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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8) 君子有終(군자유종)

    儒林(731)에는 ‘君子有終’(임금 군/아들 자/있을 유/마칠 종)이 나온다.周易(주역) 謙卦(겸괘)에는 “겸손함은 모든 일에 형통하니, 군자는 끝을 잘 맺을 수 있다.”고 하였다. 겸손의 미덕을 지니고 있으면 언제 어디에 처하든 모든 일이 잘 되어 끝을 맺을 수 있다.謙遜(겸손)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바로 ‘禮’(예)의 근본 정신이기도 하다.禮에 충실한 사람은 항시 긴장해 自慢(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禍(화)를 당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덕이 있어도 반드시 높은 지위를 바라지 않는 것이 영예롭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과 ‘口’(입 구)로 이루어져 있다. 손에 방망이를 들고(尹(윤)) 명령하는(口(구)) 모습으로,‘호령하다’‘다스리다’의 뜻을 나타낸다. 이 글자가 諸侯(제후)의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한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用例(용례)에는 ‘君臨(군림: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함),府君(부군:죽은 아버지나 남자 조상을 높여 이르는 말),夫君(부군:남의 남편을 높여 이르는 말)’ 등이 있다. ‘子’자의 원형은 젖먹이 아기의 모습을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냈다. 본래의 뜻인 ‘아기’에서 점차 ‘자식’‘알’‘열매’‘임자(남자의 미칭)’‘당신’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亂臣賊子(난신적자: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夫子(부자:스승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子午(자오:정북과 정남)’등에 쓰인다. ‘有’는 원래 ‘고깃덩이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을 나타냈는데 여기서 ‘가지다’‘있다’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用例에는 ‘固有(고유: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유한 것),未曾有(미증유: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有備無患(유비무환: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 등이 있다. ‘終’의 본디 글자는 ‘冬’으로, 실의 양끝을 묶은 형태를 본떠 ‘끝맺음’ 혹은 ‘끝’을 나타냈다.‘考終命(고종명: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이름),臨終(임종:죽음을 맞이함.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 곁에 지키고 있음),終熄(종식:한때 매우 성하던 현상이나 일이 끝나거나 없어짐)’ 등에 쓰인다. 君子란 有德者(유덕자: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와 有位者(유위자: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를 이른다. 원래는 指導者(지도자)를 의미하는 신분 개념에서 도덕 수양에 초점을 둔 인격 개념이 되었다. 君子는 인류의 삶을 걱정하는 知性人(지성인)으로서 타인의 長點(장점)을 잘 이루어 주고자 노력하며, 남과 다투거나 派黨(파당)을 짓지 않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면서도 주체성이 뚜렷하여 附和雷同(부화뇌동)하지 않으며,義理(의리)에 투철하고, 여러 가지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한 군데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도덕 수양을 통해서 이웃, 사회, 국가로 그 영향력을 파급시켜 나가는 군자의 삶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 즐거움이란, 첫째 양친이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둘째 이 세상 어디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74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1)

    儒林(74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1) 그러한 모습을 본 여삼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돌아가신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해 보았다. 물어보나 마나 틀림없는 퇴계였다. 퇴계의 죽음을 알리는 흰옷들이 온 동네의 지붕 위에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두향은 여삼에게 나으리께서 언제 돌아가셨는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여삼은 다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경오년 12월8일, 돌아가신 시각은 유시초였다. 12월8일이라면 닷새 전. 두향이가 낮잠 속에서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치마폭으로 받았던 바로 그날이 아닐 것인가. 그뿐인가. 돌아가신 시각이 유시라면 동이 속에 들어 있던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한 사실을 발견했던 바로 그 순간이 아닐 것인가. 두향과 여삼은 곧 도산서당에 도착하였다. 빈소가 마련된 서당 주위에는 울긋불긋한 만장(輓章)들이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제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나부낀 만장에는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가르친 사람은 선생이셨다.(生我父母 敎我先生)’,‘선생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천지간에 망극하다.(欲報之恩 天地罔極)’라는 내용의 제문(祭文)들이 쓰여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이 훗날 자신과 우정을 나눴던 포숙아(鮑叔牙)를 다음과 같이 기렸던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牙)” 육신으로서의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가르침을 통해 정신을 깨운 사람은 스승 이퇴계. 제자들은 이처럼 스승 퇴계를 영혼의 아버지로 숭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장에 쓰인 만시를 읽은 순간 두향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사랑하여 인간으로서의 깨달음을 얻게 한 사람은 바로 나으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고 나를 가르친 사람은 바로 나으리인 것이다. 여삼은 사당 안으로 들어가 조의를 표하였으나 두향은 차마 서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지체 낮은 자신의 신분으로 서당 안에 들어선다면 고인의 체통을 더럽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야사에 의하면 두향은 문상을 드리지 못하고 눈 덮인 산 속으로 들어가 준비했던 소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유해가 안치된 도산서당을 향하여 밤을 새워 가며 망곡하였다고 한다. 망곡(望哭). 먼 곳에서 부모가 죽거나 국장을 당하면 대궐 쪽을 향해 제배를 올리고 통곡을 하는 행위. 미천한 기생 신분의 두향이었으므로 두향은 살아서도 생이별로 만날 수 없었고, 죽어서도 이렇듯 자신의 신분으로 만날 수 없는 떠도는 유령이었던 것이다.
  • [하재봉의 영화읽기] 타짜

