친 끝에 1991년 소설 ‘개미’를 발표,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과학적 근거와 관찰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경이롭고 환상적인 필치로 펼쳐나가는 그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개미’ 외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1993년),‘타나토노트’(1994년),‘여행의 책’(1997년),‘천사들의 제국’(2000년),‘뇌’(2001년),‘나무’(2002년) 등을 발표했으며 올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를 앞두고 있다. ˝
  • [이공연 놓치면 후회]13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0번

    베토벤이 생전에 미완성으로 남겼던 피아노 협주곡 ‘0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주된다.독일 출신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는 25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26일 오후 7시30분 부산 문예회관에서 서울바로크합주단(지휘 볼프강 젤리거)과의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E플랫장조 WoO4,일명 피아노 협주곡 ‘0번’을 초연한다. 베토벤이 열세살 되던 해에 오르간,작곡 등 음악의 기초를 배웠던 스승 네페의 권유에 따라 작곡한 작품.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잊혀졌다가 20세기초 스위스의 음악학자 빌리 헤스에 의해 빛을 보게 됐다.총 3악장에 연주시간은 약 27분으로,원본은 독일 본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실험적인 연주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빈하르트는 지난 2001년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이 곡을 처음 연주해 주목을 받았다.그는 지난 15일 고 김일성 주석 생일을 맞아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22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도 참가했다.(02)2068-8000. 이순녀기자 coral@˝
  • 儒林(7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최수성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정암이 탄 수레 앞은 막아서서는 안 된단 말인가.옛말에 이르기를 ‘큰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 하였는데,하면 정암이 가는 길은 그 누구도 문을 세울 수 없는 큰길이란 말인가.이유야 여러 가지였겠지만 상감의 부르심이 화급하다 하여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정암이 가는 길은 누구도 막아서는 아니 된다는 오만 때문이 아니겠는가.” 최수성의 말은 준엄하였다.정국공신을 개정하고 그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조광조와 김식,김정,김구 등 핵심세력들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던 연회장은 갑자기 싸늘해졌다. “내가 정암,자네에게 무소불위라 하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네.이제 정암 그대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능히 다 할 수 있게 되었네 그려.그뿐인가.” 최수성의 힐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아니하였다.“그대는 왕조가 건국한 이래 가장 뛰어난 영주이셨던 세종대왕 마마를 ‘재(才)’와 ‘기(氣)’는 영특하나 학문에는 부족하다 하는데 이 또한 사실인가?” 최수성은 조광조의 아픈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고 있었다.조광조는 국가의 종묘에 제사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 제사를 시작한 세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폐단된 일이 많으니 원묘에 제사 지낼 때 전(奠) 드리는 것과 능침에 초하루,보름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모두 정도가 아닙니다.이는 모두 세종조 때부터 비롯되었으니,이로 보면 세종께서 재와 기는 영특하고 과단스러우셨으나 학문에는 다하지 못한 데가 있었던 듯싶습니다.이는 선왕을 공경하는 도가 아니요,도리어 번거롭고 더럽힘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런 것은 아랫사람부터 의논하여 실행될 일이 아니니,모름지기 상감께서 주야로 생각하고 헤아리셔서 성상의 마음으로 결단하시면 신을 섬기는 도를 얻으실 것입니다.” 최수성의 날카로운 질문에 조광조는 묵묵부답할 뿐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이에 다시 최수성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권세가 하늘을 찔러 능히 대적할 사람이 없더니,이제는 선왕이신 세종대왕 마마의 가마도 자네가 가는 길 앞을 가로막지는 못하겠군.하면 정암 자네는 세종을 감히 비판할 만큼 재와 기뿐 아니라 학문에도 능하다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단 말인가.” 이에 김정이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듣자 하니 자네의 말이 심히 지나치고 무례하네.” 같은 문인으로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던 김정의 만류에도 최수성은 물러서지 아니하였다. “지나친 것은 내가 아니라 여기에 모인 자네들이네.” 최수성은 손을 들어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던 네 사람을 한 사람씩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네.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닌가.이보게,정암.정암 자네와 나는 20년 전 함께 평안도의 희천에서 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지.그때 나는 자네가 스승에게 물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네.자네가 한훤당에게 ‘왜 유학을 배워야 합니까?’ 하고 묻자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네.‘위기지학(爲己之學) 때문이다.’ 이에 내가 다시 물었었네.‘자기를 향상시키기 위한 학문,즉 위기지학 때문에 저희들이 유자가 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이에 스승께서는 논어의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다음의 말을 통해 답변을 해주셨네.‘너는 군자로서의 유자가 되어야 하고 소인으로서의 유자가 되어서는 안 되느니라.’”˝