    [하재봉의 영화읽기] 타짜

    <범죄의 재구성>으로, 최근 한국영화에서 가장 성공적인 데뷔를 한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작품 <타짜>는, 허영만 김세영의 만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스포츠 조선》에 4년 동안 연재되었던 방대한 스케일의 4부작 원작 만화(1부 지리산 작두, 2부 신의 손, 3부 원 아이드 잭, 4부 밸제붑의 노래) 중에서 최동훈 감독은 주인공 고니의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1부를 영화로 옮겼다. 그러나 각색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타짜, 화투를 가지고 노는 노름판 세계에서 최고수를 일컫는 은어인 이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짜>는 단순히 화투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상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종의 장인 영화, 가령 로댕의 연인이며 그 자신 뛰어난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이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라이벌 의식에 초점을 맞춰서 내러티브를 풀어간 <아마데우스> 혹은 판소리 장인의 비장한 삶을 그린 임권택의 <서편제>처럼,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 <타짜>에는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장인들의 치열한 혼을 담으려는 야망이 숨겨 있다. 그러나 최동훈 감독의 야망은 부분적으로만 성공을 거두었다. <타짜>는 화투, 꽃으로 하는 싸움이라는 뜻의 전통적인 노름에 몰입해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보여주는 진짜 장인 영화는 되지 못한다.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 비해 여유 있는 편집(<범죄의 재구성>은 1시간 58분, <타짜>는 2시간 25분)으로 훨씬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장인들의 삶과 어떤 경지를 보여주겠다는 최동훈 감독의 야심은 실현되지 않는다. 4부작 원작만화 중에서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장중한 3부나 4부보다는,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1부 지리산 작두를 영화화 한 최동훈 감독은, 타고난 승부사인 고니와 그의 스승인 전설적 타짜 평경장, 그리고 고니의 길동무인 서민형 타짜 고광렬, 도박의 꽃이자 설계자인 정마담 등 4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특히 원작에 비해서 팜므파탈 분위기를 강조한 정마담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리고 원작만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1960년대와 7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으로 옮겨 놓았다. 시대상이 충실히 반영된 원작만화에 비해서 골프와 BMW 승용차 트렁크에 돈을 숨기고 다니는 내용으로 바뀌었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타짜>는 늘어난 런닝 타임만큼 웃음과 재미는 물론 김혜수의 풍만한 젖가슴 노출까지, 팬서비스 정신에 입각해서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며 대중성은 확보했지만, 노름판의 꾼들이 아니라, 한 분야를 파고 드는 장인들의 치열한 삶은 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 허영만 김세영 원작만화는 인간의 허황된 욕망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최동훈 감독은 타짜들의 장인의식에 더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가구공작 직원인 고니는 가구공장 한켠에서 박무석 일행이 벌이는 화투판에 우연히 끼어든다. 그는 삼 년 동안 일하면서 모아 두었던 돈을 섰다판에서 전부 날린다. 나중에는 이혼하고 돌아온 누나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위자료까지 모두 들고 화투판에 갔다가 모두 날린다. 그것이 전문도박사들의 짜고 친 한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집을 나와 박무석 일행을 찾아다니는 고니는, 우연히 전설적 고수인 평경장을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된다. 자신이 잃었던 돈의 다섯 배를 따면 화투를 그만두겠다고 그는 스승과 다짐을 한다. 스승으로부터 비법을 물려받고 수많은 훈련 끝에 타짜가 된 고니는 지방을 돌며 원정게임을 하다가 장마담과 만나게 된다. 고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스승인 평경장과 헤어져서 정마담과 한 팀이 되기로 한다. 그러나 고니와 헤어져 기차를 타고 가던 평경장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고니는 경찰의 도박 단속을 피하던 중 입담의 최고수인 고광렬을 만나게 되고, 정마담과는 헤어진다. 욕망에 사로 잡힌 고니와는 달리 고광렬은 직장인 마인드로 화투를 하는 타짜. 두 사람은 함께 전국을 돌며 도박판을 휩쓸고 다닌다. 고니는 빚에 시달리는 술집주인 화란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또 자신을 화투판으로 끌어들였던 박무석과 그의 보스인 곽철용을 찾아내 복수를 한다. 곽철용은 전설적 타짜이며 평경장의 라이벌이었던 아귀를 끌어 들여 고니와 대결케 한다. 아귀는 정마담을 이용하여 화란과 안정된 삶을 살아가려는 고니와 고광렬을 화투판으로 유혹한다. 잔혹한 죽음의 타짜 아귀와 고니는 이제 마지막 한판을 벌인다. 평범한 가구공장 직원인 고니(조승우 분)가 이 시대 최고의 타짜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인생 여정을 그리고 있는 <타짜>의 재미는, 새로운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군상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유해진이다. 그 자신 최고의 타짜 중 한 사람이며 고니의 친구 고광렬로 등장하는 유해진은, 미워할 수 없는 수다와 입담, 뛰어난 개인기로 살벌한 노름판의 긴장감을 풀어헤친다. 그것은 영화 속의 역할이면서 동시에 영화 밖의 관객과의 싸움에서도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고니 역의 조승우가 발휘하는 놀라운 카리스마와 탄력성 있는 매력, 깊은 내면 연기는, 그가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 빅3의 뒤를 잇는 한국 남자 배우의 정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 <얼굴 없는 미녀>로 연기자로 거듭난 김혜수의 깊은 내공과 농염한 연기는 그녀가 평범하게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준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팜므 파탈 역으로 등장한 염정아와는 또 다르게, 김혜수만의 매력과 넉넉함,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포용력으로 상황을 끌고 가는 장마담 역을 수행하고 있다. 노름판의 설계자이면서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를 큰 그림으로 끌고 가는 김혜수 역은 보여지는 것 이상이다. 그리고 50이 넘어 배우로 재발견 된, 고니의 스승 평경장 역의 백윤식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로 우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가장 빛나는 사람은 유해진이다. 그는 조승우의 옆에서 그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도록 양념 구실을 하고 있으며, 극의 긴장과 이완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유해진이 없는 <타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주연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배우는, 영화의 후반부에 커다란 비중으로 등장하는 아귀 역의 김윤석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는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권투선수 출신이지만 지금은 중장비 기사이며 알콜중독자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해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는, 무서운 내공으로 조승우의 반대편에서 영화의 힘을 균형 감각 있게 받쳐주고 있다. 4부작 중 1부만을 어렵게 각색해서 영화화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타짜>는 시리즈물을 계산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흥행 여부에 따라서 속편이 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라스베가스로 건너간 고니가 공중전화를 하는 마지막 씬은 속편이 만들어질 경우, 화투가 아니라 카드를 갖고 노는 포커가 등장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결국 문제는 욕망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갖는 허무함을 표현하기 위해 최동훈 감독은 노름판에 경찰이 들이닥치자 황급히 삽으로 현금다발을 자루에 퍼 담는 모습이라든가, 노름에 중독된 여자들이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 아까워 수치심도 잊고 휴지통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오줌을 누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얼마나 인간성을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소매치기도 하나의 예술

    『소매치기를 당하지않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소매치기가 되는것 밖에 없다』 세계적인 요술사요, 옛날엔 자신이 소매치기였던 미국의「카사기」가 내린 처방이다. 그는 이어서『속 호주머니는 비워두고 값진 것은 모두 바깥 호주머니에 지녀라』고 당부하고 있는데 이유는 팔과 다리를 계속 움직이므로 손을 대기가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고. 그의 소매치기 솜씨는 어려서「튜니지어」의「튜니스」거리에서 소매치기 대가「엘·바브」의 지도를 받으며 익힌 것. 그의 스승은「피아니스트」이상의 예민한 손가락의 감각이 발달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으며 학과가 끝나면 조금만 건드려도 소리가 나는 작은 종을 수백개나 단 인형을 놓고 실습까지 시켰다고. 「프랑스」기자「힐레」와의「인터뷰」에서 자기 손의 적응을 위해 뜨거운 물과 찬 물에 번갈아 넣는 연습도 시켰다고 발하면서 소매치기도 고도화되면 하나의 예술이라고 기염을 토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3월 29일호 제3권 13호 통권 제 78호]
  • 우승뒤엔 스승이자 친구인 ‘억척엄마’가…

    김연아의 곁엔 그림자처럼 어머니가 있었다. 때론 엄한 스승으로, 때론 정다운 친구로 10년을 한결같이 빙판 위의 딸을 지켜본 박미희(48)씨. 반신반의했던 시니어 두번째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딸을 바라보던 박씨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들었다. 뿌듯함과 함께 그동안의 힘든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김연아가 단시간 내에 시니어 무대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힘이 컸다. 주니어 때까진 조력자 역할을 했지만 시니어 무대부터는 기술부문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코치 역할을 했다. 박분선 코치는 안무 등 기술 외적인 부문을 맡으면서 어머니와 박 코치가 역할 분담을 한 것이 주효했다. 박씨가 비록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이론은 통달했다. 세계적인 유명 선수의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해 분석과 함께 딸에게 장점을 세밀히 주입시켰다. 금도금업을 하는 아버지 김현석(50)씨는 “선수들 나름대로 조금씩 심판을 속이는 동작을 하지만 애 엄마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결국 요령을 피우지 않는 연습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피겨 맘’으로 불리는 박씨의 첫 행보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녀시절 피겨를 좋아했지만 선수로서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어쩌면 딸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7살이던 딸의 손을 잡고 동네 스케이트장을 찾았고 결국 이것이 모녀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김연아가 재능을 보이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평범한 학부모였던 박씨는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딸과 함께 빙판에서 생활하는 ‘억척 엄마’가 돼 있었고 슈퍼스타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책꽂이]

    ●뎅기(박정규 지음, 멘토프레스 펴냄) 고등학교 과학교사인 저자가 쓴 신과 진화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천상과 지상의 법칙이 같은 것처럼 과학과 종교는 같다.”고 주장한다. 멕시코의 ‘깃털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 신화, 비라코차라 불리는 신비한 존재들에 의해 세워진 잉카문명, 키체 족의 마야문명 등을 소개하며 불가사의한 문명의 배후에 외계인이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뎅기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뜻의 옛 우리말.8500원.●임종국 평전(정운현 지음, 시대의 창 펴냄) 탁월한 인문학자이자 친일문제 연구가인 임종국의 삶을 다룬 평전. 스승인 조지훈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서울신문의 ‘흘러간 성좌’ 연재는 임종국이 친일 문제를 연구하게 된 단초가 됐다. 거머리가 무서워 모심기도 못한 소심한 성격, 독서회 사건으로 경성사범학교를 중퇴한 일 등의 일화가 실렸다.1만 6500원.●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36가지 습관(탕웨이훙 등 지음, 전인경 옮김, 럭스미디어 펴냄) 중국 전국시대의 시인 굴원은 창공을 바라보며 ‘천문(天問, 하늘에 묻다)’이라는 시를 썼다. 그는 천지 변화와 날씨의 변화를 물었다. 이런 물음이 철학가들의 깊은 사고를 불러왔고,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천대(天對, 하늘에 대답하다)’라는 글로 화답했다. 의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큰 업적을 이룬다.“교만한 사람은 교만더미에서 자기를 망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들려주며 겸손의 덕목도 강조한다.1만 3000원.●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책세상 펴냄)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동화작가인 저자의 대표작.1866년 출간 당시 2000부의 초판이 다 팔릴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어린 오스카 와일드와 빅토리아 여왕도 이 책의 열렬한 독자였다. 앨리스가 꿈속에서 겪는 기이한 모험을 다룬 이 작품은 난센스, 은유, 언어유희 등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보여준다.5900원.●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정준호 지음, 삼우반 펴냄) 베토벤은 실러의 시 ‘환희에게’를 평생 간직하고 있다가 최후의 교향곡인 ‘합창 교향곡’을 완성했고, 토마스 만은 베토벤의 32번 소나타에서 받은 감동을 소설 ‘파우스트 박사’로 표현했다.T S 엘리어트는 바그너의 서사극 ‘니벨룽의 반지’를 재해석해 명시 ‘황무지’를 썼으며, 스트라빈스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음악으로 번역하고자 했다. 이렇듯 음악가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작가들 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음악을 동경했다. 예술 장르간의 ‘교류’를 다룬 에세이.1만 2000원.●아이의 심리학(조혜수 지음, 아울북 펴냄) 선택적 함묵증이란 게 있다. 아이가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증상으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에는 인지 치료가 효과적이다.‘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의 마음을 읽는 법,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의 틀을 만들어주는 상황별 대처법이 실렸다.1만원.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7) 靑藜杖(청려장)

    儒林(727)에는 ‘靑藜杖’(푸를 청/명아주 려/지팡이 장)이 나오는데 ‘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를 말한다. ‘靑’자는 ‘풀’처럼 푸른색의 鑛石(광석)을 의미한다.用例(용례)로는 ‘丹靑(단청:옛날식 집의 벽, 기둥, 천장 등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靑雲萬里(청운만리:입신출세하려는 큰 꿈),靑出於藍(청출어람: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 등이 있다. ‘藜’는 意符(의부)인 ‘艸’(풀 초)와 聲符(성부)인 ‘黎’(검을 려)를 합친 글자.‘黎’는 다시 ‘黍’(기장 서)와 ‘利’(날카로울 리)를 결합했다.‘黍’는 ‘禾’(벼 화)와 ‘水’(물 수)로 이루어졌는데, 벼보다 낱알이 더 흩어져 달려있는 ‘기장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藜羹(여갱:명아주 국, 거친 음식),藜杖韋帶(여장위대:아주 검소한 생활을 비유적으로 이름),配藜(배려:낱낱이 흩어져 떨어지는 모양)’등에 쓰인다. ‘杖’의 原形(원형)은 ‘丈’이다.‘丈’은 ‘손에 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丈’이 점차 十尺(십척)을 가리키는 單位(단위)로 쓰이자 본뜻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글자가 ‘杖’이다.用例로 ‘短杖(단장:짧은 지팡이),盲者失杖(맹자실장:의지할 곳이 없어짐을 비유),錫杖(석장:스님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杖毒(장독:매를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이 있다. 지팡이는 老人(노인)이나 身體的(신체적) 障碍(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짚는 도구. 때로는 權威(권위)의 象徵(상징)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나 오리엔트의 遺物(유물)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오랜 歷史(역사)를 지니고 있다.‘손위의 사람을 방문할 때에 지팡이를 携帶(휴대)해서는 안 된다.’는 에티켓까지 나왔을 만큼 17세기의 유럽에서는 紳士(신사)의 必需(필수) 액세서리로 脚光(각광)받았다. ‘靑藜杖’이라는 명칭은 漢(한)나라 때부터 유래했다. 유향(劉向)이라는 학자가 심야에 글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지팡이를 내려치자 불빛이 환해졌다는 故事(고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統一新羅(통일신라) 시대에 왕이 長壽(장수) 老人(노인)에게 직접 청려장을 下賜(하사)했다는 記錄(기록)이 전한다. 明(명)나라 때의 藥學書(약학서)인 本草綱目(본초강목)에 따르면 ‘청려장은 中風(중풍)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民間(민간)에서는 神經痛(신경통)에 效驗(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청려장은 材質(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우며 모양 또한 기품이 있다. 섬세한 가공과정을 거치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回甲(회갑) 膳物(선물) 用品(용품)이기도 하다. 禮記(예기) 王制(왕제)편에는,‘나이가 50세에 이른 노인은 집에서 (지팡이를)짚으며,60세가 되면 고을 안에서,70세가 되면 나라의 수도 안에서,80이 되면 朝廷(조정)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를 제도화하여 노인에게 지팡이를 드리며 無病長壽(무병장수)를 祈願(기원)하였다. 아버지가 50세에 이르면 家杖(가장)이라는 청려장을 드리고,60세 노인에게는 마을에서 鄕杖(향장)을,70세 노인에게는 국가에서 國杖(국장)을,80세가 되면 임금이 朝杖(조장)을 下賜(하사)한 것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월미도 관광특구 “이름뿐”