  • 儒林(7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7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최수성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정암이 탄 수레 앞은 막아서서는 안 된단 말인가.옛말에 이르기를 ‘큰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 하였는데,하면 정암이 가는 길은 그 누구도 문을 세울 수 없는 큰길이란 말인가.이유야 여러 가지였겠지만 상감의 부르심이 화급하다 하여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정암이 가는 길은 누구도 막아서는 아니 된다는 오만 때문이 아니겠는가.” 최수성의 말은 준엄하였다.정국공신을 개정하고 그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조광조와 김식,김정,김구 등 핵심세력들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던 연회장은 갑자기 싸늘해졌다. “내가 정암,자네에게 무소불위라 하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네.이제 정암 그대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능히 다 할 수 있게 되었네 그려.그뿐인가.” 최수성의 힐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아니하였다.“그대는 왕조가 건국한 이래 가장 뛰어난 영주이셨던 세종대왕 마마를 ‘재(才)’와 ‘기(氣)’는 영특하나 학문에는 부족하다 하는데 이 또한 사실인가?” 최수성은 조광조의 아픈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고 있었다.조광조는 국가의 종묘에 제사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 제사를 시작한 세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폐단된 일이 많으니 원묘에 제사 지낼 때 전(奠) 드리는 것과 능침에 초하루,보름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모두 정도가 아닙니다.이는 모두 세종조 때부터 비롯되었으니,이로 보면 세종께서 재와 기는 영특하고 과단스러우셨으나 학문에는 다하지 못한 데가 있었던 듯싶습니다.이는 선왕을 공경하는 도가 아니요,도리어 번거롭고 더럽힘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런 것은 아랫사람부터 의논하여 실행될 일이 아니니,모름지기 상감께서 주야로 생각하고 헤아리셔서 성상의 마음으로 결단하시면 신을 섬기는 도를 얻으실 것입니다.” 최수성의 날카로운 질문에 조광조는 묵묵부답할 뿐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이에 다시 최수성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권세가 하늘을 찔러 능히 대적할 사람이 없더니,이제는 선왕이신 세종대왕 마마의 가마도 자네가 가는 길 앞을 가로막지는 못하겠군.하면 정암 자네는 세종을 감히 비판할 만큼 재와 기뿐 아니라 학문에도 능하다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단 말인가.” 이에 김정이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듣자 하니 자네의 말이 심히 지나치고 무례하네.” 같은 문인으로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던 김정의 만류에도 최수성은 물러서지 아니하였다. “지나친 것은 내가 아니라 여기에 모인 자네들이네.” 최수성은 손을 들어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던 네 사람을 한 사람씩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네.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닌가.이보게,정암.정암 자네와 나는 20년 전 함께 평안도의 희천에서 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지.그때 나는 자네가 스승에게 물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네.자네가 한훤당에게 ‘왜 유학을 배워야 합니까?’ 하고 묻자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네.‘위기지학(爲己之學) 때문이다.’ 이에 내가 다시 물었었네.‘자기를 향상시키기 위한 학문,즉 위기지학 때문에 저희들이 유자가 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이에 스승께서는 논어의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다음의 말을 통해 답변을 해주셨네.‘너는 군자로서의 유자가 되어야 하고 소인으로서의 유자가 되어서는 안 되느니라.’”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홀인원과 잔치

    홀인원이나 베스트 스코어는 동반자가 증거해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골퍼가 홀인원을 한다거나,첫 번째 싱글 스코어를 기록한다거나,또 60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그런 경사를 맞은 골퍼는 같이 라운드를 한 동반자와 주위의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푼다.잔치는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이기도 하지만,홀인원 등을 널리 자랑하려는 의도가 더 많이 포함돼 있다.일요일이면 예배는 빼먹고 혼자서 라운드를 하는 목사가 있었다.이를 괘씸하게 여긴 하느님께서 목사를 혼내주기로 결심하셨다.어느 일요일,목사는 파4홀에서 홀인원을 했다.자랑을 안 할 수 있겠는가.목사는 동네방네에 자신의 홀인원을 광고했다.그러나 증인이 없는 홀인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에 남편이 상가에 조문을 갔다가 왔다.향냄새가 풍풍 풍기는 옷을 벗으면서 내게 선물이라면서 책 두 권과 A4용지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주었다.