    인천의 대표적 관광지인 월미도가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 2001년 6월 문화관광부에 의해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정작 월미도를 찾는 사람들은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볼거리가 없다.”고 혹평한다. 16일 월미도 일대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1980∼1990년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바다가 오염돼 해변의 정취를 느끼기 어려운 데다 놀이시설과 횟집만 난무해 1회성 관광객 외에는 찾는 이들이 드물다. 영종도와 무의도 등 인근 지역에 다양한 수변 관광지가 개발된 것도 월미도를 찾아야 할 이유를 없게 만든다. 이를 반영하듯 월미도 관광객을 겨냥해 만든 인천 시티투어버스는 하루 3회 운행에 이용승객이 30∼40명에 불과하다. 이 버스는 인천역을 출발해 월미도, 인천항, 송도신도시 등을 경유해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정작 버스승객 가운데 월미도에서 내려 둘러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버스기사들은 “대부분의 승객들이 인천항이나 송도에서 내려 관광을 한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곳 상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월미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서모(57)씨는 “아직도 주말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지만 정작 이곳에 있는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면서 “특색있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해야 월미도가 제2의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참으로 편안한 죽음이었다. 평생 동안 갖은 질병과 병고에 시달리던 퇴계에게 있어서 마지막의 임종 순간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주역에 나와 있는 ‘겸사’의 점괘 그대로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였다. 퇴계의 죽음과 더불어 어느덧 한 치 정도 쌓이던 눈이 그치고 곧바로 구름이 걷혔다. 이에 대한 기록이 임종을 지킨 이덕홍의 ‘간재문집’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8일. 아침에 분매에게 물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유시 초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편안하게 서거하셨다. 이날 날씨가 맑았는데, 유시 초에 갑자기 흰 구름이 집주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가량 내렸다. 퇴계 선생이 서거하자 곧바로 구름이 걷히고 눈이 그쳤다. (酉時 靑天忽白雲集 宅上雪下寸許 須臾先生命整臥席 扶起而坐逝 卽雲散雪霽)” 퇴계의 서거 소식은 뒤늦게 선조에게 전해진다. 퇴계가 죽은 지 3일후 선조는 뒤늦게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내의(內醫)에게 약을 가지고 역마를 타고 급히 가서 구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전의가 채 도착하기 전에 퇴계가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전해 듣자 12월18일 선조는 퇴계에게 영의정을 추증(追贈)하고는 그에 맞추어 치제(致祭) 장례 등의 제반사를 조치토록 하였다. 이때 선조가 내린 시호는 다음과 같다.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물론 퇴계는 죽기 사흘 전 조카 영에게 절대로 ‘국장을 쓰지 마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정하면 반듯이 유명이라고 말하여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라는 유계를 내렸으나 선조가 친히 내린 어명이었으므로 이를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조는 2일간 조회를 폐하게 한 뒤에 의정에 합당한 일 등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이에 필요한 각종 제물을 부의(賻儀)로 보내도록 친히 지시하였다. 선조는 직접 퇴계의 빈소를 찾아가 거애(擧哀)하고 싶어 하였으나 거리가 멀었으므로 대신 승지를 보내어 조제(弔祭)토록 하였다. 이때 율곡은 스승 퇴계의 슬픔을 애도하여 ‘퇴계 선생을 곡하다(哭退溪先生)’란 만시를 짓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은 옥 정한 금처럼 순수한 정기타고 나시어 참된 근원은 관민(關:장재와 주희를 가리킴)에서 갈려나왔다. 백성들은 위아래로 혜택입기를 바랐건만 자신의 행적은 산림에서 홀로 몸을 닦으셨네. 호랑이 떠나고 용도 사라져 사람의 일 변했건만 물결 돌리고 길 여신 저서가 새롭구나. 남쪽 하늘 아득히 저승과 이승이 갈리니 서해 물가에서 눈물 마르고 창자 끊어집니다. (良玉精金稟氣純 眞源分派自關 民希上下同流澤 迹作山林獨善身 虎逝龍亡人事變 瀾回路闢簡編新 南天渺渺幽明隔 淚盡腸西海濱)”
  •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오직 이덕홍의 ‘간재문집’에만 기록되어 있는 퇴계의 마지막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그날은 하루종일 청명한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퇴계가 물었던 ‘내 머리맡에서 바람이 불고 비 소리가 들린다. 너도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라는 말은 생사가 갈라지는 순간에 남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대적 예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지 10여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의 전 국토는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혈풍혈우(血風血雨). 피의 바람과 피의 비가 쏟아지는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퇴계의 이 말은 퇴계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조국에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였던 선지자의 묵시(默示)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덕홍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스승의 임종이 임박하였음을 직감하였다. 이덕홍의 예감은 정확하였다. 유시(酉時)가 가까워오자 퇴계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게도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정돈하도록 하였다. 유시는 12시 중에 10번째 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오 5시에서 7시의 시간. 이때 청명하던 날씨가 돌변하여 흰 구름이 집주위에 몰려들더니 갑자기 흰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상서로운 백설이었다. 어지러이 쏟아지는 눈발은 속세를 정화시키듯 순백의 세례로 온 산야를 흰빛으로 표백시켰다. 그때 퇴계는 좌우에 부탁하여 자신을 부축하여 일으키도록 몸짓하였다. 이덕홍과 조카 영이 계속 누워계시도록 만류하였으나 퇴계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부축하여 일어나 앉히자 퇴계는 방문을 열어주도록 손짓하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조카 영은 멈칫거렸으나 스승의 임종을 직감한 이덕홍이 방문을 열도록 눈짓하였다. 방문을 열자 펄펄 내리는 눈발이 뒤덮인 도산서당의 뜰이 한눈에 드러났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은 퇴계는 물끄러미 그 뜰을 내려다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가 유시 초. 그러므로 퇴계가 숨을 거둔 것은 오후 5시에서 5시30분 사이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앉아있던 퇴계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덕홍이 다시 부축하려고 손을 내민 순간 이덕홍은 스승이 숨을 거둔 것을 깨달았다. 스승의 몸에서 아직 온기는 남아 있었으나 숨은 어느새 끊겨져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덕홍은 떨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들은 눈이 내리는 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이덕홍의 입에서 부음을 알리는 기별이 전해지자 제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눈을 맞으며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 儒林(73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儒林(73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죽어가는 소크라테스는 이승에서의 삶은 고통스러운 병이었으나 죽음으로써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영원의 자유와 해방을 얻었으니, 자신이 직접 가서 아스클레오피스의 신전에 감사의 제물을 바치지 못하는 대신 친구인 크리톤에게 닭 한 마리의 제물을 바쳐달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는 죽기 직전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이퇴계의 유언과 상통하고 있다. 이퇴계는 사람이 낳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일생이 매화에게 물을 주는 일상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듯 죽음을 편안하고 조용하게 맞아들일 준비를 끝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임종의 순간에까지 물을 주라며 명관(命灌)하였던 퇴계의 유언은 다만 생명이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사랑하는 퇴계의 철학적인 사유 때문이었을 뿐일까. 아마도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퇴계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 매분. 퇴계가 말년에 극진히 사랑하여 ‘매형(梅兄)’이라고까지 의인화하여 부르면서 직접 열정에서 길어 올린 정화수를 주었던 매분. 잠시 한성에 두고 이별하였을 때 ‘잊혀지지 않는구나. 지난해 봄 서울에서 분매 두고 돌아오는 소매 신선바람에 스쳤더니’하고 노래하며, 오매불망 그리워하였던 그 매분. 심지어 죽기 닷새 전 침석에서 설사를 하자 매형에게 불결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니,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였던 그 매분. 그 매분이야말로 2년 전 두향이가 보내주었던 바로 그 매분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퇴계는 비록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기원을 올리고 있을 두향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하기 위해서 그러한 유언을 남긴 것이 아니었을까. 그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퇴계의 고종기(考終記)를 남기고 있는 책들은 이 장면을 한결같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2월8일. 아침에 분매에게 물을 주라고 지시하셨다.(初八日 命灌盆梅)” 그러나 퇴계의 임종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오직 이덕홍만은 퇴계에게 마지막 유언이 따로 더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이덕홍은 조카 영을 비롯한 친족들과 마지막까지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이덕홍의 증언은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홍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간재문집’에는 다른 책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와 있다. “오시(午時:상오11시부터 하오1시까지의 시간) 스승께서는 조카 영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 머리 맡에서 바람이 불고 비 소리가 들린다. 너도 역시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吾頭上有風雨聲 汝亦聞否)’ 이에 조카 영은 대답하였다. ‘들리지 않습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달라이 라마 20년째 보좌수행 청전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달라이 라마 20년째 보좌수행 청전 스님

    아름다운 요정, 영원한 소녀로 남는다.‘오드리 헵번’이 1993년 6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은 여전히 회자된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그러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인생을 살면서 딱 한가지 실수했다. 그것은 바로 성자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라고. 그러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인생보다 고통받는 어린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더 행복했었다고 남겨 새삼 ‘사랑을 남기고 간 천사’로 다가온다.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는 ‘달라이 라마’.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직후 시상식에서 “허공계가 다하고 단 한명의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저는 이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는 자로 남겠습니다.”고 말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날 지구촌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14개의 질문 끝에 제자 되기를 결심하다 20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인도의 조그마한 산사에서 서른 다섯살의 한국인 수행스님이 달라이 라마와 어렵게 마주 앉았다. 스님은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성적 갈등이 있었나요.” “있었지.” “어떻게 했나요?” “부처님의 기도로 극복했지.” “당신은 누군가요?” “첫번째는 ‘공성(emptiness)’이요, 두번째는 달라이 라마지. 너는 한국에서 온 비구 수행자이구나.” 스님은 순간 온몸에 파고 드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달라이 라마의 몸 주변에서 풍겨 나오는 진실의 깊이, 또 인간적이면서 무한한 평등의 힘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한국에서 여러 큰스님을 만났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스님은 또 이날 평소 품었던 14가지의 질문을 던지며 비로소 큰 확신과 믿음을 얻었다. 청전(淸典) 스님. 올해 속세 나이 54세로 삭발한 지는 30년째를 맞는다. 스님은 송광사에서 출가 후 한동안 많은 의문점을 풀지 못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즉 세상의 모순과 확신할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진실된 대답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그러던 1987년 8월 달라이 라마를 처음 만난 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 거주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곁에서 ‘보리심’을 기반으로 공성 터득을 위해 20년째 수행 중인 것. 한국인, 아니 외국인 스님으로 달라이 라마 측근 제자로 20년동안 지내는 일이 드물다는 점에서 경외스럽게 느껴진다. 스승(텐진 갸초)에게 받은 법명은 텐진 최(불법을 지킨다)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티베트 불교의 최고 논서로 알려진 ‘람림’을 5년에 걸쳐 완역했다. 또 인도 산티데바의 저술로 전해지는 대승불교의 걸작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을 비롯,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을 펴내는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스님은 지난달 말 잠시 귀국, 현재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에 머물고 있다. 지난 5일 부산 관음사 법회를 가진 데 이어 12일 길상사,26일 영등포 지역 포교 법회 등 바쁜 국내 일정을 보내고 있다. 달라이 라마 곁에는 다음달 돌아갈 예정이다. 길상사에서 잠시 스님을 만났다. ●“홀로 수행하고 싶어도 스승이 말려요”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자 스님은 “어린 시절에 서울신문에서 주최한 그림·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며 동안의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귀국한 이유를 물었더니 “인도체류 19년 비자가 만료됐고, 또 보고 싶어 하는 여러 사람들도 있고 해서 현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며 다시 한번 미소 짓는다. 한국에 오기 전 달라이 라마를 만났느냐고 하자 “잘 갔다 오라고 선물까지 주셨다.”면서 “(스승에게)가끔 혼자 수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스승은)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겨울을 중심으로 6개월 동안은 옆에 있어 달라고 한다.”고 말해 스승과 제자 사이가 각별한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생각에는 3년 정도 스승 곁에 머물려고 했으나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면서 첫날의 깊은 인상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한달 동안 깨끗이 삭발하고 목욕재계까지 하는 등 잔뜩 긴장하고 알현실에 들어갔는데 달라이 라마는 맨발에 인도제 싸구려 샌들을 신고 있어 너무 놀랐다. 소탈하고 솔직한 심성에 감동을 받으며 한시간 30분동안 얘기를 나눴다. 이때 달라이 라마는 얘기 도중 책을 한권 꺼내고, 또 꺼내기를 다섯번이나 했다. 그러면서 달라이 라마는 “궁극적 진리는 반야이자 공성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님은 “훗날 개인적인 수행기를 쓴다면 이때 받은 영감과 내적인 체험을 꼭 밝히고 싶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는 전세계 68개국을 다녔지만 한국만큼은 아직 한번도 와보질 못했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열세번이나 방문했습니다. 스승께서는 평소 한국에 대해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했을 때 한국행에 대해 걱정반 기대반했었지요.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가진 한국과 티베트는 같은 정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의 한국방문을 간절히 바랍니다” 달라이 라마는 올해 72세의 할아버지 스님이지만 기억력이 불가사의할 정도라는 것.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몇년 후 다시 만나면 당시 몇 마디 오고간 대화를 정확히 기억해내 주위를 놀라게 한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는 북인도 히말라야의 설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달라이 라마궁을 비롯해 티베트절, 연구소 등에 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개통된 칭짱철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스님은 지난해 9월1일 시범운행때 후진타오가 직접 열차를 타고 라싸까지 다녀갔다면서 이는 중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부연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중국내의 타부족에 대한 싹쓸이 정책이 끝났음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티베트에 가면 티베트가 없고 또 라싸에는 라싸가 없습니다. 놀랍게도 개통한 지 4개월만에 180도 바뀌었습니다. 말 그대로 티베트 지역은 철도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중국 한족이 매일 3000여명씩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이같은 광경을 목격하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스님에게 “당신도 이산 가족이 북한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우회적으로 그 심경을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깊어가는 날에 법문 하나를 부탁했다. “인도의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빛이 쏟아질 만큼 맑고 깨끗하지만 한국에 오면 사회가 거칠고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멀리 봐야 합니다. 선의 의지로 포기하지 말고 자기가 알고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끝까지 착하게 사는 것만이 세상을 밝게 해줍니다.” 또 세상이 어려울수록 ‘명심보감’을 천천히 읽으면 분명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온 20년을 시 한수로 대신한다. 왼 종일 히말라야설산에 올라 앉아/사해(四海)에 낚시드리운 지 몇해이던가/내가 잡는 물고기는 모두 주둥이가 없어/내려올 땐 빈 망태기 달빛만 가득.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출생 ▲72년 전주대 재학중 10월 유신 직후 자퇴 ▲73년 대건신학대(현 광주가톨릭대)편입학 ▲77년 송광사로 출가 ▲87년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 수행을 경험하기 위해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수행처 방문 ▲88년 8월 달라이 라마와 만난 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를 보좌하면서 수행 중 ▲저서=입보리행론(2004년, 하얀연꽃)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05년, 지영사),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한 20년(06년, 지영사) 등. km@seoul.co.kr
  • 儒林(732)-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儒林(732)-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마침내 주역을 통해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천기를 점지 받았으므로 제자들은 누구나 스승 퇴계가 곧 종언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실제로 이튿날인 12월8일. 퇴계의 병은 한층 더 위독해졌다. 이날 아침 퇴계는 이덕홍과 조카 영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이 퇴계의 침상 곁에 앉자 퇴계는 간신히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키려 하였다. 그러나 온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조카 영이 퇴계의 얼굴에 바짝 귀를 들이대자 퇴계는 띄엄띄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매형에게…물을…주어라.” 퇴계의 임종을 기록하고 있는 수십 권의 책들은 퇴계의 이 말이 그가 생전에 남긴 최후의 유언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말은 공식적인 퇴계의 마지막 유언인 것이다. 죽기 직전 자신의 머리맡을 지키던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생전에 그토록 상사하던 매분이었으므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은 이 세상에 모든 삼라만상이 너와 나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상생(相生)의 철학을 의미하고 있는 심오한 최후설인 것이다. 이러한 참군자 최후설은 세기의 철인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소크라테스와 퇴계는 궤변론이 팽배하던 어지러운 난세에 올바른 진리로 청년들을 일깨우던 세기적인 사상가. ‘아테네 청년을 부패시키고 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된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편안한 여행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 다음 태연히 독약을 마신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이 모두 얼굴을 감싸고 통곡하기 시작하자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웬 통곡 소리들인가. 이런 창피한 꼴을 보게 될까봐 아낙네들을 먼저 보냈거늘,‘사람은 마땅히 평화롭게 죽어야 한다.’고 나는 들었네. 그러니 부디 조용히 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 감각이 사라지고 온몸이 뻣뻣해지며 죽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온몸을 덮었던 천을 벗기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역사상 유래가 없는 그 유명한 유언을 남긴다. “이보게 크리톤.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자네가 잊지 말고 기억했다가 내 대신 갚아주시게나.” 진리의 철인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스클레오피스는 그리스인들의 의신(醫神). 뱀이 기어오르는 지팡이를 짚고 다녀서 오늘날에도 병원이나 약국에서 뱀의 지팡이로 상징되고 있는 문장은 바로 아스클레오피스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주말탐방] 국회 속기사들의 세계