책은 골프 칼럼집이었다.나는 책을 후르르 훑어보고 난 뒤에 반으로 접은 종이를 펼쳤다.골프라운드 기록표의 복사본이었다. “어디 보자….아들아,엄마 돋보기 어디 갔냐.냅둬라,여기 있네.흠….1자도 몇 개 있고….똥글뱅이 파가 9개에….속에 -1이라는 숫자가 채워진 하트가 옴마 6개나 되네….근데 하트,11·12·13·14홀,네 홀이 연거푸 버디네,이런 걸 사이클 버디라고 한다냐 뭐란다냐….동반자들 줄초상이 났겠구만….옴마….69타네….여보,이사람 밥 먹기 위해 공 치는 사람이야,공 치기 위해 밥 먹는 사람이야?” 기록을 먼저 보고,휘둥그레진 눈으로 골퍼의 이름을 보니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우리 여자동기의 남편이야.나하고는 안면이 있어.당신 글은 열심히 읽고 있대.” “라운드한 날짜가 1999년 여름이야.아마 100장쯤 복사를 해서 5년 동안 명함대신 나눠주는 모양인데….케케묵은 기록표를 뿌리는 이유가 뭐래? 누구 염장지르고 싶대?” “얼마나 좋고 자랑하고 싶으면 그러겠어.당신이 선전 좀 해줘봐.” “어림 택도 없는 소리 말아요.맨 입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전해요.” 천사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은 대가 없이 남의 자랑도 들어주고 축하도 해주고 광고도 해주는지는 모르지만,나는 경제적 수지타산이 안 맞는 짓은 안한다.고린전 한 잎이라도 얻어 쓴 뒤에,술 한 잔이라도 받아먹고 나서,자랑도 들어주고 남에게 알려주라고,골프스승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두사부일체’라고,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같은 등급이라는데,골프스승에게 교육받은 대로 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길상사서 대중법회 연 법정 스님

    “온천지에 꽃이 피고 새 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눈부신 신록 앞에서 인간도 꽃처럼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을까요.대지가 그렇듯 인간의 미덕중 가장 으뜸은 용서와 관용입니다.” 18일 오전 11시,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마당에 모처럼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있었다.잠시 하산한 법정(法頂·72) 스님의 법회가 열렸다.스님은 700여명의 불자 앞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용서’와 ‘관용’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한 신도한테 들은 얘기입니다.신도가 우연히 수행자들이 모인 곳에 갔더니 역겨운 냄새가 확 풍기더랍니다.그래서 신도는 수행자들에게 ‘여보시오,도 닦기 전에 몸부터 닦으시오.’라고 일침을 가했다는 것입니다.이 얘기를 듣고 많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이어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 ‘평생을 두고 행할 수 있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내려주십시오.’라고 하자 스승은 ‘그것은 바로 용서이니라.’라고 답한 일화를 소개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허물이 많습니다.그것을 낱낱이 꾸짖는다면 결코 고쳐지지 않습니다.지적받으면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선의의 충고와 꾸짖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상대방의 허물을 감싸면 한순간에 정화를 시켜줍니다.우리 사회는 용서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님은 또한 “이 봄날 꽃과 나무가 눈부시게 피어나는 것은 훈훈한 봄기운 덕택이며 가을날 꽃이 지고 만물이 시드는 것은 차디찬 서리바람 때문”이라면서 “남의 결점이 눈에 띌 때는 내 스스로는 허물이 없는지,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자기성찰론을 펼쳤다. 다음은 스님이 전하는 중국 초나라 당시의 일화 한토막. 초나라의 장왕이 어느날 밤 촛불을 켜고 질탕 놀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촛불이 꺼지자 암흑세계로 변했다.이때 한 신하가 평소 흠모하던 왕의 애첩에게 다가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다.깜짝 놀란 애첩은 신하의 갓끈을 얼른 잡아 떼어냈다.그런 다음 왕에게 “불이 켜지거든 갓끈 없는 신하를 부디 벌하십시오.”라고 고했다.왕은 이때 예상과 달리 “갓끈 있는 신하는 모두 벌을 내리겠다.”고 거꾸로 소리쳤다.순식간에 다른 신하들도 갓끈을 모두 떼어냈다.불이 다시 켜지자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었다.2년후 초나라가 진나라와의 싸움에 풍전등화의 위기가 닥쳤다.이때 왕의 애첩에 입을 맞추고 용서받은 신하가 분연히 일어나 목숨으로 나라를 구했다. “용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도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오늘날 대통령도 이런 그릇이어야 합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온세상이 반대해도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정의롭지 못한 업을 지었습니다.언젠가는 그 업의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법회 끝부분에 스님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지나간 것도 들춰내지 말라.과거를 자꾸 물으면 아물려는 상처만 덧나게 한다.”면서 “이웃의 잘못을 덮어두면 신이든 부처든 늘 곁에 있게 마련이다.”고 거듭 강조했다.아울러 스님은 “맺힌 꼬투리를 풀지 않으면 안팎으로 꼬인다.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다.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법회시간은 40여분.아쉬워하는 불자들에게 스님은 “남은 이야기는 나무한테 들으십시오.”하면서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문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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