    [주말탐방] 국회 속기사들의 세계

    17대국회 속기사는 70명… 편집·심의관 포함땐 115명. 여성 90%가 허리·목 디스크 등 ‘견경완 증후군´ 앓아. 두명이 기록한 회의록 비교, 다를 땐 녹화물 보고 교정. 1분에 320자 치는 건 기본… 1966년 국회오물투척사건땐 오물 뒤집어쓰기도. 지금은 재떨이도 사라지고 명패는 붙박이로 바뀌어… ‘어떤 역사의 기록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회의 기록을 책임진 국회 속기사들의 ‘좌우명’이다. 지난 10월12일 국회 본회의는 난장판이 됐다.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긴급 현안을 다루기 위해 본회의가 소집됐으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판 대결에 돌입한 것이다.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개의를 선언한 임채정 의장은 “어느 한 당의 의원총회 때문에 1시간씩이나 회의가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야당의 ‘무례’를 지적하자 야당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누가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야.”,“언제는 시간을 지켰나.”,“의장은 체통을 지켜야지.”라는 등 야당 의원들의 고함소리가 빗발쳤다. 이를 무시한 임 의장이 “북한 핵실험에 관한 긴급 현안 질문을 상정합니다.”라는 발언과 동시에 의석 곳곳에서 “의장 사과하세요.”,“퇴장해 퇴장해.”라는 고함소리에 장내 소란은 계속됐다. 오후 3시3분에 시작된 신경전은 4분 후인 3시7분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이 질의를 시작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그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이렇게 속기록으로 남는다. 당시 본회의가 영원히 ‘역사’로 보존되는 순간이다. 현재 17대 국회에서 실전에 투입되는 속기사들은 모두 70명이고 편집과 기록 심의관 등 관리자까지 합치면 115명이다.9급에서 3급까지 포진돼 있다. ●허리·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속기사들 본회의 등 중요 회의의 경우 2인1조,25분 간격으로 계속 팀이 교체되면서 속기를 이어간다. 일반 상임위 회의의 경우 보통 한조가 10번 이상 들락거리며 속기록 작업에 참여한다. 이런 작업환경 때문에 속기사들은 주로 디스크 병으로 고생을 한다.23년째 국회 속기사로 근무한 장미경씨는 “여성이 90%인 속기사들은 긴장한 상태에서 기록을 하다 보니 허리와 목 디스크에 많이 걸리고 손목 관절 등에도 무리가 많다.”고 말했다. 의학 전문용어로 ‘견경완 증후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속기록 이후 최종 회의록 작성까지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한다. 손재옥(속기 1과) 서기관은 “완벽한 회의록을 만들기 위해서 두명이 동시에 기록한 회의록을 비교하고 서로 내용이 다르면 영상 녹화물을 꼼꼼히 살펴 교정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영상 녹화물에서도 발음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완벽한 기록을 위해 해당 발언자에게 가서 최종 확인 절차를 밟는다. 현재 국회회의록 문서는 1948년 제헌국회부터 17대까지 국회기록보존소에 1754권(1권 1000쪽 기준)이 비치돼 있다. 본회의와 운영위원회, 예결위, 인사청문회 등 4개 관련 회의는 다음날 문서로 발간, 배포되고 3일후 국회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된다. 국회 속기사들이 가장 애를 먹는 것은 의원들의 부정확한 발음이나 사투리다. 손재옥 서기관은 “의원들이 아무리 빨리 발언을 해도 발음만 좋으면 문제가 없지만 사투리를 사용하거나 얼버무리는 발음이 나오면 기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 6월부터 모든 소위의 회의기록이 의무화됐기 때문에 업무량이 폭주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요구했던 ‘투명한 의정활동 공개 원칙’이 시행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13명의 속기사를 선발했다. 국회 속기에서도 수기보다는 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되는 추세다.1948년 제정국회부터는 손으로 쓰는 ‘수필 속기’의 시대였지만 지난 1995년 컴퓨터 속기가 도입됐다. 국회 속기사들은 보통 1분에 320자 정도의 속도를 낸다. 컴퓨터 속기는 한글의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한번에 쳐서 글자를 만드는 원리다. 과거엔 속기록을 일일이 ‘손으로 풀어서’ 회의록으로 복원했지만 지금은 컴퓨터 자동 번역 시스템이 도입됐다. 속기록 카드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자동적으로 한글로 바뀌는 시스템이다. ●과거엔 야당 의원의 밤샘 발언에 퇴근도 못해 속기과의 왕고참인 김창진(58) 과장은 37년전인 1969년에 국회에 들어왔다. 국회 속기과의 산증인인 그는 “한국의 의정사는 속기사의 역사”라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발언 제한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1960∼70년대 반독재 투쟁을 선언한 야당은 국회 투쟁의 하나로 합법적인 ‘필리버스터(의사방해) 전략’을 많이 구사했다. 김 과장은 “당시 한 야당의원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밤새워 발언을 하는 통에 속기사들이 퇴근도 못하고 작업을 한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특히 속기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화는 1966년 국회 오물투척 사건. 당시 야당인 김두한 의원은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은폐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본회의 도중에 인분을 단상에 투척했다. 그런데 속기사들은 정확한 기록을 위해 단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당시 김 의원이 던진 인분은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는 물론 선배 속기사들이 함께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본회의장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70년대 본회의장엔 재떨이가 상시 비치됐는데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다가 재떨이를 던지는 통에 속기사들의 안전을 위협했던 적도 있었다.”며 “후에 재떨이는 안전을 고려해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 본회의장에도 금연 문화가 도입됐다.”고 전했다. 의원 명패도 이동식 나무 재질이었으나 여야간 격돌시 ‘무기로 변질’되면서 붙박이 명패로 바뀌었다는 것이 김 과장의 ‘증언’이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국회 속기사 되려면… 속기의 역사는 기원전 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사형을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각 지방으로 유세를 다녔다. 그의 제자 타이론은 로마자를 적당히 약기하는 방법으로 스승의 연설을 받아 적어 각지에 공표했고 이것이 속기법의 효시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속기의 표기 방식은 손으로 쓰는 수필 속기와 컴퓨터 속기 등 두가지이고 구체적인 표기 방식은 고려식과 의회식 등 모두 7가지로 압축된다. 글자의 모양과 형태에 따른 구분이다. 국회 속기사가 되려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한글속기 3급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국회사무처가 시행하는 국가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임용시험은 필기·실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뉜다. 필기 시험 과목은 국어와 영어, 헌법, 행정법총론, 행정학개론 등이며 선발 예정 인원의 2배수 정도를 뽑는다.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치르는 실기시험은 연설의 경우 1분당 320자(5분), 논설은 300자(5분)가 최저선이다. 국회속기사 채용은 결원이 있는 경우 매년 12월경에 다음 연도 국가 공무원 임용시험 시행계획을 공고하고 6∼7월경에 시험을 본다.2004년과 2005년에 각각 4명씩을 뽑았으나, 올해에는 업무량 폭주로 13명을 선발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儒林(73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儒林(73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2) 그러므로 주역에 실려 있는 64괘의 대성괘 중 퇴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지산겸’ 괘야말로 군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자를 비롯한 정이천과 같은 송 대의 초기 유학자들이 이 ‘겸괘’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설을 가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먼저 이 괘에 대해 주자는 이렇게 풀이하였다. “겸(謙)이란 가지고 있으면서 가진 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순한 것이 겸의 뜻이다. 산은 지극히 높고 땅은 지극히 낮은 것인데 이제 높은 것이 굴하여 그 낮은 것 아래에 그쳤으니, 겸의 상(象)이다. 점치는 자가 이러하면 형통하여 끝이 있으리라. 끝이 있다는 말은 먼저 굴했다 다시 펴진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정이천 역시 이 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겸은 형(亨)이 있는 도이다. 덕이 있으면서도 있는 체 아니 하니, 겸이라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겸손으로 자처하면 어디에 간들 형통하지 않겠는가.‘군자는 유종하리라.(君子有終)’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즉 군자는 겸손에 뜻을 두고 이치에 통달하므로 천(天)을 즐기어 경쟁을 아니 하고, 안으로 충실하므로 퇴양(退讓)하여 자랑을 하지 아니하며, 겸손함을 편하게 지키어 종신토록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낮추면 남이 더욱 존경하고 스스로 낮추면 덕이 더욱 빛나게 드러나니, 이것이 이른바 군자가 ‘끝(終)’을 가진다는 뜻인 것이다.” 정이천의 표현대로 퇴양하고 퇴양하여 스스로의 호를 퇴계로 지었던 이황. 주역의 팔괘는 고대중국의 복희(伏羲)라는 어진 임금이 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을 보고 계시를 얻고, 다시 하늘의 천문과 지리를 살펴서 만물에 각자 마땅한 바를 관찰하여 만든 것으로 그렇다면 퇴계가 ‘군자유종’의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겸괘는 하늘이 점지한 천기가 아닐 것인가. ―돌아가신다. 스승께서는 군자유종의 미를 거두신다. 마침내 주역을 통해 하늘의 천기를 알아낸 제자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모두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행여 병석에 누운 퇴계가 들을까 곡성은 터져 흐르지 아니하였으나 일순 도산서당은 침통한 슬픔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 ‘간재문집’ 속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7일. 스승께서 이덕홍을 불러 서적을 맡으라고 지시하셨다. 퇴계선생의 병세가 너무 위독해서 제자들이 점을 쳤는데, 겸괘의 ‘군자유종(君子有終)’이란 점사(占辭)를 얻고 모두 아연실색하였다. 스승 퇴계의 종언(終焉)이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 [코나미컵] 삼성, 니혼햄에 1-7 대패

    |도쿄 박준석특파원|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경기전 연습 때만 하더라도 중심타선인 양준혁과 심정수의 홈런성 타구가 연이어 폭발해 분위기를 띄웠다. 선동열 감독도 “외야까지 멀어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멀지 않다.”면서 은근히 타선폭발을 기대했다. 그러나 경기에 돌입하자 ‘불방망이’는 ‘물방망이’로 변했다. 삼성이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왕중왕을 가리는 제2회 코나미컵 예선 1차전에서 일본대표 니혼햄의 벽을 넘지 못하고 1-7로 완패했다. 삼성은 10일 중국국가대표팀과,11일에는 타이완대표 라뉴와 예선 2,3차전을 갖는다. 답답한 타선이 역시 문제였다. 니혼햄이 홈런 1개를 포함해 10개의 안타를 폭발시킨 데 견줘 삼성은 단 3개에 그쳤다. 특히 중심타선인 양준혁과 심정수는 번번이 범타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삼성 벤치를 답답하게 했다. 타선이 맥을 추지 못하자 마운드도 함께 흔들렸다. 선발 임동규가 6회 상대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하기 전까지 5이닝 동안 1실점하며 버텼지만 이후 등판한 강영식, 권오준 등 계투진들이 난타를 당하면서 무너졌다. 삼성이 자랑하는 마무리 오승환은 등판기회 조차 잡지 못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후반 1-5로 점수차가 벌어지자 7회 수비부터 진갑용, 박진만 등 주전 일부를 빼면서 다음 경기에 대비했다. 1-1이던 5회 점수를 내지 못한 게 뼈아팠다.1사 1,2루의 찬스를 맞았지만 후속타자들이 모두 평범한 내야땅볼로 물러나면서 역전 기회를 놓쳤다. 44년만에 재팬시리즈 정상에 오른 니혼햄의 집중력은 무서웠다.5회 위기를 넘긴 뒤 6회 공격에서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4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갈랐다. 선봉에는 한국계 선수들이 있었다.3번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2루타만 3개를 뽑아내며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다. 특히 5-1로 앞선 9회에는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폭발시켰다. 또다른 한국계 모리모토 히초리는 6회 선두타자로 나와 대량득점의 포문을 여는 2루타를 터뜨리며 팀 승리를 도왔다.8회에는 자신의 홈런성 타구가 펜스 근처에서 잡혔지만 3루까지 전력질주해 관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편 타이완대표 라뉴는 앞서 열린 경기에서 홈런 2개 등 5타수 4안타를 폭발시킨 4번타자 첸진펑의 맹활약을 앞세워 중국 국가대표를 12-2,8회 콜드게임으로 물리치고 첫 승을 신고했다. pjs@seoul.co.kr ●패장 선동열 삼성 감독 선발 임동규가 한국에서와 별 차이 없이 잘 던졌다.5회 2사 2·3루 찬스에서 득점했다면 이기는 패턴으로 투수를 운용했겠지만, 찬스를 무산시킨 것이 패인이다. 방망이가 부진한 것은 우리 팀의 숙제다. 국 차이나스타스전과 타이완 라뉴 베어스전, 그리고 결승에서는 좋은 경기, 멋있는 경기를 보여주겠다. ●승장 트레이 힐만 니혼햄 감독 선수들에게 일본 대표로서의 자부심을 주지시켰다. 국제경기에서 거의 맞붙은 적이 없는 팀과 대결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오늘은 선수들의 자신감이 너무 넘치지 않았던 것이 도리어 도움이 됐다. 그런 상태가 경기를 하는 데는 좋다. 일본을 대표한다는 의식으로 플레이해 주기를 항상 주지시켰다. 이런 경기를 다시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야구하라고 강조해왔었다. ■ “해설 힘드네” 이승엽 마이크 잡고 긴장 |도쿄 박준석특파원|‘에휴∼ 힘들어.´ 9일 열린 코나미컵 삼성-니혼햄 경기 텔레비전 객원해설을 맡은 이승엽(30·요미우리)이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검은 정장차림의 말끔한 모습으로 경기장에 들어선 이승엽의 얼굴엔 경기에서 보여주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긴장감만이 가득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그라운드에서 실시한 방송 리허설도 세번 만에 간신히 통과했다. 야구는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마이크를 잡는 것은 ‘왕초보’. 중계시작을 알리면서 간단한 인사말을 하는 것이었지만 역시 서툴렀다. 리허설 도중 한국과 일본 사진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이승엽의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 선수로서 언론의 관심은 익숙해져 있지만 해설자로 카메라 세례를 받자 어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프로듀서로부터 “아나운서와 담당 해설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딴청 피우지 말고 듣는 시늉을 하라.”는 핀잔(?)까지 받았다. 두 차례 연습 뒤 이승엽만 따로 한번 더 연습하자는 말에 이승엽은 “또 합니까?”라면서 힘든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이 임박하자 더욱 부담감이 커진 듯 좀처럼 중계석에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빨리 중계석으로 올라가자.”는 방송 관계자의 몇 차례 종용에도 불구하고 삼성 덕아웃에서 옛 동료와 스승들과의 환담을 10여분 이어가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성 박흥식 코치는 “사투리 쓰지 말라.”면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요미우리와 4년 장기계약을 한 것과 관련,“1년밖에 뛰지 않았는 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우를 해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pjs@seoul.co.kr
  •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퇴계의 운명을 점쳐보는 괘상으로 ‘겸괘(謙卦)’가 나왔다는 사실에 많은 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너무나 정확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유종의 미.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켜나간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결국 이 말은 결국 스승 퇴계가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점괘가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주역은 퇴계가 겸손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고 운명할 것임을 분명하게 점지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제자들은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덕홍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효사(爻辭) 중 대상(大象)을 풀이하여 읽어 내려갔다.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에 있다. 이것이 겸(謙)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지산겸’괘의 두 번째 초음(初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겸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참으로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이음(二陰)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고 겸손하다. 자신의 마음에 자신을 가졌기 때문에 남에게 잘난 체해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삼양(三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니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사음(四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지산겸’괘의 효사 중 오음(五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귀한 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불복하는 자가 있으면 정벌(征伐)함이 좋다.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마지막 부분인 상음(上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미 군주의 지위는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국(邑國)을 정복하는 일쯤은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지산겸’ 괘의 총 해설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자가 되어서 교만 없기가 가난하여서 원망 없기보다도 어렵다.” 공자의 이 말은 예수가 말하였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연상시키는데, 이렇듯 퇴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겸’괘는 퇴계야말로 ‘어진 이를 존경하고 선비에게 몸을 낮춰야 한다.’는 ‘존현하사(尊賢下士)’의 도를 완성한 ‘겸손의 군자’임을 드러내는 괘상이었던 것이다.
  • 儒林(729)-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0)

    儒林(729)-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0)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0) 이덕홍은 서죽을 양손으로 나눈 후 왼손에 든 서죽에서 한 개를 뽑아 무명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는 천수(天數)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른바 점을 칠 때 제일 먼저 시작하는 중요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왼손에 들어있는 서죽을 네 개씩 네 개씩 차례로 덜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네개 미만의 서죽이 남자 다시 무명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것은 늑이라 불리는 두 번째 과정이었다. 이덕홍은 몇 차례씩 이런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괘를 얻고 있었는데, 이러한 작업은 초효(初爻)라 불리는 제일변(變)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한 효(爻)를 정하는데, 세 번의 절차를 밟고 무릇 18변에 해당되는 육효(六爻)를 얻어야만 비로소 점괘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덕홍은 그러한 작업을 순서에 따라서 차례차례 진행해 나갔다. 나오는 점괘마다 이를 종이 위에 적어 팔괘로 나누고, 다시 팔괘를 세분하여 대성괘(大成卦)로 나누어 점괘를 완성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덕홍은 마침내 스승의 점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점괘는 다음과 같았다. “-- -- -----” -- -- -- -- -- -- -- -- 이는 주역에 나와 있는 64괘의 괘상(卦象) 중 ‘간하곤상(艮下坤上)’에 해당하는 이른바 겸괘(謙卦)였다. ‘간하곤상’이라 하면 땅인 간(艮) 밑에 산(坤)이 있는 괘상인데, 이에 대해 주역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었다. 이덕홍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 앞에서 주역을 펼쳐 ‘간하곤상’의 괘사를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하였다. “겸손하면 형통한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 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치를 지킴으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은 기울듯이, 찬(盈) 것은 덜고 차지 않은 것(謙)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면 둑을 끊고 나와 낮은 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 데로 흐른다. 귀신은 가득 차 있는 자에게는 화(禍)를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福)을 준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이는 빛이 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자는 남이 업신여기지 못한다.” 주역에 나와 있는 64괘의 괘 중 퇴계에 해당하는 괘는 이른바 15번째의 지산겸(地山謙)괘였다.‘간하곤상’, 즉 ‘땅 밑에 산이 솟아 있다.’라는 괘상이 의미하듯 이 괘의 특성은 마땅히 산이라면 땅 위에 솟아 있어야 하는데, 땅 밑에 산이 우뚝 솟아있다는 뜻처럼 겸괘(謙卦)를 의미하는 것이다. 겸괘. 이는 문자 그대로 주역의 ‘겸손하면 형통한다.’라는 괘사처럼 겸손을 상징하는 것으로 퇴계에게 가장 적합한 점괘였던 것이다.
  • 儒林(728)-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儒林(728)-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9) 이덕홍의 울음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누구보다 스승의 몸과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었던 이덕홍이었으므로 이덕홍의 갑작스러운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의 슬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제자들은 모두 농운정사에 모였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평소에 머물고 잠을 자던 집인 지숙료(止宿寮).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모인 것은 스승 퇴계의 운명에 대해 주역을 통해 점을 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이따금 서당에서 주역을 통해 점괘를 얻곤 하였다. 주역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책을 엮은 죽간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韋編三絶)’ 정도로 주역을 탐독하였으며,‘내게 몇 년의 수명이 더해져 주역을 공부해 나가면 흉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소중히 여겼는데, 이는 공자가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보기보다는 우주원리를 꿰뚫는 철학과 수양의 책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퇴계도 젊은 시절 공자처럼 몸이 상할 만큼 주역에 심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역은 이처럼 심오한 철학서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점서(占筮). 따라서 도산서당에서는 이따금 퇴계를 필두로 주역을 통해 점괘를 얻곤 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덕홍은 주역에 밝아서 생전에 ‘주역질의(周易質疑)’란 역학 책을 저술하였던 문인. 그러므로 이덕홍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한데 모여 스승의 운명을 주역을 통해 점을 쳐보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의식은 역학에 밝은 이덕홍이 집전하였다. 이덕홍은 산통(算筒)을 꺼내왔다. 산통은 점칠 때 쓰는 기구로서 그 안에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算本)를 넣어두는 통이었는데, 서당에 항상 비치하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이덕홍은 산통 속에서 서죽(筮竹)이라고 불리는 점치는 산가지를 꺼내었다. 산가지의 숫자는 50개가 정량. 그 중 한 개는 태극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여 제쳐놓고 49가지만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왜냐하면 유학에 있어 태극은 천지만물의 가장 근원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였으므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은 서죽을 꺼낸 후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래었다. 이는 이덕홍의 행동을 지켜보는 모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주역을 통해 점을 칠 때에는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몸가짐이었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을 갖거나 부정한 일을 위해서 점을 치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역은 천지신명의 바른 법칙을 본받아 그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계시를 얻는 것이므로 부정한 일을 위한 점은 주역의 원리를 반역하는 일이며 또한 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점을 치거나 주역의 결과를 의심하는 것은 상천(上天), 즉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로 금기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열린세상] 큰바위 얼굴,어디 없나/강지원 변호사

    어린 소년 어니스트는 어느날 해질 무렵 집 앞에 앉아 어머니에게서 그 골짜기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예언을 듣는다. 언젠가 저 호수 건너 바위언덕에 새겨진 큰바위 얼굴과 꼭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감동을 받아 그런 인물을 만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큰바위 얼굴은 항상 고결하고 온화한 모습을 하고 그에게 스승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걸출한 인물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온 마을이 들썩였다. 게더 골드. 그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길가의 거지에게 동전 몇 닢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수많은 전쟁을 겪은 장군이었다. 또 올드 스토니 피즈. 말 잘하는 정치가로 오직 한 치의 혀로 청중에게 그른 것도 옳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가졌다. 막 대통령 추대 움직임까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실망했다. 마지막으로 시인. 그는 글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고백한다. 자신은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시인은 외친다.‘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큰바위 얼굴과 같습니다.’그러나 그는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바위 얼굴 같은 용모를 가지고 쉬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부자의 재산, 장군의 칼, 정치가의 혀, 시인의 일상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돈·권력·명예·인기 같은 것들은 우리네 삶의 진실함과 선량함과 아름다움과 어떤 연관을 가져야 할까. 때는 바야흐로 추수의 기쁨이 넘칠 깊은 가을인데도 온 나라, 온 세상은 소란스럽기만 하다. 누구 때문일까. 벌써부터 대통령 자리,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판이 지각변동으로 뒤집히기 시작하는 듯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또다시 신당이다, 창당이다, 재창당이다 하며 법석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당신들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허구한 날 집구석 타령만 하는가. 집구석 뜯었다 고쳤다 한다 해서 어디 사람이 바뀐다고 하던가. 또어떤 이들은 툭하면 외국에 나가서 몇달씩 있다 오거나 또 지방을 싸돌아다니며 정책구상을 한다거나 민심탐방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묻는다. 당신들은 도대체 지금까지 외국에 안 가서, 또 지방에 안 싸돌아다녀서 정책구상도 없고 민심도 몰랐단 말인가. 그 바쁜 시기에 외국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국내외로 싸돌아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도무지 진실하지가 않다. 온통 쇼에다 추악한 욕망에 얄팍한 잔머리 굴리기만 횡행하고 있다. 경제판도 가관이다.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데는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도 크다. 그러나 경제는 어디까지나 경제인의 몫이요, 우리 소비자 국민의 몫이다. 우리가 언제 정치꾼들의 말을 믿어 덕 본 적이 있던가. 아예 우리는 몰라라 하고 제 공장 열심히 돌리고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제일이다. 분식회계하지 않고 투명하게 윤리경영하며 이웃과 함께 하는 기업,‘뗑깡’부리지 않고 기업과 상생하며 일의 보람을 찾는 노동자들은 없는가. 세상이 어지러울 때일수록 사람들은 모세 같은 인물이 바람처럼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서민생활이 도탄에 빠지고 국내외에서 엄청난 불안이 엄습해 올수록 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출해 줄 인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그런 인물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을 구출하는 것은 어떤 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 더이상 모세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모세가 되고 큰바위 얼굴이 되자. 큰바위 얼굴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안에 있다. 우리네 각자가 주인공이므로 부디 제 갈 길에서 자신만의 큰바위 얼굴을 찾자. 그리하여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한다. 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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